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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9 ~히키가야 하치만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태평한 학교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축포처럼 흐른다.

  판서하고 있던 가네다가 의외라는 듯이 시계를 올려다보고, 몇 명 정도가 벌써 필기구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가네다가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말하자, 토베가 활기차게 호령하며 우리들에게도 점심시간이 온다.

  조금 전까지의 정적이 거짓말같이, 떠드는 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한다.

  고등학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시끄럽다. 대학생처럼 「웨이~」라고 하는 원시인 같은 대화는 없긴 하지만, 어쨌든 목소리가 크고 화제가 끊임없이 쏟아져서 언제까지나 메아리친다.

  여자가 세 명 모이면 떠들썩하다고 자주 말하지만,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라면 남자 쪽이 크다. 그것이 한 방에 남녀가 섞여 40명이나 있으니, 그거야 시끄럽게도 될 거다.

  단지 이런 바보 같은 대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각각의 그룹이 마구 큰 소리로 얘기하는 모습은, 어딘가 세력권을 두고 다투는 새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룹끼리 확실히 거리가 벌어진 것이 우습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스트가 높을수록 소리의 크기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은 아직 동물의 본능에서 해방되지는 못한 듯하다.

  살그머니 교실에서 탈출하고 평소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가서 도시락을 펼친다.

  평소라면 냉동식품의 진화에 감동하면서, 한가롭게 뜨뜻한 점심을 즐길 때지만, 오늘은 기술의 진보를 즐기지 않고, 바로 위 속으로 흘려 넣는다. 평소보다 빨리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교내로 돌아가서 교사를 산책하기로 한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적당히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면 후보일 것 같은 곳을 표시해두는 편이 좋다.

  다만 뭐라고 할까, 타이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 남자는 단순하다. 하지만 창작물에서도 자주 나오지만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느낄수록 상대방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로 돌아오니 아까 전까지의 햇볕이 사라져서 살짝 어둡다. 창문이 많은 것치고는 의외로 햇빛이 잘 안 들어오게 만든 건물은 의외로 많다.

  아직 교복을 입고 있을 1학년들의 층을 돌아다녔지만, 그럴 법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황갈색 머리카락의 1학년이 조금 가까워졌지만, 그 사람은 머리 모양이 세미롱이었으니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그 귀여운 발랄함은 일부러 꾸민 거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약삭빠르다.

  어차피 돌아올 거니까 마지막에 2학년을 둘러보려는 생각으로 승강구에서 가장 가까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년마다 쓰는 계단이 올라가는 시스템이지만, 아무래도 이건 학교마다 다른 것 같다. 3학년이 1층, 2학년이 2층, 1학년이 3층이라는 식으로 학년이 오를 때마다 승강구에 가까워지는 시스템도 있는 것 같다.

  입체적인 위아래에 상석·말석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모르지만, 그런데도 3학년이 되어 아침에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솔직히 부럽다. 익숙해지면서 시간관념이 없어지는 것은 어딜 가도 적용되는 규칙이다. 나도 앞으로 1년 지나면, 지금보다 빠듯한 시간에 등교하게 되겠지.

  3학년 층은 느긋한 분위기로 가득 찬, 반 정도 열린 창을 통해 5월의 따스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것만으로 우리들 2학년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1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감을 내게 호소한다.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복도를 걸으며, 교실을 지나가면서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엿본다. 쇼트 컷을 표적으로 삼아서 찾아봤지만, 미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 누군가 찾고 있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뒤돌아봤더니 훌륭한 쇼트 컷 미인이 보기 좋게 서 있었다.

  세련된 브라운으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기복이 적은 몸매. 어딘가 침착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교복을 일부러 흩뜨린 탓인지 친밀감을 준다. 이 층에 있다는 건 3학년이라는 걸까.

  그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떠올라 있어, 딱히 나를 의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왜 나한테 말을 걸었지?


「피, 피가 이어지지 않은, 생이별한 누나를 찾으러......」

「당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적당한 말을 엉겹결에 하고 말았다.

  ......난 거짓말이 서투르구만.

  미인 선배는 이상하다는 듯이 교실 안을 보고,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한 번 더 내 얼굴을 본다. 가느다랗고 고운 검지손가락이 사랑스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매우 신경 쓰인다.


「생이별했구나.」

「그래요, 어렸을 때는 자주 놀았는데, 누나가 이사를 가서. 크면 결혼하자고, 약속했지만요.」

「그랬구나. 그럼, 그 애의 이름을 알려줘, 이름. 난 아는 사람이 많아서, 들으면 소개할 수 있어.」

「......이름 말인가요?」

「그래, 이름. 결혼 약속했다면 기억하고 있겠지?」


  이름 같은 건 모른다고.

  적당히 이름을 생각하는 동안, 선배의 검지손가락이, 점점 동그라미를 그리는 움직임으로 바뀌며 내 눈앞까지 올라온다. 무의식중에 빙글빙글 도는 손가락을 쫓아서 시선이 이리저리 돌고 말았다.

  그 자세 그대로 잠시 동안 있었지만, 우리들 사이에 쌓이는 침묵과 훈련받는 개와 같은 기분을 참을 수 없게 되어,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에요. 특별한 의미도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응. 아무튼 알았지만」


  꽃 피는 듯이 밝은 미소로 그렇게 말하며 선배는 손가락을 제자리로 도로 돌리고는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 옆에서 손가락을 돌리기 시작한다. 이 사람, 검지손가락으로 노는 게 버릇인가.

  한 번 더 선배를 봤더니 역시 타이시가 말한 특징에 부합한다. 어두운 갈색 머리에, 상대방을 많이 긴장시키지 않는 다정한 말투, 이런 사람이 둘 정도 있다면 이 학교의 여자 레벨을 수정해야 한다.


「응, 뭐 자세한 이유는 안 들어도 괜찮아. 그건 다음 기회에 들으면 되기도 하니까.」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한 발짝 다가와서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는 이즈에 메구미입니다. 당신은?」

「히,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잘 부탁해, 히키가야 군」


  매끈매끈 고운 손을 뻗어왔지만, 그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고 말았다.

  머릿속의 천사가 엄청난 기세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니아니, 절대로 이상하잖아. 이런 일로 하나하나 이름을 듣는다면 어딘가에서 스토커를 당할 거다.

  조금 의아하다는 듯이 내 손을 본 이즈에 선배는 천천히 뻗고 있던 손을 되돌린다. 그렇게 왠지 납득한 표정으로 수긍하고는, 다시 내 눈을 본다.


「저기, 왜 제게 말을 걸었습니까?」


  우선 목례만 하고 냉큼 떠나려고 했지만, 약간 신경 쓰여서 물어본다.


「음, 특이해서...... 아니, 썩은 눈을 가진 애가 살금살금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우선 말을 걸어 봤을 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심한 말을 들었다.

  말을 한 그 본인은 태연한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신랄한 말을 하는 건 아닌 듯하다.


「아무튼, 무슨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해.」


  내가 떠나기 전에, 이즈에 선배는 손을 흔들고 두 번째 교실로 유유히 들어간다.

  ......여기 당신 반이잖아.

  왠지 여우에게 홀렸다고 할까, 지나가는 비라도 만난 기분이다. 큰 피해는 없지만, 뭔가 마음에 항상 붙어 다니는 의미로.

  이대로 남은 교실도 돌아볼까 생각했지만, 이즈에 선배를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싫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일단은 목적을 완수했으니 더 이상 움직여도 소용없다.

  교사가 낡아서인지 단차가 높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다리를 딛고는 그대로 도서실로 향한다. 뭔가 읽을 건 아니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도서실이 딱 적당하다.

  오래되어 잘 움직이지 않는 문을 열고 도서실로 들어가자, 공동 책상에서 조용히 독서하는 유키노시타가 눈에 들어온다.

  교내의 소란스러움이 거짓말처럼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도서실 안에서 책을 읽는 유키노시타는 아름답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휘감고 있다. 그 때문인지 큰 책상에는 빈 자리가 있는데도 유키노시타에게 가까운 사람은 없다.

  이 녀석, 점심시간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거였나. 역시 친구 없구만.

  어디에 앉을까 약간 고민했지만, 마침 보고하고 싶은 것도 있었으므로 유키노시타와 대각선상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억지스럽지 않다고 할까, 역시 나와 유키노시타는 이 위치관계가 가장 편하다.


「무슨 용무니?」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들어올리고 맑은 목소리로 물어본다.


「여기에 왔더니 네가 있어서, 어제 건으로 마침 얘기하고 싶은 게 생겼어.」

「카와사키 군의 짝사랑 이야기?」

「짝사랑이라고 할까, 한눈에 반했지.」

「어느 쪽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잖니.」


  유키노시타는 읽다만 책에 꽃무늬 책갈피를 넣고는, 나에게 시선으로 계속 말하기를 재촉한다.

  닫힌 책 표지를 눈으로 쫓으면, 『걸리버 여행기』라고 쓰여 있다. ......흠, 영국 문학 중에서도 상당한 명작이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림책에서의 『걸리버』에서는 소인국, 추가로 거인국까지를 그린 게 많다. 하지만, 스위프트의 원작에서는 앞의 둘에 더해서 천공의 나라와 그 제국, 그리고 높은 지성을 가진 말이 지배하는 나라를 방문한다.

  이 작품은 풍자 소설로서 당시의 영국에 대한 비판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뭐니뭐니 해도, 라퓨타의 원래 소재가 존재하니까.

  유키노시타의 눈이 점점 험해지는 것을 깨닫고, 남은 생각을 끊었다. 무심코 시타가 내려오는 장면까지 재생하고 말았다.


「방금 전의 일인데, 타이시가 반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만났어.」

「그래, 어떤 느낌이었니?」

「아마 계산으로 하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좋더라. 초면인데 나한테 말을 걸다니, 보통은 있을 수 없잖아.」


  초면 혹은, 이야기했던 적이 없는 여자에게 상냥하게 대해진 적은 초·중 합계 다섯 번 있다. 그 모두가 벌게임 혹은 깜짝쇼라는 결말이었지만. 즉 통계상, 친절한 마음으로 처음부터 말을 거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째서 히키가야 군이 말하면, 이렇게나 설득력이 있을까?」


  유키노시타는 기막히다는 듯이 숨을 내쉬고, 머리에 손을 대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실제 체험이다...... 뭐 그러니, 역시 상대는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이즈에 선배에게 애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타이시가 꽤나 반하지 않은 한은 사랑은 물거품이 되어 바로 스러지게 될 거다.

  뭐, 실연하게 돼도 그건 그거대로 타이시가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배워서, 어른으로 가는 계단을 한 발짝 오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약간은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그 부분은 지금 생각해서는 안 되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 어느 쪽이든, 움직이고 난 뒤에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겠네.」

「뭔가, 흘러가는 대로구만」

「임기응변이라고 말해주렴.」


  잠시 침묵한 뒤,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벨이 울려 도서실내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저 실례할게. 또 방과 후에 만나자.」


  유키노시타도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멈춰서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본다.


「유이가하마가 분명히 5교시는 체육이라고 말했는데, 히키가야는 괜찮겠니?」

「......앗」


  5교시까지 남은 시간은 약 5분. 그 안에 나는 교실로 돌아가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까지 내려가야 한다. 대충 잡아도 7분 정도는 걸릴 거다. 그리고 옆에 있는 창문을 통해 교정을 들여다보니, 담소하면서 슬슬 나오는 하야마 그룹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무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