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끔 번역물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2ndboost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5 ~커피의 쓴 맛~





  B급 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영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싸기도 하고,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 대수가 적기도 하고, 매우 저렴한 세트나 무명 배우만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각본도 마찬가지로 무명 극작가를 쓰는 탓인지 실패와 성공의 편차가 크고, 때로는 혼돈스런 내용일 때도 많이 있다. 대학 간의 경기에서 농구를 한다고 생각했더니, 왠지 우주인이 공격해와서 지구의 존망이 갈리는 전개도 놀랄 만큼 자주 본다.

  하지만, 그 혼돈을 좋아하는 별난 사람들은 생각보다는 꽤 있다.

  원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달라서일까? 그 사람들이 엉터리 전개를 더러운 말투로 매도했다고 생각했더니 그 바로 다음 순간, 사진 기술와 공간 연출이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그렇게 해서 배우의 연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나 생각했더니, 마지막에는 엉터리 전개를 보고 크게 웃는다. 이제 뭘 평가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우와, 엄청 시시했지. 봐. 그 주인공 같은 남자가 후반이 돼서 의미도 없이 목을 잘린 장면이라니, 스태프가 무슨 표정을 하고 찍었을까?」


  나와 키리바나의 후방에서, 이즈에 선배가 신바람난 목소리로 타이시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애완동물 샵을 대강 만끽한 우리들은 당초 예정대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확실히 전국에 널린 영화관답게 극장수가 많고, 상영 수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 이즈에 선배가 선택한 것은 「지하 300m에서의 침공」이라는, 인디 존즈의 부제가 아니라면 사양하고 싶은 영화였다.

  나와 키리바나는 둘을 따라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선배의 방침에는 거스를 수 없어서 타이시가 반대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결과는 흔쾌히 동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돼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본 결과가 이러하다. 타이시 자식, 「아아」라든지 「그렇군요.」라는 말밖에 못하고 있다고.


「.....감상은?」


  옆에서 난처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는데, 영화라기보다는 콩트처럼 보니 의외로 보통이었어요.」

「......대체로 나와 같군.」


  이즈에 선배가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들에게 충고한 것은, 「영화를 보려고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는 동안에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보통 영화 같은 기대를 하지 말고 그야말로 가족 연극이라도 보는 느낌으로 보는 게 좋다는 말이다.

  시작하고 나서 15분 정도에 나온 지하세계 사람을 보고, 처음에는 특수 메이크의 수준 낮음에 전율을 느꼈지만, 점차 익숙해지자 메이크 수법으로 생각이 미쳤다. 완성도가 너무 높으면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지만, 서투르다면 반드시 과정이나 수법에 신경이 쓰이고 만다. 하지만 그것이 좋다.

  그나저나 저건 메이크라기보다는 쓰개다.


「그래도 유머는 상당히 훌륭했어요.」

「저런 분위기니까, 그렇게나 농담을 담아낼 수 있는 건지도. 할리우드 초대형작에서 그렇게 하면, 엄청 깰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은 약간은 알 것 같다. 조잡하거나 진부하기도 하지만 그 시시함에 대해서 생각하며, 때로는 머리를 텅 비우고 즐길 수 있다.

  물론 예산이 높은 것 중에서도 그런 작품은 있겠지만, B급 영화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카메라가 적은 것도, 뒤집어서 생각하면 시점이 적어서 자신의 시선에 가깝다. 그런 것일 거다.

  작품에 대해서 각자 대충 말하자, 이즈에 선배가 손가락을 돌리며 말한다.


「그럼 밥 먹으러 가볼까?」


  그러고 보니 아직 안 먹었지. 영화를 볼 때는 주스를 마셨지만, 역시 약간은 배가 고프다.

  키리바나나 타이시도 배가 고팠는지, 이즈에 선배의 제안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튼, 데이트라고 하면 식사고, 식사할 때는 의외로 자란 방식이나 개성이 나오기 때문에 궁합을 파악하기 쉽다.

  미인이지만 먹는 방식이 불결하다든가, 탕수육에 파인애플을 넣는다, 키스프라이에 간장을 뿌릴까? 소스를 뿌릴까? 등등, 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이즈에 선배의 센스를 기대하며 간 곳은 아담한 카페였다. 입구 부근의 벽면을 투명한 유리벽으로 하고, 그 안에는 앤틱 테이블이나 의자가 불규칙하게 늘어 놓여 있었다.

  바닥도 대리석 같은 흰 바탕에 광택이 있는 석재를 쓰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신지 않았지만, 가죽 구두라면 또각또각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릴 거다.

  아니 뭐야 이건. 왜 이렇게 깨끗한 느낌이 드는 데에서 밥을 먹어야하는 거지? 그보다 여기에 배를 채울만한 탄수화물이 있을까?


「여기 팬케이크가 맛있어. 키리바나는 단 거 좋아해?」


  여성진이 창가에서 새된 목소리로 스위트 설법을 꽃피우는 중, 메뉴표를 펄럭펄럭 넘긴다. 일단 타코라이스나 스파게티 정도는 있지만, 역시 메인은 팬케이크인 것 같다.


「하치만 오빠는 뭐 드실 건가요?」


  무난하게 고르자면 스파게티겠지만, 팬케이크가 좀 신경 쓰인다. 여기서 팬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평생 인연이 없는 음식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단 게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팬케이크면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타이시도,


「아, 저도 그게 좋슴다.」


  이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흥분됐다. 아차, 내가 팬케이크를 고른 탓에 타이시가 다른 메뉴를 먹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동안, 테이블 위에 4개의 팬케이크가 나란히 놓인다. 이중으로 쌓은 팬케이크 위에 딸기나 바나나, 블루베리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 생크림이 듬뿍 담겨 있고, 그 옆에 작은 용기에 황금색 메이플 시럽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럼 먹어볼까?」


  먹는 건 좋지만, 어떻게 먹어야 하지? 생크림과 메이플 시럽은 처음에 얹어 먹는 건가?

  나이프와 포크를 잡은 채로 당황하고 있는데, 키리바나와 이즈에 선배는 케이크를 약간 떼어내서는 그 위에 크림이나 시럽을 적당히 얹어서 입에 넣는다.


「아! 너무 달지 않아서 먹기 쉬워.」

「그치?! 생크림도 별로 칼로리 없대」

「그건 기쁜 정보네요.」


  둘이 냠냠 먹는 것을 따라 딸기에 크림을 발라서 입에 넣는다. 키리바나가 말한 대로, 팬케이크 자체는 그렇게까지 달지 않고, 의외로 담박하다. 오히려 케이크만 먹으면 뭔가 부족할 것 같다. 그 정도로 크림을 바른 딸기에는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메이플 시럽과 바나나를 조합해서 또 한 입 먹는다.

  이거, 의외로 상당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잘라서 먹고 있었는데, 눈앞에 앉은 타이시의 팬케이크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아아, 이 녀석. 단 것에 서투른 건가. 무리하기는.

  이즈에 선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타이시에게 실없는 잡담을 하는 중이다. 이 사람이 깨닫지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적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서툴렀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안 한 타이시의 잘못이니까.


「앗, 타이시잖아. 뭐야뭐야? 데이트?」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가 가게 안에서 퍼부어진다.

  소리가 난 쪽에는 아직 앳된 얼굴을, 얄팍한 화장으로 덮어서 가린 여자 4인조가 있었다.

  그 애들은 나와 이즈에 선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리바나를 차례대로 확인하고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타이시에게 다가간다.


「꽤 미인이잖아. 소개해봐.」


  중학교의 반 친구일 것이다. 그 말은 키리바나와도 같은 반이라는 게 되지만, 키리바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팬케이크와 마주 보고 있다.

  리더격인 여자는 타이시를 놀리듯이 말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 명은 힐끔힐끔하고 키리바나를 식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반대로 리더는 키리바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뭔가 납득이 안 된다.


「너희들 시끄럽다고. 자, 저쪽으로 가.」


  타이시가 약간 초조한 상태로 일어나 여자들을 쫓아내서, 그 사이에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야, 저 녀석들 아는 사람이야?」

「같은 중학교에요. 반은 우리들과 같고, 가끔 얘기했었어요.」


  그렇다면 왜, 키리바나에게 말을 안 거는 거지?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이런 곳에서도 인사하는 건 당연하다.


「저 녀석들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저쪽이 조금 적대시할 뿐이에요. 전에 저한테 고백한 미사키 군, 기억하세요?」

「그 운동맨 같은 녀석이잖아.」


  우선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참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키리바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하면서, 손을 움직여서 케이크를 잘라내고 있다.


「아무래도 그 애들 중에, 그 미사키 군을 좋아하는 애가 있는 것 같아서, 미움 받았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생크림과 시럽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한 입 넣고는, 얼굴을 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다. 여자들의 우정은 왠지 룰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연애 관련이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을 안 상태에서 그 사람과 사귀게 되면 다음날에는 따돌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둘 중 하나다.

  키리바나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과적으로 미사키 군을 꼬신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찼으니까, 그 여자 룰에 저촉되기라도 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 해서.


「넌 그래도 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 쪽이 저를 싫어하니까. 제가 이러니저러니 할 일이 아니에요.」


  역시 키리바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식사를 계속 한다.

  원래라면 그걸로 좋다. 본인이 납득했다면,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전에 키리바나에게 말했던 대로, 미사키 군에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한 키리바나에게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을까」


  하찮은 이유로 상대방에게 미움 받아, 가끔 얘기하던 상대와 거의 말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차가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외롭지 않아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산뜻하게.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물론, 사유물이 숨겨지거나 아플만한 행동을 당하는 건 싫지만요. 지금은 그런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마찬가지에요.」

「......그건, 안 되잖아.」


  무심결에 말투가 험해지고 말았다.


「안 되지 않아요. 게다가 하치만 오빠도 자주 말했잖아요. 그 정도로 망가진다면, 분명 그 정도였던 거라구요.」


  아아, 그렇게들 자주 말한다. 여하튼 나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이치다. 좀 반한 일 정도로 인연이 끊어진다면, 미사키 군 일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겠지.


「그래선......」

「자, 거기까지. 슬슬 타이시 군이 돌아와. 계속 하고 싶으면, 이 데이트 다음이야.」


  이즈에 선배의 냉정한 목소리로, 의식에 공백이 생긴다. 시야 구석에는 마지못해 떨어진 자리에 앉는 여자들과, 여기로 돌아오는 타이시가 있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같이 주문한 커피를 목에 흘려 넣는다. 단 것과 맞추려고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았던 탓인지, 강렬한 쓴 맛이 혀를 자극한다.


「미안해요. 같은 반 애들이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있었슴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의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를 BGM 삼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나는 의미도 없이 떼 지어 모이는 놈들이 정말 싫다.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는 주제에,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거짓말이나 기만으로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인간관계를 멋지다고 목청 높이며, 타인에게 그것을 강제하려 든다.

  실은 사이좋지 않은데, 표면상으로는 어울리면서 그 뒤에서 험담을 해댄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상처주고, 사람을 멸시해서 조잡한 허영심을 채운다.

  홀로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무서워하는 주제에, 혼자 있는 사람을 비웃는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좋다.

  혼자 있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렇게 애매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에 기댈 정도라면, 혼자서 고독과 마주보는 편이 훨씬 낫다.

  거짓말을 하고 억지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친구 같은 건, 나는 필요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은, 키리바나만큼은 나와 같은 식으로 살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거짓말을 하거나, 무리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키리바나와 처음 말을 했을 때부터,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