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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당히, 단념하세요.」

 

그 말과 동시에 내밀어진 반지에, 나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눈앞의 인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이 녀석은 아직 단념하지 않았던 걸까.

 

해안 공원에는 사람 그림자도 눈에 띄지 않고, 있는 건 우리들 두 명뿐.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 가는 계절은 저녁이 지나자 으스스하게 느껴지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이 화끈해져 있다. 전신이 불타는 듯이 뜨겁다.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눈물샘을 필사적으로 막고 대치하는 인물을 보면 그녀――유키노시타 유키노도 똑같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너야말로 적당히 좀 해라」

 

눈앞의 반지를 받아버릴 뻔하게 되는 손을 세게 꽉 쥐어잡는다.

 

「반년 이상 전에 헤어졌겠지. 이미 나와 너는 무관계한 타인이다.」

 

바보 같다. 나는 왜 상대를 상처 입히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걸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 줘 왔다. 그리고 제일 소중히 여기고 싶은 존재를 지금 이 순간 상처 주고 있다.

 

「당신은 뭐가 무서운 것일까?」

 

사람을 도발하는 듯한 말과는 정반대로 유키노시타의 표정은 매우 상냥하다.

 

「나의 부모님?」

 

「다르다고. 너와 헤어진 건, 그 외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렇다고 말했잖아.」

 

「그래. 그렇다면 이름을 말해 보세요.」

 

말이 막힌다. 이 녀석은 약점을 찌르는 게 정말 자신 있다. 유키노시타의 그런 면에 나는 서투르다. 그 꿰뚫어 보는듯한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있을 리가 없겠지요. 단언해 줄게. 당신이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전에도 앞으로도 나뿐이에요.」

 

뭘 자신 넘치게 사람 미래를 결정해 버리는 거야. 너는 뭐든지 알고 있는 거야?

 

물어 보자 「히키가야 군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요.」라든지 대답해 오고. 나조차도 모르는군요. 나에 대해서.

 

「......부모님에게 축복받지 못한 결혼은 할 생각 없어.」

 

그녀의 부모를 떠올린다. 나와의 교제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던 존재. 그녀는 그것을 바람처럼 흘려내고 있었지만, 나는 별로 좋진 않았다. 네 부모님이잖아, 이런 바보 같은 남자한테 불행하게 되지 않도록, 너를 걱정해서 말하는 거다. 부모님은 바른 말을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할 때 유키노시타는 성가신 듯이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그것 뿐?」

 

「그것 뿐이라든가 말하지 마라. 너를 키워 준 피가 연결된 가족이잖아!」

 

「그러네. 그렇지만, 내 인생을 부모님의 반대 같은 것으로 타협할 생각은 없어.」

 

유키노시타가 가까워져 온다.

 

목덜미의 넥타이를 잡혀, 얼굴이 단번에 끌려갔다.

 

「한 번 더 말해요. 이제 적당히, 단념하세요. 히키가야 군」

 

입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당신도 나를 좋아하겠죠.」라고 속삭이는 말을 듣고.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넘쳐 오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유키노에게 거역할 수 없다.(5)

 

 

 

「이상하게도 성실한 성격 하고 있군요.」

 

매우 큰 저택의 일각.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는 전혀 인연이 없는 대저택에서, 푸른 반점이 된 내 뺨을 찌르면서 그녀는 웃는다.

 

어깨까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어, 나이를 느끼게 하지 않는 아름다운 표정으로 그녀는 웃는다.

 

옛날과 변함없이 바닥이 안 보이는 미소는, 역시 변함없이 내가 서툴러 하는 것으로. 머리가 좋은 그녀니까 그건 알아차리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 사람은 약간 비뚤어지고 있다. 그런 면도 장자인 것이 한 요인인가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명문집안의 아가씨.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노고를 짊어지고 온 사람이다.

 

그래도, 서투른 사람이지만 별로 싫지는 않다.

 

「이미 결혼해버렸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은데. 이제 나이도 나이고, 슬슬 돌아가실 거예요. 그러면 너희들을 반대하는 인간은 없게 돼.」

 

경박한 말에 「그러면 안 되겠죠.」라고 돌려준다. 그녀는 내 뺨에 습포를 붙여 마지막에 가볍게 두드려 줬다. 너무해.

 

그 후로 20년 가까운 세월이 경과했다.

 

유키노시타와 결혼해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성장해 고교생과 중학생. 청춘 한창인 사춘기.

 

딸은 나와 유키노시타의 혈통을 받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게 성장했다. 유키노시타에게 전수 받은 예의범절을 몸에 익혀, 그 모습은, 일어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걷는 모습은 백합이라고 말할 정도? 아니 내 천사를 이 정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일본어의 한계에 봉착했다. 어쩌지.

 

아들은 우리들의 피를 보기 좋게 물려받아 이케맨 외톨이로 성장했다. 단지 나와는 다른 점이 외톨이 주제에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으므로, 유키노시타의 피가 강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런 귀여운 아이들을 내려 주셔서,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이 몸에 스며들어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오늘 내 뺨에 생긴 훌륭한 푸른 멍은 정말 상냥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눈앞의 인물에게 몇 번째인지도 모르게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매우 넓은 응접실. 이 방에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전부 네 명. 유키노시타의 부모님과 놀리러 온 하루노 씨.

 

몇 년 동안, 머리 숙이기를 계속해온 대상인 시부모님. 조금 전 일갈하는 한 마디 바로 뒤에 「다음에는 가족과 같이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다. 여하튼 내 탓으로 유키노시타와 시부모님은 현재 냉전 중이다. 그녀는 결혼한 이래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고집이 센 면은 아마 이 분들을 닮았을 것이라고, 눈앞의 두 명을 보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한 번 더 감사의 뜻을 전해 방을 뒤로 한다.

 

현관까지 하루노 씨가 배웅해 줬다.

 

「잘 됐네요, 히키가야 군」

 

「고절 십 수년, 길었군요-」라며 계속하는 하루노 씨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순수한 미소로,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실례지만 놀라 버린다.

 

부모님에게 사과하러 오는 나를 언제나 들여보내 준 사람은 이 사람으로, 만약 없었으면 알현하는 것도 신통치 않았을 거다.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할 정도다.

 

「하루노 씨도,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인사를 하자, 뺨을 한 번 더 찔렸다. 그러니까 아프다고.

 

「그럼, 또 다음에. 다음에는 언제 오는 거야? 실은 두 사람 모두 손주를 만나고 싶어서 근질근질하고 있어요.」

 

하루노 씨는 조금 전까지 있던 응접실 쪽을 가리킨다. 방에서 나온 시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가까운 시일 내로 방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루노 씨들에게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좀처럼 입지 않는 슈트 자켓을 벗는다. 가을바람이 상쾌하고 하늘에는 만월이 떠올라 있었다.

 

포켓에 넣고 있던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키자, 아이들과 부인에게서 온 무수한 착신이 있었다. 착신을 알리는 붉은 램프가 눈부시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집에서 나왔던가?

 

집에 돌아가면 먼지투성이가 된 반지를 찾자. 정말 오래 전에 산 그건, 그녀의 부모님에게 결혼 승낙을 받지 못하고 구입한 이래 숨겨 왔던 것이다. 그것을 건네주며, 유키노시타에게 머리를 내리자.

 

「나와 결혼해 주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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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편 때문에 3편까지만 했던 것을 계속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작가가 쓰기 쉽다는 이유로 하치만과 유키노의 성을 다르게 했고 서로를 성으로 불렀다고 했지만

이렇게 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버린 셈이 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