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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pixiv - tetsukugi 님의 번역허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예외편이 아닌 5는, 예외편이 아닌 하루노 씨 루트.

(2side : 예외편 중에 페이크 하루노 루트-[실은 단지 하루노가 하치만을 휘두를 뿐인 얘기]가 있습니다.)

 

다음 회는, ②실수로, 히라츠카 시즈카는 말려든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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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도, 약점이라는 건 반드시 있다.

 

  거대한 바위가 있다고 하자. 어떻게 봐도 부서질 것 같지 않은 큰 바위라도, 돌결을 파악해, 정확한 지점을 찌르면, 필요한 최소의 힘으로 파괴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아이스 픽으로 산산조각 부서지는 얼음과도 같은 것, 이러면 알기 쉬우려나.

 

  아무튼 만화에서 배운 지식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 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요점은 뭐를 말하고 싶은 거냐면, 그건 사람의 마음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같이 어렸을 적부터 지독한 정신환경에 노출되어, 강철의 마음에 도달한 용자라도, 아직 위크 포인트라는 건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과거의 트라우마를 후벼낼만한 언동이나, 현재 절찬리에 붐비는 르상티망을 자극할만한 상황이나 막연한 미래에 대해 불안을 증대시킬만한 정보이거나..... 어라, 나 너무 약하잖아?

 

※ 르상티망 : 원한. 유한. 증오. 특히, F.W. 니체의 용어로서, 약자의 강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울적한 심리 상태.

 

 

  아니, 그렇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자, 나조차도 이 모양이라....고.

 

  ....후우, 위험했다. 역전의 발상을 할 수 없었으면 사고의 미궁에 빠질 뻔했다. 그리고 어나더라면 죽었어.

 

  어쨌든, 나한테도 있으니 다른 무리에게도 있겠지. 약점 하나나 두 개 쯤은.

 

  봉사부 고문인 히라츠카 선생님은 참 알기 쉽다. 그 사람이 신경 쓰는 건 대체로 처음이 「ㄱ(け)」으로 시작해서 끝이 「ㄴ(ん)」으로 끝나는 단어라고 생각하면 그걸로 무방하다. 추가로 「케이온(けいおん!)」이 아니니까, 저건 엄밀하게 말하면 「!」으로 끝나니까 제외다. 거기냐구요.

 

  유이가하마도 알기 쉽지. 히라츠카 선생님처럼 특정 단어에 과잉 반응하지는 않지만, 약한 부분에 접했을 때, 뿌리가 순수하다고 할까 단순한 유이가하마는 그것이 그대로 얼굴이나 태도로 드러난다. 그건 그거대로 위협 아닐까 생각해.

 

  유키노시타는, 알기 힘든....듯이 보여도, 실은 상당히 알기 쉽다. 거기가 그 여자의 비뚤어진 면이기도 하다. 표정도 별로 변하질 않아서, 무심코 대처같은 철의 여잔가 생각했지만, 약한 면은 철저하게 약하다. 공격이 최대의 방어라고 믿으며 살아 온듯한 녀석이니까, 공격이 전부인 식으로 인생을 살아왔겠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곧바로 알게 될 것이다. 단, 그 뒤 몸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다. 공격한 대가는, 극히 클 것이다.

 

  하지만, 잘 모를 인종이라는 것도 세상에 있다. 어디가 약한 부분인지, 전혀 보이지 않고, 만약 거기에 건드릴 수 있었다고 해도, 미소의 가면을 쓴 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적지만 존재한다.

 

  예를 들면, 그래, 그녀다.

 

  내가 강화외골격이라고까지 칭한 그녀의 가면은, 아마 그리 간단하게 벗길 순 없을 것이다. 그녀도 인간인 이상, 아무리 작아도 약점이 있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고, 그 이전에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

 

  왜냐면, 그녀는 완벽하니까.

 

  능력도 환경도 풍족한 그녀는, 그런고로 단 하나의 하자도 용서되지 않는다. 기대 받은 일에 기대 받은 이상으로 응하는 게 가능한 그녀에게는, 일체의 좌절도 용서되지 않았다. 누구한테 용서받지 못하냐면, 아마, 자기 자신에게.

 

  나약한 소리도 아픔도 후회도, 그녀의 미소는 덮어 가린다.

 

  태양이 발하는 빛으로, 나 같은 일반인은 흑점을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구가 타 버린다. 그러니까, 그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그녀와 같은 인종 밖에 지닐 수 없는 고민일 것이다.

 

  ...하

 

  그런 건, 결국 가진 자의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우물쭈물한 내적인 고민거리 정도, 나 같은 외톨이의 세력권으로 해 줘도 될 텐데. 리얼충이라는 건 철저히 탐욕스런 무리다. 역시 리얼충 더럽다.

 

  ...평소의 나라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뭣하면, 거기에 이쪽에서 외톨이의 우위성까지 논증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저기, 히키가야 군...」

 

 

  내 옷깃을 잡고, 굳게 움켜쥔 손.

 

  그리고 슥, 그 위로 꽉 눌린 무게감.

 

  내 쪽에서는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손과 머리가 닿은 내 가슴만이, 천천히 열을 띤다.

 

 

「히키가야 군에게라면, 이런 나를 보여도 될까...그런데, 안 믿지?, 히키가야 군인 걸」

 

 

  후후, 하며 자조적으로, 어딘가 외로운 듯이 들리는, 소리 죽인 웃음.

 

  하지만 그녀의 몸은, 옆에서 봐도 모를 정도로, 떨고 있었다.

 

  나만이 그것을 안다. 알고 싶은 것도 아닌데, 알아 버렸다.

 

  그녀의 얼굴은 안 보인다.

 

  그녀는 지금 가면을 쓰고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나는,

 

  소녀처럼 떨고 있는 이 사람에게, 나는―――

 

 

 

①히키가야 하치만의 러브 코미디는, 소리도 없이 시작된다.

 

 

  어느 날, 역 앞, 하루농하고, 만났다♪

 

  ...아니, 전혀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다. 원곡대로, 만나버렸으면 그 뒤는 전속력으로 도망치는 게 정답이다. 추가로 곰과 조우했을 때는 등 뒤를 보이며 도망치면 쫓아오는 것 같다. 죽은 체도 효과가 없으니까 각하다. 약간 들어맞지 않는 느낌도 있지만, 목표에서 눈을 돌리게 하면서, 조금씩 도망치는 게 일단 정답.

 

  물론, 만나지 않게 집에 틀어박히는 게 대적중이지만.

 

  그 점에서, 나는 실패해버린 것 같다.

 

 

「어라, 히키가야 군이잖아. 얏하로-」

 

「아무쪼록」

 

 

  사근사근하게 가하마식으로 인사해 온 하루농, 유키노시타 씨에게, 나는 NHK-BS식의 인사로 대답한다. 그런데 이「아무쪼록」이라니 대체 뭐지? 「아무쪼록 이런 곳에서 만나 버리다니 운이 나쁘다, 외출하지 안 할 걸 그랬어!」의 약어라면, 비교적 본심에 가깝다. 정답은 웹으로.

 

  그나저나 그 가하마식 인사, 유이가하마의 허가 맡은 거죠? 아니라면 매니저인 내가 철저히 징수해요? 아무튼 본인한테는 1원이라도 돌아가지 않겠지만.

 

 

「히키가야 군, 이런 데서 뭐해?」

 

「뭐라니... 그, 산책...일까요?」

 

「의문형으로 돌려줘도 곤란한데...」

 

 

  나도 약간 곤란하다. 나 대체 뭐 하러 역전까지 왔지?

 

  휴일치고는 드물게도 일찍 일어났지만, 밥 먹고 공부했더니 한가해져서, 역전에 있는 서점에서 서서 읽고 있었다. 뭔가 샀으면 쇼핑이라 우길 수도 있지만...그다지 좋은 책이 안 보였다.

 

 

「유키노시타 씨는, 뭘 하시나요?」

 

 

  특별히 흥미도 없지만, 그렇게 묻는 게 예의 같아서 형식적으로 묻는다.

 

 

「나? 여행이야」

 

 

  하루노 씨는 옆에 놓인 작은 트렁크를 가리켰다. 약간 레트로한 느낌의 세련된 트렁크군요. 하지만 그렇게 작으면 아무것도 못 넣지 않나? 나이프라든가 램프 정도 밖에 못 넣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여행이라... 그러고 보니 취미라고 했던 것 같다. 언제였지... 소부선 게임... 별로 떠올리지 말자. 나는 앞을 향해 걷지 않으면 언젠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인식했습니다.

 

 

「아무튼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사실은 해외라든지 가고 싶었는데」

 

「그런가요...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잠깐 기다려 히키가야 군, 열차 출발까지 아직 시간 있으니까」

 

「시간 있으니까... 무슨 일인데요?」

 

「좀 더, 처형하고 얘기하지 않을래?」

 

 

  싱긋, 매우 화사한 미소로 제안하는 하루노 씨. 그나저나, 뭔가 말의 뉘앙스에 위화감이 든 기분이..., 아니, 그것보다도,

 

 

「그건 괜찮습니다만 유키노시타 씨, 슬슬 일행이라든지, 안 오나요?」

 

 

  그래, 여기는 지금부터 리얼충들에게 오염당한다. 만약 늦게 도망치면 나까지 리얼충화 되어버린다. 뭐야 그 바이오해저드. 그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리얼충이 되어도 좋을지도 모를만큼 간단하다.

 

  하지만 하루노 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말을 부정한다.

 

 

「에, 없어요?」

 

「어라... 그러니까, 혼자입니까?」

 

「응, 이른바 나 홀로 여행」

 

 

  의외다. 하루노 씨라면 물론 그룹 여행일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 오히려 나 홀로 여행이라면서, 짐꾼이라든가 운전기사가 붙었다든지. 그런가 서술트릭인가.

 

 

「히키가야 군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혼자서도 자주 여행 가요? 모르는 마을이라든가에서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

 

「헤에...」

 

 

  그건, 어쩐지 안다. 나도 중학교 때,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길을 걸어, 우회해서 돌아가거나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방과 후가 너무 길어길어... 그런데도 오빠의 귀가가 빠르다고 코마치가 말했었지... 순진함은 때로는 나이프보다 날카롭다.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볼 거리도 있고. 그리고, 현지 사람과 친해지거나」

 

 

  ...그건 감탄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말을 걸거나 하면 안 된다고, 엄마한테서 안 배웠나. 추가로 그걸 충실히 지키면 나처럼 될 수 있다.

 


「그런 건 친구와 함께라면 간단히는 할 수 없지. 모두의 의견도 들어야 하니까, 여행도 묘미가 없어진달까. 뭐, 많으니까 기세로 할 수 있다는 점도 있으니, 그게 그거지만.」

 

 

  이 여자... 설마 리얼충과 외톨이 이도류인가? 나 같은 외톨이는 양손이니까, 공격력만은 되게 높다고. 덧붙이면 방패를 못 끼니까 방어력은 종이수준.

 

  아무튼 그렇게 어중간한 패션 외톨이는 외톨이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역시 하루노 씨는 리얼충이에요, 유감일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꽤나 추운 시기에 외출하네요.」

 

 

  이미 가을 기색도 사라지고 있다. 수학여행 시즌도 이미 끝나 버렸다. 계절은 머지않아 겨울을 맞이한다. 나라면 휴일 정도는 집에서 따끈따끈하게 쉬고 싶을 텐데.

 

 

「하하...계속 일정이 생겨서 말야. 좀처럼 비울 수 없어서」

 

 

  하루노 씨는 약간 난처한 듯이 웃는다.

 

  리얼충다운 이유다. 일정이라는 것도, 어차피 유흥인가 뭔가겠지. 그런 걸로 자유 시간을 뺏기는 건 참을 수 없다고. 업무 시간 외 커뮤니케이션이 어쩌고 하는데, 쉬는 날 정도 혼자 냅두세요!

 

  그 점에서 외톨이는 자유다. 뭐니뭐니해도 스케줄 장부는 계속 백지. 뭣하면 없어도 괜찮기까지 하다. 스케줄 장부를 산건 좋지만 곧 잃어버린다는 자네는 거의 외톨이다. 필요성이 없으니까 무의식중에 내던진다고 생각해.

 

 

「아, 뭣하면 히키가야 군도 갈래? 집 가깝지? 왕복과 준비로 그러니까... 열차 3, 4편이라면 늦춰도 좋아요?」

 

 

  내가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하루노 씨도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참으로 명안이라는 듯이 영문 모를 제안을 했다. 이 기세에 휩쓸려, 이상한 서류에 도장을 찍는 녀석이라든가 있을 듯하다.

 

 

「ㄴ.....아니, 괜찮습니다.」

 

 

  확실히 오늘도 내일도 휴일이지만, 나는 집에 중요한 볼 일이 있으므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그거야 프라이버시와 관련되니까.

 

 

「그래? 유감이네」

 

 

    하루노 씨는 그리 유감도 아닌 듯이 중얼거리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럼 슬슬 가볼까. 아, 그래, 선물 사올 테니까 기대해... 물론, 유키노 짱 것도 같이야!」

 

 

  다음에는 유키노 짱 얘기도 하자. 는 말을 남기고, 트렁크를 한 손에 들며, 하루노 씨는 떠났다.

 

 

「하하... 진짜 내버려둬」

 

 

  선물이든 뭐든, 당분간 하루노 씨와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과 말하면, 왠지 쓸데없이 지치는군... 긴장한다고 할까, 긴장을 강제당한다고 할까.

 

  그런데, 휴일인데 불려가서 일하는 기분이 됐다...돌아가면 한 번 더 자자.

 

 

 

 

「있잖아, 유키농은 어디가 좋아?」

 

「...유이가하마 양, 아직 나는 간다고는 안 했는데」

 

 

  휴일 다음 날, 아직 우울함이 치유되지 않은 월요일 방과 후. 뭐, 일요일에 사자에 씨가 아니더라도 나는 언제라도 참 우울하지만. 슬슬 심료내과에서 진찰받아도 되지 않을까.

 

  봉사부실에서는, 여자 둘이 꺄꺄하고(라고는 해도 티끌만큼이지만) 어떤 화제로 들뜬 것 같았다.

 

  책상에 늘어놓은 것은 여행 팜플렛. 비교적 근처뿐이지만 행선지는 다양하다. 이 정도만 봐도 모든 길은 치바로 통한다고 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전제를 확인하고 싶은데... 유이가하마 양, 합숙의 의미는 알고 있니?」

 

「에? 그러니까, 어딘가 가서, 맛있는 거 먹구, 놀구, 잠깐 동아리 같은 일 하는 거?」

 

「제일 중요한 일이 뒷전인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럼 유이가하마 양, 당신은 이 후보지에서, 대체 어떤 동아리다운 활동을 하겠다는 거야?」

 

 

  유키노시타는 책상 위의 현란한 광고지로 시선을 돌린다.

 

  아무래도 유이가하마는 여름방학에 이어, 동계기간 중의 봉사부 합숙을 제안하는 것 같았다. 그 엉망진창 합숙을 한 번 더 반복한다는 신경을 나는 더 이상 잘 모르겠지만, 본인은 대단히 의욕에 가득찬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루미루미라든가 하는 애는 잘 지낼까. 세상의 진리에 굴하지 않고, 나 같이 똑바로 자라 준다면 좋겠는데.

 

  단지, 유이가하마의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내 프리젠트 능력 같은 수준으로 괴멸적이라, 그 결과 유키노시타에게 두통을 유발하는 듯했다. 아무튼, 후보지가 전부 완전히 노는 목적이니까. 그런데 디스티니 랜드까지 들어간다는 건 어찌된 영문인지. 왜 일부러 저런 비싼 곳에 묵으러 가는 거야? 치바 현민이라면 뜰에 텐트 쳐서 자는 정도로 됐다고. 쓸데없어, 낭비낭비.

 

 

「동아리 같은 일...으-응」

 

 

  유키노시타의 질문에, 유이가하마는 팔짱을 낀다.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생각은 하고 있어요-어필이 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아무 생각도 없거나 혹은 충분히 생각지 않았다.

 

  유이가하마는 미간을 찡그리며 응응 하는 신음소리를 내지만, 결국 아무 생각도 못해낸 것 같고, 곤란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응-, 그나저나, 봉사부다운 활동...이라니 뭐지?」

 

「흠... 그러네」

 

 

  존재라기보다는 존재 의의를 잘 모를 이 봉사부에, 합숙에서 할 수 있는 동아리다운 활동을 찾는다는 건, 의외라 할 것도 없이 어려움이 확실하다.

 

  유키노시타도 설마 또 애를 상대로 발런티어 하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아이라니 싫어요...바보니까」라든가 애를 상대로 진심으로 말할 것 같은 걸 이 사람. 티 없는 아이의 꿈을 완전 논파까지 할 것 같다.

 

  그럼 저건가, 출장! 치바 현 횡단고민 상담메일! 이라든가. 어디의 감정단이야. 애초에 출장가고 싶지 않으니까 메일 대응한다. 요새는 경비 삭감 때문인지 출장도 재미가 없으니까...

 

  나도 떠올리지 못하고, 원래 생각할 의리도 없다고 눈치 챌 즈음에,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든다. 아무래도 뭔가 생각난 것 같다.

 

 

「그러네... 눈 속 행군 같은 건 어떻겠니? 주로 히키가야 군이」

 

「뭐? 왜 나?」

 

「봉사부 유일한 남자부원인 걸, 귀중한 남자 일꾼이에요. 좀 더 활약하기 위해, 체력을 붙여 주려고 생각했어요. 뭐, 도중에 체력이 떨어져도 결과 오라이긴 하지만」

 

「산뜻하게 사람을 사고사 시키지 마」

 

 

  좋은 미소로 뒤숭숭한 말을 꺼내는 유키노시타에게 대답을 내뱉는다. 이 자식, 실은 사람 괴롭히기 좋아하는 거 아냐... 내가 M이라면 푹 빠질 레벨. 다행이다, M이 아니라서.

 

 

「암튼암튼...아, 그래도 눈 산에서 스키도 있어! 어... 그러니까 스키스키, 하고...」

 

「유이가하마 양, 그러니까 스키의 어디가 봉사부다운 활동인 거예요...」

 

 

  유이가하마는 유이가하마답게 자신의 길을 힘차게 달리는 듯하고, 기획서 후보란에 스키라고 쓰고 있었다. 기획서라고 해도, 이번은 유키노시타가 흥미가 없기 때문에 「합숙! ☆한 곳」 이라는 머리가 비어보이는 히라가나 타이틀의 가하마식이다.

 

※ ☆きかくしょ : 별(star)과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한 すてきかくしょ(멋진 곳) 같네요.

 

 

  이제 보통 여행이라도 적어 놔... 라고 할랬더니 유키노시타의 말이 그것을 차단했다.

 

 

「...미안해요, 잠깐 전화 받고 와요.」

 

 

  그렇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실 구석으로 이동한다. 일단 교내에서는 통화 금지니까, 쓰는 녀석도 있긴 하지만, 과연 복도에서 교사한테 발견되면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유키노시타가 전화라니 드물다. 그보다, 그 녀석의 핸드폰이라든가 본 적 없었는데, 있는지도 수상쩍지만, 유이가하마가 연락할 수 있는 이상, 있겠지. 그런 의미로는 귀중한 광경이다. 별로 기쁘지도 않지만.

 

 

「유키농이 전화라니, 드무네」

 

 

  유이가하마도 같은 감상인 것 같고, 약간 신경 쓰이는지 곁눈질로 힐끔힐끔하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유키농은 확실히, 볼 일 없을 때는 껐던 거 같은데...」

 

 

  그게 뭐야, 핸드폰 의미 있는 거냐? 아무튼 그 녀석 우등생(웃음)이고, 그런 부분에서 빈틈없이 해 두고 싶은 폴리시라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핸드폰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착신이력 거의 코마치니까! 집에 가서 해도 좋은 일이기라도 하면, 코마치의 마음씀씀이에 울 것 같다. 그렇게 애써서 수신이력 채워 주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럼 전원 끄기를 잊었으려나. 혹은, 뭔가 전화 올 일이 있기라도 한가?

 

  한편 그 유키노시타는,

 

 

「...그러니까, 내게 묻지 말아주겠어?」

 

「..........무서워」

 

 

  왠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예, 언제나 그렇겠지. 그러면 이번에도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내버려 두면 가까운 시일 내로 돌아가요.」

 

 

  말이 가시 돋친 건 평소에도 그렇지만, 그 말의 마디마다, 불쾌함이 사이사이로 보인다. 유키노시타의 언어폭력에 노출되어 온 나니까 그 미묘한 뉘앙스를 알았을지도 모르는데. 뭐야 그 쓸데 없는 스킬.

 

 

「...........」

 

 

  유이가하마도 분위기를 감지한 것 같고, 걱정스러운 눈동자를 유키노시타에게 향했다.

 

 

「...뭐?, 대리? ...잠깐 기다려주세요, 아직 시간은 있겠지요? ...예, 그래요. 그 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돌아오지 않겠어?」

 

 

  ...아무튼, 타인의 전화를 몰래 엿듣는 것도 취미가 나쁘겠지. 나는 책상에 놓아둔 문고본을 다시 손에 든다. 나도 별로, 분위기도 모르는 게 아니야. 파악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대체로 파악하지 않는 거다, 이거 중요.

 

  ...그렇다 쳐도,「돌아간다」에, 유키노시타가 「대리」라... 뭔가, 짐작 갈만한 게 있군.

 

 

「이, 있잖아 힛키, 힛키는 어딘가 가고 싶은 데 있어?」

 

「앙?」

 

 

  유이가하마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기획서 만들기를 재개하는 것 같다.

 

 

「그렇군... 가이힌 마쿠하리에서 도보 수 십분 정도인, 귀여운 여동생과 고양이가 있는 히키가야 씨 집일까」

 

「돌아가고 싶은 거야!?」

 

 

  그거야 그렇다. 일 년 전까지는 바로 귀가가 안정행동이었으니까.

 

 

「어라? 그래두, 그렇다는 건 힛키 집에서 합숙해도 된다는 말이지?」

 

「무슨 말이냐 넌. 난 자신이 지금 가고 싶은 곳을 솔직히 전했을 뿐이라고」

 

 

  집까지 쑥쑥 오는 날에는, 평온한 장소가 어디에도 없게 되잖아. 좀 봐주세요.

 

 

「으-... 합숙 얘기라구! 힛키도 가는 거니까」

 

「나? 안 가요?」

 

「아무렇지두 않게 거부당했다! 에~, 좋잖아 가자-」

 

「봐, 나는 겨울 방학 저거니까, 봐 저거」

 

 

  나는 평소의 중요한 볼 일「저것」을 인용해서 저항한다.

 

 

「암튼 확실히, 남자 힛키뿐이면 불쌍하구... 사이 짱이라도 부를까?」

 

「...........자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겠나.」

 

 

  유이가하마, 내 취급에 익숙해진 것 같군. 방심하면 안 돼.

 

  그리고,

 

 

「...예,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전달해 주세요. ...별로, 화난 건 아니에요, 그럼」

 

 

유키노시타는 전화가 끝난 것 같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아까 전까지의 험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평소의 태연한 얼굴로 앉는다.

 

 

「그래서? 합숙 얘기는 진행됐니?」

 

「유키농, 힛키가 안 간다구 억지 부리는데」

 

「어머... 히키가야 군, 오는 거야?」

 

「잠깐, 유키농!?」

 

「...너희들, 전혀 의사소통 못하잖아」

 

 

  이 녀석은 기분이 나빠도 좋아도, 내게는 상냥하지 않다. 약간만 더라도 좋으니까 친절하게 대해 줬으면 한다. 아무튼 친절하게 해 줘도 아무 보답도 못하지만.

 

  그런 식으로 합숙...이라고 할까 단순한 여행으로 랭크 다운한... 것에 대해 서로 얘기하던 도중, 봉사부실 문이 드르르 열렸다.

 

 

「근데, 어라? 히라츠카 선생님?」

 

「선생님, 노크를... 저기, 괜찮습니까?」

 

 

  나타난 사람은, 봉사부 고문이자 독신, 성씨가 바뀔 기미를 전혀 안 보이는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그것 치고는 평소의 무사 같은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유키노시타가 걱정할 정도다, 보기에도 축 처져 보인다. 뒷 일 생각 안하고 지른 뒤에 청구서가 돌아왔을까.

 

 

「아아, 노크 안했군. 미안하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시타에게 솔직하게 사과할 정도로 피곤한 것 같다. 유키노시타도 많이 놀랐다.

 

 

「히라츠카 선생님... 무슨 일입니까?」

 

「...아아, 약간 지쳤을 뿐이다. 미안한데, 이 녀석을 상대해 줄 수 없을까」

 

「...이 녀석?」

 

 

  그렇게 히라츠카 선생님의 뒤에서 짠하고 얼굴을 내민 사람은,

 

 

「햣하로~ 유키노 짱하고 히키가야 군! 그리고 가하마 짱! 선물 가져왔어-!」

 

 

  목에「졸업생」이라 쓰인 카드를 단, 하루노 씨였다.

 

 

「이게 유키노 짱 거고, 이건 히키가야 군한테. 가하마 짱은... 미안, 까먹었어!」

 

「언니」

 

「농담이라니까. 네, 이거」

 

 

  하루노 씨는 예의 작은 트렁크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우리들 세 명 앞에 각각 두었다.

 

  색깔 별로 나눈 것을 보아하니, 일단 내용물은 다르겠지. 아무튼, 그래서 어떻다는 건 아니지만. 선물을 부탁하지도 않았고.

 

  추가로 히라츠카 선생님은 당초의 피로한 얼굴인 채 터벅터벅 떠나갔다. 마치 혼활파티 도중에 내쫓긴 듯한 얼굴이다. 우와, 리얼.

 

  가라사대,

 

 

『이 녀석은 진짜 어포인트먼트도 없이 갑자기 와서 말이야... 하아, 이 쪽은 숙취랬는데 지껄여지껄여...』

 

 

  벌써 방과 후인데 숙취라니 어제 얼마나 마신 거예요. 계획성이 없다고 할까... 그렇게 일요일이 우울했습니까. 이래서야 사회인이 되면 나 같은 나이브 군은 일주일도 못 가겠네요... 건강 사정상, 일하는 건 포기. 정말로 유감스럽다.

 

  우리 소부고는 그 개방성이 이유인지, 졸업생이 훌쩍 들르는 일이 많은 것 같다. 그 중에는 너무 편해서 눌러 앉는 녀석도 나올 정도다. 소스는 모 유도부.

 

  하루노 씨도 문화제 왔었고, 아직도 여기에는 이따금 놀러 오려나. 히라츠카 선생님과도 사이 좋은 것 같고, 선생님이 결혼... 아니다, 전근할 때까지는 관계도 끊어지지 않으려나. 근데 그러면, 결혼이 먼저일지 전근이 먼저일지... 어렵습니다.

 

 

「자~자~ 열어 봐」

 

「언니, 그런 게 아니라...」

 

「좋으니까, 안 열어 주면 얘기 안 들어줄 거예요?」

 

 

  하루노 씨 등장으로, 부실 분위기는 단번에 하루노 씨 주도로 옮겨 간다. 여전히 강탈 스킬이 끝내준다. 유키노시타도 한숨을 내쉴 뿐이다.

 

  유키노시타의 아름다운 손가락이, 봉투 입구를 묶은 리본을 천천히 풀고... 아니, 별로 그냥 보고 있었다니까, 손가락 페티이라든가 아니라고. 뭐가 나올까- 말한 게 신경 쓰였을 뿐. 뭐라 하면 될지...그...추잡스런 얘기입니다만...후후.

 

  리본을 다 풀어낸 유키노시타가 봉투 안에 든 물건을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거기서 유키노시타는 동작을 멈췄다.

 

 

「이, 이건...!」

 

 

  어, 뭐야 그 리액션. 유키노시타한테는 드문, 말꼬리에 「 ! 」가 붙을 정도의 감탄.

 

  유이가하마도 신경 쓰이는 것 같고, 허겁지겁 자신의 봉투에 매달린다. 이 녀석 완전히 분위기 탔구만...

 

 

「후후후... 그래요 유키노 짱. 유키노 짱이 정말 좋아하는, 디스티니 랜드의 인기인...」

 

「판 씨...」

 

 

  거기에서 나온 건, 앙증스러운 눈초리가 나쁜 팬더... 판 씨 키홀더였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 같다. 대나무 대신, 뭔가 이상한 식물 들었고.

 

 

「게다가... 이건 현 내 디스티니 샵 외에는 팔지 않는 고토우치 판 씨...」

 

「오, 한순간에 깨닫다니 과연 대단하네-유키노 짱. 그래그래, 그거 손에 넣느라 힘냈어. 언니가」

 

 

  고토우치 판 씨라니 뭐야. 디스티니 랜드가 그런 지역 밀착형 장사에 손댔었나... 키티 짱이 아니니까. 짜가는 아닌가, 이거?

 

  다만 유키노시타가 이정도로 달려들어 무는 이상은, 제대로 된 공인이겠군...

 

 

「어, 언니치고는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닐까...?」

 

 

  유키노시타는 분한 듯 하면서도 판 씨를 잡은 손을 떼지 않는다. 언니에 대한 적의와 판 씨를 향한 애정이 갈등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없나.

 

 

「우와- 내 것도 귀여워! 하루노 언니 고마워요!」

 

 

  유이가하마의 것도 판 씨인 듯하다. 아무래도 다른 버전인 것 같고, 판 씨는 대나무 대신 칼을 들었다. 뒤숭숭하군 어이. 그리고 하루노 씨 어디 갔다 왔습니까.

 

 

「자~자~, 히키가야 군도 열어봐 열어봐」

 

「아니... 전, 프레젠트는 집에 돌아간 뒤에 여는 취향이라. 두근두근함을 즐기고 싶다고 할까」

 

 

  애초부터 프레젠트 같은 건 거의 받은 적 없었으니까, 어느 타이밍에 열면 좋을지 모른다. 혹시 이대로 안 열고 방치해 두는 선택지도 있으려나- 생각할 정도다. 아마 유키노시타 정도가 슬쩍슬쩍 해 줄 거다. 그 녀석의 판 씨를 향한 사랑이 준법정신을 이기면 그렇겠지만.

 

 

「그런 말 하지 말고. 여・기・서, 열어줬으면 하는데~」

 

 

  하루노 씨가 슥 가까워져, 눈을 치켜 뜨며 부탁한다. 눈이 자동으로 하루노 씨의 반짝반짝한 눈과, 그리고 약간 굽은 자세가 된 탓에 보이는 앞가슴에 유혹되어 버렸으므로, 당황해서 매뉴얼로 바꿔서 궤도수정했다. 위험해, 사고 날 뻔했다.

 

 

「아무튼, 별로 상관 없습니다만... 와- 엄청 귀엽구나-」

 

「좋은 국어책읽기네 히키가야 군은」

 

 

  내 것도, 열어 보면 역시 판 씨였다.

 

  역시 정체불명의 식물을 들었다... 근데 이거, 유키노시타 것과 같잖아.

 

  슬쩍 하루노 씨를 보자, 하루노 씨는 윙크를 돌려준다. 저건 진심이었나. 유키노시타가 아니라 유이가하마가 너무 불쌍하다.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은데... 바꿔 줄까.

 

  그나저나, 애초에 이런 거 받아도 난처한데... 버려도 상관 없지만, 지금 유키노시타 앞에서 그런 소행에 이르면 마지막에, 확실히 베인다.

 

  뭐, 집에 돌아가고 나서 코마치한테라도 주자.

 

 

「그런데 언니, 선물들은 열었지만... 할 말은 끝이 아니에요.」

 

「어, 속일 수 없었나-」

 

 

  데헷, 하며 연분홍색의 예쁜 혀를 내미는 하루노 씨. 못된 장난을 들킨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반면, 유키노시타는 늠름한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단지 손만이, 허겁지겁 판 씨 키홀더를 가방에 넣고 있었다... 물건에 얽매일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뇌물을 돌려줄 생각도 없는 것 같다. 확실히 외도.

 

 

「언니, 지금의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여행?」

 

「평소처럼,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고 갑자기?」

 

「어라, 안 말했었나?」

 

「...아무도 듣지 못했던 것 같은데」

 

 

  하루노 씨는 힐끔 내 쪽을 본다...아니, 봐도 곤란해.

 

  물론 나는 토요일에 하루노 씨와 우연히 만난 일을 누구한테도 말하지는 않았다. 만약을 위해서지만, 말할 상대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 말이 유키노시타 귀에 들어가면, 이 녀석이 기분 나빠할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구태여 지뢰를 밟지는 않는다. 아무튼 밟을 생각이 없어도 제법 밟지만. 마인스위퍼는 꽤 자신 있지만 말이야. 게임과 현실을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언니가 어디에 가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내일 용무가 있겠지? 찾는 것 같아요.」

 

「아아, 맞다. 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과연, 아까 전의 통화 상대는 유키노시타의 부친인가.

 

  하지만, 상당히 일부러 같은 리액션이군. 유키노시타를 능가하는 완벽 초인인 하루노 씨가 스케줄을 잊고 돌아다닌다다니 말도 안 된다. 스케줄이 기본적으로 들어가지 않은 나와는 이유가 다르다.. 이따금 예정이 들어가거나 하면, 그 날의 전날 정도부터 안절부절 못하는 걸. 기특하구나 나.

 

 

「상당히 어수선한 것 같아요, 내가 대리로 내세워질 뻔할 정도로」

 

「그래? 그럼 나 안 가도 되지?」

 

「그럴 리가 없겠지...」

 

 

  유키노시타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한숨을 쉰다. 언니에게 좌지우지되면, 익숙해진 여동생이라도 그 나름대로 지치는 것 같다. 나도 코마치한테는 가능한 한 폐를 끼치지 않게 마음가짐을...뭐 그래도, 코마치는 성가시게 해도 기뻐하는 면도 있고.. 적당히, 나한테 무리가 없는 범위에서. 그렇다는 건 평소대로 해도 괜찮다는 건가?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의 모습을 즐기듯이 당분간 보고 나서, 좋아라고 하며 트렁크를 손에 들었다.

 

 

「...그럼 급한 대로 돌아갈까. 약간 걱정시킨 것 같고」

 

 

  봉사부에 안심했다는 분위기가 흐른다. 괴수의 습격을 면한 듯한 기분.

 

  그 틈을 찌르듯이,

 

 

「아아, 추가로 유키노 짱」

 

 

떠날 때,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를 부른다.

 

 

「...무슨 일인데?」

 

「아니, 겨울 방학에는 집에 돌아올까 – 해서」

 

 

  유키노시타는 잠시 동안 하루노 씨를 쏘아보듯이 노려본다. 하루노 씨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다시, 긴장감 같은 것이 부실 안에 팽팽해진다.

 

 

「...글쎄,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어요.」 

 

「그래? ...아무튼 연말연시만이라도 돌아와. 나... 모두들도, 가끔 씩은 유키노 짱하고 만나고 싶으니까」

 

 

  그럼 기분이 내키면 연락해주세요, 히키가야 군도 가하마 짱도, 또 보자.

 

  그런 말을 남기고, 드르륵 문을 열며 하루노 씨는 떠났다.

 

  그 모습을 배웅하며,

 

 

「...정말로, 언니는 언제나...」

 

 

  유키노시타의 한숨 섞인 말이, 툭하고 부실에 울려 퍼졌다.

 

 

 

 

 

「오빠~, 여기 모르겠는데」

 

 

  코마치가 문제집 페이지를 펼치고 내게 보인다.

 

  부엌에서 그것을 힐끗 보고, 나는 수중의 감자에 다시 눈을 돌리며 한마디,

 

 

「음-... 수학인가, 패스군. 스스로 생각해라」

 

「중학 수학이야 오빠...」

 

 

  그런 말 마, 코마치. 이게 사랑 있는 교육이라는 것을 왜 눈치 못 채?

 

  자립심을 기른다는 것도 훌륭한 교육의 목적이다. 네가 할 말이냐는 하늘의 소리가 들린 기분도 들지만, 여동생의 자립심이라면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는 자신이 내게는 있다, 사랑으로. 이 기회에, 나를 기를 수 있을 정도까지 자립해 주면 더욱 기쁘다.

 

  동아리가 끝나고 그 뒤 바로 귀가한 나는, 코마치를 공부시키기 위해, 오랜만에 부엌에 섰다. 겨울 느낌이 강해져, 중고생 모두 수험이 마침내 리얼해지는 시기다. 아무튼, 대체로 새삼스럽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부엌에서 묵묵히 감자를 벗기면 마음이 안정되는 건 왜 그럴까. 마치 오랫동안 지낸 친구 같이 딱 들어맞는다. 아니, 친구 없으니까 그 감각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 전업 주부는 천직이라는 말이군.

 

  내게 거절당한 뒤에도, 코마치는 잠시 동안 그 문제집을 노려보다가, 곧 체념한 듯, 샤프 펜을 휙 내던지고 문제집에 붙어있던 해설지를 꺼냈다. 미련 없다고 할까 인내심 없다고 할까... 어느 쪽도 시험에는 필요하니까, 평가하기 어렵다.

 

  코마치는 해설을 제대로 읽는지 아닌지, 손에 든 빨강 펜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살짝 중얼거린다.

 

 

「여행인가... 코마치도 가고 싶은데」

 

「수험 끝나고 나서 해 주세요.」

 

「에~, 이런 건 기분 전환이 중요해 오빠」

 

「기분 전환을 빼먹는 이유로 꺼내면 위험한 징조라고, 예비학교 강사가 말했었다고」

 

 

  시험 전이라든가에 방 청소를 시작하는 저런 거지. 안 그래도 시간 없는 중에 청소 같은 걸 하니까, 효율이 올랐다고는 해도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해져서 결국 본말전도를 맞이한다는 결말이 반드시 따라온다. 소스는 나를 포함한 전국의 학생 제군.

 

  아~ 듣고 싶지 않아~하고 불평하며, 코마치는 테이블 옆에 놓여 있던 하루노 씨의 선물로 손을 뻗는다.

 

 

「그래도 하루노 언니도 여동생 생각 많이 하네-, 유키노 언니한테 이런 귀여운 걸 사오는 걸. 오빠도 본받기를 바라는 바예요.」

 

「바보냐 너, 나도 매일 너한테 오빠로서 애정을 따라주잖아.」

 

 

주로 치바 사랑. 치바의 잡학에 능통해진 건 내 덕분이겠지. 코마치는 내가 길렀다.

 

 

「싫어, 그런 거 받아도...뭐, 오빠한테는 재력도 생활능력도 없고, 처음부터 별로 기대는 안 했으니까 안심해!」

 

 

  역시 돈인가... 싫은 세상이 되어 버렸군. 추가로 때에 따라서는 코마치가 부자라는 게 우리 집의 불가사의. 연공서열이 아닌 것 같군, 여기는. 과연 일본의 최첨단을 계승한 면이 있다.

 

 

「뭐어 그래도, 그건 겸사겸사 그런게 아닐까, 아마」

 

 

  코마치가 묭묭하고 만지작거리는 고토우치 판 씨를 바라보며 말한다.

 

  여행이 취미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리고, 그 상태라면 여동생에게 연락이 간 것도 예상했던 것 같고, 비위맞추기 위해 사 왔다는 측면도 있을 것 같다. 효과는 발군이었지만, 문제는 유키노시타가 의외로 탐욕적이었던 점일까.

 

 

「근데 오빠... 이 판 씨, 혹시 어쩌면, 유키노 언니 거하고 같지 않았어?」

 

「...뭐? 무슨 말이야 갑자기」

 

「그 얼굴, 빙고네?」

 

「아니, 그게...」

 

 

  너도 저거냐?, 에스퍼 류냐? 혹은 내가 사토라레라는 설도 부상할 기세.

 

  ※ 사토라레 : 모든 사고가 사념파의 형태로 주위에 전파되어 버리는 증상을 나타내는 가공의 병명.

 

 

「후후후, 코마치는 오빠 얼굴 질릴 정도로 봤으니까 그래. 그 정도는 훤히 보여요.」

 

「질리게 봤다니 미묘하게 상처받으니까 그만둬」

 

 

권태기 커플인가요. 아,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기쁘다.

 

 

「그래도 맞춤이라... 즉, 하루노 언니의 허가도 받았다는 말이네. 오빠, 드디어 됐어!」

 

「뭔데...」

 

 

지긋지긋해 하면서 질문에 답한다. 이 녀석이 말하고 싶은 것도 대체로 싫증나게 들었으니까, 안다.

 

 

「자, 앞으로 한 달 쯤 뒤에 크리스마스야! 이 때가 승부시점이라고 코마치는 생각합니다!」

 

「어떤 경기라도, 이길 생각 없다고...」

 

 

  오기가 있으니까, 그 애.

 

 

「그런 의미가 아니라니까! 정말, 올해 크리스마스는 집에 있는 거, 금지할 테니까!」

 

「어, 자택 추방 됐어? 나 도로에 헤매버려요?」

 

「왜 어딘가 놀러 가기를 못 떠올려? 오빠는... 자, 유키노 언니의 맨션이라도, 유이 언니 집이라도 어디라도 초대받으면 되잖아! 뭣하면 히라츠카 선생님하고 디너라든가도 상관없으니까!」

 

 

  뭣하면이라니... 히라츠카 선생님의 취급이 너무 엉성해 눈물난다.

 

 

「아, 그래도 그 날 안에는 돌아와야 해? 아침에 돌아오는 건 오빠한테는 아직 빠르다고 할까... 코마치도, 오빠하고 같이, 크리스마스 축하하고 싶으니까」

 

「.............」

 

「아, 지금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높아!」

 

「... 바보같은 말 말고, 입 다물고 공부해」

 

「무으-... 네-에」

 

 

  다시, 눈앞의 요리에 집중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 클래스의 주부라면 벌써 자동인형처럼 손이 움직이니까. 속 재료를 다 자르고 냄비에 넣어, 확실히 볶는다. 다시다를 적당량, 간장이나 미림이든가로 간을 맞추고, 앞으로는 뚜껑을 닫고 잠시 동안 기다린다. 극히 일반적인 소고기 감자조림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림의 위대함은 비정상적이다. 달고 짠 일본식 요리라면 어디라도 넣을 수 있으니까.

 

  하나 더 만들까 하는 생각에 냉장고에서 적당히 재료를 꺼낸다.

 

  코마치는 들은 대로 묵묵히 공부하고 있었다. 때때로 응하고 골똘히 생각하거나 종종 노트 구석에 쓰거나. 귀엽구나... 그 약삭빠름이 없다면.

 

  부글부글하고 냄비에서 익는 소리가 난다. 사삭 샤프펜슬이 미끄러지는 소리도.

 

  이 침묵이, 나는 싫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굳이 아무 말도 안 해도, 서로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이 공간이, 솔직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좋아 오빠 결정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올해 크리스마스도 오빠, 코마치하고 같이 집에 있을거니까! 지금 하치만적으로 포인트 높아.

 

  아무튼 치바의 남매는 사이좋게 둘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만 하는 숙명이 있으니까, 하는 수 없다.

 

  내가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스파라에 돼지 삼겹살을 넣자, 코마치가 일어서서 이 쪽으로 걸어왔다.

 

 

「일단락되기도 했고, 코마치도 도울게.」

 

「됐으니까 공부해, 이제 조금이면 되고」

 

「이런 것도 기분전환이야」

 

「너. 너무 기분전환 하잖아...」

 

 

  코마치는 내 잔소리를 스루해, 싱크대에서 손을 씻기 시작한다.

 

  ...정말로, 오빠 마음을 모른다는 건 맞는 말이다. 틀린가? 아무튼 상관없잖아.

 

  ......그럼, 언니 마음을 모른다, 는 건 어떠려나.

 

  테이블에 내던져진 판 씨를 보며 문득 생각한다.

 

  아무튼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할지는, 그 총명한 여동생도 모를 테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 같은 타인이 알 리도 없겠지만.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의, 하루노 씨를 떠올린다.

 

  집의 용무를 내팽개치듯이, 훌쩍 여행을 떠난 그녀의 얼굴.

 

  그 태양 같은 미소는, 혹시 약간은,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