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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혼인 이야기

2014. 3. 11. 00:10 | Posted by 2ndboost

 

 

 

소부고등학교. 치바에 있는 공립 진학교이자, 바닷가에 있는 도시에 세워져, 현내에서는 유명한 학교다. 평소에는 왕래가 적은 학교 근처의 큰 길도, 통학시간이라는 이유도 있어 많은 학생들로 활기차다.

 

숙제를 잊었다든가, 어제 TV 얘기라든가, 요새 마음에 드는 뮤지션 이야기라든가,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년 소녀는 길을 걸어간다. 어느 소녀는, 버스에서 내리고 밝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경쾌하게 교문을 향해 걸어간다. 어떤 소년은 푸른색 운동복을 몸에 걸치고, 큰 테니스 라켓이 든 가방을 매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승강구를 오른다. 어떤 소년은 커다란 코트를 몸에 걸치고, 큰 몸으로 차가운 겨울 날씨를 흔든다.

 

그 진학교 중에서도, 편차치가 높은 학생이 모이는 국제 교양과에 다니는 한 소녀가, 옥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다.

 

추운 날씨 속에, 옥상에 서서 대지를 내려다보는 소녀는, 그 사람과 동떨어진 수려한 용모와 더불어, 마치 하계를 내려다보는 천사 같았다.

 

바람으로 흐트러진 흑발을 살짝 왼손으로 정돈한다. 손에 있던 수첩은 가방 속에 넣고, 조금 전까지 수첩에 빨간 선을 무수히 그은 삼색 볼펜은 가슴에 있는 포켓에 집어넣는다.

 

그녀가, 그 이상한 행동을 시작한 지 일주일. 대강의 목적을 달성한 그녀는 기대 이하의 성과에 깊은 한숨을 내쉬고, 교실로 되돌아간다.

 

앞으로 10분 정도면 차임벨이 교내에 울릴 것이다. 수업 개시를 알리는 음악이, 거친 철근 콘크리트 교사를 휩쓸기 전에 그녀는 몸을 돌린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각.

 

 

한 눈이 썩은 소년이, 하품을 하면서 자전거를 주륜장으로 살짝 밀어 넣는 중이었다. 드문드문 지각할까봐 무서워서 달리기 시작하는 학생이 보이는 중, 그는 당황하거나 야단법석 피우지도 않고 조용히 교내로 잠입한다. 그림자 같이 존재감이 옅은 소년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누구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소년은 옥상에서 떠나려는 소녀의 뒷모습을 시야 구석에 담고 있었다.

 

 

뭐야 저건 무서워.

 

 

다만, 학교마다 있는 괴담의 하나로 오해해서. 그의 눈동자에는, 소녀의 뒷모습은 생기 없는 유령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일방통행 혼인 이야기

 

치바시립 소부 고등학교 2J.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학교에서 최고라 언급되는 미모의 소유자다. 눈처럼 하얀 피부와 가늘고 길게 째진 눈, 검은 머리카락은 허리에 닿을 만큼 길고, 바야흐로 구식 일본여성을 체현한듯한 소녀. 그녀가 지닌 신비적인 분위기는 주위에서 반 신격화되어 아래위를 불문하고 숭배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점심시간으로 접어들자 그녀는, 혼자 교내에 있는 빈 교실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안 쓰는 책상이 되는대로 놓인 교실은 살풍경 그 자체.

 

손에는 한 권의 수첩이 펴져 있고, 남학생의 이름과, 그 위에 그어진 붉은 줄이, 종이 구석부터 구석까지 유창한 글자로 몇 페이지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묵묵히 혼자 조용히 젓가락을 움직인다. 도시락 상자에 담긴 생선구이를 요령 좋게 발라내, 작은 입으로 옮긴다. 멀리서 들리는 학생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시계 소리만이, 공기에 작은 물결을 그려낸다.

 

그녀가 젓가락을 멈추고, 옆에 있던 차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드르륵 소리가 울리며 교실 문이 열렸다. 고요함에 싸인 공간에 하얀 백의를 걸친 침입자가 나타난다.

 

 

. 오늘도 혼자 점심식사군?

 

히라츠카 선생님 노크를......

 

노크해도 넌 아무 대답도 없잖아.

 

 

유키노시타의 불만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히라츠카라 불린 침입자는 쟁반에 얹은 배달음식을 한 손으로 밸런스 있게 받치면서, 열었던 문을 한쪽 발로 닫았다. 그리고 유키노시타가 앉은 책상 옆에, 또 다시 발로 의자와 책상을 끌어당겨 마주보고 앉는다.

 

젓가락과 수저를 봉투에서 꺼내자, 쨍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유키노시타는 항의하기를 단념하고, 식사를 계속하기로 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그녀에게는 항의 같은 건 별로 의미가 없는 행동이니까.

 

백의에 싸인 날씬함과 쭉 뻗은 신장의 여성. 이래봬도 이 학교의 어엿한 교사이며, 이름은 히라츠카 시즈카라 한다.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책상에 늘어놓은 사발을 열자 황금빛 껍질에 싸인 튀김 덮밥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전 날 월급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 분발해 송죽매의 좌단(松竹梅左端)을 배달시켰다.

 

과연, 최상급품일 정도로 큰 재료와 바삭바삭한 튀김 옷. 히라츠카는 기대감을 숨기지도 않고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띤다.

 

그리고 유키노시타의 책상에 놓인 수첩을 발견하고는,

 

 

어때. 남자 찾기 성과는?

 

 

젓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런 말투는 그만해주세요. 후보자 선정을 할 뿐입니다.

 

비슷한 거겠지.

 

포함된 뉘앙스가 다릅니다.

 

 

거기에 실망한 표정을 짓는 유키노시타가 항의의 소리를 높였다. 그 말투는 본의가 아니라며, 단정한 얼굴을 찡그린다.

 

 

뭐든지 좋고 말이야. 너 자신의 문제고 내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다. 너도 큰일이군. 대학 졸업까지가 리미트였나?

 

아마도......

 

 

히라츠카의 말에 유키노시타가 안색을 흐리면서 대답한다. 표정에는 희미한 분노가 배여 있었다.

 

사정을 아는 히라츠카가 동정한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훌훌 넘겼다. 거기에 쓰인 것은 소부고교에 다니는 남학생의 이름 일람. 그 대부분에는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붉은 선은 그녀가 부적합이라 판단한 인물의 표시였다. 무엇에 대한 부적합이냐면 결혼상대로서다.

 

유키노시타는 유서 깊은 명문 태생이다. 그 때문에 사는 법에 수많은 제약이 붙어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다. 일상 스케줄은 부모의 사정에 따라 결정되고, 부모 기준으로 올바르게 사는 법이 요구된다.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면 따르겠지만, 단 하나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따를 수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반려에 대해서도 이미 계산을 끝냈다. 거기에 본인의 의사는 없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유키노시타는 전율했다. 부모가 결정한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하는 정략결혼 따위 불쾌하다. 적어도 인생의 반려만은 자신이 결정하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 위기에 처하여 그녀는 총명한 두뇌를 필사적으로 구사해서 사태의 타개를 꾀했다. 그것을 위한 비장의 카드가 방금 전의 수첩이다.

 

그녀가 생각한 작전은 단순히 말하자면 부모가 결정하기 전에 혼인을 맺어버리는 것. 그러나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미성년자는 부모의 허락이 없으면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경계하던 타이밍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16세를 맞이하는 해. 요컨대 일본 여성이 혼인이 가능해지는 해다. 하나 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 고비일듯한 해를 노려 부모는 혼담을 꺼낼 것이라 유키노시타는 예상했다. 솔직히 지금 타이밍에 억지로 혼담이 진행된다면 그녀에게 승산은 없었다.

 

하지만, 16세의 생일은 무사히 끝났고, 언니가 대학생이 된 지금도 혼담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짐작하건데 고등학교 졸업 타이밍도 무사하겠지.

 

어쩌면 대학 졸업을 기회로 혼담이 진행될지도 모른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이 부분에서 이길 수 있는 희미한 기회를 찾아냈다.

 

성인이 되면 부모 허락 없이 혼인이 가능해진다. 이 점을 이용해 부모보다 앞서 반려를 결정해서 기성사실을 만드는 것이 유키노시타의 목표다. 약간의 틈을 찔러 결혼해버리면 이쪽의 승리. 부모가 뒤에서 뭐라 해도 법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든 학교에서 네 눈에 맞는 남자는 있었어?

 

유감스럽지만

 

 

현재, 유키노시타는 반려가 될 남성을 찾는 중이다. 결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우선 교내에 멋진 상대는 없을까 이 잡듯이 샅샅이 찾기로 한 그녀지만, 후보자를 적은 수첩의 거의 대부분이 이미 탈락자가 되었다. 남아 있는 사람은 조사를 마치지 않은 인물만.

 

 

넌 이상이 높은 것 같다.

 

 

쓴웃음을 띠는 히라츠카를 보고, 유키노시타는 말없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그래도, 너의 말도 이해할 수 있고, 부모가 정한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하는 결혼 같은 건 시대착오 정도가 심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만큼 나쁜 건가?

 

 

비운 튀김덮밥의 뚜껑을 닫으며 히라츠카가 묻는다.

 

 

무슨 의미입니까?

 

특별히 부모가 정한 상대라고 해서 너와 안 맞는 상대라 정해진 것도 아니다. 혹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거기에 세상에는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딱히 날 말하는 게 아니라고!

 

 

후반부 대사는 애달픈 느낌이었다.

 

유키노시타가 보낸 동정하는 시선을 알아차린 히라츠카는, 어흠 헛기침을 하고 수첩을 넘기기 시작한다. 어떤 인물의 이름에 선이 그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빙긋 미소를 띠었다.

 

 

하나 도움을 주지. 다음에 재미있는 놈을 데려올게.

 

 

자신만만한 히라츠카에게, 유키노시타는 수상쩍은 눈초리를 향했다.

 

 

 

× × ×

 

 

 

이것이 대략 일 년 전의 사건이군요.

 

하아......?

 

 

굉장히 상쾌한 미소로 과거를 되돌아본 유키노시타. 그녀와 마주 보는 식으로 이상한 표정을 짓는 남자는 썩은 눈동자를 위로 젖히며,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사고를 한 바퀴 돌린다.

 

둘이 있는 곳은 번화가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찻집. 앤틱스러운 가구에 둘러싸여, 아늑하면서도 품위 있는 분위기가 감도는 아는 사람은 아는 명당 스팟. 유키노시타가 마음에 들어하는 가게다.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고, 유키노시타와 그 남자 외에 유일하게 있는 손님은 카운터에 앉아 점주와 나누는 담소에 빠져있었다.

 

 

커피 식어요, 히키가야 군

 

 

유키노시타에게 지적받아, 당황한 남자가 커피를 한입 훌쩍거린다. 주문한 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약간 미지근해진 그것을 삼킨다.

 

왜 자신이 불렸는지, 히키가야라 불린 남자는 한층 더 혼란의 소용돌이에 삼켜진다. 이 남자,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동급생이며 같은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다. 본인이 인식하기로는, 아는 사이?정도의 느낌이며, 왜 자신에게 그런 얘기가 오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상담이라는 것으로 좋을까 판단하지만, 아무래도 유키노시타의 태도를 보면 상담하고 싶은 고민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결론은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로. 이 시점에서 히키가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떤다.

 

 

요컨대 넌 결혼하고 싶은 거야?

 

 

라며 유키노시타의 의사를 확인한다.

 

 

그 말 대로에요.

 

그건 부모가 정한 상대와 하는 결혼을 피하기 위해서랬지.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찾는 중이라고?

 

 

찾았어?

 

 

그는, 눈 이외는 반듯한 용모를 찡그리고 흠칫흠칫 말하고는 유키노시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당신으로 정했어요.

 

?

 

 

바로 기가 막혀서 다물어지지 않는 입. 포켓몬, 너로 정했다!같은 식으로 말해봤자 대답이 곤란할 것이다.

 

 

, 뭐야? , 나 좋아해?

 

그러니까, 그렇다고 말하고 있어요. 마침내 일본어 이해도 못하게 된 거야?

 

이미 내가 노망이 시작됐다는듯한 표현은 멈춰 주지 않겠어?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자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쳐 당황해서 돌린다. 거짓 같은 느낌은 안 드는 눈이었다.

 

 

그것치고는, 나한테 공격이 너무 센 것 같은데...... 너한테 매도된 기억 밖에 없다고,

 

수줍어하는 소녀의 마음 정도는 헤아려 주세요.

 

전세계의 소녀들한테 사과해라! 저런 수줍음은 없으니까. 소녀 사전에는!

 

 

히키가야의 힐문에 얼굴을 돌리는 유키노시타. 그 뺨은 약간 주홍색으로 물들었다.

 

 

그것보다도, 대답을 들려주겠니?

 

 

유키노시타가 억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려 한다.

 

히키가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유키노시타는 격에 맞지도 않게 긴장하는 것을 자각했지만, 그런데도 자신 있는지 히키가야에게서 시선을 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자신은 히키가야의 한 마디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안하다만, 유키노시타를 연애 상대로 볼 수 없다.

 

 

딱 잘라서 거절한 히키가야는, 그러나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안 되는 거야......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면서 유키노시타가 묻는다. 약간 눈물을 글썽이는 것처럼 보였다.

 

 

......딱히 뭐가 나쁘다는 건 아니야.

 

 

있기 거북한 듯이 히키가야가 뺨을 긁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밖에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토츠카 군? 난 당신이 붙은 게 좋다고 한다면 붙일게요!

 

뭘 말이야?!

 

 

붙인다니 뭘, 설마 추잡한 바벨탑을 건설할 생각일까하고 히키가야는 무서워하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야.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할까. 어쨌든 그 밖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든가, 너한테 불만이 있다든가, 그런 이유는 아니다.

 

 

히키가야의 필사적인 변명에, 조금 전까지 고개를 숙이던 유키노시타가 겨우 얼굴을 들었다.

 

 

요점은 나와 교제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아무튼, 뉘앙스 적으로는 가깝다고 생각해.

 

 

유키노시타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 왠지 그 얼굴에서는 아까 전까지의 그늘이 가라져, 마치 꽃이 핀듯한 밝음에 싸여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네요.

 

 

유키노시타는 단언하고는 손에 든 홍차를 삼켰다.

 

 

장애물이 당신의 상상력의 결여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을 보충하면 돼.

 

 

그녀는 입 끝을 끌어올린다.

 

 

히키가야 군, 기간한정으로 좋으니까 나와 교제하세요. 그 사이에 가르쳐 주겠어요.

 

 

――여러가지를.

 

 

그런 말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