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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7월>


하치만 (더워졌구나...)

미우라 「...아~ 히키오, 너 말야... 뭔가 재미있는 얘기 같은 거 없어?」

하치만 「...없어」

미우라 「너. 너무 재미없지 않아?」

하치만 「난 예전부터 이래, 재미를 바란다면 딴 데로 가」

미우라 「아, 그건 더 싫어.」

하치만 (이 녀석... 요즘 말하게 된 것 같은데... 쉬는 시간에 내 자리 옆에 진을 친다.)

하치만 (그 탓에 그 자리의 A군이 진짜 이상하게 저쪽에서 보고 있다고)

하치만 (그래도 여왕님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미우라 「...」 삑 삑

하치만 「또 음악 게임 해?」

미우라 「뭐 그렇지, 이거 꽤 재미있고. 너도 할 거야?」

하치만 「아니, 나도 어 어플, 이미 샀어... 중간까지밖에 안 했지만」

미우라 「헤에~ 너, 한다고? 어디까지?」

하치만 「안 보여줄 건데?」

미우라 「그렇게 싫은 표정 하지 말고, 보여줘 봐」

하치만 「그래그래」

하치만 (3학년이 되고 나서, 운 나쁘게 토츠카와도 떨어지게 되고....)

하치만 (그렇다고 할까, 내가 아는 사람 이 녀석밖에 없었다... 아무튼 마음 편해서 좋았지만...)

하치만 (그건 미우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주위 사람들은 전부 아는 것 같지만)

하치만 (처음에는 『아, 히키오잖아, 너도 이 반?』이라고 말한 뒤에는 얘기할 일은 없었지만...)

미우라 「너 전혀 안 갔잖아... 아직 90만점이 네 번이라든가... S랭크 음악도 없고...」

하치만 「아니, 어중간하다고 말했잖아? 그나저나 의외구만. 네가 게임에 빠지다니」

미우라 「이거 게임으로 안 봐도 음악이 좋으니까. 그리고 점수 겨루는 것도 재미있고」

하치만 「그렇습니까」

하치만 「......」

하치만 (그래서... 언제였지... 한 달 정도 전인가?)

하치만 (이 녀석이 내 옆에 갑자기 앉기 시작했지... 옆에 있는 A군 자리에...)

하치만 「아무튼, 이 음악 게임의 노래가 좋은 건 나도 동의한다만...」

미우라 「그치~? 이것에 빠지는 이유도 알겠어.」

하치만 「빠지는 이유는 상관없잖아...」

미우라 「너, 이론이 많아. 시끄러」

하치만 「우와~ 너무해~」

미우라 「아니아니, 토베가 널 가지고 엄청 놀려대기도 했고」

하치만 「아무튼, 저건... 내 자업자득이지」

미우라 「아~ 작년 문화제 때, 너 나쁜 짓 했었지?」

하치만 「뭐, 난 그 때 교내 No.1 나쁜 놈이었으니까...」

미우라 「어라? 사가미 탓이잖아.」

하치만 「어떻든 상관없어.」

미우라 「요즘, 걔. 또 너를 나쁘게 말하는 것 같던데.」

하치만 「뭐? 잘 모르겠는데... 왜?」

미우라 「글쎄」

하치만 (지금, 이 녀석 나한테 알려준 건가...?)

하치만 (잘 모르겠다... 아무튼, 미우라는 여장부형 기질이 있으니까)

미우라 「...」 삑 삑

하치만 「뭐해?」

미우라 「니 폰번, 등록하는 중이야」

하치만 「뭐?」

미우라 「뭐, 걸진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만약을 위해서」

하치만 「의미를 모르겠다...」

미우라 「......」

하치만 (하아... 미우라는 6월에...)

미우라 「너 말야... 연락처... 유이가 있었구나.」

하치만 「아니, 뭐...」

미우라 「유키노시타가 없는 게 의외라고 할까」

하치만 「그래?」

미우라 「그보다 이로하도 있네?」

하치만 「아무튼 뭐...」

하치만 (어라? 얘도 이로하라고 부르게 됐어? 아니, 전부터 불렀었나? 까먹었다.)

미우라 「흐~응」

미우라 「자 이거. 돌려줄게.」

하치만 「응」

하치만 (아, 흥미 없는 듯이 게임 시작했다.)

하치만 (하아......)

하치만 (이 녀석, 6월에 하야마에게 고백한 것 같다...)

하치만 (그런데, 내 자리 옆에 갑자기 와서...)

미우라 『하야토한테...... 차였어』

하치만 『왜 나한테 말해?』

하치만 (그 때, 왜 나한테 말했는지 몰랐지만...)

하치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왠지 알 것 같다...)

미우라 「히키오, 자 봐봐」

하치만 「응? 99만 5천점이라니...... 너, 엄청나잖아...」

미우라 「그렇지도 않아, 100만점 얻는 사람도 의외로 있는 것 같으니까.」

하치만 「95만점 이상이 S랭크였나?」

미우라 「그래, 100만점이면 퍼펙트」

하치만 (그러고 보니, 엄청난 스피드로 손가락이 움직였던 기분이 든다...)

하치만 (그나저나 쉬는 시간에 이런 데에서 잘도 그런 점수를 내는구만)

하치만 (뭐, 여왕님 탓에 주위에 아무도 없지만요)

미우라 「아, 벌써 쉬는 시간 끝났고. 그럼 낮에도 올 거니까」

하치만 「에~」

미우라 「뭐어?」

하치만 「네」

하치만 (차였다고 했을 때 미우라의 얼굴은...)

하치만 (얼굴이 창백해서...... 나도 놀랐다...)

하치만 (울지는 않았지만, 아니 이미 시들어 있었다.)

하치만 (자살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엄청난 표정이었다.)

하치만 (저런 모습, 에비나나 유이가하마에게는 역시 보일 수 없을 테고...)

하치만 (그래서 토베 일행보다 내가 신뢰됐다는 건가?)

하치만 (역시 놀라서, 하야마를 만나러 갔었다...)

하치만 (들은 내용은 잇시키...가 아니지, 이로하의 고백 실패 당시와 대체로 비슷하다...)

하치만 (약간 열이 올라서... 말싸움을 했지만... 조금만)

하치만 (그날 밤은 설쳤다. 내가 마치 미우라를 위해 행동한 것 같잖아?)

하치만 (아니아니, 그렇게 귀찮은 일 안 했는데.)

하치만 (그래서 그 이후로... 어떤 식으로 미우라에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애초에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치만 (쉬는 시간에는 대개 A군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하치만 (인생 한 치 앞은 모르지만... 한 치 앞은 미우라였다.)



<점심시간>


하치만 「그러면 밥 먹을까」 바스락바스락



미우라 「너, 멋대로 먹으려고 하기도 했고」

하치만 「아니, 단정하는 겁니까?」

미우라 「아니, 오늘도 왔잖아?」

하치만 「아...」

드르륵

이로하 「아, 선배~!」

하치만 (오늘도 왔다... 하아...)

이로하 「선배, 밥 먹으러 왔어요!」

하치만 「요즘은 거의 오는구만.」

이로하 「그러네요.」

하치만 「마음대로 해라...」

이로하 「마음대로 할게요~」털썩

미우라 「...」

이로하 「아, 미우라 선배도 안녕하세요.」

미우라 「응」

하치만 (응은 인사가 아닌데? 내가 할 말도 아니지만...)

미우라 「이로하, 너 항상 도시락이네」

이로하 「그러네요, 과자 만들기가 취미니 이거 정도는...」

미우라 「흐-응...」 우물

이로하 「아...」

미우라 「왜? 안 돼?」

이로하 「아뇨, 별로 상관없는데요...」

미우라 「그럼 이 빵 좀 먹을게.」

이로하 「네, 잘 드세요.」

하치만 (이 둘... 뭔지 잘 모를 관계구만)

하치만 (아, 하야마에게 차인 둘이라는 의미에서는 가깝지만...)

이로하 「선배, 뭘 보는 거예요? 좀 깨는데요.」

미우라 「우와, 징그러...」

하치만 「뭐냐고, 둘이서 똑같이...」

이로하 「선배도 제 도시락 먹고 싶어요?」

하치만 「아니 딱히... 내 빵 있으니까.」

이로하 「이로하라고 불러주면 드릴게요.」

미우라 「......」

하치만 「아니, 그게... 그거 뭐야? 벌 게임?」

이로하 「아뇨, 슬슬 불러줘도 좋잖아요~~?」

하치만 (왜일까...)

하치만 (잇시키...가 아니라, 이로하는 4월에 내가 이 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가끔 오게 되었다.)

하치만 (뭔가, 봉사부에 오는 흐름으로 되었다...)

하치만 (그래서 그걸 계기로 이름으로 부르라고 했던가?)

하치만 (그 때의 주변의 눈은, 진짜)

하치만 (「학생회장이잖아」라든지...「사귀는 거야?」 이런 말이 들린 것 같다.)

하치만 (그거야 2학년 여자가 찾아와서 얘기할 뿐인데...)

하치만 (「이로하라고 불러주세요, 선배!」라고 말하면 오해도 살만하다...)

하치만 (정확하게는 5월 정도부터 이상한 시선으로 보였지, 확실히...)

하치만 (그래서, 6월이 되어 미우라가 A군의 자리에 앉게 되고 나서, 이로하로 불러달라는 요구를 더 강화한 것 같다... 왠지 엄청 끈질겼지)

하치만 「몇 번인가 불렀잖아? 이제 그걸로 봐줘.」

이로하 「선배, 요즘 저를 성으로도 안 부르게 됐죠?」

하치만 「왜냐면 너 화내잖아...」

이로하 「이로하라고 불러주면 화 안 낼 거예요.」

하치만 「그거 굉장한 이론이군...」

미우라 「...」

하치만 (또 호기 어린 눈으로 보이는군... 부탁이니까 주변을 신경써주라)

하치만 (그건 여왕님에게도 해야 할 말이다만?)

미우라 「뭐, 빨리 부르지 그래? 이로하라고」

하치만 「미우라는 이로하 편인가...」

미우라 「...아니거든」

하치만 「헤에?」

이로하 「아, 지금 불렀죠? 보통으로」

하치만 「아, 뭐... 그래, 이제 그걸로 됐잖아?」

이로하 「어쩔 수 없네요, 지금은 그걸로 좋아요.」

이로하 「아~앙 해주세요.」

하치만 「아니아니, 그런 거 안 할 거거든? 계란부침 잘 먹겠습니다.」 삭

이로하 「아!」

하치만 「우물우물」

미우라 「...」

이로하 「치사해요!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거 알았으면서~!」

하치만 「아니... 약삭빠르니까, 이로하스... 이제 나, 두근거리지 않으니까.」

이로하 「알고 있어요~」

하치만 「메모리얼이니까」

이로하 「네? 뭐예요?」

하치만 (역시 안 통하나... 세대라고 해도 한 세대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

미우라 「...너희들 말인데」

이로하 「네? 뭐가요?」

미우라 「사이좋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하치만 「의외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 보이네...」

미우라 「뭐 그렇지」

하치만 「미안하군, 학생회장과 외톨이 최하층인 내가 같이 있어서」

미우라 「아니, 그렇게까지는 말 안했거든」

이로하 「선배...」

하치만 「응? 뭔데?」

이로하 「아까 전 선배가 『의외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 보이네』라고 한 말은, 저와 사이좋은 건 인정하는 거예요? 그런 거예요? 꼬시는 거예요? 죄송해요. 이제 슬슬 OK해볼까,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만 무리예요!」

하치만 (이 대사, 오랜만에 듣는구만.)

하치만 (그나저나, OK 선을 넘었다고? 그래서 무리라니 모순 아냐?)

미우라 「......」



<방과 후>


딩동~댕동~


하치만 「그럼, 가볼까...」

미우라 「히키오」

하치만 「뭡니까? 방과 후까지, 뭔가 볼 일 있슴까?」

미우라 「너 말인데, 오늘도 봉사부?」

하치만 「그래, 일단은」

미우라 「흐-응, 의뢰 같은 건 와?」

하치만 「별로 안 오지... 뭐, 지금은 그 편이 고마울지도」

하치만 「공부할 수 있으니」

미우라 「히키오, 이과에 약했지? 치명적으로」

하치만 「시꺼, 이래봬도 요즘은 회복중이야.」

하치만 「그만한 대학이 목표니까」

미우라 「흐-응」

하치만 「그래서, 나-양(あーしさん)은 돌아갑니까?」

미우라 「앙? 지금 뭐랬어?」

하치만 (히익! ...이 눈 너무 무섭다구요... 나-양...)

하치만 (2학년 때도 이 눈에 몇 번이나 찔렸던가...)

하치만 「미안... 뭐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미우라 「왜 존댓말이야?」

하치만 「왠지 모르게.」

미우라 「뭐라고 부르라니......」

미우라 「...」

하치만 「...?」

미우라 「펴, 평소 부르던 것밖에... 뭘 징그러운 말 하는 건데?」

하치만 「미우라 님의 징그럽다 발언은, 제 마음을 도려낸다니까요?」

미우라 「아니, 몰라. 히키오 같은 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거든」

하치만 「그렇습니까」

미우라 「그럼, 나- 갈 거니까」

하치만 「그래」



뚜벅뚜벅


하치만 「미우라와 인사하고, 봉사부에 가다니,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치만 「...」

하치만 「이것도 변화인가」

하치만 (3학년이 되고 나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바빠진 것 같아서...)

하치만 (봉사부 활동을 실질적으로 쉬는 상태다)

하치만 (뭐, 최근에는 학생회 고문? 이라기보다 책임자라고 할까...)

하치만 (게다가 생활지도에 현 3학년의 수험대책이라든지... 그 외 기타 등등)

하치만 (봉사부의 그림자가 옅어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하치만 (그나저나 우리들도 3학년이고 7월에 접어들고 있으니 은퇴라는 말도 딱 와 닿는군)

하치만 (즉, 여기에 올 필요도 딱히 없을 텐데...)

하치만 (습관이라는 건 역시 무섭다)

하치만 (저절로 발길을 옮긴다고 할까...)

드르륵

유키노시타 「어머, 히키가야. 안녕」

하치만 「그래」

유이 「얏하로~ 힛키!」

하치만 「그래」

하치만 (그렇게 아무튼 평소의 둘이 있어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거나 한다)




<봉사부>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홍차 마실 거니?」

하치만 「그래, 부탁할 수 있을까?」

유이 「아, 유키농! 나도 마시고 싶은데」

유키노시타 「그래, 물론이야.」

유이 「그렇다고는 해도, 공부하면 졸려져.」

유키노시타 「그런 말하면 안 된단다. 앞으로 반년밖에 없으니」

유이 「웅... 그러네...」

유이 「그래도 말이야, 힛키나 유미코나 하야토랑도 뿔뿔이 흩어지게 됐잖아.」

하치만 「...싫었던 거야?」

유이 「그래도, 작년에는 모처럼 모두 같은 반이었고, 여러 가지 했는데」

하치만 「여러 가지라...」

하치만 「나도 토츠카와 떨어져서 외로운데」

유이 「우와, 힛키 징그러!」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그 발언은 성희롱이라고 봐도 되겠니?」

하치만 「어째서야... 토츠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성희롱이라니...」

유이 「그나저나, 나랑 떨어진 건 그렇게 외롭지도 않았나 봐...」

하치만 「뭔가 말했어?」

유이 「어?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조금 자중해주렴.」

하치만 「뭘?」


유이 「그런데, 이로하 오지 않을까~?」

하치만 「아아... 이로하라면, 학생회라서 오늘은 못 온다고 했었지...」

유이 「...」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하치만 「아...」

하치만 (아차... 무심결에...... 들었겠지?)

유이 「힛키 지금, 이로하를 이로하라고 불렀어...」

하치만 「어? 그랬었나...」

유키노시타 「그래, 틀림없이 불렀어.」

하치만 (들렸구나... 뭐야? 이 상황...)

유이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불렀던 건?」

하치만 「아니... 요새 말이다」

유키노시타 「그러고 보니, 그녀가 오는 횟수도 줄어들었구나.」

유이 「응, 그러네.」

하치만 「학생회로 바쁜 것 같으니. 오지 않는 게 보통이고, 정착해도 곤란하잖아.」

유키노시타 「그건 그렇지만」

하치만 「그렇다면, 됐잖아.」

유이 「그래도 말야~」

하치만 「왜?」

유이 「3월까지는 그게 보통이었던 걸... 역시 좀 외로워」

하치만 「......」(외로움...인가)

유키노시타 「...」

유키노시타 「어쩔 수 없어... 변함없는 건 없으니」

하치만 「그렇지」

유이 「응...」

하치만 (잇시키 이로하라... 그 녀석, 봉사부도 아닌데 자주 왔지)

하치만 (이러니저러니 무드 메이커였나)

하치만 (지금 여긴 도서관에 가깝다. 공부하는 조용한 곳)

하치만 (홍차도 나오고, 그건 그거대로 좋지만)

유이 「있잖아, 좀 이따 어딘가 같이 갔다 가자!」

유키노시타 「상관없어.」

하치만 「갑작스럽구만... 그나저나, 아직 부활 중이잖아.」

유키노시타 「네가 그 말을 하면 위화감 밖에 들지 않는단다.」

하치만 「어디에 갈 건데?」

유이 「그럼, 저녁 먹고 노래방이라든지?」

하치만 「그런 건, 미우라 같은 애들과 가지 않았어? 유이가하마는」

유이 「에~ 그렇지도 않다구. 사이하고 확실히 저번에도 갔는데?」

하치만 「뭐!? 토츠카와 갔다고? 부럽다!」

유이 「힛키 진짜 징그러워! ...그리고, 화낼 대상이 다르다구... 보통은」

하치만 「응?」

유이 「아무튼, 사이랑은 같은 반이 됐으니까. 그래서 그래.」

하치만 「그게 우선 부러워.」

유키노시타 「정말로 기분 나빠, 히키가야. 이미 경찰을 부를 정도야.」

하치만 「그렇습니까... 그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 심한 말하고 있구만.」

유이 「그래도, 왠지 이 대화 흐뭇해져」

유키노시타 「그러니?」

유이 「그렇다구!」

하치만 「뭐, 그 쪽은 괜찮겠지만... 같은 반이라고 한다면」

유이 「아, 힛키. 유미코랑 같은 반이랬지?」

하치만 「아무튼 뭐...」 (아차, 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유키노시타 「그래? 몰랐어.」

하치만 「넌 그 녀석과 견원지간이니까」

유키노시타 「그렇지도 않은데... 적어도 나는」

하치만 「자각이 없나... 말싸움으로 울렸으면서...」

유키노시타 「그 일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생각해.」

유이 「......」

유이 「힛키, 유미코 말인데. 반에서는 어때?」

하치만 「어떠냐니... 걔한테 듣지 못했어?」

유이 「응... 요새는 별로 반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는 저랬지만...」

유키노시타 「소문?」

유이 「아, 아하하」

하치만 「너, 내 반에도 별로 안 오지」

유이 「응... 좀 그래서... 모두 따로 떨어졌고」

유키노시타 「그건 하야마 그룹 말이니?」

유이 「응...... 반으로도, 그룹으로도?」

하치만 (미우라 녀석, 하야마에게 차이고 내 옆에 눌러앉게 된 것이라든지, 딱히 말 안했군...)

하치만 (아니, 말을 해도 그건 그거대로? 난처하지만요.)

하치만 (뭐가 곤란? 하치만 몰라.)

하치만 「뭐, 작년 의뢰에서도 그랬지만, 저 녀석들의 관계는 그런 거였으니」

유키노시타 「너도 말했었지, 하야마의 그룹과」

하치만 「아무튼, 남자 무리는」

하치만 (미우라가 차이고 내게 온 시점에서 그걸 묻지 마)

하치만 (그도 그럴게 나잖아? 만년 외톨이에, 미우라 입장에서 보면 이유 없이 미움 받는 사람인데?)

하치만 (그나저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딱히 미움 받지 않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하치만 (토베 일행이나 찬 하야마야 어쨌든, 미우라는 유이가하마에게도 말을 안했던 건가?)

유이 「4월 정도에는 반에 대해서도 보통으로 이야기하던데? 힛키밖에 없었어~라든지」

하치만 「엄청나게 상상이 가는 광경이군... 굉장히 싫어하는 광경이」

유이 「...그렇지도 않았는데」

하치만 「그래?」

유이 「응, 그리고... 6월? 인가 돼서는 반 이야기는 별로 안하게 되었던가?」

하치만 (우와... 시기가 겹쳤다구요, 나-양...)

유이 「공통으로 아는 사람이 힛키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는데」

하치만 「뭐, 말할 화제도 없어질 테니까... 하하」

유키노시타 「그래서? 조금 전에 말했던 소문이라는 건?」

유이 「응 그 때부터 좀...」

하치만 (파고들지 말라고... 유키노시타...)

유키노시타 「무슨 소문이니?」

하치만 「아니... 소문이고, 그렇게 파고들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

유이 「힛키, 찔리는 거 있지?」

하치만 「아니 없는데? 없다니까요?」

유이 「그럼 상관없는 거네.」

하치만 「...」

유키노시타 「그래서?」

유이 「실은... 유미코가 힛키랑 교실에서 자주 얘기한다는 소문인데」

유키노시타 「그래」

유이 「...」 뚫어져라~

유키노시타 「...」

하치만 (어쩐지 둘이 가하는 압박이 장난 아니다...)

하치만 (양 사이드에서 미식축구 선수에게 밀리는 것 같다.)

하치만 「역시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나...」

유이 「진짜야?」

하치만 「뭐, 그렇지... 미우라한테도 듣지 못했어?」

유이 「응, 전혀」 싱글벙글

하치만 (유이가하마 씨 왠지 엄청 무셔...)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반에서 본 적은 없니?」

유이 「운이 나빴는지 수업 끝나고 나서는 못 봤어.」

하치만 「얘기할 때는 쉬는 시간이니까. 게다가 최근이다.」

유이 「언제부터?」

하치만 「한 달이 채 안 될 정도.」

유이 「마침, 유미코가 얘기하지 않게 됐을 때네.」

유이 「그래... 유미코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하치만 「이봐이봐... 이상하게 오해할 법한 말을 하지 마.」

유키노시타 「어머, 오해인 거니? 심상치 않은 관계가 아니라?」

하치만 「아니라니까, 단 한 달 사이에 그런 관계가 되겠냐. 그전까지는 타인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유키노시타 「그렇다고 해도, 이제 1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가 되잖니.」

유이 「유미코, 힛키가 생각하는 것보다 힛키 인정하고 있어.」

하치만 「......그래?」

유이 「응. 흥미 없다든가, 징그럽다든가 말하지만, 진짜로 힛키를 나쁘게 말하진 않는 걸.」

하치만 「징그럽다는 건 나쁜 말이다만.」

유이 「아, 그걸로 떠올랐는데... 사가밍 말야」

하치만 「사가미가?」

유이 「전 문화제 실행위원인 애한테, 여러 가지 말을 들었대. 있잖아, 작년에...」

하치만 「사태에 대해서?」

유이 「응...」

유이 「그래서 떠올라서 화냈다고 할까? 작년에 힛키한테 당한 걸 또 퍼뜨렸다든가」

유키노시타 「여전하구나...」

하치만 (나-양이 말했던 건 이거였나)

유키노시타 「하지만 쓸데없는 일이야. 애초에 다음 문화제가 잡힌 상황에서 이제 와서고」

유이 「응, 사가밍도 초조해서 말할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유키노시타 「그녀의 경우는 완전히 자업자득이지만.」

하치만 「......」

유키노시타 「그래도... 혹시, 그녀가 도를 넘을 것 같으면... 이쪽에도 생각이 있어.」

유이 「유키농...?」

하치만 「...유키노시타, 그거 내가 작년에 한 게 엉망이 될 테니까?」

유키노시타 「아무튼, 그건 됐어. 그런데 화제를 되돌리겠는데...」

하치만 「뭔데?」

유키노시타 「미우라와는... 왜 얘기하게 됐니?」

하치만 「뭐? 갑작스러운데」

유키노시타 「딱히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 들어두려고 생각해서」 어흠

유이 「유키농...」

하치만 「아니, 그건 말이지...」

하치만 (응...? 이거 말해야 하나? 하지만 미우라도 얘기하지 않았고...)

하치만 「유이가하마... 미우라한테, 중요한 일 아무것도 못 들었어?」

유이 「어? 중요한 일이라고?」

하치만 (그 녀석, 역시 하야마에게 차인 것도 말 안했군)

하치만 「아무튼, 우선. 내 옆에 A군의 자리에 그 녀석이 앉아서 게임 이야기를 한창 했어.」

하치만 「그런 느낌이야.」

유이 「게임 얘기를 한창 했다고? 어? A군은...」

하치만 「불쌍하게도 여왕님의 먹이가 된 초식동물이다.」

유이 「헤에... 그래도 게임이라니...」

하치만 「이거야」

유이 「이건... 유명한 음악 게임이잖아!」

유키노시타 「유명해?」

유이 「응! 음악이 엄청 좋다는 평이야!」

유이 「세계적으로도 몇 백만 명이나 플레이한댔어.」

유키노시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치만 「어쨌든, 이게 공통의 화제가 된 거지.」

유이 「헤에~ 유미코, 이거에 빠졌구나」

하치만 「뭐, 그런 거다. 이해했어?」

유키노시타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우선은 납득했어.」

유이 「그래도, 이로하하고도 친해지지 않았어? 힛키?」

하치만 「그건 봐줘... 왜 전부 설명해야 하냐고...」

유이 「역시, 숨기는 게 있는 거야!」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얘기하는 편이 너에게 좋단다?」

하치만 「난 심문받는 겁니까?」


유이 「그럼, 밥만이라도 먹으러 가자!」

유키노시타 「그래, 그렇게 하자.」

하치만 「그래그래」

유이 「저기, 힛키는 말야」

하치만 「응?」

유이 「이로하, 이제부터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유키노시타 「...」

하치만 「그 녀석 끈질겨서... 이름으로 부르라고 습관처럼 말하니까...」

유이 「이로하!」

하치만 「부끄러우니까 그만해...」

유이 「힛키 얼굴 빨개~~!」

하치만 「큭...」

유키노시타 「6월경부터, 이름으로 부르라고 끈질기게 강요하다니...」

하치만 「범죄 티가 나는 말투는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유키노시타 「그래도 사실이잖니?」

하치만 「이로하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유이 「으으...」

유키노시타 「오늘은 히키가야에게 대접 받을까」

하치만 「뭐? 어째선데?」

유이 「왜냐면 여러 가지 숨기기도 했고」

하치만 「딱히 숨기진 않았는데...」

유키노시타 「미녀 둘을 대접한다는 건 스테이터스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치만 「자기가 말하지 마...」

유이 「사주는 얘기는 그렇다 치고, 사이제면 됐지? 적당하고」

하치만 「그렇지」

유키노시타 「상관없어.」

유이 「그럼, 출바~~~~알!」

하치만 (실없는 얘기를 하면서, 가끔 같이 밥을 먹으러 가게도 되었다.)

하치만 (4월에 접어든 이후, 히라츠카 선생님의 사정으로 봉사부에서는 공부하는 때가 많은데)

하치만 (이것이 봉사부의 현상이군...)

하치만 (1년에 걸쳐서, 몇 개 정도의 행사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고... 연말은 몸부림치는 명문구를 말하고...)

하치만 (올해 들어서도, 발렌타인 같은 행사가 있었지...)

하치만 (그래서, 지금이 있다...)

하치만 (아무것도 아닌 거지만, 나에게는 어쩌면 둘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치만 (그리고... 6월에 미우라와 관련해서 몸부림치고 말았다... 아니, 뜨거워지고 말았습니다. 진짜... 나답지 않다...)

하치만 「그나저나 오늘 내가 사는 거야? 응? 토츠카 없는데?」



<다음 날 점심시간>


이로하 「그러면 먹자구요!」

하치만 「당연한 듯이 있는데」

이로하 「선배, 부끄럼 감추기 귀엽네요~」

하치만 「아니, 틀리거든」

미우라 「내- 빵 말인데, 요즘 생긴 가게 건데... 좋은 느낌이야.」

하치만 「뭐, 크림계라는 건가? 맛있어 보이네.」

미우라 「너도 먹을래? 자」

하치만 「머, 먹어도 돼...? 미안」

우물

하치만 「엄청 맛있는데...」

미우라 「그치?」

이로하 「아~ 선배! 제 것도 먹어주세요!」 푹

하치만 「켁! 쿨럭... 입에 막 넣지 마...!」

미우라 「이로하, 너 그거 진짜로 그만둬. 위험하니까」

이로하 「아... 죄송해요...」

하치만 「뭐, 이로하의 도시락, 여전히 맛있다고 생각해...」

이로하 「ㄴ, 네. 그쵸! 에헤헤~~!」

미우라 「......」


이로하 「그럼, 점심시간도 끝났고 돌아갈게요.」

하치만 「그래」

미우라 「또 와」

이로하 「네!」


미우라 「그럼, 나-도 내 자리로 갈 거니까」

하치만 「그래...아, 맞다. 하나 물어도 돼?」

미우라 「뭔데?」

하치만 「너 말야, 유이가하마한테 하야마에게 차인 거 말 안 했어?」

미우라 「...그게 뭐?」

하치만 「역시 말 안 했었군.」

미우라 「너, 유이한테 말했어?」

하치만 「말 안 했다, 안심해라.」

미우라 「...」

하치만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미우라 「그건... 걱정 끼칠 뿐이고」

하치만 「그것뿐이야?」

미우라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들 그룹이 옅은 관계라는 거」

하치만 「옅은 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만」

미우라 「그건 어떻든 상관없고. 내-가 하야토한테 차이고 관계 나빠져서...」

미우라 「유이한테도 얘기했다가 더 나빠지는 것도 무섭고...」

하치만 「그건 에비나나 토베도 마찬가지라는 말이지?」

미우라 「그래」

하치만 「나한테 온 이유는 내가 멤버와는 관계없기 때문인가」

미우라 「아니야」

하치만 「어?」

미우라 「히키오한테 온 이유는...」

하치만 「...?」

미우라 「지금까지의 널 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그랬을지도」


하치만 (응? 지금 뭐라고? 이 사람 미우라 맞지?)

하치만 「그랬을지도라니 뭐야?」

미우라 「나-도, 그 땐 어쩔 줄 몰라서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고...」

하치만 「뭐, 그렇겠지... 그나저나, 시간도 마침 점심시간이었군.」

미우라 「응」

미우라 「...」

하치만 「...」

미우라 「있잖아, 히키오」

하치만 「왜...?」

미우라 「실은 너한테 계속 하려고 한 말이 있는데...」

하치만 「뭐...?」

미우라 「그 화제 나왔고, 마침 좋을지도 모르고...」

하치만 「뭔데...?」 (뭐야? 엄청 신경 쓰인다...)


딩동댕동


미우라 「...」

하치만 「......」

하치만 「벨인가...」

미우라 「ㄸ, 또 다음에 말할 거니까...」

하치만 「어... 이, 이봐 신경 쓰이잖아...!」

미우라 「그러면」

하치만 「뭐냐고...」



<방과 후>


미우라 「히키오~」

하치만 「왜 그래? 미우라」

미우라 「넌 봉사부 갈 거지?」

하치만 「그렇지」

미우라 「알았어, 그럼 또 내일 봐.」

하치만 「그래」

하치만 (요즘, 미우라와 인사하는 게 보통이 되었군...)

하치만 (정말로 믿기지 않는다.)

하치만 「화장실 갈까」

뚜벅뚜벅

하치만 「...?」

소곤소곤 소곤소곤

하치만 (뭔가 들리는데... 그보다, 여길 보지 않았나?)

B군 「쟤 맞지? 사가미가 말했던」

C양 「작년 문화제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문의...」

D양 「왠지, 문제 일으킬 것 같은 눈이고~~」

하치만 (아~~ 악담이네... 이건)

하치만 (작년이라면 몰라도, 이제 와서 퍼질 줄은...)

하치만 (하급생도 있으려나?)

하치만 (하아...)



하치만 「아얏!」

축구부원1 「아, 죄송...」

축구부원2 「저기..응?」

하치만 「.......아퍼」

축구부원1 「어라? 이 사람」

축구부운2 「진짜다, 소문의 그 자식이잖아!」

하치만 「뭐?」 (이 자식 뭔 소릴 하는 거지? 하급생 아닌가?)

하치만 「우선 사과해라.」

축구부원1 「우와 사과하라네, 쩔어.」

축구부원2 「이로하스 홀렸던 데다가 작년에 그랬지? 나대지 마」

하치만 「응?」 (무슨 말이지?)

축구부원1 「그나저나, 이런 데에서 부딪히다니 최악이구만」

축구부원2 「니가 사과하라고」

하치만 「...」 (이런 데에 쓸데없이 체력 쓰는 건 싫지만, 뭘 해볼까...)

하치만 (역시 그건가? 피해계 패턴인가?)

토베 「어라? 히키타니 군 아냐?」

하야마 「히키가야...」

부원1 「아, 토베 선배, 하야마 선배도...」

토베 「뭐 있었어?」

하치만 「부딪혔을 뿐이야.」

부원1 「이런 놈한테 사과는 무슨... 부딪힌 쪽은 여긴데...」

토베 「그러면, 사과하면 되잖아. 응?」

부원2 「하지만, 이 자식 소문의...!」

하야마 「......」

부원1 「으... 죄송하게 됐습니다.」

부원2 「...죄송합니다.」

하치만 「아니, 딱히 상관없는데」


토베 「아니~ 히키타니 군, 미안! 우리 부원이~!」

하야마 「그들은 결코 나쁜 부원이 아니지만, 미안하다.」

하치만 (처음에 사과하려고 했으니)

하야마 「뭔가 트러블이라도 있었어?」

하치만 「소문의 상급생이라고 들었는데, 그리고 잇시키...이로하를 홀렸다나 뭐래나...」

하치만 「뭔 말인지 모르겠다고...」

토베 「아~ 그건가~」

하야마 「이로하는 팬이 많아서... 넌 작년부터 올해에 걸쳐서, 하급생 교실에 이로하를 부르러 가곤 했었지? 그 영향이려나」

토베 「소문은 이거 아냐? 작년 문화제 때문에. 위험해~ 히키타니 군 진짜 중심에 있잖어~!」

하치만 「그런 중심 필요 없어...」

하야마 「저렇게 아무 근거도 없는 소문이 나서... 너도 큰일이구나.」

하치만 「어떻든 상관없어.」

하야마 「그래... 아까 전에는 미안했어.」

하치만 「그래」

하치만 「아, 그리고 하야마...」

하야마 「응? 왜 그래?」

하치만 「그 때는, 무심코 감정적이었다...」

하야마 「아니... 나쁜 건 나니까」

하야마 「그러고 보니, 너와는 그 날 이래로 말하지 않았던가.」

하치만 「그렇지 뭐.」

하야마 「유미코는?」

하치만 「뭐, 괜찮아.」

하야마 「그래... 그 쪽의 소문은 들었는데」

하치만 「화해 같은 거 안 해?」

하야마 「또 다음에, 가자.」

토베 「응? 무슨 이야기?」

하야마 「아무것도 아냐. 갈까 토베」



하치만 「......」

소곤소곤 소곤소곤

하치만 (왠지, 소문에 이것저것 붙고 있는 것 같은데...)

하치만 (게다가 매일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고...)

하치만 (나, 요즘에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았나...)



미우라 「히키오」

하치만 「응? 뭔데?」

미우라 「왠지, 지치지 않았어?」

하치만 「딱히......」

미우라 「그래, 그럼 괜찮은데」

하치만 (요즘, 공부가 진척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지만...)

하치만 (뭐, 나-양에게 말해봤자)

미우라 「...」



<봉사부에서...>


하치만 「......」

유이 「...」

유키노시타 「...」


유이 「이, 있잖아...」

하치만 「응? 뭔데?」

유이 「있잖아... 소문 말인데...」

하치만 「응... 아아...」

유이 「나쁜 쪽으로 퍼지는 것 같은데...」

유키노시타 「그래?」

유이 「응, 뭔가 하야토한테서 이로하 뺏은 사람이 힛키라든지...」

유이 「원래 이로하를 홀리고, 다른 여자가 있다든지...」

하치만 「...뭐야, 그건...」

유키노시타 「안 좋은 짓을 저질렀구나, 사가미는」

유키노시타 「슬슬 대책을 가다듬을까?」

하치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어차피 작년과 마찬가지로 수그러들겠지.」

유이 「그럴까...?」

하치만 「응?」

유이 「지금의 힛키는 의외로 유명하고... 더 빨리 퍼지지 않을까...」

유키노 「히키가야. 지친 표정이란다? 아무리 봉사부의 비품이라도 부원이니, 확실히 받아야 해.」

하치만 「너 말야... 뭐, 괜찮다니까」

유이 「힛키가 그렇게 말한다면...」

유키노시타 「좀 더 상태를 지켜볼까...」




<그리고 당분간 지나고>


코마치 「있잖아... 소문 말인데...」

하치만 「너의, 반에도 퍼졌어?」

코마치 「응... 조금」

하치만 「폐를 끼쳤구나」

코마치 「괜찮아, 그런 건」

하치만 「아니... 코마치한테는 절대로 피해가 안 가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코마치 「우와~ 지금 코마치한테 엄청 포인트 높아!」

하치만 「그치?」

하치만 (설마 1학년인 코마치에게 피해가 갈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하치만 (아~ 젠장... 어떻게 하지...)



<점심시간>

하치만 (역시 대책, 마련해야 좋으려나... 여동생에게 피해가 간다면, 하치만적으로 죽어버린다...)

미우라 「히키오, 히키오!」

하치만 「어...뭐, 뭔데...?」

미우라 「뭔데가 아니라... 아까 전부터 아무것도 안 먹잖아.」

이로하 「맞아요~ 저랑 먹는 게 싫은 거예요~~?」

하치만 「그런 말 안 했잖아...」

미우라 「...」

미우라 「무슨 일 있어?」

하치만 「아, 아니...」

미우라 「사가미에 대한 거지?」

하치만 「왜 알고 있어?」

미우라 「네 얼굴 요즘 확실히 여위었고, 소문도 심해진 것 같고」

이로하 「소문이라니 작년 문화제 때 그거죠? 그런 게 아직 퍼지다니 굉장하네요.」

미우라 「뭐, 얘는 그만한 일 저질렀으니까.」

하치만 「...뭐, 그 쪽은 괜찮은데...」

미우라 「괜찮지 않잖아.」

하치만 「괜찮아, 그것보다도」

이로하 「저거예요? 이로하스를 홀린 히키가야 하치만~! 이라는 거죠?」

미우라 「뭐? 그런 게 퍼졌어?」

이로하 「그래요~~!」

미우라 「왜 기뻐하는 건데...」

하치만 「그것도 아닌데...」

이로하 「뭐~야, 아니네요.」

하치만 「여동생 코마치한테까지 피해가...」

미우라 「...무슨 말이야」

이로하 「...」

하치만 「1학년 교실에서도 소문이 난 것 같아. 네 오빠 맞지? 이런」

미우라 「흐-응. 그렇구나.」

하치만 (봉사부에서 상담해 볼까...)




<봉사부>


유키노시타 「그랬구나, 그러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어.」

유이 「응! 맞아, 맞아!」

하치만 「미안... 그게, 나를 위해서...」

유키노시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유이 「그래! 작년부터 힛키한테는 많이 도움 받았는걸!」

하치만 「그, 그래?」

유이 「그렇다구!」

유키노시타 「아무튼, 안 받았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려나?」

하치만 「유키노시타...」

유키노시타 「그럼... 내일 우선, 사가미를 만날 필요가 있어.」

유이 「그러네, 그렇게 하자.」

하치만 「심문이라고 할까...힐문? 하는 건가...」

유키노시타 「아니... 말을 들어보는 게 먼저니까... 괜찮아.」




<다음날 학교>


하치만 「저기, 코마치」

코마치 「왜?」

하치만 「역시, 그 자식의 여동생이라든지 그런 얘길 들어?」

코마치 「으~응, 조금...?」

하치만 「그래...」

코마치 「신경 쓰지 말랬는데... 괜찮다니까? 그럼, 코마치 갈 거니까」

코마치 「그래...」




<교실 앞 복도>


하치만 「...응? 왠지 소란스러운데?」

웅성웅성

유이 「힛키!」

하치만 「유이가하마? 무슨 일이야?」

유이 「그, 그게 말이야... 저기...」

하치만 「뭔데?」

유이 「유미코가...」

하치만 「미우라가 왜?」


유이 「유미코가 사가밍을 울렸어!」

하치만 「......」

하치만 「......네?」


유이 「그러니까, 유미코가 사가밍을...」

하치만 「그건 알았는데 어떤 경위로?」

유이 「그게 말야, 복도에서 걷던 사가밍 뒤에서 유미코가 말을 걸어서...」

유이 「사가밍한테 따졌어. 『히키오 소문 이제 와서 퍼뜨려서 뭘 어쩌겠단 거야?』그리고 『니 탓에 엄청 짜증나거든?』이라든지」

하치만 「지, 진짜......?」

유이 「응... 그래서, 사가밍이 내내 무서워하고... 마지막에 『히키오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라고...」

하치만 「그래서 울렸나」

유이 「응... 주변이 진짜 얼어붙었다니까? 등교중인 사람도」

하치만 「그럴 거야...」

유이 「엄청 무서운 얼굴이었다구. 저런 유미코 오랜만에 봤어...」

하치만 「미우라 녀석...」

웅성웅성

미우라 「아」

하치만 「아...」

미우라 「...」

유이 「아, 아하하...」

하치만 「저기, 미우라」

미우라 「나중에 얘기해 줄래? 유이랑 말하는 중이라」

하치만 「그, 그래. 알았어.」




<쉬는 시간>


미우라 「히키오...」

하치만 「미우라인가」

미우라 「다른 데서 얘기하지 않겠어?」

하치만 「그래...」



<복도>


미우라 「그래서, 뭔가 묻고 싶은 거 있어?」

하치만 「아니... 별로 없는데」

미우라 「...?」

하치만 「묻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점심시간에도 되고, 대화거리로 얘기해주는 쪽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미우라 「뭐야 그건?」

하치만 「글쎄, 단지...」

미우라 「응?」

하치만 「비슷한 행동을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와 할 생각이었는데」

미우라 「헤에~」

하치만 「추월당했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런 거야, 돌아갈까.」

미우라 「잠깐」

하치만 「?」

미우라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하치만 「뭔데?」

미우라 「전한다고 할까, 말해두고 싶은 거라고 할까」

하치만 「저번에 못 들었던 거 말이야...?」

미우라 「응」

하치만 「그래서? 뭔데?」

미우라 「내-가 이런 말 하는 건... 뭐라고 할까 이상하다고 할까...」

미우라 「실은 좀 더 빨리 말해야 했는데...」

하치만 「그, 그래...」


미우라 「저기... 고마워...」

하치만 「응?」

미우라 「...」

하치만 「뭐가...?」

미우라 「6월에 하야토한테 차였을 때, 화내줬던 거...」

하치만 「그거, 누구한테 들었어?」

미우라 「누구라니...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으니까」

하치만 「......네?」

미우라 「그러니까... 봤다고...」

하치만 「...」

미우라 「미안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서. 정신 차렸더니 히키오를 쫓고 있었어.」

하치만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회상>


하야마 「할 말이라는 건...」

하치만 「어째서 미우라까지 찬 거냐...」

하야마 「왜 그걸... 아아, 그런 건가」

하치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어.」

하야마 「미안... 하지만 난 사귈 수 없어. 유미코와는.」

하야마 「물론, 그녀의 마음은 기뻐.」

하치만 「그건 잇시키 때도 들었어.」

하야마 「그렇구나...」

하야마 「그녀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해, 정말로」

하치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하야마 「?」

하치만 「네가 찬 상대는 한 둘이 아니지? 모두 저런 식으로 차고 있을 거잖아.」

하야마 「...」

하치만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미우라는...」

하치만 「왜 미우라가 나한테 온 건데!」

하야마 「......」

하치만 「게다가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하야마 「감정적으로 됐어, 너답지도 않아.」

하치만 「아......」

하야마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알겠지, 너라면」

하치만 「......」

하야마 「차는 측 마음도 조금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할까...」

하야마 「저건, 상당히 괴로워.」

하치만 「난 그런 건 한 적 없어서 모르겠다만.」

하야마 「그래? 이제부터 반드시 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데.」

하야마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니까...」

하치만 「뭐?」

하야마 「게다가 넌... 친한 만큼, 슬픔도 크다고 생각해... 서로」

하치만 「...」



미우라 「뭐, 그거 때문에... 처음에는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다가갔는데...」

하치만 「그래...」 (아아... 지금 바로 이불에 얼굴 파묻고 소리치고 싶다...)

미우라 「의외로 마음이 편해서. 눌러 앉았다는 느낌」

하치만 「마음이 편했다고?」

미우라 「아무튼... 그렇잖아, 너 이상한 허세나 거짓말 같은 건 안 하고... 그래서 편했어.」

하치만 「매도가 실컷이죠.」

미우라 「뭐?」

하치만 「아뇨...」

미우라 「뭐... 그런 거야...」

하치만 「그래... 알았어. 감사인사를 들을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미우라 「그거로 됐어. 나-의 자기만족이고」

하치만 (아아, 그런가...)

하치만 (미우라가 사가미에게 한 매도는... 빌린 것을 돌려줬다는 모양새도 되는 건가)

하치만 (미우라가 그걸 자각하는지는 모르지만...)

하치만 「아...그럼, 일단 나도...」

미우라 「응? 뭔데?」

하치만 「고마워, 미우라」

미우라 「...뭐가?」

하치만 「그거야... 알잖아?」

미우라 「......나- 돌아갈래.」

하치만 「이, 이봐, 무시하지 마...」

미우라 「시끄러, 히키오 주제에...」




<봉사부>


유키노시타 「설마, 미우라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유이 「아하하하, 진짜 놀랐어~~!」

하치만 「뭐, 결과적으로 좋은 쪽으로 갈지는 이제부터지만...」

유키노시타 「그렇게 임팩트 강한 일이 일어났어. 수습은 될 거라 생각해.」

하치만 「그렇다면 좋겠는데.」

유이 「사가밍도 그렇게 악의가 있던 건 아닌데...」

유키노시타 「어쩔 수 없어. 근본을 박살내서 다른 이에게 교훈으로 삼는 건 상식이니까...」

하치만 「어쩐지 산 제물 같군.」

유키노시타 「그녀도 이번에야말로 반성하겠지」

유이 「그래도 사가밍이 다른 짓하지 않을까?」

유키노시타 「그 때가 되면 다시 생각하자.」

하치만 (여왕님의 공포로 강제로 사태를 수습한 듯한 흐름이 되었군)

하치만 (뭐, 괜찮겠지만...)

드르륵

이로하 「오랜만이에요~ 실례합니다~~!」

유이 「얏하로~~! 이로하!」

하치만 「여... 잇시키...」

이로하 「...」 뚫어져라

하치만 「이로하...」

이로하 「선배도 안녕하세요!」

하치만 「그, 그래...」


유이 「...」

유키노시타 「...」

하치만 (오랜만에 넷이서 모였군...)

하치만 (왠지 그리운데)

하치만 (그러고 보니, 하야마 그룹은 모일 때가 오려나...)

하야마 『너에게도 선택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거야.』

하치만 (선택인가...)


이로하 「이번에 도와주지 못했는데, 소문은 해결된 것 같아요?」

유이 「응응, 유미코가 말인데~」


하치만 (여러 변화는 있지만, 그다지 변함없는 일상... 선택해야 할 때가 온다면...)


미우라 「히키오」

하치만 (이 녀석일까... 정말 한 치 앞은 미우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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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일단락 되었지만 실은 이 뒤에도 이 다섯 배 이상되는 분량이 있습니다.


남은 건 정해지진 않았지만 소꿉친구 시리즈를 하고 난 이후에 할 것 같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일단 원문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본편>


http://ex14.vip2ch.com/test/read.cgi/news4ssnip/1433484692/


<속편>


http://ex14.vip2ch.com/test/read.cgi/news4ssnip/1436174096/



  그 10 ~이즈에 메구미는 붙임성 좋은 미소를 뿌린다~




「앗, 형님! 여깁니다.」


  방과 후,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귀가부에 섞여서 정문 앞에 키리바나와 타이시가 멍하니 서 있었다.

  애들이 있는 데로 가서 근처를 둘러보지만 이 녀석들 외에 중학생은 아무도 없다.


「코마치는 어디 있어? 걔도 온다고 아침에 말했었는데」

「코마치는 수학 보충수업에 잡혔어요.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오빠로서 좀 걱정되는 정보였다. 그 녀석, 고등학교 수험은 소부고로 볼 거라 말했는데 과연 합격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나도 중학교 때 수학 때문에 보충수업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유전자라는 것은 상당히 영향력이 강한 듯하다.

  거무스름한 응회석으로 쌓아올린 담벼락에 등을 기대며, 강물의 흐름처럼 늘어가는 인파로 시선을 자유롭게 이리저리 옮긴다. 「꽤나 안 오네」라고 타이시가 유감스러운 듯이 중얼대고 있는데, 흘러내리는 듯한 흑발과 경단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오는 게 너무 빠르다구, 힛키」

「너희들이 늦어. 항상 잡담하면서 왜 방과 후까지 남아서 얘기하는 거냐......」


  귀가부 여자 그룹은 왠지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서 수다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라면 그렇게 해는 없지만, 교실 청소할 때까지 눌러 앉는 게 성가시다. 저 녀석들, 내가 책상을 옮기려고 하면 엄청 싫은 표정을 한다. 게다가 다른 반 녀석이.

  이걸로 일단은 전원이 모인 셈이다. 카와사키(누나)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쉬는 시간에 들었다. 아무튼, 남동생의 연애상담 도움 같은 건 브라콘 누나라면 받고 싶지는 않겠지.


「.....좋아, 다섯 명이서 붙어도 의심받을 뿐이고, 남자와 여자로 나눌까」

「그렇게 하면 제가 온 의미가 완전히 없어지는데요......」


  키리바나가 툭 중얼거린다.


「멀리서 그럴듯한 사람이 오면, 바로 합류하면 되잖아.」


  사실을 말하자면, 방금 전부터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이 조금 신경 쓰인다. 키리바나와 타이시도 중학교 교복을 입은 채라서 여기에서는 매우 눈에 띈다.

  그 두 명이 우리들과 같이 있고 슬쩍 보기에는 딱히 아무것도 안 하고 말하고 있으니, 약간은 의심받겠지.


「그걸로 좋슴다.」


  주최자라고 할까 클라이언트의 의향에 의해, 두 패로 나뉘는 게 가결된다.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이시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들 남자 진영이 교문에서 조금 떨어져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로, 키리바나 일행이 교문 바로 옆에 있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근처에 심어진 방풍나무에 기대어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김에,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아무튼, 저기. 코마치는 학교에서 어때?」


 키리바나에게 가끔 듣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코마치와 친하기 때문에 약간 떨어진 시점에서 듣고 싶었던 거다.


「히키가야 말임까? 보통으로 인기 있슴다. 다정하고, 귀여워서 중심임다. 중심」


  무심코 안심한다. 코마치의 성격상, 잘 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런데도 지뢰를 밟을 가능성은 항상 있으니, 약간 불안했던 것이다.


「......키리바나는 어때?」

「키리바나도 보통으로 인기 있슴다. 다만, 아름답고 어른스러워서 가끔 쩔쩔 맵니다.」


  ......보통인가, 아무튼 괜찮겠지.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와 얘기하는 키리바나를 본다. 어깨에 살짝 걸친 산들산들한 흑발과 높은 허리의 위치를 볼 때, 중학교 교복만 입지 않는다면 유키노시타 또래와 같은 나이로 보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놀랄 정도로 연하로는 안 보이니, 타이시 나이 대 애들이 보면 많이 어른스러워 보이겠지.


「그렇게 치면, 너의 누나 쪽이 무섭잖아. 카와사키에 비하면 키리바나는 그렇게 엄청나진 않지.」

「아니아니, 누나는 무뚝뚝할 뿐임다.」

「......그런 건가」

「그렇슴다......」


  결국, 자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평가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나도 코마치의 장점과 같을 정도로 단점도 안다. 합치면 평가가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특별히 얘기할 거리도 떨어져서, 하교하는 학생들의 대화를 BGM 삼으며 다시 인파를 관찰한다.

  이러니저러니 충분히 보고 있었지만, 타이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가끔 남학생이 지나갈 때, 키리바나 일행을 눈치 채고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소부고 교복이 군청색을 바탕으로 한 블레이저 코트인 것에 반해, 키리바나는 흰색에 짙은 녹색을 조합한 세라복이다. 타이시는 아직 *가쿠란이라 우리들과 섞여서 그렇게 눈에 띄지 않지만, 아무래도 키리바나의 교복이 존재감을 과시한다.

※ 가쿠란 : 검은색에 단추만 박힌 형태의 남자 교복. 애니에 자주 나온다.


  그런데 이 녀석, 중학교 교복이 별로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키리바나의 스타일에 중학생 전용의 디자인이라니, 아무래도 서로 맞지 않는다. 말투가 나쁘지만, 왠지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짝이 잘 맞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지적하면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아서 키리바나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어느 쪽이냐면, 소부고처럼 정숙한 복장이 키리바나에게 어울릴 것이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키리바나는 세련된 색을 입는 때가 많았지.


「앗......! 아마, 저 사람임다.」


  타이시가 멀리 가리킨 쪽에 셋이서 걷는 여자 집단이 보인다. 멀리 떨어져서 얼굴까지는 잘 안 보이지만, 그 중 한 명은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머리스타일과 체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점심시간 정도.


「그 중간에 있는 짧은 머리 맞지?」

「그렇슴다. 틀림없어요.」


  노골적으로 보지 않게 조심하면서, 다섯 명이 얼굴을 맞대며 집단을 본다.

  가까워짐에 따라 얼굴이 확실하게 보이게 되자, 아까 전에 본 이즈에 메구미 선배라고 판별할 수 있었다. 역시 타이시가 만난 사람은 이즈에 선배였던 것 같다.

  3인조 가운데에서 즐거운 듯이 얘기하는 선배는, 조금 앞에 있는 나나 타이시를 눈치 챘는지 붙임성 좋은 미소를 듬뿍 실어서 손을 흔들어온다.


「지금 쟤네들, 아는 사람이야?」

「아니, 한 번 만난 적 있을 뿐이야.」

「또 그런 짓하고 있어......? ......너, 언젠가 찔릴 거야.」


  그대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며, 선배들은 내 앞을 지나간다. 같이 있던 살짝 웨이브한 여자가 흥미로운 듯이 우리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선배들의 가녀린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타이시가 칠칠치 못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등을 두드려서 제정신으로 되돌린다.


「어떻슴까? 누군가 아는 사람 없슴까?」

「히키가야 군, 어떠니?」


  유키노시타가 나에게 묻는다.


「이즈에 메구미. 아마 3학년이고 다른 건 몰라.」

「하치만 오빠, 아는 사람이에요?」


  키리바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이름과 얼굴만 알 뿐이야. 그것보다 유이가하마는 몰라?」

「본 적은 있을지도. 그래도 잘은 모른다고 할까. 다른 사람한테 물으면 알지도 모르는데......」


  뭐, 이즈에 선배는 3학년이니 유이가하마가 모르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그렇게 되면, 우선은 착실하게 정보수집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에 대해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선배와 직접 얘기할 마음은 안 들지만.

  진짜 성가시다. 뭐가 성가시냐면 이렇게 되면 유이가하마의 힘에 전부 기대게 된다는 게 이미 좋지 않다.


「메구미 씨임까...... 좋은 이름이군요.」


  타이시가 넋을 잃고 이름을 반복해서 부른다. 하지만 그 이름, 전국에 많이 있다고 생각해.


「우선 얼굴과 이름은 파악했어. 나머지는 본인에게 넌지시 확인하거나 소문을 들을 수밖에 없구나.」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해산?」


  유이가하마의 말에 유키노시타가 끄덕인다. 본인도 눈앞을 지나가버렸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해도 방과 후라면 사람이 적어서 듣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키리바나가 진짜 헛걸음을 하고 말았군. 오라고 한 게 나라서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타이시는 카와사키와 돌아간다고 하고 메일을 쓰기 시작했으므로 키리바나 일행들과 마주본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가는 길에 쇼핑을 같이 할 거라고, 우리들에게 인사만 하고 먼저 돌아간다.


「......키리바나는 안 가?」

「조금 전에 코마치에게 출소했다는 메일이 와서, 보호 관찰이라도 할까 생각해서요.」


  왜 그렇게 재수 없는 비유를 하는 거냐.

  곧바로 카와사키가 타이시에게 와서, 유키노시타 애들과 같이 인사를 하고 돌아가자, 우리들 둘이 남겨진다.

  하교의 흐름이 일단락됐는지, 근처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거의 없다. 조금 전까지 이 근처를 지배했던 소란은, 멀리 들리는 운동부의 구호에 쓸려갔다. 더 있어도,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겠지.


「......돌아갈까」

「네, 돌아가요.」


  신록이 물든 가로수 길을 빠르게 걷는다. 이미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지만, 하늘은 물에 주홍색을 푼 듯한, 저녁노을이라고도 푸른 하늘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키리바나는 코마치에 비하면 걷는 속도가 빠르다. 그렇다기보다는 보폭이 나와 비슷한 탓인지, 나와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코마치와 걸을 때에는 걷는 속도를 맞추라고 교육을 받아왔지만, 그런 점에서는 매우 편하다.


「카와사키 군과 언니, 사이가 좋네요.」


  우리들이 초등학교 무렵부터 있는 오래된 막과자가게를 지나갈 즈음에서 키리바나가 먼 곳을 다정하게 보며 말을 건다.


「카와사키도 브라콘이지만, 타이시도 꽤나 그래 보이던데.」

「카와사키 군도 학교에서는 그런대로 견실하게 행동하지만요. 그래서 좀 재미있고, 보기 좋았어요.」


  손을 뒤로 끼며 경쾌하게 걷는 키리바나의 표정은, 그 말대로 부드러웠다.

  다만 키리바나라 해도, 그 견실한 타이시에게 어른스럽다고 들었으니 그다지 변함없는 거겠지.


「뭐, 누이와 동생 사이가 좋은 건 다행이겠지. 만약 코마치에게 반항기가 오면 진심으로 울 거다.」


  실제로 아버지에게는 반항기는 오지 않았지만 권태기는 이미 왔으니까.


「둘은 충분히 사이가 좋으니 괜찮아요.」

「그래...」

「거기에 나는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보는 건 굉장히 좋아해요.」

「...............」

「아, 부끄러워요? 얼굴이 빨개요.」


  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아 가는 중, 키리바나는 짓궂은 표정을 띠며 웃고 있었다.

  석양 탓으로 하려고 그대로 입을 다물자, 키리바나도 아무 말 없이 옆에서 걷는다. 이따금 그 표정을 들여다보고, 뭐가 즐거운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세계가 주홍색으로 전부 물들 때까지 키리바나의 표정이 바뀌지 않고, 나는 부끄러운 생각을 하며 귀로에 발자국을 실었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9 ~히키가야 하치만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태평한 학교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축포처럼 흐른다.

  판서하고 있던 가네다가 의외라는 듯이 시계를 올려다보고, 몇 명 정도가 벌써 필기구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가네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하자, 토베가 활기차게 호령하며 우리들에게도 점심시간이 온다.

  조금 전까지의 정적이 거짓말같이, 떠드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한다.

  고등학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끄럽다. 대학생처럼 「웨이~」라고 하는 원시인 같은 대화는 없긴 하지만, 어쨌든 목소리가 크고 화제가 끊임없이 쏟아져서 언제까지나 메아리친다.

  여자가 세 명 모이면 떠들썩하다고 자주 말하지만,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라면 남자 쪽이 크다. 그것이 한 방에 남녀가 섞여 40명이나 있으니, 그거야 시끄럽게도 될 거다.

  단지 이런 바보 같은 대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각각의 그룹이 마구 큰 소리로 얘기하는 모습은, 어딘가 세력권을 두고 다투는 새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룹끼리 확실히 거리가 벌어진 것이 우습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스트가 높을수록 소리의 크기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은 아직 동물의 본능에서 해방되지는 못한 듯하다.

  살그머니 교실에서 탈출하고 평소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가서 도시락을 펼친다.

  평소라면 냉동식품의 진화에 감동하면서, 한가롭게 뜨뜻한 점심을 즐길 때지만, 오늘은 기술의 진보를 즐기지 않고, 바로 위 속으로 흘려 넣는다. 평소보다 빨리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교내로 돌아가서 교사를 산책하기로 한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후보일 것 같은 곳을 표시해두는 편이 좋다.

  다만 뭐라고 할까, 타이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 남자는 단순하다. 하지만 창작물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느낄수록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로 돌아오니 아까 전까지의 햇볕이 사라져서 살짝 어둡다. 창문이 많은 것치고는 의외로 햇빛이 잘 안 들어오게 만든 건물은 의외로 많다.

  아직 교복을 입고 있을 1학년들의 층을 돌아다녔지만, 그럴 법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황갈색 머리카락의 1학년이 조금 가까워졌지만, 그 사람은 머리 모양이 세미롱이었으니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그 귀여운 발랄함은 일부러 꾸민 거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약삭빠르다.

  어차피 돌아올 거니까 마지막에 2학년을 둘러보려는 생각으로 승강구에서 가장 가까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년마다 쓰는 계단이 올라가는 시스템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학교마다 다른 것 같다. 3학년이 1층, 2학년이 2층, 1학년이 3층이라는 식으로 학년이 오를 때마다 승강구에 가까워지는 시스템도 있는 것 같다.

  입체적인 위아래에 상석·말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도 3학년이 되어 아침에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솔직히 부럽다. 익숙해지면서 시간관념이 없어지는 것은 어딜 가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나도 앞으로 1년 지나면, 지금보다 빠듯한 시간에 등교하게 되겠지.

  3학년 층은 느긋한 분위기로 가득 찬, 반 정도 열린 창을 통해 5월의 따스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들 2학년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1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을 내게 호소한다.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복도를 걸으며, 교실을 지나가면서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엿본다. 쇼트 컷을 표적으로 삼아서 찾아봤지만, 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 누군가 찾고 있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뒤돌아봤더니 훌륭한 쇼트 컷 미인이 보기 좋게 서 있었다.

  세련된 브라운으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기복이 적은 몸매. 어딘가 침착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교복을 일부러 흩뜨린 탓인지 친밀감을 준다. 이 층에 있다는 건 3학년이라는 걸까.

  그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떠올라 있어, 딱히 나를 의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왜 나한테 말을 걸었지?


「피, 피가 이어지지 않은, 생이별한 누나를 찾으러......」

「당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적당한 말을 엉겹결에 하고 말았다.

  ......난 거짓말이 서투르구만.

  미인 선배는 이상하다는 듯이 교실 안을 보고,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한 번 더 내 얼굴을 본다. 가느다랗고 고운 검지손가락이 사랑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매우 신경 쓰인다.


「생이별했구나.」

「그래요, 어렸을 때는 자주 놀았는데, 누나가 이사를 가서. 크면 결혼하자고, 약속했지만요.」

「그랬구나. 그럼, 그 애의 이름을 알려줘, 이름. 난 아는 사람이 많아서, 들으면 소개할 수 있어.」

「......이름 말인가요?」

「그래, 이름. 결혼 약속했다면 기억하고 있겠지?」


  이름 같은 건 모른다고.

  적당히 이름을 생각하는 동안, 선배의 검지손가락이, 점점 동그라미를 그리는 움직임으로 바뀌며 내 눈앞까지 올라온다. 무의식중에 빙글빙글 도는 손가락을 쫓아서 시선이 이리저리 돌고 말았다.

  그 자세 그대로 잠시 동안 있었지만, 우리들 사이에 쌓이는 침묵과 훈련받는 개와 같은 기분을 참을 수 없게 되어,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에요. 특별한 의미도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응. 아무튼 알았지만」


  꽃 피는 듯이 밝은 미소로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손가락을 제자리로 도로 돌리고는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 옆에서 손가락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 사람, 검지손가락으로 노는 게 버릇인가.

  한 번 더 선배를 봤더니 역시 타이시가 말한 특징에 부합한다. 어두운 갈색 머리에, 상대방을 많이 긴장시키지 않는 다정한 말투, 이런 사람이 둘 정도 있다면 이 학교의 여자 레벨을 수정해야 한다.


「응, 뭐 자세한 이유는 안 들어도 괜찮아. 그건 다음 기회에 들으면 되기도 하니까.」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한 발짝 다가와서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는 이즈에 메구미입니다. 당신은?」

「히,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잘 부탁해, 히키가야 군」


  매끈매끈 고운 손을 뻗어왔지만, 그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말았다.

  머릿속의 천사가 엄청난 기세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니아니, 절대로 이상하잖아. 이런 일로 하나하나 이름을 듣는다면 어딘가에서 스토커를 당할 거다.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내 손을 본 이즈에 선배는 천천히 뻗고 있던 손을 되돌린다. 그렇게 왠지 납득한 표정으로 수긍하고는, 다시 내 눈을 본다.


「저기, 왜 제게 말을 걸었습니까?」


  우선 목례만 하고 냉큼 떠나려고 했지만, 약간 신경 쓰여서 물어본다.


「음, 특이해서...... 아니, 썩은 눈을 가진 애가 살금살금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우선 말을 걸어 봤을 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 말을 들었다.

  말을 한 그 본인은 태연한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랄한 말을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무튼, 무슨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해.」


  내가 떠나기 전에, 이즈에 선배는 손을 흔들고 두 번째 교실로 유유히 들어간다.

  ......여기 당신 반이잖아.

  왠지 여우에게 홀렸다고 할까, 지나가는 비라도 만난 기분이다. 큰 피해는 없지만, 뭔가 마음에 항상 붙어 다니는 의미로.

  이대로 남은 교실도 돌아볼까 생각했지만, 이즈에 선배를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싫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일단은 목적을 완수했으니 더 이상 움직여도 소용없다.

  교사가 낡아서인지 단차가 높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다리를 딛고는 그대로 도서실로 향한다. 뭔가 읽을 건 아니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도서실이 딱 적당하다.

  오래되어 잘 움직이지 않는 문을 열고 도서실로 들어가자, 공동 책상에서 조용히 독서하는 유키노시타가 눈에 들어온다.

  교내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도서실 안에서 책을 읽는 유키노시타는 아름답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다. 그 때문인지 큰 책상에는 빈 자리가 있는데도 유키노시타에게 가까운 사람은 없다.

  이 녀석, 점심시간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였나. 역시 친구 없구만.

  어디에 앉을까 약간 고민했지만, 마침 보고하고 싶은 것도 있었으므로 유키노시타와 대각선상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억지스럽지 않다고 할까, 역시 나와 유키노시타는 이 위치관계가 가장 편하다.


「무슨 용무니?」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들어올리고 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여기에 왔더니 네가 있어서, 어제 건으로 마침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어.」

「카와사키 군의 짝사랑 이야기?」

「짝사랑이라고 할까, 한눈에 반했지.」

「어느 쪽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잖니.」


  유키노시타는 읽다만 책에 꽃무늬 책갈피를 넣고는, 나에게 시선으로 계속 말하기를 재촉한다.

  닫힌 책 표지를 눈으로 쫓으면, 『걸리버 여행기』라고 쓰여 있다. ......흠, 영국 문학 중에서도 상당한 명작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림책에서의 『걸리버』에서는 소인국, 추가로 거인국까지를 그린 게 많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원작에서는 앞의 둘에 더해서 천공의 나라와 그 제국, 그리고 높은 지성을 가진 말이 지배하는 나라를 방문한다.

  이 작품은 풍자 소설로서 당시의 영국에 대한 비판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뭐니뭐니 해도, 라퓨타의 원래 소재가 존재하니까.

  유키노시타의 눈이 점점 험해지는 것을 깨닫고, 남은 생각을 끊었다. 무심코 시타가 내려오는 장면까지 재생하고 말았다.


「방금 전의 일인데, 타이시가 반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만났어.」

「그래, 어떤 느낌이었니?」

「아마 계산으로 하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좋더라. 초면인데 나한테 말을 걸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잖아.」


  초면 혹은, 이야기했던 적이 없는 여자에게 상냥하게 대해진 적은 초·중 합계 다섯 번 있다. 그 모두가 벌게임 혹은 깜짝쇼라는 결말이었지만. 즉 통계상, 친절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말을 거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째서 히키가야 군이 말하면, 이렇게나 설득력이 있을까?」


  유키노시타는 기막히다는 듯이 숨을 내쉬고, 머리에 손을 대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실제 체험이다...... 뭐 그러니, 역시 상대는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이즈에 선배에게 애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타이시가 꽤나 반하지 않은 한은 사랑은 물거품이 되어 바로 스러지게 될 거다.

  뭐, 실연하게 돼도 그건 그거대로 타이시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배워서, 어른으로 가는 계단을 한 발짝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약간은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그 부분은 지금 생각해서는 안 되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어느 쪽이든, 움직이고 난 뒤에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겠네.」

「뭔가, 흘러가는 대로구만」

「임기응변이라고 말해주렴.」


  잠시 침묵한 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벨이 울려 도서실내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저 실례할게. 또 방과 후에 만나자.」


  유키노시타도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멈춰서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유이가하마가 분명히 5교시는 체육이라고 말했는데, 히키가야는 괜찮겠니?」

「......앗」


  5교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5분. 그 안에 나는 교실로 돌아가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까지 내려가야 한다. 대충 잡아도 7분 정도는 걸릴 거다. 그리고 옆에 있는 창문을 통해 교정을 들여다보니, 담소하면서 슬슬 나오는 하야마 그룹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무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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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8 ~카와사키 타이시의 만남~




「아, 오빠~ 여기야 여기!」


  사이제리아에 도착했더니, 종이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린다.

  석양에 비치는 가게 안을 보면, 수업이 끝난 대학생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일을 땡땡이친다고 생각되는 샐러리맨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혼잡하지는 않다.

  다가온 점원에게 카와사키의 이름을 말하자, 납득한 표정을 짓고는 안쪽 테이블 석으로 안내했다.

  우리들을 알아차린 코마치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키리바나가 머리를 숙여 가볍게 인사했지만, 예의 카와사키의 남동생은 우리들에게 등을 돌려서 앉아 있었다.


「그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


  코마치와 키리바나에게 대답하자, 카와사키의 남동생이 뒤돌아보고 일어선다.

  중학생답게 약간 짧은 머리에, 카와사키와 닮아 보이는 약간 기가 센 눈이 인상적이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친절한 분위기를 내는 꽤나 호청년이다. 이 상태라면, 숙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 형님과 누님들임까? 불러내서 죄송함다.」

「누가 형님이냐, 죽인다.」


  무심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래도 난 나쁘지 않다.


「야! 우리 동생한테 무슨 말이야?」

「그, 그래. 미안......」


  정정, 내가 나빴다.

  시선이 느껴져서 무심코 좌우를 보자, 카와사키 남매 이외의 시선이 얼굴에 꽂혀서 따갑다. ......아니, 유키노시타가 혼자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피식하며 웃고 있다.

  저런 모 런쳐 씨 같이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보면, 사과할 수밖에 없잖아.


「자, 타이시도 제대로 자기소개 해.」

「아, 맞다. 카와사키 타이시임다, 히키가야와 키리바나의 반 친구입니다.」


  ......굉장해, 카와사키가 제대로 누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코마치는 제대로 맞는 발음으로 불리는구만......

  비어 있는 자리에 적당히 앉아, 드링크 바 4인 분을 주문하고 각자 좋아하는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 한 숨 돌린다.


「자, 그러면 카와사키 군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유키노시타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는, 말을 꺼냈다.

  타이시는 빨대를 입에서 빼고, 긴장한 얼굴로 등을 펴고는 「그렇슴다」라는 잘 모를 대답을 한다.

  왠지 모르게 옆에 앉은 키리바나의 얼굴을 봤지만, 흥미가 없는 듯이 컵 표면에 생긴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태로 보건대, 코마치와 키리바나는 내용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히키가야와 키리바나는 알 거라 생각하는데, 소부고등학교에 있는 한 사람을 알고 싶슴다.」

「그건, 너의 누나에게 들었어. 우리들이 알고 싶은 것을 자세한 사항이야.」

「아, 그렇군요.」


  그로부터 타이시가 말한 내용을 정리하면, 요컨대 이런 것 같다.

  요전 날 동아리를 마친 타이시는, 평소 다니던 통학로가 아니라 우회해서 돌아간 것 같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아, 아무튼, 서점에 가려고 했슴다.」라고 말을 흐리면서 대답했으니, 아마 그런 일이겠지.

  그리고 아무 일 없이 쇼핑을 마친 타이시는, 이미 해가 떨어져 군데군데 조명이 끊어진 가로등에 비치는 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거기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서둘러서 왔던 길로 돌아가봤지만, 이미 밤의 장막이 쏟아진 보도는, 가로등 빛만으로는 발밑을 보기에 충분치 못해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서점까지의 길을 걸어갔다는 듯하다.

  서점도 가까워져서, 결국 타이시가 포기할 무렵, 타이시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쇼트 컷 여고생을 발견했다. 소부고 교복을 입은 그 여자의 손에는, 타이시의 지갑이 들려 있어서, 타이시는 바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는 놀란 듯이 타이시를 마주보고는


『다행이야. 여기에 떨어져 있어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었어.』


  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 타이시에게 지갑을 전해줬다고 한다.

  그대로 타이시에게 등을 돌린 여자는, *뒤돌아보는 미인처럼 뒤돌아보고는, 『다음에는 잃어버리지 말고, 응?』이렇게 말하고, 타이시가 돌아가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떠나버렸다는 듯하다.

*뒤돌아보는 미인 : 일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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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즉


「즉, 너는 그 여성에게 한눈에 반했다, 는 말이네.」


  유키노시타가 내 생각을 대변해준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단지, 제대로 감사의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할까......」

「그렇다면 고등학교를 아니까, 정문에서 매복이라도 해서 감사의 말을 하면 되잖니?」


  유키노시타와 타이시가 서로 말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생각한다.

  뭐라고 할까, 잘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할까, 이후에 뭔가 익살스럽게 끝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 여자가 실은 남자였다든지.

  무엇보다도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무는 여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


「저기, 키리바나. 너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했어?」

「『네』 나 『아니요』라면 『아니요』인데, 『YES』나 『NO』라면 『YES』같은...」


  약간 멍한 상태로 키리바나가 대답한다.


「......그 속은?」

「본심은 상대의 변덕, 대항은 새로운 방식의 미인계, 예상 밖의 괴담이라는 거예요.」

「우연이군, 나도 미인계라는데 3천점 정도 걸겠어.」


  즉 나나 키리바나 둘 다, 타이시 쪽에 전혀 싹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아아, 그래서 얘가 지루해보였던 건가.

  유이가하마는 허둥지둥, 카와사키는 기분이 나쁜 듯하고, 코마치는 재미있게 타이시의 변명을 듣고 있었지만, 마침내 타이시가 백기를 들었는지, 풀썩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렇슴다...... 할 수 있으면 이름과 남자친구가 있는지 어떤지를 알고 싶슴다. 그리고 좋아하는 타입이라든지」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는 게 좋았단다.」


  유키노시타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품위 있게 홍차에 입을 댄다.

  ......이 녀석, 중반부터 즐겼구만. 아무튼, 여기까지 와서 말을 흐리는 타이시도 잘못한 점이 있지만.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학년 같은 건 몰라?」

「어른스러웠슴다. 그리고 키는 누나 정도에, 약간 밝은 갈색 머리였습니다. 그리고 미인입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과 같구나.」


  유키노시타가 말하는 대로다. 미인의 기준도 사람에 따라 다르고, 눈이 현기증 날만한 금발이나, 불타는 듯한 적색이라면 찾아내기 쉽지만, 갈색 머리에 쇼트 컷이라는 건 해당되는 인물이 비교적 많다.

  게다가 그 여자를 찾아냈다 해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을 좋아하게 된 중학생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있는지 가르쳐 달라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카와사키 군에게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그 사람을 특정하게 해. 문제는 그 뒤야.」


  문제라는 건, 방금 전 내가 생각한 것과 같을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 거리낌 없이 애인의 유무나 좋아하는 타입을 묻는 건 뭔가 이상하다. 나와 유키노시타는 애초에 교우 관계가 전무하고, 유이가하마라 해도 다른 학년까지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다.

  턱에 손을 괴고 고심하는 표정을 짓던 유키노시타는, 타이시를 위에서 아래로 뚫어지게 보고는, 혼자서 수긍한다.


「그리고, 몇 개 정도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겠니? 카와사키 군에 대해 모른다면, 우리들도 어떻게 공격해갈지 결정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가치관 체크 같은 거야.」

「옙, 뭐든지 물어주세요!」


  타이시는 긴장한 얼굴로 자세를 바로잡고, 손을 무릎 위에 둔다. 그거야, 유키노시타가 보면 긴장도 된다.

  그렇게 해서 간단한 문답이 시작된다. 유키노시타는 취미부터 시작해서 휴일을 보내는 방식, 장단점, 가족구성, 장례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몇 촌까지인지 꼼꼼하게 물어간다.


「앗, 저도 괜찮아요?」

「상관없어, 부디 좋아할 대로」


  키리바나의 부탁에, 유키노시타는 부담없이 응했다. 물론 타이시에게는 확인을 하지 않고. ......그 키리바나에게 하는 배려를, 좀 더 주변에 나눠 달라고. 예를 들면 나라든지.


「복권에서 1억 엔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 거야?」

「어이, 그거 필요한 거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적당히 떠오른 거잖아.

  그렇다 해도 복권을 사러 가는 아버지의 등은, 몇 번을 봐도 가슴에 꽂히는 게 있다. 만약 당첨됐다고 해도, 그 대부분은 대출을 갚는 것으로 나가는 것이 특히 슬프다.

  확실히 우리들은 꿈을 샀을 터인데, 실현된 뒤에 등장하는 것은 가혹한 현실이다.


「아니, 돈의 사용법이라는 건 생각보다는 사람의 성격이 많이 나오지 않나요?」


  무심코 납득해 버렸으므로, 그대로 입을 다물기로 했다.

  백만 엔 다발이 백 개 있는 것을 상상하는 한 편, 타이시는 비교적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답을 냈다.


「우선 집을 삽니다, 집. 그리고 외제차도 갖고 싶슴다.」


  꽤나 꿈에 흘러넘치고 있다. 역시 꿈의 이름을 쓰고 있을 뿐이다.

  키리바나는 천장을 보며 생각한 뒤, 웃음 띤 얼굴로 내게 손바닥을 향한다.


「참고하는 정도로 하치만 오빠 부디」

「우선 내게 백 만, 코마치에게 백 만을 나누겠지.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저금하고, 주부 일을 하면서 사치한다.」

「여전히, 너는 변함없구나.」


  아버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집의 대출금은 아버지가 일해서 갚게 한다. 괜찮아, 앞으로 20년 정도 일할 뿐이니까!

  그 뒤에도 몇 개 정도 질문이 계속됐지만, 대부분이 집에 관한 화제였다. 아니, 중요하다면 중요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걱정할 단계를 너무 건너뛰었잖아.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전부 대답한 타이시는, 녹초가 된 모습으로 테이블에 푹 엎드리고는 그대로 축 늘어진 채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무리임다. 세세한 종파까지 기억할 리가 없어요......」

「아무래도 신변에 이상한 건 없어 보이네. 누군가와 달리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는 상대방 나름일까?」

「저기, 제가 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마지막 부분이 필요한가요?」


  역시 키리바나도 궁금했는지 끼어들었다.


「어머, 친족 문제라는 것은 중요해. 본인들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렵고, 인연을 끊으려고 생각해도 금전이 관련되어 있어서 어려워.」


  확실히 그렇다. 가족이라는 것은 최소이자 최초의 사회 단위이기 때문에, 그 이상은 나눠지지 않는다. 그래서, 유산 상속에는 가족이 가장 우선된다. 비록 서로 무관심해도, 사회가 인연을 만들어내고 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쐐기가 박힌다. 그것이 가족이다.

  키리바나가 「그렇군요. 고부문제에서도 타인을 마음대로 가족으로 연결시키니까 벌어지는 그런 문제겠네요.」라고 납득한 듯이 대답하자, 유키노시타가 좋은 제자를 둔 교사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런 키리바나의 머리가 좋은 점을, 유키노시타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한다. 파장이 맞는다고 할까, 유이가하마와는 다른 의미로 이야기하기 즐거운 타입인 것 같다.


「조금 전에도 말했는데, 우선 내일 방과 후에 소부고까지 와 줘도 괜찮겠니?」

「넵, 잘 부탁드립니다.」


  카와사키는 누나로서 끝까지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불만스러운 표정인 채로 의논은 결정되었다. 뭐, 동급생이라면 몰라도, 모르는 고등학생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말해봤자, 응원하기 어렵겠지.

  뜻밖의 의뢰인만큼, 왠지 귀찮다. 게다가,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지도 모르는 것을 생각하면, 더 우울해진다.


「......맞다. 야, 너네들도 도와. 너희들이 말려들게 했잖냐.」

「아무튼, 그 말을 들으면 찔리니까......」


  코마치와 키리바나의 협력을 얻어낼 때 쯤 해서, 이 회합이 끝난다.


「소부고는 여자의 레벨이 높슴까? 누나야 어쨌든, 두 사람 모두 굉장하네요.」


  갈림길로 가는 도중, 여성진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후방에서 보고 있는데 타이시가 작은 소리로 말을 건다.


「코마치, 키리바나와 같은 반인 시점에서, 남의 말이 아니잖아.......」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부가 같아도 반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면, 코마치, 키리바나와 같은 반이 귀중하다.


「게다가 그 분도 있고, 전 절대로 소부고에 들어갑니다.」


  뭔가 할 의욕이 넘쳐흐르는 타이시에게서 눈을 돌리고, 유키노시타 일행의 옆모습을 들여다본다.

  ......뭐, 비교적 여자 레벨은 높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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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7 ~히키가야 하치만은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


  세계가 한들한들하고 흔들린다.

  반투명한 얇은 막이 사이에 있는 것처럼 시야는 뿌옇고, 보이는 것을 잘 인식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할 수 없다.

  어딘가에 내던져져서, 의식이 혼탁해진 것 같다.

  애매한 세계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으면서, 전혀 위기감이 들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말았다.

  마치 무너져 내리는 동화 세계에 있는 것 같다.

  모순점을 알아차릴 수 없다,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위화감이 소실되어 있다. 망가지기 시작한 인형처럼,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모르는 채 계속 춤출 것이다.

  ......아아, 그래. 이런 현상을 꿈을 꾸는 거라 했었지.


―――――――


  갑작스럽게 의식이 되돌아와서 깨어난다.

  갑자기 의식이 돌아온 탓인지 몸이 튀어 올라, 책상을 흔들고 말았다.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이 부실 내에 울려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아, 힛키 일어났어?」

「정말이지, 부 활동 중에 자다니 결국 머리까지 활동하지 않게 된 거니?」


  ......잠에서 막 깨어날 때 차가운 물을 퍼 맞은 기분이 되었다.

  한 번 머리를 흔들어, 의식을 깨운다. 희미해진 시야가 선명해져서 사고도 뚜렷해진다. 그렇게 해서 다시 얼굴을 들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평소처럼 보내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건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토츠카 이후, 아무도 상담하러 오지 않았잖아.」


  단지, 평소처럼 보내는 이유는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홍차를 훌쩍거리며,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뢰가 없다는 건, 평화롭다는 증거야. 오히려 기뻐하렴.」

「아니, 그런 자취 생활하는 딸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해도......」


  연락이 없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딸에게 당하면 틀림없이 타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토츠카가 상담하러 오고 나서는,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너무너무 한가해서 손에 든 책을 다 읽자마자 졸려졌다.

  5월이 끝나서 낮은 벌써 더위가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저녁에는 4월의 향기가 남아, 얕은 잠을 자기에는 딱 좋을 정도의 기온이 되어 있다.


「그래도, 좀 그러네. 간단한 고민이라도 좋으니까, 상담하러 와주면 기쁠 텐데...」


  유이가하마가 번둥번둥하고 먼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깨끗하고 맑게 갠 푸른 하늘은 평온 그 자체로, 어쩐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창을 통해서 침입하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취주악부가 연주하고 있을 관악기음이 한산한 교사 내에 울려 퍼진다. 확실히 이 광경은 평화 그 자체다.

  뭔가 방과 후에 홍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보내는 부로 변했다. 봉사부라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들이 학교에서 봉사되는 것 같다.


「애초에 지명도가 너무 낮잖아. 히라츠카 선생님의 소개만으로는 수가 너무 적어.」

「그럼, 포스터 같은 거 만들어보자! 뭔가 귀여운 거」

「포스터라......」


  머릿속으로 선전 포스터를 마음에 그려보지만, 마구 팝 같은 글씨체로, 「최근 난처해하는 당신!」이나 「고민해결!」이라든지 「신이 사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이런 어쩐지 수상쩍은 건강식품이나 종교 권유 같은 표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담하러 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원래 봉사라는 것은, 말 자체로는 자원봉사 쪽 의미에 가깝다. 그것이 교외활동이 아니라, 학생을 돕는다는 건 이름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흔든다. 그 미묘한 표정을 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만둘까. 아까 유키노시타가 말한 대로, 상담이 없는 게 제일이야.」


  게다가 상담이 오면, 그건 그거대로 귀찮다. 그렇다면 다소 한가한 정도가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네. 이 건은 일단 보류해두고, 또 필요해지면 꺼내기로 하자.」

「그래? 그래도 상담이 안 오는 건 좀 외롭네.」


  유이가하마가 안타까운 듯이 말하자, 대화가 끊겨 정적이 찾아온다.

  ......종이컵에 따라진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약간 설탕을 많이 넣었는지, 아니면 미지근해져서 단 맛이 강해졌는지, 씁쓸한 단 맛이 계속 입 속에 남고 말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한가하다. 장마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약간 습기 찬 바람이 열린 창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가, 봉사부라는 데 맞아?」



  지루함을 주체 못하고 다시 꾸벅꾸벅 졸려던 참에, 어쩐지 나른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흘러내릴 것 같은 흑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그 여자는, 봉사부내를 바라보고는, 야무져 보이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본다.

  ......그런데, 플리츠에서 쭉 뻗은 다리는 다소 본 기억이 있지만, 누구지?

  어디선가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내 착각이라면 엄청 쪽팔리니, 모르는 사람으로 친다.


「맞는데, 무슨 용건이니?」


  우리들을 대표해서 유키노시타가 대답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누구지? K로 시작하는 이름인 것 같은데. 카와사키......는, *매의 프린스 이름이고, 카와바타는 문필가이군. ......카메로는 원래 외국인이니까 아니다. 그보다 카메로는 첫 글자가 C였지. 나는 정신적으로 전혀 향상심이 없는, 바보일지도 모른다.

※ 매의 프린스 : 한 일본 야구선수의 별명


「카와사키잖아! 무슨 일이야?」


  처음에 생각난 게 정답이었나...... 다만 이름을 알았을 뿐, 어디서 만났는지는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난 이 학교 사람 대부분을 만난 적은 있지만, 아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로.


「유이가하마, 네가 아는 사람이야?」

「힛키, 카와사키. 같은 반이야......」


  카와사키에게 안 들리게 작은 소리로 묻자,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혀하는 소리를 낸다.

  당연히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너, 반 친구 정도는 기억해두렴......」

「저 쪽도, 날 기억 못하니 문제없어.」


  아직도 내 이름이 맞게 불린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생들도 가끔 「히, 히키타...... 히키가야, 여기 읽어봐」라고 말하는 처지다.


「잘 노는 중에 미안한데, 상담할 게 있어.」


  놀란 나머지, 무심결에 셋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유키노시타도 약간 놀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유키노시타는 유키노시타대로 지루했던 것 같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건, 이것이다.


「어떤 상담이니?」

「아... 그, 그게, 뭐라고 할까......」


  카와사키는 조금 어색한 듯이, 눈을 돌리고 우물거린다.

  처음의 지기 싫어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어딘가 매우 망설이는 말에 위화감이 든다. 어떤 성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시원스럽게 말하는 성격이라 생각한다.


「남동생이 사람을 조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는데......」

「......남동생?」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표를 띄운다.


「그래서, 그 동생은 어디 있니?」


  유키노시타가 은근히 왜 남동생 본인이 오지 않았는지를 물어본다. 확실히 본인이 오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조금 몸을 내밀어서 카와사키의 뒤쪽을 봤지만, 물론 아무도 없다.

  역시, 그래서 미묘하게 서먹서먹한 거였나. 자신의 용건이라면 몰라도, 남동생의 대리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중학생이라서 지금은 여기에 없어. 일단 만나려고 하면, 바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휴대폰을 꺼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카와사키. 30년 정도 전이라면 엄청 긴 스커트를 입을 것 같은 외모와는 정반대로, 누이와 동생사이는 좋은 것 같다.

  다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라고 할까, 의뢰주가 중학생인 시점에서, 이 건의 흑막이 보인 것 같다. 그 여자애 둘이 비웃는 소리가 먼 하늘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럼, 연락을 해줄 수 있겠니?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우리들이 뭘 해야 될지 몰라.」

「그래. 그럼 전화해볼게.」


  카와사키는 두 번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전화하기 시작한다.

  그 조작 횟수가 적은 것을 봐서는, 남동생의 번호를 단축키에 넣었거나 이력이 맨 위에 있는 거겠지.

  ......이 녀석, 브라콘이군. 나도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야, 유키노시타. 이 의뢰 받을 생각이야?」

「몰라. 그건 만나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어.」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는 유키노시타를 보고, 약간 안심한다. 샘플이 너무 적어 판단하기 곤란했지만, 아무래도 뭐든지 부탁한다고 맡는 건 아닌 듯하다.


「응. 그럼, 거기 사이제에서」


  통화하는 입에서 새어나온 소리를 생각하면, 카와사키의 남동생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카와사키는 그 뒤에 한 두 마디를 하고는, 조심해서 오라는 주의를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외로, 누나 역할은 제대로 하는 것 같다.

  몸을 돌린 카와사키는, 나를 힐끗 보며 입을 연다.


「그럼, 준비하고 와줄 수 있겠어?」

「그래, 그럼 가볼까?」


  유키노시타는 티 컵에 남은 홍차를 다 마시고 일어서서 나와 유이가하마에게 권한다.

  나도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를 따라 서둘러 홍차를 다 마시고는, 컵을 정리하고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할 수 있으면 가고 싶지 않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나중에 저 녀석들의 잔소리를 듣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연관되는 편이 마음도 편하고, 의뢰를 거절할 때도 이유를 갖다 붙이기 쉽다.


「그리고, 히키가야랬지? 너의 여동생들도 같이 있는 것 같던데」

「............」


  이 순간, 내가 카와사키의 남동생과 대면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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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6 ~둘의 성묘~
 

  어렸을 적의 이야기이다.

  서로의 딸 사이가 좋았던 히키가야가와 키리바나가는, 쌍방이 맞벌이라는 이유도 있어, 어느 한 쪽이 바쁠 때는 다른 한 쪽 집에 아이를 맡겼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방과 후는 코마치와 같이 키리바나의 집으로 가서 그대로 밤까지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 때 때때로 근처에서 상태를 보러 와서 우리들의 상대를 해 준 분이 있었다.

  키리바나의 할아버지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시간을 주체 못하는 노인답게,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온화한 분이었다.

  코마치와 같이 놀러가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손주가 셋이 되어 곤란하다고 웃으며 우리들 셋을 돌봐주었다.

  나와도 가끔 오목을 두며 놀아주셨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할아버지의 서재에 늘어선 장서였다. 여덟 다다미 정도 큰 방의 한 쪽을 다 메우던 책은, 본인이 이르길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아이였던 나는 작은 도서관처럼 생각했고, 서재 문을 열었을 때의 오래된 종이 냄새가 좋아서, 가끔 빌리러 와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은 하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단다. 그러니 좋아할 대로 읽고, 자유롭게 즐기려무나.」 이렇게 할아버지가 한 말에 영향을 받은 나는, 그 이후로 더 혼자서 책을 읽게 되어갔다.

  ......뭐, 할아버지 탓에 나의 외톨이화에 박차가 가해진 건 부정할 순 없지만.
 
  그런데도 친 조부모님이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나와 코마치에게는 제 3조부라고도 할 수 있었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지금, 찬 무덤 아래에서 편히 잠들어 있다.


――――――――


  고운 쇄석이 깔린 길을 걸어가니, 자갈을 밟아서 나는 불협화음이 근처에 공허하게 퍼져나간다.

  그대로 문을 빠져나가 경내로 들어가자, 신불 상의 색을 바탕으로 한 포장과 신록의 대조가 어우러져, 왠지 그것만으로 조금 평온해진다.

  역에서 도보로 우리들 집 방향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그 묘지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묘하러 간 적은 별로 없구나. 조부모님은 건강하시고, 키리바나의 할아버지 말고는, 가까운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추석에, 누가 잠들어 있는지 모르는 무덤에 가는 정도다.


「코마치는 안 불러도 돼?」

「코마치와는 가끔 가요. 그래서 오늘은 하치만 오빠가 참배하러 갔으면 해서」


  그대로 경내를 걸어갔더니, 곧바로 부지가 묘지로 변해간다.

  키리바나는 익숙한 손짓으로 국자와 통을 빌려서 통에 물을 채워간다. 약간 무거웠는지, 키리바나는 통을 들어 올리고는, 조금 휘청거리고 나서 통을 다시 한 번 둔다.

  할 수 없이 키리바나에게 국자를 빼앗아, 통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린다.


「감사합니다.」

「왠지 익숙해 보이는데, 자주 와?」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떠오르면 할 수 있는 한 가고 있어요.」


  키리바나가 걷기 시작했으므로, 뒤따라간다.


「그렇다기보다는 싫은 거예요. 기일이나 무슨 주기나 추석, 그렇게 판에 박은 듯이 만나러 간다니, 왠지 불성실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떠올랐을 때 만나러 가는 편이, 기뻐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다지 넓지 않은 묘지라, 바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역시 자주 오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인지, 몇 조 정도의 가족동반과 마주쳤지만, 경내는 조금 한산하다. 뭐, 성묘하러 가는 것이니, 이 정도로 조용한 게 딱 좋겠지.

  키리바나가의 무덤은 조금 오래돼서, 원래 있던 광택이 사라져 퇴색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주지 스님이 청소해줘서 그런지, 전체적인 더러움은 눈에 띄지 않고 제대로 손질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기억나?」


  문득 신경 쓰여서 키리바나에게 묻는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과연 사인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옳다면 80세가 되기 몇 년 전에 돌아가셨을 테니, 노쇠하기에는 빨랐으리라.


「확실히 폐렴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이유로 입원해서, 바로 그대로 돌아가셨으니」


  둘이서 묘석에 물을 붓고, 꽃 통에도 물을 따른다.

  그러고 보니 묘석에 물을 부을지 여부는 종파나 집안의 관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다만 무덤 위부터라고 해도, 고인의 머리에 물을 붓기가 꺼려지는 건 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사 온 꽃을 꽃 통에 세우고, 한 숨 돌린다.


「그나저나 향을 안 가지고 왔는데......」

「제대로 가져왔으니, 괜찮아요. 여기 성냥도」


  키리바나는 토트백에서 향과 성냥을 꺼내고는,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보여준다.

  준비 만반이잖아......


「그럼, 이쪽이 주된 볼 일이었던 건가」

「그래요, 원래 성묘하려고 해서, 거리에서 꽃을 사서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마침 하치만 오빠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그랬다니, 나도 키리바나와 마주쳐서 다행이다.

  2년이나 3년 정도지만, 많이 신세를 졌던 분이다. 그럼에도 참배하러 간 적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 뿐이다. 이런 기회가 없다면, 좀처럼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향에 불을 붙이자, 그 독특하고 건조한 냄새가 떠돌아 와, 어딘가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한다.

  그 후에는 둘이 앉아서, 손을 모아 합장한다.

  실없는 얘기를 할아버지에게 하고 얼굴을 들자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렇다 쳐도, 할아버지도 조금 빠르네요. 좀 더 오래 살아도 벌은 안 받을 텐데」

「그래도 귀여운 손주 같은 게 둘이나 늘어났잖아. 행복하지 않았을까?」

「......귀여운?」


  키리바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옛날에는 귀여웠단 말이다, 옛날에는.


「아무튼, 행복했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불행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무슨 말이야?」


  조금 신경 쓰여서, 되묻는다.

  키리바나는 나를 향했던 얼굴을 정면으로 되돌리고 나서, 막힘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 지론입니다만, 사람은 행복을 얻는 것보다도 불행하게 되지 않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지는 데는 정원이 있어서, 모두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어요.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면, 꿈이 깨져서 절망하거나 가난을 계속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도 알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노미적 자살이네요.」


  키리바나는 한 숨 돌리고, 장식된 꽃 한 송이를 손에 든다.


「그래서, 누구나 타협을 하는 거예요. 멋진 사람과 결혼하기를 포기하거나, 뮤지션이 되기를 포기하고 회사원이 되는 것도 그 하나의 예에요. 좋아하는 게 없어도 참을 수는 있지만, 병들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참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불효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지요. 나쁜 짓 같은 건 안 했는데, 불합리하게 죽는 일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선, 이런 때는 불효가 되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살 수 있었던 게 고귀한 일이라는 것을, 전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키리바나는 묘석을 보는 채로 이야기를 끝내고, 말한 것이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린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당분간 그대로 있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분위기를 무겁게 해서 미안해요.」

「뭐, 무덤 앞이니 어쩔 수 없잖아.」


  그 후, 향이 넘어지지 않게 깊이 넣고, 누구랄 것도 없이 일어서서 국자와 통을 돌려주러 간다.

  돌려주다가 가사를 입은 아저씨와 엇갈려서 우선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저기, 그 사람은 스님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기의 주지 스님이에요.」

「머리를 안 깎았네......」


  사원의 스님은 누구나 머리카락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뭔가 위화감이 든다. 종파에 따라 다른 건가.

  절 문을 빠져나와, 시계를 확인했더니 오후 2시가 다가오려는 중이었다.

  서로 특별히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역시 오후의 햇볕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강렬해서, 5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열기가 자욱하다. 좀 더 엷게 입어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참, 그 꽃 얼마였지?」

「앗, 괜찮아요. 이번에는 제가 끌고 간 거고」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지.」


  그렇다고 할까, 만약 키리바나가 돈을 낸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것을 코마치가 알게 되면 진짜로 혼난다. 거기에 나도 상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 다음에 참배하러 갈 때는 얘기할 테니까, 그 때는 하치만 오빠가 꽃을 사주세요.」


  키리바나는 마지못해하며, 그렇게 제안한다.

  지금 여기서 돈을 내는 것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지만, 그게 좋다면 어쩔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코마치도 부르자.」

「그러네요. 셋이서 가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평소처럼 내 앞을 걸어 나간다.

  ......할아버지의 성묘를 한 탓인지, 어릴 적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키리바나에게 들었던 그 날, 나는 키리바나가 우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전혀 슬픈 내색 없이, 어딘가에서 흘러넘쳐 떨어진 것처럼, 단 한 방울만 눈물을 흘린 키리바나는 내가 알려주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키리바나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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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5 ~히키가야 하치만은 얼굴을 붉힌다~


  밖에 나오자 강렬한 햇빛이 찔러들어와서, 무심코 눈을 가늘게 뜬다.

  아직 날씨는 여름은커녕 장마도 조금 빠를 정도지만, 내리쬐는 햇볕의 강렬함은 이미 여름을 방불케 한다. 오존층은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생각했지만, 저건 자외선만을 차단할 뿐, 햇빛 자체와는 관계없던가. 완전히 추억보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예전 쪽이 햇볕도 약했던 것 같다.

  아직 오전인데 햇볕의 세기가 이 정도라면, 오후에는 더워질지도 모른다.

  자전거 보관대 같은 편리한 도구가 없는 우리 집에서, 방치된 자전거에 다리를 벌리고 서자,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의외로 얼굴에 맞닿는 바람이 기분 좋다. 아무래도 공기 자체는 그렇게까지 뜨거워지진 않은 것 같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자전거의 최대의 적은 바람이다. 바닷가에 가까우면 겨울에는 강바람이라 불리는 바람이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휘몰아치기 때문에, 갈 때도 올 때도 역풍이 된다는 이상한 현상에 휩싸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순풍이겠거니 생각해서 힘낸 끝에, 돌아오는 길도 역풍이었던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치만 오빠 아닌가요, 어딘가 가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자, 사복차림인 키리바나가 가까이 와있었다.

  검은 스타킹과 약간 밝은 베이지색 숏팬츠의 조합, 상체는 옅은 핑크색 블라우스로 그 가녀린 몸을 싸고 있다. 어깨에 가죽제 토트백을 맨, 그야말로 외출용 차림이었다.

  무심결에 발밑으로 눈을 돌리자, 굽이 낮은 샌들을 신고 있었다.

  아무래도 키리바나의 눈높이가 나보다 높아질 일이 없어서인지, 안심한다.


「잠시 거리에 책이라도 사러 갈까 해서」


  그러고 보니 도시와 시골의 차이점 중에, 역을 중심으로 한 번화가를 역명으로 부르는지, 거리라고 부르는지가 있는 것 같다. 지방도시일 경우, 기본적으로 번화가가 하나밖에 없다면 역명이 시읍면명과 같아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소재지에 갔다 온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우연이네요, 저도 밖에 볼 일이 있어요.」

「뭔가 사 가려고?」

「그런 거예요. ......맞다, 쇼핑한 뒤,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키리바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봐서, 머릿속의 일정표를 열어, 오늘 예정을 확인해보지만 보기 좋게 백지였다. 그렇다고 할까 전부가 공란이라는 점에서 일정표의 의미가 없다. 이 일정표는 두 번 다시 쓸 일은 없을 테지.


「무슨 일인데?」

「가보면 알아요. 하치만 오빠에게도 관계있는 거예요.」


  쇼핑이 끝나고 집에서 빈둥거리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까.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말이 조금 신경 쓰인다. 키리바나와는 접점이 많은 것 같지만, 집 밖에서는 거의 없다. 그 키리바나와 나와 관련된다고 한 것은, 그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생각하고, 결론을 굳힌다.


「응,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면서 걷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걸어가기에는 약간 멀지만, 어쩔 수 없다. 자기보다도 어린 여자애가 걷는데, 나만 자전거를 타는 건 확실히 보기 흉하다.


「어? 자전거 태워주지 않을 거예요?」


  키리바나가 놀란 듯이, 나와 자전거를 교대로 보면서 물어본다. 왜 그렇게 당연한 듯이 물어보는 거냐......


「너 말야, 둘이 타는 건 도로 교통법 위반이라고.」


  애초에 합법이라도 태울 생각은 없다만.


「그래요? 그럼 걸어서 가요.」


  키리바나는 조금 불만어린 표정으로, 자전거 짐받이 부분을 살짝 어루만지고는 그대로 역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 걸음은 언제나처럼,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어떤지,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우선 역 근처까지 가서, 주륜장에 자전거를 세운다.

  그대로 역과 복합 시설로 된 쇼핑 몰로 가서, 안내판 앞에 선다. 여기 근처는 오후에는 항상 사람으로 혼잡하지만,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통행도 적고 약간 한산한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서로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제 쇼핑은 다음에 하면 되고, 우선 서점부터 가볼까요?」


  키리바나가 그렇게 말해줘서, 에스컬레이터로 3층 서점으로 간다.


「적당히 사고 있을 테니, 여기 근처라도 둘러보고 있어.」

「아니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으니, 뒤에서 보고 있을게요.」

「마음이 산란해져, 마음이」


  그렇게 대답해도, 키리바나는 뭐가 즐거운 건지, 기분이 좋은 듯이 있을 뿐이라, 포기하고 하드 커버 코너로 간다.

  신간을 위에서 아래까지 대충 보고,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 있는지 체크하고 있는데, 키리바나가 한 권을 손에 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팎을 진지한 눈으로 보면서, 뭔가를 생각하듯이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너, 그 작가 좋아해?」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전에 읽었던 게 재미있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조금 비싸네요.」


  키리바나는 갖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인 채, 약간 두께가 있는 책을 선반에 다시 둔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지갑을 열어보는데, 히구치(5천엔)와 눈이 마주친다. 약간 미묘하군.

  키리바나는 내 동작을 눈치 채고는, 기쁜 듯이 풀어진 표정으로


「괜찮아요. 우선은 아마존 리뷰라도 보고 생각할게요.」


  이렇게 말하며, 사랑스럽게 뒷걸음으로 책장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하는 말은 별로 사랑스럽지 않다. 아니, 뭐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지만. 그나저나 너도 아마존 쓰는구만.

  그 후 문고본과 만화를 고민한 끝에 사서, 서점에서 나올 때는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밥은 어떻게 할까?」

「저는 아침밥을 늦게 먹어서, 아직 배가 비지는 않았어요.」

「실은 나도 별로 배고프진 않아.」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가볍게 토스트를 먹어서, 아직도 내 배는 배고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럼, 잠시 문구류를 보러가도 될까요?」

「별로 상관없는데...... 너의 볼 일이라는 건 그거야?」

「아니에요. 단지 모처럼 왔으니 잠깐 보러 가고 싶어서요.」


「그럼 가볼까요?」라고 기세 좋게 말하고, 키리바나가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으므로 그 뒤를 따라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자 고운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가게가 환영한다.

  쇼핑몰은 층마다 특색이 어느 정도 있어서, 손님이 대충 가도, 쇼핑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 5층은 생활 잡화를 메인으로 하는지, 문방구 외에는 부엌 용품이나 100엔 샵 등이 출전하고 있었다.

  역시 정오인 탓도 있어서, 에스컬레이터 자체는 약간 혼잡했지만 막상 내리자 사람들이 뜸하다.

  아무래도 쇼핑 자체는 느긋하게 할 수 있겠다고 혼자 생각한다.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어요?」

「아니, 딱히 없어,」

「그렇다면 같이 돌아보지 않겠어요?」


  순간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방금 전에 같이 있게 한 것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일단 상대가 먼저 하자고는 했어도, 여기서 따라가지 않는 건 좋지 않다.


「네 뒤에서 보고 있을 테니, 적당히 돌아봐.」

「네, 감사합니다.」


  문방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갖고 싶은 물건이 없어도 필기구나 쓸데없이 비싼 다기능 사무용품을 바라보다가, 정신 차리면 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심이 없는 호치키스라든지, 쓸데없이 멋있는 메모장이라든지, 왜 이렇게 남심을 자극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거냐. 거의 쓰지 않지만, 사고 싶어진다고.

  키리바나는 우선 필기용구 코너로 가서, 조금 고민하면서 볼펜을 고르고는, 그대로 시험 삼아 써보기 시작한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시험용으로 쓰는 종이를 봤더니 「우리들의 우정은 진짜 불멸!!」 이나 「카나야마 죽어」 라든지 「――태・극――」이라고 쓰여 있다. 이 거리의 인간관계가 왠지 불안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녀석은 틀림없이 중2병이군.


「하치만 오빠, 유리 펜이 있어요.」

「응, 뭐야? 그 강도가 불안해 보이는 필기구는?」


  키리바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목을 돌리자,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펜이, 약간 파란 잉크와 같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군.

  재미있는 듯이 달려가는 키리바나를 따라 옆으로 다가갔더니, 아무래도 이것도 써볼 수 있는 것 같다.

  키리바나가 소유자 이름이 박힌 펜을 손에 들어, 잉크에 펜 끝을 담그고 똑바로 끌어올린다. 그러자 젖어보이던 흑색이 옆의 틈으로 스르르 들어간다.

  재주 좋게 잉크가 들어가서, 무심코 웅크리고 앉아서 보고 말았다. 원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 어떤 압력이라도 작용하는 것이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눈에 보이는 큰 현상을 일으킨다.

  잠시동안 투명한 유리에 칠흑이 채워져 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봤지만, 입술을 어루만지는 미지근한 한숨으로 의식이 되돌아온다.

  얼굴을 들자, 키리바나가 당장 뺨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유리 펜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할까 뺨이 붙지 않았을 뿐이지, 어깨는 맞닿아 있었다.

  키리바나는 지금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흥미로워 보이는 시선으로 펜 끝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무심코 담홍색의 요염한 입술이나, 윤기가 나는 옻나무 같은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키리바나의 입에서 빠져나오는 한숨이 얼굴에 닿아 간지럽다.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깨닫고, 펄쩍 뛰듯이 일어선다. 키리바나는 그대로였지만 이윽고 유리에 잉크가 다 스며들자, 준비된 종이에 스르륵 쓰기 시작한다.

  키리바나가 적당히 동그라미나 한자를 쓰는 동안, 찬장에 장식된 잉크 색을 보고 비교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라벨에 의하면 여러 안료를 써서 색을 낸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그마한 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키리바나가 차분히 써서 다행이다. 이 얼굴의 열기가 가시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잠시 후 잉크가 닳았는지, 아쉬운 듯이 펜을 두고는 나를 돌아본다.


「의외로 오래 가네요. 이거라면 적당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키리바나가 출구로 바로 가길래 조금 갖고 싶어해 보이는 얼굴에 말을 건다.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은데, 안 사?」

「펜과 잉크를 사면, 그것만으로 용돈이 없어져요.」


  문구점에서 나와, 눈짓으로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기다렸죠? 다음부터는 제 쇼핑이에요.」


  이렇게 말하며 검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아무래도 아래층에 유아, 아니 다른 볼 일이 있는듯하다. 아니 유아는 있겠지만.

  사람들을 헤치고 1층으로 내려간 뒤, 키리바나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꽃집으로 들어간다. 대강 살펴보자 다양한 색들의 꽃이 늘어서 있고, 남자가 들어가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꽃집 같은 데는 인생에서 한 번도 들어갔던 적이 없지.

  혼자서 가게 하는 것도 안 좋아서, 과감히 들어가자, 콧속을 살짝 찌르는 냄새가 떠돈다. 꽃집이라고 하면 좋은 향기려니 생각했는데, 여러 냄새가 섞여서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키리바나는 점원과 익숙한 듯이 말하고는, 이름 모를 꽃, 흰색, 노란색, 보라색 세 개를 고르고 한 다발로 포장해서 샀다.

  아까 전의 쇼핑이 너무 길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맥이 빠져버렸다.

  무거울 것 같아서 꽃다발에 손을 뻗지만 옆으로 피한다.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 같다.


「그럼, 가볼까요」

「아니, 어디에 가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괜찮아요. 바로 알게 돼요.」


  다소 불안하지만, 입가에 웃음을 피우는 키리바나를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곳에 끌려갈 일은 없겠지.

  얘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의외로 진지한 용건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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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4 ~소녀들의 걸즈 토크~




「그럼, 아카네랑 힛키는 소꿉친구라는 거네!」


  유이가하마가, 매우 건강에 안 좋아 보이는 색의 멜론 소다를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자리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중이다.

  초면일 경우, 본심인지 어떤지는 둘째 치고 여자 쪽이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들었고, 이 중에 호전적인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 한 사람도 기본적으로는 반격 형이라, 도발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기 때문에, 딱히 분위기가 나빠질 요소도 없을 것이다.


「일단 초등학생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돼요.」


  키리바나도 처음에는 조금 딱딱하기는 했지만, 바로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그 나름대로 터놓고 가볍게 농담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키리바나와 만난 지 7년이나 됐나.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을 빼고는 가장 긴 관계가 된다. 만일 알고 지낸 연수를 막대그래프로 나타내면, 엄청 튀어나온 그래프가 완성되겠지.


「그 때는, 오빠도 귀여웠답니다. 두 분에게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히키가야의 어릴 적이라...... 터무니없이 귀엽지 않은 아이밖에 상상할 수 없어.」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내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고도 우습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도 흥미로운 듯이 듣고 가끔 끼어들어서 즐기고 있다.

  여자들 간의 대화에는 아무래도 끼어들기 힘들다.

  애초에 화제 전개가 너무 빠를 뿐만 아니라, 패션 이야기로 막 들어간다. 게다가 난 이해 못할 외국어가 난무해서, 패션인지 해외 풍습을 말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 아직 세계사 인물 이름 쪽이 기억하기 쉬울 정도의 명사가 줄줄 늘어선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나는 세계사 교과서를 노려보는 중이다. 탈출은 못하지만, 구석에 있으므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위화감은 없다.

  1616년, 누르하치와. 민족이 다르다고는 해도 왜 이 사람만 가타카나지? 게다가 그 뒤에 나오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렵고, 더 이상 쓰기 어려울 수가 없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이 세 명이지만...... 거기에 이 사람들 한 페이지에 들어가 있으니까.

  한자 쓰고 싫어서 세계사를 골랐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는 거냐고...... 게다가 세계사 담당은 시험에서 기뻐하며 한자 오류를 감점한다. 삼국지 전후의 시험에서 15점을 한자 오류로 틀렸을 때는 진짜로 울고 싶어졌다.


「자, 여기 사진을 보세요. 정말 귀엽다구요.」


  코마치가 뭔가 불길한 제안을 한다. 내 어릴 적 사진 같은 건, 진짜 부끄러우니 그만둬. 게다가 그 뒤, 높은 확률로 졸업 앨범까지 보여줄 것 같아서 무섭다. 중학교 졸업문집 같은 건 흑역사에 불과하다.

  이대로 집으로 몰려오는 것도 난처해서, 키리바나에게 구원요청을 한다.


「키리바나, 어떻게 못해?」


  키리바나는 내 샤프를 들고, 내 교과서에 왠지 예서체로, 『무리예요』라고 쓴다. 역시 『무』는 예서가 빛나 아름답다. 행서나 초서는 눈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알기 쉽지만, 예서에는 묘한 매력이 넘친다.

  ......그나저나, 왜 말로 안 하는 거지?

  한 번 더 재촉의 의미를 담아 샤프 머리로 키리바나를 찌르자, 키리바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예쁜데, 애인은 없나요?」


  라며 대화를 끊어준다. 어찌됐든 무른 녀석이다.


「나? ㄴ, 난 없다고 할까-」

「나도 없어.」


  우연이군, 실은 나도 없다.


「..........」


  뜻하지 않게 우리들 사이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내 유리잔의 얼음이 튀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코, 코마치는 어때? 둘 모두 귀여운데」

「우리들도 없어요. 아카네는 많이 고백받긴 하지만요.」


  ......이상하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외모가 좋은 녀석일 텐데.

  옆에 있는 키리바나를 슬쩍 보니, 손등을 턱에 괴고 있었다. 중학생답게 화장기는 없지만, 속눈썹은 적당히 위로 뻗어 있고 이렇게 봐도 용모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 고백된 사람들 중에 누군가랑 사귀려고 생각 안했어?」


  유이가하마가 조심스럽게 묻자, 유키노시타가 키리바나를 보충한다.


「고백되었다고 해서, 누군가와 교제하려고 하는 건 경솔한 생각이야.」


  아마, 이 중에 가장 많이 고백 받았을 유키노시타의 말이니만큼 설득력 있다. 이 녀석도 그 나름대로 고백 받고, 사귀지 않을 거냐고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댄 적이 있으리라.

  그리고 들은 적은 없지만, 키리바나도 동일한 사태에는 한 번 정도는 조우했을 것이다. 연애에 얽힌 화제는 놀랄만한 속도로 퍼지고, 누군가의 대화거리가 되고 만다.


「교제하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네요.」

「누군가 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이유가 아니지만요. ......뭐라 할까, 연애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고, 데이트 같은 것을 하고, 상대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데도 상대방을 좋아할 수 없게 된다면 왠지 미안해지잖아요.」


  그건 일전에 미사키 군에게 했던 말과는 약간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차이가 나는 말이었다. 어쩐지 이 녀석,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없어 보인다.

  의외로 진지한 말이라, 유이가하마가 조금 놀란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아요.」

「그래도 혹시, 그 사람한테 차이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때는, 단념하고 다른 사람이라도 찾을 거예요.」


  키리바나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전혀 입을 열지 못하고, 무언가 할 말을 찾고 있다. 코마치는 평소와 변함없다.

  확실히 거북한 분위기가 된 것이 신경 쓰였는지, 키리바나는 「슬슬 밥이라도 먹을까요」라고 말하고는 벨을 눌렀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주문하고, 드라마나 최근 유행하는 이야기를 하며 먹기 시작하자, 아까 전의 분위기가 지나가고, 마음 편한 대화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 새 밤의 장막이 내려와, 마을이 인공적이고 무기질적인 불빛에 비춰지기 시작한다. 코마치도 키리바나도 중학생이라 빨리 돌아가라고 재촉하고는 그 자리는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하늘은 먹물을 흘려 넣은 것처럼 물들어 있었다.

  여기부터라면 우리 집과 키리바나의 집이 가까워서, 우선은 코마치와 키리바나를 집까지 보내고, 거기부터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를 보내주러 간다.


「힛키랑 그렇게 가까운 애는 처음 봤어.」


  내 앞을 걷는 유이가하마가, 뒤돌아보며 말을 건다.

  유키노시타는 조금 전의 신호등에서 헤어졌다. 의외로 키리바나가 마음에 든 것 같아, 또 만나고 싶다고 약간 기분 좋은 듯이 말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알고 지낸 시간만은 기니까. 코마치 2호 같은 거야.」


  왠지 코마치 2호라고 하니 우주선 같이 들리는군, 이런 말이 머리 구석에서 떠오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좀 더 학교에서 붙임성 있게 말하면 좋을 텐데......」

「그걸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 외톨이인 거다만」


  은둔형 외톨이라도, 가족과 대화를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뭐, 그 녀석은 예외 같은 거야.」


  어렸을 적은 코마치와 한 짝처럼 인식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하는 방식이 코마치와 비슷하게 되고 만다.

  조금 의식을 너무 해서 멀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여동생 이하, 아는 사람 이상이라는 관계로 자리 잡았다.

  최근 조명 빛이 희미해진 편의점 앞에, 같은 고등학교 사람들이 모인 것이 보여, 유이가하마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유이가하마는 발소리가 멀어진 것을 알아챘는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봐, 그런 거」


  유이가하마가 볼을 부풀리면서 걸음을 멈추고, 내 옆에 나란히 선다.


「나랑 유키농이랑, 거리에 신경 쓰고 있지? 그래도, 뭔가 얘기하고 있어도 아카네한테는 그런 게 없으니까」

「..........」

「그러니까 우리들한테도, 좀 더 사양 안해주면 기쁠 것 같아.」


  유이가하마는 그 말만을 부끄러운 듯이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또 나를 앞서가기 시작한다.

  침묵을 메울 말을 찾았지만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밤길을 걷자, 보기 좋게 줄선 주택가로 경치가 바뀐다.


「여기까지면 돼. 바래다줘서 고마워.」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가로등 아래를 걷는, 유이가하마의 작은 등을 가만히 바라본 뒤, 나는 그대로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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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3 ~히키가야 코마치는 환희한다~


  수학,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문 중의 하나라고들 한다.

  세상은 온갖 숫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숫자를 조합하는 식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피라미드와 그리스 조각 등에 쓰인 황금비를 봐도, 그 아름다움은 압도적이다.

  음악, 정수론, 기하학, 천문학으로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려고 한 고대인의 생각에도 납득이 간다. 세계가 아름답다면, 그 근원을 이루는 수학이 아름다운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학에도 중대한 결점이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말을 시켜보면, 간단한 문제는 공식을 적용시킬 뿐인 듯하지만, 애당초 적용시키는 방법을 모른다. 어딘가의 시건방진 연하녀가 말하기로는 학교 수준의 수학은 암기인 것 같다만, 공식 이외에 뭘 외워야 할지.

  키리바나가 고등학교 수학을, 공식과 예제 하나를 본 것만으로 풀었을 때는, 진심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그 문제, 내가 5분 걸려도 못 풀었는데.

  지금까지는 키리바나의 공부법으로 어떻게든 됐지만, 요즘 수학에서 시그마랬나, 어딘가의 보스 같은 놈과 조우하고 나서,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아무래도 록맨은 이과인 것 같다.

  그런 불안을 품으며, 근처의 가스트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근방에 있는 가스트는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근처에는 버스 정류장도 없고, 가기에는 차가 최적인 입지라 같은 학교 사람과 만날 걱정도 별로 없다.

  아무튼, 저거다. 유이가하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원래 나는 혼자 공부하는 편이 아마도 효율이 좋으니 어쩔 수 없다.


「어라? 오빠?」


  대충 20분 정도 걸었을 무렵, 천사 같이 귀여운 목소리에 불려서 발을 멈췄다.

  뒤돌아보자 역시, 천사처럼 귀여운 소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천사라고까지는 말하진 않지만, 조금 덧없는 미소녀가 꼿꼿이 서 있었다.


「그래, 코마치였어? 뭐야, 저녁밥 안 만들어?」

「오빠가 밖에서 먹으면, 우리들도 외식하려고 해서」


  뭔가, 오늘은 아이가 없으니, 집안 부부끼리 먹자는 것 같은 이야기구만.


「시험도 가까워서 하는 김에, 밥 먹고 나서 공부하려고 한 거예요.」


  코마치의 이야기를 키리바나가 보충한다.

  과연, 학생이 생각하는 건 대부분 같겠지. 기본적으로 시험 기간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학교에서도 같은 시기에 치러진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시험 기간 중의 저녁에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서 학생이 공부를 하는 모습도 드물진 않다.


「그래? 그러면 같이 먹을까? 가스토에 가려고 했는데......」

「가자가자! 역시 오빠! 저기, 뭐 먹을까?」

「제철 과일 파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네요. 누군가가 낸다면, 아마도 굉장히 맛있을 거라 생각해요.」


  오늘 밤 메뉴를 기쁜 듯이 얘기하는 코마치와 키리바나를 뒤에서 바라보면서, 그대로 가스토로 향한다.

  코마치와 키리바나와 같이 먹으면, 내 식비가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나나 엄마나 아빠도 키리바나에게는 무르다. 아들에게는 엄하지만. 그렇다면 같이 먹지 않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내가 한 턱 내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잖아.


―――――――


「있지, 아카네」

「응?」

「이거, 알려줘」


  쓴 맛이 강한 커피를 입에 대면서, 여자 둘이 얼굴을 바싹 옆으로 대고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키리바나가 어른스러운 건지, 아니면 코마치의 키도 어우러져서 어리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있으면 사이좋은 자매로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안 돼. 여동생을 정신없이 봐서 공부에 손이 가지 않다니, 마치 시스콘 같잖아.


「저기 하치만 오빠, 빤히 보면 공부하기 어려우니, 그만해주시면 좋겠어요.」

「미안, 코마치를 봤다.」

「우와... 속으로 생각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입으로 말하면 깨네, 오빠......」


  속으로 하면 허락해주는 부분이, 하치만한테 포인트가 높지만 말로 꺼내면 코마치의 호감도가 내려가서 그만둔다.


「그나저나 오빠, 동아리 안 가도 돼?」


  코마치가 노트와 눈씨름을 하며 물어본다. 아무래도 고전하는 듯하다.

  얼굴을 뻗어 들여다보니, 2차함수를 하고 있었다. 남매가 모두 수학이 약한 건, 부모가 서툴러서 그랬을 거다. 그러니 우리들이 수학을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봉사부라는 건 뭘 하는 곳인가요?」


  그에 반해 키리바나는 자신의 교과서를 거의 안 보고, 카페오레를 마시며 코마치의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전히 여유 넘치는 녀석이다.


「뭘 하는 곳인가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상담해주는 곳 같은 느낌이야.」


  애당초 상담은 두 건 정도밖에 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 없다. 평소에는 책만 읽을 뿐이고.

  키리바나는 할 말을 생각하듯이 입술에 손을 대고는


「과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라고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어이, 내가 타인에게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아니 아카네, 오빠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할까 빨리 누군가가 보살펴 주지 않으려나~」


  전업주부 희망인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부양받을 생각으로 가득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할 수 있으면 길러줬으면 한다.

  다만, 오빠를 조금만 더 평가해줘도 좋지 않겠니? 코마치 양.


「그나저나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활동 같은 건 안 해. 틈만 나면 남의 약점을 찌르는 녀석이나 자각 없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녀석이라든지, 그런 녀석들뿐이다.」


  그렇다고 할까 그 둘 뿐이지만. 원래 저 녀석들에 대해서 둘에게 말했던가? 동아리에 들어간 것까지는 말한 것 같은데.


「어머,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인데, 히키가야」


  어라라? 이상하다. 여기에 없어야 할 유키노시타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흠칫흠칫 얼굴을 들자, 실망한듯한 표정을 짓는 유키노시타와 어색한 듯이 쓴 웃음을 짓는 유이가하마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머리를 눌러 콧날을 살짝 문지르고는 시선을 돌린다. 아무래도 환각은 아닌 것 같다.


「너희들, 사이제 간 거 아니야?」

「아니, 사이제는 사람 많아서......」


  왜 둘을 피해도, 만나게 되는 걸까.


「오빠~아, 저기, 누구! 누구! 오빠 아는 사람?」


  코마치가 몹시 기쁜 듯이 일어서서는 사회인이냐고 말하고 싶어질 만한 저자세로 둘에게 인사하러 간다.


「항상 오빠가 신세지고 있어요. 네, 히키가야의 여동생인 히키가야 코마치예요.」


  뭐야, 그 자기소개는. 그대로 명함을 건네줄 기세잖아.

  코마치의 기세에 조금 압도되면서, 약간 당황하던 유키노시타였지만, 바로 표정을 되돌린다. 코마치와는 텐션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유이가하마는,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해 보이는 상태로, 코마치에게서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입니다. 히키가야와 같은 봉사부에 있습니다.」

「처, 처음 봬요. 힛키의 반 친구인 유이가하마 유이예요......」

「처음 봬요......?」


  왠지 유이가하마의 자기소개에 고개를 갸웃거린 코마치였지만, 잠꼬대처럼 「처음 봬요?」라고 몇 번 중얼대고는 납득한 듯이 표정을 활짝 폈다.

  야, 뭐에 납득한 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그럼 자~자~ 앉아주세요.」

「......어이, 우선 너도 인사해둬」


  입을 열어, 멍 때리는 키리바나를 재촉한다. 키리바나는 봉사부 둘과 나를 교대로 보고는 코마치처럼 일어나서 봉사부 둘 앞으로 뛰쳐나갔다.

  ......둘에게 놀랐는지, 키리바나의 동작이 평소보다 느릿느릿한 게 신경 쓰인다.


「......코마치의 친구인 키리바나 아카네입니다.」


  키리바나가 약간 소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자,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동요한 듯이 얼굴을 맞대고, 소곤거린다.


「엄청 귀엽네.」 「귀엽네.」 「상상 이상이었어!」 「그래, 설마 이런 애가 히키가야의 여동생이었다니......」 「어? ......그 쪽?」 「......다른 거니?」 「아니, 그게! 아카네 쪽」 「그녀는..... 귀엽다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어른스럽지」 「확실히, 중학교 3학년이랬지?」 「왠지 어른스러움에서도 진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유이가하마」 「......유키농!」 「어른스러움만이 여성의 매력은 아니란다.」 「부정해주지 않아!」


  ......이 녀석들, 목소리 음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다. 눈앞에서 그런 얘기를 해서, 키리바나가 약간 거북한 듯이 눈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건 이거대로 드물어서 좀 재미있다.

  그나저나, 중간부터 만담으로 바뀌었잖아.

  대충 자기소개가 끝나자, 코마치가 키리바나를 원래 앉았던 자리의 반대――즉 내 옆으로 밀어 넣고는, 테이블에 널린 공부 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자, 여기요. 모처럼 이니까 같이 얘기하자구요.」


  코마치도 그렇게 말하고는, 이쪽 편 테이블로 온다.

  키리바나가 자리에 앉을 때, 내 귀에 손을 대고 속삭인다. 키리바나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귀에 닿아, 약간 간지럽다.


「뭔가, 대단히 아름다운 사람과 대단히 귀여운 사람이네요.」


  부정도 긍정도 하기 어려워서 침묵을 지킨다. 키리바나도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그대로 자리에 앉는다.

  원래부터 테이블석이라 세 명이 앉을 수 있지만, 확실히 좁다. 키리바나의 팔꿈치가 몸에 때때로 닿는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도, 서로 눈을 맞대고는 자리에 앉는다. 아무래도 돌아가겠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 같다.

  오른쪽을 보자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음, 오늘도 활기차게 눈이 썩었군. ......정면을 보자, 유이가하마가 약간 기분이 안 좋은 듯이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키리바나가, 홀짝홀짝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다.

  왠지 경찰차로 연행되는 기분이 들어, 의미도 없이 텐션이 내려간다. 뭐, 탄 적은 없지만......

  이렇게 둘러싸이면 이유 없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진다. 우선 키리바나가 일어서 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키리바나에게 말을 건다.


「저기, 나, 이제 돌아가도 돼?」


  키리바나는 코마치부터 시작해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그리고 나를 천천히 돌아본다.


「......그 쪽에 유리창이 있지 않아요?」

「그래, 있는데」

「돌파해 보시겠어요?」


  굉장히 뒤숭숭한 제안이 미소와 함께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가게 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할리우드 같이 돌아가야 하는 건데?」


  지금 가볍게 두드려 봤는데, 이 유리창 상당히 두껍다고.

  그런 식으로 키리바나와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던 중, 코마치와 유이가하마가 이쪽을 가만히 보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아, 아카네-에. 장난치는 건 거기까지야」

「역시 사이가 좋아......」


  마침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이, 봉사부 둘에게 물을 주러 와서 키리바나와 얘기하던 것을 멈춘다. 점원은 몹시 정중하게 물을 두고,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는, 그대로 떠난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틀림없이 나도 저주했겠지.



  그 2 ~유이가하마 유이는 동요한다~


「슬슬 중간고사인데, 벌써 공부 같은 거 하고 있어?」


  유이가하마가 홍차에 숨을 후후 불면서, 말을 건다.

  숨이 닿은 홍차가, 수면에 연달아 물결을 만들어, 하얀 김을 흩뜨리기 시작하고는, 바로 사라져간다.

  창문에서는 5월 치고는 약간 뜨거운 바람이 흘러들어와, 커튼을 끊임없이 펄럭이면서 우리들의 뺨 근처에 와 있다.

  유이가하마가 의뢰하러 와서, 그대로 봉사부에 들어왔지만, 이미 상당히 친숙해진 것 같다. 이처럼 평범한 이야기도 하고, 방과 후 당연한 듯이 얼굴을 내민다. ......친숙해졌다고 할까, 나와 유키노시타가 길들여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에도 공부를 하기 때문에, 시험이 다가왔다고 해서 특별히 공부를 하진 않아.」

「아하, 역시 유키농이야. 힛키는?」

「수학 이외의 과목이라면, 공부 안 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거의 손대지 않았어.」


  국어나 영어는, 평소의 수업을 들었으면 평균 정도는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만일을 위해, 시험 전 쉬는 시간에 단어나 한자를 확인하면, 우선 낙제점을 피할 수 있다.

  수학은 기본 공식만 외워, 처음의 간단한 문제에서만 점수를 벌어서 회피한다. 애당초 점수를 얻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의외로 어떻게든 된다.


「어머, 히키가야. 현실도피는 안 된단다. 자랑의 국어는 공부하지 않는 거니?」

「어딘가의 국어 1위가, 성격이 못돼서 말이지. 1위가 되어 성격이 나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공부에도 손이 안 간다고.」

「그럼, 나도 3위가 되지 않게 조심하겠어. 눈이 썩고 싶지 않은 걸.」


  ......상당한 반격을 받고 말았다.

  유키노시타는 나를 이겨서 기분이 좋은지, 입가가 조금 풀어져서는,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 그래도 말야. 나라든가, 언제나 낙제점 빠듯해서, 유키농이나 힛키가 부러워.」


  유이가하마가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지만, 그대로 유키노시타에게 돌린다. 유키노시타는 기가 막힌 듯이 한숨을 쉬고, 유이가하마를 바라본다.


「원래 학교 시험은, 최소한의 점수는 확보하게 만들어지니, 요점을 파악한다면, 낙제점을 받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키리바나도 같은 말을 하고 있었지. 코마치가 공부하는 옆에서 만화를 읽는 것을 보고 뭐라 했더니, 「왜냐면 시험이라는 건,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거잖아요.」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덧붙여서,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면서 학년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적이 없는 것을 야유를 섞어 물어봤더니, 키리바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초에 80점을 받는 공부와 100점을 받는 공부는 완전 달라요. 대체로 공부량의 차이로는 2배 정도일까요. 그러니, 이렇다 할 목적이 없다면, 80점을 받는 공부를 하는 쪽이 현명해요.」라는 건 키리바나의 말이다. 무심결에 납득하고 말았던 것이 분하다.

  아무래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머리가 이상한 애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못하니까, 난처한 건데. 저기, 유키농. 오늘 이따가 같이 공부하지 않을래? 힛키도」

「나는 상관없어.」


  의외로 유키노시타가 바로 동의한다.

  의외로, 유키노시타는 남을 잘 돌봐주지. 유이가하마에게 요리를 제대로 가르쳐 주고.


「힛키는 어때? 아- 그래도, 실은 시험 같은 건, 없는 게 가장 좋지.」

「아아, 완전히 그 말대로다.」


  무심결에 동의하자, 유이가하마가 눈을 둥글게 뜨고, 나를 본다.

  그것에 반해 유키노시타는 전혀 놀라지 않고, 봄 날씨와 같은 사악...... 어흠 따스한 미소를 띠고 있다.


「히키가야는 학원생활에 좋은 추억이 없는 거네.」

「애초에 시험 같은 것에 싫은 생각밖에 안 들지. 생각해 봐, 저거다. 평소 거의 말한 적이 없는데, 시험 전에 갑자기 시험범위를 물어보는 놈.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그런 경우가 있지. 시험범위를 타인에게 묻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람은 제법 있어. 보통으로 물어본다면, 가르쳐주겠지만 왠지 그런 말을 들으면 가르쳐줄 기분이 들지 않게 돼.」

「아하하... 난 그럴 때가 있어서, 좀 찔리는데」


  1년간 시험 전밖에, 얘기한 적 없는 놈이 몇 명이려나. 그보다, 시험범위를 누군가에게 듣는 것을 전제로, 빠뜨리고 못 듣는 게 애당초 잘못됐잖아.

  잠깐 쓴 웃음을 짓던 유이가하마였지만, 깜짝하고 무언가 생각난 표정을 짓는다.


「마, 맞다, 힛키. 메, 메일주소 알려줘. 자, 같은 반이고, 시험 범위 같은 거 못 들었으면 물어봐도 되니까」


  그렇게 말하고, 액세서리 투성인 핸드폰이라고 할까, *마리모 같은 것을 짤랑짤랑 울리며 꺼낸다.

※ 마리모 : 해초의 일종

  그건 이미 쓰기 어렵다는 것은, 말해서는 안 된다.


「뭐...... 상관없는데. 자, 이 스마트폰으로 주소를 주고받은 적이 없으니, 미안하다만 네가 해줘.」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밀어서 미끄러지게 한다. 생각보다는 세게 밀었지만, 정확히 유이가하마의 눈앞으로 잘 미끄러져 들어갔다.

  유이가하마는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을 쭈뼛쭈뼛 만지고는, 흠칫흠칫 화면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만지고 나서 말하기도 좀 그런데, 폰 봐도 되는 거야?」

「어차피, 여동생이나 아마존에서만 오니까. 딱히 누가 봐도 곤란한 건 없어.」


  조금 전까지는 요즘 실적이 나빠진 대형 햄버거 체인점 메일 매거진 등록을 했었지만, 지금은 해제했다. 월요일 수업 중, 신상품 이름을 보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점심시간에 먹으러 가고 싶어지잖아.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던 중 마침, 내 스마트폰이 화려하게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보다 말하던 중에 딱 맞게 울렸고. 그나저나 착신음이 웅장해!」

「『운명』의 제 4악장 서두네. 의외구나, 히키가야에게 그런 교양이 있었다니」

「옛날에 메일이 올 때 기뻐서 말이지. 메일이 오자마자 알 수 있게 했는데, 오지 않는 착신음만이 남았다.」


  다스 베이더의 테마나, 비장하게 바꾸는 것도 몇 번인가 검토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슬퍼서 각하했다.


「아무튼, 별 볼일 없는 메일일 테니, 그냥 내버려둬」

「음...... 그게...」


  뭔가 미묘하게 반응이 나쁘다.

  유이가하마는 내 스마트폰을 불안하게 보는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스마트폰을 약간 세게 잡는 게 내 눈에 비친다.


「저기, 힛키 폰에 여자애한테서 메일이 왔어......」


  유이가하마가 보인 화면에는, 「키리바나 아카네」라는 글자와 최근 본문에 『오늘 저녁밥 뭔가 먹고 싶은 거 있어요?』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엄마가 늦는다고 아침에 말했었지. 그 말은 코마치와 같이 밥이라도 만든다는 걸까.


「아- 걔는 여동생의 친구다. 그렇게 신경 쓸 것 없어.」


  그렇다고 할까, 이런 메일 같은 건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올지 말지 할 빈도다. 어떤 의미로는 정시 보고 같은 거라서,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아, 그래도, 보통 친구 오빠한테 밥 만들어주진 않잖아, 유키농」

「그러네, 히키가야, 자백한다면 지금이야. 협박을 한 거니? 아니면 돈을 줬어? 지금이라면 평생 경멸하는 정도로 봐줄 테니까」


  뭔가 심한 오해를 받는 것 같다.

  특히 유키노시타는, 평소의 점잖은 표정이, 수상쩍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창문에서 봄의 따스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유키노시타의 주변은 지독히 가슴이 답답해지는 무언가가 감돈다.


「아니, 오히려 약점 잡힌 쪽은 난데」


  어울린 날짜를 고려해보면, 키리바나는 내가 발광할만한 추억을 꽤 많이 안다. 놀렸다가는 자칫, 3배 이상으로 되돌아오므로 나와 키리바나 사이에는 상호 불간섭이 체결되어 있다.


「그보다 저거다. 이 메일을 무시하면, 저녁밥이 내가 싫어하는 것 투성이가 되니까.」


  전에 한 번 메일을 방치했더니, 그 날 저녁식사가 전부 버섯이나 토마토를 쓴 요리가 됐다. 게다가 가늘게 썰어 요리에 섞어서, 그것만을 피할 수도 없었다.

  어쩐지, 여동생의 친구라기보다는 시어머니와 싸우는 신부 같은 느낌이다. 물론 시어머니는 나다.


「어머, 연하의 여자애에게 그런 취급을 받다니, 역시 히키가야네.」


  역시 유키노시타 님은 매우 기쁜 듯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입 언저리가 올라가 있잖아.


「여, 여동생은 몇 살이야?」


  유이가하마가 물어본다.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이 된다.」

「주, 중학교 3학년한테 요리로 졌어......」


  책상에 푹 엎드린 유이가하마가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 애수가 감도는 등을 보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뭐, 연하에게 진다는 건 우리들 나이에서는 꽤나 뼈아프지.

  유키노시타도 조금 불쌍히 여겼는지, 시간을 들여 말을 고른 뒤에 말한다.


「유이가하마, 사람에게는 적성이 있어. 그러니 중학생인데 요리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해도, 걱정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

「신경 쓰인다구. 그나저나!」


  유이가하마는 기세 좋게 몸을 일으키고는, 나를 가리킨다.


「그 아카네하고 사귀는 거야? 힛키?」


뭐야, 그런 거였나.


「너 말이다, 나한테 여친이 있다면 유키노시타에게 성대하게 자랑하고, 깔보는 발언을 고치게 할 거라고.」

「확실히 히키가야에게 여친이 있다면, 그 정도는 할 것 같네.」


  자신이 말하는 것과 남에게 듣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보다, 유키노시타의 눈이 미묘하게 웃지 않는 게 꽤 무섭다. 혹시 깔보면서 말해도, 무언가 보복할 정도로 말이다.


「그럼, 진짜로 여친 없어?」

「아까 전에도 말했잖아. 그렇게 훌륭한 게 있으면, 냉큼 자랑했다.」


  애초에 친구가 없는 놈이 여친을 만들 수 있을까? 앗, 네네 양이 있었나......


「그래? 그렇구나......」


  유이가하마는 안도한 듯이 숨을 내쉰다. 그 표정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따스했기 때문에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내 스마트폰을 마주 본 유이가하마는, 약간 쓰기 어려운 듯하면서도 자신의 주소를 입력하고 메일을 보낸다.


「자, 이게 내 주소니까, 메일하면 꼭 답장해주기야.」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의 연락처에 실린 내 이름을 기쁜 듯이 보여준다.

  빛이 비치는 탓에 약간 보기 불편한 화면에는, 별명 투성이로 전혀 판별할 수 없는 중에 「☆★힛키★☆」라는 글자가 춤추고 있다. ......그 관리법으로는 5년 정도 뒤에 다시 봤을 때 누군지 모르게 되어, 「어라? 이 누룩, 그 누룩 맞지?」이런 식으로 난처해질 거다.


「슬슬 수다는 마치고, 공부를 하자.」


 유키노시타가 나무란다.


「어? 공부는 사이제 가서 하려고 했는데」


  나왔다, 사이제. 왜 고등학생이란 것들은 카페가 아닌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는 걸까. 게다가 저 녀석들, 게임부터 숙제까지 전부 한다.

  나도 예전에는 사이제를 이용했던 적이 있었지만, 우연히 들어가는 타이밍이 같았던 2인조 여대생과 같은 그룹으로 오해받아 그 2인조에게 「뭐? 기분 나쁜데」 이런 시선에 노출되어 게다가 자리가 옆이라, 엄청 거북스럽게 식사하고 난 뒤로는,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끄러운 곳에서는 집중할 수 없지 않겠니?」

「괜찮다니까, 오히려 모르는 게 생기면 묻기 쉽고, 힛키도 갈 거지?」


  솔직히 말해서,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들지만, 이대로 코마치와 키리바나의 밥을 먹는 것도 평범해서 재미가 없다. 이렇게 말해도, 이 녀석들과 공부하는 것도 어딘가, 긴장되겠지.


「난 사양해둘게.」

「으~음, 다음에는 셋이서 공부하자. 그럼 되잖아, 힛키?」


  솔직히 말해서, 다음에도 사양하고 싶으니, 말끝을 흐려두자.


「뭐..... 생각해볼게.」

「그럼, 다음에는 같이 공부하자! 유키농, 그럼 사이제 갈까?」


  유이가하마가 활기 띤 목소리로 대답한다.

  우선, 스마트폰을 꺼내서 코마치에게 『오늘 저녁밥은 필요 없어』라고 보낸다. 어차피 코마치와 키리바나는 같이 있을 테니, 전해지겠지.

  시험이 가깝고, 나도 앞으로 좀만 이따가, *가스토에 가자.

※ 가스토 :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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