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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6 ~달빛과 태양~




  하늘에 퍼진 짙은 감색 캠퍼스 한쪽 구석에, 꼭두서니 빛이 고요히 몸을 옆으로 기대어 살짝 존재감을 준다.

  아직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별을 찾아낼 수 없긴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고운 얼굴을 보여줘서, 거리에 밤의 소식을 알려주리라.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는,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그 뒤에 적당히 윈도우 쇼핑을 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데이트는 끝났다. 정말 싱거웠지만, 첫 데이트니까 이 정도면 될 거다. 다만 둘은 타이시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어딘가로 갔다. 아마 거기서 고백이라도 하는 거겠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타이시가 걱정됐지만, 선배에게 손대지 말라고 찔러뒀으니 우선 실수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낮과는 반대로 한산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키리바나는 침묵에는 익숙하다. 원래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 자체에 익숙해서 상대가 코마치나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라 해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뭐, 자신해야할 건 아니지만.

  ......따라서 이 가슴 속에 걸린 응어리는, 이 침묵과는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저기, 그 카페에 있던 애들과 화해 같은 건 안 해?」

「화해라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저 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정면을 보며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끈질기다는 거 알아요?」


  겨우 나를 향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보고, 내뱉으려고 한 말을 황급히 삼킨다. 말을 되새겨보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적당한 화제라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머리라도 흔들어서 화제를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내 머리답게, 어지간히 일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키리바나는 어이없이 보고 있었지만, 뭔가 납득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치만 오빠는 어째서 친구가 없어요?」

「어이, 왜 그 화제를 고른 거냐」


  화제를 바꾼다 해도, 좀 더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있잖아. 아니, 바꿔준 건 고맙지만.


「아니요, 생각보다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라서요. 하치만 오빠는 눈이 썩은 것과 비뚤어진 성격과 가끔 나오는 글러먹은 발언만 빼면, 얘기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 3개가 거의 대답이잖아.」


  아까 전까지 조용히 있었던 게 바보 같아진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눈을 제외한 얼굴은 갖춰져 있고, 이러니저러니 잘 돌봐주기도 하고, 의외로 다정하기도 하니까, 노력해서 무리한다면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예요?」

「칭찬하는 건지, 깎아내리는 건지 어느 쪽이야......」

「저, 생각보다는 진심으로 묻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키리바나의 얼굴은, 약간 습기 차고 무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띄운 탓에 그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한 번 숨을 쉬고 키리바나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건 당연하잖아. 그렇게 무리해야만 얻는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는 것뿐이야.」


  무리를 하면, 어딘가 터지는 곳이 나타난다.

  참고 노력하면, 계속 참아야만 한다.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언제까지나 남는다.

  처음에는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도, 거짓말이나 기만을 겹겹이 쌓아가는 사이에, 어느덧 따돌림 받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것은 본말전도다.


「그렇군요. 히키가야 오빠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요.」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호칭을 키리바나는 쓴다.


「그렇다면, 왜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게 하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건 오만이에요.」


  키리바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다. 반대 입장이라면, 틀림없이 키리바나와 같은 행동을 했겠지. 하지만,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키리바나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말한다.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순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무리를 해도 균열이 생긴 인간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넓게 가지기를, 틀림없이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슴 속에서 계속 품어왔던 것은 예전부터 쭉 변함없다.


「넌 아까 전 카페에서 외롭지 않다고 말했어. 아무렇지도 않다고도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 키리바나의 말이 허풍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 하치만 오빠도 자주 하지 않아요?」

「아니, 안 해.」


  키리바나의 눈이 치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를 보는 건 처음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대로 말을 계속한다.


「난 혼자가 좋다고 말했지. 외롭지 않다고는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어.」


  혼자 있으면,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실컷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도, 적막감만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이를테면 졸업식 날, 누구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중에 혼자서 교문에서 나올 때.

  이를테면 점심시간, 교사 안에서 울리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

  이를테면 휴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가족 전원이 외출했을 때.

  그럴 때 자신이 돌이 되어, 어디와도 이어지지 않은 느낌이 마음속에서 배어나온다. 자신은 확실히 여기에 있는데, 그 자신조차 윤각이 흐릿해진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덮쳐온다.

  그건 필시 내 마음의 약함이리라. 정말로 고독한 인간은 아니기에, 사소한 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거면 돼.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를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비록 그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계속 바라는 것만은 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잘못됐어.」


  키리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입술을 꽉 다물고 나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어가, 반으로 잘린 달이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면에 비추고 있다.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붙여서 속이고 있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몸에 깊이 스며들어간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

「별로 나쁘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게, 저는 가장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앞을 향하고는, 나를 선도하는 식으로 걸어갔다.

  아스팔트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키리바나를 따라간다. 차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몹시 눈부셔서, 할 수 없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대로 당분간 걸어서, 평소의 갈림길이 나오자 키리바나는 겨우 나를 봤다.

  그 얼굴은 방금 전의 얼음 같은 표정이 아니라, 이따금 혼자 있을 때의 평탄한 표정이어서 마치 방금 전에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키리바나의 뒷모습을 멈춰 선 채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걷는 키리바나는, 흑발을 미지근한 바람에 흩날리며 곧 옅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여러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을 무렵이다.

  초등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뭐,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혼자였으니, 딱히 강조할 것도 없지만.

  주변 애들이 즐겁게 웃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분을 삭이면서 돌아가던 나였지만 어느날 하교하는 집단에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학년과 돌아가는 길이 겹치는 것은 드물다. 사실, 그 무렵에는 코마치가 먼저 돌아가서, 코마치 또래 여자애가 있던 것은 뜻밖이었다.

  그 녀석은 조금도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고, 지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태연한 얼굴로 걸어서, 키가 작은 주제에 나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되고 싶다고, 돌아가는 길이 겹칠 때마다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바보라서 그 녀석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런데도 연하의 게다가 여자애가 자기보다도 더 폼을 잡는다는 착각을 했었다.

  결국 그 착각은 내 일방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이동수업이 있어서 하급생 층에서 걷고 있는데 그 녀석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하교할 때와는 돌변해서 얼굴이 풀어지고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웃는 그 녀석을 보고 엄청 낙담했던 것을 기억한다.

  평범하게 친구가 있는 녀석이 혼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폼을 못 잡아서 나한테는 친구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고, 하지만 역시 대답은 나오지 않아서 그 날 돌아가는 길에 과감히 본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던 중, 근처에 나와 그 녀석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나서 말을 걸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 녀석은 일단 주위를 두러보고,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을 확인하고는 머뭇머뭇하며 대답한다.


『......네, 외롭지 않아요.』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모두들하고 즐겁게 있었지? 그래도 지금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이 쉬는 시간이나 친구의 유무까지 알고 있었으니,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잠깐 간격을 두고 대답을 생각했지만, 바로 입을 움직여주었다.


『원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서요. 모두들하고 같이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 뿐. 없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분명 슬픈 삶의 방식이라고, 아이이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아무도 없게 될 듯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 녀석은 그걸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이틀 후 나는 그 녀석에게 코마치를 소개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으면 해서.

  ......그것이 키리바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첫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