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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6 ~둘의 성묘~
 

  어렸을 적의 이야기이다.

  서로의 딸 사이가 좋았던 히키가야가와 키리바나가는, 쌍방이 맞벌이라는 이유도 있어, 어느 한 쪽이 바쁠 때는 다른 한 쪽 집에 아이를 맡겼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방과 후는 코마치와 같이 키리바나의 집으로 가서 그대로 밤까지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그 때 때때로 근처에서 상태를 보러 와서 우리들의 상대를 해 준 분이 있었다.

  키리바나의 할아버지다.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시간을 주체 못하는 노인답게, 하루 종일 책을 읽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온화한 분이었다.

  코마치와 같이 놀러가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손주가 셋이 되어 곤란하다고 웃으며 우리들 셋을 돌봐주었다.

  나와도 가끔 오목을 두며 놀아주셨지만,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할아버지의 서재에 늘어선 장서였다. 여덟 다다미 정도 큰 방의 한 쪽을 다 메우던 책은, 본인이 이르길 아직 반도 읽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아이였던 나는 작은 도서관처럼 생각했고, 서재 문을 열었을 때의 오래된 종이 냄새가 좋아서, 가끔 빌리러 와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은 하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단다. 그러니 좋아할 대로 읽고, 자유롭게 즐기려무나.」 이렇게 할아버지가 한 말에 영향을 받은 나는, 그 이후로 더 혼자서 책을 읽게 되어갔다.

  ......뭐, 할아버지 탓에 나의 외톨이화에 박차가 가해진 건 부정할 순 없지만.
 
  그런데도 친 조부모님이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나와 코마치에게는 제 3조부라고도 할 수 있었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지금, 찬 무덤 아래에서 편히 잠들어 있다.


――――――――


  고운 쇄석이 깔린 길을 걸어가니, 자갈을 밟아서 나는 불협화음이 근처에 공허하게 퍼져나간다.

  그대로 문을 빠져나가 경내로 들어가자, 신불 상의 색을 바탕으로 한 포장과 신록의 대조가 어우러져, 왠지 그것만으로 조금 평온해진다.

  역에서 도보로 우리들 집 방향으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그 묘지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묘하러 간 적은 별로 없구나. 조부모님은 건강하시고, 키리바나의 할아버지 말고는, 가까운 사람 중에 죽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추석에, 누가 잠들어 있는지 모르는 무덤에 가는 정도다.


「코마치는 안 불러도 돼?」

「코마치와는 가끔 가요. 그래서 오늘은 하치만 오빠가 참배하러 갔으면 해서」


  그대로 경내를 걸어갔더니, 곧바로 부지가 묘지로 변해간다.

  키리바나는 익숙한 손짓으로 국자와 통을 빌려서 통에 물을 채워간다. 약간 무거웠는지, 키리바나는 통을 들어 올리고는, 조금 휘청거리고 나서 통을 다시 한 번 둔다.

  할 수 없이 키리바나에게 국자를 빼앗아, 통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린다.


「감사합니다.」

「왠지 익숙해 보이는데, 자주 와?」

「자주 오는 건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떠오르면 할 수 있는 한 가고 있어요.」


  키리바나가 걷기 시작했으므로, 뒤따라간다.


「그렇다기보다는 싫은 거예요. 기일이나 무슨 주기나 추석, 그렇게 판에 박은 듯이 만나러 간다니, 왠지 불성실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떠올랐을 때 만나러 가는 편이, 기뻐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다지 넓지 않은 묘지라, 바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역시 자주 오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인지, 몇 조 정도의 가족동반과 마주쳤지만, 경내는 조금 한산하다. 뭐, 성묘하러 가는 것이니, 이 정도로 조용한 게 딱 좋겠지.

  키리바나가의 무덤은 조금 오래돼서, 원래 있던 광택이 사라져 퇴색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주지 스님이 청소해줘서 그런지, 전체적인 더러움은 눈에 띄지 않고 제대로 손질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 기억나?」


  문득 신경 쓰여서 키리바나에게 묻는다.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과연 사인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옳다면 80세가 되기 몇 년 전에 돌아가셨을 테니, 노쇠하기에는 빨랐으리라.


「확실히 폐렴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이유로 입원해서, 바로 그대로 돌아가셨으니」


  둘이서 묘석에 물을 붓고, 꽃 통에도 물을 따른다.

  그러고 보니 묘석에 물을 부을지 여부는 종파나 집안의 관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다만 무덤 위부터라고 해도, 고인의 머리에 물을 붓기가 꺼려지는 건 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사 온 꽃을 꽃 통에 세우고, 한 숨 돌린다.


「그나저나 향을 안 가지고 왔는데......」

「제대로 가져왔으니, 괜찮아요. 여기 성냥도」


  키리바나는 토트백에서 향과 성냥을 꺼내고는,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보여준다.

  준비 만반이잖아......


「그럼, 이쪽이 주된 볼 일이었던 건가」

「그래요, 원래 성묘하려고 해서, 거리에서 꽃을 사서 가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마침 하치만 오빠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그랬다니, 나도 키리바나와 마주쳐서 다행이다.

  2년이나 3년 정도지만, 많이 신세를 졌던 분이다. 그럼에도 참배하러 간 적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한 번 뿐이다. 이런 기회가 없다면, 좀처럼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향에 불을 붙이자, 그 독특하고 건조한 냄새가 떠돌아 와, 어딘가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한다.

  그 후에는 둘이 앉아서, 손을 모아 합장한다.

  실없는 얘기를 할아버지에게 하고 얼굴을 들자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렇다 쳐도, 할아버지도 조금 빠르네요. 좀 더 오래 살아도 벌은 안 받을 텐데」

「그래도 귀여운 손주 같은 게 둘이나 늘어났잖아. 행복하지 않았을까?」

「......귀여운?」


  키리바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옛날에는 귀여웠단 말이다, 옛날에는.


「아무튼, 행복했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불행은 없어서 다행이에요.」

「무슨 말이야?」


  조금 신경 쓰여서, 되묻는다.

  키리바나는 나를 향했던 얼굴을 정면으로 되돌리고 나서, 막힘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 지론입니다만, 사람은 행복을 얻는 것보다도 불행하게 되지 않는 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모두 행복해지는 데는 정원이 있어서, 모두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어요. 그리고 너무 지나치게 행복을 추구하면, 꿈이 깨져서 절망하거나 가난을 계속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도 알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노미적 자살이네요.」


  키리바나는 한 숨 돌리고, 장식된 꽃 한 송이를 손에 든다.


「그래서, 누구나 타협을 하는 거예요. 멋진 사람과 결혼하기를 포기하거나, 뮤지션이 되기를 포기하고 회사원이 되는 것도 그 하나의 예에요. 좋아하는 게 없어도 참을 수는 있지만, 병들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참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불효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지요. 나쁜 짓 같은 건 안 했는데, 불합리하게 죽는 일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선, 이런 때는 불효가 되지 않았던 것을 기뻐하려고 생각해요. 그런 식으로 살 수 있었던 게 고귀한 일이라는 것을, 전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키리바나는 묘석을 보는 채로 이야기를 끝내고, 말한 것이 부끄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린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당분간 그대로 있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분위기를 무겁게 해서 미안해요.」

「뭐, 무덤 앞이니 어쩔 수 없잖아.」


  그 후, 향이 넘어지지 않게 깊이 넣고, 누구랄 것도 없이 일어서서 국자와 통을 돌려주러 간다.

  돌려주다가 가사를 입은 아저씨와 엇갈려서 우선 인사만 하고 지나간다.


「......저기, 그 사람은 스님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여기의 주지 스님이에요.」

「머리를 안 깎았네......」


  사원의 스님은 누구나 머리카락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뭔가 위화감이 든다. 종파에 따라 다른 건가.

  절 문을 빠져나와, 시계를 확인했더니 오후 2시가 다가오려는 중이었다.

  서로 특별히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걷는다.

  역시 오후의 햇볕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강렬해서, 5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열기가 자욱하다. 좀 더 엷게 입어도 좋았을지도 모른다.


「참, 그 꽃 얼마였지?」

「앗, 괜찮아요. 이번에는 제가 끌고 간 거고」

「그렇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지.」


  그렇다고 할까, 만약 키리바나가 돈을 낸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것을 코마치가 알게 되면 진짜로 혼난다. 거기에 나도 상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 다음에 참배하러 갈 때는 얘기할 테니까, 그 때는 하치만 오빠가 꽃을 사주세요.」


  키리바나는 마지못해하며, 그렇게 제안한다.

  지금 여기서 돈을 내는 것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지만, 그게 좋다면 어쩔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코마치도 부르자.」

「그러네요. 셋이서 가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평소처럼 내 앞을 걸어 나간다.

  ......할아버지의 성묘를 한 탓인지, 어릴 적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키리바나에게 들었던 그 날, 나는 키리바나가 우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전혀 슬픈 내색 없이, 어딘가에서 흘러넘쳐 떨어진 것처럼, 단 한 방울만 눈물을 흘린 키리바나는 내가 알려주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로, 키리바나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