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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4 ~소녀들의 걸즈 토크~




「그럼, 아카네랑 힛키는 소꿉친구라는 거네!」


  유이가하마가, 매우 건강에 안 좋아 보이는 색의 멜론 소다를 빨대로 얼음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자리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중이다.

  초면일 경우, 본심인지 어떤지는 둘째 치고 여자 쪽이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들었고, 이 중에 호전적인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그 한 사람도 기본적으로는 반격 형이라, 도발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기 때문에, 딱히 분위기가 나빠질 요소도 없을 것이다.


「일단 초등학생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돼요.」


  키리바나도 처음에는 조금 딱딱하기는 했지만, 바로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그 나름대로 터놓고 가볍게 농담까지 한다.

  그러고 보니, 키리바나와 만난 지 7년이나 됐나.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을 빼고는 가장 긴 관계가 된다. 만일 알고 지낸 연수를 막대그래프로 나타내면, 엄청 튀어나온 그래프가 완성되겠지.


「그 때는, 오빠도 귀여웠답니다. 두 분에게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히키가야의 어릴 적이라...... 터무니없이 귀엽지 않은 아이밖에 상상할 수 없어.」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내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고도 우습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도 흥미로운 듯이 듣고 가끔 끼어들어서 즐기고 있다.

  여자들 간의 대화에는 아무래도 끼어들기 힘들다.

  애초에 화제 전개가 너무 빠를 뿐만 아니라, 패션 이야기로 막 들어간다. 게다가 난 이해 못할 외국어가 난무해서, 패션인지 해외 풍습을 말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된다. 아직 세계사 인물 이름 쪽이 기억하기 쉬울 정도의 명사가 줄줄 늘어선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나는 세계사 교과서를 노려보는 중이다. 탈출은 못하지만, 구석에 있으므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위화감은 없다.

  1616년, 누르하치와. 민족이 다르다고는 해도 왜 이 사람만 가타카나지? 게다가 그 뒤에 나오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렵고, 더 이상 쓰기 어려울 수가 없다.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이 세 명이지만...... 거기에 이 사람들 한 페이지에 들어가 있으니까.

  한자 쓰고 싫어서 세계사를 골랐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하는 거냐고...... 게다가 세계사 담당은 시험에서 기뻐하며 한자 오류를 감점한다. 삼국지 전후의 시험에서 15점을 한자 오류로 틀렸을 때는 진짜로 울고 싶어졌다.


「자, 여기 사진을 보세요. 정말 귀엽다구요.」


  코마치가 뭔가 불길한 제안을 한다. 내 어릴 적 사진 같은 건, 진짜 부끄러우니 그만둬. 게다가 그 뒤, 높은 확률로 졸업 앨범까지 보여줄 것 같아서 무섭다. 중학교 졸업문집 같은 건 흑역사에 불과하다.

  이대로 집으로 몰려오는 것도 난처해서, 키리바나에게 구원요청을 한다.


「키리바나, 어떻게 못해?」


  키리바나는 내 샤프를 들고, 내 교과서에 왠지 예서체로, 『무리예요』라고 쓴다. 역시 『무』는 예서가 빛나 아름답다. 행서나 초서는 눈에 비치는 아름다움을 알기 쉽지만, 예서에는 묘한 매력이 넘친다.

  ......그나저나, 왜 말로 안 하는 거지?

  한 번 더 재촉의 의미를 담아 샤프 머리로 키리바나를 찌르자, 키리바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예쁜데, 애인은 없나요?」


  라며 대화를 끊어준다. 어찌됐든 무른 녀석이다.


「나? ㄴ, 난 없다고 할까-」

「나도 없어.」


  우연이군, 실은 나도 없다.


「..........」


  뜻하지 않게 우리들 사이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흐른다. 내 유리잔의 얼음이 튀어,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코, 코마치는 어때? 둘 모두 귀여운데」

「우리들도 없어요. 아카네는 많이 고백받긴 하지만요.」


  ......이상하군,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외모가 좋은 녀석일 텐데.

  옆에 있는 키리바나를 슬쩍 보니, 손등을 턱에 괴고 있었다. 중학생답게 화장기는 없지만, 속눈썹은 적당히 위로 뻗어 있고 이렇게 봐도 용모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응? 고백된 사람들 중에 누군가랑 사귀려고 생각 안했어?」


  유이가하마가 조심스럽게 묻자, 유키노시타가 키리바나를 보충한다.


「고백되었다고 해서, 누군가와 교제하려고 하는 건 경솔한 생각이야.」


  아마, 이 중에 가장 많이 고백 받았을 유키노시타의 말이니만큼 설득력 있다. 이 녀석도 그 나름대로 고백 받고, 사귀지 않을 거냐고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댄 적이 있으리라.

  그리고 들은 적은 없지만, 키리바나도 동일한 사태에는 한 번 정도는 조우했을 것이다. 연애에 얽힌 화제는 놀랄만한 속도로 퍼지고, 누군가의 대화거리가 되고 만다.


「교제하려고 생각했던 적은 없네요.」

「누군가 조,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이유가 아니지만요. ......뭐라 할까, 연애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고, 데이트 같은 것을 하고, 상대가 나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런데도 상대방을 좋아할 수 없게 된다면 왠지 미안해지잖아요.」


  그건 일전에 미사키 군에게 했던 말과는 약간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차이가 나는 말이었다. 어쩐지 이 녀석,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없어 보인다.

  의외로 진지한 말이라, 유이가하마가 조금 놀란다.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아요.」

「그래도 혹시, 그 사람한테 차이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때는, 단념하고 다른 사람이라도 찾을 거예요.」


  키리바나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전혀 입을 열지 못하고, 무언가 할 말을 찾고 있다. 코마치는 평소와 변함없다.

  확실히 거북한 분위기가 된 것이 신경 쓰였는지, 키리바나는 「슬슬 밥이라도 먹을까요」라고 말하고는 벨을 눌렀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주문하고, 드라마나 최근 유행하는 이야기를 하며 먹기 시작하자, 아까 전의 분위기가 지나가고, 마음 편한 대화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 새 밤의 장막이 내려와, 마을이 인공적이고 무기질적인 불빛에 비춰지기 시작한다. 코마치도 키리바나도 중학생이라 빨리 돌아가라고 재촉하고는 그 자리는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하늘은 먹물을 흘려 넣은 것처럼 물들어 있었다.

  여기부터라면 우리 집과 키리바나의 집이 가까워서, 우선은 코마치와 키리바나를 집까지 보내고, 거기부터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를 보내주러 간다.


「힛키랑 그렇게 가까운 애는 처음 봤어.」


  내 앞을 걷는 유이가하마가, 뒤돌아보며 말을 건다.

  유키노시타는 조금 전의 신호등에서 헤어졌다. 의외로 키리바나가 마음에 든 것 같아, 또 만나고 싶다고 약간 기분 좋은 듯이 말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알고 지낸 시간만은 기니까. 코마치 2호 같은 거야.」


  왠지 코마치 2호라고 하니 우주선 같이 들리는군, 이런 말이 머리 구석에서 떠오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좀 더 학교에서 붙임성 있게 말하면 좋을 텐데......」

「그걸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 외톨이인 거다만」


  은둔형 외톨이라도, 가족과 대화를 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할까,


「뭐, 그 녀석은 예외 같은 거야.」


  어렸을 적은 코마치와 한 짝처럼 인식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하는 방식이 코마치와 비슷하게 되고 만다.

  조금 의식을 너무 해서 멀어진 시기도 있었지만, 결국 여동생 이하, 아는 사람 이상이라는 관계로 자리 잡았다.

  최근 조명 빛이 희미해진 편의점 앞에, 같은 고등학교 사람들이 모인 것이 보여, 유이가하마에게서 거리를 벌린다. 유이가하마는 발소리가 멀어진 것을 알아챘는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뒤돌아보았다.


「봐, 그런 거」


  유이가하마가 볼을 부풀리면서 걸음을 멈추고, 내 옆에 나란히 선다.


「나랑 유키농이랑, 거리에 신경 쓰고 있지? 그래도, 뭔가 얘기하고 있어도 아카네한테는 그런 게 없으니까」

「..........」

「그러니까 우리들한테도, 좀 더 사양 안해주면 기쁠 것 같아.」


  유이가하마는 그 말만을 부끄러운 듯이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또 나를 앞서가기 시작한다.

  침묵을 메울 말을 찾았지만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밤길을 걷자, 보기 좋게 줄선 주택가로 경치가 바뀐다.


「여기까지면 돼. 바래다줘서 고마워.」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가로등 아래를 걷는, 유이가하마의 작은 등을 가만히 바라본 뒤, 나는 그대로 귀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