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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등불과

2015. 3. 12. 16:12 | Posted by 2ndboost

 

 

 

또 하나의 등불과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족과도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그 녀석의 비위가 상하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더 뻔해서다. 나라도 그 정도는 안다. 여동생에게 만년 태클을 받는 것은 폼이 아니다. 아무튼 성장이라기보다는, 역시 조교되는 느낌이 강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서 나는, 이 건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감상을 남길 생각은 없다. ...아니, 의견을 제시해보라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분명. 나도 그 녀석도,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말할 일은 없을 테니까. 말할 필요 같은 것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이미 끝났고, 그 골조의 밖에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연히,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말았을 뿐이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시간이란 불연속적으로 쪼개진 것과 같은, 정말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고 보면, 이것은 막간과도 같은 거겠지. 아니, 막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들어맞지 않는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것조차도 애매한 시간. 겨울 밤하늘에 토하는 숨처럼, 멍하니 있고, 그리고 지금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억.

 

  나는 일기 같은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지만, 만일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다 해도, 그것은 덧붙이는 것처럼 한 두 줄로 끝날 것이다. 하루가 끝난 뒤에, 무언가가 마무리 된 뒤에, 그럴 정도로 장황하게 해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그래서 이를테면 그것은, 이런 한 문장으로 시작되고, 그리고 끝난다.

 

 

  그 날 돌아가는 길, 그녀들과 헤어진 뒤,

나는 그 녀석과―――잇시키 이로하와, 우연히 만났다.

 

  단지 그것 뿐. 다만 그것뿐인 이야기다.

 

 

 

   ×   ×   ×

 

 

  역의 버스 정류장도 또, 평소에 비하면 고요했다.

 

  이브에 최고조를 맞이한 크리스마스 열기가 떠난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왕래 자체가 적다는 인상을 받는다. 역의 개찰에서 배출되는 사람들의 낯짝을 보고, 아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도 겨울방학에 접어들었지 라는 것을 떠올린다.

 

  요즘 들어 바빴고, 동아리도 여전히 있었으니까 잊고 있었지만, 벌써 종업식을 맞이했었구나. 학생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적은 것도, 이 고요한 느낌에 한 몫 하는 거겠지. 동아리하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이 하나 둘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단 동아리하다 가는 길에 해당되려나. 나는 조금 전보다 약간 가벼워진 짐을 다시 짊어지고, 역전에서 우두커니 섰다가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이따금 엇갈리는 사람은, 둥지로 돌아가는 사축, 다시 말하면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 샐러리맨들. 정말 이런 새해까지 변함없이 고생이다. 이 만큼 일해주고 있다면, 딱히 내가 힘쓸 필요 같은 건 없다 생각하고 싶어질 만한 근면성실.

 

  그런 그들도, 며칠만 더 지나면 조금씩 귀성이나 새해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단번에 연말 모드로 이행한다. 매년 일어나는 일이면서 바쁘기 그지없다. 왕래가 적어진 역전에 켜진 전광이, 아련하게 어쩐지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

 

 

  겨우 크리스마스가 끝났구나, 하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쉰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인가, 혹은 분수에 맞지 않게 끝을 애석히 여기는 건가. 어느 쪽인지 판단에 서지 않는 동안에, 하얀 숨은 차가운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말았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길었다.

 

  평소라면 그야말로, 치킨과 케이크를 먹을 뿐인 날, 코마치가 조금 편히 있을 수 있는 날에 불과했겠지만. 선물은 어느 샌가 받을 수 없게 되었지... 코마치는 아직도 받고 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대체로 아버지 탓.

 

  원래 크리스마스 이브까지가 바빴고, 이브 당일도 야단법석이었다. 덤으로 크리스마스조차 이런 시간까지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거야 배가 가득 찰만도 하다. 이제 힛키 같은 걸로 부르게 하지 않을 거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부르라고 할 말도 없지만.

 

  작년의 나로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소행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광기어린 열기로 들끓는 거리 속에 뛰어들어 간다든가, 자살행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튼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구석은 있지만, 사람이 길들여진다고 할까 적응력에는 놀랄만한 요소가 있다.

 

  그래, 습관. 적응.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게 되는 방위수단.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거기에 몸을 두는 사람의 본질도 역시 확 달라진다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사람은 그 본질을 바꾸지 않은 채, 오히려 그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인터페이스를 달리 적당히 써서, 완충장치를 준비한다.

 

  이렇게 일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끌려가는 것에, 반년 간 조금씩 포기하게 된 것도 비슷한 거겠지. 일단 저항해봤지만 전부 건성으로 넘기는 걸... 싫어하지 않는데 싫어한다든가, 싫다 뭐야 그 츤데레.

 

  단지 뭐... 아마 그것만이 아니겠지만.

 

 

..., 다음 버스는...

 

 

  그런 평소의 뇌내논의(특기)를 펼치면서, 나는 정류장 팻말에 다가가서, 거기에 쓰인 시각표를 노려보았다. , 잠깐 기다리면 바로 타려는 버스에 탈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신도심, 러시가 지난 이 시간대라도 그런대로 있어서 편리. *연접 버스 같은 게 오면, 약간 텐션도 오르고.

 

연접버스 : 아주 긴 버스. 길어서 보통은 바퀴가 6개 이상 있다.

 

  심정적으로는 걸어서 돌아가도 괜찮았지만, 코마치를 먼저 돌려보냈으니까 말이지... 그 녀석의 다리라도 이미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왔는지 어떤지 미묘한 시간대이고, 아무튼 빨리 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버스라면 15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거다.

 

  코마치에게는 천천히 와도 돼, , 뭣하면 안 와도 돼... , 그건 역시 너무 빠를까...?이런 식의 말을 듣긴 했지만. 안 와도 돼라니, 오빠 동사한다? 마음도 몸도 식어버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오빠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더 이상 들르기도 우회도 전혀 하지 않고, 집에 바로 돌아가기로 속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무튼, 아까 전에 들른 길이 그렇게 나빴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밤의 어둠 속, 반짝이며 흔들리던 작은 머리끈을 떠올린다. 하나는 핑크, 또 하나는 블루.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의 흑발과 활기차고 크게 흔들리는 그녀의 손.

 

 ―――・・・・・・메리 크리스마스

 

  기뻐해 주었다면 정말 다행이다. 코마치에게 몸에 차는 건 어려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결과 오라이라는 거겠지. 줄지 어떨지도 생각보다는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어쩌면 내 방황을 코마치는 간파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내게 중간에 들렀다오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실제 이유를 묻는 것은 눈치가 없는 거겠고, 안 와도 돼 발언의 진상을 알게 되는 것도 무서우니까 묻지 않겠지만.

 

  뭐 아무렇든, 덕분에 나는 지고 있던 짐을 약간 덜 수 있었던 것 같은, 안심이 되어 있었다. 사실 아까 전까지 짐꾼이었으니까 물리적으로도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니까.

 

  아마, 적어도 나에게 그 선물은 그만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주는 측도, 그리고 받는 측에게도. 그렇겠지, 이런 남 일 같은 말투밖에 못하는 이유는, 그 의미를 다 정리하지 못해서겠지만.

 

 

.............

 

 

  조금 전의 부끄러움을 떠올린 탓인지, 갑자기 심장박동이 약간 빨라진다. 그래서 말 안 하는 거다. 이 건에 대해서 어설프게 생각하려고 했다간, 최신 트라우마 폴더에 불을 지피게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렇게 되지 않게 느긋하게 생각하자. 다행히도, 내일부터 겨우 예정 없는 겨울방학이니까.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고, 결국 아무것도 안 해. 이런 장기휴일은 우선 옆으로 치워두고.

 

  하지만 겨울방학인가... 여름방학에 비해 상당히 짧다고는 해도, 오래간만의 휴가다. 운 좋게도 예정도 예비학교 정도에 그 외에는 한 건도 없다. 연말연시 즈음에 내리기 시작하는 치바의 새 눈처럼 새하얗다. 앞으로는 밟혀서 망쳐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는 말해도 유이가하마라든지 연초 정도에는 왁자지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러고 보니 유키노시타의 생일이 어떻든가 했었지. 그 녀석의 생일이 언제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유이가하마가 하는 말을 보아하니 다음 달 같고.

 

  겨울 방학 같은 날이면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렇게 생각이 겨울방학 예정으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나는 투덜투덜 겨울방학에 할 것(혼자서)을 리스트업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주위에 신경 쓰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들린 그 목소리에, 곧바로는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라? 저기-... 선배?

 

..........

 

잠깐요, 선배는 참!

 

......... ?

 

 

  내가 얼굴을 들자, 눈앞에는 전에 봤던 여학생이 있었다.

 

  황갈색 세미롱에, 작은 동물처럼 동그란 눈동자. 옷깃에 모피가 있는 더플코트를 껴입고, 치맛자락이 짧은 스커트에서 술술 뻗어 나온 다리는 검은 레깅스에 싸여있다. 본인의 생각보다는 눈에 띄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그 색조는 의외로 얌전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녀석은 볼록하고 볼을 귀엽게 부풀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그 반응... 그렇게 화들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아아... 아니, 별로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해두는데 선배 쪽이 엄청 의심스러웠으니까요? 왠지 투덜투덜 중얼대고 있어서 오싹했고. 말을 걸까 어떨까 망설였는데요.

 

 

  그리고 그 약삭빠른 표정에도, 달콤하지만 독기가 있는 말투에도, 역시 최근에 본 기억이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기분 나빴으면 억지로 말을 걸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 그건 그렇다 치고.

 

 

...뭐 해? , 이런 데에서

 

 

  확실히 이 녀석의 생활권은, 좀 더 남쪽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볼 일이라도 있었나.

 

 

저는... 근데 선배야말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라니... 뭐야, 내가 외출하는 게 그렇게 의외인 거냐?

 

  그 녀석은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뭔가를 눈치 챘는지, 앗하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라고는 생각하는데 저건가요? 스토커예요? 죄송해요. 그런 거 저 난처하다고 할까 역시 무리예요.

 

아니... 틀리다니까

 

 

  그러니까 어디에 그런 요소가 있다는 거냐. 이게 농담이 아니라면, 자뻑도 너무하잖아, . 나한테 듣는다는 건 상당한 거라고?

 

  자기가 먼저 말을 건 것치고는 바로 확 빠지는 녀석... 잇시키 이로하의 행동에, 나는 얼마 안 되는 후배의 장래를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 선배 여기예요! 여기!

 

... 오우

 

 

  구석 쪽에서 손을 흔드는 잇시키를 따라, 나는 마주 보게 되어 있는 의자가 놓인 작고 둥근 테이블까지 걸어가서, 가져온 쟁반을 거기에 두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쪽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맞은 편 자리에 조금 전부터 앉아 있던 잇시키는, 코트를 벗어 의자 등에 걸치고 있었다. 쟁반 위에서 큰 컵을 고르고는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 따뜻함을 손에 익숙해지게 하듯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녀가 손에 든 것은 크림이 얹힌 카페라떼다.

 

 

하아... 따뜻해. 선배, 잘 먹겠습니다~

 

아아, 아니, 별로 신경 쓰지 마

 

...저기, 눈앞에서 지갑 속을 확인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싫어도 신경이 쓰이니까요...

 

 

  어쩔 수 없잖아. 버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의 갈림길이니까. 나는 지갑을 치우고는, 쟁반에 하나 더 남아 있던 컵을 손에 들어, 내 앞에 두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있는 곳은 역의 맞은 편, 메세 어뮤즈몰 안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그래도 마침 다행이에요. 선배, 뭔가 사주세요.

 

 

  역전에서 잇시키를 만난 뒤.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한 후배에 의해, 나는 반 강제로 이 가게로 왔던 것이다. 사준다든지 그런 문화에 전혀 인연 없는 나한테 그러다니 무슨 생각이냐. 부탁할 상대가 분명 잘못됐다... 뭐 결국 고분고분하게 한 턱 내는 나도 나지만.

 

 

그래도 아까 전 그건 아니었어요. 안 사준다 해놓고 왜 자판기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제 여유가 없다고 했었잖아... 거기에 저거다, 자판기라 해서 나쁜 것도 아니야.

 

 

  자판기라도 맛있는 음료는 판다. , MAX 커피라든지! (direct marketing)아니, 처음부터 자판기 목적이었던 게 아니다. 커피캔에는 안 보이는 줄무늬가 눈에 들어왔으니까 무심결에... 덧붙여서 맛도 커피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커피라고 하면,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들이 이른바 일반적인 커피일 것이다. 나는 뚜껑을 열고, 검은 수면을 들여다본다. 아직 상당히 뜨거운 것 같다. 나는 막대로 그것을 저으면서, 좀 전에 하다 만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래서, 넌 뭘 한 거야? 이런 데에서

 

뭐라니, 평범하게 볼 일이 있었어요. 학생회 관계로

 

학생회?

 

 

  내가 되묻자, 잇시키는 끄덕하고 수긍했다.

 

 

아니, 딱히 일 같은 게 아니에요. 크리스마스 이벤트의 뒤풀이? 그런 느낌으로 모두 밥먹으러가자는 이야기가 돼서

 

아아... 과연

 

 

  요점은 우리들과 같다는 건가. 학생회는 학생회에서 할 거라고 유이가하마도 말했지만,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했을 줄이야...

 

  눈앞의 소녀, 잇시키 이로하는 1학년임과 동시에 요즘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학생회장이기도 하다. 우리들 봉사부는 바로 어제까지, 크리스마스 이벤트와 씨름하는 학생회의 보좌라는 형태로 그녀의 일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생회도 뒤풀이 오늘이었군. 틀림없이 어제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세한 자료정리 같은 건 어쨌든, 학생회에서 인수한 물품 정리는 어제의 단계에서 큰일은 대강 끝났을 것이다... 왜 아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거들었으니까. 정말로 이 후배는 사람 다루기가 거칠다.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모두들 지쳤다고 할까 뭐랄까...

 

호오...

 

 

  사람을 거칠게 다루는 데 정평이 나있는 이 녀석의 입에서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는 말이 나온 것은 의외였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학생회장으로서의 자각이 약간이나마 높아진 것이면 매우 좋다... 고 감탄할 준비를 했지만,

 

 

, 단지 제가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것뿐이지만요.

 

 

  이렇게 이어지니까 엉망이다.

 

 

...뭐야, 너도 이브는 가족과 보내는 타입이라서?

 

? 뭐예요? 그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코마치가 이르길, 이것은 여자일 경우 그 사람 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거절하는 방법이라 했지만... 잇시키의 멍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코마치가 말하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는데, 그렇지 않은 샘플이 나와서 약간 안심.

 

 

약간 수면 부족 상태라 졸렸던 거예요. 땀도 나서 샤워하고 싶었고

 

아아... 그래...

 

 

  자신에게 솔직하구만 이 녀석.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반대로 호감을 가질 수 있기까지 하다.

 

  그래도 수면부족이라... 확실히 실전 전이고,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경험이 적은 1학년이고, 딱히 학생회에 소속된 적이 있던 것도 아니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다른 날 다시 하기로 되었는데요... 왠지 이쪽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요 근처에서 할까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예요, 하아...

 

되어버렸다니, ...

 

 

  이랬으면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에 적당히 어딘가에서 모이는 게 나았다. 아무튼 있다, 자신의 솔직함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 반대로 귀찮은 쪽으로 이야기가 굴러가는 거. 호감뿐만 아니라 공감마저 느낄 수 있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 끝났어요. - 지쳤어...

 

..............

 

 

  하지만, 그 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에 반해, 그녀의 표정은 그렇게까지 어두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안심한 듯한, 여운을 느끼는 듯한, 온화한 표정. 솔직하지 않은, 어디선가 본 듯한 비뚤어진 사람의 미소였다.

 

  아마, 그녀 안에서 이제 일단락이 된 거겠지. 학생회장으로서 처음의 큰일을, 그녀는 해냈으니까.

 

  그것은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회장 같은 중임은 맡은 적도 없으니까 모르지만, 상당한 압박이었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불평도 했었고, 유키노시타의 평가라면 아직도 교육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런데도.

 

 

...수고하셨습니다.

 

네엣? , ...

 

 

  내 말에, 잇시키는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좀 더 선배답게 격려하는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어휘가 내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하니까... 오늘 사준 것으로, 선배다운 행동을 못한 것은 용서받기로 하자.

 

 

덧붙여서,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어디라고 하셔도... 평범하게 역전에 모여서, 밥 먹고 왔을 뿐인데요? 보세요, 이 근처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잖아요.

 

 

  뭐 확실히. 상업시설도 많고, 적당한 패스트푸드에서 많이 사치스러운 식사까지, 커버하는 범위가 넓은 걸. 나도 어렸을 적에는 주말 같은 날에 가족끼리 식사하러 온 기억이 있다... 지금? - , 역시 여동생이 만든 요리가 최고지! 아버지도 안 오고.

 

 

학생회 사람들은 어떤 가게에 갈까, 약간 옷이라든지 신경 쓰였는데요... 생각보다는 평범한 가게였어요.

 

그거야 그렇겠지... 학생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예산으로 먹으러 잘 간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일은 역시 없겠지만, 확실히 이 녀석과 학생회 임원을 할 법한 애들은 인종이랄까 털색이 다른 느낌이 드는 걸. 옷 색상이 얌전한 것은 일단 그것을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무튼 이 녀석의 본성 숨기기로 보아, 아마 오늘도 그 나름대로 요령 있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이 내숭을 떠는 녀석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를 통해 임원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겠지. 상호이해는 조금씩이나마 나아가는 것 같다.

 

  내가 학생회의 장래에 대해 웬일인지 생각에 빠져있자, 잇시키는 카페라떼를 한 입 마시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는 어땠어요?

 

? 무슨 의미야?

 

아니, 선배는 어디 가서 뭘 했는지 해서요. 학생회도, 라고 말했었고 뒤풀이 오늘이었던 거죠?

 

아아... 그런 거군

 

 

  그러고 보니 그런 식으로 말했었나. 녀석, 남이 하는 말 같은 건 안 듣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는 듣네.

 

 

이쪽도, 그렇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 이온 몰 어슬렁거리다가, 노래방 가고, 그런 느낌이야.

 

노래방인가요...

 

그래. 여기 2층이 아니라, 근처에 하나 더 있잖아, 저 쪽에 있는 거. 케이크 같은 거 들여왔으니까... 그런데, 왜 그래?

 

 

  갑자기 얼굴을 흐리는 잇시키를 보고 의아해서 말을 멈추자, 잇시키는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서 남의 눈을 속이는 웃음을 띠었다.

 

 

- 별로 아무것도 아녜요. 그러고 보니 노래방 같은 것도 있었나-해서...

 

, 그거야 있지. 제법 싸고, 뒤풀이로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나저나, 저런 곳에 가는 건 네 쪽이 익숙한 것 같아 보이는데

 

... 그렇지도 않은데요?

 

 

  잇시키는 말을 애매하게 흐리고는, 갑자기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소곤소곤 중얼거린다.

 

 

전에는 몇 명이서 같이 갔었는데요... 제가 따라가면 항상 이상한 노래를 억지로 떠맡기구요... 게다가 노래하면 노래하는 대로 모두 선곡 리모콘 보고. 너무하지 않아요?

 

......, 미움 받는구나

 

...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는데요, 역시 장난 당하는 역이라고 할까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된 거군, 네 마음에서는.

 

  확실히 이 녀석이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는 처지가 된 것도, 그런 느낌인 도가 지나친 나쁜 장난이라고 할까, 나쁜 장난이라는 이름의 악의가 발단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떠올리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난처하네요.

 

  이 녀석의 경우, 숨기려고 해도 전부 숨길 수 없는 저런 성격이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적당히 근성이 비뚤어져 있어서, 그런 녀석을 보면 승자에 편승하기보다는 약자를 동정하고 싶어지고 만다. 지금은 선배로서 위로를 해줘야 하겠지.

 

 

아무튼, 너무 신경 쓰지 마 잇시키. 너는 아직도 나은 편이다. 나 같은 건 그것을 반모임에서 당했으니까... 게다가 다음날 등교했더니, 반애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화제는 이미, 나만 불리지 않은 2차 모임 이야기가 돼서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는 거지...

 

 

  중학 시절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내가 결사적으로 저지른 짓은 대체 어디에... 아니, 화제로 삼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닌데. 그래도, 뭔가 이렇게, 구제 같은 건 없는 겁니까.

 

 

우와아... 미안해요, 선배 그 이야기와 같이 엮지 말아주시겠어요?

 

 

  내 이야기에 잇시키는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아, 질린 표정으로 의자를 약간 뒤로 비켜 놓았다. 이런이런, 내 흑역사도 의외의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군.(우사미눈)

 

  기분전환이 됐는지, 잇시키는 한 걸음 뒤로 당긴 자세를 바로잡고는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으-응하고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자세로 위를 보았다. 텐프레라고 할까, 역시 약삭빠르다 그 자세. 내 여동생도 자주 한다.

 

 

그래도 케이크인가요... 뒤풀이라기보다는, 크리스마스 파티였네요.

 

그것도 겸하는 거라고 유키노시타가 말했었지. 어느 쪽이 메인인지는 모르지만

 

유키노시타 선배가... 좀 의외일지도

 

말의 뜻은 알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주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매우 백합백합스러운 짓무른 관계성이라든지. 아무튼 후배의 정조교육상 별로 바람직한 이야기도 아니고, 입에 담진 않지만. 잇시키를 조교하려던 유키노시타가, 실은 유이가하마에게 조교가 끝난 상태라니... 문장으로 만들어보니 엄청 자극적이네요, 이거.

 

  설마 그게 전해진 것도 아니겠지만, 잇시키는 무언가 미묘한 표정을 띠우곤, 약삭빠른 자세를 풀고 카페라떼를 손에 든다. 그것을 입에 옮기면서, 툭하고 중얼거린다.

 

 

크리스마스 파티인가요... 선배랑, 유키노시타 선배랑, 유이 선배로

 

뭐 부원 말고도 몇 명 정도 있었지만. ?

 

아뇨 별로. , 이제와선데요 뒤풀이할 거였으면 같이 해도 좋지 않았을까 해서. - , 뭐랬지? 시너지 효과가 뭐라고 했던가 없댔나

 

어이 잇시키, 너무 몰입했어.

 

 

  안타깝게도 효과는 좀 더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런데도 잇시키의 머리에 가타카나어를 박아 넣다니, 타마나와의 주박이 무섭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이쪽은 여동생이나 토츠카 등등을 불렀으니까. 별로 학생회 사람과 관련될 것도 아니고,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주로 내가. 토츠카는 인기인이니까, 다른 놈들에게 뺏겨서 말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주 형편이 나쁘다. 질투한 나머지 분해서 울어버리고 말 것이다.

 

  잇시키는 자기가 말한 것치고는 그러네요 라며 맞장구를 쳤다. 잘 모르겠지만, 딱히 진심으로 말한 것도 아닌 듯하다.

 

 

여동생이라면, 어제 도와주러 온 애 맞죠? 별로 안 닮았던데

 

안 닮았다는 건 필요없어... 코마치라고 하는데. 일단, 내년 여기로 시험 칠 거야.

 

-, 그러고 보니 전에도 그런 말 했었죠.

 

 

  어제는 바빠서 가볍게 인사한 정도라고는 생각하지만, 잇시키도 코마치의 존재는 알아챈 것 같다. 코마치는 코마치대로 조리실을 오가는 잇시키를 보고, 호오, 저 사람이 소문의...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탠드사처럼, 약삭빠르기 동료, 무언가 느끼는 게 있는 걸까.

 

  거기서 문득, 잇시키는 뭔가를 눈치 챘는지, 의아한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어라? 그런데 수험생 아녜요? 어제도 오늘도 나갔었다는 건...

 

말하지 마, 말하지 말아줘...

 

 

  그건 알고 있으니까. 비교적 바보애들 집합이라 생각되는 잇시키에게까지 걱정되면 왠지 나까지 불안해진다.

 

 

아무튼 뭐라고 할까, 성격 같은 거야, 참견을 잘한다고 할까...

 

 

  내가 그러자, 잇시키가 묘하게 납득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 그런 면은 닮았네요. 역시 남매...

 

어디가...

 

 

  나는 딱히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만. 내가 진심으로 신경 쓰는 사람은 코마치나 토츠카 정도다. 거기에 코마치도 별로 가리지 않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분별할 것이다... , 그럼 역시 닮았으려나. 역시 남매...

 

  내가 논의의 끝에서 뜻밖의 결론(예정조화)에 이르러 혼자 놀라던 중에, 잇시키가 무언가가 다시 떠올랐는지, 문득 위를 올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도와주러 온 사람, 한 명 더 없었어요?

 

? 있었나? 그런 녀석

 

 

  내 인맥은 놀라울 만큼 좁을 텐데... 유이가하마를 통해 누군가 불렀으려나.

 

 

저 선배한테 일단 이름은 들었어요. , 확실히...

 

 

  잠시 생각하고 나서 잇시키는 자신 없는 듯이 흠칫흠칫 소리 냈다.

 

 

확실히, 자이모쿠...자키 선배?

 

...몰라 그런 중2병 환자

 

 

  아아, 있었지 그러고 보니.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왠지 모르겠지만.

 

 

역시 있었잖아요.

 

뭐 아무튼... 덧붙여서 대강은 맞는데 약간 잘못됐어. 그나저나 그거다, 토베와 같은 실수했어,

 

토베 선배와 같은 레벨...

 

 

  잇시키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 그게 쇼크인 거냐. 역시 자기보다 랭크 낮다고 생각한 거네요, 토베를... 뭐 잇시키의 경우, 카와사키 쯤해서 엎치락뒤치락했을지도 모르지만. 카와사키가 불쌍하다. 이름 정도 제대로 기억해 두라고! (박진)

 

 

그런데 왜 또 토베 선배가 간 거예요?

 

- 왜 그랬지...

 

 

  듣고 보니 잘 떠올릴 수 없다. 확실히 요즘 어디선가 만난 기분이 드는데...

 

 

맞다, 오늘 노래방 가기 전에 우연히 만났어. 케이크 가게에서 임시 알바하고 있었지.

 

...오늘 일인데, 왜 그렇게 간신히 떠올린 것 같은 표정이에요?

 

 

  왜 그럴까. 좋은 녀석이지만. 어떻게든 좋은 녀석이기도 하지... 고쳐질지도 몰라. , 토베에 대한 기억, 3시간이 안 돼서 없어지니까...

 

 

알바요...? 아마 어제도 그랬어요. 그래서 부탁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던 거네. 아무튼 어쩔 수 없죠, 그러면

 

, 오우...

 

 

  뭔가 그 말이라면 마치 토베가 도와주러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이 들리는데... 학생회와 토베, 아무 상관도 없다니까? 이해 해주는 척해서 토베에게 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건 그만둬...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 녀석 장래가 걱정되는 녀석이다... 머지않아 학생회 임원까지 앞에 두고 부릴 것 같다. 게다가 전임을 보아하니, 학생회 임원이 될 법한 애들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복종의식이 높은 것 같다. 그건 이미 닌자라고 부를 레벨. 그래서 엄청 기뻐하면서 따를 것 같아서 무섭다.

 

  그보다 잠깐, 그걸로 재미 붙인 잇시키가 2학년에도 학생회장을 연투하게 되면, 메구링도 새파래질 장기정권의 탄생이 아닌가. 이런 건 임기가 길수록 누구도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어가는 거니까. 일을 아는 건 그 쪽이고.

 

  형편이라고는 해도, 나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낳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용히 전율하고 있자,

 

 

, 도와주는 걸로 생각난 게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잇시키는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 뭐야, 그 불안하게 생각하는 건. 나 또 뭔가 불합리하게 심부름당하는 거야? 이번에는 뭔데? 연말결산이나 다른 뭔가?

 

  내가 속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잇시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말하지 않았네요... 행사,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에, 잇시키는 꾸벅하고 약간 머리를 숙였다. 얼굴을 들고는, 수줍은 듯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부끄러워한다.

 

 

그 뒤에 정리 같은 것 때문에 타이밍 놓쳐서, 오늘 우연히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봐요, 겨울방학 끝나 버린 뒤에는 좀 더 말하기 어려워질 것 같고

 

, 아아, 아무튼 그럴지도 모르는데... 아니, 별로 대단한 일은 안 했어. 결국, 나만 있었으면 어떤 것도 안 됐을 테고

 

 

  그래, 그녀들이 없었다면, 그 사태를 타개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요

 

, ...

 

 

  아, 보충은 없다. 아니, 딱히 필요 없다고 할 생각이니까 상관없지만?

 

  잇시키는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약간 사이를 두고, 그리고 툭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래요.

 

?

 

선배가 도와주러 오게 되고 나서, 저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주변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 뿐이라서

 

...........

 

 

  나도 이 이벤트에 말려들어갈 때까지, 잇시키와 많은 면식이 있던 것은 아니다. 학생회 선거 때도, 잇시키와 짜게 되어서 몇 번 정도 협의한 정도다.

 

  그 정도로 잇시키도 불안했던 거라 봐야겠지. 주위에 있는 사람은 얼굴을 맞댄 지 얼마 안 된 학생회 임원과, 다른 학교 학생. 게다가 상급생도 섞이게 되면 예절이고 체면도 없이 도와달라고 할 법하니, 신경이 유들유들한 잇시키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인사할 상대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가

 

 

  그런 미소로 말하면, 나라고 해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무튼 받아둘게. ...미안하다, 여러 가지 서툰 점도 있었고

 

아니, 저야말로 진행하는 법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내가 살짝 머리를 숙이자, 잇시키도 흉내 내듯이 한 번 더 숙여서 인사했다. 머리를 올리자 잇시키와 눈이 마주친다.

 

 

..........

 

? 왜 그래요?

 

...아니, 뭐라고 할까 의외라서...

 

 

  이 녀석이 이렇게 솔직하게, 스트레이트하게 인사를 하다니. 이것도 그건가, 학생회장으로서 약간은 바르게 있으려는 마음의 발로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 참~ 그건 말인데요~ 선배

 

 

  잇시키는 손을 파닥파닥 흔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거예요. 가장 좋을 때 솔직하게 감사인사 하면, 약간 적당하지만 근본은 똑바른, 이렇게 어필할 수 있잖아요. 갭이에요 갭

 

 

  참으로, 매우 심보가 나쁜듯한 미소로.

 

 

하아.......

 

 

  이것에는 역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안 된다 이 녀석,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이벤트나 하야마와의 한 건으로 쓰라림을 맛보고, 약간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게 바보 같다... 이 녀석 사실은, 내 다음 정도로 성격이 비틀린 거 아냐?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가 나를 기가 막힌 눈으로 보던 게,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거 참 터무니없는 사람인 것 같구만

 

후후...

 

 

  잇시키는 무슨 말이냐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약삭빠른 미소를 띠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무래도 이제 가게에서 나갈 생각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계산은 내가 하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커피에 전혀 입대지 않았던 내가 서둘러 미지근해진 그것을 목에 흘려 넣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잇시키가 무슨 말을 툭하고 속삭인 것 같았다.

 

 

...선배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요.

 

 

 

   ×   ×   ×

 

 

 

그럼 선배, 또 학교에서 봐요.

 

, 층은 다르지만...

 

왜 일부러 그런 말 하는 거예요, ...

 

 

  입을 뾰족이면서 그렇게 투덜대고, 잇시키는 개찰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가이힌마쿠하리역 주변은, 조금 전 나와 잇시키가 우연히 만났을 때보다 더 고요해져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드러내는 것은, 역사의 출입구 근처에서 점멸을 반복하는 전광장식 뿐. 앞으로 몇 시간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확실하게 끝난다.

 

 

, 그럼 다음에 학생회실 놀러와 주세요. 정리해야 하는 서류가... 아니, 냉장고에 음료수 같은 것도 있고 꽤 쾌적하답니다?

 

절대로 일 시킬 생각이잖아 그거...

 

 

  우선 당분간은 가지 말도록 하자. 음료수라면 충분하니까.

 

 

그래도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네요... ... 커피 메이커 같은 거, 신청하면 살 수 있겠죠?

 

너 말도 안 되는 말 하는구만... 예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 말하는 건 공짜니까요.

 

 

  그렇게 적당하게 대화한 뒤, 잇시키는 살짝 손을 흔들고는 개찰구로 사라져갔다.

 

  그것을 배웅하고 나서, 나는 개찰구에 등을 지고 걸어 나갔다. 역사에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쓰다듬는다. 그것에 살짝 목을 웅크리고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 참에 주머니에 들어 있던 지갑에 손이 닿았다.

 

  문득 멈춰 서서, 조금 전 센 남은 돈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걸어갈까

 

 

  약간만 가벼워진 짐과, 약간만 가벼워진 지갑을 손에 들고, 나는 밤의 장막 속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한숨을 흘리는 입가는, 쓴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웃고 있었다.

 

 

 

   ×   ×   ×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족과도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이미 끝났고, 그 골조의 밖에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연히,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말았을 뿐이니까.

 

  그런데도, 전하는 것을 잊은 적이 있었다면. 분명 거기에는 의미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밤,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멍하니 아무도 없는 방을 비추는 등불이, 끝을 거부해서 일어난 아이들을 상냥하게 재우듯이.

 

 

주의 : 이 글은 단순히 내청춘 10권 네타만 담긴 것이 아닌, 10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까지 담겨 있는 글이므로, 아직 10권을 보지 않으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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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입니다. 내청춘 10권 나왔네요!

 

10권은 이미 표지도 하루농, 내용도 하루농, 확실히 하루농으로 다해서 하루농 신도로서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 수기라든가 고찰이라든가, 어찌되든 상관없잖아. 모두들 하루농 사랑하자고.

 

겨우 10권 기념 SS를 썼으므로, 만약 괜찮으시다면 읽어주세요. 110000자 이상의 시리즈 물. 10권을 기준으로, 하루농 SS로 가져가는 평소의 패턴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덤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한 명 취급이 곤란한 애가 있습니다. 아무튼 그건 머지않아 정리합니다.

 

수기, 뭘까요... 덧붙여서 저의 견해는 「○○는 미스리드, 도중까지는 ○○같지만 마지막까지 읽으면 ○○같고 한 번 더 다시 읽으면 ○○가 아닐까. 이제 누구라도 상관없어.입니다. 네타 방지를 위해 복자로 썼습니다만, 왠지 모르게 알겠지요. 4곳에는 각각 다른 인명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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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그와 그녀에게 물어본다.

 

낙장 지금은 아직, 그녀의 독백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그렇게 있었을까.

나는 느릿느릿 얼굴을 든다.

 

방안은 어둡고, 커튼을 활짝 열어놓은 채인 창에서 희미한 거리의 빛이 찔러 들어올 뿐.

그 아련한 빛이, 책상 위에 내던져진 책의 표지를 비추고 있다.

 

닫힌 책.

아마 이제 펼 일도 없을 그 이야기에서, 나는 눈을 돌렸다.

 

문득 몸이 차가워진 것을 깨닫고, 어깨를 껴안는다. 난방은 제대로 되고 있을 텐데. 웅크려 앉은 듯한 자세인 채로 계속 가만히 있던 탓일까. 아니면, 이 방의 휑한 한기가 한층 더 쓸데없이 그렇게 느끼게 한 것일까.

 

혹은, 그것은 자신의 안쪽에서 치솟은 냉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필사적으로 덮어 가리고, 오래 전에 보고도 못 본 척을 자처해 온 자신의 악성.

그것을 잊지 말라고, 사라지지 않았다고, 차가운 공기가 달라붙어서 나를 고문한다.

나는 한기를 억누르려는듯이 어깨나 목덜미를 가볍게 어루만진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당연할 것이다, 이 으스스함과는 분명 오랫동안 지내 왔으니까.

단지 거기서 시선을 돌린 것뿐이니까.

의심. 불신. 자신마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안식을 얻을 수 있을 리도 없다.

 

아니.

 

분명 나는, 평온함 같은 건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 따위, 바라지는 않았다.

 

필요로 하는 것은 규탄이다.

진실에 의해 간파되고, 그리고 폭로되는 것.

필요로 하는 것은 패배다.

진짜에 의해 유사품인 익살꾼이, 철저히 짓눌려 으깨지는 것.

 

그 남자는 그렇게 간파되어, 박살이 나 파멸의 길로 굴러 떨어져 갔다.

하지만 분명, 이 얽혀 붙는 듯한 한기를 뿌리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나로서는 모르는 거다.

 

이정도로 어물쩍 덮기를 계속한 허식을, 진실 같은 건 깰 수 있을까 하는.

간사하고 포악한 왕의 의심조차도, 풀어주는 것일까 하는.

 

처음부터.

그런 진실 같은 건, 진짜 같은 건, ―――

 

 

 

 

 

 

은근히,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예언한다.

 

 

―――진짜라는 건, 있는 걸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문득 정신을 차린 듯이 내 쪽을 보고는 방긋 웃어보였다. 그것은 마치, 바로 조금 전에 말한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아니, 그 뿐 아니라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해버릴 것 같은, 평소대로의 완벽한 미소였다.

 

 

히키가야 군, 커피 한잔 더는? 아니면 케이크라도 먹을래?

 

? ..., 아니, 괜찮아요. 별로 배 안 고파서

 

 

갑자기 그런 말을 듣고 약간 더듬더듬하면서 나는 겨우 대답한다. 아무래도 내 눈앞에 있는 컵이 거의 비어있었던 것을 신경써준 것 같다.

1월도 끝, 추운 날씨에서의 오픈 카페다. 평범하게 앉아 있을 뿐인데 제법 추워지고, 하루노 씨가 도착할 때까지 대부분 다 마셔버렸던 것이다. 모티베이션은 전혀 높지 않은데 10분 전 집합해버린 것을 보면, 내 사축도도 순조롭게 향상되는 듯하다. 싫은 스킬만 익숙해지는구만, 진짜.

 

 

정말~ 누나는 다 마실 때까지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그런 사축 같이 슬쩍 거절하는 방법이 마음에 드시지 않았던 건지, 하루노 씨는 볼멘소리를 내고는 눈으로 빤히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컵에서 입을 떼놓고, 뭔가 생각난 듯이 짓궂게 웃고, 그 컵을 쑥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래도 히키가야 군 추운 것 같고..., 그럼 이거 마실래? 소년?

 

......아니, 그런 건 괜찮으니까

 

에에-, 따뜻한데? 아직 입댄지 얼마 안 됐고

 

 

얼마 안 됐으니까 곤란하다고... 아마 인플루엔자를 의심하는 레벨로 발열할 거라고.

~~하고 억눌리는 컵에 맞추어 내가 피하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하루노 씨는 깔깔 웃고 그 손을 다시 되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물 흐르듯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 내 건 불만인 것 같으니 역시 새 걸로 가지고 올게.

 

아니, 그러니까....

 

 

멈출 새도 없이 하루노 씨는 레지로 가버린다. 나는 포기하고 들었던 허리를 다시 의자에 붙인다.

 

 

........

 

 

뭐라고 할까,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고쳐져버린 느낌이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되묻는 것도 망설여진다.

마치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뿐인 일이라고 말하려는 듯한 의미심장한 태도는, 정말이지 하루노 씨답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가 쓸데없이 생각하는 것까지 예측하는 것 같다.

사실, 아까 전에 들었던 말이 머리 구석에 걸린다.

 

 

―――그래, 저건 신뢰 같은 게 아니야. 좀 더 심한 무언가가.

 

―――적어도, 그것을 진짜라고는 부르지 않아... 너의 말이었지.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그 아득히 어두운 미소가 자아내기 시작한 말은.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여동생이 자기에게는 문/이과 선택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화풀이일 리는 없다. 그것을 나한테 푸는 것도 번지수가 안 맞고, 애초에 나한테 물고 늘어질 건덕지도 없고 간단히 물러난 것을 보면, 그 사람 자신도 그다지 흥미도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배제하고,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시 그것은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향하고 있다. 자기 여동생의, 그 본연의 자세를 향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는 거네. 그 애는. ...그게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

 

 

유키노시타의 그것이 신뢰는 아니라고 잘라낸 그녀의 말. 그것에 관해서는 나도 동감이다. 단지, 나는 그것을 아직 신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인식했던 것에 반해, 그녀는 좀 더 심한 무언가라고 형용했다. 거기에는 아마, 인식의 차이가 있다.

아무것도 변함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것은 대체 언제와 대조한 말일까.

약간 다른 뉘앙스로, 하지만 같은 말을 한 녀석을, 나는 기억한다.

 

 

―――그녀는 약간 바뀌었군. 이제 하루노 누나의 그림자는 좇지 않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그것뿐이야.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하야마 하야토. 그 둘은 알고,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 혹은 내가 옳다고 하고, 그들이 부정하는 것. 인식의 차이인가, 가치관의 차이인가. 아니면, 그 양쪽 모두가 이미 차이가 나는 건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유키노시타 유키노.

내가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변화는, 뭔가 잘못됐던 걸까.

 

 

, 늦어서 미안해

 

, ... 천만에요.

 

 

내가 코트 포켓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하자, 하루노 씨는 머리를 흔들면서 김이 나는 컵을 내 눈앞에 두었다.

 

 

이건 내가 내는 거. 이런 추운 데서 걷게 한 걷게 한 수고비. 그 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보다, 이런 데서 약속을 안 잡았으면...

 

그래도 덕분에 한산했지? 나도 히키가야 군 독점할 수 있고

 

 

그거야, . 뒤에 이어진 말을 완벽히 무시하고, 빙글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확실히 한겨울의 오픈 카페는 앉는 사람도 하나 둘 정도로, 우리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하루노 씨가 눈에 띄는 탓인지, 대로에서 가끔씩 시선을 느낄 때는 있지만.

쿡 하고, 하루노 씨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작게 속삭였다.

 

 

...밀담에는 안성맞춤이네.

 

아무튼 실제로는 단순한 잡담입니다만

 

분위기 나쁘네. 그런 때는 자, 좀 더 얼굴 가까이 대고 이야기하자구

 

...공교롭게도, 저는 딱히 털어놓을만한 비밀 같은 건 갖고 있질 않아서

 

 

피아의 거리는 적절히. 너무 가까우면 저거다, 뭔가 본 느낌도 저거고 내 기분도 저게 된다. 저거라는 건 편리하군, 너무 과하게 쓰면 치매의 징조인 것 같겠지만.

그래도 말하고 보니, 도시의 맹점이라고 할까, 명당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적고, 말소리도 혼잡에 묻혀서 주위에는 들리지 않는다. 멀리서는 뭐라고 지껄이는지조차 모르겠지.

그렇게 의식해 보면, 하루노 씨가 그런 말을 꺼낸 탓도 있어선지, 왠지 이 회합이라고 할까 약속도 왠지 꺼림칙해진다. 누구에게 떳떳하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 밖에 볼 일이 있습니까. 유키노시타의 진로 이외에

 

 

나는 지갑에서 커피 대금을 딱 꺼내서 테이블에 두면서 묻는다. 아마 맞을 것이다. 하루노 씨는 어깨를 움츠리며 그것을 받았다.

일부러 한 잔 더 가져왔다, 무언가 붙들어 둘 이유가 있나 생각했습니다만.

 

 

-, 별로 없다구. 모처럼 시간 내서 만나는 거고, 조금만 더 뭔가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렇게 담박하게 대답해서, 약간 맥이 빠졌다. 아니... 그러면 돌려보내 달라구요. 배려하는 법이 이상하잖아요.

 

 

얘기라니... 저도 딱히, 아무것도

 

재미있는 화제를 내는 것도 신사의 소양인데... 맞다-

 

 

흠 하고 하루노 씨는 깊이 생각하는듯한 행동을 한 뒤, 바로 뭔가 생각난 듯이 얼굴을 들었다.

 

 

, 그럼 말인데. 지난번에 했던 거 계속 이어서 해볼까?

 

계속?

 

그래, 진로상담. 신경 쓰이는 거 누나한테 말해봐. 대금은 아까 전의 커피대로 포함해두는 걸로

 

...........하아

 

 

내지 말걸 하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나는 박박하며 머리를 쓴다.

진로상담이라는 것은, 하루노 씨가 소부고의 진로 상담회에 튜터로 불린 날에 귀가하던 중의 저거일 것이다. 단지 내게 해준 상담은, 유키노시타의 진로를 듣기 위한 수단(ダシ)에 불과한 느낌이지만. 나는 참 너무 잘 울궈먹히잖아. *냄비 요리 같은 것에 넣으면 아마 맛있을 거다.

 

수단(ダシ-다시-다시마) : 이래서 냄비 요리에 비유한 겁니다.

 

 

...그렇게 말하셔도 말이죠. 이미 조사표 냈는데

 

문이과는 대충 알고, 그렇게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만. 희망 대학도 썼지? 어디에 썼어?

 

하아, 아무튼...

 

 

딱히 말해도 놀랄만한 대학도 아니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문과 분야의 강점을 살릴 수 있고, 그 나름대로 실적도 있는 사립대학이다. 자택에서도 어떻게든 통학권내.

하루노 씨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응응하고 끄덕인다.

 

 

착실하네. 1 지망으로 그 학부를 쓴 건... 일단 어드바이스 들어준 거야?

 

... 그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건 그건. 상담해준 보람이 넘치네.

 

 

내가 애매하게 말한 대답에, 하루노 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다. 설마 하루노 씨에게 알려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부끄럽다. 덕분에 무심코, 필요 없는 것까지 말해버린다.

 

 

...잘 되면 시험으로 좋은 점수 얻어서, 장학금 노릴 수 없을까 같은 일을 생각하고 있지만요.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제도 있었지 그 대학. 내 친구 중에도 장학생 된 애 있었는데. 의외로 괜찮지 않아?

 

...그렇습니까

 

 

딱히 아무 논거도 없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전혀 본 적도 없는 아무개 씨라도 그 특별우대생 제도를 누리는 실례가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어쩐지 의외네

 

? 뭐가?

 

아니, 히키가야 군도 집을 약간은 이것저것 신경 쓴다고 생각해서 말야. 누나 약간 안심했어.

 

 

응응하고 감탄하듯이 끄덕이는 하루노 씨. 하지만, 그 눈을 슥 가늘게 떠서 우울한듯한 표정을 만들고,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어딘가의 아무개 씨도 조사표의 내용 정도는 알려주셔도 될 텐데... 결국, 돈을 내는 건 집이니까

 

..........

 

 

말 못해... 잘 되면 장학금 통째로 가로채서 4년에 걸친 대연금술로 사욕을 채울 생각이었다고는, 이제 와서 말 못해!

, 어쩐지 나까지 따끔해졌다고... 이건 함정이었나. 실은 이런 행동을 하니까 이 사람 앞에서 틈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덧붙여서 아까 전의 연금술, 통째로 하면 분명히 눈치 채이니까, 반쯤 뜯어내는-정도가 현실적. 어중간하다... 자신이 너무 소악당이라 되려 귀엽게 생각되었다.

아무튼 그래도, 하루노 씨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현실적으로, 자비로 대학에 다니는 고학생은 지금 상당히 드물다. 대학이라 해도 꽤 전부터 모리토리엄의 범위 내이다. 집에서, 부모님이 돈을 주니까 진로에 대해서도 세세히 보고해야 한다, 는 말은 정론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 집 사정까지 연관된다는 것도 이상한 얘기일 것이다. 그것은 역시 가족 사이에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정론이다. 알고 있으니까 나를 개입시켜서 묻는 것은 페어가 아니다.

유키노시타도 머지않아 말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그녀의 타이밍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화제를 넘기려고, 새로운 화제를 찾는다.

 

 

-, 그러고 보니, 아무튼 참고 같은 겁니다만... 유키노시타 씨는 지망교 어떻게 선택했어요?

 

?

 

 

놀란 표정으로 하루노 씨는 자신을 가리킨다.

 

 

아무튼 뭐, 문이과 선택 정도는 정했습니다만, 지망교는 직전까지 바꿀 수 있고

 

센터 전후로 폭은 많이 다른데. , 그러네...

 

 

하루노 씨도 조금 전의 화제를 추궁할 생각은 그만큼은 없는지, 그 검지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도 모의시험 성적으로 노릴 수 있을만한 데는...이렇게 생각했으려나. 그래도 뭐, 그 뒤에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곳에 하라고..., 이 대화 전에도 하지 않았었어? 꽤 오래 전이지만

 

? ...아아, 말하고 보니

 

 

그 말을 듣고 떠올린다. 확실히 여름 불꽃놀이 때였나. 좀 더 높은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했던가, 그런 말을 했던 생각이 든다.

 

내가 드문드문 떠올리자, 하루노 씨도 뭔가 생각났는지, 힐쭉 웃고 말참견한다.

 

 

그러고 보니 그 때도 가하마 짱하고 같이 있었지-... 거기에 일전에도 둘만 만났기도 하고. -, 역시 뭔가, 약간은 진전 있었어?

 

...유이가하마도 말했잖아요. 전에 한 건 쇼핑이라고.

 

흐음, 저건 데이트, 일전에 한 건 쇼핑이네... 어라, 뭔가 후퇴하지 않았어?

 

아니... 그러니까 후퇴도 뭣도

 

 

그나저나 이거, 지난번에 코마치한테 들었지... 그러니까 여러 가지 있다니까, 두 번이나 설명 안 해.

아무튼 확실히, 언젠가 결정했음이 분명한 거리를 벌리는 방법을 잃어버렸다는 의미로는, 그건 후퇴일지도 모른다. 단지, 전의 거리 감각이 어디를 향했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 그건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거리를 벌리고 있었으니까.

내 애매한 대답이 불만인 듯이, 하루노 씨는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내쉰다.

 

 

안 된다구. 그런 애매한 태도가 가장 곤란한데, 누나 걱정

 

유키노시타 씨에게 걱정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라? 섭섭한 말이네. 모처럼 신경 써 줬는데

 

 

아무도 부탁 안 했습니다만... 거북해져서, 무심결에 눈을 돌린다.

내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건 지적될 것도 없이 알고 있다. 지금 어디까지 발을 디뎌도 좋은 선인지, 그리고 어떻게 되면 발로 넘어도 좋은 선인지, 거기에는 명확한 기준 같은 건 없고, 분명 나는 보이지 않는 라인 근처에서 우왕좌왕 제자리에서 걷고 있으려나.

그러한 관계성의 구축을 일부러 땡땡이 쳐 온 나다. 말하고 보면 이건 외상인 거다. 그런 삶의 방법을 선택해온 이상, 그것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이제 와서 한탄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에게 불성실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건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게도 되는 거니까.

다만... 그런 이유로, 내디디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에 걸 맞는 시간이.

 

 

그래도, 시간은 유한한 거야.

 

?

 

 

마음을 읽은듯한 타이밍에 속삭이는 말을 듣고, 무심결에 얼굴을 든다.

하루노 씨는 내 반응을 슬쩍 보고 웃고는, 그 시선을 한 손에 든 커피 컵으로 옮긴다.

 

 

, 너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아. 너의 사정은 상관없이, 시시각각 지나가는 거니까.

 

 

나를 비웃는 것과 같은 그 말과는 대조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은 아까 전까지의 느낌이나 기학성이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온화하기까지 했다.

 

 

언젠가 일지도 몰라. 그래도 유한한 이상, 어딘가 마지막은 있는 거야. 그래서 깨달았을 때에는 마감 시간이 되어, 어떤 것에도 손을 쓸 수 없게 돼... 그런 말도 있어.

 

 

느긋하게 한 손으로 컵을 흔들면서, 식은 커피의 수면에서 생긴 소용돌이를 들여다보며, 그녀는 담담하게 경쾌한 어조로 계속한다. 그 온도가 없는 말은, 칠흑의 눈동자는, 마치 아는 것을 단지 고하는 것과도 같았다. 예언, 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 눈동자가, 갑자기 나를 붙들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

 

 

헤아리는듯한 시선이, 내 속에 비집고 들어온다. 그 말이 어디까지 내게 침투했는지를 지켜보듯이.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를 시험하듯이.

 

 

...어드바이스할 생각이라면,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는 안 되는 겁니까.

 

 

나는 그것을 뿌리치듯이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고 중얼거린다. 이 사람이 어떻게 대답할지는, 왠지 모르게 상상은 되지만.

훗하고 하루노 씨가 웃는 기색이 난다. 바란 대로 대답해주겠다고 곧 말할 것처럼.

 

 

주어진 대답에 만족할 수 있는 애였을까, 히키가야 군은?

 

...............

 

 

나를 입 다물게 하고, 하루노 씨는 미소 지으며 가슴 앞에서 짝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근처 의자에 둔 핸드백으로 살짝 눈길을 준다.

 

 

그럼, 진로 상담은 끝내고. 슬슬 돌아갈까, 추워졌고

 

...

 

 

그렇게 말하고 일어선 그녀를 따라가듯이 나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루노 씨는 나를 선도하듯이 조금 앞을 걷기 시작하면서, 옆을 보는 것만으로 뒤돌아보았다.

 

 

오늘은 고마워, 바쁘지 않았어?

 

...바쁜 것처럼 보입니까, 제가

 

 

뭐야, 먼발치서 보면 최근 일주일 예정이 없는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건가. 실은 한가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누나에게 불려, 치바 변두리까지 나올 정도로 한가해요라고 대답해 주려고도 생각했지만,

 

 

아니, 히키가야 군하고 만났을 때는 대체로 항상 일하고 있었으니까 말야. 문화제 때도 지난 번 상담회 때도. 메구리한테 들었는데, 하야토하고 놀러갔을 때도 선거가 연관된 일이 있었으니까 그랬지? 미안해, 알았다면 좀 더 생각했을 텐데

 

 

절대로 거짓말이다... 생각해준다(말려들게 하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라는 거겠지. 결과는 변함없었다고 생각한다. 또 슬쩍 최근의 트라우마 폴더를 열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래도 확실히, 말하고 보면 나 일 하고 있을 뿐이군... 너무나 한가해서 그 한가한 틈에 일을 넣은 결과, 아마 대충 부활동하는 녀석보다 바빠진 기분이 든다. 게다가 대체로 환경은 블랙이니까 이 직장 위험해.

 

 

아니, 아무튼, 제 동아리 바쁠 때와는 낙차가 상당하니까... 지금은 한가해요.

 

 

바쁘지만 한가할 때는 매우 한가한 직장이라는 선전에 속아선 안 된다. 대부분의 경우, 어떻게 봐도 빠릿한 게 너무 넘쳐서 느슨함과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자칫하면 느슨할 때에도 생각보다 바쁘기도 한다. 그나저나 용법이 맞는 건가 이거.

단지 미우라와 하야마의 한 건이 끝난 뒤, 아직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봉사부가 틈을 주체 못하던 것은 사실이다. 어제도 성실히 그 짬을 보내고 있었다. 유키노시타가 끓인 홍차를 마시면서 책 읽거나 유이가하마의 바보 토크에 어울리거나.

아무튼... 그런 것도, 가끔씩은 좋은 거겠지. 사축에게도 휴일이 필요하다.

 

 

그래 그랬어? 한가하면 다행이야.

 

 

하루노 씨는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쉰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럼 또 다음에 만나서 얘기할까? 히키가야 군 다음에 언제 시간 나?

 

...?

 

 

무슨 말하는 거야 이 사람. 무심결에 말이 막혀버린 내게, 하루노 씨는 짓궂은 미소를 띤다.

 

 

~ 왜냐면 히키가야 군 안 알려줬잖아, 유키노 짱의 희망

 

아니...

 

 

역시 원한을 품었던 거다... 데이트를 강요해서 나를 괴롭힌다든가. 이런 미인과의 데이트를 싫어하는 나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무시하고 강요하는 하루노 씨 어느 쪽에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게 되었습니다만.

내가 대답에 난처해하고 있자, 그 상태를 보고 하루노 씨가 쿡쿡 웃는다.

 

 

, 그건 농담이지만... 그러면, 히키가야 군이 말해줄 수 있어? 유키노 짱한테

 

하아, 뭐를?

 

 

내가 되묻자 하루노 씨는 난처한듯한 표정을 띠우며 뺨에 손을 대었다.

 

 

전화로도 편지라도 좋으니까, 어머니에게 빨리 가르쳐 달라고. 나도 어머니에게 재촉당하는 중이야. 나를 통해 말하는 거, 그만해줬으면 하는데

 

 

보란 듯이 후우, 하고 우울한듯한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나를 슬쩍 시선을 보낸다... 약삭빠르다. 아무튼 이 사람에 한해서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남에게 우위를 빼앗길 리는 없지만.

, 이것이 여동생 코마치라면 약삭빠르다는 것을 알아도 마지못해하면서 끄덕였을 것이다.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의 여동생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보다 보통으로 생각하면 싫다고 이런 여동생...

 

 

...머지않아 말하지 않겠어요? 가만히 둬도. 애초에 진짜 언니가 물어봐도 대답 안하니까, 제가 말해봤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하루노 씨는 흐음, 하고 불만스러운듯이 입술을 오므린다.

 

 

그래? 히키가야 군이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데 말야...

 

의미?

 

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냐-. 히키가야 군은 어떻게 왔어? 전철?

 

 

하루노 씨가 서는 것과 맞춰서, 나도 걸음을 멈춘다. 눈치 채면 치바역에 도착한 것 같다. 눈앞에 JR치바역 역사, 우측 안 쪽은 모노레일의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좌측에는 역전의 쇼핑몰이 보인다.

 

 

-... 전철이지만, 모처럼 치바 왔으니까 뭐 좀 사갈까 해서

 

 

하루노 씨도 여기까지 왔다는 건, 오늘은 전철을 이용할 생각인 거겠지. 하루노 씨와 돌아가는 길까지 같이 있는 건 정말 피하고 싶어서 나는 적당히 변명했다. 쇼핑하고 싶다고 말한 건 딱히 거짓말이 아니다. 책이라든가 다른 물품 종류는 내가 사는 곳보다 더 좋고.

 

 

그래? 그럼 여기서 해산이네. 나는 약간 볼 일이 있어서 지금 대학으로 돌아갈 거야.

 

하아, 바쁜 것 같네요.

 

 

아무래도 하루노 씨도 처음부터 나와 돌아갈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하루노 씨는 그럼, 하고 손을 올리려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그 손을 내렸다.

 

 

그래 맞다, 까먹고 있었어. 이거

 

...뭔가요, 그거

 

 

하루노 씨가 핸드백에서 꺼낸 것은, 작은 노트였다. 내가 항상 쓰던 것에 비하면 더 작다.

내가 의아한 듯이 보자, 그것을 쑥 눈앞에 내민다.

 

 

코마치 짱한테 전해줘. 예의 그것, 이라고 말하면 알 테니까

 

? 코마치한테?

 

 

반 반사적으로 받고 나서 궁금해한다. 하지만 하루노 씨에게 물어보려고 얼굴을 들었을 때는, 그녀는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험 공부 힘내라고 전해줘, 그리고 너무 몰아세우지 않도록

 

아니, 그건 압니다만, 그나저나 왜...

 

 

내 의문에 답하지 않고, 하루노 씨는 역사 쪽으로 걸어서 떠나갔다. 붉은 스톨이 살짝 한 번 바람에 나부껴, 점점 멀어져간다.

진짜 그 사람,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어떤 설명도 안하는구만. 버려지는 쪽 입장이 되어봤으면 좋겠다... 아까 전의 그것도, 지금 한 것도.

 

 

그래도 아무튼, 이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억지로 받은 노트를 지긋지긋한 기분으로 바라본다. 이 타이밍에, 코마치에게라면 싫어도 일의 경위를 알게 된다는 거겠지. 수험이 어떻다든가도 말했었고.

, 역시다. 그렇게 해독해 나가는 건가... 쓸데없는 스킬을 익혔다.

 

 

 

 

× × × × ×

 

 

 

다녀왔습니다...

 

, 오빠 어서와

 

 

현관문을 열자, 탁탁하고 한가한 발소리를 내며 코마치가 마중 나왔다. 왠지 아버지의 겉옷을 단상 안쪽에서 가져온 것 같아, 헐렁헐렁한 그것을 걸쳐 입는 것의 등장이다. 본인이 이르길, 수험생 같아 보이니까라고... 아무튼 더 이상 언급하진 말자.

 

 

오늘은 아래에서 공부했었어?

 

 

신발을 벗으며 코마치에게 물어본다. 돌아오고 나서의 리스폰스가 엄청 빨랐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 생각난 가능성은, 오빠의 귀가를 여동생적 직감으로 짐작해줬는가 아닌가하는 거지만, 아무튼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럴 리 없군.

 

 

, 엄마하고 아빠 없기도 했고. 혼자서 위에 있는 것도 좀 그래서

 

 

코마치는 그렇게 말하면서 거실 쪽으로 돌아간다. 코마치를 따라 방에 들어가자, 안심 되는 온기가 몸을 감싼다.

 

 

부모님은... 그런가, 밥 먹으러 갔나

 

 

오늘은 1월 말의 토요일. 부모님의 월급도 들어온 바로 직후이고, 우리 집에서는 외식한다면 대체로 이런 월말의 휴일이 된다. 그래도 아버지는 참, 내가 나갈 때 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내츄럴하게 따돌리는 건 그만두라고, 가족이잖아.

 

 

어라? 너 안 갔어?

 

-..., 아무튼 뭐라고 할까, 안 내켜서

 

 

하하 하고 코마치는 쓴 웃음을 띤다. 그 표정을 보고, 왠지 모르게 헤아린다.

 

 

...기분 전환도 중요하지 않았던가

 

-, 아무튼 그래... 아빠도 끈질겼는데, 평소보다

 

 

아무래도 코마치는 시험이 가까워짐에 따라, 문자 그대로 밥도 목에 안 넘어가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아버지가 열렬하게 기분 전환을 권했던 것도 역효과였겠지. 사실 그런 면은 서투르다 남자는... 아들에게 확실히 유전해버렸습니다만.

 

 

, 그래도, 코마치는 오빠하고 같이 밥 먹는 게 기분 전환이 될지도! 지금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그런가. , 먹을 거 사왔어.

 

 

꺄삐하고 포즈를 취하는 코마치의 머리에 탁 손을 얹고, 다른 한 쪽 손에 먹을 게 들어간 봉투를 보인다. 치바 역전 지하가에서 사 온 거다.

 

 

가끔씩은 사 먹는 것도 좋잖아. 여기서 살 수 없는 것도 있고

 

, , 고마워... 오빠, 치바까지 갔었던 거네

 

 

받은 봉투를 (^o^)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코마치가 중얼거린다. 나는 부엌에 가서 냉장고 문에 손을 대며 대답한다.

 

 

아무튼-그렇지. 어딘가의 아무개 씨 덕분에, 치바 변두리까지 불려갔었지.

 

아니, 아하하... 왜냐면 봐, 전화번호 알고 있다고 해서 말야

 

 

약간 미안함에 배인 코마치의 목소리에,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예상한 대로, 이번에 하루노 씨가 부른 것에는 코마치도 한몫 껴 있던 것 같다. 내가 한가할 때에 전화가 온다고 생각한 것도 당연한 거지... 아무튼 제 1의 전범은 무엇보다도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하야마지만. , 전부 하야마가 나빠. 코마치는 나쁘지 않아, 귀여워.

 

 

저기, 하루노 언니 건강했어? 요새 전화라든가 메일로밖에 연락 안 했는데

 

... 여전히 그래

 

 

여전히 활기차게 나를 가지고 놀아서 즐거운 것 같다. 필요 없는 일 여러 가지 꼬드겨 가르친 기분도 들고.

냉장고에서 반찬이 될 것 같은 것을 보고 있자, 코마치도 부엌으로 들어왔다. 전자레인지에 사 온 반찬을 넣고 찌개가 들어간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는다. , 아무튼 그 나름대로 괜찮은 저녁식사가 된 것 같군.

 

락앤락을 꺼내고 문을 닫자, 코마치가 나를 힐끗 보고 흠칫흠칫 물어본다.

 

 

그래서 저기... 하루노 언니한테 뭔가 맡거나 하지 않았어?

 

. 아아, 그러고 보니 너 앞으로 된 노트 같은 것을 받았지... 그런데, 저거 뭐야?

 

어라, 안 봤어?

 

아니, 봤지만. 뭐야 저건... 참고서?

 

 

속이 검은 누나에게 받은 정체불명의 노트다, 여동생에게 미칠 악영향을 염려해서 검열하는 것은 오빠로서의 의무다. 대체 뭐가 쓰인 건지, 마도서 레벨로 경계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아주 정당한, 수제 참고서라고도 불러야 할 노트였다.

 

 

. , 하루노 언니도 소부 고등학교 출신이잖아? 코마치도 소부고 노린다고 얘기하니까, 그럼 뭔가 도움이 되는 자료 준다고 해서

 

그래서 그 노트인가... 또 상당히 공이 많이 들어간 것을

 

 

슬쩍 본 정도지만, 제법 견실하게 만든 거였다고. 기출문제 가져와서, 해설도 섬세하게 되어있고. 진짜 그 사람 한가한 거 아냐? 너무 주체 못하는 거 아냐?

 

 

그나저나 애초에, 그 사람과 그렇게 자주 연락했었던 거냐?

 

자주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 , 작년에 오빠하고 싸움, 같은 걸 한 적 있었잖아? ...그 때부터, 가끔

 

 

약간 말하기 어려운 듯이 코마치는 말한다.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그러고 보니 그 때도 하루노 씨에게 부르는 전화가 왔었던가, 코마치를 통해서.

확실히 그 때는 남매 사이도 약간 말하기 거북했고, 그 뒤에도 봉사부의 건이 안정될 때까지의 사이, 코마치 나름대로 배려해 줬던 거겠지. 나와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가 미묘한 감정이 있는 이유도 있어서, 저 녀석들과도 연락하기 힘들었을 테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소부고 졸업생이라 해도... 아무리 한가한 것 같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가버리는 건 어떨까 생각합니다만, 오빠는. 아무튼 확실히 너희들 파장 맞을 것 같았지만. 그게 또 걱정이었다고... 나쁜 영향이 없으면 좋을 텐데.

 

 

아니, 아무튼 알았어... 노트는 밥 먹은 다음에 줄게. 그러면 되지?

 

 

뭔가 여동생을 통해서 터무니없는 빚이 생긴 감이 있지만, 아마 신경 쓰기 시작하면 패배다. 이 때는 낯짝을 두껍게 해서, 태연히 떼어먹을 생각으로 있자.

 

 

. 고마워, 오빠

 

아무튼, 너무 기대진 마. 그 밖에도 학원 같은 데에서 여러 가지 받았잖아, 그쪽을 우선으로 하는 편이 효율적이야. 아무튼, 별로 시간도 없고

 

 

―――시간은 유한한 거야.

 

 

코마치에게 말했음이 분명한 말이, 하루노 씨의 말이 되어 나를 향해 튀어서 되돌아온다. 그 막연한, 예언인듯한 말. 저건 대체 무엇을 가리켜서, 내게 어떻게 하라고 말했던 걸까.

 

 

...우선 밥 먹자고

 

. 하아... 앞으로 2주간인가...

 

 

코마치가 우울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앞으로 2. 소부고 입학시험까지 남은 시간이다. 그 시간을 얼마나 유효하게 쓸 수 있는가, 그건 코마치 자신의 손에 달렸다.

문득 코마치가, 뭔가 생각난 듯이 내게 얼굴을 향했다.

 

 

... 그러고 보니 말인데, 올해 어떻게 할 거야? 코마치는 마침 시험 끝났을 거고, 힘이 남았으면 만들 건데

 

? 뭐를?

 

 

내가 되묻자, 코마치는 기막힌 듯이 한숨을 토한다.

 

 

뭐라니... 쵸콜릿. 오빠, 앞으로 2주면 발렌타인 데이라구?

 

 

그리고, 이힛하고 짓궂게 웃으며 말한다.

 

 

코마치가 만드는 게 좋아? 아니면... 올해야말로 필요 없게 될까?

3부 구성...이라 말했었지만, 약간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4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이유로 약간 사이가 비었습니다만, 후일담 그 2.

수라 루트라고 어디선가 말한 생각도 듭니다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해. 왜 러브러브 하지 않는 거야 이 녀석들 (어리둥절)

 

더블 대부호의 룰이라든가 카드라든지는 약간 적당합니다. 봐,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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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후일담 이를테면, 이런 허니문 (중편)

 

To : 히키가야 군

Subject : 혹시 괜찮으면 좋겠는데

Message :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래?

 

 

아까 전 보낸 메일을 다시 읽고, 화면을 닫는다.

대답은 아직 없다. 혹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경계심이 강한 그답다고 하면 그다울까. 지금까지 실컷 계략에 빠뜨리는 것 같은 짓을 해 왔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건 내 자업자득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쓴웃음 같은 작은 한숨이 제멋대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언니, 무슨 일 있어?」

 

「응?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티-포트를 얹은 쟁반을 가져온 여동생에게 권유를 받아, 폰을 치운다. 글래스제 포트 안, 희미한 진동으로 맑은 호박색의 수면이 작게 흔들린다. 여동생은 그것을 키 작은 테이블 위에 딱 하고 두고, 일인용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말해두는 편이 좋을 텐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까 전부터 계속 말해서 말야. 약간 지쳐서」

 

「...그렇다면, 좋지만」

 

 

팔랑팔랑 작게 손을 흔들며 한 내 말에, 여동생은 툭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렇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 서로 솔직히 얘기할 수 있을지 몰라요... 우리들은」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들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모든 것을 꿰뚫는 듯한, 곧은 시선으로.

 

「...........그럴지도」

 

 

그 눈을 나도 들여다본다. 고요하고 투명한 호수 같은, 맑고 깨끗한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다. 그녀에게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내 눈동자에도, 똑같이 여동생의 모습이 비쳐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제대로, 여동생의 모습을 인식해 줄 수 있을까.

거울의 저 편처럼 많이 닮은, 내 여동생.

하지만, 이 애는 깨끗하다.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깨끗하다. 부숴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깨끗하다. 사랑스러울 만큼, 얄미울 만큼. 더럽혀지기를 거부하는 아름다움이, 거기에는 있다. 그녀에게 그럴 마음이 없다 해도, 그 본연의 자세 자체가, 마치 나를 책망하고, 몰아세우는 것 같아서.

 

 

「차, 끓였어요.」

 

「...아아, 응. 고마워.」

 

 

여동생은 깊이 추궁하지 않고, 포트를 손에 들고, 비워진 두 개의 티 컵에 새 홍차를 따른다. 살짝 코를 간질이는 차 향기는, 언제나 집에서 마시고 있던 것과 변함없다. 우리들이 예전부터 즐겨 마시던 종류다.

그래, 나와 여동생은, 아무것도 다르지 않다. 같은 것을 먹고, 똑같이 생활하고,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 텐데.

 

 

―――나는, 언니와는 달라.

 

 

왜, 이렇게까지 바뀌어 버렸을까. 서로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달라졌을까.

어머니 교육 때문, 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걸로 끝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입장의 차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걸로 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차라리 편하겠지.

단지 그런 건, 나도 여동생도, 인정할 리가 없다. 인정 따위 할 수 없다. 인정해 버린 순간, 자신을 지탱하는 것이 뚝 하고 부러져 버리니까. 그렇게 되면, 상대를 볼 면목조차 없어져 버릴 테니까.

 

 

「...맛있네, 유키노 짱이 끓인 홍차는」

 

「...그래, 고마워요.」

 

 

그런데도, 지금까지 부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관계성이 옳은 것 같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잘못되어 있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잘못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이건 결과론이다. 내게도 여동생에게도, 이 관계를 어떻게 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대로, 우리들은 계속 잘못해서, 계속 엇갈린 채였을지도 모른다. 집착과 미련에 얽매인 관계인 채. 어느 한 쪽이 파탄할 때까지, 계속.

 

 

「................」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나는 그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을 끝낸, 균형을 무너뜨려 준, 그를

변함없는, 바뀔 수 없는 그가, 우리들의 관계를 바꾼 것을.

 

그 때도 그랬다.

여동생이 집을 나오는 계기가 됐던 것도, 그였다. 그가 그 때 뛰쳐나와서, 그 애는 치명적으로 꺾이지 않았다. 꺾이지 않고 깨끗한 그대로 있을 수 있었다. 그게 좋은 일이었는지 나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 아이에게 꺾이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친구를 준 사람도, 그였다. 그가 그 때 뛰쳐나왔기 때문에, 그 애는 그녀와 친구가 되었다. 될 자격을 잃지 않았다. 그 위태로운 관계를 나는 믿지 않았지만, 실제로 지금도, 그녀는 그 애의 옆에 있어서, 그 애를 지탱해 주고 있다.

 

뭐-, 이것도 결과론이지만.

그의 행동은, 어느 것을 봐도 애처롭고, 위태로워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리석다.

잘못된 신조를 바탕으로 한 계산식은 역시 잘못되어 있어서, 그런 계산에서 산출해 낸 해도 물론 잘못됐다. 현실도 또한 교묘한 상태로 비뚤어졌으니까, 결과만은 마치 하나의 정답인 것처럼 되어 버릴 뿐이다. 그건 그거대로 성질이 나쁘지만.

 

그는 결과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결과론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 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러니까 그의 방식이, 그의 본연의 자세가 파탄한다고 하면 거기겠지. 결과론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그가, 결과론으로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릴 때. 그 계산식에, 그 신조에, 의문이 미쳤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누군가의, 규탄이 그에게 이르렀을 때.

그는 변할지 변하지 않을지의 양자택일을 앞에 두고―――그런데도, 변할 수 없을까.

변하지 못하고, 남겨져 버리는 걸까.

 

그런 그에게는, 세계는 어떻게 비치고 있었을까. 주변에서 버려져 남겨진 그에게는. 정점에서 멈추고, 등 뒤를 바라볼 뿐인 그에게는.

나는 그것을 우습다고 비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할당된 역에 만족하는 것이 이상한 거라고. 그런 건 결국 갖지 못한 자의 시시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그런데도―――더 이상 나는, 웃어넘길 수 없었다.

관점이 다르지만, 아니 다르기 때문이야말로, 보이는 경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왜, 그런 방식 밖에 할 수 없습니까.

 

―――히키가야 군에게만은, 듣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해 버렸으니까. 그렇게 기대해 버렸으니까.

비록 지나친 생각이라도. 정말 약간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저기, 유키노 짱」

 

「...무슨 일인데, 언니」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가 잘못한 것을 용서할 수 없는, 올바르고 솔직한 이 애한테.

이 애가 말하는 대로, 지금이라면 조금은 솔직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분명 솔직해질 수 없을 테니까.

적어도, 나는.

 

 

「유키노 짱은 히키가야 군을, 어떻게 생각해?」

 

 

          ×          ×         ×

 

 

시가지를 약간 빠져나와, 작은 언덕 산기슭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여러 가지 의미로 두근두근거렸던 드라이브를 끝내고 축 늘어진 나를 슬쩍 보고, 하루노 씨는 냉큼 차에서 내려버렸다. 멍하니 그 등 뒤를 눈으로 좇고 있자, 그녀는 휙 하고 뒤를 돌아보고 저기저기(くいくい)하며 엄지로 신호를 보낸다. 빨리 나오라는 것 같다.

 

 

「...잠깐 정도 쉬게 해 주세요.」

 

 

그렇게 투덜대 보지만, 물론 차 밖에 있는 하루노 씨에게 들릴 리가 없고, 「뭔가 말했어?」 라는 느낌으로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만 입가는 히죽거리고 있다. 어쩌면 이쪽의 컨디션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거지로 시키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면 터무니 없는 S기질이다.

 

 

「그러니까 난 M이 아니라고...」

 

 

최근 몇 년간, 누구에게도 닿은 적이 없던 불평을 입에 담으면서도, 나는 마지못해하며 운전석의 도어를 열었다. 그 순간, 몸을 둘러싸는 열기에 말을 잃었다. 7월의 태양은 순조롭게 콘크리트를 계속 굽는 것 같아서, 그 반사열이 가차 없이 내게 달려든다.

 

 

「뜨거...」

 

 

그러니까 좀 더 차 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는데. 약간 고장 난 느낌이 있지만, 아직 우리 집 패밀리 카 에이컨은 기특하게 일하고 있다. 그런 분발은 역시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아? 움직이고 있는 때가 아름답다고도 하고, 좀 더 에어컨 짱과의 추억을 만들어 두고 싶은 때다.

아쉬운 듯이 발을 질질 끌면서 하루노 씨 쪽으로 걸어가자, 그녀가 말한다.

 

 

「히키가야 군, 어쩐지 반 정도 녹은 것 같은데 괜찮아?」

 

「아니...역시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더위에 약하네요. 봐요, 태어나고 나서 바로 쿨러가 있는 곳에서 편하게 자라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입에서 『아니, 역시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추위에 약하네요.』라고 들은 적 있는데, 나는」

 

「모순은 아니겠죠. 그럼 어느 쪽에도 약해요.」

 

 

잘도 기억하네, 그런 건. 나 자신이 말했던 것 따위는 곧 잊어버리지만. 그런데 부끄러운 추억이라든지 흑역사 같은 건 왠지 뇌에 깊이 새겨져 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까지는 이미 흑역사 밖에 생각나지 않아.

 

 

「추가로, 나도 여름에 태어났는데?.」

 

「아-, 그거야 뭐... 흔들리지 않네요, 하루노 씨는」

 

 

여름이나 겨울도 변함없이 시원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겨울에 시원스러운 건 그래도 이해가 가지만, 여름에 이르러도 그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건 과연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아니, 히키가야 군도 흔들리지 않아요... 어느 의미로 말야.」

 

「큭...그거야 아무쪼록, 나라도 흔들리지 않는 것에는 정평 있으니까요.」

 

 

산뜻하게 나오는 야유에 얼굴 근육이 굳어진다. 억지웃음을 지을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는 것도 진 것 같으니까 우선 허세만 쳐 보기로 했다.

근데, 하루노 씨가 불길한 듯한 미소를 띤다.

 

 

「...후후」

 

「...뭔가요.」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뭐-, 그렇게 고집 부려봤자 이 사람에게는 간파당하겠지만.

내 잔재주나 속임수 따위, 그 눈은 순식간에 간파해 버릴 테니까.

다만 다행히도, 하루노 씨는 그 이상 가지고 놀 생각은 없는 듯하고,

 

 

「그럼, 슬슬 갈까」

 

 

하고 언덕 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턱으로 가리킨다.

파릇파릇한 잔디로 덮인 작은 언덕. 그 푸른 곳을 가로질러 계속 이어진, 나무 계단. 그 앞, 트인 언덕 위에는 아늑한 로그 하우스 풍의 카페테리아가 있다. 여름다운 원색 하늘과 언덕의 경계선에, 그 그림자는 여기에서도 뚜렷이 눈에 선해 보였다.

 

 

「아무개 씨 덕분에 꽤 좋은 시간이 됐고. 일단 여기가 호스트 같은 거니까,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들을지도 몰라요.」

 

「...그 때는 카 체이스(Car Chase) 하고 있던 걸로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녀석도 아니지만. 아마 신랄하게 반격 받고 차갑게 논파되는 것으로 끝난다. 오래간만이니까 시달리기까지 할지도.

...아무튼, 각오만 하고 있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대다.

하아, 하고 한숨을 가볍게 내쉬고, 계단에 다리를 얹으려고 했더니,

 

 

「...어라?」

 

 

어느 샌가 근처에서 걷고 있던 하루노 씨가 없어졌다. 아니, 라고 생각했더니 뒤에 있었다. 왠지 계단 앞에서 멈춰 서서는,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저기, 무슨 일인가요?」

 

「...히키가야 군」

 

 

왜 그러지, 기분이라도 나빠졌나. 그렇게 생각하고 상태를 보고 있자,

 

 

「여기서 퀴즈입니다. 이런 가게에 들어갈 때, 히키가야 군은 레이디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아니아니」

 

 

뭘 진지한 체하는 얼굴로 그런 영문 모를 문제를 내는 거야. 순간 걱정했던 내가 바보 같잖아.

탈진감에 시달리면서, 나는 대답한다.

 

 

「정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아닌가요. 별로 저기, 여기서 보아하니 보통 캐쥬얼 찻집이고, 드레스 코드라든지 에스코트라든지 그런 건 특별히 없겠죠.」

 

 

거기에 봐, 덥고.

 

 

「무으~, 재미없는 대답이네」

 

 

하지만 하루노 씨는 내 대답이 불만인 듯이, 빤히 보면서 볼을 부풀렸다.

 

 

「잘 공부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판단은 약간 너무 고지식하지 않을까나. 에스코트라는 건 TPO에 따라서 요구되는 때가 있어요? 장소만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말야.」

 

「하아... TPO인가요.」

 

 

때(Time), 장소(Place), 경우(Occasion)군. 결코 마지막까지 초코 듬뿍 들어간 과자를 잘못 쓴 건 아니다.

 

 

「그래. ...지금부터 그 애를 만나러 가니까, 이쪽도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안 돼. 그 애를 기선제압하고 싶기도 하고, 마음껏 과시해 줄까 해서」

 

「...아니, 보통으로 하면 되잖아요.」

 

 

확실히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멸시되는 걸로 끝나겠지. 그 시선의 냉혹함부터 날카로움까지, 전부 리얼하게 상상이 된다. 내 이미지네이션이 대단한 건지, 시간을 둬도 거기까지의 이미지를 주는 그 녀석 눈이 위험한 건지는 판단이 엇갈린다.

 

 

「거기에, 자칫하면 돌아가 버릴지도 모르겠네요... 뭔가 기분 나쁜 게 있으니까, 라든가 말하고」

 

「흐응, 뭐- 그건 있을 법하네. ...응, 기분 나쁘지요.」

 

「...............」

 

 

그건 저거네요. 그런 바보 커플인 채를 하는 자기들이 기분 나쁘다는 말이죠. 단품이 아니지요. ...그 의미심장한 시선도 관계없죠?

 

 

「그럼 아무튼, 티내지 않고 가는 게 좋을까나」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데에서까지, 딱딱하게 안 해도.」

 

 

아무래도 우선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안심하고, 내가 계단 위를 내디딘 순간,

 

 

「아, 그래도 말인데」

 

 

그 말과 동시에, 내 왼손이 갑자기 살짝, 따뜻한 것으로 싸인다.

 

 

「...저기, 뭘 하는 건가요.」

 

「응? 에스코트라든가는 됐으니까... 손 정도, 잡고 가자.」

 

 

왼손을 잡은 손이, 꽉 하고 세진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체감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듯한 감각.

큭 하고 목에서 나올 뻔했던 소리를 누르고, 항의의 소리를 높인다.

 

 

「아니, 더운데요...」

 

「어머, 부끄러운 거야? ...뭐, 가게 앞까지니까. 응?」

 

「........가게 앞까지, 예요.」

 

 

한숨을 내쉰 내 옆에서, 그녀는 「좋아」라고 하며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다.

진짜, 이 사람에게는 휘둘릴 뿐이다. 이쪽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자마자 이거다. 자유라고 할까, 분방이라고 할까. 거기에 내가 날마다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도 불길한 사태다.

다만, 그대로 이 사람에게 삼켜져버리는 것,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가게 앞까지, 떼어 놓지 않을 것」

 

「...네네」

 

 

아마 이 사람이 나한테 바라는 건, 그런 일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          ×          ×

 

 

옛날 이야기를 계속하자.

봉사부 동기 합숙, 토론회 다음 날. 이 날은 시내 관광이라는 것으로, 낮에는 봉사부 플러스 토츠카로 히라츠카 선생님의 차에 타서, 향토관이나 미술관이라든지를 돌거나 하고 있었다. 아무튼 실제로는 우리들이 치바보다 사랑해야 할 도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테고, 나는 그다지 흥미를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런데도 옆에서 걷는 토츠카에게는 흥미진진했으니까 지루하진 않았다.

추가로 시내관광을 전날 끝마쳐버렸던 하루노 씨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럼 나 오늘은 이 근처에서 돌 테니까」하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어딘가로 나가 버렸다. 여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다. 뭐-, 덕분에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약간은 긴장이 풀렸는지, 두 명이 사이좋게 관광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

 

 

「.............」

 

 

응응, 여자 두 명조, 남자 두 명조, 독신 혼자인 실로 밸런스 잡힌 파티 구성이다. 흔들리지 않아 보이는 철벽의 트라이앵글... 특히 마지막이라든가, 당분간 무너질 기미는 없겠네요. 믿음직할 따름이다.

 

 

「...뭔가 무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 히키가야」

 

「아, 아니요. 그럴 리...」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히 입으로 하는 게 어때. 그 동정하는 시선만으로 말하는 건 그만둬 주겠나, 아앙?」

 

「아니, 그러니까 아파아파아파」

 

 

입으로 말하라고 하면서 말하게 냅두지 않을 정도로 비트는 거 그만두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선생님, 공공시설에서는 다른 이용자에게 폐가 되니까 조용히 하는 거예요. ...진짜 이 사람, 이름이 실체를 상징하지 않는구만.

 

 

 

그런데, 호텔로 돌아간 우리들이 뭐를 했냐 하면, 하루노 씨와 합류해서, 유이가하마의 제안으로 트럼프 대회를 즐기고 있었다. 여행의 고정적인 건가, 이건. 그리고 종목은 이건 또 그립다, 하지만 고정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더블 대부호」다. 여러 가지 트라우마로 가득 차 있을 터지만 이것이 선택됐다. 물론 탈의는 없다... ㅂ, 봐, 토츠카가 져버리면 내 이성이 버틸지 모르겠고. 그, 그러니까 그런 놀이 같은 건 싫어한다고-(국어책읽기)

팀은 가위바위보로 다음과 같이. 유키노시타-유이가하마 페어, 토츠카-히라츠카 선생님 페어, 그리고 나-하루노 씨 페어다.

위험해, 옆에 조커 같은 사람이 있다.

 

 

「흠흠, 과연 그러네. 룰은 보통 대부호와 같고, 단 페어가 교대로 손에 든 패를 내고, 거기에 의논 없이 하는 거지? ...요컨대, 팀워크가 승리의 열쇠라는 거네.」

 

 

유키노시타가 담담하게 설명하는 룰을 들은 체 만 체 하고 있고, 그 조커, 즉 하루노 씨는 한 번 끄덕인다. 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듣고 있군, 이 사람.

팀워크라...고 하면, 역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페어가 하나 더 뛰어나겠지. 한 번이라고는 해도 더블 대부호 경험자이기도 하고, 패턴은 파악하고 있을 터다. 덤으로 다른 한 쪽은 고속연산 기능이 탑재된 유키노시타다. 좋게 말하면 치우치지 않고(クセのない), 나쁘게 말하면 특별한 장점이 없는 유이가하마의 플레이 스타일과도 궁합은 좋다. 읽기 쉬우니까 말이지.

 

 

「무으-... 왠지 지금 나쁜 생각 하지 않았어?」

 

「뭐야 너희들? 그러니까 내 얼굴은 PASMO인가 뭔가냐고요.」

 

 

유이가하마의 빤히 보는 눈을 피하면서, 나는 다른 쪽 팀으로 눈을 돌린다.

 

 

「대부호인가, 언제적 이래지-. ...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이군-아하하...」

 

「서, 선생님, 힘내요!」

 

 

왠지 슬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히라츠카 선생님과, 그녀를 격려하는 기특하고 귀여운 토츠카 페어. 각자의 전력은 미지수고, 팀워크도 미지수. 단지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휙 날려지면 난 벌벌 떨어서 행동이 봉쇄될 테고, 토츠카에게 정열적인 시선을 받는다면 봐 줄 것이다. 그런 의미로는 위협적인 페어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하루노 씨 페어인데...

 

 

「후후... 유키노 짱 미안해. 편성에 불만 있지 않아?」

 

「...언니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나. 그 남자를 떠맡길 수 있어서 후련해요.」

 

「어라? 난 편성에 불만 있지 않아? 밖에 말하지 않았어요? 헤에, 그래?, 유키노 짱은 히키가야 군과 짜고 싶었던 거네. 틀림없이 언니와 짜고 싶은 걸까 하고 생각했어.」

 

「...어느 쪽이든 거절이에요.」

 

 

상대편이 시작하기 전부터 다른 팀에 왠지 싸움을 걸고 있었다. 무사 안일주의인 나로서는 이 시점에서 팀 해소를 제안하고 싶은 바지만... 아무튼, 무리겠지.

여파가 센 하루노 씨의 도발에, 여파 내성 제로인 유키노시타도 또 전의를 고양시키는 것 같았다.

 

 

「언니야말로 그 남자와 짠 것을 후회하는 게 좋아요. 협조성이 티끌만큼도 없고, 자기 멋대로 치닫는 데에는 능가할 사람이 없으니까」

 

「아니, 그거 너한테만큼은 듣고 싶지 않은데」

 

「입 다무세요. 아니요, 싫어도 입 다물게 해주겠어요... 당신의 근성을 다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 몸에 철저히 가르쳐 줄게.」

 

「어이어이... 겨우 게임이잖아.」

 

 

그런 걸로 근성을 비틀 수 있는 건 유희왕 정도 밖에 없으니까. 추가로 나는 카드게임 하나로 진행하던 저번 화가 좋아. 카드게임 자체는 좋아하지만, 내 상대는 오로지 CPU였다.

 

 

「기껏해야 게임, 그래도 게임, 이라. 유키노 짱 같네」

 

 

유키노시타를 들쑤신 본인, 하루노 씨는 히죽히죽하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도 있잖아 유키노 짱, 걱정할 필요 없어. ...그렇게 우리들, 궁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것보다도, 졌을 때 할 변명이라도 생각해 두는 게 어때? 언니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상대해 줄게요.」

 

「...재미있는 말이네요. 그 말, 전부 돌려 드려요. ...아무튼, 언니야말로 진다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거기까지 말한 만큼 히키가야 군을 패인으로는 할 수 없어요.」

 

「괜찮아 괜찮아. ...질 예정 같은 건, 없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말인데, 이 자매는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너무 오기 있잖아, 둘 다 말이야.

이렇게 해서 트럼프를 제안한 유이가하마가 움츠러들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일부) 속에, 페어 대항 더블 대부호 대회는 조용히 시작됐다. 아니 전혀 조용하지 않잖아, 이건.

 

 

 

대부호는 그 나름대로 전략성이 있는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결국 어떤 것을 남기고 어떤 것을 잘라 낼지, 그 취사선택을 반복하는 게임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전반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필요 없는 카드를 잘라 내서 패를 가볍게 할지, 그리고 후반은 어디서 승부를 걸어서 이길까. 거기에 필요한 건, 술책과 냉철한 판단력이다.

그것을 이 3, 4회전을 하는 동안 나는 꽤 생각하게 되었다.

 

 

「흠... 그러면 이걸로 어때...!」

 

 

어려운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카드를 낸 사람은 히라츠카 선생님이다. 단, 절찬 대빈민. 눈이 약간 진심이 된 것이 조금 불안하다.

이 사람, 초반은 냉정 침착 그 자체였지만, 이렇게 종반이 되면서 점점 엄청 긴장하는군... 초조한 탓인지 잘못 읽어서, 승부해야 할 때를 잘못 읽어서 연패 당했다. 요점은 이 때다 싶은 타이밍에 빗나가버린다. 평소에는 좋은 사람인데.

...저거군, 「평소에는 좋은 사람인데」라고 마지막에 덧붙이면 왠지 다른 얘길 하고 있는 것 같군. 아니 아무튼, 나는 결혼도 어느 의미로 갬블이라고 생각해요, 네. 그런 눈으로 보면 히라츠카 선생님의 전패는 마치 도박타천록과도 같다.

이어서 유이가하마가 에잇하고 카드를 다시 낸다. 스페이드 9에 하트 10. 무난한 카드진행이다. 그 바보스러운 외모와는 정반대로, 이 녀석도 꽤나 신중하다.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친구도 많고 인기 있었을 때 꽤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너무 나대면 좋지 않은 꼴을 당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패스...」

 

「어, 하치만 패스야?」

 

「오우, 그래 토츠카, 내도 돼.」

 

 

그리고 나도 또 이 때는 신중히 판단한다. 아무튼 낼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세트를 무너뜨려서까지 여기서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다. 거기에 봐, 그거야 토츠카가 기뻐해주면 양보해버리니까.

 

 

「그럼 낼게... 이걸로」

 

 

토츠카의 플레이 스타일? 그런 건 어떻게든 상관없잖아. 그것보다도 카드를 선택할 때 골똘히 생각하는 행동이라든가, 흠칫흠칫 카드를 낼 때 약간 불안한 눈이라든지, 그런 것에 눈을 빼앗겨 솔직히 전법 분석이라든가 할 수 없었다. 추가로 토츠카가 낸 카드는 하트 Q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의 흐름이다.

 

 

「................」

 

 

냉정한 눈으로 카드를 노려보는 유키노시타. 이 녀석에게는, 판에 나온 카드를 전부 기억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기억력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적절한 카드를 버리는 법을 계산할 정도의 머리도 있다. 카드게임을 즐기는 방법으로는 잘못됐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니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판단을 할 수 있는 것도 또, 유키노시타 유키노 뿐이겠지.

그리고 유키노시타는 슥 하고 카드 한 장을 판에 놓는다. 스페이드 A. 내가 패스했으니까 하루노 씨도 카드는 낼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히라츠카 선생님의 턴.

 

 

「큭, 으으...패스」

 

 

왜 그렇게 분해합니까. 그리고 1이나 2정도 작았으면 낼 수 있었다고 말하려는듯한 형상.

아니, 아마 진짜로 하나 부족할 뿐이다. 유키노시타는 그 빠듯한 지점을 공격하고 있다. 자신의 패에 여유를 두려고, 일부러 그 지점을 노리고 있다. 판에는 상당한 수의 카드가 모여 있으니까, 유키노시타에게는 어느 정도 주변의 패가 보이고 있음이 틀림없다. 유키노시타 전법의 진면목은 이 종반전에 있다. 이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종반이 되고 나서야 간신히 알았다.

그리고 다시 유이가하마가 카드를 선택한다. 아마도 유키노시타의 예측대로 무난한 한 장. 이것을 버리는 것으로, 슬슬 유키노시타도 오를 생각인 건 틀림없겠지.

그에 반해, 하루노 씨는,

 

 

「으-응, 어떻게 할까나」

 

 

그렇게 말하면서, 토츠카 뒤에서 처진 히라츠카 선생님의 안색을 본다. 시선을 느꼈는지, 히라츠카 선생님도 얼굴을 든다.

 

 

「뭐, 뭐야 하루노...?」

 

「응? 별로 아무것도 아닌데? ...흐응, 과연이네」

 

「뭐, 과연이라니, 뭐가?」

 

 

당황하는 히라츠카 선생님을 보면서, 하루노 씨는 스윽 하고 눈을 가늘게 뜬다. 마치 카드를 투시하는 듯이. 혹은, 히라츠카 선생님의 사고를 꿰뚫어보듯이.

그리고 카드를 한 장 선택해서,

 

 

「시즈카 짱... 이것도 낼 수 없지?」

 

 

가학심으로 가득 찬 미소를 띠우고 카드를 판에 내민다. 다이어 K. 유키노시타가 낸 것보다, 딱 하나 작은 카드. 아까 전의 반응으로 보면 그 카드가 통과할지는 미묘한 라인이었지만...

 

 

「크헉」

 

「...으으, 패스네」

 

 

토혈 하듯이 신음하며 히라츠카 선생님이 쓰러지고, 계속해서 토츠카도 곤란한 듯이 웃으면서 패스를 선언했다. ...아무래도 통과인 것 같다. 그 밖에도 좋은 카드를 온존하는 건지,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구나.

 

 

「아하하, 유감이었습니다, 시즈카 짱! 또 승부에서 너무 긴장했잖아? 긴장하면 안 돼요, 재미있는 장면은 여기부터였는데」

 

 

벌렁 자빠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기뻐하는 하루노 씨. 은사라도 자비 없구만 이 사람... 뭐- 여동생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나저나,

 

 

「저기... 혹시 유키노시타 씨도 판에 나온 카드 전부 기억하고 있다든지?」

 

「에? 뭐야 그게, 그렇게 귀찮은 짓 하는 애가 있어?」

 

 

내 질문에 하루노 씨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쓸데없는 짓이야... 누가 뭘 가지고 있는지, 그런 건 얼굴 보면 아는데」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힐끗 유키노시타 쪽을 본다. 이거, 분명 알고 있으면서 말하는 거군. 유키노시타의 눈썹이 꿈틀 하고 움직인다.

그보다 얼굴 보면 안다는 것도 또 터무니없는 말이군. 정확하게는, 어느 정도 카드를 기억한 다음, 나머지는 주변 상태를 보면서 가지고 있는 패를 예측한다는 거겠지만. 트럼프가 대인전인 이상, 심리전이라는 측면은 부정할 수 없다. 심리전이라고 하면 하루노 씨의 독무대다. 카드를 일일이 세세하게 기억하지 않아도, 그걸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라고 하루노 씨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페어끼리 소곤거리는 말은 상담으로 간주해요. ...페널티가 필요할까」

 

 

굉장히 차가운 소리로 유키노시타가 나와 하루노 씨의 대화를 끝내버린다. 그렇다고 할까 패널티라니 뭘 할 생각이야. ...탈의는 진짜로 없음이니까!

 

 

「뭐라고 했니? 히키가야 군.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어머, 혹시 또 벗고 싶어?」

 

「전혀 아니다! 날 변태취급 하지 말라고」

 

「그래? 틀림없이 그 때부터 버릇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그런 씬 여태까지 어디에 있었냐? 어이」

 

 

빤히 보는 눈이라기에는 너무도 귀염성 없는 시선으로 쏘아보는 유키노시타. 아까 전부터 부추기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하루노 씨인 이유로, 꽤나 말려든 감이 반 정도였다.

거기에 다시 하루노 씨가 끼어들었다.

 

 

「아무튼 아무튼 유키노 짱, 이 정도로 눈 꼬리 세우지 마. 그도 그럴 게 유키노 짱... 벌써 이기고 있지?」

 

「헤? 진짜로?」

 

「에? 어, 어째서 알고 있어!?」

 

「.............」

 

 

카드가 안 보이는 나와, 카드가 보이는 유이가하마가 동시에 반응한다. 그에 반해 유키노시타는 무언의 무반응.

 

 

「아직 하트 2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말야. 시즈카 짱이 저렇게 됐고, 가지고 있는 사람은 유키노 짱이겠지? 나머지는 K 2장과 클로버 J로 올라. 그런 느낌일까나?」

 

「...언니의 손에 있는 건 Q 2장과 다이어 4와 A군요. 이미 3은 전부 나왔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더 이상 2세트(二枚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내가 오르면 언니도 오를 수 있어.」

 

 

그러니까 뭐냐고요 이 자매. 언제부터 그런 패 읽기 싸움 하고 있었어. 그보다 하루노 씨도 뭔 소리냐고 말했으면서 제대로 카드 세고 있잖아.

 

 

「내, 내가 알고 있는 대부호와 달라...」

 

 

유이가하마의 중얼거림에 전면동의였다. 나도 이런 대부호, 몰라.

범인들의 한탄에도 아랑곳없이, 하루노 씨는 한 놈 두시기 하고 손꼽아 센다.

 

 

「그런데, 이걸로 나와 히키가야 군이 2승, 유키노 짱과 가하마 짱이 2승. 응, 시간도 시간이고, 다음이 마지막이 되는 거지?」

 

「...그러네. 다음으로 마지막이군요.」

 

「그래?. 아니~, 이렇게 고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왠-지 카드 패가 평소보다 나쁜 기분도 들기도 하고,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라고 말하면서 저를 보지 말아주시겠습니까」

 

 

뭐야, 내가 운을 떨어뜨리기라도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지. 뭐, 부정은 하지 않지만. 나 어지간히 복권 운이라든가 나쁘고. 반면 하루노 씨는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는」 느낌인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이따금 이런 은 스푼을 입에 물고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아무튼, 그래도 좋아요.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

 

 

하루노 씨는 그래도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고, 힐쭉하고 대담하게 웃는다.

 

 

「히키가야 군 탓으로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기도 하고. 거기에 이걸로 내가 이기면, 유키노 짱이라도 불만 없지?」

 

 

그리고 내 쪽을 보며, 한 마디.

 

 

「히키가야 군, 가끔 씩은 이겨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제 5전. 사실상 우승자 결정전.

이쯤 돼서,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를 짓누르려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지독한 수를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대해서는 확실히 유키노시타만을 노린 공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부하의 증가.

이 더블 대부호의 특징은 패를 둘이서 공유한다는 거지만, 그 결과로 1조당 분배되는 카드 장수도 물론 많다. 조커의 장수에도 달렸지만, 원래 여섯 명이서 하면 한 사람당 9장이었던 것이, 3조가 하면 1조당 18장. 단순히 끊어서 생각해도 패는 배로 증가한다.

즉 그건 취할 수 있는 수단도 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단지, 이길 생각이 있다면 취할 수단은 자연스럽게 좁힐 수 있다. 물론 전에 싸운 유희왕이나 지금 모여 있는 사람들도 또 이기기 위해 플레이하고 있으니까, 그 행동은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해도 합리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보통으로 이길 생각이라면.

하지만 그것을, 굳이 배제한다.

 

 

왜 여기서라는 타이밍에 강한 카드를 내서, 어떻게든 좋을 때에 혁명을 일으킨다. 흐름을 읽지 않는 *8자 끊기(8切り), 취지를 모를 *일레븐 백. 정체 모를 패스.

 

※ 8자 끊기(8切り) : 대부호의 로컬 룰. 누가 8을 내면 그 이상의 카드를 낼 수 없게 되어 턴이 종료된다. 승리 금지 패를 피하면서 쉽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룰이 적용되면 8이 사실상 최강 패가 된다.

 

※ 일레븐 백 : J(11)이 나왔을 경우 혁명이 일어난다. 물론 일반 혁명과 마찬가지로 선택이 가능하다. 단, 이 경우는 한 턴만 *혁명 상태가 유지된다.

 

※ 혁명 : 같은 숫자 4장을 동시에 내면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이 일어나면 카드의 강약이 반대가 된다. 즉, 3이 최강이고 4,5.....K,A,2 순서로 약해진다. 단, 조커는 혁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4장을 동시에 내도 혁명을 일으키기 싫을 경우에는 혁명을 발동하지 않아도 된다. 혁명 상태는 그 게임이 끝날 때까지, 또는 혁명 되돌리기(재혁명, 혁명 상태에서 한 번더 혁명이 일어남)이 일어날 때까지 지속된다.

 

※ 대부호의 자세한 룰은 이 쪽을 참고 : http://cjy1000kr.egloos.com/2369944

 

 

당초 나도 따라할 수 없었지만, 도중에 뭐가 목적인지는 어렴풋하게 알아낸 듯한 생각이 든다. 요점은, 유키노시타의 처리 능력에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유키노시타의 전법은 그 기억력과 예측에 의해 성립되고 있다. 예측을 하는 이상 합리적인 사고가 없으면 안 된다. 게임 이론의 대전제는, 당사자가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곳에 있다. 모두가 최선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야말로 합리성이 성립되니까.

하루노 씨는 그것을 망치는 것으로, 유키노시타가 상정해야 할 패턴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있다. 유키노시타의 수단은 유키노시타의 캐퍼시티가 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넘는 부하를 주면 된다, 고.

그건 마치 문화제의 재래 같은 것이었다. 떠맡아 버리는 유키노시타라서 생기는 함정. 현실은 결코 합리성 따위가 문제도 아니라고, 비웃는 듯이 그녀의 부담을 늘려간다. 그녀가 이상으로 삼는 올바름 따위 그림에 그린 떡에 불과해, 그렇게 깨끗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하는 것처럼.

 

 

「..............」

 

 

그런데도 유키노시타는 달려든다. 하루노 씨도 물론 질 생각은 없으니까, 자포자기인 수는 쓰지 않는다. 그 빠듯한 라인을 공격해간다. 그 희미한 줄기를 더듬어, 전략을 만들고 파괴하고, 만들고 파괴하기를 반복한다.

이 정도라면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의 처리능력도 또 빠듯한 라인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 정도라면.

물론, 이 정도 뿐은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그 친구가 말했던 건데. 아, 그 친구라는 건 내가 늘 가는 책방에서 알바하고 있는 애인데...다음, 토츠카 군 차례야?」

 

「에? ...와왓, 미안해요.」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생각해. 그 책방, 약간 바뀌어 버려서...」

 

「............」

 

 

유이가하마는 아마, 이 여행을 좋은 추억으로 하고 싶어서 트럼프 대회를 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물론, 게임 중에 하는 수다를 금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더블 대부호니까, 페어와의 얘기는 다소 제한되지만, 그것도 보통 얘기라면 문제없다. 그런 느슨한 룰인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노 씨가 잡담을 계속 하고 있어도, 물론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주변 플레이어의 생각을 방해한다고 해도.

사실, 별로 하루노 씨가 엄청 시끄럽다는 건 아니다. 유키노시타의 소리와 상당히 비슷한 그 소리는, 시원스러워서 듣기 좋다. 하는 말의 내용도 어떻게든 좋은 것부터 학술적인 것까지 다방면에 걸쳐, 때때로 그 교양을 짐작하게 하는 어조에, 그만 끌려버릴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멈추면 왠지 미안하게 될 정도로.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술. 공간의 분위기를 지배해 버리는 화술. 하루노 씨라는 사람을 알고 있는 유키노시타에게는 그 정도로 효과는 없을 것이다. 셧아웃하면 끝나는 얘기다.

 

다만, 그 표적은, 분명.

 

 

「후에-, 그런가요...」

 

 

하루노 씨의 말에 응응 하고 끄덕이면서, 그 녀석은 패를 살짝 판에 놓았다.

뒤에서 들여다보던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순간 흐려진다.

 

 

「유이가하마 양, 그건」

 

「...후엣!?」

 

「이런 유키노 짱, 그건 상담일까나? 상담했을 경우에는 패널티였지?」

 

 

뭔가 말을 꺼낸 유키노시타를 하루노 씨가 재빨리 멈춘다. 아니, 멈추게 해도 때는 이미 늦었으니까, 이건 아마 단순한 견제일 테지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우...유키농, 미안...」

 

「당신이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말야... 승부는」

 

 

그렇게 말하면서 하루노 씨는 유이가하마가 낸 카드에 패를 겹친다. 그 카드에는 아무도 손대지 않고, 그 카드는 패스된다.

그래, 하루노 씨의 표적은 아마 처음부터, 유키노시타의 파트너인 유이가하마였다.

유이가하마라면, 만들어진 이 판의 페이스를 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룰과 유이가하마의 성격을 역으로 이용한,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책략. 유키노시타는 유이가하마를 탓할 수 없고, 룰에 준거하는 이상 하루노 씨에게 뭐라 할 수도 없다.

다만 이제 실제로, 이것으로 유키노시타가 짠 작전은, 아마 대폭적인 변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녀의 부담을 한층 더 증대시킨다. 어쩌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실로, 유키노시타 하루노다운 지독한 수단이었다. 이상주의자를 비웃는, 현실주의자다운 전술. 그런 이상은 이뤄지지 않아, 세상은 게임 같이 단순하게는 움직이지 않고, 때로는 악의가 없는 아군에게 등 뒤를 찔리는 일도 있다고 타이르듯이, 냉혹한 현실을 들이댄다.

그리고,

 

 

「네, 히키가야 군」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내게 얼마 남지 않은 패를 건네줬다.

전국(戦局)도 대단원이다. 어느 팀도 남은 장수는 3~5장일 뿐.

아니, 그보다 이 패로, 게다가 이 턴 중에 난 이길 수 있다.

손에 든 패에는 A, Q, 거기에 8. 나도 과연 초반의 혁명으로 2와 조커를 벌써 썼던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유키노시타 팀에 의한 혁명 되돌리기로 카드의 강약은 보통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A를 내고 8자 끊기에서 Q, 로 나는 오를 수 있다.

 

 

「.............」

 

 

카드를 건네줄 때 하루노 씨의 표정은 웃는 상태였다.

이걸로 이길 수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기고 싶지, 하고 유혹하듯이.

그래, 확실히 이길 수 있겠지. 이거라면 그 유키노시타라도, 끽 소리도 못한다.

 

 

「...............」

 

 

유키노시타 쪽을 힐끗 본다.

아마 그녀는 알고 있다. 내 손에 있는 패도, 히라츠카 선생님의 패도. 그러니까 알고 있을 터, 내게는 이길 수 없다고...아니, 언니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모든 카드를 기억해 버리는 그녀에게는, 싫어도 그 사실을 알아버리게 된다.

그리고 상상하겠지. 만약 하루노 씨가 초전부터 그 수를 써왔다면, 자신은 1승도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언니는 대충 봐 주면서 자신을 상대했던 게 아닐까 하고.

다만 필시, 그건 아니다. 하루노 씨는 그런 수를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길 수 없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이길 수 있는 확증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부득이하게 썼다. 나를 이기게 하기 위해서. 그런 싸구려 같은 이유를 위해서.

 

 

―――그도 그럴게 봐. 유키노 짱, 깨끗하지 않아?

 

―――깨끗한 건, 망가뜨리고 싶어지지?

 

 

그렇게 유키노시타에 대해서 말했던 그녀. 그 눈동자에 떠올랐던, 애정과도, 증오와도, 질투라고도 할 수 없는 질척질척한 감정을 떠올려낸다. 거울의 저 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듯한, 그리고 마음속으로부터 미워하는 듯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덩어리를.

거울의 저 편에는 결코 닿을 수 없다. 거기에는 차갑고 딱딱한, 절대적인 경계면이 있을 뿐.

그것이 일찍이의 자신이었다고 해도.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 따위는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일찍이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도. 인생의 레일은 외길이다. 그 때 그렇게 될 수 없었으면, 더 이상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의 자신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같은 건, 생각해봤자 부질없는 논의다.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다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

 

 

다만, 그런데도.

그런데도, 사람은 동경한다.

될 수 없었던 것을. 앞으로도 될 수 없는 것을, 동경한다.

그건 딱히, 부정할 필요 같은 건 없겠지.

그것을 계속 품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나무라거나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같은 마음을 품은 적이 있던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히라츠카 선생님」

 

「............응?」

 

 

내가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히라츠카 선생님이 반응했다. 움직임은 둔하다. 그거야 그렇다, 그녀의 팀은 더 이상 이겨봤자 우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기에 연전연패였던 탓인지, 전황이라든가 어떻게든 상관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니, 너무 쳐졌잖아요. 몇 살이야 당신.

 

단지 나는 보고 있었다.

이렇게 되는 건 예측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예감은 있었다. 내 안 좋은 예감은 그 나름대로 맞는다. 그러니까, 나는 보고 있었다.

유키노시타 정도의 기억력도 없으며, 하루노 씨 정도의 장악력 따위 티끌만큼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따위, 진짜 사소한 범인 레벨이다.

그런데도, 1팀 정도의 패라면,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패를 내는 방법에서, 어느 정도 전력을 예측하는 것 정도라면 가능하다. 어떤 것이 남았나 같은 건 모르지만, 그 정도로 불리한 내기가 아니다. 내기인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역시 이런 일 뿐이다. 누구도 행복하게 될 수 없는, 겨우 하나의 깨끗하지 않은 방식. 기만이겠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그런 선택을 하는 건 기만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그렇게 하겠지. 뒷일은 어떻게든 속여 버리면 된다. 나대고 있다, 지금은 반성하고 있지만. 운 좋게도, 패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적다.

나는 힐쭉 웃고,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까 전 누군가가 해 보인 것처럼, 가학적으로.

 

 

「히라츠카 선생님... 이거, 낼 수 있습니까?」

 

 

그리고 패 한 장을 슬쩍 둔다.

그 순간,

 

 

「...역시 히키가야 군은 참,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뒤에서 쿡쿡하고 재미있는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손에는, 다이어 A와 스페이드 8.

 

 

          ×          ×          ×

 

 

문을 열자 전자음과 동시에, 1월 밤의 한기가 뛰어 들어온다.

부석부석 왼손에 든 비닐 봉투가 소리를 낸다. 로고가 새겨진 그 봉투에서, 나는 캔 커피를 꺼내서 오른손으로 잡았다. 추위로 언 손에는 약간만 뜨거울 뿐이다.

 

 

「히키가야, 잠깐 숨 돌리러 가자.」

 

「어...추운데」

 

「아무튼 그런 말 하지 말고, 그리고 *하이볼 꺼내 줘」

 

※ 하이볼 : 위스키에 소다수를 넣고 얼음을 띄운 음료.

 

 

「...게다가 마실 생각인가요.」

 

 

나는 부스럭부스럭 봉투를 뒤져서, 하이볼 캔을 던져서 건네준다. 어이 던지지 마, 탄산이니까 하고 그 사람은 투덜대면서도, 주저 없이 캔을 열고, 내용물이 흘러넘치기 전에 입에 댄다. 주접스럽구만, 진짜.

 

 

「응...춥군, 하이볼 마셨더니 더 춥다.」

 

「당연하겠죠, 그러니까 그만두라고 말했는데...」

 

「괜찮아. 이제 조금이면 따뜻해질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캔을 손에 든 채로, 한 손으로 코트 포켓에서 시거렛 케이스를 꺼내고, 한 개 피를 입에 물며 불을 켠다. 바람이 불어도 안심인 터보 라이터였다. 이런 때만 준비성이 좋다. 그리고 약간 근사했다.

 

 

「몰라요, 그런 건...추워」

 

 

그렇게 중얼대면서 편의점 벽에 기대며, 커피에 입을 댄다. 희미한 달콤함이 입 안으로 퍼진다. 다만 그렇게는 말하지만 캔 커피, 들고 있는 동안에도 온도는 순조롭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니, 미안하구나, 따라 오게 해서」

 

 

후우 하고, 흰 연기를 밤바람에 날려 보내며, 히라츠카 선생님은 방긋 하고 웃었다.

 

 

「아무튼, 저도 약간 찬바람은 맞고 싶었으니까 괜찮지만요. ...이거, 진짜로 지금부터 전부 마십니까?」

 

 

나는 손에 건 봉투를 슬쩍 보고 전율하면서 묻는다.

 

 

「남으면 차에라도 실으면 되지. 일단 내일도 운전하니까, 일본 술은 피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양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 많은 건 아니야, 뭣하면 하나 정도는 눈 감아 준다고?」

 

「교사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요...」

 

 

거기에 별로 술 같은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받은 적이 있지만, 어떻게도 맛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부터 그것을 맛있듯이 느끼게 될까. 그런, 보통 어른처럼.

왠지 모르게 알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히라츠카 선생님과 호텔 주변의 편의점에 술을 사러 와 있었다. 아니 물론, 내가 술을 한 손에 들고 레지에 서는 건 위험하니, 단순한 짐꾼이지만. 그런 건 필요 없다고도 생각했지만, 들고 있는 분량을 합치면 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양을 히라츠카 선생님은 사들이고 있었다. ...이건 이거대로 이상하군.

 

 

「하루노와 다른 애들은 아직 트럼프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제가 있던 때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대부호는 그만하고 포커하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그 승부가 5회전에서 끝나고, 히라츠카 선생님도 빠졌다는 이유로 게임을 바꿨던가. 유키노시타나 하루노 씨는 포커 방식도 아는 것 같아, 모르는 유이가하마나 토츠카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면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나는 베드 구석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때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잡혔던 것이다.

 

 

「트럼프는 오래간만이었다. 수학여행 때도, 내 경우 학생과 섞여서 트럼프보다는 동료와 술잔치니까 말이지.」

 

「하아, 아무튼 뭐라고 할까, 히라츠카 선생님답네요.」

 

 

꽃보다 경단인 사람이겠지. 좀 더 말하면 남자보다 술, 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야 만남도 없어요.

문득 히라츠카 선생님은 작게 연기를 내쉬고, 다 피운 담배를 편의점 앞 재떨이에 누르고는, 그대로 손을 뗐다. 재떨이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는 것 같아, 약간 지-익 하고 소리가 난다.

 

 

「...슬슬 갈까요.」

 

 

그 때가 앞으로 걸어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한, 나는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뗀다.

하지만,

 

 

「아무튼 기다려라. 한 개 더... 안 될까」

 

「...폐 나빠져요.」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아무튼 그건 자기책임이야」

 

 

그렇게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나도 또 편의점 벽에 다시 등을 기댄다. 약간 미지근해진 덕분인지, 등 뒤가 오싹할 일은 없다.

뭐지. 돌아가고 싶지 않나. 뭐- 확실히 그 호텔, 모든 방이 금연이었지. 흡연 장소는 호텔 밖이다. 호텔로 돌아가면 자유롭게 피울 수 없으니까, 그렇다든지?

내가 그런 눈을 향해선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응 하고 담배에서 입을 뗀다. 살랑하고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

 

 

「아-, 뭐라고 해야, 하나」

 

「하아」

 

 

거기까지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꺼낼 말을 찾는 듯이, 긁적긁적하고 머리를 긁었다. 잠시 동안 입을 다물고는, 하나 더 담배를 피워, 가늘고 길게 연기를 토해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 하루노에 대해서다.」

 

「................」

 

 

나는 구태여 끼어들지도 않고,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린다.

 

 

「하루노에게, 고백 받은 것 같던데」

 

「..........누구한테서 들었습니까.」

 

「그거야 물론 하루노 본인이다. 『시즈카 짱, 잠깐 상담할 게 있는데』랬나 그런 느낌의, 평소 상태로 말이야.」

 

「...............」

 

 

아무튼, 그렇겠지. 이 사람이 알고 있었다면, 그 정도 밖에 정보원이 있을 리 없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캔을 기울여, 꿀꺽 하고 삼킨다.

 

 

「그래서... 사실인 건가?」

 

「예, 아무튼」

 

「뭐야 그건. 꽤나 김빠진 대답이군.」

 

 

하하, 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쓴 웃음 짓는다. 그리고 후우, 하고 숨을 토한다.

 

 

「그렇지만 역시 사실이었나. 나는 또 언제나처럼 그 녀석이 나를 속일 생각 아닐까 해서 반신반의였다, 여태껏.」

 

「아무튼, 그러네요.」

 

 

나라도 지금도 반신반의다. 그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장기 스팬(span)으로 몰래카메라를 꾸며도 이상하지 않다. 이제 슬슬 플래카드 들고 『깜짝 대성공』이라든가 듣지 않으면 약간 불안해진다.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닐까 하고, 착각해 버릴 것 같아서.

 

 

「그래도, 그렇다면 진심이다.」

 

「........어?」

 

「그렇다면, 그 녀석은 진심이다.」

 

 

그러니까, 그런 히라츠카 선생님의 확신하는 듯한 말에, 나는 덜컥 했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아니, 라고 말을 자르고, 담배 연기를 들이마신다.

 

 

「아마. 나도 그 녀석이 진심으로 그런 말을 꺼내는 것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으니까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 녀석은, 어느 때도 자신의 본심을 말한 적이 없으니까」

 

「...............」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도, 얼마나 칭찬을 받아도, 그녀는 혼자다. 혼자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녀석은 아무도 믿지 않았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그건 나라도 모른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자신에게 오는 악의 때문에, 혼자가 되었다.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계속 혼자 있었다.

유키노시타 하루노도 그랬을까. 그 많은 사람에게 호의를 받으며, 부러워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그녀도.

나는 상상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다. 그건 유키노시타 유키노에 대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나와 유키노시타 이상으로, 훨씬 멀리 떨어진 사람일 테니까.

하지만 어땠을까.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 그 호의 틈새로 보이는 계산이나 호기심. 그것을 그녀가 깨닫지 못했을 리 있을까. 그 예리한 그녀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는 없다. 눈치 못 채는 것이 허락될 리가 없다. 그녀는 알아버렸겠지. 순수한 호의 같은 건 없고, 그 뒤에 있는 건 계산과 체면뿐이라고. 그리고 그런 시선에 계속 노출되어 물들어가는 자신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히라츠카 선생님께는, 약간은 그, 본심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의 말을 흘리고 있었잖습니까.」

 

「...어떠려나. 아무튼 확실히, 긴장 푸는(ガス抜き) 정도로는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봐, 나도 놀기 좋으니까. 적당히 어울려 줬을 뿐일지도 모르고」

 

 

거기에 내가 관계된 건 학교뿐이니까, 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약간 자조하는 느낌으로 중얼거린다.

학교. 그건 대부분의 학생에게 있어서는, 세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기간 한정의, 좁디 좁은 상자 안.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건 반에도 못 미쳤던 곳일지도 모른다.

 

 

「너도 본 적 있겠지, 하루노가 여동생을 대할 때의 그 태도를. 나도 그 녀석에게는 여러 가지로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런 그녀는 처음 봤다.」

 

 

그 극단적으로 치우친, 무자비하고 가열찬 대응.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하는, 너무나도 위태로운 관계성.

 

 

「그래도 나는, 저게 그녀 나름대로의 애정표현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한다.」

 

 

아무도, 어쩌면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그녀의, 그저 하나 뿐인 감정의 행선지.

거울에 비친, 저 편의 자신.

그녀는 선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혼자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선택됐다. 그러니까 혼자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분신을 미워하며, 그리고 사랑했을 것이다. 깨끗한 그대로인 여동생을, 깨끗한 채로 존재하는 것이 허락된 여동생을.

집착하고―――그리고 동경했겠지.

 

 

「그 둘은 비슷하다고, 그렇게 말했었지?」

 

 

둘은 마찬가지로 위태롭고, 마찬가지로 고독하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멀리 떨어져 있다. 같은 동시에 다른 존재.

 

 

「아무튼, 그러니까 놀랐지만. 그 녀석이 저런 말을 꺼내서」

 

「...거기서 말을 돌립니까.」

 

「2개 째도 슬슬 마지막이니까」

 

 

히라츠카 선생님이 한 번 숨을 들이마시자, 담배 앞이 붉게 어렴풋이 빛난다.

 

 

「네가 그 자매에게, 뭘 했는지는 구체적으로는 몰라. 하루노도 말하지 않았고, 아마 너도, 말할 생각은 없겠지.」

 

 

나는 이번 한 달 정도를 되돌아본다. 내가 말려들어간 그녀와 그녀의 사건을. 그리고 목을 작게 세로로 흔들었다.

 

 

「뭐- 그건 별로 상관없어. 다만 그것이, 그녀들이 관계성을 바꾼 건 확실하다. 나라도 알 정도로는 말이야.」

 

「...저는 아무 것도 안 했다니까요. 진짜.」

 

「그런데도야.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너는 누군가에게 계속 영향을 주고 있다.」

 

「................」

 

 

끝까지 피워버린 것 같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리고, 캔의 내용물을 쭉 들이킨다. 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모습이었다. 뭐- 그건 어쨌든.

 

 

「거기에, 아까 전 그건 뭐야?」

 

「...아까 전?」

 

「아가 전 카드게임에서 말이다. ...너는 일부러 졌지?」

 

「..........게임 중간부터 축 쳐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축 쳐졌으니까. 제 3자가 시비를 더 잘 안다고 잘 언급되지? 5전 째는, 난 방치됐으니까 말이다.」

 

 

역시 쳐졌었나, 너무 솔직하잖아 이 사람.

 

 

「너는 그 때 바로 패를 섞어버렸으니까 뭘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는 이길 수 있었을 터다. 그 게임은 하루노가 충분히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니까.」

 

「............」

 

「이것도 전에 말했었나. 그녀들은 비슷하다, 단지 손에 넣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들은 적은 있네요.」

 

「방법론은 때로는 자신을 옭아매는 거야. 그건 너 자신이, 잘 알고 있잖아?」

 

「...........」

 

 

―――당신의 방식,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런 말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들어봤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그 말은 아직 가슴 속 어디엔가 박힌 채.

 

 

「그리고 그건 별로 너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녀도 그럴지도 몰라. 결국 그렇게 하는 것으로 밖에, 그녀는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은.」

 

「...............」

 

「그걸, 너는 막았어. 그렇게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겨우 게임이에요.」

 

 

나는 어느 샌가 다 마시고 있던 커피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번에야말로 벽에서 멀어져 걷기 시작한다. 밖은 춥고, 커피를 마신 탓인지 한층 더 몸이 차가워졌다는 생각도 든다.

문득 숨을 내쉬는 기척이 난다. 캉 하고,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소리. 그리고 뒤에서 걸어오는 기색도.

 

 

「...너는 변함없구나.」

 

 

몇 번 들었는지 모를, 그 기막힘 섞인 말을 등에 받는다. 그 말에 대해서 나는 특별히 할 말도 없다. 그러니까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계속 걸어갔다.

 

 

「다만 네가 변함없는 것도 또한, 누군가를 구해 왔던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구할지도 모른다. ...교사로서는, 매우 바라는 바는 아니지만 말이야.」

 

 

그 소리는 약간 슬픈듯해서.

역시 나는 뒤돌아본다는 건, 할 수 없었다.



⑥은 유키노 루트입니다. ②도 그렇습니다만.

추가로, ⑥은 전일담으로서 「역시 그와 그녀의 영화감상은 잘못됐다」라는 수상한 타이틀인 SS가 있습니다. Haruta님 주최 「내 맘대로 내청춘 신간 기념제」참가 작품입니다.

꽤 느긋한 페이스가 될 것 같습니다. ⑤-9도 쓰고, 하루노와 하치만의 아이를 보고 싶다든가, 리퀘스트도 생긴다면 해 나가고 싶은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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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유는, 보글, 하고 떠오르는 거품 소리가 묘하게 생생했기 때문이다.

  줄줄이 묶인 거품이 형태가 미묘하게 무너지면서, 천천히 상승해간다. 그 앞에 보이는 희미한 빛에 멍하니 비춰져 흔들흔들 요동치면서. 그래도 확실히, 위로, 위로 올라간다.
  거품은 점점 멀어져간다. 처음에는, 그 모양조차 손에 잡힐 것처럼 알고 있던 그건 조금씩 작아져, 이윽고 모양을 판별하는 것도 어려워져, 끝에는 그 알마저 보이지 않게 되어―――그리고 내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안 보일 정도로 멀리, 가 버렸다.
  혹은, 수면에 겨우 도착하기 전에 부서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행방은 더 이상, 모른다.

  나는 간신히 거기서, 자신이 가라앉아 감을 눈치 챈다. 내가 토해낸 거품이 수면 위를 요구해 올라 간 것처럼, 공기를 잃은 나도 또 깊이를 모를 수중에 떨어져간다, 라고 파악한다.
  사지를 축 늘어뜨려, 느긋하게 가라앉는 대로 몸을 맡긴다. 괴롭지는 않다. 물을 듬뿍 들이마신 옷이 누름돌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깊게, 깊게.
  물고기의 그림자도 없는, 지나치게 맑고 깊은 호수 안을, 나는 똑바로 내려간다.

  ...물론 이건 꿈이다. 꿈이라는 것을, 나는 눈치 채고 있다.
  이런 꿈을 꾼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 있었군 하고 나는 가라앉으면서 멍하니 떠올린다. 묘하게 자각적인 꿈이다. 드물게 있는, 보면서 꿈이라는 것을 아는 꿈. 아무튼 이것도 그 일종이겠지, 그런 것도 있는 거겠지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납득한다.
  그리고 그걸 이해함과 동시에, 그럼 왜 난 계속 가라앉아가는 거냐고, 누구에게 난데없이 물어본다. 아마 자신에게 묻는 걸까. 그 질문에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건 꿈이니까, 당연히 요구하는 쪽이 잘못되어 있을 터인데.
  그런데도 나는 답을 요구하려고 한다. 반 본능처럼, 질문에 대해 대답을 내려고 한다. 그게 올바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대답을 내는 것에 집착해 버린다.

  잠깐의 사고 뒤, 꿈속의 희미한 맥락을 더듬어, 나는 문득 짐작이 간다.
 
 
   ―――내가 가라앉고 있는 이유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어디까지나 바닥을 모를, 빛이 닿지 않는 물밑에 있는, 누군가를.

  나는 근처를 바라본다. 정신이 들자 수심은 한층 더 깊어져, 주위는 빛을 빼앗겨 어둠 속에 쌓여 있었다. 시야가 좁아짐에 따라, 상하 좌우의 방향감이 없어져가는 게 느껴진다. 물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져, 진흙처럼 무겁게, 내 행동의 자유를 빼앗아간다.
  이런 곳에, 누가 있는 것일까. 이런 외로운 물의 바닥에.
  원래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내가 그걸 알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의 손가락 끝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도 않고, 후회도 없이 그 누군가를 계속 찾고 있다.
  앞으로 정말 조금만 잠수하면, 혹은 좀 더 가라앉은 앞에, 분명 그 녀석이 있을 거라고. 근거 없는, 직감과도 같은 확신이 나를 충동질하고 있다.
  나는 어두운 곳으로, 손을 뻗으려고 한다. 편 손의 끝이 어디에 있는 건지마저, 이제 모른다. 얼어붙는 듯한, 무게가 늘어난 수압이 그것을 막는다. 얼음벽처럼, 거부하듯이, 막는다.
  그런데도 나는 천천히 밀어 헤치듯이, 가능한 한 멀리 손을 뻗는다.


  ―――마치, 누군가에게 매달리듯이.

  ―――거기에 그 작은 어깨가, 날씬한 팔이, 가냘픈 손이 있는 것처럼.


  내 손이, 뭔가에 닿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급격히 가슴이 아플 만큼 숨이 막힌다. 마치 숨을 쉬어야 함을 간신히 생각해 낸 듯이, 그걸 소홀히 한 나를, 나 자신이 책망하듯이.
  그런 나머지 괴로움에, 아픔에, 의식을 놓기 조금 전에,


「―――――, ―――」


  기력을 쥐어짜, 나는 누군가에게, 단말마처럼 외쳤다.
  혹은 무력하게, 나는 무엇을, 털어놓듯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호수 바닥에서.
  그건 누군가에게, 닿았을까.

  그리고 꿈은, 뚝 하고 끝난다.


          ×          ×          ×


  예컨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는지. 그런 건, 물론 기억할 수도 없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듯한 게 있던 것 같은 것도 아니고, 즐거운 꿈은 아니었던 생각이 들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 세부는, 너무나도 넓고 넓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무튼, 꿈은 그런 거겠지. 눈이 깨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산해서, 잃게 된다. 막연히 한 조각을 남겨 망가져 버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꿈을 꿀 일은 없을 것이고,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해도, 그건 이미 다른 꿈이겠지.
  꿈은 그런 것이다.

  아니, 그건 현실도 다름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현실도 또, 언제 잃었다고 해도, 망가져 버렸다고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도 어디선가 뭔가가 없어져 뭔가가 망가지는 것이야말로 일반적인 일이며, 이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잃은 건 되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만회할 수 있는 동안은 잃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는 말하지만, 수많은 실패 중에서 싼 프라이드라든지, 경박한 기대감이라든지 비교적 어떻게든 좋은 것을 잃어 온 내 입장으로서는, 의외로 잃어도 상당한 지장은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잃을 뻔해도 세상에서 리트라이 가능한 건 의외로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단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한해서는, 리트라이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망가진 건 그 전대로는 할 수 없다.
  물론 그런 것처럼 고칠 수 있다. 감추고 그렇게 취급하는 건 할 수 있다. 파괴된 여러 부분에서 시선을 돌리고 계속하면, 망가지기 전처럼 행동하는 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세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돈다. 나는 그렇게 애매하게 부숴, 애매하게 숨겨 왔으니까, 경험으로써 그걸 보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숨겼다고 해도, 그 파괴된 여러 부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도 또한 사실이다.―――아니, 그것이야 말로 진실이다.

  그러니까, 그 진실에서 눈을 떼지 않게 될 때까지가, 타임 리미트인 것이다.
  상냥한 기만의 때가 끝나, 지독한 진실의 시간이 시작된다.
  엄연한 사실은, 취약한 허식을 일축한다.
  잃었던 것이 밝혀져, 망가진 부분이 비춰진다.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계속된다고 생각했던 시간은―――돌연 마지막을 고한다.
  잃고 있던 건 올바르게 없어지고.
  망가져 있던 건 완벽하게 망가져간다.

  물론 그런 건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기만이나, 거짓말 류가 싫었던 것이다.
  상냥한 주제에, 달콤한 환상을 흩뿌리는 주제에, 너무나도 무른 그걸 업신여겨 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고 있던 건, 진짜였을 터인데.
  상냥하지 않은 진실에도 견딜 수 있는, 진짜였을 터인데.
  어디서 나는, 잘못해 버렸을까.
  왜 내 손에 남은 건, 이렇게도 기만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너의 방식으로는, 정말로 돕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도울 수가 없단다.


  그건 수단의 문제일까.


  ―――너는 마치 이성의 괴물 같네.


  그렇지 않으면, 내 본연의 자세 그 자체의 문제일까.
  아니, 본연의 자세가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면, 그 문제의 근원은 같은 거겠지.
  나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혹은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그걸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번 대답을 내고―――그 결과 오인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오인한 채로―――정답을 끌어낼 수 없다.
  손에서 떠난 회답권(回答権)은 아직도 돌지는 않고.
  뭣보다, 정답을 모르니까.

  다만, 이것만은 알고 있다.
  아마 여기부터 계속되는 이야기는, 되찾는 이야기도, 수복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잃고, 망가지는 이야기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分かっている)기보다는, 지각하고 있다(知っている).
  내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혹은, 내가 그녀를 빠뜨려버리고 만 상황은.
  일찍이 내가 쉽게 부숴, 그녀가 계속 규탄해 온 세계와 같은 거니까.
  틀림없는, 유사품이니까.


①변함없이, 히키가야 하치만은 봉사부로 향한다.

  뭔가 지독한 꿈을 꿨다.
  내용 같은 건 기억나지 않지만, 이 식은 땀의 양은 심상치 않다. T셔츠도 메리야스도 질척질척이다. ‘내 방만 스콜이라도 내린 거 아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습기가 축축한 상태였다. 싱싱함이 넘쳐흐르는 남자는 좋다지만, 실제 젖은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 땀이라든가 비 때문에 비쳐도 좋은 건 여자의 윗도리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통상판이 좋아요. ...무슨 얘기였지? 나도 몰라요.
  다행이었던 건, 그 지독한 꿈 덕분에 꽤 아침 일찍 깬 것이었다. 나치고는 기적적인 기상시간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샤워하고 밥 먹어도 충분히 등교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창문을 바라보면, 아직 밖은 어슴푸레하다. 동지가 가까워지는 중, 해 뜨는 시간도 또한 늦어지고 있다. 야행성인 나로서는, 활동시간이 늘어나 이득 본 기분이 들지만, 아침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어떻게도 나른함이 가시지 않았다.
  우선 달라붙은 옷 그대로, 비틀비틀하며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우오오, 추워. 땀이 복도의 서늘한 공기에 닿아 몸에서 열을 빼앗아간다. 몸을 팔로 감싸서, 약간이라도 체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다리를 계단 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계단 아래의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어라, 이 시간이라면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발소리에 조심조심하면서 거실로 내려가자, 거기에는 여동생인 코마치가 있었다.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코마치는 앉은 채로 휙 뒤돌아본다.


「좋은 아침-.....근데 어라, 오빠 빠르네?」

「좋은 아침....너야말로, 꽤나 빠른데」


  코마치는 파자마 위에, 분명히 맞지 않은 플리스를 겉에 걸쳐 입고 있었다. 그보다 그거 내 거잖아. 아무튼 확실히 다이닝 의자에 걸쳐 놨었지만.


「......뭐 해, 이런 아침 일찍부터」


  내 질문에, 코마치는 책상 위에 늘어놓은 것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방금 일어난 나와 달리, 의식이 상당히 뚜렷한 것 같았다.


「아니~, 이른바 아침활동이라는 거예요. 아침 시간이야말로, 유용하게 쓰지 않으면 그치!」

「......과연, 공부하고 있었나」


  보면, 거실 책상에는 학교의 텍스트나 프린트,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뭔가 우선 늘어놓으면 된다는 듯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배열이, 코마치답게 허술한 마무리였지만, 공부하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노트에는 둥글둥글한 글씨로 연습문제를 푼 흔적이 보인다.


「아아....뭐, 확실히 수험도 막바지구나」

「아무튼-그러네-」


  이런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방식은, 실천적이고 효과적이겠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라면 조용하고 방해하는 것도 없다. 뭐 나라면 아침이 아니라 심야를 택하겠지만. 오전 1시 반 정도까지 공부하고, 그대로 심야 애니 시청하고 자는 게 내 중학생 시절의 공부 스타일이었다. .....애니가 엄청나게 방해하는 감이 있군, 다시 생각해 보면.


「뭐야, 학원인가 뭔가가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어?」


  혹은 진학 세미나 시험책자 같은데 써있나. 저거 굉장하지, 진학 세미나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리얼충 라이프를 마구 달리는 걸. 여친이 생길 때까지, 같은 말도 있던 것 같은데. 나 공부 노력했지만, 그런 식으로 되지 않았던 건 진학 세미나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가. ....그럴 리 없지.
  뭐 어쨌든 코마치 성격을 볼 때, 뭔가에 영향 받았던 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으응?, 아니에요?」

「틀렸나, 그럼 역시 진학 세미나?」

「진학 세미나? ....왜?」


  그것도 틀렸나..... 그럼 텔레비전이나 잡지 같은 건가.
  비교적 어떻게든 상관없는 일에 내가 생각을 돌리고 있자, 코마치는 시원스럽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하루노 언니가 해 보면 좋다고 해서」

「.........왜」


  왜, 거기서 그 이름이 나와.
  하루노 씨. 유키노시타 하루노. 내가 속한 봉사부장,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언니.
  솔직히, 저혈압인 아침 시간에 등장해 줬으면 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내 군소리에 코마치는 의리 있게도 반응을 돌려준다. 펜을 턱에 가볍게 대고, 위를 보면서 떠올려내듯이 설명한다.


「응-, 전에.... 오빠한테 전화 한 적 있었지?」

「아아.....뭐어, 있었지」


  저건, 남매 싸움 한창 중이었던 그 때 말이군. 심적으로는 최악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저런 전화 받은 탓에, 한층 더 똥통에 빠진 감도 있고.
  ...아니, 분위기라든가 뭔가를 읽은 다음, 그걸 휘젓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걸 계기로 몇 번이나 메일 교환도 했었어. 하루노 언니도 소부고 OG 지? 수험에 대해서라든가, 상담해준다든가 해서」

「그러고 보니 그렇군. 아니, 하지만 그러면 그 밖에도......」


  그 밖에도 상담상대 정도.....아, 의외로 없을지도 몰라. 유키노시타는 코마치의 캐퍼시티를 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것 같고, 유이가하마는 내 안에서는 기적으로 합격한 타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음 거기에 나와는 냉전 중이라 말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러면 뭐, 타당한 선택지려나.
  하지만 하루노 씨인가..... 뭔가 쓸데없이 불어넣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 사람도 그 사람대로 캐퍼시티가 높으니까, 통째로 삼키지는 마」

「알고 있어, 하루노 언니도 그 부분은 제대로 생각해 주는 것 같고」


  그러면 그걸로 좋지만. 아무튼 그 사람이라도 계산만 능한 게 아니라, 평범한 친절심은 약간은 있는 것 같고. 그보다, 있었으면 좋겠고. .....어, 있는 거지? 불안하군, 어이....
  나는 그런 희미한 불안을 졸업과 함께 뿌리치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나, 샤워 하고 올 테니까.....」

「샤워? 목욕타월이라면 세면소에 있어」

「응, 알았어.」


  갈 때, 소파에 카마쿠라가 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코마치가 일찍 일어났으니까 같이 내려 왔겠지. 코마치 방에서 자는 일이 제법 많고. 뒤집으면 부드러울 것 같은 배를 드러내고, 후스-후스-하고 태평하게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넌 고민이 없을 것 같구나.
  그 배를 스윽스윽 쓰다듬고 나서, 나는 욕실로 향했다.


          ×          ×          ×


  샤워 씬은 컷이다. 솔직히 아무에게도 득이 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뭐, 샤워를 할 정도로 식은땀을 내게 한 꿈에 시달렸던 것도, 혹시 어제 사건이 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다. 어제의 만남 이후로, 여러 가지 생각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어제. 유키노시타의 볼 일 등으로 드물게 동아리가 빨리 끝나, 왠지 모르게 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간, 어제.
  우연이란 무섭게도, 나는 언젠가와 같은 시추에이션으로, 다시 그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조우당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당한 이상, 아니나 다를까 여러 군데 질질 끌려다녔지만.


  ―――히키가야 군, 멋대로 시시해지면, 안 돼요.


  이별할 때 그녀가 던진 그 말이, 묘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걸까. 내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 정도 스스로 생각하세요 같은 말을 듣고, 그 뒤에 다소 고분고분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의 생각 같은 건 도통 알 수 없었다.
  단지 아무튼, 그 비난의 화살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내가 관련되어 있고, 한편 하루노 씨가 관심을 가질 화제 같은 건,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봉사부에 대해서―――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키노시타 유키노에 관해서.


「...............」


  학생회 선거와 관계된 그 한 건 이후로, 벌써 일주일과 며칠이 지나 있었다.
  내가 그녀와 그녀의 회장직 입후보를 저지해서, 「봉사부를 지켰던」 그 날부터.
  그 날 이후로도, 봉사부는 평소대로, 무사히 계속되고 있다.
  수학여행 이전의 일상을 되찾은 듯이, 방과 후에 정해진 시간에 왠지 모르게 시작되어, 대체로는 아무 일 없이, 때때로 소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속이면서.
  ...그래.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알아버렸다.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 이하의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소리를 들은 때부터. 그녀의 표정을 보게 된 그 때부터.
  아직도 그것이 뭔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렸다고. 되찾으려고―――뺏어 버렸던 것이라고.
  그 결론만이, 사고를 앞질러 내 직감 같은 것에 호소하고 있다.
  ...아니, 아마,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 잘못하지 않은 거지?


  아마 그녀도. 왠지 모르게지만, 깨닫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세 명은 일주일 이상이나 똑같이 반복할 수 있다.
  머리 한쪽 구석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듯이, 무의미하게 무의의(無意義)를 겹치는 듯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건 옆에서 보면 어느 의미 공범같이도 보인다. 뭔가가 드러나지 않게, 탄로 나기를 두려워하면서 지내는, 공범관계.
  ...뭐가 죄였을까. 어떤 실수를, 저지른 걸까.
  나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몇 번이나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한 것을, 다시 떠올려 낸다.
  나는 한정된 리소스 중에, 아마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실현할 생각이었다. 결코 칭찬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던 건 확실하지만, 그 나름대로 드러나지 않도록 빈틈없이 회피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누구나 상처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 그것을 바라는,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그것을 바라는, 자신을 깨달았으니까.
  오더는, 모두 만족시켰다고 생각했다. 의뢰인의 고민을 해소하고, 추가 조건도 클리어했다. 봉사부의 존속을 말려들게 한 그 사건은, 이걸로 끝날 것이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만히 수습할 터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아무래도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죄악감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아요.


  내가 저지른 건, 그녀들에게는 들킨 것 같다.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반년이나 같이 동아리를 하면 알겠지. 들키지만 않으면 돼, 추궁 받지만 않으면 된다는 방식은, 주변에는 통해도 그녀들에게는 통하지 않았겠지. 결과적으로 나는, 적어도 한 사람, 상처 줬다. 나를 향한 쓰라릴 정도의 상냥함이 아마, 그 증거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냥한 말 같은 것을 바랄 생각은 털 끝 만큼도 없지만, 평소같이 나를 매도하지도 않고, 규탄하지도 않고, 단지, 침묵해 버렸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녀에게 아무 질문도 듣지 못하고 있다. 평소처럼 독설은 두드리지만, 그 건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입에 내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건 말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나. 그녀에게 무엇을 주고, 그녀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버렸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피스를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너무나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있다는 생각 그 뿐이었다.
  동경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데도 잘못 읽었다.

  예컨대, 다.
  예컨대―――왜 그녀가 해결책으로, 자신의 회장직 입후보를 선택했을까.
  그녀는 효율을 중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누군가의 변명처럼.
  나는 언니에 대한 대항심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 과중한 책임감에 움직이게 된 탓이라면.
  그 모든 것이 실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의 주관에 따르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가 학생회장에 적임이겠고, 내가 보는 한 그 자매 사이에는 외부인을 접근시키지 않을 정도의 갈등이 있는 것도 확실하다. 언니의 그 지나친 간섭에 여동생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도, 말하지 않았을 뿐으로.
  거기에 그녀의 본심이 섞여있을 가능성을, 당시의 난 검증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그 결말을, 바라고 있었다는 가능성.


「................」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새로운 의문이 끓어오른다.
  그 이유다.
  그녀가, 학생회장이 되려고 하는, 적극적인 이유.
  아니 이 경우, 적극적, 이라는 말을 쓰기도 어렵다. 어쨌든 그녀가, 내 말 정도로 간단히 입후보를 취소했으니까. 내 책략으로, 문제도, 움직일 이유도 사라졌다고, 그녀는 말했을 터다.
  그 정도의 이유일까. 타인의 말에 묻혀버릴 정도의, 이유였을까.
  그렇지 않으면―――그건 시초였을까. 뭔가를 바꾸려고 했던, 그녀의.
  그렇다면, 그것의 싹을 제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는 게 된다.
  그 행동은 무엇을 위해서.
  그 행동은 누구를 위해서.
  어쩌면―――


「―――빠, 오빠는 참」

「...........어?」


  그렇게 말한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뭔가가 미끄러져서 테이블에 부딪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본다. 스테인리스 포크였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는 테이블에 늘어놓은 야채 볶음과 토스트. 그리고 우유.
  그리고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코마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코마치」

「...그건 이쪽이 할 대사야.」


  빵 조각이 붙었어, 라며 코마치는 테이블 너머로 몸을 내밀고, 내 입가에 붙은 빵 조각을 손으로 집어서, 책상에 놓여 있는 신문지로 만든 쓰레기통에 버렸다.


「애가 아니니까 그만 둬, 부끄러워.」

「....아까 전부터 부슬부슬 흘리면서 먹고 있는 게 보이니까, 손도 가요.」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는 다시 식사하기 시작했다. 우물우물하고 야채 볶음을 입으로 옮긴다. 나도 따라서 볶은 캐비지를 입에 넣었다. 담박한 간장 맛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코마치가 아침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있었으므로, 같이 먹자는 흐름이 되었군, 그렇게 입을 움직이며 떠올린다. 코마치는 뭔가 말하고 있었는데.... 생각나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코마치가 야채 볶음을 평정하고 포크를 두고, 내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그 눈은, 조금 전과 다름없이, 뭔가 애처로운 것을 보는듯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나는 입 안의 토스트를 우유로 흘려 넣는다. 푹 한 숨 돌리고, 토스트 접시 구석을 바라본다.


「...뭐가」

「뭐가가 아니잖아.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내 얼굴, 언제나 어두컴컴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말야」


  ...거기는, 부정하지 않네. 나는 무심코, 쓴 웃음을 짓는다.


「그건 어쨌든지간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아니. 아무 것도」


  그래, 아무 일도 없다. 코마치가 전에 똑같이 물었다, 그 수학여행 뒤 이상으로 아무 일도 없다. 의뢰는 달성되고, 나 자신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 없이 사태는 수습됐다. 요새 드물게 본 깔끔한 해결 아니었을까. 사전 준비하는 데는 여러 가지로 고생했지만.
  하지만 코마치는 납득하지 않는다. 그것도 또, 전과 같았다.


「그저께 정도까지 보통이었는데. 어제 돌아왔을 때부터, 뭐라고 할까...」

「..........」


  내가 놀란 건, 코마치가 어제부터 내 변화를 눈치 챈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그저께 정도까지 보통이었다, 고 판단한 것이었다.
  코마치는 나를 잘 보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뭐어 집에 돌아가면 싫어도 얼굴을 맞댈 것이고, 그런 상태로 관찰력은 15년이다. 그 코마치가, 그저께까지의 나를 보통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나는 보통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이미 익숙해지기 시작했을까. 뭔가 잃어버린, 그렇지만 변함없이 미지근한 물로 기분 좋은 그 장소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 뭐지」


  나는 그 걱정을 떨치듯이, 다른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길 어떻게 벗어날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달 단위로 남매 싸움을 하고 싶다고는 생각지 않고. 여동생에게 냉대 받으면 역시 힘든 걸.


「어제.... 유키노시타의 언니와, 우연히 만나서 말이야.」

「하루노 언니를?」


  잠시 생각하고 나서, 결국 난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사실 만을, 말하기로 했다.


「치바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라나. 그렇다고는 해도 여러 가지로 시달렸어. 알지?, 그 사람과 관련되면 지쳐, 진짜」


  변덕의 권화 같은 사람이니까. 그걸 할 정도의 스펙이 있어서, 충고조차 할 수 없다. 미래에 그 사람의 남편이 될 사람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는 레벨. 절대로 엉덩이에 깔리겠지. 그렇다고 할까 그런 용자 있는 건가.


「응-, 코마치한테는 그런 정도는 아닌데........」

「너, 왠지 궁합 좋은 것 같은데..... 거기에 한 번 밖에 대면하지 않았잖아」


  거기에, 휘두를 상대는 선택하고 있겠지. 휘둘러도 불평하지 않는 녀석이라든가, 불평하는 녀석이라도, 휘두르는 보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휘두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뿐? ...하루노 언니한테 뭔가 들었다, 라든지?」

「그거야 뭐, 얘기 정도는 하는데」


  나도 과연 장식물이 아니니까 말이지. 말을 걸면 돌려줄 정도의 기능은 붙어 있다. 그 기능이 의외로 시간 때우기에는 딱 적당한 것 같다, 하루노 씨의 말로는. 뭐- 비꼬는 거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알잖아, 하고 싶은 말」


  물론, 알고 있다. 여동생이 하고 싶은 말 정도는, 나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하루노 씨에게 들은 말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냐 하면, 역시 미묘했다. 그녀가 뭔가를 시사했던 건, 확실하겠지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말이 많긴 하지만, 장황하지는 않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필요 이상으로 설명할 사항이 아니고, 까딱 잘못하면 이쪽이 의미를 파악하기에 위험한 것도 많이 있다. 물론, 일부러 애매하게 흐리고 있겠지만.
  그러니까, 그녀가 하는 말은, 항상 시사하는 말이다. 불꽃놀이에서 만났을 때도, 후미에서 말을 주고받았을 때도, 똑같이. 마치 이 쪽을 시험하듯이. 이해할 수 없다면 전달되지 않아도 상관없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야마의 데이트에 말려 들어갔을 때, 여동생과 대치한 그녀는, 약간 다른 것 같았다. 그건 평소의 여동생에 대한 참견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가열차고 직설적인 말이다. 그 뒤, 유키노시타는 학생회장을 스스로 맡는다는 수단을 택하기로 했었나.
  아니, 잠깐.
  생각해보면, 자신이 학생회장이 된다는 선택지를 처음으로 유키노시타에게 제시한 사람은, 하루노 씨라는 셈이다. 전 학생회장인 시로메구리 메구리 선배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유키노시타에게 그렇게 말했던 적은 없었다. 하루노 씨와 대치하기 전까지, 유키노시타가 대립후보를 내세운다, 는 수단을 택했고.
  그 말에 대해, 유키노시타는 어떻게 대응했었나.

 
  ―――그래. 그런 거네.


  그걸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납득한 듯이,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나와 코마치가 남매 사이에서만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처럼. 그녀들의 사이에서도 그것이 성립했던 가능성은 없을까.
  무서울 정도로 학생회 선거규약을 자세히 알고 있던 유키노시타.
  회장직 입후보라는 선택지를 명시한 하루노 씨.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의지는 어디에 있을까.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들은 복잡하게 얽혀서, 그 결말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오빠」


  문득 정신 차리자, 코마치는 울 듯한 얼굴을 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녀석의 눈물 같은 건 오랜만에 봤군, 이런 어울리지 않은 감상을 어렴풋이 품는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있었던 것을, 간신히 깨달았다.


「아.....저기, 뭐야... 미안」

「....미안한 건, 아닌데 말야」


  코마치는, 슬픈 듯이 눈을 내리며 중얼거린다. 나도 또, 눈을 어디에 둘지 곤란해 벽시계를 바라본다. ...슬슬 출근해야 할 부모님이 일어날 시간대다. 이런 시간에, 여동생과 둘이서 밥 먹고 있다는 것도,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꽤 드문 상황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나는 코마치 쪽으로 몸을 돌린다.


「...코마치」

「역시, 잘 되지 않았지, 그 때」

「..............」


  코마치가 말한 「그 때」는, 어제 사건이 아니라, 아마 일주일 이상 전의 일을 가리키고 있다는 건, 바로 알았다. 어제까지, 나는 보통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서, 다.
  다만, 예감은 들었겠지. 내가 책략을 짜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 녀석만은 끝까지 심각한 표정이었으니까.


「그 뒤에 오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왔지만. 실제 언제나 대로였는데.... 뭔가, 다른 걸」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겠지.」

「그래도, 그 때, 코마치가 확실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를 말하게 해선 안 된다. 이 녀석이 떠맡을 것 같은 건, 1mm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녀석은 내가 바랐기 때문에, 이유를 줬을 뿐이니까.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문제는 문제로 인정되지 않는 이상, 문제는 되지 않아.」

「...그렇게, 오빠는 누구한테도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는 거야?」

「.............」

「하루노 언니한테 뭔가 들은 것만으로, 이런 식으로 되는 주제에, 아무 일도 없다고?」

「................」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어떤 보상도 주지 않은 나는, 그 정도 밖에 책임질 방법이 없으니까.
  잠깐의 침묵 뒤, 코마치는 툭하고 중얼거린다.


「역시, 오빠는 오빠네」

「...그거야 그렇지」


  인간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잔재주를 바꾸든가, 스타일을 바꾸든가, 나라는 인간이 변함없는 이상, 나는 내 나름의 방식을 관철할 수밖에 없다. 책임지는 법도 마찬가지다.


「그럼... 다른 사람은, 좋아요. 좋지 않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줄게.」

「.............」

「그래도, 코마치는 오빠의 여동생이야.」

「.............」


  그건, 모든 억지론을 뭉개는, 한 마디. 모든 이유에서 의미를 빼앗아, 모든 이유가 되는 말. 그건..... 바로 최근, 내가 억지로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코마치한테는 말해 줘. 무슨 일이 있어도, 으응, 무슨 일이 없어도」

「........알았어」


  그리고, 나는 겨우 꺾였다. 꺾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너한테는 말하고, 아무 일도 없어도..... 뭐어, 정리되면, 말할 테니까」


  지금은 아직, 뭘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른다. 너무도 불확정한 요소가 너무 많다.
  내 대답에, 코마치는 끄덕였다.


「응. 아무튼 그걸로 좋아요.」

「거기에, 너를 화나게 하면 뒷일이 성가시니까 말이지」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간신히 코마치의 얼굴에, 아주 약간이지만, 미소가 돌아왔다. 거기에 이끌려, 나도 약간 미소를 되찾는다. 아무래도 아직, 나는 그것을 잃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접시를 포개고 일어선다.


「밥 먹었고, 앞으로 30분만 재워 줘. 깨워주면 좋겠어.」

「에~, 오빠도 공부하자? 모르는 문제 있는데」

「수학은 나한테 묻지 마」


  코마치의 머리를 펑펑 쓰다듬고, 한 번 하품한 뒤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다고는 말했지만.
  아마, 뭔가가 일어날 거라는 예감은 있었다. 술렁술렁하고, 머리 구석이 술렁이는듯한 감각.
  나는 어제, 하루노 씨를 만나버렸다.
  요새 뭔가가 일어날 때 반드시 그 조짐을 느낀다, 그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우연히도 조우해 버리고 있다. 길조라든가 흉조라든가 미신 같은 것을 입에 담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사람은, 전에도 생각했던 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람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꽤나 생각이 헛돌아 버렸지만. ...아무튼 기분전환도 적당적당히, 라고 했었나.
  그리고 겨우, 나는 텐션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가족이라고 할까.... 여동생이라는 건 역시 소중.


          ×          ×          ×


  12월도 2주로 접어들어, 비교적 온난 기후인 우리의 치바도, 현격한 겨울 추위를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라, 치바 열대 아니었어? 봐, 야자나무라든가 열리고 있고... 그런 말을 매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현실은 비정하다.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통학 중에도 찬바람이 씽씽하고 내 뺨이라든지 손이라든지, 노출된 부위에 가차 없이 내뿜는 요즘. 위험해. 추워. 위험하게 추워. 추가로 이 시기는 디스티니 씨(Sea)인가 뭔가도 바람이 굉장하다. 그러니까 어린이 동반으로 가면 애의 텐션이 오르는 건 보증. 또한 데이트로 가면 허술한 장비와 각오로는 싸움나는 일도 보증. 그러니까 부디 리얼충들에게는 디스티니 씨(Sea)를 추천한다. 좋은 시금석이 된다고, 반드시.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평소처럼 시립 소부고에 도착한 나는, 으-부들부들하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물론 내 신중함이 그렇게 시킨다. 누군가 들어버리면 그 사람 불쾌할 테고, 그렇게 불쾌하게 되면 아침부터 내 텐션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게 된다. 모처럼 약간 회복한 기분이고, 약간은 소중히 하고 싶었다.


「...............」


  누구에게 인사하는 일도 없이, 스윽 하고 자신의 자리까지 최단거리 루트대로, 착석과 동시에 팔베개로 푹 엎드린다. 내가 보기에도 완성된, 퍼펙트 아싸 행동이었다. 오늘같이 수면 부족인 날에는 이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역시 30분의 추가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여기에 앞으로 어느 정도 휴식을 추가할 수 있을까, 그 1분 1초가 생사를 가른다.
  교실 안은 밖이 추운 점도 있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런 좁은 공간에 40명이나 넣고 소란스러우면 이런 온도도 되겠지. 하지만 아무튼 겨울철, 특히 자기에는 마침 좋았다. 몸이 차가워져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냉장고가 뿜는 열로 자는 카마쿠라를 이미지하면서, 나도 또 타인이 내는 열을 잘 이용해서 눈을 감는다. 와글와글하며 말하는 교실내의 소란도, 2년 가까이 들으면 훌륭한 자장가다. ...나, 지금 굉장히 에코적인 존재 아닐까. 청춘의 부산물로 푹 숙면 법. 특허 신청하고 싶어졌다.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군. 자각은 있다.
  코마치 가라사대, 내가 상태 나쁠 때는 평소 이상으로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는 것 같고. 그건 의외로 맞을지도 몰랐다.
  청춘을 경멸하고, 청춘을 우롱하고 비웃는, 그런 자신을 확인하고 있는 듯이.
  그런 자신은 싫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분석해버리는 자신이 싫었다.

  좀처럼 잘 수 없는데, 그걸 한 층 더 방해하듯이, 귀에 익은 소리를 귀가 마음대로 캐치해 버렸다.


「으-응, 난 어디라도 좋은데.... 그것보다, 언제 하는 거야? 다음 주말이라든가?」

「그러네-. 우선 예정 비워두지 않으면. 유이는 다음 주말이 좋아?」

「응, 지금은 비었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안다. 유이가하마 유이다. 또 한 사람은... 아마, 에비나 양이라고 생각한다.
  리얼충 그룹에 속한 두 명은, 평소의 장소에서 다른 멤버와 어딘가에 가자는 의논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에비나 양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다음 주말이라면 크리스마스 전인 걸. 떠들고 싶어지기도 하겠지, 패거리들은.


「토베 군은?」

「아니- 그게, 왠진 모르겠는데 요새 이로하스가 잡일을 떠넘겨서 말이어-... 좀 이로하스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할까」


  토베, 너 또 그 후배한테 부려먹히고 있는 거냐... 학생회도 아닐 텐데. 게다가 예정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얼마나 길들여진 거야... 이로하스라는, 잇시키 이로하... 저번 주 학생회장에 임명된 후배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저건 저거대로, 메구리 선배 못지않게 사람 부리는 재주가 있는지도 모른다.
  토베의 푸념 섞인 대답에, 에비나 양이 흐-응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래? 토베 군 바쁘네」

「앗, 그래도 내일은 진짜 물어 볼 테니까! 절대로 물어보니까!」


  토베 군 큰일이구만-. 새해를 앞에 두고 인기잖아. 하지만 마음속 상대에 한해서만큼은 토베에게 흥미 없을 것 같은 게 또...아무튼, 토베니까 상관없나.
  그 뒤도 에비나 양은 야마토와 오오오카 (아마 맞다)의 일정을 차례대로 묻고,


「하야마 군은? 다음 주말이라든가」


  그렇게, 하야마 하야토에게 묻는다.


「...그러네. 하루 종일은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아마 오후부터라든가 된다고 생각해-. 그러면 문제없어?」

「오후부터라. ...미안한데」

「괜찮아 괜찮아, 하야마 군 바쁜 것 같고」


  ...고등학생 주제에 연말 바쁘다든가. 뭐야, 인사 돌기라도 하는 거야? 햄 돌리는 사람처럼 연말 선물 가지고 돌아다니고 있어?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햄이라면 그거야 인기겠구만.
  팔에 둘러싸인 비틀린 사다리꼴의 시야밖에 없는 나는, 하야마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랄까 차분하고, 한편으로는 상쾌함을 잃지 않은, 메스꺼울 정도로 평소대로인 하야마 하야토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아마, 평소대로 붙임성이 좋은 스마일을 띠고 있겠지.


「...........」


  뭐어 그건 됐다. 우선, 하야마에 대해서는 그거로도 상관없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에는―――뭐- 보이지 않지만―――한편으로, 하야마 왕국은 오늘도 통상 영업처럼 보인다.
  다만―――


「그렇대 유미코, 다음 주말로 좋지 않을까?」

「............」

「유미코? 어-이」

「........후엣!? 나-아(あーし)? 그러니까, 에비나.....뭐가?」

「아니, 그러니까 다음 주말에 말야....」

「...다음 주말에, 뭔가 있어?」

「에, 유미코 듣지 않았어?」

「그나저나 어----이 진짜야-. 진짭니까 미우라 양-!」


  ...그래, 다만 문제는, 눈에 보이는 문제는, 미우라 유미코였다.
  미우라라고 하면, 하야마 왕국, 즉 클래스 카스트 1위 그룹의 한 쪽을 담당하고 있다. 세로 롤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다리를 꼬아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거만하게 여자를 줄세우는, 옥염의 여왕. 그 제멋대로임과 위압감과 이따금 보이는 엄마 요소로 이 클래스에 군림하는 여학생이다.
  그 미우라가 뭔가 이상한 거라도 먹었는지, 요새 상당히 점잖은 것이다. 아니, 점잖다고 할까, 툭 터놓으면 이상하다고 할까.
  아까 전의 얘기도 그렇지만, 안 듣는 것처럼 보이는 미우라는 그런대로 듣고 있어야 할 터이다. 중간에 토베의 무른 태도와 잇시키에게 할 대답을 깔아뭉개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테고, 하야마에게 하루를 전부 비우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터다. 마음 내키지 않으면 마지막에 에비나 양이 세운 계획을 뒤집는 것도....아무튼, 나중에 보충은 하겠지만, 할 수 있을 터.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보다, 건성. 듣지 않았다고 할까 꽤나 심하다.

  ...아니, 아무튼, 나는 그게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는 알고 있지만.
  지난달 후반정도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주 금요일.

  여러 가지 있었으니까 싫어도 기억하고 있다. 하야마에게 이끌려, 하루노 씨가 부추겨서 하게 된 더블데이트. 의미 없는 이야기. 의미가 내포된 침묵.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던 행동. 나는 단순히 불쾌해진 게 아니라, 그 남은 의미의 함유량에 기분이 나빠진 게 아닐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나오지 않은 말에 대해서.
  ...그건 우선 놔두기로 하고.
  그 도중, 더블데이트 한 중간에, 우리들은 우연히 만나 버렸다. 아니, 나는 상관없으니까... 하야마와 미우라는 만나 버렸던 것이다. 아무튼, 하야마가 눈치 챘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미우라가 이상해진 건, 아마 그걸 분기로 그랬을 것이다.
  에비나 양의 보충이 효과가 있었는지, 한 때는 꽤 회복하고 있었을 텐데, 저번 주 쯤부터 다시 아까 전 같은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하야마가 있을 때, 그것이 현저하다.
  ...뭐라고 할까, 알기 쉽다고 할까... 반대로 모르겠다.
  과연 약간은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는 걸까. 하야마가 그 뒤 데이트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까지는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하야마와 그 상대가 그만큼의 관계성이 있지 않았던 것 정도는, 왠지 모르게 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 라는 것이 약간 의문이다. 벌써 그 상태에서 빠져나와, 평소처럼 복귀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


  아무튼, 미우라의 상태가 이상한 건 최근, 나나 그룹 일원들뿐만이 아니라, 클래스 안에서도 눈치 채이고 있는 감이 있는데. 특히 여자들에게. 어느 쪽이냐 하면 저 쪽 그룹이다. 귀신이 없는 틈에 뭐라도인가, 미우라가 조용한 기회를 틈타 기세를 올리는 감이 있다. 과연 사가미, 그 녀석은 변함없구나....
  어쨌든, 여왕의 침묵으로 그늘을 보인 하야마 왕국을, 냄새 맡은 하이에나 같은 제2 세력이 계속 대두되고 있다, 라는 것이 이 2-F 전국시대 현상이었다. ...뭐-, 죽을 정도로 어떻다고 한들 상관없지만.
  그럼 왜 또 내가 그런 소식통같이 말하고 있는가 하면, 한가하니까 싫어도 눈에 들어온다는 게 이유 중 하나다. 바란 것도 아닌데, 이것저것 그 일당들과도 여러 가지 일이 있던 것이고,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눈치 채게 된다.
  그리고... 아무튼, 약간 걱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아니, 미우라가 아니고.


「.........유미코」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도 상냥한, 누구라도 걱정하는 듯한 호인이.
  그 상냥함이, 발목을 잡지 않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신경 쓰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아무튼, 그런 것보다 자신을 어떻게든 하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          ×          ×


  홈룸 끝, 방과 후를 알리는 벨이 울린다.
  통제되던 웅성거림의 볼륨이 마구 올라, 클래스 내에 무질서한 이야기가 난무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모여서 돌아간다든지 저기에 모인다든지 동아리의 선배가 어떻다든가 고문이 이렇다든가 입만 열면 이것만 말해서 지쳤다든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마지막 수업 후반부터 바로 아까 전 홈룸에 걸쳐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나한테는, 너무 자극이 심했는지, 매우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나라도 섬세하군, 이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책상에 쑤셔 넣었던 프린트 물을 가방에 넣는다. 평소라면 청소 당번도 아닌 한, 이런 곳에 있을까보냐 하는 기세로 클래스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겠지만,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아서 출발이 늦어졌다. 어지간히 잘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 가지고 돌아갈 이것저것을 가방에 담아, 마지막에 이어폰을 블레이저 코트 포켓에 쑤셔 박고 일어서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혼자 교실을 뒤로 한다.
  그런데,


「힛키」

「...어?」


  교실에서 나왔더니,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었다.
  내가 반응한 것을 보고, 유이가하마는 가방을 흔들흔들 하면서 내 쪽으로 온다. 내가 걸음을 멈출 기미가 없는 걸 감안했는지, 그대로 보조를 맞춰서 내 약간 뒤를 따라온다.


「힛키 역시 잤어? 지쳤어?」

「아니... 단지 그냥 졸렸을 뿐이야. 연습문제 프린트, 하는 도중에 기절했으니까」


  추가로 오늘 마지막 수업은 수학이었다. 최근 수험 대책인지, 수학이나 영어 수업 중, 기출문제를 중간에 두거나 하고 있다. 아직 앞으로 일 년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는 진학교, 벌써 일 년밖에 없다는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거겠지.
  거기서, 응? 하고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힛키 수학 서툴지 않았어?」

「아무튼 뭐, 그러니까 포기하고 자고 있었어.」

「...그거, 다 풀지 않았잖아」


  다 풀었잖아.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었고, 할 수 있는 건 했으니까. 저런 뭘 써서 풀면 될지 모를 문제, 생각하는 만큼 시간낭비다. 해답도 나눠줬고, 그런 데에서 피폐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시간을 수면에 충당했을 뿐이라고. 나로서도 이 무슨 합리적인 선택.
  유이가하마는 쓴 웃음으로, 힛키답네 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부터 동아리 가는 거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뭐 그렇지」


  나는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눈치 챘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척 했다. ...아마,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혹시 그런 걱정은 기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정형문처럼, 승부가 이미 결정된 레이스처럼, 나와 그녀 사이에 정해진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주고받은 듯한 이야기. 그것이 그 때부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확인하는듯한 느낌이, 불과 조금이라도, 거기에는 확실히 있었으니까. 그걸 난 어디에서 감지하고 있을까. 내 말에서일까, 그녀의 말에서일까. 아니면.


「그래?」


  유이가하마가 맞장구친다. 뒤에서 걷고 있으니 표정은 모르지만, 아마 평소대로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칠칠치 못하지만,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그러니까 나도 평소처럼  거기에서 눈을 눌린다. 앞을 향한 채로, 나른한 듯이 걷는다.
  그리고 이후도 아마, 예정조화다.


「그럼 힛키, 부실까지 같이......」

「아-... 나 음료수 사 올게. 먼저 가고 있어 줘」

「아, 힛키......」


  유이가하마가 자기도 간다든가 말을 꺼내기 전에, 가볍게 손을 흔들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일단 따라잡을 마음이 있는 것처럼, 서두르는 식으로 가장해서. 아무튼, 분명 뒤쫓을 일은 없겠지만.
  시간적으로도 슬슬 한계였으니까 말이지. 나와 유이가하마가 교실 근처 복도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이 정도가 빠듯한 라인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분명, 그 상냥한 유이가하마는 누구와도 얘기할 수 있겠지. 그리 이상한 눈으로 보일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


「.............」


  그것뿐일까. 내가, 그녀에게서 도망치듯이 떠난, 그 이유는.
  그 대화가 계속되는 것이, 계속되어 버리는 것에 어떤 공포를 느끼진 않았을까. 이대로 계속되면, 뭔가에 생각이 다다를 것 같아서. 눈치 채고 싶지 않은 뭔가를, 눈치 채 버릴 것 같아서.
  계속 걸어가고 나서, 살짝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따라 오진 않는다. 그녀도 아무래도 특별동으로 갔겠지. 이걸로 됐다. 이걸로 정답이다. ...그래, 어차피.


「이걸로, 괜찮아.」


  툭 하고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너무나도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아무 보증도 해 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승강구에 있는 자판기 근처까지 오면, 본 적 있던 얼굴이 있었다.


「.............」


  힐끗, 내 쪽을 흘겨보는 위험한 눈동자. 푸른빛을 띤 포니테일. 훤칠한 장신도 더해서인지 불필요한 박력이 흘러넘치는 그 녀석은, 클래스메이트인......어라, 누구였나.


「...뭔데」


  내가 이름을 떠올리려고 말없이 보고만 있었던 탓인지, 그 카와...뭐시기인가부터 말을 꺼낸다. 여전히 뭔가 나른한 것 같은, 기분이 나빠하는 듯한, 무뚝뚝한 톤이다.


「아니... 거기 있는 자판기 쓰고 싶은데」

「아아... 방해였어?」


  카와뭐시기 양은 살짝 자판기 앞에서 비켜난다.


「...그런 건 아닌데」


  약간 그거다, 뭔가 세력권 같다고 한 마디 해둘까 생각했을 뿐이다. 말없이 끼어든 다음에 트집을 잡히면 좋지 않을 테고.
  나는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을 넣는다. 적당히 눈에 들어온 캔커피를 골라서, 버튼을 눌렀다. 탁 하고 캔이 떨어지는 소리와 거스름돈이 나오는 소리가 난다.


「..............」


  캔과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숙였을 때 쯤, 뭔가, 시선을 느꼈다.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카와뭐시기 양과 눈이 마주쳤다. 뭐, 눈이 마주친 순간, 굉장한 기세로 눈을 딴 데로 돌렸지만. 뭐야, 얘 좀 무례한 거 아냐?
  그보다,


「...왜 그래. 아직 사지 않았어?」

「아니, 샀는데. ...우롱차」


  아, 그래. 그럼 왜 그런 데서 서 있을까. 역시 여기는 그녀의 세력권 같은 건가. 이렇게, 잔돈을 받을 타이밍에 「대기다, 잔돈은 두고 가」 라든가 말해서 자릿세라든가... 엄청 쩨쩨하구만, 그거.


「...지금부터 알바니까. 그래도 곧장 나오면 약간 빠르다고 할까」

「아-... 그런 건가」

「평소에는 보리차 가져오는데 잊어버려서, 그래서, 여기서 살까 해서」

「헤에...」


  묻지도 않았는데, 카와뭐시기 양은 자기가 먼저 여기 있는 이유를 가르쳐 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빠르게. 뭐, 이런 곳에서 시간 때우기도 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만. 꽤 춥고. 단지, 방과 후는 학생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기 때문에, 외톨이의 마이플레이스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건 확실하다. 이 녀석의 경우, 일단 거기에 진을 치면 그 이후부터는 오라로 주변을 배제할 것 같고.


「...넌」

「어?」

「넌, 지금부터 동아리?」

「뭐...그렇지」


  쉬익 하고 캔 커피 손잡이를 딴다. 우선이라는 느낌으로 한 모금 마셨다. 적당히 미지근하지만, 혀를 찌르는 듯이 씁쓸하다. 향내도 찌르는듯한 건 없었지만, 단지 그저 씁쓸했다. 아무튼, 캔 커피에 뭘 기대하는 거야라는 얘긴데. 무심코, 얼굴을 찡그린다.


「...그런 표정 지을 정도라면, 단 걸 사면 좋을 텐데」

「뭐....그런가」

「너 말야, MAX 커피라든가 좋아하지 않았어?」

「응? 그거야 뭐, 치바인이라면 그걸 싫어하는 녀석 같은 건 없겠지. ...근데, 왜」

「...저기에서 알바하고 있을 때, MAX 커피 같은 걸 부탁한 사람, 너 밖에 없었으니까」


  기억하고 있다, 라고 카와뭐시기 양은 약간 은은하게 미소 짓는다.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 모금 더. 이 씁쓸함도, 익숙해지면 마실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는 해도 꽤나 그리운 일이군. 벌써 칸코레(かんこれ)... 이것저것(かれこれ), 반 년 정도 전 얘기 아니었나. 클래스에 독불장군은 혼자로 됐다고, 자웅을 겨룬 그 때부터... 아, 아니, 그런 스토리가 아니었나? 인상이 너무 옅어서 기억나지 않는데.

※ 칸코레(かんこれ) 이것저것(かれこれ) : 음운의 유사성을 이용한 드립.


  여하튼 나처럼 클래스에서 계속 고고함을 견지하는 희귀한 동료이기도 하다. 뭐 그렇게 말해봤자, 그렇다 할 만한 교류는 별로 없지만. 다만,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가끔 불쑥 얼굴을 내민다. 하루노 씨와 비교하면, 이번처럼 우연 같은 면이 많다는 기분은 들지만. 보스 캐릭이라기 보다는, 레어 캐릭터 같은, 추가로 자이모쿠자는 레어지만 기쁘진 않다.
  아, 근데 그러고 보니,


「저기, 너 말야」

「...어?」

「당신... 당신들, 또 무슨 일인가 있었어?」

「...뭐라니, 뭐가」

「아니, 나한테 물어도 곤란한데. 그래도, 지난 번 쯤부터, 뭔가」


  그러고 보니 저번은, 우연이 아니었나. 코마치에게 불려왔었나.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충 카와사키 타이시의 누나로서.....아, 하는 김에 떠올렸어요. 카와사키다. 카와사키 사키. 제대로 떠올리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하지만, 무슨 일 있었어, 인가.
  설마 하루에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와사키 같은 레어 캐릭이 지적한다고는. 얼마나 보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건 평소의 자의식 과잉이다. 얼마나 읽기 쉬운 얼굴이야. 약간 반성하는 게 좋을까.
  뭐, 반성하든지 않든지, 내 대답은 변함없지만.


「...별로, 덕분에, 평소대로인 생활을 보내고 있어. 그 때는, 저기, 고마워」

「...난 상관없는데」


  휙 하고 카와사키는 얼굴을 돌린다. 아-, 감사인사가 너무 늦었나. 일단, 확실히 잇시키가 학생회장이 되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서, 감사인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이유로 말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봐, 이걸로 뭔가의 착오로 잇시키가 낙선하거나 도중에 마음을 뒤집어버리면 감사 인사할 쪽이 바뀌잖아. ...토츠카에게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했지만, 뭐, 그건 그거다.


「그래도, 거기에 비하면 뭐라고 할까.... 혹시, 니가 했던 일 들켰다...든가?」

「아니, 안 들켰어. 증거도 인멸....그런 의미는 아닌데, 잘 도망쳤다고 생각해」


  넷을 이용한 책략이기 때문에, 완전한 은폐는 할 수 없었지만... 뭐, 벌써 일주일 이상 전 일이고, 정보의 홍수 속에 섞여버린 건 확실하겠지. 내가 한 짓 같은 건, 그 정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묻혀 버린듯한, 임시방편인 책략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저지른 본인이나, 관련된 일당인가... 혹은, 눈치 채 버린 사람들뿐이겠지.


「그렇...겠지. 그런 게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런데도 카와사키는 납득하지 못한 것 같고, 말하기 힘든 듯이 말을 골랐다.


「그런 게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무리하고 있지 않아? 당신이라든가.... 유이가하마라든가」

「..............」

「너 수학여행 뒤부터 너 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야....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무리해서 평소 같이 지내려고 한다고 할까」

「...뭐야 그건」


  그거,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의심스러운 거 아냐? 그거야 아무튼 곧잘 수상하고, 말 더듬고, 구석에서 무슨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아-...달라. 뭐라 말하면 될지...」


  카와사키는 아작아작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이 녀석이 무뚝뚝한 이유는, 다분히 말이 서투른 탓이라고 난 재차 인식했다.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든다.


「아무튼 카와사키, 저거다.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유이가하마가 이상해 보이는 건... 아마 미우라가 요새 이상하기 때문이겠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미우라? 아아, 그러고 보니 요새 왠지 조용하다고 생각했더니...」


  카와사키의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진다. 아니, 그러니까 무섭다고. 이 기회에 클래스의 얼굴이 될 정도의 박력이 느껴진다. ...뭐, 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겠지만. 단지 그저 미우라가 싫으니까 그렇겠지. 캐릭 겹치고 있는 걸, 약간.
  그렇다고는 해도 미우라, 꽤 적이 많군요. 카와사키라든지 유키노시타라든지...사가미도 그러려나, 그 녀석은 약간 그릇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씹혀서 가장 처음에 퇴장하는 타입.


「에비나 양도 좀 피곤해 보였지. 걱정한다면 그쪽 걱정이나 해줘」

「에비나는...응, 아무튼, 그러네. 그 애도...여러 가지 생각할 일이 있을 테고」


  서로 관찰력이 좋은 외톨이끼리라, 대화가 순조로워서 편하다. 거기에 카와사키도 에비나 양과라면 조금은 사이좋았을 터. 아무튼, 이상한 데에서 인연이라는 건 맺어지는군.


「...그런데, 슬슬 갈게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음료수 사고 간다, 라는 명목이었고, 너무 서서 얘기하는 것도 그러려나.


「그럼, 알바 힘내라. 그리고 남동생에게, 코마치한테는 접근하지 말라고 전해 줘」

「...그런 말 내가 한다고 생각해? ...그보다, 잠깐 기다려 봐」

「...어?」


  뭐야, 돈이야? 돈이라면 없다고, 점프해도, 아무 것도 안 나온다고 진짜. 예비학교 동기 강습 예산을 어떻게든 부풀릴 테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결국... 넌 어떤 거야?」

「.............」

「저기, 뭔가 있었으면...어, 잠깐...」


  거기까진 들렸지만, 그 뒤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카와사키도 도중에 포기했겠지. 내가 뒤를 향한 채로, 걷기 시작했었으니까. 혹시, 카와사키라면 알았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해 온, 그 녀석이라면. 그러니까 소리는 도중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건, 단순한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지만.

  뭔가가 있었으면.
  뭔가가 있었으면, 뭐라는 거야.
  난 아무 것도 바라지는 않았다. 도움 같은 건, 구제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연민 같은 건 받을 생각도 들지 않고, 그것이 상냥함이라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문제가 문제라고 한들, 문제가 됐다고 해도 내 문제고, 내가 손 놓지 않은 이상... 누구의 시혜도 받아선 안 되고, 누군가에게 폐 끼칠 생각도 없으니까.



「저기, 유키농 어디 가?」

「...그러네. ...어머」


  두 명의 시선을 받고, 나는 평소처럼 여어, 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그대로 평소 앉던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문고본을 꺼낸다. 서표를 끼워 둔 페이지를 바라봐도,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전 장까지 돌아왔다. 아아 그래그래, 여기까진 기억난다.
  봉사부실. 창밖은 벌써 날이 기울기 시작해, 어슴푸레해지고 있는 흐린 하늘. 벌써 제법 겨울 풍경이다. 일 년 중 가장 색을 잃어, 그리고 정체한 경치가 계속되는, 겨울.


「힛키 늦어-, 음료수 사 올 뿐이라구 말했잖아」

「아-... 잠깐 아는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어.」


  아무튼, 덕분에 모처럼 산 커피도, 도착하기 전에 비워 버렸지만.


「어, 힛키 중2하구 말했어?」

「어이 이봐, 왜 자이모쿠자 하나야. 그 밖에도 있잖아, 확실히」


  예컨대 토츠카라든가...토츠카라든가! 뭐, 토츠카가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상관없는데. ...근데, 유키농, 어디가 좋을까?」


  유이가하마는 내 항의를 스루하고, 다시 유키노시타를 본다. 테이블을 보면 몇 권인가의 현란한 잡지가 놓여있다. 아마 유이가하마가 가져왔겠지. 치바워커는 이따금 대충 훑어보니까 알지만, 다른 잡지는 본 적 없다.
  어느 잡지에도 「크리스마스 특집」이라든가 그런 느낌의 문자가 들쭉날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크리스마스에 어딘가 가고 싶다고 말했었지. 조속히 후보지 선정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런 때, 유이가하마는 갑자기 행동력을 발휘한다.
  유키노시타는 그 잡지를 대충 보고 나서, 조용한 눈으로 묻는다.


「여러 가지 있군요... 유이가하마 양은,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은 있니」

「응-, 그러면, 여기라든가? 아, 그래 유키농」


  잡지 페이지에 손가락을 대고, 유이가하마는 생각난 듯이 유키노시타 쪽을 향한다.


「...뭐니?」

「그러니까, 저기... 집 일, 어떤 느낌인가 해서. 우선 일정부터 정하지 않으면 말야」


  오늘 아침도 교실에서 그런 화제가 나온듯한 생각이 든다. 뭐랄까 큰일이군, 스케줄이 찬 인간이라는 건.


「나도 다음 주말 어느 쪽인가, 스케줄 들어가네요.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그 다른 한 쪽 날이나 경축일, 그리고는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쯤이라고 생각하는데. 응, 이브라면 오후부터 외출이라는 느낌일까」


  내가 보충하기도 뭣하지만, 올해 소부고 종업일은 24일이다. 이 날은 오전 중에 수업이 끝나는 이유로, 유이가하마는 그걸 말하는 거겠지.
  유키노시타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확인했는지, 입을 연다.


「...미안해요, 유이가하마 양. 어제 확인하고 왔지만, 아직 약간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단지...그러네, 24일과 25일은 어려울까나」


  그러고 보니 어제는 유키노시타 친가로 돌아갔었지, 당일치기로. 무슨 볼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투라면 스케줄 확인은 그 다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 ...그럼, 약간 앞당겨야겠네.」


  유이가하마는 팬시인 자신의 수첩에 뭔가 쓰고 흠흠하며 끄덕인다. 그리고 생각난 듯이,


「아... 추가로 힛키는? 다음 주말 경축일이라든가 한가하지?」

「너 말야...그것보다 그 확신으로 가득 찬 질문은 그만둬」


  왜 내 일정 아는 거야. 너는 내 비서야?


「어머, 그럼 예정이 있니? 부디 들어보고 싶군요.」


  유키노시타가 흥미 없는 듯이 다그친다. 적당히 다뤄지는 감이 반이다. 하지만 여기는, 나도 한 마디 해도 좋을 때겠지.


「바 보냐 너, 올해 마지막 3연속 휴일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짧은 겨울 방학의 전초전 같은 거다. 내가 생각건대, 이 휴일은 겨울방학을 위한 워밍업 같은 거야. 누구라도 바다에서 헤엄칠 때라든지 등산할 때라든지 준비 체조하잖아? 그것과 같아, 게으름 피울 때도 제대로 준비 안 하면 심각한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내가 서론을 마치자, 유키노시타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그 손을 도중에 내린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됐어요, 예를 들면?」

「그렇군, 예를 들면... 오후까지 잔다든가 하겠지」

「거기까지 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으로서」

「아 니, 거기서 얘기가 끝나지 않는다고. 그보다 인간 끝나지 않는다고. 해 본 적 없을지도 모르는데, 의외로 낮까지 잔다는 건 체력이 소모된다고. 10시간 가까이 자고 있을 터인데 상쾌함이 전혀 없어. ...요점은, 너무 잤다는 거다.」

「...그건 그렇겠지.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면 좋은 게 아니고?」

「틀려, 방법은 그것만이 아니야... 자는 시간을 늦춘다.」

「아니, 힛키, 좋은 표정으로 무슨 말하는 거야?」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힌 얼굴로 태클했지만, 아무튼 별로 걱정할 일도 있을 리 없다. 나는 지론을 계속 늘어놓는다.


「알고 있어?, 겨울 방학은 평소와는 다른 일을 경험하기 위해서 있어. 그건 맞지?」

「...언뜻 보기에는 맞는 것 같네. 학생 신분에 그렇게 휴식이 필요하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뭔가를 장기적으로 배우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지도 몰라요.」

「초등학교 때 자유 연구라든가 했었지-. 아무튼, 그리고 여행이라든가, 확실히 시간 없으면 할 수 없을지도」


  그렇겠지.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휴식이 필수적인 사회인이 되면 왠지 여름방학도 겨울방학도 아공간으로 사라진다. 자칫하면 골든위크라든가 보통 연휴조차 사라질 때도 있다. 마치 학생 시절에 쉬었잖아 라고 하듯이. 그 논리는 아니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아니, 말이 빗나갔다.


「...그래서, 그게 뭐?」

「아아, 그런데 대체 왜 모두 일부러 밖에 나가는 걸까라는 말이야. 별로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내성적으로 집에 있어도, 귀중한 체험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에-, 그럴까....」


  납득 가지 않는 듯한 유이가하마에게, 나는 친절하게도 예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떤 경험이라도 언제나 할 수 없는 건 변함없잖아. 예를 들면... 뭔가 약간 손대기 힘들었던 작가의 책을 단번에 소화한다든가」


  내가 든 예에 흠 하고 유키노시타가 반응한다.


「그런 책은 있군요. 확실히 장시간 집중해 읽어야 할 고전적인 명저는, 노트를 하거나 하면서 읽게 되면, 어떻게도 시간이 걸려버리고」

「오, 오우, 그렇군...」


  그러니까... 얘가 파악하는 방법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라노베 작가를 말한 건데... 말하기 어려워졌다.


「아-...그리고 봐, 명작 애니를 전부 한 번에 본다든가, 양작 게임을 묶어서 플레이 한다든가, 절식이라든가 하는 밥 안 먹고 하루 지내 본다든가, 시험해 보고 싶은 건 집 안에 얼마든지 있잖아」

「아니...힛키, 혹시 전부 한 적 있는 거야?」

「뭐, 있는데」

「우와아...」


  유이가하마가 절찬 질려하는 중이다. 아니, 해 보라고. 마지막에 말한 거나 어느 쪽이나 다 굉장히 하이 텐션이 되니까. 뇌내 마약이라든가 나오는 게 느껴지는 걸. 확실히 황금체험. 그 뒤의 육체적·정신적 반동이 무서울 정도로 재현해 준다.
  뭐 됐어. 뭔가 질려했지만, 억지로 정리에 들어가자.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귀중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규칙적인 올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안 돼. 그야말로, 오후까지 자는 것 같은 각오가 없으면 말이지!」


  그것을 할 수 있어야만, 프론티어는 열린다. 외톨이는 가끔 이렇게 해서, 인간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추구해,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고 깨달아, 그렇게 영리하고, 생각이 깊어져 간다. 이따금 대학생이 나쁜 짓으로 신문에 나오거나 하잖아, 저 녀석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까, 한계를 벗어나 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그 때문에 생활 습관을 빨리 고쳐 나가지 않으면 안 돼. 컨디션적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깨우러 오는 코마치를, 빨리 포기시키기 위해서 말이지」

「힛키만이 아니라 가족의 워밍업까지 겸하고 있어...」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혀하면 좋을지 질리면 좋을지 헤매는 듯한 표정을 띤다.
  하지만 결국,


「아무튼, 그래두 힛키답다고, 할까...」


  하하, 하고 유이가하마는 쓴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그러네... 당신다워요.」


  유키노시타는, 웃지 않았다.
  그 옆얼굴을 보고, 나는 문득 제정신을 차린다. 바보 같은 것을 말하다가, 고양됐던 기분이 갑자기, 확 차가워졌다.
  일찍이라면, 얼마든지 그 사이에 매도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사이를 노리지 않는다. 말이 다소 신랄한 면은 있어도, 내 내면을 푹푹 휘젓는듯한 말까지는 하지 않는다. 마치, 말해도 쓸데없다고, 포기해버린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그건 이미... 평소의 광경이 되어 있었다.
  아니, 뭘 상처받은 듯한 생각 하는 거야 나는.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M이 아니다. 이 녀석의 폭언에는 되게 지쳤었다. 유키노시타가 약간 얌전하게 되는 편이, 내 정신위생에 있어서는 행복할 터다. 언제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지금 세력을 뻗치는 편이 이득이겠지.


「..........」


  언제 돌아올지, 인가. 과연, 돌아오긴 할까.
  이건 돌이킬 수 있는 사태 같은 걸까. 이 막다른 골목 같은 미온수는.
  그리고, 돌아왔다고 해도, 돌이킬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어라, 근데 결국 힛키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한가하다는 걸로 좋지? .....힛키?」


  잠시 가라앉은 사고를, 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되돌린다.
  그 말이 머리에 닿아, 이해에 다다를 때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쉬며 속인다.


「...아-, 그러니까 말했잖아, 한가하지 않다고....」


  그렇게 입을 연 순간.
  똑똑, 하고 봉사부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 무심코, 열려던 입을 닫는다.


「응? 누군가 온 것 같네. 그럼... 부디」


  유이가하마가 문을 향해 말한다.


「...............」


  왠지, 나는 그 소리에 매우 동요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는 불길한 예감이라고 할까. 아니야, 그런 멍 때리는 게 아니라, 이건, 좀 더 확신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는 파악할 수 없었다. 초조감만이 심해진다.
  물론 내가 초조해봤자, 저 쪽이 기다려 줄 리도 없고, 드르륵 문이 열렸다.
  거기에 나타난 사람은,


「역시 여기 있었네. 하로하로-. 유이. 그리고, 히키타니 군과... 유키노시타 씨」

「에, 히나? ...무슨 일이야?」


클래스메이트인, 에비나 히나였다.

후일담입니다. ②-5처럼, 예외편 취급. 넘버링 되고 있잖아 라는 츳코미는 없는 걸로(웃음)

굉장히 단 얘기로 할까 생각했습니다만... 왠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 개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미안해요. 반성은 하지 않지만요.

 

결혼⑤의 끝으로 만족해 주신 분들은, 그 쪽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본편⑤-8 후편의 계속입니다. 하지만, 테마를 약간 빗나가게 했습니다. 요점은 결혼①처럼, 얻기 위해서 잃는 이야기입니다. 단 미래에는, 씁쓸한 과거가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좀 더 단적으로 말하면... 아수라장 이야기입니다.

사실, 역시 하치x유키가 가장 분쟁도 적지 않을까, 하는 결론으로 뛰어가고 싶어집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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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후일담 이를테면, 이런 허니문.(전편)

 

 

『...언니, 왜 저렇게 했어』

 

『저런 거? ...아아, 그거야 물론, 유키노 짱 때문인 게 당연하잖아?』

 

『..........』

 

『그도 그럴게, 유키노 짱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그럼 누군가가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잖아.』

 

『............』

 

『저기, 유키노 짱. 설마라고는 생각하는데, 그 애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

 

『나는 너무 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으응, 바른지 어떤지는 상관없어... 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인 걸. 아무튼 그렇게 말하면, 유키노 짱 때문이었는지도 미묘하지만 말야』

 

『.............』

 

『유키노 짱, 그건 상냥할 작정일까나. 유키노 짱은 아직도, 언젠가 그 애들이 알아줄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는 거야?』

 

『..............』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요, 유키노 짱』

 

『...............』

 

『유키노 짱 혼자가 뭔가 말해서 바뀌다니, 자신감도 지나쳐.』

 

『...............』

 

『유키노 짱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그런 게 아니라, 그 악의를 어떻게 다른 데로 돌리고 가는 거예요. 어떻게 이용해서, 어떻게 두드려 잡을지. 그걸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잡히는 건 이쪽이니까.』

 

『................』

 

『모를까나. 유키노 짱이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요.』

 

『......헤에, 왜?』

 

『그건...아직 모르지만, 그래도, 언니는 역시, 잘못됐다고 생각해』

 

『흐음, 모르는데?』

 

『...그래요. 몰라도, 알아. 언니의 방식은, 언니의 생각은, 어딘가, 잘못됐어.』

 

『...............』

 

『언니의 방식을, 난 받아들일 수 없어.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러면, 너무도 희망이 없잖아.』

 

『................』

 

『...난, 언니와는 달라』

 

『................』

 

『그러니까 이제, 내 문제에 손대지 마. 그런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말한다면, 이제 난 유키노 짱을 돕거나는 하지 않아.』

 

『...............』

 

『도와는, 주지 않을 테니까』

 

『...............』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 걸까. 여동생인데. 단지 둘 뿐인, 자매인데.

 

그런데, 어째서.

 

 

          ×          ×          ×

 

 

쾌청한 7월의 푸른 하늘 아래, 나는 아직도 익숙지 못한 감촉의 핸들을 잡으며, 조심조심하는 상태로 엑셀을 밟는다. 몇 년이나 손 때나게 오래 쓴 탓인지, 우리 집의 패밀리카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모터음을 내며 가속한다. 아버지 빨리 새로 사서 바꿔 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렇기 때문이야말로 부딪히거나 해도 불평 정도로 끝나니까, 그런 면을 생각하면 엇비슷한 생각도 든다.

표지를 힐끗 보고 속도를 확인하면서 안전 운전. 약간 뒤차가 재촉하는듯한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걸 신경 쓰다가는 언제 미스할지 모르니까 무시다. 뒤차도 포기해 줬으면 한다. 초보운전 마크 보이잖아. 즉 그런 거예요.

하고 마음속으로 한창 불평 중인데... 전방 및 미러 확인에 힘겨운 내 옆에서, 자비 없는 한마디가 퍼부어졌다.

 

 

「히키가야 구-운, 느려-어. 좀 더 스피드 낼 수 없어?」

 

「...잠시 가만히 있어 줄 수 없습니까. 지금 진짜 이러니까」

 

「무으~...」

 

 

내가 딱 잘라서 말한 탓인지, 약간 불만기 어린 표정인 옆 사람은, 불쑥 기분이 나쁜 듯이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 여유는 없는 상황이지만, 살짝 그쪽으로 눈을 돌린다.

약간 정도 열린 창에서 들어오는 바람으로, 세미 롱인 요염한 흑발이 산들산들 춤추고 있다. 밖을 향한 그 옆모습은, 턱부터 목덜미에 걸쳐 매끄러운 라인을 그리고 있고, 여름 한창인 햇볕 속에서도 여전히 희고, 치밀한 피부가 눈부시다. 올해 샀다고 한 새하얀 원피스인데도, 그건 잘 빛나고 있다. 아무튼, 나한테는 작년 산 것과 디자인 차이를 알아보는 건 어려웠지만.

 

 

「...히키가야 군, 앞을 보세요, 앞」

 

「............아, 미안해요.」

 

 

눈치 채면 힐끔할 경황은 아닌 시간까지 봐 버린 것 같았다. 그보다 이 사람, 보이고 있는 건 눈치 챈 것 같다. 이쪽을 되돌아 볼 것도 없이 그걸 거침없이 말해버리는 걸 보면, 무서운 센서를 지닌 감도다.

 

 

「그렇게 날 바라보고 싶으면, 차에서 내리고 나서 얼마든지 보게 해줄 텐데.」

 

「...아니, 그다지 그런 건 됐고」

 

「에, 그건 뭐야, 너의 얼굴은 보고 싶은 것도 아니라는 거? 누나 슬픈데」

 

「........저기요.」

 

「알고 있다고. ...후후」

 

 

한숨 섞인 내 어조에, 그녀는 즐거운 듯한 미소로 응한다. 앞을 보라고 들었던 바로 직후고, 실제 보지 않았고 어디서 그랬는지 모르니까 그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아마 평소와 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걸까.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의 의미나 시사를 내포하면서, 그걸 눈부심으로 덮어 가리는 태양 빛처럼 미소 짓는다.

몇 년 전에 만났던 때부터 변함없는, 그녀의 단골손님 같은 표정을.

아무튼, 보지 않아도 안다. 익숙해졌다고는 하지 않고, 앞으로도 익숙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으~응, 그렇다고는 해도 재미없네.」

 

「...뭔가요? 아아, 내 리액션입니까.」

 

 

그 정도는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와서 재미없다고 해도 곤란하다.

 

 

「얼마나 비굴할까-. 여전하다고 할까...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팔을 뻗어 백미러를 만진다. 호리호리한 손목이 묘하게 요염해. 좀, 사람이 운전하고 있을 때 그걸 만지작거리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생각했지만, 특별히 그걸 움직이지도 않고, 다만 그저 내게 후방을 봤으면 한다고 재촉했을 뿐인 것 같았다.

 

 

「...뒤가 무슨 일인가요?」

 

「아니~, 추격자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는 있을까 생각했는데」

 

「...추격자라니」

 

「역시 이런 때는 카-체이스(Car-Chase)일까 생각했는데. 뭣하면 내가 대신 운전해 주려고 생각했는데」

 

「그만해 주세요, 그런 뒤숭숭한 말은」

 

「어머, 내 걱정 해 주는 거야?」

 

「자신의 걱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해, 그거 나한테 포인트 낮아요?」

 

 

나로서도, 그렇게 사람의 여동생이 잘 하는 재주를 괴로운 듯한 얼굴로 쓰는 건 포인트 낮은데요. 그리고 이 사람이 핸들을 잡는다는 것도 그 이상으로 포인트가 낮았다. 그녀의 운전은... 그녀답게 완벽해서 정확무쌍한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무서운 것이다. ※경험담.

 

 

「그건 어쨌든... 뭐어, 오지 않겠죠, 과연」

 

 

추격자라든지, 카-체이스라든가. 영화가 아니니까.

 

 

「에-, 그럴까나. 그 정도 해 줘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못된 장난을 공유하듯이 곁눈질로 힐쭉 웃는다.

 

 

「그도 그럴게 우리들... 결혼식에서 빠져 나왔어요?」

 

「................」

 

 

그건, 방심하면 한 순간에 빠져버릴 듯한, 고혹적인 포즈였지만.

 

 

「............아니」

 

 

나는 멋없게도 츳코미를 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타인의 결혼식이잖아요.」

 

「아하하, 어때? 사랑의 도피라는 것처럼 들렸어?」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 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어깨를 움츠릴 뿐이다. 운전 중이고, 그 정도 밖에 할 수 없기도 하다.

 

 

「...애초에 저, 초대받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마음대로 「우리들」이라고 묶지 말았으면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결혼식이라는 것보다는 그 후의 피로연에서 이 사람이 자리를 떴을 뿐이다. 그래서 악질적인 강도가 줄어드는가 하면,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지만. 오해를 일으키는 발언은 하나하나 깨야 한다.

아무튼, 어떻게든 말해서 회피하려고 해도, 내가 그 한쪽을 현재 진행형으로 짊어지고 있음에 변함은 없겠지만.

 

 

「...그보다, 괜찮습니까. 일단 내빈이었을 텐데」

 

「괜찮아괜찮아. 내빈은 많이 초대받고 있으니까. 거기에 아버지도 있고.」

 

 

남겨진 쪽은 곤란할 텐데. 수습도 포함해서 완전히 떠넘기기다.

 

 

「그래도 그렇게 하면, 인상 나쁘겠죠. 잘 모르겠지만.」

 

「인상이네. 그렇다고 해도 저 쪽도 나하고 거의 안면 없고, 있어도 없어도 그다지 다를 바 없어요.」

 

「하아, 그런 건가요.」

 

 

내 맥 빠진 맞장구 뒤에, 그녀가 킥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그 정도 사람들이라면 길게 연관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응」

 

「......미소가 무서워지고 있어요, 유키노시타 씨.」

 

「어머, 그래?」

 

 

그럴까나 하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결코 그렇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앞 밖에 보지 않았으니까 나도 시인한 건 아니지만, 이것도 뭐, 보지 않아도 아는 그런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의, 그녀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 정도는.

뭘 근거로 그렇게 결론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도 그녀의 계산 결과겠지. 그 연장선상에, 그녀의 지금의 행동이 있다. 저울에 달아 가벼운 쪽을 잘라 버렸다. 그녀에게는 그것뿐인 얘기다. 그런 면은, 옛날부터 변함없다.

아니, 혹은.

 

 

「오늘은 선약도 있었기도 하고. 그거야 선약을 지키는 게 예의라는 거 아냐?」

 

「...그런가요.」

 

 

그 선약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그녀에게 중요했으니까, 계산이라든가 제쳐놓고 저울에 얹을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포함해서 다시 생각하면, 계산이 앞인지 결론이 앞인지, 이제 와서는 미묘한 라인이었다.

 

 

「...빨리 만나고 싶은데」

 

 

그런 군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면, 그렇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설마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아까 전, 부끄럼을 감추려 했다거나는 아니겠죠.」

 

「에-, 무슨 말일까나?」

 

「아니, 아무튼 전 어느 쪽으로도 괜찮습니다만...」

 

 

저런 간이 차가워지는 듯한 부끄러움 감추기, 어느 구석이나 무엇 하나도 귀염성은 없지만.

...단지 그런 사람이다. 그만한 교제가 되어 버렸고, 옆에 있으면 조금은 알게 된다. 이 사람은 이 사람대로 꽤 솔직하지 않다. 솔직하지 않음이 너무 지나쳐서 이따금 자신의 본심조차 어딘가에 두고 올 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말하고 보면, 행동 원리가 자신을 능가해 버리는 사람이라고.

난 그것을, 몇 년 전부터 알고 있다.

 

 

「무슨 일이야, 히키가야 군?」

 

 

문득 골똘히 생각해버렸기 때문인지, 그녀가 이상한 듯이 얘기해 온다.

 

 

「...아니, 별로」

 

「그래. ...그런데 히키가야 군」

 

「네?」

 

「아까 전 나를, 『유키노시타 씨』라고 불렀지요?」

 

「...아-, 그랬던가?」

 

「불렀어. ...정정 해 줬으면 하는데」

 

「................」

 

「자, 빨리」

 

「............미소가 무서워지고 있어요, 하루노 씨」

 

「좋아. ...그렇다고는 해도 전반 부분까지 리피트 하다니, 좋은 배짱이네」

 

「아, 아니, 그래도 정정하라고 말하니까... 우와, 진짜 무서워요 그 미소. 가 아니라 보세요, 지금 운전 중이니까.」

 

「호오호오... 그런 변명이 누나한테 통한다고 생각해?」

 

 

약간 리얼한 생명의 위험에 직면해 위축되고 있는 내게 가차 없이, 그녀―――하루노 씨는 조금씩 다가오면서 대담하게, 그리고 사납게 미소 지었다. ...아니, 진짜 운전 중에는 위험하니까 좀 봐주세요. 그리고 내 가슴의 두근두근은 어디서 왔을까. 두근거릴 여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          ×          ×

 

 

그 후에 대해서 조금만, 말해보려 한다.

 

 

「――――, ―――――――――.」

 

 

하루노 씨의 말이 귀에 닿아, 내 사고를 멈춰 버린, 그 후.

 

 

「잠ㄲ...거, 거기! 뭐, 뭐하고 있어!?」

 

「어...」

 

 

정지한 날 무리하게 재기동시킨 건 유이가하마 유이의 그런 말이었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반사적으로 뒤돌아보면, 유이가하마가 척척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화내고 있는 것 같고 얼굴이 약간 빨갛다.

나와 하루노 씨의 근처까지 와서, 그 발을 멈추고, 으으ー하는 식으로 나와 그녀의 얼굴을 교대로 노려본다. ...뭐어 노려볼 작정이겠지만, 좀 더 무서운 사람들이 노려봐왔던 대상인 나는 내성이 생겼고, 하루노 씨는 하루노 씨대로 시원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다만 기백만은 충분한 것 같아서, 나는 약간 위축되면서 얘기한다.

 

 

「왜, 왜 그래 유이가하마」

 

「힛키-...하루노 언니하고 무슨 얘기 했어?」

 

「...뭐라니」

 

 

뭐라고 해봤자. 아니, 나도 잘 몰라. 아니, 들은 말의 의미는 알고 있는데, 의미를 알 뿐 사고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할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어디선가 표류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머리 한쪽 구석이 공전한 결과 열폭주 해서 멍하다고 할까. 응, 내가 하고 있는 말도 꽤 의미를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는 도중에, 거기에 끼어들어 온 한 사람.

 

 

「어머어머, 가하마 짱 신경 쓰이는 거야?」

 

 

말할 필요도 없다고 할까, 하루노 씨였다. 내 뒤에서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가면서, 생긋 미소 짓는다.

 

 

「나와 히키가야 군의 비밀 얘기였는데 말야... 그렇게 듣고 싶다면, 가르쳐 줘도 좋은데」

 

 

가르쳐 줘도 좋다고 하면서, 그 미소는 들으면 후회해요 하고 경고하는 듯한 으름장을 포함하고 있다. 외부인을 배제하려는 철저한 미소. 대단한 미소를 짓는 고등 기술이다. 특허 받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

 

 

주춤, 하며 유이가하마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다. 하루노 씨와 몇 번 정도 대면하고 있지만, 이런 식의 미소에 노출된 경험은 별로 없겠지. 그야말로, 칠석 때 불꽃놀이 정도 밖에.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걸 보면, 의외로 담력이 있는 유이가하마였다.

 

 

「힛키한테까지, 참견하지 말아주세요.」

 

「응-, 그럴 생각은 아닌데?」

 

 

분명 노려보는듯한 유이가하마의 시선과 그 도발에 응하는 듯한 하루노 씨의 미소가 교착한다. 두 명 사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긴장 같은 것이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으로, 하루노 씨가 어깨를 움츠려 후훗하고 소리를 내며 미소를 느슨하게 풀었다.

 

 

「슬슬 출발이지요? 난 이제 차에 탈 테니까. 가하마 짱, 히키가야 군에게 볼 일이 있는 거지?」

 

「...네. 힛키, 유키농이 협의한다고 하니까. 여기로 와」

 

「아, 아아. ...그런데 어이, 잡아당기지 말라고」

 

「됐으니까」

 

 

유이가하마에게 갑자기 팔을 빼앗겨, 척척하고 끌려간 탓으로 다리가 엉킬 뻔 한다. 어떻게든 자세를 정돈해 얼굴을 들자, 유이가하마의 등과... 그 앞에 있는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우와」

 

 

뭐라고 할까, 무섭게 기분이 나쁜 것 같은데. 언제나 영하인 그 시선은, 한층 더 온도를 내려 절대 영도 영역까지 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시선이 나를 향하는 중이다. 일격 필살로 심장을 얼어붙게 하기에는 너무나 충분한 차가움이었다. 저것 명중률 3할 아니었나요.

 

 

「기, 기다려 줘 유이가하마...그렇다고 할까, 기다려주세요.」

 

「......싫어.」

 

 

이쪽도 꽤나 기분이 나쁜 것 같다. 대답 정도는 해 줬지만, 팔을 풀어 주거나 멈추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확실히 형장으로 가는 죄인의 기분. 노래 같은 걸 흥얼거릴 여유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기다린다고 해도, 좋은 일은 없을 것 같구」

 

「어, 뭐야 그건?」

 

「...아무것도 아냐」

 

 

한층 더, 팔을 잡는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있잖아, 그렇게 관절을 고정하면 꽤 아프다고? 히라츠카 선생님도 아니고, 아마 초보자라고 생각하지만... 초보자 고로 힘이 들어간 부분이 위험한 건지, 극히 좋은 느낌이었다.

 

 

「.............」

 

 

왠지 모르게 단념해서, 끌려가는 대로 맡기기로 한다. 어느 의미로, 이후에 예정되어 있는 협의 등에서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살짝 뒤돌아본다.

그녀는 먼저 가고 있겠다고 하면서 아직 거기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맞자, 슥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볍게 대고 생긋 미소 짓는다. 그리고 우아하게 휙 등을 돌려서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아까 전 귓전으로 속삭인 말이, 머릿속에서 반향한다.

나 이외에 아무도 듣지 못한, 내게만 향했던 말을.

그건 그 진위를 의심하지 못하게,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말.

오해할 틈을, 도망칠 틈을 주지 않도록 계산된 말.

진짜 몇 초 안 되는 중에, 있었던 가열을 숨긴 그 말은.

내 어딘가를 확실히 관철해, 제대로 꿰뚫어 고정시킨 것 같았다.

그녀의 독기에 침식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건지, 혹은 그녀의 냉기에 침식되어 깨어 있는지조차 모를 그 머리로, 나는 문득 이렇게 생각한다.

계속 끝없이 도망쳐 왔지만, 마침내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져 버렸다, 고.

 

이제 도망칠 수 없다고, 자각해 버렸다.

 

 

          ×          ×          ×

 

 

봉사부 동계 합숙 1일 째를 마친, 밤.

나는 사람이 없는, 호텔 로비 한 귀퉁이에 있는 소파에서, 멍하니 캔커피를 한 손에 들고 앉아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호텔에는 MAX 커피 같은 대용품은 두지 않았다. 메이저만 있다. 메이저로만 흐르지 말고, 이문화 교류라든지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호텔 경영방침에 불평도 하고 싶어졌지만, 아무튼 말해도 어쩔 수 없고.

 

 

「...역시, 충분히 달지가 않군.」

 

 

한 입 마시고, 목을 돌린다. 일단 카페오레를 선택한 생각이었지만, 그 연유 레벨의 달콤함이 표준인 내게는 어딘가 부족했다. 뭐야 저건, 중독이라도 된 건가. 역시 나에게 부족한 건 당분이 아니라 MAX 커피분이라는 이유일까. 아, 왠지 의식하면 손까지 떨리고 있습니다만... 아니 거짓말인데.

캔커피를 눈앞의 높이가 낮은 책상에 두고, 소파에 기댄다.

 

 

「아-...어쩐지, 지쳤다.」

 

 

출발 전의 어수선함도 그랬지만, 아무튼, 그 뒤도.

하루노 씨의 내습과 그 폭탄 발언 미수에 의해서인지,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의 경계심은 꽤 높아진 것 같았다. 유이가하마가 경계하는 건 모르지는 않다.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 앞에 나타나면 변변한 일이 생기지 않는 건 몇 번이나 경험하고 있고. 기본적으로, 있는 것만으로 주위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나한테 쓸데없는 간섭하는 걸 간과할 수 없겠지. ...실태를 말하자면, 참견할 경황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들지만.

하지만, 사정을 알고 있을 유키노시타까지 이 정도로 기분이 나쁜듯한 이유는 뭘까. 아무튼 확실히,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의 의향을 무시해 소규모의 혼란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고, 불필요한 말을 더 이상 하게 하지 않는다는 압력은 느낀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결국, 잘 모르지만.

그리고 그런 경계심을 가차 없이 느끼고 있을, 바로 그 본인... 하루노 씨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이 평소 그대로였다. 차내에서도 조수석에서 운전석의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장난을 계속하면서, 뒤의 유이가하마나 유키노시타에게 태연히 말을 건넨다. 매정한 대답에 질린 모습도 없고, 잠시 하다 질렸는지 지쳤는지, 중간에 점심식사를 할 때까지 쿨쿨 잠들어 버렸다. 하루노 씨가 잔 뒤의 안도감만은, 차내의 전원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폭풍우와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재해로 지정되어도 손색없는 레벨로. 하루노 씨 주의보라든지 있으면 굉장히 편리. 도망가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일찍이 찾아낸 법칙 같은 건 아직도 건재했던 것 같다. 하루노 씨라고 하는 열대 저기압이라고 할까 태풍이 일시적으로 떠난 뒤, 찾아 온 건...맹렬한 한파였다.

요점은 유키노시타가 발분해 버렸던 것이다. 하루노 씨가 관광한다고 말하고 없어진 뒤의, 다른 학교와의 토론회에서.

확실히 저 쪽은 미지근한 동아리였다. 인원수만 많아, 안이한 친절심과 어중간한 행동력으로 성립되고 있는 듯한 활동 내용인 건, 내가 봐도 일목요연했다. 배부된 자료에도 그것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고, 이건 유키노시타에게 태클당하겠군 하고 쓴웃음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그건 가벼운 츳코미로는 끝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됐다고 명기되어 있습니다만. 그렇게 단언하기에는 그 후의 경과 관찰이 빠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 느낌으로 유키노시타가 말하기 꺼냈을 때, 흐리멍텅한 쓴웃음이 일어난 건 확실하다. 동료에게 찔린 보고자가 히죽거리며 거기에 회답한다.

그러나 그들도, 언제까지나 웃고 있을 수 없었다.

 

 

『과연, 목표수치를 웃돌고 있다, 고. 하지만 이 목표로 해도, 어떤 기준으로 정해진 것인지 의문이군요. 근거로 삼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그것을 보여주세요.』

 

 

유키노시타가 입을 열 때, 주위의 미소가 얼어 가는 것이 명확히 보인다. 목표의 근거는, 그 달성에 있어서의 효용은, 수단은 적절했는지, 목적과 행동의 불일치에 대해, 투입한 인원수에 비해 결과가 너무 작다... etc.

처음에 적당히 받아 넘기려 했던 회답자도, 질문이나 이의가 거듭되는 동안 점차 궁지에 몰려, 수중의 자료를 펄럭펄럭하고 넘기기 시작한다. 물론 적당히 만든 것 같고, 뭔가 의지가 되는 정보 같은 게 거기에 쓰여 있을 리가 없지만. 그 안색은 수치인지 분노인지 중간에 한 순간 빨개졌지만, 그로부터 급전직하로 퍼런색으로 변해간다.

뭐라고 할까, 문화제 실행 위원회를 방불케 할 정도의 날카로움이었다. 태만이나 짜고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걸 들추어내서 규탄한다. 유이가하마나 저 쪽의 고문이 도중에 수습하지 않았으면, 회답자의 TKO가 선고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튼 사실상 KO 같은 거지만. 보고 있자니 약간 불쌍해질 정도였다.

그건 그녀답다면 그녀답다. 서로 간 활동의 한층 더 발전을 위해, 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상, 이 토론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건 결코 잘못된 건 아니고, 그녀의 추궁에도 또한 이유가 있어서, 저 편에서 반론할 수 없을 정도로는 옳았다.

다만, 그녀답지 않다고 하면 답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상은 아니다. 유키노시타는, 분명히 무리하고 있다. 너무 분발하고 있다. 마치, 뭔가에 초조해 하듯이. 뭔가에 애타고 있는 듯이.

그건, 오늘 아침부터 느끼고 있는 그녀의 태도와 어딘가 연관이 있는 듯한 생각이 들어―――

 

 

「야아, 언짢은 표정 짓고 있네, 청소년」

 

「............어?」

 

 

눈치 채자, 내 눈앞에 하루노 씨의 얼굴이 있었다.

나는 로비의 소파에 늘어져, 머리를 멍하니 위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걸 위에서 들여다보는 모습이 된다. 하루노 씨의 얼굴이 오렌지색의 조명을 차단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요염한 머리카락이, 조명을 반사해 빛나고 있다.

 

 

「옆에, 괜찮아?」

 

「...맞은편으로 해 주세요, 적어도」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소파를 돌아...테이블까지는 가지 않고, 내 옆에 앉는다. 그런데, 어이.

 

 

「...사람의 말을 들었습니까?」

 

「들었어요? 들었을 뿐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생긋 웃는다. 그녀의 손은 아이스 티 캔을 쥐고 있다. 그걸 나처럼 테이블 위에 두었다.

 

 

「...잠 자지 않습니까?」

 

「시즈카 짱의 술 상대 하고 있으면 지쳐 버렸어.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어서 말야.」

 

 

그 사람, 이런 곳에서까지 술 마시는 건가요... 수학여행 때도 술 사러 간다든가 뭐라 말했었지. 라면까지 먹고는, 이 사람 심상하지 않다고 할까, 벌써 뒤늦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 건 비밀이다.

 

 

「히키가야 군은 자지 않아?」

 

「뭐어, 약간 잠들 수 없어서」

 

 

추가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조속히 쉬는 것 같았다. 유키노시타의 토론회에서의 모습을 보면, 안 그래도 적은 체력이 버틸 수 없는 것 같았고. 타당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이라는 건 지치지요-. 익숙해지지 않는 곳에서 숙박하기 때문인지, 그렇게 잤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나는 그런데도 익숙해진 편이라고 생각하지만요. 히키가야 군도, 베개가 바뀌면 잘 수 없는 타입?」

 

「글쎄... 뭐, 여동생이 근처에 없으면 안심하고 잘 수 없다고 할까...」

 

「대단한 시스콘이네. ...누나 약간 질렸어요.」

 

 

하루노 씨가 약간 소파에서 이동한다. 나에게서 멀어지듯이. 나도 약간 놀랐다. 자신의 시스콘 상태에. ...그것과 그런 수상쩍은 말을 사람 앞에서 흘려버린 자기 자신에게.

 

 

「아-, 저기. 역시 지금은 없었던 일로...」

 

「그래? 아무튼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그런 어쩔 수 없는 면도 다 포함해서, 좋아하고」

 

「.................」

 

「어라, 들리지 않았어? 다시 한 번 말해줄까?」

 

「...그만둬 주세요.」

 

 

아마, 평탄했던 채 소리를 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는, 평탄하게.

 

 

「그만두라고 들으면, 그만두고 싶지 않게 되어버리는데」

 

 

그러나 그런 노력도 하루노 씨에게는 통하지 않은 것 같고, 하루노 씨는 히죽히죽하고 웃는다.

 

 

「히키가야 군이 잘 수 없는 이유는... 예쁜 누나한테서 고백 받았기 때문에, 라든지가 아닌 거야?」

 

 

그리고 자연스럽게, 오늘 아침 일에 대해서도 꺼낸다. 부끄러움도 뽐내는 일도 없이.

 

 

「............」

 

「그렇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틀린 걸까나?」

 

「...........그럴 리 없겠죠.」

 

 

나는, 한숨을 용수철 삼아 기대고 있던 소파에서 일어선다.

 

 

「옆에서 자고 있는 녀석의 자는 얼굴이 너무나 귀여웠기 때문이에요.」

 

「...그건, 토츠카 군?」

 

 

그래요, 그 말대로. 나는 천천히 입을 연다.

 

 

「네, 토츠카도 참 위험해요. 이렇게 약간 입을 반쯤 벌린 상태로, 쿨쿨하고 숨소리 내서. 잘 듣고 있으면 이따금 『음냐』라든가 합니다. 들은 적 있습니까, 순수하게 『음냐』라고 했는데 약삭빠름조차 느끼지 않는다든가 반칙이잖아. 속눈썹이라든지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길고 아름답고, 약간 식은땀이 살짝 보이는 앞머리라든지 진짜 위험해, 그리고...」

 

「...히키가야 군?」

 

 

갑자기, 거침없이 청산유수할 기세로 토츠카의 매력을 말하기 시작한 내게, 하루노 씨는 의아스러운 듯한 눈을 향한다. 나는 그 시선을 눈치 채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식으로 말을 계속한다.

 

 

「...목욕탕에서 갓 나온 모습이라든지도, 하얀 피부가 상기되어 있어, 눈에 비누가 들어가면 눈도 붉어서 눈물로. 그것만으로 보호욕구를 돋운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

 

 

하루노 씨의 눈동자가 점점 온도가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기가 막히고 있는 걸까. 마음껏 대화의 맥을 꺾으려는 나에게. 그것도 노골적으로, 적 앞에서 도망치려는 게 뻔히 보이는 모습에.

그렇다고 할까, 그걸로 좋다. 마음껏 기막혀 해준다면 좋다. 엄청나게 질려주면 좋다. 토츠카의 잠자는 얼굴이 내 토츠카 폴더에 새겨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 탓에 너무 두근거려 잘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시스콘으로, 옆에서 숨소리를 내는 남자 얘기를 끝없이 계속하는 나 같은 놈에게, 상관하지 말아줘.

 

 

「...그런 이유로, 토츠카가 최고랍니다.」

 

 

말이 끝날 무렵에는, 약간 헐떡이는 감도 있었다. 호흡을 잊는다든가 얼마나 말한 거야, 난.

그리고, 필시 썩는듯한 눈으로 나는 하루노 씨를 노려봤다. 하고 싶은 말은, 그걸로 알겠지.

하루노 씨는 내 시선에, 차가운 안광으로 응했다. 나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듯한 뭔가 장엄하다고도 할 수 있는 눈동자. 거기에 계속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시선을 돌려버린다. 다만 시야의 구석에서, 그녀가 눈동자를 느긋하게 닫고 그리고 다시 열었던 것이 보였다.

 

 

「......결국」

 

 

하루노 씨의 맑은 목소리가 조용히 닿는다.

 

 

「호의가 향해져도, 거절하는 거네, 히키가야 군은」

 

「.................」

 

「그토록 착각시키지 않게, 번거롭게 전했는데도」

 

「................」

 

 

아마, 그렇겠지.

 

이번에는 혹시, 나는 착각하고 있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렇게, 전해 왔으니까. 착각할 여지를 봉했으니까.

그런데도... 나는 역시 믿을 수 없었다.

그녀 같은 사람에게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거기에 평소 같은 거짓을 느끼지 않았다고 해도, 단순한 변덕이라든지, 마음의 미혹이라는 가능성도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이 사람의 변덕에 대해서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을 테고, 이번 한 달 반 사이의 작은 사건도, 그녀에게는 그 나름대로 큰 사건이었던 건 알고 있다. 그 동요로 발단한 귀신의 일사병이라는 것도, 있을 지도 모른다.

상대가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 그건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터. 나는 누군가의 가치관을 따라 살 수 있을 만큼 재치 있지도 않고, 그걸 연기해봤자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래봬도 상대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해 봤던 적은 있었지만, 어김없이 화근이 되었다. 그러니까 아마, 지금부터 해도 화근이 된다.

경멸 시키겠지. 내가 품고 있는 철학 같은 뭔가는, 아마 그런 종류다. 타인에게 경멸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사고회로. 그런데도 나는 그걸로 성립되고 있고, 그런 자신이 싫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간파되어 경멸된다는 과정을 밟는 걸 생각하면, 이번에야말로, 그런 자신이 싫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생각되어도 상관없는 상대라고, 특별히 감개도 떠오르지 않는 상대라고, 조금 전까지의 나라면 생각하고 있었을 테지만. 다만 이 한 달 정도 사이, 몰랐던 그 옆얼굴을, 몰랐던 그 위태로움을 봐 온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아」

 

 

약간 짧은 한숨 뒤에,

 

 

「...정말, 히키가야 군은 어쩔 수 없네.」

 

 

차가운, 그런 목소리가 쏟아졌다.

 

 

「히키가야 군 같은 사람에게, 막혔다고 하면, 도움 받았다고 하면, 솔직히 말해서 부끄러워져.」

 

「...그러니까, 그것도 착각이에요.」

 

 

나는 그 때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막았던 것도 도왔던 것도, 내가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네.」

 

 

그녀는 반복한다. 잘 설명해서 납득시키듯이.

그리고, 계속했다.

 

 

「이대로라면 내 체면에 관계될 정도로, 말이야.」

 

「......체면?」

 

「그래. 나를 막았던 사람이, 이런 한심한 남자애로 좋을 리가 없어.」

 

「...무슨」

 

「내가 좋아하게 된 애가 그렇다고,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

 

「...............」

 

「그러니까, 누나는 그 남자애를 갱생시켜 주기로 했습니다. ...어떨까나?」

 

「...어떻다니, 뭐가」

 

「응? 내가 히키가야 군을 계속 상대하는 이유. 적당히 날조해 봤는데」

 

「..................」

 

 

돌리고 있던 시선의 끝에, 그녀의 눈동자가 끼어들어 온다. 그 눈은, 여전히 기가 막힌 걸 보는 눈초리였지만.

 

 

「있잖아, 히키가야 군. 대부분의 이유 같은 건 뒤에서 어떻게라도 따라오는 거야. 감정이나 행동을 수식할 뿐인, 위안 같은 거야. 히키가야 군처럼, 이유를 최우선 하는 애는 모를지도 모르지만」

 

 

―――하나하나 행동에 이유를 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애라는 건 불편하네.

 

 

그러고 보니 그녀와 대치했을 때, 그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던 생각도 든다.

 

 

「히키가야 군이 그걸 빼앗아봤자, 내 의지는 변함없어요. 유감스럽지만. 뭣하면, 그런 이유 없어도 돼. 적어도 난, 그렇게 해 왔고, 이렇게 해 왔으니까.」

 

「...그건」

 

 

과연 폭론이겠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그 정도의 재능과, 이유에 의지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고 싶은 듯이 할 수 없어서, 뭐가 즐거운 건지. ...뭐,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도, 최근까지지만. 이유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왜 움직일 수 없는 건지, 알고 있을 생각이었지만... 응,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아.」

 

「................」

 

「그걸 가르쳐 준 사람은, 히키가야 군이라는 거예요.」

 

 

선택해야 할 길을 잘못하지 않았던 그녀. 잘못할 수 없었던 그녀. 그녀가 발을 멈추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했다. 미련과 후회를 긍정해, 뒤를 보기에 충분한 이유가.

 

 

「그런데도 난, 역시 이유를 절대시 할 생각으로는 될 수 없지만. 그런 게 없어도... 확실히 마음은 있는 거고, 사람은 움직이는 거야. 그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눌러 참는 건, 잘못됐어.」

 

「............」

 

「거기에, 너무 나를 얕보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슥, 하고 하루노 씨의 손이 뻗는다.

그건 내 머리카락을 매끈하게 어루만지고, 두 번, 세 번 가거나, 오거나 한다.

 

 

「이래봬도 사람 보는 눈은 자신 있는데. 히키가야 군 같은 사람보다, 계속 말이야.」

 

「...저기, 머리카락」

 

「이 정도는 상관없잖아. 닳는 것도 아니고. 아, 혹시 줄어드는 거 신경 쓰고 있어?」

 

「...............」

 

「당첨인가보네. ...뭐, 이런 느낌으로, 대체로 알고 있어요. 히키가야 군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꽤 전부터 알고 있어. 타인의 애완동물을 위해서 몸을 던질 정도의 터무니없는 바보라는 것도 들었던 적이 있었나」

 

「...바보라니」

 

「불쾌한 생각을 시킬 정도라면 처음부터 멀리하자는, 바보가 아니면 생각해내지 못해요. 그게 상냥함이라고 해도... 그렇게 멀어진 쪽의 입장도, 됐으면 하는데」

 

「.................」

 

「내가 말하는 것도 오만하지만 말야, 조금만 더 생각해 봐. 그 어쩔 수 없는 상냥함을 발휘하기 전에. ...이제, 대답을 재촉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

 

 

그리고 하루노 씨는, 내 머리카락에 대고 있던 손을 떼어 놓는다. 아이스 티를 한 모금 꿀꺽하고 마시고, 캔을 흔들면서 다시 입을 연다.

 

 

「히키가야 군, 내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 들어주지 않을래.」

 

「...그건, 의뢰입니까?」

 

「달라요. 들어주는 것만으로 좋아. 이건 내 문제니까, 응」

 

「...아무튼, 들을 뿐이라면」

 

 

그걸로 좋아요, 하고 하루노 씨는 끄덕인다.

 

 

「나, 여동생하고 자매 싸움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최근 화해했던 바로 직후 아니었나요.」

 

 

내가 하려했던 건 대체...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오늘 단계에서 꽤 그거 같아지고 있던 것 같은데. 저것 이상을 요구할 생각일까.

 

 

「그건 그거. 이건 이거예요.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고... 양보할 수 없는 거니까, 더욱 더네.」

 

「하아」

 

 

상황이 다르다, 인가. 확실히 그건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와 그녀의 비틀린 관계는, 이전의 한 건으로 해소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지금이라면 서로 거리낌 없이 정면에서 부딪힐 수 있다, 그런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자매에 대해 말하자면, 사이좋게 끈적끈적하고 있는 것보다도, 그쪽이 이 자매답다고 하면 자매답다. 투쟁심의 강함은, 언니와 여동생 모두 왕성한 것 같으니까. 양보할 수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저 쪽이 흥미가 없는 것 같아서. 아무튼 분명...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의 하루노 씨의 행적을 떠올려 본다. 선전포고라고 말한 것도. 오로지 유키노시타를 부추기는 듯한 언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도.

그리고 유키노시타에 대해서도 떠올려 본다. 뭔가에 초조해하는 듯한...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듯한, 그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건...이유, 인 걸까. 이유가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건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말로 움직일 수 없는 건지. 하루노 씨가 말하는 대로, 그건 뭔가를, 눌러 참고 있다는 걸까.

 

 

「나는, 한다면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거야. 이유 같은 건 어떻게든 좋다고까지는 이제 말할 생각도 없지만. 그런데도... 그 애가 이대로 침묵을 자처한다면, 진짜 이긴 기분으로는 될 수 없어.」

 

「..................」

 

「거기에... 여동생의 후물림이라 생각되면, 웃으려 해도 웃을 수 없으니까 말야.」

 

 

그렇게, 마지막에 왠지 내 쪽을 살짝 보면서 말하고, 하루노 씨는 일어선다.

그리고 어디에서 꺼냈는지, 호텔 키를 빙글빙글 돌리고, 그걸 쥐고는 짓궂은 장난을 치듯이 웃었다.

 

 

「그런데, 난 이제 방으로 돌아가지만... 어떻게 해? 토츠카 군 탓에 잠들 수 없지? 아, 그래. ...누나 방에라도, 올래?」

 

「........싫어요.」

 

 

나는 어깨를 움츠려 쓴 웃음을 띠며 그 말을 거절한다.

 

 

「좀 봐주세요. ...그쪽에는 히라츠카 선생님이 있으니까」

 

 

그런 맹수를 옆에 두고 잘 수 있을 정도로 내 간도 배짱이 두둑하지 않다. 아니 물론, 없으면 따라간다는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이 사람도 어느 의미로 같은 클래스고. 어느 쪽이든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천사의 자는 얼굴을 보고 있는 편이, 기분으로서는 약간 풀어지겠지?

 

 

「어머」

 

 

내 대답에, 하루노 씨는 부자연스럽게 놀란 시늉을 한다.

 

 

「그러고 보니 완전히 잊었어. ...후후, 분위기에는 흐르지 않네.」

 

「...흐르지 않는 게 장점이니까」

 

 

이제 와서 그 정도의 데스트랩에 난 걸리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까 부담 없이 데스트랩을 설치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내 일상이 너무 위험하다.

 

 

「후후... 좋아, 건전한 건 좋은 인상이에요.」

 

 

하루노 씨는 그 보통의 교환에 만족한 것 같고, 빙긋하고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그녀로서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럼 히키가야 군... 또 내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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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노 편을 하는 건 꽤나 오래간만인 것 같습니다.

새로 나온 유키노시타 두번째 루트 프롤로그를 올렸더니만, 갑자기 후일담이 나타나서 놀랐습니다.

작가님의 말을 보면 아시겠지만, 하루농의 데레를 기대하셨던 분들은 약간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저는 하루노가 일반적으로 그러는 건 도무지 상상이 안 가서...

이런 정도로 하는 게 하루노의 매력이 잘 살아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쨌든 후편이 나오면 그 때 다시 보도록 하지요.

⑧ 후편 11/25 완결.

 

긴 하루가 끝나, 눈이 내리는 골목길을, 그와 그녀는 걷는다. 그리고, 그녀와 여전히 변할 수 없는 그의 이야기가 맞이하는, 하나의 결말.

 

 

          ×          ×          ×

 

 

대로의 편의점에서 나오자, 밖은 눈이 조금씩 날리고 있었다.

저녁부터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간신히 일할 마음이 생긴 것 같다. 뺨을 스치는 차가워진 공기에, 간간히 섬뜩하고, 차디차게 물기 어린 눈 알갱이가 섞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들뜨는 단어 앞에서, 이런 이런 벌써 연말연시인가 생각해 버리는 걸 보면, 내게는 역시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개가 없다고 재차 자각했다.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골목길을 구부러져, 주택가로 발길을 향한다.

저녁, 유이가하마 일행들과 다닌 길은, 거주자들이 장식한 길일 것이다. 일루미네이션 장식이, 반짝, 반짝하고 점멸을 반복한다. 왕래가 적어진 이 시간, 이 것들은 누구를 위해 어둠을 비추고 있었던 걸까. 맞이해야 할 가족은, 일찌감치 집안일 텐데.

당분간 걸어, 유키노시타 맨션 앞 근처에서, 하루노 씨가 잠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도 또, 어렴풋이 일루미네이션으로 비치고 있다.

하루노 씨도 나를 눈치 챈 것 같다. 작게, 가슴 앞에서 손을 흔들어 왔다.

 

 

「야아, 기다렸어?」

 

「...그거야 뭐」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 맨션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 나는 대로의 편의점까지 피난하고 있었다. 엔트란스에서 얼면서 기다릴 수도 없다. 실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기 걸릴 정도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정말로 기다려 줬네.」

 

「아무튼... 의뢰고」

 

 

일단, 받은 의뢰는 끝까지 지켜보려고 생각했을 뿐이다. ...원래, 유키노시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는다, 라는 의뢰를. 기회주의도 정도가 있지만, 나는 그 의뢰를 뜻밖에 해결해 버린 것 같으니까.

그 결과 보고를, 나는 들어 두고 싶었던 것뿐이다.

 

 

「후후... 이러니 저러니 해도 히키가야 군은 성실하네.」

 

 

하루노 씨는 악의도 없이 미소 짓는다. 그 미소는, 어딘가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따라붙기 전에, 그녀는 휙 하고 등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역에 간다면, 이쪽 아닙니까?」

 

 

나는 걸어 온 길을 약간만 되돌아본다.

 

 

「응-, 조금만 걷지 않을래? 누나와 밤 산책이라는 걸로」

 

 

...아무튼, 그거야 상관없지만.

나는 약간 빠른 걸음으로, 하루노 씨의 한 걸음 뒤까지 따라잡아, 그 거리를 유지한다.

하루노 씨는 그걸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앞을 향해, 느긋한 속도로 계속 걸어간다. 그리고, 약간만 얼굴을 올린다.

 

 

「눈, 내려오는 것 같네.」

 

「...그러네요.」

 

「쌓이는 걸까나.」

 

「...글쎄요, 이 정도라면」

 

 

보면 알 것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어떻게든 좋은 얘기라는 것도, 하루노 씨로서는 드물다. 어딘가, 그건 나오는 태도를 엿보고 있는 듯하게도 보인다. 어떤, 얘기를 꺼내면 좋을까, 하고.

나부터 얘기를 꺼낼 이유도 없고, 잠깐의 침묵이 계속되었다.

 

 

「...프레젠트는」

 

 

그리고, 하루노 씨는 간신히 입을 연다.

 

 

「프레젠트는, 확실히 건네줄 수 있었어.」

 

「...기뻐했는지, 유키노시타는」

 

「글쎄, 어떨까. 그것보다, 여러 가지 말을 들어버렸어.」

 

「.........」

 

「유키노 짱한테, 혼났어.」

 

 

아하하, 하고 하루노 씨의 웃음소리가 작게 울린다. 그건 한순간 희미하게 빛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왜 말해주지 않았던 거냐고, 혼나 버렸어. 다음부터는 중요한 일은 확실히 말하도록, 약속 당해 버렸어.」

 

「...........」

 

「그래도, 결국... 어리광은, 말하지 않았어. 확실하게는, 말해주지 않았어.」

 

「...........」

 

 

유키노시타의 어리광. 언니의 결혼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여동생이 말해야 할, 어리광.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는, 예상이 간다.

 

 

「심술쟁이지요, 유키노 짱도. 그 정도쯤은 알고서도,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니까.」

 

「..............」

 

 

아마, 그렇지 않겠지. 그건 하루노 씨라도 해도, 알고 있을 터다.

유키노시타는 어디까지나, 그건 하루노 씨가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하지 않았겠지. 마지막은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그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히키가야 군이 유키노 짱한테 말하게 하려고 했던 것도, 아마 그거지?」

 

「...글쎄요.」

 

 

나로서는 말할 수 없고... 생각해 보면 여동생이라도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도, 유키노시타는 끝까지 옳았다. 올바르게, 있으려 했다.

하루노 씨의 결혼의 시비에 관해서.

그와 그녀의 결혼이 잘못됐다니... 더더욱 말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아-아」

 

 

하루노 씨는, 과장스럽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다.

 

 

「곤란해졌네. 유키노 짱하고 잠깐 얘기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흔들리다니. ...지금까지는, 이런 적 없었는데.」

 

 

너무나도 비뚤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그것이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볼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지 않은 채로, 몹시 피폐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한 번 끊어져, 재차 올바르게 연결됐다. 그래서 그녀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언니와 여동생의, 관계라는 것이.

그건 확실히, 그녀의 걸음을 막고 있다.

 

 

「곤란해졌어... 어머니한테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무튼 무슨 말을 해도,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각하겠지만. 한 번, 정해진 거니까.」

 

 

그녀의 걸음을 막고는 있지만.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본다.

 

 

「곤란해졌는데 기쁘다고 할까... 정말, 곤란해졌어요.」

 

 

그녀는 그것을, 쓴 웃음과 함께 인정하는 것 같았다.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유키노시타 하루노.

모든 것에 선택된 그녀. 선택되어 버린 그녀.

하지만 그녀가 선택받고 싶었던 건, 다른 어느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단지 하나에, 단 한 사람에게 선택받고 싶었던 것이니까.

보통의, 자매처럼.

 

 

「그러니까... 이건 패배. 내 패배네. 히키가야 군들의, 작전 승리야.」

 

「...좀 봐주세요.」

 

 

나도 또한, 쓴 웃음을 흘린다. 승리라고? 틀려, 나는 졌던 것이다. 그 정도는 안다.

말하자면, 유키노시타의 단독 승리.

내 계획이 어이없이 간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될 뻔했던 결과를 무리하게 바로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유키노시타니까. 아무리 결과가 내 예상대로라고 해도... 내 책략은, 전전에 유키노시타의 책략으로 교체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와 유키노시타를 세트로 말하는 건... 적당히, 그만둬 줬으면 했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전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쓴웃음에,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있지 히키가야 군.」

 

「...뭔가요.」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해?」

 

「...........」

 

 

하루노 씨의 질문 의도를 알지 못하고, 나는 돌려줘야 할 말을 잃는다.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 같은 건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이, 말을 계속한다.

 

 

「곤란할 텐데, 기쁠 텐데... 눈치 채면 앞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하는 내가 있어.」

 

「.............」

 

「어째서 이런 식으로 되어버렸을까, 난」

 

「...그런 건」

 

 

그런 건, 당신이라면 벌써 알고 있을 터다.

변함없으니까. 바뀔 수 없으니까. 사람은 간단히,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자신을 버리고 가는 건 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 내부에 모순된 감정이 있다고 해도. 그걸 인정해 버렸다고 해도.

 

 

「바뀌지 말라고 하는 건, 잔혹하지요. 바뀌라고 간단히 말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

 

「나는 유키노 짱한테, 그렇게 말해왔을까.」

 

 

변함없으면, 그 비뚤어진 관계도 계속된다. 지금까지와 같이, 질질 끌어버릴 수도 있다. 한계를 눈치 채게 될, 그 때까지.

 

 

「그렇지만... 유키노 짱은, 강해졌어. 내가 바란 대로의, 강한 여자애가 되어 버렸어.」

 

 

그래,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조금씩 주위는 변해간다. 변하지 말라고 외친다고 한들, 그런 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한계를, 깨달아 버릴 때가 찾아온다.

 

 

「그럼 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녀는, 아무런 꾸밈도 없이, 소박하게 그렇게 의문을 나타냈다.

 

 

「...저한테는, 몰라요.」

 

 

내게는, 정답은 이끌어낼 수 없다. 그녀에게 억지로 조력하게 되고, 그녀에게 무리하게 바로잡혀 간신히 여기에 있는 나에게는. 간신히 뭔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나에게는.

 

아는 건, 짓궂게도 눈앞에 있는 그녀가 놓인 상황뿐이다.

막다른 골목. 스스로 판 구멍에 자신이 파묻혀 버릴 듯한, 어쩔 수 없는 자승자박.

정상과 최저의, 단 하나의 공통항.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떻게든 하겠죠?」

 

「...간단히 말해주네. 그거야,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잖아?」

 

 

그래. 그것이 나와 그녀의 큰 차이.

내가 단념할 수밖에 없듯이,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다음의 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여동생의 어리광을 감안하면서... 언제나처럼 방약무인으로 해치워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터무니없는 말이네-. 히키가야 군은 어머니를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싫은 신뢰구나, 하고 하루노 씨는 쓴 웃음을 띤다.

신뢰, 군. 그렇게 말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나의 책략에, 마지막에 움직여 주는 사람은, 결국 그녀였으니까. 그녀라면, 여동생을 잘라 내지 않고서도, 아니, 받아들이고도 더욱 더, 바라는 미래를 선택해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에 걸맞은 스펙이, 그에 상응하는 냉철한 사고가, 그에 적합한 정신력이, 그녀에게는 있다.

나는 그녀에 관해서만은 착각할 리 없다고 호언하고 있었으니까... 그 역도 또한, 그렇다. 그 정도는, 나조차도 안다. 하물며, 여동생에게 재촉 받으면, 세상의 연장자라는 사람은 싫어도 전력을 내지 않을 수 없고.

...참으로, 싫은 신뢰다.

 

 

「하아...뭐, 히키가야 군한테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겠지. 확실히...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나요... 여러 가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하루노 씨는 겨우 대담한, 미소를 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를, 공연히 검은 미소를. 아니, 정말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몰라... 솔직히 말하면 역시 서투르다, 이 미소는. 왠지 내가 또 손해 볼 듯한, 그런 불길한 예감까지 몸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 나의 경직된 얼굴 같은 건 완전히 모르는 체하는 식으로, 그녀는 문득 생각난 듯이 조금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그래도 그 전에」

 

「네?」

 

「...책임, 져 주실까나」

 

「...............어?」

 

 

내가 그 말을 다 이해하기 전에.

살짝 하고, 나를 뭔가가 감싼다.

그것이 하루노 씨의 양팔이라고 눈치 챘을 때에는, 나는 그녀에게 구속되고 있었다. 아니 물론, 풀어 버릴 수 있겠지만... 몸이 굳어져 버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채, 심장만이 경종을 울린다.

어슴푸레한 골목길 구석에서, 가로등으로 생긴 나와 하루노 씨의 겹친 그림자만이 아련히 비치고 있다.

 

 

「저, 기...」

 

「입 다물어. ...히키가야 군, 나 아까 전부터, 실은 굉장히 기분 나쁜 거예요.」

 

「............」

 

 

그렇게 귓전에서 말하면, 입 다물지 않을 수 없다. 뭔가 쓸데없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등 뒤에 둘러진 손이 등을 찢어버릴듯한 망상에 한순간 빠진다. 어디의 괴물이야 그건.

하루노 씨는 말을 꺼낸다.

 

 

「히키가야 군은 내 계획을 엉망진창으로 해 줬어.」

 

「............」

 

「그 탓에 나, 꽤 멀리 돌아가야 할 것 같은 걸.」

 

「............」

 

 

여기까지 듣고, 나는, 이것이 그녀의 원망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두고, 그녀가 간신히 입에 담는, 나를 향한 원망의 말.

 

 

「모처럼 유키노 짱을 맡길 수 있는 애를 찾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추가로 돌려받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의 여동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

 

「유키노 짱은 화나고, 어머니와는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벌써 엉망인데」

 

「...............」

 

「버렸을 터인 미련을 끌어내서, 깨닫고 싶지 않은 걸, 깨닫게 해 버리고」

 

「..............」

 

「이런... 추태를 보이게 돼서」

 

 

스르르 하고, 그녀의 팔이 풀려 한순간 나는 그녀와 마주본다. 그녀의 표정은, 처진 흑발에 가려 안보였지만.

마치 이 모습을 보라고 말하듯이. 이 추태는 내 탓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녀는 나는 말 이외의 수단으로 몰아세운다.

 

 

「있지, 히키가야 군...」

 

 

내 옷깃을 잡은, 꽉 쥔 손.

그리고 살짝, 그 위에 얹힌 중량감.

내 편에서는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손과 머리가 닿고 있는 내 가슴만이, 서서히 열을 띠고 있다.


「히키가야 군에게라면, 이런 나를 보여도 좋을까... 라니, 믿지 않지요, 히키가야 군인걸.」

 

 

후후, 하고 자조적으로, 어딘가 외로운 듯이 들리는, 작게 소리를 죽인 웃음.

하지만 그녀의 신체는, 옆에서 보고 있어도 모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나만이 그것을 안다. 알고 싶은 것도 아닌데, 알아 버리고 있다.

 

 

「.............」

 

 

그녀는 내게,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그녀의 약점을 폭로해 버린 것을, 책망하고 있다.

그 흔들림은, 겨울 길의 냉기가 불러일으킨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녀 안에서 흘러나온 냉기에, 그녀 자신이 얼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가면에 덮이지 않은, 여린 부분이 추위를 호소하고 있던 것일까.

 

...어느 쪽이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해서, 그녀를 받쳐주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적어도 흔들림이 사라질 때까지, 이렇게 해서 거들어주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나」를 봐 버린, 내가 지게 될 책임이겠지.

그녀의 원망하는 말을 달게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동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싫을 정도로 이해했다고 해도, 그런 동정만은, 해서는 안 된다. 대신하다니 당치도 않다.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그녀 자신이니까.

계속 그녀와 함께 있던, 자그마한 에고이즘이니까.

다만,

 

 

「...믿어요.」

 

 

그것만큼은 전해 두고 싶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착각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그녀 안에 있는, 그 작은 에고이즘을 알고서, 옳다고 한 사람은 나니까. 알고 있다는, 그것만큼은 전하고 싶었다.

 

 

「............그래」

 

 

하루노 씨는 그 말만 하고, 잠시 동안 체중을 내게 맡긴 채, 가만히 있었다.

 

 

「...............」

 

「................」

 

 

이윽고, 그녀의 떨림도 안정됐다. 정말 수 십초였을지도 모르고, 몇 분이나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닿은 순간부터 미쳐 버린 나의 시간 감각으로는, 그건 저울질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내게서 천천히 떨어진다. 스며든 열은,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녀는 왠지 불만스럽게, 지긋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저기 말야, 이럴 때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꼭 껴안는 게 정답. 왜 멍하니 서고 있는 거야.」

 

「...그런 걸, 저한테 기대하지 말아주세요.」

 

 

탈력감을 느끼며 내가 대답을 하자, 유쾌한 듯이 쿡쿡하고 웃는다.

평소처럼, 변함없는 유키노시타 하루노인 채로.

 

 

「뭐, 그것도 그러네요... 히키가야 군은, 그렇게 언제나 오인하는 걸.」

 

 

          ×          ×          ×

 

 

「...........뭐야 이건?」

 

「아ー, 아니...커피지만요. MAX커피」

 

「...............」

 

「아니, 맛있어요, 이거. 바보 같이 답니다만」

 

「..............」

 

「거기에 그, 따뜻하고」

 

「...그거야 아무튼 나 춥다고 말했지만 말야... 으ー응, 그런 말이 아닌데」

 

 

아무튼 됐나, 하고 하루노 씨는 내가 자판기에서 산 MAX 커피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나와 그녀는 귀로에 오른다. 서로가 돌아가야 할 장소로.

어딘지 모르는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어떻게든 상관없는 듯한 얘기를 툭툭하고 주고받으면서.

그러니까 이건, 사족과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 먼저 떠올릴 일도 없겠지, 책 구석에 기입된 낙서 같이 종잡을 수 없는 대화.

 

 

「그렇다고 할까 정말로 여기 어딘가요? 꽤 대로에서 벗어나 버린 생각이 듭니다만」

 

「글쎄, 어디일까요.」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요.」

 

「반 정도는 그래. 나도 모르는 길이고」

 

「...............」

 

「뭐야 그 얼굴. 별로, 헤매고 있는 게 아니에요? 유키노 짱이 아니니까.」

 

「...자매는 닮는다고 하던데 말이죠.」

 

「신용 없구나... 그래도, 이렇게 하는 건 조금 즐거워지지 않아? 모르는 길을, 흔들흔들 걷는다는 것」

 

「...모르는 길에는 여러 가지 위험도 잠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그러네. 히키가야 군과 밤길에서 만나면 꽤 무섭지요.」

 

「...그렇게 수상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어라? 히키가야 군이 돌아다니지 않는 이유는 경찰에게 심문받고 싶지 않아서 아냐?」

 

「범죄자 레벨인가요...」

 

「후후... 나는 그런 걱정도 없고, 제법 즐거워. 모르는 길을 걷거나 모르는 거리를 걷거나 하는 것이라는 건」

 

「하아, 그런가요.」

 

「응, 모르는 사람과 수다 떠는 것도... 내가 모르는 사람은, 나에 대해서도 모르니까. 마음이 편해.」

 

「.........」

 

「대충 그럴까나.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다네, 이거. 약간 칼로리라든지 신경 쓰여.」

 

「걷고 있고, 약간은 소비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런가. 약간 서두를까? 막차가 몇 시까지였지?」

 

「...아직 있다고 생각해요. 서두르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러네. 히키가야 군의 집, 가이힌 마쿠하리 쪽이었지?」

 

「...그 쪽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할까 왜 알고 있습니까.」

 

「코마치 짱이 가르쳐 줬으니까-」

 

「...그런가요」

 

「우리 집, 역에서 머니까 말야. 걸어서 돌아가는 건 과연 어려울까나...아, 혹시 괜찮으면 히키가야 군 집에서 하룻밤」

 

「부르면 오잖습니까, 츠즈키 씨라든가」

 

「정말, 무정하네. 그거야 농담이지만... 이 시간이고, 무엇보다도 오늘, 나 집에서 빠져나와 버렸으니까 말야...」

 

「...묵게 하지 않아요.」

 

「알고 있다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애군요. 정말... 적당히 택시라도 잡을까나」

 

「그런가요...」

 

「...그래도 그러네, 묘한 인연이지요.」

 

「.....뭐가」

 

「야아, 히키가야 군하고 유키노 짱이 알게 된 계기라는 거, 원인을 더듬으면 통학 중에서의 사고잖아?」

 

「...........」

 

「우리 집도 별로 부를 과시하고 싶어서 차로 통학하는 게 아니고 말이야, 단순히 교통편이 나쁜 거야. 거기에 아버지도 일단 의원이고, 방범이라는 의미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

 

「그렇게 말해놓고 저런 사고 일으켰으니까 아이러니하지만. 아아, 미안해... 히키가야 군 입장에서는 재난이겠지?」

 

「...그다지, 벌써 끝난 일이고」

 

「...그 때도 이런 식으로 말했었지요. 왠지 얼굴이 굳어지면서」

 

「............」

 

「불평이라면 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히키가야 군은, 얼마든지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

 

「...흐응,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 역시 무르네, 히키가야 군은. 이 커피 같은 수준으로 달아... 몸에 독일 정도로」

 

「내 욕은 상관없습니다만, MAX 커피의 욕은 허락하지 않아요.」

 

「에? 아아, 응... 화내는 부분이 거기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이거... 스파이인가 뭐야?」

 

「단순한 팬이에요,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지요... 어떻게든 좋을 때에」

 

「..............」

 

「하지만 아무튼 당사자가 탓하지 않는 이상, 유키노 짱이 신경 쓸 필요는 역시 없었겠네. 유키노 짱은 원래 아무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단지 타고 있었을 뿐이니까.」

 

「............」

 

「그런데도 유키노 짱은, 싫어 졌을 거야.」

 

「............」

 

「정말, 싫어졌다고 생각해. 통학에 차를 쓸 정도로 먼, 그 집이. 져야 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그 집이. 그러니까... 나왔어.」

 

「.............」

 

「나는 처음에, 아아 또 라고 생각했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고집 부리는, 평소의 그 아이겠지 하고」

 

「고집, 입니까」

 

「그래. 시시한 긍지 때문에, 시시한 주의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애의 억지라고 생각했어. 조만간 꼬리를 사리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

 

「하지만, 달랐어. 당초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벌써, 달라」

 

「.............」

 

「그 애는 그 애인 채 강해졌어. 문화제에서 나를 설파할 정도로. 아까 전 같이, 나한테 화낼 수 있을 정도로」

 

「.............」

 

「히키가야 군이나 가하마 짱 덕분이에요. 유키노 짱이 강해질 수 있던 건」

 

「......그럴 리」

 

「으응, 그런 거야. 이런 말 하는 건 그렇지만... 어떤 시작이든, 유키노 짱이 히키가야 군과 알게 돼서 다행이었어. 가하마 짱이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었어.」

 

「.............」

 

「정말... 묘한 인연이지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 옆에서 보면 그렇게 보여요, 보고 있는 사람은 정확하게 보고 있으니까.」

 

「.............」

 

「분명 그 애는, 좀 더 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도, 분명 머지않아 추월해 버릴 거야.」

 

「...본인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건 방법이 잘못돼 있으니까 그래. 내 뒤에만 붙어도, 그거야 퍼포먼스도 떨어질 거고. 그 애는, 그 애의 방식을 관철하면 좋은 거야. 유키노 짱도, 요즘 겨우 알아 준 것 같고」

 

「유키노시타의 방식, 입니까.」

 

「응. ...가끔, 굉장히 부러워져. 나는 할 수 없는 거니까」

 

「............」

 

「정말, 가-끔이야. 저런 딱딱하게 사는 방식, 지쳐버린다고 생각하는데」

 

「......뭐어, 확실히」

 

「나도 옛날부터 여러 가지 말해 왔는데... 그런데도 변함없는 것 같으니까. 변하니 않아도, 좋은 것 같으니까」

 

「............」

 

「그러니까, 히키가야 군처럼 긴장을 풀어 주는 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봐 달라고, 아까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아하하, 그랬었나? 이 흐름이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얼마나 쉽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대로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진짜네. ...뭐야, 막차 시간에 맞아버렸나」

 

「...제 때에 보내 줄 생각 없었습니까.」

 

「별로-. 그것도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럴 리 없죠. 어떻게 생각해도.」

 

「그래? ....난, 그렇지도 않은데」

 

「................」

 

「돌아가면 오늘 일, 어머니한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기도 하고. 하아...」

 

「...그런가요.」

 

「어머어머? 뭘까나, 그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얼굴. 응? 누나한테 말해봐」

 

「...기분 탓 아닙니까.」

 

「...후후, 그런 걸로 해 줄게. 커피, 고마워」

 

「팬이 늘어난다면 최상이에요.」

 

「...그러니까 뭘까나, 그 과도하기까지 한 애착은. ...아, 설마라고는 생각하는데, 전에 사준 거, 이걸로 없었던 걸로 하려고 해?」

 

「...서, 설마」

 

「거기서 노골적인 표정 짓지 마요... 아무튼, 별로 상관없지만. 산다고 한 사람은 나고. 120엔, 잘 마셨어요.」

 

「하아... 아무쪼록」

 

「히키가야 군 집은 반대 방향이네. 코마치 짱, 걱정하고 있을지도.」

 

「어떨까요. 의외로 벌써 자고 있을지도 모르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니까, 적당히 돌아다니고, 오빠답게 여동생하고 놀아주지 않으면 안 돼」

 

「...그 말, 전부 돌려줍니다.」

 

「후후, 그것도 그러네.」

 

「......괜찮습니까.」

 

「응-? 뭐가?」

 

「아니요... 뭐라고 할까.」

 

「그만두세요. 여기까지 몰아넣은 본인한테 걱정되면 조금 곤란한데」

 

「......」

 

「괜찮아요. 여러 가지... 생각 중이라고 말했었죠?」

 

「...불길한 예감 밖에 안 드는데요.」

 

「글쎄군요. 그건 열어 보고 나서의 즐거움일까나?」

 

「와- 기쁘다...」

 

 

정말로, 사족 같은 얘기다.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면, 깨끗이 잊어버릴 듯한 이야기.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나약한 소리나, 히키가야 하치만의 한순간의 당황스러움 같은 건... 역시 잊어버리는 게 좋다.

 

 

「히키가야 군」

 

「...네?」

 

「그럼, 다시 또 봐.」

 

 

그런데, 이걸로 간신히 풀려났다.

일련의 소동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듯한, 작은 이야기의 작은 끝.

본격적으로 따뜻한 침대가 그리워졌다. 집에 돌아가는군, 내게도 여동생이 있잖아...라는 것이다. 어쩐지 다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코마치도 과연, 이런 시간에 돌아가면 화나 있을지도 모른다. 뭐, 화내고 있는 얼굴도 귀엽지만. 너무나 귀여워서 내년 즈음에 과감히 고백할 정도로...음, 깬다, 나도 깼어요. ...그래도 실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할지 모르는 남매가 세상이라고 할까, 이 치바 현 내에는 아직 있는 것 같고. 전례가 너무 가까워서 사람의 도를 벗어날 것 같고 무섭다.

흠, 나도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는 걸 보니, 겨우 평소대로 되돌아 온 것 같다. 이 상태라면 짧은 겨울 방학도 쾌적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후반은 봉사부 활동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가불해서 게으름 피울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한다.

 

―――나는 이렇게 해서,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아니...뭔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인정해 버린 지금, 그런 평온도 또 정말 한 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은 가차 없이, 모든 것을 평정해 간다. 세계는 언제나처럼, 여전히 잔혹하다. 풀솜으로 목을 조이듯이, 그건 천천히 진행되는 걸까.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나는 자신에게 상냥해지고 싶다. 분명 그런 생각 같은 걸 해도 또, 한순간일지도 모르니까. 언제 자신이 싫어질지, 또 모르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 때만큼은.

 

...이렇게 말해도 뭐, 그런 일을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거나 하는 것이다. 이 때의 나는. 그 후의 전개 같은 건, 알 수도 없고.

어, 뭐야 이 나레이션... 굉장히 불안해.

 

 

          ×          ×          ×

 

 

히키가야 하치만의 잡학 코너.

그린 슬리브스라는 곡이 있다. 하루노 씨가 흥얼거리고, 유키노시타의 오르골이 연주하고 있던 멜로디. 내 개운치 않은 발상의 단서가 된 곡이기도 하다.

실은 이 선율, 『What Child Is This?』라는 크리스마스 노래에도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별로 듣지 않는, 꽤 마이너라고는 생각하지만. 추가로, 소스는 유키피디아 씨. 나도 그 뒤 위키피디아로 조사했지만.

유키노시타가 알고 있었던 곡이다. 아마, 하루노 씨도 알고 있었겠지. 그렇다고 할까 아마, 같은 생각으로 그 장난감가게에 갔던 거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있던 그 시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것을 생각해 내, 여동생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려고 했을 테니까.

아무튼, 역시 자매다. 겉은 얼굴 빼고 전혀 닮지 않았지만.

같은 선율이 흐르고 있으면서, 전혀 다른 곡이 된다. 그런 일이, 아마 세상에서는 많이 있겠지. 저, 자매처럼. 아무리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도, 근본에 흐르는 선율에는, 분명 통하는 게 있다.

아니, 이런 잔 지식, 억지 같은 거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하면 그것뿐인 이야기.

다만 이 기회주의적인 이야기 위에, 새로운 기회주의를 덧칠해 봤을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안성맞춤인, 일루미네이션 정도로 생각해 준다면 좋다.

그런데, 이제 적당히 끝내고 싶지만, 기회주의 이야기는 약간 계속된다.

 

 

 

 

「유키농! 생일 축하해!」

 

「그건 어제 전화로 들었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유이가하마 양.」

 

「와~ 오랜만의 유키농이다~. 있지, 이거 프레젠트! 유키농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저기, 그렇게 달라붙으면... 뭐 좋아요, 말해도 듣지 않을 테고...」

 

「.............」

 

 

내가 역전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이 백합백합 광경이 퍼지고 있었다. ...우와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

 

 

「아, 하치만 안녕」

 

 

그러나 여자 두 명 옆에서 천사... 아니 토츠카가 손을 흔들고 있다. ...우와아, 가고 싶어.

내가 왜 그러는 걸까 하고 한순간 발을 멈추고 있자, 때때로 내 어깨를 쿡쿡 찔러 오는 녀석이 하나. 배웅이라 말하며 따라 온 코마치다.

 

 

「왜 그래 오빠?」

 

「어? 아-, 아니, 왜 토츠카는 그 공간에 위화감 없이 섞여 있나 해서...」

 

 

위화감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옆에서 보면 슬슬 유닛으로 데뷔해라 그럴 정도였다. 물론 센터는 토츠카.

 

 

「아아, 그래... 됐으니까 갈게요. 오레기 짱」

 

「어이, 잡아당기지 마」

 

 

깬다는 표정의 코마치한테 끌려간 나는 3인 조에게 가까워진다.

토츠카가 터벅터벅하고, 내 쪽으로 왔다.

 

 

「안녕 하치만. 그리고 코마치 양.」

 

「오우 토츠카... 오늘도, 저기, 뭐라고 할까, 귀ㅇ」

 

「무슨 말하려고 그래 오빠!? 토츠카 오빠 안녕하세요.」

 

 

내 망언을 캔슬하듯이 코마치가 재빨리 껴들어 온다. 아아, 나도 이상해 졌다. 맑은 겨울 태양에 비친 토츠카가 너무나도 너무 아름다워 실수할 뻔했을 뿐이야...

토츠카에 이어, 유키노시타에게 달라붙어 있던 유이가하마가 얘기해 온다.

 

 

「아, 안녕 코마치 짱! 그리고 힛키!」

 

「안녕하세요」

 

 

이상하네,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내 쪽인데, 왜 그 다음 취급인 거야? 유이가하마의 우선순위를 엿본 순간이었다. 피해망상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를 약간 떼어 내고 이쪽을 뒤돌아본다.

 

 

「어머, 안녕하세요, 코마치 양. 무슨 일일까... 개의 산책?」

 

「...누가 개야, 누가」

 

「...말하는 개는 드물다고 생각했더니, 히키가야 군이었네. 안녕하세요.」

 

「큭... 아침부터 절호조군, 너...」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나의 쓴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식으로, 유키노시타는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라, 평소라면 여기까지 철저히 하면 우쭐거리는 표정 한 번이나 두 번은 띄울 텐데...

 

 

「그래서? 히키가야 군, 수험 직전의 여동생을 동반해 외출이라니 좋은 신분이군요. 당신에게는 오빠로서의 책임감이라는 게 결여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별로 나는...」

 

「죄송합니다, 유키노 언니! 코마치가 마음대로 배웅하러 왔어요! 오빠 아무리 지나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두드려 일으켰습니다만, 그런데도 역시 걱정이라...」

 

 

내 변명을 차단하듯이 코마치가 변명한다. 그 말을 듣고 유키노시타는 흠 하고 끄덕였다.

 

 

「...과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어쨌든 히키가야 군이 나쁘다는 결론에 변함은 없는 것 같아요.」

 

「코마치, 너 말야...」

 

 

나는 코마치를 노려본다. 자신이 마음대로 따라온 걸 분명히 밝히면서 내게 책임을 지운다고는... 무서운 고등 테크닉이었다. 아무튼 일어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미안해, 오빠?」

 

 

게다가 이 (・ω<)다. 화낼 수도 없고, 정말 밉살스러운 녀석이다. 한 바퀴 돌아 너무 귀엽기까지 하다. 응, 밉지 않아, 귀엽다.

 

 

「어라, 히라츠카 선생님은?」

 

「...아직인 것 같아. 아까 전부터 로터리 부근에 있다고 했는데」

 

 

오늘 1월 4일은, 봉사부 합숙 첫날이다. 우리들은 역전에서 집합해, 히라츠카 선생님의 차로 목적지까지 갈 예정이었다.

아침의 러쉬도 벌써 지나서, 역전의 인파도 3일간 질질 끈 분위기에서 벗어나 드문드문하다.

 

 

「아직 집합 시간까지 5분 정도 남았어요?」

 

 

토츠카의 말에, 유이가하마도 동조한다.

 

 

「거기에 열차가 아니구,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좋지 않아? 그것보다 힛키, 프레젠트 가져 왔어?」

 

「뭐? 프레젠트?」

 

 

유이가하마의 화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나는 눈을 껌벅인다.

 

 

「그래요, 유키농한테 줄 프레젠트! 유키농 어제 생일이었잖아.」

 

「아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런 말을 했었지...」

 

「잠깐, 뭐야 그 반응!?」

 

 

그렇다고 할까 몰랐다. 아니,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기억이 있군. 생일에 관한 트라우마를 서로 공개했던 적은 확실히 있었지만. 애처로운 기억만은 남았지만요.

 

 

「우우-... 어제 내가 가르쳐 뒀으면 좋았을 텐데...」

 

 

책망할 필요도 없는데 유이가하마는 자신을 꾸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유키노시타가 위로한다.

 

 

「괜찮아요, 유이가하마 양」

 

「유키농?」

 

「원래 생일이 언제나 겨울 방학이었으니까, 선물을 받은 적 자체가 거의 없었던 걸... 당신에게서 받을 수 있던 것만으로 기뻐요.」

 

「유키농.....」

 

「거기에, 그 남자가 뭔가 줬다고 해서, 내가 기뻐한다고 생각해?」

 

「유키농!?」

 

 

응, 아무래도 프레젠트는 없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다. 내 마음에 좀 더 큰 구멍이 열릴 참이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할까 아까 전부터 나한테 너무 까다로워. 평소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언제나 이상으로 가시 돋쳐. 뭔가에 화나 있다고 할까, 꽁한 얼굴을 하고 있다. 기분 나쁘다는 편이 표현으로서는 가까운 것 같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이 일주일간 연락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이 녀석을 자극할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토츠카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유키노시타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몰랐어요... 유키노시타 양, 미안해.」

 

「에, 아니요...」

 

「토츠카는 나쁘지 않으니까 괜찮아.」

 

 

유키노시타가 뭔가 말하려 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빨리 토츠카를 보충할 수 있었다.약간의 만족감을 느낀다. 아무튼, 유키노시타도 상대가 내가 아니고, 나처럼 축하받지 않는 것에는 익숙해지고 있는 점을 보면 불평한다고도 생각되지 않지만... 단순히 내가 포인트 벌고 싶었을 뿐.

 

 

「거기에, 크리스마스 때 프레젠트 교환...이던가? 그런 느낌으로 했었잖아. 이젠 그런 돈 없어요.」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이런 일이 있어. 크리스마스 가까운 날에 태어나면 프레젠트 하나만 받아버리는 일이... 슬픈 숙명이다. 아무튼, 소스가 우연히 옆 자리에서 말하고 있던 잘 모르는 녀석이니까, 단순한 개그일지도 모르려나. 경제 사정 같은 게 연관되면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암튼암튼 유이 언니」

 

 

하며 거기에 코마치가 끼어들어 왔다. 손으로 내려놓은 가방을 부스럭부스럭 찾아서, 작은 리본 장식이 된 상자를 꺼낸다.

 

 

「오빠가 준비하지 않아도, 코마치가 확실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는 걸로 유키노 언니, 오빠하고 코마치한테서 라는 걸로 받아주세요.」

 

 

코마치는 빨리 유키노시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부정한 관리에게 뇌물을 건네주는 에치고야를 방불케 하는 솜씨로 프레젠트를 납품해,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너무나 좋은 솜씨에, 유키노시타도 한순간 멍한다.

 

 

「아, 예...저기, 고마워요, 코마치 양.」

 

「아니요아니요-. 그리고 그거, 오빠가 주는 거기도 하니까!」

 

「어이, 마음대로 이름 올리지 마.」

 

「괜찮아, 확실히 오빠 용돈 가불해서 산거니까, 가슴 펴도 좋아요!」

 

「무슨 짓 하고 있어 너 말야...」

 

 

나 이번 달 돈 부족인데... 게다가 가불이라든지 가가가 문고도 살 수 없는데...

 

 

「코마치 양, 내 생일을 잘 알고 있었네...」

 

「코마치 네트워크에 걸리면 그런 건 곧바로 알아요.」

 

 

훗훗후 하고 뭔가 있음직하게 웃고는 있지만... 대체로, 그걸 알려줄 것 같은 사람은 한 사람이나 두 명 정도 밖에 없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이가하마를 제외하면, 이미 좁혀진 것과 다름없다.

 

 

「.............」

 

 

유키노시타도 눈치 챈 것 같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고... 그리고 관자놀이를 손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왜 그런 리액션으로 이어져? 전처럼 노골적으로 싫은 듯한 얼굴을 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해소됐지 않았나?

괜찮아, 하며 미소 지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낸다.

 

―――아니, 그런, 설마라고는 생각하는데...

 

 

「뭐 좋아요... 히키가야 군.」

 

 

내 사고가 싫은 방향으로 엇나가려고 했을 때, 유키노시타가 한 숨 섞인 말을 내게 건넨다.

 

 

「...뭐야」

 

「아니요... 당신 명의의 물건을 받아 버린 이상, 우선 답례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유키노시타는 왠지 안타까운 듯한 얼굴을 하면서, 툭하고 말한다. 그 표정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른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 뒤,

 

 

「저기...고ㅁ」

 

「유키노 짱~, 햣하로~!」

 

「...어?」

 

 

그런 목소리가, 로터리에서 들려 왔다.

유키노시타 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거기에 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거기에 있던 사람은... 뭐라고 할까 앞을 볼 것도 없이, 그런 세기말 인사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으로는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할까,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언니.....」

 

 

그래,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언니, 유키노시타 하루노다.

하루노 씨는 본 적 있는 거칠고 터프한 차의 조수석에서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차다. 조수석 문을 열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이쪽으로 달려온다.

 

 

「야아~ 모두들 모인 것 같네」

 

「...모인 것 같다니, 왜 있습니까?」

 

 

게다가, 히라츠카 선생님의 차로. 다시 차를 보자... 히라츠카 선생님이 운전석에서 녹초가 되어 있었다. 피곤하신 것 같네요... 왠지 모르게 원인은 짐작이 갑니다만.

 

 

「응-? 약간의 여행이야, 여행. 그치-, 유키노 짱」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에게 팔짱을 낀다. 유이가하마도 달라붙고 있으므로, 양 손에 꽃 상태였다. 여전히 여자한테 인기인 이 녀석... 그래도 실제 이런 모습을 보면, 별로 부럽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언니, 숨 막히게 더우니까 떨어져 주지 않을까...」

 

「유키노 짱 너무해! 가하마 짱도 이렇게 달라붙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하루노 씨는 즐거운 듯이 히죽히죽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유키노시타는 완전 무뚝둑한 얼굴이다. 유이가하마와의 백합 공간에 껴들어 왔기 때문은 아니겠지... 거기에, 유키노시타의 침착성으로부터 봐도, 하루노 씨가 나타났던 일에 그만큼 놀라고 있는 건 아닌 듯하다. 그 말은, 알고 있다는 거겠지.

 

 

「여행이라니... 어딜 갑니까?」

 

「응, 근처지만 말야. 그게 우연히도... 유키노 짱들과 같은 장소였네요.」

 

 

...그런 우연이 존재하는 건가.

 

 

「언니, 말하지만 우리들은 합숙에 갈 거예요. 관광유람인 언니와는 달라요. 불필요한 행동만큼은 하지 말아주세요.」

 

「네~에」

 

 

유키노시타의 쓴말에, 하루노 씨는 고분고분히 대답한다. 아무튼 고분고분히 답했다고 해도, 이 사람의 경우 정말로 그렇게 행동할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자매 사이도 조금은 좋아진 것 같다.

하루노 씨의 스킨십에 유키노시타도 불평은 말했지만 뿌리치는 것도 아니고... 유키노시타가 하는 말을 하루노 씨도 우선 들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보통으로 사이가 좋은, 자매로 보였다.

 

 

「이라는 걸로, 하루노도 도중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토론회까지 참가시키는 건... 잘 부탁한다.」

 

 

눈치 채면 히라츠카 선생님도 차에서 내려 여기에 오고 있었다. 여전히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유키노시타 자매의 모습을 보고는, 문득 표정이 느슨해진다.

내 쪽으로 와서, 작은 소리로 물어본다.

 

 

「이건... 네가 뭔가 한 거지?」

 

「...아니요, 아무것도」

 

 

아마, 내 소행이라면 좀 더 여기에는 어두운 광경이 퍼져 있었을 테니까. 부탁하지 않았는데 도움 받고, 바로잡혀서 여기에 겨우 도달했으니까. 이건 내 공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튼 원래, 공적을 얻고 싶어서 하고 있는 게 아니고.

 

 

「...그런가」

 

 

히라츠카 선생님은 그 말만 하고, 툭툭하고 내 머리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러니까, 그만하시라고」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마라, 조금은 너도 성장했나 생각해서 말이지.」

 

 

정말, 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떠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를 바라보았다.

 

 

「성장한 사람은, 그녀들 편이려나?」

 

「...........」

 

「흠... 뭐 그런데도 좋고 말이야. 가까이 있는 인간이 성장하면, 너도 조금은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 라이벌과 함께 성장해 간다고 말해도... 이것도 소년 만화의 왕도군.」

 

 

그렇게 말하고, 아이 같은 미소를 띤다.

 

 

「...보고 있던 것처럼 말하는군요.」

 

「의외로 어른은 보고 있는 거야.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계속 말이야.」

 

 

최근의 언동을 보면 어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 반론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사람은, 이따금 그런 얼굴을 보이니까, 곤란하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담배와 휴대 재떨이를 꺼내, 힐끔 하고 나를 보았다. 할 말은 끝난 것 같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주위 무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도록, 그 고리에 조금만 가까워졌다.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의 팔에서 떨어져 코마치나 토츠카와도 사이좋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몇 번인가 대면하고 있고... 코마치한테 또 필요 없는 말 불어넣지 않을까.

걱정 돼서, 코마치 옆으로 다가간 그 때,

 

 

「아, 여기서 여러분한테 언니로부터의 발표가 있어~요!」

 

 

그런 말을 하루노 씨가 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머리 위에는 ? 마크가 떠올라 있다. ...아니, 혼자만 묘하게 굳은 표정을 띤 녀석이 있다. 유키노시타다.

 

 

「언니,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응-? 왜, 유키노 짱. 『이것』에 대해서는 언니, 약속은 하지 않았는데」

 

「잠시 기다리세요, 따로 퍼뜨릴 필요는...」

 

 

주위는 아직 뭐가 뭔지 모른다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그 교환에, 정체 모를 불길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하루노 씨의 그 미소다. 저거, 뭘 꾸미고 있을 때의 정체 모를 미소.

그리고, 유키노시타의 제지도 듣지 않고, 하루노 씨는... 코마치 옆까지 와 있던 내 팔을 잡았다.

 

 

「근데, 어?」

 

 

힘껏 끌려간 나는 그 기세로 하루노 씨에게 닿아 버렸다. 살짝, 하루노 씨의 부드러움과 향기가 가까이 느껴졌다. 역시 무서울 정도로 좋은 향기... 아니, 그럴 때가 아니다.

하루노 씨는 그런 나를 한순간 살짝 보고 미소 짓는다, 그 표정은... 뭐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하루노 씨는 곧장 얼굴을 주위 사람들에게 향하고, 숨을 살짝 들이켜,

 

 

「그러니까 말야-, 나 이번에 히키가야 군하고, 」

 

「언니, 도가 너무 지나쳐요.」

 

 

하루노 씨가 무슨 말을 시작한 순간,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유키노시타가 움직였다.

하루노 씨의 비어 있는 쪽의 팔을 잡고, 유무를 말하게 하지 않을 기세로 끌고 간다.

 

 

「...잠깐잠깐, 유키노 짱 아프다니까-」

 

 

하루노 씨는 소리를 지르지만, 저항 같은 저항도 하지 않고 질질 끌려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할까 아마 의식적으로 나를 끌어가려 하고 있다. 팔을 놓아 주지 않는다.

 

 

「후후, 왜 그러는 거야 유키노 짱,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입 다무세요.」

 

 

유쾌한 듯이 묻는 하루노 씨에게, 유키노시타는 차갑게 단언한다. 단언하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우에에에!? 유, 유키농 어디 가!?」

 

 

간신히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한 유이가하마가 허둥지둥 하면서도 유키노시타에게 얘기한다.

유키노시타는 휙 뒤돌아보고는, 얼어붙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유이가하마 양, 잠시 거기서 기다려 주고 있어? ...자매간의 대화가 있으니까.」

 

 

어, 뭐야 그거 무서워. 그렇다고 할까 언니와 얘기한다면, 나 따라가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하루노 씨, 손을 놔 주세요.

유키노시타가 너무 무서워 입에 내는 것도 꺼려졌다. 필사적으로 눈으로 호소했지만, 하루노 씨는 그런 나에게 윙크를 한 번 돌려줬을 뿐이었다. ...아니 필요 없어요. 그런 건.

 

 

 

 

「왜 히키가야 군까지 여기 있을까나?」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아무튼아무튼 유키노 짱, 히키가야 군이 있는 편이 얘기도 착착 진행돼요?」

 

 

하루노 씨의 즐거운 듯한 소리에, 유키노시타는 다시 관자놀이에 손을 댄다. 그 말이 아니라,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하루노 씨가 뭘 하려 했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지 않으면 저런 방해는 하지 않을 것이고.

유이가하마나 토츠카들에게서 안 보이는 곳까지, 나와 하루노 씨는 끌려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끌고 온 사람은 하루노 씨지만.

하지만, 내가 있는 쪽이 얘기가 진행된다는 건... 무슨 말일까.

 

 

「...언니, 그럼 묻겠는데, 방금 전은, 뭐?」

 

「아까 전? 아아....」

 

 

히키가야 군하고 사귀게 됐다고, 보고하려고 생각했을 뿐인데?

 

 

...............................

 

 

「..............네?」

 

「응, 들리지 않았어? ...나하고 히키가야 군, 사귀게 됐어요?」

 

「............아니, 어?」

 

 

아니, 아니아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 사람.

엉뚱한 시추에이션을 내던져 오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월등한 차이로 의미를 몰랐다.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말아줘요. ...부끄러우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얼굴을 붉게 물들여 보인다. 하지만 입언저리는 곧 있으면 터질듯이 떨리고 있었다. 이 표정은 완전히 다우트.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건 임시방편이라고 언니가 말했던 거예요. ...왜 그 장소에서 저런 말을 할 필요가 있어」

 

「에~, 그건 그쪽이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휘젓지 말아주세요.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던 바로 직후잖아.」

 

「언니는 불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런 억지가 통용된다니...」

 

「...........」

 

 

왠지 자매 싸움을 시작한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였지만, 사정을 모르는 나는 횡설수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싸움을 중재한다는 역할은, 내게는 너무 무겁다. 대화에 끼어들 수도 없고, 당분간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런 모습을 눈치 챘는지,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를 말린다.

 

 

「봐봐, 히키가야 군 곤란해 하고 있잖아. 우선은 사정을 설명하지 않으면, 그치?」

 

「..........아무튼, 의미 모르겠고」

 

 

솔직히 그 사정 같은 것에 말려 들어가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 설명을 듣기를 거부했다고 해도 별로 좋은 결말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유키노시타는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 불쾌한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툭하고 설명 같은 말을 입에 담는다.

 

 

「......사정이라고 해도. ...그러니까 요점은, 언니의 방편이에요.」

 

 

과연, 방편인가. 아무튼 나 따위 허울 좋은 구실 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근데 설명 끝인가요. 너무 엉성하잖아.

게다가 유키노시타 님, 그걸로 설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해 버렸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하루노 씨가 쓴웃음을 짓는다.

 

 

「정말... 유키노 짱은 저기압인 것 같네. 그럼 언니가 설명 해볼까나. 유키노 짱, 좋은 거야? 나는 적당한 말 밖에 하지 않아요?」

 

「...이상한 말을 하면 그때마다 정정해요.」

 

「...흐응, 아무튼 상관없을까. 너무 모두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하고, 척척 설명할게.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이 되었냐고 하면, 일주일 정도 전에, 있잖아, 히키가야 군과 만난 날의 다음 다음 날 정도였을까. 빨리 어머니와 서로 얘기해 봤는데...」

 

 

 

그게 어떤 교섭이었는지, 어떤 술책을 썼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유키노시타 자매의 모친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니까, 아마 구체적으로 물어봐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하겠지. 그러니까, 우선 결과부터 말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하루노 씨는 자신의 의지를 부분적으로 통과시키기를 성공한 것 같다.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올해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 같은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우선, 지금까지는. 완전한 철회까지는 가지 못했던 것 같지만.

요점은 문제의 연장. 그것만 들으면 하루노 씨답지는 않은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쪽일까 하고 말한다면 내가 자주 쓰는 흘려내기였다.

라고는 했지만, 원래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루노 씨도 한 번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고, 회사 간의 문제까지 관련되고 있으니까.

 

 

「아무튼 원래 저 편이 사위로 들어온다는 얘기고. 이게 시집가기라면, 꽤나 난이도가 바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우위를 이용했다는 말일까. 이런 예스런 풍습이라는 건 현대소년인 내게는 그다지 가깝게 느껴지진 않지만.

아무튼 내게 있어서 문제는, 왜 하루노 씨가 아까 전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는가라는 거다.

그건 하루노 씨가, 교제를 거절할 때에 꺼낸 변명에 있었다.

 

 

가라사대―――「실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교제할 수 없다.」

 

 

그게 뭐야 하고 말하고 싶어지게도 됐지만, 하루노 씨에게 그 말을 차단당했다.

 

 

「어머니와 비무장으로 교섭할 수도 없었으니까. 조금 여러 가지 조사했어요.」

 

 

유키노시타와 얘기한 다음 날을, 하루노 씨는 협상 카드를 찾는 일에 소비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묻고 도는 동안에 얻은 카드 중 하나가,

 

 

「어머니가 연애결혼이었던 건 처음 들었어-. 설마 츠즈키한테서 그런 얘길 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한다.

...아무튼, 엘리트끼리 결혼했다고 그게 정략결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라는 말이겠지. 전에도 말했지만, 만나는 방법에 트집 따위를 잡으면 안 되고, 반대로 말하자면 결과만을 보고 만난 방법을 섣불리 의심해서는 안 된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가까운 시일 내로 결혼했다고 치면, 아아 결국 맞선 봤군요, 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아닌가.

 

아무튼 실제, 약혼도 뭣도 아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좋아하게 되었던 사람이 현지의 윗사람이었을 뿐, 말해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 비교적 유키노시타의 부친은 아무래도 엉덩이에 깔리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게 여계 가족일까.

 

그렇다고 할까 츠즈키 씨, 진짜 누굴까. 겉으로 보이는 나이로 볼 때 계속 모시고 있었다면 옛날이야기라든지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으려나... 내 안에서 한층 더 닌자율이 올라 버렸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하루노 씨가 단기간에 얻을 수 있던 정보는 그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주축으로 논진을 쳤던 것이다. 자신이 연애결혼인데, 딸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건 이상하다, 라고.

 

 

「언제나처럼 그건 그거, 이건 이거라고 마음대로 판단해 버리면 거기서 끝이었지만... 후후, 어머니가 얼굴 붉히는 건 오랜만에 봤으니까 약간 유쾌했어. 꽤나 숨기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을까나.」

 

 

아마, 그 마안은 모친의 몇 안 되는 틈을 놓치지 않았던 거겠지. 거기를 돌파구로 삼아, 꽤나 흔들었다고 생각한다. 원래 가족에게도 자비 없는 하루노 씨고, 철저하게 해버렸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일반론이지만 고압적인 인간치고 생각지도 못한 역습에는 약하다. 자신이 공격받는 입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방어가 소홀해진다. 유키노시타를 보면 알겠지, 공격에 모든 걸 쏟아 붓는 방식인걸, 그 애.

 

지금까지 요령 좋게, 건들건들 거리면서도 모친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던 딸로부터의 반격. 그 기습이 공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하루노 씨는 전술의 성과를 얻은듯하다.

 

 

「여기도 여러 가지 양보했지만... 그건 좋다고 치고, 거기까지 말하면 어떤 말 뼈다귀냐는 이야기가 되잖아?」

 

 

아무튼, 되겠지. 거기까지 말한다면 어떤 녀석이냐고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노 씨 입장에서는 그 말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하튼, 진정한 이유는 여동생의 어리광을, 자신의 아집을 실현하고 싶은 곳에 있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실재하지 않는 사람을 세워도 조만간 어머니한테는 들키겠고... 그렇다면, 누군가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죠?」

 

 

실재의 인물을. 하루노 씨의 논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거기서 선택된, 불쌍한 산 제물이라는 것이...

 

 

「아니 그 밖에도 있잖아요... 왜 하필이면」

 

「...나도 먼저 듣고 있었으면 그렇게 제안했겠지만... 어머니 앞에서 들어버려서」

 

 

참으로 침울하게 말하는 유키노시타에게, 약간 상처받았다. 약간 정도는 보충해 줘.

 

 

「하지만 말이야, 히키가야 군이 제일 적임일까 그렇게 생각해서」

 

 

하루노 씨는 주눅 든 기색도 없이 말한다.

 

 

「그도 그럴게 히키가야 군이 제일 사정을 알고 있잖아? 알고 있는 애한테 부탁하는 편이...『효율이 좋다』고 생각해서 말야」

 

 

고의로 「효율이 좋다」를 강조하면서, 하루노 씨는 말한다. ...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사정이라면 하야마도 알고 있겠죠. 그 녀석이라도 좋지 않습니까.」

 

「하야토네. 하지만 어머니도 하야토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니까. 나 같은 사람한테 손을 댈 애가 아니라는 것도... 정체를 모르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하야마에게는 진짜 신랄해 이 사람. 아무튼, 나도 꽤나 지독한 일을 현재 진행형으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거기에 요새 나하고 히키가야 군, 상당한 빈도로 만나고 있었으니까. 츠즈키라는 증인도 있고... 실질 데이트 같은 거겠죠?」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을 꾸며낸 걸까. 알리바이를 제시, 리얼리티를 발라 굳혀. 같은 선율로 완전히 다른 노래를. 그건... 그건 마치.

 

 

「이 방식을 가르쳐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히키가야 군이잖아?」

 

 

힐쭉 하고, 하루노 씨는 심술궂게 미소 짓는다.

 

 

「나를 빠뜨리려고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

 

 

과연,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책임을 지라, 고. 그 정도로 책임을 졌다고 생각하지 말라, 고.

불길한 예감은 들었지만... 그것을 훨씬 더 웃도는 역할이 돌아온다고는. 예감을 감지했으면서 매일매일 게으름 피우고 있던 나로서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일주일 만에 회복한 걸 보아하니, 역시 하루노 씨는 하루노 씨였던 것 같다. 그런 것에 감탄할 때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면이 유키노시타에게 미움 받는 한 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어떤 말을 해도, 그렇게 쉽게 그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꾀를 부려, 붙들어 매서, 바람직한 역할을 할당한다―――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방식이었다.

 

 

「...약간,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누구의 탓일까」

 

 

유키노시타가 툭하고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려나... 왜 여길 봐.

 

 

「하지만 언니, 그렇다고 해서 조금 전처럼 주위에 선언할 필요는 없겠지요.」

 

「리얼리티라는 건 중요하니까. 적을 속이려면 우선 아군부터 라고 하잖아?」

 

「불필요한 혼란의 원인이에요. 그건 내가 타일러 둘 테니까 언니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다행히, 이 남자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그것도, 약간 아픕니다만...」

 

 

유키노시타는 내 항의에는 귀도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책략에는 흥미도 없겠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뭐, 거기까지 말한다면 유키노 짱한테 맡기지만요. 그래도 히키가야 군 내가 저렇게 한 이유는 하나 더 의미가 있는데, 알고 있을까나?」

 

「...뭐? 저 말인가요.」

 

 

갑자기 말을 걸어와, 나는 약간 당황한다.

하루노 씨는 눈을 슥 가늘게 하면서도, 나를 확실히 응시하고 있다.

 

 

「그래. 만약 이대로, 유키노 짱이 나를 멈추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고 있었다고 생각해?」

 

 

아무튼 유키노 짱이라면 멈춘다고는 생각했지만, 하고 하루노 씨는 시치미 떼면서 묻는다.

 

 

「어떻게 되고 있었다니...」

 

「그럼 하나 더, 아까 전 나, 히키가야 군과 같은 짓을 해서 어머니를 구슬렸다고 말했었죠, 어떻게 생각했어?」

 

「............」

 

 

나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루노 씨의 거짓 고백과, 거짓말로 호도해서 구슬린 것. 어느 쪽이나... 어디선가 들었던 듯한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한다면...

 

 

「유키노 짱이 좋아하는 말 중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만요. 나도 좋아해 그 말. ...하지만 유키노 짱으로는 히키가야 군을 감당할 수 없어.」

 

 

움찔, 하고 유키노시타가 반응한다. 하루노 씨는 그것을 신경 쓰지도 않고 계속한다.

 

 

「히키가야 군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더티 플레이니까. 유키노 짱의 정공법으로는 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해 주고 있어요?」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더티 플레이에는, 더티 플레이를.

 

 

「깨닫게 하고 싶으면, 같은 행동을 해 주면 돼. 그러면 자신이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 알겠죠? 타인의 마음에는 어두운 히키가야 군이지만... 자신의 마음이라면 약간은 아는 걸.」

 

「............」

 

「그러니까 이건 내 나름의 히키가야 군 교정법인 거야. 어때? 유키노 짱 것보다, 꽤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니」

 

 

유키노시타가 하루노 씨를 비난하는 듯한 어조로 말한다.

 

 

「그건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거예요. ...이 남자의 교정은, 내가 의뢰받은 것이니까 손을 대지 말아주세요. 향후 방해가 될지도 모르고... 언니에게는 할 이유가 없어요.」

 

「이유 말이네... 그런 건 없지만,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이고」

 

「후... 좋아서 참견해 여동생에게 미움 받고 있던 사람은 어디의 누구일까나?」

 

「...말해주잖아. 하지만 그 정도 하지 않으면 이 애는 변함없다고 생각하는데」

 

 

............

 

글러먹었어, 이 자매. 전혀 화해할 수 없잖아.

열심히 내 갱생에 관해 서로 논하는 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쁘지만... 나에 대해서라든지 비교적 어떻게든 상관없죠, 너희들.

 

...그래도 아무튼.

이런 이야기도, 예전이라면 없었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관계를 바로잡아도, 아니, 바로잡았기 때문에, 주의 주장이, 하는 방식이 다르면 충돌하는 건 당연하겠지.

가장 가까이 있는 타인. 형제의 본연의 방식 같은 건 형제 수만큼 있다.

그러니까 이것이, 유키노시타 자매의 본연의 형태일지도 모른다.

 

 

자매의 대화라든지가 일단락되고 나서, 우리들은 집합장소로 돌아왔다.

 

 

 

「늦어요, 힛키-...근데 왜 양 손에 꽃이야!?」

 

「...어려운 말 알고 있구나-, 너」

 

「그니까 날 너무 바보 취급하잖아! 초등학생이라도 알고 있구!」

 

 

그리고 이건 양 손에 꽃은 아니다. 연구원에게 끌려가는 그레이의 기분이었다. 밴드가 아니라 우주인 쪽. 그러나 아무튼, 아까 전의 자매 싸움으로 반 울상이 된 나로서는, 유이가하마의 보통의 츳코미라는 것이 굉장히 위안이었다. ...하마터면 반해 버릴 뻔했다고. 반하진 않지만. 음, 여전한 나다.

 

 

「...하루노, 늦다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담배 연기와 함께 중얼거리며 말한다. 그 담배 몇 개째일까. 그만큼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미안해 시즈카 짱. 유키노 짱이 여러 가지 귀찮은 말을 하기 시작해서...」

 

「있잖아, 내게 그런 변명이 통용된다고 생각해?」

 

 

과연 히라츠카 선생님. 원흉이 어느 쪽인가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루노 씨는 간신히 나에게서 손을 떼어 놓고, 히라츠카 선생님 쪽으로 다가간다. 유키노시타도 그것을 보고는,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간신히 해방해 줬다. 질리지도 않고 나와 세트로 돌아오려고 한 하루노 씨를, 오해의 근원이니까 유키노시타가 떼어 내려고 한 결과지만... 도중에 어떤 승부가 된 것 같고, 끈기 겨루기 대결은 유키노시타의 승리였던 것 같다. 나와 팔짱끼는 게 끈기 겨루기라니... 그게 뭐야 슬프다.

 

 

「하치만 괜찮아? 어쩐지 지치고 있는 것 같은데」

 

 

해방된 나에게 단비를 내려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토츠카였다. 토츠카에게 걱정을 끼쳐 버렸다고 하면... 나의 그 바늘방석 같은 기분 따위 티끌 같은 것이다. 그것보다도 토츠카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아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토츠카 얼굴을 보니 기운 났어.」

 

「하치만, 정말...」

 

 

아, 이거 갈 수 있지 않아? 지금이 밀 때 아냐? 라든가 잠시 생각해 버린 내가 이미 글러먹었나... 토츠카가 너무 귀여운 게 나쁜 건가.

 

 

「어떻게 생각해도 오빠가 글러먹었어요...」

 

「갑자기 마음을 읽지 마. 놀랐잖아.」

 

 

과연 내 여동생이다. 코마치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뭐하고 있었어? 유키노 언니하고 하루노 언니한테 끌려갔다고 생각했더니, 똑같이 끌려서 돌아온 것 같은데」

 

「아-, 저기... 뭐라고 할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거.

물론, 하루노 씨에게 다시 강요된 역할에 만족할 생각은 없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머리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나 슬로우 스타터니까... 사형대가 보일 정도가 되지 않으면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곤란찡 인 것이다. 그러니까 효율을 바라고 있는 측면도... 없는 건 아닌지도 모른다.

그것이 두드러질지도 모른다.

우선 변명을 찾고 있자, 시야의 구석에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흠, 유키노시타의 말을 참고로 하는 방법이.

 

 

「있지 유키농. 저기... 아까 전 하루노 언니의 그거, 무슨 말할 생각이었던 거야?」

 

「...........」

 

「하루노 언니하고 히, 힛키하고, 설마...」

 

「유이가하마 양, 안심해」

 

 

분위기를 읽어 버린 유이가하마에게, 유키노시타는 강하게 단언한다.

 

 

「...조금,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정리시켜 줘. 제대로 설명할 테니까... 거기에, 이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해요. 나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으니까」

 

「.............」

 

 

유키노시타가 말하고 있는 내용이 모두 전해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응. 알았어요, 유키농」

 

 

유이가하마는 끄덕였다. 분위기보다... 유키노시타를 선택했다. 유키노시타의 실적이 만들어 낸 신뢰와 유이가하마의 몰라도 믿는다고 하는 스탠스가 짝으로 결합했기 때문에, 성립된 설득 방법이었다.

...하지만 참고로는 되지 않아. 나는 할 수 없으니까.

 

 

「...오빠?」

 

「아-... 또 다음에」

 

「그게 뭐야. ...잠깐, 어디 가는 거야-! 정말...」

 

 

나는 코마치의 추궁에서 도망치듯이, 사람의 테두리에서 빠져 나간다. 아무튼, 여동생한테는 언제라도 설명할 수 있잖아. 코마치도 포기했는지, 나를 쫓아오지는 않았다. 신용은 없기는 하지만,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할까.

약간 떨어진 곳에서, 코마치가 토츠카와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자,

 

 

「유키노 짱, 꽤나 여유 있는 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정말로 그걸로 괜찮을까나?」

 

 

하고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를 향해, 그 우정을 비웃는듯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언니는 참견하지 말라고 말했겠지요.」

 

「후후, 그랬었나? 가하마 짱도 슬슬 각오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엇, 가, 각오라니...」

 

「...영문 모를 소리를. 유이가하마 양, 언니의 감언이설에 속을 필요는 없어요.」

 

 

그런 하루노 씨의 독기를 포함한 말을 탁 하고 뿌리치는 유키노시타.

그리고, 하루노 씨는 시시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왔다.

 

 

「있지 히키가야 군, 유키노 짱이 상대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유키노시타 씨 탓이잖아요...」

 

 

나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입니까.」

 

 

무대에서 내렸음이 분명한 나를 다시 끌어내, 존재하는지도 모를 역할을 강요해 온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생각이라니? ...정말로 히키가야 군은 의심이 깊네.」

 

「...그렇게 의심할 만도 해요.」

 

 

여하튼 상대는 하루노 씨다. 아까 전은 그럴듯하게, 이것 밖에 수단이 없었다고 하는 듯이 설명해 줬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터다. 나와는 달리 선택사항을 셀 수 없을 만큼 가지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렇게 선택해 온 사람이니까.

프레젠트 찾기라고 해서 나를 말려들게 했을 때처럼, 거기에는 분명 뒤가 있다.

나의 시선에, 하루노 씨는 갑자기, 기가 막힌 듯이 웃는다.

 

 

「뭐라도 이유를 붙이지 않으면 초조해? 곤란한 성격이네, 정말로. 아무튼 그럼 예를 들면... 역시 나도, 히키가야 군의 방식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라」

 

「하아」

 

「어머니가, 질질 끄는 이 상태를 용인해 준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그러니까 이 앞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돼.」

 

「............」

 

「그 때에 히키가야 군이 있어 주면, 분명 또 바보 같은 짓을 해줘서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그러니까 말려들게 한 거야... 이걸로 어때?」

 

「이걸로 어때 이런 말을 들어도...」

 

 

내 방식 따위, 그렇게 추천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재미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분명 또 실패해요.」

 

 

웃을 수 없는 레벨로.

 

 

「괜찮다고, 그것도 계산이 끝난 상태니까. 만일의 경우가 되면, 또 유키노 짱이 도와주지 않을까? 아, 뭣하면 누나를 의지해 줘도 좋아요?」

 

「...사양 해 둡니다.」

 

 

이 사람의 경우 담보로 뭘 요구할지 모르고... 유키노시타에게 교정되는 것도 전적으로 사양이다. 그 녀석은 보통으로 무섭다.

 

 

「그래? ...그럼, 실수하지 말아야겠네.」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아무튼, 어깨를 움츠려 작게 항의하는 데 그쳤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일부러 주위에 선언하려고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만」

 

 

그래, 이것도 또 마음에 걸린다.

말해 버리면 어디까지나 유키노시타 집안의 사정이다. 그런 건 일부러 선전할 필요도 없다. 유키노시타가 말하는 대로, 말을 맞출 녀석만 맞추면 된다.

그러니까 구태여 공공연하게 하려 한 이유는... 그걸 달갑지 않게 여기고 막는 것도 포함해, 어느 쪽일까 하면 유키노시타를 향한 메시지 같게도 생각된다. 내 교정이 어떻든가 말하는 발언도, 바로 아까 전의 언동도, 유키노시타를 겨냥한 도발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으~응, 그러네.」

 

 

하루노 씨는 검지손가락을 가볍게 턱에 대고, 생각하는 행동을 보이고 나서,

 

 

「말하고 보면... 뭐, 선전포고 일까나」

 

 

그렇게 뒤숭숭한 단어를, 거기에 맞지 않는 온화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의미를 모르겠는데요.」

 

「의미를 모르게 말했으니까요... 히키가야 군에게는」

 

 

후후, 하고 하루노 씨는 바보 취급하듯이 비웃는다.

 

 

「나는 유키노 짱도 진지해지기를 바라니까. 진지해진 다음에 졌다면, 유키노 짱도 이의 없겠지?」

 

「하아...」

 

 

나로서는 뭐에 진지해지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그 승부 같은 걸로 뭘 얻고, 뭘 잃는다는 말일까.

 


「페어플레이를 바란다면 페어플레이로 승부해 줘도 좋을까 해서. 이것에 대해서는. 뭐, 유키노 짱이 승부를 타오는 건 조금 더 걸릴 것 같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하루노 씨는 유이가하마와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유키노시타를 바라본다. 거기에는 순진한 적의가, 즐거운 듯한 투쟁심이 조금씩 휘날리고 있었다.

 

 

「............」

 

 

물론, 나는 납득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선전포고라는 하루노 씨가 한 말의 의미도 모르고, 내 행동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고로, 왜 내가 이런 처지가 되는가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잘못된 러브 코미디 같아 보이는 전개 따위, 도저히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아직 하루노 씨의 말에는, 뒤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으니까.

...아니, 혹시 나는 이런 상태로 하루노 씨가 아무리 말을 거듭해도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듣는다고 해도 아직 뒤가 있지 않을까, 억측해 읽어내려 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히키가야 군에게라면, 이런 나를 보여도 좋을까.

 

 

그걸 믿었던 것도, 생각해 보면 분명 마음의 미혹 탓이다. 분명 나답지 않은, 크리스마스의 독기에라도 당해 버린 이유로.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생각지 못한 표정에 동요해버렸을 뿐인 이유로.

그렇게 자신 안에서 결론을 끌어내 보면, 그쪽이 정합성이 높은 생각도 든다. 평소의 나라면 그렇게 할 거라고. 납득할 논리를 얻을 수 있을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역시 그녀는 신용할 수 없다. 착각해선 안 된다. 오해해야 하는 게 아니다.

 

 

「...흐응, 히키가야 군은 언제까지나 히키가야 군이네」

 

 

그런 나를 보며, 하루노 씨는 쓴 웃음을 짓는다. 기가 막힌 듯이, 하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쓴 웃음을. 바뀔 수 없는 나를 향한, 동정과 같은 쓴 웃음을.

 

 

「말의 뒤만 읽어, 마음대로 혼자서 안달복달 하고 있는 걸. 이쪽이 그럴 듯한 이유를 준비해 주고 있는데, 그것조차 받아들여 주지 않아.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 ...아무튼 어쩔 수 없나, 그런 사람인 걸.」

 

 

그럼 힌트를 줄게요, 하고 하루노 씨는 쑥 하고 손가락을 세우며 말한다.

 

 

「내가 두 번이나 같은 방법을 쓴다고 생각해? 뒤만 읽지 말고, 솔직하게 받아들여 주면 좋을 텐데.」

 

 

「...나, 어머니한테 히키가야 군을, 뭐라고 소개했더라?」

 

「그거야..........」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나서.

딱 그 뒤의 말이 제지됐다. ...하루노 씨의 검지손가락이 입술을 바짝 눌러서.

 

하지만, 그녀가 멈추지 않아도 내 말은 거기서 스톱하고 있었을 것이다.

뒤는 없다는 그녀의 진심. 왜 나를 말려들게 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그녀의 힌트. 그리고, 내 입까지 올라온 말.

 

 

「...................」

 

「....겨우 알아 준 거야?」

 

 

생긋 하고, 하루노 씨가 미소 짓는다.

 

 

「....................」

 

 

아니. 그래도. 설마.

그런 말이 갑자기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그녀의 검지손가락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히키가야 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럴 리가 없다든지,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든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

 

「결국, 히키가야 군은 이유를 쌓아올린다고 한들 알아주지 않을 테고. 믿어 주지 않을 테고. ...뭐, 나도 평소의 행실이 별로 좋지 않았을까나」

 

「..........」

 

「그러니까, 히키가야 군한테 확증을 줄게. 내 말을, 싫어도 믿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내 귓전에 입을 댄다. 살짝, 다시 그녀의 향기가 내 감각을 어지럽힌다. 그녀의 숨결이, 가까이 들린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히키가야 군은, 정말로 멋진 애라고 생각해요.」

 

 

―――거짓말이다.

 

 

내게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고 있다. 그 완벽해서, 모두를 매료할 듯한 미소.

 

 

「누구라도 구해버려, 나도 구해버리는, 정말로 정말로, 상냥한 사람」

 

 

―――거짓말이다.

 

 

완벽함 같은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미소로 하는 말에, 나는 착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태양의 빛은, 자신의 흑점조차 덮어 가린다. 그렇게 눈부신 미소로는.

 

 

「그러니까―――으응, 그래도」

 

 

문득,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 것 같았다. 그 눈부심이, 그 미소가 질을 바꾸는 듯한 기색.

 

 

「정말로 성가시고, 어쩔 수 없는 히키가야 군이」

 

 

나는 문득 생각해 낸다. 눈이 내리는 샛길을 함께 걸었던, 그녀를. 그토록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처음으로 본, 태양의 흑점을.

 

 

「그런 히키가야 군을, 난, 」

 

 

―――이건, 거짓말일까. 내 평소의 착각일까. 오해일까.

 

 

다른 누구를 향한 말도 아닌, 나에게만 닿은 이 말은.

 

 

「――――, ―――――――――.」

 

 

한 순간만 주위의 소란이 멀어져, 소리가 사라진다.

그녀의 말만이, 내 귀에 새겨진다.

말을 끝낸 그녀는, 슥 나에게서 멀어져,

 

 

「약간 플라잉 해버렸을까. 그래도... 히키가야 군이 나쁜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짓궂은 장난이 성공한 소녀처럼, 쿡 하고 웃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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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완결했습니다! 후기 쓰려고 생각했더니, 그런 스페이스 없었던(웃음). 혼자 반성회라든지, 신작 SS예고라든지, 여러 가지 쓰고 싶었습니다만...

「⑨후일담 예를 들면, 이런 신혼여행 (허니문)」을 예정. 쓰기 전에 말입니다만, 여전히 타이틀 사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2ndboost>

아아... 드디어 끝났습니다.

아마도 제가 작업한 것들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괜찮은 작품이네. 해야지.”

 

이렇게 시작했는데 중간부터 갑자기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더니 필력도 폭발...

다하고 나서 얼마나 되는지 봤더니 23만자 정도 되더군요.(보통 책 한 권이 15~17만자)

제 입장에서는 난처하면서도 기뻤습니다.

마지막 편에서 하루노가 느꼈던 기분과 비슷할까요.

 

어쨌든 완결이라고는 했지만 아직 후일담이 남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글을 쓰시고 있지만 곧 갱신하시겠지요.

 

그리고 작가님의 코멘트를 보니, 다음은 에비나 루트를 하시려는 것 같네요.

에비나 팬 분들은 기뻐하실 듯합니다.

그 글도 또 기대가 됩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바이바이.

<이 글은 pixiv - tetsukugi 님의 번역허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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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전편

 

히키가야 하치만. 유키노시타 하루노. 그리고, 유키노시타 유키노. 세 명의 의지가 교착한다. 변함없는, 변할 수 없는 그의 책략은 하루노에게 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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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그리고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그 걸음을.

 

 

나는 스마트폰의 시계를 바라보고 약속 시간이 됐다는 것을 눈치 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빛이 조금도 없는, 흐린 날씨. 앞으로 일주일 안에 섣달그믐을 맞이하는 이 시기가 되면, 피부에 맞닿는 공기는 한층 더 차갑다. 목에 머플러를 감고, 양손은 포켓에 돌진한, 완전 방한 체제였다.

이렇게 해서 멍하니 기다리고 있으면, 예전의 그리운 기분에 싸인다. 학교 건물 뒤에서, 그 애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때... 나는 두 시간 정도 기다려 봤지만, 그 애는 결국 오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다음날에는, 부른 편지가 칠판에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어, 일약 구경거리에...근데 역시 이것도 쓸데없는 기억이잖아. 저질러 버렸다.

아무튼, 그러니까, 기다림에는 익숙해져 있다. 기다리고 있는 상대가 오지 않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선택되지 않으니까.

다만 이번 경우는, 내 명의가 아니고, 그녀는 분명 오겠지.

그녀가 올 명의와 용건으로 불렀으니까.

약속 시간으로부터 15분 뒤.

 

 

「............」

 

 

역시 그녀는 왔다.

주변이 어두워도, 그녀는 멀리서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다. 그토록의 존재감이고,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인물이니까, 그건 당연하지만.

그에 반해 그녀는, 내 존재를 잠시 눈치 채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그것도 당연한가, 여하튼 나는 닌자 수준의 기척 밖에 없고, 그녀는 나를 찾고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녀는 나의 존재를 간신히 깨닫는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슥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바깥 공기 이상의 냉기를 띤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는 없다.

 

 

「...히키가야 군」

 

「...얏하로, 유키노시타 씨」

 

 

하루노 씨가 가하마식 인사를 쓰지 않았으니까, 내가 써 봤다... 써 보고 나서 재차 실감하지만, 이 인사는 바보 같다. 아마, 이제 두 번 다시 쓸 일은 없겠지.

 

 

「무슨 일이야,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우연히요, 아니, 잊어버린 게 있어서 찾으려고 왔었어요.」

 

「우연히...?」

 

 

하루노 씨의 눈썹이, 살짝 비틀린다. 그 표정은 본 적이 있다... 그 녀석의 「불쾌하군요.」 사인과 정말 비슷하다. 말 뿐만이 아니라 눈썹 하나로 내게 불쾌함을 나타내는 고등 기술이다.

아무튼, 그거야 그런가, 자매인 걸.

 

 

「히키가야 군, 무슨 생각?」

 

「무슨이라니...그러니까, 잊어버린 물건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포켓에 넣고 있던 오른손을 꺼낸다.―――잊어버린 물건과 함께.

하루노 씨의 시선이, 내 오른손에 날카롭게 꽂힌다.

 

 

「그거... 건네주지 않았어?」

 

 

그건, 깔끔하게 포장된 채인, 크리스마스 프레젠트. 하루노 씨도, 본 적이 있을 터다.

여하튼, 원래는 그녀가 나한테 건네준 거니까.

 

 

「...헤에, 그게 히키가야 군의 대답인 거네... 유감이야.」

 

 

하루노 씨는 입가를 비틀리게 한다. 원래 그건 미소를 만드는 건데, 그 표정은 일절 웃지 않았다. 그 눈동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를, 추측하는 듯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극히 불쾌한 것 같다... 뭐어 지금부터, 좀 더 불쾌해지게 되는데.

 

 

          ×          ×          ×

 

 

유키노시타 맨션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무사히 시작되고, 무사히 끝났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꽤 여러 가지 있던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정확했다. 단지, 일부를 발췌하면,

 

 

「뼈빠지게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걸, 대체 뭐얏!?」

 

「...우리들 생활?」

 

「아하하하, 히키가야 정답! 그러니까 그럼 그럼...」

 

「이시카와 다쿠보쿠인가요...근데 누구야, 이 사람한테 술 줘버린 사람은...」

 

「미, 미안해 하치만, 선생님이 『물이니까 괜찮다고』...」

 

「아니 어쩔 수 없어요. 토츠카는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흠... 이 무슨 손바닥 뒤집기...」

 

「히키가야 군, 당신 담당이니까 어떻게든 해 주세요.」

 

「어... 그 사람도 내 담당인 거야? 왜 나만 저런 느낌인...」

 

「왜, 왜 지금 내 쪽을 봤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아...」

 

「유키농, 잠깐 와 봐-! 어쩐지 냄비가 꽤 이상한데...」

 

「그러니까 보는 것만으로 괜찮다고 했는데... 지금 가요.」

 

「아, 그럼 계속되어 제 2 질문, 가겠어 히키가야-!」

 

「...........하아」

 

 

하고 뭐어, 이런 느낌으로 지독한 상태였던 거다. 내가 예상한 형태와는 다른 트라우마가 새겨졌다. 파티 무서워.

그렇다고 할까 히라츠카 선생님... 완전히 홧술 아닙니까. 아무튼, 너무나도 페이스가 빨라서 그런가, 곧바로 잠에 떨어졌던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중간에 와서 가장 먼저 이탈한다든가. 누군가... 받아 줘.

히라츠카 선생님이 자고 나서는 약간 안정됐지만, 역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녀석이 한 사람 밖에 없다는 상황은 꽤 어렵다. 파티라는 거 이걸로 괜찮을까, 별로 참가한 적 없으니까 모르겠지만. 코마치라도 와 주면 도움 되는데...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합작 케이크를 다 먹을 즈음에, 간신히 2시간 반 정도가 흐르고 있었다.

 

 

「있지있지 힛키, 케이크 맛있어?」

 

「아앙? ...뭐어, 먹을 수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뭐야 그 미묘한 반응... 좀 잘난 척 하는 거 같구」

 

 

내 감상에 유이가하마가 발끈한 표정을 짓는다. 약간 거북해졌으므로, 말을 덧붙인다.

 

 

「저기...그거야, 나는 칭찬을 늘어놓는 타입이 아니야.」

 

「어라? ...그렇다는 건, 맛있었다는 거? 헷갈리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라고」

 

「칭찬 받았던 적이 없었다고, 그렇게 주위에 마구 화풀이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와 유이가하마의 대화에 끼어들어 온 사람은, 홍차를 더 가져 온, (사람을)두드리는 타입의 유키노시타였다.

 

 

「...하는 김에 말하면, 혼난 적도 별로 없어. 좋은 짓 하든지 나쁜 짓 하든지 눈치 채이지 않으니까.」

 

「아, 그래서 힛키가 성장하지 않았네.」

 

「너... 사람이 예방선 치고 있는데 추격하는 건 아니라고...」

 

 

인정 없는 유이가하마의 추격에 마음 아파하고 있자, 유키노시타가 납득한 얼굴로 수긍한다.

 

 

「과연, 그런 것... 당연히 히키가야 군은 아직까지도 무른 계획 밖에 세울 수 없는 거네.」

 

「진지하게 긍정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하는 건, 내 교정도 또한 무르다는 거네, 반성해야겠어요.」

 

 

그리고, 쿡 하며 웃는다.

 

 

「...그 나름대로 성실히 임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허들을 올려도 좋은 것일까나?」

 

「너 그 상쾌한 미소로 무서운 말 하는 건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과 표정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나는 M은 아니니까 오싹하지 않는다고.

 

 

「어머... 히키가야 군의 교정은, 내가 맡고 있는 의뢰에요. 감사히 생각하세요.」

 

「너 그거 지금 생각난 거잖아....」

 

 

꽤나 전부터 단념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요즘 화제조차도 나오지 않았고.

그러자 거기에 유이가하마도 분발하듯이 참가한다.

 

 

「앗, 나두 힛키가 사회복귀 할 수 있게 노력할 테니까!」

 

「아직 난 사회 나오지 않습니다만... 너도 스스로를 걱정해라...」

 

 

그 어휘력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면접 때 바보속성이 더 심해질 것 같다.

근데, 내 정면에 있던 자이모쿠자가 출렁하고 일어선다.

 

 

「....하치만」

 

「아? 왜 그래 자이모쿠자」

 

「이... 리얼충 자식이!」

 

「뭐?」

 

 

왜 그래 이 녀석. 유이가하마가 만들어 온 수수께끼 파이 먹어 버렸나? 저건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 섞었던 결과 맛이 위험해서 냉장고에 사장해 버렸던 건데.

자이모쿠자는 내게 그렇게 모멸한 뒤, 다시 내려앉아서는, 「대체 왜야... 나와 뭐가 달라... 자만심, 환경의 풍족함?」 같은 말을 투덜투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중2...?」

 

「글쎄.... 몰라. 그러고 보니 토츠카는?」

 

 

아까 전까지 자이모쿠자 근처에 있었는데(거기 비켜 자이모쿠자), 어느 샌가 사라졌다. 꽃을 따러 간다든지 한 건가.

 

 

「토츠카 군이라면... 거기에」

 

 

유키노시타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카펫이 깔려 있는 스페이스였다.

 

 

「저기 선생님, 거기서 자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응-... 괜찮아 내일 휴일이니까...」

 

「선생님은 내일 휴일 아니겠죠... 저기, 일어나 주세요.」

 

「으무-...」

 

 

보면 격침된 히라츠카 선생님을 토츠카가 흔들흔들 깨우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무리 모두 보지 않은 척 하고 있었는데, 역시 토츠카, 누구에게도 상냥한 녀석이다. 그런데 흔들흔들 흔드니까 그 부분도 흔들흔들 하는데... 뭐지, 유감스러움이 더 위였다.

남고생이 여교사를 깨우고 있는 이 시추에이션... 뭔가 배덕감이 감돌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단지 하나... 히라츠카 선생님, 자리 바꿔 주세요.

 

 

「응-... 히키가야?」

 

「에, 저 토츠카인데...」

 

「히키가야... 어부바」

 

「토, 토츠카라고요!」

 

「................」

 

 

깬다. 토츠카는 초조해 하고 있다. 자이모쿠자에 이르러서는 부들부들하고 떨고 있을 정도다.

 

 

「...히키가야 군, 지명이에요.」

 

「누가 가냐고 누가...」

 

 

싫어... 가면 여러 가지로 끝날 듯한 생각이 든다... 내 청춘이라든가, 히라츠카 선생님의 혼활이라든가.

 

 

「아-...그래두 슬슬 선생님도 술기운 빠지지 않았을까? ...많이, 지났고」

 

 

유이가하마가 내 쪽을 언뜻 봤다. 나는 가볍게 끄덕이며, 시계를 본다.

 

 

「응...그러네」

 

 

시각은 6시 반이라고 할까, 예정보다 약간 빨리 시작했으므로 대체로 3시간 좀 안됐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네... 슬슬 연회를 끝내기로 할까요.」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하면서, 조속히 케이크 접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무리도 특별히 이론은 없는 것 같고, 제각기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키노시타는 정리에 들어간 전원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오늘의 히라츠카 선생님의 건에 대해서는 은밀히... 교사의 신용 문제에 관련돼요. 특히... 그걸 협박 목적으로 쓰는 건 용서하지 않아요.」

 

 

...왜 나를 보고 말하는 거야? 어. 왜?

 

 

「야아~ 즐거웠지 힛키! 내년도 해요!」

 

「나는 여러 가지로 지쳤는데... 내년이라든지 몰라」

 

「정말... 사이 짱은?」

 

「응, 즐거웠어. 또 모두 모일 수 있으면 좋겠네.」

 

 

유키노시타의 방정리가 끝나, 우리들은 맨션에서 나왔다.

밖은 해도 떨어져 하늘에는 구름이 걸쳐 있다. 대로까지의 길을, 점점이 이어지는 가로등이 비추고 있다.

 

 

「하, 하치만」

 

「... 뭐야」

 

「보, 본관도...나쁘진 않았다. 크리스마스 같은 건 머지않아 내 손으로 매장시킬 생각이었는데... 결의가 무뎌져 버렸어. 벼, 별로 또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니까!」

 

「...시끄러」

 

 

아무래도 유이가하마에게 질문 받지 않은 이유로, 외로워져서 이쪽에 말을 건 듯하다... 성가시기 짝이 없다.

또... 내년, 인가.

내년은 어떻게 될까. 수험도 있고, 바쁠 시기다. 그것보다 우선... 이렇게 모이는 일행이, 이대로 있는 건지 하는 것도 있다.

 

인간, 개인이라도 주위 흐름에 따라 어이없이 바뀐다. 남자는 본지 3일이 지나면 눈 크게 뜨고 보라고도 하고, 남자 너무 바뀌잖아 하고 태클 걸고 싶게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여자 편이라도 확 달라질듯한 생각이 드는데. 인간관계는 그런 무리 위에 성립되고 있으니까 모래 위의 누각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나는... 내년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내년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 정도는... 아무튼, 예상할 수 있지만.

변함없으려나.

 

 

「히라츠카 선생님 괜찮을까...」

 

 

옆에서 걷고 있던 토츠카가, 살짝 걱정스레 말한다. 여전히 천사다. 아니, 신일지도.

 

 

「.....뭐어,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달릴 수 있었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눈을 뜬 후,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곧 눈치 챈 듯 하고, 『오늘 일은 잊어 줘!』하며 뛰쳐나가 버렸다. 술을 그렇게 퍼먹고 자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훌륭한 각력이었으니까, 아마 괜찮겠지.

아까 전 메일을 확인한 김에 눈치 챘지만, 엄청 대단한 양의 문자로 해명 글을 보내오기도 했고... 그러니까 무섭다고. 절대로 나, 누구한테도 퍼뜨릴 수 없어요. 이건...

깨끗하게 정비된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로 나온다.

거기서 나는, 멈춰 섰다.

 

 

「...아」

 

「무슨 일이야 하치만?」

 

「미안, 나 잊어버린 물건 있어...」

 

「에, 힛키 진짜?」

 

 

긁적긁적하며, 머리를 긁는다.

 

 

「그건 오늘 가지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겨울 방학 중에도 좋다면 유키노시타 씨한테 합숙 때 가져와 달라고 하면 좋지 않아?」

 

「가능하다면 오늘 가지고 돌아가고 싶은데... 코마치한테 줄 선물이야.」

 

「...으으응? 그런 거 있었던가?」

 

「아-, 그러구 보니 힛키 뭔가 봉투 가져왔었지.」

 

「그거야 그거. 나, 잠깐 가져올게... 여기서 해산하는 걸로」

 

 

내가 등을 돌리며 그렇게 말하자, 토츠카가 부른다.

 

 

「곧 가져온다고 하면, 나 기다리고 있어요?」

 

「어흠, 본관도다.」

 

「어...아니, 그래도 꽤 걸어 왔잖아. 많이 걸릴 거라고.」

 

「응-그러네, 힛키 달리게 하는 것두 불쌍하구...」

 

「아, 그것도 그러네...」

 

 

토츠카가 응 이라고 생각하는 틈을 찔러, 나는 말한다.

 

 

「고마워 토츠카. 뭐, 합숙도 있고, 그 때 보자」

 

「...응, 그럼, 또 다음에 놀까」

 

「오우, 미안해」

 

 

나는 토츠카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다. 토츠카도 가슴 앞에서 손으로 작게 바이바이를 해 줬다.

 

 

「그럼 힛키 또 다음이야!」

 

「안녕히다. 하치만. 그런데 토츠카... 합숙이란 뭔지?」

 

「잠깐... 과연 그건 중2, 끼워주지 않을 테니까!」

 

「...토츠카, 뭔가 소란스럽지만 자세히」

 

「무시하지 말구!」

 

 

걷고 있는 동안, 조금씩 소란이 멀어져간다.

...굉장하네 유이가하마. 타임 킵도 그런 대로고, 편승하는 방법이라든지 분위기 전환하는 것도 티가 안나. 역시 분위기 읽기의 산물은 색다르다... 아무튼, 내 안에서 밖에 유행하지 않지만, 이 칭호. 세계가 다르면 에어로 마스터 칭호라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 녀석이 바보에 요리가 서툴러서 잘 됐다. 저거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서포트되면... 뭔가의 착각으로, 반해 버릴 참이었다.

뭐어, 그런 내 번뇌는 우선 놔두고.

나는 다시, 유키노시타의 맨션으로 향한다... 볼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          ×          ×

 

 

「그런데 무슨 일일까나? 나, 여기에 오라고 하야토한테서 들었는데?」

 

 

하루노 씨는, 내가 나오는 태도를 엿보듯이 묻는다.

 

 

「헤에, 그렇습니까? 하야마, 무슨 생각일까요. 유키노시타 씨, 바쁘다고 하는데」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네, 히키가야 군은」

 

 

하루노 씨가 짜증났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과연 포커 페이스다.

다만, 나는 짜증나게끔 말하고 있을 작정이다. 시치미를 떼며, 거드름 피우며. 타인의 신경을 자극하는 데 그 나름대로 자신 있고... 스스로도 싫어지는 스킬이지만.

 

 

「히키가야 군, 언제부터 하야토와 연락 하고 있었어?」

 

「그 녀석과는 사이좋으니까요, 메일 친구에요 메일 친구」

 

 

메일친구군... 문자 그대로 메일뿐인 교환이다. 그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유이가하마를 말려들지 않게 하기 위해 생각해서 선택한, 두 개의 용건.

 

하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예정한 시간에 끝내 내 중간 이탈을 도움 받는 것이다. 파티의 주최자인 유이가하마라면 시작 시간도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고, 끝내는 방법도 익숙해 있을 거라고 어림잡아 부탁하기로 했다... 그 녀석을 유키노시타 맨션에서 갈라놓는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가만히 두면 계속 있을 것 같고.

 

그리고 하나 더는... 하야마 하야토와의 연락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에비나 양 같은 귀찮은 센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일일이 하야마를 호출하는 건 내가 귀찮다. 시간도 걸리고. 그러니까 유이가하마를 개입시켜, 하야마의 연락처를 손에 넣었다고 하는, 단지 그것뿐인 일.

왜 하야마냐 하면, 단순한 얘기다... 유키노시타의 친가에서 행해지는, 파티의 참가자였으니까.

하야마 일행들과 유이가하마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던 날이 23일. 24일로 하지 않았던 건, 하야마에게는 용무가 있었다는 이유. 그리고 유키노시타의 아버지와 친한 사람을 모은 파티... 고문 변호사이자 가족 모두가 사교성이 있다고 하는, 하야마의 아버지가 불릴 가능성은 높고... 거기에 하야마가 따라갈 가능성도 또한, 낮지는 않다.

그 녀석은, 유키노시타가 참석하지 않는 걸 몰랐었던 것 같고...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즉시 메일로 확인했던 건 대적중이었다는 거다.

 

 

「하야마에게는 어떤 식으로 들었습니까?」

 

「...별로, 대단한 말은 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오라고... 유키노 짱이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 정도」

 

 

협의한 대로라는 건가. 아무튼, 말하는 방식은 맡겼으므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야마와의 정보 교환으로, 나는 유키노시타가의 크리스마스 파티 개요를 파악하고 있다. 몇 시에 시작되고, 몇 시에 끝나는지. 참석자의 인사라든가 간단한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그리고 하야마에게는, 하루노 씨가 파티 도중에 빠져 나가도록 하게 했다.

 

 

「...하야토한테서 듣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기르던 개한테 물린 기분이에요.」

 

「자신의 동생뻘인 사람한테 꽤나 심한 말이군요.」

 

 

하루노 씨가 경계하고 있던 건 아마 나였을 테니까, 기습 정도의 효과는 있었을 거다. 단념한 사람에게, 간섭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진에서조차 단념되어 버린 적이 있는 내게는, 그 심경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날 여기에 불러서, 히키가야 군은 어떻게 하자는 걸까나?」

 

 

하루노 씨는, 기분을 전환하듯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묻는다.

 

 

「...그러니까 하야마에게서 들었겠죠」

 

 

나는 뒤를 되돌아보면서 대답한다.

 

 

「유키노시타, 언니에게 볼 일이 있다고 해요.」

 

「..........」

 

 

내가 등지고 있는 건, 높이 우뚝 솟은 타워 맨션.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주거지다.

하루노 씨는, 확실히 그 15층 근처를 매섭게 째려본다.

 

 

「히키가야 군, 물어보고 싶은데」

 

「네」

 

「유키노 짱한테... 무슨 말 했어?」

 

「무슨, 말이란」

 

 

나는 하루노 씨의 질문을 앵무새처럼 다시 흉내 낸다.

하루노 씨의 눈이, 다시 맨션에서 나로 옮겨진다.

 

 

「그럼 확실히 말하는데」

 

 

그 눈에는 약간 정도, 경계심이 떠올라 있다.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반응하고 있는 걸까.

 

 

「하야토한테는 이런 말을 들었어. 『당신의 결혼에 관해, 여동생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라고... 히키가야 군, 유키노 짱한테 얘기했어.」

 

「...........」

 

「있지 히키가야 군, 유키노 짱한테 무슨 얘길 했어?」

 

 

반복되는 하루노 씨의 질문에,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대답한다.

 

 

「.......뭐어, 전부일까요.」

 

 

있는 것과 없는 걸 뭉뚱그려서, 전부.

 

 

 

          ×          ×          ×

 

 

『―――네』

 

「아-, 유키노시타, 나다.」

 

『...누구?』

 

「저기... 소부고 2학년 히키가야라고 합니다.」

 

『......누구?』

 

 

적당히 좀 해라 이 년이...

유이가하마 일행과 헤어져, 나는 바로 유키노시타 맨션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엔트란스의 인터폰으로 호출하기를 세 번, 간신히 연결됐다고 생각하면 이 처사다.

 

 

『후우, 그래서 무슨 일일까, 그러니까...히키, 가에...루, 씨?』 ※ 히키가에루 : 두꺼비

 

「왜 애매모호한 건가요. 아까 전 실례하고 있었다고 나」

 

『그래, 일단 실례라는 자각은 있었던 거군요.』

 

「바보냐 너, 나만큼 방해되지 않는 녀석은 없다고. 내가 얼마나 얌전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용건은 무엇일까?』

 

 

산뜻하게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됐어.

 

 

「아니, 아까 전 놓고 간 물건이 있어서 말이야... 가능하면, 한 번 더 그쪽으로 가고 싶은데.」

 

『잊어버린 물건...? 물건과 놓은 장소를 말하세요, 지금 찾아 가지고 가요.』

 

「수고는 들이게 않게 해요. 내가 찾으면 좋잖아.」

 

『됐으니까 말하세요.』

 

「...미안, 까먹었다. 역시 내가 그 쪽에」

 

『그렇다면 생각해 내세요... 당신, 혼자겠지요? 혼자 외톨이겠지요?』

 

「왜 다시 말했어...」

 

 

확실히 현재 혼자지만. 계속적으로 외톨이일 뿐이지만.

 

 

『...당신을 혼자 있는 집에 부르는 건 내키지 않아요... 보기에도 수상한 사람인 걸.』

 

「너 지금 나 보고 있지? 카메라 붙어 있는 건가 이거?」

 

『붙어 있어요... 거기에 소리만으로도 알아요. 그 비열한 본성을』

 

 

너무한 말투다... 그리고, 어떻게든 나를 들일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약간 카드를 내밀까. 약간은 반응이 바뀔지도 모르고.

 

 

「...유키노시타, 할 말이 있다.」

 

『싫어요.』

 

「너의 언니에 관해선데」

 

 

유키노시타의 거부를 무시해, 나는 가능한 한 감정을 읽어낼 수 없게, 평탄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뭐?』

 

「그러니까, 너의......」

 

 

내가 다시 입을 연 동시에, 뚜 하고 대화가 중단된다. 그 녀석, 끊어버렸다.

라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 홀로 통하는 자동문이 열린다.

 

 

「...이런이런」

 

 

나는 한 번 목을 돌리고, 홀로 향했다. 할 수 있으면 그 녀석한테, 생각할 틈 같은 건 주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서? 왜 당신의 입에서 언니 얘기가 나올까」

 

「...어, 진짜 나 여기서 얘기하는 거야?」

 

 

맨션의 15층. 유키노시타 집―――의, 현관문.


나는, 신발을 벗는 것도 허락되지 않고, 그곳에 서게 되고 있었다. 맨션이라고 해도 과연 고급, 차분히 서 보면 알지만 그 나름대로 넓은데. 계속 서 있기는 괴롭지만.

대치하는 유키노시타도 또한, 서 있긴 하지만. 현관의 높이차 탓인지, 딱 시선이 같은 정도가 되어있었다. 평소보다 시선의 날카로움이 두드러진다. 그게 원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것보다도 유키노시타의 발밑에 있는, 치한 격퇴용 스프레이가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유키노시타는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간파하려는 듯이.

아무튼, 흥미를 가져 준다니 잘 됐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

 

 

「...역시 언니와 무슨 일 있었던 것일까?」

 

「역시라니 저건가, 언니 냄새가 난다든가 뭔가 하는 건가」

 

「질문에 질문으로 돌려주지 마세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어?」

 

 

어딘가의 제5부 같은 말하는 녀석이군... 꽤나, 기분이 안 좋게 보인다. 언니라는 단어가 나온 것만으로, 거기까지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그런 자매인 것이다. 그건 알고 있다.

 

 

「당신을 위해서 말해두는데, 그 언니에게는 관련되지 않는 게 좋아요. 변변한 일이 안 일어나니까」

 

 

그것도 알고 있다... 지금은 말하지 않지만.

 

 

「아무튼 조금은 내 얘기도 들어요. 잠깐 나, 지금 그 사람한테서 부탁받았어.」

 

「부탁한 일...?」

 

 

유키노시타는 의아한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하필이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언니에게 무슨 바람이 든 것일까... 속지 않는다고 호언하고 있던 것에 반해서, 세 걸음만 걷는 동안에 잊어버리다니, 과연 히키가야 군이네.」

 

「어이, 내가 속은 전제로 얘기하는 건 그만 둬」

 

「속는 것 이외에 당신이 언니와 관계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유키노시타는 무례하게도, 내가 하루노 씨에게 농락됐다는 가설을 세우고 있는듯하다. 그러니까 나의 쓰레기 아버지와 같은 선상에 놓지 말라고. 내가 반응다운 반응을 보이지 않은 탓인지, 한층 더 갖은 험담을 퍼부어 온다.

 

 

「결국 개 이하의 지성 밖에 가지지 않은 남자는 다르군요. 약간 추파를 받은 것만으로 복종하다니... 기가 막힌 것을 넘겨서 경멸해요.」

 

「그러니까 기가 막힌 걸 넘기면 존경하는 거 아냐 보통...」

 

 

꽤나 말하는 구만... 나는 개도 싫지 않으니까 개를 인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뭐어 세상에는 사브레 같은 얼빠진 개도 있으니까, 잘못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좋아. 나는 이것에는 반론은 하지 않는다. 주제는 그게 아니니까. 오해 받는 거에는 익숙해지고 있고.

유키노시타가 조바심 내야 할 부분은, 거기가 아니다.

 

 

「아무튼 내 얘기는 따로 상관없어. 확실히 너의 언니 미인이고, 나라든가 잠깐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 몰라... 아무튼, 이제 그런 착각 같은 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나는 거기서, 억지로 한 순간의 틈을 파고든다.

 

 

「아무래도, 너의 언니 결혼한다던데」

 

「...........뭐?」

 

 

유키노시타의 욕설이 프리즈한다. 예상 밖의 단어에,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거기에 눈치 채지 못한 체를 해서, 잡담을 중간에 끼워 넣는다. 사고를, 어지럽히기 위해서.

 

 

「...경사스럽군, 정말. 설마 히라츠카 선생님보다 빨리 상대가 발견되다니 놀라워. 학생한테 추월된다든가, 이거 완전히 외통수 아냐? 거기에」

 

「기다리세요... 언니가, 결혼해?」

 

「어라... 몰랐었어?」

 

 

나는 살짝 유키노시타를 관찰한다. 본 느낌으로는 동요하고 있다... 정말로, 소문조차도 몰랐던 것 같다. 혹시 하루노 씨 자신이 정보를 규제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녀의 혼란이 수습되기 전에, 나는 한층 더 결정타를 날린다.

 

 

「정략결혼이라고 했던가? 내게는 인연이 없는 얘기지만. 아무튼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네 형부가 될 사람. 얼굴도 성격도 괜찮다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다. 리얼충은 폭발해라, 영원히 라는 느낌.」

 

「왜」

 

「응?」

 

「왜 내가 모르는 일을, 당신이 알고 있는 거예요.」

 

「당연하잖아, 본인한테서 들은 거야... 의뢰하는 김에 말이지.」

 

「............의뢰」

 

「그래, 의뢰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틈을 이용하듯이, 주제를 꺼낸다.

마음에도 없는 듯한, 주제를.

 

 

「유키노시타... 너는 언니와 화해할 생각은 있을까」

 

 

나는, 가능한 한 비열한 미소를 띄우며 그렇게 말했다. 내 눈은 필시 썩고 있을 것이다. 평소의 3할 증가한 정도로. 거울을 보면 「...........파!?」 이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자... 유키노시타 유키노.

지금부터 네가 안고 있는 환상을, 언니의 주박인지 뭔지를 박살 내 준다.

있는 것 없는 걸, 끼워 넣은 얘기로.

먹칠해서, 엉망으로 해 준다.

 

 

          ×          ×          ×

 

 

「흐응, 전부, 네... 유키노 짱, 전부 알고 있어.」

 

하루노 씨는 내 말을 음미하듯이 반복한다.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는 좀 모르겠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유키노 짱은, 뭐라고 말했었어?」

 

「어떨까요. 그런 건, 본인에게 듣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다시 잡으면서 말한다. 그러고 보니 손에 든 채 그대로였다. 추위로 고장나지 않으면 좋겠는데.

 

 

「심술쟁이네... 뭐어 지금 시작된 일도 아니지만. 그래서? 히키가야 군은 유키노 짱한테 그걸 전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다만 그저 유키노시타가 듣고 싶어 해서, 가르쳤을 뿐이니까. 어떤 일을 하는 건지는, 그 녀석이 결정하겠죠.」

 

「그럼... 유키노 짱한테 무슨 일을 시키려는 거야?」

 

「......캐묻고 싶은 건 여러 가지 있는 것 같았어요.」

 

「...그건 히키가야 군이 그렇게 유도하지 않았던 거야?」

 

 

글쎄, 그건 이제 와서는 모른다. 나는 그녀를 몰랐으니까, 모르는 걸 적당히, 들려줬을 뿐이니까... 내게 적당한, 얘기를.

 

 

          ×          ×          ×

 

 

「너는 물론 모르겠지만, 나도 언제 하루노 씨의 결혼 화제가 부상했는지는 몰라. 아마 11월 정도 아냐? 갑작스런 얘기였던 건 확실한 듯하지만.」

 

 

이건 허위와 기만의 이야기.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언니에게 먹칠을 할, 그 뿐만을 위한 이야기.

 

 

「우리 부실에 놀러 왔었지, 그 뒤다... 그 사람, 하필이면 나한테 의뢰해 왔다고―――『여동생과 화해하고 싶어』라면서」

 

「당신에게...아니요, 애초부터 왜 당신일까나?」

 

「글쎄 말이야. 너와 같은 동아리고, 일단 아는 사이고, 그 밖에 없었겠지.」

 

 

핵심에 접할 수도 있는 질문은 가볍게 흘려내 버린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내 연락처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물었던 것 같아. 아까 전 같은 느낌으로 술이 들어갔던 것 같지만, 제자의 정보를 누설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있는 듯 없는 듯 끼워 넣는다. 그런 대화에 있어서 중요한 건, 한 줌 모래 정도의 진실을 더하는 것. 그것만으로, 이야기는 존재성을 띤다. 평온한 마음을, 위협한다.

...앞으로는, 그게 진부하면 진부할수록 좋다.

 

 

「너의 추측은 반은 맞고, 반은 빗나가고 있어서 말인데. 요점은 내가 그 사람과 행동했었던 건 그런 의뢰가 있었다는 거야.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네주고, 그걸 계기로 화해하자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아... 웃기는군, 물건으로 낚으려고 했었으니까. 뭐어, 팡 씨 굿즈 받고 있던 너에게라면 효과는 있었을지도 모르려나.」

 

「그럴, 리」

 

「오르골」

 

 

그리고, 나는 어떤 가게 명을 꺼낸다. 나와 하루노 씨와 갔던, 그 작은 가게 명을.

실은 진짜 같은 표정을 지어, 이야기를 포장한다.

 

 

「...왜, 알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나도 갔어. 그 사람한테 끌려가서 말이지... 아무튼, 목적의 물건은, 네가 먼저 사 간 것 같았지만.」

 

「..............」

 

 

참으로 씁쓸하다. 그 사실도. 내가 말하는, 이 이야기도.

그녀의 어떤 것이라도 옳았던 그녀의, 사소하게 작은, 에고이즘의 이야기.

 

 

「너의 언니, 지금부터 여기에 올 거야.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

 

「...언니가」

 

 

선택해, 잘라 냄으로써 계속 나아가는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선택되지 않았던 유키노시타 유키노와 접점을 계속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등을 지고 있는 듯하게 보이면서도 손을 뻗친다고 하는, 모순된 관계밖에 쌓아 올릴 수 없었다.

 

 

「전에 또 어딘가에 휙 여행 가버렸잖아. 그 뒤에도 만났어, 여행지에서 좋은 게 발견됐다고 기뻐했고... 그거 가져왔었잖아.」

 

「.........」

 

 

하지만 그렇게 연약한 관계는, 언제까지도 계속되는 게 아니다.

 

 

「저기 유키노시타, 어떻게 생각해. 도와준 내가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형편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지금까지 실컷 방치해 두고. 결혼에 관한 것도 전혀 말하지 않고. 그런데도 화해하고 싶다니」

 

「....그만해」

 

 

그러니까, 그런 관계는, 그런 기분 나쁜 관계는,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너의 언니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강하진 않아.」

 

「그만해주세요.」

 

 

그만두지 않는다. 여기까지 말한 만큼, 여기까지 말한 이상, 멈출 수 없다. 최저인 내가 말하기에 어울리는, 최악인 이야기. 하루노 씨의 생각 따위 완전히 무시한, 전부를 뭉뚱그린 하찮은 이야기. 이런 때만 나는 얼마든지 말을 늘어놓을 수 있게 된다... 스스로도 자신이 싫어지는데.

 

 

「시시한 감상에 사로잡혀, 이런 나 정도 밖에 부탁할 수 있는 녀석이 없어서」

 

 

이런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얘기를 듣고, 되먹지 못한 얘기를 듣고.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여동생으로서, 어떤 기분이 들어?

 

 

「너의 언니는, 그 정도인」

 

「―――그만두라고, 말했겠지요.」

 

「................」

 

 

나는 그렇게 해서, 입을 다문다.―――아니,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유키노시타의 심연에서 나온듯한 차가운 말과 그 날카롭다고 말해도 아직 부족할 정도의, 꽂히는 듯한 시선에 의해. 이런 눈으로 노려봐진 건... 오랜만의 감각이다.

그 시선을 느슨하게 하지 않은 채, 유키노시타는 작게, 그렇지만 단언한다.

 

 

「언니를―――당신이 더 이상 험담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

 

 

...하.

겨우, 본심을 끌어냈나.

이런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언니가 험담 받고.

여기서 잠자코 있으면,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아니고―――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여동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무리 사이가 멀어져 있어도, 아무리 열등감에 시달려도, 타인에게 말참견 받아 침묵할 수 없다면-――그건 훌륭한 자매인 것이다.

자매로서의, 조건을 성립시키고 있다.

내 여동생이 말한 대로.


그 언니가 없었다면, 그녀는 그녀일 수 없을 테니까.

언니를 부정하는 건―――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녀는 언니를, 오래 전부터 인정하고 있으니까.

 

 

「...그런가.」

 

「..............」

 

 

언질은 취했다.

그런데, 그렇기에 한 번 더 들어 두자.

언니를 인정한 그녀에게, 그런 자신을 인정한 그녀에게, 한 번만 더 들어 두자.

 

 

「유키노시타, 너는 자신의 언니와 화해할 마음이 있을까」

 

 

그 제멋대로인 언니에게. 그 꼼짝도 할 수 없는 언니에게.

여동생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냐, 고.

 

 

           ×          ×         ×

 

 

내 승리 조건을 확인해 두자―――하루노 씨에게 강요된 역할에서의 해방.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택한 책략은―――하루노 씨의 에고를, 실현해 줄 것이었다.

비뚤어진 형태가 아니라...진정한 의미로, 실현해 줄 것이었다.

그녀가 잘라 버리려 하는 에고.

그건 요약해 버리면, 「여동생의 곁에 있고 싶다」...그저 그것뿐이다.

원래 그건, 나 같은 사람이 대역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하고 단념할 수 있을듯한 건 아니고, 아마... 누가 대역이 된다고 해도 채워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잘라 내려고 생각하는 면이, 하루노 씨 답다고 하면 답다고 할까.

다만, 그녀에게는 아직 미련이 있었을 것이다. 단념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겠지. 아무리 그 행동에, 한 점 흐림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완벽한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아가는 오랜 상처처럼, 무리하게 비틀어 열면 또, 붉은 피가 흐른다.

 

그렇다면... 그걸 전면적으로, 인정해 버리면 된다. 인정하게 만들면 된다.

자신의 에고를 부정해서까지, 앞으로 나아갈 필요 따위 없으니까.

그것도 자신의 일부니까.

그러니까,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자신의 에고로 붙들어 맨다. 유키노시타 유키노 옆에, 붙들어 맨다.

갈피를 못 잡는 사이에―――천칭을 의도적으로 기울여 준다.

이건 그녀의 결혼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그 이전의 문제다. 그녀의 의지에 관한 문제다.

의지를 흔들어 굳혀 버리면, 그녀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위해... 나는 유키노시타를 부추겼다.

내 말로는 멈춰 서지 않을 것이었던 그녀도―――여동생의 소리라면, 닿는다. 닿아 버린다. 여하튼, 그녀의 미련 그 자체니까. 그녀가 비틀어 엎어누르려 하는, 후회 그 자체니까.

...앞으로는 바로 그 여동생을 어떻게 부추길지 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온전히 얘기해도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니까... 시간을 들이면 할 수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아니, 여하튼 시간이 없다. 하루노 씨의 마음이 요동치는 사이에, 어떻게든 해야 했으니까... 아무튼, 어쩔 수 없었다.

유키노시타의 언니를 향한 본심을 끌어낸 뒤, 세팅한 씨름판에 올려 준다.

나머지는...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면 된다.

캐물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있는 것 없는 것 전부, 말했으니까.

...경박한 익살꾼, 노릇을 해보였으니까.

 

 

「유키노 짱한테 무슨 말을 불어넣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루노 씨는, 내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말한다.

 

 

「혹시 유키노 짱을 이용해서 나를 흔들 거라 생각하고 있을까나」

 

「......」

 

「진심으로 말하면 알게 된다든지, 시즈카 짱 같은 말이라도 할 생각?」

 

 

히라츠카 선생님이라면, 점프식으로 싸운 둘 다 벌주는 걸로 해피엔딩 해피엔딩이라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게 무른 결론에 달려들 생각은 없다. 아무튼 히라츠카 선생님도, 거기까지 단순하진 않을 거고. 세상이 너무 복잡하니까, 아마 그 사람은 단순한 얘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결과다. 과정 따위 어떻게든 좋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의 승률을 올려 둘 필요가 있다.

 

 

「알게 될지 어떻지는 난 모르지만... 흔들린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유키노시타 씨라면」

 

「지금의 나?」

 

「파티를 내팽개치고, 여동생이 있는 곳 같은 데 와 있는, 미련이 뚝뚝 흘러넘치는 유키노시타 씨라면」

 

「...........」

 

 

그래, 그 자체, 유키노시타 하루노 답지 않은 짓이다.

집안의 장녀라면, 그녀가 선택한 길을 똑바로 간다면... 이런 데에 볼 일은 없을 것이다. 집에서 손님을 접대해야 한다. 하야마의 말 따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당당하게 있으면 좋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와 버렸다. 버려도 좋은 것을 위해서, 발길을 향해 버렸다. 말하자면, 여기는 그녀에게는 이미 어웨이다.

잘라 냈던 것에 대한 미련, 후회... 흔들릴 요소라면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늘을 선택했다.

양자택일을 강요할 수 있는 이 날을. 파티 준비라든지에 쫓겨 아직 예의 그 약혼과 직면하지 않은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그녀가 집보다 유키노시타를 선택한 시점에서, 내 목적은 반 이상 달성되고 있다.

미련과 후회를 질질 끄는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억지로 부딪히게 한다. 그 수단이 아무리 잘못되어 있어도, 결과적으로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걸음을 멈추는 게 가능하다면 그걸로 좋다.

과정 따위 뭐가 됐든 저질러 주자―――원하는 해가 나온다면.

그것이 히키가야 하치만의, 방식이니까.

 

 

「미련 뚝뚝....이네」

 

 

하루노 씨는, 내 말을 음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니, 그 가능성을 시사할 수 있던 것만으로도, 하나 리드일 것이다. 이대로 포인트를 빼앗아, 유키노시타에게 넘기고 싶은데...

내가 다음에 공격할 장소를 생각하고 있자,

 

 

「흐음. 후후, 히키가야 군은 역시 재미있네」

 

「어...」

 

 

하루노 씨는... 여기까지 와서 처음으로 웃는다. 뭔가를 내포하듯이. 나를 조롱하듯이.

 

 

「아니, 나쁘지 않다고는 생각해요? 유키노 짱을 부추겨서, 나와 대면시킨다는 안은」

 

 

...이건, 허세일까.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 넘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게 본심인지는 모른다.

 

 

「그러네... 인정해 줄게. 나는 아무래도... 유키노 짱한테 미련 넘치는 것 같아. 유인돼서 나올 정도로는 말야. 유키노 짱한테 뭔가 들어버리면, 마음이 흔들릴 정도. 그렇게 내 마음을 꺾을 생각이라면... 잘 알고 있어.」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이 사람은.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꺾이지 않아.」

 

「............」

 

「그래서 내가 납득한다고 생각할까나? 그래? 히키가야 군」

 

 

크게, 그녀의 눈동자 안쪽이, 다시 흔들린다. 내 사고를 읽어내려는, 그 눈동자가.

 

 

「히키가야 군은 조금 전, 유키노 짱한테 전부 얘기했다고 말했었지만... 저건 거짓말이겠죠?」

 

「.............」

 

「히키가야 군에게는, 그런 건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내가 히키가야 군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 있으니까... 히키가야 군이라면,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맡아 줄 거라고... 뭐어, 하야토를 말려들게 한 건 예상 밖이었지만.」

 

「내가... 혼자이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있지만요-... 그렇다고 할까, 상담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니, 그렇게 생각해도 스스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히키가야 군은 겁쟁이니까.」

 

 

후, 하며 하루노 씨의 눈이, 경멸하는 기색을 띤다.

 

 

「겁쟁이니까, 자신이 떠안고 있는 걸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건 할 수 없는 걸. 그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더... 소중한 사람에게, 드러낸 결과 미움 받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까. 그 정도라면, 히키가야 군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해서 미움 받기를 선택해. 그렇다면 뒤에서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는 걸... 자신에게 거짓말을 내뱉을 수 있어.」

 

「.............」

 

「봐, 누나가 히키가야 군과 유키노 짱 사이를 응원하고 있다니, 부끄러워서 유키노 짱한테는 말할 수 없죠? 하물며 유키노 짱한테 진심으로 미움 받을 거라 생각하면... 말할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히키가야 군은 거짓말을 했을 거예요, 라고 하루노 씨는 결론 붙인다.

 

 

「어느 정도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적당한 말을 했겠지. 시간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니야... 히키가야 군 자신이 치명상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겠죠?」

 

 

내 마음의 뒤편을 더듬듯이, 하루노 씨의 시선이 내 표정을 덧쓴다.

 

 

「있잖아, 거짓말로 구슬려진 유키노 짱의 말로, 내가 굽히는 걸 납득한다고 생각해?」

 

「............」

 

「할 리가 없어, 할 리가 없어요. 히키가야 군은 결과에는 닿았지만... 수단을 잘못했어. 다른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적어도, 유키노 짱한테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됐어.」

 

 

검게 침체된 감정이, 그 눈동자에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천천히, 내 주위를 둘러싸듯이. 그런 기색을, 느낀다.

 

 

「그도 그럴게 난 눈치 채버린 걸. 히키가야 군이 유키노 짱한테 거짓말을 했던 걸. 그런 여동생의 말로, 나는 흔들릴 수는 없어.」

 

「..............」

 

 

―――사람의 마음, 좀 더 생각하세요.

 

 

그건, 언젠가, 누군가의 말이었던가.

 

나는... 또 오인했나. 역시라고 할까, 당연하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그것을 긍정하듯이, 그녀의 말이 꽂힌다.

 

 

「그러니까 그런 히키가야 군의 졸책에―――나는 넘어가지 않아.」

 

「...........」

 

 

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휙 하며 등을 돌린다.

 

 

「.......어디 갑니까.」

 

「돌아가세요. 볼 일은 끝났으니까」

 

「.....유키노시타가 기다립니다.」

 

「....어라? 나 아직 한마디도 유키노 짱과 만난다든가 하지 않았어요?」

 

 

쿡, 하며 하루노 씨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거야 하야토한테 듣고 왔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히키가야 군이 뭔가 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죠? 그러니까 뭘 하고 있을지, 상태를 보러 왔을 뿐」

 

 

그 말은, 거짓인지 진실인지... 등을 돌린 하루노 씨의 표정은, 더 이상 읽을 수 없다.

나는 한 걸음만, 저벅, 하고 하루노 씨에게 다가선다. 거기에 의미가 있는지 모르는 채.

그렇게 허약한 한 걸음을, 하루노 씨는 쳐 내듯이 말한다.

 

 

「아, 그리고 히키가야 군한테는, 이제 부탁하지 않아.」

 

「.........」

 

 

내 발은, 거기서 멈춘다. 멈춰 버린다.

 

 

「.....잘됐네요, 히키가야 군의 계획은, 달성되지 않았어?」

 

 

흥미를 잃은 듯한 하루노 씨의 어조.

...내 승리 조건. 하루노 씨에게 강요된 역할에서의, 해방.

이렇게, 어이없게 달성 되다니.

 

 

「...또, 다시 선택해요. 그렇다고 해도, 이제 후보는 가하마 짱 정도일까나」

 

「...........」

 

「약간 타격에 약한 애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히키가야 군보다는 의욕은 있을 테고, 잘 부탁하면 응해 줄지도 몰라.」

 

「............」

 

「유키노 짱하고는... 납득이 끝나고 나서 만나는 걸로 해요.」

 

 

나는, 그녀의 뒤를 쫓을 수 없다.

쫓을 이유를, 잃었으니까.

나도 또, 버려졌으니까.

그런 내게, 하루노 씨는 비웃는 듯이 중얼거린다.

 

 

「...하야토도 그렇지만, 하나하나 행동에 이유를 붙여야만 움직일 수 있는 애라는 건 성가시네.」

 

 

...이것이, 내 책략의 맹점. 무대를 정돈했음에도, 아무도 춤추지 않는다.

나는, 오인했던 것이다.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유키노시타 유키노에게 향하는 비뚤어진 애정의 크기를.

가려내서 고치는 등의, 멀리 떨어지려는 작업을 반복하려 하는, 그녀의 의지의 강함을.

...그거야 그렇겠지. 나는, 계속 시선을 돌려왔으니까. 그것이 너무나도 비뚤어져서, 너무 눈부셔 직시할 수 없었으니까. 마주볼 수 없었으니까.

...사람의 마음을, 좀 더 생각해, 인가.

나는, 실패했다. 언제나 실패 아슬아슬한 라인을 저공비행하고 있었으니까, 머지않아 할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마침내, 완전히 실패했다.

 

 

「아무튼...그러니까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억지 부리는 듯한 나의 군소리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아마 하루노 씨에게는, 닿을 리 없다.

그렇게, 나는 실패했다. 나의 책략의 범주에서, 하루노 씨는 벗어났기 때문에.

 

 

하지만―――이건 아직, 「그녀」가 예상한 범주 내였다.

 

 

하루노 씨가 떠나려고 한, 그 순간을 가늠하듯이.

 

 

「어머―――언니, 이런 곳에서 뭐를 하고 있을까」

 

 

그렇게 시원스런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 왔다.

움찔, 하고 하루노 씨의 어깨가 떨린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본다.

그 어두운 앙금을 품은 눈동자가, 약간 정도 크게 뜨인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까, 차 정도는 마시고 가면 좋다고 생각하는데」

 

「유키, 노 짱.....」

 

「무슨 일이라도? 아 그리고 언니가 내게 용무가 있다고, 우리 부원에게서 들었지만, 그것도 말하지 않고 돌아갈 생각인 거야?」

 

 

그녀는 내 옆까지 걸어와, 서 있는 근처에서 멈춰 선다.

 

 

「언제부터....」

 

「요령부득이군요... 언니답지도 않아. 뭔가 우리 부원이 실수라도 저질렀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면 사과해요... 아랫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건, 위에 서는 사람의 책임이니까.」

 

 

살짝 그녀는 내 쪽을 흘긴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저 쪽을 바라본다.

 

 

「.....늦어요.」

 

「아무튼, 부원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건 뒷전으로 하기로 하고」

 

 

그녀는 나를 노려보는 걸 그만두고, 다시 하루노 씨 편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연이지만, 나도 언니에게 용무가 있어요.―――절대로 놓치지 않으니까」

 

 

그런데, 선수 교대 알림이다. 아니 아무튼, 나는 처음부터 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언니와 여동생의 문제니까.

마지막에 대치하는 사람은, 이 두 명이겠지.

 

히키가야 하치만과 교체한, 봉사부 부장·유키노시타 유키노.

재차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          ×

 

 

「싫어요.」

 

「............어?」

 

 

내가 유키노시타에게 있는 것 없는 것을 불어넣고―――그 본심을 끌어낸 뒤.

나의 질문에, 그녀는, 싫다고 대답했다.

쌀쌀하게, 단언했다.

..어라, 그렇게 말하는 장면인 거야, 이건?

 

 

「저기, 유키노시타 씨.....」

 

「불쾌하네요.」

 

「........」

 

 

유키노시타는 내 말을, 탁 차단한다.

그리고 잠시 동안 침묵하고 나서, 하아, 하고 한숨을 토했다. 그건 뭔가에 기가 막혀하는 듯한, 체념해버린 듯한 한숨.

 

 

「자신이 당하면 어떤 기분이 될까 생각하고는 있었지만―――정말로 불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군요.」

 

「저기, 뭐가」

 

「....알고 있겠죠. 방금 전에 대해서예요.」

 

「..........」

 

「사가미 양의 기분을 약간 알겠어요. 당신이 교내에서 미움 받는 이유도 재차 이해할 수 있었어.」

 

 

그렇게만 말하고, 유키노시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불쑥 거실로 향해 버렸다. 내가 멈출 새도 없이. 나는 우두커니, 현관에 남겨진다... 더 이상 용무는 없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약간 지나자 유키노시타는 티 컵을 두 개 들고 나타났다.

하나를 내게 내밀어 온다.

 

 

「이건....」

 

「벌써 식어 버렸고 향기도 날아갔지만, 마침 남아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식은 홍차 같았다. 파티할 때 너무 많이 만든 것 같다.

 

 

「...저기, 차 마신다면 따뜻한 거실에 가고 싶은데...」

 

「사람에게 뭔가 부탁할 입장이 아닌 걸 아직 이해하고 있지 않네. 당신은」

 

 

어떻게 해서든 거실에는 들여 보내주지 않는 것 같다.

 

 

「...잠시 지금, 어질러져 있어요.」

 

「뭐? 아까 전 전원이 청소했잖아.」

 

 

히라츠카 선생님은 잤지만.

 

 

「...프레젠트가」

 

「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것보다」

 

 

내 반문을 싹둑 잘라내고, 유키노시타는 차가운 홍자에 입을 대고 눈썹을 찡그린 뒤, 대화를 재개한다.

 

 

「히키가야 군... 당신 말이야, 아무리 주위가 타인뿐인 외로운 인간이라고 해서, 옆에서 몇 번이고 봐 온 나에게 함정을 걸다니 무슨 생각일까. 한 바퀴 돌려 나를 바보취급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데.」

 

「...........」

 

「나는, 속지 않아요.」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말을 잘랐다.

 

 

「다른 사람이 속을지라도, 나는, 속아주지 않아.」

 

 

유키노시타의 너무나도 직선적인 시선이, 나를 쏘아 맞춘다. 올곧은, 그 눈이.

 

 

「당신의 방식은 언제나 그랬던 걸. 당사자도 보고 있는 사람도 정말로 불쾌. 너무 불쾌해 아무도 인사를 하지 않을 정도예요. 그다지 나라도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구원받은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불쾌한, 당신의 방식에는 정말로 구제가 없어.」

 

 

그렇게 불쾌라고 연호하지 마세요... 라고 하고 싶게도 됐지만, 나는 입을 다문다.

 

 

「당신, 한 번이 아니라 두 번도 세 번이라도 거울을 보는 편이 좋아요. 봐서 어떻게든 되는 것일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는, 얼굴에 나오고 있으니까. 평소의 5할 증가한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있어요, 당신.」

 

「.............」

 

 

―――그런 얼굴로 말하고 있을 때의 힛키, 절대 쓸데없는 일 밖에 생각하지 않으니까.

 

 

비슷한 대사를, 나는 무심코 최근, 다른 녀석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나, 예상 이상으로 눈이 썩고 있었던 것 같군. 3할이 아니었다.

 

 

「조금 전의 이야기도, 대부분 거짓말이겠지요... 아무래도 전부가 거짓말이라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내가 그걸 샀던 가게명도 알았고, 언니와 외출해서 뭔가 획책하고 있던 건 사실 같네.」

 

 

유키노시타는 살짝 거실 쪽을 바라본다. 그 오르골을 의식했겠지.

어쩌면 어렸을 적, 언니가 사 준다고 약속한, 그 오르골에 대해서.

 

 

「그래서, 히키가야 군.」

 

「...뭐야」

 

「언니가 결혼 한다고 말한 건... 사실인 거야?」

 

「..........」

 

 

나는 말없이 수긍했다.

 

 

「그래... 그건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거네.」

 

 

유키노시타는 약간 숙이고, 그렇게 혼잣말했다. 그게 어떤 감정에 기인한 건지까지는 몰랐지만. 보는 한으로는... 쓸쓸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은 언제나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드름 피우지 않고서, 하지만 눈치 챘을 때에는 이미 어떤 일이라도 손을 쓸 수 없게 되고 있어. 그 사람이 생각한대로 되어 있어.」

 

 

그건 평소의 원망하는 말과는 달리, 어딘지 비통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음성.

 

 

「저기 히키가야 군... 이번에는 아직, 뒤늦지 않았어? 당신이 이렇게 해서, 나에게 통지하러 온 건」

 

「...........아마」

 

 

그래, 아마다. 그녀는 아직, 나뉘어 떨어지지 않았다. 미련과의 실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끌어당긴다면, 반드시.

 

 

「그래... 그렇다면, 고마워요.」

 

「.............」

 

 

유키노시타의 생각할 수도 없는 말에, 나는 말을 잃는다. 그런 말, 이 녀석의 입으로 한 적은... 거의 없을 터인데. 아니, 누구의 입으로도, 들은 경험은 거의 없지만.

 

 

「그렇지만... 당신은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지요. 일부러 이런 빙 돌려 말하는 수단을 취했으니까.」

 

「............」

 

「당신도 그래요. 언제나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품은 채로... 독단으로 일을 끝내서 제멋대로 주변이나 우리들을 불쾌하게 해. 그렇게, 혼잡을 틈타서, 누군가를 구하고 있어.」

 

 

묻는 듯한 시선이 내게 향해진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냐, 고.

그런 말... 할 이유가 없다. 내 야비한 생각이라는 건, 들여다보면 더더욱 불쾌하게 될 뿐이다. 싫어질 뿐이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해버리는 이유는... 결국, 추악하고, 시시한 이유겠지.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래... 당신은 변함없는 거네.」

 

 

나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 유키노시타는 무표정하게 한 번 끄덕인다.

 

 

「히키가야 군... 나 말했었지요.」

 

「....뭐를」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아.』라고」

 

「...........」

 

 

그런 말을 했었지, 그러고 보니.

왠지 아까 전의 약간 괜찮은 분위기 같은 게, 점점 검은 오라로 물들어 가는 느낌이 듭니다만...

 

 

「지도와, 교육과―――교정이 필요한 것 같네.」

 

「..........히익」

 

 

무심코 내 목에서 공기가 새어 나온다. 공포는 호흡조차 곤란하게 하는 것 같다. 공기가 얼어붙어 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현관이 추운 것만은 아니겠지.

 

 

「히키가야 군」

 

「...............」

 

 

위험해, 살해당해 버려.

―――하고 생각했지만, 잠시 기다려도 철퇴는 휘둘리진 않았다.

 

 

「...무슨 준비를 하고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전부 내 환상이었던 것 같다. 지쳐 있는 건지도 몰라, 난.

유키노시타는 목을 가볍게 기울인 후, 정신을 가다듬듯이 후, 하고 호흡을 정돈했다.

 

 

「우선 당신은 지금부터 잘못할 테니까... 그것을 교정하도록 합시다.」

 

「어......? 무슨 말이야?」

 

「언니에 대해서예요... 지금부터 오겠지요?」

 

「아아, 뭐」

 

 

하야마가 제대로 한다면... 그리고, 내 읽기가 맞다면 이지만.

 

 

「당신은 언니를 아직 얕잡아 보고 있는 구석이 있으니까... 아마, 실패해.」

 

「.............」

 

 

그 말은, 누구보다도 무게가 있다. 여하튼 17년간, 그녀의 여동생을 하고 있던 사람의 말이니까.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상황은 모르지만... 당신이니까 언니에게 휘둘려서, 도중에 싫어졌으니까 어떻게든 해서 빠져나가고 싶다라고도 생각하고 있겠죠... 그 사람의 결혼에 얽힌 일일까」

 

 

유키노시타는 팔짱을 끼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무섭게도 대부분 맞고 있었다. 맞지 않아도 머지않아 맞추겠지...

 

 

「당신의 방금 전의 언동에서 헤아리건데, 나를 이용하려고 한 것 같아... 그것도, 내게 무슨 말을 하게하고 싶었어... 그것도, 왠지 모르게 알아요.」

 

「.............」

 

「그렇지만... 당신은 실패해. 그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잘라 내는 사람이야... 거기에, 물러날 때를 분별하고 있어.」

 

 

물러나는 건 최악일 때지만, 이라고 유키노시타는 덧붙였다. 거기까지 몰린 하루노 씨를 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뭐라 말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할까 그런 일 할 수 있는 녀석 있는 건가... 어머니, 라든가?

 

 

「...그렇다고 할까, 유키노시타... 아까 전부터」

 

 

왜 그런 걸 열심히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일일까? 나도 갈 거예요, 언니를 잡으러」

 

 

그렇게 시원스러운 말에, 대답이 궁해진다.

 

 

「말했었지요. 당신의 실패를―――바로잡아 준다, 고」

 

 

그렇게 말하고, 대담한 미소를, 정말 어렴풋한 미소를 띄운다.

 

 

「당신이 계속 잘못하는 한. 그런, 의뢰인 걸. 당신이 바라든지, 바라지 않든지.」

 

 

원망한다면 히라츠카 선생님을 원망하세요, 라며 시치미 뗀 얼굴로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이 놈도 저 놈도, 정말로 내가 말하는 것 따위 들어 주지 않아.

...그건 아마, 평소의 행동이 나빠서 그렇겠지.

 

 

「알고 있을까 히키가야 군, 언니를 잡을 때는, 양보 같은 건 해서는 안 돼요. 정말 몇 안 되는 틈이 생명의 위기가 돼요. 가능한 한 물려서 죽지 않게 말이야.」

 

 

          ×          ×          ×

 

 

「언제부터...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대답해 두는데」

 

 

맨션 문 앞에 나타난 유키노시타는, 하루노 씨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처음부터, 야. 언니의 대화는, 처음부터 듣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핸드폰을 꺼내 보이는 유키노시타.

 

 

「히키가야 군... 그거」

 

 

느릿느릿하게 하루노 씨는, 내 수중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 그러고 보니 끊는 걸 잊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도 손에 가진 스마트폰을 가볍게 내걸어 보인다.

이미 끊어지곤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통화중이었던 것이다. 유키노시타의 핸드폰과.

 

 

『언니가 나타나면 여기에 전화해. 끊기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건네받은 종잇조각이, 내 포켓에 들어가 있다. 내 스마트폰 말이야, 적외선 없으니까. 편리해진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해진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맛폰한테는, 춥게 해버렸다. 나중에 충전해 주지 않으면.

 

 

「그런데 히키가야 군, 그토록 끊지 않도록 말했는데 왜 끊었을까나. 온·오프 정도의 조작도 헷갈린다면, 보물을 가지고도 썩힌다고 해도 되겠군요..」

 

「아-, 미안. 눈치 채지 못했다.」

 

「비가 올 즈음에서 끊어졌으니까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어요... 덕분에 샌들로 나와 버렸잖아.」

 

「...그거, 내 책임인가.」

 

 

나는 투덜대면서,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위험했다. 하루노 씨가 나를 콕콕하고 들볶던 부분의 얘기는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어쨌든」

 

 

유키노시타는 하루노 씨를 다시 보며 말한다.

 

 

「덕분에 조금은, 상황은 파악할 수 있었어요.」

 

 

그에 반해 하루노 씨는 반응인 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유키노시타의 구두 언저리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상당히,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암약하고 있던 것 같네... 내 일인데도 불구하고」

 

「............」

 

「우리 부원을 홀려서, 무슨 일을 시킬 생각이었을까」

 

「...........」

 

「언니는 역시 아무것도 말하지 않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일만을 진행시키려고 해. 언제나」

 

「...........」

 

 

그런데도, 하루노 씨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유키노시타도, 그것을 승낙으로 받아들인 듯이 자신의 언니에게 말을 건다.

 

 

「미련, 이라든가 내게는 모르지만. 언니가 내게 품어야 할 미련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계속, 언니는 앞 밖에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에 대해서는, 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그렇지만... 만약 그 때처럼, 언니가 도와줬던 그 때같이, 나를 지켜 봐주고 있던 것이라고 하면... 그건 실수였던 게 되어요.」

 

「..............」

 

 

그 때, 라는 게 뭐를 가리키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하나 짐작 가는 부분이 있다.

하야마의, 옛날이야기. 초등학생・중학생 시절의 유키노시타 자매.

그 다음은, 여기로 이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의 내 말이, 지금의 언니의 미련으로 이어지고 있다면―――내가 그걸 끊어야 하는 것이군요.」

 

「......유키노 짱」

 

 

그 마지막이, 방문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언니가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내가 앞을 향하지 않으면 안 돼... 사실, 나는 언제나 언니의 방해를 하고 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리」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한 순간 자학으로 비뚤어져... 그리고 곧바로 그 진지한 얼굴을 되찾는다.

그 검을 내리친다. 미련의 실을, 의도를 끊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라고 하는 철의 의지를 내세운다.

 

 

「이제, 그런 언니는, 미련에 사로잡힌 언니는---내게 필요 없어.」

 

 

언니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해 나갈 수 있다고 유키노시타는 소리 높여 선언했다.

 

 

「그래...그런가」

 

 

하루노 씨는, 그 의지에, 조용히 응한다.

 

 

「그러네요. 강하게 됐네... 유키노 짱은」

 

「...나는 간신히 그렇게 될 수 있었어요... 17년 간, 언니와 함께 있었으니까」

 

 

그 뒤를, 계속 쫓았으니까.

유키노시타는, 하루노 씨의 미련의 실을, 끊었다.

뭔가 잘못되어 있는듯한, 비틀린 언니와 여동생의 관계를, 자신의 손으로 바로잡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도중까지 말하고, 유키노시타는 힐끔 내 쪽을 본다. 방관자라고 할까 해설자가 되어 있던 나는, 갑자기 시선을 향해져 당황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키노시타는 하루노 씨를 향해, 한 층 더 말을 뽑았다.

 

 

「그렇지만, 언니에게는 여동생으로서 해 두고 싶은 말이 산만큼 있어」

 

「.............」

 

「하고 싶었던 불만이라든지, 하고 싶었던 약속이라든지... 거기에」

 

 

그렇게 해서 그녀는, 장난처럼 미소 짓는다.

 

 

「들어줬으면 하는 어리광이 있어. 들어줄래? 나도 조금은, 누군가를 곤란하게 해 보고 싶어요.」

 

 

언제나 곤란하게 되고 있는 나로서는, 어느 입이 그 말을 하냐고 반론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튼, 이런 때 정도는, 분위기를 읽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가끔씩은 나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찬스니까.

 

 

『히키가야 군, 이제 돌아가도 괜찮아요.』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딱 5분 정도 지났다.

나와 하루노 씨는, 아직도 유키노시타 맨션 앞에 내내 서 있었다.

돌아가도 좋다고 들었는데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별로 사축적 본능이 일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언니는 10분 뒤에 올라 와. 간단히 청소할 테니까. 히키가야 군은 언니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제대로 지켜 두세요.』

 

 

정식으로, 잔업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정확하게는 일이 끝나면 돌아가도 좋아, 라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할까 정말로 경계심 덩어리 같은 녀석이군. 아직 포박의 손을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고는.

추가로 바로 그 포박 대상, 하루노 씨는 손에 있는 시계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있기가 대단히 괴롭다. 방금 전까지 여러 가지 콕콕하고 괴롭혔던 상대와는.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역시」

 

 

그렇게 하루노 씨가 얘기해 왔다. 작고, 가냘픈 소리였지만.

 

 

「역시...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두 명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농담이 아니다. 기사보다 레벨이 높은 공주님이라든가... 만담도 안 된다.

 

 

「그래? ...아무튼 상관없어요. 그게 지금의 히키가야 군의 대답이라면, 그건 그래서」

 

 

후후, 하며 그녀는 작게 웃는다. 약간 정도, 평소 상태를 회복한 것 같다.

 

 

「...그렇지만 유키노 짱, 자기 멋대로라니 무슨 말을 할 생각일까. 언니는 약간 무서울지도.」

 

「변변한 일이 아니에요, 분명」

 

 

단지, 나는 왠지 모르게, 예상이 들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살짝 봤을 때에, 정말로, 왠지 모르게지만.

내가 말했으니까 그렇게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본심에서 나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아니, 잘난 체도 정도껏이다. 아마, 후자겠지.

그렇다면 그로 인해... 하루노 씨는 지금부터 상당한 일을 당할 게 틀림없다. 여동생에게 휘둘릴 게 틀림없다.

 

 

「....여동생 최강 이론인가」

 

「에? 히키가야 군 그게 뭐야?」

 

「아-... 뭐어 세상은 여동생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제가 수립한 이론이라서」

 

「...그게 뭐야」

 

 

하루노 씨는 쓴 웃음을 띠우고 대화는 거기서 어중간하게 뜬다. 아무튼, 나로서도 대응하기 어려운 화제라고는 생각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화신과 같은 하루노 씨를 곤란하게 한다고는, 나도 꽤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할까 흘려 버리라고.

 

 

「....슬슬 10분이에요.」

 

「.....응, 그러네」

 

하루노 씨는 시계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 유키노시타의 맨션을 바라본다. 아까 전 노려본 것과는 돌변해서, 거기에는 온화한 시선만이 있었다.

 

 

「그럼 갔다올까나... 감시 수고했습니다.」

 

「.....서비스 잔업입니다만」

 

「딱딱한 말 하지 않는 거야. 아마 샐러리맨이 되면 일상다반사에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되고 싶지 않다고. 자면서 할 수 있는 일 없을까... 없겠지.

 

 

「아아, 그리고, 이거」

 

 

하루노 씨가 걷기 시작할 쯤에,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응?」

 

「...여동생의 집에 실례한다고 해도, 선물인가 뭐라도 있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기분 좋아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포켓에서 다시, 그것을 꺼낸다.

 

 

「...열지 않았으니까 모릅니다만. 이거, 분명 유키노시타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취향 스트라이크라고... 보증 받고 있으니까.」

 

 

눈앞의 사람에게서.

그러니까 아마, 그렇겠지. 그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헤에, 그건 든든하네.」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는 그것을, 솔직하게 받았다.

약간만 손이 접하고... 곧바로 떨어진다.

그리고, 느긋하게 맨션의 엔트란스로 걸어간다. 그녀가 인터폰으로 가볍게 말을 주고받아,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까지를 보고, 나는 맨션에서 등을 돌린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갈까.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고, 여러 가지 있어서 지쳤다.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역시 나는 집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정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거겠지?

코마치도 과연, 슬슬 내 자택 추방을 해제해 주고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할까 아버지와 밥 먹으러 간 거지? 빈둥거리고 있으면,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메일이라도 보내 볼까하고 스마트폰을 꺼냈을 때, 그것이 작게 진동했다.

 

 

「응, 코마치일까...」

 

 

 From : 유키노시타 하루노

 Subject : 만약 괜찮다면 좋겠는데

 Message: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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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dboost : 이렇게 해서 하치만 혼자서는 실패했지만 유키노와 힘을 합쳐서 성공했군요.

이번 편만은 더 신경 써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지만 제 국어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안타까웠습니다.

후편이 본편 완결이며, ⑤-9는 후일담 예정입니다.

<이 글은 pixiv - tetsukugi 님의 번역허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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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코마치와 하치만은 정말로 사이가 좋지요. 정말 이 자식들 결혼 안 하냐 할 기세. ...라고 할까 지금 부부지요, 생활을 보고 있으면...그렇게 생각하는 요즘.

3페이지...오랜만의 모놀로그. 글자 수 적어. 실질 최종화로 향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통계와 향후의 방침.

 

11/19까지 ⑧까지 할 수 있으면 다행. 추가로 ⑨도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이건 후일담이 되니까, 아무튼 상관없지 않을까. 아아, 러브러브시켜 볼까. 먼저 해버릴까...(폭거)

 

히키가야 하치만은 생각한다. 하루노의 의지로부터 피할 방법을. 하루노의 소원을 실현할 방법을.

 

차회 「⑧그리고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그 걸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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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내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단.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책략에 대한, 나의 회답.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옆에 있고 싶다는, 의뢰에 관한 해결책.

물론 내가 하루노 씨에게 들이미는 건 부정일뿐이고, 단순한 노(No)로 그녀는 납득 하지 않는다.

그러면 유키노시타의 옆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그럴 마음이 없다고 말해봤자, 하루노 씨는 책략을 진행시킬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노 씨의 책략 자체를 부술 필요가 있다. 전제 조건 째로, 파탄시킬 필요가 있다.

...방침은 정해졌다. 취해야 할 수단도 생각하고 있다...별로, 마음 내키는 방식이 아니지만.

하루노 씨는 물론, 나라도 납득은 하지 않고...거기에 그녀도 아마, 불쾌해 하겠지. 내 방식은, 아마 언제든, 대부분의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 틀림없다.

세 사람이 한 냥 손해나면, 세 사람 모두 손해. 리스크 매니지먼트건 뭐건 필요 없다.

거기에, 방식은 정해진 거라고 해도...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문제다.

 

※ 세 사람이 한 냥 손해 : 한 사람이 3 냥을 주워, 떨어뜨린 주인에게 보내지만, 주인은 일단 떨어뜨린 이상, 자신의 것은 아니라고 받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한 냥을 추가해서 두 사람에게 두 냥씩 건네주고, 세 사람 모두 한 냥씩의 손해로 해결된다.

 

 

고독 체질인 인간은 자칫하면, 사고에 관한 자원은 풍부하지만, 행동에 관한 그건 부족하기 쉽다. 정공법으로 공격하면 시간이 걸리는 건 뻔하다. 시간 경과로 상황이 악화되는 국면에서 그건 치명적이다...물론, 그건 다소 난폭한 방법을 이용하면 커버 가능해지는 일이지만.

라노베의 주인공이 말했던 거지만, 인간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적다, 라고 한다. 그러니까 동료를 의지하라든가 했었나. 타력본원은 내 신조 중 하나고 찬성해 주고 싶지만, 난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 타력본원 : 아미타불의 기원(祈願)에 의해서 성불하는 일; 비유적으로, 남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려고 하는 일.

 

 

인간,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이 놈도 저 놈도 하지 않을 뿐이고... 곧장 사람한테 의지하려고 하니까, 그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러니까 리얼충은 연약해서 곤란하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도 그 나름대로 그렇게 해 왔고...나보다 훨씬 혼자서 해 온 녀석을 봐 왔으니까. 혼자서 뭔가를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에, 얼마나 숭고한지를.

 

간단한 계산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달성감을 1로 한다면, 10명이 그걸 실행하면 얻을 수 있는 달성감은 일인당 1/10이다. 또한 집단의 의한 고양은 단순한 기분 탓이니까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건 RPG에서 말하는 버서커 상태겠지? 배드 스테이터스야... 그에 반해, 처음부터 혼자서 하면 얻을 수 있는 달성감은 1. 10배다. 증명 종료.

그러니까 나는, 혼자서 일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거리낌은 없다. 오히려 혼자가 최고...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왔으니까.

 

단지...이렇게라도 말해 자신을 고양시키지 않으면...여러 가지, 생각나 버릴 뿐이다.

나를 상냥하게 설득한 그 사람에 대해서나, 규탄한 그녀를. 내 블레이저 코트를 잡은 그녀의 손이나...이대로라면 파탄해요 라고 충고한, 그녀를.

타인에게 들어서 고칠 수 있다면, 애초에 벌써부터 고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을 텐데. 평소처럼, 혼자서 끝내버리면 좋을 뿐인데.

바뀔 필요라니 없을 거라고, 확인했던 바로 직후인데.

 

 

「...ㅅ키, 있잖아」

 

「...........」

 

「정말-! 힛키!」

 

「으억...뭐야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에요, 아까 전부터 말하고 있기도 했구!」

 

 

보면 유이가하마가 뿡뿡하고 한창 화나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나, 꽤나 멍하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뭐어 그래도 그거다, 나도 자주 무시 받기도 하고, 그 정도는 허락해줘요...안되려나.

 

 

「아-, 그런가...미안해」

 

「정말...아까 전에도 찻길로 나갈 것 같았으니까, 좀 더 여기로 와.」

 

「진짠가...」

 

 

약간, 인도 쪽으로 온다... 너무 접근하면 저거다, 근처에 폐일 테니까, 약간만.

날은 저물어, 저녁 식사라는 시간.

나와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맨션에서 나와, 귀로에 오르고 있었다.

혹시 오늘도 유이가하마는 묵고 가는지 생각했지만, 작업을 끝내 내가 돌아가려고 하자, 같이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다. 뭔가 요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적어도 저녁밥은 먹고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찮은 건가, 저녁 밥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응? 그런 얘기 안했어요?」

 

「...어라, 하지만, 오이가 어때라든지 토마토가 어떻다든지...」

 

 

전부 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 그거. 이번에 도전해 볼까-하는, 과자 얘기」

 

「과자...라고...」

 

 

어이 그거, 설마 크리스마스 파티에 들이거나 하지 않을 거지...

 

 

「응, 유키농한테 말야, 『당신의 요리 센스는 특이하군요.』라는 말을 들어서 말야, 혹시 약간 특이한 과자가 궁합 좋지 않을까 해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건 유키노시타의 장난, 절대로. 유이가하마의 경우, 우선 기본의 ㄱ자도 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거, 유키노시타는 뭐라고 말했어?」

 

「응-, 그게 말야, 『이번에는 나와 같이 케이크를 만들기로 합시다.』라고 말할 뿐이라...아, 그래두 서프라이즈로 가지고 가면」

 

「무리하지 마, 케이크에 전념하는 편이 좋아.」

 

 

서프라이즈 정도의 소동으로는 안 끝나게 될 테니까.

나의 그런 절실한 기원이 통했을까, 유이가하마는 그런가-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힛키도 케이크 기대해 주고 있어...알았어, 나 노력할 테니까!」

 

「오, 오우...」

 

 

가능하면 별로 노력하지 않았으면 하지만...아무튼 유키노시타가 어떻게든 할 것이다.

이야기도 그걸로 마침 일단락된 탓인지,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내게는 침묵을 깨뜨릴, 의욕도 기술도 없으니까. 이따금 계속 말하고 있는 무리를 보지만, 잘도 아무튼 내용이 없는 말을 그토록 할 수 있군 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태클하면서 들으면, 그만큼 좋은 심심풀이가 없으니까.

 

거기에...이 침묵이라는 것이 그만큼 난 싫지 않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니까. 옛날에는 어땠지-입 다물어 버렸다고 어이 라든가 그런 것들로 머릿속이 가득했지만, 여러 가지로 체념이 붙은 지금, 나는 꽤 효율적으로 사고에 깊이 빠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의식이 내면으로 향할 것 같이 됐을 때,

 

 

「...있잖아, 힛키」

 

「어...?」

 

 

유이가하마의 소리가, 그걸 방해했다.

 

 

「무슨 일인데」

 

「볼 일이라고 할까...저기, 말야」

 

 

유이가하마는, 약간 주저하고 나서,

 

 

「힛키, 뭔가 또, 안고 있지 않아?」

 

 

그렇게,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 보았다.

 

 

「...아니, 별로」

 

 

물론,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라고요. 요새 한가하고, 상담 해 달라는 메일 정도 밖에 오지 않고...」

 

「유키농에 대한 거?」

 

「...하?」

 

 

왜 갑자기 유키노시타가 나와.

 

 

「보고 있으면 알아요. 꾸미고 있는 때도, 중간부터 입을 다물어 버리구... 뭔가 힐끔힐끔 유키농 보고 있기도 했구」

 

 

보고 있었나, 내가...? 그렇다고 할까, 내가 침묵하는 건 평소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지...이런 안색을 읽는 듯한 국면에 있어서는, 이 녀석이 그 나름대로 숙련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말했었잖아. 그런 건, 싫다구」

 

「.........그러니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봉사부활동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말한다면, 좀 더 프라이빗한 일이야.

그런 내 문제에, 유이가하마가 깊이 관여할 필요 같은 건 없다. 그렇게 해도...폐가 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두」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그런데도 물고 늘어진다.

 

 

「그런 표정 짓고 있을 때의 힛키는, 절대 쓸데없는 일밖에 생각하지 않으니까」

 

「표정이라니...하, 그거야 잘도 보고 있네.」

 

 

그렇게 나는 야유로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보고 있어요.」

 

「.........」

 

「제대로 보고 있으니까, 말한 걸」

 

「...........」

 

 

그렇게 말해 버리면, 성실하게 답해주면... 돌려줄 말이 없다.

 

 

「유키농에 대한 걸로, 힛키는 고민하고 있는...거 아닌 거야? 아마도지만. 나, 잘 알고 있진 않은데」

 

 

유이가하마는, 말을 골라내듯이, 더듬더듬 거리며 말한다. 그거야 그렇다. 유이가하마는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이니까.

 

 

「그렇다면, 나라도 걱정이야. 유키농에 대해서도...힛키에 대해서도. 눈치 채 버렸으니까, 걱정되는 건 당연하잖아...그러니까」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그런데도, 내 대답은 변함없다. 지금인 채라면, 이건 나와 유키노시타 사이에서 끝날 일이니까. 유이가하마가 일부러 들어와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하려하는 일은, 아마, 유키노시타에게 있어서 상당히 불쾌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에 어떻게 될까 따위 알 바 아니고, 그 상황에, 유이가하마를 당사자로 말려들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다지...원래 유키노시타에게 좋은 인상으로 보이지도 않고, 보일 생각도 없으니까 상관없지만...유이가하마는 그렇지 않다.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친구이기 때문에. 최악...두 명의 관계성에라도 영향을 줘 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뭐라고 할까 피하고 싶었다.

 

 

「역시...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가르칠 정도의 일도 아니야, 너무 신경 쓴다고.」

 

「............」

 

 

납득하지 않고 있는 눈이다. 하지만, 그렇잖아?

가르칠 정도의 일이 아니니까. 이건 원래, 자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른 집안일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 자매 싸움은 집에서 하세요라는 얘기니까. 나는 다만 그저, 말려 들어갔으니까, 자신의 몸을 지킬 뿐이다. 날아오는 불똥을 없앨 뿐이다.

강 건너에 있는데, 화재 현장에 뛰어드는 바보가 어디에 있어.

 

 

「.........」

 

 

내가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유이가하마는 슬픈듯한 눈을 숙이고는,

 

 

「알았어, 이제 묻지 않을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니까, 화제도 바꾸려고 했다.

 

 

「슬슬 역인데, 너 어떻게 할 거야? 너의 집 방향이라면, 버스로도」

 

「그럼」

 

「아?」

 

 

하지만, 그런 흐름을 힘차게 끊듯이.

 

 

「그럼...가르쳐 주지 않아두 되니까, 나한테도 돕게 해 줘」

 

 

유이가하마는, 그런 말을 했다.

 

 

「.............뭐?」

 

 

한 순간 말의 의미를 몰라서,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한 순간이라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의미를 모른다.

유이가하마는...지금 잘 모를 말을 했다.

 

 

「힛키는...아마 힛키인 채라구 생각해.」

 

 

곤혹해하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유이가하마는 얘기를 계속한다.

 

 

「나나 유키농이 아무리 말해도...힛키는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 걸로 바뀌었으면, 좀 더 전부터 힛키는 좀 더 착실했을 거라구 생각하는 걸」

 

 

이 녀석 심한 말하잖아...

그렇지만, 그건 내가 마침 방금 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힛키가 변함없으면...아마, 또 힛키는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구, 혼자 해결 해 버리겠죠...지금처럼」

 

「그건.......」

 

「하지만 나, 그건 싫어」

 

 

내 반론을, 변명을, 유이가하마는 차단한다.

 

 

「그러면... 나부터 갈 수 밖에 없잖아. 기다리지는, 않을 거야」

 

 

그런 말을, 문화제 때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때도 그렇게...힛키한테만 뭐라고 하면 좋은 게 아니었어. 그 때...우리들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됐다고 생각해. 힛키한테...어리광부리고 있었다고 생각해.」

 

「...........」

 

 

그 때. 역시 또, 수학여행에 관해서일까.

 

 

「힛키라면, 분명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은 비뚤어진 해결법으로 말야... 그 때 어떻게든 해 줄 거라구...저런 기분이 되는 것두, 조금 생각하면 알았을 텐데」

 

 

유이가하마는 내게 시선을 향한다. 거기에는 자신만만한 얼굴과... 강한 의지를 숨긴 눈동자가 있다.

 

 

「그러니까...이제 저런 일은 하게 만들지 않아. 그걸 위해서는, 멈추기 위해서는...옆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

 

 

그런 이유인가. 그러니까... 그런 엉망진창인 말을 하기 시작했나.

이 녀석은 뭐라고 할까... 정말로 바보다.

 

 

「너 말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도움이라니, 그렇게 바보 같은 얘기가 있냐고. 너 머지 않아 사기꾼한테 당한다고, 모르는 사이에」

 

「으응, 괜찮아요.」

 

「...뭐가」

 

 

「힛키가 그런 얼굴 하고 있을 때는, 쓸데없는 일 생각하고 있긴 한데...그래두,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때의 얼굴인 걸... 힛키는, 상냥하니까.」

 

 

그렇게, 그녀는 순진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

 

 

나는, 그 미소에 말을 잃는다.

 

 

「그리구, 거절하거나 거짓말로 알려주거나 해두, 내 마음대로 도와줄 거니까. 방해해버릴지도 모르지만...그건 어쩔 수 없죠?」

 

「그건 너.... 협박이라고 하는 거야.」

 

 

이건...졌다.

이 녀석이 말하는 건 터무니없고, 잘 알아듣게 여러 가지로 말하면 구슬릴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가짜 안건이라도 꺼내서 이 자리를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노 가드로 발을 디디면, 솔직한 말로, 곤란해진다.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신뢰의 미소와 협박의 더블 펀치다. 이 녀석한테 그런 협상 기술이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래.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그녀는 성장했다. 변했을 것이다.

유이가하마 유이는, 혹시 봉사부에서 제일 성장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

두리번두리번하며 주위의 안색을 엿보며 살아 왔던 그녀. 유키노시타와 친구가 되기 위해, 그런 자신을 바꾼 그녀. 유키노시타가 매력을 느꼈던 것도,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그 강함인지도 모른다.

수동적으로 바뀌는 것과...능동적으로 바뀌는 건, 분명 다르다. 그 피아는 애매하지만... 그녀의 경우, 이건 후자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해서 내 영역에 쑥쑥하고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그녀도 또한, 그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일까... 이런 나 같은 놈한테, 과분한 신뢰를 가지고.

나는 이 녀석의 치졸한 협상에 질 생각 따위 전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해도, 특별히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렇게, 체념의 한숨을 토했다.

...협박당했다면, 어쩔 수 없다. 서투르게 방해받으면, 이길 수 없으니까.

 

 

「응, 나라도 할 수 있는 걸로」

 

「아아, 너한테 기대는 안하고 있으니까, 안심해라.」

 

「너무해...그래서, 뭔데?」

 

 

그렇게 해서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정말로 사소한 일이고, 나라도 하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아마, 교우관계가 좋다고 하는 점에서도,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이가하마가 잘 할 수 있을 일을. 지금 할 수 있는, 나와 유이가하마의, 타협 라인.

그런데도 아마... 나와 유이가하마에게 있어서는, 좀 더 큰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2월 24일.

 

 

          ×          ×          ×

 

 

24일은 소부 고의 종업일이다. 수업은 반 정도만 하고 끝나, 그 이후는 짧은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왜 겨울방학은, 금방 끝나 버리는 거야? ...어쩐지, 여름 방학 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비관하는 건 그만두자. 모처럼의 장기 휴가고.

 

 

「후아...」

 

 

하품을 눌러 참으면서, 나는 거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간다.

 

 

「아, 오빠 좋은 아침-...근데 어라, 빠르잖아? 왜 그러는 거야?」

 

 

주방에서, 먼저 일어나 있던 코마치가 몹시 놀라서 말한다. 고양이가 프린트 된 파자마 위에, 내 파커를 마음대로 걸치고 있다.

손에는 스푼, 테이블에는 우유와 콘프레이크 접시가 나란히 있다.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것 같다.

비교적 어떻게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코마치는 지금도 우유를 자주 마시고 있다. 분명히 올해 초봄 정도부터 그런 상태였지만, 싫증을 잘 내는 이 녀석으로서는 잘도 지속되고 있는 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눈에 보이는 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별로...눈이 뜨였을 뿐이야...」

 

「그런 거야? 오빠 추워지고 나서 일어나는 거 꽤 늦어졌잖아. 이불 뒤집어쓰고 안 나오면 큰일이니까. 봄까지 자고 싶다든가 말했었고」

 

「...그건 본심이지만. 사람도 슬슬 동면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지구의 에너지 문제도 아마 한 시즌 자고 있으면 조금은 재고할 수 있다. 거기에 말하고 보니 꿈속에서의 바캉스 같은 것이다. 가고 싶은 것도 아닌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건 매력. 동면 기술...빨리 완성되지 않으려나.

 

 

「그러면 뭔가, 퇴화하는 거 아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좋은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하품한다. 그러자 코마치도 후아, 하고 작게 하품했다.

 

 

「잠깐 그만두세요, 옮겨 버리잖아」

 

「아직 졸린 거잖아, 넌」

 

「후냐아...」

 

「응?」

 

 

거실의 소파를 문득 보면, 카마쿠라도 하품하고 있었다. 집단 감염이다.

 

 

「오빠, 뭐 먹을 거야? 빵으로 좋아?」

 

「아-, 먹고 있어도 돼, 스스로 준비할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부엌으로 걸어간다. 냉장고에 넣어 둔 식빵을 하나 꺼내, 토스터에 처넣는다. 하는 김에 우유도 꺼냈다.

 

 

「아, 혹시...」

 

 

내가 컵에 우유를 따르고 있자, 코마치가 뭔가 짐작이 간 듯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아하 하고 입가를 올린다.

 

 

「아앙?」

 

「오빠, 그러고 보니 잠 못 잔 거 아냐? 오늘 크리스마스 파티가 기다려져서 참을 수 없었다던가?」

 

「...........그럴 리 없잖아」

 

 

나는 우유를 한 입 마시며, 하는 김에 한숨을 내쉬었다.

 

 

「또 또, 오빠는 솔직하지 않네. 오빠, 곧장 가는 거야?」

 

「아니, 한 번 집에 돌아와요. 갈아입고....그대로 잠들지도 모르지만」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않는 거야. 그럴까그럴까, 코마치는 아마 돌아오지 않을까나. 잠깐 쇼핑하고 올 테니까」

 

「......너 좋은 거야? 아마, 지금부터 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고?」

 

 

자이모쿠자와 달리 환영될 것이고. 분위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유이가하마 밖에 없는 것도 불안하다.

 

 

「말했잖아, 이건 오빠의 기말 시험이라고. 배웅하는 코마치의 기분, 알아줬으면 하는데-」

 

「저거 진짜였나요...시끄러」

 

 

요요요~ 하고 우는 체를 하는 코마치를 보고 나는 맥이 빠진다.

 

 

「오빠 저녁밥은?」

 

「어떻게 되려나... 4시 정도부터 시작한다고 했었지만, 일단 밥도 있고, 필요 없지 않을까. 각자 가지고 모일 테고」

 

「호오호오... 어제 오빠가 뭔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그거였던 거네...어라, 의외로 흥미잖아! 오빠의 포인트 높은 데가 보여서 코마치 감격!」

 

「...대단한건 안 만들었다고.」

 

 

봉지 과자에 돈을 쓰는 게 아까웠던 것뿐이다. 프레젠트 교환 같은 바보 같은 말을 유이가하마가 하기 시작한 탓으로, 약간 돈 부족 느낌이고. 스넥계에 관해서는 자이모쿠자가 여러 가지로 기합이 들어간 것을 사 올 테고... 그 녀석이 산 물건에, 여자 모두가 손을 댈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내가 만든 것에 손을 댈지도 의문인데...대량의 생활 쓰레기가 나올 예감. 실현되면 트라우마는 불가피하다.

 

 

「단지...유이가하마도 뭔가 만들어 오는 것 같고. 요점은 백업이다.」

 

「Aㅏ......」

 

 

케이크 만들기에 전념해 달라는 말을 했었지만, 묘하게 텐션 높은 메일이 어제 왔다.

어제 그 녀석은 하야마 일행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있었지만, 에비나 양이 만들어 온 파이인지 뭔가가 굉장히 맛있던 것 같아. 거기에 자극받았다나 뭐라나.

...사실 요즘, 에비나 양 탓으로 심한 일을 마구 당할 참이다. 아니, 아직 심한 일을 당한다고는 결정되지는 않았지만...확률은 높다. 리스크 관리상, 자기방어는 중요하다.

 

 

「다른 사람은?」

 

「유키노시타는...여유가 있으면 케이크 이외에도 뭔가 만들지 않을까? 토츠카와 히라츠카 선생님은 듣지도 않았는데」

 

 

히라츠카 선생님은, 사케토바 라든가 카키노타네 라든가를 사서 올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안주인가. 토츠카는...부디, 손수 만든 뭔가를 가져와 줬으면 한다. 토츠카의 손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고, 전부 평정할 생각이다.

 

※ 사케토바 : 연어를 잘라 말린 것.

카키노타네 : 쌀과자의 일종. 어쨌든 두 개 전부 술안주

 

 

「흠흠. 이야~, 뭔가 파티라는 느낌이네. 좋겠네.」

 

「귀찮을 뿐이지만... 추가로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저녁 밥」

 

「아빠가 어딘가 데려가 준다고」

 

 

역시 그런가. 그 쓰레기 아버지의 딸을 향한 애정은 상궤를 벗어나 있으니까... 부탁이니까 범죄라고 오인당해서 연행되지 않게, 코 밑을 너무 늘여서 히죽거리지 말아 줬으면 한다.

 

 

「그러니까, 코마치는 걱정하지 말아줘! 즐기다 와요, 오빠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건 그야말로 초등학교」

 

「어이 그만 둬...정말」

 

 

사람의 트라우마를 순진한 얼굴로 파내지 말라고.

토스터에서 빵을 꺼내, 잼과 마가린과 같이 테이블로 옮긴다. 코마치는 콘프레이크를 다 먹은 것 같아, 남은 우유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코마치」

 

「응-?」

 

「너...나 좋아해?」

 

「프풉...!?」

 

 

내 말에, 코마치는 예전처럼 대단한 기세로 푹 엎드렸다. 입을 누르고 있다.

 

 

「어, 어이 괜찮아...?」

 

 

그렇다고 할까 내 파커도, 괜찮겠죠? 아무튼 그다지 피해는 나온 것 같진 않지만.

 

 

「콜록콜록...우우, 라고 할까 오빠 일부러 하지 않았어!?」

 

「어, 뭐가」

 

「됐어 이제, 그럼...」

 

 

코마치는 재채기를 해 버린 탓인지 눈에 약간 물기를 띠면서, 푸념처럼 흘린다.

 

 

「에-... 전에도 그랬는데, 뭐야 그 질문? 이른 아침부터 부끄럽다니까...핫, 설마 코마치가 모르는 동안에 오빠가 코마치 루트에!?」

 

「...너도 이른 아침부터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뭐어...확실히, 부끄러운 질문이다. 다만,

 

 

「응...그건 진지한 질문?」

 

「...아무튼, 그런 거」

 

 

그래. 일단 들어 두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부터 일을 일으킬 즈음해서.

어떤 참고도, 어떤 위안도 안 되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있는 남매 관계 중 한 샘플 같은 건. 나와 코마치의 경우 같은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조금은 전해졌는지, 코마치는 잠깐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고는, 드문드문 내 물음에 답한다.

 

 

「응-...그거야 코마치는 오빠가, 싫은 건 아니지만 말야... 그치만 오빠의 쓰레기 같은 면이라든지, 고치길 바라는 면은 많이 있고... 그렇다고 할까, 어쩐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도, 부끄럽단 말야. 좋다든가 싫다든가, 그런 말투를 하면, 특히」

 

「뭐어, 확실히」

 

 

제일 가까운 타인이라고도 하는 남매. 그 거리를 조정하는 건, 어쩌면 의외로 어려운 건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단순한 타인보다. 끈적끈적 하고 있는 것도 분명 기분 나쁠 것이고, 너무 떨어져도, 지내기 불편하다. 그런 관계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의 양자택일로 선택하는 건 가혹하고, 뭣보다 척도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치만」

 

「응?」

 

「...그치만, 코마치는 오빠가 오빠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마치는,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말한다. 어떻게든 말하는 방법을 바꿔도, 부끄러운 건 변함없는 것 같다.

 

 

「...이런 나라도 말이야?」

 

「이런 오빠니까, 에요.」

 

 

코마치는 그렇게, 즉답한다.

 

 

「이런 오빠니까, 코마치는 이런 코마치가 됐는걸.」

 

 

그렇게 하고 코마치는, 갈아입고 올 테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타탓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언제나 여기서 갈아입고 있었지만...아무래도, 꽤 부끄러웠던 것 같다. 자신에게 포인트를 주는 것도 잊고 있을 정도고.

아무튼, 가끔 씩은 그런 태도를 보여주는 편이, 나로서는 포인트 높다.

 

 

「...협조에 감사」

 

 

우선...샘플의 의견은 손에 넣었다.

이것을 그 자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아무튼, 기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시작할까.

비겁하다는 말을 듣든지, 비열하다고 듣든지, 평소처럼.

변함없는 내 방식대로.

 

 

          ×          ×          ×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결혼화제에서 비롯된, 그녀의 책략에 좌지우지된 이번 한 달.

나는 여하튼 그녀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내 사정에 관계없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밀어닥치듯이, 억누르듯이, 유혹하듯이, 때로는 거절하면서, 성가시게 달라붙듯이, 내 머리 한 편을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그건 그럴 것이다, 그 정도의 빈도로 말려 들어가면, 그렇게도 된다. 이쪽이 의식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뭔가 알았던 건가하고 말한다면...아마,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별로 무지의 지라도 깨달았다던가를 말할 생각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녀의 바닥은―――너무나도 깊다. 깊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얕을지도 모르는데.

단지, 그녀를 아는 다른 무리도,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상대를 매료시키는 그 용모,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프렌들리한 태도, 무엇보다도, 그 빛나는 듯한 재능.

그녀가 어느 의미 카리스마인 건 누구나 이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에게 심취해, 여신처럼 취급하는 사람도 많다고 듣는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표층이다. 깊고 깊은 호수의, 진짜 웃물에 불과하다. 그것을 건져 올려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알았다고는 할 수 없다. 서투르게 뛰어들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호수 바닥에 끌려들어갈 것이 뻔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그녀를 알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이,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어떻게 말하고 있었던가를. 물론 그들이 말하는 유키노시타 하루노도 동일하지 않다. 호수로 비유해보면, 호면의 물결 형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예를 들면 시로메구리는, 그녀를 상냥하고 올바르다고 말했다. 존경해야 할 선배로서 확실한 동경을 가지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가면이라고 깎아내린 그것을, 그녀는 본질로서 긍정했다. 과연, 그건 하나의 진실을 맞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누구보다도 똑바로 살고 있다. 누구보다도, 앞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에게, 응분의, 상냥함이라고도 할 만한 태도로 접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측면에 불과하다.

그녀가 때때로 보이는 비정함이나 검은 감정은, 그 측면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녀를 호의적으로 보는 이상, 그건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면 히라츠카 시즈카는, 그녀의 이면성을 그대로 유키노시타 하루노라고 정의했다. 웃물과 같은 여신의 얼굴과 심연에 가라앉아 때때로 나타나는 야차의 얼굴, 그 두 개의 얼굴이 유키노시타 하루노이며, 그녀의 매력이라고. 같은 유키노시타의 이름을 쓴, 두 학생을 봐 온 교사는 말한다.

또 히라츠카 선생님은 이렇게도 말한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와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꽤 비슷하다고. 용모뿐만이 아니라 그 근본에 있는 것이. 그녀들은, 손에 넣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그건 아마, 양자의 우열을 좌우하지 않는다. 교사인 듯한, 대단히 공평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학생인 그녀에게 좌지우지 되어버리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지금 나는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그 사실은 동시에, 그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아직 미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하야마 하야토는,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의 과거를 말했다.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고 있는 것의 일부를 알고 있는 소꿉친구로서, 할 수 없었다는 후회를 안으면서.

그녀와 여동생 사이에 도랑이 생긴 원인이 뭔지 확실히는 모른다. 단지 예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녀가 여동생에게 보이는 집착이 시작됐던 시기와 겹친다. 언니와 여동생의 서열. 선택된 사람과 선택되지 않았던 사람. 그 옛날이야기는, 확실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남동생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녀의 신용을 얻을 수 없었던 그도, 그녀에게 선택되지 않았던 사람 중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선택은, 항상 냉철하며 냉혹하다. 그는 분명히, 아직 거기에 끌려가고 있으니까.

 

예를 들면 유키노시타 유키노는...어떨까. 나는 아직 그녀에게는, 그녀의 언니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물론, 그거야 그럴 것이다. 여하튼, 여동생이니까. 제일 가까운, 타인이니까. 해야 할 말은, 너무나도 많다. 나도 그걸 모두 알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간단히 그녀가 한 말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그녀는 언니의 방식을 혐오하는 한편, 언니를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콤플렉스나 집의 사정 등으로 비뚤어져 버리고는 있지만, 그건 일종의 동경일 것이다. 선택되지 않았던 사람이 선택된 사람에게 향하는, 동경일 것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비치고 있다. 목표로 해야 할 존재로서. 타도해야 할 존재로서. 호면에 비치는 달과 같이, 물결이 일면 흔들흔들하며 그건 흔들려 보이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눈동자에도 또한, 그녀가 비치고 있다고. 물론 거기에 의미는 있는 것일까. 달 그 자체가 호면에 있는 자신을 볼 일은 없으니까.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들여다보는, 그 의미가.

 

 

그들이 말했던 건, 모두가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알아맞히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맞고,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일부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 누구나가,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시로메구리는 존경하고 있기 때문에, 히라츠카 시즈카는 공평하기 때문에, 하야마 하야토는 좌절했기 때문에,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여동생으로서 있기 때문에.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의심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잘못 읽고 있을 것이다. 완벽함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녀의 측면을 알아맞출 수 있던 나도 또한, 그 경계심 때문에 그녀를 의혹의 눈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솔직하게 받으면 좋은 것조차, 나는 분명 받아들이지 않고 있겠지. 너무 깊이 생각해, 뒤를 읽어, 행간의 이면을 읽으려고만 하니까, 분명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누구나가 그녀를 정확히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 존재는 필요이상으로 크게 보인다. 그리고 필요이상으로―――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존재에, 붙들려 버린다. 그건, 마치 주박과 같이.

 

단지, 나는 거기까지 사고하고는, 문득 생각한다.

이 주박에, 유키노시타 하루노라는 존재에―――그녀 자신은 무연히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유키노시타 하루노.

모든 것에, 선택된 그녀.

친구에게 선택되고, 집에서 선택되고, 부모에게 선택되고―――운명에 선택된 그녀.

선택된 그녀는, 선택되었기 때문이야말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한다면.

선택하기 때문에 잘라 낸 것을 대충 넘겼다, 그런 삶의 방법이 규정되었던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그녀가―――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가장 붙들려 있다.

 

물론 내게는 모른다. 선택된 경험이 현저히 부족해, 라는 것보다도 그런 씨름판에 오른 적조차 거의 없었던 내게는, 선택된 사람이 무엇에 직면하는지 같은 건 알 리도 없다. 결국은 가진 사람의 사치스러운 고민이라고, 움츠러드는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그것이 가능하게 됐을 것이라고.

그 강인한 정신과 재능을 가지고 하면, 그런 삶의 방법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위의 기대에 응해, 잘라 버렸을 때의 가책이나 후회를, 비틀어 엎어누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부를, 그 대담한 미소로 덮어 가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접혀 버리는 편이 좋은 걸지도 모른다. 재능이 충분하지 않고, 혹은 정신이 버틸 수 없고, 도중에 파탄해 버리는 편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좌절은 허락되지 않는다.―――누구에게 허락되지 않을까 말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그러니까, 이런 곳까지 와버렸다.

잘라 버리고 싶지는 않은 것을, 잘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까지, 기어이 도착해 버렸다.

나 같은 것을 말로 한, 엉터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됐다.

그렇다면 잘라 내지 않으면 좋아, 선택하지 않으면 좋다고 타인은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 그렇게 할 수 없다.

 

 

―――히키가야 군은 더 이상,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어요.

 

 

―――히키가야 군에게만은, 듣고 싶지 않아요.

 

 

그 때 의미를 몰랐던 표정도, 등 뒤를 향해서 안 보였던 표정도...지금이라면 추측할 수 있다.

 

그녀가 띄운 표정은―――동정이다.

주위가 정의해, 자신이 정의한 자신에게, 굴레에 얽매여 버린 상황

스스로 만들어 낸 구멍에 자신을 파묻는 듯한, 어쩔 도리가 없는 막다른 골목.

나는 분명 다음에도 잘못할 것이고―――그녀는 분명 오인하지 않겠지.

나는 앞으로도 주위가 방치하고 갈 것이고―――그녀도 떼 놓고 갈 것이다.

변하지 않고, 변하지 못하고.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게 바뀔 수 없으니까. 바뀌면, 안 되니까.

정상과 최저의, 웃어넘길 수 없는 공통항.

정말이지―――동정은, 봐 달라고.

 

 

그러니까, 히키가야 하치만은.

다시, *형장에 끌려가는 자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른다.

물론 그건 동정 같은 것은 아니고―――다만, 거절의 노래다.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수형자는, 혼자로 좋다. 언제든 혼자서 왔으니까.

내게 바뀌라고 한다면―――네가 바뀌라고 노래해 주자.

그녀가 잘라 버린 것을 가사로 삼아, 그 다리의 오랜 상처를 철저하게 파내 주자.

그 다리를, 멈춰 주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아마, 그 정도로는 그녀는 굽히지 않겠지만.

굽히지 않는다면, 따라오면 좋다.

그 철의 의지를 굽힐 수 있는, 또 하나의 강철 같은 의지를.

선택되지 않고, 그런데도 날카로움을 계속 유지한, 검과 같은 의지를.

 

 

 

※ 형장에 끌려가는 자의 노래 : 형장으로 끌려가는 자가 태연을 가장하여 노래를 부름; 전하여, 일부러 허세를 부림.

<이 글은 pixiv - tetsukugi 님의 번역허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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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입니다. 하치만 팬 여러분, 겨우 이 장부터 하치만의 턴이에요! (있는 건가 그런 녀석)

11/8에 3페이지 갱신. 글자 수 관계로, 전편으로 합니다. 이건, 회사 일정으로 11/19에는 늦을 것 같아...(땀)

 

3페이지...갑작스럽지만 퀴즈, 3페이지의 어디엔가, 유키농의 하치만을 향한 데레를 볼 수 있어요! 어디일까요? ...이건, 하치하루입니다. (속삭임)

 

그러고 보니 루키 80위라고 합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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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누구나가,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히키가야 하치만은.

 

 

「...후훗」

 

「........」

 

 

내가 준비한―――혹은,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를―――대답을 한 뒤, 하루노 씨는 잠시 뒤부터, 웃음을 흘린다. 우스꽝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듯한, 흐린 웃음.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됐는지 아하하, 하고 소리 높여 웃기 시작했다.

 

 

「정말~ 히키가야 군, 역시 상상력이 풍부하네-. 하필이면 결혼이라니...나 아직 대학생인데! 난처하네, 성인이 갓 된 여자애한테 혼담 얘기를 하는 것도」

 

「...........」

 

「대충 이래... 하야토가 말했던 거야? 그런 식으로」

 

 

하루노 씨는 어느 샌가 웃음을 거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신과 같이, 쓴 웃음을 짓는다.

 

 

「하아... 거기까지 말해버렸네. 비밀을 지킬 의무는 어디로 간 걸까...뭐, 하야토는 아직 변호사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하야토한테서 거기까지 꺼내다니 꽤 신뢰받고 있는 걸까나?」

 

「...신뢰 같은 게 아니에요.」

 

 

그렇게 고상한듯한 건, 결코 아니다. 그 녀석은 나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을 뿐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래서, 이건 정답입니까?」

 

 

이런 볼품없어서, 믿기 어려운 듯한 가설이.

 

 

「정답과 오답으로 딱 떨어지는 것이라니, 허튼 생각은 그만두는 편이 좋아요.」

 

 

내 질문에 그렇게 신랄하게 반격하면서, 하루노 씨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렇지만 뭐, 대체로 정답, 일까나. 그래, 그런 어마어마한 건 아니야. 결혼이라는 것보다는,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 라는 정도일지도 모르는데.」

 

「...그거, 뭐가 다릅니까?」

 

「전혀 달라요. 적어도 졸업까지는 보통으로 대학 다니게 해 주는 것이고...아무튼, 내년부터 약간 바빠질 것 같지만.」

 

「...........」

 

 

약간 바빠질 것 같, 은가. 원래 다방면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을듯한 하루노 씨다. 약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아마, 그 나름대로 바쁘겠지... 혹시, 여유가 있는 동안에, 관계가 희미해질 곳에 인사 방문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모교라든지. 그것만이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라, 어째서 히키가야 군이 그런 곤란한 표정 짓는 거야? 나는, 별로 그 정도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

 

「아무튼 곤란한 표정 짓고 있는 사람이 곤란한 일을 생각하고 있을지 어떨지는 별개지만요.」

 

「...그거, 곤란한 표정 짓고 있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이 아니에요.」

 

 

거기에, 그다지 난 그런 표정 짓고 있을 작정은 아닌데...

내 모습을 보고, 하루노 씨는 후후, 하며 미소 짓는다.

 

 

「나와 유키노 짱의 집이라는 건, 이른바 여계 가족...이니까 지금도 어머니가 제일 강한데. 어머니 때도 그랬던 것 같다지만, 현지의 높은 분의 집에서 사위를 데려 오는 것. 그렇게 집의 지반을 굳혀 왔다고...하니까, 머지않아 이런 일이 되는 건 알고 있기도 했고」

 

 

하루노 씨는, 아무 느낌도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거기에, 난 운이 좋은 편 같고 말이야. 상대 편, 아직 만났던 적은 없지만 꽤 좋은 사람 같고. 얼굴도, 성격도네...응, 파트너로서는 더할 나위 없을까」

 

 

아무 느낌도 없다는 식으로... 남 일처럼, 자신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듯이.

 

 

「아직 만난 적도 없는데, 그렇습니까.」

 

「머지않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혹시 벌써 파티 같은 데서 대면했을지도 모르기도 하고. 적당히 서로 이야기해서...적당히 어울려 줘요.」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면 진지해져버릴지도, 하고 하루노 씨는 웃는다.

...아마, 하루노 씨라면 가능하겠지. 솜씨 좋게 해낼 것이다. 미소 지은 채로 적당히 대화를 맞추는 것도, 적당히 교제하는 것도...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도. 나도 별로, 만나는 방법이 어떻든가로 트집 잡을 생각은 없다. 그렇게 말하면, 맞선도 부정해 버린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도망칠 마지막 장소가, 없어져 버리니까.

...아니, 그거 상관없잖아... 사고가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빗나갔다.

 

 

「그러니까, 어머니가...집이 결정한 것이라고 해서, 거기에 불만은 없어. 불만을 할 입장도 아니기도 하고」

 

 

하루노 씨의 얼굴은, 하루노 씨의 음색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게는 안 보인다. 뭐라고 할까, 결론짓고 있다고 할까. 실로 태연하게 하고 있다.

 

 

「그래도, 유감이 있다고 하면」

 

 

그 표정이, 음색이 문득, 아주 조금만, 그늘진다... 그런 하루노 씨조차도 품는, 유감.

 

 

「유키노 짱에 대해서, 야」

 

「.............」

 

「그런데, 나에 관한 건 이걸로 끝. 그 밖에 히키가야 군한테 말할 것도 없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부터가 주제다.

하루노 씨는, 내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저기.... 그 전에 말입니다만, 유키노시타 씨.」

 

「왜?」

 

「이 선물... 어딘가에 내려도 괜찮겠죠.」

 

「...아아」

 

 

아까 전부터 손이 부들부들 하고 있습니다만...무겁고, 밸런스가 나쁘고. 말하고 보면 소설로 치면 1절 양 정도, 나는 이 선물 산의 중량감에 참으면서 하루노 씨와 대화를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한 번 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슬프게도, 어느 정도, 라고 할까 상당히 얼간이였다.

하루노 씨는 슬쩍 로터리 구석의 벤치를 바라보고는,

 

 

「미안미안, 그럼 저기 벤치에라도 둬?」

 

「하아, 그럼 그렇게」

 

「그리고 이거, 가져가기 쉽게 봉투 준비되어 있었는데」

 

「...왜 그걸 빨리 꺼내지 않았어...」

 

 

내 노고는 대체 뭔가요. 그런 플레이 바라지 않았는데.

한숨을 내쉬면서 우리들은 벤치로 이동해서 짐들 두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나란히 앉아 버렸다. 짐을 사이에 두고 앉았으면 좋았다...라고 할까 앉지 않았으면 좋았어! 분위기에 흘러서 보통으로 앉아버렸다고...아까 전 이상으로, 하루노 씨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후후...그럼 이야기를 계속해볼까」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유도된 건 아닐까. 나를 보다...확실히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하루노 씨 가라사대, 여기부터가 주제...인 것 같으니까.

내 동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하루노 씨는 선수를 치듯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히키가야 군이 아까 전 말한 그대로야...나는, 히키가야 군한테 유키노 짱을 맡기고 싶어. 히키가야 군이라면, 유키노 짱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어때?」

 

「어때라니...그러니까, 저는 그럴 생각이...」

 

 

내가 말한 대로라니...거기 강조할 필요 있는 걸까. 역시라고 할까, 말하게 되고 있던 것이 지금에 와서 다시 문제가 되어 온다.

 

 

「그런데도에요. 거기에, 『그런 생각』이라면 있다고, 난 생각하고 있는데」

 

「...........」

 

「뭐, 하는 방식이 약간 조잡하다고 한 것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요. 유키노 짱한테도 걱정 끼치고, 거기는 조금씩이라도 고쳐 줬으면 하는데」

 

 

하루노 씨는, 조금만, 나와의 거리를 좁힌다. 나도 조금만, 옆으로 벗어난다. 다시 벌어지는 서로의 거리. 하루노 씨가 좁히고 내가 도망친다. 이미, 안정 구도라고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별로」

 

「응?」

 

「별로, 그런데 원래부터... 그런 역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유키노시타가, 부탁한 것도 아니고. 그 녀석은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사람의 도움이라는 걸 싫어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 무슨 일도 혼자서 다 해내 온, 그녀. 하루노 씨가 해 왔던 일은, 유키노시타의 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가령, 실제 유키노시타를 도와 준 것이라고 해도.

하지만, 하루노 씨는 내 의견을 이렇다 할 것도 없이 잘라내 버린다.

 

 

「유키노 짱의 기분은 몰라요. 마음대로 내가 하고 있을 뿐이니까.」

 

 

그건 태도를 바꿔 대담하게 나오는 것과도 다르다. 역시, 결론짓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는 어조였다. 유키노시타에게 거절 받는 것 따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나는,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는걸...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히키가야 군한테 이렇게 해서 부탁하고 있잖아.」

 

「...단순한 자기만족입니까」

 

 

그런 일에, 나를 말려들게 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이 기분은 히키가야 군도 알지 않을까나.」

 

「하? ...뭐가」

 

「그건, 자」

 

 

다시 한 번, 슥 하고. 하루노 씨는 내게 접근한다. 내 퍼스널 스페이스를, 주저 없이 계속 침범한다. 나는 한 층 더 벗어나려고 생각했지만 짐이 방해라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하루노 씨의 마안에 노출되어, 거기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봐...유키노 짱, 아름답잖아?」

 

「...아름다워?」

 

「물론 외모에 대한 게 아니에요. 그거야 외모도 아름답지만. 그런 게 아니라... 유키노 짱 그 자체가」

 

「...그 녀석의 입이 험한 거에는, 두 손 들고 있지만요.」

 

「정말, 귀엽지도 않은 말을 하네.」

 

 

내 농담을, 하루노 씨는 일축한다.

 

 

「히키가야 군 같은 애라면, 유키노 짱한테 동경했던 적이 있겠죠? ...없단 말은 하게 하지 않아요.」

 

「...........」

 

「동경해서, 가까워지고 싶어서, 손을 뻗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어?」

 

「.............」

 

「상냥해서, 올곧아서, 그리고...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고고해서」

 

「............」

 

 

...유키노시타 유키노. 얼어붙을 듯한 푸른 불길과도 같이 아름답고, 슬픔까지 어린 덧없는 소녀.

아름답다, 라는 말은 꾸밈없는 간소한 말이었지만,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일면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듯 하게도 생각됐다. 날카로운 칼날처럼, 불과 약간의 날이 빠지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계속 올곧은 의지를 관철하는 듯한 그 모습은 확실히,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보면, 그 애를 단번에 좋아하게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가하마 짱은,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유키노시타를, 주저 없이 좋아한다고 외쳤던 유이가하마 유이. 유키노시타를 사랑스럽다고조차 평가하는 그 센스는 나한테는 이해되지 않지만...사람을 접근하지 않게 하는 유키노시타의 옆에, 아직도 친구로서 아마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따라갈 수 있는 그녀.

 

 

「그렇지만...모두가 전부 그렇진 않아. 모두가 전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가 있는 게 아니야.」

 

 

―――아름다운 건, 깨뜨리고 싶어지겠죠?

 

 

「...............」

 

 

상냥한 것이 상냥하게 여겨질 이유는 없다. 바른 것이 바르다고 인정된다고는 할 수 없다.

 

 

―――세계가 상냥하지 않고 바르지 않으니까. 분명 살기 괴롭겠지.

 

그건,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이었나.

 

 

「그리고...아름다운 건, 망가지기 쉬워. 아름답게 존재하는 건 정말로 무력해. 아무리 아름다운 이상을 내걸어도, 그런 건 하찮아. 잔혹한 현실에 접하면, 그것만으로 무너져서 흩어져 버려, 변해 버려...약하니까」

 

 

겉치레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로 부정해도 좋을 일일까. 단념해도 좋은 것일까. 그 말 자체가, 아름다운 존재가 있을 장소를 빼앗고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때도 유키노 짱은 망가질 것 같았어. 문화제 때도, 조금만 더 하면 접혀 버릴 것 같았어. 계기를 만든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직 이렇게 무르다니 정신이 까무라칠 정도로」

 

 

쿡, 하며 그녀는 웃는다. 자조하듯이. 자신의 계산착오를 비웃듯이.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모든 의미로의 한 조각의 미소도 띄우지 않고,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어.」

 

 

그렇게, 단언했다.

 

 

「그 약함도 용납할 수 없지만―――약점을 이용해 그걸 깨뜨리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

 

 

그녀의 눈동자 속은... 알 수 없는 혼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유키노 짱을 정~말 좋아해요.

 

 

그렇게 말했을 당시의 눈과, 그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때보다, 더.

 

 

「그러니까,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 애가 강해질 때까지는. 지키지 않으면, 악의를 배제하지 않으면―――지키고 싶은 건 간단히 사라져 버리니까.」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 하루노는―――이상했다. 그 혼이 깃든 눈동자는, 전부를 끌어당기는듯한 마성과 주변을 침식시키는 듯이 흉포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까지 그 일부분 밖에 본 적이 없었던 철의 가면의 내용이...질척질척 흘러넘쳐 나오는 듯한. 질척질척 흘러넘친 그건, 시릴 정도로 차갑고, 가열찬 만큼 뜨겁고...그리고 끈적끈적한, 점성을 띠고 있다.

 

이것이―――여신의 얼굴을 한 웃물의 바닥에 가라앉는, 그녀의 내면. 모든 감정을 뒤섞어서 졸인, 감정의 스프.

 

 

「하야토한테는 무리였어.」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그런 기색이, 나를 휘감아 온다.

 

 

「뭐, 초등학생한테 그런 부탁한 나도 난데―――그래도 아마, 아직도 무리겠지.」

 

 

대부분을 떠안는 하야마는, 버릴 수가 없다. 그, 어중간한 상냥함 때문에.

 

 

「하지만」

 

 

눈치 채자, 그녀의 소리는 내 귓전으로 육박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피할 방도를 모른다.

 

 

「하지만...히키가야 군이라면, 할 수 있어. 변함없는 것의 중요함을, 변하는 것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히키가야 군이라면...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없는, 당신이라면」

 

 

그녀의 말이, 내 귀로부터 머리로 직접 비집고 들어온다. 기어 오듯이. 휘감기듯이.

 

 

「거기에...나라면 가능해.」

 

 

귀에 닿는, 뜨거운 한숨. 머릿속의 어딘가가, 저려가는 듯한 감각.

 

 

「내가 히키가야 군을, 유키노 짱이 있는 데까지 데려가줄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유키노 짱의 마음이라도 쥐어 줄게...히키가야 군이, 유키노 짱의 옆에 있는 한이라면」

 

「............」

 

「.......왜」

 

 

나는, 사고가 흐트러지면서도, 어떻게든 말을 꺼낸다. 거기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면서도

 

 

「왜, 거기까지」

 

「....왜라니? 그러니까 말했었잖아」

 

 

그녀는 내 요령부득인 질문에,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내 눈이 닿지 않게 돼서 누군가에게 부서질 정도라면...그 애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 부탁하고 싶어요.」

 

「...........」

 

 

그 말에...나는 마음속 깊이 전율했다. 오싹, 해버렸다.

내가 접한 그 질척질척한 내면에는, 아니다.

그런 감정 덩어리를 토해내면서, 뭔가를 가려잡는 그 의지에 대해서다. 뭔가를 잘라내는, 그 의지에... 말하자면, 그 철저한 결론짓기에.

 

수렁과도 같은 감정을 밀어 헤치듯이,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 감정조차도, 도구처럼 일회용이라고. 잘라내고 선택해, 다음 단계로. 멈춰 설 줄을 모르는, 거듭해서 계속 가동하는 기관처럼.

 

유키노시타 하루노라고 하는, 본연의 자세.

거기에 두려워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었다.

 

 

「바보 같은...말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짜내듯이, 그렇게만 돌려준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말하고 싶은 말은, 있었을 테지만. 몸이 거기에, 따라가지 못한다.

그 때 갑자기, 그녀가 숨을 돌리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 같은 건지 어떤지는, 한 번 더 잘 생각해 보면 좋다고 생각해요.」

 

 

내 귓전에서 하루노 씨의 기색이 옅어져간다.

내가 꾸물꾸물 무시했을 때에는, 그녀는 이미, 나를 보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오늘은, 마감 시간 같으니까」

 

「어...」

 

 

하루노 씨의 시선의 끝은, 로터리의 정거장으로 향해 있었다.

거기에는...이미 수차례 봐서 익숙해진, 검은 하이어가 멈춰 있었다. 거기에서 내린 사람은, 예상대로, 내 마음의 스승...아니, 운전기사 츠즈키 씨였다.

또 이번에도, 어느 샌가 불러낸 것이려나.

 

 

「츠즈키...오늘은 부르지 않았는데」

 

 

어라, 부르지 않았...던 건가?

하루노 씨는 입가를 비틀면서, 츠즈키 씨에게 말한다.

 

 

「있잖아 츠즈키, 당신도 보면 알겠죠? 우리들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어.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데?」

 

 

하루노 씨의 소리는, 닿았을 것이다.

하지만, 츠즈키 씨는 그녀의 빈정거리는 클레임에, 평소대로의 공손한 목례로 돌려줄 뿐이었다. 그녀가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의 의견에, 느끼는 바가 없다는 듯이.

그런 츠즈키 씨를 봐도, 하루노 씨는 특별히 표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뭐어, 츠즈키도 별로 그럴 작정이 아니겠지만...일이니까 어쩔 수 없을까. 명령 받아서 왔다면요.」

 

「어, 그건...」

 

「아무튼 그런 것. 응, 당해 보면 꽤...아니, 그런 걸까나. 말없이 나온 내가 나쁘고. 오히려 돌아갈 버스라든가 생각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마침 잘됐네. 미안해, 오늘은 직행편이니 태우지 못하려나」

 

 

그렇게 말하며, 내게 짓궂은 장난을 하듯이 미소 짓는다. 나는 거기에, 돌려줄 말이 없었다.

 

 

「츠즈키, 지금 갈 테니까 기다려...그럼 히키가야 군, 프레젠트 제대로 건네 줘. 그리고...언제라도 대답,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나서, 하루노 씨는 내게 손을 흔들고 나서, 등을 보이며 걸어 나갔다.

이제 그녀는, 앞으로 밖에 향하지 않겠지. 미련이 남아 떨쳐낼 수 없는 듯한 행동은, 무엇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발걸음도 또한, 미혹이 없다.

 

 

「유키노시타 씨」

 

「......왜?」

 

 

내가 불러도,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춰 설 뿐이다.

 

 

「왜....그런 방식 밖에 할 수 없습니까.」

 

「.............」

 

 

그녀는 잠시 침묵하고서,

 

 

「....히키가야 군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만 말하며, 차에 탑승했다.

그녀를 실은 차는, 소리도 없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속해, 곧바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벤치에 놓인 선물이 담긴 봉투만이 남겨졌다.

 

 

          ×          ×          ×

 

 

「..............」

 

 

부실 문 앞에서, 나는 그곳에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주초의 방과 후, 봉사부실 앞.

 

...주저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나누면 3개.

하나는, 하루노 씨에게서 건네받은 유이가하마의 선물에 관한 처우다. 일단 가져올 만큼 가져 왔지만, 부실에서 이걸 건네주는 건 꽤 곤란하지 않을까...유키노시타도 있고. 그 앞에서 준다는 건 나와 하루노 씨 사이에 접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다지 꺼림칙한 일이 있는 것도 그것을 책망 받을 이유도 없겠지만, 유키노시타의 기분이 나빠지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뭐... 우연히 만나서 그 때 하는 김에 받았다고 잘 둘러댈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좀 더, 상태를 보고 싶다.

 

두 번째는...이것도 또 하루노 씨 관련이다.

...지난 주 금요일, 그녀와 얘기했던 내용을 떠올려 낸다.

유키노시타의 옆에 있어달라고 내게 간절히 부탁해 온 하루노 씨. 그 때는 분위기에 휘말려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지만―――아마, 하루노 씨도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어 냈을까―――이 이틀간 정도에, 잠시 그렇게 생각해 봤다.

 

결론은...물론, 반대다.

봐달라고, 하고 싶다...그런 내 반응이 눈에 보이고 있기 때문이니까 더더욱, 하루노 씨는 그 장소에서 나를 수긍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으로서는, 꽤나 강제적인 수단으로. 그 장소에 츠즈키 씨가 온 건, 역시 하루노 씨에게 있어서는 계산 밖이었던 일일 것이다.

나와 유키노시타가 사이좋게 옆에 있다는 건...상상도 할 수 없고,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우선, 내 정신이 버틸 수 없다. 너무 외톨이한테 쓰디쓴 경험을 겪게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고독 내성은 있어도, 두 명 이상으로 있는 것에 대한 내구성은 바야흐로 창호지 레벨이니까. 거기에...무엇보다 유키노시타에게도 달갑지 않잖아.

 

...아니, 유키노시타의 폐라든가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 사람은.

이건 철두철미,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에고에서 태어난, 나를 향한 의뢰일 것이다. 무언가를 잘라 내서 뭔가를 선택한 하루노 씨가, 강하게 관철해 온 에고다. 그 사람이 얼마나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성공을 보증한다고 해도...내가 거기에 응할 의리는, 없다.

하루노 씨는 나를 높게 평가해 주고, 내게 메리트가 있는 거래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몇 번이라도 말한다, 날 잘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비록 만약에, 그녀에게 들었던 말이 어느 정도 맞고 있다고 해도...그런 건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로, 나는 지금 위치에 서 있으니까. 빠듯하게,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말을 듣는다고 해도 그 의뢰에 대한 대답은, 노(NO)다.

단지...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현실적인 문제로 나는 하루노 씨의 의뢰에 대해, 침묵하지 못하는 것도 확실하다.

내가 거부하든지, 혹은 대답 자체를 꺼려하든지, 하루노 씨는 자신의 책략을 관철할 것이다. 의지를 꿰뚫을 거다. 소모전이 되면, 내가 굽히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 그리고 아마...지금까지 대로라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다. 내게는 지지 않는다는 자신은 없다.

 

그러니까...이 쯤에서 나로서도 한 수를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겠지.

도망치는 방법이 아니라, 격퇴를 위한 방법을.

...아무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하루노 씨 상대로, 효과가 있는 수단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해내지 못하겠지, 보통으로.

그러니까 가능한 한 고민이 적은 인생을 보내고 싶은 나는, 가능한 한 그 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있었지만...봉사부 문 앞까지 와서, 그걸 잊은 채로 있는 건 곤란했다.

약간 설명이 길어졌지만, 그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런데 세 번째인 거지만...혹시 이것이, 지금 확실히 직접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유이가하마의 선물보다다.. 내가 부실에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는, 이유.

 

 

그건―――부실 바닥에, 자이모쿠자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부실은 드물게도 문이 열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들어가지 않아도 안의 상태는 대충 관찰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뛰어들어 왔던 것이, 꿈틀꿈틀하며 바닥에 키스하고 있는 자이모쿠자의 모습이었다. 바닥 짱 불쌍해.

누구라도 들어오는 건 싫잖아, 이거?

 

 

「아, 힛키 왔다 왔어」

 

 

그러자 부실 안에서 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나서, 불쑥하고 문 쪽으로 얼굴을 내민다.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어디 갔었던 거야?」

 

「아니...잠깐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볼 일이」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선물을 건네주고 있었던 거다. 아무튼 그 사람이라면 감사인사는 하루노 씨에게 직접 말할 것이고. 추가로 선물내용은 토산 술이었다...아니, 이런 걸 학교에 들이게 하면 안 되잖아요. 내가 처분되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걸 기꺼이 받아 버린 히라츠카 선생님도 그렇긴 하지만.

 

 

「흐응...어쨌든, 와 줘서 다행이야.」

 

「응...」

 

 

내 말에 특별히 깊이 파고들지 않은 유이가하마는 히죽하고 미소 지었다. 내가 와서, 마음 깊이 안도한 듯한 표정...무심코, 정신없이 보게 될 듯한 천진난만한 미소. 하루노 씨 탓에, 미소 공포증에 걸려 버리고 있던 나는, 뜻밖에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중2,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래?」

 

「.............」

 

「어떻게든 하라고 해도... 애초에, 왜 저게 있는 거야?」

 

「아~, 뭔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부실에 저게 와서...아」

 

 

유이가하마를 따라 「저것」이 있는 쪽을 보면,

 

 

「으...그 소리는...」

 

 

꿈틀하고, 그 녀석은 몸을 약간 움직였다.

아, 안 돼, 눈을 떴어.

 

 

「나, 볼 일이 생각났어요. 코마치가 어쩌구 저쩌구 뭔가 해서, 큰일이야 진짜. 그렇다는 걸로」

 

「잠깐, 도망치지 말구!」

 

 

재빨리 교복의 소매가 잡힌다. 아니, 그렇잖아, 피해 인원은 적은 편이 좋잖아.

그러나, 벌써 늦었던 것 같다.

 

 

「그 소리는... 이 몸의 동포 히키가야 하치만!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늦었던 게 아닌갓!」

 

 

조금 전까지 시체였던 그 녀석...자이모쿠자는 기세 좋게 일어섰다. 그 체격에도 불구하고, 마치 만화 같은 몸놀림이다. 이것이 지금 유행하는 모션이라는 건가...

 

 

「힉...」

 

「우오」

 

 

유이가하마가 한층 더 내 소매를 잡고, 부실 안으로 질질 끌어당긴다. 그대로 나를 방패로 삼는 식으로, 자이모쿠자와 대립한다. 그 녀석은 몬스터인지 뭔가야... 약간 불쌍하게도 느껴진다고.

그러니까 나는 친절하게도, 자이모쿠자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기로 했다.

 

 

「왜 그래 자이모쿠자... 출구라면 여기라고」

 

「한 마디로 돌아가라니 심하잖아!? 이 몸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어!?」

 

 

뭐라니...음, 뭘까.

내가 자이모쿠자의 존재 의의를 찾지 못하고 있으면, 부실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당신에게 용무가 있는 것 같은데, 히키가야 군」

 

「.....너도 있었던 건가」

 

「무례한 말이군요. 존재감의 희박함으로 말한다면 당신 쪽이 몇 배 위일 텐데」

 

「...........」

 

 

아니 아무튼, 있던 건 알고 있었다. 자이모쿠자가 넘어져 있었을 때부터 바로, 긴 테이블 가장 안쪽에서 동요도 없이 문고본을 넘기고 있던 유키노시타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도 무리인 얘기다.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친다. 그 얼굴과 많이 닮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내고는, 곧 거기에 뚜껑을 닫았다.

우선, 그전에 이 녀석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어쨌...든...나한테 볼 일? 이라고 할까 왜 넘어진 거야?」

 

「흠흠, 그렇다 하치만. 자네한테 사무적인 일이 있어서 나는 왔던 것이야.」

 

 

내 두 번째의 의문을 당연한 듯이 스루해, 자이모쿠자는 잘난 듯이 말한다.

 

 

「사무적인 일 정도로 오길 바라지는 않는데...그래서, 뭐야」

 

 

들으면 돌아가주려나.

 

 

「음...그, 예의 24일의 건이다.」

 

「24일?」

 

 

유이가하마가 되묻는다. 자이모쿠자도 그 소리에 한순간 반응했지만, 유이가하마의 얼굴을 콤마 1초만 힐끗 보고 나서 다시 내 쪽으로 향했다. 라고 할까 유이가하마, 슬슬 보내줘도 좋지 않을까.

 

 

「...24일이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나도 예정은 없어.」

 

「그런 건 확인하지 않아도 알 텐데」

 

 

나 같은 타입이나 자이모쿠자 같은 타입의 인간은 24일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대체로 예정은 없으니까...지금 감히 나는 자이모쿠자와 동류에 속하는 것을 거부해 보았습니다. 알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세세한 데를 찌르지 마 하치만아... 그래서, 다. 나도 예정이 없으니까...크, 크리파에 달려가서 참배해도 괜찮, 을까해서...」

 

「그러니까 크리파라니」

 

「잠깐, 힛키!? 왜 중2한테 가르쳐 준 거야!?」

 

 

힘껏 소매가 끌려간다. 그만 둬, 벗겨진다고... 누가 득을 본다고 그래.

유이가하마 쪽을 보면, 무으-하고 부풀려서는 빤히 흘겨왔다. 별로 무섭지는 않지만 꽤나 기분 나쁜 것 같고.

 

 

「아, 아니, 그거 내가 아냐...저기...」

 

 

아, 그렇지만 토츠카 탓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 그 녀석의 귀여운 실패 탓으로 이 사태를 불러 버렸던 거라고 하면...나는 기꺼이 진흙탕에 빠지는 것을 선택한다.

 

 

「뭔데?」

 

「아-...뭐라고 할까, 미안하다.」

 

「벼, 별로, 사과했으면 하는 게 아니구...」

 

 

내 솔직한 사죄가 의외였는지, 유이가하마는 휙 하고 얼굴을 돌렸다. 그 시선의 끝에는, 유키노시타가 있다.

 

 

「힛키, 유키농 집에서 해요? 과연 중2를 유키농 집에 들일 수는...」

 

「...그런가, 그런 걱정도 있는 건가...」

 

 

내가 그렇게 납득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문득 자이모쿠자 쪽을 보면,

 

 

「컥」

 

 

자이모쿠자는 다시 쓰러져서 엎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바닥을 눈물로 적시면서. 그러니까 바닥 짱이 불쌍하다고.

 

 

「본관 앞에서 나를 쓸모없는 애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아-, 아무튼 그 기분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나이찌몬메라든가 어렸을 때 그랬지. 그 때 나, 끝날 때까지도 같은 장소에 있던 적 있었고...후반에서였나, 내 눈앞에서 나로 할까 다른 녀석으로 할까 서로 얘기하는 건 그만둬 줬으면 했다. 일부러 노는 거 멈추고 끼리끼리 얘기하지 마... 하지만 그 때는, 아직 하나이찌몬메에 참가할 정도의 커뮤력은 있었던 건 아니였나.

 

※ 하나이찌몬메 : 일본 동요 및 어린이들의 놀이. 어린이들이 둘로 나뉘어서 하나이치몬메 노래를 부르면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한 뒤에 각 패에서 부모 역에 해당되는 아이가 나와서 상대편 팀에서 무작위로 한 아이를 지정한 뒤 지정된 아이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아이가 이긴 아이의 팀으로 가 최종적으로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하는 놀이이다.

 

 

유이가하마가 내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건다.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거절할 생각?」

 

「그렇군...그 녀석만 집합 장소 바꾼다든지」

 

「...힛키 너무 외도야...」

 

「아니, 난 내가 당한 적 있는 걸 경험담으로...」

 

 

축 늘어져 있는 자이모쿠자를 곁눈질로, 우리들이 대화를 계속하고 있자,

 

 

「나는...별로, 상관없어요.」

 

 

그렇게,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은, 물론 한사람 밖에 없다.

 

 

「에...좋은 거야 유키농?」

 

「예. 특별히 꺼리는 해를 끼칠 의도가 있는 건 아닌 듯하고...조금 전은 뭐를 말하고 싶은 건지 몰랐으니까, 우선 방치했던 것이긴 하지만」

 

 

그런가, 아까 전 부실에서 넘어졌었던 건 유키노시타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을 실패했으니까였다...방치했다니, 그 때 무슨 말을 들은 거예요...

그리고...이 녀석, 내가 말한 대로 진짜로 파티에 참가하려고 봉사부를 방문한 것 같다. 아무튼 통역계인 내가 있을 거라는 무른 짐작 하에 왔겠지...그 정도로 오고 싶었나, 이 무슨 관심종자. 이것도 성장이라고 한다면...싫은 성장이군.

 

 

「...물론, 책임을 지고 당신이 관리하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유키노시타는 다시 책으로 눈을 떨어뜨렸다. 더 이상 흥미 없다는 식으로.

이 녀석은 동물인가 뭔가인지...거기에 너는 내 엄마인가요.

유이가하마 쪽을 힐끔 본다.

 

 

「...잘 됐네 힛키, 유키농이 좋으면, 나두 별로 상관없어」

 


쓴 웃음을 짓는 유이가하마. 아니, 난 별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데.

아무튼, 뭐라고 할까 자이모쿠자는 유이가하마 생일파티에도 왔었으니까...유이가하마나 유키노시타도 익숙해졌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럼없이 생각될 거라고, 잘못하면 반해 버릴지도 모르려나...거기까지는 책임도 못 지고.

 

 

「그런데...」

 

 

나는 방금 내린 중재 안을 쓰러져서 엎어져 있는 그 녀석한테 전하기로 했다. 라고 할까 들리잖아, 일어나라.

 

 

「...이라고 한다. 자이모쿠자. 다행이군.」

 

「...후」

 

「앙?」

 

「후후후후...후우-하, 쿨럭, 하하하!」

 

「아니, 그 자세로 무리하지 웃지 말아요...」

 

 

한 바탕 웃고는, 출렁...하고 자이모쿠자는 뻔뻔하게 일어났다.

 

 

「봤는가 하치만...」

 

「하, 뭘?」

 

「강한 신념은 철도 쳐부순다...기억해 두면 좋다.」

 

「너의 추태라면 이미 잊고 싶을 정도로 보고 있는데....」

 

 

형편 좋은 녀석...역시 이런 건, 권하지 말았어야 했다...뭐, 권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깊은 한숨을 쉬고 있자, 살며시 자이모쿠자가 접근해 온다. 그만둬, 가까우니까...그만두세요. 진짜로.

 

 

「그, 그래서 저기 하치만, 『그 사람』은 오는지?」

 

「그 사람?」

 

「아-유이가하마 아무것도 아니야」

 

 

위험해, 쓸데없는 말 내뱉지 마.

거기에...그러니까 말했잖아, 올 리 없다고.

 

 

「결국 참가하는 사람은, 유키농, 나하고 힛키, 사이 짱에...중2, 나머지는 히라츠카 선생님일까?」

 

「어...히라츠카 선생님 오는 거야?」

 

 

의기양양해서 짜증스러움을 유발하며 자이모쿠자가 떠난 뒤, 간신히 나와 유이가하마는 차분히 진정할 수 있었다. 뭐라고 할까, 지쳤군, 진짜로...

 

 

「응, 약간 미묘한데. 아직 예정이 생길지도 모른다구 말했었고」

 

「............」

 

 

희망적 관측이 지나쳐서 눈물이 나온다. 그렇다고 할까 선생님, 학생에게는 좀 더 말을 포장해 주세요. 나같이 감성이 풍부하다면, 간접적이라도 심경을 상상할 수 있게 되니까.

애초에 학생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교사가 참가하는 것도 뭐야? 일단 봉사부 관련이라는 걸로 오케이일까... 그런 것보다 술이라든지 들여와서 자작으로 마시기 시작할거라고 그 사람. 왔을 때 바디 체크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얼굴을 보아하니, 이놈도 저놈도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아서 무서워...마음의 위안은 토츠카 정도 밖에 없잖아...분위기를 중재해 줄 것 같은 사람은 유이가하마 정도일 것이다. 거기에,

 

 

「결국 코마치 짱은?」

 

「무리라고 했잖아, 그 녀석도 수험행이라고. 공부다 공부」

 

 

뭐어, 나도 가끔 씩은 숨 돌릴 겸 이런 것도 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밤늦게까지 할 예정도 없는 것 같고, 일단 권했지만...거절당했다.

 

 

『유키노 언니 집에서 파티!? 오빠 해냈네! 이건 코마치가 방해를 할 수는 없어요...이건 말하자면 코마치한테서 오빠한테 내는 기말 시험이에요! 코마치 없이 극복해 오세요, 이상!』

 

 

...쓸데없는 참견이다, 바보.

내가 마음속으로 여동생한테 악담하고 있자, 유이가하마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러구 보니 힛키, 중2가 말하고 있던 『그 사람』이라니?」

 

「...아?」

 

 

젠장, 넘길 수 없었나... 저 자식, 정말로 쓸데없는 말 밖에 하지 않네.

 

 

「아-, 저거다, 코마치를 말하는 거야」

 

「코마치 짱?」

 

「아아, 그 녀석 아무래도 코마치한테 집착하는 것 같고...봐, 네 생일파티 때도 뭔가 관련되려고 했잖아. 나도 곤란하고 있어.」

 

「우와아, 리얼하게 기분 나빠...」

 

 

유이가하마가 엄청나게 혐오하고 있었다. 뭐어, 코마치에 대해 여러 가지 물어 온 건 사실이고... 쓸데없는 말을 한 빚은 스스로 해결하라고, 자이모쿠자...라고 하고 싶은 참이지만, 약간 불쌍해질 정도로 싫어하고 있다. 일단 보충 해 둘까...

 

 

「아니, 저건 그 녀석 일류의 개그야...누구한테도 통하지 않을 뿐이고」

 

「...개그가 안 된다구. 유키농, 정말로 그런 거 불러도 괜찮은 거야?」

 

 

유이가하마가 유키노시타에게 그 화제로 말을 건넨다. 이걸로 허사가 되면 그 녀석 울겠지...

 

 

「...확실히 역겹지만...벌써, 불러 버렸고」

 

 

역겹다고 했습니까...이건 이거대로 그 녀석 들으면 울 거다. 한 바퀴 빙 돌아 뭔가에 눈을 뜰지도 몰라. 그걸 빌기로 하자.

 

 

「거기에 저것이 뭔가 저질렀을 때에는, 히키가야 군이 책임을 져서 응분의 벌을 받기 때문에,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그거, 나 괜찮은 건가요.」

 

「감독 책임이라는 건 그런 것이에요.」

 

 

산뜻하게 무서운 내용을 미소 지으며 말하는 유키노시타.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기분이 좋은데 이런 말을 듣고 있다는 건 대체 뭔가요.

감독 책임이군요...그렇겠지, 후배의 미스는 자신의 미스, 선배의 미스는...왠지 자신의 매스. 선배 이상하네요, 감독 책임이겠죠?

 

 

「그러니까 유이가하마 양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히키가야 군이 죽을 각오로 노력하면 좋은 걸.」

 

「...응, 그러네」

 

 

그러네가 아니라고요. 왜 내가 휴일에 죽을 각오를 품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평일조차도 의욕 없는데...

유키노시타는 유이가하마가 안심한 것을 보고는, 훗 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올해는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말까한 정도의 음량으로 중얼거렸다...아마, 무의식중에 본심이 새어나왔다고 생각한다. 아까 전부터 상당히 기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이 녀석이 떠들고 있어서인가.

유이가하마에게는 닿지 않았던 것 같고...나도, 들리지 않은 척했다.

 

올해는, 그러네...그러고 보니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가에서도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든가 말하고 있었다.... 아버님과 사이가 돈독한 사람을 부른다고 했던...뭐라고 할까, 정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티.

올해도, 그녀는 그 파티에 나가겠지...여동생은, 나가지 않을 것 같지만.

내가 잠시 생각에 잠기고 있자, 유키노시타와 흐뭇한 분위기가 되고 있던 유이가하마가 뭔가에 눈치 챈 듯이 탁하고 손뼉을 쳤다.

 

 

「그래두, 여섯 명일까...유키농, 준비 괜찮아?」

 

「면적으로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식기는 조금 부족할지도」

 

「아, 역시? 그럼 뭔가 가져갈까?」

 

「예, 그렇게 해주면 도움이 돼요.」

 

 

그러고 보니 확실히 식기는 부족할지도...그 방도. 쓸데없이 넓으니까 수용 인원수는 그다지 문제는 아니겠지만, 원래 유키노시타 혼자서 쓰고 있는 방이라, 대접용 식기도 티 세트 정도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앗, 그럼 그럼 유키농」

 

 

유이가하마가 하나 더 뭔가 생각난 듯이 손을 들었다. 언제부터 거수제가 된 거야, 여기.

 

 

「무슨 일이니 유이가하마 양」

 

「하는 김에 말인데...파티장 예비 조사와 장식은, 어때?」

 

「파티장이라니... 내 방이겠지요?」

 

「물론! 역시 말야-, 이런 건 분위기 만들기가 중요하지 않아? 뭣하면 트리라든지 가져 가구! 창문에 글자라든지 그림이라든지 쓰구!」

 

「에...그, 그건 필요한 거니, 이런 크리스마스 파티에도...나는 사정을 모르겠지만」

 

「필요한 거야! 그치, 괜찮잖아 유키농, 유키농 집 가구 싶은데-」

 

 

아니, 너 유키노시타 집에 가고 싶은 것뿐인 건가, 그거... 전에도 묵지 않았어? 여자여자다운데...뭐어, 여자겠지만.

다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에는 유이가하마에게 츳코미를 넣는 녀석이 부재였다.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지식에 대해서는, 나도 유키노시타도 이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아무래도 그렇게 정해질 것 같다.

뭐어, 마음대로 준비라도 장식이라도 해 주면 된다. 내가 연관되지 않으면, 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 이런 전개만은, 봐 줬으면 하는데...이거, 플래그 아냐?

 

 

          ×          ×          ×

 

 

...뭐어, 예상대로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다...였다, 역시.

 

 

「무거워...남은 거리는 어느 정도?」

 

「아, 힛키 간 적 있잖아, 조금만 더 앞...이라구 할까 이거 몇 번째지?」

 

「후아아...」

 

 

내 입에서 귀여운 신음 소리가 귀엽지 않은 소리로 새어 나온다.

12월로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으스스하게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무슨 변덕인지 약간 정도 그게 느슨해진 듯한, 황혼 전의 방과 후. 이렇게 말해도 춥기는 춥지만.

 

완전히 크리스마스 열기에 빠진 유이가하마의 선언대로, 우리들은 파티장 예비 조사 and 장식을 목적으로, 유키노시타 맨션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난 도와준다 같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추가로 내가 한탄했던 대로, 상당한 짐을 들고 있다.

 

 

「그래서, 이 트리는 어떻게 조달한 거야?」

 

 

나는 오른 손에 든 트리 세트 상자를 분한 듯이 째려보면서 물었다.

 

 

「응-? 우리 집 거야. 이제 꾸미지 않아서 가져와 버렸어」

 

「꾸미지 않는 건가요, 아무튼 우리 집도 비슷하지만...그럼 필요 없는 거 아냐?」

 

「이런 때는 필요한 거야!」

 

「그런 건가? 모르겠어...」

 

 

그 사용 구분법을 모르겠다고... 아무튼, 결국은 분위기 문제겠지.

추가로 왼손도 또 가득 차 있다. 트리 장식(볃도로)이나, 반짝반짝한 니스, 스노우 스프레이 캔 몇 개 등등...하나하나는 전혀 무겁진 않지만, 물량 작전이라고 자주 말하듯이, 티끌도 쌓이면 태산인 것이었다.

...요즘 나 짐꾼만 되고 있지 않아? 하루노 씨와 쇼핑 갔을 때의 짐들기라든지, 하루노 씨에게 강요된 선물의 산이라든지. 뭐라고 할까, 뭔가 형언하기 어렵긴 하지만 수수한 악의를 느낍니다만...

추가로 유키노시타는 청소를 한다든가 해서 한 발 앞서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 녀석, 설마 이걸 예측해서 도망치지 않았을까... 그런 의혹도 생겨 버린다.

 

 

「크리스마스도 가까워졌네-」

 

「뭐어, 그렇군」

 

 

밖은 춥고, 큰 짐도 있는 이유로, 이번에는 유키노시타의 맨션에 갈 즈음해서 케이요선을 이용했지만, 탄 역도 내린 역도 크리스마스적인 데코레이션 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걷고 있는 한 중간도, 벽이라든지 뜰의 나무라든지에 전식을 감고 있는 집이 하나 둘씩. 벌써 거리가 유이가하마의 핸드폰 같은 수준으로 데코데코다. 밤이라면 분명 아름답겠지만, 밝은 동안은 뭐라고 할까, 데코라는 건 묘하게 허전해.

 

 

「이런 건 운치가 있어서 좋지요-」

 

「운치...? 분위기에 흘러가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무으~...어째서 그런 비뚤어진 생각 밖에 할 수 없을까. 분위기는 타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구 생각하는데」

 

 

역시 분위기 읽기 달인인 유이가하마는 그녀 나름의 지론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건 견해차이라는 것이다. 논의해도 평행선을 더듬을 뿐일 테고, 관계되는 건 피하고 싶다.

 

 

「...뭐, 그게 힛키겠지만요.」

 

 

유이가하마도 내 의견에는 체념한 것 같다. 기가 막힌 듯한, 하지만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미소를 내게 전해온다. 그런 얼굴을 향하면, 나로서는 대응이 곤란해지는데.

 

 

「...뭐야」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응-? 별루-」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타타탓 하고 약간 종종걸음으로, 내 옆으로 뛰어 오른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등 뒤 밖에 안 보이는 나로서는 모른다.

 

 

「어이, 서두르면 구른다고」

 

 

라고 할까 기다려, 나 짐이라든지 들고 있으니까.

유이가하마도 식기라든지 등등, 상당한 짐을 가지고 있겠지만...정말 기운 좋다, 이런 때는.

...아무튼, 그게 유이가하마겠지.

 

 

 

 

「대체 뭐가 시작된다는 것일까...」

 

 

그런 우리들의 중장비를 보고, 유키노시타는 전율의 표정을 띄웠다.

뭐어 그런, 그렇게도 말하고 싶어지겠군. 단지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유이가하마 뿐이다. 나는 뭐가 시작될지 몰라. 가능하면 짐을 두고 그런 건 모르는 채 돌아가고 싶었다.

 

타워 맨션 15층. 주변을 일망할 수 있는,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방.

오랜만에 방문했지만, 역시 휑하니 넓다. 3LDK는 겉멋이 아니려나...

...그런 감상을, 전에도 품었던가. 문화제 준비 중, 유키노시타가 컨디션이 무너져, 우리들이 문병하러 왔을 때에도.

단지 전에 왔을 때보다, 왠지 모르게지만, 방의 분위기가 온화해 보였다. 그 황량함이라고 할까... 쓸쓸한 듯한 건, 다소 사라져 없어진 기분이 든다. 뭐가 원인일까, 아무튼 방문한 측의 기분이라는 것도 있을 테지만.

 

 

「그럼 역할 분담인데, 힛키는 트리 조립을 부탁해. 나와 유키농은 다른 장식이라든지 할 테니까」

 


유키노시타가 우려낸 홍차를 후우후우하고 식혀 마시면서, 유이가하마가 팔팔하며 임무를 지정한다.

 

 

「좀만 더 쉬게 해줘...」

 

 

그렇게 말하면서 나도 홍차를 입에 머금는다. 유이가하마의 소행을 봐서 뜨거울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적당히 미지근하다. 살짝 차 잎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

 

 

「당장이라도 당신은 일해 줬으면 하는데...」

 

「사람 다루기가 난폭해, 넌」

 

「아니요, 그런 건 아니라...빨리 끝내서, 냉큼 돌려보내고 싶어요, 당신은」

 

「말씨가 난폭하군, 넌...」

 

 

아무튼 난폭하다고 할까, 오히려 잘 지나치게 갈아져서 상처나 버리는 느낌이긴 하지만, 폭언인 건 변함없었다.

내 불평에도 모르는 체하는 얼굴로, 유키노시타는 후우, 하고 조심스럽게 홍차를 식히면서, 입으로 옮긴다.

 

 

「그런데 유이가하마 양... 파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도, 벌써 장식하는 거야?」

 

「응? 그래요?」

 

「저기...나는 그 사이에도 여기서 자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데」

 

「...? 그러네」

 

「뭐라고 할까... 침착되지 않는데」

 

「........에엣」

 

 

당황하면서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하는 유키노시타에게, 유이가마하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도구만 두고 가준다면... 전 날에라도, 내가 해 두어요?」

 

「아아-, 유키농, 크리스마스 장식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약간 조바심 난 느낌으로,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에게 츳코미를 넣는다.

 

 

「...그럼 어떤 것일까」

 

「응-, 크리스마스라는 건 크리스마스까지가 즐거운 거잖아? 끝나자마자 그믐날이라든가 설날 준비 시작돼버리구...나는 유키농한테두 두근거려 줬으면 해서 오늘 왔는데」

 

「흐음...말하고 보면 그러네. 나는 크리스마스 무드를 앞당기는 이유가, 시민의 구매의욕 향상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그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일까」

 

「유키농...이유가 너무 각박해...」

 

 

슬픈 듯한 얼굴로 유이가하마가 한탄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도 어느 쪽이냐고 하면 유키노시타의 크리스마스 음모론에 한 표다. 만약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이 곳에서는 유이가하마의 패배다.

다만,

 

 

「으-응...그럴까. 유키농이 싫으면 어쩔 수 없네...그럼 전날에라도 또 올까...」

 

 

그렇게 해서 유이가하마가 띄우는 표정에, 유키노시타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유키노시타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유이가하마에게 말을 건넨다.

 

 

「기다려주세요. 유이가하마 양. 초조해지지만...그건 그래서, 당신이 말하듯이 정취가 있을지도 모르기도 하고. 올해는, 시험적으로지만...조금 빨리 크리스마스 기분을 맛보기로 해요.」

 

「에...유키농...」

 

 

아무튼, 여기부터 앞은 평소와 같은 흐름이었다. 벌써 질렸겠죠, 이거. 평소대로 헤벌레한 백합백합이랍니다, 나머지는 알겠지.

...라고 말하면서도. 봐서 익숙한 광경이기 때문이야 말로, 뭐라고 할까,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라도 이런 느낌으로 계속될 거라고,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는. 착각해도 된다면...조금만 생각해 버릴 정도로는.

그럼...난, 방해 같고 돌아가도 좋으려나.

 

 

...아, 역시 안 되는군요.

 

 

「힛키 괜찮아? 조립하는 방법 알아?」

 

「아아...왠지 모르게는. 우리 집에도 있고」

 

「그래? 그럼 그쪽을 맡길게」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는 후딱후딱 유키노시타가 있는 창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 우선은 스노우 스프레이로 창에 문자라든지 그림이라든지 그리는 것 같고.

 

 

「그런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져온 상자를 연다.

내게 할당된 일은, 크리스마스 트리 조립이었다. 아무튼, 이라고 말해도 매우 일반적인, 가정용의 크리스마스 트리다. 길이도 내 허리 정도까지인, 극히 표준적인 사이즈.

유이가하마가 사전에 청소를 해 뒀는지, 먼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의외로 그런 건 야무지게 하고 있었군, 그 녀석.

상자니까 기둥과 트리 본체를 꺼내, 끼워서 세운다. 나머지는 꺾여서 접힌 트리 가지를 펴서, 꼭대기에 별님 붙이고, 전식을 감아, 적당히 장식을 달면 완성일 거다. 설명서도 동봉되고 있었지만,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까 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도 코마치와 같이 트리 조립이라든지 하고 있기도 했고. 최근에는 코마치 기분 나름이므로, 저번에 창고에서 꺼낸 건 2년 정도 전이지만. 뭐라고 할까 그리운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코마치는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려나...뭐어, 내가 없는 걸 다행으로 삼아, 아버지가 빨리 돌아올 듯한 생각은 든다. 혹시 둘이서 밥이라도 먹으러 갈지도...혼자보다는 좋고, 그렇다면 그걸로 됐지만. 추가로 어머니는 초 드라이한 캐리어 우먼이므로, 아마 평소대로의 시간에 돌아오지 않을까.

내가 트리의 팔을 펴서 전식을 두르고 있자,

 

 

「응-, 글자의 경우에는 거울 문자로 해야 할까...」

 

 

하고 창문 쪽에서 두 명이 서로 얘기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 왜니」

 

「가게라든지 그렇게 되고 있는 데 많아요?」

 

「그건 밖에 보일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요...우리들이 보니까 이쪽에서 읽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게다가 여기는 15층이에요.」

 

 

아무래도 꽤나 성과가 없는 대화를 펼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유이가하마, 너는 좀 생각을 하고 말을 해 줘...불의의 습격을 당하면 어떻게 할래.

 

 

「그것두 그럴까...어라, 뭐야 이거 귀여워! 이 팡 씨 뭐야?」

 

「...샀어요, 신 디자인이에요.」

 

「헤에-...그래두 이거 저번 것하구 뭐가 다른 거야?」

 

「눈초리를 보면 알아요...정면을 향하고 있는 팡 씨는, 드문 거예요.」

 

「헤, 헤에...아, 이것도 새로운 거네...고양이의 육구?」

 

「리얼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요. 30초 정도 만져 봐. 고양이와 같은 정도의 체온이 되니까」

 

「그, 그렇구나...」

 

 

성과가 없다... 유이가하마가 굳어진다니, 상당한 레벨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창가에 장식하고 있던 팡 씨 인형이라든지 정체를 모를 고양이 아이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인형...전에 들른 데스티니 스토어에 놓여 있던 인형과 뭐가 다를까, 나한테는 극소의 차이도 찾아낼 수 없는데.

 

...흐음. 나는 주변을 빙글하고 바라보았다.

별로 변함없는 것처럼 보여도....소품 같은 게 증가하고 있다. 유리 테이블 위도, 전에는 TV 리모컨 정도 밖에 없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뭔가 분위기가 변했다고 생각하면, 과연, 단순히 물건이 증가했다는 것도 있을지도 모른다. 일부는 유키노시타 취미가 아닌 것도 있지만...유이가하마가 두고 간 것일까.

 

그러고 보니 유키노시타도 독신 생활을 시작해 그 나름대로 시간이 지났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라든가 말하고 있었던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하면 슬슬 2년인가. 아무튼 익숙해져도 좋을 무렵일지도 모른다. 독신 생활의 외로움이라고 할까, 그런 것에.

그러고 보니 언젠가 코마치가 말하고 있었다. 혼자서 사는 건 외롭겠지 라고. 아무튼 나는 독신 생활 한 적은 없고, 당분간 독신 생활은 할 생각도 없으니까, 실제로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소를 빌려 한 번 더 선언하자, 나는 바위에 매달릴 기세로 패러사이트 합니다!

 

그것과...남겨진 측도, 외롭다고 생각한다는, 거였나.

유키노시타 집의 경우, 남겨진 측이라는 사람...그 사람은, 누구일까.

예전 같으면, 그녀가 그 정도로 그런 감정을 품다니 코로 비웃으며 끝날 얘기겠지만. 지금은...조금, 모르겠다. 그토록의 감정을, 보게 된 다음에는. 흉기처럼, 휘둘려서 당해버린 뒤에는.

 

 

―――그러니까,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 감정이, 나는 가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한 말도, 가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짓말이라면, 허구라면, 그 사람은 좀 더 능숙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의심을 품을 정도로...완벽하게 해내보일 것이다. 오히려 거짓말이면 얼마나 편할까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질척질척하게 끓어오르는듯한 감정은, 뒤 섞인듯한 감정의 덩어리는...너무나 비뚤어져서, 다듬어지지 않았다...그러니까, 저것이 진짜다. 아무튼, 그것조차 이용해 나를 구워삶는 면이, 하루노 씨 답다고 한다면,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것조차 이용해서...도구처럼 일회용이라며, 다른 길을 선택한 그녀. 유키노시타가의 장녀로서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한 그녀. 인생의 말을, 하나 앞으로 진행시킨 그녀.

 

그녀는, 자유롭다라고는 생각한다. 홀가분하게, 춤추듯이 인생을 구가하고 있는 건, 잘라 내야 할 것을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일까. 사람이든 뭐든, 그야말로, 필요하지 않게 된 말처럼.

 


잘라 내야 할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현실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내거는 이상과 직면하는 현실의 딜레마에 빠진 것도 아니고,

물론, 지금 있는 장소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분명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

다만, 그 모습은.

잘라 버린 것들의 잔해 앞에서 잠시 멈춰선 그녀는.

몹시―――고독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왜, 이런 방식 밖에 할 수 없는 건가, 하고.

그 당시 그녀는, 내게 뭐라고 말했었지―――

 

 

「―――...............앗 뜨뜨뜨거!」

 

 

너무 뜨거워서, 문득 현실로 돌아온다. 놀라면서도 손을 바라본다.

보면, 손바닥 위에 있는 전식의 소형 전구가 점등하고 있었다.

오오우...아무래도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손은 제멋대로 작업을 진행한 것 같다. 휘감긴 전식의 점등 시험을 하고 있는 한 중간에, 전식이 처져 버린 것 같다. 이거, 의외로 뜨거운 것 같아. 그리고 나, 트리 조립에 너무 익숙해있다. 아무튼, 코마치가 초등학생 때는 매년 하고 있기도 했고.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건 잘 들어맞는 말인 것이다.

방금 전의 바보짓이 주위에 발각되지 않았을까, 슬쩍 두 명이 있는 편을 본다.

아무래도 두 명은...뭐라고 할까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가 최근 사 들인 상품 얘기에 빠진듯하다. 내가 무의식중에 작업하고 있는 듯이...

그렇다고 할까 유이가하마 씨는 작업해 주세요, 그렇게 말할까 하고 내가 허리를 든 순간,

 

 

「아, 이것두 신경 쓰여-...응-... 예쁜 상자네? 뭐야 이건」

 

「아아, 그건...」

 

 

유키노시타가 설명하려고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그것보다 먼저 그 정체를 눈치 챈 것 같다.

 

 

「알았어! 오르골이죠?」

 

 

나는 허리를 든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가, 머릿속에 걸린다.

 

 

「있지, 열어 봐도 좋아?」

 

「별로 상관없지만」

 

 

유이가하마가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연다.

흘러나오는 멜로디. 천천히, 금속이 연주하는 음악.

 

 

「어...」

 

 

그건, 들은 적이 있는 곡이었다...매우, 최근에.

 

...그린 슬리브스(Green Sleeves). 하루노 씨가, 흥얼거리고 있던 곡이다.

 

 

―――나, 이 노래 좋아해.

―――왠지 모르겠지만, 싫어할 수 없어.

 

 

나는 유이가하마의 손 안을 바라본다. 확실히 유이가하마가 말하는 대로, 아름다운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본 적 따위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헤에- 움직임도 꽤 세세하네...역시 유키농, 고양이로 선택한 거야?」

 

「예, 그러네...전부터, 갖고 싶었던 거예요.」

 

「전부터? 어쩐지 의외」

 

「전이라고 해도 상당히 옛날이야기에요.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나지 않기도 하지만... 몇 가지 짚이는 곳을 돌고 있는 동안에, 우연이군요.」

 

「와아, 어쩐지 운명 같네-」

 

「..............」

 

 

바보 같군, 운명이라니.

그런 형편 좋은 전개는 로맨틱 코미디 안에서만 해둬라. 그렇다면 어째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는 운명 같은 게 찾아오지 않아, 아니야. 왜 언제나 나는 그쪽으로 사고가 빗나가. 이런 때 정도는 진지하게 하고 싶은데.

 

하지만...생각해 보면, 당연이라고 말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것을 갖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찾고 있었던 것이다...갖고 싶어 하던 그녀 자신이, 그것을 찾았을 뿐, 아무것도 이상하진 않다.

그러니까, 이 우연은, 이 전개는...결코 가능성이 낮은 것이 아니다.

 

 

「...사실은 사 준다고 약속해 주고 있었지만...아무래도, 저 쪽도 잊어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찾아냈을 때, 사 버렸어요.」

 

「흐응...그, 아버지라든지?」

 

「아무튼...그런 것이네요.」

 

 

―――떠올려 냈다고 생각하면 이런 거야. 잊고 있었던 나도 난데.

 

 

그녀의 말을 떠올려 낸다.

 

 

「하...........」

 

 

무심코, 웃음이 흘러넘친다. 공기를 약간만 진동시킬 정도의,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쓴 웃음.

 

 

―――역시 감상 같은 것에 흐르게 되면, 변변한 일이 없지요.

 

 

물론 그렇다, 유키노시타 하루노.

 

감상 같은 일에 흐르게 되면...변변한 일은 되지 않아.

그녀가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 잘라버린 것이, 단념한 것이, 저절로 사라질 리가 없다. 그것은 그녀가 잘라 버린 뒤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어, 계속 살아가고 있다...이렇게 해서, 누군가가, 주워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그건 어느 날, 그녀의 발밑을 따라 잡아, 그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혹시라도, 그래서 발을 멈추게 되는 일도.

주운 누군가가 그런 것이다.

 

 

―――아가씨, 기다리세요. 잠시, 떨어뜨린 물건이.

 

 

같으려나.

 

그녀는, 기다릴까. 그 걸음을, 멈출까.

 

 

그걸―――지금부터 증명해 준다.

앞으로는 생각할 뿐이다.

<이 글은 pixiv - tetsukugi 님의 번역허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으로 ⑥의 후편. 글자 수 문제로 분할했습니다. 별로 의미는 없습니다.

 

3페이지...VS 하루농 그 1 전편. 후편은 ⑦에서 계속됩니다. 아무튼, 이 타이틀인 이상은, 이 전개로 하려고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단지, 어디의 SS에도 쓰고 있는 소재인 건 확실히... 이후의 전개로, 차이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          ×

 

 

「오빵~, 욕실 비었어요-」

 

「응, 지금 갈게.」

 

 

아래층에서 들리는 코마치의 소리에 건성으로 대꾸하면서,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손에 가진 스마트폰을 조작해 메일 화면을 연다.

 

 

『이번 주 금요일, 방과 후, 역전으로 와주세요.』

 

 

「..........」

 

 

물론 예쁜 누나의 권유에 두근거리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두근거리는 건 토츠카의 권유 정도니까. 사실 굉장히 우울한 기분이다, 아직 주초일 텐데.

이 메일이 도착했을 당시를 떠올린다.

유키노시타가 전화를 받은 타이밍에서의, 이 메일. 연관성이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 버린 탓으로 저번에는 코마치의 함정에 빠졌지만. 아무튼 두 번도 같은 방법을 쓴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첫 번째는 갑작스럽게 호출해, 두 번째는 기습이라고 할까 불의의 습격, 음 그래도 세 번째는 약속...인가. 잘도 뭐 여러 가지로 손과 수단을 바꿔서 나를 끌어내는 것이다. 아마, 이번에도 내가 약속을 무시하면 말려 들어가게 되는 걸까. 결과가 같은 지점으로 수렴하는 건 눈에 보인다. 최근 2, 3주간의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혹시,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일부러 몇 번이나 부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월요일 단계에서, 주말인 금요일을 지정하고 있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린다. 지금까지는 갑자기 상황에 말려들게 한 것으로 하루노 씨가 상황의 리드권을 빼앗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왠지 여유를 주고 있다. 언제나처럼 어포인트먼트 없이 습격하는 편이 효과적인데도 불구하고, 다.

...그건 마치,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는 듯하게도 생각된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뭐를 생각하라고 하는 건지, 뭐를 준비해 두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메시지를 감지해 버리는 건, 단순한 의심암귀일까.

 

※ 의심암귀 :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고 무서워짐.

 

 

단지...다음에 만날 때까지 생각해 둬야 할 것이라면, 아마, 있다.

유키노시타가 말하고 있었던―――하루노 씨의 방식, 이다.

말의 성격을 읽어, 적확하게 움직여 목적을 달성한다.

 

인심 장악의 수완과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야말로 성립되는 하루노 씨의 방식.

 

거기에 준거해서 생각하면, 이번에도 하루노 씨는, 나라는 말에게 뭔가 시키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내가 유키노시타에게 선물을 건네주는 행위에, 혹은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전개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려고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루노 씨가 내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건지는 그다지 알고 싶진 않지만, 내게 어떤 역할을 억지로 떠맡기려는 건가, 라는 점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피해를 받는 건 나니까.

솔직히, 하루노 씨의 손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감이 있어 의욕도 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속까지 아무것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 것도 불안하다. 그야말로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될 수도 있다. 적을 알면 백전 단념해라의 정신을 구가하는 나지만, 단념해서 받아들여도 좋은 얘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하고.

 

...거기에, 하루노 씨 자체가 약간 이상한 것이다. 뭔가 초조해 하고 있는듯한 언동, 뭔가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듯한 한 순간의 틈, 어느 순간에 나타나는 평소와 다른 표정...지금까지 이상으로, 그녀의 행동을 읽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역시 정보가 필요하다... 하루노 씨의 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가. 뭣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하루노 씨와 관련된 사소한 소재 같은 거라도 좋다. 그런 것도, 나한테는 없으니까.

 

이상을 말한다면, 나보다 하루노 씨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얘기라도 들어보면 좋겠지만... 단지, 하루노 씨에 대해 겉을 포함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고... 몇 명인가 짐작은 가지만, 이 놈도 저 놈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유키노시타...는 무리겠지.」

 

 

여동생인 유키노시타에게는, 하루노 씨의 화제를 꺼내는 것조차 아웃이다. 아마 아무것도 듣기 시작하지도 못하고, 내 하트에 큰 상처를 입는 것으로 끝나겠지. 얻을 수 있는 것과 잃는 것의 결산이 지나치게 맞지 않는다. 거기에... 그토록 피하고 있는 것이고 최근의 하루노 씨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번에는 무서운 동물적 감각으로, 한 순간 하루노 씨의 그림자를 감지했었지만... 저건, 난 아무것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간이 싸늘해졌다.

 

 

「그럼 히라츠카 선생님은...아니, 그래도...」

 

 

히라츠카 선생님은 지난달 같이 마시러 가기도 했고, 저번에도 하루노 씨한테서 옷을 빌리거나 하는 걸로 보아 교류는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마신 자리에서는 꽤나 취한 듯하고, 뭔가 기억하고 있을지는 미묘한 라인... 거기에 졸업생이라고 해도 학생은 학생이다. 이상한 면에서 의리가 있는 히라츠카 선생님이고, 프라이버시가 어떻든가 말하기 시작할 듯한 생각이 든다. 내 프라이버시는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대체 뭔가요. 어쨌든... 그 사람은 귀찮다.

그렇다고 하면... 하루노 씨의 표리를 그 나름대로 알고 있고, 최근 접촉이 있던 인물. 가능하다면 그 나름대로 안테나가 높고, 이런저런 일을 눈치 채고 있을 것 같은 녀석...응.

 

 

「.............」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나름대로 조건에는 합치하고 있는 녀석이다... 그래도, 별로 관련되고 싶지 않은데. 하물며 정보 제공의 협력은, 부탁하고 싶지도 않다.

 

 

―――의지한다는 말의 어감이 좋지 않으면, 이용하는 것도 좋고 말이야.

 

 

라든가, 히라츠카 선생님이라면 이용하겠지만.

아무튼... 기분이 내키면, 내일이나 모레라도, 적당히.

내가 그렇게 적당히 정리가 끝난 때와 같은 정도의 타이밍에, 힘차게 계단을 뛰어 오르는 소리가 났다.

순간, 텅 하고 방문이 열린다.

 

 

「오빠 목욕하라고 했잖아! 물 가득 찼으니까!」

 

 

거기에 나타난 사람은... 아무튼 내 집이고 내 방이고, 예상대로 코마치였지만.

 

 

「아직 부모님 오지 않았잖아... 라고 할까 언제까지 너 타올 한 장으로 있을 생각인가요...」

 

 

그리고 타올 한 장으로 뛰어다니지 마. 내 앞에 그런 하얀 맨살을 그런 면적으로 보이지 마라. 함부로 선정적인 포즈 하지 마....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거기에...으음, 이건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유키노시타 이상으로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몰라, 중대한 사태...가 아니려나,

 

 

「벌써 너 중3 이잖아? 내년에는 여고생이라고?」

 

「그렇다는 건, 오빠 방에도 여고생이 매일 온다는 거네! 오빠 기뻐?」

 

 

게다가 반나체로인가... 아무것도 안 기뻐.

봤는가 제군, 이것이 여고생 예비군이다. 이런 걸 봐버리면, 여고생에 대한 환상은, 눈 깜짝할 순간에 부서지겠지... 아무튼 난 그런 건, 예전부터 벌써 깨닫고 있지만! 소스는 모 부활동.

 

 

          ×          ×          ×

 

 

4번째 시간 종료, 점심시간 시작 벨이 울렸다.

학생들은 각자 일어서서 점심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책상을 붙여 도시락을 꺼내는 녀석이나, 매점에 사러 달려가는 녀석도 하나 둘씩... 아마 지금부터 가도 늦지 않을까, 괜찮은 건 대부분 벌써 팔렸을 거다. 요령이 좋은 무리는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벌써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있다. 구석에서 혼자 샌드위치를 우물우물하고 있는 카와 뭐시기 씨처럼...아니, 저건 수제려나. 랩핑은 문자 그대로 랩이지만 꽤 솜씨 좋다...,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숨기지 않아도...

 

...그건 어쨌든, 나도 예외가 아니고 소우자이 빵(나물류 등 반찬을 넣은 빵)을 사고 있었다. 야키소바 빵을 한 손에 들고, 교실 문으로 향한다. 카와 뭐시기 씨처럼 교실에도 먹어도 좋지만, 오늘은 취향을 바꿔 다른 장소에서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가끔 씩은 그런 기분이 될 수도 있겠지... 이런 때 외톨이라는 건 기분이 편하다. 기분 나름으로, 친구의 동의도 받지 않고, 좋아하는 곳, 좋아하는 타이밍에 맞춰 밥 먹을 수 있다. 교실 뒤 한 쪽에서 모여 있는 무리도 필시 부러울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부러워 해! 라고 할까 존재를 눈치 채! 내가 갈 길을 막고 있으니까!

고생 끝에 그 무리 옆을 통과할 때,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하고 나는 툭 중얼거렸다. 들릴까, 들리지 않을까 한 아슬아슬한 크기. 물론 누구 하나도 내 혼잣말에 반응하는 녀석은 없다. 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 관계없다면 그렇게 할 거다. 누구라도 그렇게 한다. 나도 그렇게 한다.

교실에서 나와, 나는 오늘의 마이 플레이스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데, 들리고 있을까를 5분5분, 의미가 통했을까도 5분5분, 행동으로 옮길까 5분5분하고 계산하면, 대체로 10퍼센트 정도려나. 뭐야 그 적당한 계산. 아무튼,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그것뿐이다... 어느 쪽이냐 하면, 오지 않아 줬으면 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그 녀석은 오지 않을까, 하고 나는 왠지 모르게 생각했다.

 

 

 

과연, 그 녀석은 왔다.

내가 야키소바 빵을 마침 다 먹었을 때에 맞춰, 무음의 방에 노크 소리가 울린다. 진짜 누구야, 어느 분? ...입 다물고 있자, 문이 드르륵 열린다.

 

 

「....야아」

 

「...오우」

 

 

거기에 나타난 사람은―――아무튼, 내가 불렀지만, 뭐라고 할까 하야마였다.

여전히 사람을 대할 때 붙임성 좋은 스마일을 띄우고 있다. 나 정도의 사람한테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불쾌한 기색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의 봉사부실. 나에게는 익숙한 장소다...라고는 해도 점심시간에 여기 온 건 두 번째지만. 밥 먹기에는 나쁜 장소가 아니고, 이후에도 익숙한 장소로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담아서.

이번에도 적당한 이유를 대서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열쇠를 빌렸다. 담당하고 있던 상담 메일의 답장을 잊어 버렸다든지 그런 느낌의 이유를 둘러댔다. 자이모쿠자의 담당이 돼서 처음으로 뭔가 얻은 셈이 되나... 아무튼 저번 건 쓰레기통에 버렸고, 아무것도 답장해줄 수는 없지만. 죄책감은 이상하게 솟아오르지 않는다.

한 번 빌려준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특별히 잔소리할 것도 없이 열쇠를 건네주었다. 인간, 전례가 있으면 심리적 허들은 내려가는 것이다. 상대는 공무원이고, 그 예외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지만...응, 뭔가 약간 죄책감 들기 시작했다.

 

 

「...밥」

 

「응?」

 

「...밥은, 먹고 온 건가?」

 

「아아, 괜찮아요.」

 

 

그 하야마 포위망에서 어떻게 피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나보다 훨씬 스펙이 높은 녀석이니까, 아무튼 걱정은 필요 없겠지.

 

 

「아, 그래.... 이거」

 

 

나는 창가에 놓여 있던 두 개의 캔커피(물론 MAX)중 하나를, 하야마에게 던져서 넘겨준다. 약간 궤도가 빗나갔지만, 하야마는 발군의 반사 신경으로 그것을 받았다. 하야마가 아니었으면 낙하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어나더라면 (생략)

 

 

「괜찮은 거야, 이거?」

 

「...아무튼, 부른 건 나고」

 

 

그렇게 말하고 나는 풀 태브를 프쉬 하고 열어서, 즉시 한 입 마신다... 목에 휘감기는 듯한 상당한 달콤함은 오늘도 절호조인 듯하다. 아니, 아무튼 그렇게 바뀌면 곤란한데.

 

 

「그러면, 사양 않고」

 

 

하야마도 내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 입을 머금는다.

 

 

「...단데」

 

 

그렇게 말하며 쓴 웃음 짓는다. 단데 쓴 웃음이라니 어떤 거야... 혹시 단 거에 서투른가? 그거야 아무튼, 너는 씁쓸한 블랙 커피라든지가 어울리겠군... 일하고 있어요-가능해요-같은 표정을 해서 마이컵에 커피를 따라 마시겠지. 상상할 수 있다.

아무튼 인생에 있어 달디 단 꿀을 후르륵 거리며 살고 있는 리얼충에게는, 내 씁쓸한 흑역사는 모르겠지만. 어둠보다 더욱 깊은 암흑으로 가득 찬 지옥보다 뜨겁고 쓰디쓴... 흑역사라는 것이다. 인생은 쓰디쓰니까, 커피 정도는 달아도 좋잖아... 이거 정말 채택되지 않을까. 판권은 내 거니까요?

 

 

「그래서, 얘기하고 싶은 건?」

 

 

내가 흑역사 배드 트립과 토네 코카콜라 보트링의 향후의 선전 전략에 뇌 용량을 쓰고 있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는지 하야마가 그렇게 물어왔다. 아아, 그랬어, 주제를 잊어먹고 있었다.

 

※ 토네 코카콜라 보트링(TONE Coca Cola Bottling) 치바 현에 본사를 둔 회사. 같은 회사의 다른 영업 에어리얼로는 조지아 MAX커피가 있다.

 

 

「아아, 저기, 뭐라고 할까」

 

 

라고 시작한 건 좋지만...그러니까, 어떻게 대화를 전개해야 할까?

갑자기 하루노 씨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도 내가 머리가 이상하게 됐다고 생각되겠지... 무난히 날씨 화제로 시작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를 테니 역시 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야마는 나한테 맞춰주고 있는 것 같고, 내가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온화한 얼굴을 향하면 반대로 긴장되는데.

그렇게 한순간 왠지 몰린 듯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완전가동 시키고 있었는데,

 

문득, 오한이 들었다.

 

다음 순간, 봉사부의 문이 기세 좋게 열어젖혀진다.

 

 

「하야하치! 하야하치는 여기야?!」

 

「잠깐, 그러니까 히나, 마음대로 들어가ㅈ...근데 하야토?」

 

「....야아」

 

 

부실에 밀어닥쳐 온 사람은... 에비나 양과, 거기에 끌려온 미우라였다.

 

 

「어째서 하야토가 여기에 있는 거야?」

 

「아아, 봉사부에 볼 일이 있었어. 이따금 낮이라도 비어있는 것 같고...지금은 보는 대로, 일시 부재인 것 같지만.」

 

「하야토가? ...뭔가 고민이라도 있는 거? 그럼 나(あーし)한테 말하면 좋은데」

 

「정확하게는 내가 아니지만요... 아무튼, 친한 사람한테 상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도 있잖아.」

 

「치, 친하다니 그런...게, 아니, 라 그런 거야? 나-아(あーし)는...」

 

「그런 것보다! 하야토 군, 히키타니 군은!? 하야하치 전시장은 어디!?」

 

「모,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며 눈을 돌리는 하야마. 과연 하야마다, 벌써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대화로도 알겠지만, 나는 이 방에 없는 걸로 되어 있다.

실제로는, 부실의 구석에 쌓여 있는 책상 아래에 순간 들어갔던 거지만. 마침내 실전훈련의 영역에 돌입해버린 나의 닌자도였다... 스승(츠즈키 씨), 보고 있습니까. 저 지금 빛나고 있죠? 존재감 지워 버렸죠?

 

아무래도 에비나 양은, 어떠한 자취를 더듬어 이 부실로 온 것 같다...아마 나를 포함한 일반인은 모르는, 냄새라고 하는 것으로. 저번도 그러고 무서운 후각이다. 유키노시타도 그렇지만, 여자라는 건 후각이 날카롭나. 너희들 사냥개야?. 뭔가 지금도 킁가킁카 하고 있고... 언제 발견될지도 모를 기세라 굉장히 무서워.

 

 

「...느낌은 드는데 안 보이고... 하야토 군, 뭔가 숨기지 않아?」

 

「아니, 아무것도... 그가 있는 곳은, 슬슬 돌아온다고 생각하니까 물어보면 좋지 않을까? ...유키노시타 씨한테」

 

「...켁, 진짜로?」

 

「문도 열린 채고, 볼 일도 짧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에비나 양과는 결말이 안 나서 미우라를 타겟으로 했나. 미우라는 유키노시타에 대해 서투르고 싫어하니까... 돌아와서 묻는다면 얼굴을 맞대겠지.

 

 

「자, 히나 갈거야... 하야토도, 그런 거한테 상담할 정도라면 나-아(あーし)한테 기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잘 되지 않으면 그렇게 할 거야.」

 

「아우- 유미코 기다려, 아직 그 책상 옆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됐으니까 따라 와. 그리고, 의태하라고 코피 닦아」

 

「아-우-...」

 

 

질질 문자 그대로 끌려가면서, 에비나 양의 목소리가 멀어져 간다...후우, 겨우 갔나. 라고 할까 나 실은 곧 발견될지도 몰랐다고, 진심으로 조마조마였어요...

 

 

「이제 괜찮다고 생각해.」

 

「...오우」

 

 

조심조심, 책상 아래에서 빠져 나왔다. 교복에 붙은 먼지를 털어 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여전히 터무니없는 여자군...」

 

「나도, 수학여행 이래로 히나가 좀 무서워졌어...」

 

 

그렇게 서로 불평해, 한 순간 얼굴을 맞댄다.

하야마는 쓴 웃음을 띄우고...나는 웃지 않았다. 가볍게 어깨를 움츠릴 뿐이다.

 

 

「그런데...그래서, 하루노 씨에 대한 거야?」

 

「뭐?」

 

 

갑자기 내뱉은 하야먀에게, 허를 찔린다.

 

 

「아아, 아무튼 그렇지만...」

 

 

나 아직 무슨 용무로 불렀는지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눈이 그렇게 말해버렸는지, 하야마는 엷게 미소 지은 채로 대답했다.

 

 

「히키타니 군에게 불려갈 안건이 그 밖에 짐작가지 않았던 것뿐이야.」

 

 

―――하루노 누나의 상대로 곤란하고 있으면 상담해 줘.

 

 

...아무튼, 정말로 이 녀석과 하루노 씨 얘기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거기에... 최근 하루노 누나의 동향에 신경 쓰이는 점도 있고」

 

「...........」

 

 

이 녀석도 눈치 채고 있었나. 만나거나 전화 통화하거나 하고 있었던 것 같고.

 

 

「지난 달 아버지 사무소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뭐라고 할까 잘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할까, 그걸 숨기는 느낌이 들었어... 아무튼 확인하려고 했더니 도리어 당했지만.」

 

 

예의 수학여행 얘기일 것이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하야마를 눌러버리는 것을 보면 진짜 끝을 모르겠다.

 

 

「나도 하루노 누나한테는 여러 가지로 도움 받고 있고, 어렸을 때는 그야말로 누나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뭔가 곤란해 하고 있으면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하루노 누나는 아무래도 의지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그녀 자신한테서 전혀 정보가 들어오지 않아.」

 

 

정보를 좋은 것만 끌어내 두고, 저쪽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그건 나도 경험이 있을 터이다. 태양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블랙홀이 아닐까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히키타니 군은, 하루노 누나와 요즘 자주 외출하고 있는 듯한데」

 

 

그러니까, 그렇게 쓸쓸한 듯이 웃는 건 그만두라고.

...아마, 이 녀석은 본질적으로 상냥하겠지. 아니, 까놓고 말하면... 무르다. 이만큼의 스펙을 가지고 있는데 꼼짝도 못한다는 건, 모두를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루노 씨처럼, 가차 없이 잘라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좀 더 살기 쉬워질 터인데... 아아, 그러고 보니 같은 말을,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를 대상으로 말하고 있었지.

 

이상에 얽매여 사는 유키노시타와 현실에 얽매여 사는 하야마는, 의외로 서로 닮은 부류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뭐라 말한 걸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히키가야 군」

 

「...아?」

 

 

나를 그렇게 부른 하야마는, 벌써 방금 전의 멋진 표정을 거두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도 부탁하고 싶어. 정보 교환이다.」

 

「...........」

 

 

그런데도. 하루노 씨에게 거절되어도, 그녀를 걱정할 수 있는 그 자세는 실로 하야마다운 것이었다. 담을 수 없어도, 비록 담을 수 있지 못해도, 그런데도 모두를 담으려고 하는, 의지...부럽군, 추가로 설교 펀치가 있다면 라노베 주인공 같다.

...사실, 우리들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지독한 얘기지만, 임간학교에서의 말은 진실인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뿐이다. 임간학교도, 문화제도, 수학여행도... 아까 전의, 대 에비나 양에 대한 공동투쟁도. 이용하고 이용된다는 것이, 나와 하야마의 관계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알고 싶은 건 우선, 지금 하루노 씨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건데. 내가 연락해도 따돌릴 뿐이라... 뭔가 알고 있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렇지만 집에는 없는 것 같아... 주말 정도는, 돌아오는 듯하지만」

 

 

하야마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에는 확실히 시내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부분은 일부러 애매하게 흐린다. 아무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뿐인 것 같고.

 

 

「그런가... 또 여행이라도 갔었나. 뭐가 목적인지는 들었어?」

 

「글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사러가지 않았던 걸까?」

 

「...그건 농담인가?」

 

 

글쎄... 나는 어깨를 움츠리기만 했다.

 

 

「히키타니 군이 하고 있는 말은 농담인지 진심인지 판단이 어려운데...」

 

 

뭐야 그건, 그런 재미없는 얼굴로 난 농담하고 있었나... 그랬었나, 내가 농담해도 모두 웃어주지 않았던 이유는, 농담인지 진심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나... 약간 미소 연습이라도 해볼까...데헷. 우욱, 스스로 해보니 속이 메슥거려...

내가 농담하는 얼굴에 대해 침사묵고하고 있자, 하야마가 말을 건넨다.

 

 

「히키타니 군도 묻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던 거야?」

 

「아? 아아, 그러네... 그 전에 아까 전 얘기지만, 네 아버지가 변호사라고 했었지?」

 

「그래. 유키노시타 씨의 회사 고문 변호사야.」

 

 

이건 기억 그대로다. 그 때 이 녀석 죽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것까지 선명하고 강렬하게 생각났다.

 

 

「그랬었군... 그래서, 어째서 사무소에 하루노 씨가 있었어?」

 

 

아까 전은 슬쩍 들은 체 만 체 해 버렸지만,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뭔가 걸린다. 회사의 변호사라면, 용무가 있는 사람이 어느 쪽일까 생각해보면 유키노시타나 하루노 씨의 아버지 편일 것이다. 하야마가 사무소에 있었다는 건, 하루노 씨도 거기에 따라간 것일까?

 

 

「아아...뭐, 확실히」

 

 

하야마는 말하고 보면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하루노 씨, 회사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 그 관계로 오지 않았을까. 거기에, 우리들도 어렸을 때는, 사무소에서 자주 놀고 있었고」

 

 

그러고 보니 하루노 씨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고 했었나. 그렇다고 할까 변호사 사무소에서 놀고 있던 건가요...법전으로 집짓기 놀이라든지? 그거야 귀엽지 않은 성격인 애가 세 명이나 있으니 있을 법해요.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수상한데. 변명하는 낌새가 난다. 뭔가를 눈치 채고 있는 어조다. 나도 자주 변명하니까 안다...아무튼, 이 녀석도 나한테 모든 정보를 개방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별로, 상관없지만.

 

 

「그래서, 주제인 질문은?」

 

「아아...뭐라고 할까,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의 관계, 라고 할까」

 

「관계?」

 

「...언제부터 사이 나빴어, 그 자매」

 

「...드무네, 히키타니 군이 타인에 대해 신경 쓰다니」

 

 

시끄러. 니가 나의 뭐를 안다고. 나도 타인 신경 쓰고 있어요. 너무 신경 써서, 폐를 끼치면 큰일이니까, 말을 건네지 않을 뿐이니까.

 

거기에...아마, 이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유키노시타에 대한, 하루노 씨의 스탠스. 때때로 보이는, 유키노시타에 대한 애정인지 증오인지도 잘 모를 집착. 그 정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하루노 씨의 행동을 읽는 데 필요할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유키노시타가 관련되고 있는 사안에서는.

옆에서 과거의 자매를 보아 온 이 녀석이라면, 혹시 그 일면을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였나... 그건,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건 모르겠지만, 그 나름대로 진지한 질문이라는 건 알았을 것이다, 하야마는 조금 생각하면서 얘기하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세 명이서 논적도 있었어. 좀 더 여럿이서 논적도. 대체로 하루노 누나가 리더에, 내가 부리더, 유키...노시타 씨는...음, 구석에서 책 읽고 있었었나.」

 

「변함없네... 그 녀석도」

 

 

약간 전율했어요. 나라도 어렸을 때는 자주 밖으로 나와서 놀았었는데. 끼-워-줘, 라고 하면, 싫-어-요...라니 너희들 왜 날 그렇게 덮어 놓고 싫어하는 거야? 뭐어, 처음은 분명 애들만이 세력의식이었겠지만. 그런 건 막무가내로 뚫으면 안에는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샤이 보이였던 난 그 때 이후로 혼자 놀기 시작해서...흠,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나의 체념로드는 스타트하고 있었군...

 

 

「그렇다고는 해도, 하루노 씨가 권하면 유키노시타라고 해도 같이 노는 고리에는 들어갔던 것이고, 자매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해...오히려 유키노시타가 하루노 누나를 따라다니고 있었을 정도고, 사이는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왜 그런 식으로 됐을까. 자만심, 환경의 차이? ...다른가.

 

 

「사실, 깨달으면 그렇게 됐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데, 나한테는. 하루노 누나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에는, 벌써 두 명 사이에는 도랑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원래 성격도 달랐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모르겠어.」

 

 

몰라, 라고 하면서, 하야마의 얼굴에는 모르는 녀석의 후회는 아니고, 알고 있는 사람의 후회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성격이 달라도, 잘 해나갈 수 있는 녀석들은 해 나갈 수 있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같은 게 좋은 예겠지. 물론 그런 건, 하야마 쪽이 단연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원인은 따로 있다.

 

잘 보살펴주는 하야마가 알고 있어도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이군...예를 들면, 타인의 집, 이라든지. 우리 집은 우리 집, 다른 곳은 다른 곳...아무튼, 억측에 지나지 않지만.

 

 

「단지...거리가 벌어졌다는 이유로, 하루노 누나가 유키노시타 씨를 싫어하고 있었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나 귀여워하고 있던 여동생이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도, 가끔 초등학교에 놀러 와서, 유키노시타 씨에 대해 듣고 싶어 했기도 하고」

 

 

정찰이라니 조숙한 중학생이군... 뭐 하루노 씨고 어쩔 수 없다. 나도 이따금 코마치의 수첩이라든지 보고 독충과 교류가 있는지 조사하거나 하고, 비슷한 것일까.

 

 

「어라, 하지만 당시의 유키노시타는...」

 

「...아아, 고립되고 있었어요.」

 

 

주변의 악의에 의해서, 고립되고 있던 유키노시타 유키노. 임간 학교에서 만난 소녀를 떠올려 본다. 그 모습에, 누군가를 겹치는 듯 했던 유키노시타의 옆모습도.

하야마는, 자조적인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정말로, 한심한 일이지만. 하루노 누나한테 부탁받고 있었을 터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니... 하물며 내가, 계기의 하나가 되어 버렸으니까」

 

「.......」

 

 

그건 금시초문이다. 하지만, 예상한 범위 내이기도 하다. 이케맨 리얼충 하야마 하야토가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친구라고 하는 사실 자체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책망하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그것도 다수 있던 요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다. 덤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책망해도 좋은 사람은, 하야마 자신뿐이겠지.

그러니까 나는 그런 나약한 소리를 들은 체 만 체 해서, 그것보다도 신경이 쓰이는 것을 묻는다.

 

 

「하야마,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거지?」

 

「...아아, 그래. 내가 말하고 있었어.」

 

「그럼...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건가?」

 

「............」

 

 

하야마의 표정은 딱딱한 채였지만, 그 눈에는 한 순간 동요의 빛이 떠오른 것 같았다.

 

 

「뭔가, 했었던 거군.」

 

「....졸업 전이다.」

 

「...우리들이 졸업하기 바로 전 때만, 유키노시타 씨를 대상으로 한 괴롭힘이, 내가 아는 한 전부 멈췄어. 그녀는 고립된 채였지만... 무사히 졸업 했어요. 중학교는 달랐으니까, 그것뿐이었지만」

 

「..........」

 

 

물론 난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니까 상상할 수 없지만... 나도 받은 괴롭힘(본인들 가라사대, 괴롭힘은 아니고 장난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장난치지 말라고 하고 싶다.) 횟수라면 하나나 두 개 정도가 아니라, 양손을 펴도 부족한 몸이다. 그것이 모두 스톱한다는 것은...역시 상상할 수 없어.

상상할 수 없지만...그것을 이 흐름에서 말했다는 건, 그것을 해치워 버린 인물이 있는 거겠지. 누군지, 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런가. 미안하군, 이상한 질문을 했어요.」

 

 

초등학생 입장에서는, 초 울트라급 트라우마라고 생각하는데.

 

 

「...벌써 끝난 일이야. 뭔가 도움이 되면, 그걸로 좋아.」

 

 

그렇게 해서 하야마는, 미소를 띄운다. 그 미소는 피곤한 듯이 보였지만, 뭔가 무거운 것을 토해낸 듯하게도 보였다.

 

 

 

 

점심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꽤나 오랫동안 말하고 있던 것 같다. 원래부터 말할 일이 적은데,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상대와 해서, 이제 다음 시간을 잘 수밖에 없겠네요.

 

 

「슬슬 교실로 돌아갈까」

 

「...아-난, 화장실 가고 나서 가니까. 먼저 가고 있어 줘」

 

 

나와 하야마의 조합이라든지 주변이 당황할 테니까. 그리고 에비나 양 무섭고.

 

 

「그런가...」

 

 

그런데, 하야마의 얘기로 몇 개인가 신경 쓰이고 있던 점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루노 씨와 유키노시타의 관계. 하루노 씨가 해온 일, 하야마가 할 수 없었던 일, 유키노시타의 하루노 씨에 대한 적의...그것과 내가 해온 일, 흐름에 말려들어가 해 버린 일. 그것들을 대입하면, 해(解)인 듯한 해는 떠오른다.

 

다만...아직 모르는 건, 하루노 씨의 동기다. 왜 그렇게 성질이 나쁜 해를 산출할 마음이 생겼는지, 왜 서둘러 해를 낼 마음이 생겼는지, 그걸 모른다.

 

 

「.....있잖아, 하야마」

 

「응?」

 

 

문에 손을 댄 하야마를 불러 세운다.

 

 

「한 번 더 묻겠는데... 왜 하루노 씨가 네 아버지 사무소에 있었어?」

 

「...나도, 아버지의 일 전부를 알고 있는 게 아니야. 이따금 도와드릴 때가 있지만. 거기에, 비밀을 지킬 의무라는 것도 있어.」

 

「그래도 예측은 하고 있다... 틀려?」

 

「...어디까지나 예측이야. 불확정한 요인이 너무 많아.」

 

 

불확정한 요인. 하야마로서는 간파할 수 없는 요인. 발을 디딜 수 없는 요인. 그 때부터 상태가 이상했던 하루노 씨. 회사의 고문변호사. 비밀을 지킬 의무.

 

 

―――정답은...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예요.

자매의 서열을. 그녀가 여동생인 것을. 그리고―――그녀가 언니인 것을.

 

 

「상관없으니까, 말해 봐」

 

 

내 말에, 하야마는 작게 한숨을 토한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이건 내 예측에 지나지 않아. 아무리 교류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타인의 집이니까―――그래도 아마, 이건 그녀의 집의 『결정』같은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끊고 나서, 하야마는 짤막하게 자신의 예측을 말한다.

그 예측은 내가 계산한 해에 대입해도, 그것들을 어떤 오류도 없이, 성립시켰다.

 

 

          ×          ×          ×

 

 

역에 가까워짐에 따라, 발은 무거워져 갔다.

지금부터 만나러 가는 상대를 생각하면, 아무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실제 역전을 경유하지 않고 바로 돌아가는 것도 진심으로 선택사항 안에 넣고 싶은 바이다... 어차피 회피하려고 해도, 따라 잡히는 게 기껏 이라고 고쳐 생각했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납득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역전. 이렇게 밖에 메일에는 쓰여 있지 않았지만. 아마, 저기가 틀림없을 것이다... 바로 지난달, 그녀와 우연히 맞닥뜨린, 그 역의 그 근처. 전망이 좋고, 엄폐물도 적은 까닭에, 나는 그녀에게 발견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하릴없이 따분했던 상태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에게.

 

벌써 날은 기울고 있다. 회색 구름이 하늘을 희미하게 덮어 가려, 싸늘한 바람이 벌거벗은 가로수를 쓸쓸히 흔든다. 일 년 중에서 가장, 색이 바라는 계절. 어중간한 이 시간대로는, 겉치레 정도의 일루미네이션도 켜지지 않았다. 이번 겨울은 언제, 눈이 내릴까. 조촐하게나마 눈이 내린다면, 약간은 이 경치도, 희고 밝아질 텐데.

역의 로터리를 지나 나는 장소에 겨우 도착한다.

 

 

「얏하로~, 히키가야 군」

 

「............」

 

 

그곳에서,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색이 없는 세계 안에서,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평소와 다름없는, 태양 빛 같은 미소를 띄우며.

그것만을 잘라내면, 그건 한 장의 그림과도 같을 듯했다.

나는 그녀의 인사에 가벼운 인사로만 답하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발은 여전히 무겁다―――즐겁지도 않은, 답 맞추기의 시작이었다.

 

 

 

「무슨 일이야 히키가야 군? 그렇게 무서운 표정해서는」

 

「...아니요, 별로」

 

「이건 선물이야. 히키가야 군한테는 단 걸 사왔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그럼」

 

「이건 코마치 짱한테. 합격 기원 부적이야, 마지막 최후는 소원빌기니까요.」

 

「감사히...근데 이건 어떤 신사에서」

 

「또 이건 가하마 짱한테 전해 줄 수 있어? 그래그래, 시즈카 짱한테도 사 왔어.」

 

「........」

 

 

답 맞추기가 어떻든지 했지만, 그렇게 비유해도 될까... 완전히 하루노 씨 페이스였다. 이 사람, 여전히 내 말 진짜 너무 안 듣는다.

하루노 씨는 저번보다 큼직한 트렁크에서, 펑펑 하고 솜씨 좋게 선물을 꺼내 내 손에 올려놓는다. 눈 깜짝할 사이 내 양손은 선물로 가득해졌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제대로 된 동작도 할 수 없게 된 것을 가늠한 듯이,

 

 

「그리고, 이건 유키노 짱한테...선물할 거니까요.」

 

「............」

 

 

수취 거부를 표명하고 싶은 때지만, 그건 가차 없이 내가 안고 있는 선물의 산에 정상에 실려 버린다... 그게 목적이었군.

나는 살짝 그 종이포장을 바라본다. 빨강과 초록으로 포장된, 확실히 크리스마스 프레젠트 용 같다. 재질은 손대보지 않았으니까 모르지만, 그만큼 무거운 건 아닌 것 같다.

 

 

「아, 내용에 신경 쓰여? 괜찮다고, 누나를 믿으세요. 히키가야 군이 건네줘도 그만큼 위화감 없고, 또 유키노 짱 취향에 확실히 직격하는 걸로 해 줬으니까!」

 

 

후흥~, 하며 하루노 씨는 자랑스럽게 단언한다. 꽤나 자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군가한테 프레젠트 주는 단계에서 위화감 철철 넘칩니다만....」

 

「뭐어 그건 크리스마스고, 어떤 의미로 써프라이즈라고 해 두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나도 써프라이즈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만...그렇게 경악할 사태인가.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다. 『힛키가 진짜 프레젠트...? 에, 좀 기분 나빠...』라든지 전율하면서 유이가하마가 말할 것 같다...이미지하는 단계에서 꽤나 상처받았다. 하는 김에 진짜 프레젠트 했더니 혐오 받은 흑역사까지 떠올려 버렸다. 양손이 가득 차 있어서 다행이다, 무심코 가까이 있는 흉기로 머리를 뽀갤 뻔했다.

 

 

「히키가야 군한테는, 이걸로 유키노 짱의 하트를 꼭 맞혔으면 좋겠는데」

 

「...그러니까 그건 무리라고 말했었잖아요...」

 

 

한 숨을 섞어 항의한다. 그건 저번 주에 벌써 실컷 말했을 텐데.

 

 

「...스스로 건네줄 생각, 정말로 없습니까?」

 

「응-? 그러니까 말했잖아, 내 프레젠트를 유키노 짱이 고분고분하게 받을 리 없다고」

 

 

하루노 씨도 또 지론을 굽히지 않고, 산뜻한 어조로 내 의견을 부정했다.

아무튼 그것도 정론이지만. 우선 이 화제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 갔었어요? 집의 사람이라든지 찾던 것 같은데」

 

 

그리고 하야마라든가.

 

 

「어라...그 사람들도 질리지 않네. 난 예정을 깨뜨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런데도 매번 소란피우고...」

 

 

갑자기, 하루노 씨의 얼굴이 비웃는 기색을 띤다. 바보 같아, 라며 비웃는 듯이.

 

 

「...소란피울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잠깐, 그건 어떤 의미야? 나 꽤나 성격 나쁜 사람 같잖아?」

 

 

...성격 나쁘겠죠, 꽤. 말할 수 없지만.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성 혼자서 여행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위험하니까. 그러니까 집에 틀어박히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난 생각하는데.

 

 

「걱정이라... 그 사람들이」

 

「............」

 

「.....아무튼, 걱정은 하는 거겠죠. 거기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는데.」

 

 

생각하지만...뭘까. 이 남의 일 같은 말투는. 그 필요 이상으로 차가운 말투는.

 

 

「히키가야 군, 내 여행 얘기 같은 건 들어서 어떻게 할 거야?」

 

「...별로, 어떻게 할 생각도 없지만」

 

 

그 말투는 역시... 더 이상 이 화제를 계속 언급하는 것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어느 샌가 이 사람의 말에서 언외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전혀 안 기쁘다고.

 

 

「그런 것보다 히키가야 군, 슬슬 앞으로의 얘기를 해요.」

 

「앞?」

 

 

사키...마작? 카와 뭐시기 씨? ...생각해낼 차례, 애니메이션 캐릭에 추월당하는 걸 보면 카와 뭐시기 씨다운데...

 

※ 앞(先)의 발음이 사키

 

 

「그래, 유키노 짱한테 선물을 준 뒤의 얘기」

 

「준 뒤라니...」

 

 

하루노 씨는 방금 전과는 돌변해 즐거운 듯이, 검지손가락을 아담한 턱 근처에 대면서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네, 다음은 첫 참배일까. 유키노 짱을 첫 참배로 끌어줬으면 하는데. 그 애는 인파는 싫어하지만, 히키가야 군이 권해주면 간다고 생각하고」

 

「아니, 인파라니 저도 싫습니다만...그게 아니라」

 

「유키노 짱의 예정이라면 신경 쓰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둘 테니까. 연시의 인사라고 해도, 그 애는 언제나 뒤 쪽에 있을 뿐이고, 지루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더 밖에 나오고 있는 편이 즐겁지 않을까나.」

 

「그런게 아니라요, 유키노시타 씨」

 

「첫 참배의 뒤는, 그대로....」

 

「유키노시타 씨」

 

 

약간 힘을 실어 말했더니, 간신히 하루노 씨는 내 쪽을 향한다. 기분 좋게 계획을 말하고 있던 것을 방해받았기 때문인지, 약간 불만인 듯하다.

 

 

「무슨 일일까, 히키가야 군?」

 

「유키노시타 씨... 무슨 생각입니까」

 

「...전에도 말했잖아. 누나는 두 명의 거리를 좁혀주려고 할 뿐이에요?」

 

「...그건...뭐라고 할까 싫어도 알고 있긴 한데...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그래, 알고 싶은 건 그 앞이다. 그야말로, 그 앞의 이야기.

 

 

「저기, ....무슨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루노 씨는 내 말을 듣고, 약간 곤란한 듯이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꽤나 달려드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아요. 그걸로 끝나, 단지 그것 뿐. 진심으로 선의의 생각인데」

 

「......」

 

「나는 두 명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전에 말했었지요, 유키노 짱이 공주님이고, 히키가야 군이 그걸 지키는 기사, 같은?」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에요...」

 

「뭐어 그러네, 히키가야 군이라면 잡병 A 정도가」

 

「그건...유키노시타 씨가 해 온 일이겠죠」

 

 

하루노 씨의 얼버무림을 차단하듯이, 나는 말했다... 물론, 하루노 씨가 잡병 A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헤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하루노 씨에게 전해진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익숙한 냉기가 서리기 시작한다. 그 이상의 추궁을 거절하는, 얼음벽의 존재를 느끼게 하면서.

 

 

「내가, 유키노 짱한테? ...그런 짓 내가 언제 했다고 하는 걸까나?」

 

「..........」

 

「그 눈... 아무래도 확증이 있는 것 같네. 누군가한테 들었던 걸까. 유키노 짱...일 리는 없고」

 

 

빤히, 내 눈을 하루노 씨가 들여다본다.

 

 

「으-응, 하야토일까?」

 

「............」

 

「오, 당첨인가 보네」

 

 

뭐, 내 얼굴에 나와 있지 않아도, 내 교우 관계를 더듬어 가면 가능성은 한정되겠지... 그 녀석과 교우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하루노 씨는 하야마라는 확신에 도달한 것 같다.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조롱하듯이 말한다.

 

 

「하야토도 참... 자기 차례가 돌아오지 않으니까 라고 해서 히키가야 군한테 그런 걸 말했네. 항복이야~, 아무것도 참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다지 우위가 빼앗긴 것처럼은 안보이지만. 오히려 어딘가 즐거운 것 같았다.

 

 

「뭐, 하야토도 겨우 모양새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걸까? 그건 그래서 훌륭한 성장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약간 너무 늦었을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난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확실히 하야토가 말하는 대로, 아주 옛날에 유키노 짱의 동급생한테 쓴 맛을 보여준 건 나지만. 멀리서 봐도 저건 너무하니까...그래서, 그게 무슨 일인데? 꽤나 옛날 얘기군요.」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가끔 유키노시타에게 참견을 하듯이 모습을 드러내 온 하루노 씨. 그건 집으로부터의 전갈이나 감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이외의 목적을 암시하는 것과 같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다지 유키노시타의 집과 하루노 씨의 목적이 같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흐응... 그래도 올해의 후미에서 내가 유키노 짱한테 한 일, 모르는 것 같네?」

 

「..........」

 

「유키노 짱을 지키고 있는 것 같이 보였어? 내가 그렇게 무른 일을? 그럴 작정 없었는데」

 

「...그건 배역 문제입니다.」

 

「그 녀석이 말했었어요, 유키노시타 씨의 방식을, 그런 식으로」

 

「..........」

 

 

거기에 대답이라면, 하루노 씨 자신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정답은요, ...명확한 적의 존재야.

―――적이 확고하지 않으면 성장도 하지 않을 테니까.

 

 

다만, 적이라는 것보다는, 악역. 문화제에, 내가 자신한테 악역을 할당한 것처럼.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의 악역을 자신에게 할당했다. 하루노 씨의 경우, 후미 뿐만이 아니라...아마, 계속 전부터.

후미라고 해도, 진심으로 누를 생각이라면 유키노시타의 일을 어중간하게 도와주는 흉내는 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면, 거기에 자리 잡고 있던 하루노 씨가 주도권을 잡아 사태를 수습할 가능성도 있다. 그건 이제 논증할 방법이 없지만.

 

 

「어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후후」

 

 

하루노 씨는 내 생각을 비웃는다. 하지만, 이건...아마 허세다. 그러니까 나는 침묵으로 응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거기까지 생각했으니까, 난 히키가야 군한테 뭐를 시키려고 하고 있는 걸까나? 나는 히키가야 군한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

 

 

거기서 나는, 눈치 챈다.

단순한 질문 같으면서도, 그건 벌써 설문이었다. 하루노 씨가 마련한, 문제. 내가 하루노 씨를 캐묻고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반대로 하루노 씨에게 질문 받고 있다.

...과연, 아직도 나는 하루노 씨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같다. 이제 와서지만, 생각할 시간을 준 건 이 때문이었나... 그걸 내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이, 이 사람의 목적. 답 맞추기라는 건, 잘 맞는 말인 거다.

 

다만 여기까지 왔으면,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다. 아마 그것도 하루노 씨가 지금까지 내 질문에 어울려준 이유겠지. 보다 안쪽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

그러니까...나는 하루노 씨의 기대대로, 대답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대역, 입니까」

 

「.............」

 

 

하루노 씨의, 대역

지금까지 하루노 씨가 해온 일. 유키노시타의 가상의 적으로 있으면서, 유키노시타 주위의 악의를 없애버리는 것.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역을 자신에게 부여했는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 봉사부에 강제 수용되어 바라지도 않았지만 유키노시타의 대항마로 몰려, 나는 마지못해 자신의 방식을 관철해 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어떻게든 하려고 생각했을 때, 혹시...어디까지나 결과적으로...유키노시타를 돕는 형태가 되어 버렸던 건 있었는데...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본인밖에 모를 테고.

둘은 말할 것도 없이 같지 않고, 닮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비틀리고 있다. 단지, 결과만을 보고 말한다면...다소의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인가.

그러니까 이건, 정답이든 오답이든, 꽤나 잘못된 대답이다.

 

 

「아핫」

 

 

그녀가 웃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하하하, 히키가야 군은 의외로 자아도취가? 내 대역이라니, 재미있는 말을 하네-...그래서, 만약에 만일 그랬다고 해서, 히키가야 군은 그걸 할 수 있는 걸까나?」

 

「...할 수 없겠지요,」

 

 

하루노 씨처럼, 요령 좋게 행동하는 건.

 

 

「어머머, 정직하네... 그래도 그런 애한테는 누나 부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도 그럴게 누나가 앞으로도 똑같이 하면 되는 걸.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그와 같다. 그러니까 이대로는, 이 대답은 단순한 오답이다.

그것을 억지로 정답으로 만들, 근거 부여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런 이유, 없어도 좋겠지만. 할 수 있으면, 오답이었으면 하지만.

 

 

「내 제멋대로인, 그런데 바보 같은 예상입니다만....」

 

「응응」

 

 

하루노 씨는 내가 말하려 하는 내용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말하려 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듯이.

 

 

「...유키노시타 씨, 어딘가 가버리지 않습니까?」

 

 

유키노시타의 주위에 있을 수 없게 될 듯한 뭔가가. 나를 대역으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뭔가가.

 

 

「장기 여행이라도, 유학이라도, 뭐든지 상관없습니다만.」

 

 

...다만, 그 가능성은 낮다. 아마 유키노시타가(家)가 승낙하지 않아... 하루노 씨 자신이, 현지 대학에 다니도록 지시받고 있었을 거다. 그녀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러니까, 그건 그녀를 멀리 쫓아 버리는 건 아닐 것이다. 어느 쪽일까 하면... 묶어 버리는 뭔가가.

 

 

「아니면」

 

 

하야마의 예측이, 머리를 스쳐간다. 우울한 듯이, 그 예측을 입에 담는 하야마를 생각해 낸다. 아마 그 녀석도, 그런 시시한 예상을 입으로는 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듣고 후회했다. 그런 단어, 우리들에게는 아직 현실감의 파편도 없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기초를 둔다면.

 

 

「아니면...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든지」

 

 

 

하야마는 짤막하게 그 예측을 말했다. 그것은 3개의 사실로부터 도출된, 예측.


연초에, 유키노시타 아버지의 회사와 어떤 회사 간에, 합병 화제가 부상하고 있는 것. 그 합병은 유키노시타의 회사에 있어,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중요한 합병인 것―――그리고 상대편의 회사에는, 미혼인 2세가 있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서로의 변함없는 번영을 위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고문 변호사의 아들은, 그렇게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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