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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은 유키노 루트입니다. ②도 그렇습니다만.

추가로, ⑥은 전일담으로서 「역시 그와 그녀의 영화감상은 잘못됐다」라는 수상한 타이틀인 SS가 있습니다. Haruta님 주최 「내 맘대로 내청춘 신간 기념제」참가 작품입니다.

꽤 느긋한 페이스가 될 것 같습니다. ⑤-9도 쓰고, 하루노와 하치만의 아이를 보고 싶다든가, 리퀘스트도 생긴다면 해 나가고 싶은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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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유는, 보글, 하고 떠오르는 거품 소리가 묘하게 생생했기 때문이다.

  줄줄이 묶인 거품이 형태가 미묘하게 무너지면서, 천천히 상승해간다. 그 앞에 보이는 희미한 빛에 멍하니 비춰져 흔들흔들 요동치면서. 그래도 확실히, 위로, 위로 올라간다.
  거품은 점점 멀어져간다. 처음에는, 그 모양조차 손에 잡힐 것처럼 알고 있던 그건 조금씩 작아져, 이윽고 모양을 판별하는 것도 어려워져, 끝에는 그 알마저 보이지 않게 되어―――그리고 내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안 보일 정도로 멀리, 가 버렸다.
  혹은, 수면에 겨우 도착하기 전에 부서져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행방은 더 이상, 모른다.

  나는 간신히 거기서, 자신이 가라앉아 감을 눈치 챈다. 내가 토해낸 거품이 수면 위를 요구해 올라 간 것처럼, 공기를 잃은 나도 또 깊이를 모를 수중에 떨어져간다, 라고 파악한다.
  사지를 축 늘어뜨려, 느긋하게 가라앉는 대로 몸을 맡긴다. 괴롭지는 않다. 물을 듬뿍 들이마신 옷이 누름돌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깊게, 깊게.
  물고기의 그림자도 없는, 지나치게 맑고 깊은 호수 안을, 나는 똑바로 내려간다.

  ...물론 이건 꿈이다. 꿈이라는 것을, 나는 눈치 채고 있다.
  이런 꿈을 꾼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이 있었군 하고 나는 가라앉으면서 멍하니 떠올린다. 묘하게 자각적인 꿈이다. 드물게 있는, 보면서 꿈이라는 것을 아는 꿈. 아무튼 이것도 그 일종이겠지, 그런 것도 있는 거겠지 하고, 나는 자연스럽게 납득한다.
  그리고 그걸 이해함과 동시에, 그럼 왜 난 계속 가라앉아가는 거냐고, 누구에게 난데없이 물어본다. 아마 자신에게 묻는 걸까. 그 질문에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이건 꿈이니까, 당연히 요구하는 쪽이 잘못되어 있을 터인데.
  그런데도 나는 답을 요구하려고 한다. 반 본능처럼, 질문에 대해 대답을 내려고 한다. 그게 올바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대답을 내는 것에 집착해 버린다.

  잠깐의 사고 뒤, 꿈속의 희미한 맥락을 더듬어, 나는 문득 짐작이 간다.
 
 
   ―――내가 가라앉고 있는 이유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어디까지나 바닥을 모를, 빛이 닿지 않는 물밑에 있는, 누군가를.

  나는 근처를 바라본다. 정신이 들자 수심은 한층 더 깊어져, 주위는 빛을 빼앗겨 어둠 속에 쌓여 있었다. 시야가 좁아짐에 따라, 상하 좌우의 방향감이 없어져가는 게 느껴진다. 물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져, 진흙처럼 무겁게, 내 행동의 자유를 빼앗아간다.
  이런 곳에, 누가 있는 것일까. 이런 외로운 물의 바닥에.
  원래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내가 그걸 알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의 손가락 끝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도 않고, 후회도 없이 그 누군가를 계속 찾고 있다.
  앞으로 정말 조금만 잠수하면, 혹은 좀 더 가라앉은 앞에, 분명 그 녀석이 있을 거라고. 근거 없는, 직감과도 같은 확신이 나를 충동질하고 있다.
  나는 어두운 곳으로, 손을 뻗으려고 한다. 편 손의 끝이 어디에 있는 건지마저, 이제 모른다. 얼어붙는 듯한, 무게가 늘어난 수압이 그것을 막는다. 얼음벽처럼, 거부하듯이, 막는다.
  그런데도 나는 천천히 밀어 헤치듯이, 가능한 한 멀리 손을 뻗는다.


  ―――마치, 누군가에게 매달리듯이.

  ―――거기에 그 작은 어깨가, 날씬한 팔이, 가냘픈 손이 있는 것처럼.


  내 손이, 뭔가에 닿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급격히 가슴이 아플 만큼 숨이 막힌다. 마치 숨을 쉬어야 함을 간신히 생각해 낸 듯이, 그걸 소홀히 한 나를, 나 자신이 책망하듯이.
  그런 나머지 괴로움에, 아픔에, 의식을 놓기 조금 전에,


「―――――, ―――」


  기력을 쥐어짜, 나는 누군가에게, 단말마처럼 외쳤다.
  혹은 무력하게, 나는 무엇을, 털어놓듯이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무음의 호수 바닥에서.
  그건 누군가에게, 닿았을까.

  그리고 꿈은, 뚝 하고 끝난다.


          ×          ×          ×


  예컨대, 어젯밤 어떤 꿈을 꿨는지. 그런 건, 물론 기억할 수도 없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듯한 게 있던 것 같은 것도 아니고, 즐거운 꿈은 아니었던 생각이 들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그 세부는, 너무나도 넓고 넓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무튼, 꿈은 그런 거겠지. 눈이 깨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산해서, 잃게 된다. 막연히 한 조각을 남겨 망가져 버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같은 꿈을 꿀 일은 없을 것이고, 비슷한 꿈을 꾸었다고 해도, 그건 이미 다른 꿈이겠지.
  꿈은 그런 것이다.

  아니, 그건 현실도 다름없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현실도 또, 언제 잃었다고 해도, 망가져 버렸다고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지금도 어디선가 뭔가가 없어져 뭔가가 망가지는 것이야말로 일반적인 일이며, 이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잃은 건 되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만회할 수 있는 동안은 잃었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는 말하지만, 수많은 실패 중에서 싼 프라이드라든지, 경박한 기대감이라든지 비교적 어떻게든 좋은 것을 잃어 온 내 입장으로서는, 의외로 잃어도 상당한 지장은 없었고, 대부분의 경우 잃을 뻔해도 세상에서 리트라이 가능한 건 의외로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단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한해서는, 리트라이는 할 수 없지만.


  그리고 망가진 건 그 전대로는 할 수 없다.
  물론 그런 것처럼 고칠 수 있다. 감추고 그렇게 취급하는 건 할 수 있다. 파괴된 여러 부분에서 시선을 돌리고 계속하면, 망가지기 전처럼 행동하는 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세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돈다. 나는 그렇게 애매하게 부숴, 애매하게 숨겨 왔으니까, 경험으로써 그걸 보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숨겼다고 해도, 그 파괴된 여러 부위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도 또한 사실이다.―――아니, 그것이야 말로 진실이다.

  그러니까, 그 진실에서 눈을 떼지 않게 될 때까지가, 타임 리미트인 것이다.
  상냥한 기만의 때가 끝나, 지독한 진실의 시간이 시작된다.
  엄연한 사실은, 취약한 허식을 일축한다.
  잃었던 것이 밝혀져, 망가진 부분이 비춰진다.
  그리고, 언제까지라도 계속된다고 생각했던 시간은―――돌연 마지막을 고한다.
  잃고 있던 건 올바르게 없어지고.
  망가져 있던 건 완벽하게 망가져간다.

  물론 그런 건 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기만이나, 거짓말 류가 싫었던 것이다.
  상냥한 주제에, 달콤한 환상을 흩뿌리는 주제에, 너무나도 무른 그걸 업신여겨 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고 있던 건, 진짜였을 터인데.
  상냥하지 않은 진실에도 견딜 수 있는, 진짜였을 터인데.
  어디서 나는, 잘못해 버렸을까.
  왜 내 손에 남은 건, 이렇게도 기만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너의 방식으로는, 정말로 돕고 싶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도울 수가 없단다.


  그건 수단의 문제일까.


  ―――너는 마치 이성의 괴물 같네.


  그렇지 않으면, 내 본연의 자세 그 자체의 문제일까.
  아니, 본연의 자세가 수단을 규정하고 있다면, 그 문제의 근원은 같은 거겠지.
  나는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혹은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그걸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 번 대답을 내고―――그 결과 오인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오인한 채로―――정답을 끌어낼 수 없다.
  손에서 떠난 회답권(回答権)은 아직도 돌지는 않고.
  뭣보다, 정답을 모르니까.

  다만, 이것만은 알고 있다.
  아마 여기부터 계속되는 이야기는, 되찾는 이야기도, 수복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잃고, 망가지는 이야기다.
  나는 알고 있다. 알고 있다(分かっている)기보다는, 지각하고 있다(知っている).
  내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은―――혹은, 내가 그녀를 빠뜨려버리고 만 상황은.
  일찍이 내가 쉽게 부숴, 그녀가 계속 규탄해 온 세계와 같은 거니까.
  틀림없는, 유사품이니까.


①변함없이, 히키가야 하치만은 봉사부로 향한다.

  뭔가 지독한 꿈을 꿨다.
  내용 같은 건 기억나지 않지만, 이 식은 땀의 양은 심상치 않다. T셔츠도 메리야스도 질척질척이다. ‘내 방만 스콜이라도 내린 거 아냐’라고 생각할 정도로 습기가 축축한 상태였다. 싱싱함이 넘쳐흐르는 남자는 좋다지만, 실제 젖은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 땀이라든가 비 때문에 비쳐도 좋은 건 여자의 윗도리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통상판이 좋아요. ...무슨 얘기였지? 나도 몰라요.
  다행이었던 건, 그 지독한 꿈 덕분에 꽤 아침 일찍 깬 것이었다. 나치고는 기적적인 기상시간이었다. 이 시간이라면, 샤워하고 밥 먹어도 충분히 등교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창문을 바라보면, 아직 밖은 어슴푸레하다. 동지가 가까워지는 중, 해 뜨는 시간도 또한 늦어지고 있다. 야행성인 나로서는, 활동시간이 늘어나 이득 본 기분이 들지만, 아침 햇빛을 받지 못한 탓인지, 어떻게도 나른함이 가시지 않았다.
  우선 달라붙은 옷 그대로, 비틀비틀하며 방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우오오, 추워. 땀이 복도의 서늘한 공기에 닿아 몸에서 열을 빼앗아간다. 몸을 팔로 감싸서, 약간이라도 체온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다리를 계단 쪽으로 향한다.
  그러자 계단 아래의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어라, 이 시간이라면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발소리에 조심조심하면서 거실로 내려가자, 거기에는 여동생인 코마치가 있었다.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코마치는 앉은 채로 휙 뒤돌아본다.


「좋은 아침-.....근데 어라, 오빠 빠르네?」

「좋은 아침....너야말로, 꽤나 빠른데」


  코마치는 파자마 위에, 분명히 맞지 않은 플리스를 겉에 걸쳐 입고 있었다. 그보다 그거 내 거잖아. 아무튼 확실히 다이닝 의자에 걸쳐 놨었지만.


「......뭐 해, 이런 아침 일찍부터」


  내 질문에, 코마치는 책상 위에 늘어놓은 것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방금 일어난 나와 달리, 의식이 상당히 뚜렷한 것 같았다.


「아니~, 이른바 아침활동이라는 거예요. 아침 시간이야말로, 유용하게 쓰지 않으면 그치!」

「......과연, 공부하고 있었나」


  보면, 거실 책상에는 학교의 텍스트나 프린트, 문제집이 놓여 있었다. 뭔가 우선 늘어놓으면 된다는 듯이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배열이, 코마치답게 허술한 마무리였지만, 공부하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노트에는 둥글둥글한 글씨로 연습문제를 푼 흔적이 보인다.


「아아....뭐, 확실히 수험도 막바지구나」

「아무튼-그러네-」


  이런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방식은, 실천적이고 효과적이겠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라면 조용하고 방해하는 것도 없다. 뭐 나라면 아침이 아니라 심야를 택하겠지만. 오전 1시 반 정도까지 공부하고, 그대로 심야 애니 시청하고 자는 게 내 중학생 시절의 공부 스타일이었다. .....애니가 엄청나게 방해하는 감이 있군, 다시 생각해 보면.


「뭐야, 학원인가 뭔가가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어?」


  혹은 진학 세미나 시험책자 같은데 써있나. 저거 굉장하지, 진학 세미나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리얼충 라이프를 마구 달리는 걸. 여친이 생길 때까지, 같은 말도 있던 것 같은데. 나 공부 노력했지만, 그런 식으로 되지 않았던 건 진학 세미나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인가. ....그럴 리 없지.
  뭐 어쨌든 코마치 성격을 볼 때, 뭔가에 영향 받았던 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만.


「으응?, 아니에요?」

「틀렸나, 그럼 역시 진학 세미나?」

「진학 세미나? ....왜?」


  그것도 틀렸나..... 그럼 텔레비전이나 잡지 같은 건가.
  비교적 어떻게든 상관없는 일에 내가 생각을 돌리고 있자, 코마치는 시원스럽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하루노 언니가 해 보면 좋다고 해서」

「.........왜」


  왜, 거기서 그 이름이 나와.
  하루노 씨. 유키노시타 하루노. 내가 속한 봉사부장,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언니.
  솔직히, 저혈압인 아침 시간에 등장해 줬으면 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내 군소리에 코마치는 의리 있게도 반응을 돌려준다. 펜을 턱에 가볍게 대고, 위를 보면서 떠올려내듯이 설명한다.


「응-, 전에.... 오빠한테 전화 한 적 있었지?」

「아아.....뭐어, 있었지」


  저건, 남매 싸움 한창 중이었던 그 때 말이군. 심적으로는 최악인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저런 전화 받은 탓에, 한층 더 똥통에 빠진 감도 있고.
  ...아니, 분위기라든가 뭔가를 읽은 다음, 그걸 휘젓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걸 계기로 몇 번이나 메일 교환도 했었어. 하루노 언니도 소부고 OG 지? 수험에 대해서라든가, 상담해준다든가 해서」

「그러고 보니 그렇군. 아니, 하지만 그러면 그 밖에도......」


  그 밖에도 상담상대 정도.....아, 의외로 없을지도 몰라. 유키노시타는 코마치의 캐퍼시티를 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것 같고, 유이가하마는 내 안에서는 기적으로 합격한 타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음 거기에 나와는 냉전 중이라 말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러면 뭐, 타당한 선택지려나.
  하지만 하루노 씨인가..... 뭔가 쓸데없이 불어넣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아무튼, 그 사람도 그 사람대로 캐퍼시티가 높으니까, 통째로 삼키지는 마」

「알고 있어, 하루노 언니도 그 부분은 제대로 생각해 주는 것 같고」


  그러면 그걸로 좋지만. 아무튼 그 사람이라도 계산만 능한 게 아니라, 평범한 친절심은 약간은 있는 것 같고. 그보다, 있었으면 좋겠고. .....어, 있는 거지? 불안하군, 어이....
  나는 그런 희미한 불안을 졸업과 함께 뿌리치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나, 샤워 하고 올 테니까.....」

「샤워? 목욕타월이라면 세면소에 있어」

「응, 알았어.」


  갈 때, 소파에 카마쿠라가 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코마치가 일찍 일어났으니까 같이 내려 왔겠지. 코마치 방에서 자는 일이 제법 많고. 뒤집으면 부드러울 것 같은 배를 드러내고, 후스-후스-하고 태평하게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넌 고민이 없을 것 같구나.
  그 배를 스윽스윽 쓰다듬고 나서, 나는 욕실로 향했다.


          ×          ×          ×


  샤워 씬은 컷이다. 솔직히 아무에게도 득이 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뭐, 샤워를 할 정도로 식은땀을 내게 한 꿈에 시달렸던 것도, 혹시 어제 사건이 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다. 어제의 만남 이후로, 여러 가지 생각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어제. 유키노시타의 볼 일 등으로 드물게 동아리가 빨리 끝나, 왠지 모르게 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간, 어제.
  우연이란 무섭게도, 나는 언젠가와 같은 시추에이션으로, 다시 그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조우당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당한 이상, 아니나 다를까 여러 군데 질질 끌려다녔지만.


  ―――히키가야 군, 멋대로 시시해지면, 안 돼요.


  이별할 때 그녀가 던진 그 말이, 묘하게 남아 있다.
  그녀는 내게 어떻게 하라는 걸까. 내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 정도 스스로 생각하세요 같은 말을 듣고, 그 뒤에 다소 고분고분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의 생각 같은 건 도통 알 수 없었다.
  단지 아무튼, 그 비난의 화살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내가 관련되어 있고, 한편 하루노 씨가 관심을 가질 화제 같은 건, 하나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봉사부에 대해서―――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키노시타 유키노에 관해서.


「...............」


  학생회 선거와 관계된 그 한 건 이후로, 벌써 일주일과 며칠이 지나 있었다.
  내가 그녀와 그녀의 회장직 입후보를 저지해서, 「봉사부를 지켰던」 그 날부터.
  그 날 이후로도, 봉사부는 평소대로, 무사히 계속되고 있다.
  수학여행 이전의 일상을 되찾은 듯이, 방과 후에 정해진 시간에 왠지 모르게 시작되어, 대체로는 아무 일 없이, 때때로 소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식으로, 속이면서.
  ...그래.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알아버렸다.
  아무것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 이하의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소리를 들은 때부터. 그녀의 표정을 보게 된 그 때부터.
  아직도 그것이 뭔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렸다고. 되찾으려고―――뺏어 버렸던 것이라고.
  그 결론만이, 사고를 앞질러 내 직감 같은 것에 호소하고 있다.
  ...아니, 아마,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 잘못하지 않은 거지?


  아마 그녀도. 왠지 모르게지만, 깨닫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세 명은 일주일 이상이나 똑같이 반복할 수 있다.
  머리 한쪽 구석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듯이, 무의미하게 무의의(無意義)를 겹치는 듯한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그건 옆에서 보면 어느 의미 공범같이도 보인다. 뭔가가 드러나지 않게, 탄로 나기를 두려워하면서 지내는, 공범관계.
  ...뭐가 죄였을까. 어떤 실수를, 저지른 걸까.
  나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몇 번이나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한 것을, 다시 떠올려 낸다.
  나는 한정된 리소스 중에, 아마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실현할 생각이었다. 결코 칭찬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었던 건 확실하지만, 그 나름대로 드러나지 않도록 빈틈없이 회피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누구나 상처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 그것을 바라는, 누군가가 있었으니까. 그것을 바라는, 자신을 깨달았으니까.
  오더는, 모두 만족시켰다고 생각했다. 의뢰인의 고민을 해소하고, 추가 조건도 클리어했다. 봉사부의 존속을 말려들게 한 그 사건은, 이걸로 끝날 것이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만히 수습할 터였다.
  하지만, 내 예상은, 아무래도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죄악감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아요.


  내가 저지른 건, 그녀들에게는 들킨 것 같다.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반년이나 같이 동아리를 하면 알겠지. 들키지만 않으면 돼, 추궁 받지만 않으면 된다는 방식은, 주변에는 통해도 그녀들에게는 통하지 않았겠지. 결과적으로 나는, 적어도 한 사람, 상처 줬다. 나를 향한 쓰라릴 정도의 상냥함이 아마, 그 증거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상냥한 말 같은 것을 바랄 생각은 털 끝 만큼도 없지만, 평소같이 나를 매도하지도 않고, 규탄하지도 않고, 단지, 침묵해 버렸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녀에게 아무 질문도 듣지 못하고 있다. 평소처럼 독설은 두드리지만, 그 건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입에 내지 않고 있었다.
  내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건 말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나. 그녀에게 무엇을 주고, 그녀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버렸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의 피스를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너무나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있다는 생각 그 뿐이었다.
  동경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데도 잘못 읽었다.

  예컨대, 다.
  예컨대―――왜 그녀가 해결책으로, 자신의 회장직 입후보를 선택했을까.
  그녀는 효율을 중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누군가의 변명처럼.
  나는 언니에 대한 대항심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 과중한 책임감에 움직이게 된 탓이라면.
  그 모든 것이 실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의 주관에 따르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보면 그녀가 학생회장에 적임이겠고, 내가 보는 한 그 자매 사이에는 외부인을 접근시키지 않을 정도의 갈등이 있는 것도 확실하다. 언니의 그 지나친 간섭에 여동생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도, 말하지 않았을 뿐으로.
  거기에 그녀의 본심이 섞여있을 가능성을, 당시의 난 검증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것을, 그 결말을, 바라고 있었다는 가능성.


「................」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또 새로운 의문이 끓어오른다.
  그 이유다.
  그녀가, 학생회장이 되려고 하는, 적극적인 이유.
  아니 이 경우, 적극적, 이라는 말을 쓰기도 어렵다. 어쨌든 그녀가, 내 말 정도로 간단히 입후보를 취소했으니까. 내 책략으로, 문제도, 움직일 이유도 사라졌다고, 그녀는 말했을 터다.
  그 정도의 이유일까. 타인의 말에 묻혀버릴 정도의, 이유였을까.
  그렇지 않으면―――그건 시초였을까. 뭔가를 바꾸려고 했던, 그녀의.
  그렇다면, 그것의 싹을 제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는 게 된다.
  그 행동은 무엇을 위해서.
  그 행동은 누구를 위해서.
  어쩌면―――


「―――빠, 오빠는 참」

「...........어?」


  그렇게 말한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뭔가가 미끄러져서 테이블에 부딪쳐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본다. 스테인리스 포크였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는 테이블에 늘어놓은 야채 볶음과 토스트. 그리고 우유.
  그리고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코마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코마치」

「...그건 이쪽이 할 대사야.」


  빵 조각이 붙었어, 라며 코마치는 테이블 너머로 몸을 내밀고, 내 입가에 붙은 빵 조각을 손으로 집어서, 책상에 놓여 있는 신문지로 만든 쓰레기통에 버렸다.


「애가 아니니까 그만 둬, 부끄러워.」

「....아까 전부터 부슬부슬 흘리면서 먹고 있는 게 보이니까, 손도 가요.」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는 다시 식사하기 시작했다. 우물우물하고 야채 볶음을 입으로 옮긴다. 나도 따라서 볶은 캐비지를 입에 넣었다. 담박한 간장 맛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코마치가 아침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있었으므로, 같이 먹자는 흐름이 되었군, 그렇게 입을 움직이며 떠올린다. 코마치는 뭔가 말하고 있었는데.... 생각나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코마치가 야채 볶음을 평정하고 포크를 두고, 내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그 눈은, 조금 전과 다름없이, 뭔가 애처로운 것을 보는듯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나는 입 안의 토스트를 우유로 흘려 넣는다. 푹 한 숨 돌리고, 토스트 접시 구석을 바라본다.


「...뭐가」

「뭐가가 아니잖아.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내 얼굴, 언제나 어두컴컴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말야」


  ...거기는, 부정하지 않네. 나는 무심코, 쓴 웃음을 짓는다.


「그건 어쨌든지간에......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아니. 아무 것도」


  그래, 아무 일도 없다. 코마치가 전에 똑같이 물었다, 그 수학여행 뒤 이상으로 아무 일도 없다. 의뢰는 달성되고, 나 자신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 없이 사태는 수습됐다. 요새 드물게 본 깔끔한 해결 아니었을까. 사전 준비하는 데는 여러 가지로 고생했지만.
  하지만 코마치는 납득하지 않는다. 그것도 또, 전과 같았다.


「그저께 정도까지 보통이었는데. 어제 돌아왔을 때부터, 뭐라고 할까...」

「..........」


  내가 놀란 건, 코마치가 어제부터 내 변화를 눈치 챈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그저께 정도까지 보통이었다, 고 판단한 것이었다.
  코마치는 나를 잘 보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뭐어 집에 돌아가면 싫어도 얼굴을 맞댈 것이고, 그런 상태로 관찰력은 15년이다. 그 코마치가, 그저께까지의 나를 보통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나는 보통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이미 익숙해지기 시작했을까. 뭔가 잃어버린, 그렇지만 변함없이 미지근한 물로 기분 좋은 그 장소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아-, 뭐지」


  나는 그 걱정을 떨치듯이, 다른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길 어떻게 벗어날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한 달 단위로 남매 싸움을 하고 싶다고는 생각지 않고. 여동생에게 냉대 받으면 역시 힘든 걸.


「어제.... 유키노시타의 언니와, 우연히 만나서 말이야.」

「하루노 언니를?」


  잠시 생각하고 나서, 결국 난 사실을 말하기로 했다. 사실 만을, 말하기로 했다.


「치바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라나. 그렇다고는 해도 여러 가지로 시달렸어. 알지?, 그 사람과 관련되면 지쳐, 진짜」


  변덕의 권화 같은 사람이니까. 그걸 할 정도의 스펙이 있어서, 충고조차 할 수 없다. 미래에 그 사람의 남편이 될 사람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는 레벨. 절대로 엉덩이에 깔리겠지. 그렇다고 할까 그런 용자 있는 건가.


「응-, 코마치한테는 그런 정도는 아닌데........」

「너, 왠지 궁합 좋은 것 같은데..... 거기에 한 번 밖에 대면하지 않았잖아」


  거기에, 휘두를 상대는 선택하고 있겠지. 휘둘러도 불평하지 않는 녀석이라든가, 불평하는 녀석이라도, 휘두르는 보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휘두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것뿐? ...하루노 언니한테 뭔가 들었다, 라든지?」

「그거야 뭐, 얘기 정도는 하는데」


  나도 과연 장식물이 아니니까 말이지. 말을 걸면 돌려줄 정도의 기능은 붙어 있다. 그 기능이 의외로 시간 때우기에는 딱 적당한 것 같다, 하루노 씨의 말로는. 뭐- 비꼬는 거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알잖아, 하고 싶은 말」


  물론, 알고 있다. 여동생이 하고 싶은 말 정도는, 나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하루노 씨에게 들은 말을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냐 하면, 역시 미묘했다. 그녀가 뭔가를 시사했던 건, 확실하겠지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말이 많긴 하지만, 장황하지는 않다. 말하지 않는다는 건 필요 이상으로 설명할 사항이 아니고, 까딱 잘못하면 이쪽이 의미를 파악하기에 위험한 것도 많이 있다. 물론, 일부러 애매하게 흐리고 있겠지만.
  그러니까, 그녀가 하는 말은, 항상 시사하는 말이다. 불꽃놀이에서 만났을 때도, 후미에서 말을 주고받았을 때도, 똑같이. 마치 이 쪽을 시험하듯이. 이해할 수 없다면 전달되지 않아도 상관없듯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하야마의 데이트에 말려 들어갔을 때, 여동생과 대치한 그녀는, 약간 다른 것 같았다. 그건 평소의 여동생에 대한 참견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가열차고 직설적인 말이다. 그 뒤, 유키노시타는 학생회장을 스스로 맡는다는 수단을 택하기로 했었나.
  아니, 잠깐.
  생각해보면, 자신이 학생회장이 된다는 선택지를 처음으로 유키노시타에게 제시한 사람은, 하루노 씨라는 셈이다. 전 학생회장인 시로메구리 메구리 선배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유키노시타에게 그렇게 말했던 적은 없었다. 하루노 씨와 대치하기 전까지, 유키노시타가 대립후보를 내세운다, 는 수단을 택했고.
  그 말에 대해, 유키노시타는 어떻게 대응했었나.

 
  ―――그래. 그런 거네.


  그걸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납득한 듯이, 받아들였던 건 아니었을까. 나와 코마치가 남매 사이에서만 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처럼. 그녀들의 사이에서도 그것이 성립했던 가능성은 없을까.
  무서울 정도로 학생회 선거규약을 자세히 알고 있던 유키노시타.
  회장직 입후보라는 선택지를 명시한 하루노 씨.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의지는 어디에 있을까.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의도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들은 복잡하게 얽혀서, 그 결말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면―――



「...........오빠」


  문득 정신 차리자, 코마치는 울 듯한 얼굴을 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녀석의 눈물 같은 건 오랜만에 봤군, 이런 어울리지 않은 감상을 어렴풋이 품는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있었던 것을, 간신히 깨달았다.


「아.....저기, 뭐야... 미안」

「....미안한 건, 아닌데 말야」


  코마치는, 슬픈 듯이 눈을 내리며 중얼거린다. 나도 또, 눈을 어디에 둘지 곤란해 벽시계를 바라본다. ...슬슬 출근해야 할 부모님이 일어날 시간대다. 이런 시간에, 여동생과 둘이서 밥 먹고 있다는 것도,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꽤 드문 상황이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나는 코마치 쪽으로 몸을 돌린다.


「...코마치」

「역시, 잘 되지 않았지, 그 때」

「..............」


  코마치가 말한 「그 때」는, 어제 사건이 아니라, 아마 일주일 이상 전의 일을 가리키고 있다는 건, 바로 알았다. 어제까지, 나는 보통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서, 다.
  다만, 예감은 들었겠지. 내가 책략을 짜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 녀석만은 끝까지 심각한 표정이었으니까.


「그 뒤에 오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왔지만. 실제 언제나 대로였는데.... 뭔가, 다른 걸」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겠지.」

「그래도, 그 때, 코마치가 확실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를 말하게 해선 안 된다. 이 녀석이 떠맡을 것 같은 건, 1mm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이 녀석은 내가 바랐기 때문에, 이유를 줬을 뿐이니까.


「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문제는 문제로 인정되지 않는 이상, 문제는 되지 않아.」

「...그렇게, 오빠는 누구한테도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는 거야?」

「.............」

「하루노 언니한테 뭔가 들은 것만으로, 이런 식으로 되는 주제에, 아무 일도 없다고?」

「................」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어떤 보상도 주지 않은 나는, 그 정도 밖에 책임질 방법이 없으니까.
  잠깐의 침묵 뒤, 코마치는 툭하고 중얼거린다.


「역시, 오빠는 오빠네」

「...그거야 그렇지」


  인간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잔재주를 바꾸든가, 스타일을 바꾸든가, 나라는 인간이 변함없는 이상, 나는 내 나름의 방식을 관철할 수밖에 없다. 책임지는 법도 마찬가지다.


「그럼... 다른 사람은, 좋아요. 좋지 않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줄게.」

「.............」

「그래도, 코마치는 오빠의 여동생이야.」

「.............」


  그건, 모든 억지론을 뭉개는, 한 마디. 모든 이유에서 의미를 빼앗아, 모든 이유가 되는 말. 그건..... 바로 최근, 내가 억지로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코마치한테는 말해 줘. 무슨 일이 있어도, 으응, 무슨 일이 없어도」

「........알았어」


  그리고, 나는 겨우 꺾였다. 꺾일 수밖에 없게 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너한테는 말하고, 아무 일도 없어도..... 뭐어, 정리되면, 말할 테니까」


  지금은 아직, 뭘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른다. 너무도 불확정한 요소가 너무 많다.
  내 대답에, 코마치는 끄덕였다.


「응. 아무튼 그걸로 좋아요.」

「거기에, 너를 화나게 하면 뒷일이 성가시니까 말이지」

「잘 알고 있잖아」


  그리고, 간신히 코마치의 얼굴에, 아주 약간이지만, 미소가 돌아왔다. 거기에 이끌려, 나도 약간 미소를 되찾는다. 아무래도 아직, 나는 그것을 잃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접시를 포개고 일어선다.


「밥 먹었고, 앞으로 30분만 재워 줘. 깨워주면 좋겠어.」

「에~, 오빠도 공부하자? 모르는 문제 있는데」

「수학은 나한테 묻지 마」


  코마치의 머리를 펑펑 쓰다듬고, 한 번 하품한 뒤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다고는 말했지만.
  아마, 뭔가가 일어날 거라는 예감은 있었다. 술렁술렁하고, 머리 구석이 술렁이는듯한 감각.
  나는 어제, 하루노 씨를 만나버렸다.
  요새 뭔가가 일어날 때 반드시 그 조짐을 느낀다, 그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우연히도 조우해 버리고 있다. 길조라든가 흉조라든가 미신 같은 것을 입에 담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사람은, 전에도 생각했던 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람인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꽤나 생각이 헛돌아 버렸지만. ...아무튼 기분전환도 적당적당히, 라고 했었나.
  그리고 겨우, 나는 텐션을 진정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가족이라고 할까.... 여동생이라는 건 역시 소중.


          ×          ×          ×


  12월도 2주로 접어들어, 비교적 온난 기후인 우리의 치바도, 현격한 겨울 추위를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어라, 치바 열대 아니었어? 봐, 야자나무라든가 열리고 있고... 그런 말을 매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현실은 비정하다.
  바다가 가까운 탓인지, 통학 중에도 찬바람이 씽씽하고 내 뺨이라든지 손이라든지, 노출된 부위에 가차 없이 내뿜는 요즘. 위험해. 추워. 위험하게 추워. 추가로 이 시기는 디스티니 씨(Sea)인가 뭔가도 바람이 굉장하다. 그러니까 어린이 동반으로 가면 애의 텐션이 오르는 건 보증. 또한 데이트로 가면 허술한 장비와 각오로는 싸움나는 일도 보증. 그러니까 부디 리얼충들에게는 디스티니 씨(Sea)를 추천한다. 좋은 시금석이 된다고, 반드시.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평소처럼 시립 소부고에 도착한 나는, 으-부들부들하며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물론 내 신중함이 그렇게 시킨다. 누군가 들어버리면 그 사람 불쾌할 테고, 그렇게 불쾌하게 되면 아침부터 내 텐션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게 된다. 모처럼 약간 회복한 기분이고, 약간은 소중히 하고 싶었다.


「...............」


  누구에게 인사하는 일도 없이, 스윽 하고 자신의 자리까지 최단거리 루트대로, 착석과 동시에 팔베개로 푹 엎드린다. 내가 보기에도 완성된, 퍼펙트 아싸 행동이었다. 오늘같이 수면 부족인 날에는 이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역시 30분의 추가로는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여기에 앞으로 어느 정도 휴식을 추가할 수 있을까, 그 1분 1초가 생사를 가른다.
  교실 안은 밖이 추운 점도 있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런 좁은 공간에 40명이나 넣고 소란스러우면 이런 온도도 되겠지. 하지만 아무튼 겨울철, 특히 자기에는 마침 좋았다. 몸이 차가워져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냉장고가 뿜는 열로 자는 카마쿠라를 이미지하면서, 나도 또 타인이 내는 열을 잘 이용해서 눈을 감는다. 와글와글하며 말하는 교실내의 소란도, 2년 가까이 들으면 훌륭한 자장가다. ...나, 지금 굉장히 에코적인 존재 아닐까. 청춘의 부산물로 푹 숙면 법. 특허 신청하고 싶어졌다.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군. 자각은 있다.
  코마치 가라사대, 내가 상태 나쁠 때는 평소 이상으로 어쩔 수 없는 말을 하는 것 같고. 그건 의외로 맞을지도 몰랐다.
  청춘을 경멸하고, 청춘을 우롱하고 비웃는, 그런 자신을 확인하고 있는 듯이.
  그런 자신은 싫지 않지만, 그런 자신을 분석해버리는 자신이 싫었다.

  좀처럼 잘 수 없는데, 그걸 한 층 더 방해하듯이, 귀에 익은 소리를 귀가 마음대로 캐치해 버렸다.


「으-응, 난 어디라도 좋은데.... 그것보다, 언제 하는 거야? 다음 주말이라든가?」

「그러네-. 우선 예정 비워두지 않으면. 유이는 다음 주말이 좋아?」

「응, 지금은 비었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안다. 유이가하마 유이다. 또 한 사람은... 아마, 에비나 양이라고 생각한다.
  리얼충 그룹에 속한 두 명은, 평소의 장소에서 다른 멤버와 어딘가에 가자는 의논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에비나 양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다음 주말이라면 크리스마스 전인 걸. 떠들고 싶어지기도 하겠지, 패거리들은.


「토베 군은?」

「아니- 그게, 왠진 모르겠는데 요새 이로하스가 잡일을 떠넘겨서 말이어-... 좀 이로하스한테 물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할까」


  토베, 너 또 그 후배한테 부려먹히고 있는 거냐... 학생회도 아닐 텐데. 게다가 예정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요. 얼마나 길들여진 거야... 이로하스라는, 잇시키 이로하... 저번 주 학생회장에 임명된 후배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저건 저거대로, 메구리 선배 못지않게 사람 부리는 재주가 있는지도 모른다.
  토베의 푸념 섞인 대답에, 에비나 양이 흐-응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래? 토베 군 바쁘네」

「앗, 그래도 내일은 진짜 물어 볼 테니까! 절대로 물어보니까!」


  토베 군 큰일이구만-. 새해를 앞에 두고 인기잖아. 하지만 마음속 상대에 한해서만큼은 토베에게 흥미 없을 것 같은 게 또...아무튼, 토베니까 상관없나.
  그 뒤도 에비나 양은 야마토와 오오오카 (아마 맞다)의 일정을 차례대로 묻고,


「하야마 군은? 다음 주말이라든가」


  그렇게, 하야마 하야토에게 묻는다.


「...그러네. 하루 종일은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아마 오후부터라든가 된다고 생각해-. 그러면 문제없어?」

「오후부터라. ...미안한데」

「괜찮아 괜찮아, 하야마 군 바쁜 것 같고」


  ...고등학생 주제에 연말 바쁘다든가. 뭐야, 인사 돌기라도 하는 거야? 햄 돌리는 사람처럼 연말 선물 가지고 돌아다니고 있어?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햄이라면 그거야 인기겠구만.
  팔에 둘러싸인 비틀린 사다리꼴의 시야밖에 없는 나는, 하야마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랄까 차분하고, 한편으로는 상쾌함을 잃지 않은, 메스꺼울 정도로 평소대로인 하야마 하야토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아마, 평소대로 붙임성이 좋은 스마일을 띠고 있겠지.


「...........」


  뭐어 그건 됐다. 우선, 하야마에 대해서는 그거로도 상관없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에는―――뭐- 보이지 않지만―――한편으로, 하야마 왕국은 오늘도 통상 영업처럼 보인다.
  다만―――


「그렇대 유미코, 다음 주말로 좋지 않을까?」

「............」

「유미코? 어-이」

「........후엣!? 나-아(あーし)? 그러니까, 에비나.....뭐가?」

「아니, 그러니까 다음 주말에 말야....」

「...다음 주말에, 뭔가 있어?」

「에, 유미코 듣지 않았어?」

「그나저나 어----이 진짜야-. 진짭니까 미우라 양-!」


  ...그래, 다만 문제는, 눈에 보이는 문제는, 미우라 유미코였다.
  미우라라고 하면, 하야마 왕국, 즉 클래스 카스트 1위 그룹의 한 쪽을 담당하고 있다. 세로 롤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다리를 꼬아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거만하게 여자를 줄세우는, 옥염의 여왕. 그 제멋대로임과 위압감과 이따금 보이는 엄마 요소로 이 클래스에 군림하는 여학생이다.
  그 미우라가 뭔가 이상한 거라도 먹었는지, 요새 상당히 점잖은 것이다. 아니, 점잖다고 할까, 툭 터놓으면 이상하다고 할까.
  아까 전의 얘기도 그렇지만, 안 듣는 것처럼 보이는 미우라는 그런대로 듣고 있어야 할 터이다. 중간에 토베의 무른 태도와 잇시키에게 할 대답을 깔아뭉개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테고, 하야마에게 하루를 전부 비우라고 부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터다. 마음 내키지 않으면 마지막에 에비나 양이 세운 계획을 뒤집는 것도....아무튼, 나중에 보충은 하겠지만, 할 수 있을 터.
  그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보다, 건성. 듣지 않았다고 할까 꽤나 심하다.

  ...아니, 아무튼, 나는 그게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는 알고 있지만.
  지난달 후반정도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주 금요일.

  여러 가지 있었으니까 싫어도 기억하고 있다. 하야마에게 이끌려, 하루노 씨가 부추겨서 하게 된 더블데이트. 의미 없는 이야기. 의미가 내포된 침묵. 의미를 알아낼 수 없었던 행동. 나는 단순히 불쾌해진 게 아니라, 그 남은 의미의 함유량에 기분이 나빠진 게 아닐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나오지 않은 말에 대해서.
  ...그건 우선 놔두기로 하고.
  그 도중, 더블데이트 한 중간에, 우리들은 우연히 만나 버렸다. 아니, 나는 상관없으니까... 하야마와 미우라는 만나 버렸던 것이다. 아무튼, 하야마가 눈치 챘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미우라가 이상해진 건, 아마 그걸 분기로 그랬을 것이다.
  에비나 양의 보충이 효과가 있었는지, 한 때는 꽤 회복하고 있었을 텐데, 저번 주 쯤부터 다시 아까 전 같은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하야마가 있을 때, 그것이 현저하다.
  ...뭐라고 할까, 알기 쉽다고 할까... 반대로 모르겠다.
  과연 약간은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는 걸까. 하야마가 그 뒤 데이트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까지는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하야마와 그 상대가 그만큼의 관계성이 있지 않았던 것 정도는, 왠지 모르게 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 라는 것이 약간 의문이다. 벌써 그 상태에서 빠져나와, 평소처럼 복귀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


  아무튼, 미우라의 상태가 이상한 건 최근, 나나 그룹 일원들뿐만이 아니라, 클래스 안에서도 눈치 채이고 있는 감이 있는데. 특히 여자들에게. 어느 쪽이냐 하면 저 쪽 그룹이다. 귀신이 없는 틈에 뭐라도인가, 미우라가 조용한 기회를 틈타 기세를 올리는 감이 있다. 과연 사가미, 그 녀석은 변함없구나....
  어쨌든, 여왕의 침묵으로 그늘을 보인 하야마 왕국을, 냄새 맡은 하이에나 같은 제2 세력이 계속 대두되고 있다, 라는 것이 이 2-F 전국시대 현상이었다. ...뭐-, 죽을 정도로 어떻다고 한들 상관없지만.
  그럼 왜 또 내가 그런 소식통같이 말하고 있는가 하면, 한가하니까 싫어도 눈에 들어온다는 게 이유 중 하나다. 바란 것도 아닌데, 이것저것 그 일당들과도 여러 가지 일이 있던 것이고, 알고 싶지 않은 것도 눈치 채게 된다.
  그리고... 아무튼, 약간 걱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아니, 미우라가 아니고.


「.........유미코」


  그런 식으로, 누구에게도 상냥한, 누구라도 걱정하는 듯한 호인이.
  그 상냥함이, 발목을 잡지 않으면 좋겠다고 무심코 신경 쓰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아무튼, 그런 것보다 자신을 어떻게든 하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          ×          ×


  홈룸 끝, 방과 후를 알리는 벨이 울린다.
  통제되던 웅성거림의 볼륨이 마구 올라, 클래스 내에 무질서한 이야기가 난무하기 시작한다. 어디서 모여서 돌아간다든지 저기에 모인다든지 동아리의 선배가 어떻다든가 고문이 이렇다든가 입만 열면 이것만 말해서 지쳤다든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 마지막 수업 후반부터 바로 아까 전 홈룸에 걸쳐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나한테는, 너무 자극이 심했는지, 매우 귀에 거슬리는 소리였다.
  나라도 섬세하군, 이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책상에 쑤셔 넣었던 프린트 물을 가방에 넣는다. 평소라면 청소 당번도 아닌 한, 이런 곳에 있을까보냐 하는 기세로 클래스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겠지만,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아서 출발이 늦어졌다. 어지간히 잘 자고 있었던 것 같다.
  집에 가지고 돌아갈 이것저것을 가방에 담아, 마지막에 이어폰을 블레이저 코트 포켓에 쑤셔 박고 일어서서,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혼자 교실을 뒤로 한다.
  그런데,


「힛키」

「...어?」


  교실에서 나왔더니,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었다.
  내가 반응한 것을 보고, 유이가하마는 가방을 흔들흔들 하면서 내 쪽으로 온다. 내가 걸음을 멈출 기미가 없는 걸 감안했는지, 그대로 보조를 맞춰서 내 약간 뒤를 따라온다.


「힛키 역시 잤어? 지쳤어?」

「아니... 단지 그냥 졸렸을 뿐이야. 연습문제 프린트, 하는 도중에 기절했으니까」


  추가로 오늘 마지막 수업은 수학이었다. 최근 수험 대책인지, 수학이나 영어 수업 중, 기출문제를 중간에 두거나 하고 있다. 아직 앞으로 일 년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는 진학교, 벌써 일 년밖에 없다는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거겠지.
  거기서, 응? 하고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힛키 수학 서툴지 않았어?」

「아무튼 뭐, 그러니까 포기하고 자고 있었어.」

「...그거, 다 풀지 않았잖아」


  다 풀었잖아. 풀 수 있는 문제는 풀었고, 할 수 있는 건 했으니까. 저런 뭘 써서 풀면 될지 모를 문제, 생각하는 만큼 시간낭비다. 해답도 나눠줬고, 그런 데에서 피폐해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시간을 수면에 충당했을 뿐이라고. 나로서도 이 무슨 합리적인 선택.
  유이가하마는 쓴 웃음으로, 힛키답네 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부터 동아리 가는 거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다.


「...뭐 그렇지」


  나는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눈치 챘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척 했다. ...아마,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혹시 그런 걱정은 기우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정형문처럼, 승부가 이미 결정된 레이스처럼, 나와 그녀 사이에 정해진 얘기였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주고받은 듯한 이야기. 그것이 그 때부터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확인하는듯한 느낌이, 불과 조금이라도, 거기에는 확실히 있었으니까. 그걸 난 어디에서 감지하고 있을까. 내 말에서일까, 그녀의 말에서일까. 아니면.


「그래?」


  유이가하마가 맞장구친다. 뒤에서 걷고 있으니 표정은 모르지만, 아마 평소대로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간 칠칠치 못하지만,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그러니까 나도 평소처럼  거기에서 눈을 눌린다. 앞을 향한 채로, 나른한 듯이 걷는다.
  그리고 이후도 아마, 예정조화다.


「그럼 힛키, 부실까지 같이......」

「아-... 나 음료수 사 올게. 먼저 가고 있어 줘」

「아, 힛키......」


  유이가하마가 자기도 간다든가 말을 꺼내기 전에, 가볍게 손을 흔들고 약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일단 따라잡을 마음이 있는 것처럼, 서두르는 식으로 가장해서. 아무튼, 분명 뒤쫓을 일은 없겠지만.
  시간적으로도 슬슬 한계였으니까 말이지. 나와 유이가하마가 교실 근처 복도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이 정도가 빠듯한 라인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분명, 그 상냥한 유이가하마는 누구와도 얘기할 수 있겠지. 그리 이상한 눈으로 보일 걱정도, 없다고 생각한다.


「.............」


  그것뿐일까. 내가, 그녀에게서 도망치듯이 떠난, 그 이유는.
  그 대화가 계속되는 것이, 계속되어 버리는 것에 어떤 공포를 느끼진 않았을까. 이대로 계속되면, 뭔가에 생각이 다다를 것 같아서. 눈치 채고 싶지 않은 뭔가를, 눈치 채 버릴 것 같아서.
  계속 걸어가고 나서, 살짝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따라 오진 않는다. 그녀도 아무래도 특별동으로 갔겠지. 이걸로 됐다. 이걸로 정답이다. ...그래, 어차피.


「이걸로, 괜찮아.」


  툭 하고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너무나도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아무 보증도 해 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승강구에 있는 자판기 근처까지 오면, 본 적 있던 얼굴이 있었다.


「.............」


  힐끗, 내 쪽을 흘겨보는 위험한 눈동자. 푸른빛을 띤 포니테일. 훤칠한 장신도 더해서인지 불필요한 박력이 흘러넘치는 그 녀석은, 클래스메이트인......어라, 누구였나.


「...뭔데」


  내가 이름을 떠올리려고 말없이 보고만 있었던 탓인지, 그 카와...뭐시기인가부터 말을 꺼낸다. 여전히 뭔가 나른한 것 같은, 기분이 나빠하는 듯한, 무뚝뚝한 톤이다.


「아니... 거기 있는 자판기 쓰고 싶은데」

「아아... 방해였어?」


  카와뭐시기 양은 살짝 자판기 앞에서 비켜난다.


「...그런 건 아닌데」


  약간 그거다, 뭔가 세력권 같다고 한 마디 해둘까 생각했을 뿐이다. 말없이 끼어든 다음에 트집을 잡히면 좋지 않을 테고.
  나는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을 넣는다. 적당히 눈에 들어온 캔커피를 골라서, 버튼을 눌렀다. 탁 하고 캔이 떨어지는 소리와 거스름돈이 나오는 소리가 난다.


「..............」


  캔과 거스름돈을 받으려고 숙였을 때 쯤, 뭔가, 시선을 느꼈다. 그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카와뭐시기 양과 눈이 마주쳤다. 뭐, 눈이 마주친 순간, 굉장한 기세로 눈을 딴 데로 돌렸지만. 뭐야, 얘 좀 무례한 거 아냐?
  그보다,


「...왜 그래. 아직 사지 않았어?」

「아니, 샀는데. ...우롱차」


  아, 그래. 그럼 왜 그런 데서 서 있을까. 역시 여기는 그녀의 세력권 같은 건가. 이렇게, 잔돈을 받을 타이밍에 「대기다, 잔돈은 두고 가」 라든가 말해서 자릿세라든가... 엄청 쩨쩨하구만, 그거.


「...지금부터 알바니까. 그래도 곧장 나오면 약간 빠르다고 할까」

「아-... 그런 건가」

「평소에는 보리차 가져오는데 잊어버려서, 그래서, 여기서 살까 해서」

「헤에...」


  묻지도 않았는데, 카와뭐시기 양은 자기가 먼저 여기 있는 이유를 가르쳐 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빠르게. 뭐, 이런 곳에서 시간 때우기도 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만. 꽤 춥고. 단지, 방과 후는 학생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기 때문에, 외톨이의 마이플레이스도 변화를 피할 수 없는 건 확실하다. 이 녀석의 경우, 일단 거기에 진을 치면 그 이후부터는 오라로 주변을 배제할 것 같고.


「...넌」

「어?」

「넌, 지금부터 동아리?」

「뭐...그렇지」


  쉬익 하고 캔 커피 손잡이를 딴다. 우선이라는 느낌으로 한 모금 마셨다. 적당히 미지근하지만, 혀를 찌르는 듯이 씁쓸하다. 향내도 찌르는듯한 건 없었지만, 단지 그저 씁쓸했다. 아무튼, 캔 커피에 뭘 기대하는 거야라는 얘긴데. 무심코, 얼굴을 찡그린다.


「...그런 표정 지을 정도라면, 단 걸 사면 좋을 텐데」

「뭐....그런가」

「너 말야, MAX 커피라든가 좋아하지 않았어?」

「응? 그거야 뭐, 치바인이라면 그걸 싫어하는 녀석 같은 건 없겠지. ...근데, 왜」

「...저기에서 알바하고 있을 때, MAX 커피 같은 걸 부탁한 사람, 너 밖에 없었으니까」


  기억하고 있다, 라고 카와뭐시기 양은 약간 은은하게 미소 짓는다.


「아아, 그런 일도 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한 모금 더. 이 씁쓸함도, 익숙해지면 마실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는 해도 꽤나 그리운 일이군. 벌써 칸코레(かんこれ)... 이것저것(かれこれ), 반 년 정도 전 얘기 아니었나. 클래스에 독불장군은 혼자로 됐다고, 자웅을 겨룬 그 때부터... 아, 아니, 그런 스토리가 아니었나? 인상이 너무 옅어서 기억나지 않는데.

※ 칸코레(かんこれ) 이것저것(かれこれ) : 음운의 유사성을 이용한 드립.


  여하튼 나처럼 클래스에서 계속 고고함을 견지하는 희귀한 동료이기도 하다. 뭐 그렇게 말해봤자, 그렇다 할 만한 교류는 별로 없지만. 다만, 이 녀석은 이 녀석대로 가끔 불쑥 얼굴을 내민다. 하루노 씨와 비교하면, 이번처럼 우연 같은 면이 많다는 기분은 들지만. 보스 캐릭이라기 보다는, 레어 캐릭터 같은, 추가로 자이모쿠자는 레어지만 기쁘진 않다.
  아, 근데 그러고 보니,


「저기, 너 말야」

「...어?」

「당신... 당신들, 또 무슨 일인가 있었어?」

「...뭐라니, 뭐가」

「아니, 나한테 물어도 곤란한데. 그래도, 지난 번 쯤부터, 뭔가」


  그러고 보니 저번은, 우연이 아니었나. 코마치에게 불려왔었나. 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충 카와사키 타이시의 누나로서.....아, 하는 김에 떠올렸어요. 카와사키다. 카와사키 사키. 제대로 떠올리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하지만, 무슨 일 있었어, 인가.
  설마 하루에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와사키 같은 레어 캐릭이 지적한다고는. 얼마나 보는 거야... 라고 말하는 건 평소의 자의식 과잉이다. 얼마나 읽기 쉬운 얼굴이야. 약간 반성하는 게 좋을까.
  뭐, 반성하든지 않든지, 내 대답은 변함없지만.


「...별로, 덕분에, 평소대로인 생활을 보내고 있어. 그 때는, 저기, 고마워」

「...난 상관없는데」


  휙 하고 카와사키는 얼굴을 돌린다. 아-, 감사인사가 너무 늦었나. 일단, 확실히 잇시키가 학생회장이 되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서, 감사인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 이유로 말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봐, 이걸로 뭔가의 착오로 잇시키가 낙선하거나 도중에 마음을 뒤집어버리면 감사 인사할 쪽이 바뀌잖아. ...토츠카에게는 일이 있을 때마다 감사를 표했지만, 뭐, 그건 그거다.


「그래도, 거기에 비하면 뭐라고 할까.... 혹시, 니가 했던 일 들켰다...든가?」

「아니, 안 들켰어. 증거도 인멸....그런 의미는 아닌데, 잘 도망쳤다고 생각해」


  넷을 이용한 책략이기 때문에, 완전한 은폐는 할 수 없었지만... 뭐, 벌써 일주일 이상 전 일이고, 정보의 홍수 속에 섞여버린 건 확실하겠지. 내가 한 짓 같은 건, 그 정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묻혀 버린듯한, 임시방편인 책략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저지른 본인이나, 관련된 일당인가... 혹은, 눈치 채 버린 사람들뿐이겠지.


「그렇...겠지. 그런 게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런데도 카와사키는 납득하지 못한 것 같고, 말하기 힘든 듯이 말을 골랐다.


「그런 게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무리하고 있지 않아? 당신이라든가.... 유이가하마라든가」

「..............」

「너 수학여행 뒤부터 너 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야....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 무리해서 평소 같이 지내려고 한다고 할까」

「...뭐야 그건」


  그거, 내가 어떻게 행동해도 의심스러운 거 아냐? 그거야 아무튼 곧잘 수상하고, 말 더듬고, 구석에서 무슨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아-...달라. 뭐라 말하면 될지...」


  카와사키는 아작아작하고 머리를 긁적인다. 이 녀석이 무뚝뚝한 이유는, 다분히 말이 서투른 탓이라고 난 재차 인식했다.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든다.


「아무튼 카와사키, 저거다.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유이가하마가 이상해 보이는 건... 아마 미우라가 요새 이상하기 때문이겠지,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미우라? 아아, 그러고 보니 요새 왠지 조용하다고 생각했더니...」


  카와사키의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진다. 아니, 그러니까 무섭다고. 이 기회에 클래스의 얼굴이 될 정도의 박력이 느껴진다. ...뭐, 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겠지만. 단지 그저 미우라가 싫으니까 그렇겠지. 캐릭 겹치고 있는 걸, 약간.
  그렇다고는 해도 미우라, 꽤 적이 많군요. 카와사키라든지 유키노시타라든지...사가미도 그러려나, 그 녀석은 약간 그릇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씹혀서 가장 처음에 퇴장하는 타입.


「에비나 양도 좀 피곤해 보였지. 걱정한다면 그쪽 걱정이나 해줘」

「에비나는...응, 아무튼, 그러네. 그 애도...여러 가지 생각할 일이 있을 테고」


  서로 관찰력이 좋은 외톨이끼리라, 대화가 순조로워서 편하다. 거기에 카와사키도 에비나 양과라면 조금은 사이좋았을 터. 아무튼, 이상한 데에서 인연이라는 건 맺어지는군.


「...그런데, 슬슬 갈게요.」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음료수 사고 간다, 라는 명목이었고, 너무 서서 얘기하는 것도 그러려나.


「그럼, 알바 힘내라. 그리고 남동생에게, 코마치한테는 접근하지 말라고 전해 줘」

「...그런 말 내가 한다고 생각해? ...그보다, 잠깐 기다려 봐」

「...어?」


  뭐야, 돈이야? 돈이라면 없다고, 점프해도, 아무 것도 안 나온다고 진짜. 예비학교 동기 강습 예산을 어떻게든 부풀릴 테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결국... 넌 어떤 거야?」

「.............」

「저기, 뭔가 있었으면...어, 잠깐...」


  거기까진 들렸지만, 그 뒤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 카와사키도 도중에 포기했겠지. 내가 뒤를 향한 채로, 걷기 시작했었으니까. 혹시, 카와사키라면 알았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해 온, 그 녀석이라면. 그러니까 소리는 도중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건, 단순한 희망적 관측에 불과하지만.

  뭔가가 있었으면.
  뭔가가 있었으면, 뭐라는 거야.
  난 아무 것도 바라지는 않았다. 도움 같은 건, 구제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연민 같은 건 받을 생각도 들지 않고, 그것이 상냥함이라면,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
  문제가 문제라고 한들, 문제가 됐다고 해도 내 문제고, 내가 손 놓지 않은 이상... 누구의 시혜도 받아선 안 되고, 누군가에게 폐 끼칠 생각도 없으니까.



「저기, 유키농 어디 가?」

「...그러네. ...어머」


  두 명의 시선을 받고, 나는 평소처럼 여어, 하고 가볍게 인사했다. 그대로 평소 앉던 자리에 앉아, 평소처럼 문고본을 꺼낸다. 서표를 끼워 둔 페이지를 바라봐도, 내용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전 장까지 돌아왔다. 아아 그래그래, 여기까진 기억난다.
  봉사부실. 창밖은 벌써 날이 기울기 시작해, 어슴푸레해지고 있는 흐린 하늘. 벌써 제법 겨울 풍경이다. 일 년 중 가장 색을 잃어, 그리고 정체한 경치가 계속되는, 겨울.


「힛키 늦어-, 음료수 사 올 뿐이라구 말했잖아」

「아-... 잠깐 아는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어.」


  아무튼, 덕분에 모처럼 산 커피도, 도착하기 전에 비워 버렸지만.


「어, 힛키 중2하구 말했어?」

「어이 이봐, 왜 자이모쿠자 하나야. 그 밖에도 있잖아, 확실히」


  예컨대 토츠카라든가...토츠카라든가! 뭐, 토츠카가 아니지만서도.


「아무튼 상관없는데. ...근데, 유키농, 어디가 좋을까?」


  유이가하마는 내 항의를 스루하고, 다시 유키노시타를 본다. 테이블을 보면 몇 권인가의 현란한 잡지가 놓여있다. 아마 유이가하마가 가져왔겠지. 치바워커는 이따금 대충 훑어보니까 알지만, 다른 잡지는 본 적 없다.
  어느 잡지에도 「크리스마스 특집」이라든가 그런 느낌의 문자가 들쭉날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전에, 크리스마스에 어딘가 가고 싶다고 말했었지. 조속히 후보지 선정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이런 때, 유이가하마는 갑자기 행동력을 발휘한다.
  유키노시타는 그 잡지를 대충 보고 나서, 조용한 눈으로 묻는다.


「여러 가지 있군요... 유이가하마 양은,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은 있니」

「응-, 그러면, 여기라든가? 아, 그래 유키농」


  잡지 페이지에 손가락을 대고, 유이가하마는 생각난 듯이 유키노시타 쪽을 향한다.


「...뭐니?」

「그러니까, 저기... 집 일, 어떤 느낌인가 해서. 우선 일정부터 정하지 않으면 말야」


  오늘 아침도 교실에서 그런 화제가 나온듯한 생각이 든다. 뭐랄까 큰일이군, 스케줄이 찬 인간이라는 건.


「나도 다음 주말 어느 쪽인가, 스케줄 들어가네요. 어느 쪽인지는 모르지만... 그 다른 한 쪽 날이나 경축일, 그리고는 이브와 크리스마스 당일쯤이라고 생각하는데. 응, 이브라면 오후부터 외출이라는 느낌일까」


  내가 보충하기도 뭣하지만, 올해 소부고 종업일은 24일이다. 이 날은 오전 중에 수업이 끝나는 이유로, 유이가하마는 그걸 말하는 거겠지.
  유키노시타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확인했는지, 입을 연다.


「...미안해요, 유이가하마 양. 어제 확인하고 왔지만, 아직 약간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단지...그러네, 24일과 25일은 어려울까나」


  그러고 보니 어제는 유키노시타 친가로 돌아갔었지, 당일치기로. 무슨 볼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투라면 스케줄 확인은 그 다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 ...그럼, 약간 앞당겨야겠네.」


  유이가하마는 팬시인 자신의 수첩에 뭔가 쓰고 흠흠하며 끄덕인다. 그리고 생각난 듯이,


「아... 추가로 힛키는? 다음 주말 경축일이라든가 한가하지?」

「너 말야...그것보다 그 확신으로 가득 찬 질문은 그만둬」


  왜 내 일정 아는 거야. 너는 내 비서야?


「어머, 그럼 예정이 있니? 부디 들어보고 싶군요.」


  유키노시타가 흥미 없는 듯이 다그친다. 적당히 다뤄지는 감이 반이다. 하지만 여기는, 나도 한 마디 해도 좋을 때겠지.


「바 보냐 너, 올해 마지막 3연속 휴일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짧은 겨울 방학의 전초전 같은 거다. 내가 생각건대, 이 휴일은 겨울방학을 위한 워밍업 같은 거야. 누구라도 바다에서 헤엄칠 때라든지 등산할 때라든지 준비 체조하잖아? 그것과 같아, 게으름 피울 때도 제대로 준비 안 하면 심각한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내가 서론을 마치자, 유키노시타는 뭐라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그 손을 도중에 내린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됐어요, 예를 들면?」

「그렇군, 예를 들면... 오후까지 잔다든가 하겠지」

「거기까지 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으로서」

「아 니, 거기서 얘기가 끝나지 않는다고. 그보다 인간 끝나지 않는다고. 해 본 적 없을지도 모르는데, 의외로 낮까지 잔다는 건 체력이 소모된다고. 10시간 가까이 자고 있을 터인데 상쾌함이 전혀 없어. ...요점은, 너무 잤다는 거다.」

「...그건 그렇겠지.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면 좋은 게 아니고?」

「틀려, 방법은 그것만이 아니야... 자는 시간을 늦춘다.」

「아니, 힛키, 좋은 표정으로 무슨 말하는 거야?」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힌 얼굴로 태클했지만, 아무튼 별로 걱정할 일도 있을 리 없다. 나는 지론을 계속 늘어놓는다.


「알고 있어?, 겨울 방학은 평소와는 다른 일을 경험하기 위해서 있어. 그건 맞지?」

「...언뜻 보기에는 맞는 것 같네. 학생 신분에 그렇게 휴식이 필요하다고도 생각되지 않고, 뭔가를 장기적으로 배우기 위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지도 몰라요.」

「초등학교 때 자유 연구라든가 했었지-. 아무튼, 그리고 여행이라든가, 확실히 시간 없으면 할 수 없을지도」


  그렇겠지.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휴식이 필수적인 사회인이 되면 왠지 여름방학도 겨울방학도 아공간으로 사라진다. 자칫하면 골든위크라든가 보통 연휴조차 사라질 때도 있다. 마치 학생 시절에 쉬었잖아 라고 하듯이. 그 논리는 아니잖아, 어떻게 생각해도.
  아니, 말이 빗나갔다.


「...그래서, 그게 뭐?」

「아아, 그런데 대체 왜 모두 일부러 밖에 나가는 걸까라는 말이야. 별로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내성적으로 집에 있어도, 귀중한 체험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에-, 그럴까....」


  납득 가지 않는 듯한 유이가하마에게, 나는 친절하게도 예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떤 경험이라도 언제나 할 수 없는 건 변함없잖아. 예를 들면... 뭔가 약간 손대기 힘들었던 작가의 책을 단번에 소화한다든가」


  내가 든 예에 흠 하고 유키노시타가 반응한다.


「그런 책은 있군요. 확실히 장시간 집중해 읽어야 할 고전적인 명저는, 노트를 하거나 하면서 읽게 되면, 어떻게도 시간이 걸려버리고」

「오, 오우, 그렇군...」


  그러니까... 얘가 파악하는 방법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 라노베 작가를 말한 건데... 말하기 어려워졌다.


「아-...그리고 봐, 명작 애니를 전부 한 번에 본다든가, 양작 게임을 묶어서 플레이 한다든가, 절식이라든가 하는 밥 안 먹고 하루 지내 본다든가, 시험해 보고 싶은 건 집 안에 얼마든지 있잖아」

「아니...힛키, 혹시 전부 한 적 있는 거야?」

「뭐, 있는데」

「우와아...」


  유이가하마가 절찬 질려하는 중이다. 아니, 해 보라고. 마지막에 말한 거나 어느 쪽이나 다 굉장히 하이 텐션이 되니까. 뇌내 마약이라든가 나오는 게 느껴지는 걸. 확실히 황금체험. 그 뒤의 육체적·정신적 반동이 무서울 정도로 재현해 준다.
  뭐 됐어. 뭔가 질려했지만, 억지로 정리에 들어가자.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귀중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규칙적인 올바른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안 돼. 그야말로, 오후까지 자는 것 같은 각오가 없으면 말이지!」


  그것을 할 수 있어야만, 프론티어는 열린다. 외톨이는 가끔 이렇게 해서, 인간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추구해,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다고 깨달아, 그렇게 영리하고, 생각이 깊어져 간다. 이따금 대학생이 나쁜 짓으로 신문에 나오거나 하잖아, 저 녀석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으니까, 한계를 벗어나 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그 때문에 생활 습관을 빨리 고쳐 나가지 않으면 안 돼. 컨디션적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깨우러 오는 코마치를, 빨리 포기시키기 위해서 말이지」

「힛키만이 아니라 가족의 워밍업까지 겸하고 있어...」


  유이가하마가 기가 막혀하면 좋을지 질리면 좋을지 헤매는 듯한 표정을 띤다.
  하지만 결국,


「아무튼, 그래두 힛키답다고, 할까...」


  하하, 하고 유이가하마는 쓴 웃음을 흘린다.
  그리고,


「그러네... 당신다워요.」


  유키노시타는, 웃지 않았다.
  그 옆얼굴을 보고, 나는 문득 제정신을 차린다. 바보 같은 것을 말하다가, 고양됐던 기분이 갑자기, 확 차가워졌다.
  일찍이라면, 얼마든지 그 사이에 매도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사이를 노리지 않는다. 말이 다소 신랄한 면은 있어도, 내 내면을 푹푹 휘젓는듯한 말까지는 하지 않는다. 마치, 말해도 쓸데없다고, 포기해버린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그건 이미... 평소의 광경이 되어 있었다.
  아니, 뭘 상처받은 듯한 생각 하는 거야 나는.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M이 아니다. 이 녀석의 폭언에는 되게 지쳤었다. 유키노시타가 약간 얌전하게 되는 편이, 내 정신위생에 있어서는 행복할 터다. 언제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지금 세력을 뻗치는 편이 이득이겠지.


「..........」


  언제 돌아올지, 인가. 과연, 돌아오긴 할까.
  이건 돌이킬 수 있는 사태 같은 걸까. 이 막다른 골목 같은 미온수는.
  그리고, 돌아왔다고 해도, 돌이킬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어라, 근데 결국 힛키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한가하다는 걸로 좋지? .....힛키?」


  잠시 가라앉은 사고를, 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되돌린다.
  그 말이 머리에 닿아, 이해에 다다를 때까지 약간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쉬며 속인다.


「...아-, 그러니까 말했잖아, 한가하지 않다고....」


  그렇게 입을 연 순간.
  똑똑, 하고 봉사부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 무심코, 열려던 입을 닫는다.


「응? 누군가 온 것 같네. 그럼... 부디」


  유이가하마가 문을 향해 말한다.


「...............」


  왠지, 나는 그 소리에 매우 동요하고 있었다. 뭐야, 이건. 자신 있게 확신할 수 있는 불길한 예감이라고 할까. 아니야, 그런 멍 때리는 게 아니라, 이건, 좀 더 확신이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는 파악할 수 없었다. 초조감만이 심해진다.
  물론 내가 초조해봤자, 저 쪽이 기다려 줄 리도 없고, 드르륵 문이 열렸다.
  거기에 나타난 사람은,


「역시 여기 있었네. 하로하로-. 유이. 그리고, 히키타니 군과... 유키노시타 씨」

「에, 히나? ...무슨 일이야?」


클래스메이트인, 에비나 히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