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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등불과

2015. 3. 12. 16:12 | Posted by 2ndboost

 

 

 

또 하나의 등불과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족과도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그 녀석의 비위가 상하는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더 뻔해서다. 나라도 그 정도는 안다. 여동생에게 만년 태클을 받는 것은 폼이 아니다. 아무튼 성장이라기보다는, 역시 조교되는 느낌이 강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서 나는, 이 건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감상을 남길 생각은 없다. ...아니, 의견을 제시해보라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분명. 나도 그 녀석도,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말할 일은 없을 테니까. 말할 필요 같은 것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이미 끝났고, 그 골조의 밖에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연히,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말았을 뿐이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시간이란 불연속적으로 쪼개진 것과 같은, 정말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고 보면, 이것은 막간과도 같은 거겠지. 아니, 막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들어맞지 않는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것조차도 애매한 시간. 겨울 밤하늘에 토하는 숨처럼, 멍하니 있고, 그리고 지금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기억.

 

  나는 일기 같은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지만, 만일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다 해도, 그것은 덧붙이는 것처럼 한 두 줄로 끝날 것이다. 하루가 끝난 뒤에, 무언가가 마무리 된 뒤에, 그럴 정도로 장황하게 해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그래서 이를테면 그것은, 이런 한 문장으로 시작되고, 그리고 끝난다.

 

 

  그 날 돌아가는 길, 그녀들과 헤어진 뒤,

나는 그 녀석과―――잇시키 이로하와, 우연히 만났다.

 

  단지 그것 뿐. 다만 그것뿐인 이야기다.

 

 

 

   ×   ×   ×

 

 

  역의 버스 정류장도 또, 평소에 비하면 고요했다.

 

  이브에 최고조를 맞이한 크리스마스 열기가 떠난 것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왕래 자체가 적다는 인상을 받는다. 역의 개찰에서 배출되는 사람들의 낯짝을 보고, 아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도 겨울방학에 접어들었지 라는 것을 떠올린다.

 

  요즘 들어 바빴고, 동아리도 여전히 있었으니까 잊고 있었지만, 벌써 종업식을 맞이했었구나. 학생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적은 것도, 이 고요한 느낌에 한 몫 하는 거겠지. 동아리하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이 하나 둘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일단 동아리하다 가는 길에 해당되려나. 나는 조금 전보다 약간 가벼워진 짐을 다시 짊어지고, 역전에서 우두커니 섰다가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이따금 엇갈리는 사람은, 둥지로 돌아가는 사축, 다시 말하면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두르는 샐러리맨들. 정말 이런 새해까지 변함없이 고생이다. 이 만큼 일해주고 있다면, 딱히 내가 힘쓸 필요 같은 건 없다 생각하고 싶어질 만한 근면성실.

 

  그런 그들도, 며칠만 더 지나면 조금씩 귀성이나 새해 준비에 들어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단번에 연말 모드로 이행한다. 매년 일어나는 일이면서 바쁘기 그지없다. 왕래가 적어진 역전에 켜진 전광이, 아련하게 어쩐지 쓸쓸함을 느끼게 했다.

 

 

..........

 

 

  겨우 크리스마스가 끝났구나, 하고 나는 작게 숨을 내쉰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인가, 혹은 분수에 맞지 않게 끝을 애석히 여기는 건가. 어느 쪽인지 판단에 서지 않는 동안에, 하얀 숨은 차가운 공기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말았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길었다.

 

  평소라면 그야말로, 치킨과 케이크를 먹을 뿐인 날, 코마치가 조금 편히 있을 수 있는 날에 불과했겠지만. 선물은 어느 샌가 받을 수 없게 되었지... 코마치는 아직도 받고 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대체로 아버지 탓.

 

  원래 크리스마스 이브까지가 바빴고, 이브 당일도 야단법석이었다. 덤으로 크리스마스조차 이런 시간까지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거야 배가 가득 찰만도 하다. 이제 힛키 같은 걸로 부르게 하지 않을 거다. 아니, 그러면 어떻게 부르라고 할 말도 없지만.

 

  작년의 나로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소행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광기어린 열기로 들끓는 거리 속에 뛰어들어 간다든가, 자살행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튼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구석은 있지만, 사람이 길들여진다고 할까 적응력에는 놀랄만한 요소가 있다.

 

  그래, 습관. 적응.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이게 되는 방위수단.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거기에 몸을 두는 사람의 본질도 역시 확 달라진다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사람은 그 본질을 바꾸지 않은 채, 오히려 그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인터페이스를 달리 적당히 써서, 완충장치를 준비한다.

 

  이렇게 일이 있을 때마다 밖으로 끌려가는 것에, 반년 간 조금씩 포기하게 된 것도 비슷한 거겠지. 일단 저항해봤지만 전부 건성으로 넘기는 걸... 싫어하지 않는데 싫어한다든가, 싫다 뭐야 그 츤데레.

 

  단지 뭐... 아마 그것만이 아니겠지만.

 

 

..., 다음 버스는...

 

 

  그런 평소의 뇌내논의(특기)를 펼치면서, 나는 정류장 팻말에 다가가서, 거기에 쓰인 시각표를 노려보았다. , 잠깐 기다리면 바로 타려는 버스에 탈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신도심, 러시가 지난 이 시간대라도 그런대로 있어서 편리. *연접 버스 같은 게 오면, 약간 텐션도 오르고.

 

연접버스 : 아주 긴 버스. 길어서 보통은 바퀴가 6개 이상 있다.

 

  심정적으로는 걸어서 돌아가도 괜찮았지만, 코마치를 먼저 돌려보냈으니까 말이지... 그 녀석의 다리라도 이미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왔는지 어떤지 미묘한 시간대이고, 아무튼 빨리 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버스라면 15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거다.

 

  코마치에게는 천천히 와도 돼, , 뭣하면 안 와도 돼... , 그건 역시 너무 빠를까...?이런 식의 말을 듣긴 했지만. 안 와도 돼라니, 오빠 동사한다? 마음도 몸도 식어버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게 귀여운 여동생이 있는 오빠의 심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더 이상 들르기도 우회도 전혀 하지 않고, 집에 바로 돌아가기로 속으로 결정했던 것이다.

 

  ...아무튼, 아까 전에 들른 길이 그렇게 나빴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밤의 어둠 속, 반짝이며 흔들리던 작은 머리끈을 떠올린다. 하나는 핑크, 또 하나는 블루.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의 흑발과 활기차고 크게 흔들리는 그녀의 손.

 

 ―――・・・・・・메리 크리스마스

 

  기뻐해 주었다면 정말 다행이다. 코마치에게 몸에 차는 건 어려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결과 오라이라는 거겠지. 줄지 어떨지도 생각보다는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어쩌면 내 방황을 코마치는 간파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내게 중간에 들렀다오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실제 이유를 묻는 것은 눈치가 없는 거겠고, 안 와도 돼 발언의 진상을 알게 되는 것도 무서우니까 묻지 않겠지만.

 

  뭐 아무렇든, 덕분에 나는 지고 있던 짐을 약간 덜 수 있었던 것 같은, 안심이 되어 있었다. 사실 아까 전까지 짐꾼이었으니까 물리적으로도 가벼워지긴 했지만... 그것뿐만이 아니니까.

 

  아마, 적어도 나에게 그 선물은 그만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주는 측도, 그리고 받는 측에게도. 그렇겠지, 이런 남 일 같은 말투밖에 못하는 이유는, 그 의미를 다 정리하지 못해서겠지만.

 

 

.............

 

 

  조금 전의 부끄러움을 떠올린 탓인지, 갑자기 심장박동이 약간 빨라진다. 그래서 말 안 하는 거다. 이 건에 대해서 어설프게 생각하려고 했다간, 최신 트라우마 폴더에 불을 지피게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렇게 되지 않게 느긋하게 생각하자. 다행히도, 내일부터 겨우 예정 없는 겨울방학이니까. 그렇게 한가한 소리를 하고, 결국 아무것도 안 해. 이런 장기휴일은 우선 옆으로 치워두고.

 

  하지만 겨울방학인가... 여름방학에 비해 상당히 짧다고는 해도, 오래간만의 휴가다. 운 좋게도 예정도 예비학교 정도에 그 외에는 한 건도 없다. 연말연시 즈음에 내리기 시작하는 치바의 새 눈처럼 새하얗다. 앞으로는 밟혀서 망쳐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는 말해도 유이가하마라든지 연초 정도에는 왁자지껄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러고 보니 유키노시타의 생일이 어떻든가 했었지. 그 녀석의 생일이 언제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유이가하마가 하는 말을 보아하니 다음 달 같고.

 

  겨울 방학 같은 날이면 어떻게 해야 하려나... 이렇게 생각이 겨울방학 예정으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나는 투덜투덜 겨울방학에 할 것(혼자서)을 리스트업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주위에 신경 쓰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들린 그 목소리에, 곧바로는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라? 저기-... 선배?

 

..........

 

잠깐요, 선배는 참!

 

......... ?

 

 

  내가 얼굴을 들자, 눈앞에는 전에 봤던 여학생이 있었다.

 

  황갈색 세미롱에, 작은 동물처럼 동그란 눈동자. 옷깃에 모피가 있는 더플코트를 껴입고, 치맛자락이 짧은 스커트에서 술술 뻗어 나온 다리는 검은 레깅스에 싸여있다. 본인의 생각보다는 눈에 띄는 외관과는 정반대로, 그 색조는 의외로 얌전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녀석은 볼록하고 볼을 귀엽게 부풀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그 반응... 그렇게 화들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 아아... 아니, 별로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해두는데 선배 쪽이 엄청 의심스러웠으니까요? 왠지 투덜투덜 중얼대고 있어서 오싹했고. 말을 걸까 어떨까 망설였는데요.

 

 

  그리고 그 약삭빠른 표정에도, 달콤하지만 독기가 있는 말투에도, 역시 최근에 본 기억이나 들은 적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기분 나빴으면 억지로 말을 걸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 그건 그렇다 치고.

 

 

...뭐 해? , 이런 데에서

 

 

  확실히 이 녀석의 생활권은, 좀 더 남쪽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볼 일이라도 있었나.

 

 

저는... 근데 선배야말로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이라니... 뭐야, 내가 외출하는 게 그렇게 의외인 거냐?

 

  그 녀석은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뭔가를 눈치 챘는지, 앗하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마라고는 생각하는데 저건가요? 스토커예요? 죄송해요. 그런 거 저 난처하다고 할까 역시 무리예요.

 

아니... 틀리다니까

 

 

  그러니까 어디에 그런 요소가 있다는 거냐. 이게 농담이 아니라면, 자뻑도 너무하잖아, . 나한테 듣는다는 건 상당한 거라고?

 

  자기가 먼저 말을 건 것치고는 바로 확 빠지는 녀석... 잇시키 이로하의 행동에, 나는 얼마 안 되는 후배의 장래를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 선배 여기예요! 여기!

 

... 오우

 

 

  구석 쪽에서 손을 흔드는 잇시키를 따라, 나는 마주 보게 되어 있는 의자가 놓인 작고 둥근 테이블까지 걸어가서, 가져온 쟁반을 거기에 두었다. 그리고 비어 있는 쪽의 의자에 걸터앉는다.

 

  맞은 편 자리에 조금 전부터 앉아 있던 잇시키는, 코트를 벗어 의자 등에 걸치고 있었다. 쟁반 위에서 큰 컵을 고르고는 양손으로 움켜쥐고, 그 따뜻함을 손에 익숙해지게 하듯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녀가 손에 든 것은 크림이 얹힌 카페라떼다.

 

 

하아... 따뜻해. 선배, 잘 먹겠습니다~

 

아아, 아니, 별로 신경 쓰지 마

 

...저기, 눈앞에서 지갑 속을 확인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싫어도 신경이 쓰이니까요...

 

 

  어쩔 수 없잖아. 버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의 갈림길이니까. 나는 지갑을 치우고는, 쟁반에 하나 더 남아 있던 컵을 손에 들어, 내 앞에 두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있는 곳은 역의 맞은 편, 메세 어뮤즈몰 안에 있는 커피숍이었다.

 

 

그래도 마침 다행이에요. 선배, 뭔가 사주세요.

 

 

  역전에서 잇시키를 만난 뒤.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한 후배에 의해, 나는 반 강제로 이 가게로 왔던 것이다. 사준다든지 그런 문화에 전혀 인연 없는 나한테 그러다니 무슨 생각이냐. 부탁할 상대가 분명 잘못됐다... 뭐 결국 고분고분하게 한 턱 내는 나도 나지만.

 

 

그래도 아까 전 그건 아니었어요. 안 사준다 해놓고 왜 자판기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제 여유가 없다고 했었잖아... 거기에 저거다, 자판기라 해서 나쁜 것도 아니야.

 

 

  자판기라도 맛있는 음료는 판다. , MAX 커피라든지! (direct marketing)아니, 처음부터 자판기 목적이었던 게 아니다. 커피캔에는 안 보이는 줄무늬가 눈에 들어왔으니까 무심결에... 덧붙여서 맛도 커피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커피라고 하면,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들이 이른바 일반적인 커피일 것이다. 나는 뚜껑을 열고, 검은 수면을 들여다본다. 아직 상당히 뜨거운 것 같다. 나는 막대로 그것을 저으면서, 좀 전에 하다 만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래서, 넌 뭘 한 거야? 이런 데에서

 

뭐라니, 평범하게 볼 일이 있었어요. 학생회 관계로

 

학생회?

 

 

  내가 되묻자, 잇시키는 끄덕하고 수긍했다.

 

 

아니, 딱히 일 같은 게 아니에요. 크리스마스 이벤트의 뒤풀이? 그런 느낌으로 모두 밥먹으러가자는 이야기가 돼서

 

아아... 과연

 

 

  요점은 우리들과 같다는 건가. 학생회는 학생회에서 할 거라고 유이가하마도 말했지만, 설마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했을 줄이야...

 

  눈앞의 소녀, 잇시키 이로하는 1학년임과 동시에 요즘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학생회장이기도 하다. 우리들 봉사부는 바로 어제까지, 크리스마스 이벤트와 씨름하는 학생회의 보좌라는 형태로 그녀의 일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학생회도 뒤풀이 오늘이었군. 틀림없이 어제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세세한 자료정리 같은 건 어쨌든, 학생회에서 인수한 물품 정리는 어제의 단계에서 큰일은 대강 끝났을 것이다... 왜 아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도 거들었으니까. 정말로 이 후배는 사람 다루기가 거칠다.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모두들 지쳤다고 할까 뭐랄까...

 

호오...

 

 

  사람을 거칠게 다루는 데 정평이 나있는 이 녀석의 입에서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는 말이 나온 것은 의외였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학생회장으로서의 자각이 약간이나마 높아진 것이면 매우 좋다... 고 감탄할 준비를 했지만,

 

 

, 단지 제가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것뿐이지만요.

 

 

  이렇게 이어지니까 엉망이다.

 

 

...뭐야, 너도 이브는 가족과 보내는 타입이라서?

 

? 뭐예요? 그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코마치가 이르길, 이것은 여자일 경우 그 사람 외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거절하는 방법이라 했지만... 잇시키의 멍한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코마치가 말하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는데, 그렇지 않은 샘플이 나와서 약간 안심.

 

 

약간 수면 부족 상태라 졸렸던 거예요. 땀도 나서 샤워하고 싶었고

 

아아... 그래...

 

 

  자신에게 솔직하구만 이 녀석. 이 정도로 노골적이면 반대로 호감을 가질 수 있기까지 하다.

 

  그래도 수면부족이라... 확실히 실전 전이고,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긴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경험이 적은 1학년이고, 딱히 학생회에 소속된 적이 있던 것도 아니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다른 날 다시 하기로 되었는데요... 왠지 이쪽에 사는 사람이 많아서, 요 근처에서 할까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예요, 하아...

 

되어버렸다니, ...

 

 

  이랬으면 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에 적당히 어딘가에서 모이는 게 나았다. 아무튼 있다, 자신의 솔직함을 유감없이 발휘한 결과, 반대로 귀찮은 쪽으로 이야기가 굴러가는 거. 호감뿐만 아니라 공감마저 느낄 수 있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 끝났어요. - 지쳤어...

 

..............

 

 

  하지만, 그 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에 반해, 그녀의 표정은 그렇게까지 어두운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안심한 듯한, 여운을 느끼는 듯한, 온화한 표정. 솔직하지 않은, 어디선가 본 듯한 비뚤어진 사람의 미소였다.

 

  아마, 그녀 안에서 이제 일단락이 된 거겠지. 학생회장으로서 처음의 큰일을, 그녀는 해냈으니까.

 

  그것은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회장 같은 중임은 맡은 적도 없으니까 모르지만, 상당한 압박이었을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불평도 했었고, 유키노시타의 평가라면 아직도 교육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런데도.

 

 

...수고하셨습니다.

 

네엣? , ...

 

 

  내 말에, 잇시키는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좀 더 선배답게 격려하는 말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어휘가 내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하니까... 오늘 사준 것으로, 선배다운 행동을 못한 것은 용서받기로 하자.

 

 

덧붙여서, 오늘은 어디 갔다 왔어?

 

어디라고 하셔도... 평범하게 역전에 모여서, 밥 먹고 왔을 뿐인데요? 보세요, 이 근처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잖아요.

 

 

  뭐 확실히. 상업시설도 많고, 적당한 패스트푸드에서 많이 사치스러운 식사까지, 커버하는 범위가 넓은 걸. 나도 어렸을 적에는 주말 같은 날에 가족끼리 식사하러 온 기억이 있다... 지금? - , 역시 여동생이 만든 요리가 최고지! 아버지도 안 오고.

 

 

학생회 사람들은 어떤 가게에 갈까, 약간 옷이라든지 신경 쓰였는데요... 생각보다는 평범한 가게였어요.

 

그거야 그렇겠지... 학생회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예산으로 먹으러 잘 간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일은 역시 없겠지만, 확실히 이 녀석과 학생회 임원을 할 법한 애들은 인종이랄까 털색이 다른 느낌이 드는 걸. 옷 색상이 얌전한 것은 일단 그것을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무튼 이 녀석의 본성 숨기기로 보아, 아마 오늘도 그 나름대로 요령 있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이 내숭을 떠는 녀석이라는 것을, 이번 행사를 통해 임원들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겠지. 상호이해는 조금씩이나마 나아가는 것 같다.

 

  내가 학생회의 장래에 대해 웬일인지 생각에 빠져있자, 잇시키는 카페라떼를 한 입 마시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배는 어땠어요?

 

? 무슨 의미야?

 

아니, 선배는 어디 가서 뭘 했는지 해서요. 학생회도, 라고 말했었고 뒤풀이 오늘이었던 거죠?

 

아아... 그런 거군

 

 

  그러고 보니 그런 식으로 말했었나. 녀석, 남이 하는 말 같은 건 안 듣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는 듣네.

 

 

이쪽도, 그렇게 다르진 않다고 생각해. 이온 몰 어슬렁거리다가, 노래방 가고, 그런 느낌이야.

 

노래방인가요...

 

그래. 여기 2층이 아니라, 근처에 하나 더 있잖아, 저 쪽에 있는 거. 케이크 같은 거 들여왔으니까... 그런데, 왜 그래?

 

 

  갑자기 얼굴을 흐리는 잇시키를 보고 의아해서 말을 멈추자, 잇시키는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서 남의 눈을 속이는 웃음을 띠었다.

 

 

- 별로 아무것도 아녜요. 그러고 보니 노래방 같은 것도 있었나-해서...

 

, 그거야 있지. 제법 싸고, 뒤풀이로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 그나저나, 저런 곳에 가는 건 네 쪽이 익숙한 것 같아 보이는데

 

... 그렇지도 않은데요?

 

 

  잇시키는 말을 애매하게 흐리고는, 갑자기 시선을 딴 데로 돌리고 소곤소곤 중얼거린다.

 

 

전에는 몇 명이서 같이 갔었는데요... 제가 따라가면 항상 이상한 노래를 억지로 떠맡기구요... 게다가 노래하면 노래하는 대로 모두 선곡 리모콘 보고. 너무하지 않아요?

 

......, 미움 받는구나

 

... 그러니까 그런 일은 없는데요, 역시 장난 당하는 역이라고 할까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된 거군, 네 마음에서는.

 

  확실히 이 녀석이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는 처지가 된 것도, 그런 느낌인 도가 지나친 나쁜 장난이라고 할까, 나쁜 장난이라는 이름의 악의가 발단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떠올리는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난처하네요.

 

  이 녀석의 경우, 숨기려고 해도 전부 숨길 수 없는 저런 성격이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도 적당히 근성이 비뚤어져 있어서, 그런 녀석을 보면 승자에 편승하기보다는 약자를 동정하고 싶어지고 만다. 지금은 선배로서 위로를 해줘야 하겠지.

 

 

아무튼, 너무 신경 쓰지 마 잇시키. 너는 아직도 나은 편이다. 나 같은 건 그것을 반모임에서 당했으니까... 게다가 다음날 등교했더니, 반애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화제는 이미, 나만 불리지 않은 2차 모임 이야기가 돼서 전혀 따라갈 수 없었다는 거지...

 

 

  중학 시절의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내가 결사적으로 저지른 짓은 대체 어디에... 아니, 화제로 삼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닌데. 그래도, 뭔가 이렇게, 구제 같은 건 없는 겁니까.

 

 

우와아... 미안해요, 선배 그 이야기와 같이 엮지 말아주시겠어요?

 

 

  내 이야기에 잇시키는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아, 질린 표정으로 의자를 약간 뒤로 비켜 놓았다. 이런이런, 내 흑역사도 의외의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군.(우사미눈)

 

  기분전환이 됐는지, 잇시키는 한 걸음 뒤로 당긴 자세를 바로잡고는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으-응하고 뭔가를 생각하는듯한 자세로 위를 보았다. 텐프레라고 할까, 역시 약삭빠르다 그 자세. 내 여동생도 자주 한다.

 

 

그래도 케이크인가요... 뒤풀이라기보다는, 크리스마스 파티였네요.

 

그것도 겸하는 거라고 유키노시타가 말했었지. 어느 쪽이 메인인지는 모르지만

 

유키노시타 선배가... 좀 의외일지도

 

말의 뜻은 알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주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매우 백합백합스러운 짓무른 관계성이라든지. 아무튼 후배의 정조교육상 별로 바람직한 이야기도 아니고, 입에 담진 않지만. 잇시키를 조교하려던 유키노시타가, 실은 유이가하마에게 조교가 끝난 상태라니... 문장으로 만들어보니 엄청 자극적이네요, 이거.

 

  설마 그게 전해진 것도 아니겠지만, 잇시키는 무언가 미묘한 표정을 띠우곤, 약삭빠른 자세를 풀고 카페라떼를 손에 든다. 그것을 입에 옮기면서, 툭하고 중얼거린다.

 

 

크리스마스 파티인가요... 선배랑, 유키노시타 선배랑, 유이 선배로

 

뭐 부원 말고도 몇 명 정도 있었지만. ?

 

아뇨 별로. , 이제와선데요 뒤풀이할 거였으면 같이 해도 좋지 않았을까 해서. - , 뭐랬지? 시너지 효과가 뭐라고 했던가 없댔나

 

어이 잇시키, 너무 몰입했어.

 

 

  안타깝게도 효과는 좀 더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런데도 잇시키의 머리에 가타카나어를 박아 넣다니, 타마나와의 주박이 무섭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이쪽은 여동생이나 토츠카 등등을 불렀으니까. 별로 학생회 사람과 관련될 것도 아니고,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주로 내가. 토츠카는 인기인이니까, 다른 놈들에게 뺏겨서 말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주 형편이 나쁘다. 질투한 나머지 분해서 울어버리고 말 것이다.

 

  잇시키는 자기가 말한 것치고는 그러네요 라며 맞장구를 쳤다. 잘 모르겠지만, 딱히 진심으로 말한 것도 아닌 듯하다.

 

 

여동생이라면, 어제 도와주러 온 애 맞죠? 별로 안 닮았던데

 

안 닮았다는 건 필요없어... 코마치라고 하는데. 일단, 내년 여기로 시험 칠 거야.

 

-, 그러고 보니 전에도 그런 말 했었죠.

 

 

  어제는 바빠서 가볍게 인사한 정도라고는 생각하지만, 잇시키도 코마치의 존재는 알아챈 것 같다. 코마치는 코마치대로 조리실을 오가는 잇시키를 보고, 호오, 저 사람이 소문의...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스탠드사처럼, 약삭빠르기 동료, 무언가 느끼는 게 있는 걸까.

 

  거기서 문득, 잇시키는 뭔가를 눈치 챘는지, 의아한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어라? 그런데 수험생 아녜요? 어제도 오늘도 나갔었다는 건...

 

말하지 마, 말하지 말아줘...

 

 

  그건 알고 있으니까. 비교적 바보애들 집합이라 생각되는 잇시키에게까지 걱정되면 왠지 나까지 불안해진다.

 

 

아무튼 뭐라고 할까, 성격 같은 거야, 참견을 잘한다고 할까...

 

 

  내가 그러자, 잇시키가 묘하게 납득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 그런 면은 닮았네요. 역시 남매...

 

어디가...

 

 

  나는 딱히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만. 내가 진심으로 신경 쓰는 사람은 코마치나 토츠카 정도다. 거기에 코마치도 별로 가리지 않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분별할 것이다... , 그럼 역시 닮았으려나. 역시 남매...

 

  내가 논의의 끝에서 뜻밖의 결론(예정조화)에 이르러 혼자 놀라던 중에, 잇시키가 무언가가 다시 떠올랐는지, 문득 위를 올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도와주러 온 사람, 한 명 더 없었어요?

 

? 있었나? 그런 녀석

 

 

  내 인맥은 놀라울 만큼 좁을 텐데... 유이가하마를 통해 누군가 불렀으려나.

 

 

저 선배한테 일단 이름은 들었어요. , 확실히...

 

 

  잠시 생각하고 나서 잇시키는 자신 없는 듯이 흠칫흠칫 소리 냈다.

 

 

확실히, 자이모쿠...자키 선배?

 

...몰라 그런 중2병 환자

 

 

  아아, 있었지 그러고 보니.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왠지 모르겠지만.

 

 

역시 있었잖아요.

 

뭐 아무튼... 덧붙여서 대강은 맞는데 약간 잘못됐어. 그나저나 그거다, 토베와 같은 실수했어,

 

토베 선배와 같은 레벨...

 

 

  잇시키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 그게 쇼크인 거냐. 역시 자기보다 랭크 낮다고 생각한 거네요, 토베를... 뭐 잇시키의 경우, 카와사키 쯤해서 엎치락뒤치락했을지도 모르지만. 카와사키가 불쌍하다. 이름 정도 제대로 기억해 두라고! (박진)

 

 

그런데 왜 또 토베 선배가 간 거예요?

 

- 왜 그랬지...

 

 

  듣고 보니 잘 떠올릴 수 없다. 확실히 요즘 어디선가 만난 기분이 드는데...

 

 

맞다, 오늘 노래방 가기 전에 우연히 만났어. 케이크 가게에서 임시 알바하고 있었지.

 

...오늘 일인데, 왜 그렇게 간신히 떠올린 것 같은 표정이에요?

 

 

  왜 그럴까. 좋은 녀석이지만. 어떻게든 좋은 녀석이기도 하지... 고쳐질지도 몰라. , 토베에 대한 기억, 3시간이 안 돼서 없어지니까...

 

 

알바요...? 아마 어제도 그랬어요. 그래서 부탁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던 거네. 아무튼 어쩔 수 없죠, 그러면

 

, 오우...

 

 

  뭔가 그 말이라면 마치 토베가 도와주러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이 들리는데... 학생회와 토베, 아무 상관도 없다니까? 이해 해주는 척해서 토베에게 죄가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건 그만둬...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이 녀석 장래가 걱정되는 녀석이다... 머지않아 학생회 임원까지 앞에 두고 부릴 것 같다. 게다가 전임을 보아하니, 학생회 임원이 될 법한 애들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복종의식이 높은 것 같다. 그건 이미 닌자라고 부를 레벨. 그래서 엄청 기뻐하면서 따를 것 같아서 무섭다.

 

  그보다 잠깐, 그걸로 재미 붙인 잇시키가 2학년에도 학생회장을 연투하게 되면, 메구링도 새파래질 장기정권의 탄생이 아닌가. 이런 건 임기가 길수록 누구도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되어가는 거니까. 일을 아는 건 그 쪽이고.

 

  형편이라고는 해도, 나는 터무니없는 괴물을 낳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용히 전율하고 있자,

 

 

, 도와주는 걸로 생각난 게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고 잇시키는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 뭐야, 그 불안하게 생각하는 건. 나 또 뭔가 불합리하게 심부름당하는 거야? 이번에는 뭔데? 연말결산이나 다른 뭔가?

 

  내가 속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잇시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말하지 않았네요... 행사,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

 

 

  내가 멍하니 있는 동안에, 잇시키는 꾸벅하고 약간 머리를 숙였다. 얼굴을 들고는, 수줍은 듯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부끄러워한다.

 

 

그 뒤에 정리 같은 것 때문에 타이밍 놓쳐서, 오늘 우연히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봐요, 겨울방학 끝나 버린 뒤에는 좀 더 말하기 어려워질 것 같고

 

, 아아, 아무튼 그럴지도 모르는데... 아니, 별로 대단한 일은 안 했어. 결국, 나만 있었으면 어떤 것도 안 됐을 테고

 

 

  그래, 그녀들이 없었다면, 그 사태를 타개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요

 

, ...

 

 

  아, 보충은 없다. 아니, 딱히 필요 없다고 할 생각이니까 상관없지만?

 

  잇시키는 태연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약간 사이를 두고, 그리고 툭하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래요.

 

?

 

선배가 도와주러 오게 되고 나서, 저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주변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 뿐이라서

 

...........

 

 

  나도 이 이벤트에 말려들어갈 때까지, 잇시키와 많은 면식이 있던 것은 아니다. 학생회 선거 때도, 잇시키와 짜게 되어서 몇 번 정도 협의한 정도다.

 

  그 정도로 잇시키도 불안했던 거라 봐야겠지. 주위에 있는 사람은 얼굴을 맞댄 지 얼마 안 된 학생회 임원과, 다른 학교 학생. 게다가 상급생도 섞이게 되면 예절이고 체면도 없이 도와달라고 할 법하니, 신경이 유들유들한 잇시키라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인사할 상대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가

 

 

  그런 미소로 말하면, 나라고 해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무튼 받아둘게. ...미안하다, 여러 가지 서툰 점도 있었고

 

아니, 저야말로 진행하는 법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내가 살짝 머리를 숙이자, 잇시키도 흉내 내듯이 한 번 더 숙여서 인사했다. 머리를 올리자 잇시키와 눈이 마주친다.

 

 

..........

 

? 왜 그래요?

 

...아니, 뭐라고 할까 의외라서...

 

 

  이 녀석이 이렇게 솔직하게, 스트레이트하게 인사를 하다니. 이것도 그건가, 학생회장으로서 약간은 바르게 있으려는 마음의 발로려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니 참~ 그건 말인데요~ 선배

 

 

  잇시키는 손을 파닥파닥 흔들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거예요. 가장 좋을 때 솔직하게 감사인사 하면, 약간 적당하지만 근본은 똑바른, 이렇게 어필할 수 있잖아요. 갭이에요 갭

 

 

  참으로, 매우 심보가 나쁜듯한 미소로.

 

 

하아.......

 

 

  이것에는 역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안 된다 이 녀석,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이벤트나 하야마와의 한 건으로 쓰라림을 맛보고, 약간은 나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던 게 바보 같다... 이 녀석 사실은, 내 다음 정도로 성격이 비틀린 거 아냐?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가 나를 기가 막힌 눈으로 보던 게,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거 참 터무니없는 사람인 것 같구만

 

후후...

 

 

  잇시키는 무슨 말이냐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약삭빠른 미소를 띠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무래도 이제 가게에서 나갈 생각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계산은 내가 하는 거지만.

 

  그러고 보니 커피에 전혀 입대지 않았던 내가 서둘러 미지근해진 그것을 목에 흘려 넣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잇시키가 무슨 말을 툭하고 속삭인 것 같았다.

 

 

...선배에게만큼은, 듣고 싶지 않아요.

 

 

 

   ×   ×   ×

 

 

 

그럼 선배, 또 학교에서 봐요.

 

, 층은 다르지만...

 

왜 일부러 그런 말 하는 거예요, ...

 

 

  입을 뾰족이면서 그렇게 투덜대고, 잇시키는 개찰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가이힌마쿠하리역 주변은, 조금 전 나와 잇시키가 우연히 만났을 때보다 더 고요해져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여운을 드러내는 것은, 역사의 출입구 근처에서 점멸을 반복하는 전광장식 뿐. 앞으로 몇 시간 정도로, 크리스마스는 확실하게 끝난다.

 

 

, 그럼 다음에 학생회실 놀러와 주세요. 정리해야 하는 서류가... 아니, 냉장고에 음료수 같은 것도 있고 꽤 쾌적하답니다?

 

절대로 일 시킬 생각이잖아 그거...

 

 

  우선 당분간은 가지 말도록 하자. 음료수라면 충분하니까.

 

 

그래도 겨울에는 따뜻한 것을 마시고 싶네요... ... 커피 메이커 같은 거, 신청하면 살 수 있겠죠?

 

너 말도 안 되는 말 하는구만... 예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 말하는 건 공짜니까요.

 

 

  그렇게 적당하게 대화한 뒤, 잇시키는 살짝 손을 흔들고는 개찰구로 사라져갔다.

 

  그것을 배웅하고 나서, 나는 개찰구에 등을 지고 걸어 나갔다. 역사에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뺨을 쓰다듬는다. 그것에 살짝 목을 웅크리고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그 참에 주머니에 들어 있던 지갑에 손이 닿았다.

 

  문득 멈춰 서서, 조금 전 센 남은 돈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걸어갈까

 

 

  약간만 가벼워진 짐과, 약간만 가벼워진 지갑을 손에 들고, 나는 밤의 장막 속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한숨을 흘리는 입가는, 쓴 웃음이 섞여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웃고 있었다.

 

 

 

   ×   ×   ×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족과도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오늘이라는 하루는 이미 끝났고, 그 골조의 밖에서 우리들은 정말로 우연히,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말았을 뿐이니까.

 

  그런데도, 전하는 것을 잊은 적이 있었다면. 분명 거기에는 의미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밤, 아침을 맞이할 때까지 멍하니 아무도 없는 방을 비추는 등불이, 끝을 거부해서 일어난 아이들을 상냥하게 재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