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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편 그 2 ~인형(*お雛様)과의 만남~   ※ お雛様 : 제단에 진열하는 작은 인형




  히키가야 코마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다니는 초등학교에서의 긴장과 흥분도 점점 수그러들고, 조금씩 바쁜 매일에 익숙해졌을 때이다.
  초등학교는, 오빠인 하치만이 말하던 고독한 곳과는 매우 달랐다. 보통으로 친구가 생기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즐겁게 얘기하고, 급식을 먹고 집에 돌아간다. 그렇게 평화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수다스런 반 친구가 어떤 소문을 입에 담았다.


「2반에 엄청 예쁜 애가 있대」


  그렇게 흥미로운 듯이 얘기하던 그녀였지만, 예의 그 인물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활기찬 어조로 「응, 어떤 애일까?」라고 코마치 일행에게 묻자, 그 애에 대해서 화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공주님 같다든지. 리카 인형 같다든지. 그런 식으로 상상을 부풀려 얘기하자, 코마치도 자연스럽게 어떤 애일까 하는 흥미가 들었다.
  코마치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에 영화에서 본, 신데렐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까다로운 모친과 자매에게 시달리면서도,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애. 둥실둥실한 금빛 머리카락과 바비 인형처럼 잘 갖춰진 얼굴을 가진 여자애가 머릿속에 나타나서 웃고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런 애라면 이미 눈에 띄었을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짝 웃고는 상상을 지웠다.
  그 애를 실제로 볼 기회는 바로 찾아왔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가는 길. 「조용히 교실로 돌아가렴.」이라고 한 선생님의 말을 지키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몇 명이서 소곤거리며 얘기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던 애가 옆의 교실 안을 가리켰다.


「봐봐, 예쁜 애는 꼭 쟤일 거야.」


  앞에 있는 교실은 조용한 채, 국어 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5월이 지나,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교실은 그곳만 시간이 더딘 듯 평온해서, 머리를 꾸벅꾸벅하거나 심심해서 교과서에 낙서하는 애들이 있다. 모두 어딘가 지루함 같은 게 있어서 이 시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리는 중,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왠지, 인형 같았다.
  보기 좋게 볼록 부풀어 오른 입술과 투명한 듯 새하얀 피부. 세련된 얼굴은 놀랄 만큼 아름다워서, 정말 예술작품 같았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도, 코마치 같이 곱슬기가 없는 스트레이트에, 호리호리한 손발은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약해보였다.
  그런 그녀는 책상에 앉아 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지루하게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완성된 듯 차갑고, 슬픈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판서하자, 그녀는 이끌리듯 팔을 움직여 노트한다. 그러나 그 동작은, 역시 인형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여자애가 「진짜다」라며 웃는다. 한 번 꺼내기에 마침 좋은 화제라서인지, 「예쁘네」하고 속삭였다.
  하지만 코마치는 반 친구의 말에 잘 수긍할 수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퍼져나가서 조금 몸서리가 났다.
  코마치 일행이 복도에 모인 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야, 빨리 교실로 돌아가」라고 큰 소리로 혼냈다. 그 말에 이끌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얼굴을 복도로 향했다. 그녀도 복도에 있는 코마치 일행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마치는 그녀를 보는 상태 그대로였겠지만, 분명 눈은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 특정 누군가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사뿐한 아몬드형의 눈에 떠오른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정도로 검게 빛나고 있었다. 눈의 형태와 눈동자에 떠오른 색이 완전히 반대라, 묘하게 본 기억이 있다. 어디서일까 다시 생각하려고 하자, 어째선지 공포가 솟아올랐다.


「히앗」


  갑자기 손을 잡혀 무심결에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갑작스레 현실로 되돌려져, 옆을 보자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는 반 친구가 있었다.


「코마치, 갈까?」


  옆에는 이미 코마치 친구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멀리서는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반 친구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에게 사과의 표시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걸어간다.
  교실로 돌아가서 갈아입는 중에, 싫어도 그녀의 그 검은 눈동자가 뇌리에 새겨진 듯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텐데, 떠올리려 하면 몽롱해진다.
  수업 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걸음이면 닿을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계기를 잡을 수 없다. 수학이 지나고 국어 시간이 왔을 때, 코마치는 겨우 그 눈동자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 애는 인형이야.

  올해 3월, 거실 한 구석에 장식된 인형. 몇 년 전에 아빠가 사 왔고, 그 이래로 3월이 되면 매년 장식된다. 3단뿐인 작은 거지만 화려한 색채와 은은한 등불 덕분에, 초라하지 않아서 코마치 마음에 드는 것. 그 맨 첫 번째, 왕 옆에 있는 인형이 그녀와 꼭 닮았다.
  햇빛이 닿을 때는 미소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데, 어두운 곳에 둘러싸인 모습은, 오싹할 만큼 무섭다. 어떤 밤 - 빛 한줌 없는 곳에서 웃고 있는 그 인형과 그녀는 같은 눈동자이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마음속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코마치에게 학교 수업은, 신선하지만 가끔 지루해서, 빨리 쉬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수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루한 수업 중에는, 다음 쉬는 시간에 뭘 할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재미있는 상상에 몸을 적시면, 지루한 시간은 바로 지나가고 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저 교실에 앉아, 혼자 수업을 들을 뿐이었다. 주변 학생이 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그 얼굴에는 싫증도 흥미도 도피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어째서 저렇게 차디찬 표정으로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빗발이 점차 강해져, 코마치의 마음을 진흙투성이로 만들고 있다. 평소 느끼지 않는 약간의 분노와 요괴를 본 듯 부끄러운 생각을 한 그런 자신에게 조금 낙담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코마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서운 건 변함없다. 그럴 때는 머릿속에서 점점 멀리해서 잊어버리는 게 가장 좋다. 당분간은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잊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수업에 집중해서 불필요한 생각이 흩어지기 직전에, 그 여자애의 모조품 같은 얼굴이 한 번 더 떠올랐다.


―――――――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보통 여자애였다.
  급식을 먹고, 힘을 빼면 잠들어버릴 것 같은 따스함이 하늘하늘거리는 점심시간. 떠들썩한 목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지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운동장에서 놀거나 교실에서 모여 수다를 떠는 중에,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렸다.
  활기가 흘러넘치는 복도에서, 몇 명의 여자애들과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던 그녀는, 전에 봤을 때처럼 차가운 얼굴이 아니라 보통 여자애 같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표정이 너무 달라서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이 되어 그 단정한 얼굴이 기억나서 다시 떠올리자, 그녀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친구들의 의아한 시선을 눈치 채고 부끄러웠지만, 그 이상으로 안도한 것을 코마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애가 사뿐하게, 다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게 타인인데도 왠지 기뻤다.


――――――


  그 이후로는, 이따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리는 때가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이거나 부드러운 표정이기도 해서 코마치를 많이 곤혹시켰지만, 그런 건 점차 익숙해져, 어느 쪽의 그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낼 수 있게 된 어느 날. 아침의 HR을 통해,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 두 마리가 죽었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다.
  토끼 두 마리는 학교에서 기르고, 주로 1학년과 6학년이 보살피고 있었다. 코마치도 당번으로 두 번 정도 먹이를 준 적이 있었고, 생김새가 귀여운 토끼들은 여자들에게 인기 있어, 당번이 아니어도 점심시간 같은 때 보러가서,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말한 「죽었다」의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이별보다 훨씬 슬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 토끼들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놀았던 추억과 동시에 절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매우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여자 선생님이 방과 후에 장례식을 한다고 해서, 참가는 임의였지만 코마치는 친구들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작고 조촐한 장례식은 운동장 한 구석, 나무가 무성해 하루 내내 그림자가 지는 그런 곳에서 치러졌다. 실은 토끼우리에서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뭔가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소문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들었다.
  저녁하늘에 주홍색으로 물든 흙은, 한 곳만이 파내진 듯 검붉은 색이라, 거기에 시체가 매장됐다는 것이 싫어도 상상되었다. 등교 중에 가끔 보이는 고양이의 흉한 시체를 떠올리고는,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
  장례식에는 코마치와 동갑만한 여자애가 몇 명이나 모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거나 눈물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선생님이 손을 모아 기도하자고 해서, 그 말에 따라 코마치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막 닫히기 직전, 그 인형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넘기고 기도를 마친 다음, 눈을 바로 뜬다.

  ......역시 그녀는 그대로였다.

  반듯한 얼굴이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고, 단지 잠시 멈춰 서서 파내진 부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등골이 쭉 뻗은 깔끔한 예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아, 도저히 토끼들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은 토끼들을 향한 애도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그녀는 붕 떠있었다. 어째서 저런 표정으로 있을 수 있지?
  그걸 보며 앞머리가 흔들리는 그녀의 얼굴 옆을 보고 있으면, 부글부글하고 분노가 복받쳐온다. 일단 자각한 분노는 한 방울의 먹처럼 서서히 하얀색을 침식해간다.
  왜 그녀가 이 장례식에 참가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긴 토끼들을 애도하려고 모인 곳이다. 그렇다면 슬퍼해야 하고, 아니면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토끼들에게 실례다.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아서, 실제로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내일로 접어두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결심하고 교실을 찾아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애를 붙잡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와서 이름을 모르는 것을 깨달았다. 실례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인형」 같은 여자애라고 묻자, 여자애는 한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바로 납득하고,


「아아-, 아카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어딘가 갔어.」


  라고 했다.
  딱히 그녀에게 잘못은 없지만, 왠지 자신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메슥메슥한 코마치는, 그녀――키리바나 아카네라 불리는 소녀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분위기가 느슨해진 직원실에, 상급생밖에 없는 위층. 급식실에 도서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어서, 한숨을 쉬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여기저기 전부 학생 투성이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피부색과 흙색이 비슷한 탓인지, 멀리서 보면 빨강이나 파란색만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에게 가서 그 얼굴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하고, 가끔 다른 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며 운동장을 헤매다가, 역시 발견하지 못해서 포기하려던 참에, 코마치는 겨우 아카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운동장 구석에 있었다. 나무들의 술렁임과 멀리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는 마치 잊혀진 듯 아카네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그 토끼들의 무덤이었다. 어제 일이었는데 코마치 기억의 한쪽 구석에 놔둔 탓에, 왠지 모르게 떠올리기 어려운 장소.
  그곳에서, 그녀는 어제처럼 감정 없이,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하듯이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약간 얼굴에 비쳐, 반듯한 얼굴이 보다 선명해진다.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말을 걸기 어려워서, 화내는 걸 또 다음날로 미루고 말았다. 왠지 미룰 뿐이라 생각하며 또 다음날 점심시간에 만나러 가자, 그녀는 정해진 듯이 토끼 무덤 앞에 서서, 코마치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애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색이 없는 눈물을 아카네는 그 날부터 계속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코마치 안에 뒤틀려 있던 감정이 깎아내려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미 그 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그런데도 코마치는 아카네가 매일 성묘하는 모습을 보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작은 등에 대고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매일 여기에 오는 거야?」


  등이 흔들리고, 얼마간 침묵한 뒤,


「이 아이들이 죽고,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천국에서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빌고 싶었던 거예요.」


  거기에 있던 것은, 인형도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연약한 여자애였다.
  정말 서투른 애다. 그렇게 사후의 행복을 비는 시점에서 이미 슬퍼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마치는 아직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회에서는 속마음을 감춰두고,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틀림없이 모두 그러겠지. 하지만 코마치 주변에서 이제 죽은 토끼 얘기를 하는 애는 없다. 싫은 일을 점점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내고 있다.
  무엇이 아카네를 그렇게까지 움직이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사소한 죄책감을 질질 끌만큼, 연약한 여자애라는 것은 알았다. 엄청 상냥한 애라는 것도.
  슬퍼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그녀는, 죄책감에 짓눌리며, 역시 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 애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코마치는 이 때 생각했다. 서투르고, 약하고, 그리고 누구보다 상냥한 애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로부터 잠시 뒤, 코마치는 이윽고 그 인형――키리바나 아카네와 친구가 되었다. 어째서인지 오빠인 하치만과 아카네가 먼저 만나서, 소개받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 아카네와 친해지고,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어, 좋은 부분도 싫은 부분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중학교에 올라가,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카네는 마침내, 그 전부 들킨 짝사랑을 성취해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만약 오빠랑 결혼하면, 코마치는 아카네 여동생이 되는 걸까?」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로 옮기자, 아카네는 한 쪽 팔꿈치를 댄 채로 한숨을 쉬고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다른 쪽을 보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컵의 얼음을 돌리는 탓에, 달그락달그락대는 소리가 나고 있다.
  그렇게 나른하게 있는 모습은 엄청 그림이 되지만, 코마치가 기대한 귀여운 반응이 아니라 약간 뾰로통해졌다. 오빠와 아카네가 사귄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주 놀린 탓인지, 아카네도 꽤 익숙해져서, 적당히 넘기게 되었다.
  8월 중순의 3시. 수험생인 코마치와 아카네는 예외 없이 일반적으로, 큰 예비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진 수업이 겨우 끝나고 빠져 나와, 자습실을 향해 라이벌들을 배웅하고, 우리들은 찻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코마치는 평소처럼 오렌지 주스를, 아카네는 카페오레를 주문해서 둘이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는데, 역시 이야기는 오빠와 아카네 얘기로 가고 말았다.


「아 그래도, 나는 역시 이제 와서 언니는 되고 싶지 않은데」


  코마치는 얘기가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카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후회를 조금 머금으며 아카네는 가슴 속 깊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표정은 왠지 후련했다. 그대로 뭔가 생각난 듯이 코마치에게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카네의 어깨에 비단 같은 흑발이 사르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까, 코마치가 생일이 빠르니, 내가 여동생이 되지 않아?」

「아니 시동생 언니 관계는 아마도 그런 기준이 아니야...... 아 그래도, 아카네가 여동생이라는 건 뭔가 신선할지도!」


  초등학생까지 코마치와 아카네의 키는 거의 비슷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 아카네의 키가 부쩍부쩍 자란 탓에, 둘이서 걷고 있으면 아카네가 연상 취급받는 때가 꽤 많아졌다.
  그것과 관해서는 큰 키나 용모 때문에 그런 거라 별로 신경 쓰진 않고, 그럴 만큼 사이가 좋다고 생각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다만 코마치는 계속 여동생으로 자라온 탓에, 따라서 「언니」로 불리는 것을 동경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아카네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그녀의 입으로 들으면, 둥실둥실해서 아무래도 침착되지 않는다.
  눈앞에서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는 아카네를 본다. 처음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커지고, 몸매도 여자다워진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졌다.
  옛날에도 인형처럼 예뻤지만, 현재는 보통으로 귀여운 여자애가 되었다. 본인이 내심 신경 쓰는 키도, 그녀의 얼굴과는 매우 잘 어울려서 걱정하진 않지만, 키가 작은 코마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고민이므로 그 자리에서는 위로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년 정도 있으면 그걸 알아차릴 거고.
  그런 그녀의 키는 최근 겨우 멈춘 것 같아서, 아카네는 신체 측정 결과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드물게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묻자, 「키가 큰 건, 할머니 대부터 물려받은 최악의 유산이니까」라며 몹시 야단스럽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카네의 할머니는, 아카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은 없지만, 한 번 생전의 사진을 아카네의 할아버지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처음에 본 무서운 아카네가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은 할머니는, 확실히 여자치고는 키가 컸던 것 같다. 거기에 아카네의 숙모도 손발이 늘씬하게 긴 장신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키가 큰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유전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게 사소한 것을 나쁜 유산이라고까지 말하며 이제는 없는 할머니에게 악담하는 아카네는 평소보다 훨씬 아이 같아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심결에 미소가 흘러넘친다. 그야말로 여동생처럼 사랑스러웠다.
  그런 코마치의 모습을 아카네는 이상한 듯이 보고 있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카페오레와 커피 우유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잘 모를 의문을 코마치에게 던졌다. 혹시, 방금 전 얘기는 농담이라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아카네는 농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코마치는 몇 할 정도 소망이 섞여있다. 언젠가 앞으로, 아카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코마치가 품게 된 소망 중 하나니까.
  만약 코마치의 소망이 실현되어, 아카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은 남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우는 게 서투르니까, 대신 기쁜 눈물을 많이 흘려주려고 한다.

 


  오래간만입니다, 플뤼겔입니다.

  본편 최종회에서 쓴 대로, 지금부터 예외편이 됩니다.
  전 5화 중 1화입니다.

  이야기가 좀 바뀝니다만, 이번부터 개행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실은 본편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의외로 양이 많아서 예외편만 했습니다.

  그러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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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편 그 1 ~올바르게 그녀를 소개하는 방법~



  14세. 그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위치한 연령이며, 따라서 사춘기라 불리는 복잡한 감정을 갖는다. 에반게리온을 탈 수 있는 것도 이 나이 뿐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간 어른스러운 면이 보이는 연령대. 남자는 점점 소년만화를 졸업하고, 중2병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반대로 여자는 점점 여자다워지기 시작해서 로리콘을 절망시킨다.
  그들, 그녀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자신이 애가 아니라는 자의식이고, 그래서 남녀 모두 몹시 발돋움을 하는 녀석들이 많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그건 역시 그저 흉내다. 담배를 입에 물어도 연기만 낼 뿐이고, 연애 같은 건 서로의 관계를 점차 깊게 해갈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역시 애이며, 사회도 상식도 모르는 이 연령대는 불안정하면서도 행동력이 있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훔친 오토바이로 질주하거나 밤에 학교 유리창을 깨고 돌아다니거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른들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탓인지, 14세 여자애가 모친이 된 드라마도 방송되거나 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세상이 보는 14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애, 한 단어로 축약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아무리 용모가 어른스러워도, 14세는 14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와 사귀는 고교생은 사회에서 조금 차가운 시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겨우 2살, 2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나이 차이는 큰 게 아니게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차이다. 그러고 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28세를 30이라고 하니 엄청 상처받은 표정을 하셨지. ......어쨌든 여중생 입장에서는, 고등학생과 사귀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로 스테이터스일지도 모르지만, 남고생 입장에서 여중생과 사귄다는 건 역시 좀 찔린다.
  즉, 비록 그렇게 들떠 버릴만한 사태에 빠져도, 쓸데없이 퍼뜨리지 말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려두는 편이 좋다. 그런 친구들 거의 없지만.


―――――――


「그 영화, 역시 별로 재미없었죠?」


  날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는, 그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신난 모습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점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보다 한층 더 눈부셔진 7월 중순. 학생 최대의 이벤트인 여름방학...... 시험이 끝나고 처음 휴일인 오늘, 나는 키리바나와 같이 밖에 나왔다. 서로 학기 기말 시험을 극복해낸, 그 포상이라는 거다.
  덧붙여서 지금까지의 정기시험과 달리 유키노시타라는 강력한 두뇌를 얻은 나와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스파르타 교육을 필사적으로 견뎌, 자기채점 결과 어떻게든 낙제점을 면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키노시타가 가정교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저것보다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사전에 재미없다는 걸 알았으면, 다른 걸 보는 게 나았잖아.」

「그래도, 어느 의미로는 재미있었어요.」

「그건, 재미의 의미가 다를 뿐이겠지.」


  시험이 끝나고 놀러가는 것은 미리 정했기 때문에, 시험 공부하는 사이 어디에 갈지 생각하기도 했다. 꽤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즈에 선배에게 상담했다.
  순애 사고계 빗치라는 드문 장르의 선배라면, 정통파 데이트를 몇 명과 반복했을 테니,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줄 거라는 기대를 담아서이다. 뭐, 배신당했지만.
  이즈에 선배는 히죽히죽하고 놀리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청춘이구나~」하고서는, 장식된 학교 지정 가방에서 A4파일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파일 안에 든 종이를 꺼내보자, 최근 출시된 영화 광고지였다.
  평소 하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선배는 「이 광고지에 있는 영화는 전부 글러먹었으니까, 절대 추천이야」라며 모순된 단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쓰레기 영화 애호가였지.
  어쩐지 이런 취미가 있어서 남친과 자주 헤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그 미소에 굴복해 광고지를 받아 버렸으므로, 키리바나에게 갈지 말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OK가 나왔다. 뭔가 나쁜 취미에 빠질 것 같아서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영화관까지 원정을 왔지만...... 아무튼, 영화는 기대 대로라고 할지, 아니나 다를까였다.
  모처럼의 휴일인 것도 있어서, 영화관에는 부부나 친구 등 많은 사람으로 흘러넘쳤음에도, 우리들이 들어온 관은 놀라울 정도로 관객이 적어, 우리들 외에는 2, 3조밖에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손님들도 극장에서 나오자 한결처럼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영화관에서 나온 뒤는, 갈 곳도 없이 오락가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며칠 전에 장마가 개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오전부터 태양이 번쩍번쩍 빛나, 건물 유리를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 아침 특유의 맑은 공기가 어딘가 기분 좋았다.


「그래서, 이후는 어떻게 할까? 아직 밥 먹기에는 좀 빠르잖아.」

「그러네요...... 하치만 오빠는 평소에 어디에 가나요?」


  한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키리바나가 꾸밈없이 묻는다. 그런 모습임에도 키리바나는 땀을 흘리진 않아 보인다. 나는 더위에 습격당해서, 이미 땀이 몇 방울 흐르고 있는데, 여자애는 불가사의하다.


「그렇게 물어봐도 딱히. 나도 서점이나 도서관 정도밖에 안 가. ......남은 건, 게임센터 정도군.」

「게임센터...인가요? 그러고 보니 거기 간 적이 없어요.」

「그래? 친구와 스티커 사진 같은 거 안 찍어봤어?」


  여중생들은, 놀러갈 때 스티커 사진 같은 걸 찍는 이미지가 있던데. 중학교 때도 스티커 사진 교환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 같고.
 코마치도 가끔 키리바나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내게 보이며, 「얘 귀엽지?」라고 물어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른다. 실제로 귀여우면 대답할 여지가 있지만, 사진이 미묘할 경우 실물은 거의 유감이기 때문에. 「아, 아무튼... 귀엽지 않겠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츤데레가 아니라.


「요즘에는 게임센터가 아니어도, 스티커 사진기는 있으니까요. 우리들이라면 그쪽이 가기 쉬워요.」


  뭐 게임센터라는 곳은 불량 집합소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피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웃로는 아무래도 놓치기 쉬우니까. 반대로 쿠와타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 쿠와타라는 야구 선수가 「아웃로는 필요 없어요. 정중앙으로 160킬로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 부근 숙녀 옷 판매점 옆에, 스티커 사진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스티커 사진 구역이 남자 금지가 된 것 같지만, 저런 곳에 놔두면 남잔 애초에 안 갈 거다.


「모처럼 얘기가 나왔으니, 게임센터라도 갈까요?」


  키리바나가 발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서, 그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가기 힘들지 않으려나?」

「남자와 함께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을까요?」


  뒤돌아서 내게 웃어주고는, 그대로 발을 멈추지 않고 키리바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게임센터라는 말을 듣고 한 남자 얼굴이 멋대로 떠올랐지만, 그 표정이 매우 괘씸해서 밟아주고는 키리바나의 뒤를 따라갔다.


―――――――


  역에서 조금 걷자, 주위의 화려함에 분간이 안 되는 여러 건물이 있었다. 가까이는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라면집이 북적거리는 중, 끊임없이 전자음이 울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거리의 게임센터다.
  술집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하고, 고교생이나 중학생 나머지는 다니던 길로 다니는 가족동반이 하나 둘 정도 있을 뿐이었다. 저녁 이후의 술 담배 냄새와는 또 다른, 젊음과 따뜻함 그리고 음침함이 섞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키리바나가 게임센터로 연결되는 자동문을 보며, 감개 깊은 듯 눈을 떴다.


「뭐야, 와본 적 없었어?」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여자가 볼 일도 없이 들어갈 곳이 아니라구요.」


  토라진 듯 대답하고, 키리바나는 약간 더러운 자동문을 빠져나갔다.
  나도 키리바나를 쫓듯이 점내에 들어가자, 홍수 같은 소리가 일제히 덮쳤다. 메달이 서로 스치는 소리, 고저음이 얽힌 전자음에 소란스러운 사람 목소리, 그것들이 합쳐진 불협화음이 하나가 되어 귀에 닿는다. 그러나, 그 어수선함이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키리바나는 평소 그대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잡음의 물결에 삼켜지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 놀란 모습으로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접한다.


「왠지, 여러 가게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의외로 깔끔하게 녹아들었잖아.」


  여기 게임센터는 남자취미인 격투기나 음악게임, WCCF 등 그리고 여자취미인 크레인 게임이나 스티커 사진 구역을 철저히 나누었다. 최근에는 커플이나 여자 그룹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싶어서인지, 입구에 크레인 게임을 배치하고, 나머지를 양극단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커플 한 조가 있고, 남친이 봉제인형을 잡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 팔의 행방을 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자, 단골인 듯한 사람들이 벌써 눌러 앉아서, 각자 묵묵히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청결감이 넘치는 하얀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스티커 사진관이 모여 있는 남자금지 구역으로 발을 디딘다. 네온 라이트 같은 빛이 끊임없이 깜박이는 여기는, 방심하면 빛에 빠져버릴 정도다. 그 눈부심을 키리바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바람으로, 안쪽에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년 전에 도촬인가 뭔가 해서, 이 구역은 커플이 아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는 흥에 취한 중고생이나 술 마신 대학생이, 남자 그룹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광경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엄청 갸루 같은 여자애가 그려진 커튼에 압도되면서 우왕좌왕 거리고 있었는데, 「여기예요.」라며 키리바나가 손을 잡아당긴다.
  너무 갸루 같은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시 여자답게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그나저나, 갸루=스티커 사진이라는 발상이 낡구만.
  키리바나가 적당히 고른 곳으로 들어갔더니, 조명 사진기를 조금 넓혀, 엄청 호화롭게 만든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터치 패널에는 유이가하마가 좋아할만한 발랄한 자체가 떠 있었다. 눈이 아프다.
  돈을 넣고 키리바나가 조작하자, 여러 프레임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와서 키리바나가 내게 물어본다.


「하치만 오빠, 어떤 게 좋아요?」

「잘 모르니까, 적당히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난처한데요......」


  눈썹을 바싹 오므리고 대답하면서도, 키리바나는 아-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하며 즐거운 듯 고민하면서 화면의 프레임을 바꿔간다.


「그래도 하치만 오빤 눈 탓에 카메라를 잘 못 받아서, 조금 손해네요.」

「야」

「농담이에요. ......그럼 이렇게 눈을 숨겨보면, 의외로 멋지게 찍힐지도 몰라요. 봐요, 저도 하고 있고」


  팔을 들어 올려서, 눈앞에 두고 눈을 가린다.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입 끝이 풀어진 것을 보면, 진짜 농담이리라. 하지만 그거다. 아무래도 그거로밖에 안 보였다.


「나는 상관없지만, 넌 절대로 하지 마.」


  무심코, 말이 세게 뛰쳐나온다.
  남자가 그렇게 가리는 것은 별로 문제없지만, 여자애가 눈을 가려버리면, 그걸로 밖에 안 보여서 큰 문제다.
  키리바나는 내 말에 몹시 놀라, 머리를 크게 갸우뚱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뭔지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거야 그렇다.
  그대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화면을 누르고 설정을 진행시키고는, 「이거면 괜찮아요.」하고,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딱딱한 미소를 짓고, 기계에서 흐르는 전자음에 따라서 몇 장정도 찍은 뒤에 밖으로 나오자, 찍은 사람이 편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키리바나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해간다. 키리바나는 눈의 썩은 상태를 어떻게든 줄일 수 없는지 고집스럽게, 여러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마침 반짝반짝을 눈 옆에 배치하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키리바나에게 말을 해두고, 스티커 사진 구역에서 나왔다. 역시 게임센터에서 스티커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따분하다. 적당히 놀 필요가 있다. 키리바나가 뭔가 마음에 들만한 게 없는지, 크레인 게임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 저 자는. .....하치만이 아닌가!」


  엄청 숨 막힐 듯 더운 소리에 불려 마지못해 뒤돌아봤더니, 거기에는 목소리대로 숨 막힐 듯 더운 풍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녀석,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그 거체를 흔들며 나에게 왔다.


「뭐야, 자이모쿠자인가......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특별히 없네! 단지 하치만의 얼굴이 보였으므로, 무심코 말을 걸었을 뿐이다.」

「어째서 넌, 그런 면만 여자 같은 거냐...... 기분 나쁘구만. 너도 놀러온 거 아냐?」


  그 목소리와 풍모이면서, 자켓을 겉에 두른 탓에,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이 녀석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매우 덥다.


「음, 역시 창작에는 인풋이 중요하니까 말이지. 백지와 마주 보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에 접해서 창조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글이 전혀 진행 안 돼서, 현실 도피로 놀고 있다는 건가.」

「그, 그렇게도 말하지......흠. 자네도 나처럼 혼자인가?」

「아아, 아니...... 저거다.」


  무심코 말끝을 흐려버린다. 이 녀석에게는 애초에 키리바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거기에 사귄다는 것을 말하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가만히 자이모쿠자를 본다. 말투로 보아 키리바나와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대면시켜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그보다, 이 자식과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긴 한가?
  우선 적당히 여길 떠나, 키리바나를 데리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피난하기로 할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하치만 오빠.」


  그렇게 생각해서 입을 열려고 한 참에, 키리바나의 맑은 목소리가 자이모쿠자에게 닿았다. ......타이밍 나쁘구만.
  키리바나는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눈을 깜박인 뒤 슬쩍 나를 엿본다. 그리고 마침 입을 뻐끔뻐끔하던 자이모쿠자를 무감동한 시선으로 찬찬히 보았다.


「......친구 분과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저는 실례하겠어요.」

「어이 이봐, 도망치지 마」


  그대로 몸을 돌려 피난 가려는 키리바나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멈춰 세운다. 호리호리하고 하얀 팔은, 서늘했다.
  키리바나는 입을 뾰족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른 방향을 계속 보고서 말했다.


「보세요, 친구 분도 기다리는 것 같고, 모처럼이니 느긋하게 얘기해주세요.」

「나도,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지쳐. 너 자이모쿠자한테 들킨 시점부터 나와 같은 운명이야.」

「그래도 저, 이런 분은 서툴러서, 무슨 얘길 해야 좋을지 몰라요.」

「.....우선 목소리를 낮춰. 이 녀석, 의외로 쉽게 상처받아」


  봐, 자이모쿠자가 약간 울상 짓고 있잖아.
  키리바나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내 옆에 서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팔을 놓는다.
  자이모쿠자는 아직도 입을 허 하니 벌린 채, 팔을 바들바들 털고는 키리바나를 가리키면서


「하, 하치만...... 이 부인은?」


  키리바나의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진 게 느껴졌다.


「부인이라니, 얘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아아, 저거다...... 키리바나라고 하는데, 여동생의 친구이자...... 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추가된 새로운 직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일단 키리바나에게 눈짓을 보냈더니, 딱히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이모쿠자의 마음을 더 자극했는지, 「켁, 리얼충이」라고 밉살스럽게 내뱉고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하치만, 잘못 봤네. 나와 함께 동정 친화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안 그랬거든, 그럴 생각도 없어. 그리고 넌 믿지 마」


  키리바나가 진심으로 깬다는 게 느껴져서, 부인해둔다.
  자이모쿠자는, 마치 목성에서 돌아온 듯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가슴을 뒤로 젖히고는, 엄청 과장되게 양손을 벌렸다. 배의 지방이 물컹 흔들린다.


「동정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리얼충들에게 무엇이 가능하지? 항상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한 줌의 동정이다.」

「틀려. 그보다 동정이라면 세상을 만든다 쳐도, 후세를 못 남기잖아.」

「애당초, 이 소녀의 어디에 연하 소꿉친구 요소가 있다는 것인가?」


  키리바나가 연하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쓸데없이 강하게 되묻는다. 상쾌할 정도로 비열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좋아하게 되진 않겠지만.


「네? 저 말인가요?」


  설마 자신에게 화제가 돌아온다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근처 유리 안에 들어있는 봉제인형을 보고 있던 키리바나가,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본다.
  오늘의 키리바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에, 반소매 블라우스를 맞춰 입은 모습이라, 뭐 어른스러운 차림이지만.
  눈을 깜박한 키리바나가, 나와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이모쿠자는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돌리고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데 하치만, 이 애와는 집이 가까운가?」

「아니. 걸어서 10분 정도다.」

「훗, 그 거리로 소꿉친구라니. 아다치 선생님이 들으면 폭소하겠군.」

「그거 거의 맞닿은 이미지잖아. H2라면 집이 좀 떨어져 있잖아.」


  애초에 이웃에 동갑내기 여자가 사는 편이 드물잖아. 유유백서도 소꿉친구 설정이지만, 집은 멀리 있고.
  키리바나는 느낌이 바로 오지 않은 건지 「술집 자식이라고?」라는 둥 잘 모를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응, 왜 영웅만 아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연하인데, 로리 얼굴이 아닌데다가 쓸데없이 키가 크고...... 무엇보다 하치만을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지 않잖나」

※ 역주 : 키리바나가 하치만을 부르던 호칭은 원래 ~さん인데, 우리말에 딱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어서 둘의 관계를 고려해, 번역할 때 오빠라고 했었습니다.

  한층 더 키리바나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아니, 여동생의 친구에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게 하면, 범죄잖아.」


  그래도 아무튼, 자이모쿠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조금은 알겠다. 얘는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그것에 비례해서 얼굴 생김새나 언동이 매우 어른스럽다. 교복을 입지 않으면 가끔 중학생이라는 것을 진짜로 까먹을 것 같다.
  옆에 선 키리바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어깨까지 뻗은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다소 짧아졌지만, 묶진 않는다. 계속 스트레이트이다.
  ......그래서일까, 키리바나는 자연히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키리바나는 연하 요소가 거의 없구만.


「알겠나, 하치만. 연하 소꿉친구라는 것은, 단발에 키가 작고, 거기에 가슴도 없지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불러주는, 그런 애가 좋은 것이야. 오빠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안타까움, 그것이 최고인 게다. 그런 옆집 누나 같은 연하 소꿉친구 따윈, 결국은 이류다.」


「......네네, 그럼 다음에 그런 라노베라도 써봐.」


  그거, 거의 자이모쿠자의 희망이잖아.
  그런 기분 나쁜 망상을 들은 키리바나는, 얼굴을 내내 찡그리고 있었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표정이 확 밝아져서는,


「......그렇다면, 저기, 자이모쿠자이 분이 말씀하신 소꿉친구 요소에, 하나 들어맞는 게 제게 있어요.」

「흣, 흠. 뭔가?」

「이름, 미묘하게 잘못됐어.」


  그런 내 잔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키리바나는, 코마치 같은 미소를 띠고는, 슥하고 나와 팔짱을 끼며,


「저, 어릴 때부터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아이처럼 슬쩍 혀를 내밀었다.


「......」

「......」


  그 후에 울려 퍼진 자이모쿠자의 무슨 말인지 모를 비명을 들으며, 최근 알게 된 키리바나의 뜻밖의 일면을 떠올린다.
  ......키리바나는 꽤나, 장난꾸러기인 듯하다.




  http://novel.syosetu.org/38226/





  소녀 때 Ⅸ ~약간의 거짓말~ + 에필로그




  하치만 오빠와 교제한 뒤 처음 맞은 주말은,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하루는 하치만 오빠와 둘이서 유키노 씨와 유이 씨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우리들이 교제하게 된 것을 듣자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웃으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도중부터는 여자 세 명의 걸즈 토크가 되어, 하치만 오빠의 고백에 대해 유이 씨에게 재촉 받은 대로 이야기하게 돼서, 하치만 오빠가 토라진 듯이 얼굴을 돌렸던 것이 인상적입니다.

  왠지 모르게, 전에 만났을 때보다 봉사부 세 명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아서 물어보자, 「우리들 친구가 됐어.」라고 유이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전부터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틀림없이 처음부터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관계를 말로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깊어졌던 것이 정말로 기뻐서, 저도 유이 씨를 따라 살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날씨가 쾌청했던 이유도 있어서, 코마치와 둘이 데이트에 가서 새로 나온 여름옷을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도중에 처음으로 하치만 오빠와 연인이 된 것과 그리고 앞으로도 친구로서 잘 부탁한다고 전했습니다.

  말하는 도중에 부끄러워져서, 조금 목소리가 상기된 것을 부끄러워했더니 코마치가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걸 조금 반론하다가 점점 즐거워져서 마지막에는 둘 다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의 저녁식사. 식탁에 돈까스, 닭고기 볶음과 해산물 샐러드를 놓고 셋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우물거리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집 말인데, 그 땅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와서 말이다. 허물기로 했어.」

「그렇구나. 상당히 내버려뒀었지.」


  저는 어땠냐면 튀김의 칼로리가 신경 쓰여, 해산물 샐러드만 접시에 담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중간한 대답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의 말을 보충하듯이 어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언이야.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그대로 둬달라고. 할머니가 살았던 곳을, 할 수 있는 한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아.」

「......정말로, 한결같네.」


  새우를 삼킨 뒤, 무심코 본심이 밖으로 새어나옵니다.


「뭔가 말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할아버지 집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우선은 어머니가 내일 휴가를 내서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리할 때,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좋을 대로 하라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라 해도 특별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재에 잠든, 할머니를 위해 수집한 고서의 행방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 책을 팔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건네주는 것은 꺼려집니다.

  그 다음날, 코마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머니를 도우러 할아버지 집으로 갑니다. 오래되어 잘 열리지 않는 현관을 빠져나가자, 마지막에 본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주자가 없어진 건물은 쇠퇴하듯이, 사람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느 정도는 정리한 것 같아, 소품이나 식기류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된 벽걸이 시계는 몇 년이나 전에 작동을 멈추어 원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책상 위로는 할아버지가 썼을 거라 추측되는, 고급스런 넥타이 핀이나 손목시계가 놓여있었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다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재를 들여다보니 이쪽은 아직 손이 닿지 않아, 건조한 머리카락 냄새가 방안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청소만은 어머니가 한 것 같아서, 책꽂이에 손을 대봐도, 손에 먼지가 묻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전처럼 할머니 방을 갔더니, 어머니가 장롱 앞에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눈치 채자, 「어서 오렴」이라 말하고, 다시 단상으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무슨 일이야? 그런 데서 가만히 있고」

「그게 말이야, 할머니가 쓰던 기모노를 어떻게 할까 해서」


  어머니가 뺨에 손을 대고, 서랍 안에 선명하게 피어있는 채색을 보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양가 출신이라서, 젊었을 때 입었던 옷이 좋은 거야. 이 오오시마 명주도 굉장히 고급이고, 그 *우치카케(打掛)는 좀 더 비쌀 것 같아. ......하지만 우치카케는 어머님이 결혼식에서 입은 것 같아서 팔 수도 없잖니.」

※ 우치카케 : 화려한 신부의상


  추억의 기모노, 라고 하면 할머니는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소중한 물건일 것입니다.

  일생에 한 번, 결혼식에서밖에 입을 수 없는 너무나 호화로운 우치카케. 할머니가 몸에 두르고 나서 몇 년 지났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완전히 퇴색하지 않은 그대로,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새어나왔습니다.


「그거, 내가 결혼할 때 입고 싶어.」


  언젠가 제가 결혼할 때, 이 우치카케를 입고, 그리고 마음껏 행복한 미소를 짓고 싶다고 이 때 생각했습니다. 이 할머니와 매우 닮은 용모와 성격인 채로.

  결혼은 아직 상당히 나중의 이야기라서 그런 나이가 된 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바로 일전에 조금 의식할만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아직 안 잡힌 너구리 가죽이 알게 뭔가요?

※ 아직 안 잡힌 너구리 가죽을 파는 생각은 하지 마라 : 불확실한 것으로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의미.


  어머니는 제 말을 듣자, 부드럽게 꽃이 피는 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그러네, 아카네는 할머니를 닮아서 아름다우니까, 반드시 잘 어울릴 거야.」

「......응」


  그 밖에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찾아보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방을 뒤로하며 다른 방을 정리하러 갔습니다.

  벽에 기대어 멍하니 방안을 바라봅니다. 이곳도 조금 더 지나면 해체되어 할머니의 잔향이 완전히 스러지겠지요.

  할머니의 흔적을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보던 중, 하나만 머리에 걸리는 것이 있어, 방구석에 있는 찬장의 서랍을 엽니다. 노송나무의 향기가 나던 중에 전처럼 칠흑색 비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꺼내어 손바닥에 살짝 놓습니다. 아름다워서 빨려 들어갈 만큼 검고 윤이 나는 그것은, 서늘한 감촉을 줍니다. 이것도 분명, 소중한 것이겠지요. 남에게 건네줄 수 없고, 먼지를 쓰게 내버려둘 수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과중할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있을 때 머리에 꽂아볼까 합니다.

  모처럼이므로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을 모아볼까 했지만, 잘 묶지 못하고 포니테일 밖에 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조금 납득이 되지 않아서 장롱으로 갑니다. 그리고 방금 제 것이 된 우치카케를 손에 듭니다.

  조금 먼지 냄새가 나는 우치카케를, 교복 위로 대강 걸쳐 입었습니다. 상상한 것보다 옷이 무거운 것에 놀라며, 어울릴지 어떨지 기대하면서 화장대의 삼베를 치우고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의가 중학교 교복인 것이 문제인 건지, 머리 모양이 문제인 건지, 화장을 안 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치카케의 품위에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른스러운 표정을 만들어봐도, 우치카케는 저와 요만큼도 어울려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맵시 있게 입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강 제 옷차림을 만끽한 뒤, 우치카케를 다시 개려고 했는데, 개는 방법을 몰라서 난처합니다. 다다미 위에 놓고 접힌 자국을 따라 개어 봐도 잘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부르려고 일어섰는데, 다다미 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러나 전보다 퇴색하지 않은 봉투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떨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 아무래도 이 우치카케 안에 끼워져 있던 것 같습니다.

  쓴 사람은 짐작이 갔으므로, 전처럼 주저 없이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편지지를 읽어갔습니다. 소극적인 내용이라도 딱히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결혼한 후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생활했는지를 지금까지보다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접고, 가슴에 꼭 껴안습니다. 쓰여 있던 글을 되새기자, 선명한 감정이 더 없이 밀려들어 와서 마음이 간단히 흔들립니다.

  뺨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나서, 이 소중한 편지를 쓴 사람을 떠올리며 투덜거렸습니다.


 

 

 

( http://acidrain.ky-3.net/%E7%B5%B5/%E3%81%A8%E3%82%8A%E3%81%82%E3%81%88%E3%81%9A )



「뭐예요, 할머니 평범하게 행복했었잖아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앞에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받았습니다.

  다만, 그래도 하나만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건 확실하게 말로 전하세요, 이 바보.」


―――――――


  다음 일요일, 날씨가 많이 풀린 이유도 있어서 저는 습관이 된 성묘를 하러 갔습니다. 지금껏 한 대로 묘를 청소하고, 꽃을 세워두고, 손을 모아 죽은 세 명에게 말을 겁니다.

  물건을 몇 개 정도 받은 것과 최근 있던 기쁜 일을 보고한 뒤, 마지막에 남동생을 향해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성격인 채 살아가려고 합니다. 당신이 죽었을 때 슬퍼할 수 없었던 저인 그대로라서, 죄송합니다.

  남동생의 뼈를 묻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말이 없는 차가운 묘를 보고 말합니다. 대답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소의 순서를 마친 뒤, 가방에서 한 통의 편지지를 꺼냅니다. 제가 마지막에 찾아낸, 할머니가 할아버지 앞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다른 편지는 제가 정중히 맡아서, 방 한쪽 구석에라도 보관할까 생각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편지만은 제대로 할아버지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근처를 둘러보고, 그 밖에 참배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성냥을 비벼서 불을 붙입니다.

  한들한들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오렌지색 불을, 편지지에 가져다 댑니다. 편지지의 겉면을 맛보듯이 접하던 작은 불은, 점점 편지지를 삼켜갑니다.

  오래된 종이가 조금씩 티끌이 되어가는 모습에 묘하게 매료됩니다. 할머니가 살았던 증거 중 하나가, 단순한 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갑니다. 제가 남겨뒀다면 분명 큰 버팀목이 되었을 그것은, 이미 그 의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반 정도 편지지를 침식하자, 집은 왼손까지 날카로운 열이 전해져, 점점 들기 괴로워졌습니다.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어중간하게 태우면 공양이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너, 뭘 하고 있느냐!」


  그런 상태로 약간 고민하면서, 불길이 편지지를 삼켜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묘지 입구에서 엄한 소리가 날아왔습니다.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이 절의 주지 스님이 목소리 그대로 엄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네? 저기, 이건. ......앗」


  제가 횡설수설하는 동안에, 불은 전부 다 타서 마지막에는 제 손가락을 살짝 스치고 툭하고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불이 닿은 부분을 손대어보니,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상입니다.

  처음에는 무서운 표정을 짓던 주지 스님은, 그런 제 멍한 모습에 맥이 빠졌는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우선, 여기로 오거라. 아내에게 치료하게 할 테니.」


  설교는 도착할 때까지의 얼마 안 되는 시간에 행해집니다.

  불을 취급한다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다뤄라. 애초에 이 절은 공양을 안 하니까, 공양하고 싶으면 좀 더 큰 절에 가라. 너도 고등학생이니 좀 더 절도와 상식을 갖고 행동하는 편이 좋다, 등등.

  진지한 얼굴로 하지만 저를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하는 게 재미있어서 살짝 웃자, 듣고 있는 거냐면서 더 혼나고 말았습니다.

  본당과 연결되는 툇마루로 따라갔더니, 주지 스님은 「여기서 당분간 손을 차게 해두거라.」 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흐르는 물에 담급니다. 차가운 물이 닿자 통증이 심해졌지만, 그것도 한 순간으로 점점 통증이 누그러져갑니다.

  당분간 차가운 물의 상쾌함을 맛보고 있던 중, 툇마루로 이어지는 다다미방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묘 앞에서 불장난해서 화상 입은 여자애가 너였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하듯이 말을 걸어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실례지만, 처음으로 만난 게 맞죠?」


  살갗이 흰 초로의 여성은 재미있는 것을 보듯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웃었더니 눈이 가늘어져서, 얼굴이 여우처럼 되었습니다. 양손에는, 반창고와 연고가 각각 들려 있었습니다.

  제가 흐르는 물에서 손을 꺼내려고 하자, 여성은 「좀 더 차게 하는 편이 좋단다.」라고 하며 툇마루에 앉아서, 방금 전의 제 질문에 답했습니다.


「너, 늘 우리 절에 와서 얼굴을 기억한 거란다.」


  여성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청바지에 싸인 가느다란 다리를 아이처럼 흔들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주지 스님의 부인이라서 그럴까요. 조금 속세와 멀어진 분위기와 산뜻하게 웃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절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동안 아주머니는, 제 모습을 따분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후훗하고 숨을 내쉬고는 예리한 눈초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네」

「어째서 그렇게 자주 참배하러 오는 거니?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 정도의 나이에 그렇게 참배하러 오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어」

「......긴장을 늦추면, 죽은 사람을 멀리 두고, 그대로 놓아버릴 것 같아요.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아주머니는 제 눈을 빤히 바라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근처 숲에서 휘파람새의 장단이 어긋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슬슬 됐으려나. 안으로 오렴.」하고는 문 너머로 들어가서, 당황하며 손을 닦으면서 아주머니를 따라갑니다.

  유서 깊은 일본 가옥은 역시 다다미 방 뿐으로, 여기저기에 풀냄새가 감돌아서 절로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멀리서 자갈을 밟는 소리와 나무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제가 치료한다고 호소했지만, 아주머니는 전혀 듣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되는대로 치료를 받습니다. 아주머니는 유백색 연고를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왜 장례식 뒤에도 49제나 3주기를 한다고 생각해?」

「사후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건 고인에 대한 이야기지. 그럼 유족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왠지 학교 선생님에게 배우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마음의 정리인가요?」


  제가 대답함과 동시에 연고가 발라집니다. 피부에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이렇게 치료받는 건 초등학교 이래로 처음이라고 마음 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맞아. 종교라는 건 기본적으로 산 사람을 위해서니까, 구제나 해탈 운운을 제외하고도, 반드시 세속적인 이유가 있어.」

「하아......」


  아주머니는 기세 좋게, 가볍게 말합니다만 그 말은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습니다.

  절이라는 것은 시주하는 사람은 어쨌든, 주지 스님이나 스님들은 교의를 진지하게 믿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이 이런 말을 하면 과연 부처님이 허락해주실지 어떨지 모릅니다.

  그런 제 생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한 아주머니는, 제 대답을 듣고는 계속 말합니다.


「이런 생각을 주지 스님은 싫어하지만, 조금 전 말한 49제나 3주기도, 처음은 유족들을 위해 마련한 기간이라고 생각해. 이만큼 지났으니까, 고인에 대해서는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하지만 고인을 잊으면 안 돼요.」

「딱히 완전히 잊으라는 게 아니야. 그래도 가끔, 그래. 일 년에 한 번 정도 떠올리고, 사과하거나 사후의 안녕을 빌거나 할 정도로 괜찮아. 그것만 해주면 충분해.」


  거칠고 울퉁불퉁한 반창고가 손가락에 감겨집니다. 말한 그대로 대충 감긴 탓에, 손가락이 전혀 구부러지지 않게 되었지만, 받는 입장이니만큼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뭔가, 적당한 사고방식이네요.」

「적당한 거면 돼. 물론 우리들 입장에서는 묘 청소 정도는 하러 오길 바라지만, 그 이외는 뭐. 거기에 고인의 행복을 빈다고 해도, 매월이라면 지치겠지? 고인도, 너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제 후회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울 수 없었던 것은, 언제까지나 제 안에서 그림자를 드리우겠지요.

  그것을 잊으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말한 본연의 자세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조금 살기가 편해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머 그래? 그렇다면 이번에, 주지 스님 대신에 반야심경이라도 불러볼까?」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아주머니는 농담인 척 말하고는, 「이걸로 끝」 하며 제 손등을 탁 두드렸습니다. 아직 아픔은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편해진 것 같습니다.

  재차 아주머니에게 감사인사를, 주지 스님에게 사과하고 절을 뒤로 합니다. 경내에 깔린 옥석을 밟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발이 잠겨갑니다.

  다음에 참배하는 건 오봉 때로 합니다. 한동안 소식이 없겠지만, 대신 그 때 많이 이야기합시다.


―――――――


  처음으로 둘이서 탄 자전거는, 예상외로 자세가 불안정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덜컹덜컹 짐받이가 흔들려, 저는 자전거에서 떨어질까봐 무서워하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딘가 잡을 것을 찾아봐도, 붙잡을 곳이 하치만 오빠의 몸밖에 없습니다. 또 짐받이를 잡으면 다리를 뻗다가, 스커트 안이 보일까 하는 불안에 주저합니다.

  그렇지만 하치만 오빠의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것은 역시 부끄럽고, 그 쪽도 사양할 것입니다.

  당분간 자전거에 흔들리면서 생각하다가, 미덥진 못하지만 하치만 오빠의 교복을 잡기로 했습니다. 조심조심 셔츠 옷자락을 잡자, 하치만 오빠가 신경 쓰였는지 뒤돌아봐서 쑥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성묘하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하치만 오빠와 만났는데, 설마 이런 체험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하치만 오빠가 할아버지의 책 몇 권을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행운이라는 건 겹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6월의 푸른 하늘 아래, 자전거를 둘이서 타며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우리들은, 정말 연인 같다는 생각에 허둥지둥합니다.

  조금만 얼굴을 내밀자, 정면에서 습기 찬 바람에 부딪힙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근처를 둘러보자, 아직 오전중이라 그런지, 길을 가던 사람들은 어딘가 한가로운 모습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자전거에서 보이는 경치는 평온하고, 가로수를 빛나게 하는 신록이 한층 더 눈에 띄었습니다.

  자전거의 흐름에 몸을 맡기던 중, 한 가지가 떠올라서 입을 엽니다.


「하치만 오빠. 그러고 보니, 하나 말하는 걸 잊은 게 있어요.」

「뭔데?」


  하치만 오빠가 시선을 살짝만 담아서 대답했습니다.


「의외로 저, 일본식 옷이 잘 어울린답니다?」

「그, 그래......」


   그것은 처음으로 한 작은 거짓말과 대수롭지 않은 선언입니다. 지금은 아직 어울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우치카케를 맵시 있게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여성이 되어, 그 모습을 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기막힌 듯이 수긍했습니다. 그 어중간하게 대답하는 방식도 재미있고, 그리고 귀엽게 느껴져서 저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하치만 오빠의 등에 맡겼습니다.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집니다.

  태양이 구름에 막혀, 옅은 그림자가 땅에 퍼져갑니다. 아직 봄 날씨를 머금은 바람이 흘러들어와, 제 머리카락을 휩쓸어갑니다. 긴장으로 인한 고동은 이윽고 얼굴까지 올라와서, 이렇게 보내기 쉬운 날씨인데, 더위가 맹렬하게 덮쳐왔습니다.

  ......어쩌면, 여름은 이미 눈앞까지 왔을지도 모릅니다.


―――――――


  에필로그 ~봉하지 않은 편지~


  의사에게 남은 시간을 듣고 나서, 제 인생을 자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죽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무섭습니다. 사후 세계를 공연히 믿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후에 찾아올 깊은 어둠 속을 상상하면, 밤에도 잘 수 없을 정도로 떨립니다.

  결코 올바른 인생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되어, 그리고 그 사람의 돈으로 생활했던 사람의 인생이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제 주변에는 항상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고,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제 오빠나 언니들은, 당신과 같이 가끔 얼굴을 보이는 탓인지, 이 연령이 되어도 이상하게 인연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웃 분들과도 반상회 행사로 종종 교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속에 계속 있는 듯한, 그렇게 온화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지낼 수 있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틀림없이, 제 인생은 행복했겠지요. 당신에게는 폐를 끼쳤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되돌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애정이나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정말 제멋대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에 감사하게 해주세요.

  이런 저와 결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런 온화한 나날은 보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기적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보답으로, 당신의 남은 인생이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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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2014) 11월 중순으로, 약 8개월간의 투고가 되었습니다.

  봐주신 분, 감상을 써주신 분, 평가해주신 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UA가 늘어나거나 감상을 받거나 평가를 받을 때마다 기운이 나서 어떻게든 완결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카네와 아카네의 할머니 캐릭터가 가장 처음으로 생각나서, 그 이래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뭐, 짝사랑한 여자애를 쓰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지만요.

  처음에는 아카네를 움직이는 것이 꽤 큰일이라, 이 애다운 행동은 뭘까, 이 뒤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걸려서, 꽤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결까지 도착했을 때, 이제 더는 아카네에 대해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허전해지기도 하고...... 정말로 이 애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역시 엔드 마크는 어디선가는 찍어야 하므로, 이 시점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라고 썼습니다만, 메인 줄기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거북이 갱신이 됩니다만, 예외편을 5편 정도 써볼까 합니다. 후일담을 3화 정도로, 아카네에게 차인 남자애 시점에서의 이야기를 1화. 나머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하지만 본편은 이걸로 완결이라는 걸로, 거듭해서 말하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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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첨부한 그림은 작가 분이 그린 게 아니지만 제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그림을 우연히 보고 어울리겠다 싶어서 임의로 넣었습니다. 아카네와 다른 면은 분명 있겠지만 그건 양해를...



  http://novel.syosetu.org/38226/





  소녀 때 Ⅷ ~커다란 손~



 
  코마치와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나서 며칠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하치만 오빠에게 사과하지 못했습니다.

  요 며칠 간 몇 번이나 사과하러 가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코마치에게 상담했더니,


「그건 안 돼. 오빠가 먼저 심한 말을 했으니까, 아카네 먼저 사과하면 안 되지.」


  이렇게 말하며 저 먼저 사과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납득해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사과하고 싶어지고 다시 코마치가 말리는, 그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돌아갈 때도, 며칠 간 계속 하게 된 대화를 주고받으며 코마치와 하교하고 있었습니다.

  해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거리는 저녁노을에 물든 하얀 그대로였습니다. 점심 경에는 상당히 기온이 올랐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내기 좋은 정도까지 내려가서 바람이 기분 좋은 그런 때입니다.

  쭈욱 늘어난 검은 그림자를 한 걸음씩 밟으며, 며칠 사이 몇 번째가 될지 모르는 「그래도」를 제가 말하기 시작했을 때, 하치만 오빠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순간 나온 말이 딱딱한 인사였던 것을 후회하면서 인사를 한 뒤 얼굴을 들자, 하치만 오빠의 탁해진 눈과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좋은지 모르게 됩니다. 거북함과 멋쩍음이 엄습해서 무심결에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 후회했습니다.

  코마치가 마침 잘됐다고 말하고 떠나서, 이곳에 저와 하치만 오빠만이 남겨졌습니다.

  나무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나,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가슴이 괴로울 정도로 아파지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치만 오빠가 한 걸음 다가옵니다. 조금 기울어진 해에 늘어난 하치만 오빠의 그림자가, 저의 그림자와 교차합니다.

  그것만으로 제 사고는 뿔뿔이 흩어져, 다시 모을 수가 없게 됩니다.

  조금 멍한 도중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리저리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술을 몇 번이나 움직여보지만, 그저 한숨이 되어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무산해갑니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결국 평소에 하던 인사가 입에서 나왔습니다.


―――――――


  초등학교 무렵에 가던 통학로를, 하치만 오빠와 걷습니다.

  매우 새로운 현대적인 주택에, 다양한 색상으로 된 포장. 앤틱한 가로등은 저녁노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거리 안에서, 무기질적인 백색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통학로는 하치만 오빠가 졸업한 뒤 개발이 진행되어, 지금은 상당히 정비되었습니다. 저와 코마치는 정비된 뒤의 통학로도 쓰던 탓에 그다지 새로운 느낌은 안 들지만, 하치만 오빠는 두리번두리번하며 이상하다는 듯이, 달라진 것들 하나하나를 주목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치만 오빠와 이 길을 걷는 것도 초등학생 이래로 처음입니다.


「......요전에는 미안. 말이 너무 지나쳤어.」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있던 때, 제가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하치만 오빠가 했습니다. 저를 시야에 담은 하치만 오빠의 눈은, 석양을 반사해 조금 빛나는 것처럼 보여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 떠오릅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조금 감정적으로 됐어요.」


  그리고 겨우, 저는 며칠간 가슴에 움켜쥐던 생각을 내뱉을 수 있었습니다.


「왜 네가 사과해?」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


  실은 좀 더 사과하고 싶지만, 이만큼만 합니다. 코마치가 말했습니다. 사과할 거면, 간단히 하라고. 그렇게 부담 없이 화해하면, 싸운 것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마치의 의견에 따르려고 합니다. 이것은 둘이서 한 마디씩 사과해서 그걸로 끝난다고.

  주택가를 빠져나가자, 눈앞에 전원 풍경이 펼쳐집니다. 몇 개의 논에 규칙적으로 심어진 모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 과거에서 온 바람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벌써 상당히 옛날이 되어버린, 처음으로 이야기하고 그대로 같이 돌아간 그 무렵의 기억이 뛰돌아 다닙니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래서일까요. 이 풍경을 눈앞에 두고 하치만 오빠와 이야기를 하자,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러네요. 하지만 논밭을 무너뜨리고 집을 짓는 것도, 멋이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깔끔해지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살게 된 사람만일지도 몰라요. 혹시 원래 살던 사람은 싫어할지도 몰라요.」


  하치만 오빠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장마의 눅눅한 공기가 자꾸 무거워져서 저를 눌렀지만, 이 말은 본심에서 나온 말입니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긴장만은 참을 수 없어, 목이 말라갑니다. 제 마음은 요즘 망가진 것처럼, 격렬하게 점멸을 반복합니다.

  하치만 오빠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뒤, 그는 그리운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저기,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갑자기 나온 그 말에, 무심코 심장이 덜컥합니다. 아무리 하치만 오빠라고 해도, 저의 내면에 닿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 의도를 살피고 맙니다. 하치만 오빠의 눈을 조심조심 들여다보고, 곧바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차리자, 저는 익숙해진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이것은, 저의 이 공허한 성격을 서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예, 원래 그래요.」


  그래서 저도 말을 하며 저의 성격을 확고히 쌓아올려, 형태를 만들어 갑니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바라지 않습니다. 언젠가 주변 사람이 녹아서 스러져도, 저는 변함없이 혼자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성격은 간단히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 일 같은 것은 없이, 태어났을 때부터 품었던 것이라 이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성격은 지금부터 평생, 꺼림직함을 품으며 같이 따라갈 테지요.

  ......그럼에도, 예전보다 자신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저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준 애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갑자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불러서, 무심결에 대답했습니다.

  타이밍을 가늠해서 모처럼 제 생각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불만스러운 저와는 반대로, 하치만 오빠가 두른 분위기는 자꾸 팽팽해져갑니다. 긴장을 억누르듯이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편 뒤,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항상 곁에 있게 해줘.」


  그것은, 예전에 제가 들었던 말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서 들으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지금까지 미움 받지 않을 정도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성으로 사랑받다니, 하물며 하치만 오빠가 고백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가까운 거리는 그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한 것일 뿐, 특별한 유대가 자라났다는 건,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몸을 지배하는 놀라움에, 어느덧 넘쳐흐른 기쁨이 뒤섞여, 따스한 온기에 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짝반짝한 고운 알이 가슴 속에 퍼져, 그리운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하치만 오빠의 말을 먼 옛날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프로포즈한 말이니까요.

  그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제게 말해준 것. 제가 갔더니, 할아버지가 난처한 얼굴로 제게 가르쳐 준, 머나먼 옛날의 자그마한 고백.


「아하하하하!」


  그래서, 절로 웃음소리가 넘쳐흐르고 말았습니다.

  용모도 성격도 매우 닮은 우리들인데, 설마 이런 부분까지 같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이 기묘한 우연이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놀라서 기막힌 모습으로 눈을 크게 뜹니다. 조금 멀리서 걷는 사람들이, 힐끔힐끔하고 궁금한 듯이 우리들을 보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차는데 어째서 그 마음을 숨겨야 할까요.

  쑥쓰러움의 물결이 밀려와서 돌려주듯이 살짝 발을 넣어서 닿자, 투명한 물이 발에 휘감겨서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제가 계속 웃어서 그런지, 하치만 오빠가 불만스럽게 흘겨봅니다.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 빠져서」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하치만 오빠가 입을 뾰족하게 하며,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그 토라진 모습이 아이 같아서 귀여웠지만, 말로 하지는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일단 웃음을 멈추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순수한 감정을 꺼내서 말로 해나갑니다.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왜나면 이렇게나 가슴이 뜨거워지니까요.

  할머니는 이런 멋진 프로포즈를 받고, 어떻게 느꼈을까요. 만약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면, 안타깝습니다. 이 말만으로 평생 가득 찰 정도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나저나,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


  저는 아직 14세라서, 애초에 결혼 같은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전하는 것만 생각했고, 앞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 때문에, 마음 깊숙이 있는 감정에 쉽게 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어준다. 제멋대로에 독선적이고, 손 놓아 버린 것을 쫓을 수 없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

  그래서 남은 것은 앞으로 하나만.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라도, 겉으로 드러나게 된 싫은 성격에 대해 물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심술궂은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을 기대하면서, 저는 마음속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가, 평소의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했습니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기대 그대로인 말은 정말로 달콤해서, 몸 전체가 저릴 정도로 기분 좋았습니다.

  그 달콤함에 취해서 잠기듯이 몸을 흔들고 있는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기대 이상의 말에, 뺨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히죽거릴 것 같게 되는 얼굴을 억누르고, 목소리에 동요를 남지 않게 침착한 상태를 의식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두근거리는 탓에, 제대로 하고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다행히 하치만 오빠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제 상태를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솔직해지자고 친구와 약속했고, 저를 알면서도 함께 있어주는 사람을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조금만 더 뒤로 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맛보고 싶으니까요. 앞으로 여러 행복과 불행을 만나겠지만, 이것과 같은 종류의 행복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따스한 기분에 몸을 담가서, 그대로 몸을 맡깁니다. 얼굴에 닿는 산들바람이 기분이 좋아, 눈을 가늘게 뜹니다. 언제까지나 하치만 오빠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아쉽지만 손을 놓고, 만감의 생각을 담아 대답합니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일찍이 할머니가 한 것처럼, 낡고 평범한 말을 골랐습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그렇게 말하고 비어 있던 하치만 오빠의 손을 잡아, 돌아갑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대로, 하치만 오빠의 손은 남자답게 커서,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하려다가 끊긴 말은 아직 하지 않습니다. 모처럼이니까, 제대로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조금만 미루려고 합니다.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날린 사람은, 하치만 오빠니까요.

  어느 새 해는 거의 가라앉아 떨어져서, 거리는 작은 어둠과 주황색이 뒤섞인 복잡한 색조를 보이고, 먼 하늘에는 창백한 달과 가장 먼저 보이는 별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저는 이 성격 그대로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채워져도, 이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이 떨어진다면, 되찾으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런 저라도, 이 커다란 손을 계속 잡는 것만큼은,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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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Ⅶ ~갖가지 눈물~




「그래서, 넌 잘못됐어.」


  그 말을 하치만 오빠가 했을 때, 몸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질척질척한 것이 올라와, 떨릴 것 같았습니다.

  떨림을 필사적으로 참으려고 하자, 곧바로 그리운 기분이 밀려와, 가슴 속에서 여러 감정이 얽혀서 생긴 것은 체념이었습니다.

  결국 하치만 오빠는, 그 때 이래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장하면서 눈이 점차 탁해지고, 근사함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겼던 것은 그 때 그대로였습니다.

  8년 전의 그 돌아가던 길. 태양이 여름을 알리듯 날카로운 햇볕을 내리쬐고, 땀과 긴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그 때와.

  ......그리고 저도, 그 때 이후로 전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빠져 있던 부분은, 변함없이 텅 빈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모르게 하치만 오빠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말았습니다. 하치만 오빠의 곁에 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을 두 명 알고, 저 같은 것이 누리는 것보다도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심은 굉장히 간단하게 섰습니다. 방법도, 바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탄스러운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서투르게 봐왔으니까요.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하지만 나온 말은, 제가 떠올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 수 없는데,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대서 속이고 있어요.」


  불합리한 말을 해서, 이런 녀석과 두 번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말은 바로 포장이 벗겨져,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꾸자꾸 날카로워져 가고, 가차 없이 하치만 오빠를 찔러갑니다. 제가 말을 자아낼 때, 조금씩 비통한 표정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하지만 저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중에 제일 화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평소에 별로 화낼 일이 없어서, 침착한 기분을 모르게 되어, 마음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별로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마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것이, 저는 가장 싫어요.」


  마지막에 토해낸 말은, 틀림없는 제 본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언하고 나서 하치만 오빠의 얼굴을 보았을 때, 말했던 모든 것을 후회했습니다.

  결국 저는, 하치만 오빠에게 상처 주었을 뿐입니다. 미움 받으려 해도 전혀 잘 되지 않고, 그저 머리에 피가 오른 채 무방비한 상대에게 심한 말을 퍼부었을 뿐입니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정말 참을 수 없이 싫어져, 눈 안쪽에서 눈물이 넘쳐흐르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눌렀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이 울다니, 용서될 리가 없습니다.

  일단 하치만 오빠에게서 등을 돌리고, 긴장된 표정을 풉니다. 눈물이 넘치지 않게 주의하면서 평소의 표정을 어떻게든 만들어, 간신히 뒤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인사했을 때, 마침내 버티지 못하게 되어,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눈물은 아스팔트에 떨어져, 검은 얼룩을 몇 개 정도 만들었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 번 더 하치만 오빠에게서 등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흐느끼며 울 것도 없이, 눈물은 뚝뚝 뺨을 타고 그저 계속 흐릅니다.

  눈물을 흘리자, 머릿속이 점점 냉정해져서 저런 말을 하게 된 이유에 짐작이 갔습니다.

  저는 저의 성격을 긍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치관은 어딘가 비뚤어졌고, 누구에게도 집착할 수 없다면 분명 혼자가 될 삶의 길을 주저 없이 걸어갈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윤리에서 벗어난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저의 이 성격을 누군가에게 부정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부정할 정도라면, 방치해주길 바랐습니다.

  잘못됐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그런대로 포기하고, 매듭을 짓고 사는 중인데, 그래도 잘못됐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면 좋은 건가요.

  올바르다고 듣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옳진 않지만 이 공허한 마음을 품은 그대로도 좋다고 말해줬으면 했습니다.

  그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줬으면 하는, 유치한 마음.

  ......뭐야, 저는 이렇게나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는 거잖아요.

  나는 하치만 오빠가 그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대로도 좋다고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제 성격을 보여준 사람은 하치만 오빠뿐이기 때문에. 혹시 코마치나 부모님도 알지도 모르지만, 저 먼저 보여주려고 생각한 사람은 하치만 오빠뿐입니다.

  하지만, 그 짝사랑도 오늘로 끝입니다.

  제가 보여준 심장은, 하치만 오빠에게 부정되었습니다.

  눈물은 이제 저를 탓하는 건지, 아니면 실연에서 온 건지 모릅니다. 분명 전자겠지요.

  그걸로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연정도, 내일이나 모레가 될지 모르지만, 바로 사라집니다. 후회를 질질 끌게 되어도, 미련만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제 머리가 냉철히 호소합니다.

  겨우 눈물이 멈춰, 조금 우회해서 편의점의 세면소에 들러서 얼굴을 씻습니다. 뺨에 남아 있던 눈물 자국은, 물에 닿아 조금 문지른 것만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얼굴을 씻자 기분도 많이 풀려, 평소대로의 제가 돌아옵니다.

  가게를 나와 하늘을 올려봤더니, 어느 새 밤의 장막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눈부실 뿐인 별들은, 손닿지 않는 머나먼 저 편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


  어제의 맑은 하늘과는 달리 돌변한 회색 하늘이 가린 아침. 눈이 깨어 밥을 먹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서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얼굴의 제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잠버릇으로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삐쳐 있고, 눈시울이 반 정도 닫혀 있었지만, 평소의 제 아침 얼굴입니다.

  얼굴을 씻고, 화장수와 유액을 묻혀 머리를 빗습니다. 매일의 준비를 마치고, 손가락으로 뺨을 들어 올리자, 완전히 평소대로.

  집을 나와 코마치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코마치는 벌써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얼굴을 마주치자 먼저 한 말이,


「아카네, 어제 오빠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라고 중얼거려서, 저는 반사적으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걸 물을까요. 저는 평소 그대로의 표정일 거라, 겉으로 봐서는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들은 걸까요. 하지만 하치만 오빠가 누군가에게 말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알았어?」


  대답을 잘못했던 것을 깨닫고, 살짝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이래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본인이 먼저 자백할 뿐입니다.


「있잖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아카네는 기쁜 일이 있었을 때는 그런대로 표정으로 나오지만, 싫은 일이 있으면 엄청 평범한 표정을 지어.」

「응」

「그런데, 오빠랑 데이트한 아카네가 평범하게 반응할 리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체로 정곡을 찌르고 있어서 입 다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실은 코마치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꺼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과 후에 좋아?」

「좋아! 느긋하게 얘기하자.」


  코마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쾌한 미소를 띠고 훌쩍 제 앞으로 뛰쳐나가서, 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업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채, 학교에서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야 일행에게 무슨 말을 들었지만,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 곧바로 잊어버렸습니다.

  방과 후가 되어 코마치와 학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갑니다. 날씨는 자꾸자꾸 나빠져, 사람들이 우산을 한 손에 들고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올려보는 모습이 하나둘씩 보였습니다. 저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해질녘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우리들 말고도 학생이 대부분, 점원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드링크 바를 주문합니다.

  그러고 나서 오렌지 주스가 2개, 테이블 위에 놓이자, 겨우 코마치가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오늘 아침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얘기했습니다.

  제가 계속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던 것, 거기에 자신의 성격이 잘못됐다는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화내서 심한 말을 퍼부어버린 것.

  제가 무언가 말할 때 코마치는 응응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동안,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고 겨우 코마치는 맞장구 이외의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카네는 어떻게 하고 싶어?」

「그건, 사과하고 싶다......고 할까 사과할 거야. 심한 말을 했고」

「그것만? 사과한 뒤에는 뭔가 안 해?」


  묘하게 위압감 있는 목소리로, 코마치가 말합니다.


「......으, 응」


  코마치는 저를 위에서 아래까지 쳐다보고는, 기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주스를 한 모금 마십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아카네는 진짜 둔감. 왜 이렇게 간단한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구! 왜냐면 아카네는 어차피 오빠한테 미움 받고, 이대로 인연이 끊어진다는 생각 같은 걸 하잖아. 게다가 그 편이 오빠를 위한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거고」


  몹시 놀라며, 코마치를 다시 봅니다. 코마치는 아직도 말을 다 못했는지, 투덜투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그건 제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알아맞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렇게나 간파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코마치가 생각하는 것을 반 이상 모릅니다.

  하지만 제 사고를 「어차피」라고 부르는 것은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거기가 둔하다는 거야! 그렇게 사소한 걸로 오빠가 아카네를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 아카네는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해.」

「그야말로 과대평가야. 나, 코마치 생각보다 싫은 애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기, 아카네. 내가 아카네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뭔지 알아?」


  코마치는 어딘가 그리워하는 듯한, 비밀 이야기를 공유하는 듯한 표정을 띠고, 앞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부탁받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건 친구가 된 계기. ......실은 오빠한테 소개받기 전에 우리들 한 번, 얘기한 적 있어.」


  제가 목을 기울이고 있자, 코마치는 「역시 기억 못했어.」라고 입을 뾰로통하게 하며 말했습니다. 빨대로 컵 안을 뒤섞자, 찰랑찰랑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하치만 오빠에게 소개되기 전에 코마치와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교내에서 마주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얘기한 때는 승강구가 처음일 겁니다.


「초등학교 때 교정 구석에 토끼우리가 있던 건 기억나?」

「응. ......입학하자마자 죽었지만」


  우리들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과 6학년이 조를 짜서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학예회나, 레크리에이션이나, 요컨대 1학년이 초등학교에 익숙해지기 위해 행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습 중에 교내에서 사육된 토끼를 보살피는 것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2대인 흰토끼와 흑토끼. 하나와 부치라 불리던 토끼는, 두 마리 모두 눈이 작고, 동그랗고 제가 토끼우리에 들어가면 종종걸음으로 와서 재롱부리듯이 따라오는 귀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보살핌이라고 해도 토끼 먹이를 주는 정도입니다. 식사 때 제가 서툴러하는 당근을 입에 대주면, 맛있게 갉아먹는 것이 흐뭇해서 그만 몇 번이나 주고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와 부치는 우리들이 입학하고 나서, 불과 두 달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칼로 배가 찢긴 것에 의한 실혈사. 범인은, 현지의 중학생이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마리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그 날 아침, 먹이 당번이었던 저는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봤습니다. 쇠망치로 파괴된 자물쇠, 차가워져 움직이지 못하게 된 토끼 두 마리의 내장, 피가 스며들어 거무스름해진 흙과, 그 광경을 보고 먼저 기분이 나빠진 저도, 전부 기억합니다.


「......맞아. 그래서 죽은 뒤에, 토끼의 장례식 같은 것을 했던 것도 기억나?」

「그건, 조금만」


  그 이야기의 어디까지를 코마치가 알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저는 발견자여서 경찰에게 이야기하고 사건의 전말까지 물었지만, 그 전말이 전교 조회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 장례식 때 코마치가 울려고 했는데, 아카네가 가까이 있어서」

「......말은 걸지 않았겠네.」

「그래. 하지만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어. 진짜 요만큼도. 주위 여자애들은 모두 침울했는데 아카네만 그런 표정이어서, 화났어.」


  그 즈음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아마 저는 코마치가 말한, 태연한 표정을 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체를 본 뒤 나쁜 기분이 먼저 일고, 살해당한 하나와 부치에 대한 동정심이 부풀어 올랐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있다고 하면 슬퍼할 수 없었던 죄책감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뭐라고 할 뻔했는데, 선생님도 그 때 있어서 포기했어. 다음 날 아카네한테 다시 뭐라고 하려고 했더니, 아카네. 그 토끼 무덤 앞에서 손을 모았어.」

「......그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뒤가 약해져갑니다. 그 모습은 다른 동급생에게도 이상하게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와 부치를 잊은 것은 아닌데, 어째서일까 지금도 생각합니다.


「너무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었으니까, 다음 날로 할까 생각했더니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 참배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서, 한 번만 뒤에서 말을 걸어서 이유를 물었던 거야.」


  확실히 기억납니다. 그 때, 선생님 말고 걱정해준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야기했을 때 저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요.


「그랬더니 아카네, 『이 아이들이 죽고 슬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빌려고 해서』라고 말했어. 그 때 생각했어, 이 상냥한 애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코마치는 귀중한 추억을 말하듯이, 그리움이 담긴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자꾸만 뺨이 뜨거워져서, 그 부끄러움을 억누르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남동생이 죽은 뒤, 처음으로 성묘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덤 앞에서 손을 모으는 것은, 죽은 다음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신님에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놀라서 기막혀하고 있는데 아카네, 어디론가 가버리고. 방과 후에 말을 걸려고 찾아도 못 찾겠고. 결국에는 오빠한테 소개받는 식이었지만, 그래도 코마치는 아카네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어.」

「......응」

「그래서야, 코마치는 아카네가 말하는 싫은 부분을 가장 처음에 보고, 그 다음에 상냥한 부분을 알았던 거야. 하지만 아카네가 전혀 싫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하게 됐어.」


  어쩌죠, 울 것 같습니다. 점점 시야가 희미해져 코마치의 얼굴이 비뚤어져 보입니다. 가슴 속에서 선명한 감정이 치솟아, 몸을 감싸갑니다.

  이제,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더 이상 들으면, 저는 분명 울어버릴 테니까요. 보기 흉하게 코마치 앞에서 크게 울어버릴 테니까요. 그건,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코마치는, 그런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야. 약간 별나지만, 그래도 굉장히 상냥한 아카네라서 좋아하게 됐어.」


  코마치는 겨우 미소를 바꿔서는, 방금 전처럼 발끈한 표정을 만듭니다.


「그래서 아카네가 둔하다는 거야. 우리들의 기분을 전혀 몰라. 자기가 없는 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코마치는 아카네가 없어지는 쪽이 싫어. 그래서 다른 사람하고 사이좋게 되어봤자, 아카네하고 떨어지면 아무 의미도 없는걸.」

「......읏」


  결국 견디다 못해, 울어버렸습니다. 어제와 오늘 눈물샘이 망가졌기 때문일까요, 애처럼 보기 흉하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왜냐면, 기뻤습니다. 그렇게 저와 같이 있는 편이 좋다고 말해준 것이 이렇게나 기뻤습니다.

  제가 흐느껴 우는 것을 깨닫고, 코마치가 정면에서 제 옆으로 옵니다. 그리고 달래듯이 제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졌습니다. 최근 제 키만 자라서, 차이가 많이 나게 됐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이 작은 손으로 어루만져 줍니다.

  그것이, 한층 더 제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아~아, 모처럼 이쁜 얼굴이 엉망이야.」

「코마치가 울리니까 나쁜 거야.」

「곤란한 애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아카네.」

「......뭔데」

「아카네의 성격으로 볼 때, 자기가 먼저 고백하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혹시 오빠가 그런데도 아카네랑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봐.」

「사람을 바보처럼 말하지 마. ......그래도 힘내볼게.」


  저는 울음을 멈추고 나서 그 이후로, 가게 내에서 궁금해하는 시선에 노출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재빨리 계산만 마치고, 코마치에게 손을 끌려가듯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분명 이 애한테는 평생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평생 친구로 있을 수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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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Ⅵ ~가슴 속~




  제가 중학교 3학년으로, 하치만 오빠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자,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봉사부라는 이름으로 미루어보면 교내 청소라도 할 것 같은 부입니다만, 하치만 오빠가 말하기로는 상담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치만 오빠의 설명이 애매해서 구체적인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런데도 그 활동내용은 하치만 오빠에게 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부정하겠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투덜대면서도, 결국은 지나치지 않고 상담에 응해주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심결에 살짝 미소 지었습니다.

  그리고 코마치와 시험공부를 하고 하치만 오빠와 합류했을 때, 마침 하치만 오빠의 동아리 동료들과도 만났습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 씨와 유이가하마 유이 씨.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여자여서 많이 놀랐지만, 말을 해보니 두 사람 모두 매우 매력적인 여자라는 것을 바로 알았습니다.

  하치만 오빠도 지금까지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얘기하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니 저는 기쁜 마음이 반, 납득하는 마음이 정확히 반 솟아올라 복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하치만 오빠와 함께 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만으로 전부는 모르지만, 유키노 씨가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유이 씨가 요령이 좋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제가 가지지 못한 따스한 것을 가진 것 같습니다.

  고민하고, 상처 입고, 엇갈리고. 그럼에도 거짓이나 기만으로 가리지 않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서로 받아들이는 것. 하치만 오빠가 내심 바라는 것.

  그건 제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봉사부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유이 씨에게 「사귀려고 생각하진 않았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은 역시 제 본심이며, 이제부터 평생 붙들고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2년을 보내고, 연애나 사랑에 대해 제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지독하게 독선적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해줄 것을 바라거나, 자신의 바람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분개하거나 자신에게 이상적인 상대를 마음속에 그리거나.

  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를 정도이며. 그렇게 바라기 때문에, 실현된 것은 어디까지나 행복으로 가득 차서 넘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해서 꿈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저는 그 생각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을 거라 결정했습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와 교제했다 해도, 제가 그 사람과 사랑 같은 것을 키울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저와 교제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편이 매우 올바르고, 안심됩니다. 그 편이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잘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미사키 군에게 고백 받고 나서 며칠 지났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등교해서 자리에 앉고, 차례차례 오는 반 친구와 인사를 주고받던 때. 몇 명의 여자애에게서 대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애들은 반에서는 화려하게 꾸미고, 남자애가 좋아할 법한 용모를 지녔으며 네 명 정도로 뭉쳐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과는 딱히 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리가 가까웠을 때는 유행하는 가수나 배우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인, 일반적으로는 반 친구(クラスメイト)이며, 여자애들 말로는 친구(友達) 정도의 관계입니다.

  기분이 나쁜 날일까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그녀들은 저와 명백하게 적대하진 않았지만, 고의적으로 저를 무시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퍼붓지는 않아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험담했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자, 전부 옅은 화장을 한 여자애들이 굳어져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전원이 머리에 살짝 펌을 했고, 간신히 갈색으로 보일 정도로 염색한 애도 있었습니다.

  교내에서 화장해서는 안 되지만, 생활지도 선생님과 다투는 동안 타협점을 찾아내서 묵인 받을 수 있는 정도의 화장. 파운데이션과 아이브로우 정도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탓에, 눈과 입술이 묘하게 인상적인 옅은 얼굴이, 차갑게 웃고 있습니다.

  밋밋하다고, 그 때 생각했습니다. 치크를 안한 탓인지 그저 하얄 뿐인 얼굴은, 멀리서 보면 그렇다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표정이 빠져 있어서, 누가 누군지 식별할 수 없습니다.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예전처럼, 머릿속에 쳐 있던 실이 또 하나, 툭하고 끊어진 것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렇게 되면 뒤는 간단합니다. 저 편이 일방적으로 싫어한다면, 저는 그저 무관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딱히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끊어질 가느다란 실이, 1년 빨리 끊어졌을 뿐입니다.

  다만 이런 때는 좀 더 슬퍼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그걸 못하는 자신에게 진저리가 났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안한 탓에 그다지 커지지 않은 이 문제도, 여자들에게는 쉽게 퍼졌습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저를 싫어하는 애들은 여자들에게 적을 만들기 쉬운 성격이라 일이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반 애들이 약간 걱정하며, 그녀들이 저를 싫어하는 원인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야가, 츠요시를 좋아했었대.

  그런 말을 들어도, 아야도 츠요시 군도 전혀 짐작되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아야는 세리자와 아야라고 하고 그 그룹 내에서는 조금 수수한 아이. 츠요시 군은 제게 고백한 미사키 군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다 해도, 해결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미사키 군에게 흥미가 없는 것이나, 애초에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을 전했어도 잘 되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들을 억지로 화나게 할 것 같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제 생활습관에 아야 애들과 얘기하던 것은, 훨씬 전에 사라지고 평온한 매일을 되찾았습니다.


―――――――


  저와 코마치가 봉사부 일을 돕게 된 것은 정말 우연입니다. 우연히 같은 반인 카와사키 군이 봉사부에 부탁이 있어서, 우리들이 그 중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상담 내용은 단순한 첫눈에 반한 사랑, 솔직히 말해서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은 채 카와사키 군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제가 가장 신경 쓰인 사람은, 카와사키 군의 누나인 사키 씨였습니다.

  교복을 흩뜨리고, 강해보이는 눈과 조금 무뚝뚝한 말투인 사람. 틀림없이 무서운 사람으로 누이 동생 사이가 나쁜가 생각했지만, 막상 카와사키 군을 앞에 두면 누나로 돌변합니다.

  카와사키 군도 카와사키 군대로, 반에서의 행동과 매우 차이가 났습니다. 사키 씨가 뭔가를 주의하면, 투덜대며 대답하고, 그것을 또 사키 씨가 주의하는 가족다운 광경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결국 헤어질 때까지 누이와 동생의 흐뭇한 광경은 계속되어, 저녁노을로 물들여진 길을 누이, 동생이 사이좋게 가는 모습을 보고 생각합니다.

  그 광경은 제가 손에 넣었을지도 몰랐던 것이나, 이미 옛날에 어딘가 멀리 사라지고, 그 뒤로 손을 뻗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가 누나 입장에서 남동생을 타이르고, 남동생도 귀찮은 듯이 꿍하니 대답하고. 그것을 코마치나 하치만 오빠가 쓴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는 현재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매우 따뜻하고, 훌륭하고, 마음이 채워지는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광경을 지금도 유리 케이스 너머 멀리서 바라볼 뿐, 그저 지나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이 괴로워졌습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잊었던 것이 목까지 차 올라와서, 구역질을 참는 것으로 필사적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미소를 만들어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에게 「우리들도 돌아가자」고 말하고 발을 내디뎠을 때, 위가 뒤틀려서 상태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성묘하러 가는 이유를,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속죄입니다.

  죽어버린 남동생을 떠올리며 울 수 없었으니까, 지금도 떠올리듯이 절에 가서, 남동생에 대한 기억을 새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는 분명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로 고쳐 생각하고, 남동생을 방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았기 때문에, 적어도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생각했습니다.


―――――――


  카와사키 군이 첫 눈에 반한 상대는 이즈에 메구미라는, 조금 독특한 성격에 예쁜 용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산뜻한 인상에, 처음 만났을 때에도 거리를 느끼게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즈에 씨가 때때로 보이는 표정이 저는 서툴렀습니다.
  처음으로 이즈에 씨와 이야기한 날. 그녀는 묘하게 투명한 눈으로 저를 들여다보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묻고, 「없다」고 대답했을 때 이즈에 씨는 「흐음」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 웃는 방식은 연하의 여자애를 이런이런하고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모멸할 마음도 없이, 옛날의 자신을 떠올리는 듯한 따스한 눈으로. 그래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저의 깊숙한 곳에 봉했던 감정이 억지로 뽑혀, 제 앞에 속속들이 드러날 것 같은 공포감이 몸을 지배했습니다.

  그 예감은 반은 맞고, 반은 빗나갑니다.

  그 다음날. 하치만 오빠와 저, 이즈에 씨와 카와사키 군이 데이트하기로 되었습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을 때는 뛰어오를 정도로 놀랐습니다. 반드시 뭔가 뒤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유를 묻자, 이즈에 선배의 발안이라고 해서 조금 수상했지만, 그래도 거절할 이유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말, 평범한 데이트 같이 꾸미고 나가서, 평범한 데이트를 했습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개와 장난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둘이서 내용에 대해 푸념하고, 밥을 먹고.

  그것은 꿈에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꿈처럼 즐거워서. 이즈에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와서 다행이라고, 이즈에 씨가 데이트 제안을 해줘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면이 오기 전에 아주 쉽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세련된 카페에서, 아야 일행과 만났을 때,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서는 그녀들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후회도 미련도 전혀 없고, 따라서 그녀들이 보내는 시선은 어떻든 상관없고, 생크림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치만 오빠는 역시 그런 저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롭지 않아?」


  하치만 오빠가 말했을 때, 거짓말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외로워. 모르는 동안 상처 주고 무시되었어. 화해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계속 이대로라면 어쩌지?

  그렇게 말하면, 하치만 오빠는 분명 평소대로 퉁명스럽게 말하고, 독특한 인간 관계론을 설파하며 타이르겠지요. 그렇게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지나가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할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입술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머릿속에 그리던 말은 목을 통과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솔직히 제 안에 있는 마음을 내뱉었을 뿐입니다.

  한탄스러운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 불길한 예감을 실행한 사람은 저입니다. 스스로 가슴에 손을 넣고, 엉망진창으로 휘저은 뒤 뽑아서, 하치만 오빠와 제 앞에 내민 사람은, 저 자신입니다.

  ......내며진 것은, 공허한 형태를 띤 제 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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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Ⅴ ~소꿉친구~


  하치만 오빠는 차에 치였다고 했지만, 생명에 이상은 없고 왼 발이 골절되어 3주 정도 입원할 뿐이라고 코마치에게 쉬는 시간에 들었습니다.

  방과 후, 코마치에게 병문안 가자고 권유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처음 병문안이라는 것은, 역시 가족만 가야 하는 것이며, 타인인 제가 같이 있는 위화감을 아무래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차로 마중 온 코마치의 부모님과 인사만 주고받고, 혼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코마치가 말했지만, 3주간의 입원은 매우 긴 시간입니다. 특히 진학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하치만 오빠는 그 귀중한 시간을 잃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학교가 바뀌면, 하치만 오빠에게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으므로, 조금 유감스러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의 방에 들어가, 교복차림 그대로 침대에서 천장을 보며 누웠습니다. 드러눕자 스커트가 흐트러져서 허벅지가 드러났지만, 누구의 눈도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대로 빈둥거리면, 교복에 주름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어머니나 아버지도 조금 늦어진다고 말했으니, 당분간은 이대로 있어도 무슨 말을 들을 일은 없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골절, 이라 했는데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요. 뼈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라면, 혹시 치였을 때 머리까지 다쳤을 수도 있습니다. 뇌진탕은 머리에 충격을 받은 직후보다 다음날이 위험하다고 들었으니, 아직 안심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걱정 같은 건 무의미합니다. 바보 같은 상상입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자세를 바꾸어 엎드리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거기에 눈을 감아 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칠흑 같은 어둠에 몸을 담급니다.

  애초에 자신이 걱정하는 종류를 모릅니다. 하치만 오빠가 죽는 것이 무서운 건지, 하치만 오빠가 죽은 후의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 무서운 건지, 저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다 어느 새 잠들어, 죽은 사람도 포함한 가족 여섯이 식사하는 꿈을 꿨습니다만, 핸드폰 진동으로 눈을 뜹니다. 어느 새 밖은 어두워져 있고, 어두운 방 안에서 핸드폰만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자, 액정화면에 코마치의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아, 아카네? 오빠 상태 말인데」

「응」


  코마치는 잠깐의 간격을 뒀는데, 그 간격이 매우 길게 느껴집니다.


「엄청 괜찮았어! 이제 발 뼈 말고는 거의 건강할 정도야」

「그래.... 다행이다.」


  스스로도 약간 놀랄 정도로 안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걱정해서 손해일 정도. 이참에, 썩은 눈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을까?」

「......후후, 그러네.」


  코마치와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아무래도 하치만 오빠는 할아버지가 예전에 입원했던 병원에, 3주 정도 입원한다고 합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코마치와 이야기하다가 병문안을 가자고 다시 권유받았지만, 저 같은 것이 가도 될지 모른다고 말하며 한 번 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거의 관계가 없는, 굳이 말하자면 친구의 오빠를 병문안하러 가야 할까요.

  좀 더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해야겠지만, 따랐을 경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고, 그래서 상식이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인생 경험으로는, 그 상식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하치만 오빠가 입원하고 나서 처음의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먹고 숏팬츠에 파카를 걸쳤을 뿐인 차림으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화분에 물 주러 갔다 돌아온 어머니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카네. 미안한데, 지금 부탁 좀 들어주지 않을래?」

「응-? 좋아. 어떤 걸 하면 돼?」


  욕실 청소나 장보기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대답하자, 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습니다.


「고마워. 그럼 우리 집 대표로 지금부터 하치만 군 병문안에 가 주겠니?」

「......어째서?」

「어째서라니, 아카네가 신세를 지고 있고, 게다가 몇 번이나 우리 집에 와주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몰인정하잖아.」


  어머니는 손을 뺨에 대고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거의 얘기 안 했고, 그래도 가야 해?」

「그럼. 소원해졌어도, 신세를 진 건 변함없으니까, 이런 때는 제대로 얼굴을 내밀어야 해. 거기에 아카네도, 하치만 군이 싫은 게 아니잖니.」

「그거야,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거절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그래도 확실히 몰인정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하치만 오빠의 관계를 지금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몇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병문안 정도는 가도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았어. 갈아입고 올게.」

「아, 아카네. 잠깐만.」


  확실히 하치만 오빠 앞에 내밀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방으로 가서 갈아입으려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뒤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엄만, 병문안에 들고 갈 꽃은 크로커스가 좋다고 생각해.」


―――――――


  그리고 저는 도중에 산 꽃다발을 들고 현지 종합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휴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현지 사람은 모두 차로 병문안 가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버스 안은 저와 어떤 할머니와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 밖에 없어서 한산했습니다.

  뭘 입고 갈까 한참 헤맨 결과, 병원에 가는 이유로 청초한 롱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집에서 나왔지만, 그런데도 버스 안에서 이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창문을 거울 대신 삼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나빴는지, 덜컹덜컹 좌석이 흔들리는 중, 생각을 계속 합니다.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이유도 있어서,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잘 모릅니다. 예전에는 둘만 있어도 할 말은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요만큼도 화제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이야기했을 때는, 무엇을 말했었는지. 확실히 히키가야가에서 같이 드라마 재방송을 봤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서 끌어낼 수 없었습니다.

  우선, 병문안하러 왔다고 말하고, 밖에서 무시하는 형태가 된 것을 사과하자, 라고만 속으로 결정했을 쯤, 버스가 병원 앞 정류소에서 멈춰서 내렸습니다.

  4년 만에 찾은 병원은, 외관도 병원 내에 달라붙은 냄새도 그 무렵과 전혀 변함없어서, 할아버지 병문안에 갔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만큼 긴장하지 않았고, 손에 꽃다발을 들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제 발로 여기에 와 있습니다.

  미리 코마치에게 들은 병실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병실에 가까워지면서, 자신이 긴장되어가는 것을 깨닫고, 할 말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음미합니다.


「앗, 죄송합니다.」


  그렇게 응응하는 소리를 내던 중, 모퉁이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을 확인하자, 50대 정도의 잡담을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는, 여자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저를 보고 있고, 다음에는 제가 든 꽃다발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렇다 쳐도, 좋은 꽃이네. 혹시 병문안 상대는, 남자애?」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꽃의 이름은 크로커스라고 해. 꽃말은 『신뢰』, 『날 믿어』, 『청춘의 기쁨』, 『사랑의 후회』야. 아무튼 여러 가지 있지만 요컨대, 화해하고 싶다는 의미야.」

「아아, 그런 건가요?」


  ......정말로 제 어머니는 다정하고, 아름다우며, 참견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딱히 원내에서 헤매는 일 없이, 하치만 오빠의 병실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문 손잡이에 손댈 때, 심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뛰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더니, 아직도 긴장은 남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침착해졌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소리가 커지지 않게 조심하며 병실에 천천히 들어갑니다.

  독실은 아닌 듯, 침대 4개가 좌우로 2개씩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2개는 시트나 이불이 놓이지 않았고, 하나는 하치만 오빠와 같은 나이만한 남자가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실에 들어온 저를 힐끗 봤을 뿐, 곧바로 손에 든 축구 잡지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치만 오빠」


  그리고 남은 한 사람. 옅은 황색 커튼 맞은 편 침대에, 입원 복을 입은 하치만 오빠가 앉아 있었습니다.


――――――


「발 상태는 어때요?」

「왼발이 전혀 안 움직여.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게 이렇게 큰일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크로커스를 화병에 꽂고, 꽃잎을 살짝 손대며 나온 말은, 역시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목소리가 높아지지도 혀를 씹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었고, 하치만 오빠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해줬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치만 오빠가 입원하다니, 정말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상처다운 상처는 입지 않았지. 부주의하게 외출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있지만....... 개를 구하려다 치였다고, 코마치가 말했어요.」


  그렇습니다, 그것에 가장 놀라, 굉장히 안심했고, 그리고 매우 눈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분명, 자기 몸보신을 위해 보고만 있을 테니까요.


「딱히 구한 건 아니야. 그저 눈감을 수 없어서 멋대로 얼간이 짓을 했을 뿐이다.」

「그걸 구했다고 하는 거예요. 괜찮잖아요, 자랑해도. 만약 제가 주인이라며,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게 될 정도예요.」

「......만약, 이겠지?」

「그래요.」


  긴장을 밀어넣듯이, 침을 삼킵니다.

  농담도 할 수 있고, 매우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이기에, 제대로 전해야만 합니다.

  말은 가슴 속에 쌓아두면 점점 무거워지고, 자꾸자꾸 밖으로 내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면, 더 말하기 어려워지니까.

  버스 안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온 말을, 이 반 년 간 쭉 말하는 것을 미뤄온 말을, 겨우 내뱉을 수 있었습니다.


「하치만 오빠......」

「뭔데?」

「가을 때부터 계속 무시해서, 죄송해요.」

「......그건, 코마치에게 말해야겠지.」

「코마치에게는 다음에 말할게요. 하지만, 우선 하치만 오빠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코마치는 요 반년 간 쭉 걱정해줬고, 그런데도 억지로 저와 하치만 오빠를 만나게 하는 건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쭉 미안하다고 생각했고, 계속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하치만 오빠에게 제대로 사과한 뒤에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사과하기 전에, 먼저 사과할 사람은 나야.」


  하치만 오빠는 눈을 돌리지 않고, 제대로 제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어떻든 상관없는 장면에서는 바로 얼굴을 돌리면서, 중요한 때에는 절대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나도, 밖에서 널 무시했었어.」

「......그렇다는 건, 저한테 맞춰준 게 아니라는 의미인가요?」

「그렇다고 할까, 키리바나가 나한테 맞춰줬다고 생각했는데.」

「............」

「............」


  요컨대 우리들은, 똑같이 생각하고, 같은 타이밍에, 같은 행동을 했었습니다.

  환경도 성격도 전부 다른데, 도착 지점이 같다는 것은 조금 이상해서, 약간의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어쩐지, 우리들. 바보 같네요.」

「그럴지도」

「저기, 하치만 오빠. 우리들은 무슨 관계일까요?」

「음, 뜬금없이 왜 그래?」

「아뇨, 누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해서요.」


  만약 우리들의 관계를 애인 이외에 잘 나타낼 수 있다면, 분명 좀 더 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치만 오빠가 이상한 비방을 받는 일이 없다거나, 반년 전과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설명해서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면 해 두고 싶습니다.


「그거야, 친구의 오빠 아냐?」

「그렇긴 한데, 어쩐지 제 안에서 딱 떨어지지 않는다고 할까. 말씨가 나쁘지만, 하치만 오빠는 코마치의 오빠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너, 자연스럽게 심한 말을 하는데.」

「죄송해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만난 차례가 하치만 오빠 쪽이 먼저라서 그런 걸까요. 저에게 코마치는 코마치이며, 하치만 오빠는 하치만 오빠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부수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끄럽지만요.


「......그러면, 하나 좋은 말이 있어.」


  하치만 오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왠지 얼굴이 조금 붉었습니다.


「소꿉친구다.」

「......네?」

「그러니까, 소꿉친구야. 코마치를 관련짓지 않으면 그거잖아. 아무튼, 여동생 2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뭐, 정말 지긋지긋한 관계 같은 의미고, 마침 적당하겠지. 게다가, 소꿉친구는 연애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데이터가 있으니 오해받기도 어려워.」


  참고한 데이터가 굉장히 편향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꿉친구라고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런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소꿉친구라는 말은, 조금 듣기 좋습니다.


「......그러니, 혹시 누가 관계를 물으면, 지긋지긋한 관계인 여동생의 오빠니까 잘라도 인연이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소꿉친구라고 해 둬.」

「알았어요. 그럼 실례할게요.」


  병실에 들어갔을 때처럼 크게 심호흡했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긴장되지 않고, 마음속은 오로지 평온했습니다.

  해야 할 말은 바로 정해졌습니다. 반년 전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으면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의 기억은 묘하게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키리바나 아카네라고 하고」


  그래서, 이 사실을 우선 처음으로 하치만 오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소꿉친구입니다.」


―――――――


  그 이후로 시간이 평온하게 흘러갔습니다.

  2학년이 되어도 코마치와 같은 반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괴롭힘 같은 것이 없는 무난한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무렵의 소문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또 몇 명의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지만, 1학년 때처럼 거절했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요. 귀가 시간이 엇갈려, 돌아가는 길에 만날 일이 거의 없어져서, 예전처럼 오해받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히키가야가에 놀러갔을 때는, 초등학생 시절과는 약간 차이는 있지만, 가끔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시시한 농담을 서로 하곤 했습니다.

  무언가가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학년 후반 때 겪은 가슴의 결림이 사라져, 마음이 가벼워진 것만큼은 느꼈습니다.

  2학년 겨울 발렌타인에는, 코마치와 함께 반 친구에게 나눠줄 초콜릿을 만들었습니다. 남은 재료를 써서, 코마치와 둘이서 초콜릿 하나를 만들어, 하치만 오빠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무뚝뚝하게 받았을 뿐이지만, 저도 코마치도, 단지 부끄러워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둘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 겨우 코마치와 같은 반이 된 봄 무렵. 방과 후에 미사키 군이라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반 친구에게 고백된 것을 하치만 오빠에게 목격되어, 저는 약 2년 만에 하치만 오빠와 같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치만 오빠도 미사키 군도, 조금만 더 타이밍을 읽어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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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Ⅳ ~쌀쌀한 흐린 하늘~




  조금 키가 자라서 교복을 걸친 상태에서 벗어나, 감색 스커트에 익숙해진 가을 무렵, 1학년 사이에서 작은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소문이라는 것은 저, 키리바나 아카네가 상급생과 사귀고 있다. 게다가 그 상대가 3학년인 히키가야 하치만이라는 시원치 않은 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만, 소문이 사실무근이며 아무 근거도 없다, 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가끔 돌아가는 길에,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와 셋이서 돌아간 일이나.

  예를 들면 여름방학에 우연히 밖에서 만나, 그대로 같이 쇼핑한 일이라든지.

  그런 것을 누군가가 봐서, 아무래도 학년 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직접 가르쳐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확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비밀 얘기를 하듯이 하나 둘씩 들렸을 뿐입니다.

  다만 그 소문은, 누군가에게 고백 받은 것처럼 우와 하고 퍼지는 식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멀리서, 소곤소곤하고 저의 눈치를 볼 뿐, 누구 한 명도 제게 자세히 묻지는 않았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소문이 퍼져서 뭔가 실제로 손해가 나는 건 아니기에, 그저 멍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바뀐 것이라면, 여자애들과의 잡담 중에 아이들 몇 명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애인 이야기를 하거나 남자들에게 불만스러운 시선을 받는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가끔, 「취미가 나빠」나 「있는 척 한다」 등의 악담인지 무엇인지 미묘한 말이 들립니다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릅니다.

  원래 부정적인 감정을 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아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구나」,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복도에서 교실로 돌아갈 때, 반 남자들이 교실 안에서 하치만 오빠의 험담을 해대는 것을 우연히 듣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치만 오빠가 항상 혼자 있는 것이나, 친구가 없는 것을 일부러 과장한 내용을 농담 섞어 말하고 있었습니다. 입가를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전원이 마찬가지로 보기 싫은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반 정도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정도부터, 하치만 오빠의 눈이 자꾸자꾸 탁해지고, 그것에 따라 언동도 조금 유감스러워졌습니다. 이따금 혼자 있을 때 옅은 웃음을 띠는 것을 보면,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치만 오빠의 가장 장점인 잘 돌봐준다는 것이나 비뚤어진 다정함은 전혀 변함없어서, 플러스 마이너스하면 0으로 수렴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하치만 오빠는 나쁜 말을 들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 그래? 아카네.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고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이야기가 들렸겠지요, 남자들은 저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약간 거북한 침묵이 남고는,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축구부 고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습니다.

  정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타인의 험담을 하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 불만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으로 괴로움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치만 오빠는 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리고 험담의 내용은 불만조차도 아닌, 사실과 허위가 섞인 헛된 말입니다. 그 이야기로 무엇을 얻는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치만 오빠의 화제가 나오는 계기는, 아마 제게 있겠지요.


―――――――


「요즘, 학교는 어때?」

「딱히 보통이에요. 주변이 약간 시끄럽지만요. ......하치만 오빠는 어때요?」

「보통이야. 가끔 모르는 녀석이 볼 때가 있다만」

「............」

「............」


  계기가 된 이야기는 정말 사소한 일로, 하지만 필연으로 발생합니다.

  왜냐면, 제가 싫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집착할 수 없는 주제에 싫은 일은 참을 수 없는, 제멋대로인 성격을 띤 저는, 하치만 오빠가 까닭 없는 비방에 노출되는 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저라면, 해야 할 방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까지 얻고 싶은 것은, 정말 조금 밖에 없으니까요.

  그 이후로 제 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밖에서 하치만 오빠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점점 피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도, 가볍게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그대로 모르는 척하고 걸어갑니다.

  그렇게 거리를 둔 것에 대해 하치만 오빠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고 저와 미리 짠 것처럼, 말을 걸지 않고 모르는 체를 해줍니다.

  저는 그것에 약간 안심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험담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들으면 거리를 벌린 이유에 대해 대답할 테니까요.

  혹시 하치만 오빠는, 「그런 건 익숙해」라고 한마디로 대답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치만 오빠가 익숙해질 때까지 험담을 들은 것을 생각하면, 역시 그런 사실을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11월에 접어들어, 추운 겨울이 찾아옵니다.

  우리들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릅니다만, 그 시기가 되니 소문도 상당히 수그러들었습니다. 10월 말에는, 「그냥 헤어졌다」라든지 「키리바나가 찼다」라든지 그런 제멋대로인 억측이 돌았지만, 그 화제도 차가운 서풍으로 깎여, 점점 옅어져갔습니다.

  그런 저는, 무엇 때문인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의 감정이 철썩 밀려왔습니다. 그, 남동생이 죽고 나서 반년 정도 이후.

  그토록 마음에 불이 붙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연기만 나고. 그것이 남동생을 잃었을 때와 너무나도 비슷해서, 남동생에게도 하치만 오빠에게도 미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문은 기세가 죽었지만, 요즘은 하치만 오빠와 만날 기회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10월 초순 정도부터 수험 때문에 예비학교에 다니게 되어, 히키가아가에 들러도 대부분 외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어떻다 생각하지 않지만, 평소보다 사람이 줄어든 히키가야가는 매우 넓고, 자주 들르는 거실도, 저와 코마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코마치가 요리를 만들자고 했던 것도 요 근래부터였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코마치 나름대로 우리들을 신경 써서, 배려를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따금 교대로 하치만 오빠의 식사에 원하는 메뉴를 메일로 물어, 대답이 없으면 하치만 오빠가 싫어하는 것을 만들어서, 반응을 듣곤 했습니다.

  1월이 되어, 길에 얇은 얼음이 서리기 시작하고, 때때로 눈이 살랑살랑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예년보다도 매우 추워서, 차가워진 공기가 근방에 가득 차, 평소보다 한층 더 겨울의 서글픔이 두드러졌습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숨을 하아-하고 내면, 하얀 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습니다. 눈이 옅게 쌓인 날에는, 코마치와 같이 길에서 미끄러질락 말락 하며, 꺄아꺄아하고 떠들면서 등교했습니다.

  2월이 되어 공기가 조금 더 차가워지자, 3학년의 분위기가 점점 팽팽해졌습니다. 수험이 가까워진 그들, 그녀들은 여태까지보다 더 어른스러워져서, 또 한 걸음 어른을 향한 계단을 올랐던 거라고 어째서인지 제가 실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치만 오빠와 이야기하는 것도 현저히 줄어들어서, 가끔 히키가야가에서 같이 있게 되어도, 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그저 인사하는 것만으로 끝났습니다.

  조금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3월. 하치만 오빠는 무사히 소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날에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꽃봉오리인 채였고, 조금 따분했습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리던 중, 하치만 오빠의 이름이 불려도 주변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시시한 소문은 이미 사라져, 누구에게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봄방학에 접어들어도 생활은 변함없어서, 코마치나 반 여자애들과 놀며,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숙제 하나가 있었는데, 빌린 책이 의외로 무거워서, 책을 넣은 가방을 들었을 때, 팔에서 듣기 싫은 비명이 들렸습니다. 이런 책도 빨리 전자화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봄의 양기에 싸이며 돌아갈 때 생각합니다.

  ......앞으로 백년만 지나면 분명, 과학이 발달해서 우리들의 마음도 전자처럼 취급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이 0과 1로 되어, 맛있는 것을 먹어 들뜨는 기분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 받아 가슴이 뜨거워진다거나, 그런 우리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숨겼던 감정을, 재미없는 이유를 치덕치덕 붙여서 인공적으로 재현해가겠지요.

  그렇게 되면 분명, 사람은 전자의 바다에 빠지면서 행복한 꿈을 계속 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나 할머니처럼 고민할 일도, 자신을 혐오할 일도 없이,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

  그 꿈은 스위치 하나로 쉽게 무산되는 아지랑이 같은 것으로, 모두 그렇게 애매한 것에 기대어, 점차 약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광경을 보는 것은 조금 동경하게 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과 함께 시간이 매우 빨리 흐르고 4월에 접어들어, 2학년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시업식 날, 저는 코마치에게 하치만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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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Ⅲ ~어렴풋한 마음~



  또 계절이 몇 번인가 돌아, 저와 코마치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처음 입은 교복은 코마치가 입으면 매우 귀여운데, 제가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왠지 별로 안 어울리는 것이 다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새 옷을 입었을 때에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눈 익은 가로수 길도 약간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들보다 2년 빨리 중학교에 올라간 하치만 오빠도, 히키가야가에 신세졌을 때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여,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른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느낀 사람은 저 만이 아닌 듯, 반 여자애들이 하는 이야기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예전의 연애이야기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끝났었지만, 그것이 누구와 사귄다든지, 그 애를 노린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자애들 몇 명은 이미 애인이 생겼다거나, 첫 데이트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이들은 아직 애인이 없는 아이에 비해 세련되어, 스커트 자락을 접는 방법이나 손톱 손질이나, 그런 세세한 부분을 꾸미는 차이가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어제 月9에 나온 사람, 진짜 멋있었지~.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 기억 못하는구나.....」

「왜냐면 처음 본 사람이었으니까. 그 있잖아, 안경 쓰고 엄청 본좌 느낌인 사람」

「아~ 그 사람. ......나도 이름 몰라」

「아카네도잖아! ......그래서, 어때?」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새콤달콤한 분위기에 조금 주눅들면서도, 연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때때로 저에게 연애상담을 해오는 일이 있었고, 그런 경우는 왠지 모르게 그 애들이 좋아하는 남자애를 알리는 의도를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애들이 마음에 둔 남자애에게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고, 그런 하찮은 이야기에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난 그런 타입은 별로 취미가 아닐지도」

「흐~응. 그럼, 어떤 게 취미? 될 수 있으면 연예인으로 말해줘」


  유행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몇 명 정도 들자,


「아~」


  납득했는지 못했는지 잘 모를 대답을 하고는 위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봅니다.


「......아카네는, 취미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츤데레, 같은 느낌? 갑자기 다정하게 대해지고 싶은 느낌이지?」

「듣고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항상 마주치는데 묘하게 성실하고, 요령이 좋지 못하며, 그래도 역시 서투르게나마 다정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 안 해. 난 자꾸자꾸 끌어 주는 사람을 좋아해.」


  그 때 예비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 이 이야기는 중단됩니다.

  그 뒤의 수업, 일차 함수의 공식을 건성으로 들으며, 방금 전 말한 취향에 딱 한 사람만 들어맞았던 것을 깨닫고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여자애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처럼, 남자애들도 점차 변해갔습니다.

  초등학교까지는 평범하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리를 벌리거나, 반대로 이상하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특히 후자는,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하긴 했지만 그것뿐입니다.

  교환했을 때 「한가하면 메일해」라는 말을 듣지만,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는 반 친구, 게다가 별반 흥미 없는 남자와 메일로 이야기할 내용 같은 건 없습니다.

  그 결과 제가 보낸 적이 없는, 거의 의미 없는 이름이 연락처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벌렸는데도 관계없이, 그런데도 갑자기 고백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게 고백한 사람들과는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고, 이따금 이야기를 하는 관계였습니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교류 중에서, 제게 호의를 품을만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어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며 대답하는데 얼마간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결국 그들과 함께 지내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전부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마치가 위원회에서 늦어져서 혼자 돌아가던 중에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돌아가던 하치만 오빠를 발견했습니다.


「하치만 오빠, 혼자인가요?」


  차도를 건너, 반대편 보도에 가서 말을 걸자, 하치만 오빠는 주위를 힐끔 둘러본 뒤 입을 열었습니다.


「뭐야, 키리바나인가. 혼자다, 오히려 자진해서 혼자 있다고 해도 돼.」

「아니요, 그게. 저한테는 거의 인사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기보다도 하치만 오빠의 경우, 혼자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누군가와 같이 있는 편이 놀랍니다.

  옆에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하자, 하치만 오빠가 걷는 속도를 늦춰주었고, 저는 하치만 오빠의 그런 배려에 감사하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발을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둘이 돌아가는 건 처음으로, 석양이 비치는 장면과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제 일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코마치는 어떻게 된 거야? 항상 같이 돌아갔잖아.」

「미화위원회 활동 때문에, 학교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 같아요.」

「하아... 그 녀석도 귀찮은 위원회에 들어갔구나.」


  저도 코마치도 동아리에는 안 들어가서, 수업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시간은 있지만 이따금 위원회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중학교는 전원이 어떤 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저는 교과 위원이라 방과 후까지 묶일 일은 없지만, 코마치는 불운하게도 유지관리를 하는 위원회에 들어간 것 같아,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네요. 오랜만에 귀찮은 일이 왔다고 했었어요.」

「......너희들, 요령이 좋으니까 말이지」

「저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아요. 코마치와 같이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그럴지도」


  그 상태로 코마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하치만 오빠는 누군가가 코마치를 노리는 게 아닌지 제게 자꾸 물었지만, 저는 지금도 다른 반이라 코마치 반에서 누가 노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마치에게 남자애 얘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는 것을 전하자, 하치만 오빠는 노골적으로 안도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큰 길을 빠져나가 좁은, 보도가 없는 길에 들어갑니다. 정면에서 차가 와서 피하려고 옆길로 갔을 때, 스치듯이 하치만 오빠의 팔에 부딪쳤습니다.


「......미안해요.」

「그래」


  하치만 오빠와 맞닿은 부분에 단번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이야기를 할 뿐인데 굉장히 즐겁고, 맞닿으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집니다.

  그런 현상을 소녀만화에서 몇 번이나 읽었지만, 제가 가진 감정은 이야기의 등장인물과는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구체적으로 이러니저러니 말할 순 없지만, 여기저기서 감정이입을 못해서 아무래도 자신의 감정에 자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해요.」

「뭐가?」


  약간 주저하면서, 이 불명확한 마음에 대해 하치만 오빠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에는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연애 이야기만 해요. 사귀고 싶다든지, 그런 느낌으로요. 어째서 그렇게 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요?」

「그거야, 단순한 발돋움이겠지. 속은 아직도 아이이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익숙하지 못한 짓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도 그런 동경만으로, 일부러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불러서, 갑자기 사귀고 싶다고 고백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매우 구체적이구만.」

「일반론이에요. 일반론.」


  딱히 일부러 다음 날에 소문이 될 만한 상황에서, 고백한 것이 불만인 건 아닙니다.

  아니, 실제로 소문이 나서 난처했지만요......


「......뭐 상관없나. 그거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좋아하니까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 말고는 표현하거나 이어질 방법이 없으니까 애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뿐이야.」

「그건, 하치만 오빠도 그래요?」

「......일반론이야.」

「......흐음, 그런 건가요?」


  그 하치만 오빠의 말로, 자신의 감정을 눈치 챕니다.

  아마도 필시, 일반적인 의미의 『좋아해』라는 것은,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상대에게 뭔가를 바라고, 상대에게 뭔가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귀려고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말해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이성으로서 하치만 오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대로, 지금도 심장은 조금 빨리 뛰고 있고, 그러면서 꽈악 하고 조여옵니다.

  애인이 되면 분명 즐겁고, 손을 잡으면 두근두근하고, 키스를 하면 매우 달콤한 맛이 나겠지요.

  하지만 저는 애인이 되고 싶은 것도, 손을 잡고 싶은 것도, 키스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호의를 가졌을 뿐입니다.

  이 마음을 전하려고도, 이루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야. 저, 할머니와 별로 다를 바 없잖아요.

  할머니만큼 상태가 심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대로 감정을 향할 수도 있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어서, 별로 이어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


  하치만 오빠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겁니다.


「아니요, 별 것 아닌 의문에 납득이 가서요.」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고, 깊은 음영이 곳곳에 퍼뜨려지면서, 태양은 가라앉아 밤하늘이 얼굴을 내밀려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가 손을 잡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우리들과 엇갈렸습니다.

  정말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하치만 오빠는, 역시 손을 내밀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


  대강 할아버지의 49제 법요가 끝났을 무렵부터일까요, 가끔 딱 시간이 비었을 때 성묘하러 가는 게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습관, 이라고 해도 3개월에 한 번일 때도 있고, 2주일 때도 있어서, 엄밀한 의미로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다니고는 있었습니다.

  오봉(お盆)이나 삼회기(三回忌) 같은 의식은 아무래도 서투릅니다. 정해진 것처럼 죽은 사람에 대해 떠올리면, 일상의 정보 안에 파묻혀, 분명 꼭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성묘라고 해도 큰일은 하지 않습니다. 묘를 청소하고, 꽃을 놓고, 향을 올리고, 사라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입니다.

  이름 밖에 모르는 남동생에게 사과하고,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근황을 보고하고, 얼굴과 이름 밖에 모르는 할머니에게 푸념이나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고인에게 푸념하는 건 잘못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할머니만큼은 아무래도 타인처럼 생각되지 않아서, 무심코 입이 가벼워지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도 전했습니다.

  무덤 속에서 주무시는 할아버지는 분명 기뻐해주시겠지요. 할머니는 무관심한 표정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동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로 의미 없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왠지 이 세 명에게는 제대로 전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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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Ⅱ ~ 쓰여 있던 것 ~




  텅 비어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의 집은, 건물의 낡음이 배어 나온 듯한 정체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마 고운 붉은 적색을 띠고 있었을 기둥이나 마루는, 지금은 이제 상당히 거무스름해져서 툇마루에 나와 나뭇결 끝을 밟아보니 삐걱삐걱하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가고 나서 며칠 뒤의 방과 후, 당분간 할아버지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무심코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매우 닮았을 할머니에 대해, 조금만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실은 아버지에게 묻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할머니의 별로 좋지 않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묻는 건 꺼려져, 결국 이렇게 제 손으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저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그리고 살아갔을까요?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가 평소 쓰는 방을 살펴봅니다. 여덟 다다미 정도의 큰 방은 햇볕이 잘 들어, 남쪽에는 눈을 구경하는 미닫이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슬쩍 봤더니, 찬장 위에 장식된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슴에 약간의 기대를 품고 들어서 확인하자, 역시 제가 상상하던 것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했을 때의 사진이겠지요. 지금보다도 상당히 젊은, 예리하고 사나운 용모의 할아버지가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단 같은 흑발을 묶고, 주홍색이나 금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듯한 요염한 옷을 입은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훨씬 거친 사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릴 적의 아버지와 고모가 모두 찍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세련되지 못한 옷을 입은 할머니는, 등까지 내려오는 흑발과 덧없는 표정이 매우 인상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할머니의 외관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저와 매우 닮았습니다. 특히 두 번째 사진은, 요즘 제가 등까지 머리카락을 내린 이유도 있어 정말로 쏙 빼닮았고, 지금의 제 용모를 그대로 성장시킨 듯한 모습입니다.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한 뒤, 할머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한 번 어루만지고, 사진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고 방을 뒤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몇 개 정도의 방을 찾다가, 한 방에 이윽고 다다랐습니다.

  여섯 다다미만한 다다미를 깐 방. 오래된 오동나무 장롱이 두 개와 작은 찬장, 그리고 화장대만이 놓인 곳이었습니다. 건조한 등심초와 오동나무 향이 방 전체에 그득 차 있어 절로 차분해지는 이상한 곳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쓰이지 않았겠지요. 최소한은 청소되어 있었지만 생활품은 없고,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정체감을 싫어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겠지요, 할머니는 평소 여기에 있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뭔가 일기 같은 게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하며 찬장을 찾아봐도, 칠흑색 비녀가 놓여있을 뿐입니다. 계속해서 맹장지 안을 보지만, 이불이 하나 있을 뿐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그 뒤 대략적으로 방 안을 봤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고 할 일이 없어진 저는 다다미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금 전 사진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립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간단히 버려질 것 같은 성격이라면, 저와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을 품고 있었을까요?

  ......어째서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을까요? 만약 살아 있다면 닮은 사람끼리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요절한 것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납득하고 있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반대로, 별로 세상과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스러지듯이 간단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그 상태로 멍하니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척이다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비치된 장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단상은, 아직 열지 않았습니다.

  사고 나서 시간이 상당히 흘렀겠지요. 본래 오동나무 색이 상당히 더러워져서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해졌습니다. 문의 쇠장식도 마찬가지로 녹슬었고, 적동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천천히 일어서서 가슴 높이 쯤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방금 전 사진에서 할머니가 입었던 옷과, 한 벌 더, 짙은 감색의 오오시마 명주가 곱게 접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 서랍을 열자, 약간 오래된 디자인의 양복이 있었습니다.

  과감히 다른 서랍도 열어보자, 고급스런 기모노가 몇 개 정도 있어서, 할머니가 양가 출신이라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8할 정도의 서랍을 열어보고, 장롱에 있을 법한 옷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낙담하며 맨 밑 서랍 안을 보자, 새까만 상복이 있었습니다. 낙담이 더욱 겹쳐, 무심코 다다미 위에 엉덩이를 철푸덕 붙이고 앉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서랍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생각해서 시선을 들자, 상복이 있는 곳 더 안쪽에 직사각형의 물체가 포개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에는 시선이 높아서, 안쪽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복을 치우며 손을 뻗습니다. 조금 까칠까칠한 종이 감촉이 손가락에 걸려, 그대로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빼낸 것을 확인했더니, 거기에는 빛이 바래서 약간 노래진 봉투가 있었습니다.

  전부 5매 정도의 오래된 봉투. 표면에 수신인은 쓰여 있지 않고, 뒤집어 봐도 발신인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석양 틈새로 보면, 안에 편지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그리고 죄책감도 품지 않고, 편지지를 꺼내 눈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마지막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여성의 사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누구에게도 호의를 품는 것도, 그 이전에 정신적인 유대를 필요로 한 적이 없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자신의 그런 성질을, 정신 연령이 높아서 그럴 거라 착각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결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 성질을 가졌으면서,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소녀 같은 순수한 사상을 가졌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돌려줄 수 없는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자신 같은 사람은 본래 혼자 살고,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썼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사는 시대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집의 권유도 있어, 맞선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 뒤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죄로 흘러넘쳐 있었습니다. 본래는 이런 형태로 결혼하는 것은 잘못되었고, 끝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신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남편을 이용했던 것에 대해서.

  다른 봉투의 내용도 확인해보니, 군데군데의 내용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일언일구를 구석구석 머릿속에 새기듯이 읽은 다음, 그 모두를 원래 안쪽 서랍에 되돌리고 나서 방에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뒤로 할 무렵은 태양이 상당히 가라앉아, 저녁노을이 주홍색과 연보라색이 녹아 하나로 섞이듯이 얽혀가던 중, 저는 태양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아빠랑 같이 병원에서 수속하고 올 테니, 아카네는 당분간 집에 있어.」


  그렇게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은 때는, 제가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가고 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의 오전 중이었습니다.

  전화를 수화기에 다시 놓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애도를 해야 합니다. 그 말은 하루나 이틀 정도는 학교를 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늘 오후부터 코마치와 놀 약속을 한 것을 깨닫습니다. 가족이 죽었는데 노는 건 역시 불성실하겠지요.

  히키가야가에 전화를 한 통화 넣으면 되겠지만, 왠지 모르게 바람을 쐬고 싶어져, 직접 코마치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익숙해진 거리를, 평소대로 걸어갑니다.

  전화 너머로 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 성격 때문인지는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좀 더 슬퍼해야 하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할아버지가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의 그 표정입니다.

  히키가야가에 겨우 도착해서 인터폰을 누릅니다. 오랜 시간 뒤, 졸려 보이는 표정을 짓는 히키가야 오빠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래, 키리바나인가. 무슨 일이야?」

「히키가야 오빠인가요...... 코마치 있어요?」

「왜 한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짓는 건데...... 코마치라면 엄마하고 같이 쇼핑하러 갔어.」


  히키가야 오빠가 역 방향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늘, 코마치와 놀 약속을 했는데, 장례식이 있어서 아마 무리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할아버지 돌아가신 건가」


  어딘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히키가야 오빠가 말합니다. 그 표정은 슬퍼보여서, 그 얼굴을 보자, 나는 예전처럼 가슴이 꽉 조였습니다.

  그런 한편 머릿속은, 자꾸자꾸 냉정해져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했을 때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과 동시에 할머니의 편지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읽혀갑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이래, 계속 머릿속에서 걸리던 것이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의 마음은 할머니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확실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역시 올곧은 마음이라는 건, 반드시 보답 받아야 합니다. 보낸 것이 되돌아오기에, 제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사랑한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매우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너, 우는 거야?」

「네?」


  히키가야 오빠에게 듣고, 왼쪽 뺨에 차가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저 자신,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울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사실이다. 좀 더 제대로 된 이유로 울고 싶었는데......」


  손등으로 뺨을 닦았습니다. 반짝반짝 투명한 물방울이 살갗에 닿아, 바람에 맞자 그 부분만이 서늘했습니다.

  정말로, 어째서 이런 일로밖에 울 수 없는 걸까요. 할아버지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 그걸로 슬퍼해서 상실감을 느끼며 울어야 할 텐데.

  제가 갑자기 운 것을 보고 조금 뒷걸음 친 히키가야 오빠는, 그래도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말이야. 세상에는 가족이 죽어도 썩은 미소를 짓는 놈들이, 넘쳐난다고 봐. 걔네들에 비하면, 사소한 이유라 해도 우는 네 편이 훨씬 나아.」


  제가 너무나 열심히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어서 그럴까요, 제 시선을 눈치 챈 히키가야 오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천국에서 보면, 우는 건 똑같잖아. 그러면 들켜도 문제없어. ......아무튼, 그러니까 저거다.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


  히키가야 오빠는 도중에 횡설수설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물건을 만지듯이 다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히키가야 오빠의 말에 닿자, 마음속에 따스함이 퍼져나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서투르지요. 좀 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더니, 제 마음 속에서 계속 반짝이던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아마도,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서투른 주제에 다정하고. 평소부터 비뚤어진 말밖에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해주는 히키가야 오빠를.

  그것이 이성으로서인지 어떤지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았어요.」

「......난 일반론밖에 말하지 않았어.」

「네, 일반론이네요. 그래도 말한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니까, 인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히키가야 오빠는 제대로 된 의미로,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이 때 확실히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다른 한 쪽이 간단히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가짜가 아닌, 제대로 된 진짜를.


「어머니에게 집에 있으라고 들어서, 이제 돌아갈게요. 또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관련해서 연락이 올 것 같아서요.」


  한 박자 두고, 조금 긴장하면서 입을 엽니다.


「그럼 하치만 오빠, 또 다음에」


  하치만 오빠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대로 뒤로 돌아서 집으로 갑니다. 조금 걸어가다가, 왼 눈보다 늦게, 오른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밤샘 조문에 참석해줘서, 할아버지의 넓은 인망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도 밤샘 조문에 와서, 코마치는 관 속의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주었습니다.

  출관 때, 저와 할머니를 매우 닮은 고모가 눈물을 흘리며 꽃을 얹고 있었던 것이, 매우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당분간 평소대로 지내다가, 전에 말한 숙제에서 미래의 꿈에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써서 제출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키리바나라면 반드시 될 수 있단다.」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저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패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을까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원하진 않지만, 적어도 혼자 살아갈 힘 정도는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살아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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