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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입니다, 플뤼겔입니다.

  본편 최종회에서 쓴 대로, 지금부터 예외편이 됩니다.
  전 5화 중 1화입니다.

  이야기가 좀 바뀝니다만, 이번부터 개행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실은 본편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의외로 양이 많아서 예외편만 했습니다.

  그러면 봐 주세요.



=======================================================





  예외편 그 1 ~올바르게 그녀를 소개하는 방법~



  14세. 그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위치한 연령이며, 따라서 사춘기라 불리는 복잡한 감정을 갖는다. 에반게리온을 탈 수 있는 것도 이 나이 뿐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간 어른스러운 면이 보이는 연령대. 남자는 점점 소년만화를 졸업하고, 중2병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반대로 여자는 점점 여자다워지기 시작해서 로리콘을 절망시킨다.
  그들, 그녀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자신이 애가 아니라는 자의식이고, 그래서 남녀 모두 몹시 발돋움을 하는 녀석들이 많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그건 역시 그저 흉내다. 담배를 입에 물어도 연기만 낼 뿐이고, 연애 같은 건 서로의 관계를 점차 깊게 해갈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역시 애이며, 사회도 상식도 모르는 이 연령대는 불안정하면서도 행동력이 있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훔친 오토바이로 질주하거나 밤에 학교 유리창을 깨고 돌아다니거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른들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탓인지, 14세 여자애가 모친이 된 드라마도 방송되거나 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세상이 보는 14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애, 한 단어로 축약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아무리 용모가 어른스러워도, 14세는 14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와 사귀는 고교생은 사회에서 조금 차가운 시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겨우 2살, 2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나이 차이는 큰 게 아니게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차이다. 그러고 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28세를 30이라고 하니 엄청 상처받은 표정을 하셨지. ......어쨌든 여중생 입장에서는, 고등학생과 사귀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로 스테이터스일지도 모르지만, 남고생 입장에서 여중생과 사귄다는 건 역시 좀 찔린다.
  즉, 비록 그렇게 들떠 버릴만한 사태에 빠져도, 쓸데없이 퍼뜨리지 말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려두는 편이 좋다. 그런 친구들 거의 없지만.


―――――――


「그 영화, 역시 별로 재미없었죠?」


  날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는, 그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신난 모습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점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보다 한층 더 눈부셔진 7월 중순. 학생 최대의 이벤트인 여름방학...... 시험이 끝나고 처음 휴일인 오늘, 나는 키리바나와 같이 밖에 나왔다. 서로 학기 기말 시험을 극복해낸, 그 포상이라는 거다.
  덧붙여서 지금까지의 정기시험과 달리 유키노시타라는 강력한 두뇌를 얻은 나와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스파르타 교육을 필사적으로 견뎌, 자기채점 결과 어떻게든 낙제점을 면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키노시타가 가정교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저것보다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사전에 재미없다는 걸 알았으면, 다른 걸 보는 게 나았잖아.」

「그래도, 어느 의미로는 재미있었어요.」

「그건, 재미의 의미가 다를 뿐이겠지.」


  시험이 끝나고 놀러가는 것은 미리 정했기 때문에, 시험 공부하는 사이 어디에 갈지 생각하기도 했다. 꽤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즈에 선배에게 상담했다.
  순애 사고계 빗치라는 드문 장르의 선배라면, 정통파 데이트를 몇 명과 반복했을 테니,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줄 거라는 기대를 담아서이다. 뭐, 배신당했지만.
  이즈에 선배는 히죽히죽하고 놀리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청춘이구나~」하고서는, 장식된 학교 지정 가방에서 A4파일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파일 안에 든 종이를 꺼내보자, 최근 출시된 영화 광고지였다.
  평소 하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선배는 「이 광고지에 있는 영화는 전부 글러먹었으니까, 절대 추천이야」라며 모순된 단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쓰레기 영화 애호가였지.
  어쩐지 이런 취미가 있어서 남친과 자주 헤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그 미소에 굴복해 광고지를 받아 버렸으므로, 키리바나에게 갈지 말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OK가 나왔다. 뭔가 나쁜 취미에 빠질 것 같아서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영화관까지 원정을 왔지만...... 아무튼, 영화는 기대 대로라고 할지, 아니나 다를까였다.
  모처럼의 휴일인 것도 있어서, 영화관에는 부부나 친구 등 많은 사람으로 흘러넘쳤음에도, 우리들이 들어온 관은 놀라울 정도로 관객이 적어, 우리들 외에는 2, 3조밖에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손님들도 극장에서 나오자 한결처럼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영화관에서 나온 뒤는, 갈 곳도 없이 오락가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며칠 전에 장마가 개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오전부터 태양이 번쩍번쩍 빛나, 건물 유리를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 아침 특유의 맑은 공기가 어딘가 기분 좋았다.


「그래서, 이후는 어떻게 할까? 아직 밥 먹기에는 좀 빠르잖아.」

「그러네요...... 하치만 오빠는 평소에 어디에 가나요?」


  한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키리바나가 꾸밈없이 묻는다. 그런 모습임에도 키리바나는 땀을 흘리진 않아 보인다. 나는 더위에 습격당해서, 이미 땀이 몇 방울 흐르고 있는데, 여자애는 불가사의하다.


「그렇게 물어봐도 딱히. 나도 서점이나 도서관 정도밖에 안 가. ......남은 건, 게임센터 정도군.」

「게임센터...인가요? 그러고 보니 거기 간 적이 없어요.」

「그래? 친구와 스티커 사진 같은 거 안 찍어봤어?」


  여중생들은, 놀러갈 때 스티커 사진 같은 걸 찍는 이미지가 있던데. 중학교 때도 스티커 사진 교환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 같고.
 코마치도 가끔 키리바나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내게 보이며, 「얘 귀엽지?」라고 물어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른다. 실제로 귀여우면 대답할 여지가 있지만, 사진이 미묘할 경우 실물은 거의 유감이기 때문에. 「아, 아무튼... 귀엽지 않겠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츤데레가 아니라.


「요즘에는 게임센터가 아니어도, 스티커 사진기는 있으니까요. 우리들이라면 그쪽이 가기 쉬워요.」


  뭐 게임센터라는 곳은 불량 집합소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피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웃로는 아무래도 놓치기 쉬우니까. 반대로 쿠와타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 쿠와타라는 야구 선수가 「아웃로는 필요 없어요. 정중앙으로 160킬로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 부근 숙녀 옷 판매점 옆에, 스티커 사진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스티커 사진 구역이 남자 금지가 된 것 같지만, 저런 곳에 놔두면 남잔 애초에 안 갈 거다.


「모처럼 얘기가 나왔으니, 게임센터라도 갈까요?」


  키리바나가 발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서, 그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가기 힘들지 않으려나?」

「남자와 함께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을까요?」


  뒤돌아서 내게 웃어주고는, 그대로 발을 멈추지 않고 키리바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게임센터라는 말을 듣고 한 남자 얼굴이 멋대로 떠올랐지만, 그 표정이 매우 괘씸해서 밟아주고는 키리바나의 뒤를 따라갔다.


―――――――


  역에서 조금 걷자, 주위의 화려함에 분간이 안 되는 여러 건물이 있었다. 가까이는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라면집이 북적거리는 중, 끊임없이 전자음이 울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거리의 게임센터다.
  술집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하고, 고교생이나 중학생 나머지는 다니던 길로 다니는 가족동반이 하나 둘 정도 있을 뿐이었다. 저녁 이후의 술 담배 냄새와는 또 다른, 젊음과 따뜻함 그리고 음침함이 섞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키리바나가 게임센터로 연결되는 자동문을 보며, 감개 깊은 듯 눈을 떴다.


「뭐야, 와본 적 없었어?」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여자가 볼 일도 없이 들어갈 곳이 아니라구요.」


  토라진 듯 대답하고, 키리바나는 약간 더러운 자동문을 빠져나갔다.
  나도 키리바나를 쫓듯이 점내에 들어가자, 홍수 같은 소리가 일제히 덮쳤다. 메달이 서로 스치는 소리, 고저음이 얽힌 전자음에 소란스러운 사람 목소리, 그것들이 합쳐진 불협화음이 하나가 되어 귀에 닿는다. 그러나, 그 어수선함이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키리바나는 평소 그대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잡음의 물결에 삼켜지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 놀란 모습으로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접한다.


「왠지, 여러 가게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의외로 깔끔하게 녹아들었잖아.」


  여기 게임센터는 남자취미인 격투기나 음악게임, WCCF 등 그리고 여자취미인 크레인 게임이나 스티커 사진 구역을 철저히 나누었다. 최근에는 커플이나 여자 그룹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싶어서인지, 입구에 크레인 게임을 배치하고, 나머지를 양극단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커플 한 조가 있고, 남친이 봉제인형을 잡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 팔의 행방을 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자, 단골인 듯한 사람들이 벌써 눌러 앉아서, 각자 묵묵히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청결감이 넘치는 하얀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스티커 사진관이 모여 있는 남자금지 구역으로 발을 디딘다. 네온 라이트 같은 빛이 끊임없이 깜박이는 여기는, 방심하면 빛에 빠져버릴 정도다. 그 눈부심을 키리바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바람으로, 안쪽에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년 전에 도촬인가 뭔가 해서, 이 구역은 커플이 아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는 흥에 취한 중고생이나 술 마신 대학생이, 남자 그룹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광경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엄청 갸루 같은 여자애가 그려진 커튼에 압도되면서 우왕좌왕 거리고 있었는데, 「여기예요.」라며 키리바나가 손을 잡아당긴다.
  너무 갸루 같은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시 여자답게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그나저나, 갸루=스티커 사진이라는 발상이 낡구만.
  키리바나가 적당히 고른 곳으로 들어갔더니, 조명 사진기를 조금 넓혀, 엄청 호화롭게 만든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터치 패널에는 유이가하마가 좋아할만한 발랄한 자체가 떠 있었다. 눈이 아프다.
  돈을 넣고 키리바나가 조작하자, 여러 프레임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와서 키리바나가 내게 물어본다.


「하치만 오빠, 어떤 게 좋아요?」

「잘 모르니까, 적당히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난처한데요......」


  눈썹을 바싹 오므리고 대답하면서도, 키리바나는 아-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하며 즐거운 듯 고민하면서 화면의 프레임을 바꿔간다.


「그래도 하치만 오빤 눈 탓에 카메라를 잘 못 받아서, 조금 손해네요.」

「야」

「농담이에요. ......그럼 이렇게 눈을 숨겨보면, 의외로 멋지게 찍힐지도 몰라요. 봐요, 저도 하고 있고」


  팔을 들어 올려서, 눈앞에 두고 눈을 가린다.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입 끝이 풀어진 것을 보면, 진짜 농담이리라. 하지만 그거다. 아무래도 그거로밖에 안 보였다.


「나는 상관없지만, 넌 절대로 하지 마.」


  무심코, 말이 세게 뛰쳐나온다.
  남자가 그렇게 가리는 것은 별로 문제없지만, 여자애가 눈을 가려버리면, 그걸로 밖에 안 보여서 큰 문제다.
  키리바나는 내 말에 몹시 놀라, 머리를 크게 갸우뚱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뭔지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거야 그렇다.
  그대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화면을 누르고 설정을 진행시키고는, 「이거면 괜찮아요.」하고,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딱딱한 미소를 짓고, 기계에서 흐르는 전자음에 따라서 몇 장정도 찍은 뒤에 밖으로 나오자, 찍은 사람이 편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키리바나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해간다. 키리바나는 눈의 썩은 상태를 어떻게든 줄일 수 없는지 고집스럽게, 여러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마침 반짝반짝을 눈 옆에 배치하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키리바나에게 말을 해두고, 스티커 사진 구역에서 나왔다. 역시 게임센터에서 스티커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따분하다. 적당히 놀 필요가 있다. 키리바나가 뭔가 마음에 들만한 게 없는지, 크레인 게임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 저 자는. .....하치만이 아닌가!」


  엄청 숨 막힐 듯 더운 소리에 불려 마지못해 뒤돌아봤더니, 거기에는 목소리대로 숨 막힐 듯 더운 풍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녀석,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그 거체를 흔들며 나에게 왔다.


「뭐야, 자이모쿠자인가......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특별히 없네! 단지 하치만의 얼굴이 보였으므로, 무심코 말을 걸었을 뿐이다.」

「어째서 넌, 그런 면만 여자 같은 거냐...... 기분 나쁘구만. 너도 놀러온 거 아냐?」


  그 목소리와 풍모이면서, 자켓을 겉에 두른 탓에,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이 녀석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매우 덥다.


「음, 역시 창작에는 인풋이 중요하니까 말이지. 백지와 마주 보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에 접해서 창조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글이 전혀 진행 안 돼서, 현실 도피로 놀고 있다는 건가.」

「그, 그렇게도 말하지......흠. 자네도 나처럼 혼자인가?」

「아아, 아니...... 저거다.」


  무심코 말끝을 흐려버린다. 이 녀석에게는 애초에 키리바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거기에 사귄다는 것을 말하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가만히 자이모쿠자를 본다. 말투로 보아 키리바나와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대면시켜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그보다, 이 자식과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긴 한가?
  우선 적당히 여길 떠나, 키리바나를 데리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피난하기로 할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하치만 오빠.」


  그렇게 생각해서 입을 열려고 한 참에, 키리바나의 맑은 목소리가 자이모쿠자에게 닿았다. ......타이밍 나쁘구만.
  키리바나는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눈을 깜박인 뒤 슬쩍 나를 엿본다. 그리고 마침 입을 뻐끔뻐끔하던 자이모쿠자를 무감동한 시선으로 찬찬히 보았다.


「......친구 분과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저는 실례하겠어요.」

「어이 이봐, 도망치지 마」


  그대로 몸을 돌려 피난 가려는 키리바나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멈춰 세운다. 호리호리하고 하얀 팔은, 서늘했다.
  키리바나는 입을 뾰족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른 방향을 계속 보고서 말했다.


「보세요, 친구 분도 기다리는 것 같고, 모처럼이니 느긋하게 얘기해주세요.」

「나도,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지쳐. 너 자이모쿠자한테 들킨 시점부터 나와 같은 운명이야.」

「그래도 저, 이런 분은 서툴러서, 무슨 얘길 해야 좋을지 몰라요.」

「.....우선 목소리를 낮춰. 이 녀석, 의외로 쉽게 상처받아」


  봐, 자이모쿠자가 약간 울상 짓고 있잖아.
  키리바나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내 옆에 서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팔을 놓는다.
  자이모쿠자는 아직도 입을 허 하니 벌린 채, 팔을 바들바들 털고는 키리바나를 가리키면서


「하, 하치만...... 이 부인은?」


  키리바나의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진 게 느껴졌다.


「부인이라니, 얘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아아, 저거다...... 키리바나라고 하는데, 여동생의 친구이자...... 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추가된 새로운 직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일단 키리바나에게 눈짓을 보냈더니, 딱히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이모쿠자의 마음을 더 자극했는지, 「켁, 리얼충이」라고 밉살스럽게 내뱉고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하치만, 잘못 봤네. 나와 함께 동정 친화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안 그랬거든, 그럴 생각도 없어. 그리고 넌 믿지 마」


  키리바나가 진심으로 깬다는 게 느껴져서, 부인해둔다.
  자이모쿠자는, 마치 목성에서 돌아온 듯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가슴을 뒤로 젖히고는, 엄청 과장되게 양손을 벌렸다. 배의 지방이 물컹 흔들린다.


「동정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리얼충들에게 무엇이 가능하지? 항상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한 줌의 동정이다.」

「틀려. 그보다 동정이라면 세상을 만든다 쳐도, 후세를 못 남기잖아.」

「애당초, 이 소녀의 어디에 연하 소꿉친구 요소가 있다는 것인가?」


  키리바나가 연하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쓸데없이 강하게 되묻는다. 상쾌할 정도로 비열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좋아하게 되진 않겠지만.


「네? 저 말인가요?」


  설마 자신에게 화제가 돌아온다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근처 유리 안에 들어있는 봉제인형을 보고 있던 키리바나가,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본다.
  오늘의 키리바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에, 반소매 블라우스를 맞춰 입은 모습이라, 뭐 어른스러운 차림이지만.
  눈을 깜박한 키리바나가, 나와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이모쿠자는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돌리고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데 하치만, 이 애와는 집이 가까운가?」

「아니. 걸어서 10분 정도다.」

「훗, 그 거리로 소꿉친구라니. 아다치 선생님이 들으면 폭소하겠군.」

「그거 거의 맞닿은 이미지잖아. H2라면 집이 좀 떨어져 있잖아.」


  애초에 이웃에 동갑내기 여자가 사는 편이 드물잖아. 유유백서도 소꿉친구 설정이지만, 집은 멀리 있고.
  키리바나는 느낌이 바로 오지 않은 건지 「술집 자식이라고?」라는 둥 잘 모를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응, 왜 영웅만 아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연하인데, 로리 얼굴이 아닌데다가 쓸데없이 키가 크고...... 무엇보다 하치만을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지 않잖나」

※ 역주 : 키리바나가 하치만을 부르던 호칭은 원래 ~さん인데, 우리말에 딱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어서 둘의 관계를 고려해, 번역할 때 오빠라고 했었습니다.

  한층 더 키리바나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아니, 여동생의 친구에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게 하면, 범죄잖아.」


  그래도 아무튼, 자이모쿠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조금은 알겠다. 얘는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그것에 비례해서 얼굴 생김새나 언동이 매우 어른스럽다. 교복을 입지 않으면 가끔 중학생이라는 것을 진짜로 까먹을 것 같다.
  옆에 선 키리바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어깨까지 뻗은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다소 짧아졌지만, 묶진 않는다. 계속 스트레이트이다.
  ......그래서일까, 키리바나는 자연히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키리바나는 연하 요소가 거의 없구만.


「알겠나, 하치만. 연하 소꿉친구라는 것은, 단발에 키가 작고, 거기에 가슴도 없지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불러주는, 그런 애가 좋은 것이야. 오빠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안타까움, 그것이 최고인 게다. 그런 옆집 누나 같은 연하 소꿉친구 따윈, 결국은 이류다.」


「......네네, 그럼 다음에 그런 라노베라도 써봐.」


  그거, 거의 자이모쿠자의 희망이잖아.
  그런 기분 나쁜 망상을 들은 키리바나는, 얼굴을 내내 찡그리고 있었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표정이 확 밝아져서는,


「......그렇다면, 저기, 자이모쿠자이 분이 말씀하신 소꿉친구 요소에, 하나 들어맞는 게 제게 있어요.」

「흣, 흠. 뭔가?」

「이름, 미묘하게 잘못됐어.」


  그런 내 잔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키리바나는, 코마치 같은 미소를 띠고는, 슥하고 나와 팔짱을 끼며,


「저, 어릴 때부터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아이처럼 슬쩍 혀를 내밀었다.


「......」

「......」


  그 후에 울려 퍼진 자이모쿠자의 무슨 말인지 모를 비명을 들으며, 최근 알게 된 키리바나의 뜻밖의 일면을 떠올린다.
  ......키리바나는 꽤나, 장난꾸러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