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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Ⅱ ~ 쓰여 있던 것 ~




  텅 비어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의 집은, 건물의 낡음이 배어 나온 듯한 정체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마 고운 붉은 적색을 띠고 있었을 기둥이나 마루는, 지금은 이제 상당히 거무스름해져서 툇마루에 나와 나뭇결 끝을 밟아보니 삐걱삐걱하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가고 나서 며칠 뒤의 방과 후, 당분간 할아버지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무심코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매우 닮았을 할머니에 대해, 조금만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실은 아버지에게 묻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할머니의 별로 좋지 않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묻는 건 꺼려져, 결국 이렇게 제 손으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저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그리고 살아갔을까요?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가 평소 쓰는 방을 살펴봅니다. 여덟 다다미 정도의 큰 방은 햇볕이 잘 들어, 남쪽에는 눈을 구경하는 미닫이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슬쩍 봤더니, 찬장 위에 장식된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슴에 약간의 기대를 품고 들어서 확인하자, 역시 제가 상상하던 것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했을 때의 사진이겠지요. 지금보다도 상당히 젊은, 예리하고 사나운 용모의 할아버지가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단 같은 흑발을 묶고, 주홍색이나 금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듯한 요염한 옷을 입은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훨씬 거친 사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릴 적의 아버지와 고모가 모두 찍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세련되지 못한 옷을 입은 할머니는, 등까지 내려오는 흑발과 덧없는 표정이 매우 인상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할머니의 외관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저와 매우 닮았습니다. 특히 두 번째 사진은, 요즘 제가 등까지 머리카락을 내린 이유도 있어 정말로 쏙 빼닮았고, 지금의 제 용모를 그대로 성장시킨 듯한 모습입니다.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한 뒤, 할머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한 번 어루만지고, 사진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고 방을 뒤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몇 개 정도의 방을 찾다가, 한 방에 이윽고 다다랐습니다.

  여섯 다다미만한 다다미를 깐 방. 오래된 오동나무 장롱이 두 개와 작은 찬장, 그리고 화장대만이 놓인 곳이었습니다. 건조한 등심초와 오동나무 향이 방 전체에 그득 차 있어 절로 차분해지는 이상한 곳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쓰이지 않았겠지요. 최소한은 청소되어 있었지만 생활품은 없고,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정체감을 싫어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겠지요, 할머니는 평소 여기에 있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뭔가 일기 같은 게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하며 찬장을 찾아봐도, 칠흑색 비녀가 놓여있을 뿐입니다. 계속해서 맹장지 안을 보지만, 이불이 하나 있을 뿐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그 뒤 대략적으로 방 안을 봤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고 할 일이 없어진 저는 다다미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금 전 사진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립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간단히 버려질 것 같은 성격이라면, 저와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을 품고 있었을까요?

  ......어째서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을까요? 만약 살아 있다면 닮은 사람끼리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요절한 것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납득하고 있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반대로, 별로 세상과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스러지듯이 간단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그 상태로 멍하니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척이다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비치된 장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단상은, 아직 열지 않았습니다.

  사고 나서 시간이 상당히 흘렀겠지요. 본래 오동나무 색이 상당히 더러워져서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해졌습니다. 문의 쇠장식도 마찬가지로 녹슬었고, 적동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천천히 일어서서 가슴 높이 쯤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방금 전 사진에서 할머니가 입었던 옷과, 한 벌 더, 짙은 감색의 오오시마 명주가 곱게 접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 서랍을 열자, 약간 오래된 디자인의 양복이 있었습니다.

  과감히 다른 서랍도 열어보자, 고급스런 기모노가 몇 개 정도 있어서, 할머니가 양가 출신이라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8할 정도의 서랍을 열어보고, 장롱에 있을 법한 옷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낙담하며 맨 밑 서랍 안을 보자, 새까만 상복이 있었습니다. 낙담이 더욱 겹쳐, 무심코 다다미 위에 엉덩이를 철푸덕 붙이고 앉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서랍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생각해서 시선을 들자, 상복이 있는 곳 더 안쪽에 직사각형의 물체가 포개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에는 시선이 높아서, 안쪽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복을 치우며 손을 뻗습니다. 조금 까칠까칠한 종이 감촉이 손가락에 걸려, 그대로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빼낸 것을 확인했더니, 거기에는 빛이 바래서 약간 노래진 봉투가 있었습니다.

  전부 5매 정도의 오래된 봉투. 표면에 수신인은 쓰여 있지 않고, 뒤집어 봐도 발신인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석양 틈새로 보면, 안에 편지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그리고 죄책감도 품지 않고, 편지지를 꺼내 눈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마지막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여성의 사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누구에게도 호의를 품는 것도, 그 이전에 정신적인 유대를 필요로 한 적이 없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자신의 그런 성질을, 정신 연령이 높아서 그럴 거라 착각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결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 성질을 가졌으면서,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소녀 같은 순수한 사상을 가졌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돌려줄 수 없는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자신 같은 사람은 본래 혼자 살고,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썼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사는 시대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집의 권유도 있어, 맞선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 뒤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죄로 흘러넘쳐 있었습니다. 본래는 이런 형태로 결혼하는 것은 잘못되었고, 끝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신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남편을 이용했던 것에 대해서.

  다른 봉투의 내용도 확인해보니, 군데군데의 내용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일언일구를 구석구석 머릿속에 새기듯이 읽은 다음, 그 모두를 원래 안쪽 서랍에 되돌리고 나서 방에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뒤로 할 무렵은 태양이 상당히 가라앉아, 저녁노을이 주홍색과 연보라색이 녹아 하나로 섞이듯이 얽혀가던 중, 저는 태양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아빠랑 같이 병원에서 수속하고 올 테니, 아카네는 당분간 집에 있어.」


  그렇게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은 때는, 제가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가고 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의 오전 중이었습니다.

  전화를 수화기에 다시 놓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애도를 해야 합니다. 그 말은 하루나 이틀 정도는 학교를 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늘 오후부터 코마치와 놀 약속을 한 것을 깨닫습니다. 가족이 죽었는데 노는 건 역시 불성실하겠지요.

  히키가야가에 전화를 한 통화 넣으면 되겠지만, 왠지 모르게 바람을 쐬고 싶어져, 직접 코마치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익숙해진 거리를, 평소대로 걸어갑니다.

  전화 너머로 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 성격 때문인지는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좀 더 슬퍼해야 하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할아버지가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의 그 표정입니다.

  히키가야가에 겨우 도착해서 인터폰을 누릅니다. 오랜 시간 뒤, 졸려 보이는 표정을 짓는 히키가야 오빠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래, 키리바나인가. 무슨 일이야?」

「히키가야 오빠인가요...... 코마치 있어요?」

「왜 한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짓는 건데...... 코마치라면 엄마하고 같이 쇼핑하러 갔어.」


  히키가야 오빠가 역 방향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늘, 코마치와 놀 약속을 했는데, 장례식이 있어서 아마 무리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할아버지 돌아가신 건가」


  어딘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히키가야 오빠가 말합니다. 그 표정은 슬퍼보여서, 그 얼굴을 보자, 나는 예전처럼 가슴이 꽉 조였습니다.

  그런 한편 머릿속은, 자꾸자꾸 냉정해져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했을 때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과 동시에 할머니의 편지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읽혀갑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이래, 계속 머릿속에서 걸리던 것이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의 마음은 할머니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확실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역시 올곧은 마음이라는 건, 반드시 보답 받아야 합니다. 보낸 것이 되돌아오기에, 제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사랑한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매우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너, 우는 거야?」

「네?」


  히키가야 오빠에게 듣고, 왼쪽 뺨에 차가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저 자신,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울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사실이다. 좀 더 제대로 된 이유로 울고 싶었는데......」


  손등으로 뺨을 닦았습니다. 반짝반짝 투명한 물방울이 살갗에 닿아, 바람에 맞자 그 부분만이 서늘했습니다.

  정말로, 어째서 이런 일로밖에 울 수 없는 걸까요. 할아버지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 그걸로 슬퍼해서 상실감을 느끼며 울어야 할 텐데.

  제가 갑자기 운 것을 보고 조금 뒷걸음 친 히키가야 오빠는, 그래도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말이야. 세상에는 가족이 죽어도 썩은 미소를 짓는 놈들이, 넘쳐난다고 봐. 걔네들에 비하면, 사소한 이유라 해도 우는 네 편이 훨씬 나아.」


  제가 너무나 열심히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어서 그럴까요, 제 시선을 눈치 챈 히키가야 오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천국에서 보면, 우는 건 똑같잖아. 그러면 들켜도 문제없어. ......아무튼, 그러니까 저거다.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


  히키가야 오빠는 도중에 횡설수설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물건을 만지듯이 다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히키가야 오빠의 말에 닿자, 마음속에 따스함이 퍼져나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서투르지요. 좀 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더니, 제 마음 속에서 계속 반짝이던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아마도,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서투른 주제에 다정하고. 평소부터 비뚤어진 말밖에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해주는 히키가야 오빠를.

  그것이 이성으로서인지 어떤지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았어요.」

「......난 일반론밖에 말하지 않았어.」

「네, 일반론이네요. 그래도 말한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니까, 인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히키가야 오빠는 제대로 된 의미로,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이 때 확실히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다른 한 쪽이 간단히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가짜가 아닌, 제대로 된 진짜를.


「어머니에게 집에 있으라고 들어서, 이제 돌아갈게요. 또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관련해서 연락이 올 것 같아서요.」


  한 박자 두고, 조금 긴장하면서 입을 엽니다.


「그럼 하치만 오빠, 또 다음에」


  하치만 오빠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대로 뒤로 돌아서 집으로 갑니다. 조금 걸어가다가, 왼 눈보다 늦게, 오른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밤샘 조문에 참석해줘서, 할아버지의 넓은 인망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도 밤샘 조문에 와서, 코마치는 관 속의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주었습니다.

  출관 때, 저와 할머니를 매우 닮은 고모가 눈물을 흘리며 꽃을 얹고 있었던 것이, 매우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당분간 평소대로 지내다가, 전에 말한 숙제에서 미래의 꿈에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써서 제출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키리바나라면 반드시 될 수 있단다.」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저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패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을까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원하진 않지만, 적어도 혼자 살아갈 힘 정도는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살아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