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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7 ~히키가야 하치만은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


  세계가 한들한들하고 흔들린다.

  반투명한 얇은 막이 사이에 있는 것처럼 시야는 뿌옇고, 보이는 것을 잘 인식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이름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할 수 없다.

  어딘가에 내던져져서, 의식이 혼탁해진 것 같다.

  애매한 세계에서 자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 완전히 기억하지 못했으면서, 전혀 위기감이 들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말았다.

  마치 무너져 내리는 동화 세계에 있는 것 같다.

  모순점을 알아차릴 수 없다,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는다, 위화감이 소실되어 있다. 망가지기 시작한 인형처럼, 사라질 때까지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모르는 채 계속 춤출 것이다.

  ......아아, 그래. 이런 현상을 꿈을 꾸는 거라 했었지.


―――――――


  갑작스럽게 의식이 되돌아와서 깨어난다.

  갑자기 의식이 돌아온 탓인지 몸이 튀어 올라, 책상을 흔들고 말았다.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이 부실 내에 울려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본다.


「아, 힛키 일어났어?」

「정말이지, 부 활동 중에 자다니 결국 머리까지 활동하지 않게 된 거니?」


  ......잠에서 막 깨어날 때 차가운 물을 퍼 맞은 기분이 되었다.

  한 번 머리를 흔들어, 의식을 깨운다. 희미해진 시야가 선명해져서 사고도 뚜렷해진다. 그렇게 해서 다시 얼굴을 들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평소처럼 보내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건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토츠카 이후, 아무도 상담하러 오지 않았잖아.」


  단지, 평소처럼 보내는 이유는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홍차를 훌쩍거리며,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의뢰가 없다는 건, 평화롭다는 증거야. 오히려 기뻐하렴.」

「아니, 그런 자취 생활하는 딸을 걱정하는 것처럼 말해도......」


  연락이 없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딸에게 당하면 틀림없이 타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토츠카가 상담하러 오고 나서는,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너무너무 한가해서 손에 든 책을 다 읽자마자 졸려졌다.

  5월이 끝나서 낮은 벌써 더위가 지배하기 시작했지만, 저녁에는 4월의 향기가 남아, 얕은 잠을 자기에는 딱 좋을 정도의 기온이 되어 있다.


「그래도, 좀 그러네. 간단한 고민이라도 좋으니까, 상담하러 와주면 기쁠 텐데...」


  유이가하마가 번둥번둥하고 먼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깨끗하고 맑게 갠 푸른 하늘은 평온 그 자체로, 어쩐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창을 통해서 침입하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고, 취주악부가 연주하고 있을 관악기음이 한산한 교사 내에 울려 퍼진다. 확실히 이 광경은 평화 그 자체다.

  뭔가 방과 후에 홍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보내는 부로 변했다. 봉사부라고 하지만, 오히려 우리들이 학교에서 봉사되는 것 같다.


「애초에 지명도가 너무 낮잖아. 히라츠카 선생님의 소개만으로는 수가 너무 적어.」

「그럼, 포스터 같은 거 만들어보자! 뭔가 귀여운 거」

「포스터라......」


  머릿속으로 선전 포스터를 마음에 그려보지만, 마구 팝 같은 글씨체로, 「최근 난처해하는 당신!」이나 「고민해결!」이라든지 「신이 사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이런 어쩐지 수상쩍은 건강식품이나 종교 권유 같은 표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담하러 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원래 봉사라는 것은, 말 자체로는 자원봉사 쪽 의미에 가깝다. 그것이 교외활동이 아니라, 학생을 돕는다는 건 이름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흔든다. 그 미묘한 표정을 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만둘까. 아까 유키노시타가 말한 대로, 상담이 없는 게 제일이야.」


  게다가 상담이 오면, 그건 그거대로 귀찮다. 그렇다면 다소 한가한 정도가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네. 이 건은 일단 보류해두고, 또 필요해지면 꺼내기로 하자.」

「그래? 그래도 상담이 안 오는 건 좀 외롭네.」


  유이가하마가 안타까운 듯이 말하자, 대화가 끊겨 정적이 찾아온다.

  ......종이컵에 따라진 홍차를 한 모금 마신다. 약간 설탕을 많이 넣었는지, 아니면 미지근해져서 단 맛이 강해졌는지, 씁쓸한 단 맛이 계속 입 속에 남고 말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한가하다. 장마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약간 습기 찬 바람이 열린 창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가, 봉사부라는 데 맞아?」



  지루함을 주체 못하고 다시 꾸벅꾸벅 졸려던 참에, 어쩐지 나른하면서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흘러내릴 것 같은 흑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그 여자는, 봉사부내를 바라보고는, 야무져 보이는 눈으로 나를 힐끗 본다.

  ......그런데, 플리츠에서 쭉 뻗은 다리는 다소 본 기억이 있지만, 누구지?

  어디선가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내 착각이라면 엄청 쪽팔리니, 모르는 사람으로 친다.


「맞는데, 무슨 용건이니?」


  우리들을 대표해서 유키노시타가 대답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로 누구지? K로 시작하는 이름인 것 같은데. 카와사키......는, *매의 프린스 이름이고, 카와바타는 문필가이군. ......카메로는 원래 외국인이니까 아니다. 그보다 카메로는 첫 글자가 C였지. 나는 정신적으로 전혀 향상심이 없는, 바보일지도 모른다.

※ 매의 프린스 : 한 일본 야구선수의 별명


「카와사키잖아! 무슨 일이야?」


  처음에 생각난 게 정답이었나...... 다만 이름을 알았을 뿐, 어디서 만났는지는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난 이 학교 사람 대부분을 만난 적은 있지만, 아는 사람이 전혀 없으니,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로.


「유이가하마, 네가 아는 사람이야?」

「힛키, 카와사키. 같은 반이야......」


  카와사키에게 안 들리게 작은 소리로 묻자,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혀하는 소리를 낸다.

  당연히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것이다.


「너, 반 친구 정도는 기억해두렴......」

「저 쪽도, 날 기억 못하니 문제없어.」


  아직도 내 이름이 맞게 불린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선생들도 가끔 「히, 히키타...... 히키가야, 여기 읽어봐」라고 말하는 처지다.


「잘 노는 중에 미안한데, 상담할 게 있어.」


  놀란 나머지, 무심결에 셋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유키노시타도 약간 놀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유키노시타는 유키노시타대로 지루했던 것 같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건, 이것이다.


「어떤 상담이니?」

「아... 그, 그게, 뭐라고 할까......」


  카와사키는 조금 어색한 듯이, 눈을 돌리고 우물거린다.

  처음의 지기 싫어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어딘가 매우 망설이는 말에 위화감이 든다. 어떤 성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시원스럽게 말하는 성격이라 생각한다.


「남동생이 사람을 조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는데......」

「......남동생?」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표를 띄운다.


「그래서, 그 동생은 어디 있니?」


  유키노시타가 은근히 왜 남동생 본인이 오지 않았는지를 물어본다. 확실히 본인이 오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조금 몸을 내밀어서 카와사키의 뒤쪽을 봤지만, 물론 아무도 없다.

  역시, 그래서 미묘하게 서먹서먹한 거였나. 자신의 용건이라면 몰라도, 남동생의 대리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중학생이라서 지금은 여기에 없어. 일단 만나려고 하면, 바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휴대폰을 꺼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카와사키. 30년 정도 전이라면 엄청 긴 스커트를 입을 것 같은 외모와는 정반대로, 누이와 동생사이는 좋은 것 같다.

  다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라고 할까, 의뢰주가 중학생인 시점에서, 이 건의 흑막이 보인 것 같다. 그 여자애 둘이 비웃는 소리가 먼 하늘에서 들리는 것 같다.


「그럼, 연락을 해줄 수 있겠니?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우리들이 뭘 해야 될지 몰라.」

「그래. 그럼 전화해볼게.」


  카와사키는 두 번 버튼을 누르고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전화하기 시작한다.

  그 조작 횟수가 적은 것을 봐서는, 남동생의 번호를 단축키에 넣었거나 이력이 맨 위에 있는 거겠지.

  ......이 녀석, 브라콘이군. 나도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야, 유키노시타. 이 의뢰 받을 생각이야?」

「몰라. 그건 만나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어.」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는 유키노시타를 보고, 약간 안심한다. 샘플이 너무 적어 판단하기 곤란했지만, 아무래도 뭐든지 부탁한다고 맡는 건 아닌 듯하다.


「응. 그럼, 거기 사이제에서」


  통화하는 입에서 새어나온 소리를 생각하면, 카와사키의 남동생과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카와사키는 그 뒤에 한 두 마디를 하고는, 조심해서 오라는 주의를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외로, 누나 역할은 제대로 하는 것 같다.

  몸을 돌린 카와사키는, 나를 힐끗 보며 입을 연다.


「그럼, 준비하고 와줄 수 있겠어?」

「그래, 그럼 가볼까?」


  유키노시타는 티 컵에 남은 홍차를 다 마시고 일어서서 나와 유이가하마에게 권한다.

  나도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를 따라 서둘러 홍차를 다 마시고는, 컵을 정리하고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할 수 있으면 가고 싶지 않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나중에 저 녀석들의 잔소리를 듣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연관되는 편이 마음도 편하고, 의뢰를 거절할 때도 이유를 갖다 붙이기 쉽다.


「그리고, 히키가야랬지? 너의 여동생들도 같이 있는 것 같던데」

「............」


  이 순간, 내가 카와사키의 남동생과 대면하는 것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