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끔 번역물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2ndboost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http://novel.syosetu.org/38226/





  소녀 때 Ⅷ ~커다란 손~



 
  코마치와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나서 며칠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하치만 오빠에게 사과하지 못했습니다.

  요 며칠 간 몇 번이나 사과하러 가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코마치에게 상담했더니,


「그건 안 돼. 오빠가 먼저 심한 말을 했으니까, 아카네 먼저 사과하면 안 되지.」


  이렇게 말하며 저 먼저 사과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납득해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사과하고 싶어지고 다시 코마치가 말리는, 그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돌아갈 때도, 며칠 간 계속 하게 된 대화를 주고받으며 코마치와 하교하고 있었습니다.

  해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거리는 저녁노을에 물든 하얀 그대로였습니다. 점심 경에는 상당히 기온이 올랐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내기 좋은 정도까지 내려가서 바람이 기분 좋은 그런 때입니다.

  쭈욱 늘어난 검은 그림자를 한 걸음씩 밟으며, 며칠 사이 몇 번째가 될지 모르는 「그래도」를 제가 말하기 시작했을 때, 하치만 오빠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순간 나온 말이 딱딱한 인사였던 것을 후회하면서 인사를 한 뒤 얼굴을 들자, 하치만 오빠의 탁해진 눈과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좋은지 모르게 됩니다. 거북함과 멋쩍음이 엄습해서 무심결에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 후회했습니다.

  코마치가 마침 잘됐다고 말하고 떠나서, 이곳에 저와 하치만 오빠만이 남겨졌습니다.

  나무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나,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가슴이 괴로울 정도로 아파지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치만 오빠가 한 걸음 다가옵니다. 조금 기울어진 해에 늘어난 하치만 오빠의 그림자가, 저의 그림자와 교차합니다.

  그것만으로 제 사고는 뿔뿔이 흩어져, 다시 모을 수가 없게 됩니다.

  조금 멍한 도중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리저리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술을 몇 번이나 움직여보지만, 그저 한숨이 되어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무산해갑니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결국 평소에 하던 인사가 입에서 나왔습니다.


―――――――


  초등학교 무렵에 가던 통학로를, 하치만 오빠와 걷습니다.

  매우 새로운 현대적인 주택에, 다양한 색상으로 된 포장. 앤틱한 가로등은 저녁노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거리 안에서, 무기질적인 백색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통학로는 하치만 오빠가 졸업한 뒤 개발이 진행되어, 지금은 상당히 정비되었습니다. 저와 코마치는 정비된 뒤의 통학로도 쓰던 탓에 그다지 새로운 느낌은 안 들지만, 하치만 오빠는 두리번두리번하며 이상하다는 듯이, 달라진 것들 하나하나를 주목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치만 오빠와 이 길을 걷는 것도 초등학생 이래로 처음입니다.


「......요전에는 미안. 말이 너무 지나쳤어.」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있던 때, 제가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하치만 오빠가 했습니다. 저를 시야에 담은 하치만 오빠의 눈은, 석양을 반사해 조금 빛나는 것처럼 보여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 떠오릅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조금 감정적으로 됐어요.」


  그리고 겨우, 저는 며칠간 가슴에 움켜쥐던 생각을 내뱉을 수 있었습니다.


「왜 네가 사과해?」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


  실은 좀 더 사과하고 싶지만, 이만큼만 합니다. 코마치가 말했습니다. 사과할 거면, 간단히 하라고. 그렇게 부담 없이 화해하면, 싸운 것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마치의 의견에 따르려고 합니다. 이것은 둘이서 한 마디씩 사과해서 그걸로 끝난다고.

  주택가를 빠져나가자, 눈앞에 전원 풍경이 펼쳐집니다. 몇 개의 논에 규칙적으로 심어진 모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 과거에서 온 바람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벌써 상당히 옛날이 되어버린, 처음으로 이야기하고 그대로 같이 돌아간 그 무렵의 기억이 뛰돌아 다닙니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래서일까요. 이 풍경을 눈앞에 두고 하치만 오빠와 이야기를 하자,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러네요. 하지만 논밭을 무너뜨리고 집을 짓는 것도, 멋이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깔끔해지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살게 된 사람만일지도 몰라요. 혹시 원래 살던 사람은 싫어할지도 몰라요.」


  하치만 오빠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장마의 눅눅한 공기가 자꾸 무거워져서 저를 눌렀지만, 이 말은 본심에서 나온 말입니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긴장만은 참을 수 없어, 목이 말라갑니다. 제 마음은 요즘 망가진 것처럼, 격렬하게 점멸을 반복합니다.

  하치만 오빠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뒤, 그는 그리운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저기,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갑자기 나온 그 말에, 무심코 심장이 덜컥합니다. 아무리 하치만 오빠라고 해도, 저의 내면에 닿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 의도를 살피고 맙니다. 하치만 오빠의 눈을 조심조심 들여다보고, 곧바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차리자, 저는 익숙해진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이것은, 저의 이 공허한 성격을 서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예, 원래 그래요.」


  그래서 저도 말을 하며 저의 성격을 확고히 쌓아올려, 형태를 만들어 갑니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바라지 않습니다. 언젠가 주변 사람이 녹아서 스러져도, 저는 변함없이 혼자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성격은 간단히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 일 같은 것은 없이, 태어났을 때부터 품었던 것이라 이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성격은 지금부터 평생, 꺼림직함을 품으며 같이 따라갈 테지요.

  ......그럼에도, 예전보다 자신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저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준 애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갑자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불러서, 무심결에 대답했습니다.

  타이밍을 가늠해서 모처럼 제 생각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불만스러운 저와는 반대로, 하치만 오빠가 두른 분위기는 자꾸 팽팽해져갑니다. 긴장을 억누르듯이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편 뒤,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항상 곁에 있게 해줘.」


  그것은, 예전에 제가 들었던 말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서 들으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지금까지 미움 받지 않을 정도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성으로 사랑받다니, 하물며 하치만 오빠가 고백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가까운 거리는 그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한 것일 뿐, 특별한 유대가 자라났다는 건,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몸을 지배하는 놀라움에, 어느덧 넘쳐흐른 기쁨이 뒤섞여, 따스한 온기에 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짝반짝한 고운 알이 가슴 속에 퍼져, 그리운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하치만 오빠의 말을 먼 옛날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프로포즈한 말이니까요.

  그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제게 말해준 것. 제가 갔더니, 할아버지가 난처한 얼굴로 제게 가르쳐 준, 머나먼 옛날의 자그마한 고백.


「아하하하하!」


  그래서, 절로 웃음소리가 넘쳐흐르고 말았습니다.

  용모도 성격도 매우 닮은 우리들인데, 설마 이런 부분까지 같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이 기묘한 우연이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놀라서 기막힌 모습으로 눈을 크게 뜹니다. 조금 멀리서 걷는 사람들이, 힐끔힐끔하고 궁금한 듯이 우리들을 보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차는데 어째서 그 마음을 숨겨야 할까요.

  쑥쓰러움의 물결이 밀려와서 돌려주듯이 살짝 발을 넣어서 닿자, 투명한 물이 발에 휘감겨서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제가 계속 웃어서 그런지, 하치만 오빠가 불만스럽게 흘겨봅니다.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 빠져서」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하치만 오빠가 입을 뾰족하게 하며,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그 토라진 모습이 아이 같아서 귀여웠지만, 말로 하지는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일단 웃음을 멈추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순수한 감정을 꺼내서 말로 해나갑니다.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왜나면 이렇게나 가슴이 뜨거워지니까요.

  할머니는 이런 멋진 프로포즈를 받고, 어떻게 느꼈을까요. 만약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면, 안타깝습니다. 이 말만으로 평생 가득 찰 정도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나저나,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


  저는 아직 14세라서, 애초에 결혼 같은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전하는 것만 생각했고, 앞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 때문에, 마음 깊숙이 있는 감정에 쉽게 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어준다. 제멋대로에 독선적이고, 손 놓아 버린 것을 쫓을 수 없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

  그래서 남은 것은 앞으로 하나만.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라도, 겉으로 드러나게 된 싫은 성격에 대해 물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심술궂은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을 기대하면서, 저는 마음속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가, 평소의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했습니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기대 그대로인 말은 정말로 달콤해서, 몸 전체가 저릴 정도로 기분 좋았습니다.

  그 달콤함에 취해서 잠기듯이 몸을 흔들고 있는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기대 이상의 말에, 뺨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히죽거릴 것 같게 되는 얼굴을 억누르고, 목소리에 동요를 남지 않게 침착한 상태를 의식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두근거리는 탓에, 제대로 하고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다행히 하치만 오빠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제 상태를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솔직해지자고 친구와 약속했고, 저를 알면서도 함께 있어주는 사람을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조금만 더 뒤로 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맛보고 싶으니까요. 앞으로 여러 행복과 불행을 만나겠지만, 이것과 같은 종류의 행복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따스한 기분에 몸을 담가서, 그대로 몸을 맡깁니다. 얼굴에 닿는 산들바람이 기분이 좋아, 눈을 가늘게 뜹니다. 언제까지나 하치만 오빠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아쉽지만 손을 놓고, 만감의 생각을 담아 대답합니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일찍이 할머니가 한 것처럼, 낡고 평범한 말을 골랐습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그렇게 말하고 비어 있던 하치만 오빠의 손을 잡아, 돌아갑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대로, 하치만 오빠의 손은 남자답게 커서,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하려다가 끊긴 말은 아직 하지 않습니다. 모처럼이니까, 제대로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조금만 미루려고 합니다.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날린 사람은, 하치만 오빠니까요.

  어느 새 해는 거의 가라앉아 떨어져서, 거리는 작은 어둠과 주황색이 뒤섞인 복잡한 색조를 보이고, 먼 하늘에는 창백한 달과 가장 먼저 보이는 별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저는 이 성격 그대로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채워져도, 이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이 떨어진다면, 되찾으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런 저라도, 이 커다란 손을 계속 잡는 것만큼은,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