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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등학교 편 전편

 

 

 

 ◆

 

 

강렬한 열기, 비릿한 혈액 냄새가 가득한 좁은 텐트 속, 나는 거친 호흡을 반복하면서, 두께 0.23mm의 라텍스제 장갑에 싸인 손끝을 계속 움직인다.

새하얀 시트로 튀는 선명한 빨강, 눈앞의 수술대 옆에 서 있는 소년의 몸. 그 육체는 파삭파삭 야위어 뼈가 드러나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 피부에 윤기가 없고 마치 노인처럼 보인다. 가혹한 노동과,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침범되고 있는 이 나라의 아이들.

하지만...... 그 몸 속에서 두근두근 맥박 치는 피만은, 인종, 국적 같은 것과 관계없이, 화상 입을 정도로 뜨겁다.

 

 

루프, 그리고 혈관 겸자를, 다음에 마취 준비, 2-0으로

 

Dr. 아키라! 이쪽을, *Blutdruck<혈압>저하! Pulse<맥박>미약입니다.

 

Blutdruck : 독일어로 혈압

 

 

바소프레신 40U투여! 이쪽을 봉합 후 바로 간다. 수혈은 어느 정도 하고 있어?

 

 

여러 언어가 날아다니는 공간 속에서,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땀을 닦으며, 필사적으로 양손과 뇌를 계속 움직인다.

에어컨 같은 건 전혀 효과가 없고, 몇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이 좁은 텐트 속에서, 나는 4시간 정도 전부터 계속 지시를 내리고, 진료를 반복하고, 차례차례로 옮겨져 들어오는 환자의 오퍼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니, 수술<오퍼>......같은 것이라 부를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단지, 필사적으로 피를 멈추고, 심장을 움직이게 하고, 호흡을 확보할 뿐인 전송대 작업.

백의 아래에 입은 옷은 트렁크스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서, 바지를 통해 마루까지 땀이 방울져 떨어져간다. 지나친 더위에 쉬지 않고 수분을 보급하면서, 단지 끝없이 손을 계속 움직인다.

 

 

Dr.-! 혈압 회복됐습니다..., 총상부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지혈효과가 없습니다! , 어떻게 해야!?

 

......좋아, 이쪽은 끝났다. 바로 간다! 괜찮아, 세리실. 우선 침착하고 시야확보를. 베버락, 그 애를 내보내고 다음 환자를 들인다.

 

 

지금부터 2년 전의 나와 같은 정도로 패닉에 빠진,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의사, 세리실에게 지시를 퍼붓고 보조 스탭에게도 보충을 부탁한다. 마치 전장과 같은 소란함. 하지만, 옆의 텐트에서도 동료 닥터들이 필사적으로 구명을 하고 있다. 내 팀이 발을 늦출 순 없다.

――지금부터 반나절 정도 전, 의료 캠프를 설치하고 있는 거리의 학교 근처에서, 갑자기 폭동이 일어났다. 그것을 진압하려는 군대와 반발하는 민중의 소규모 전투는, 평소의 불만을 불씨로 눈 깜짝할 사이에 큰 소란이 된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이웃나라가 계속 내전을 하던 탓도 있어서, 놀랍게도 일반 시민이 간단히 소총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호신용 권총 같은 게 아닌, 군대에서 쓰이는 매우 강력한 병기.

AK-47이라는 이름의 자동소총을 서로 손에 넣은 군대와 민중은, 시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자비 없는 총격전을 시작하고 말았다. 거기에 말려들어가 버린 근처 학교 학생들.

결국, 군의 전차나 헬기가 출동해 진압을 실시했고, 그 뒤로 약 30, 반 지옥화한 듯이 피투성이가 된 환경에서, 우리들 NGO는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쪽이 나쁜가? 라든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었나?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위해서는? 이런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할 것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범한 의사로, ――사상, 종교, 빈부, 체제, 같은 것은 전부 상관없다. 단지 사라질 것 같은 생명을 구할 뿐인 존재다. 비록 그것이...... 죽음에 맞서는 헛된 항거였다 해도.

 

 

쿠퍼, 그리고 여기는 의식 레벨 저하...... 삽관 준비! ――! 세리실 침착해, 너의 힘이 필요해! 기도확보를

 

「ㄴ, Dr. 아키라, 미안해요

 

 

금발, 푸른 눈, 잘 갖춰진 섬세한 얼굴...... 드라마 같은 데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백인 여자인 세리실이지만, 그 안색은 이 열기 속에서조차 무서울 정도로 핏기가 사라져 새파래진 상태다. 패닉 일보직전으로 빠듯이 참고 견디는...... 느낌이다.

쉬게 해야 할까? 하고 순간 망설이지만, 그러나 압도적인 일손부족이다, 어떻게든 그녀가 참고 일을 해줘야 한다. 거기에, 이것은 세리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는 연수용 대학 병원은 아니다. 나는 일부러 연달아 지시를 계속 내리며, 그녀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해나간다.

 

 

삽관완료! 젠장, 출혈성 쇼크다. 세리실, 도파민 투여 서둘러!, 알았어?

 

,

 

 

2년 전, 일본의 대학 병원에서 연수의를 하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르고 거친 진단. 아니, 그렇게 안 하면 늦는다.....는 것을 싫을 만큼 몸으로 익혔다. 여기와 일본 같은 선진국의 가장 큰 차이...... 그것은 살아난 뒤의 케어이기 때문이다.

구명 처치 뒤, 일본이면 청결한 환경, 충분한 약, 정기적인 예후 진료, 영양 보급이 당연하며, 그것은 즉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긴급하지 않으면 진료에 시간을 들여 애프터에 대해서 검토하고, 예를 들면 흉터가 남지 않는 수술 선택, 가능한 한 결손이 적은 수술 등을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살아남는 것그것이 전부.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부담을 육체에 줄 수는 없다. 쓸데없이 시간을 들여 육체에 부담을 주면, 그만큼 사망률은 높아진다. 구명 처치 뒤에 충분한 약 투여, 케어 따위는 기대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살아남는 것만을 우선하고, 심플하게 판단을 망설이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빨리.

 

 

봉합종료! 바이탈은 안정됐어? 그러면......

 

미안해요 Dr., 이쪽의 아이, 방금 전 그늘에서 발견됐는데...... 심폐 정지 상태입니다!

 

「――――?!!

 

 

텐트 입구에서 분주히 옮겨져 들어오는 새로운 소년. 그 안색, 출혈 부위, 창상 상태, 본 순간, 그것은 분명히 늦었다는 것을 안, 알고 만 환자.

 

 

......늦었다. 다음 환자를 들여줘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멈추지 않는 것밖에 없다. 눈앞의 환자를 절대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야말로 더욱, 적어도 그 다음 환자는 구할 수 있게 빨리 움직인다. 만약, 그 다음 환자마저 구할 수 없었다 해도, 더더욱 그 다음 환자는 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는, 그렇게밖에, 사망자에게 보답할 방법이 없다.

 

 

세리실, 행동을 멈추지 마. 시간이 낭비된다.

 

 

텐트 밖에서 분명, 이 소년의 부모는 울 것이다. 힘써보지도 않고 버렸다고, 나를 원망마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팔을 멈출 순 없다, 여기서 주저앉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동요를 손끝에 드러내지 않게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필사적으로 차례차례 옮겨져 들어오는 환자에게 처치를 내려간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NGO에 와서 몇 주가 지났을 때, 리더 세르게프에세 들은 말.

 

 

 ――2년 정도 전에 있었던 일. 오늘처럼 갑자기 분쟁이 일어나, 그 때의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텐트 안에서 우왕좌왕 할 뿐.

그날 밤,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너무도 쉽게 사라지는 아이의 생명, 내 실력의 하찮음, 정신의 한심함에 쇼크를 받아 내 방 침대에서 혼자 계속 구토하면서 울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손발이 뜯긴 초등학생만한 소년이나, 피투성가 된 자기 자식을 꼭 껴안은 모친의 모습이 플래시백되어, 내 마음을 강렬히 박살낸다.

토할 것은 이미 사라져 위액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고열로 의식이 흐릿해진 것처럼 입술은 까칠까칠, 어금니가 딱딱하고 부딪힌다. 온몸에 떨림이 멎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상태인데도, 육체, 정신 모두 한계를 넘었는지, 어느 샌가 꾸벅꾸벅 얕게 자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 이상은 없을 만큼 심한 악몽을 꾸고 깨어난다. 패닉과 자신의 한심함으로 다시 구토가 나서, 침대 옆에 두었던 물통에 얼굴을 숙인 내 등 뒤...... 그것이 천천히 그리고 강력히 문질러졌다.

 

 

「――?!

 

아키라, 나다. 침착하고 심호흡해라. 아니, 무리하게 말하려고 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아.

 

 

큰 손이 규칙적으로 천천히 내 등을 어루만지며, 세르게프의 낮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어째서 내 방에? 이런 의문이 순간 떠오르지만, 끓어오르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통에 얼굴을 박는다.

 

 

자네가 오늘 있었던 일로 자신을 탓하는 것은 마음대로이고, 위로하려고는 생각지 않아. 내가 너의 감정을 이해해줄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확실히 너는 미숙하고, 판단도 늦고 경험도 부족하니까 말이다.

 

 

세월을 겹겹이 쌓은 거대한 바위 같은 세르게프의 낮은 목소리...... 그것이, 내 마음에 스며드는 듯이 울려 퍼졌다. 등을 어루만지는 큰 손의 따스함과 냉철한 말이, 패닉이 날 것 같았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간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아키라...... 자신을 탓할 틈이 있다면, 그 때 어떻게 해야 좋았을까? 그렇게 계속 생각해라. 괴로워서 구토하면서라도 좋아, 어떤 상태면 사람은 살아나지 않고, 반대로 어떤 증례라면 살아나게 할 수 있는지, 이렇게 하나씩 증례를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낸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다. 그것은 의사로서 사는 이상,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야. 좀 더 비참한 일도 많이 있지.

 

 

세르게프의 말로, 다시 머리에 여러 사람의 죽음이 떠오른다. 흉탄이 박혀서 엉망진창 된 내장. 도망치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에게 밟힌 갓난아이. 촉진하는 내 손끝에서, 자꾸만 체온이 사라져, 마치 고무처럼 되어가는 피부의 감촉.

모든 죽음의 영상이 머리에 떠오른다. 자신에 대한 혐오, 무력감, 사는 의미, 존재하는 의미 같은 것이 뭉뚱그려져 뇌를 후벼 판다.

 

 

알겠나 아키라, 우리들 의사는 누구보다도 많이 사람들의 최후를 진찰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사신이 된 것 같은 최악의 기분이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그것을 교재로 다음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경험으로 삼아야만 해. 자신은 무력하다, 한심하다, 불쌍하다고 자신을 탓하며 우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다음 사람을 구하기 위한 양식으로 하는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죽음이 정말로 헛된다. 이해할 수 있겠어?

 

 

세르게프의 조용한 목소리에, 콧물과 눈물을 흘리며, 입술에 위액이 묻은 채인 나는 몇 번이고 끄덕였다. 자신을 탓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지점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된다는.......것을.

 ――솔직히 말하면, 그 때의 나는 리더 세르게프가 한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만 알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 완전히는 모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에 어딘가 구원받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을 탓하고 울며 아우성칠 틈이 있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목표로 하는 것. 나는 지금도, 사람의 죽음과 마주보면서, 계속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

 

 

전신마취를 실시한다. 황산 아트로핀 0.5, 도입 서둘러! 좋아 세리실, 넌 잘하고 있어, 계속 보충 부탁한다.

 

....., , 닥터 아키라. 보충 들어갑니다!

 

 

눈물로 눈이 새빨갛게 붓고, 입술을 깨물며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세리실. 그리고, 내 지시로 움직이는 스탭들.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좀 더 스킬을 갈고 닦는다.

아직도 내게는 경험이 부족하다...... 아니, 분명 의사에게 완전한 경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순간, 그 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빠듯이까지 사람을 구하는 일. 그리고 구할 수 없으면, 그 다음이야말로 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오레)의 기술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사람은 어떻게 죽는다 해도, 분명 헛되지 않는다. 그렇게 믿고 노력해간다고 각오를 정하고 NGO에서의 폭풍 같은 나날을 나는 계속 보낸다.

 

 

 

 

 ◆◆

 

 

 

으으......

 

 

머리맡에 둔 자명종으로 손을 뻗어, 삐삐삐......하고 계속 울리는 전자시계를 두드려 멈췄다. 뭔가...... 또렷한, 마치 현실 같이 생생한 꿈을 꾼 것 같다.

요즘 들어 며칠 간...... 계속 꿈이 나쁘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나, 집에서의 공부시간에, 항상 장기를 뎃생하거나 구명 처치를 이미지 트레이닝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며칠 전 (오레)에게 지식을 물려받은 일이 관계되어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저녁, 꿈속에서 강렬한 체험을 한다......는 이런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꿈을 꿀 때, 뭔가 내 마음에 소중한 경험이 포개져서 충실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라고 해야 할까, 꿈의 내용은 전혀 생각해낼 수 없지만, 자고 일어났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권태감이 있다. 거기에 오늘 꾼 꿈은 한층 하드했던 탓인지, 식은땀에 파자마가 심하게 흠뻑 젖어 있었다.

 

 

우와아...... 어이, 사쿠라. 일어났어? , 그런가......

 

 

2층 침대 상단에서 기지개를 펴면서, 하단에서 자고 있어야 할 소꿉친구에게 얘기했다가 나는 깨닫는다.

오늘은 금요일...... 즉 내일은 휴일로 (보쿠)(오레)가 이어진 이상한 밤 이후로 며칠이 지나 겨우 첫 주말이 내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금요일이니까, 사쿠라는 거기 있으려나

 

 

포트리......라고 중얼거리며, 침대 계단을 내려간다. 매주 주말이 되면 소꿉친구는 친가에서 보내는 것이 일과. 사쿠라의 아버지――어떤 공장에 단신부임하고 있는 미소가 매우 따뜻한 분――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라는 근무 형태로, 매주 금요일이 되면 돌아오시기 때문이다.

사쿠라의 어머니인 마마와는 대학교 동기였다는 것 같고, 우연히 도쿄에 있는 바에서 재회해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 바로 사쿠라가 태어나게 되어, 친가가 있는 이 마을에 자택 겸 바를 지었다. 뭐라던가 마마가 너무 심심한 게 싫다고 떼를 썼댔나......

어쨌든, 소꿉친구의 집에서는 주말, 부모와 자식끼리 세 명이서 보내는 것이 일과. , 나도 어머니에게 급환이 들어갔을 때는, 평소와는 반대로 초대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가, 방과후 어떻게 할까)

 

 

척척 등교 준비를 하면서, 나는 오늘 방과 후에 할 일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매 주말은 소란스런 사쿠라가 없어서, 자택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나날이었다. 바로 귀가하고 나서, 식사와 목욕 이외 시간은 오로지 참고서에 달라붙을 뿐인 날들.

하지만, 지금의 (보쿠)에게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뎃생을 계속할까? 아니면 사쿠라의 집에 실례할까? 그것도 좋다...... 하지만.

 

 

......도서관, 가볼까

 

 

요 며칠, 읍립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이유로는, 학교 도서관에 절대로 두지 않을법한, 고도의 의학서가 장서되어 있을 테니까. 대량의 책을 기증한 신에자키가는 유서 깊은 의사 가문이고, 다양한 의학서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가슴이 크게 뛴다.

그래...... 그것이 독일어나 영어로 쓰여 있어도, 지금의 나라면 문제없이 읽을 수 있다. 게다가, 평소라면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사쿠라에게 들켜서, 엄청나게 의심받겠지만, 오늘은 형편 좋게도 소꿉친구는 바로 귀가할 것이다.

즉 혼자서, 마음껏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 그렇게 하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은 생각 같아 보인다. 특히 사쿠라와는 며칠 전, ......움찔움찔놀이를 한 밤 이래로, 나는 왠지 부끄러워서――사쿠라는 그렇다 생각하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어딘가 소악마 같이, 적극적으로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얼굴을 맞대기가 괴롭다.

거기에 소꿉친구의 부모님에게 미안한, 주눅 드는 것 같은 이상한 마음도 있었다. 부글부글한 듯한 이유 모를 이상한 감정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

 

 

좋아,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왕진하러 나가서 아무도 없는 집. 하지만 활기차게 인사하면서, 나는 오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선 사쿠라를 맞이하러 가서 등교. 점심시간, 방과 후까지 평소대로 보내고, 귀가하고 나서 읍립 도서관에서 혼자 차분히 의학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한 것 치고도 완벽한 주말을 보내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 예측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은 다음에 알게 돼서 엄청 반성하게 되었지만.

 

 

 

 

 

 ◆◆◆

 

 

 

 

바늘방석이라는 것은 속담 세계 안에서만 있지만, 이 말을 생각해 낸 사람은 엄청 괴로웠겠구나......라고, 나는 반, 현실도피를 하듯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무서울 정도의 싸한 정적이 지배하는 읍립 도서관에서, 내 바로 눈앞에 신에자키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선이라는 것에 물리적인 힘이 있었다면, 그녀의 시선은 내 동체를 관통했음이 틀림없다.

당당히 가슴을 펴고, 확실히 별명대로 공주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신에자키 사오리. 새침......한 평소의 단정한 표정으로, 책에 얼굴을 파묻듯이 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늘고 가지런한 눈썹은 왼쪽만 약간 올라가고, 입술은 불쾌한 듯이 단단히 다물어져 있다. 매우 불길한 분위기.

하지만, 내 앞에서 신에자키가 떠날 기색은 없다.

 

 

(......, 어째서, 신에자키가 나를 흘겨보는 거야?)

 

 

무언가, 터무니없이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를 순서대로 생각해간다. 그래...... 도중까지, 학교가 끝날 때까지는 평소대로, 순조로웠다.

 

 

 ――겨우 이번 주 수업이 전부 끝난 방과 후, 반장, 칸나즈키 코이와 내일 토요일에 옆 동네로 쇼핑 갈 약속을 한 뒤, 나는 당초 예정대로 읍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쿠라가 같이 가자구!라고 실컷 불평했지만,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 해도, 내내 녀석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만은 없다.

뾰로통하고 마지못해 집에 돌아가는 사쿠라를 배웅한 뒤, 나는 조금 흥분하면서 개축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오오......

 

 

개축, 증축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은 입구에서 예쁜 사서 분이 미소 짓고,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도서실을 둘러싸는 큰 유리벽이, 외광을 부드럽게 거두어들이듯이 디자인되어 있어서 독서하는데 매우 적합한 밝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풍부하게 장식된 관엽 식물의 초록색이 아름답다, 입구에는 컴퓨터도 있는 2층의 큰 건물. 곳곳에 푹신할 것 같은 소파가 설치되어 느긋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장서도, 여러 큰 책장에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빈틈없이 정리해놔서, 좀 더 빨리 왔으면 했다......고 나는 진심으로 분하게 생각했다.

 

 

그럼

 

 

그래서, 목적인 의학서는......? 하며 넓은 관내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던 나는, 중요한 의학서만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때, 나는 앗.....하고 깨닫는다.

 

(혹시, 폐가서고일지도 몰라)

 

거의 쓰일 일이 없는 책이나 오래된 귀중 서적은, 폐가서고로서 도서관 창고에 보관되는 경우가 있다......, 도서위원인 사쿠라에게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의학서는 보통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고, 신에자키가가 기증한 물건이라면 희소하고 귀중한 책도 많겠지.

하지만 여기는 읍립 도서관이고, 사서 분에게 말하면 적당히 읽게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는 입구에서 미소 짓던 예쁜 누나에게 부탁했다.

 

 

그럼, 여기에 이름과 나이, 학년,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써주겠니? 이용자 카드를 만들면 부를 테니까, 잠깐 기다려줘

 

,

 

 

누나에게 들은 대로 필요한 사항을 쓴 뒤, 근처에 있는 책을 빼서 의자에 앉는다. 달그락달그락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리듬 좋은 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며, 느긋하게 안정감이 좋은 의자의 느낌을 만끽한다.

이런 느긋한 방과 후를 보내는 방식도 좋겠다, 라고 나는 책에 멍하니 시선을 자유롭게 두며 생각한다. 요즘, 꿈으로 굉장히 피곤했고, 사쿠라는 왠지 심술궂은 소악마 같아서 가슴이 이상한 느낌이고, 코이는 웃을 뿐이고...... 왠지 엄청...... 내 기분이 느슨해지려던 순간.

 

 

 

어머......히이라기 군? 네가 여기에 오다니 처음이네. 타처의 수재 씨가, 무슨 볼일이니?

 

「――, 신에자키? 아니, 별로

 

 

뒤에서 갑자기 속삭이는 소리. 그 작은 소리가, 원래 요염함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소녀......그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미모. 만난 때와 변함없는 블레이저 코트를 걸친 교복에 큰 가슴 앞을 장식한 붉은 리본. 짧은 스커트에서 늘씬하게 뻗어나온 다리는 검은 타이츠에 싸여, 허리까지 닿는 흑발은 젖은 듯이 요염. 뭐라고 할까...... 강렬한 임팩트다.

 

 

........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말을 날리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시시한 듯이, 어딘가 화내는 듯한 표정으로, 긴 다리를 꼰 포즈인 채, 빤히...... 나를 계속 흘겨본다.

내 입장에서는, 원래 도서관에서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특히 신에자키에게 할 말도 없다. 빨리 카드를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바라며, 그 자리에 있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지 않는다. 뒤에서 아까 전부터 탈칵탈칵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만, 그대로 초조한 시간이 지나갈 뿐.

 ――그것이 지금의 상황으로, 아까 전까지의 온화한 기분이 거짓말처럼, 매우 지내기가 불편했다.

 

 

............나한테 부탁하세요

 

? , 뭔가 말했어?

 

 

몇 분간의 침묵을 깨고, 뭔가 투덜투덜......이라는 느낌으로 신에자키가 입을 열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불합리한 일에, 화난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빤히...... 보는 날카로운 시선, 빨개진 뺨.

 

 

정말, 됐어요! 의료 관련 책을 보고 싶은 거지? 여기야. 거의 파파의 사유물로, 의학서만은 기증이 아니고 신에자키가가 마을에 대출하는 형식이야. ,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와, 아아, 그리고 이게 너의 카드니까. 내가 받아줬어. , 감사해두세요.

 

!? 에엑?

 

 

툭하는 느낌으로 간단히 던져진 카드. 그것을 당황해서 받은 나는, 신에자키의 기세에 밀려서,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런 나를 배웅하듯이,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서 누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할 뿐.....하지만, 신에자키가 들어간 곳에 다리를, 발을 디딘 순간......

 

 

우와아...... 대단해......

 

어때?

 

 

도서관 안, 증축된 부분의 더 숨겨진 장소에 있던 창고. 거기에는 벽 한 쪽에 여러 의학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쾌적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공기조절 설비가 완비되어 더 안쪽은 푹신한 소파나 책상, 컴퓨터나 복사기까지 있다.

놓인 책들은 오래된 것부터, 새로운 것까지 여러 가지였지만, 모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았다.

 

 

사실은 말야, 마마가 버린다고 했는데...... 버리면 의사 되길 그만둔다고 말해서...... 여기에 만들게 된 거야.

 

굉장해...... 이렇게 많이. 신에자키의 아버지는, 엄청 훌륭한 의사였어. , 봐 여기, 이렇게 너덜너덜하지만, 굉장히 신중하게 고쳐 써넣은 글자가......

 

「――――!? , 당연하잖니? , 내 파파인 걸. 실례야, 꺄악

 

 

내 등골에 오싹오싹한 흥분이 쫙 흐른다. 근처에서 뽑은 책에는 세세한 부분에 여러 가지 필기가 있어서, 일찍이 이 책을 쓰던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게 의학에 임했는지 한눈에 알았다.

신에자키의 손목을 잡고 그녀에게 과시하듯이, 이왕에 책을 들여다보고 그 필기를 가리킨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소유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보라고, 여기는 말야......

 

앗 아, , 저기...... 히이라기 군. , 얼굴이, 얼굴이 가까워...... 저기......, 저기......

 

 

오싹오싹한 흥분...... 어머니는 내 앞에서 별로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별로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다른 의사가 공부하던 흔적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공부에 몰두했었던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긍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좀 더 공부해서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강한 결의를 품는다.

 ――그렇게 구원받은 것처럼 느낀 나는,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제 정신을 차리자...... 신에자키의 손목을 잡은 채, 엄청나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우와아아앗, , 죄송합니다!

 

「――――으으으!!

 

 

터무니없이 화내고 있겠지.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새빨개진 신에자키는, 아무 말도 없이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 탁탁하고 멀어지는 발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 6초등학교 편 ④】

 

 

 ◆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가방을 놓고,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은 뒤 각자 에이프런을 걸친다. 내가 파란색에 사쿠라는 핑크색, 아담한 자수가 된 같은 무늬 디자인. 1년 정도 전에 같이 산 것으로――나는 속으로, 약간 부끄러워서 입고 싶지 않다. 하지만, 사쿠라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못한다.

아무래도 좋은 농담을 계속 하며, 냉장고에서 소와 돼지고기를 저민 것, 양파, 빵가루, 계란을 꺼내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래, 오늘 밤 메뉴는 햄버거. 메인 셰프로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은 사쿠라이며, 내가 맡은 역은 세세한 폴로와 곁들일 포테이토 샐러드 만들기.

슥슥하고 껍질을 벗긴 뒤, 통통통 리듬 좋게 소꿉친구의 칼이 움직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잘게 썰린 양파가 완성. 어때? 하고 자랑스럽게 없는 가슴을 쑥 내미는 사쿠라.

그리고 따따딱 가스가 점화했다고 생각했더니, 프라이팬이 휙휙 춤추듯이 움직여서, 척하고 양파볶음이 끝난다. 정말 재빨리, 척척 요리를 해가는 그녀. 기쁜 미소에 경쾌한 콧노래마저 들린다. 당황해서 나도 감자를 꼼꼼히 씻고, 완성에 늦지 않게 포테이토 샐러드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햄버거 만들기가 끝났을 무렵, 마침 어머니가 돌아와서 사이좋게 셋이 햄버거를 굽는다. 포동포동한 한편, 맛이 떨어지지 않도록 살짝, 이지만 겉은 바삭하고 촉촉하게. 그 위에 고기가 구워지는 타이밍에 맞춰 사쿠라가 계란 프라이를 만든다.

구운 뒤의 프라이팬에 남은 육즙을 써서 특제 소스를 만든다. 햄버거 위에 둔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 위부터, 쪼륵 그 소스를 듬뿍 얹고, 마무리로 검은 후추를 아주 조금만.

육즙 향기가 감돌아, 모두에게 미소가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곁들임으로 내가 만든 포테이토 샐러드를 접시 옆에 놓아서....... 완성.

샐러드를 만들 때, 신선한 양상추를 썩둑썩둑 크게 자르고, 윤이 나는 싱싱한 오이를 둥글게 썰고, 빨갛게 익은 미니 토마토를 그릇에 가득,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일본식 드레싱을 주방으로 가져온다.

테이블에 부리나케 그릇을 늘어놓는 소꿉친구, 밥그릇에 밥을 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두의 찻잔에 자스민 차를 따르고...... 화목한 가족의 즐거운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바삭하고 향기롭게 구워진 표면에 젓가락을 넣은 순간, 햄버거 안에서 대량의 육즙이 넘쳐흐른다. 후추와 육두구, 데미글라스 소스와 고기 냄새가 한데 섞여, 입 안이 타액으로 가득 찬다. 삼키고 싶어서 안달 난 기분을 참고 녹아내리는 노른자를 충분히 음미하고 난 뒤, 큼직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뜨거운 햄버거에서 입속으로 퍼지는 육즙, 짜릿한 스파이스의 자극, 노른자의 진한 맛, 데미글라스 소스가 절묘하게 고기의 맛을 이끌어내서,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맛있어서 입맛을 다시며, 나는 자신도 잊고 햄버거와 밥을 먹어 치워간다.

 

 

이히힛, 오빠. 맛있지?

 

......

 

 

의기양양하게 미소 짓는 사쿠라. 눈을 가늘게 뜨고, 빙긋하는 느낌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린다. 너무 맛있어서 무심코 끄덕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중간하게 기어오르면 곤란하다. 나는 말없이 젓가락을 움직.........이지만,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내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후훗, 아키라가 먹는 모습..... 상당히 맛있어 하는 것 같네. 이렇~게 귀엽고 요리 잘하고. 후후, 사쿠라 짱과 결혼할 사람은 행복하겠구나. ? 아키라도 그렇게 생각하지?

 

글쎄, 어떠려나? 사쿠라는 외모는 어쨌든...... 성격이 좀. 분명 고생할 거야, 결혼할 사람은

 

, 오빠, 선생님 앞에서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주겠어요? ......, 거기에, 왜 그렇게 남 일처럼............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작게 투덜투덜 중얼대는 사쿠라. 무언가 소꿉친구에게 귀엣말하는 어머니. 나는 맞장구를 치며, 열심히 햄버거를 먹는다.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모두가 젓가락을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얘기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오늘 일, 친구 이야기, 귀가 도중에 피어 있던 꽃의 이름.

그것은, 확실히 말하면 어떻게든 좋을 듯한 내용이지만, 가족이라는 것은, 이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마저 모든 TV프로보다, 음식 맛도 어떤 일류 레스토랑보다 맛있게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온화하게 미소 짓는 어머니, 웃거나 화내거나 대굴대굴 바뀌는 표정이 풍부한 사쿠라, 나는 왠지 이 평범한 시간이 매우 기뻐서, 몇 번이나 소리를 내며 웃는다.

그것은 분명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고, 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상 풍경이라고 (보쿠)는 깊이 생각했다.

 

 

 

 

 

 ◆◆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지막을 고하고...... 식후의 공부 시간이 온다.

내 방에 놓여 있는 2개의 작은 테이블. 거기서 사쿠라와 둘이, 각자의 책상에 참고서를 늘어놓고 공부――예습, 복습――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초등학교 공부는 끝났으니까, 오로지 중학생~고등학생용 참고서를 풀고 있다. 하지만, 역시 너무 간단해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

한숨을 쉬며 참고서를 접고, 약간 떨어진 근처 책상에서 슥슥 노트에 연필로 쓰는 사쿠라를 살짝 본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 담홍색 입술을 약간만 깨물며, 귀여운 얼굴을 찌푸리는 소꿉친구. 가늘고 가지런한 눈썹 사이에 약간의 주름.

사쿠라가 풀고 있는 문제도 초등학교 5학년 레벨을 넘었다. 요즘에는, 내가 4학년만할 때 쓰던 중학교 1학년용 문제집을 풀고 있다. 그녀도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는 거겠지. 공부를 하는 사쿠라에게는, 섣불리 말을 걸지 못할 진지함이 느껴졌다.

 

(지고 있을 수는 없는데.....)

 

의료도구가 없다......고 해서 시간을 쓸데없게 보낼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의학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자는 결의를 다지고 모눈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제대로 잡고 심호흡. 갑자기, 내가 얻은 지식...... 그것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집중한 직후,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인체 해부학 지식. 거기에 이끌리는 대로, 여러 가지 장기와 관련된 혈관 등의 댓생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세부, 점차 전체로 퍼지도록. 예술로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장기의 특징, 혈관이 있는 장소를 (보쿠)에게 확인시키듯이, 해부학의 정확함을 중시한다.

――그리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연필에 의해, 그 그림은 나 자신도 공포를 느낄 정도로 정확하게 그려져 간다.

 

 

........?!

 

 

아니, (보쿠)에게 올바른 해부학 지식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그것이 정말로 정확한 것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강한 확신이 있었다. 이 그림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하지만, 놀라움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말로 경악해야 할 것은 손끝의 재주였다. 필사적으로 놀라서 나오는 소리를 눌러 참는다.

머리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미지...... 그것은 두근두근하고 혈관이 맥박 치거나, 일부가 결여되어 있거나 창상이 있기도 했지만, 내 손끝은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정확하게 트레이스하게 움직여서, 그려지는 그림과 약간의 차이도 없었다.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손가락은 움직여, 모눈노트에 정확한 해부학 도형이 굉장한 스피드로 늘어간다. 약간의 공포마저 느낄 만큼, 그려져 가는 그림은 너무 굉장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적당한 타이밍에 마무리 짓고 연필을 멈춘 나는, 사쿠라가 눈치 채지 않게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손가락이 너무 굉장해. 정밀 기계 같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내 손가락은 섬세하고 정확, 무엇보다도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지식은 (오레)에게 받은 것이라 해도, 비정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손재주는 뭐지? 그거야 (보쿠)는 원래 손재주가 뛰어나서, 어느 정도는 실수 없이 해낼 수 있는 타입이었다. 붓글씨 쓰기나 리코더 같은 악기, 당연히 그림도 적당히 돼서 꽤 좋아했지만......

――하지만, 이건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솜씨 좋게 그림을 그릴 수 있던 적은 없고, 애초에 레벨이 현격한 차이. 아득히 위라는 건 한 눈에 안다.

이것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입체적으로 인체를 이미지하는 연습을 겹쳐 쌓아, 완벽하게 기억하기 위해 손을 움직여온 사람이 그린 그림이다. (오레)에게서 주어진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미래의 (오레)는 어느 정도의 수련을 자신에게 부과해 왔을까. 얼마나 경험을 쌓고, 굳은 각오로 연습을 반복해야, 이렇게 선명하게 인체를 이미지할 수 있고 생각한 대로 손가락이 움직일 수 있게 될까?

그리고...... 나는 새롭게 결의를 다진다. (오레)에게 받은 이 지식과 기술을 결코 허사로 만들 순 없다고.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의료 기구를 손에 넣어 나도 지지 않게 연습을 쌓아서, 계승한 이 기술을 더욱 갈고 닦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기술과 지식을 손에 넣은 미래의 (오레)에게 할 말이 없다.

 

 

후우......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노트를 가방에 정리한다. 가벼운 두통...... 그리고, 어느 새 식은땀을 흘리고 있어서 온몸이 차갑고, 공연히 목이 말라 참을 수 없다.

 

 

, 우유 마시고 올게. 사쿠라는?

 

....... 그럼, 홍차 마시고 싶어. 고마워

 

 

집중하고 있는 거겠지. 연필을 움직이며, 멍하니 대답하는 사쿠라를 보면서 1층에 내려가려고 허리를 들었다. 소꿉친구의 뒤를 지나가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노트를 향해 팔을 계속 움직이고 있다. 가녀린 등인데, 굳은 결의를 느끼게 한다.

그 집중을 어지럽히지 않게,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고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어라....... 어머니?

 

 

소리 하나 없는 거실에서 내 목소리만이 울린다. 이 시간...... 어머니는 이 방에서 의학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조사할 때가 많지만 아무도 없이, 한 장의 메모만이 있었다.

 

(아아...... 또 급한 환자인가)

 

테이블에 놓인 메모에는, PHS에 급환 연락이 있어서 진료소로 간다.......고 쓰여 있고, 마지막에 공부, 무리하지 마라는 작은 글자. 그 메모 용지에서는, 찡하고 코를 찌르는 소독액 냄새가 났다.

 

 

 

 

 ◆◆◆

 

 

우리들이 사는 이 마을은 상당히 시골이라서, 가슴을 자랑스럽게 펴고 타지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신에자키가 관련 시설을 제외――지만, 무슨 일에도 예외라는 것은 있다.

그 예외 중 하나가 아레르야라는 가게명의, 빨간 벽돌로 만들어져서 외형이 멋진 케이크 상점이다.

일찍이 도쿄의 모 일류 호텔에서 파티시에를 한 경험이 있는, 40대의 주인과 젊은 부인이 사이좋게 경영하고 있고, 그 부인의 친가――이 마을에 사는 농가다――에서 얻는 신선한 계란, 현지 밭에서 기른 밀, 근처 목장에서 매입한 우유 등의 지역 식재료를 쓴 구운 과자와 케이크가 일품.

과자 디자인이나 맛은 소박하고 심플, 하지만 속이 질리지 않는다는 평판으로, 일부러 도쿄 같은 곳에서도 자주 취재하러 오는 유명한 가게. 물론, 마을의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모두들 아주 좋아한다고 해도 좋다.

어느 상품도 맛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인기 있는 것이 롤 케이크. 아침에 얻은 계란을 듬뿍 쓴 부드러운 스펀지는, 입 안에서 눈처럼 사르륵 녹고 신선한 생크림은 끈적거리지 않고 담박한 달콤함. 제철 과일이 듬뿍 곁들여져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일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늦어도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살 수 있는 초 인기상품이기도 하지만......

 

 

아으으... 먹고 싶어. ? 오빠, 먹자! 먹자아!! 우와아...... , 엄청 좋은 냄새, 으으으

 

정말, 침착해

 

 

 ――시각은 밤 10

내 집, 거실 테이블에 놓인 아레르야 상자에 새끼 고양이처럼 얼굴을 바싹 대고 있는 소꿉친구.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물기를 띤 입술에서, 참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 한 숨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의 공부 때 보인 진지한 표정은 흔적도 없다.

그녀의 눈앞에, 아레르야의 광택이 나는 하얀 판지로 만든 상자 속에는, 명물인 롤 케이크가 한 개 들어가 있어서, 단 것을 아주 좋아하는 소꿉친구를 계속 광희난무하게 한다.

욕탕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정리한 사쿠라, 참을 수 없다는 느낌으로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넋을 잃고 눈을 감는 동작을 반복한다. 기분 좋게 싱글벙글 미소를 띠며 내 옆에 앉아서 까불며 떠든다.

 

 

그거야 나라도 먹고 싶은데..... 그래도, 역시 이 시간에는 너무 그렇다고. 내일 아침까지 참아

 

에엣? 반죽임이라구. 조금, 아주 조금만 안 돼? ? ? ?

 

 

마음에 드는 핑크 물방울 디자인의 파자마를 입은 채로, 당장이라도 상자를 열고 속에 맹렬히 달라붙어서 놓지 않을 것 같게 된 사쿠라. 그 가녀린 어깨를 등 뒤에서 잡고, 나는 억지로 테이블에서 떼어낸다.

평소에, 어느 쪽이냐 하면 분별을 잘 하는 사쿠라였지만, 단 것――특히 아레르야의 롤 케이크――에는 사리분별이 안 된다. 내 양손으로 뒤에서 안듯이 붙잡았지만, 소꿉친구의 시선은 아레르야의 상자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개다래같은 말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먹었을 때를 상상한 것인지....... 두 눈동자는 열에 의식이 흐릿해진 것처럼 흐리멍텅하고, 입술은 히죽. 평소 내 앞에서는 제대로 행동하는 소꿉친구의 얼굴이, 나이에 맞게, 아니 자칫하면 그 아래처럼 어리게 보인다. 사쿠라를 좋아하는 남자――코이에게 들은 소문으로는, 학교에서 사쿠라는 꽤 인기 있는 것 같다――가 보면, 환멸할지도 모른다.

 

 

아침까지 참자? ?

 

으윽, 오빠가 심술맞아. 조금만이니까 부탁이야! 마마나 선생님도 케이크 안 좋아하잖아. 조금이라면 먹어도 아무렇지 않다구, ?

 

 

나 참...... 왜 이런 상황이 된 거지. 사쿠라의 가녀린 몸을 뒤에서 억누르면서, 나는 학교에서 귀가하고 나서의 일을 떠올린다.

――학교에서 귀가, 도중까지는 나와 사쿠라와 둘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귀가한 어머니와 셋이서 요리하고, 구운 햄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식후에 쉰 뒤에 예습, 복습을 끝내고 재주 좋게 목욕을 마친다. 평소대로라면 그 이후로 10시 정도까지 3명이 가볍게 잡담하고, 사쿠라는 취침, 나는 2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평소의 패턴.

하지만 오늘 밤은 급환이 있어서, 어머니는 진료소로 나가 계셨다.

하지만, 그 급환이라는 것이 예의 아레르야의 부인으로, 진료소에 아내를 데려간 점주가, 응급처지가 끝난 뒤, 가족 단란을 방해한 사과로...... 롤 케이크를 가져온 것이다. 그래, 이따금 시작품으로 만들고 있다는 신상품인 롤 케이크를.

5월에 제철을 맞는 과일로, 미야자키현 산의 망고라는 이름의 과일을 듬뿍 쓴 좋은 향기는, 상자 안에 잘 포장되어 있어서, 농후하게 달콤한 행복을 예감하게 한다.

작년 5월에 이 망고 롤 케이크가 발매되었을 때는, 모두들 들은 적이 없는 망고라는 드문 과일이었던 것도 거들어서,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소문으로 들은 그 맛은, 황홀할 정도로 진한 오렌지색 과육과 생크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바야흐로 하늘로도 승천한다......라는 느낌인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만일을 위해 링거를 한다는 이유로, 아직 진료소에 있다. , 당연히 롤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날뛰는 사쿠라를, 내가 혼자서 말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으으으. ? 오빠?

 

 

평범한 고집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애원으로 작전을 바꿨는지, 휙하고 내 정면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쿠라. 갑자기, 그 가느다란 팔이 슥...... 목에 휘감기고, 안겨 달라붙듯이 부비부비하고 몸을 대며, 뜨거운 눈으로 바라본다.

붉게 물든 매끄러운 볼, 형태가 좋은 핑크색 입술에――케이크 맛을 상상하는 건지――새빨간 혀를 내밀 듯 말 듯. 내 얼굴 빠듯이까지 바싹 다가오는 얼굴, 마치 울 것 같이 그렁그렁해진 검은 눈동자. 뜨겁고 부드러운 몸...... 희미한 향기가 나는 소꿉친구의 어딘가 달콤한 체취. 흑발 트윈테일.

그리고...... 사쿠라의 젖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투명한 타액, 빨간 입 안이 보이고, 희미한 밀크 향기와 함께 말이 흘러넘친다.

 

 

......오빠, 부탁이야. , 못 참겠어.

 

「――――?!! , 바보 사쿠라, 떨어져

 

 

좀처럼 보이지 않는 조신한 표정에 내심, 약간 두근두근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고 확실하게 거절한다. 하지만, 소꿉친구는 떨어져주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목에 두른 양손으로 더욱 힘을 줬는지, 꼬옥......하는 느낌으로 내게 체중을 맡긴다. 엄청나게 뜨겁고, 부드러운 그 몸.

내 코끝에는, 빨갛게 물든 사쿠라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있고, 씻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샴푸의 뭐라 말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피어난다. 테이블 앞에 앉은 채인 우리들은, 서로 달라붙은 모습으로 계속 교착한다.

 

 

, 그만......

 

~. 후후, 오빠가 그래라고 할 때까지 이대로 떨어지지 않을래. 저기...... 어떻게 할 거야?

 

, 바보, 그만둬! , 무슨 짓을

 

 

속삭이는 소리와 내 귓불에 사쿠라의 입술이 닿는 감촉. 소꿉친구가, 꿀꺽......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무언가...... 등골이 오싹오싹하는 이상한 느낌이 허리 안쪽부터 솟구쳐서, 순간 나는 양팔에 힘을 주고 사쿠라의 뜨거운 몸을 잡아 뺀다.

 

 

싫어~,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떨어진 것도 잠시 뿐...... 마치 고양이처럼 재빨리, 내 뒤로 가서 목덜미에 매달려 붙는 사쿠라. 그대로, 내 귀를 할짝......

 

 

우와아아..... , , 무슨 짓을.....

 

후후, 어때? 간지럽지? ? 포기하고 케이크 먹자

 

 

간지러운.......듯한, 그게 아닌 것도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처음 느끼는 감촉이 온몸을 전기처럼 뚫고 지나갔다. 내 오른쪽 귀가 소꿉친구의 입술로 달콤하게 빨아들여지고 이빨로 살짝 상냥하게 물린다. 다시........ 할짝할짝 귓불 위에서 움직이는 부드럽게 젖은 혀.

무심결에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다. 뭐야...... 이 느낌은......

 

 

, 그만해 바보 사쿠라

 

어라? 안 간지러워? 오빤 참 인내심 많네. 그럼, 이건 어때?

 

「――――?!!!!

 

 

할짝......하고 뒤쪽 귀 뒤에서 목덜미에 걸쳐 뭐라 할 것도 없이 부드럽고 습기 찬 것이 기어간다. 그 뜨거움...... 사쿠라가 내쉬는 숨, 소꿉친구의 흑발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에 어질어질 현기증이 난다. ――소리, 이상한 소리가 목 안쪽에서 뛰쳐나올 것 같아서, 나는 무심결에 양손으로 입을 막아버린다.

――위험해! 뭐가 위험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오싹오싹한 느낌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내 상태가 이상한 건지, 즐거운 듯이 쿡쿡 웃고 있는 소꿉친구. 오싹오싹한 저림이 목덜미에서 손끝까지 퍼져서 참을 수 없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낯간지러운 듯한, 그것과는 다른 듯한...... 그런 이유 모를 느낌과 부끄러움이, 사쿠라의 순진한 목소리에 갑자기, 반격하라......고 속삭인다.

 

 

에헤헷 지금은 효과가 있던 것 같네. 항복이지? ? , 오빠!? 히야앗

 

바보 사쿠라! 멋대로 날뛰었겠다. 이상한 느낌 들잖아, 이 바보가

 

 

두근두근하고 격렬하게 계속 고동치는 심장과, 아직도 찌르르한 느낌이 끓어오르는 허리 안쪽. 그 열을 속이려고 하듯이 나는 사쿠라의 팔을 잡고, 강제로 카펫에 밀어 넘어뜨린다. 그 이상, 사쿠라에게 이상한 짓을 당하면 분명히 위험했다. 거칠어질 것 같은 숨을 고르며, 내 몸 아래에서 놀라고 있는 소꿉친구를 본다.

 

 

정말이지 항상 이상한 짓이나 하고. 뭔가, 움찔움찔하는 느낌이었어. 복수해줄 테니까

 

......, 오빠!? , 거짓말, , , ...... 잠깐, , 꺄앗, 응응응

 

 

사쿠라의 오른쪽 귀에 나는 가차 없이 입술을 꽉 대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혀를 움직여간다. 귀의 바깥쪽, 윗부분을 입술 사이의 혀로 살살 핥으며, 천천히 느긋하게 귓불로 옮겨간다.

원래 귀가 약한 사쿠라...... 분명 참을 수 없이 간지러울 것이다. 나는 좀 더 심하게 당했으니까 좋은 꼴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사쿠라의 팔이 아프지 않게 카펫에 꽉 누른다.

하지만 입술은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귓불에 닿은 혀끝을, 이번에는 귀 안쪽으로 이동한다. 물론 내가 당한 것처럼 귀를 핥고 이따금 상냥하게 이빨로 씹으며.

 

 

, 이거, 바보, , 안 돼, ............. 잠깐 이, 이상해――으읏으으으으으응응응읏!! , , 오빠, 오빠, , 안 돼, 앗 오빠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뜨거운 한숨을 쉬는 사쿠라. 내 팔에서 도망치려는 듯, 소꿉친구의 가녀린 몸이 구불구불 움직인다. 그 탓에 사쿠라가 입은 핑크색 파자마...... 그 목 부분에 있는 버튼이 툭하고 소리를 내며 풀어졌다.

 ――내 눈에 뛰어 들어오는 새하얀 목덜미와 쇄골이 떠오른 아름답게 움푹 들어간 곳. 유아등에 이끌리는 벌레처럼, 나는 흐느적흐느적 입술을 꽉 댄다.

 

 

, 오빠...... ...... , 안 돼...... , 나 이상해! 앗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에에! 응응읏, ...... 아아아앗

 

 

입술과 혀로 어깨 위쪽을 핥아갈 때, 소꿉친구의 가녀린 몸이 움찔움찔 경련해간다. 꼬오오오옥하고 내 머리를 세게 팔로 껴안고 떼어놓지 않는 사쿠라. 가느다란 양 다리가 내 허리를 둘러서, 자신도 잊고 몰두한 채로 서로 힘껏 꼭 껴안는다.

화상 입을 정도로 서로의 숨이 뜨거워서...... 나는 사쿠라에게 들려주듯이 할짝할짝 소리 내며 혀를 뻗어, 빨갛게 물든 귀를 다시 빤다.

 

 

어때? 사쿠라, 움찔움찔하지? 반성했어?

 

아앗...... 오빠아아앗...... 응응, , 사쿠라의 몸 안 쪽이, 가득, 가득, 움찔움찔해서...... 우으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사쿠라의 목소리...... 거기에는 지금까지 들은 적이 없는 달콤한 울림이 있어서, 발끝부터 뇌까지 불꽃이 일 듯이 뜨거워진다. 바로 가까이에서, 글썽글썽 뜨겁고 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보는 소꿉친구. 거친 호흡을 반복하는 입술이 빨갛게 젖어 있어서, 갑자기 엄청.......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는, 억지로 사쿠라의 몸을 떼어낸다. 절대, 절대로 안 되는 것이라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싫어. 떨어지기 싫어. 오빠, 한 번 더 움찔움찔하게 해 줘

 

 

열로 의식이 흐릿해진 듯이 빨갛게 물든 사쿠라의 얼굴, 울 것 같은 눈,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내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표정. 사쿠라의 손가락이 흠칫흠칫 내 손가락에 닿아, 내가 화내는 것을 무서워하는 듯이 천천히 손끝이 휘감긴다.

도저히 거부 같은 건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의식한 적 없는, 뭔가 이상한――마치 아픔과도 같은――달콤한 감정이 내 가슴 속에서 넘쳐흐른다. 호흡마저 괴롭고, 나는 단지 사쿠라와 서로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인다...... 서로가 자석처럼, 끌어당기듯이 서서히 우리들의 거리가 줄어들고...... 나와 사쿠라, 서로의 붉게 젖은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지고......

 

 

다녀왔어. 아키라, 사쿠라 짱. 싸우지는 않았지?

 

「――――――?!!!!!!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문자 그대로 뛸 듯이 경악하는 우리들. 닿았던 손이 엄청난 기세로 떨어진다.

대체, 뭘 하려 한 거지? 이상한 분위기는 한순간에 흩어지고, 몹시 놀라며 필사적으로 파자마에 생긴 주름을 정돈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 , 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선생님

 

 

너무 부끄러워서, 나는 소꿉친구를 정면에서 볼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건 저 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시야 구석에서 비치는 사쿠라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파자마를 정돈하면서, 다른 방향을 새침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터벅터벅 다가오는 어머니의 발소리. 나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평소처럼 똑같이 행동하려고 마음을 정리해간다.

 

 

......오빠. 또 다음에, 움찔움찔하게 해 주는 거야.

 

 

그 순간, 뒤에서 사쿠라의 못된 장난 같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침을 크게 삼켜버렸다.

 

 

· 5초등학교 편 ③】

 

 

HR이 끝나고 방과 후의 왁자지껄한 교실에서 보는 5월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푸른색이 어디에나 퍼져 보였다. 꽃이 핀 안뜰을 향해 열어젖혀진 창을 통해서는, 상쾌한 바람이 우리가 지내는 교실 안으로 불어온다. 아름답다...... 하지만 매일 변하지 않는, 그 풍경.

그것과 마찬가지로, 평소와 무엇 하나 다름없는 학교에서의 하루를 마친 우리들. 성질이 급한 몇 명 정도의 애들은 교실에서 기세 좋게 뛰쳐나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도 사쿠라가 기다리는 5학년 교실로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뒤에서 친구――칸나즈키 코이――의 원망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키라?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반장 일로 난처한 나를 놔두고 자기만 가는 건 아니지? ?

 

......아니, 돌아갈 건데. 사쿠라 기다리게 하면 진짜 무섭다고. 오늘은 같이 요리하기로 약속하기도 했고. 그럼 힘내! ......근데, 어이 놔, 어딜 손대!? 어이 바보!

 

 

허둥지둥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고 도망치려는 나, 하지만 그것보다 한 순간 빨리, 내 바지...... 허리의 고무줄 부분이 제대로 코이의 손에 잡혀있었다. T셔츠에서 뻗은 밝은 다갈색 팔, 가느다란 손가락, 핑크색 발끝, 작은 손이, 절대로 놓지 않는다.....는 듯이 꽉 쥐고 있다.

하고 강아지처럼 갸르릉대면서, 귀여운 갈색 얼굴로, 화난 것 같게도, 약간 난처한 것 같게도 보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코이. 립을 바른 것처럼 샤방샤방한 옅은 분홍색 입술, 그곳을 통해 약간 엿보이는 새하얀 이. 바비인형처럼 잘 갖춰진 브라운색의 큰 눈동자가, 눈물로 글썽글썽 물기를 띤 것 같아 보였다.

 

 

으으 다음 주에 있는 교외 레크리에이션......이라기보다 사회견학 말인데. 거기서 할 질문 선별하고 모두의 반을 나눠야 해. 점심시간 뒤에 억지로 맡아서 말야. 으으... 도와줘...... 그렇다고 할까 손수 나서서 도와달라구, 친구! 거기에, 아키라한테 부탁할 일도 있고......, 부탁이야

 

 

――확실히 필사. 거기에 코이의 미소녀 얼굴과 크고 눈물 젖은 눈동자로, 마치 버려진 강아지처럼 애원하면 아무래도 거절하기 어렵다. 나는 교실 앞쪽에 걸쳐진 시계를 힐끔 보고선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반장과 마주보는 형태로 의자에 다시 앉는다.

어쩔 수 없네..... 빨리 끝내고 나서 사쿠라를 마중하러 가기로 정했다.

 

 

, 15분 뿐이야. 정말이지, 코이의 그 얼굴은 치사하다고. 그런데, 뭐야? 부탁하고 싶다는 건

 

와아! 아키라라면 역시 도와줄 거라고 믿었어.ㅠㅠ 고마워. 그리고...... 부탁할 건 나중에

 

 

왠지 드물게 애매한 모습인 코이를 슬쩍 본 뒤, 책상에 놓여 있는 노트――다음 주의 교외 레크리에이션으로 가게 될 쓰레기 소각 시설에 대해 여러 가지가 쓰여 있다――를 펄럭펄럭 넘겨서, 몇 가지 항목을 읽어간다.

하루에 얼마나 쓰레기를 태우는가, 어떤 과정에서 소각되는가, 이 마을에서 하루에 얼마나 쓰레기가 나오는가, 에콜로지란 무엇인가...... 등등, 조사한 데이터가 프린트로 첨부되어 있다. 그것과 아울러 사회 시간에 나온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정리해서 질문이라는 형태로 제출한다고 한다. 확실히 조금 귀찮다.

일사천리로 코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면서, 예상되는 대답이 중복되는 것, 너무 어려운 것, 막연한 것을 빼고, 마지막으로 질문형식을 깔끔히 정돈해서 첨삭한다. 불과 5분 정도지만, 그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된 것 같다.

 

 

코이, 이런 느낌으로 어때?

 

, 엄청 나아졌다고 생각해. 역시 도움 받은 게 다행이야. 고마워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기쁜 듯이 정리한 노트를 가방에 집어넣는 반장. 이렇게 크게 기뻐해주면 도와준 보람이 있다........ 코이는 정말로 부탁하는 방식이 뛰어나서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의 선택은 확실히 귀찮았지만, 반장이라면 혼자서라도 여유 있게 만들 것이다. , 이렇게 필사적으로 내게 도와달라고 말했을까?

코이는 스포츠 만능, 성적 우수, 반 애들, 선생님에게 받는 신뢰도 두터운, 지금까지 공부에만 특화된 나와는 다른 진짜 우등생이다. 이런 질문 선별 정도로 그렇게 곤란하지 않다.

, 코이가 이렇게 곤란해하는 것은 사회 견학의 질문 쪽이 아니라, 정말로 귀찮은 것은......

 

 

진짜는 조 편성인가? ......아아, 그런가

 

, 이번 조 편성은 좀 특별하잖아. 그래서 그래

 

 

쓰레기 소각 시설에 관해 다 쓴 자료를 모두 책상 위에서 정리해서, 코이와 머리를 맞대는 형태로, 우리들 1반 명부와 옆 반인 2반 명부를 들여다본다. 죽 늘어서있는 이름, 이것을 반과 관계없이 6인조...... 합해서 10조로 나눠야 한다.

자주성을 존중한다.....라는 교장 선생님의 방침으로, 학생에게 이런 조 편성을 결정하게 하는 우리 학교. 학급 위원이나 도서 위원, 보건 위원의 선출 등도 학생만으로 행해져 선생님이 끼어드는 경우는 대체로 없다.

학년 인원수가 적은 이유도 있어서, 이런 사회과 견학이나 운동회, 소풍 때는 반 경계를 넘어 조를 만드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1학년 때부터 그렇게 해왔고, 학년이 올랐을 때 반 편성이 되므로, 전부가 안면이 있는 친구. 그래서, 보통은 정말로 적당히(출석 번호순이나 홀수, 짝수 등) 반을 정해도, 그걸로 불만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조 편성은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수학여행 편성인가

 

, 이번 편성이 크게 문제가 없으면, 올해 1년간...... 즉 수학여행까지 같은 반이 돼. 책임 중대해. 초등학교, 마지막 6학년이기도 하고

 

 

빙글빙글하고 작은 손으로 재주 좋게 빨간 펜을 돌리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이 얘기하는 반장.

코이가 정하는 다음 주 사회과 견학에서의 조, 그리고 다음 달에 할 소풍에서는 2반의 반장이 반을 결정하고 그것이 2학기에 가게 될 수학여행의 조로 결정된다. 일단, 2반 반장이 다음 달의 반 규칙으로 수정을 한다 해도, 이번에 결정되는 조는 꽤 영향력이 있다 해도 된다.

수학여행이라는 것은, 우리들 6학년에게 제일 중요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그 반에 상당히 영향을 주니까, 확실히 괴롭겠지만........

 

 

뭐 그래도,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은 없을 거잖아? 너무 고민하지 마. 거기에 코이가 결정한 거라면 모두, 반드시 납득할 테니까. 괜찮아, 내가 보장해

 

 

어두운 표정으로 고민하는 코이의 머리――강아지처럼 복슬복슬하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곱슬거린다――를 팡팡하며 두드리듯이 쓰다듬으며, 나는 격려의 말을 한다.

반장은 다정하고, 누구나 만족하는 길을 찾으려고, 자진해서 책임을 떠맡아 노력하는 타입이라 생각한다. 미래의 꿈만을 위해, 자신의 공부만을 필사적으로 계속 해 온 나와는 다른...... 믿을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친구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녀석이 결정한 반이라면 모두, 납득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 , 아우, 그럴......? , 그렇게 말해주니...... 저기, , , 고마워

 

 

갑자기 해서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크게 뜨고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숙이며 중얼거리는 코이. 그래도, 마음이 약간 놓였는지, 얼굴은 빨간 채이지만, 기쁜듯한 미소가 보였다. 그 귀여운 미소를 보고 나도 안심한다.

이 학교는 시골이니까....... 라는 것이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뉴스 같은 데서 보는 학교 붕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아주 가끔 싸우는 학생도 있지만, 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제비뽑기로 정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신뢰받는 코이가 결정한 반이라면, 누구에게도 불평이 나올 리 없다.

때때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우리들은 조의 임시규칙을 끝내간다.

하지만 그래도..... 도중에 나는 펜을 멈추고 코이의 얼굴을 본다. 만약 이 학년에서, 유일하게 주의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면......

 

 

아무튼 주의해야 할 사람은, 공주...... 정도?

 

 

도무지 초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공주...... 긴장된 분위기를 두른 미소녀의 모습을 상상한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긴 손발과 매우 잘 어울리는 교복, 풍부한 가슴에 장식된 붉은 리본, 코로 비웃듯이 강한 미소를 띤, 언제나 그런 표정.

그 반듯하고 차가운 미모나 모델처럼 아름다운 체형뿐만이 아닌, 정신, 분위기까지 일반인과는 다른...... 오라를 주위에 내뿜는 공주, 신에자키 사오리.

교사마저 그녀에게는 거스르지 못하고, 소문으로는 교장 선생님도 무언가 시설을 만들 때, 신에자키에게 허가를 받는 것 같다. 실제로, 새롭게 증축, 개축된 도서관에 있는 책에는 전부 신에자키 당주 계승자신에자키 사오리 기증이라고 금빛 문자로 쓰여 있다. 초등학생 주제에 책을 기증...... 못된 농담 같다.

그런 그녀와 같은 반이 된다면, 여러 가지로 큰 일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며...... 아니, 애초에 그녀가 이번 반에 납득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정해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 하지만 뭐, 그녀는 평소의 추종자 멤버로 반을 정하면 문제없을 터.......

 

 

앗 응...... 그래, 맞아. 공주가 문제라..... 그래서 말인데, 아키라한테 부탁할 게 그거야.

 

? 그거라니 뭔데?

 

 

아까 전 내가 쓰다듬은 머리카락 부분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어쩐지 어색한 듯이 입을 열려는 코이.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애매한 말투도 이상하고, 무엇보다도 항상 직구 승부인 코이가, 내게 미안한 듯이 눈을 돌리고 있다.

 

 

아키라, 공주랑 같은 반이 되어 주지 않을래? 이건 2반 반장하고도 상담한 거야, 부탁이야!

 

잠깐, , 어째서 내가

 

 

내게 비는 듯이 두 손을 모으는 코이. 호리호리한 팔과 어깨, 내린 머리의 안쪽에서 보이는 가녀린 목...... 그리고 너무 진지한 어조에 순간, 나는 뒷걸음질 칠 생각을 고쳐서 반격한다.

우선 왜 신에자키와 가장 상성이 나쁜 내가 같은 반이 되어야 해? 거기에 그녀에게는 분가관계 등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갈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논리를 세워서 반장에게 부딪치려고 했을 때, 한 순간 빨리 코이가 입을 열었다.

 

 

아키라는 말야, 흥미 없으니까 모르겠지만,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지금, 소문이 자자해. 신에자키 집안이, 재혼 문제로 혼란스럽다고. 공주의 어머니가 대단한 갑부와 재혼하는 것 같다고 모두가 그래...... 그래서 공주의 기분이 계속 나쁜 것 같아서...... 지금, 많이 예민한 것 같아.

 

그럼 더더욱, 나 같은 게 들어갈 의미 없잖아. 신에자키의 기분이 쓸데없이 나빠질 뿐이라고

 

 

신에자키가의 소문 같은 건 난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귀에 들린 적은 있었지만, 흥미가 없었으니까 들은 체 만 체 했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도 흥미 없다.

 

 

아아 진짜, 아니라구. 아키라, 깨닫지 못했어? 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을 합친 사람 중 단 한 사람, 그녀에게 주의를 줄 수 있고, 거기에 그걸 마지못해서라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사람...... 그건 너 밖에 없다구.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같은 건 듣지도 않아.

 

?

 

 

반장의 너무나 있을 수 없는 착각에, 반론할 기운마저 솟아나지 않고 아연실색한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 거지? 나와 신에자키는 얼굴을 맞댈 때, 서로 싸우기 일보직전처럼 말싸움할 뿐이다.

실제로, 오늘 점심시간 때도......

 

 

, 어라.......?

 

 

점심시간에 있던 일을 생각하고, 목을 약간 갸웃거린다. 고요한 화장실 앞에서 만난 나는, 그녀에게 위험하니까 교실로 돌아가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신에자키는 얼굴을 붉히며 화냈지만..... 결국, 교사로 돌아갔다? 그래서...... 내가 도서실에 갔기 때문에, 다시 그곳에 나왔다는 말?

확실히, 그곳에 볼 일이 있었다면, 일부러 교사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내 말 따위는, 공주답게 무시해두면 될 뿐인데...... 설마, 진짜 내가 말해서? 아니, 그럴 리 없어. 지나친 우연이다.

 

 

, 아냐, 우연일 게 뻔하잖아! 코이, 난 싫으니까. 공주와 같은 반이 되면, 어떤 무서운 일을 강제로 떠맡게 될지......

 

그렇게 말하지 마. 그녀가 만약 폭주하면, 멈춰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키라밖에 없다구

 

그럴 리 없어, 우연이야

 

 

도저히 상대해줄 수 없다. 나는 의자에서 기세 좋게 일어나서, 서둘러 교실에서 떠나자고 결의했다. 주위를 보면, 어느새 반애들은 누구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넓은 교실 안은 나와 코이 둘 뿐. 대화에 열중한 거겠지.

당황해서 시계를 보면, 사쿠라와 약속한 시간에 30분 가까이 늦어 있었다.

 

 

갈게

 

잠깐 기다려줘, 아키라

 

 

빠른 걸음으로 문으로 향한 내 뒤에서 탁탁하는 발소리가 울려, 뒤쫓아 온 코이의 오른손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키, 가녀린 외관치고는 의외일 정도의 힘으로, 굳게 내 오른손목을 잡고 놓지 않는다.

 

 

놔줘

 

도망치지 마 아키라. 저기...... 말할까 망설였는데...... 이건 너를 위해서라고도 생각해. 또 그렇게, 공부와 사쿠라짱하고 선생님만을 소중히 하고 가는 거야? 공주나...... 나 같은 타인은 흥미가 없다고, 처음부터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잘라내고. 그런 건 외롭잖아! 거기에 만약 미래에 아키라가 공부를 못 따라잡으면 어떻게 할 거야. 머지않아...... 사쿠라짱이나 선생님도 잘라내 버리게 되지 않을까?

 

 

진지한 코이의 목소리...... 그 소리가 내 다리를 얼어붙게 하는 듯이 멈춘다. 사쿠라의 몸에 링겔 관이 꽂힌 광경이 뇌리에 떠올라, 나는 넘쳐 나오는 씁쓸한 침을 어떻게든 삼킨다.

뭔가 반론을...... 공부나 의학 지식은 풍부한데, 하지만 지금은 도움이 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뒤돌아서 코이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목 안쪽에서 필사적으로 소리를 쥐어짜냈다.

 

 

공부는 절대로 괜찮고. 거기에 사, 상관없잖아. 그게, 왜 내가 신에자키와 같은 반이 되어야 할 이유가 되는데?

 

우선 첫째는, 신에자키가 아키라가 하는 말이라면 들을 테고, 너 앞에서는 공주는 별로 고집을 안 부리니까. 그리고 또 하나, 너와 공주는 대등한 친구로서 서로서로 안다고 생각하니까. ――아키라가 신에자키를 인정한다는 건 알고 있어. , 너도 친구와 함께 수학여행을 즐겨줬으면 해. 아키라, 부탁이야. 필사적으로 공부만을 계속해온 너를 쭉 봐 왔어. 소풍일 때도 넌 항상 흥미 없는 것 같아서...... 적어도 수학여행 정도는 추억으로 남겼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코이의 긴장한듯한 표정에, 나는 무심결에 숨을 들이킨다. 밝은 다갈색이지만 살결이 고운 피부, 단단히 닫힌 옅은 분홍빛 입술, 울려는 듯이 뿌옇게 된 큰 눈동자. ――반칙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이런 울 것 같은 귀여운 얼굴로 부탁받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거기에, 내가 어딘가 신에자키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 어제까지의 (보쿠)는 정말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 중에서, 흥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사이가 나쁘든 뭐든――코이 이외의 같은 학년생을 의식한 것은, 신에자키만이라고 해도 좋다.

 

 

아아 진짜, 어쩔 수 없네. 알았어, 내가 나빴다고. 정말이지, 그 얼굴은 비겁해

 

진짜........? 진짜로?

 

 

코이의 큰 눈동자에서, 이제 곧 넘쳐 나올 것 같은 눈물. 그 눈가를 주머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살짝 누른다. 하지만, 닦아내지 못한 눈물이 한 줄기, 갈색 피부 위를 스륵하며 흘러서 떨어져간다.

 

아아, 알았다고. 저기...... 친구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신에자키와 같은 반이라는 건 이해했어. 확실히 기억에 계속 남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친구와 수학여행을 즐기라고 한다면...... 코이도 같은 반이 되어 줄 거지? 저기, 반장은 가장 친한 친구니까

 

 

왠지 모르게 쑥스러워서,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우물우물 중얼거린다. 그 순간, 확하고 꽃이 피는 듯한 미소를 보이는 코이.

 

 

, !! 당연하잖아. 친구니까.....

 

 

포옥......이런 느낌으로, 내 배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대는 코이. 무심결에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서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거겠지. 반 남자들 중에서 가장 작은 몸...... 접힐 듯이 가녀린 어깨와 호리호리한 목.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우리들은 멋쩍게 웃고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을 때......

 

 

「――――오빠? 걱정돼서 와봤더니 어~엄청 즐거운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후후, 약속시간보다 40분 뒤랍니다? 40분이나 방치플레이 되다니...... 앞으로도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 라고 어젯밤 말씀해주신 분은 어디의 어떤 분이셨는지? ? 아키라 오빠......?

 

 

등줄기가 얼 듯한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 우와아아아앗! , 사쿠라...... 그게!

 

「나, 난 갈게! 아키라 고마워 그럼 또 내일 보자!!!

 

 

도망가는 토끼처럼...... 이라는 말은 정말로 맞는 말이다.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가 도망쳤을 때를 떠올리게 할 기세로,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반장. 눈 깜짝할 순간에 멀어져가는 발소리...... 역시 단거리 달리기, 현재 기록 보유자답다. 아까 전까지 그토록 친구라고 말했던 것이 환상인 것처럼.......

반면 나는, 소꿉친구의 박력에 완전히 압도되어 바보처럼 우뚝 서 있었다. 교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사쿠라를 멍하니 바라볼 뿐.

 

 

별로 신경 안 썼답니다? 그러네요...... 이제 이 시간이라면 곧 선생님이 돌아오시니까, 오빠와 둘 만이서 요리를 만들기는 어려워지겠지만요. , ~언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후훗

 

 

옅은 보라색 스커트에서 뻗어 나온 하얀 다리, 새빨간 란도셀을 매고 약간 주름이 진 핑크색 가디건, 내가 5학년 때, 가정 수업에서 만든 하얀 리본. 어느 것도 전부 어울려서 귀여운,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소중한 소꿉친구의 모습.

하지만, 싱글벙글 미소 짓는 얼굴이 어쩐지 반대로 엄청 무섭다. 겉으로만 오래 교제한 것이 아니다...... 사쿠라는 지금, 맹렬히 화났다.

 

 

, 사쿠라? , 침착하라니까, ? 코이에게 여러 가지 일을 떠맡아서 말야. 저기...... 널 잊었던 게 아니라고. , 당연하잖아?

 

...... 그건 그렇겠죠. ......오빠의 소중한...... 뭐였더라?

 

 

싱긋 미소 지으며 내 바로 앞에 서는 소꿉친구...... 어딘가 오한이 나지만 기분 탓인 게 틀림없다.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마음을 전하면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

꺾일 것 같은 자신을 격려하면서, 사쿠라의 어깨를 잡고, 확실히 정면에서 그녀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단언했다.

 

 

가족! , 사쿠라는 소중한 가족...... 여동생이니까, 잊을 리 없어. 가족! 그래, 가족이야! ? 알아줘서 기뻐!

 

......됐어, 어차피 알기도 했고. 전혀 분하지 않아. 그래도, 그래도, 그렇게 몇 번이나 가족, 가족이라고 말 안 해도 되잖아! ......오빠는 바보, 바보바보바보오오오오오옷!

 

, 어어어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 말이 변명 같이 들린 건가? 마치 울 것 같을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진 채 투닥투닥 전혀 안 아픈 주먹을 치켜드는 사쿠라. 보라색 스커트를 팔랑팔랑 휘날리면서, .....하고 때때로 힘없이 계속 휘두르는 로우킥.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잘못 피해서 사쿠라의 균형이 무너져 넘어지거나 하면 큰 일. 나는 일부러 모든 공격을 계속 받을 수밖에 없다. 울고 싶은 건 이쪽......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필사적으로 달래려고 나는 여러 가지를 계속 제안했다.

――결국, 소꿉친구의 기분이 나아진 때는 그 이후로 5분 정도 지난 뒤...... 히이라기 아키라 1일 자유이용권이라는 이유 모를, 엄청 무서운 티켓이 노트에 만들어진 뒤였다.

 

 

초등학교 편 ②】

 

 

사쿠라는 나한테 정말 여러 가지로 불평――코를 후비는 거라든가 팔꿈치를 대고 밥을 먹는다든가――을 하지만, 그 중에 제일 많은 것이 오빠는 흥미 없는 일에 너무 냉담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나는 들은 체 만 체 하고 있다.

――30분 정도 전의 등교 직후에 화장실로 뛰어가서, 교실에 내버려 두고 온 체육복으로 바지를 갈아입은 나는, 그 일로 누군가에게 추궁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전교 조회 시간을 보냈다.

그 때문에, 또 조회에 흥미가 없어져서, 어떤 주의사항이 있으며, 또 오늘부터 부임했다는 학교에 새로 온 교원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듣지 못했다. 만약 중요한 사항이라면 듣기 싫어도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온다......고 항상 하듯이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

두근두근하며 보냈지만, 결국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것에 대해, 아무도 의심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원래, 공부만 하던 나와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친구는 2, 3명밖에 없으니까, 대부분의 반 애들은 눈치도 못 챘을지도.

 

 

안녕, 아키라, 오늘 바지가 체육복?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바보 사쿠라한테 좀 밀려서, 진흙탕에 굴러서 더러워졌어. 안녕, 반장

 

 

교실로 간 뒤에,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의 짧은 자유시간...... 예외라고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친구 중 한 사람――칸나즈키 코이――이 내게 말을 걸었다. 라고 쓰고, 그대로 코이라고 읽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반장.

 

 

후후, 어차피 아키라가 잘못한 거겠지. 정말로 넌 뭐라고 할까...... 정해둔 목표 이외에는 둔한 면이 있으니까. 그게 안심이라고 할까, 밉살스럽다고 할까...... 아하하

 

 

사랑스럽다......라는 이 형용사는 이 녀석을 위해 있는 게 아닐까? 그럴 정도의 매력적인 미소를 띠며, 내 어깨를 팡팡 두드리는 코이. 육상 경기를 좋아하고, 5월인데 벌써 햇볕에 갈색으로 탄 피부, 살짝 웨이브한 고양이처럼 부드러운 갈색 쇼트 컷. 건강하게 단련된 손발.

누가 봐도 건강한 미소녀 외모지만, 이 녀석은 훌륭한 남자. 명랑하고 인기 있는 반장, 칸나즈키 코이.

 

 

냅 둬. , 코이, 이거 고마워. 카피 다 했으니까 돌려줄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100% 미소녀인 반장이지만, 그 내면은 책임감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모두를 끌어당기는 소질이 가득 차있다. 그런 코이,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사쿠라와,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에 필사적이고, 존경하는 어머니 이외에는 냉담한 내가 친구......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약간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관없다.

며칠 전, 코이에게 빌린 중학교 수험용 기출문제집을 가방에서 꺼내서 준다.

 

 

저기. 아키라, 어때? ......역시 도쿄에 있는 학교에 시험 칠 거야?

 

 

현재, 우리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창립 100년을 넘긴 전통 있는 학교――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단순히 너덜너덜한 건물, 어디에나 있는 공립 초등학교. 전교생은 350명 정도로, 한 학년이 대체로 30명 정도에 1반과 2반으로 나눠서 한 학년 당 60명 정도. 괴롭힘 같은 건 없는, 온화한 학교 분위기이지만, 학력에 관해서는 사립 초등학교에 뒤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대로 시험을 치지 않고 진학한다면 지역에 있는 공립 중학교가 되겠지만, 동급생 중에도 몇 명, 도쿄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있는 학생이 있었다. 문제집을 빌려준 반장은 당연한 것 같고, 어제까지의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아니, 솔직히 좀 애매해졌어

 

헤에, 역시 무슨 일 있었어? 왠지 아키라, 조금 여유가 있는 표정이네. , 그 편이 훨씬 좋아.

 

 

살짝 가볍게 이마를 어루만지듯이 맞아서, 왠지 약간 부끄럽다. 눈앞에서 부드럽게 미소 짓는 코이. 계속 공부만 하던 내게 억지로 말을 걸어, 교과서 이외의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쳐 준 사람은 이 녀석이다.

나만이 아니라, 사쿠라나 다른 후배들에게서도 남녀를 불문하고 절대적인 인기가 있다. 외모는 보통 아이돌보다 귀여운 여자애인데, 속은 두목......이라고 할까, 거물, 그릇이 크다는 거겠지.

 

 

, 모두, 자리에 앉아

 

 

갑자기, 반에서 울려퍼지는 드르륵 소리. 어느새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선생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60세 정도로 보이는 남성, 백발에 검은 테 안경, 불독처럼 늘어진 볼.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화내면 매우 무서운 담임......간사이 선생님.

당황해서 자리에 앉는 반 애들, 그리고 전원이 자리에 앉고, 간사이 선생님이 신호처럼 헛기침을 한 순간, 코이의 힘찬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일어서, 경례, 착석!

 

 

덜컹덜컹 책상을 울리며 인사하고 자리에 앉은 뒤, 나는 가방 안에서 교과서와 참고서, 그리고 복사한 초등학생 전국 통일 모의시험 기출문제를 꺼내서 펼친다. 펄럭펄럭하고 참고서――2달 정도 전에, 어머니에게 졸라서 산 것――를 대강 읽고, 통일 모의시험 기출문제를 힐끗 바라 본 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의미가 없........)

 

 

알고 있던 거지만, 이렇게 문제를 보니 확실히 자각했다. 거의 모든 문제가, 본 순간에 답이 나온다.

역시 내 현재의 지식은 파릇파릇한 젊은 의사수준...... , 의학부에 입학할 수 있는 정도의 학력과 의사 국가시험을 클리어할 수 있는 지식, 순발력이 있다. 확실히 입시 직전에는 약간 공부해야겠지만, 그런데도 충분히 합격권내일 것이다.

 ――, 무리해서 지금, 도쿄의 높은 중학교에 갈 필요는 없다는 것.

예컨대...... 여기에서 목표 대학을 바꾸어 동나 경의, 또는 미국의 예일이나 하버드 같은, 최첨단 의료기술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을 목표로 한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어디까지나 NGO나 시골에서 일하는 임상의를 목표로 하고 싶었다.

최첨단 연구나 의료기술도 매우 훌륭하다...... 그건 인류미래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 그것을 하려면 무서울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 것도 현실이며...... 보통 사람이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손을 뻗을 수 없다.

나는 빈부 같은 건 관계없이, 긴급 구명 현장에서의 의료기술을 익히고 싶으니까. 그렇다면, 도쿄에 있는 중학교에 가는 것보다 사쿠라와 어머니――가족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의료 기구가 있다면

 

 

선생님의 수업을 멍하니 들으며, 작게 입으로 중얼거린다. 머릿속에 지금 선명히 있는 지식과 기술, 그게 혹시라도 사라지지 않도록, 공부보다 수술 스킬을 계속 연습하고 싶었다. 학교 공부보다 의학 스킬을 단련하고 싶다.

하지만, 중요한 의료기구가 없었다. 어머니의 진료소에서 훔친다.......는 건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고, 온라인으로 사려고 해도 가격이 꽤 비싸서 초등학생이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핀셋 하나만 해도 매우 비싼 건 2만엔 정도, 원래 전기 메스, 외과용 전동 톱 같은 위험한 기구는 팔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어서..... 히이라기 아키라 군, 읽어봐

 

「ㄴ,

 

 

딴 생각하던 나를 지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조금 놀라면서 크게 대답하고 교과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나, 내심 매우 긴장한다. 너무도 진지하게 수술 도구에 대해 생각해서, 어디부터 읽으면 될지 전혀 모른다......

 

 

......42페이지, 아래 문단, 3번째 줄부터

 

 

그 때, 바로 뒤에 앉은 반장이 낸 속삭이는 소리. 당황하면서도 들은 곳을 찾아내, 어떻게든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진 않아서, 간사이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끄덕이고 있다.

반장에게 감사하면서, 나는 계속 읽어나간다. 다만 머릿속은, 어떻게 해야 의료 기구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지만.......

 

 

 

◆◆

 

 

점심시간...... 체육관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는 거울을 보며 손을 비누로 씻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부터 손등, 손바닥, 손톱 사이, 손목까지 확실히 거품을 내서, 꼼꼼히 씻어간다. 이것은 거의 습관 같은 것으로, 의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들여 씻어도, 화장실 대변기 칸에 들어간 친구――칸나즈키 코이――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반장은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데, 배가 약한 것 같고, 평소에는 누구와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예외는 점심시간에만, 이렇게 대변기 칸에만 들어간다. 반장이 서서 용변을 보는 모습은, 6년간 아무도 봤던 적이 없는, 어느 의미로는 전설이다.

 

 

어이, 반장, ? 이제 슬슬 됐잖아. 사쿠라가 기다리니까, 도서실에 가고 싶은데

 

-? 아키라. 조회에서 선생님이 말했었잖아, 수상한 사람이 목격됐으니까 주의해달라고. 나 무섭다고, 부탁이니까 기다려줘, ? 아까 수업할 때, 도와줬잖아.

 

 

그런 말을 했었나.....하는 놀라움과, 남자면서 수상한 사람의 어디가 무서워? 라고 불만스럽게 생각하지만, 확실히 반장 외모라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소꿉친구인 사쿠라는 귀여움과 예쁜 게 균형 있게 믹스된 약간 한 인상이 있지만, 코이는 100% 귀여운 외모다. 스커트를 입으면, 절대로 여자애라고 생각될 거다.

왠지 메이드복을 입은 코이의 모습이 상상되어, 나는 무언가 거북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이, 화장실 칸 너머를 향해 큰 소리를 낸다.

 

 

아아 진짜, 알았다고. 그럼, 바로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

 

 

손의 거품을 물로 흘려내고, 손수건으로 꼼꼼히 닦은 뒤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휑하니 교내에서 구석진 곳에 있는 여기...... 체육관 옆에 있는 화장실은, 낮인데도 어딘가 썰렁한 분위기가 있다. 최근 리폼한 바로 직후라 깔끔한데,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어딘가 기분 나쁜 느낌이 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 히이라기 군 아니니? 이런 장소에......그런데, -, 혹시 또 칸나즈키 군과 사이좋게 화장실? 너희들은 항상 같이 있네. 이런 외딴 곳에서까지, 사이가 좋구나.

 

 

그 때, 멍하니 생각에 빠진 내 뒤에서, 초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요염함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어른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학생은 한 사람밖에 없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천천히 뒤돌아보고, 예상이 적중한 것을 알고, 그 한숨을 눌러 참았다.

 

 

, 코이 기다리는 중이야. 안녕, 신에자키. 그런 신에자키야말로, 이런 데에는 왜?

 

 

거기에 있던 사람은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블레이저 교복을 확실히 껴입은 소녀. 검은색 타이츠를 신은 긴 다리가 회색 체크무늬 스커트에서 뻗어 나와 있다. 몇 번이나 도쿄에서 모델로 스카우트되었다는 소문이 난 미모는, 칼 같이 잘 갖춰진 쿨한 인상. 그리고, 초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큰 가슴...... 그것은 갑갑한 듯이 블레이저의 앞가슴, 빨간 리본을 누르고 있었다.

――옆 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 신에자키 사오리. 그리고, 나는 이 신에자키 사오리와는 치명적으로 사이가 나쁘다.

 

 

수상한 사람이 나왔다고 선생님이 말했었지? 그래서 순찰. 내가 신에자키가의 영토 내에서...... 이상한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오싹하게 하는 시선이 나를 꿰뚫는다. 그녀의 집, 신에자키가라는 것은, 에도시대부터 이 지방을 지배해 온 영주님의 집안이라고 한다. 메이지가 되고 나서는, 이 지역 유일한 의사 가계로서 대대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그래, 의사였던 사오리의 아버지가(무책임한 소문으로는 애인과 같이인 것 같지만)실종되어, 급히 내 어머니가 이 지역에 부임할 때까지는......

그리고 신에자키의 장래의 꿈은, 당연하다고 할까, 집을 잇기 위해 의사.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치룬 전국 통일 초등학생 모의시험. 우연히 내가 그 순위를 웃돌아서, 그 때쯤부터 그녀의 악의는 확실히 강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에자키 혼자서는 만약의 경우에 위험하다고? 그렇게 위험한 일 하면 안 되잖아.

 

입 다물어, 상관없는 타인인 히이라기 군 같은 사람에게 명령될 만한 기억은 없어. 아니면, 작년 테스트에서 우수했다고 우쭐해 하는 거니? 장난치지 마, 다음에는 절대로 내가 이길 테니까!

 

 

찌릿하고 어딘가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흘기는 그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이 봄의 돌풍에 흔들려, 찰랑찰랑하고 떠오른다.

그 풍경은, 마치 패션잡지에 실린 사진과도 같아서...... 정말로 초등학생으로는 안 보인다.

스파르타라고 소문난 신에자키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명가 사람의 소양으로 무도, 화도, 아악, 다도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행동거지에는, 손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딱 긴장감이 감겨 있어서, 섬세한 유리 세공과도 닮은 아름다움과 박력이 있다.

 

 

신에자키에게 명령할 생각 같은 건 없다고. 다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이 걱정하잖아? 거기에, 나는 이제 통일 모의시험 안 볼 거니까

 

「――?! 뭐야 그건, 내게서 도망칠 생각!? 그런 건 허락 못해!

 

딱히 허락받을 필요 같은 건 없고. 화장실 갈 테니까, 위험한 행동 하지 말고 빨리 교실로 돌아가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분노를 드러내는 그녀. 도저히 상대해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신에자키의 소리를 들으면서, 재빨리 뒤를 돌아보고, 코이가 있는 화장실 문을 열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한 순간 빨리,

 

 

기다렸지 아키라. 고마워. , 도서실에 가자. 사쿠라짱이 기다리고 있어.......근데, ? 공주!?

 

, 바보

 

 

드르륵 열리는 문. 거기서 나타난 반장이 신에자키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공주라는 그 단어를 들었는지, 움찔이라는 느낌으로, 잘 손질된 가는 눈썹을 꿈틀하는 신에자키. 팔짱을 낀 손가락 끝, 그 길고 가느다란 검지손가락이 똑똑하고 움직인다.

――언제, 누가 말하기 시작했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신에자키 사오리의 별명은 공주였다. 우리들이 사는 이 시골에서, 현재도 강한 영향력이 있는 일족의 아가씨. 당연히 그녀의 영향력도 세서 마치 하인처럼 보이는 추종자를 몇 명 거느린 적도 많다. 확실히 공주님.

지금은 어쩐지 아무도 거느리지 않지만......

 

 

!? 히이라기 군, 누가 공주라고!? ......아무튼 좋아요. 다음 전국 모의시험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아. , 도망치기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잠깐, 난 공주라고 말한 적 없고, 거기에, 그런 일방적인 ㄱ」

 

 

내 항의를 전혀 듣지 않고, 찌릿......하는 시선으로 노려본 뒤 빠른 걸음으로 교사로 돌아가는 신에자키. 검은 타이츠로 싸인 긴 다리를 슥 움직이고, 허리까지 내려온 흑발은 봄바람에 길게 뻗어나가고, 그 뒷모습은 확실히 공주님......이라는 분위기.

뒤 따라가서 불평할까? 하고 순간 생각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다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도서실에서 사쿠라가 기다리는 중이고.

 

 

저기...... 미안해 아키라. 설마 너하고 공주가 얘기할 거라고는 생각 못해서, 놀라서 말야

 

아니, 뭐 상관없어. 도서실 가자

 

 

아직 점심시간은 시작된 바로 직후......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도서실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교사로 들어가기 직전, 나는 뒤를 돌아, 힐끗 공주신에자키가 수상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던 쪽을 본다. 거기에는, 어두운 이 변두리 중에서도 더욱 어두컴컴하고, 매우 외로운 분위기. 저런 곳에서 단지 혼자서......

 

 

신에자키, 어째서?

 

 

이상하게 생각한다. 신에자키는 확실히 야무지고, 속으로 그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것과 같을 정도로, 그녀에게는 친구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쓸쓸한 곳에 혼자서? 그녀가 한 마디 하면 얼마든지 같이 돌아봐 줄 친구가 모일 텐데?

 

 

? 아키라, 왜 그래?

 

 

순간, 멈춰선 내 뒤에서 신경 써주는 듯한 코이의 목소리.

 

 

아니, 잠깐 좀 그래서. 미안

 

 

밝게 대답하고, 코이의 어깨...... 가녀려서 꺾일 것 같은, 마치 소녀처럼 보이는 거기를 가볍게 치고, 우리들은 같이 복도로 걸어갔다.

 

 

 

 ◆◆◆

 

 

 

점심시간, 이렇게 도서위원으로 대출한 책을 접수할 때의 사쿠라는, 약간 큰 검은 테 안경을 쓴다. 내 어머니가 안경을 새로 맞췄을 때, 필요 없어진 테. 거기에 도수가 없는 렌즈를 낀 것을 그녀는 착용하고 있었다.

예전에 의미 없잖아?라고 놀리자, 시끄럿, 도서위원이라는 느낌 나잖아? 분위기라구라고 대답했다. 확실히, 평소 눈에 익은 소꿉친구의 얼굴보다, 왠지 모르게 날카롭고, 지적이며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분위기라고 사쿠라는 말하지만...... 이 학교에서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은 적어서,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라는 것도, 작년 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도서관이 개축과 증축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쪽에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이 도서실은 3층 가장 구석에 있고 낡은 책밖에 두지 않는데다가, 저쪽 도서관에는(내용은 한정되어 있지만) 만화까지 있어서 대인기. 그런 이유로 점심시간은 거의, 나와 사쿠라, 코이 세 명의 전세라고 해도 좋은 상태였다.

 

 

칸나즈키 선배, 오늘 오빠 이상하지 않았어요?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나를 수상한 눈으로 흘겨보면서 소꿉친구가 말한다. 아침에 나빴던 기분이 약간은 회복된 것 같아서,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사쿠라의 질문에, 창가에서 햇볕을 쬐며 동물 사전을 보던 반장이, 얼굴을 들고 고운 소프라노로 대답한다.

 

 

헤에 그럴까? 별로 느껴지진 않았는데? 후훗,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왠지 어젯밤부터 이상해요. 묘하게 상냥하고. ...... 부끄러운 말해요...... 여전히, 엄청 바보지만!

 

잠깐..... 사쿠라, 그건

 

 

소꿉친구가 말한 부끄러운 말이라는 건 어젯밤, 내가 말한 가족으로서 계속 같이 있을게라는 거겠지. 딱히 타인에게 알려져도, 거짓 없는 본심이니까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그래도, 역시 부끄럽다.

 

 

헤에....... 뭔데? 성실한 아키라가 부끄러운 말을 하다니, 후후, 엄청 흥미 있어. 가르쳐줘 사쿠라 짱

 

 

빙긋 웃으며 기쁜 듯이 이쪽을 보는 코이. 사쿠라와 반장은, 일찍이 내가 발단이 된 사건을 계기로 친해져서,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둘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선후배라기보다는 마치 자매처럼 보인다.

밝고 스포츠를 좋아하며 활동적인 언니와 도서실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도 오기가 있는 여동생. ......아무튼, 반장은 남자지만, 외모는 100% 귀여운 여자애니까 어쩔 수 없다.

 

 

바보 사쿠라. 코이한테 이상한 말 하지 마

 

아하하, 어떻게 할까? 오빠, 알려지기 싫으면 다음에 쇼핑에 어울려줘

 

, 좋겠는데? 그럼 나도 데려가줘. 당연히 아키라가 계산

 

 

제멋대로 말하면서 서로 웃는다. 도서실에 우리들 이외에 아무도 없을 때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잡담이나 때로는 공부하는 게 일과이다. 한가롭고 릴렉스한 분위기.

지금만큼은, 수험도 수술 도구에 관해서도 잊고, 점심시간의 어쩐지 나른한 시간을 사쿠라, 친구와 함께 즐겁게 보내기로 결정한다.

 

 

........ 그건?

 

 

몇 분 뒤, 책을 다 읽고, 창가의 선반으로 가지고 가려던 내 눈에 살짝 눈 아래 있는 풍경이 비쳤다. 그곳은 교사의 구석...... 점심시간 초반에 나와 반장이 있던 화장실 근처.

 

 

공주........

 

 

입속으로 불쑥 중얼거린다. 화장실에서 더더욱 깊숙한 곳...... 사람 그림자가 없는 쓸쓸한 곳에서 모습을 보인 사람은, 틀림없이 신에자키였다. 다시 외톨이로, 이 거리에서는 표정을 몰랐지만, 어쩐지 매우 외로운듯한 분위기.

수상한 사람을 찾기 위한 순찰.......이라기보다는, 그 사람과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고 싶어서 찾길 바라듯이.

 

 

오빠,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창밖을 보던 내게 말을 건 사쿠라에게 대답하면서,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가슴속으로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신에자키는, 언제나 강하고 오만, 자신감이 넘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오늘 본 그녀에게는, 마치 부모를 찾으며 우는 미아와 같은 연약함이 느껴졌다.

거기에...... 5학년 때 나는 모의시험에서 전국에서 톱클래스의 성적을 받았고, 그녀도 거의 같았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정말로 공부밖에 생각하지 않고, 주위에 폐를 끼치고...... 어머니나 사쿠라, 그리고 코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도 고생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신에자키는 다른 것을 배우며, 주위의 기대, 명가의 후계자로서의 책임으로 시작해서, 나보다 더 큰 압박 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다.

 

 

아키라, 사쿠라 짱, 정리하고 슬슬 교실로 돌아가자

 

 

반장의 말에 끄덕이고 정리정돈하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신에자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 내 직감이 불길한 예감을 고하고 있다.

 

 

 

3초등학교 편 ①】

 

 

NGO<빈부 없는 의료단>에 참가한 첫 날, 의료 캠프에 도착한 나는, 우선 짐을 방에 두고, 공용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비행기로 지친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단지 수 분이었지만, 그 뒤 내게 할당된 방으로 돌아갔을 때는 내 의료 도구는 이미 도둑맞아서 사라진 상태였다.

일본에서 가져온 닥터 백. 그게 좋지 않았던 것이다. 대학에서 알게 된 선배 닥터가 필요 없다고 해서, 물려받았지만, 브랜드 제품인 까닭에 진료소에 출입하던 사람에게 도둑맞았던 것이다...... 베테랑 간호사는, 훔친 사람은 아마 빈민가의 아이일 거라고 말했다.

일본과 아프리카의 물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난다. 빈곤으로 시작해서 치안까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전혀 이해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NGO의 리더, 세르게프는 약간 목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아키라, 우리들 닥터에게 수술기구는, 자신의 손 그 자체지? 테크닉이 부족해서 환자를 구할 수 없는 것....... 그건 비극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력을 다한 결과라면 어쩔 수 없어. 우리들은 인간이다. 기술에 한계는 있다. 하지만 도구가 없으면 간단한 수술마저 못하고, 환자를 죽게 내버려두게 될 뿐이다. 알겠나? 훔친 아이는 물론 나빠.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화난 이유는, 너무도 쉽게 네가 도구를 도둑맞은 것, 너의 그 마음가짐이라는 거다.

 

 

똑똑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프랑스어를 내뱉는 세르게프. 백인다운 푸른 눈동자, 새하얀 머리카락과 야윈 육체. 그러나, 50세가 넘은 연령이면서도, 그 온몸에서 흘러넘치는 박력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외과의 전문은, 수술<오퍼레이션>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외과수술이라는 것은, 자르기꿰매기형성, 3개가 주된 요소가 된다.

, 상처까지 잘라내고, 다친 조직, 신경, 혈관 등을 꿰매고(뼈라면 정형해서 고정), 복구 불가능한 조직을 새롭게 형성하는(혹은 인공물로 치환한다, 인공혈관 등) .

그것들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많은 도구가 필요하게 된다. 위대한 선인이, 이런 도구가 있다면......이렇게 고안하고, 시작하고, 무수히 많은 실전 증명으로 선택되어, 그렇게 계속 쓰여 온 여러 가지 도구들. 그것은 의학사의 시행착오이며, 얼마나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고 계속 발버둥 쳤는가? 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 도구를 도둑맞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수술 도구가 없는 외과의에게 가치는 없다. 뭐 때문에 여기 온 거지? 이래서야 관광객과 다를 바 없다.

나는 자신의 무름, 답답함에 얼굴이 빨개져서 세르게프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알겠어? 정말 용서되지 않는 것은 테크닉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도구를 소중히 다루고, 어떤 때라도 바로 움직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계속 유지하는 의식. 그 의식을 게을리하는 것...... 그게 용서되지 않는 일이야! 알겠나, 아키라? 테크닉 이전의 문제다. 의지인 거다, 우리들 닥터가 계속 가져야 하는 의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싶다, 불합리한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바랐으니까! 넌 의사가 됐겠지? 아키라...... 지금부터는, 도구를 도둑맞기 쉬운 장소에 결코 두지 마라, 최소한의 기구는 몸에서 떼놓지 말고 가지고 다니는 거다.

 

 

나는 세르게프의 무거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만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결사적인 전장에서 구급 의료를 계속해 온 그들에게, 도구를 쉽게 도둑맞은 난, 터무니없이 믿음직스럽지 못한 풋내기로밖에 안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여기는 풍족하고 평화로운 일본은 아니다. 스킬 이전의 문제, 무른 의식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자각했다.

크게 한숨을 내쉰다. 참가한 첫 날부터 깨졌다., 그런 내 눈 앞에..... 큰 책상 위에, 갑자기 쿵하고 무언가가 놓인다.

......그것은 너덜너덜하게 손 때나게 오래 쓰인 가죽제 닥터 백. 브랜드는 아니지만 실용적이고 튼튼하게 만들어져, 오래 됐으면서도 몇 번이나 수선된 흔적이 있어서, 매우 소중히 쓰이던 가방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닥터 세르게프. 이건?

 

......내 아들이 쓰던 거다. 여기에는 그 밖에 바로 쓸 수 있는 예비가 없으니까. 다음 보급이 들어올 때까지 쓰면 된다. ――그리고 아키라, 늦었지만, 너의 참가를 환영한다. 잘 부탁한다.

 

 

그것만 단언하고, 좁은 독실에서 나가는 리더 세르게프. 약간 멍하며 그를 배웅하러 일어섰다가, 받은 지 얼마 안 된 닥터 백을 연 나는,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

 

 

너덜너덜한 백에 담긴 메스, 전도, 겸자, 지침기 등은, 겉과는 반대로 전부 제대로 메인테넌스가 되어 있어서, 언제라도 쓸 수 있게 멸균 팩에 개별로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란 이유는, 그것들 도구 전부가 약간씩 커스터마이즈되어 있던 것.

닥터 세르게프의 아들이 사용했을 때, 조금이라도 잘 쓰려고 커스터마이즈했을 것이다. 들기 쉽게 약간 깎인 그립, 아주 약간 기존의 것보다 휘어진 겸자. 자신이 깎았는지, 끝부분이 약간 둥글어진 전도.

이 도구를 썼던 사람은, 얼마나 진지하게 도구와 마주보고 있었던 걸까. 지금까지 결코 대충 해 오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수술 도구에,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현기증마저 느낀다.

NGO에서 배운 첫 번째....... 그것은, 의지.

도구를 몸에 항상 들고 다니는 것, 테크닉이 없어도 항상 전력을 낼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 두는 것...... 그것은 기술 이전의 문제이며, 결코 어렵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진심으로 이해했다.

 

 

 

 

 ◆◆

 

나는 잘 자고 잘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자명종이 처음 하고 울리는 순간에는, 대체로 눈을 뜬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깨어난 기분은 최악이었다. 우선, 등이 찡하게 아파...... 그래, 누군가에게 차인 것처럼.

 

 

이 바보......!

 

 

사쿠라가 자는 모습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심하다. 2층 침대――환자에게 필요 없어서 받은 것―― 아래쪽에서 자던 얘가, 어떻게 해야 위에 있는 내 침대로 기어들어 오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멋대로 침대에 잠입, 거기에 내가 덮던 이불을 전부 벗겨내고, 자기 몸에 둘러 싼 소꿉친구. 히죽히죽하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 핑크색 물방울 파자마는 잠버릇이 너무 나빠서 그런지, 배꼽이 보일 정도로 벌어졌다.

그리고, 야밤중에 나를 몇 번이나 찼는지, 나는 낙하직전...... 단 빠듯이 몰려있고, 이 녀석이 침대 중앙을 지배하고 있다. 사쿠라의 핑크빛 입술에서 투명한 타액이 넘쳐 떨어져서 툭하고 사람의 베개에 얼룩을 만들어 가고...... 얼얼한 등의 아픔과 맞물려, 나는 빡쳤다.

 

 

「ㅇ......, ㅃ ㅏ......

 

 

천천히 손가락을 펴고, 잠꼬대를 중얼거리는 소꿉친구의 까만 머리카락에 닿아, 둥근 귀를 드러낸다. 마치 한입 만두처럼 작은 그 귀. 사쿠라는 거기가 엄청나게 간지럼에 약한 것 같아서, 누가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빗어 올려서 보이는 호리호리한 목덜미.

 

 

바보, 이 베갯잇은 어머니가 모처럼 만들어 주신 건데

 

 

외과의치고 어머니는 재봉에 약하다. 외과 수술의 기본인 봉합은 혀를 내두를 만큼 뛰어난데...... 내 어머니이면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 어쨌든 그런 어머니가 악전고투하면서 꿰매어 주신 것이, 현재 사쿠라가 타액으로 끈적끈적하게 만들어버린 베갯잇.

내심 분노를 폭발하지 않게 하면서, 나는 굳이 사쿠라의 몸을 상냥하게 뒤에서 꽉 껴안는듯한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써서, 가녀린 몸을 확실히 고정한다. 양 다리도 전방으로 돌려, 사쿠라의 하반신을 꽉 누른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옆구리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ㅇ으으응!? 꺄아하하핫!!

자 잠깐, 아하하, 잠 오빠!? , 그만, 아하하하, , , ---. 꺄아하하하!! , 앗 아하하하! 잠깐, , 진짜 안 돼, 싫어, 아하하하

 

 

뒤에서, 사쿠라의 목덜미 귀를 목표로 후후-하고 숨을 내뿜는다. 양손으로 쉴 새 없이, 호리호리한 옆구리를 간질간질하고 계속 간질인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필사적으로 몸을 비비 꼬는 바보 사쿠라.

초등학교 5학년치고는, 슬림하고 긴 다리를 움직여서 동동 날뛰지만, 나는 꽉 붙잡은 채로 놓치지 않는다.

새하얗고 매끄러운 사쿠라의 목덜미와 귀가, 너무 웃은 탓인지, 빨갛게 충혈된다.

 

 

어때? 사쿠라 죄송합니다는? , 제대로 말해봐

 

바보! 아하하, , 그만하라니까, 그 응 오, 오빠, 기억해두라구, 꺄하하, , 잠까안 앗, 우하하하하, 죽일 거야, 아하하, 그 그만, 냐하하하핫

 

 

아직도 쌩쌩하게 대드는 사쿠라. 틈만 있으면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비꼬며 내 몸에 팔꿈치를 계속 들쑤신다. 쿵쿵하고 진동과 함께 침대가 흔들린다.

하지만, 나도 전력으로 소꿉친구의 몸을 안고 떼어놓지 않는다. 간질간질하고 옆구리를 마구 간질이며, 날뛰는 목덜미에 숨을 계속 내뿜는다.

 

 

아하하하하하하, , 알았어. 사과하면 되잖아, 냐하하햣하, , 사과할게. 꺄하하, 오빠, , --, 미안햬애애, 아하하하핫, 미얀햬에, 봐줘, 아하하

 

 

헥헥하고 숨을 난폭하게 몰아쉬는 사쿠라. 과연 좀 너무했다고 생각해서, 손을 뗀다. 축 늘어지고 탈진해서 기대오는 사쿠라의 등과 다리. 너무 웃었기 때문인지,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호흡을 가다듬으려고 하는지, 몇 번이나 심호흡을 반복하는 소꿉친구.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귀와 목덜미에서, 어쩐지 밀크 같은 향기가 났다.

 

 

, 빨리 내려가라고 바보. 진짜, 어머니가 만드신 커버가 끈적끈적하잖아

 

..............마더콘

 

?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왠지 우물쭈물하는 사쿠라를 적당히 다루며, 베갯잇을 벗겨낸다. 소꿉친구의 타액으로 젖은 파란색 천. 시트......와 올려다보는 소꿉친구의 시선을 느끼며, 그것을 오른손으로 집어서 방에서 밖으로 나왔다.

 

 

으으... 아침 해가 눈부셔. 어머니는...... 마마가 있는 거기?

 

으응~? 선생님, 오늘은 오랜만에 왕진이 없다고 해서, 확실히 그런 것 같아. 우리들도 가자구. 오늘 조회가 있어서, 약간 빨리 나와야 학교에 지각 안 해.

 

 

조금 복잡하지만, 사쿠라의 어머니는 모두에게 마마라고 불린다. 내 어머니는 선생님. 뭐라던가, 어머니 선생님과 사쿠라의 어머니 마마는 원래 아는 사이 같고, 지금도 매우 사이가 좋다. 왕진이 없는 날은, 밤부터 아침까지 이렇게 여자 둘이서 마시는 일도 많은 것 같다.

아무튼 그러니까, 사쿠라가 내 방에 묵게 되는 거겠지만.

 

 

조회라니, 전교생 조회? 뭐가 있는데?

 

 

교대로 화장실, 세수를 마치고, 재빨리 등교 준비를 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그리고 사쿠라는 5학년. 나이로는 2살 차이나지만 생일 관계로 학년은 하나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오빠는 참 여전히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건 바로 잊어버리네. 새 선생님이 온다고 했잖아.

 

헤에 그랬던가? 뭐든 상관없잖아.

 

 

나는 장래,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서, 공부는 어느 정도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4월이 끝난 바로 직후이지만, 영어, 수학은 중학생 레벨의 기초는 대부분 끝냈었.......지만, 이제 그 레벨과는 자릿수가 다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레)의 지식이 확실히 스며들어 있다. 대놓고 말하면, 적당한대학이라면 지금 당장 의학부에 시험을 쳐도 합격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학......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는 꽤 자신이 있었다. 아프리카, NGO에서 쓰이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이 3개였으니까.

 

 

-, 선생님이 바뀌어도 공부 정말 좋아하는 오빠의 성적에 영향은 없다는 말?

 

 

집 현관을 동동하고 빠져나가며, 그녀가 퉁한 느낌으로 말한다. 그 불만 서린 목소리에 나는 번쩍 깨닫는다.

(보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날의 맹공부에 쫓겨 소꿉친구와 별로 놀아주지 못한 것이 현상이었다.

(그런가....... 혹시 오늘 아침의 일도, 그런 이유때문일지도)

하지만, 어젯밤은 (오레)의 의식, 사쿠라의 미래의 기억에 이끌려서, 사쿠라와 엄청 놀았다. 오래간만에 가족다운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게 기뻐서 침대에 숨어 들어와 응석부리지 않았을까? 나와 사쿠라는, 정말 남매와 다름없이 지내왔다. 분명 최근에는 외로웠겠지.

――무심결에, 사쿠라의 작은 손을 잡는다. 놀라서 나를 뒤돌아보는 사쿠라. 그녀의 흑발이 찰랑 흔들린다. 까맣고 예쁜 눈동자...... 그 눈동자를 나는 바라보면서 입을 연다.

 

 

사쿠라, 그렇게 화내지 마. 이제부터는 너와 조금은 놀 수 있으니까

 

, 오빠!? ?! 진짜로....... ? .....그래도, 되는 거야?

 

 

놀랐는지, 왼손을 입가에 대고 큰 눈을 한층 더 크게 뜨는 사쿠라. 봄의 햇빛이 사쿠라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해서 순간, 숨을 들이마실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 사쿠라는 소중한 가족이니까

 

......바보, 어차피 저렇게 끝날 거라는 거 알았다구! 실망 같은 거 안 했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 하는 기세로 내 몸은 냅다 밀쳐져서 폭신한 도로, 웅덩이 위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철썩......하고 젖는 엉덩이. 그래, 마치 실금한 듯이...

――초등학생에게는 꽤 심한 오해다.

 

 

아얏, 어이, 사쿠라, 무슨 짓을!

 

, 미안해. , 오빠, 빨리 학교에 안 가면 지각해. 일으켜줄게.

 

, 잠깐만, 갈아입을 옷을......

 

 

하지만 팔을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나. 사쿠라와 나이는 2살 차이나지만, 이 녀석은 손발이 슬림하고 길고, 현시점에서는 나와 체격이 별로 차이 없다. 젖어서 차가운 엉덩이인 채로... 대체 어디에 그렇게 힘이 있는 거지? 그런 기세로 질질 끌려간다.

 

 

아하하, 학교에 가면, 모두한테 퍼뜨릴 거니까...... 수재라고 소문난 오빠가, 아침에 오줌 싸다니

 

 

잠깐, 기다리라고 사쿠라. , 눈이 무서워, 엄청 무섭다고. , 농담이지? 아하하

 

 

매우 예쁜 미소로 활짝 미소 짓는 소꿉친구. 대체, 내 뭐가 나빴다는 거지? 마마와 어머니가 있는 집에도 들르지 않고, 쿵쿵하고 학교를 향해 돌진해간다.

핑크색 가디건, 약간 후릴이 장식된 연보라색 스커트, 사쿠라가 마음에 들어 하는 하얀 리본. 모두가 사랑스러울 텐데, 그것들을 몸에 두른 사쿠라에게서는, 어쩐지 한기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가족한테 농담 같은 건 안 하니까. , 가자..... 아키라 오빠

 

, 뭘 화내는 건데

 

화 안 냈다구!!

 

.............죄송합니다.

 

(오레)의 지식이 거의 완전히 있는 (보쿠). , 학력으로 말하자면 대학생 이상의 지식이 있음에도 이 모양. ......서로 섞인 상태인 나, 그 학교생활은, 이런 느낌으로, 최악의 스타트가 되었다.

 

 

사쿠라와 만난 마지막 날의 짧은 기억. 그것은 가슴 어딘가에, 소중히...... 정말 깊이 간직되어, 결코 잊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날 때, 욱신욱신하고 둔탁한 아픔을 수반해서,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계속 상처 입힌다. 그래도, 그 아픔......... 어쩔 수 없는 그 슬픔이야말로, 의사가 된 자신을 떠받쳐 주었던 것이라는 것을, 지금이라면 안다.

 

――계절은 봄, 의사가 된 지 얼마 안 된 내가, 무모하게도 NGO에 참가하려고,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당일 아침.

새하얀 병실에 내리쬐는 봄의 부드러운 햇빛과, 바람에 흩날리는 연분홍빛 꽃잎...... 소꿉친구와 같은 이름인 꽃잎이, 열린 창을 통해 들어와, 둥실둥실하고 사쿠라가 누워있는 침대에 흩날리며 떨어진다. 변함없이 온화한 숨소리를 내고 있는, 아름답게 성장한 소꿉친구.

그녀의 고동에 맞추어 삑, , 하고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는 베드 사이트 모니터에도, 연분홍빛 꽃잎이 한 장 팔랑팔랑 흩날리며 떨어졌다.

 

 

사쿠라, 잠깐 진찰할 테니까. 저기, 꺼림직한 마음 같은 게 아니라고. , 제대로 의사가 될 수 있었어. 굉장하지?

 

 

새하얀 침대에 눕혀진 채로, 변함없이 눈이 감긴 채인 소꿉친구를 향해, 새삼스럽게 크게 얘기했다. 대답은 없다. 하지만, 사쿠라가 입은 옷의 앞가슴을 약간 벌리고, 우쇄골에 박힌 IVH의 카테터를 점검.

Intravenous Hyperalimentation 줄여서 IVH――중심 정맥 영양법, 장기간에 걸쳐 스스로 식사를 섭취할 수 없는 환자의 중심 정맥(체내에서 뻗은 굵은 정맥)에 직접, ――카테터를 삽입해, 영양가가 높은 수액을 보충시키는 방법.

여기 닥터의 기술은 명의와 평판이 높고, 나 같은 것보다 훨씬 경험도 많다. 나 같은 게 이런 짓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런데도 사쿠라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아프지 않아? 사쿠라?

 

 

밝게 말을 건네 보지만 대답은 없다. 소꿉친구의 가녀린 몸, 뼈가 앙상한 피부, 새하얀 피부에 굵은 바늘이 박힌 부분이 눈에 강렬하게 새겨져, 갑자기 넘쳐흐를 것 같아서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모니터로 바이탈을 체크. 괜찮아...... 전부 문제없이 안정되어 있어.

아니, 그건 당연하다. 사쿠라는 나 같은 외과의 풋내기가 아니라, 몇 년이나 전부터 베테랑 내과의에게 진찰받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사쿠라의 몸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 단순한 아집에 불과하다. 아무튼,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은 없겠지만.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소꿉친구와 일찍이 주고받은 약속 같은 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신만 생각하고 의사를 향해 앞 달려간 나.

그렇게 차가운 나를, 그런데도 따라 오려고 했던 건가? 아니면 우연일까? 간호사 자격을 따려고 도쿄의 간호학교에 입학했던 사쿠라. 하지만 몇 년 전......

 

 

사쿠라, 나도 힘낼 테니까. 너도, 힘내

 

 

작게 속삭이며, 간단한 선물로 사쿠라가 굉장히 좋아하는 먹거리...... 아레르야의 롤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 두려고 움직인다. 이 녀석이 눈을 떴을 때,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 안에 있는, 지난주 내가 문병하러 왔을 때 넣어둔 같은 케이크――당연히, 먹은 흔적 같은 건 있을 리 없다.――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쿠라, 빨리 일어나줘. 케이크, ......썩어 버리잖아. 단 걸 좋아했던 너답지 않다고.

 

 

목 안쪽에서부터 넘쳐 나올 것 같은 절규...... 그것을 억지로 누르며, 소꿉친구의 손가락을 손댄다. 깔끔하게 정돈된 손톱――간호사 분이 착실히 손질해준 거겠지――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숨소리를 내고 있는 사쿠라를 계속 바라본다.

NGO에 간다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 소꿉친구는 화낼까? 아니면 응원해줄까?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과 다름없이 자란 사쿠라.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지금의 그녀와 대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이다.

 

 

그러면, 갔다 올게. 아프리카는 분명 괴롭겠지만...... 조금이라도, 스킬을 갈고 닦아서, 사람들의 도움이 되고 싶어.

 

 

의학은 자꾸자꾸 진보를 계속한다, 사쿠라는 장래에, 반드시 눈을 뜬다고 믿는다. 그 때, 내가 훌륭하게 의사로서 힘낼 수 있도록,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여기서 의사로서 사쿠라를 치료할 수 있다면, 계속 남아도 좋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머니와 같은 외과의 길로 나아간 내게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경험을 쌓아, 기술을 갈고 닦는 일을.

――분명 사쿠라도 기뻐해 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열린 창을 통해, 차례차례로 들어오는 벚꽃의 꽃잎. 살짝 한 장, 그 연분홍빛 조각을 꽉 쥐고 병실에서 복도로 주저 없이 나왔다. 아프리카――빈부 없는 의료단에서, 힘껏 노력해 보기 위해.

 

 

 

 ◆◆

 

뺨을 따라 눈물이 흘러 내려간다...... 그 감촉으로 나는 깨어났다. 확실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픈 기분인 채, 천천히 눈을 떠간다.

우선 눈에 확 들어온 것은, 욕실에서 금방 나와 알몸인 채로 내 가슴에 붙어서, 흐느껴 울고 있는 사쿠라. 목욕 타올로 내 몸을 감싸고 작은 양손으로 매달려있다. 계속 오열하면서, 가녀린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마치 새끼 고양이처럼.

 

 

사쿠라, 아파. 아프니까 손톱 좀

 

, 오빠!? 일어났어?! 정말, 바보, 바보! 바봇!!

 

 

아프다고 말하는데도 상관없이, 쓸데없이 손톱을 세우는 소꿉친구. 그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해서, 운 탓이겠지...... 콧물까지 나왔지만, 지적할 용기는 내겐 없다.

 

 

사쿠라, 난 얼마나 기절했었어?

 

 

주변을 둘러보면, 여기는 욕실 밖에 있는 복도. 심호흡을 하면서, 손을 뻗어 사쿠라의 까만 머리카락을 손댄다.――아직 물기가 남아 있어서 몸도 따듯하다――이 상태라면 대략 5분 정도겠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훌쩍이는 사쿠라의 손을 잡아당긴다.

 

 

....... 잠깐, 5분 정도라구. 그래도,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계속 내 이름만 부르고 있어서......

 

「――아앗!? 아파, 손톱, 손톱이 아프다고 말했잖아, 바보 사쿠라

 

 

잡은 채인 사쿠라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꽉꽉 누른다. 피가 나올 정도로 세진 않았지만, 너무 아프다. 찌릿..... 하는 눈초리로 아래에서 나를 올려다보며, 원망하는 듯한 소리를 내는 사쿠라.

 

 

선생님 부르려고 전화하려고 했더니, 계속 사쿠라, 사쿠라 라고 소리쳐서 옆에서 떨어질 수 없어서. 오빠 얼굴을 보면 울고 있고..... 엄청 무서웠어.

 

잠깐 현기증 난 것 같아...... 걱정 끼쳐서 미안

 

 

사쿠라의 손을 떼어 놓고, 볼을 부풀린 채인 얼굴을 향해 목욕 타올을 던진다.

 

 

「――――!? , 걱정 같은 건 안 했다!

 

 

사쿠라의 허둥지둥한 목소리, 그리고 시선을 피하듯이 등지고,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지금 자신의 상황, 대체 나는 어떻게 된 걸까? 를 말이다.

의식은 선명했고, 욕실에서 나온 뒤의 멍함은 없다. 확실히 초등학생인 (보쿠)라도 자각이 있다. 하지만, 지식이 다르다. 머리의 어딘가가 변했다.

눈을 감고, 제대로 집중하면, 인간의 몸 구조...... 장기가 어떻게 되어 있고, 주요 혈관은 어떤 것이며, 순환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런 것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넘쳐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급의학에 대한 지식. 이건 어떤 건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치 미래의 (오레)에게서 현재의 (보쿠)에게 의료와 지식의 데이터가 전송된 것 같다. 그러나, 기억.....이라고 할까 추억은 전혀 없었다. 단 하나의 예외가, 사쿠라가 장래에.......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기억.

사쿠라와 어머니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에는 무엇 하나 변함은 없다. 사쿠라와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보쿠)(오레)를 이어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공포는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족...... 사쿠라와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몇 살일지라도 (보쿠)니까.

그리고, 사쿠라가 저렇게 되는 미래를 절대로 막아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지킨다...... 내 상태가 어떨까? 그건 모르겠지만, 단지 소꿉친구를 지킨다고 심플하게 생각해간다.

 

 

「――사쿠라, 약속할게.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

 

 

뒤돌아보고, 사쿠라의 눈을 바라보며, 강한 결의를 표명하듯이 단언한다. 의사로서 사쿠라의 오빠 같은 존재로서...... 병실 침대에서 잠든 채로, 가녀린 몸에 수많은 카테터가 삽입되어 모니터에 감시되는 소꿉친구의 모습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내가 갑자기 한 선언에 놀랐는지, 큰 눈동자를 데굴데굴 상하좌우로 굴리며, 멍한 표정을 짓는 사쿠라. 그 부드러울 것 같은 뺨이, 단번에 새빨갛게 물들어간다.

 

 

, , .....!? , 그 말은...... 오빠, 저기...... 그러니까......... , ......안 돼, , 기쁜데...... 부끄러워서 말 못해.

 

사쿠라는 가족, 여동생 같은 거니까 말야. 어머니와 나와 사쿠라..... 계속 건강하게 지내고 싶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뭔가 작은 소리로 속닥속닥거리는 사쿠라. 하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도 뭐, 아무리 가족과 다름없어도,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상했을까?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도 약간 부끄러워져서, 나는 변명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사쿠라 옆을 지나가며 부엌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어어!? 가족!? 여동생?! , 잠깐 기다리라구, 오빠, 뭐야 그거!

 

 

어쩐지 화난듯한 사쿠라의 큰 소리를 들은 체 만체하며 부엌에 겨우 도착해서, 냉장고 안을 체크한다.

――우유, 소맥분, 버터, 닭다리, 당근, 양파, 감자. 역시 어머니, 적당한 식재료는 갖춰져 있었다.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소꿉친구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재빨리 재료를 체에 담아간다.

 

 

오빠, 진짜, 바보, 바보, 바봇!! 무슨 말이야? 설명하라구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부엌에서 소리치는 사쿠라. 마음에 드는 핑크색 물방울이 프린트 된 파자마를 입고 있지만, 당황하며 입은 탓인지...... 바지 앞뒤가 바뀌었다. ――애초에, 왜 사쿠라가 이렇게 화내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재료를 넣은 체를 일단 테이블에 두고, 왜 그러는지 모를 사쿠라를 어떻게든 달래려고, 나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엄청 얼굴이 빨개. 사쿠라, 원숭이 같아. 거기에 파자마도 거꾸로 입었어.

 

 

무심결에 입에서 솔직한 감상이 넘쳐흘렀다. 말이 없는 채, 부들부들 온몸을 떠는 소꿉친구. 그리고 다음 순간, 휙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감자.

 

 

잠깐, 잠깐만, 사쿠라. 진정해, 진정하래도

 

시끄러, 오빠는 바보, 죽엇! 죽어버려!

 

 

흑발을 찰랑찰랑 흩날리며, 전력으로 감자를 던지는 사쿠라. 예쁜 눈동자는 치켜 올라가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본다.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히는 감자.

 

 

, 그만하라니까, 바보 사쿠라! 가족이잖아, 사이좋게 지내자고

 

「――!!! 몰라! 오빠는 바보!

 

 

감자가 끝난 뒤에는 양파, 당근을 내던지는 소꿉친구. 벽이나 냉장고에 부딪힌 그것들이 데굴데굴 바닥으로 떨어진다. 빠각하고 부러진 당근......, 퍽하고 패인 양파. 벽에 일부분이 깎인 감자.

――아무래도, 오늘 밤의 스튜는, 대단히 야성미 넘치는 요리가 될 것 같았다.

 

 

 

 

◆◆◆

 

 

사쿠라, 맛있었어?

 

 

말이 없는 채, 거북한 식사가 끝난 뒤, 내 근처...... 마음에 드는 소파에서 무릎을 껴안고 앉은 소꿉친구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해주는 사쿠라....... 변함없이 말이 없는 채, 가만히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기분 풀라고. 사과할 테니까

 

 

폭신폭신한 소꿉친구의 뺨을 쿡쿡 찌른다. 사쿠라의 피부는 고와서, 정말 예쁘다고 생각한다. 내 오른손을 파리라도 쫓아내듯이 성가신 것처럼 왼손을 흔드는 그녀. 그리고,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본 채로, 사쿠라의 핑크빛 입술이 움직인다.

 

 

오빠, 뭔가 숨기지 않아?

 

 

라며 중얼거리는 사쿠라. 화내는 느낌이 아니라, 진지한 표정. 나를 새까만 눈동자로 잡은 채, 뚫어져라...... 올려다본다. 어딘가 어른스러운 아름다운 표정에, 내 심장소리가 빨라진다.

무엇보다도, 사쿠라의 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 뭐가?

 

요리....... 아키라 오빠가 요령이 좋아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건 알아. 엄청 노력가라는 것도 알아. 그래도, 오늘 밤에 한 요리는 이상하다구. 맛있을 뿐만 아니라...... 만드는 데 익숙하다는 느낌

 

 

사쿠라의 지적에, 꿀꺽...... 침을 삼켜버린다. 확실히 사쿠라가 말하는 대로, 요리할 때, 내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는 느낌이었다.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다음에 뭘 하면 좋은지? 를 몸이 알고 움직이는 식으로.

 

 

, 가끔이라고. 전에, 어머니를 도와드린 지 별로 안 돼서 그래. 그래서, 왠지 기억나서

 

 

횡설수설해질 것 같은 입을 집어넣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단언한다. 뚫어져라..... 올려다보는 사쿠라. 그 잘 갖춰진 얼굴을 계속 보지 못하고, 무심코 눈을 딴 데로 돌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납득했는지, 하아......하고 한숨을 쉬는 사쿠라. 팔을 위로 뻗고, 천천히 말을 꺼낸다.

 

 

-, 그럼 괜찮은데...... 어쩐지, 이상하다구. 미묘하게 다정하구. 아무튼, 바보인 건 그대로지만 말야

 

바보라고 하는 쪽이 바보라고. 바보 사쿠라

 

「――!?

 

 

순간, 서로 째려본 뒤, 펑펑하고 쿠션으로 서로 두들기는 우리들. 부드러운 쿠션으로 서로 장난하면서,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내 상태는 될 수 있으면 비밀로 하고 싶었다. 이런 말을 해도, 믿어줄 리도 없고, 애초에 사쿠라에게 뭐라고 말하면 돼?

 

 

미래에 사쿠라는 식물인간이 될 지도 몰라

 

 

그런 무서운 말을 해서 뭐가 돼? 올지 어떨지도 모르는 미래를 무서워하게 해서 어떻게 할 건데?

 

 

아야, 잠깐, 사쿠라, 찌르는 건 그만해, 잠깐, 아파

 

아하하, 여자애를 좋아하다 말게 한 벌이라구, 오빠. 얌전히 있어.

 

 

순진한 미소를 띠는 사쿠라. 조금 전까지의 부풀린 볼은 없고, 즐거운 듯이 미소 지으며 공격해온다.――어딘가, 꼬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단순한 초 S일지도...... 서로 웃으면서, 소파 위에서, 펑펑하고 쿠션을 휘두른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을 힘껏 즐기고, 다시 의사가 된다, 그리고 사쿠라를 지키는 것. 그녀의 미소를 보면서, 내가 그렇게 결의를 굳혔을 때.

 

 

다녀왔어. 아키라, 사쿠라 짱, 사이좋게 지냈어?

 

 

멀리 현관에서 들려온 그리운 목소리.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당황해서 쿠션을 정리하고 소파의 진 주름을 펴려는 사쿠라.

그 작은 손을 이끌어, 우리들은 나란히 현관까지 마중하러 간다.

 

 

어서 와요, 어머니. 그리고, 다녀오셨어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실례 중이에요.

 

그래. 어머, 사이가 좋네, 후후, 진짜 남매 같아.

 

 

현관에서 미소 짓는 어머니의 미소. 쇼트 컷 머리, 입가에 살짝 보이는 덧니. 안경 안 쪽의 기쁜듯한 눈동자. ――그 모습은 기억 속에 있는 것보다, 한층 더 아름답고 귀엽고, 젊었다. 어머니가 아니라, 누나라고 오해받은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 하고 코에 소독액 냄새가 난다. 그것은 의붓어머니의 향기.

비록 피가 이어지지 않았어도, 우리들은 진정한 가족과 마찬가지다. 의붓어머니의 향기에 싸이면서, 나는 혼자 깊이 수긍했다.

 

 

 

과거로 돌아와 소꿉친구와 재회했더니, 터무니없는 츤데레였던 모양

 

1

 

 

소독액의 코를 찌르는 냄새, 나는 어릴 적부터 그 냄새를 정말 좋아했다. 그건 역시, 어머니의 직업이 의사였으니까...... 라는 게 이유일 것이다.

철이 들었을 무렵에는 이미 아버지는 없었다. 남아 있는 기억의 처음은 어머니의 모습 뿐, 아버지가 어떤 얼굴이었는지조차 모르고, 애초에 흥미도 없다.

아직 논이 남은 작은 마을에서 진료소를 열어, 여자 혼자만의 힘으로 애정을 쏟아 준 아름다운 어머니. 안경 안 쪽에서 눈을 가느다랗게 하고 웃으면 힐끗 보이는 귀여운 덧니, 젊은 외모인 채로 조금도 쇠약해지는 기미가 없는 미모.

어렸을 때, 바쁜 나날 속에서, 보기 드물게 어리광부릴 수 있을 때 껴안으면, 여러 약품의 냄새 중에서, 소독액의 알코올 냄새가 한층 강하게 나고, 어느 샌가 내 마음 속에서는 소독액과 어머니의 냄새가 같은 것이 되어 있던 게 틀림없다.

 

 

어머, 후후, 아키라는 참, 어리광쟁이네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머니가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는 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정말 좋았다.

어머니의 냄새――아니, 소독약 냄새를 맡으며 계속 성장해서 장래의 꿈으로서 의사에 뜻을 두게 된 것은, 어느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근처에 사는 2세 연하의 소녀, 사쿠라와는 자주 병원놀이를 한 기억이 있다. 사람이 적은 시골에서, 근처에 사는 아이는 사쿠라밖에 없어서, 그리고 그녀도 내게 잘 따라주었다. 내가 의사, 그리고 사쿠라는 간호사. 망가진 인형이나 봉제인형을 써서, 눈동냥으로 수술 흉내 같은 것을 내던 기억이 있다.

 

 

, 어른이 되면 아키라 오빠하고 같이 병원에서 일할 거야.

 

 

사쿠라의 반짝반짝한 눈동자와, 소녀로서는 잘 갖춰진 얼굴 생김새에 약간 갈팡질팡하면서 끄덕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 때는, 역시 여자애 쪽이 정신적으로 어른이겠지...... 소꿉친구인 사쿠라는, 어른이 되면 나와 같이 있겠다고 자주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의 이야기. 도쿄의 모 유명 중학교에 기적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던 나는, 새롭게 시작된 기숙사 생활과, 무서울 정도로 어려운 공부로 너덜너덜 지쳐서, 그런 약속 같은 건 잊어버리고 떠나버렸다. 1년에 며칠만 친가에 돌아갈 수 있었지만, 그 며칠도 대량의 과제에 쫓겨 사쿠라와는 몇 시간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 대학입시. 원래 시골의 진료의인 어머니에게 여분의 저축 같은 건 있을 리도 없고, 사립 의대에 들어갈 경제적인 여유는 없었다. 추천을 받기 위해서 그리고 국립 의대에 합격하기 위해서, 매일 죽을 각오로 공부를 계속했다.

놀고 싶었다......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가슴 속에는 어머니의 등이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아침이나 밤도 없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던 어머니의 등 뒤. 그 따뜻하고 다정한 등 뒤를 계속 뒤쫓아 주위 사람들에게 격려 받아 대학에 합격, 그리고 괴로운 연수 기간을 거쳐 드디어 의사가 될 수 있었던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곧바로 NGO에 참가하기로 결단했다.

 

통칭――빈부 없는 의료단. 가난한 국가나 분쟁 지역에서, 무상으로 의료행위에 종사하는 의료의 프로패셔널들. 사상, 인종, 종교, 국경도 관계없이 단지 오로지 환자를 계속 구하는 날들.

――처음 1년은 까놓고 말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일본에서 배운 의료와는 어떤 것과도 다르다. 요구되는 스피드는 굉장하고, 순간의 망설임이 가차 없이 환자의 생명을 빼앗는다.

허락되지 않는 오진...... 치료할 수 있을까 없을까? 를 순간적으로 가려내는 일. 항상 부족한 물자와 지금 있는 기구만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의 판단. 언어와 풍습이 다른 환자들과의 벽.

그리고, 요구되는 고도의 수술 스킬.

처음 1년은, 매일 당직이 끝날 때, 극도의 프레셔로 인해 토했었다.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고 운 밤은 셀 수도 없고, 지나친 피로로 혈뇨를 흘린 적도 있었다.

여러 가지 언어가 난무하면서, 살기를 띤 가족에게 맞은 적도 전부 셀 수 없다. 구할 수 없는 환자 쪽이 많은 분쟁 지역에서의 의료 행위, 모처럼 치료할 수 있었던 환자가, 퇴원한 다음날 전몰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내 몸에 몇 개의 상처 자국과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 생겼을 때......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그렇다, ――각오 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제대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자신이 의사인 것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구하는 일, 조금이라도 좋아진다고 희망을 계속 갖는 것을 배웠다. 수술 스킬은 아직이었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에게 자신감이 붙으면서, 기술도 향상되었다.

스탭과 신뢰할 수 있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서로 보충하는 날들. 고통과 프레셔 뿐이었던 매일에, 조금씩, 달성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또 1년이 지나, 당초 계획했던 NGO 기간이 끝나고, 일본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는, 나는 상당히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거의 전원의 스탭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구한 환자들도 몇 명이나 눈물을 흘려주었다.

 

 

헤이, 아키라, 또 봐. 기다릴 테니까, 빨리 돌아오라고

 

 

처음 1, 나를 실컷 꾸짖고 지도해 준 의료단의 치프――세르게프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기쁜 나머지 눈물이 흘러넘쳤다. 세계에서도 톱 클래스인 구급 의료 팀의 리더에게 칭찬받은 것, 그건 엄청나게 명예로운 것이니까.

어쨌든 지금은, 시골에서 의사를 계속하는 어머니를 3년 만에 만나고, 다시 여기에 돌아올지 생각하자...... 아니, 분명 돌아오게 된다. 고 생각하면서, 나는 짐을 덕지덕지 짊어지고,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 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그 비행기가 모든 시작이 되리라는 것을, 무엇 하나도 모르는 채로.

 

 

 

 

◆◆

 

......그건 테러였는지, 단순한 사고였는지, 내게는 알 길이 없었다.

, 어쨌든...... 탑승한 비행기――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 국제 공항발, 런던, 히스로 비행편은 추락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한 순간......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고, 찢어지는듯한 비명이 들렸다고 생각했더니, 몸 전체에 붕.......하는 무서운 느낌이 습격했다. 고층빌딩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의, -웅하는 감각을 몇 배나 크게 한 듯한 느낌.

무슨 일이 일어났지? 전신을 덮치는 감각...... 이것은, 추락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무중력 감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내 두 발은 공포로 바짝 섰다. 어느 샌가 눈앞에 산소마스크가 흔들흔들 거리고 있어 긴급사태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침착하게 산소마스크를 장착하고, 다리를 껴안듯이 상체를 숙여주세요. 반복합니다. 침착하시고 산소마스크를 장착한 뒤, 다리를 껴안듯이 상체를 숙여주세요.

 

 

, 거짓말이지!?

 

 

주위를 울리는 여러 가지 언어로 된 비명과 여러 신들을 향한 기도. 나는 무교였기 때문에 기도할 신은 없고, 대신에 뇌리에 떠오른 것은, 어머니의 변함없이 아름다운 미소와 친가 근처에 사는 2세 연하이자 여동생처럼 귀여워했던 소꿉친구, 사쿠라의 모습이었다.

그 뒤 차례차례로 떠오른 것은, 빈부 없는 의료단에서 함께 지냈던 동료들의 미소. 구할 수 있었던 환자...... 그리고 도와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 주마등......이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로, 진짜로 밑도 끝도 없이 여러 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 공포로 딱딱하고 이빨이 부딪히고, 비명과 같은 나약한 목소리가 목 안쪽에서 흘러넘친다.

 

 

, 그런......

 

 

지금까지 많이, 사람들의 죽음을 진찰해왔다. 옮겨 들어온 순간,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환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이고, 구급 치료를 했다고 해도 약이 충분하지 않아서 죽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아니, 치안이 나쁜 지역이었기 때문에, 유탄이 난무하는 곳에서 피난한 적도 있다. 강도에 습격당해서 지갑과 옷을 빼앗긴 적도......

그런데도, 확실히 닥쳐오는 죽음이라는 것은,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섭다. 그래,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 본능...... 생물로서의 본능이, 전력으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쳐서, 내 마음을 공포로 분발케 하려고 한다.

 

 

,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앗

 

 

옆 좌석에 있는 흑인 중년이 벌벌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신에 기원을 바치고 있다. 굉음과 추락하는 충격 속에서, 기원하는 말만은 왠지 확실히 들리는구나...... 하고 머리로 어디선가 멍하니 생각하면서도, 나도 공포로 무서워하며 울고 있었다. 패닉으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아니, 마음의 움직임을 뇌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은 상황.

시간으로 따지면, 분명 몇 초겠지. 하지만 그 몇 초는, 물엿처럼 꼬물꼬물하고 길게 늘어져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는다. 머릿속 일부는 변함없이 어머니와 소꿉친구의 모습을 비춘다. 다른 부분에서는, NGO 동료들이 미소 짓고, 환자들의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간다.

입에서는 비명과 군침이 넘쳐나고, 모처럼 동료에게 받은 슈트에 얼룩이 진 것을 보고, 그것을 아깝다고 느끼는 나를 느낀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모두가 공포로 전부 칠해져, 거기에서 도피하기 위해, 또 어머니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른다.

 

 

『――침착하게 산소마스크를 장착하고, 다리를 껴안듯이 상체를 숙여주세요. 반복합니다. 침착하시고 산소마스크를 장착한 뒤, 다리를 껴안듯이 상체를 숙여주세요.

 

 

어떤 국가의 말로 반복되는 기계음. 그 미친 듯이 큰 볼륨마저, 내게 공포를 느끼게 한다. 빙빙 주위가 돌아가는 감각. 급격한 기압 변화로, 참지 못할 구토감과 두통. 귀 울림에 참을 수 없다. 아니, 언제 고막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일 것이다.

――이제, 살아나지 못하겠지. 라고 뇌 일부에서 멍하니 생각하면서, 나는 꾸물꾸물하고 오른 팔을 움직여간다. 눈앞에 매달린 화려한 오렌지색의 산소마스크에, 간신히 손가락 끝이 닿는다. 산소...... 고농도의 산소를 들이마시면 동맥혈 산소 분압이 정상적으로...... 두서도 없이 떠오르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지식. 압도적인 공포로 실신할 것 같은 의식 속에서, 나는 입에서 위액이 섞인 침을 발밑으로 토해내고, 제대로 산소마스크를 장착했다.

눈을 감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반복한다. 기관을 빠져나가는 차가운 산소, 그 감각......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두근두근하고 파열할 것 같은 심장을 느끼며, 나는 전신의 모든 힘을 담아서 절규를 지른다. 주먹을 꽉 쥐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인생 마지막의 우렁찬 외침을 계속 지르고 있었다.

땅과 격돌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다는 생각과 빨리 기절해서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 엉망진창인 머릿속에서, 단지 계속해서 큰소리를 지르고.....

 

 

아키라 오빠, 괜찮아!?

 

 

어딘가 익숙한 소리로 나는 눈을 뜬다......(보쿠)? (오레)? 아니, 어라? , 여긴?

두리번두리번하고 주위를 바라본다. 여기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목욕탕, 본 적이 있는 세면기와 의자.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 쓱쓱 등을 닦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의..... 사쿠라!?

 

 

? , ?! 어라, , 비행기는? 그보다......어라.....?

 

 

허리 정도까지밖에 닿지 않는 미적지근한 온수에서 확하고 일어나면서, 나는 혼란의 극지에 있었다. 기억이 왠지 터무니없고 이상하다. 무엇보다도 몸이 작다...... 아니, 작은 건 당연...... 왜냐면 초등학생이니까.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지? 마치 나는 어른 같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키라 오빠, 괜찮아? 현기증 났어?

 

 

거품투성이인 몸으로, 내 얼굴을 사이에 두고 양손을 뻗어오는 사쿠라. 걱정스러운 듯이 똑바로 응시해오는 큰 눈동자가, 매우 아름답게 보여서...... 나는 기쁜 건지 부끄러운 건지, 변함없이 혼란스러운 기분인 채, 난폭하게 그 양손을 뿌리친다.

 

 

괜찮다고. 나 참, 애초에 사쿠라가 주스를 흘린 게 나빠.

 

「――!? 그렇지 않은 걸. 오빠가 간지럽힌 게 나빠! 저렇게 되면 누구라도 웃잖아.

 

 

뿌우 하고 볼을 부풀리면서, 나를 흘기는 사쿠라. 일본인형 같은 흑발의 직모가 물에 젖어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와 등에 붙어있다. 그것이 왠지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어서...... 이상하다, 지금까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얼굴이 왠지 뜨거워진다. 소꿉친구인 사쿠라와 같이 목욕한 적은 셀 수 없이 많고, 이 녀석은 얼굴은 뭐 좋다고 해도 성격은 최악인데...... 뭔가, 많이 이상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무심코 사쿠라의 새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바라보게 된다.

 

 

, 뭐야, 갑자기 입 다물고는. 바보!

 

 

그것이 사쿠라를 화나게 했는지, 이 녀석은 갑자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갑자기 세면기의 뜨거운 물을 마구 퍼붓는다.

 

 

, 시끄러워, , 먼저 나갈 거니까

 

 

이 녀석의 알몸을 보고, 뭔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유도 아니다――애초에, 사쿠라는 초등학생에 가슴은 평평하다――그래도, 왠지 엄청 부끄럽다. 분명 내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겠지. 소꿉친구의 몸이 가능한 한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하면서, 욕조에서 발을 꺼내고, 뜨거운 물로 젖은 타올을 걸치고 밖으로 향한다.

 

 

, , 기다리라구. 나도 나갈 거야.

 

 

주스로 더러워진 몸을 씻고 온수로 거품을 흘려낸 사쿠라가 힘차게 내 옆에 선다. 이 녀석은 정말, 항상 옆에 붙고, 가끔 방해......는 아닌데, 어쩐지 나는, 이렇게 같이 놀 수 있는 때는 지금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 사쿠라. 등 닦아줄게. 뒤 돌아봐

 

?! 오빠가 상냥하다니, , 왜 그래? 진짜로 괜찮아!?

 

, 진짜, 괜찮다고. , 빨리 뒤 돌아보라고. 바보 사쿠라!

 

 

목욕 타올을 들고, 우리들은 싸우듯이 장난치면서, 서로의 몸을 닦아준다. 탈의실에 있는 창문 밖은 이미 어슴푸레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급환으로 오늘 밤도 늦어진다고 말했었고, 사쿠라의 부모님은 매일 밤마다 일을 한다. 오늘 밤도 소꿉친구와 둘뿐이라서 떠들썩한 밤이 될 것 같다.

 

 

사쿠라, 오늘 밤은 스튜를 만들어 줄게.

 

 

떠드는 사쿠라를 달래면서, 그 윤기 나는 흑발을 닦으며 나는 말했다. 냉장고에 재료가 있다면....... 이 전제인 말이지만, 왠지 오래간만에 요리하고 싶은 기분. 냄비로 부글부글하고 익혀서...... 그래, 사쿠라는 별 모양으로 자른 당근을 좋아했었지.

 

 

!? 오빠가 요리? 아하하

 

뭐야, 이래봬도 의대에서 혼자 자취할 때는, 계속 요리했으니까...... 어라? 자취에, 의대?

 

 

의대.......라니 뭐야? 뭔가, 뭔가 이상하다. 내 전신에서 핏기가 빠지고, 시야가 어둡고 좁아져가는 느낌. 공연히 목이 마르다.

 

 

오빠? 역시 좀 이상하다구. 선생님 불러 올까?

 

 

걱정스러운 듯이 양손을 잡는 사쿠라. 작은 그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열을 느끼며, 나는 질질 바닥에 주저앉는다. 의식이 끊길듯한, 혼탁해질 것 같은 느낌. ――마치, 마취 투입에 분량을 잘못 넣은 것 같은 둥실둥실한 만취감.

맙소사, NGO에서는 그 나름대로 마취의도 해냈는데...... 이러면, 또 세르게프에게 혼나잖아.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쿠라가 뭔가 큰 소리로 외치는 것 같지만, 그 소리는 귀에 닿지 않는다.

내 몸을 덮는듯한 자세인 채 패닉이 된 사쿠라.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아, 이건 장래 엄청난 미인이 된다. ――아니, 미인이 됐던가? 사쿠라의 어리면서 잘 갖춰진 얼굴 생김새를 올려다보면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한다.

흔들흔들 내 몸을 흔들면서, 전력으로 매달리는 사쿠라. 그 몸의 부드러움과 온기를 느낀다. 대체,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나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졸린 것뿐...... 난 단지, 많이 졸린 것 뿐........

 

 

괜찮다니까, 사쿠라. 만나고 싶었을 뿐이야. 사쿠라와 어머니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었어.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입으로, 어떻게든 말을 끝마쳤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말이 되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아무튼, 상관없나.

마치 추락해가는 비행기를 타는듯한 느낌이 들어, 생각하기도 귀찮다. 빙글빙글 도는 시야.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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