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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8 ~히키가야 하치만은 불량해진다~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게 됨과 동시에, 등교 전에 사 둔 총채빵과 주먹밥을 입에 넣는다.

  음. 원래 단품도 맛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같이 먹으면 최악으로 맛이 없군. 별 수 없어서 커피로 덮어 삼키려고 했지만, 커피와 쌀이 섞여서 무심결에 토할 것 같이 맛이 없어지고 말았다.

  ......젠장, 이럴 거면 하나씩 먹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든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교실 안에서는 옥신각신 얘기하면서 책상을 붙이는 중이었다.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반 애들 사이를 빠져나와 복도로 나와서, 3층으로 발길을 향한다.

  2층보다 약간 차분하게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이즈에 선배의 반에 겨우 도착한다. 미닫이  문으로 몸을 쑥 내밀고 들여다보니, 어제와는 달리 바로 이즈에 선배를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반 친구들과 얘기하던 이즈에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선배는 반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는 내게 왔다.


「어제는 일부러 와줬는데 미안해. ......히키가야 군, 점심은?」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점심식사는 도시락이 아닌 듯하다.


「이미 먹었으니 혼자 먹어주세요.」


  같이 밥 먹어서 소문나면 부끄럽고......

  그런 내 기념비적인 소녀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즈에 선배는 「할 말이 있는 거지? 그러면 같이 먹을까?」라고 말했다. 원심력이 무사히 일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얘기하기 좋은 장소라면 알고 있으니, 따라와 주세요.」

「응, 잘 부탁해.」


  북측 교사 1층까지 내려가서 양호실 옆 그리고 매점 뒤 결국은 평소 내가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간다.

  어제 귀가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이 되자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여전히 회색 구름이 태양을 덮어 가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토츠카를 필두로 여자들이 넘치는 테니스 코트는 아직도 땅이 습기차있는지 한산했다.

  그렇게 어두운 운동장이 눈앞에 있지만, 오늘 이 곳은 왠지 화려했다.


「그래서 할 말은? ......혹시 고백이라든지?」


  그 화려함의 원인인 이즈에 선배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에 걸터앉아서 과자 봉지를 열고 있었다.


「선배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을 텐데요.」

「뭐 그렇지. 밥 먹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


  도저히 오후를 끝까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양의 크림빵을 3분 정도에 다 먹는다. 그리고 나서 선배가 홍차를 마시고 한 숨 돌릴 때 즈음해서 입을 연다.


「일요일 우리들이 헤어지고 나서 뭘 하셨어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에 타이시 군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밥 먹고 돌아가는 길에 고백 받았을 뿐이야.」

「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데이트한 느낌으로는 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그대로 전했을 뿐이야.」


  뿐이다라.


「자원봉사 느낌으로 사귀면 되지 않나요? 한 달 정도 꿈꾸게 해주면 선배도 휴일에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히키가야 군, 날 뭘로 보는 거야?」

「그거야 남자와 어울리는데 거리낌이 없고 연애를 스위트 감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밖에」


「즉 빗치 같네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점차 이즈에 선배의 눈이 험해져서 도중에 그만둔다.

  아니 그래도 사실이고......

  선배는 꾸며낸 티가 나게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코끝이 닿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칠흑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미소가 들이닥쳐온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근질거림이 등줄기를 통과해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시선에서 도망쳤다.


「일단은 나, 남자에 대한 이상이 높아.」

「하아, 그런가요?」

「다만 어울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울릴 뿐」

「그래서 뒤에서 빗치라고 하는 거잖아요!」


  소문과 전혀 다를 바 없잖아.


「......그렇다면 더욱 더, 시험 삼아 타이시와 사귀어줘도 괜찮지 않나요?」


  아니면 타이시와 어지간히 맞지 않았던 걸까.

  이즈에 선배는 난처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봤지만, 검지 손가락은 기분 좋은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게 전에 미야한테 너무 쉽게 만난다고 혼나서...... 뭐, 요새 모르는 애한테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시선을 받아본 적도 있어서 사귀는 허들을 좀 올렸어. ......그래서」

「그래서 타이시 자식이 유감스럽게도 선배의 눈에 맞지 않았다?」

「그런 거야.」

  타이시 놈도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선배도 자중할 거면 떡밥은 그만 던지라고. 잡기&풀기를 땅에서 한다는 거잖아.


「......덧붙여서 타이시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응? 타이시 군이 나한테 너무 맞춰서 그러려나. 영화도 밥도 억지로 맞춰주는 건 바라지 않아.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지고 싶어.」

「의외로 소녀 같군요.」

「그런 거야. 난, 사랑에 애태우고 사랑에 우는 여자인걸.」


  그렇게 말하며 이즈에 선배는 작게, 그리고 덧없이 웃었다.

  어느새 야구부로 보이는 까까머리 집단이 운동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갈색 땅은 아직도 물렁해서 발을 디디면 가라앉을 것 같지만 그래도 동아리는 하는 듯하다.

  그 광경을 잠시 선배와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질서하고 소란한 목소리는 어딘가 멀어서, 사람이 없는 이 장소가 떼어내진 감각에 빠졌다.


「그래서 너와 아카네의 관계가 엄청 자연스러워서, 꽤 동경했는데 아니었어?」


  그 때문인지 이즈에 선배의 농담 같은 말은, 내 안에 스리슬쩍 들어와서 날뛰었다. 어느 의미로는 불의를 찔린 형태였다.


「......무슨 말입니까?」


  목소리에 감정을 넣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나도 신경이 쓰였어, 일요일에 헤어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선배와는 상관없잖아요.」

「응. 그래도 그런 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역시 신경 쓰이잖아?」

「......」

「거기에 농담 같이 말했지만, 너희들의 관계를 동경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뭐라는 거지?

  선배에게 이야기한들, 무언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건 키리바나의 문제다. 저 녀석이 납득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선 안 되는 거였다.

  따라서 선배와도 상관없다.

  그대로 무뚝뚝하게 입을 닫는다. 선배는 아까 전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면 난 관계가 없는 너한테 타이시 군과의 전말을 말했잖아. 그렇다면 히키가야 군도 나한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전 부탁한 게 아닌데요.」

「그래도 한 번은 한 번이지?」


  마침 선배가 말을 다 꺼낸 것과 동시에 교사에 답답한 벨이 울린다.

  벨 소리는 운동장에서 교사 전체를 왔다갔다하며, 교사와 땅을 살짝 진동시켜서 학생들의 다리를 각자의 교실로 가게 했다.

  그 소리도 조금 전까지의 소리와 뒤섞여,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어쩐지 나른함이 섞인 바람이 뺨을 두드리며,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선배, 사람 좋다는 말 듣지 않아요?」

「후후, 잘 들어.」


  교내의 소란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작아져간다. 새가 지저귀는 듯한 고요함이 주위를 감싼다.

  5교시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선배는 전혀 교실에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다리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히키가야 군, 교실에 안 가도 돼?」

「선배야말로 괜찮아요?」

「난 우등생이니까. 한 번 정도 수업에 빠져도 문제없어.」

「그래요? 저는 다음 수업이 생각 안 나서요. 그래서 그런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하러 가는 건 미안하니 게으름 피우기로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 벨이 울렸다.


「수업 시작됐네.」

「그러네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가하니,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실 수 있어요?」

「응, 좋아.」


  햇볕도 없는데 오후의 공기는 따뜻해서, 마음을 놓으면 눈꺼풀이 가라앉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이후에 하는 말은 분명 잠꼬대 같은 거다. 특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입에서 흘러넘치는 이야기일 뿐.


「별일 아니에요. 그대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제멋대로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했을 뿐이에요.」

「......그건 그 카페에서 얘기하던 계속?」

「그래요.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멋대로 걱정한 끝에 상대방을 부정했을 뿐이에요.」


  나는 크게 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말로 꺼내보니 가슴 속이 슥 가벼워진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감정이나 마음에는 질량이나 경계선은 없지만, 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 근처에 있는 걸까.

  그건 손대면 쉬게 변질돼버리는 약한 것이라, 누군가가 토해낸 것을 자신 안에 넣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바뀌고 만다.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누군가와 같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해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히키가야 군은 정말로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네.」


  같은 장소에 있는 선배는 차분히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그렇게 됩니까?」

「오히려, 그 외에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 거야?」

「아니 봐요, 키리바나에게 멋대로 내 이상을 강요했다, 같은 식으로」

「그건 연애감정인지 다른 것인지는 둘째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귀를 곱게 매만지는 듯한 선배의 목소리는 상냥해서, 자장가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니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기에 더욱, 상대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게 돼.」

「그렇지 않아요. 이놈도 저놈도 우정을 강요합니다. 우리들과는 다른 누군가를 부정하고 있어요. 그건 전부 호의에서 오는 건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려운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즐겁잖아. 러브&피스처럼」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 이즈에 선배는 웃는 얼굴로 피스 자세를 취했다.

  너무나 경망스럽고, 적당하게 말해서 미소가 흘러넘치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달아서 녹아내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들 전부가 에고이스트가 되잖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상을 강요하고, 바라기 때문에 엇갈린다. 자기만족을 서로 주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비극적이다.


「그래도 되잖아. 싸우면 사과하면 되잖아. 그렇게 엇갈리면서 상대 안의 내가 느껴지는 게 정말로 기뻐. 타인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돼서는, 그런 건 절대로 재미없을 거야.」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어떤 교실에서 높고 낮은 소리가 뒤섞여 새어나온다. 그 소리는 우리들밖에 없는 이곳에도 살짝 닿아, 우리들에게 부딪혀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누구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바로 가까운 곳에 몇 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도 관련되지 않고, 느껴지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 멀다.

  구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태양이 몹시 눈부셔서 손을 뻗어 가린다.


「......선배」

「응?」


  계속된 말은 농담 같은 식으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저와 사귀어 주실 수 있나요?」

「......좋아. 그래도 나, 바람이나 양다리는 용서 못하니까. 그보다 나 말고 좋아하는 애가 있는 시점에서 아웃」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만둘게요. 벌 받는 건 싫어서.」

「그래? 유감이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얘기했다. 결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넘칠 정도로는 즐거웠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간 뒤, 유이가하마에게 5교시 수업이 현국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담당은 물론 히라츠카 선생님이다.

  ......그건, 떠올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