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끔 번역물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2ndboost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8초등학교 편 전편

 

 

 ◆

 

사람의 기척이 없는 오래된 역의 대합실, 마치 골동품처럼 너덜너덜한 목제 벤치에 앉아서, 나는 멍하니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은 9, 그러나 시계 바늘은 이미 91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도 뭐 초조해할 건 없다. 920분에 출발하는 전철에 늦지 않으면 되니까. 코이는 금방 올 거다.

 

 

후아암

 

 

길게 발을 뻗고 기지개를 펴면서, 오래된 역 안을 바라본다. 출구 근처에 종이컵으로 나오는 음료 자판기, 입구 옆에는 핑크색 공중전화와 너덜너덜하게 헤어진 전화번호부가 난잡하게 놓여 있다.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등골이 꼿꼿하다) 역무원이, 오래된 투명 유리의 저 편에서, 말없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있었다. 감색 제복에는 주름 하나 없이, 제대로 다리미질이 되어 있다.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이 역은 언제 와도 변함없다......는 느낌이다. 어딘가 묘한 안심감 같은 것까지 느끼면서, 내가 멍하니 역무원 분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미안, 그리고 안녕, 나가려다가 할아버지한테 잡혀서 말야.

 

 

조금 숨을 몰아쉬며, 큰 소리로 사과하면서 코이가 역의 대합실로 뛰어 들어왔다. 자전거 열쇠를 어깨에 맨 가방에 넣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한쪽 눈을 감는다.

 

 

괜찮아. 그것보다 홈에 가자고. , . 먼저 사뒀어.

 

고마워 아키라. 올 땐 내가 낼게.

 

 

하얀 이를 보이며, 화려한 미소를 띤 친구의 손에 표를 건네준다. 전력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겠지. 가느다란 목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취미인 육상으로 인해, 건강해 보이는 밝은 다갈색으로 탄 피부, 갈색에 약간 곱슬기가 있는 부드러운 숏컷. 허벅지가 드러나는 데님 숏팬츠, 발 밑은 빨간 하이 컷 스니커즈, 그리고 물색 후드가 달린 파커.

코이에게 매우 어울리고, 그야말로 운동을 매우 좋아하는 느낌인 차림이지만, 중성적이라고 할까.......그것보단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애로밖에 안 보인다.

그것은 코이의 큰 눈동자나 귀여운 얼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보통의 반 남자친구와는 다르다. 친구, 칸나즈키 코이에게는 어딘가 묘한 느낌이 있다. 잘 설명할 순 없지만, 마치 요정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

, 그런 건 상관없이 코이는 둘도 없는 친구지만.

 

 

으으으, 엄청 기대돼! 계속 보고 싶었던 걸. 진짜 엄청 기다려져.

 

어떨까? 영화라는 건, 예고편이 가장 재미있는 것 같으니

 

증말, 바로 그렇게 심술궂게 말해. 아니 뭐, 그런 영화도 있는데, 오늘은 아니야! 라고 들었어......

 

 

오늘 볼 예정인 영화 얘기를 하며 사람이 없는 홈으로 간다. 큰 몸짓 손짓을 섞으며, 열정적으로 배우 이야기를 하는 친구. 상당히 기대됐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띠며 영화 줄거리로 말을 건다.

 

 

......그래서 말인데, 이 시각효과가 엄청난데, 그것만이 아니라...... 근데, 잠깐 아키라, 증말... 제대로 들어줘

 

아하하, 듣고 있다니까

 

 

말을 들으라고 하듯이 내 팔을 잡고 흔들며 말을 거는 코이.

친구이자 반장이기도 한 코이의 취미는 영화감상으로, 꽤 굳건한 신념이다. 국내 영화, 해외 영화, 아시아계를 가리지 않고, 장르는 연애부터 코미디, 스플래터계 호러까지, 영화라는 이름이 붙는 거라면 전부 좋아하는 것 같다.

다만, 우리들의 마을에는 영화관 같은 세련된 건 없어서, 영화를 보려면 전철로 약 30분 정도 걸리는 근처의 큰 시――후교시로 이동해야 한다.

 

 

, 전철 왔다! 자 아키라

 

, 너무 잡아당기지 마, 그렇게 급하게 굴면 위험해......

 

 

꽤나 기대했는지, 나를 끌고 가듯이 전철로 들어가는 친구. 키가 작고 가녀린 체격 때문에, 이렇게 순진하면 마치 어린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보는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아키라가 할아버지를 설득해 줄 때까지, 내내 후교시에 못 갔는걸. 지금도 영화관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두근두근하다구

 

 

내 팔을 잡아당기며 어깨 너머로 활짝 미소 짓는 친구, 코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셋이서 생활한다.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는데, 그 할아버지라는 분이, 원래 어떤 대학의 훌륭한 교수에 대단한 위압감이 있는 인물. 부모님이 없는 단 혼자만인 손자――즉 코이――를 응석부리게 하는 일 없이, 엄격하게 길러온 것 같다.

그래서 몇 개월 전까지, 코이는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게 금지돼서, 후교의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을 별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설득이라니 아니, 그런 건 우연이고. 게다가 코이한테는 폐가 됐을 뿐인 것 같은데

 

아니, 폐 같은 게 아냐. 감사해, 고마워 아키라

 

 

지금부터 몇 개월 전, 어머니의 진료소에 건강진단으로 방문했던 코이의 할아버지와 장기로 승부했다, 라고 해도 할아버지는 말을 뺀 핸디캡전이었지만.

아무튼, 그래서 어떻게든 빠듯이 이긴 나는, ――그 때, 전국 초등학생 능력 모의시험에 관해서 도움을 준 지 얼마 안 된 코이에게 보답하고 싶어서――내가 함께라면, 이라는 조건으로 코이가 후교시로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코이의 할아버지는 일부러 나한테 진 것 같지만.

 

 

, 상관없나. 거기에 나도 코이가 쇼핑하는데 어울려줘서, 피차일반이야.

 

후훗, 그렇게 말해주면 기뻐. 그래도 아키라는 의외로 길을 잘 잃어서, 내가 없으면 위험할지도. 아하하

 

시꺼

 

 

서로 웃으며, 나란히 전철 좌석에 앉는다. 나란히 두 대가 달리는 전철 안은 텅텅 비어 있어서 초등학생인 우리들이라도 부담 없이 앉을 수 있었다. 지리리리리.......하고, 고막은 물론 두개골까지 흔들릴 것 같은 소리가 갑자기 끝나고, 쿵하고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럼 오늘 예정은, 우선 아키라가 가고 싶은 데, 그러니까...... 우선 어디던가? 뭔가 많이 있었지?

 

 

어깨에서 내린 가방에서 작은 메모장을 꺼내는 코이. 어제 점심시간에 오늘 예정을 세웠을 때 쓴 것......을 읽어간다. 거기에 이상한 것 같은, 확실히 말하자면 의심하는 듯한 말투가 섞인다.

 

 

그러니까... 낚시도구 가게에, 수예가게, 잡화점, 공구가게, 100엔 숍에 서점. ......저기 말이야 아키라, 어제도 들었는데 뭐야 이건. 서점은 평소에도 갔지만, 그 외가 너무 관련 없지 않아?

 

 

부릅뜬 눈꺼풀, 갈색 눈동자로 뚫어져라.... 내 눈을 들여다보는 친구. 습관인지, 핑크색 입술을 햇볕에 갈색으로 탄 검지손가락과 엄지 사이에 두고서는, 기막히다는 듯이 투덜댄다.

 

 

상관없잖아 딱히. 거기에 나도 취미가 있는 편이 좋다고, 지독하게 말한 사람은 코이잖아.

 

, 그거야 그런데 좀 너무 예상 밖이야. 저기...... 뭔가 고민이나 곤란한 게 있으면 사양 말고 말해보라구.

 

 

체격이 작은 코이가 아래에서 의심하는 듯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불만스러운 듯이 볼을 부풀리고 있다. 게다가 눈매가 왠지 토라진 강아지 같이 보여서 나는 무심결에 흐뭇하게 웃고 말았다. 코이의 순진한 얼굴 생김새가 화내도, 전혀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으으, 뭐야 아키라. 사람이 걱정해주는 데도

 

아하하, 미안미안. 넌 성격은 다부진데, 외모와의 갭이 말이야......, 재미있어서, 무심코

 

뭐야 그건, 무슨 의미? 정말, 걱정해서 손해봤다구, 바보 아키라

 

 

리듬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전철에 흔들리면서, 우리들은 평소처럼 장난친다. 전철 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 경치가 점차 깊은 산으로 사라져, 그리고 터널에 들어가 후교시에 가까워질 때쯤 민가나 건물이 많아진다.

코이와 영화나 학교, TV 프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자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콘크리트로 된 건물과 공장 굴뚝, 넓은 도로에 퍼진 많은 차 등으로 바뀌어, 도시의 소란까지 들리는 듯했다.

 

 

코이, 곧 도착해.

 

우응, 가자. ......아키라,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된다구? 바로 미아가 되니까 말이야. 아하하

 

잘도 말한다.

 

 

서로 농담하면서, 전철이 정차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이동하는 우리들. 처음 탔을 때에 비해, 조금정도 사람이 늘어난 전철 안을 천천히 나아간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가 줄어가고......쿵하고 마지막에 약간 세게 흔들리고는 완전히 멈췄다.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나며 열리는 문, 단번에 흘러들어오는 배기가스와 아스팔트 냄새...... 도시의 공기. 그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들이마시며 우리들은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

 

 

후교의 큰 역에서 나온 뒤, 우선 우리들이 향한 곳은 낚시 가게. 물론, 지금까지 낚시에 흥미 같은 게 없었던 나는 들어가는 것도 처음. 하지만, 겁내지 않고 거기에 감이 좋은 코이의 도움도 있어서 갖고 싶은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작은 낚싯바늘과 실.

봉합연습을 하기 위해 어떻게든 대용품을......이렇게 고민하던 내가 순간적으로 번뜩 떠올린 것이다. 물론 인체에는 쓸 수 없지만, 휘어진 부분을 깎아서 잘 조정하면(의료용 바늘은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것이 많다, 당연히 쓰는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연습으로 인형을 누비는 데는 쓸 수 있을 것이다. 봉합은 외과의 기본으로, 몇 번이라도 몸에 확실히 익히고 싶다.

 

 

, 근데 말이야, 아키라, 이런 걸 사서, 진짜로 낚시하는 거야? , 나 그 미끼가 꿈틀꿈틀하는 건 좀 서투른데

 

? , 아니, 낚시는 나 혼자서 할 거니까 괜찮아.

 

또 그렇게 말한다. 으으으, 그래도 그 꿈틀꿈틀대는 지렁이는...... 으윽 등골이 오싹오싹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며 바늘을 여러 종류를 산다――그리고 향한 곳은 수예가게나 공구가게가 아니라, 코이가 오자고 제안한 굉장히 큰 홈 센터였다. 뭐랬더라, 전에 정보지에서 봤을 때부터 코이도 계속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점내에는 놀랄 만큼 거대한 공간이 퍼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코이와 둘이 쇼핑카트를 나란히 끌고 가면서, 점원에게 가끔 물으며 사려는 물건을 골라간다.

 

 

아키라? , 뭐야 이건? 가방에 껌 테이프, 결속밴드, LED 손전등, 안전핀, , 바셀린, 여러 크기의 가위가 몇 개 정도에 철사, 여러 펜치, 재봉 세트, 삼각건, 테이핑, 붕대, 거즈, 그 밖에도 뭔지 모를 것들이 가득...... 대체 뭐야?

 

아니, 무심결에 사버렸을지도. 아하하

 

 

쇼핑이 끝난 뒤 나를 걱정스러운 듯이 보는 코이. 확실히 들떠서 너무 사버렸는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상품이 많고 싸서, 그만 사고 말았다. 금액적인 면으로도 모아뒀던 상당한 액수의 용돈을, 반 정도 한 번에 쓴 셈이다.

나와 코이는 같이 후교시에 온 적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참고서 외에 다른 것을 산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가자기 이런 양이다. 불안하겠지...... 수상하다고 여기는 코이의 등을, 얼버무리듯이 몇 번이나 팡팡 두드린다.

 

 

서바이벌용 물건이야. 올해 여름은 캠프에 가고 싶어서, 저기, 사쿠라와 어머니한테 얘기했어.

 

? , 그래...? 초등학생 마지막인 걸. 헤에...... 선생님이랑 거기에 사쿠라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려나? 생각하면서도 그런 티 없이 말을 하며 가방 속에 적당히 산 지 얼마 안 된 물건을 담는다. 코이에게 들키지 않게 나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반복한다.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죄책감과 순조롭게 도구가 갖춰져 느끼는 고양감이 가슴에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아아, 그렇구나. 그래서 지금부터 기대돼서, 좀 의욕에 넘쳐서 말이야.

 

, 헤에... 오늘 처음으로 들었는데. 흐음...... 캠프인가

 

 

거기에 예상 밖의 귀한 물건도 있었다. 코이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찾은 것이고, 비쌌지만 과감히 구입한 것. 설마 살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던 만큼, 굉장히 기뻐서 히죽거릴 것 같은 얼굴을 감추는 게 고작이다.

그건, 살균이 된 일회용 메스. 게다가 칼끝의 종류도 다양해서, 이런 장소에서 판매되리라고는 처음에 믿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밀 작업을 하는 사람이 커터 대신에 쓰려고 일정한 수요가 있는 것 같아, (몇 개였던 것도 있어서)카운터도 쉽게 통과해서 살 수 있었다.

, 불만이 있다면 꽤 비쌌기 때문에 모든 종류를 살 수 없었다는 것이다――아무래도, 합계 5만엔 정도 들어간다――그래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소량만이라도 살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이걸로 내 볼 일은 끝났어. 그럼, 영화 보기 전에 밥이었지.

 

......

 

 

산 것을 빈틈없이 넣고, 그 가방의 잠금장치를 나는 어깨에 철컥하고 잠갔다. 어깨가 묵직하지만, 왠지 그리움을 느낀다.

 

 

... 어제 코이가 가고 싶다던 데가 저기 있는 지하 푸드코트였지? 가자고

 

, 아키라, 잠깐, 저기......

 

, 뭔데?

 

 

목적지인 쇼핑몰로 가려고 한 내 등 뒤에, 흠칫흠칫한 느낌으로 목소리가 늘어진다. 뒤돌아보자, 어딘가 침울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친구가 서 있었다.

 

 

......, 나도 마지막이니까 같이 캠프에 가고 싶......은데...... 저기, 그러니까...... 미안!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 뭐라고? 처음 소리가 작아서 안 들려.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역시 됐어. , 빨리 점심 안 먹으면 영화에 늦어져. 가자, 아키라!

 

잠깐, 달리지 마

 

 

뭔가를 떨쳐낸 듯이 활기차게 달리기 시작하는 친구.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뒤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도 발을 내디뎠다.

 

 

 ◆◆◆

 

 

재빨리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저렴한 초등학생 요금을 내고나서 나는 친구와 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간다.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것도 있어서 꽤 혼잡했지만, 운 좋게도 좋은 자리에 있는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몇 분간의 긴장,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몇 개 정도의 광고나 영화 예고편에서는 웅성웅성하는 관객석이, 영화 본편이 시작되기 직전, 팟하고 긴장된 듯이 아주 조용해진다. 그 묘한 일체감......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이 한순간만은 같은 목적으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 그 독특한 분위기에는 정말 못 배겨나겠다.

――그리고 시작되는 영화 스토리. 그것은 코이가 추천하던 대로 훌륭했다.

그리고 2시간 뒤......

 

 

흐윽, 슬퍼. 정말로 너무 슬퍼. 저렇게 끝나는 방식은 어때? ? 아키라!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아아 진짜, 우는 건 적당히 그만해둬. 거기에 그렇게 심한 마지막은 아니었잖아.

 

 

영화관 근처에 있는 쇼핑몰 지하, 큰 푸드코트에서 나는 친구의 얼굴 부근에 손수건을 던져서 건네준다. 영화는 화려한 SF연애......라는 느낌의 내용으로, 소문 이상의 시각효과, 알기 쉬운 스토리, 해피엔드지만 어딘가 비극적인 요소도 감돈다....는 느낌으로 매우 재미있었다.

다만, 스토리가 코이의 심금을 울린 것 같아, 이 녀석은 영화관에서 나오고 나서도 계속 울먹이고 있을 뿐이다. 빤히 보는 주변 시선에 노출되며, 나는 친구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한다.

 

 

하지만, 라스트 댄서를 좋아한다는 마음마저 주인공한테 말하지 않다니, 그런 거 너무 불쌍해.

 

아니, 그거야 그런데......

 

 

코이가 말하는 라스트 댄서라는 것은 영화 이야기, 주인공에 의해 만들어진, 85%가 생체부품, 10%가 기계, 나머지 5%가 인간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외모를 가진 인형 초병기의 이름이다.

지금부터 머나먼 미래, 장기간 계속되는 에일리언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궁극의 병기. 염동력, 텔레포트, 시간가속 능력 등을 중심으로 여러 초능력을 구사하고, 에일리언을 멸망시키는 죽음의 춤을 아름답게 추는 존재, 그리고 인류 최후의 희망...... 문자 그대로 라스트 댄서.

그 시대의 초병기 에너지는 의지가 근원이 되어 있고, 의지를 라스트 댄서에 머물게 하려고 천재 과학자인 주인공이 쓴 것이, 전쟁으로 죽은 연인의 뇌세포.

예상을 아득히 웃도는 병기로서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해 에일리언을 차례차례 격퇴해가는 그녀. 그러나 무슨 우연인지, 의지를 쓰면 쓸수록, 일찍이 인간이었던 달콤한 기억, 주인공을 사랑했던 마음이 라스트 댄서 안에서 되살아난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죽은 단순한 병기에 지나지 않는다......이렇게도 생각하는 그녀. 그리고 얄궂게도, 그 괴로워하는 감정이 그녀의 전투능력을 더욱 향상시켜간다.

주인공인 과학자는, 연인을 살해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에일리언에게 죽는 사람이 줄어들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연구에 계속 몰두하고 있어서, 라스트 댄서의 갈등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라스트 댄서도 자신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을 결코 입에 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전의 연인인 주인공이, 죽어버린 자신을 잊고 행복한 새 인생을 걸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괴롭고 슬퍼서, 실은 주인공에게 심경을 털어놓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데, 자신은 사람이 아니니까......이렇게 포기하고 계속 싸우는 그녀. 전쟁이 끝나면, 단순한 병기에 불과한 자신은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의 춤을 계속 춰간다.

그리고...... 에일리언과 인류의 존망을 건 최종결전이 시작된다.

서로 모든 것을 결집한 총력전 끝에, 전투용 강화 슈트를 몸에 장착한 주인공에게 바싹 다가붙듯이 선 아름다운 라스트 댄서. 여러 격전을 거쳐 드디어 에일리언의 본거지 중심부에 마침내 도착한 두 명, 거기서 고른 선택, 최후의 댄스.

 

 

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 코이가 말한 대로, 전하고 싶은 건 확실히 전하는 게 좋아. , 적어도 노력은 해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슬퍼.

 

 

아름다웠던 영화의 라스트 씬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멍하니 에게 지식을 전수받은 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때......는 분명, 어머니와 사쿠라를 만나, 뭔가를 전하고 싶었으리라. 그건 고마워요라든지, 분명 그런 시답잖은 한 마디겠지만...... 만약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해도, 그것이 한순간이었다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그치, . 전하고 싶은 마음은 전해야만 하는 거지........

 

, 왜 그래?

 

 

내가 던진 손수건을 꽉 쥐고 기세 좋게 일어선 코이. 하지만, 갑자기 말꼬리가 약해져선 비실비실한 상태로 의자에 쓰러진다. 아까 전까지 슬퍼하던 것과도 또 약간 다르다, 어딘가 자신에게 푸념하는 듯한 분위기로 입을 연다.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었으면 고생하지 않는다구.

 

,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코이?

 

아무것도 아냐......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올게. 괜찮으니까, 손수건 고마워

 

 

내게 손수건을 돌려주고, 어딘가 침울한 모습으로 화장실을 향해 걷는 친구. 그 뒷모습은 평소 익숙한 다부진 것과는 전혀 달리, 매우 외롭게 보였다.

조금 걱정하면서도, 드링크나 짐을 둔 채로 자리에서 떨어질 수도 없고, 인파로 사라져가는 청색 파커를 입은, 가녀린 코이의 등을 배웅한다.

 

 

뭐지?

 

 

아까 전의 말투는, 누군가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혹시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까? 그래서 고백하고 싶다는 거? 모르겠다......

나는 연애 같은 것에 전혀 흥미를 두지 못하고, 공부에만 몰두해왔다. 그래서, 이런 방면으로는 전혀 모른다. 그러나, 소문이지만 코이는 여자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다고 들은 것 같다.

 

 

그 녀석, 누군가 좋아하는 걸까, 혹시 사쿠라? 아니, , 그건 어떠려나

 

 

오렌지 주스가 든 컵에 꽂힌 파란 빨대를 쭉쭉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확실히 사쿠라와 반장은 점심시간에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내 느낌으로는 코이에게 실례지만, 사이 좋은 자매로밖에 안 보인다.

아니면 혹시, 반대로 사쿠라가 코이를 좋아한다거나? 아니...... 사쿠라는 아직 애인데다가 순진한 바보다, 나처럼 연애는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 그 사쿠라가 연애라니, 너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웃게 된다.

 

 

아아 진짜, 이런 건 전혀 모르겠단 말이야...... 어라, , 맞다.

 

 

그러고 보니 코이한테 어제 있었던 일――신에자키의 여드름을 지적했더니,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물어보는 것을 깜박했다. 그다지 도움은 안 되겠지만, 화장실에서 친구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물어보자......고 생각을 정리한 순간.

 

 

아키라, 이거. 이거 봐봐. 지금 받은 거야, 여기

 

 

인파를 교묘하게 빠져나와, 아까 전까지의 처진 상태가 거짓말 같은 기세로 회복된 코이가 모습을 나타냈다. 뭔가에 흥분했는지, 홍조된 뺨, 갈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 오른손에는 어떤 종이...... 문자나 일러스트가 인쇄된 광고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쾅하는 느낌으로 테이블 위에 세차게 내려친다.

 

 

침착하래도, 뭔데 이건?

 

잘 읽어봐, 오늘 개최되는 후교시 중앙상공회 베스트 커플 콘테스트야! 놀랍게도 우승 커플에게는 상품권 10만엔. 준우승이라도 5, 다른 상품 다수! 상품권은 후교시에서라면 대부분 가게에서 쓸 수 있대, 영화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말이야.

 

아니...... 그거야 대단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베스트 커플 콘테스트잖아? 우리들한테는 전혀 관계없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친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 하지만 코이는, 전혀 문제없다......는 활기가 가득 찬 미소를 띤 채 당당히 가슴을 편다.

 

 

접수 개시까지 앞으로 30분 있어. 아키라, 수입 잡화점으로 가자

 

? 뭐야, 미안,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남은 주스를 서둘러 처리하고, 코이에게 반은 질질 끌려가는 식으로 근처에 있는 멋진 잡화점에 들어갔다. 거기는 여자가 많이 있는 가게로, 수많은 화장품이 샘플과 같이 빽빽이 진열되어 있다.

전혀 겁먹지 않고, 재빨리 화장품을 진열한 부스로 향하는 코이.

 

 

그럼, 뷰러랑 립 글로즈, ..... 그리고 빨간 테 패션 안경. , 아직 살 수 있어. 그리고...... 그러니까, 있잖아 아키라! 여기 헤어밴드랑 이 리본 중에 어느 쪽이 좋아?

 

?

 

증말, 시간 없어. 부탁이니까 빨리 골라봐.

 

?

 

 

지나친 급전개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이해하기를 거부한 것 같은 느낌...... 눈앞에는 나를 재촉하는 듯이, 약간 뺨을 부풀리며 나를 바라보는 코이의 얼굴이 있었다. 그건 귀여운 여자애처럼 보인다, ――그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여자애라고 생각하겠지......어라, 설마!?

 

 

? 에에엑!? , 코이, !!

 

아하하, 겨우 알았어? , 빨리 준비 다하고 접수해야해. , 어느 쪽이 귀여울까?

 

 

미소를 띠며, 머리에 파커와 맞춘 듯한 물색 헤어밴드를 매는 코이. 나는 놀란 채로 아무 말도 못하고 말없이 끄덕인다.

 

 

이거? , 알았어. 그럼 사올게.

 

잠깐, 코이!! 기다려

 

 

그대로 카운터로 가려는 친구의 팔을 꽉 잡는다. 그건 매우 가녀려서, 세게 잡으면 바스락 접힐 듯이 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 친구를 향해 입을 연다. 역시 이건 지나친 농담이라고 생각한다.

 

 

코이, 이런 건 이상해. 그만두자고.

 

............

 

 

내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코이. 그 가녀린 몸, 어깨가 살짝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한 번 더 말을 건다.

 

 

? 난처하다고. 이상해......

 

안 이상해!! 이상할 게 없는 걸, 거짓말이야. 이번만 하는 거짓말, 농담이니까! 우승 같은 거 무리라는 건 알아, 농담으로 끝나서 나가고 싶어!! , 초등학교 졸업하면 관서 중학교에 가기로 정해졌어. 이런, 이런 거, 진짜, 평생 무리라고...... .....

 

 

마치 울 것처럼 얼굴을 새빨개진 채 숙이는 코이. 친구의 비통한 목소리에 삼켜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옴짝달싹 못한다.

 

 

, 전하고 싶은 건, 반드시 말해야 하는 거야. 오늘, 그 영화를 보고, 슬퍼서 참을 수 없어서...... 거기에 우연히 이 광고지를 받아서...... , . 부탁이야, 아키라. 가슴 안쪽이 아파. 이번만, 이제 이런 무리한 부탁 안 할 거라구.

 

 

솔직히, 나는 코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내 가슴 속까지 욱신욱신 아파서, 코이의 가느다란 팔을 잡은 손가락을 천천히 떼어놓았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저기...... 상금 만약 받는다면 절반이니까!

 

.......! 우승 목표로 힘내는 거야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무리하게 생긋 미소를 띠는 코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억지로 친구의 팔에서 물색 헤어밴드를 뺏는다.

 

 

, 아키라!

 

그럼 이건 우승하기 위한 자금투자라는 말이지? 내가 이 만큼은 낸다.

 

「――――으읏!! , , 고마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묘하게 부끄러워서, 코이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카운터로 향한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뒤에서 말없이 따라오는 코이의 기색마저, 왠지 조마조마하고 묘한 느낌이 들어서 참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카운터 누나의 얼굴이 엄청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어서...... 왠지, 그런 어떻든 상관없는 일만이, 뇌리에 선명하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