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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Ⅲ ~어렴풋한 마음~



  또 계절이 몇 번인가 돌아, 저와 코마치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처음 입은 교복은 코마치가 입으면 매우 귀여운데, 제가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왠지 별로 안 어울리는 것이 다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새 옷을 입었을 때에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눈 익은 가로수 길도 약간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들보다 2년 빨리 중학교에 올라간 하치만 오빠도, 히키가야가에 신세졌을 때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여,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른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느낀 사람은 저 만이 아닌 듯, 반 여자애들이 하는 이야기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예전의 연애이야기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끝났었지만, 그것이 누구와 사귄다든지, 그 애를 노린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자애들 몇 명은 이미 애인이 생겼다거나, 첫 데이트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이들은 아직 애인이 없는 아이에 비해 세련되어, 스커트 자락을 접는 방법이나 손톱 손질이나, 그런 세세한 부분을 꾸미는 차이가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어제 月9에 나온 사람, 진짜 멋있었지~.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 기억 못하는구나.....」

「왜냐면 처음 본 사람이었으니까. 그 있잖아, 안경 쓰고 엄청 본좌 느낌인 사람」

「아~ 그 사람. ......나도 이름 몰라」

「아카네도잖아! ......그래서, 어때?」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새콤달콤한 분위기에 조금 주눅들면서도, 연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때때로 저에게 연애상담을 해오는 일이 있었고, 그런 경우는 왠지 모르게 그 애들이 좋아하는 남자애를 알리는 의도를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애들이 마음에 둔 남자애에게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고, 그런 하찮은 이야기에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난 그런 타입은 별로 취미가 아닐지도」

「흐~응. 그럼, 어떤 게 취미? 될 수 있으면 연예인으로 말해줘」


  유행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몇 명 정도 들자,


「아~」


  납득했는지 못했는지 잘 모를 대답을 하고는 위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봅니다.


「......아카네는, 취미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츤데레, 같은 느낌? 갑자기 다정하게 대해지고 싶은 느낌이지?」

「듣고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항상 마주치는데 묘하게 성실하고, 요령이 좋지 못하며, 그래도 역시 서투르게나마 다정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 안 해. 난 자꾸자꾸 끌어 주는 사람을 좋아해.」


  그 때 예비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 이 이야기는 중단됩니다.

  그 뒤의 수업, 일차 함수의 공식을 건성으로 들으며, 방금 전 말한 취향에 딱 한 사람만 들어맞았던 것을 깨닫고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여자애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처럼, 남자애들도 점차 변해갔습니다.

  초등학교까지는 평범하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리를 벌리거나, 반대로 이상하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특히 후자는,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하긴 했지만 그것뿐입니다.

  교환했을 때 「한가하면 메일해」라는 말을 듣지만,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는 반 친구, 게다가 별반 흥미 없는 남자와 메일로 이야기할 내용 같은 건 없습니다.

  그 결과 제가 보낸 적이 없는, 거의 의미 없는 이름이 연락처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벌렸는데도 관계없이, 그런데도 갑자기 고백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게 고백한 사람들과는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고, 이따금 이야기를 하는 관계였습니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교류 중에서, 제게 호의를 품을만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어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며 대답하는데 얼마간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결국 그들과 함께 지내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전부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마치가 위원회에서 늦어져서 혼자 돌아가던 중에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돌아가던 하치만 오빠를 발견했습니다.


「하치만 오빠, 혼자인가요?」


  차도를 건너, 반대편 보도에 가서 말을 걸자, 하치만 오빠는 주위를 힐끔 둘러본 뒤 입을 열었습니다.


「뭐야, 키리바나인가. 혼자다, 오히려 자진해서 혼자 있다고 해도 돼.」

「아니요, 그게. 저한테는 거의 인사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기보다도 하치만 오빠의 경우, 혼자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누군가와 같이 있는 편이 놀랍니다.

  옆에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하자, 하치만 오빠가 걷는 속도를 늦춰주었고, 저는 하치만 오빠의 그런 배려에 감사하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발을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둘이 돌아가는 건 처음으로, 석양이 비치는 장면과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제 일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코마치는 어떻게 된 거야? 항상 같이 돌아갔잖아.」

「미화위원회 활동 때문에, 학교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 같아요.」

「하아... 그 녀석도 귀찮은 위원회에 들어갔구나.」


  저도 코마치도 동아리에는 안 들어가서, 수업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시간은 있지만 이따금 위원회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중학교는 전원이 어떤 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저는 교과 위원이라 방과 후까지 묶일 일은 없지만, 코마치는 불운하게도 유지관리를 하는 위원회에 들어간 것 같아,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네요. 오랜만에 귀찮은 일이 왔다고 했었어요.」

「......너희들, 요령이 좋으니까 말이지」

「저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아요. 코마치와 같이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그럴지도」


  그 상태로 코마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하치만 오빠는 누군가가 코마치를 노리는 게 아닌지 제게 자꾸 물었지만, 저는 지금도 다른 반이라 코마치 반에서 누가 노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마치에게 남자애 얘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는 것을 전하자, 하치만 오빠는 노골적으로 안도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큰 길을 빠져나가 좁은, 보도가 없는 길에 들어갑니다. 정면에서 차가 와서 피하려고 옆길로 갔을 때, 스치듯이 하치만 오빠의 팔에 부딪쳤습니다.


「......미안해요.」

「그래」


  하치만 오빠와 맞닿은 부분에 단번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이야기를 할 뿐인데 굉장히 즐겁고, 맞닿으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집니다.

  그런 현상을 소녀만화에서 몇 번이나 읽었지만, 제가 가진 감정은 이야기의 등장인물과는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구체적으로 이러니저러니 말할 순 없지만, 여기저기서 감정이입을 못해서 아무래도 자신의 감정에 자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해요.」

「뭐가?」


  약간 주저하면서, 이 불명확한 마음에 대해 하치만 오빠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에는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연애 이야기만 해요. 사귀고 싶다든지, 그런 느낌으로요. 어째서 그렇게 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요?」

「그거야, 단순한 발돋움이겠지. 속은 아직도 아이이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익숙하지 못한 짓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도 그런 동경만으로, 일부러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불러서, 갑자기 사귀고 싶다고 고백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매우 구체적이구만.」

「일반론이에요. 일반론.」


  딱히 일부러 다음 날에 소문이 될 만한 상황에서, 고백한 것이 불만인 건 아닙니다.

  아니, 실제로 소문이 나서 난처했지만요......


「......뭐 상관없나. 그거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좋아하니까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 말고는 표현하거나 이어질 방법이 없으니까 애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뿐이야.」

「그건, 하치만 오빠도 그래요?」

「......일반론이야.」

「......흐음, 그런 건가요?」


  그 하치만 오빠의 말로, 자신의 감정을 눈치 챕니다.

  아마도 필시, 일반적인 의미의 『좋아해』라는 것은,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상대에게 뭔가를 바라고, 상대에게 뭔가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귀려고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말해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이성으로서 하치만 오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대로, 지금도 심장은 조금 빨리 뛰고 있고, 그러면서 꽈악 하고 조여옵니다.

  애인이 되면 분명 즐겁고, 손을 잡으면 두근두근하고, 키스를 하면 매우 달콤한 맛이 나겠지요.

  하지만 저는 애인이 되고 싶은 것도, 손을 잡고 싶은 것도, 키스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호의를 가졌을 뿐입니다.

  이 마음을 전하려고도, 이루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야. 저, 할머니와 별로 다를 바 없잖아요.

  할머니만큼 상태가 심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대로 감정을 향할 수도 있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어서, 별로 이어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


  하치만 오빠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겁니다.


「아니요, 별 것 아닌 의문에 납득이 가서요.」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고, 깊은 음영이 곳곳에 퍼뜨려지면서, 태양은 가라앉아 밤하늘이 얼굴을 내밀려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가 손을 잡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우리들과 엇갈렸습니다.

  정말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하치만 오빠는, 역시 손을 내밀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


  대강 할아버지의 49제 법요가 끝났을 무렵부터일까요, 가끔 딱 시간이 비었을 때 성묘하러 가는 게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습관, 이라고 해도 3개월에 한 번일 때도 있고, 2주일 때도 있어서, 엄밀한 의미로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다니고는 있었습니다.

  오봉(お盆)이나 삼회기(三回忌) 같은 의식은 아무래도 서투릅니다. 정해진 것처럼 죽은 사람에 대해 떠올리면, 일상의 정보 안에 파묻혀, 분명 꼭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성묘라고 해도 큰일은 하지 않습니다. 묘를 청소하고, 꽃을 놓고, 향을 올리고, 사라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입니다.

  이름 밖에 모르는 남동생에게 사과하고,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근황을 보고하고, 얼굴과 이름 밖에 모르는 할머니에게 푸념이나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고인에게 푸념하는 건 잘못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할머니만큼은 아무래도 타인처럼 생각되지 않아서, 무심코 입이 가벼워지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도 전했습니다.

  무덤 속에서 주무시는 할아버지는 분명 기뻐해주시겠지요. 할머니는 무관심한 표정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동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로 의미 없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왠지 이 세 명에게는 제대로 전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