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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Ⅰ ~미래의 자취~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서 조금 지났을 무렵, 학교 숙제로 미래의 꿈에 대한 작문이 나왔습니다.
  자신이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각자 조사해서, 직업과 관련된 미래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제출기한이 한 달이나 되는 초등학생 숙제치고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다른 반이었던 코마치도 같은 숙제를 받았던 것을 보면, 학년 공통으로 했던 것이겠지요.

  반 애들은, 남자애들은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를 소재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반대로 여자애들에게 들어보면 꽃가게나 아이돌 같은 것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땠냐면, 이렇다 할 생각이 없어 조금 난처해서 히키가야가에 놀러갔을 때, 참고할 겸 코마치에게 물어봤습니다.


「코마치는 뭐라고 쓸 거야?」

「아직 특별한 건 안 떠오르는데. ..앗, 오빠의 신부라든지? 코마치한테는 포인트 높을지도」

「그걸로 기뻐해주는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그러는 아카네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말이 막힙니다.

  저는 어떠냐면 탈 없이 살 수 있는 금전과 환경이 있다면 뭐든지 좋고, 그렇게 되면 후보는 셀 수 없을 정도가 되겠네요.


「......공무원이라든지?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 같고, 안정적이라고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어.」

「아카네, 오빠한테 이상한 영향을 받았네.」


  그 뒤 코마치와 몇 개 정도의 안을 냈습니다. 케이크 상점원에 여성 옷이나 장신구 전문 점원, 디자이너에 모델 등등. 각각의 분야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하려고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되고 싶을까 생각해봐도, 나오는 것은 아프거나 괴로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뿐, 그건 미래의 꿈이라기보다는 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오빠는 이런 숙제 나온 적 있어?」


  코마치가 근처 소파에 파묻혀서 게임하는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걸 했었지......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잠시 뒤 거실에 내려와서는, 조금 오래된 원고지를 우리들 앞에 펼쳤습니다.

  의외로 꼼꼼하게 쓰인 글자를 좇아갔는데, 뜻밖의 말이 원고지 위에 춤추고 있었습니다.


「심벌즈 연주자...인가요......? 의외로 멋진 꿈이군요.」

「아니 아카네, 좀만 더 읽어봐.」


  코마치에게 재촉 받아 더 읽어보니, 심벌즈 연주자는 40분 이상 있는 연주 중에, 한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렇게나 비용대비 효과가 높고, 이 이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은 없다는 것도.


「............」


  말없이 원고지를 작게 접어 히키가야 오빠에게 되돌려줍니다.

  조금 전까지 약간은 멋지게 보이던 히키가야 오빠의 눈동자가, 왠지 갑자기 썩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할까 그렇게 멋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우선 전 세계의 심벌즈 연주자에게 사과하세요.」


  그나저나 심벌즈 연주자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직업일까요? 확실히 타악기 연주자로서 일괄 취급돼서 의외로 하는 일이 많다고 TV에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담임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지. 그렇다고 할까 오케스트라 정원의 엄격함을 끝없이 주입받았다.」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며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습니다.

  애초에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던 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머리를 싸안으며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전혀 모릅니다. 미래에 이렇다 할 희망도 전망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할아버지가 몸 상태가 나빠져서 근처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따금 혼자 반상회 주최를 하러 참석할 정도로는 건강해 보였지만, 근래에 감기에 걸려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아서 병원에 가봤는데, 만일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갔습니다.

  병문안, 이라고는 해도 병세가 심한 건 아니어서 생활품을 가져가는 김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호사를 소재로 삼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할아버지에게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소독액과 건조한 피부 냄새가 건물 전체에 떠도는 병원은, 담황색 벽지와 밝은 녹색 바닥재가 곱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간호사의 제복도 순백이 아니라 옅은 분홍색이 쓰여, 거기서 처음으로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 모든 간호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유한 공간은, 나쁘게 말하면 활력이 없어서, 몇 년 전에 가족과 같이 간 가을 숲이 연상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실은 독실로, 큰 침대와 작은 찬장, 그것과 TV밖에 없었습니다. TV도 틀지 않아서인지, 볕이 잘 들어 따뜻한 병실에는 복도의 이야기 소리나 운반용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가 조금 들립니다.


「아버지, 몸 상태는 어때요?」

「열은 안 내려서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아무튼, 건강한 편이다. 멋대로 움직이면 혼나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지루하고 갑갑하지.」

「그건 참아주세요. 몇 권 정도 읽을거리를 가져왔으니」

「그건 사쿠야에게 들었다. 『어차피 집에서도 책밖에 안 읽으니 그 정도는 참으세요.』라고. ......그 녀석도 나와 많이 닮았지」


  사쿠야라는 분은 저의 고모입니다.

  벌써 결혼해서 가정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병실에 와도 거의 잡담하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요.

  다만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던 할아버지였지만, 심심풀이로는 마침 적당한 것 같았는지, 제 사촌자매에 대해 고모에게 들은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잡담이 시작되자 저는 할 일이 없어 따분해져서, 별 수 없이 다리를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창 밖에서는 하늘 전체에 퍼진 청색에 비행기운이 한 줄기만 뻗어 있었습니다.


「......잠시 미안한데, 아카네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게 해주지 않으련?」


  결국 싫증나서 근처에 있는 휴게실에 가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섞여 있던 것을 느꼈는지


「휴게실에 있을 테니, 끝나면 부르렴.」이라고 말하고 병실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조금 곤혹해하며, 걸상을 움직이고 할아버지의 침대로 다가갑니다. 매우 청결감이 있는 병실은 아무 자극도 없다고 할 수 있어서 평소 건강했던 할아버지도 어딘가 여위어, 존재가 조금 공허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눈부신 것을 보듯이 쓱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저를 위에서 아래까지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아카네는 정말로 할머니를 닮았구나.」

「할머니? 고모가 아니고?」


  어릴 적부터 고모를 닮았다고는 자주 들었습니다만, 할머니와 비교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 친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안에서의 친할머니는 어딘가 머릿속에서 빠져있어서, 그 사람이 있었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사쿠야의 외모는 모친과 닮았단다. 아무튼, 성격은 나를 닮았지만. ......하지만 아카네는 성격까지 꼭 닮았어.」

「......어떤 점이?」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정말로 비슷해. 웃는 모습은 키누에를 닮았지만 사그라들었을 때의 표정은 쏙 빼닮았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지금부터 들을 얘기는, 제가 접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들고. 모처럼 머리 한 구석에 쫓아낸 것이, 한 번 더 얼굴을 들여다보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뭔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편치 않으면서도 결국 의자에 다시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별로 붙임성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으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어.」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눈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듯이 창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건 맞선 때였는데, 그야말로 인형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어. ......정말 한 눈에 반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옛날 성으로 사이엔 사츠키라는 이름에, 나름대로 상당한 가문 출신이었던 것.

  할아버지와는 결혼을 전제한 맞선에, 처음 만난 그 날 교제하기 시작한 것.

  할머니의 생일에 비녀를 보냈더니, 매우 미안한 듯이 받고 다음 데이트 때 착용한 것.

  저와 많이 닮은 사람에 대해 듣는 것은 아무래도 초조하고, 게다가 할아버지가 그리운 듯이 말해서 멈출 수도 없어서, 부끄러운 듯한 아닌 듯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역시 저와 매우 비슷해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 할머니의 행동에 공감하고, 저도 반드시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이다,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아름답게 웃어주는데, 혼자 있을 때 사츠키는 몹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단다.」


  이따금 할아버지가 빨리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혼자 멍하니 있는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 표정은 고독을 견디는 것도, 공상에 빠지는 것도, 추억에 잠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츠키의 그런 표정이 무서웠다. 마치 아무도 필요 없다는 듯이 사츠키가 배회하고, 사츠키의 시야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았지. 언젠가 이 생활에 질리면, 어디론가 홱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할아버지는 그런 일을 무서워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밝은 오후 햇볕 아래서 낮잠을 자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투명한 빛을 뺨에 받아, 촉촉하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베개로 삼는 것처럼 자는 할머니의 모습은 놀랄 만큼 덧없어서, 손대면 사라져버릴 거라 착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지. 사츠키의 삶의 방식은 쉽게 혼자가 되어, 곧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친한 사람에게 간호받는 일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우 외로운 인생이야.」


  분명 그렇겠지요.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게 됩니다. 확실히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러니까요.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으려고 했어. 한 번 맹세한 말을 반복하고,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혼자 있어도 뭔가 열심히 해줬으면 해서 책을 많이 샀지. ......아무튼, 사츠키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 댁의 서재에 늘어 놓인 많은 책. 독서가라고 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 할아버지가, 저만한 책을 갖춘 이유는, 전부 할머니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실이 답답할 정도로 제 가슴에 여운을 드리웁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떻게 됐어?」


  혹시 할머니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면, 분명 제 성격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고쳐질 거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몰라.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고, 같이 있으면 사츠키는 확실히 웃어주었지. 하지만 마음속은 읽을 수 없어. ......그래도, 아카네에게 전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금 야윈 할아버지의 손은, 뼈가 약간 떠올라서 울퉁불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을 치우고 나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노인이 어딘가 그리워하는 웃음이 아니고, 청년처럼 상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츠키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단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둘이서 어딘가 외출하면 편안해졌어. 혹시 사츠키는 끝까지 고독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츠키와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츠키도 아카네도,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아카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정하고, 착한 아이야.」


  할아버지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누군가를 확실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아이란다. 그러니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말로 해주렴.」


  그렇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낮잠을 잔다며 잠든 할아버지를 두고, 휴게실로 향합니다. 할아버지를 일으키는 것도 미안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 어머니가, 「매우 길게 얘기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했니?」라고 물어서,


「응, 할머니랑 나에 대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