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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5 ~히키가야 하치만은 얼굴을 붉힌다~


  밖에 나오자 강렬한 햇빛이 찔러들어와서, 무심코 눈을 가늘게 뜬다.

  아직 날씨는 여름은커녕 장마도 조금 빠를 정도지만, 내리쬐는 햇볕의 강렬함은 이미 여름을 방불케 한다. 오존층은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생각했지만, 저건 자외선만을 차단할 뿐, 햇빛 자체와는 관계없던가. 완전히 추억보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예전 쪽이 햇볕도 약했던 것 같다.

  아직 오전인데 햇볕의 세기가 이 정도라면, 오후에는 더워질지도 모른다.

  자전거 보관대 같은 편리한 도구가 없는 우리 집에서, 방치된 자전거에 다리를 벌리고 서자,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의외로 얼굴에 맞닿는 바람이 기분 좋다. 아무래도 공기 자체는 그렇게까지 뜨거워지진 않은 것 같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자전거의 최대의 적은 바람이다. 바닷가에 가까우면 겨울에는 강바람이라 불리는 바람이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휘몰아치기 때문에, 갈 때도 올 때도 역풍이 된다는 이상한 현상에 휩싸이게 된다.

  돌아올 때는 순풍이겠거니 생각해서 힘낸 끝에, 돌아오는 길도 역풍이었던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치만 오빠 아닌가요, 어딘가 가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자, 사복차림인 키리바나가 가까이 와있었다.

  검은 스타킹과 약간 밝은 베이지색 숏팬츠의 조합, 상체는 옅은 핑크색 블라우스로 그 가녀린 몸을 싸고 있다. 어깨에 가죽제 토트백을 맨, 그야말로 외출용 차림이었다.

  무심결에 발밑으로 눈을 돌리자, 굽이 낮은 샌들을 신고 있었다.

  아무래도 키리바나의 눈높이가 나보다 높아질 일이 없어서인지, 안심한다.


「잠시 거리에 책이라도 사러 갈까 해서」


  그러고 보니 도시와 시골의 차이점 중에, 역을 중심으로 한 번화가를 역명으로 부르는지, 거리라고 부르는지가 있는 것 같다. 지방도시일 경우, 기본적으로 번화가가 하나밖에 없다면 역명이 시읍면명과 같아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소재지에 갔다 온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우연이네요, 저도 밖에 볼 일이 있어요.」

「뭔가 사 가려고?」

「그런 거예요. ......맞다, 쇼핑한 뒤,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키리바나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봐서, 머릿속의 일정표를 열어, 오늘 예정을 확인해보지만 보기 좋게 백지였다. 그렇다고 할까 전부가 공란이라는 점에서 일정표의 의미가 없다. 이 일정표는 두 번 다시 쓸 일은 없을 테지.


「무슨 일인데?」

「가보면 알아요. 하치만 오빠에게도 관계있는 거예요.」


  쇼핑이 끝나고 집에서 빈둥거리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할까.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말이 조금 신경 쓰인다. 키리바나와는 접점이 많은 것 같지만, 집 밖에서는 거의 없다. 그 키리바나와 나와 관련된다고 한 것은, 그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생각하고, 결론을 굳힌다.


「응,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하고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면서 걷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걸어가기에는 약간 멀지만, 어쩔 수 없다. 자기보다도 어린 여자애가 걷는데, 나만 자전거를 타는 건 확실히 보기 흉하다.


「어? 자전거 태워주지 않을 거예요?」


  키리바나가 놀란 듯이, 나와 자전거를 교대로 보면서 물어본다. 왜 그렇게 당연한 듯이 물어보는 거냐......


「너 말야, 둘이 타는 건 도로 교통법 위반이라고.」


  애초에 합법이라도 태울 생각은 없다만.


「그래요? 그럼 걸어서 가요.」


  키리바나는 조금 불만어린 표정으로, 자전거 짐받이 부분을 살짝 어루만지고는 그대로 역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 걸음은 언제나처럼, 진심으로 말하는 건지 어떤지,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

  우선 역 근처까지 가서, 주륜장에 자전거를 세운다.

  그대로 역과 복합 시설로 된 쇼핑 몰로 가서, 안내판 앞에 선다. 여기 근처는 오후에는 항상 사람으로 혼잡하지만,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통행도 적고 약간 한산한 느낌이다.

  이 정도라면 서로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제 쇼핑은 다음에 하면 되고, 우선 서점부터 가볼까요?」


  키리바나가 그렇게 말해줘서, 에스컬레이터로 3층 서점으로 간다.


「적당히 사고 있을 테니, 여기 근처라도 둘러보고 있어.」

「아니요,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으니, 뒤에서 보고 있을게요.」

「마음이 산란해져, 마음이」


  그렇게 대답해도, 키리바나는 뭐가 즐거운 건지, 기분이 좋은 듯이 있을 뿐이라, 포기하고 하드 커버 코너로 간다.

  신간을 위에서 아래까지 대충 보고,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 있는지 체크하고 있는데, 키리바나가 한 권을 손에 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안팎을 진지한 눈으로 보면서, 뭔가를 생각하듯이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너, 그 작가 좋아해?」

「좋아한다고 해야 할지, 전에 읽었던 게 재미있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조금 비싸네요.」


  키리바나는 갖고 싶어하는 듯한 표정인 채, 약간 두께가 있는 책을 선반에 다시 둔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지갑을 열어보는데, 히구치(5천엔)와 눈이 마주친다. 약간 미묘하군.

  키리바나는 내 동작을 눈치 채고는, 기쁜 듯이 풀어진 표정으로


「괜찮아요. 우선은 아마존 리뷰라도 보고 생각할게요.」


  이렇게 말하며, 사랑스럽게 뒷걸음으로 책장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하는 말은 별로 사랑스럽지 않다. 아니, 뭐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지만. 그나저나 너도 아마존 쓰는구만.

  그 후 문고본과 만화를 고민한 끝에 사서, 서점에서 나올 때는 이미 정오가 넘어 있었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 밥은 어떻게 할까?」

「저는 아침밥을 늦게 먹어서, 아직 배가 비지는 않았어요.」

「실은 나도 별로 배고프진 않아.」


  집에서 나오기 직전에 가볍게 토스트를 먹어서, 아직도 내 배는 배고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럼, 잠시 문구류를 보러가도 될까요?」

「별로 상관없는데...... 너의 볼 일이라는 건 그거야?」

「아니에요. 단지 모처럼 왔으니 잠깐 보러 가고 싶어서요.」


「그럼 가볼까요?」라고 기세 좋게 말하고, 키리바나가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으므로 그 뒤를 따라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자 고운 파스텔 색으로 칠해진 가게가 환영한다.

  쇼핑몰은 층마다 특색이 어느 정도 있어서, 손님이 대충 가도, 쇼핑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이 5층은 생활 잡화를 메인으로 하는지, 문방구 외에는 부엌 용품이나 100엔 샵 등이 출전하고 있었다.

  역시 정오인 탓도 있어서, 에스컬레이터 자체는 약간 혼잡했지만 막상 내리자 사람들이 뜸하다.

  아무래도 쇼핑 자체는 느긋하게 할 수 있겠다고 혼자 생각한다.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어요?」

「아니, 딱히 없어,」

「그렇다면 같이 돌아보지 않겠어요?」


  순간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방금 전에 같이 있게 한 것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일단 상대가 먼저 하자고는 했어도, 여기서 따라가지 않는 건 좋지 않다.


「네 뒤에서 보고 있을 테니, 적당히 돌아봐.」

「네, 감사합니다.」


  문방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갖고 싶은 물건이 없어도 필기구나 쓸데없이 비싼 다기능 사무용품을 바라보다가, 정신 차리면 시간이 한참 지나있다.

  심이 없는 호치키스라든지, 쓸데없이 멋있는 메모장이라든지, 왜 이렇게 남심을 자극하는 기능을 추가하는 거냐. 거의 쓰지 않지만, 사고 싶어진다고.

  키리바나는 우선 필기용구 코너로 가서, 조금 고민하면서 볼펜을 고르고는, 그대로 시험 삼아 써보기 시작한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시험용으로 쓰는 종이를 봤더니 「우리들의 우정은 진짜 불멸!!」 이나 「카나야마 죽어」 라든지 「――태・극――」이라고 쓰여 있다. 이 거리의 인간관계가 왠지 불안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녀석은 틀림없이 중2병이군.


「하치만 오빠, 유리 펜이 있어요.」

「응, 뭐야? 그 강도가 불안해 보이는 필기구는?」


  키리바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목을 돌리자, 반투명 유리로 만들어진 펜이, 약간 파란 잉크와 같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군.

  재미있는 듯이 달려가는 키리바나를 따라 옆으로 다가갔더니, 아무래도 이것도 써볼 수 있는 것 같다.

  키리바나가 소유자 이름이 박힌 펜을 손에 들어, 잉크에 펜 끝을 담그고 똑바로 끌어올린다. 그러자 젖어보이던 흑색이 옆의 틈으로 스르르 들어간다.

  재주 좋게 잉크가 들어가서, 무심코 웅크리고 앉아서 보고 말았다. 원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 어떤 압력이라도 작용하는 것이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은, 자칫하면 눈에 보이는 큰 현상을 일으킨다.

  잠시동안 투명한 유리에 칠흑이 채워져 가는 모습을 넋을 잃고 봤지만, 입술을 어루만지는 미지근한 한숨으로 의식이 되돌아온다.

  얼굴을 들자, 키리바나가 당장 뺨이 닿을만한 거리에서 유리 펜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고 할까 뺨이 붙지 않았을 뿐이지, 어깨는 맞닿아 있었다.

  키리바나는 지금 상태를 눈치 채지 못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띠고 흥미로워 보이는 시선으로 펜 끝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무심코 담홍색의 요염한 입술이나, 윤기가 나는 옻나무 같은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키리바나의 입에서 빠져나오는 한숨이 얼굴에 닿아 간지럽다.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깨닫고, 펄쩍 뛰듯이 일어선다. 키리바나는 그대로였지만 이윽고 유리에 잉크가 다 스며들자, 준비된 종이에 스르륵 쓰기 시작한다.

  키리바나가 적당히 동그라미나 한자를 쓰는 동안, 찬장에 장식된 잉크 색을 보고 비교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라벨에 의하면 여러 안료를 써서 색을 낸다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그마한 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다.

  ......키리바나가 차분히 써서 다행이다. 이 얼굴의 열기가 가시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잠시 후 잉크가 닳았는지, 아쉬운 듯이 펜을 두고는 나를 돌아본다.


「의외로 오래 가네요. 이거라면 적당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대로 아무것도 사지 않고, 키리바나가 출구로 바로 가길래 조금 갖고 싶어해 보이는 얼굴에 말을 건다.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은데, 안 사?」

「펜과 잉크를 사면, 그것만으로 용돈이 없어져요.」


  문구점에서 나와, 눈짓으로 이후에 어떻게 할지를 묻는다.


「기다렸죠? 다음부터는 제 쇼핑이에요.」


  이렇게 말하며 검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킨다. 아무래도 아래층에 유아, 아니 다른 볼 일이 있는듯하다. 아니 유아는 있겠지만.

  사람들을 헤치고 1층으로 내려간 뒤, 키리바나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꽃집으로 들어간다. 대강 살펴보자 다양한 색들의 꽃이 늘어서 있고, 남자가 들어가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꽃집 같은 데는 인생에서 한 번도 들어갔던 적이 없지.

  혼자서 가게 하는 것도 안 좋아서, 과감히 들어가자, 콧속을 살짝 찌르는 냄새가 떠돈다. 꽃집이라고 하면 좋은 향기려니 생각했는데, 여러 냄새가 섞여서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키리바나는 점원과 익숙한 듯이 말하고는, 이름 모를 꽃, 흰색, 노란색, 보라색 세 개를 고르고 한 다발로 포장해서 샀다.

  아까 전의 쇼핑이 너무 길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맥이 빠져버렸다.

  무거울 것 같아서 꽃다발에 손을 뻗지만 옆으로 피한다. 아무래도 자기 손으로 가져가고 싶은 것 같다.


「그럼, 가볼까요」

「아니, 어디에 가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괜찮아요. 바로 알게 돼요.」


  다소 불안하지만, 입가에 웃음을 피우는 키리바나를 보면 아무래도 이상한 곳에 끌려갈 일은 없겠지.

  얘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는 의외로 진지한 용건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