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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Ⅲ ~유리 너머~



  계절이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저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어머니가 직장에 복귀한 이유도 있어서, 남동생의 죽음으로 집안에 얽힌 안 좋은 분위기가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매일 향을 피울 때는 숙연해지지만 그것도 점차 변해서, 죽음 자체를 애도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보다 훨씬 많은 애들이 반에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난처했지만, 그것도 곧바로 익숙해져서 반 친구들과 전처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수업 중에 속닥속닥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정해진 수업을 소화하고 공부하며,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놀면서 학교생활을 즐겼습니다.

  다만 친해진 애들 중에 같은 길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혼자가 되면 그것은 저 멀리 가버리고, 어떻든 상관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이, 왠지 저에게는 지나간 것이라 생각되어, 학교에 있는 자신과 혼자 있는 자신 사이에 어긋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조금 혐오하고, 왠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안심감을 거느리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어 하교했습니다.

  혼자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서 간혹 방과 후,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유치원에서도 그림책을 자주 읽곤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도서실에도 책을 찾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장서 중에 흥미가 드는 것은 어느 것이든 어렵고, 글자를 좇는 동안에 꾸벅꾸벅 잠들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아직도, 한밤중에 일어나면 이따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어, 그것을 듣고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기 때문에, 낮에 졸려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점차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고, 아주 잠시 동안 낮잠을 자려고 도서실에 다니게 되어, 저의 하교시각은 조금씩 늦어졌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하교하던 중에 한 남자애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애라고 해도, 저보다 키가 조금 크고 어쩌면 연상이었지만요.

  주위가 소란스러운 중에, 그 남자애는 기분이 안 좋은 듯이 입술을 꽉 다물고 걷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돌을 차는 놀이를 하거나 하며 노는 아이들을 약간 탁한 눈으로 힐끗 보고, 홱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불쾌한 듯이 정면을 봅니다.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였지만, 가끔 정말 한순간만 긴장을 늦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표정에 분함과 외로움이 새어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그 표정을 우연히 들여다봤을 때, 꽉하고 가슴이 단단히 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띄우던 표정은, 저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그는 저처럼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들에게 악담을 하며, 그런데도 누군가와 깊게 어울리고 싶다는 것이 그 표정에서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런 그는 몹시 눈부시고 부러워서, 저는 그와 같은 길을 갈 때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제 결함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장난감 상자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야말로 유리함 저 편을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게 말을 걸었을 때는 정말로 놀랐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7월이 시작될 무렵. 아직도 높이 뜬 태양에서 살갗을 태울 듯한 빛이 이래도야? 하고 퍼부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걷고 있는데, 시끄럽게 우는 매미울음에 섞여 모르는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처음에는 제게 말을 걸었다고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평소대로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저와 예의 남자애밖에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근처를 바라보자,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처음으로 그를 정면에서 보았습니다.

  남자애치고는 조금 긴 흑발. 이목구비는 갖춰져 있고, 약간 탁한 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딘가 뚱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눈동자가 저를 비추는 것이 왠지 이상해서, 잠시 어리둥절하고 말았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원래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서투릅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는데, 초등학교에 올라갈 무렵에는 그 의식이 한층 더 강해져, 이런 내가 거짓말까지 한다면 인간으로서 실격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꺼려졌습니다.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지? 그래도 혼자서는 외롭지 않은 거야?」


  몹시 절박함을 내포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뿐. 없다면, 그래도 상관없어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라, 꺼낼 말을 제대로 생각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긴장돼서 제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해서 입을 움직였습니다.

  잘 말할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말을 끝내자 매우 슬퍼보이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눈초리를 내리고, 그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저는 그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한 것이 미안해져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방문을 알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더욱더 귀에 들어옵니다. 조금 전보다 햇볕이 세진 것 같아, 피부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키리바나 아카네라고 해요.」


  나온 말은 평범해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같이 돌아가지 않겠어요?」


―――――――


「너, 왜 혼자 돌아가는 거야?」


  옆에서 걷는 히키가야 오빠가, 약간 진지함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혼자 걷고 있던 남자애는 이름이 히키가야 하치만이며, 저보다 두 살 위인 3학년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 같은 간단한 이야기에 따르면, 히키가야 오빠의 집은 근처에 있으며, 저의 집에서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애들 중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요.」

「......그래」

「히키가야 오빠야말로, 왜 혼자 돌아가는 거예요?」

「나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예요?」


  머지않아 대화가 뚝하고 끊어졌습니다. 옆에 있는 히키가야 오빠는, 중얼중얼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을 방해하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을 같이 걸어갔습니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아무런 특색도 없는 풍경이 전면에 퍼지고, 들리는 소리는 한여름의 바람이 불어서 나는 깃발소리밖에 없습니다. 제 옆에는 히키가야 오빠가 있어서, 어떻게 해도 차분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현실감을 확인하듯이, 뻗은 제 그림자를 힘껏 밟으며 걸어갔습니다.

  제 집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 일단 발을 멈췄습니다. 히키가야 오빠도 저를 따라서 멈췄습니다.


「저는 이쪽 길에서 돌아가는데, 히키가야 오빠는 어느 쪽으로?」

「난 여기를 똑바로 가」

「그래요? 그렇다면, 여기까지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정중히 인사하고 나서 히키가야 오빠에게서 몸을 돌렸습니다.

  집까지 가는 길은 항상 보는 풍경에 찌는 듯이 더울 뿐이었지만, 얼굴에 맞닿는 바람은 왠지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히키가야 오빠가 소개하고 싶은 애가 있다고 해서, 방과 후에 약속을 했습니다.

  종례가 끝나고, 반 친구들과 조금 이야기하고 나서 승강구로 갔더니, 히키가야 오빠와 한 여자애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저보다 약간 작은 정도일까요? 조금 난 바보털에 표정이 다채로운 상당히 귀여운 여자애였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걸자, 두 명이 같은 표정으로 저를 뒤돌아보는 게 재미있어서 무심결에 얼굴이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했는지, 또 둘이 얼굴을 마주봐서 그것이 더 재미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웃음을 참았습니다.


「불러서 미안하다. ......자」


  히키가야 오빠는 여자애의 등을 밀어 제 눈앞에 내밀고는, 엉뚱한 방향을 보면서 말합니다.


「내 여동생도 같이 돌아갈 애가 없어. ......그러니 같이 돌아가줘.」


  그 말에 여자애는 불만스러운 듯이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었지만, 곧 미소를 띠우고는 제 손을 잡았습니다.


「히키가야 코마치. 코마치라고 불러줘」

「......키리바나 아카네. 아카네라고 하면 돼.」


  그 이후로는, 매일 코마치와 같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는 각자 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길 주변에서 키우는 개를 울타리 너머로 보곤 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에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게 되어, 코마치의 부모님에게도 귀여움 받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부모님이 바쁠 때도 있어서, 저와 코마치, 그리고 히키가야 오빠 셋이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같이 놀거나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키가야 오빠는 할아버지의 서재에만 있었지만요.

  이전에, 할아버지의 「소중히 해주려무나」라는 말을 지킬 수 없었던 죄책감 때문에, 좀처럼 할아버지 댁에 가기 힘들었지만, 히키가야 남매와 함께라면 자연스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몇 번 정도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가을에는 가족이서 밤을 주워왔습니다. 녹색 잎사귀에서 점점 색을 잃어간 숲은, 시든 잎의 건조한 향이 어딘가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의 찬바람이 거리를 에워싸던 날에는, 얇게 언 얼음을 코마치와 둘이 깨뜨리며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몇 번 정도의 봄을 경험했을 무렵에는, 제가 느끼던 어긋남 같은 것은 서서히 희미해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때도 사라져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