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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3 ~히키가야 코마치는 환희한다~


  수학,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문 중의 하나라고들 한다.

  세상은 온갖 숫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숫자를 조합하는 식으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피라미드와 그리스 조각 등에 쓰인 황금비를 봐도, 그 아름다움은 압도적이다.

  음악, 정수론, 기하학, 천문학으로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려고 한 고대인의 생각에도 납득이 간다. 세계가 아름답다면, 그 근원을 이루는 수학이 아름다운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학에도 중대한 결점이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수학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말을 시켜보면, 간단한 문제는 공식을 적용시킬 뿐인 듯하지만, 애당초 적용시키는 방법을 모른다. 어딘가의 시건방진 연하녀가 말하기로는 학교 수준의 수학은 암기인 것 같다만, 공식 이외에 뭘 외워야 할지.

  키리바나가 고등학교 수학을, 공식과 예제 하나를 본 것만으로 풀었을 때는, 진심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싶어졌다. 그 문제, 내가 5분 걸려도 못 풀었는데.

  지금까지는 키리바나의 공부법으로 어떻게든 됐지만, 요즘 수학에서 시그마랬나, 어딘가의 보스 같은 놈과 조우하고 나서,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전혀 모르겠다. 아무래도 록맨은 이과인 것 같다.

  그런 불안을 품으며, 근처의 가스트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다.

  근방에 있는 가스트는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근처에는 버스 정류장도 없고, 가기에는 차가 최적인 입지라 같은 학교 사람과 만날 걱정도 별로 없다.

  아무튼, 저거다. 유이가하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원래 나는 혼자 공부하는 편이 아마도 효율이 좋으니 어쩔 수 없다.


「어라? 오빠?」


  대충 20분 정도 걸었을 무렵, 천사 같이 귀여운 목소리에 불려서 발을 멈췄다.

  뒤돌아보자 역시, 천사처럼 귀여운 소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천사라고까지는 말하진 않지만, 조금 덧없는 미소녀가 꼿꼿이 서 있었다.


「그래, 코마치였어? 뭐야, 저녁밥 안 만들어?」

「오빠가 밖에서 먹으면, 우리들도 외식하려고 해서」


  뭔가, 오늘은 아이가 없으니, 집안 부부끼리 먹자는 것 같은 이야기구만.


「시험도 가까워서 하는 김에, 밥 먹고 나서 공부하려고 한 거예요.」


  코마치의 이야기를 키리바나가 보충한다.

  과연, 학생이 생각하는 건 대부분 같겠지. 기본적으로 시험 기간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떤 학교에서도 같은 시기에 치러진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시험 기간 중의 저녁에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에서 학생이 공부를 하는 모습도 드물진 않다.


「그래? 그러면 같이 먹을까? 가스토에 가려고 했는데......」

「가자가자! 역시 오빠! 저기, 뭐 먹을까?」

「제철 과일 파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네요. 누군가가 낸다면, 아마도 굉장히 맛있을 거라 생각해요.」


  오늘 밤 메뉴를 기쁜 듯이 얘기하는 코마치와 키리바나를 뒤에서 바라보면서, 그대로 가스토로 향한다.

  코마치와 키리바나와 같이 먹으면, 내 식비가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나나 엄마나 아빠도 키리바나에게는 무르다. 아들에게는 엄하지만. 그렇다면 같이 먹지 않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내가 한 턱 내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잖아.


―――――――


「있지, 아카네」

「응?」

「이거, 알려줘」


  쓴 맛이 강한 커피를 입에 대면서, 여자 둘이 얼굴을 바싹 옆으로 대고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키리바나가 어른스러운 건지, 아니면 코마치의 키도 어우러져서 어리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있으면 사이좋은 자매로 안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런, 안 돼. 여동생을 정신없이 봐서 공부에 손이 가지 않다니, 마치 시스콘 같잖아.


「저기 하치만 오빠, 빤히 보면 공부하기 어려우니, 그만해주시면 좋겠어요.」

「미안, 코마치를 봤다.」

「우와... 속으로 생각한다면 모를까, 확실히 입으로 말하면 깨네, 오빠......」


  속으로 하면 허락해주는 부분이, 하치만한테 포인트가 높지만 말로 꺼내면 코마치의 호감도가 내려가서 그만둔다.


「그나저나 오빠, 동아리 안 가도 돼?」


  코마치가 노트와 눈씨름을 하며 물어본다. 아무래도 고전하는 듯하다.

  얼굴을 뻗어 들여다보니, 2차함수를 하고 있었다. 남매가 모두 수학이 약한 건, 부모가 서툴러서 그랬을 거다. 그러니 우리들이 수학을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원래, 봉사부라는 건 뭘 하는 곳인가요?」


  그에 반해 키리바나는 자신의 교과서를 거의 안 보고, 카페오레를 마시며 코마치의 노트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전히 여유 넘치는 녀석이다.


「뭘 하는 곳인가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상담해주는 곳 같은 느낌이야.」


  애당초 상담은 두 건 정도밖에 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수 없다. 평소에는 책만 읽을 뿐이고.

  키리바나는 할 말을 생각하듯이 입술에 손을 대고는


「과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라고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한다.


「어이, 내가 타인에게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하는 거야?」

「아니아니 아카네, 오빠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할까 빨리 누군가가 보살펴 주지 않으려나~」


  전업주부 희망인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부양받을 생각으로 가득해서 부정할 수는 없다. 할 수 있으면 길러줬으면 한다.

  다만, 오빠를 조금만 더 평가해줘도 좋지 않겠니? 코마치 양.


「그나저나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활동 같은 건 안 해. 틈만 나면 남의 약점을 찌르는 녀석이나 자각 없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녀석이라든지, 그런 녀석들뿐이다.」


  그렇다고 할까 그 둘 뿐이지만. 원래 저 녀석들에 대해서 둘에게 말했던가? 동아리에 들어간 것까지는 말한 것 같은데.


「어머,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인데, 히키가야」


  어라라? 이상하다. 여기에 없어야 할 유키노시타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흠칫흠칫 얼굴을 들자, 실망한듯한 표정을 짓는 유키노시타와 어색한 듯이 쓴 웃음을 짓는 유이가하마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머리를 눌러 콧날을 살짝 문지르고는 시선을 돌린다. 아무래도 환각은 아닌 것 같다.


「너희들, 사이제 간 거 아니야?」

「아니, 사이제는 사람 많아서......」


  왜 둘을 피해도, 만나게 되는 걸까.


「오빠~아, 저기, 누구! 누구! 오빠 아는 사람?」


  코마치가 몹시 기쁜 듯이 일어서서는 사회인이냐고 말하고 싶어질 만한 저자세로 둘에게 인사하러 간다.


「항상 오빠가 신세지고 있어요. 네, 히키가야의 여동생인 히키가야 코마치예요.」


  뭐야, 그 자기소개는. 그대로 명함을 건네줄 기세잖아.

  코마치의 기세에 조금 압도되면서, 약간 당황하던 유키노시타였지만, 바로 표정을 되돌린다. 코마치와는 텐션이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유이가하마는,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해 보이는 상태로, 코마치에게서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입니다. 히키가야와 같은 봉사부에 있습니다.」

「처, 처음 봬요. 힛키의 반 친구인 유이가하마 유이예요......」

「처음 봬요......?」


  왠지 유이가하마의 자기소개에 고개를 갸웃거린 코마치였지만, 잠꼬대처럼 「처음 봬요?」라고 몇 번 중얼대고는 납득한 듯이 표정을 활짝 폈다.

  야, 뭐에 납득한 거야?


「처음 뵙겠습니다. 그럼 자~자~ 앉아주세요.」

「......어이, 우선 너도 인사해둬」


  입을 열어, 멍 때리는 키리바나를 재촉한다. 키리바나는 봉사부 둘과 나를 교대로 보고는 코마치처럼 일어나서 봉사부 둘 앞으로 뛰쳐나갔다.

  ......둘에게 놀랐는지, 키리바나의 동작이 평소보다 느릿느릿한 게 신경 쓰인다.


「......코마치의 친구인 키리바나 아카네입니다.」


  키리바나가 약간 소극적으로 자기소개를 하자,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도 동요한 듯이 얼굴을 맞대고, 소곤거린다.


「엄청 귀엽네.」 「귀엽네.」 「상상 이상이었어!」 「그래, 설마 이런 애가 히키가야의 여동생이었다니......」 「어? ......그 쪽?」 「......다른 거니?」 「아니, 그게! 아카네 쪽」 「그녀는..... 귀엽다기보다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어른스럽지」 「확실히, 중학교 3학년이랬지?」 「왠지 어른스러움에서도 진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유이가하마」 「......유키농!」 「어른스러움만이 여성의 매력은 아니란다.」 「부정해주지 않아!」


  ......이 녀석들, 목소리 음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다. 눈앞에서 그런 얘기를 해서, 키리바나가 약간 거북한 듯이 눈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건 이거대로 드물어서 좀 재미있다.

  그나저나, 중간부터 만담으로 바뀌었잖아.

  대충 자기소개가 끝나자, 코마치가 키리바나를 원래 앉았던 자리의 반대――즉 내 옆으로 밀어 넣고는, 테이블에 널린 공부 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자, 여기요. 모처럼 이니까 같이 얘기하자구요.」


  코마치도 그렇게 말하고는, 이쪽 편 테이블로 온다.

  키리바나가 자리에 앉을 때, 내 귀에 손을 대고 속삭인다. 키리바나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귀에 닿아, 약간 간지럽다.


「뭔가, 대단히 아름다운 사람과 대단히 귀여운 사람이네요.」


  부정도 긍정도 하기 어려워서 침묵을 지킨다. 키리바나도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지, 그대로 자리에 앉는다.

  원래부터 테이블석이라 세 명이 앉을 수 있지만, 확실히 좁다. 키리바나의 팔꿈치가 몸에 때때로 닿는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도, 서로 눈을 맞대고는 자리에 앉는다. 아무래도 돌아가겠다는 선택지는 없는 것 같다.

  오른쪽을 보자 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음, 오늘도 활기차게 눈이 썩었군. ......정면을 보자, 유이가하마가 약간 기분이 안 좋은 듯이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키리바나가, 홀짝홀짝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다.

  왠지 경찰차로 연행되는 기분이 들어, 의미도 없이 텐션이 내려간다. 뭐, 탄 적은 없지만......

  이렇게 둘러싸이면 이유 없이 집에 돌아가고 싶어진다. 우선 키리바나가 일어서 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키리바나에게 말을 건다.


「저기, 나, 이제 돌아가도 돼?」


  키리바나는 코마치부터 시작해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 그리고 나를 천천히 돌아본다.


「......그 쪽에 유리창이 있지 않아요?」

「그래, 있는데」

「돌파해 보시겠어요?」


  굉장히 뒤숭숭한 제안이 미소와 함께 되돌아왔다. 아무래도 가게 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할리우드 같이 돌아가야 하는 건데?」


  지금 가볍게 두드려 봤는데, 이 유리창 상당히 두껍다고.

  그런 식으로 키리바나와 서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던 중, 코마치와 유이가하마가 이쪽을 가만히 보는 것을 깨달았다.


「오빠-아, 아카네-에. 장난치는 건 거기까지야」

「역시 사이가 좋아......」


  마침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점원이, 봉사부 둘에게 물을 주러 와서 키리바나와 얘기하던 것을 멈춘다. 점원은 몹시 정중하게 물을 두고, 살기등등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는, 그대로 떠난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틀림없이 나도 저주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