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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등학교 편 전편

 

 

 

 ◆

 

 

강렬한 열기, 비릿한 혈액 냄새가 가득한 좁은 텐트 속, 나는 거친 호흡을 반복하면서, 두께 0.23mm의 라텍스제 장갑에 싸인 손끝을 계속 움직인다.

새하얀 시트로 튀는 선명한 빨강, 눈앞의 수술대 옆에 서 있는 소년의 몸. 그 육체는 파삭파삭 야위어 뼈가 드러나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 피부에 윤기가 없고 마치 노인처럼 보인다. 가혹한 노동과,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침범되고 있는 이 나라의 아이들.

하지만...... 그 몸 속에서 두근두근 맥박 치는 피만은, 인종, 국적 같은 것과 관계없이, 화상 입을 정도로 뜨겁다.

 

 

루프, 그리고 혈관 겸자를, 다음에 마취 준비, 2-0으로

 

Dr. 아키라! 이쪽을, *Blutdruck<혈압>저하! Pulse<맥박>미약입니다.

 

Blutdruck : 독일어로 혈압

 

 

바소프레신 40U투여! 이쪽을 봉합 후 바로 간다. 수혈은 어느 정도 하고 있어?

 

 

여러 언어가 날아다니는 공간 속에서,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는 땀을 닦으며, 필사적으로 양손과 뇌를 계속 움직인다.

에어컨 같은 건 전혀 효과가 없고, 몇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이 좁은 텐트 속에서, 나는 4시간 정도 전부터 계속 지시를 내리고, 진료를 반복하고, 차례차례로 옮겨져 들어오는 환자의 오퍼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니, 수술<오퍼>......같은 것이라 부를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단지, 필사적으로 피를 멈추고, 심장을 움직이게 하고, 호흡을 확보할 뿐인 전송대 작업.

백의 아래에 입은 옷은 트렁크스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서, 바지를 통해 마루까지 땀이 방울져 떨어져간다. 지나친 더위에 쉬지 않고 수분을 보급하면서, 단지 끝없이 손을 계속 움직인다.

 

 

Dr.-! 혈압 회복됐습니다..., 총상부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지혈효과가 없습니다! , 어떻게 해야!?

 

......좋아, 이쪽은 끝났다. 바로 간다! 괜찮아, 세리실. 우선 침착하고 시야확보를. 베버락, 그 애를 내보내고 다음 환자를 들인다.

 

 

지금부터 2년 전의 나와 같은 정도로 패닉에 빠진,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여의사, 세리실에게 지시를 퍼붓고 보조 스탭에게도 보충을 부탁한다. 마치 전장과 같은 소란함. 하지만, 옆의 텐트에서도 동료 닥터들이 필사적으로 구명을 하고 있다. 내 팀이 발을 늦출 순 없다.

――지금부터 반나절 정도 전, 의료 캠프를 설치하고 있는 거리의 학교 근처에서, 갑자기 폭동이 일어났다. 그것을 진압하려는 군대와 반발하는 민중의 소규모 전투는, 평소의 불만을 불씨로 눈 깜짝할 사이에 큰 소란이 된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이웃나라가 계속 내전을 하던 탓도 있어서, 놀랍게도 일반 시민이 간단히 소총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호신용 권총 같은 게 아닌, 군대에서 쓰이는 매우 강력한 병기.

AK-47이라는 이름의 자동소총을 서로 손에 넣은 군대와 민중은, 시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자비 없는 총격전을 시작하고 말았다. 거기에 말려들어가 버린 근처 학교 학생들.

결국, 군의 전차나 헬기가 출동해 진압을 실시했고, 그 뒤로 약 30, 반 지옥화한 듯이 피투성이가 된 환경에서, 우리들 NGO는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쪽이 나쁜가? 라든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었나? 누구나 평화롭게 살기위해서는? 이런 여러 가지로 생각해야 할 것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범한 의사로, ――사상, 종교, 빈부, 체제, 같은 것은 전부 상관없다. 단지 사라질 것 같은 생명을 구할 뿐인 존재다. 비록 그것이...... 죽음에 맞서는 헛된 항거였다 해도.

 

 

쿠퍼, 그리고 여기는 의식 레벨 저하...... 삽관 준비! ――! 세리실 침착해, 너의 힘이 필요해! 기도확보를

 

「ㄴ, Dr. 아키라, 미안해요

 

 

금발, 푸른 눈, 잘 갖춰진 섬세한 얼굴...... 드라마 같은 데서 자주 보이는 전형적인 백인 여자인 세리실이지만, 그 안색은 이 열기 속에서조차 무서울 정도로 핏기가 사라져 새파래진 상태다. 패닉 일보직전으로 빠듯이 참고 견디는...... 느낌이다.

쉬게 해야 할까? 하고 순간 망설이지만, 그러나 압도적인 일손부족이다, 어떻게든 그녀가 참고 일을 해줘야 한다. 거기에, 이것은 세리실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기는 연수용 대학 병원은 아니다. 나는 일부러 연달아 지시를 계속 내리며, 그녀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해나간다.

 

 

삽관완료! 젠장, 출혈성 쇼크다. 세리실, 도파민 투여 서둘러!, 알았어?

 

,

 

 

2년 전, 일본의 대학 병원에서 연수의를 하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르고 거친 진단. 아니, 그렇게 안 하면 늦는다.....는 것을 싫을 만큼 몸으로 익혔다. 여기와 일본 같은 선진국의 가장 큰 차이...... 그것은 살아난 뒤의 케어이기 때문이다.

구명 처치 뒤, 일본이면 청결한 환경, 충분한 약, 정기적인 예후 진료, 영양 보급이 당연하며, 그것은 즉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의미.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긴급하지 않으면 진료에 시간을 들여 애프터에 대해서 검토하고, 예를 들면 흉터가 남지 않는 수술 선택, 가능한 한 결손이 적은 수술 등을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살아남는 것그것이 전부.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는 부담을 육체에 줄 수는 없다. 쓸데없이 시간을 들여 육체에 부담을 주면, 그만큼 사망률은 높아진다. 구명 처치 뒤에 충분한 약 투여, 케어 따위는 기대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살아남는 것만을 우선하고, 심플하게 판단을 망설이지 않도록, 무엇보다도 빨리.

 

 

봉합종료! 바이탈은 안정됐어? 그러면......

 

미안해요 Dr., 이쪽의 아이, 방금 전 그늘에서 발견됐는데...... 심폐 정지 상태입니다!

 

「――――?!!

 

 

텐트 입구에서 분주히 옮겨져 들어오는 새로운 소년. 그 안색, 출혈 부위, 창상 상태, 본 순간, 그것은 분명히 늦었다는 것을 안, 알고 만 환자.

 

 

......늦었다. 다음 환자를 들여줘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멈추지 않는 것밖에 없다. 눈앞의 환자를 절대로 구할 수 없기 때문이야말로 더욱, 적어도 그 다음 환자는 구할 수 있게 빨리 움직인다. 만약, 그 다음 환자마저 구할 수 없었다 해도, 더더욱 그 다음 환자는 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는, 그렇게밖에, 사망자에게 보답할 방법이 없다.

 

 

세리실, 행동을 멈추지 마. 시간이 낭비된다.

 

 

텐트 밖에서 분명, 이 소년의 부모는 울 것이다. 힘써보지도 않고 버렸다고, 나를 원망마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팔을 멈출 순 없다, 여기서 주저앉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동요를 손끝에 드러내지 않게 심호흡을 반복하면서, 필사적으로 차례차례 옮겨져 들어오는 환자에게 처치를 내려간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NGO에 와서 몇 주가 지났을 때, 리더 세르게프에세 들은 말.

 

 

 ――2년 정도 전에 있었던 일. 오늘처럼 갑자기 분쟁이 일어나, 그 때의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텐트 안에서 우왕좌왕 할 뿐.

그날 밤,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 너무도 쉽게 사라지는 아이의 생명, 내 실력의 하찮음, 정신의 한심함에 쇼크를 받아 내 방 침대에서 혼자 계속 구토하면서 울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손발이 뜯긴 초등학생만한 소년이나, 피투성가 된 자기 자식을 꼭 껴안은 모친의 모습이 플래시백되어, 내 마음을 강렬히 박살낸다.

토할 것은 이미 사라져 위액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고열로 의식이 흐릿해진 것처럼 입술은 까칠까칠, 어금니가 딱딱하고 부딪힌다. 온몸에 떨림이 멎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상태인데도, 육체, 정신 모두 한계를 넘었는지, 어느 샌가 꾸벅꾸벅 얕게 자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 이상은 없을 만큼 심한 악몽을 꾸고 깨어난다. 패닉과 자신의 한심함으로 다시 구토가 나서, 침대 옆에 두었던 물통에 얼굴을 숙인 내 등 뒤...... 그것이 천천히 그리고 강력히 문질러졌다.

 

 

「――?!

 

아키라, 나다. 침착하고 심호흡해라. 아니, 무리하게 말하려고 하지 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아.

 

 

큰 손이 규칙적으로 천천히 내 등을 어루만지며, 세르게프의 낮은 목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어째서 내 방에? 이런 의문이 순간 떠오르지만, 끓어오르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다시 물통에 얼굴을 박는다.

 

 

자네가 오늘 있었던 일로 자신을 탓하는 것은 마음대로이고, 위로하려고는 생각지 않아. 내가 너의 감정을 이해해줄 수는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확실히 너는 미숙하고, 판단도 늦고 경험도 부족하니까 말이다.

 

 

세월을 겹겹이 쌓은 거대한 바위 같은 세르게프의 낮은 목소리...... 그것이, 내 마음에 스며드는 듯이 울려 퍼졌다. 등을 어루만지는 큰 손의 따스함과 냉철한 말이, 패닉이 날 것 같았던 내 마음을 진정시켜간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아키라...... 자신을 탓할 틈이 있다면, 그 때 어떻게 해야 좋았을까? 그렇게 계속 생각해라. 괴로워서 구토하면서라도 좋아, 어떤 상태면 사람은 살아나지 않고, 반대로 어떤 증례라면 살아나게 할 수 있는지, 이렇게 하나씩 증례를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낸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죽음에 직면한다. 그것은 의사로서 사는 이상,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야. 좀 더 비참한 일도 많이 있지.

 

 

세르게프의 말로, 다시 머리에 여러 사람의 죽음이 떠오른다. 흉탄이 박혀서 엉망진창 된 내장. 도망치려고 우왕좌왕하는 사람에게 밟힌 갓난아이. 촉진하는 내 손끝에서, 자꾸만 체온이 사라져, 마치 고무처럼 되어가는 피부의 감촉.

모든 죽음의 영상이 머리에 떠오른다. 자신에 대한 혐오, 무력감, 사는 의미, 존재하는 의미 같은 것이 뭉뚱그려져 뇌를 후벼 판다.

 

 

알겠나 아키라, 우리들 의사는 누구보다도 많이 사람들의 최후를 진찰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사신이 된 것 같은 최악의 기분이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그것을 교재로 다음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경험으로 삼아야만 해. 자신은 무력하다, 한심하다, 불쌍하다고 자신을 탓하며 우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사람의 죽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다음 사람을 구하기 위한 양식으로 하는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죽음이 정말로 헛된다. 이해할 수 있겠어?

 

 

세르게프의 조용한 목소리에, 콧물과 눈물을 흘리며, 입술에 위액이 묻은 채인 나는 몇 번이고 끄덕였다. 자신을 탓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지점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죽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된다는.......것을.

 ――솔직히 말하면, 그 때의 나는 리더 세르게프가 한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만 알았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 완전히는 모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말에 어딘가 구원받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을 탓하고 울며 아우성칠 틈이 있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목표로 하는 것. 나는 지금도, 사람의 죽음과 마주보면서, 계속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

 

 

전신마취를 실시한다. 황산 아트로핀 0.5, 도입 서둘러! 좋아 세리실, 넌 잘하고 있어, 계속 보충 부탁한다.

 

....., , 닥터 아키라. 보충 들어갑니다!

 

 

눈물로 눈이 새빨갛게 붓고, 입술을 깨물며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세리실. 그리고, 내 지시로 움직이는 스탭들. 그들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좀 더 스킬을 갈고 닦는다.

아직도 내게는 경험이 부족하다...... 아니, 분명 의사에게 완전한 경험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순간, 그 순간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빠듯이까지 사람을 구하는 일. 그리고 구할 수 없으면, 그 다음이야말로 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오레)의 기술과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사람은 어떻게 죽는다 해도, 분명 헛되지 않는다. 그렇게 믿고 노력해간다고 각오를 정하고 NGO에서의 폭풍 같은 나날을 나는 계속 보낸다.

 

 

 

 

 ◆◆

 

 

 

으으......

 

 

머리맡에 둔 자명종으로 손을 뻗어, 삐삐삐......하고 계속 울리는 전자시계를 두드려 멈췄다. 뭔가...... 또렷한, 마치 현실 같이 생생한 꿈을 꾼 것 같다.

요즘 들어 며칠 간...... 계속 꿈이 나쁘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나, 집에서의 공부시간에, 항상 장기를 뎃생하거나 구명 처치를 이미지 트레이닝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며칠 전 (오레)에게 지식을 물려받은 일이 관계되어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저녁, 꿈속에서 강렬한 체험을 한다......는 이런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꿈을 꿀 때, 뭔가 내 마음에 소중한 경험이 포개져서 충실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라고 해야 할까, 꿈의 내용은 전혀 생각해낼 수 없지만, 자고 일어났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권태감이 있다. 거기에 오늘 꾼 꿈은 한층 하드했던 탓인지, 식은땀에 파자마가 심하게 흠뻑 젖어 있었다.

 

 

우와아...... 어이, 사쿠라. 일어났어? , 그런가......

 

 

2층 침대 상단에서 기지개를 펴면서, 하단에서 자고 있어야 할 소꿉친구에게 얘기했다가 나는 깨닫는다.

오늘은 금요일...... 즉 내일은 휴일로 (보쿠)(오레)가 이어진 이상한 밤 이후로 며칠이 지나 겨우 첫 주말이 내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금요일이니까, 사쿠라는 거기 있으려나

 

 

포트리......라고 중얼거리며, 침대 계단을 내려간다. 매주 주말이 되면 소꿉친구는 친가에서 보내는 것이 일과. 사쿠라의 아버지――어떤 공장에 단신부임하고 있는 미소가 매우 따뜻한 분――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라는 근무 형태로, 매주 금요일이 되면 돌아오시기 때문이다.

사쿠라의 어머니인 마마와는 대학교 동기였다는 것 같고, 우연히 도쿄에 있는 바에서 재회해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 바로 사쿠라가 태어나게 되어, 친가가 있는 이 마을에 자택 겸 바를 지었다. 뭐라던가 마마가 너무 심심한 게 싫다고 떼를 썼댔나......

어쨌든, 소꿉친구의 집에서는 주말, 부모와 자식끼리 세 명이서 보내는 것이 일과. , 나도 어머니에게 급환이 들어갔을 때는, 평소와는 반대로 초대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런가, 방과후 어떻게 할까)

 

 

척척 등교 준비를 하면서, 나는 오늘 방과 후에 할 일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매 주말은 소란스런 사쿠라가 없어서, 자택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나날이었다. 바로 귀가하고 나서, 식사와 목욕 이외 시간은 오로지 참고서에 달라붙을 뿐인 날들.

하지만, 지금의 (보쿠)에게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이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뎃생을 계속할까? 아니면 사쿠라의 집에 실례할까? 그것도 좋다...... 하지만.

 

 

......도서관, 가볼까

 

 

요 며칠, 읍립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이유로는, 학교 도서관에 절대로 두지 않을법한, 고도의 의학서가 장서되어 있을 테니까. 대량의 책을 기증한 신에자키가는 유서 깊은 의사 가문이고, 다양한 의학서를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가슴이 크게 뛴다.

그래...... 그것이 독일어나 영어로 쓰여 있어도, 지금의 나라면 문제없이 읽을 수 있다. 게다가, 평소라면 그런 것을 읽고 있으면, 사쿠라에게 들켜서, 엄청나게 의심받겠지만, 오늘은 형편 좋게도 소꿉친구는 바로 귀가할 것이다.

즉 혼자서, 마음껏 독서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 그렇게 하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은 생각 같아 보인다. 특히 사쿠라와는 며칠 전, ......움찔움찔놀이를 한 밤 이래로, 나는 왠지 부끄러워서――사쿠라는 그렇다 생각하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어딘가 소악마 같이, 적극적으로 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얼굴을 맞대기가 괴롭다.

거기에 소꿉친구의 부모님에게 미안한, 주눅 드는 것 같은 이상한 마음도 있었다. 부글부글한 듯한 이유 모를 이상한 감정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

 

 

좋아,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에 왕진하러 나가서 아무도 없는 집. 하지만 활기차게 인사하면서, 나는 오늘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우선 사쿠라를 맞이하러 가서 등교. 점심시간, 방과 후까지 평소대로 보내고, 귀가하고 나서 읍립 도서관에서 혼자 차분히 의학책을 읽는다. 내가 생각한 것 치고도 완벽한 주말을 보내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 이 예측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은 다음에 알게 돼서 엄청 반성하게 되었지만.

 

 

 

 

 

 ◆◆◆

 

 

 

 

바늘방석이라는 것은 속담 세계 안에서만 있지만, 이 말을 생각해 낸 사람은 엄청 괴로웠겠구나......라고, 나는 반, 현실도피를 하듯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무서울 정도의 싸한 정적이 지배하는 읍립 도서관에서, 내 바로 눈앞에 신에자키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선이라는 것에 물리적인 힘이 있었다면, 그녀의 시선은 내 동체를 관통했음이 틀림없다.

당당히 가슴을 펴고, 확실히 별명대로 공주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신에자키 사오리. 새침......한 평소의 단정한 표정으로, 책에 얼굴을 파묻듯이 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늘고 가지런한 눈썹은 왼쪽만 약간 올라가고, 입술은 불쾌한 듯이 단단히 다물어져 있다. 매우 불길한 분위기.

하지만, 내 앞에서 신에자키가 떠날 기색은 없다.

 

 

(......, 어째서, 신에자키가 나를 흘겨보는 거야?)

 

 

무언가, 터무니없이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를 순서대로 생각해간다. 그래...... 도중까지, 학교가 끝날 때까지는 평소대로, 순조로웠다.

 

 

 ――겨우 이번 주 수업이 전부 끝난 방과 후, 반장, 칸나즈키 코이와 내일 토요일에 옆 동네로 쇼핑 갈 약속을 한 뒤, 나는 당초 예정대로 읍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쿠라가 같이 가자구!라고 실컷 불평했지만,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 해도, 내내 녀석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만은 없다.

뾰로통하고 마지못해 집에 돌아가는 사쿠라를 배웅한 뒤, 나는 조금 흥분하면서 개축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오오......

 

 

개축, 증축된 지 얼마 안 된 도서관은 입구에서 예쁜 사서 분이 미소 짓고,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도서실을 둘러싸는 큰 유리벽이, 외광을 부드럽게 거두어들이듯이 디자인되어 있어서 독서하는데 매우 적합한 밝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풍부하게 장식된 관엽 식물의 초록색이 아름답다, 입구에는 컴퓨터도 있는 2층의 큰 건물. 곳곳에 푹신할 것 같은 소파가 설치되어 느긋하게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장서도, 여러 큰 책장에 다양한 종류의 책을 빈틈없이 정리해놔서, 좀 더 빨리 왔으면 했다......고 나는 진심으로 분하게 생각했다.

 

 

그럼

 

 

그래서, 목적인 의학서는......? 하며 넓은 관내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던 나는, 중요한 의학서만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때, 나는 앗.....하고 깨닫는다.

 

(혹시, 폐가서고일지도 몰라)

 

거의 쓰일 일이 없는 책이나 오래된 귀중 서적은, 폐가서고로서 도서관 창고에 보관되는 경우가 있다......, 도서위원인 사쿠라에게 들은 적이 있다. 확실히 의학서는 보통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고, 신에자키가가 기증한 물건이라면 희소하고 귀중한 책도 많겠지.

하지만 여기는 읍립 도서관이고, 사서 분에게 말하면 적당히 읽게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는 입구에서 미소 짓던 예쁜 누나에게 부탁했다.

 

 

그럼, 여기에 이름과 나이, 학년, 그리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써주겠니? 이용자 카드를 만들면 부를 테니까, 잠깐 기다려줘

 

,

 

 

누나에게 들은 대로 필요한 사항을 쓴 뒤, 근처에 있는 책을 빼서 의자에 앉는다. 달그락달그락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리듬 좋은 소리를 들은 체 만 체하며, 느긋하게 안정감이 좋은 의자의 느낌을 만끽한다.

이런 느긋한 방과 후를 보내는 방식도 좋겠다, 라고 나는 책에 멍하니 시선을 자유롭게 두며 생각한다. 요즘, 꿈으로 굉장히 피곤했고, 사쿠라는 왠지 심술궂은 소악마 같아서 가슴이 이상한 느낌이고, 코이는 웃을 뿐이고...... 왠지 엄청...... 내 기분이 느슨해지려던 순간.

 

 

 

어머......히이라기 군? 네가 여기에 오다니 처음이네. 타처의 수재 씨가, 무슨 볼일이니?

 

「――, 신에자키? 아니, 별로

 

 

뒤에서 갑자기 속삭이는 소리. 그 작은 소리가, 원래 요염함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미소녀......그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미모. 만난 때와 변함없는 블레이저 코트를 걸친 교복에 큰 가슴 앞을 장식한 붉은 리본. 짧은 스커트에서 늘씬하게 뻗어나온 다리는 검은 타이츠에 싸여, 허리까지 닿는 흑발은 젖은 듯이 요염. 뭐라고 할까...... 강렬한 임팩트다.

 

 

........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말을 날리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시시한 듯이, 어딘가 화내는 듯한 표정으로, 긴 다리를 꼰 포즈인 채, 빤히...... 나를 계속 흘겨본다.

내 입장에서는, 원래 도서관에서는 말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특히 신에자키에게 할 말도 없다. 빨리 카드를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고 바라며, 그 자리에 있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가 부르는 소리가 계속 들리지 않는다. 뒤에서 아까 전부터 탈칵탈칵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지만, 그대로 초조한 시간이 지나갈 뿐.

 ――그것이 지금의 상황으로, 아까 전까지의 온화한 기분이 거짓말처럼, 매우 지내기가 불편했다.

 

 

............나한테 부탁하세요

 

? , 뭔가 말했어?

 

 

몇 분간의 침묵을 깨고, 뭔가 투덜투덜......이라는 느낌으로 신에자키가 입을 열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불합리한 일에, 화난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빤히...... 보는 날카로운 시선, 빨개진 뺨.

 

 

정말, 됐어요! 의료 관련 책을 보고 싶은 거지? 여기야. 거의 파파의 사유물로, 의학서만은 기증이 아니고 신에자키가가 마을에 대출하는 형식이야. ,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와, 아아, 그리고 이게 너의 카드니까. 내가 받아줬어. , 감사해두세요.

 

!? 에엑?

 

 

툭하는 느낌으로 간단히 던져진 카드. 그것을 당황해서 받은 나는, 신에자키의 기세에 밀려서,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그런 나를 배웅하듯이,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서 누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할 뿐.....하지만, 신에자키가 들어간 곳에 다리를, 발을 디딘 순간......

 

 

우와아...... 대단해......

 

어때?

 

 

도서관 안, 증축된 부분의 더 숨겨진 장소에 있던 창고. 거기에는 벽 한 쪽에 여러 의학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쾌적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는 공기조절 설비가 완비되어 더 안쪽은 푹신한 소파나 책상, 컴퓨터나 복사기까지 있다.

놓인 책들은 오래된 것부터, 새로운 것까지 여러 가지였지만, 모두 소중히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았다.

 

 

사실은 말야, 마마가 버린다고 했는데...... 버리면 의사 되길 그만둔다고 말해서...... 여기에 만들게 된 거야.

 

굉장해...... 이렇게 많이. 신에자키의 아버지는, 엄청 훌륭한 의사였어. , 봐 여기, 이렇게 너덜너덜하지만, 굉장히 신중하게 고쳐 써넣은 글자가......

 

「――――!? , 당연하잖니? , 내 파파인 걸. 실례야, 꺄악

 

 

내 등골에 오싹오싹한 흥분이 쫙 흐른다. 근처에서 뽑은 책에는 세세한 부분에 여러 가지 필기가 있어서, 일찍이 이 책을 쓰던 사람이 얼마나 진지하게 의학에 임했는지 한눈에 알았다.

신에자키의 손목을 잡고 그녀에게 과시하듯이, 이왕에 책을 들여다보고 그 필기를 가리킨다.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소유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보라고, 여기는 말야......

 

앗 아, , 저기...... 히이라기 군. , 얼굴이, 얼굴이 가까워...... 저기......, 저기......

 

 

오싹오싹한 흥분...... 어머니는 내 앞에서 별로 필사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별로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다른 의사가 공부하던 흔적을 보면, 내가 지금까지 공부에 몰두했었던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긍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좀 더 공부해서 기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강한 결의를 품는다.

 ――그렇게 구원받은 것처럼 느낀 나는, 다른 책도 읽어보려고 제 정신을 차리자...... 신에자키의 손목을 잡은 채, 엄청나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우와아아앗, , 죄송합니다!

 

「――――으으으!!

 

 

터무니없이 화내고 있겠지.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새빨개진 신에자키는, 아무 말도 없이 기세 좋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그 탁탁하고 멀어지는 발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