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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Ⅰ ~미래의 자취~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서 조금 지났을 무렵, 학교 숙제로 미래의 꿈에 대한 작문이 나왔습니다.
  자신이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각자 조사해서, 직업과 관련된 미래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제출기한이 한 달이나 되는 초등학생 숙제치고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다른 반이었던 코마치도 같은 숙제를 받았던 것을 보면, 학년 공통으로 했던 것이겠지요.

  반 애들은, 남자애들은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를 소재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반대로 여자애들에게 들어보면 꽃가게나 아이돌 같은 것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땠냐면, 이렇다 할 생각이 없어 조금 난처해서 히키가야가에 놀러갔을 때, 참고할 겸 코마치에게 물어봤습니다.


「코마치는 뭐라고 쓸 거야?」

「아직 특별한 건 안 떠오르는데. ..앗, 오빠의 신부라든지? 코마치한테는 포인트 높을지도」

「그걸로 기뻐해주는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그러는 아카네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말이 막힙니다.

  저는 어떠냐면 탈 없이 살 수 있는 금전과 환경이 있다면 뭐든지 좋고, 그렇게 되면 후보는 셀 수 없을 정도가 되겠네요.


「......공무원이라든지?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 같고, 안정적이라고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어.」

「아카네, 오빠한테 이상한 영향을 받았네.」


  그 뒤 코마치와 몇 개 정도의 안을 냈습니다. 케이크 상점원에 여성 옷이나 장신구 전문 점원, 디자이너에 모델 등등. 각각의 분야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하려고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되고 싶을까 생각해봐도, 나오는 것은 아프거나 괴로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뿐, 그건 미래의 꿈이라기보다는 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오빠는 이런 숙제 나온 적 있어?」


  코마치가 근처 소파에 파묻혀서 게임하는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걸 했었지......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잠시 뒤 거실에 내려와서는, 조금 오래된 원고지를 우리들 앞에 펼쳤습니다.

  의외로 꼼꼼하게 쓰인 글자를 좇아갔는데, 뜻밖의 말이 원고지 위에 춤추고 있었습니다.


「심벌즈 연주자...인가요......? 의외로 멋진 꿈이군요.」

「아니 아카네, 좀만 더 읽어봐.」


  코마치에게 재촉 받아 더 읽어보니, 심벌즈 연주자는 40분 이상 있는 연주 중에, 한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렇게나 비용대비 효과가 높고, 이 이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은 없다는 것도.


「............」


  말없이 원고지를 작게 접어 히키가야 오빠에게 되돌려줍니다.

  조금 전까지 약간은 멋지게 보이던 히키가야 오빠의 눈동자가, 왠지 갑자기 썩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할까 그렇게 멋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우선 전 세계의 심벌즈 연주자에게 사과하세요.」


  그나저나 심벌즈 연주자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직업일까요? 확실히 타악기 연주자로서 일괄 취급돼서 의외로 하는 일이 많다고 TV에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담임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지. 그렇다고 할까 오케스트라 정원의 엄격함을 끝없이 주입받았다.」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며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습니다.

  애초에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던 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머리를 싸안으며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전혀 모릅니다. 미래에 이렇다 할 희망도 전망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할아버지가 몸 상태가 나빠져서 근처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따금 혼자 반상회 주최를 하러 참석할 정도로는 건강해 보였지만, 근래에 감기에 걸려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아서 병원에 가봤는데, 만일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갔습니다.

  병문안, 이라고는 해도 병세가 심한 건 아니어서 생활품을 가져가는 김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호사를 소재로 삼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할아버지에게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소독액과 건조한 피부 냄새가 건물 전체에 떠도는 병원은, 담황색 벽지와 밝은 녹색 바닥재가 곱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간호사의 제복도 순백이 아니라 옅은 분홍색이 쓰여, 거기서 처음으로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 모든 간호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유한 공간은, 나쁘게 말하면 활력이 없어서, 몇 년 전에 가족과 같이 간 가을 숲이 연상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실은 독실로, 큰 침대와 작은 찬장, 그것과 TV밖에 없었습니다. TV도 틀지 않아서인지, 볕이 잘 들어 따뜻한 병실에는 복도의 이야기 소리나 운반용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가 조금 들립니다.


「아버지, 몸 상태는 어때요?」

「열은 안 내려서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아무튼, 건강한 편이다. 멋대로 움직이면 혼나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지루하고 갑갑하지.」

「그건 참아주세요. 몇 권 정도 읽을거리를 가져왔으니」

「그건 사쿠야에게 들었다. 『어차피 집에서도 책밖에 안 읽으니 그 정도는 참으세요.』라고. ......그 녀석도 나와 많이 닮았지」


  사쿠야라는 분은 저의 고모입니다.

  벌써 결혼해서 가정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병실에 와도 거의 잡담하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요.

  다만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던 할아버지였지만, 심심풀이로는 마침 적당한 것 같았는지, 제 사촌자매에 대해 고모에게 들은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잡담이 시작되자 저는 할 일이 없어 따분해져서, 별 수 없이 다리를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창 밖에서는 하늘 전체에 퍼진 청색에 비행기운이 한 줄기만 뻗어 있었습니다.


「......잠시 미안한데, 아카네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게 해주지 않으련?」


  결국 싫증나서 근처에 있는 휴게실에 가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섞여 있던 것을 느꼈는지


「휴게실에 있을 테니, 끝나면 부르렴.」이라고 말하고 병실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조금 곤혹해하며, 걸상을 움직이고 할아버지의 침대로 다가갑니다. 매우 청결감이 있는 병실은 아무 자극도 없다고 할 수 있어서 평소 건강했던 할아버지도 어딘가 여위어, 존재가 조금 공허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눈부신 것을 보듯이 쓱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저를 위에서 아래까지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아카네는 정말로 할머니를 닮았구나.」

「할머니? 고모가 아니고?」


  어릴 적부터 고모를 닮았다고는 자주 들었습니다만, 할머니와 비교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 친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안에서의 친할머니는 어딘가 머릿속에서 빠져있어서, 그 사람이 있었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사쿠야의 외모는 모친과 닮았단다. 아무튼, 성격은 나를 닮았지만. ......하지만 아카네는 성격까지 꼭 닮았어.」

「......어떤 점이?」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정말로 비슷해. 웃는 모습은 키누에를 닮았지만 사그라들었을 때의 표정은 쏙 빼닮았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지금부터 들을 얘기는, 제가 접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들고. 모처럼 머리 한 구석에 쫓아낸 것이, 한 번 더 얼굴을 들여다보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뭔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편치 않으면서도 결국 의자에 다시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별로 붙임성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으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어.」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눈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듯이 창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건 맞선 때였는데, 그야말로 인형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어. ......정말 한 눈에 반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옛날 성으로 사이엔 사츠키라는 이름에, 나름대로 상당한 가문 출신이었던 것.

  할아버지와는 결혼을 전제한 맞선에, 처음 만난 그 날 교제하기 시작한 것.

  할머니의 생일에 비녀를 보냈더니, 매우 미안한 듯이 받고 다음 데이트 때 착용한 것.

  저와 많이 닮은 사람에 대해 듣는 것은 아무래도 초조하고, 게다가 할아버지가 그리운 듯이 말해서 멈출 수도 없어서, 부끄러운 듯한 아닌 듯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역시 저와 매우 비슷해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 할머니의 행동에 공감하고, 저도 반드시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이다,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아름답게 웃어주는데, 혼자 있을 때 사츠키는 몹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단다.」


  이따금 할아버지가 빨리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혼자 멍하니 있는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 표정은 고독을 견디는 것도, 공상에 빠지는 것도, 추억에 잠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츠키의 그런 표정이 무서웠다. 마치 아무도 필요 없다는 듯이 사츠키가 배회하고, 사츠키의 시야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았지. 언젠가 이 생활에 질리면, 어디론가 홱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할아버지는 그런 일을 무서워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밝은 오후 햇볕 아래서 낮잠을 자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투명한 빛을 뺨에 받아, 촉촉하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베개로 삼는 것처럼 자는 할머니의 모습은 놀랄 만큼 덧없어서, 손대면 사라져버릴 거라 착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지. 사츠키의 삶의 방식은 쉽게 혼자가 되어, 곧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친한 사람에게 간호받는 일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우 외로운 인생이야.」


  분명 그렇겠지요.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게 됩니다. 확실히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러니까요.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으려고 했어. 한 번 맹세한 말을 반복하고,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혼자 있어도 뭔가 열심히 해줬으면 해서 책을 많이 샀지. ......아무튼, 사츠키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 댁의 서재에 늘어 놓인 많은 책. 독서가라고 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 할아버지가, 저만한 책을 갖춘 이유는, 전부 할머니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실이 답답할 정도로 제 가슴에 여운을 드리웁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떻게 됐어?」


  혹시 할머니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면, 분명 제 성격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고쳐질 거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몰라.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고, 같이 있으면 사츠키는 확실히 웃어주었지. 하지만 마음속은 읽을 수 없어. ......그래도, 아카네에게 전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금 야윈 할아버지의 손은, 뼈가 약간 떠올라서 울퉁불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을 치우고 나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노인이 어딘가 그리워하는 웃음이 아니고, 청년처럼 상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츠키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단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둘이서 어딘가 외출하면 편안해졌어. 혹시 사츠키는 끝까지 고독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츠키와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츠키도 아카네도,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아카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정하고, 착한 아이야.」


  할아버지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누군가를 확실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아이란다. 그러니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말로 해주렴.」


  그렇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낮잠을 잔다며 잠든 할아버지를 두고, 휴게실로 향합니다. 할아버지를 일으키는 것도 미안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 어머니가, 「매우 길게 얘기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했니?」라고 물어서,


「응, 할머니랑 나에 대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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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Ⅲ ~유리 너머~



  계절이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저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어머니가 직장에 복귀한 이유도 있어서, 남동생의 죽음으로 집안에 얽힌 안 좋은 분위기가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매일 향을 피울 때는 숙연해지지만 그것도 점차 변해서, 죽음 자체를 애도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보다 훨씬 많은 애들이 반에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난처했지만, 그것도 곧바로 익숙해져서 반 친구들과 전처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수업 중에 속닥속닥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정해진 수업을 소화하고 공부하며,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놀면서 학교생활을 즐겼습니다.

  다만 친해진 애들 중에 같은 길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혼자가 되면 그것은 저 멀리 가버리고, 어떻든 상관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이, 왠지 저에게는 지나간 것이라 생각되어, 학교에 있는 자신과 혼자 있는 자신 사이에 어긋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조금 혐오하고, 왠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안심감을 거느리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어 하교했습니다.

  혼자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서 간혹 방과 후,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유치원에서도 그림책을 자주 읽곤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도서실에도 책을 찾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장서 중에 흥미가 드는 것은 어느 것이든 어렵고, 글자를 좇는 동안에 꾸벅꾸벅 잠들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아직도, 한밤중에 일어나면 이따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어, 그것을 듣고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기 때문에, 낮에 졸려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점차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고, 아주 잠시 동안 낮잠을 자려고 도서실에 다니게 되어, 저의 하교시각은 조금씩 늦어졌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하교하던 중에 한 남자애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애라고 해도, 저보다 키가 조금 크고 어쩌면 연상이었지만요.

  주위가 소란스러운 중에, 그 남자애는 기분이 안 좋은 듯이 입술을 꽉 다물고 걷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돌을 차는 놀이를 하거나 하며 노는 아이들을 약간 탁한 눈으로 힐끗 보고, 홱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불쾌한 듯이 정면을 봅니다.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였지만, 가끔 정말 한순간만 긴장을 늦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표정에 분함과 외로움이 새어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그 표정을 우연히 들여다봤을 때, 꽉하고 가슴이 단단히 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띄우던 표정은, 저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그는 저처럼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들에게 악담을 하며, 그런데도 누군가와 깊게 어울리고 싶다는 것이 그 표정에서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런 그는 몹시 눈부시고 부러워서, 저는 그와 같은 길을 갈 때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제 결함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장난감 상자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야말로 유리함 저 편을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게 말을 걸었을 때는 정말로 놀랐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7월이 시작될 무렵. 아직도 높이 뜬 태양에서 살갗을 태울 듯한 빛이 이래도야? 하고 퍼부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걷고 있는데, 시끄럽게 우는 매미울음에 섞여 모르는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처음에는 제게 말을 걸었다고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평소대로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저와 예의 남자애밖에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근처를 바라보자,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처음으로 그를 정면에서 보았습니다.

  남자애치고는 조금 긴 흑발. 이목구비는 갖춰져 있고, 약간 탁한 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딘가 뚱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눈동자가 저를 비추는 것이 왠지 이상해서, 잠시 어리둥절하고 말았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원래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서투릅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는데, 초등학교에 올라갈 무렵에는 그 의식이 한층 더 강해져, 이런 내가 거짓말까지 한다면 인간으로서 실격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꺼려졌습니다.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지? 그래도 혼자서는 외롭지 않은 거야?」


  몹시 절박함을 내포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뿐. 없다면, 그래도 상관없어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라, 꺼낼 말을 제대로 생각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긴장돼서 제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해서 입을 움직였습니다.

  잘 말할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말을 끝내자 매우 슬퍼보이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눈초리를 내리고, 그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저는 그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한 것이 미안해져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방문을 알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더욱더 귀에 들어옵니다. 조금 전보다 햇볕이 세진 것 같아, 피부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키리바나 아카네라고 해요.」


  나온 말은 평범해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같이 돌아가지 않겠어요?」


―――――――


「너, 왜 혼자 돌아가는 거야?」


  옆에서 걷는 히키가야 오빠가, 약간 진지함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혼자 걷고 있던 남자애는 이름이 히키가야 하치만이며, 저보다 두 살 위인 3학년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 같은 간단한 이야기에 따르면, 히키가야 오빠의 집은 근처에 있으며, 저의 집에서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애들 중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요.」

「......그래」

「히키가야 오빠야말로, 왜 혼자 돌아가는 거예요?」

「나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예요?」


  머지않아 대화가 뚝하고 끊어졌습니다. 옆에 있는 히키가야 오빠는, 중얼중얼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을 방해하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을 같이 걸어갔습니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아무런 특색도 없는 풍경이 전면에 퍼지고, 들리는 소리는 한여름의 바람이 불어서 나는 깃발소리밖에 없습니다. 제 옆에는 히키가야 오빠가 있어서, 어떻게 해도 차분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현실감을 확인하듯이, 뻗은 제 그림자를 힘껏 밟으며 걸어갔습니다.

  제 집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 일단 발을 멈췄습니다. 히키가야 오빠도 저를 따라서 멈췄습니다.


「저는 이쪽 길에서 돌아가는데, 히키가야 오빠는 어느 쪽으로?」

「난 여기를 똑바로 가」

「그래요? 그렇다면, 여기까지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정중히 인사하고 나서 히키가야 오빠에게서 몸을 돌렸습니다.

  집까지 가는 길은 항상 보는 풍경에 찌는 듯이 더울 뿐이었지만, 얼굴에 맞닿는 바람은 왠지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히키가야 오빠가 소개하고 싶은 애가 있다고 해서, 방과 후에 약속을 했습니다.

  종례가 끝나고, 반 친구들과 조금 이야기하고 나서 승강구로 갔더니, 히키가야 오빠와 한 여자애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저보다 약간 작은 정도일까요? 조금 난 바보털에 표정이 다채로운 상당히 귀여운 여자애였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걸자, 두 명이 같은 표정으로 저를 뒤돌아보는 게 재미있어서 무심결에 얼굴이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했는지, 또 둘이 얼굴을 마주봐서 그것이 더 재미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웃음을 참았습니다.


「불러서 미안하다. ......자」


  히키가야 오빠는 여자애의 등을 밀어 제 눈앞에 내밀고는, 엉뚱한 방향을 보면서 말합니다.


「내 여동생도 같이 돌아갈 애가 없어. ......그러니 같이 돌아가줘.」


  그 말에 여자애는 불만스러운 듯이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었지만, 곧 미소를 띠우고는 제 손을 잡았습니다.


「히키가야 코마치. 코마치라고 불러줘」

「......키리바나 아카네. 아카네라고 하면 돼.」


  그 이후로는, 매일 코마치와 같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는 각자 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길 주변에서 키우는 개를 울타리 너머로 보곤 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에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게 되어, 코마치의 부모님에게도 귀여움 받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부모님이 바쁠 때도 있어서, 저와 코마치, 그리고 히키가야 오빠 셋이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같이 놀거나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키가야 오빠는 할아버지의 서재에만 있었지만요.

  이전에, 할아버지의 「소중히 해주려무나」라는 말을 지킬 수 없었던 죄책감 때문에, 좀처럼 할아버지 댁에 가기 힘들었지만, 히키가야 남매와 함께라면 자연스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몇 번 정도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가을에는 가족이서 밤을 주워왔습니다. 녹색 잎사귀에서 점점 색을 잃어간 숲은, 시든 잎의 건조한 향이 어딘가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의 찬바람이 거리를 에워싸던 날에는, 얇게 언 얼음을 코마치와 둘이 깨뜨리며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몇 번 정도의 봄을 경험했을 무렵에는, 제가 느끼던 어긋남 같은 것은 서서히 희미해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때도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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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Ⅱ ~태양 빛~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벚꽃이 다 떨어지기 직전, 한 장만 남겨진 꽃잎이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신록에 둘러싸여 왠지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무렵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 명이서, 휴일에 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던 때입니다. 그 주에는 부모님이 매우 기분이 좋아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카네, 동생이 태어난단다.」


  저는 그때까지, 별로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같은 유치원에 형제나 자매끼리 다니는 애들은 사이가 좋아서 즐거워 보이네, 정도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리 상자 너머로 보는 정도의 느낌이며, 결코 부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동생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저는 왠지 매우 소중한 것을 얻은 기분이 들어서, 아직 별로 부풀어 오르지 않은 어머니의 배를 만지며,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바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둘째 손자가 태어난다고 듣자, 기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중히 여기려무나」라고 말하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가시고 나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는, 제가 놀러 갈 때마다 눈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친구를 소중히 하렴, 물건을 잘 다뤄주렴 이라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배가 점점 부풀어가자, 부모님은 정기 검진을 갔다 와서 모자 모두 건강하다고 제게 전했습니다. 하경에는 배 안에 있는 아이가 남자애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제가 쓰던 유모차를 남아용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저대로, 좀처럼 누나로서의 준비를 하지 못해서, 누나동생이 같이 유치원에 다니던 애한테,


「남동생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녀는 「울기 잘하고, 시끄러울 뿐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것은 가족 얘기를 할 때 특유의 표현 같은 것이고, 실은 매우 소중히 여기며 잘 돌봐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봐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자는 동안에 이불 안에서 어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누나라는 건, 뭘 하면 되는 거야?」

「별로 특별한 건 안 해도 된단다. 단지 가족으로서 사랑해주면 돼. 딱히 누나라고 해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같이 있어주면 된다는 말이야?」

「그래. 하지만 아카네는 여자애니까, 언제까지나 같이 있는 것도 아니야.」


  거기서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이 담홍색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는,


「......그러니까, 가족으로 있기 위해서 노력할 것. 같이 있을 수 없어도,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


  그 말을 열심히 들으며, 제 나름대로 상상해봤습니다.

  상상 속의 저는 초등학생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동생은 유치원만한 나이였습니다. 역시 남자애니까 전대물이나 히어로를 동경하겠지요. 저는 남동생의 소꿉놀이 상대를 하면서도, 가끔 지루해집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며, 끝까지 놀아줄지도 모릅니다.


「......응, 즐거워졌어.」

「어머, 그러니?」


  그리고 나서 이불 속에서 어머니와 둘이 웃으며 다가붙습니다. 옆에서 자던 아버지가 의아한 듯이 여기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즐거움의 성질이 어떤 건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그 이후로 일상을 보내갔습니다.

  계절이 하나 지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동생은, 어머니의 배 안에서 생이 끝났습니다.


―――――――


  그 날은 가을치고는 꽤 시원하고, 뜰에 있는 화분에 작은 서리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부엽토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보니, 삭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습니다.

  3일 정도 전부터 몸 상태가 나빠져 입원했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와서는 비통한 표정으로 남동생의 죽음을 알리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설명해주셨지만, 아이인 저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웃는 어머니가, 「미안해」라는 말을 오열과 함께 쏟아냅니다. 병원에서 같이 돌아온 아버지는 달래듯이 어머니의 등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면서, 제 안에서 실이 끊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그 실은 팽팽히 뻗어서 내 감정을 잇고 있었을 텐데.

  남동생이 생기기를 기대했었습니다. 나이는 조금 차이나지만, 제 나름대로 열심히 돌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안에 서서히 그가 있을 곳을 쌓아 올려, 확실히 그 부분을 크게 잡았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해도, 미련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길러지던 것은 남동생의 죽음과 동시에 전부 불타버리고, 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동생이 있을 곳이 사라졌는데도, 마음은 침착해서 더 이상 닿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손을 뻗으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 감정보다, 그가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무명의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보다, 어머니가 눈앞에서 우는 쪽이 훨씬 슬펐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은 살아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어머니가 울음을 그쳐주는지 몰라서, 어머니가 항상 해주시듯이 몸을 껴안았습니다.


「아카네, 미안해. 이렇게나 기대해줬는데」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그날 밤은 오랜만에, 가족 세 명이 저를 사이에 끼고 같이 잤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뒤척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확실히 가족이 거기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잠시 후 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한 밤 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이불에서 나왔습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비틀비틀하며 걷고 있는데, 밤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에 뒤섞여 아기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자주 내는, 주변을 향해 마구 소리치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단지 제게 호소하는 듯한 울음소리였습니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뭔가를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호소하는 걸까 생각하자, 곧바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침실로 돌아왔습니다.

  미끄러져 들어가듯이 이불에 돌아와 울음소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아도, 작은 틈새로 울음소리가 흘러 들어와서 제게 말을 겁니다.

  왜 울어주지 않는 거냐고. 왜 내가 죽었는데 외롭다고 생각해주지 않는 거냐고, 단 하나 있는 누나인데, 그런데 왜 너는.

  아무리 힘내도, 머릿속에 달라붙는 소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눈이 선명해지기까지 하면서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이윽고 견딜 수 없게 되어 부모님을 깨우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음 고생하는 두 분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혼자 현관 바깥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가을의 긴 밤은 으스스 춥고, 세차게 부는 바람이 옅게 입은 제 몸을 차게 했습니다. 이웃집은 모두 잠들어서 등불이 전혀 없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중에, 제 기억에 기대어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실은 밤에 밖으로 나가는 건, 무서워서 하지 않습니다. 도깨비나 잘 모르는 요괴를 당시에는 믿어서, 밤이 되면 밤거리를 활보한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를 내버려두면, 도깨비보다 좀 더 무서운 뭔가를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큰 공포심으로 작은 공포심을 눌러 참고 발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2개의 황금빛을 띤 눈동자가 떠올라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점차 눈이 익숙해지니, 어둠에 녹아들어 윤곽이 희미해진 검은 고양이의 몸이 간신히 보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입을 움직입니다. 예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안도했던 것도 한순간으로, 그 검은 고양이의 두 눈동자가 저를 완전히 붙들어 매고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 안에 있는 텅 빈 곳을 지적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무서워져서 이불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불 속에서 부모님의 따스함에 싸이며, 제 자신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빈약한 어휘를 필사적으로 써서, 얼마 안 되는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마음이 평온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대답이 나왔습니다.

  요컨대 저는, 사람에 대한 집착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론이 나오고 나서 곧장 날이 밝아, 저는 태양 빛을 흠뻑 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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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바나 아카네
 

  어릴 적 ~흑백 필름의 기억~




  반짝반짝하게 닦인 자동문을 빠져나가자, 눈부신 세상이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조명에서 눈을 가늘게 뜰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빛이 넘쳐 나와, 층 일대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가지런하게 진열된 고급스런 양복이나 유리함에 담긴 반지나 목걸이는, 어린 제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그것이 여기저기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강의 물살처럼 항상 끊이지 않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나가, 이웃의 아저씨나 유치원의 선생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손을 잡는 부모님의 손이 평소보다 믿음직스러워 보여서, 왠지 대단한 곳에 왔던 거라고,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처음으로 간 백화점은, 신선한 기쁨과 미지에 대한 흥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백화점이 어떤 장소인지 몰랐고, 부모님에게는 큰 슈퍼라고 밖에 듣지 못해서, 좀 더 조촐하고 아담한 곳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릿속에 그리던 경치와 눈앞에 퍼진 경치의 차이에 매우 기뻐서 난처한 듯이 웃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백화점 안을 돌았던 것을 잘 기억합니다.

  아버지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왔습니다만, 부모님은 그 예정을 뒤로 하고 여러 곳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것은 묘한 광택을 내는 만년필을 취급하는 문구점이나, 일상복보다 매우 좋은 아동복이나, 몹시 공들인 세계 각국의 장난감을 파는 가게 등으로, 그것들은 정말 재미있는 가게뿐이었습니다.

  물론 무엇 하나 사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단지 보고 손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서, 그야말로 눈을 빛내며 가게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강 만족스럽게 돌아보고 나서, 드디어 부모님이 살 물건을 사러 신사복 판매장으로 갔습니다.

  그 무렵의 아이처럼 예외 없이 호기심이 왕성했던 저는, 새로운 것을 보면 빙빙 빨려 들어가는 귀찮은 성질이 있어서, 문득 부모님이 한눈을 판 틈에 또 다른 가게로 발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가게 몇 군데를 돌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그러면서도 보석 상자 같은 이곳은, 저를 지루하게 하는 일 없이 눈부신 세계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스포츠 용품 판매장에서 질려서 나왔을 때, 저는 겨우 자신이 부모님과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몇 번인가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렸던 것은 기억나지만, 제가 지금 몇 층에 있는지 그리고 신사복 판매장이 몇 층에 있었는지 같은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혼자되어서 마침 잘 됐으니, 방금 전 갔던 가게를 한 번 더 도는 것도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끌릴만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우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왁스를 듬뿍 써서 닦은 벤치는 등받이가 없어서 안정감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가 나쁘게 양손으로 턱을 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미아가 되었을 때는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편이 좋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가르침을, 겨우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노부부, 향수와 오 드 콜로뉴 향을 나게 하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 누이와 동생을 데리고 가는 부모자식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많든 적든 입가에 미소를 띠며, 얼굴이 풀어져 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분명 누구라도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는 곳이며,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이 따스한 기분을 찾아서 여기에 오는 거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보고 있을 뿐인 저도 왠지 기쁜 마음이 들어서 분명 그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어서라든가, 그 애는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든가, 그런 상상을 하며 입가에 절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있자, 멀리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에 다소 절박함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로 저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이 감동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오로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저는 좀처럼 감사의 말이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뒤죽박죽하는 동안에, 저는 부모님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찾아내자, 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안심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윽고 두 분에게 다다르자,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어머니는 저를 꼭 껴안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껴안는 힘이 세서 조금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제 기쁨을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전하려고 말을 찾고 있는데, 어머니가 마법의 주문을 뽑아냈습니다.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해. 외로웠지?」


  그 말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그런데도 어머니의 품 안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고, 혼자 걸어 다녀 피곤한 이유도 있어서, 곧바로 저는 그 행복감에 싸이면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이런 제가 저로서 있던, 처음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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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21 ~두 명의 무게감~


  키리바나와 사귀고 난 지 일주일이 넘은 일요일, 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는데 전방에서 야무지게 걸어오는 키리바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10시를 지난 정도에 6월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의외로 바람이 시원하다. 이것이 오후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뿜어져 나올 만큼 격차가 커진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볼 일이라도 끝마쳐두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키리바나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 쪽도 조금 늦게 나를 알아차렸는지, 키리바나는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그대로 가서 횡단보도 건널목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 쯤, 자전거에서 내려서 말을 건다.


「여어」

「안녕하세요, 하치만 오빠」


  희미한 핑크색 꽃무늬가 새겨진 미니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을 걸친 키리바나는 약간 부끄러운 미소를 띠고는, 슬쩍 내 옆에 선다.

  역시 상당히 더워졌는지, 키리바나의 옷차림도 엷어졌다. 치마 끝에서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매우 눈부셔서 무심결에 시선이 밑으로 가고 말았다.

  우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도로 구석의 그늘에 몸을 기대고 한숨 돌린 후에 입을 연다.


「어디 갔다 왔어?」

「네, 잠시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실은 지난 주말에 가려고 했는데, 그게 여러 가지로 바빴잖아요?」

「......뭐 그렇지」


  고백한 당일,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는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에 상관없이 말하려고 생각했으므로 우선은 메일로 보고했다.

  세세한 사항은 월요일이 되고 동아리에서 감사를 포함해서 전할까 생각했지만, 두 명에게 무서운 속도로 바로 나와 키리바나에게 직접 듣고 싶다는 취지의 답신이 왔다. 내 휴일 예정 같은 건 대체로 정해져 있어서 키리바나에게 물어봤더니, 키리바나도 비어 있다고 해서, 토요일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 인사를 한 거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이야기에 참가했던 건 정말 초반이고, 여자 세 명의 대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이 어떤 고백을 했는지는 흥미진진하게 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거, 진짜 부끄러우니까.

  그리고 일요일은 코마치가 데이트라며 키리바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 아무튼,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사이좋게 있는 건 나로서도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라 그대로 배웅했다.


「하치만 오빠야말로, 지금부터 어디 가세요?」

「아아, 잠깐 책이라도 사러 갈까 해서.」


  그러고 보니 5월에도, 비슷한 대화를 했지. 뭐, 내가 밖에 나가는 이유 같은 건 쇼핑 정도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마침 잘됐네요. 하치만 오빠, 지금부터 할아버지 집에 가지 않을래요?」

「별로 상관없는데, 왜?」


  그 집에는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가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진 않지만, 가끔 근처를 지나가도 난잡한 상태는 아닌 걸로 봐서는, 아마도 키누에 씨가 정리하는 거겠지.

  키리바나는 나를 살펴보듯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는, 말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는 고정 자산세나 여러 사정으로 집을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토지의 구매자가 나타나서 허물기로 했어요.」


  할 수 있으면 고정 자산세보다도 그 밖의 사정을 듣고 싶었는데...... 아니, 고정 자산세도 큰 이유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할아버지의 집에 없어지는 건가. 초등학교 무렵을 보낸 장소인 만큼, 가슴 속이 어딘가 뻥 뚫린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있던 것이 없어진다는 건, 사람이나 물건을 막론하고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유품을 정리하고 있어서...... 그래서 혹시 괜찮다면, 서재에 있는 책 중에 하치만 오빠가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부디 가져가셨으면 해서요.」

「받을 수 있다면 받겠지만, 그래도 돼?」

「네, 책은 역시 사람에게 읽히는 거니까요. 모르는 사람보다, 가능하면 하치만 오빠나 코마치가 읽었으면 해요.」

「그런가, 그렇다면 받아둘게.」


  확실히 일본문학 말고도, 해외문학이나 철학계열도 생각보다는 갖춰졌을 거다. 초등학생 때는 미야자와 켄지나 나츠메 소세키 등 읽기 쉬운 책 정도밖에 읽지 않았지만, 지금 나이라면 읽을 수 있는 책도 좀 더 있겠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가 상당히 갖춰져 있어서 전부 가져갈까 생각하다가, 키리바나의 손가락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 왜 그래?」

「......이거 말인가요?」


  가느다랗고 매끈매끈한 손가락이 눈앞으로 내밀어진다. 끈적끈적 손대기는 꺼려져서 조금 떨어져서 보니, 하얀 검지 손가락 끝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여자애답게 귀여운 게 아니고 약국에서 파는 투박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키리바나다워서 조금 귀엽다.


「조금 화상을 입어서요. 그래도 가벼운 화상이라, 큰일은 아니에요.」

「그래? 조심해둬.」

「네. 좀 바보 같은 실패라서 확실히 반성했어요. 다음에는 안 일어날 테니, 안심해주세요.」


  약간 상쾌한 표정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아마 요리라도 했을 때 실패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코마치와 같이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둘이 작은 화상이나 베인 상처는 입곤 했었지.

  요즘은 상당히 안정됐지만, 가끔은 이런 일도 있을 것이다. 나도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실패할 때가 있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할아버지 집으로 가볼까?」

「네」


  키리바나가 대답하고 그대로 경쾌하게 걷기 시작해서, 팔을 잡아 멈춘다.


「......키리바나, 잠깐 기다려봐.」


  손바닥에서 키리바나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전해져서 허둥지둥하고 있자, 키리바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본다.

  마침 뒤돌아보는 미인과 같은 구도가 되어, 키리바나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그러자 부끄러움이 머리위로 올라와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져 무심결에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튼, 뭐지?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좀 거리가 있잖아?」

「네, 조금이지만요.」


  키리바나는 감이 오지 않았는지, 물음표를 띄우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팔을 뿌리치지 않고 우두커니 있어서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하다.

  ......아아 젠장, 왜 이 녀석은 이럴 때만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목소리가 약간 높아지며, 다른 방향을 보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저거다. 키리바나가 짐받이에 타서 가면 걸어가는 것보다 빨리 도착하니까. ......아무튼, 타」


  말한 순간에 불이 붙을 정도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대사지만, 모처럼 이런 관계가 됐으니, 이 정도는 해도 벌은 받지 않겠지.

  처음에는 멍하니 있었지만, 이윽고 한 여름의 푸른 하늘처럼 아름답게 웃고는, 「그럼, 실례합니다.」라며 한 마디 하고나서, 살짝 짐받이에 앉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몰기 시작한다. 장마철의 습기 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힌다. 목을 돌려 살짝 뒤를 보자, 키리바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누르면서도, 기분 좋은 듯이 있었다. 가끔 균형을 잡으려는 듯이 옷을 잡아당기는 것이 조금 낯간지럽다.

  눈 익은 풍경이 빨리 흘러가는 중, 등 뒤의 키리바나가 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치만 오빠. 그러고 보니, 하나 말하는 걸 잊은 게 있어요.」

「뭔데?」

「의외로 저, 일본식 옷이 잘 어울린답니다?」

「그, 그래......」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고, 어중간한 대답이 되고 말았다. 원래 키리바나는 흑발이 잘 어울리니, 일본식 옷이 어울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키리바나는 내 대답을 개의치 않고, 뭐가 재미있는지 쿡쿡하고 웃으며 내 등에 머리를 기댄다.

  ......뭐, 다음 달 정도에 여름축제나 불꽃놀이라도 가서 키리바나의 유카타 차림을 볼 수 있기를 빌자.

 올려다 본 하늘에는 곳곳에 장마구름이 떠 있다. 바람으로 흘러가는 비늘구름이 태양 가장자리를 가려, 깊이 스며들 듯이 침식해가자, 타는 듯한 햇볕이 차단되어 미적지근하고 축축한 느낌이 덮쳐온다.

  장마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여름이 오는 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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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1부가 끝나게 됩니다. 1부는 하치만 시점으로, 하치만과 아카네가 사귀게 될 때까지를 썼습니다.

  1부라는 말은, 물론 2부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주의점이라고 하니 호들갑스럽지만, 2부부터는 화자가 바뀌어서 아카네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때문에 1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정진해나갈 테니 앞으로도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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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20 ~그리하여 두 명은 이곳으로 돌아온다~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와 친구가 되고 난 지 이틀 뒤의 방과 후, 아직 태양이 높이 솟아 주홍색으로 물든 이 마을 한 가운데를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이 시간대라면 키리바나는 코마치와 같이 하교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적인 경로는 상상이 된다.

  달리는 동안에 절로 숨이 벅차간다. 칠칠치 못하게 살아 온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심박 수가 점점 빨라져간다. 하지만 그게 기분 좋다.

  물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을 덮는 사실이 자꾸자꾸 나오고 있었다. 그건 오랜만에 키리바나와 얘기할 수 있는 것이나, 며칠 전의 개인적으로 좋은 소식 등인데, 그렇게 사소한 일이 자신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 왠지 우습다.

  10분 정도 달려서 모교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나서 몇 개 정도의 교차점을 지나, 하나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교차점에서 발을 멈췄다.

  중학교에서 돌아가려면 다소 여러 군데를 지나친다 해도 여기로 가는 게 가장 좋다. 역 방면까지 갈 일이 없다면, 저 녀석들은 반드시 여길 지나갈 거다.

  근처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른다. 교복 너머로 콘크리트의 한기를 느끼며,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본 적 있는 교복을 입은 사람이 몇 명 정도 지나갈 뿐, 키리바나와 코마치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 오는 게 약간 늦었던 걸까.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바로 학교에서 나왔지만, 필연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미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다리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당분간 어루만지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내내 서있는데, 빛에 주황색이 조금 섞이기 시작할 무렵 겨우, 키 차이가 나는 2인조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명한 오후 햇살 아래서, 키리바나의 어깨까지 자란 흑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머리카락 몇 올이 떠서 그 하나하나가 빛을 받고 금빛으로 빛나, 키리바나의 단정한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아직 멀어서 그런지, 둘은 나를 눈치 채지 못한 채로 걷고 있었지만 교차점에서 5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겨우 나를 알아차렸다.


「......여어」


  할 수 있는 한 자연스럽게, 담백한 어조로 말을 건다.


「오빠......」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키리바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바로 딱딱한 인사를 하며 살짝 숙이고는 멈춰 선다.

  오랜만...일 정도는 아닌데. 일요일부터 세면 5일밖에 안 지났다. 코마치와 놀 때 집에 오지 않는 때도 많이 있어서, 이 정도로 얼굴을 못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긴 닷새였으리라.

  키리바나의 시선과 얽힌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으로, 키리바나는 바로 거북한 듯이 얼굴을 피했다. 그것에 조금 상처받으면서도 옆에서 불안한 듯이 있는 코마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코마치, 잠시 키리바나를 빌려도 돼?」

「응! 좋아! 되도록 빨리 돌려줘.」


  코마치가 바로 대답하자, 「아, 저기 두 분 모두, 저는 제 것이니까요.」라는 공허한 반론이 들렸다. 완벽한 정론이지만 닮은 오빠와 여동생은 보기 좋게 무시하고, 둘이서 눈을 맞추고 있었다.

  가족 특유의 걱정하는 감정이 코마치의 눈에 떠올라 있다. 그것에 대답하듯이 불손하게 웃어 보이자, 코마치도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코마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키리바나를 보고는, 「그럼 아카네, 마침 좋을 때니 나중에 또 봐」라고 말했다. 뭐가 좋다는 걸까.


「아, 응...... 또 봐」


  키리바나의 어중간한 대답을 만족스럽게 들은 코마치는, 내가 왔던 길로 가서, 그리고 조금 물들기 시작한 주택가로 사라져갔다.

  코마치가 완전히 안 보이게 되었으므로, 한 걸음 내디뎌서 키리바나에게 다가간다. 키리바나는 난처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물쭈물 한 상태로 몇 번이나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로  나오는 일 없이 바로 자동차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키리바나는 갈팡질팡한 끝에, 이번에는 조금 부드럽게 인사했다.


―――――――


  5년 전까지 매일매일 걷던 통학로는, 내가 고등학교로 올라간 사이에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공터가 많아서 왠지 쓸쓸함을 느끼게 한 이 부근은, 지금은 개발되어 그 대부분을 획일적으로 늘어선 주택이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아스팔트 포장 뿐이었던 길도 도로 폭을 넓힘과 동시에, 보도블록과 곡선이 많은 가로등, 가로수 등이 새로 설치되어 옛날과 같은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번화했다.


「아, 저기, 하치만 오빠. 어디에 가나요?」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가 머뭇머뭇 물어본다.


「아니, 단지 이 근처를 걷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의 걸음은 평소보다 약간 느려서, 나도 걷는 속도가 절로 느려진다.

  점점 배를 젓기 시작한 태양이 세상을 선명하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그림자도 길게 뻗어간다.

  출렁이는 그림자를 밟으며, 제일 먼저 하려고 한 말을 입으로 낸다.


「......전에는 미안하다. 어리광이 너무 심했어.」

「아니요, 제 쪽이야말로 죄송해요. 너무 감정적으로 됐어요.」

「왜 네가 사과해?」


  그런데도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라고 말해서, 할 수 없이 받아들인다.

  묘하게 성실하다고 할까, 이 녀석, 예전부터 잘 모를 이유로 사과한다.

  신흥 주택지를 빠져나가자, 완전히 바뀌어 전원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그마한 밭과 논뿐이다. 어렸을 때는 매우 크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자라서 보니 상당히 작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러네요. 하지만 논이나 밭을 엎고 집을 세우는 것도, 풍치가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정리되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해서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사는 사람들뿐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원래 살던 사람은 성가셔할지도 몰라요.」

「......」


  주홍색이 이 일대를 하나의 색으로 물들여가는 것과 동시에,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로 가득 차간다.

  입 안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되지 않게 말을 머릿속에 띄워간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질문을 한다.

  발을 멈춘 키리바나는, 눈동자에 의심과 경계를 띠며 탐색하듯이 나를 들여다본다. 그 눈동자가 일전의 데이트 때와 매우 비슷해서 등골이 떨린다.

  잠시 동안 서로 바라본 뒤, 키리바나의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오고, 입을 열었다.


「......네, 외롭지 않아요.」


  그 표정은 역시, 그 때와 변함없어서 절로 가슴이 조여 온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네, 원래 그래요.」


  어딘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이 미소 지으며 키리바나가 말했다.

  원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성격을 바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친구 정도는 만들려고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키리바나의 말을 듣고 나는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말이 끊겼음에도 의리 있게 키리바나는 대답했다. 다만, 약간의 불만이 표정에는 남아서 입을 뾰족 거릴 뿐이다.

  그 얼굴을 보고, 고동소리가 자꾸자꾸 격해진다. 하지만, 그건 긴장이 아니라,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는 이 말을 오래 전부터 키리바나에게 하고 싶었다.


「나는 널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 항상 옆에 있게 해줘.」


  나는, 키리바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틀림없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따로 있다.

  나는 단지, 키리바나가 혼자가 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키리바나가 그대로,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아도, 변함없어도, 단지 곁에 있고 싶다.


「......!?」


  우리들 사이를 바람이 빠져나간다.

  키리바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그야말로 허를 찔린 듯이 매우 놀라 있었다. 서서히 뺨이 빨갛게 물들고, 손을 꽉 쥐며 필사적으로 뭔가를 참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참지 못했는지 입술이 움직이고는,



「아하하하하!」



  라며 물줄기가 터진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이, 잠깐. 지금 웃을 장면이야?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같은 시선으로 보일 각오까진 했지만, 이런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평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웃음소리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 있나? 하는 식으로 빤히 본다. 하지만 키리바나는 그런 염치없는 시선도 아랑곳없이 몸을 く자 모양으로 굽히고 정말로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계속 웃었다.

  그대로 잠시 동안 기다렸지만, 키리바나의 웃음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되어, 배를 손으로 누르고 있을 정도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빠져서」


  이틀간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이거다. 아니, 내가 봐도 틀에 박힌 대사라는 건 안다고.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키리바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자세를 바로잡아 등을 바짝 세운다. 그리고 나서 위로 올라갔던 입가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한 순간만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는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지금까지 중에 가장 눈부신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가슴 속으로 퍼져간다. 그것은 달콤새콤하고, 가슴을 아플 정도로 두드리는데도 어딘가 근지럽다. 그 근질거림을 곱씹으면서, 역시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자각한다.

  그 키리바나는 조금 전까지와는 돌변해서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어깨를 떨면서 작게,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라고 중얼거리며, 쿡쿡거리고 있었다.

  젠장, 바보라서 미안하군.

  하지만 그 즐거운 표정도 길게 이어지지 않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키리바나는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머뭇머뭇 물어본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 녀석은 정말로, 뭐라고 할까. 미사키 군에게 고백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등등,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른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딱히 부정할 순 없군.

  그래도 생각한다. 키리바나가 아무도 바라지 않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키리바나를 바라지 않아도, 나만은 곁에 있고 싶다고. 오만하고 단순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게 싫으니까.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는 딱딱하면서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부정했었지만,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됐던 것이다. 내가 한 일이고 완전히 모순됐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도 확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가슴에 손을 대며 몹시 취한 것처럼 몸을 흔든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휘봉처럼 흔들리고, 조금 뒤에 올 여름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근처 일대를 감쌌다.

  키리바나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자아낸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키리바나는 기쁜 듯이 손을 잡고는, 「그럼 돌아갈까요?」 이렇게 말하고는 걷기 시작한다.

  그 부드러움과 무게를 팔로 느끼며, 황혼에서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키리바나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자.

  어처구니없는 일로 웃고, 멋진 일로 기뻐하고, 재미있는 것을 즐기며.

  싫은 일도 많이 있겠지만, 그런데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의 좋은 점을 키리바나와 같이 찾아가자.

  ......그 끝에 키리바나가 그대로였다고 해도, 이 작은 손만큼은 꼭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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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9 ~그리하여 세 명은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동아리에 가지 않을 것을 유이가하마에게 전하고 빨리 귀가한다. 코마치는 어디 놀러가기라도 했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던지고 침대 위에서 천장을 보며 쓰러진다.

  동아리에 가지 않았던 건 뭔가 볼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밖은 아직 밝지만 리모콘으로 형광등을 켠다.

  몇 줄기인가 창백한 빛이 흔들흔들 나부끼는 광경을 보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딱히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일지 모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키리바나와는 만나게 될 거다. 만약 키리바나가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내가 뭔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대로의 관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만났을 때 무시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제멋대로인 말을 상당히 많이 했으니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싫다. 그 녀석은 분명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건 싫다.

  따라서 생각한다. 다음에 키리바나와 만날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제대로 행동한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와 키리바나의 인식의 차이다. 나는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고, 키리바나는 그렇게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와 키리바나 어느 쪽이 올바른지는 모른다. 자신 있게 정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는 주변에 친구가 없었고 싸워서 헤어진 적도 없다.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 좋을 거라고 말하며 타인에게 강요했던 거다.

  애초에 이상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안 되는데, 게다가 한층 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좀 더 설득력을 실어야만 했다. 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답게, 그리고 나라서 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하자.

  ......그렇다면, 왜 나는 키리바나가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랐을까? 아니 틀리다, 난 키리바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키리바나와 만났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이어서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리고 바로 지난  번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것들을 다시 떠올릴 때 가슴 깊숙한 곳이 아파진다. 달콤 씁쓰레함이 입 안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오로지 생각했다.

  창백한 빛과 벌꿀 색 석양이 복잡하게 서로 섞여, 그리고 석양이 사라져갈 무렵에 겨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난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진부하고 어디에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 내 대답이리라.

  그렇게 겨우 다다랐을 때, 두 소녀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른다. 불과 두 달 정도 알고 지낸 사이이자, 동아리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둘. 하지만 그 둘에게는 반드시 가장 먼저, 말해야만 하겠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


「아, 힛키......」

「어머, 오늘은 왔구나. 히키가야」


  심호흡을 하고 힘껏 문을 열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눈에 들어왔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서 구구하게 할 말을 음미하고 있었더니 동아리에 가는 게 꽤나 늦어지고 말았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정 위치에 허리를 내렸다.

  평소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이곳은 4월에 비하면 상당히 따듯해졌다. 아직도 교복이 바뀌지 않아서, 동복인 우리들에게는 약간 더울 정도다.


「그래서 카와사키 군의 건은 어떻게 됐니?」


  유키노시타의 말로 입 안에 쌓였던 것이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까먹었다. 어제는 그대로 돌아갔고 선배는 선배대로 말을 안 하면 보고하지 않을 테니, 얘네들이 몰랐던 건가.


「타이시는 차였다. 선배가 말하기를 사귀기에는 좀 레벨이 부족하대.」

「그래. 그렇다면 카와사키 군에게도 한 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구나. 이대로 의뢰를 계속할지 어떻게 할지를 확인해야지.」

「그러고 보면 그런가. 아무튼, 포기할지 어떻게 할지는 그 녀석의 마음 나름이겠지.」

「그러네......」


  한 번 크게 숨을 내쉰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새긴 말이다.


「두 가지, 할 말이 있어.」

「무슨 일이야? 힛키,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한 표정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같은 동아리, 그리고 반 친구인 것도 관계없다.
 다만 순수하게, 히키가야 하치만 개인으로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무섭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방에게 부정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니까.


「......뭐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춘 유키노시타는 내려뜨린 시선을 든다. 유이가하마도 나를 향해서 의자를 돌리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해. 아마, 오래 전부터」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한다. 말로 꺼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 와 닿았다.


「......그걸, 우리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니?」


  유키노시타는 깨끗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이가하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유이가하마가 내게 어떤 감정을 향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을,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판단하기에 내 인생경험은 짧고, 거기에 반비례해서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왠지 모르게 상상은 했었지만, 유이가하마의 상냥함을 사춘기 남자 특유의 과도한 자의식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착각이라면 그걸로 좋다. 내가 멋대로 들떴을 뿐이라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며 청춘의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유이가하마의 마음이 내 상상대로였을 경우 역시 결말은 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한 자기만족에 유이가하마를 상처 입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필요한지 어떤지는 몰라, 그래도 말해두고 싶었어.」


  유이가하마는 그 작은 손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조금 밖에 안 보이지만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잠시 침묵한 뒤, 얼굴을 든 유이가하마는 괴로워 보이는 미소를 얼굴에 붙인 채 내게 묻는다.


「......알았어. 그도 그럴게 힛키, 아카네하고만 거리가 가깝고, 자연스럽게 눈길을 주고 있던걸. ......그래도, 왜 지금, 그런 말을 해?」

「결말을 짓고 싶었어. 여러 가지를 다시 보고, 다시 하고 싶어졌어.」


  누군가에게 이상을 거듭해서 강요하는 건 필연이라고 이즈에 선배는 말했다. 그렇게 함에 따라 엇갈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하나 중요한 말을 하는 것을 잊었다.

  이상을 강요해도 좋은 사람은, 이상을 좇아서 노력하는 사람뿐이다.

  선배는 자신이 원해서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건데?」

「그게 두 번째 이야기가 되는데......」


  준비했던 말이 갑자기 끊어진다. 심장 소리가 둘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그리고 자신을 상처 입힐 것 같이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아, 역시 무서운 거다. 거절되는 것이, 미움 받는 것이. 대다수 사람에게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것이 막상 친한 사람이 되면 칼날이 예리해진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짜낸다. 비록 고통을 느껴도, 미움 받을지 몰라도 내가 바라는 것이기에.


「.....유이가하마, 그리고 유키노시타.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어?」


  키리바나가 변하길 바란다면, 나도 조금은 변하자.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조르자. 이곳은 긴장이 풀어져서 잠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러니 제대로 말로 해서 부탁한다.

  시야가 흐늘흐늘 흔들린다. 앉아있는데 평행감각이 출렁거리고, 세상이 천천히 돌고 있다. 그럼에도 두 명의 시선이 꽂힌다.


「......치사해. 힛키. 그런 식으로 듣고 싶은 말이랑 듣기 싫은 말을 같이 말하다니. 너무 제멋대로야.」

「......미안」


  얼마동안의 정적. 하지만 내게는 끝없는 침묵이 찾아온다.

  아아, 나는 정말로 제멋대로다. 유이가하마의 마음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부터 유이가하마의 입에서 나올 말을 상상하면, 굉장히 무섭다. 완전히 자업자득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말로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그린 말은 내려오지 않는다.

  유이가하마는 끼익하고 의자를 내 쪽으로 한 걸음 정도 당기고는 어색하지만, 그런데도 진정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뻐지잖아.」

「...............」


  유이가하마는 또 의자를 한 걸음 당겼다.


「하나만 부탁이 있어.」

「될 수 있는 한 하기 쉬운 걸로 부탁해.」

「......제대로, 아카네한테 고백해. 그러면 친구가 될게.」


  ......아아, 유이가하마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혹시 다른 식으로 만났다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정도다.


「......결과는 수시로 보고할게.」

「응, 친구니까 연애이야기 정도는 해.」


  기쁨이 점차 울컥거려 오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나는 유이가하마만이 아니라, 유키노시타와도 연결되고 싶다.

  그 유키노시타는 아무 말 없이 우리들의 대화를 쭉 보고 있었다. 평소 그대로 깨끗한 표정으로, 흘러내릴 듯한 흑발과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여기에서도 아름답고, 예리한 인상을 흩뿌리고 있었다.

  유이가하마와 같이 끄덕이고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시선이 유키노시타를 향했다.

  유키노시타는 시선이 집중된 것이 순간 난처했는지, 조금만 위를 보고 생각한 뒤에 말했다.


「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히키가야에 대해서 몰라.」

「......그렇겠지.」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과 대략적인 성격 정도밖에 모른다. 같이 보낸 시간도 그저 약간에 불과하다.


「유키농......」


  유이가하마가 슬픈 듯이 말한다.

  역시 이것만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과 두 달 이내에 친구가 되어주는 유이가하마가 특출 나게 좋은 사람이며, 유키노시타가 보통이다. 오히려 평소 하던 독설을 받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좋은 편에 들어가겠지.


「그러니, 알게 되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 여기에서 너의 친구가 되는 건 할 수 없지만, 서로를 확실히 알고 나서 쌓아가자.」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제대로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 뒤를 생각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기뻤다.


「아아, 잘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 나는 큰 한 발짝을 내디뎠다.

  모르는 것을 찾으러 가자. 어슴푸레해서 지금까지 손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기쁨을, 감사를, 제대로 이해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그럼, 가볼까?」


  내가 그런 감상에 잠겨있는데,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간다니 어디를?」

「찻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야. 저기라면 고등학생은 10시까지 있을 수 있잖니? 우리들 전원이 서로에 대해서 얘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그렇지? 유이가하마」

「유키농...... 응, 그래!」


  유이가하마가, 이번에는 기쁜 듯이 말했다.

  유키노시타는 일어서서, 나와 유이가하마를 한 번 보고는 밝은 미소로 말했다.


「히키가야와 키리바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려줬으면 해.」


  이렇게 해서 나는, 약간 씁쓰레한 뒷맛을 가슴에 남기면서도, 인생에서 첫 친구를 두 명이나 동시에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날짜가 지날 때까지 이야기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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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8 ~히키가야 하치만은 불량해진다~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게 됨과 동시에, 등교 전에 사 둔 총채빵과 주먹밥을 입에 넣는다.

  음. 원래 단품도 맛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같이 먹으면 최악으로 맛이 없군. 별 수 없어서 커피로 덮어 삼키려고 했지만, 커피와 쌀이 섞여서 무심결에 토할 것 같이 맛이 없어지고 말았다.

  ......젠장, 이럴 거면 하나씩 먹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든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교실 안에서는 옥신각신 얘기하면서 책상을 붙이는 중이었다.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반 애들 사이를 빠져나와 복도로 나와서, 3층으로 발길을 향한다.

  2층보다 약간 차분하게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이즈에 선배의 반에 겨우 도착한다. 미닫이  문으로 몸을 쑥 내밀고 들여다보니, 어제와는 달리 바로 이즈에 선배를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반 친구들과 얘기하던 이즈에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선배는 반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는 내게 왔다.


「어제는 일부러 와줬는데 미안해. ......히키가야 군, 점심은?」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점심식사는 도시락이 아닌 듯하다.


「이미 먹었으니 혼자 먹어주세요.」


  같이 밥 먹어서 소문나면 부끄럽고......

  그런 내 기념비적인 소녀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즈에 선배는 「할 말이 있는 거지? 그러면 같이 먹을까?」라고 말했다. 원심력이 무사히 일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얘기하기 좋은 장소라면 알고 있으니, 따라와 주세요.」

「응, 잘 부탁해.」


  북측 교사 1층까지 내려가서 양호실 옆 그리고 매점 뒤 결국은 평소 내가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간다.

  어제 귀가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이 되자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여전히 회색 구름이 태양을 덮어 가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토츠카를 필두로 여자들이 넘치는 테니스 코트는 아직도 땅이 습기차있는지 한산했다.

  그렇게 어두운 운동장이 눈앞에 있지만, 오늘 이 곳은 왠지 화려했다.


「그래서 할 말은? ......혹시 고백이라든지?」


  그 화려함의 원인인 이즈에 선배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에 걸터앉아서 과자 봉지를 열고 있었다.


「선배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을 텐데요.」

「뭐 그렇지. 밥 먹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


  도저히 오후를 끝까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양의 크림빵을 3분 정도에 다 먹는다. 그리고 나서 선배가 홍차를 마시고 한 숨 돌릴 때 즈음해서 입을 연다.


「일요일 우리들이 헤어지고 나서 뭘 하셨어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에 타이시 군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밥 먹고 돌아가는 길에 고백 받았을 뿐이야.」

「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데이트한 느낌으로는 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그대로 전했을 뿐이야.」


  뿐이다라.


「자원봉사 느낌으로 사귀면 되지 않나요? 한 달 정도 꿈꾸게 해주면 선배도 휴일에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히키가야 군, 날 뭘로 보는 거야?」

「그거야 남자와 어울리는데 거리낌이 없고 연애를 스위트 감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밖에」


「즉 빗치 같네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점차 이즈에 선배의 눈이 험해져서 도중에 그만둔다.

  아니 그래도 사실이고......

  선배는 꾸며낸 티가 나게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코끝이 닿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칠흑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미소가 들이닥쳐온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근질거림이 등줄기를 통과해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시선에서 도망쳤다.


「일단은 나, 남자에 대한 이상이 높아.」

「하아, 그런가요?」

「다만 어울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울릴 뿐」

「그래서 뒤에서 빗치라고 하는 거잖아요!」


  소문과 전혀 다를 바 없잖아.


「......그렇다면 더욱 더, 시험 삼아 타이시와 사귀어줘도 괜찮지 않나요?」


  아니면 타이시와 어지간히 맞지 않았던 걸까.

  이즈에 선배는 난처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봤지만, 검지 손가락은 기분 좋은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게 전에 미야한테 너무 쉽게 만난다고 혼나서...... 뭐, 요새 모르는 애한테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시선을 받아본 적도 있어서 사귀는 허들을 좀 올렸어. ......그래서」

「그래서 타이시 자식이 유감스럽게도 선배의 눈에 맞지 않았다?」

「그런 거야.」

  타이시 놈도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선배도 자중할 거면 떡밥은 그만 던지라고. 잡기&풀기를 땅에서 한다는 거잖아.


「......덧붙여서 타이시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응? 타이시 군이 나한테 너무 맞춰서 그러려나. 영화도 밥도 억지로 맞춰주는 건 바라지 않아.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지고 싶어.」

「의외로 소녀 같군요.」

「그런 거야. 난, 사랑에 애태우고 사랑에 우는 여자인걸.」


  그렇게 말하며 이즈에 선배는 작게, 그리고 덧없이 웃었다.

  어느새 야구부로 보이는 까까머리 집단이 운동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갈색 땅은 아직도 물렁해서 발을 디디면 가라앉을 것 같지만 그래도 동아리는 하는 듯하다.

  그 광경을 잠시 선배와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질서하고 소란한 목소리는 어딘가 멀어서, 사람이 없는 이 장소가 떼어내진 감각에 빠졌다.


「그래서 너와 아카네의 관계가 엄청 자연스러워서, 꽤 동경했는데 아니었어?」


  그 때문인지 이즈에 선배의 농담 같은 말은, 내 안에 스리슬쩍 들어와서 날뛰었다. 어느 의미로는 불의를 찔린 형태였다.


「......무슨 말입니까?」


  목소리에 감정을 넣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나도 신경이 쓰였어, 일요일에 헤어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선배와는 상관없잖아요.」

「응. 그래도 그런 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역시 신경 쓰이잖아?」

「......」

「거기에 농담 같이 말했지만, 너희들의 관계를 동경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뭐라는 거지?

  선배에게 이야기한들, 무언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건 키리바나의 문제다. 저 녀석이 납득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선 안 되는 거였다.

  따라서 선배와도 상관없다.

  그대로 무뚝뚝하게 입을 닫는다. 선배는 아까 전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면 난 관계가 없는 너한테 타이시 군과의 전말을 말했잖아. 그렇다면 히키가야 군도 나한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전 부탁한 게 아닌데요.」

「그래도 한 번은 한 번이지?」


  마침 선배가 말을 다 꺼낸 것과 동시에 교사에 답답한 벨이 울린다.

  벨 소리는 운동장에서 교사 전체를 왔다갔다하며, 교사와 땅을 살짝 진동시켜서 학생들의 다리를 각자의 교실로 가게 했다.

  그 소리도 조금 전까지의 소리와 뒤섞여,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어쩐지 나른함이 섞인 바람이 뺨을 두드리며,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선배, 사람 좋다는 말 듣지 않아요?」

「후후, 잘 들어.」


  교내의 소란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작아져간다. 새가 지저귀는 듯한 고요함이 주위를 감싼다.

  5교시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선배는 전혀 교실에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다리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히키가야 군, 교실에 안 가도 돼?」

「선배야말로 괜찮아요?」

「난 우등생이니까. 한 번 정도 수업에 빠져도 문제없어.」

「그래요? 저는 다음 수업이 생각 안 나서요. 그래서 그런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하러 가는 건 미안하니 게으름 피우기로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 벨이 울렸다.


「수업 시작됐네.」

「그러네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가하니,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실 수 있어요?」

「응, 좋아.」


  햇볕도 없는데 오후의 공기는 따뜻해서, 마음을 놓으면 눈꺼풀이 가라앉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이후에 하는 말은 분명 잠꼬대 같은 거다. 특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입에서 흘러넘치는 이야기일 뿐.


「별일 아니에요. 그대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제멋대로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했을 뿐이에요.」

「......그건 그 카페에서 얘기하던 계속?」

「그래요.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멋대로 걱정한 끝에 상대방을 부정했을 뿐이에요.」


  나는 크게 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말로 꺼내보니 가슴 속이 슥 가벼워진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감정이나 마음에는 질량이나 경계선은 없지만, 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 근처에 있는 걸까.

  그건 손대면 쉬게 변질돼버리는 약한 것이라, 누군가가 토해낸 것을 자신 안에 넣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바뀌고 만다.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누군가와 같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해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히키가야 군은 정말로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네.」


  같은 장소에 있는 선배는 차분히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그렇게 됩니까?」

「오히려, 그 외에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 거야?」

「아니 봐요, 키리바나에게 멋대로 내 이상을 강요했다, 같은 식으로」

「그건 연애감정인지 다른 것인지는 둘째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귀를 곱게 매만지는 듯한 선배의 목소리는 상냥해서, 자장가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니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기에 더욱, 상대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게 돼.」

「그렇지 않아요. 이놈도 저놈도 우정을 강요합니다. 우리들과는 다른 누군가를 부정하고 있어요. 그건 전부 호의에서 오는 건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려운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즐겁잖아. 러브&피스처럼」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 이즈에 선배는 웃는 얼굴로 피스 자세를 취했다.

  너무나 경망스럽고, 적당하게 말해서 미소가 흘러넘치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달아서 녹아내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들 전부가 에고이스트가 되잖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상을 강요하고, 바라기 때문에 엇갈린다. 자기만족을 서로 주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비극적이다.


「그래도 되잖아. 싸우면 사과하면 되잖아. 그렇게 엇갈리면서 상대 안의 내가 느껴지는 게 정말로 기뻐. 타인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돼서는, 그런 건 절대로 재미없을 거야.」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어떤 교실에서 높고 낮은 소리가 뒤섞여 새어나온다. 그 소리는 우리들밖에 없는 이곳에도 살짝 닿아, 우리들에게 부딪혀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누구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바로 가까운 곳에 몇 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도 관련되지 않고, 느껴지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 멀다.

  구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태양이 몹시 눈부셔서 손을 뻗어 가린다.


「......선배」

「응?」


  계속된 말은 농담 같은 식으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저와 사귀어 주실 수 있나요?」

「......좋아. 그래도 나, 바람이나 양다리는 용서 못하니까. 그보다 나 말고 좋아하는 애가 있는 시점에서 아웃」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만둘게요. 벌 받는 건 싫어서.」

「그래? 유감이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얘기했다. 결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넘칠 정도로는 즐거웠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간 뒤, 유이가하마에게 5교시 수업이 현국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담당은 물론 히라츠카 선생님이다.

  ......그건, 떠올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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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7 ~비오는 날의 월요일~




  침울한 표정을 띤 비늘구름과 함께 월요일이 온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나서 가라앉은 표정을 짓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과 섞여, 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간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우산을 손에 든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산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지.

  ......뭐 오는 길에 비가 흩뿌린다면, 최악이라도 직원실에 가서 우산을 빌리면 되는 일이다.

  그다지 느리게 걸을 생각은 없었지만, 교실에 들어선 타이밍에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린다. 평소라면 도착하고 나서 울리기까지 몇 분의 유예가 있었으니 걸음이 느렸던 거겠지.


「안녕 힛키」


  유이가하마와 스쳐 지나가면서 받은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대충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은 기본적으로 다수를 가르치는 것을 전제로 내용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전에 배운 문법이나 한 번 읽으면 외울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반복한다.

  기억한 내용을 복습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효과적인 공부는 없다. 즉 수업의 6할이 새로운 내용이라도 나머지 4할은 복습이 되므로 수업이 지루해지는 것도 별 수 없다.

  즉 내가 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문만을 등을 세우고 들은 체 만 체 하고, 나머지는 수면 유도제로 활용해서 하루의 수업을 소화한다. 왠지 『매트릭스』의 배경 같은 숫자가 나열된 꿈을 꾸기도 했지만, 방과 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상쾌했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는 어떻게 됐을까. 일단 데이트를 거들었으니 결과 정도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이즈에 선배의 교실을 들여다봤지만, 갈색 머리카락과 특징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기...... 메구미라면 오늘 볼 일 있다고 해서 먼저 돌아갔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메구미라니 누구지? 아마 모르는 사람일 테니, 나한테 한 말은 아닐 거다.


「저기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고 교실 안을 보고 있었더니 초조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며, 어깨를 난폭하게 얻어맞았다.

  어깨에 지워진 미덥지 못한 감촉을 느끼며 뒤돌아보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살짝 펌한 선배가 불쾌한 듯이 서있었다.

  이 사람 이즈에 선배의 친구였을 텐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야와 카세이, 어느 쪽이지?


「히, 히, 히키가야 군이던가? 메구미 찾는 거지?」

「아무튼, 그래요.」


  메구미라는 건 이즈에 선배의 이름인가? 성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이름으로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고.


「메구미는 오늘 돌아가서 찾고 있다면 헛걸음이야.」

「......그런가요」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부실로 가려고 했지만,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을 꺼내본다.


「저기, 선배는 운동 같은 걸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했어.」

「......예를 들면 농구 아마추어인 제가, 선배의 플레이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지적해서 고치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세이(?) 선배는 턱을 약간 잡아당기고, 위를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즈에 선배의 버릇이라도 따라하는 건지, 허리에 댄 오른손 검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생각났는지, 밝은 미소로 선배는 말한다.


「때리고 싶어져.」


  상상한 것보다 폭력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그런가요......」

「응. 왜냐면 짜증나잖아. 서투르다든가 생각하는 건 딱히 상관없는데, 그걸 말로 하려면 그것에 걸맞는 설득력이 갖고 싶어지잖아.」

「그건 제가 올바른 것을 지적해도 그런가요?」

「물론이지. 왜냐면 히키가야 군은 그 플레이가 맞는 건지, 상상으로밖에 모르잖아?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적이라도 래리 브라운이 말하면 고분고분하게 들을 거야.」


  선배는 양손으로 슛 자세를 취하고는, 허공을 향해 가공의 볼을 던진다.

  그 때 스커트가 약간 떠서 탄탄하고 하얀 허벅지가 보이는 면적이 증가한다.


「......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무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감사하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선배는 「뭔가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해줄 수 있는데」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나를 향해 흔든다. 그 표정은 아까 전과 다름없어서, 남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 그랬을 거다.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라도 만나러 올 거라고 말해주세요.」

「그래-」


  바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쓰기 시작하는 선배를 보며, 한 번 더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카세이 선배」


  한 번 더 감사를 하자, 선배는 유감스러운 것을 보는 시선으로,


「내 이름, 미얀데......」

「................」


  다행히도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



  「......그럼, 어제 있던 일을 보고해주렴.」


  부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예리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끼얹어졌다.

  창밖의 흐린 하늘과는 180도 다르게, 형광등의 창백한 빛이 쏟아지는 부실에는 벌써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아무튼 3층에 들르고 나서 문화동까지 왔으니 늦어져도 어쩔 수 없다.

  책과 폰으로 눈을 떨어뜨리는 둘을 곁눈질로 보면서 정 위치로 가서 철제 의자에 대강 앉는다.


「보고할 것도 없어. 끝까지 붙어있질 않았으니까. 타이시가 고백했는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마지막에 둘이서 어디엔가 간 것 같지만......」


  덤으로 오늘은 이즈에 선배에게 묻지도 못했으니, 그 이상은 보고할 방도가 없다.


「어? 그것뿐이야?」


  유이가하마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키노시타도 얼굴을 들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결과만을 보고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중간 경과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니?」

「그런 걸 말해봤자 의미가 없잖아. 아무리 좋은 분위기라도, 차일 땐 차이는 거다. 그렇다면 보고해도 의미는 없어.」

「......그런 걸까」


  유키노시타의 말이, 부실 벽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실로 오는 김에 사 온 MAX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목을 지나가는 달콤함을 느끼며 반 넘게 남아 있는 캔을 테이블 위에 둔다.

  그렇게 당분간 창밖을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운동부는 평소대로 운동장에서 활동하는 듯하다. 멀찍이서 하야마 일행이라고 생각되는 애들이 팔팔하게 체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히키가야의 눈이 평소보다도 그림자를 띠는 것은 어제의 데이트와 관계있는 거니?」


  운동부를 관찰하는 것도 질려서 유들유들한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쉬게 하는 참새를 관찰하고 있자, 유키노시타가 묻는다.


「......무슨 말이야?」

「보아하니 침체된 분위기를 휘감고 있잖니.」

「그건 평소에도 그렇다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긴 하지만......」


  유키노시타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그렇게 말하자, 유키노시타와 맞은편에 앉은 유이가하마가 나를 향해 몸짓 손짓으로 설명해준다.


「힛키는 평소에는 뵹-한 눈을 하잖아? 근데 오늘은 뭐랄까 묭-한 눈을 하는 느낌인 거야......」


  묭-이라니, 왜 그런 나고야 사람처럼 비유하는 거냐.

  유이가하마는 나란히 내민 양팔을 내리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서......」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코마치한테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 평소보다도 눈이 이상하댔나 뭐랬나. 왜 이 놈도 저 놈도 사람 상태를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거야?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를 따라가서 중간에 빠지고,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를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다. 처음부터 결론이 나왔고, 그게 싫어서 떼를 썼을 뿐.

  그렇게 부실 안이 더 조용해진다. 멀리서 들리는 운동부의 구호와 어렴풋이 풍기는 비 냄새가 우리들 사이를 메워간다.

  왠지 모르게 목을 돌리고는, 책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는 유키노시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키노시타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추고, 눈을 내려뜨린 채로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그만두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해.」

「그렇군, 미안」


  왠지 유이가하마가 옆에서 「굉장해, 힛키가 사과했어......」라고 중얼거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하지만 듣고 보니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이 없다면, 그런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나와 유키노시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낙담했던 것 같다.

  등을 과감히 한 번 꼿꼿이 세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습 찬 공기를 폐에 넣고, 무거워진 공기를 폐에서 내뱉는다.

  눈을 감고 어깨 힘을 뺀다. 약간 나른한, 언제나 짓는 표정을 만들고는 눈을 뜬다.

  ......그리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려낸다.


「나, 오늘은 돌아간다.」

「어? 힛키 그냥 들른 거야?」

「우산 안 가져왔어. 그래서 비가 내리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


  왠지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 있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애초에 아직 비가 오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안 돌아가면 젖은 생쥐가 될 거다.


「그러면 유키농이라든가 내, 내 우산을 같이 쓰면 되잖아......」


  유이가하마가 약간 흠칫흠칫하며 말한다.


「나는 접는 우산밖에 없어서 애초에 무리야.」


  애초부터 같이 쓰게 해줄 생각이 없을법한 녀석이, 지당한 이유를 붙여서 부정했다.

  게다가 유키노시타와 돌아가는 시점에서 바늘방석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런 건 질색이다.


「그런 이유로 이만」

「아, 잠깐, 힛키」


  가방을 어깨에 매고, 유이가하마의 목소리를 뒤로 받으며 부실에서 나온다.

  역시 나한테는 이 정도의 분위기가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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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6 ~달빛과 태양~




  하늘에 퍼진 짙은 감색 캠퍼스 한쪽 구석에, 꼭두서니 빛이 고요히 몸을 옆으로 기대어 살짝 존재감을 준다.

  아직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별을 찾아낼 수 없긴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고운 얼굴을 보여줘서, 거리에 밤의 소식을 알려주리라.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는,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그 뒤에 적당히 윈도우 쇼핑을 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데이트는 끝났다. 정말 싱거웠지만, 첫 데이트니까 이 정도면 될 거다. 다만 둘은 타이시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어딘가로 갔다. 아마 거기서 고백이라도 하는 거겠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타이시가 걱정됐지만, 선배에게 손대지 말라고 찔러뒀으니 우선 실수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낮과는 반대로 한산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키리바나는 침묵에는 익숙하다. 원래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 자체에 익숙해서 상대가 코마치나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라 해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뭐, 자신해야할 건 아니지만.

  ......따라서 이 가슴 속에 걸린 응어리는, 이 침묵과는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저기, 그 카페에 있던 애들과 화해 같은 건 안 해?」

「화해라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저 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정면을 보며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끈질기다는 거 알아요?」


  겨우 나를 향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보고, 내뱉으려고 한 말을 황급히 삼킨다. 말을 되새겨보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적당한 화제라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머리라도 흔들어서 화제를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내 머리답게, 어지간히 일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키리바나는 어이없이 보고 있었지만, 뭔가 납득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치만 오빠는 어째서 친구가 없어요?」

「어이, 왜 그 화제를 고른 거냐」


  화제를 바꾼다 해도, 좀 더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있잖아. 아니, 바꿔준 건 고맙지만.


「아니요, 생각보다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라서요. 하치만 오빠는 눈이 썩은 것과 비뚤어진 성격과 가끔 나오는 글러먹은 발언만 빼면, 얘기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 3개가 거의 대답이잖아.」


  아까 전까지 조용히 있었던 게 바보 같아진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눈을 제외한 얼굴은 갖춰져 있고, 이러니저러니 잘 돌봐주기도 하고, 의외로 다정하기도 하니까, 노력해서 무리한다면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예요?」

「칭찬하는 건지, 깎아내리는 건지 어느 쪽이야......」

「저, 생각보다는 진심으로 묻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키리바나의 얼굴은, 약간 습기 차고 무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띄운 탓에 그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한 번 숨을 쉬고 키리바나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건 당연하잖아. 그렇게 무리해야만 얻는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는 것뿐이야.」


  무리를 하면, 어딘가 터지는 곳이 나타난다.

  참고 노력하면, 계속 참아야만 한다.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언제까지나 남는다.

  처음에는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도, 거짓말이나 기만을 겹겹이 쌓아가는 사이에, 어느덧 따돌림 받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것은 본말전도다.


「그렇군요. 히키가야 오빠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요.」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호칭을 키리바나는 쓴다.


「그렇다면, 왜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게 하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건 오만이에요.」


  키리바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다. 반대 입장이라면, 틀림없이 키리바나와 같은 행동을 했겠지. 하지만,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키리바나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말한다.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순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무리를 해도 균열이 생긴 인간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넓게 가지기를, 틀림없이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슴 속에서 계속 품어왔던 것은 예전부터 쭉 변함없다.


「넌 아까 전 카페에서 외롭지 않다고 말했어. 아무렇지도 않다고도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 키리바나의 말이 허풍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 하치만 오빠도 자주 하지 않아요?」

「아니, 안 해.」


  키리바나의 눈이 치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를 보는 건 처음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대로 말을 계속한다.


「난 혼자가 좋다고 말했지. 외롭지 않다고는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어.」


  혼자 있으면,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실컷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도, 적막감만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이를테면 졸업식 날, 누구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중에 혼자서 교문에서 나올 때.

  이를테면 점심시간, 교사 안에서 울리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

  이를테면 휴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가족 전원이 외출했을 때.

  그럴 때 자신이 돌이 되어, 어디와도 이어지지 않은 느낌이 마음속에서 배어나온다. 자신은 확실히 여기에 있는데, 그 자신조차 윤각이 흐릿해진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덮쳐온다.

  그건 필시 내 마음의 약함이리라. 정말로 고독한 인간은 아니기에, 사소한 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거면 돼.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를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비록 그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계속 바라는 것만은 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잘못됐어.」


  키리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입술을 꽉 다물고 나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어가, 반으로 잘린 달이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면에 비추고 있다.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붙여서 속이고 있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몸에 깊이 스며들어간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

「별로 나쁘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게, 저는 가장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앞을 향하고는, 나를 선도하는 식으로 걸어갔다.

  아스팔트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키리바나를 따라간다. 차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몹시 눈부셔서, 할 수 없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대로 당분간 걸어서, 평소의 갈림길이 나오자 키리바나는 겨우 나를 봤다.

  그 얼굴은 방금 전의 얼음 같은 표정이 아니라, 이따금 혼자 있을 때의 평탄한 표정이어서 마치 방금 전에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키리바나의 뒷모습을 멈춰 선 채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걷는 키리바나는, 흑발을 미지근한 바람에 흩날리며 곧 옅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여러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을 무렵이다.

  초등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뭐,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혼자였으니, 딱히 강조할 것도 없지만.

  주변 애들이 즐겁게 웃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분을 삭이면서 돌아가던 나였지만 어느날 하교하는 집단에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학년과 돌아가는 길이 겹치는 것은 드물다. 사실, 그 무렵에는 코마치가 먼저 돌아가서, 코마치 또래 여자애가 있던 것은 뜻밖이었다.

  그 녀석은 조금도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고, 지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태연한 얼굴로 걸어서, 키가 작은 주제에 나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되고 싶다고, 돌아가는 길이 겹칠 때마다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바보라서 그 녀석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런데도 연하의 게다가 여자애가 자기보다도 더 폼을 잡는다는 착각을 했었다.

  결국 그 착각은 내 일방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이동수업이 있어서 하급생 층에서 걷고 있는데 그 녀석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하교할 때와는 돌변해서 얼굴이 풀어지고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웃는 그 녀석을 보고 엄청 낙담했던 것을 기억한다.

  평범하게 친구가 있는 녀석이 혼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폼을 못 잡아서 나한테는 친구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고, 하지만 역시 대답은 나오지 않아서 그 날 돌아가는 길에 과감히 본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던 중, 근처에 나와 그 녀석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나서 말을 걸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 녀석은 일단 주위를 두러보고,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을 확인하고는 머뭇머뭇하며 대답한다.


『......네, 외롭지 않아요.』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모두들하고 즐겁게 있었지? 그래도 지금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이 쉬는 시간이나 친구의 유무까지 알고 있었으니,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잠깐 간격을 두고 대답을 생각했지만, 바로 입을 움직여주었다.


『원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서요. 모두들하고 같이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 뿐. 없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분명 슬픈 삶의 방식이라고, 아이이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아무도 없게 될 듯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 녀석은 그걸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이틀 후 나는 그 녀석에게 코마치를 소개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으면 해서.

  ......그것이 키리바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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