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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캐릭터 A의 세계

2019. 5. 3. 17:36 | Posted by 2ndboost



남자라면 누구라도 동경하는 이상적인 상황, 가라사대 하렘.
주변 여성들의 호의를 한 몸에 받고, 등장하는 여자애를 들볶다가 마지막에 선택한 누군가와 이어진다...
그런 애니나 게임 같은 설정 따윈 결국은 픽션, 어리석은 남자의 꿈 또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겠지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가공의 세계에 빠져들려는 걸까.

그렇다면 이 녀석의 경우, 내 친구인 마키하라 유지도 가공의 인물인가?


아니, 대답은 반대이다.


나도 유지도 여기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환상 같은 게 아닌, 의심할 여지없는 현실로서 우리들은 살아있다.
고로 이 현실이 현상이 내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여도 납득해야만 한다.


「여긴 그런 세계」라는 것을.


우리 고등학교가 자랑하는 러키 보이, 통칭 『RGM(리얼 걸게임 마스터)』 마키하라 유지.
유지를 둘러싼 세계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미연시 세계로 보일 것이다.
고교 2학년, 얼굴은 중상. 성격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하며, 약간 우유부단.
자신 있는 것은 스포츠 전반, 서투른 것은 일찍 일어나기와 요리.
소극적인 체질과 적극적인 사고는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고, 여자애의 위기에는 악한에게조차 태연하게 직면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이런 스테이터스를 지닌 유지의 주변에는, 여성 몇 명이 둘러싼 확고한 「하렘」이 형성되어 있다.

 


① 유지의 소꿉친구이자 학년 No.1의 미소녀 【호사카 리에】. 
아침에 약한 유지를 깨우러 가는 사람은 근처에 사는 그녀의 일이다.
또한, 유지의 부모님이 맞벌이이므로 아침식사나 도시락, 저녁식사도 그녀가 혼자 맡고 있다.

② 호사카 리에의 한 살 어린 여동생 【호사카 마키】.
소위 소악마라 불리는 성격으로, 유지에게 참견하고 관심 받는 것을 사는 보람으로 여기는 미워할 수 없는 여자애다.

③ 3학년인 우리들의 선배, 모 대기업의 따님이기도 한 【호죠 레이카】.
우아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 거리에서 불량배에 습격당했을 때 유지가 구해준 것 같다.

④보이시한 급우 【카노 하즈키】.
수영부의 에이스이며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햇볕으로 다소 검다.
짧게 잘라 정리한 머리나 평균보다 작은 가슴 탓인지, 남자 같은 풍모를 보이는 미소녀이다.

⑤천연 거유 급우 【오카무라 에리카】.
차분한 어조와 쭉쭉빵빵한 몸매로 남자들의 야한 시선을 독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는 기미가 없다는 점이 천연이겠지만.

⑥여장부 담임선생님 【아키모토 카나코】. 
수업 중에 자주 조는 유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입 다물고 있으면 미인이지만, 일단 화내면 의자도 냅다 던지는 괴력교사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마키하라 유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들만이 아니다.
사촌동생, 반장, 동아리 후배, 보건 선생님, 수수한 도서위원, 근처의 젊은 부인 등등...
입장, 나이가 다른 그녀들은 각자 「마키하라 유지」라는 남자를 사랑하며, 여러 방법으로 대시하고 있다.

그런 리얼 미연시 세계에서의 나 신죠 마사토의 포지션.
그것은 즉 『친구 캐릭터 A』라는 것이다.


「후우~... 아침부터 전력질주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옆자리에 쓰러져, 입을 열고 중얼거리는 한 마디는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적 있는 상투적인 대사였다.


「얌마, 그 말 들은 사람이 내가 아니었으면 때렸을 거라고」

「하하, 뭣하면 바꿔주고 싶을 정도야.」


―――약간 울컥한다.
미연시 주인공의 상투적인 대사겠지만, 실제로 들으면 역시 올라오기는 한다.


「화장실에 가면 리에가 문 닫는 걸 까먹어서 맞고, 준비하는데, 덤으로 마키가 가방을 숨기고... 가끔씩은 지각 빠듯이 말고 평범하게 등교하고 싶어.」


본인에게는 참으로 폐가 되지만, 나를 시작으로 보통 남자라면 부러워할 비현실적인 일상을 매일 체험하는 유지.
이런 푸념을 듣는 것은 친구 캐릭터의 의무겠지만...

「너 말야, 나 같은 일반인들한테 그런 이벤트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어. 자칫 다른 남자한테 말해봐라, 쳐맞고 바다에 가라앉을 수가 있다고.」


하하하... 하고 웃는 내 입가는 메말라 있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언제 덤벼들지 모를 만큼 내 마음은 심란했다.

―――바꿔주고 싶다고? 평범하게 등교?

바라도, 빌어도, 우리들 일반인에게 그런 현실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허무하게 이 세계의 캐릭터 1로서 살아갈 뿐.
이 녀석의 푸념 하나하나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감미로운 세계가 나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든다.

―――어째서 나는 이런 세계에 태어난 거야...


「마사토?」


깜짝하고 제정신을 차린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 따윈 나오지 않는다. 주사위는 던져지고, 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 버린 시점에서, 나는 「하렘 주인공의 친구 A」라는 피스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자, 갈아입자. 다음 시간이 체육이야.」

「우엑~ 또 달리는 건가.」


나도 사춘기 남자다. 귀여운 여자애와 친해져서, 많이 이야기하고, 잘 되면 여친을 만들고...
게임 같은 일상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그저 보통으로,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반은커녕 학교의 주요 여자들은 모두 유지에게 눈을 향한다.
물론, 남자 중에 나나 유지보다 멋진 녀석은 얼마든지 있다.
걔들은 몰라도, 내 옆에는 항상 유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애 같은 건, 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키하라 군~」


체육창고에서 용구를 치우고 있던 우리들에게 말을 건 사람은 천연 거유 오카무라 에리카이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정리를 도와달라고~ 그래서 하~짱이랑 같이 왔어~」


뒤에서 스포츠 소녀 카노 하즈키가 공 바구니를 끌며 들어왔다.


「둘보다 넷이 빨리 끝날 거야. 빨리 마치자.」

「하하, 살아났어. 고마워 둘 다」


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져가는 것이 보인다. 역시, 홀딱 빠졌다는 건 이런 거겠지.


「자~ 마키하라 군~ 그거 내가 들어줄게~」

「너한테는 무리야 에리카. 자, 도와줄게.」

「자, 잠깐!? 그렇게 잡아당기면! 아앗!!」


폭하고 매트에 박히는 3인.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오카무라의 가슴이나 카노의 엉덩이에 깔리는 유지. 일반 남자들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이벤트일 것이다.


「...느긋하게 즐기시길」


유지에게는 이것이 일상. 내가 아무리 바라도, 부러워해도, 일어날 리 없는 현실.
나는 자연스럽게 체육창고를 뒤로 했다.


「정말이지, 먼저 돌아가다니 너무해」

「그래서, 미안하다니까. 방해였나? 해서 분위기를 읽은 거라고.」

「어디가 그런데! 그 때는 도와줄 장면이잖아」


돌아가는 길에, 나와 유지의 대화는 전의 체육창고 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내 마음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도와줄 장면?
그 큰 가슴에 얼굴을 묻어도?
탄력 있는 엉덩이에 깔려도?
그래도 도왔으면 좋겠다고?
나만이 아닌, 세상의 남고생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도왔으면 좋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지?
제대로 분위기를 읽었잖아.
보통이라면 감사받는 게 당연하지 않나?
―――아니면 자랑하고 싶은 건가? 우월감에 잠기고 싶은 건가?


「...읏!」


그만두자.
아무리 질투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세계. 나의 역할. 나의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오빠」


라는, 귀에 익은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 료카 짱. 지금 돌아가는 거야?」

「어머, 마키하라 선배. 안녕하세요.」


꾸벅하고 고개 숙이고 미소 짓는 몸집이 작은 소녀. 나와 연년생의 여동생인 신죠 료카.
매우 평범한 스펙인 나와 달리, 학년 톱클래스의 두뇌와 용모를 갖춘 1학년의 아이돌적인 존재다.
조신한 행동과 늘 웃는 얼굴로 1학년은커녕, 2, 3학년에도 팬이 많다.
그리고 예외 없이 료카도 유지에게 호의를 보내는 사람 중 하나다.


「아 맞아, 오빠. 냉장고가 빈 걸 잊고 있었어요. 장 보러 갈 테니 짐 들기를 도와주러 오세요.」


료카에게 직접 유지를 좋아한다고 들은 적은 없긴 하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마키하라 선배와는 오래도록 교제를」이라 계속 말하고 있다.
내가 유지와 사이좋게 있는 한, 료카에게 유지는 꽤 가까운 존재가 된다.
특별한 접점이 없는 료카가 자연스럽게 유지와 만날 수 있다.
즉, 나는 완전히 여동생의 연애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
가족에게도 피에로 취급받는 비참한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미안, 나 배가 아픈 것 같아. 미안하지만 유지, 도와줘.」

「오빠...?」


비참하고, 뭣하지만. 내 신조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남자」이다. 여동생의 연애는 응원해줘야만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오빠로서 경솔하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아아, 괜찮아. 그럼 료카 짱, 갈까?」


틀림없이 료카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소리 대신 억지로 손을 잡히고, 팔이 꼭 휘감겼다.


「죄송합니다. 마키하라 선배, 마음만 받을게요.」


한 번 더 꾸벅하고 머리를 숙이고 다음은 찌릿하고 나를 쏘아본다.


「꾀병 부려봤자 전부 들켜요, 오빠. 집 문제에 타인을 말려들게 하는 건 허락할 수 없어요.」

「아니... 너, 모처럼 내가...!」

「그러면 먼저 실례할게요, 선배. 오빠의 무례, 정말로 죄송해요.」


세 번째로 머리를 숙이고 나를 질질 끌어당겨 상점가로 데려가는 료카.
나 참, 이렇게 작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장을 다 봤을 무렵에는 밖이 깜깜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을 향해 걷는 도중, 료카에게 실컷 설교를 들었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가 있으니, 저런 행동은 앞으로 하지 마세요.」


기본적으로 자기감정보다 체면을 우선하는 료카다, 방금 전의 행위는 참을 수 없었겠지. 이런 경우, 항상 고분고분하게 따랐지만.


「...너도 나한테 뭐라고 하는구나.」


머릿속의 생각이 불쑥, 입으로 나오고 말았다.
세 걸음 정도 앞을 걷던 료카는 발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본다.


「당연해요. 관계없는 마키하라 선배를 말려들게 해놓고 칭찬받을 수 있다고요?」


나는 단지, 료카와 유지 둘만 있게 하려고 했을 뿐인데.
누구도 아닌, 너 자신에게 가장 감사받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모처럼 분위기를 읽었는데.
이 놈이나 저 놈이나...


「...확실히...말하는 게 어때...」

「네?」

「유지를 좋아한다고. 나한테 유지와의 사이를 주선해달라고」


억누르던 감정이 둑이 터진 것처럼 터져 나온다.
학교의 누군가에게서, 가족에게조차도 아무렇게나 취급된 울분이, 말로 터져 나온다.


「이제 싫어! 이거면 충분해! 더 이상 어울려줄 수 있겠냐고!!」


짐이 떨어져 야채가 땅에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터지기 시작한 나 자신의 마음과 매우 비슷했다.


「지금까지! 난 계속 조연뿐이었어! 분위기를 읽고! 신경 쓰고! 그래서 결국 난 어떻게 되는 건데!?」

「오빠...」

「비참하고, 부러워서, 어쩔 수 없어서!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이라고 포기하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모르는 사이에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어째서 내 세계는 보통이 아니었을까.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애인을 만들고.
그렇게 평범한 인생을, 어째서 나한테는 줄 수 없었던 걸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애는,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다음에 좋아하게 된 여자애도,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다음에 좋아하게 된 여자애도,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번 고백하고, 두 사람 모두 친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애는, 모두 친구를 좋아했다.

유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렇게, 하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평범하게... 평범한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미연시 세계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일반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걷고 싶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지?


「사라지고 싶어」


이미 한계였다.
타인의, 그것도 친구의 행복을 바랄 정도라면 얼마든지 해준다. 하지만, 내 행복은 어떻게 되지? 
자신이 불행의 수렁에 떨어져서까지,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 이상이 실현되는 가상 세계에서는 멋진 신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지쳤어...」


리셋하고 싶다.
여기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는 이제 이 세계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셨어요?」


따뜻했다. 그리고, 좋은 향기가 났다.
몽롱한 의식을 각성시켜, 상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는 료카의 가슴에 안겨,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인생은, 생각대로 가지 않아요. 한 톨만큼의 행복조차 손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넘쳐흐르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꼭 껴안기면, 이렇게나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에 비하면 오빠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적어도 한 명,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팔에 힘을 주어, 더욱 강하게 안겼다.
얼굴을 들 힘은 없었지만, 료카가 미소 짓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정말 좋아해요, 오빠. 그러니 사라지고 싶다는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말랐음이 분명한 눈물이 다시 울컥거렸다.
행복은,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오빠가 주인공이에요. 같이 걸어가요. 그래주실 거죠?」


**************************************


「유우 군! 도시락 잊었어, 자」

「마키하라 군, 오늘은 저도 도시락을 만들어왔어. 맛 봐주지 않을래?」

「이이잇! 유지는 마키랑 밥 먹는다고 약속했는걸!」


4교시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호사카 자매가, 호죠 선배가, 앞을 다투어 유지에게 다가왔다.
이건 또 평소의 광경. 그리고 이후 아키모토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아, 마키하라. 너 프린트 제출 아직이었지. 밥 먹기 전에 직원실로 와라.」

「으아아아아! 그만 좀 해줘어어어!」

「하하핫, 오늘은 한층 더 여난의 상이 나오는 유지. 밥은 내가 먹어줄 테니 안심해라.」

「마사토 너 임마! 보지만 말고 도우라고!!」


하잘 것 없는 이야기. 친구를 둘러싼 트러블.
예전의 나라면 분명 견딜 수 없었을 이런 일상도, 지금은 마음에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행복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 다른 행복도 지금부터 천천히 찾아가면 된다.
주인공은 나다, 할 수 없는 것 따윈 없다!


「아자! 얄밉도록 훌륭한 RGM!」




밤, 저녁식사를 하던 나와 료카를 찾아온 사람은 유지였다.
평소의 실없던 분위기도, 여유 있던 표정도 사라진, 그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진검 그 자체였다.


「할 말이 있어.」


내 준 차도 거의 마시지 않고, 유지는 나와 료카를 다시 보았다.


「조금 전, 리에와 레이카 선배한테 고백 받았어.」

「오오!」


마침내 유지에게도 봄이 왔나. 라고 해도 이 녀석의 경우, 항상 신춘이었던 생각이 드는데.


「나, 우유부단이잖아? 그래도... 나 진지하게 생각했어. 역시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고.」

「그, 그래? 그래서, 어느 쪽으로 정했어?」


꿀꺽하고 숨을 들이쉬는 나. 가만히 응시하는 료카. 입을 일직선으로 묶은 유지.
한 박자 두고, 유지가 입을 열었다.


「나...말인데, 료카 짱을 좋아해.」


쇼크는 없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유지가 선택해줬다는 기쁨 쪽이 강했다.
이 녀석의 좋은 면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유지라면 괜찮다. 료카를 슬퍼하게 할 짓은 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백을 받고, 처음으로 료카 짱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머뭇머뭇 얼굴을 붉히며 유지는 말한다. 손이 떨리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료카 짱이 마사토를 소중히 생각하는 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나도 그 고리 안에 넣어주지 않을래...?」


유지 나름대로 힘껏 한 고백일 것이다. 여기에 올 때까지 분명 몇 번이나 연습했음이 틀림없다.
나는 이제 전과는 다르다. 지금이라면 타인의, 여동생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다.

「료카, 유지는 이래 보여도 여차할 때 의지가 되는 녀석이야. 너와 유지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괜ㅊ」

「틀렸어.」


단숨에, 공기가 변했다.
료카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낮아지고, 눈동자 안쪽 빛이 사라졌다.
흔들흔들... 일어서서, 휘청휘청 찬장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료, 료카 짱...?」

「너의 대답은 그게 아니야.」


평소의 조신한 행동도, 늘 짓던 미소도 사라지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선택해선 안 돼』. 평생 그대로, 네가 선택하는 길은, 누구와도 사귀지 않는 하렘 세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유지도 그런지, 갑작스러운 전개에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도로 뇌를 완전가동시켜서, 사태 파악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 박자 빠르게 따라잡은 사람은 유지였다.


「저, 저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의 포지션은 거기가 아냐, 라고 말하는 거야.」


빛이 사라진 눈동자가 똑바로 유지를 붙든다.


「오빠의 세계에서 넌 『미끼』야.」

「미...끼...?」

「너의 역할은, 오빠 주변의 여자를 반하게 하는 일. 오빠에게 나쁜 벌레가 붙지 않게 하는 방충제.」


유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져 간다. 나도 비슷한 얼굴일까.


「그래서, 오빠에게 평소 말했어. 너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아...저기...?」

「『너의 세계』에서 우리들 남매는 단순한 조역. 따라서 나는 너의 게임 공략대상이 아니야. 동시에, 『오빠의 세계』에서 넌 그저 방충제에 불과해. 오빠의 게임 공략 캐릭터는 나 혼자.」


어느 샌가. 료카는 유지의 눈앞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속이 텅 빈 눈동자를 닫는 일 없이, 빨아들이듯 유지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의 세계』에서 등장인물은 오빠만. 그래, 우리들뿐이야.」


이 때, 나는 나와 료카 사이에 있는 오해를 깨달았다.
그녀는, 료카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좋아」는 가족으로서가 아니고, 이성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것을.

료카의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무디게 빛나는 그것은... 공예용 소형 해머인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런 중대사에 움츠러들어 움직일 수 없게 된 자신을 저주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료, 료카 짱이 마사토와 둘이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어.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그리고, 이런 장면에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유지를 다시금 존경한다.
흉기를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말할 수 있는 배짱을 갖추다니 역시 주인공...이라는 걸까.


「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거야. 그렇지? 모든 사람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나를... 너의 세계의 등장인물로 해주지 않을래?」


그 사랑은 진짜다. 표변한 료카를 앞에 두고 이런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말은 즉, 미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건가」

「어...?」

「너, 쓸모없구나.」


거실에 둔탁한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려 퍼진다.
봐서는 안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내 두 눈은 몇 번이나 두드려 맞고, 엉망진창으로 부서져가는 친구의 얼굴에 못 박혀있었다.

이윽고, 희미하게 반응하고 있던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자, 료카는 천천히 다가와서는, 내 눈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오빠」


사방에 흩날린 고깃조각과 엄청날 정도의 피가 달라붙은 얼굴을 닦으며 료카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방충제, 망가져버렸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부터 모여드는 벌레는 제가 구제할 거니까요.」


아직도 눈동자가 열려 있을 뿐,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나의 머리를 정성스레 어루만진다.
이 때 나는 이미 정신을 잃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정신이 든 때는, 다음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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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유우 군은 신죠 군 집에 간다고!」

「적어도, 마사토 군과 이야기만이라도 하게 해줄 수 없어요?」

「료카! 진짜로 유지 안 왔어!?」


현관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소리는 매일 듣고 있다. 호사카 자매와 호죠 선배다.


「오빠는 몸이 안 좋아서 이야기할 수 없어요. 미카히라 선배도 어제는 오지 않았어요.」


아니, 료카. 유지는 어제 집에 왔잖아.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했는데... 그리고 어떻게 된 거지?
어쨌든 모두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빨리... 음... 어라? 몸이 움직이지 않아...


「정말이지, 방충제가 없어지고 나니 바로 이렇다니까. 참으로 성가신 날벌레군요.」


살포시 료카가 침대에 앉는다. 료카, 라고 부를 생각이었지만, 내 목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빠의 세계는 머지않아 벌레로 망쳐지겠죠. 하지만 안심해주세요.」


료카가 뻗은 왼팔은 나의 노출된 음경에 닿았다.
왜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까. 나는 알몸이었나.
료카는 천천히, 리드미컬하게 내 음경을 훑어내며 오른손으로 재주 좋게 옷을 벗어갔다.
몇 년 만에 보는, 여동생의 나체. 마지막으로 본 때는 초등학생 무렵이던가.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에 걸터앉아, 달콤하고, 음미한 입맞춤을 마치자, 하반신의 음경이 무언가에 싸여갔다.


「저의 세계에는 우리들 두 명밖에 없어요. 여기에서는... 『제가 주인공이랍니다』」


13. 보고서 9A-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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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지휘관의 임무는, 우리들 인형에게서의 요청을 정리.

  각 부대장이 모은 자료 다발을 한 장 한 장 주의 깊게 읽고, 오늘 부관인 콜트 씨에게 대책 등을 전하겠습니다.


  아, 지금 제 요청이 읽혔네요.

  용지에는 『좀 더 지휘관 곁에 있고 싶다』라고 썼습니다.

  읽어내린 지휘관은, 아무래도 제가 부관을 담당하는 날을 늘려줄 모양입니다.


  배려 깊은 지휘관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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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관은 SOP 씨.


  부관은 보통, 지휘관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놓인 소파와 테이블에서 일을 하지만, SOP 씨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인원이, 지휘관 옆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스킨십이 짙은 편으로, 때때로 지휘관 등을 감싸거나 어깨에 달라붙기도 합니다.

  이 적극성은 본받아야 하겠네요.


  ......안긴 지휘관의 체온이 조금 오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저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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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지휘관에게서 떨어져 수행하는 임무입니다. 빨리 지휘관을 만나고 싶어.

  통신기 너머로 그리폰 오퍼레이터 목소리가 들립니다. 빨리 지휘관에게 돌아가고 싶어.

  밤인 이유도 있어, 시야가 나빠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휘관지휘관.


  지휘관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정말 신경 쓰입니다, 걱정입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빨리, 빨리, 빨리, 끝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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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지휘관은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어서, 저도 몇 개는 기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전 날 그걸 지휘관에게 알렸을 때는, 잘 부른다고 칭찬받았지만, 목소리가 복도에 새고 있던 건 부끄럽다고 했었죠.


  괜찮아요 지휘관. 밖에는 새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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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의 휴일이라, 스프링필드 씨에게 요리를 배웠습니다. 지휘관의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그녀는, 이 기지에서 최고의 요리사이기도 합니다.


  요리 자체는 자신 있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를 위해 익혀 두는 것도 나쁠 게 없습니다.


  배우는 중간에, 스프링필드 씨는 궁금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지휘관을 보지 않아도 괜찮겠냐고요.


  괜찮아요, 더미 링크를 두고 왔으니까요.


  제 대답을 듣고, 스프링필드 씨는 쿡쿡하고 웃었습니다.

  스프링필드 씨도, 자주 쓴다고 합니다. 역시, 저와 마찬가지군요.


  요리 이야기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지휘관도, 건강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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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M16 씨에게 불렸습니다.


  지휘관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몰랐지만, M16 씨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저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네, 할 수 있으면 쭉, 영원히.


  해줬으면 하는 건 특별히 없습니다. 지휘관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저는 그런 지휘관의, 기뻐하는 모습이나 웃는 모습이나 슬퍼하는 모습이나 울고 있는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이나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지휘관이 행복하면, 가능하면 그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도 행복합니다.



  M16 씨는 기쁜 듯 웃으면서 돌아갔습니다.

  아무래도 만족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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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내일은 제가 부관인 날입니다.

  이제부터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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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어느 날의 저녁 반주 이야기. M16A1



「그럼, 건배」



  구호에 맞춰 잔을 넘기자,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M16은 그대로 한 번에 다 마셨지만, 나는 홀짝홀짝 맛보듯 마시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술을 마신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내 의지대로 마신 적은 없고, 대부분 친구나 일 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덧붙여서 이유는 단순, 술에 약했기 때문이다.


  그건 여기에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바로 요전 날 M16의 부탁으로, 나는 오랜만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설마 어려운 임무를 해낸 보상으로, 나와 같이 술을 마시기를 희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고 늘어져봤지만, M16은 굽히지 않았다.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SOP짱은 「철혈의 목을 잡아오면 내 부탁도 들어줄 거야?」라고 내게 물었다. 그건 글자 그대로의 목이겠지?

  목은 좀...... 이라 하자, SOP짱은 불만이었다.

  M4 양과 콜트가 보충해주지 않았다면, 좀 더 위험한 것이 제시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휘관,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건가?」



  옆의 의자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제대로 듣고 있다마다.

  기지에 이런 방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듣지 않았잖아?」라고 흘기는 M16.

  솔직하게 사과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바(BAR)였던 것 같지만, 철혈의 습격을 받고 나서는 이 상태라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근처를 둘러보니, 방구석에는 망가진 가구가 쌓여 있었다.

  깨끗이 청소된 곳은 우리들이 있는 카운터와 그 주변만인 것 같다. 이런 상태라면 굳이 여기에 와서 마시지 않아도, 집에서 마시면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여기를 지정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지휘관, 그렇게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어. 남자와 여자가 마시려면 분위기도 중요한 거야.」



  M16이 병을 든다. 아무래도 따라주려는 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반 이상 남아 있는 내 잔을 비웠다. ......쓰다.


  「좋아, 잘 마시고 있다고」라며, 술을 따르면서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약간 흔들린다.

  ......설마 단 한 잔에 취한 건가? 확실히 난 별로 술에 센 편이 아니고, 여기에 와서 오랫동안 마시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약해도 너무 약하다.



「......자, 지휘관」



  내 상태를 헤아렸는지, M16이 물이 든 컵을 내민다.

  이런 건 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생각하며 감사의 말을 하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너 이것도 술이잖아!


  화내는 나를 보고 그녀가 호쾌하게 웃는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라며 받은 물을 마시며, 시시각각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었다.


















  ────지휘관, 들리나?


  ......과연, 대답하는 게 겨우라는 느낌인가. 안심해, 내가 책임지고 지휘관을 방에 데려다줄 테니까.


  응? 아아, 확실히 그렇군. 중대한 임무, 확실히 맡았다.


  평소보다 말이 많구나...... 혹시 지휘관은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타입인가?


  ......지휘관. 우리들 인형,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렇게 말해준다니 기뻐.


  그 밖에......라니, 뭐야 대답해줄 건가?


  그래...... 인형들 중에 취향에 맞는 녀석은 있으려나?


  헤에...... 나는 어때?

  

  ......그래그래! 훌륭한데! 오늘은 좋은 날이다!















  ──이봐이봐, 지금은 내 시간이잖아?


  미안하지만 지휘관과의 시간은 1초라도 양보할 수 없지.


  ......오늘은 돌아가라고.



11. 어느 날 그녀의 이야기. ST AR-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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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를 괴롭히는 건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그리폰을 배신하고, 동료에게 설명도 하지 않고 뛰쳐나온 끝에 몽상가(드리머)를 앞에 두고 싸우기를 선택할 수 없던 내 뒤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움직일 수 없는 내 옆을 지나, 눈앞에 멈춰 선다.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는 그 옷차림은, 우리들의 지휘관이 틀림없다.

  평소에는 어딘가 풀어진 분위기를 두른 반면, 작전 지휘를 할 때는 무엇보다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그 모습에, 존경의 마음을 품는 인형도 많다. 그의 지휘에 살아남은 적이 있던 나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 지휘관의 등이, 지금은 매우 믿음직하다.


  업신여기는 표정이었던 몽상가의 얼굴은, 분명히 동요하고 있었다.



  왜 인간이 여기에?

  어떻게 여기를 알았지?

  내 눈을 빠져나갔다는 건가?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마치 자신에게 물어보듯, 몽상가가 외친다.

  

  총조차 들고 있지 않은 지휘관은, 그저 한 마디만 말했다.




「──왜 그래, 꿈이라도 본 건가?」



  통쾌하게 짓궂게, 무심결에 웃고 말았다.

  반면 몽상가는 분노로 몸을 부들거리기 시작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공포가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하염없이 솟아오르는 이 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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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트 양 콜트 양, 슬슬 일을 재개하고 싶은데요.

  아니, 그게요. 네? 확실히 요즘 너무 일했지만, 충분히 쉬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쉴 땐 제대로 쉴 테니까요. 네?


  내 방, 소파 위.

  꽤나 전부터, 내 머리는 콜트 무릎 위에 실려 있다. 이른바 무릎베개라는 것으로, 평소의 나라면 기뻐하겠지만,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타이밍이 나쁘다.

  헬리안 씨에게 받을 기지 감사가, 내일로 닥쳐왔다. 제출할 서류나 그 외 여러 가지를, 오늘 안에 정리해야 한다.

  

  초조해하는 나를 무시하고, 콜트가 얼굴을 가까이 댄다.

  맑은 눈동자가, 가깝다.



「눈에 기미가 있습니다. 좀 더 쉬죠, 지휘관.」



  그렇게 말하고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인간의 기미는 말이야, 조금 쉰 정도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럼 사라질 때까지 이래야겠군요.」



  아차, 무덤을 팠다!

  ......냉정하게 생각해봐, 콜트. 내일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너라면 알 거야.

  뒤가 켕기는 건 물론 없지만, 너희들의 공적을 제대로 적어두지 않으면 지원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콜트도 요즘 힘내줬잖아. 그 공적이 평가되지 않아도 좋아?



「공적도, 평가도, 명예도, 필요 없어요.」



  바로 대답하는 콜트.

  이상하다, 그녀는 명예 같은 걸 바라는 인형이었을 텐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니,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됐고, 원래 저런 느낌인 애였나? 으음......!


  놀라서 이리저리 생각을 돌리는 나를 두고, 그녀는 외로이 중얼거렸다.



「지휘관, 오래 살아주세요......」



  아직도 젊고, 수면 부족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고.


  머릿속에서는 그런 말이 떠올랐지만, 입으로는 낼 수 없었다.

  그거야 저렇게, 절실해 보이는 얼굴로 말하면.....


  이번은 내가 졌다. 내일 일은 콜트가 만족한 뒤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고 나서 단념하고 눈감는 내 이마에, 서늘한 손이 놓인다.



「후훗, 지휘관......♪」



  기쁜 듯한 소리를 들으며, 내 의식은 점차 졸음에 싸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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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가 떠나고, 지휘관이 부른 지원이 올 때까지의 시간 동안, 나는 이번 일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전부 들은 지휘관에게서 되돌아 온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미리 습격을 예상하고, 대책이나 피난이 끝났기 때문에,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제로인 것.


  내 도주에 대해서도, 작전을 제안해서 허가를 맡았던 것.


  AR소대나 다른 인형들에게 설명이, 다 되어있는 것.



  ......내가 돌아갈 곳이, 확실히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는 얼굴을 숙였다. 지금은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

  지휘관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내가 침착하기를 기다려주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휘관 덕분에 모두가, 내게 가장 좋은 형태로 끝났다.







  ────아아...... 마치 꿈만 같아────



10. 어느 날 쇼핑 이야기. Five-seven




  그리폰 본부의 상업구역.


  평소에는 올 일이 없는 곳이지만, 본부의 호출과 돌아갈 때의 교통상황이 겹쳐, 운 좋게 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대강 돌아본 나는 한 카페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턱을 괴며 커피를 훌쩍 마시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 애들이 타주는 쪽이 맛있다고 생각했다. 콩이 다른 건지, 아니면 조미료라도 넣은 건지......

  어느 쪽이든 가게보다 맛있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다. 돌아가면 말해보자. 기뻐해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쇼핑 메모를 본다.

  정면에 앉은 57이, 케이크를 먹는 손을 잠시 멈췄다.



「지휘관, 내 쇼핑은 끝났는데, 그쪽은 어때? 잊은 건 없어?」



  지금 확인 중. 잠깐 기다려줘.

  음.... 응, 빠진 건 없어. 확실해.



「그럼 오랜만에 쇼핑한 기분은? 기분전환 됐어?」



  포크로 찌른 케이크를 내게 향하며, 57이 묻는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케이크. 그걸 꿀꺽하고 먹자,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그 반응은? 먹으면 안됐던 건가?


  요새 다른 애들이 자주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들은 57이 왠지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어딘가 포기한 듯한 표정을 하며, 그 입에 포크를 물었다.

  그녀의 입술과 이어진 포크 손잡이가 아래위로 움직인다.

  혹시 양이 부족한 건가?



「......아니야. 그보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떤데?」



  츄릅, 하고 포크가 빠져나온다. 케이크 조각조차 남지 않았다.


  아, 쇼핑한 기분이라......

  원래 물욕이 적어서, 기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려나. 그래도 요즘은 일뿐이라, 좋은 숨 돌리기가 됐어.

  57, 너야말로 어때?



「나는 즐거웠는데? ......지휘관하고 데이트한 것 같아서.」



  생긋 웃고 나서, 약간 부끄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바뀐다.

  대답하는 방식이 조숙하다고 생각했지만, 인형 나이가 외모대로라고는 할 수 없고, 비슷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그래라고 말하며, 그 머리를 쓰다듬기로 했다.

  외모와 나이가 상응하지 않는다면, 아이 취급에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생긋 웃을 뿐 거절하지는 않았다.


  쓰다듬어지는 채로, 한숨을 한 번 내쉰다.



「절대로 알지 못하는 거네...... ......뭐, 오늘쯤은 참을게. 『좋은 이야깃거리』도 생겼고」


「......지휘관, 또 『둘이서』오자~♪」



  쇼핑이 상당히 즐거웠던 것 같다. 57의 미소는 오늘 가장 빛났다.






















  그리고 기지에 돌아와서 며칠 사이, 인형 몇의 기분이 나빠졌다.

  너희들 그렇게 쇼핑가고 싶었던 거냐.



9. 보고서 01 UM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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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고용주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최우선사항으로 주어진 일이, 신인 지휘관 조사라니. 게다가 비밀리에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배속되는 것도 추가.

  일인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지만, 평소와 달라 당황스러운 임무에, 나만이 아니고 404 소대 모두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아니, 9은 그렇지 않아 보이지만.


  여하튼 배속 일정도 이미 결정됐다.

  짐이나 조사용 도구를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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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특별한 문제없이 배속이 끝났다.

  할당된 독실은 4인용으로 404소대가 모여 있다.

  지휘관이 말하기를, 동료와 같이 있는 편이 편할 거라고. 덕분에 상당히 일하기 쉬워졌다. 지휘관에게 감사해야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기 소개할 때는 조금 놀랐다.

  우리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를 리는 없겠지만, 설명은 필요 없다니.

  사람에 따라서는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질 만한 정보도 가진 우리들을, 딱히 걱정하지 않는데? 라고 하면 더더욱 이 일의 의미를 모르겠다.


  첫날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으니, 도청기 설치는 나중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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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의 지시에 따르며, 고용주에게 계속 보고하는 나날.

  설치한 지 한참 된 도청기는 오늘도 문제없이 음성을 전송한다.

  도청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방심인가, 여유인가, 애당초 그런 생각조차 없는 것인가. 나는 마지막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도청에 더해 실제로 지내보고 알았던 것이다.


  다른 모두의 의견도 대체로 일치했지만, 9는 조금 불만이었다.


  지휘관은 다정하다고? 이 사회에서 그건 무르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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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에게 특별히 이상은 없음.

  다만, 요즘 9이 잘 따르는 것 같다.

  원래 그런 성격인 애니까, 일에 영향이 없다면 문제는 없다.


  ......둘의 즐겁게 들리는 목소리가 도청기 너머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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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416이 담당하는 시간대를, 다른 용무로 그녀가 없어서 당분간 내가 맡게 되었다.

  거기서 안 것이지만, 지휘관은 점심식사 후나 휴식 시간에, 자주 노래를 부른다. 416의 보고서에 그 기록은 없었을 터.


  오늘 노래는 어딘가 슬픈 듯하다.

  최근 416이 흥얼거리는 노래와 매우 비슷하다.

  416이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다. 드문 일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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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부관으로서 하루를 보냈다.


  사무적인 일도 물론 있지만, 지휘관은 어느 쪽이냐면 교류를 많이 바라는 것 같다.

  함께 간식을 먹으며, 잡담을 많이 했다.


  ......평소에도 전혀 만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나 오래 같이 있는 건 처음이네.

  이야기하던 중, 딱 한 번 도청해서 알게 된 내용을 입에 담고 말았다. 내게 있을 수 없는 미스. 지휘관이 신경 쓰지 않아 보여서 다행이다.


  ....그와 있으면, 이상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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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인데 달라진 모습은 없음.


  새로운 일면을 알지 못해서, 조금 『외롭다』.






  ......어라?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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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어느 날 수복 이야기. UMP45



  인형들이 수복하는 모습은, 역시 몇 번이나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게임이라면 옷이 너덜너덜해지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이 세계에서는 가차 없이 상처를 입는다. 아니, 상처뿐이라면 나은 편이다. 절단되거나 날아가는 경우도 있고, 생체 부품이 많은 부위라면 더 비참한 꼴이 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 참상에 구토한 적도 있다. ......씁쓸한 기억이다.



「지휘관, 왜 그래?」



  내 표정을 보고 있던 UMP45가, 걱정스레 말을 건다.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생긋 미소 지었다.


  ......그렇다고 할까, 나보다 자신을 더 걱정했으면 한다. 지금의 그녀는 수복중이니까.



「후훗, 익숙해졌으니 아무렇지도 않다구.」



  아무렇지도 않다라......

  시선을 피해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UMP45의 몸을 본다.


  생체 부분이 손상되었을 거다. 팔에서는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다리에는 구멍까지 생겨있다. 애처롭기 짝이 없다.

  인형은 임의로 통각을 차단할 수 있다고 들었던 적이 있는데, 제대로 차단한 거지......?


  UMP45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 그녀는 옷감으로 얼른 몸을 숨겼다.



「지휘관~......엣찌」



  그런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아줘! 부탁합니다!


  농담이야, 라며 쿡쿡 웃는 UMP45.

  질 나쁜 농담은 가슴이 철렁이니까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렇다 쳐도, 많이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사무적인 대화밖에 안했는데, 지금은 서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충실한 소통이 결실을 맺었을 것이다.



「......예전 관계가 좋았어?」



  그렇지 않아.

  미소가 있는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즐거워지고.



「그래, 나도 즐거워.」


「......이런 내가, 즐거워도 되는 건지는 지금도 가끔 생각하지만. ......어째서 지휘관이 그런 표정이야? 내 문제인데.....후훗」



  그녀의, 404소대의 자세한 사정은 묻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들을 맞아들이게 되었을 때, 설명하려는 그녀들을 나는 멈췄던 것이다.

  이미 게임에서 사정을 알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들도 좋아서 말하고 싶은 건 아닐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실제로 그렇게 말했을 때의, 그녀들의 놀란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정말 드문 표정이었다. 그 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자, 수복완료~♪」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손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가, 이윽고 수복을 마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혼자서도 수복할 방법을 익혀 그 솜씨가 무뎌지지 않게 자주 이렇게 확인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번 수복은 잘 할 수 있던 것 같아, 손발을 움직이며 끄덕이고 있다.


  일어서려고 한 그녀에게 손을 뻗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녀도 내 손을 잡는다.




「고마워, 지휘관. 그리고......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공방을 뒤로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 녀석, 정리 안 했잖아! 젠장, 분위기에 속았다!



7. 어느 날 심야 이야기. 9A-91



  악몽을 꿨기 때문이라든지, 외부 자극이 있었다든지, 더워서 잘 수 없었다든지 충분한 수면 이외에도 사람이 깨어나는 이유는 많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왠지 모르게, 정신이 들었을 거다. 평소였다면 아침까지 푹 자는 내가, 문득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9A91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비명을 지르지 않았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지휘관,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이불 위에 대면하고 앉은 나와 9A91. 살짝 앉은 모습이 정말 귀엽지만, 그것과 이건 얘기가 다르다.


  막 일어났을 때의 공포체험은 그만뒀으면 한다.

  아직 새벽인데 졸음이 확 날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잠옷이 식은땀에 젖어 조금 기분 나쁘다.



「죄송합니다, 지휘관......」



  지휘관이 시야에 없으면 진정되지 않아서요...... 라고 하는 9A91.

  뭐라고 할지, 그 거리라면 내 얼굴밖에 안 보일 거라 생각하는데. 글자 그대로 숨결이 느껴질 거리였고.


  덧붙여서 지금도 시선이 듬뿍 마주치고 있다.

  몸을 조금 흔들어보니, 그 눈동자도 천천히 흔들렸다.

  은근히 재미있다.


  ......그런데, 9A91. 그렇게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못자니까, 같이 잘까?



「......그래도 되나요?」



  눈동자에, 기쁜 듯한 기색이 섞인다.


  물론.

  지켜보는 걸 그만해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편이 안심이다.


  게임에서와 실제 그녀들을, 모두 같은 존재로 볼 생각은 없지만, 9A91은 공식에서 얀데레 기질이 있던 아이다.


  그렇다, 난 알고 있다. 얀데레는 거절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군인으로서 문제지만, 이 정도라면 뭐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렇다 해도 얀데레라......

  구경하는 건 상당히 재미있다고 들었지만,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밖에도 드문드문 그런 대사가 있는 애가 확실히 있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전부는 모른다.


  뭐 우선은 9A91만 주의해두면 괜찮겠지.


  얀데레 같은 건 그렇게 많이는 없을 거고.



「후훗♪」



  9A91이 기쁜 듯 눈을 내리깐다.


  ......좋아, 오줌이 조금 마려우니 자기 전에 화장실에!?


  9A91을 뒤로 하고 화장실에 가려고 한 나의 팔이 꽉 잡힌다. 아프진 않지만, 그 강한 힘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보니, 9A91이 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와 달리, 그 감정을 읽을 수 없다.









「지휘관, 왜 저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시죠?」








  요의가 쑥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날 휴식 이야기. M4 SOPMODⅡ



「지휘관, 수고했어~! 저기저기, 왜 놀아?」



  위로의 말 고마워 SOP짱.

  그래도 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하자?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온 SOP짱이, 일직선으로 내게 달려온다. 책상에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숙여서, 무심결에 몸을 젖히고 말았다. 옆에서 보면, 눈이 엄청 반짝반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엽다.


  SOP짱, 휴식은 쉬기 위해서 있는 거야. 그러니 쉬게 해줘. 대신 책상에 있는 쿠키 줄 테니까. 응?



「와~♪ 그럼 나도 이거 줄게!」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책상 위에 놓인다.

  흠흠, 가늘고 길다라며 여러 색깔이 얽혀 있다......


  ......배선이구나. 덤으로 오일이 붙은.

  일단 묻겠는데 이건?



「전리품! 잘 먹겠습니다~♪」



  내게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쿠키를 먹기 시작하는 SOP짱.

  역시 이건 철혈 인형 겁니까. 얘는 철혈과 싸울 때 이런 걸 빼앗지만, 요즘은 어째선지 나한테 가져온다. 사냥감을 가져다주다니, 고양이인가. 아니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우선 배선을 옆에 두고, 사방에 튄 오일은 천으로 닦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면, 쿠키를 든 SOP짱이 서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지휘관한테 줄게.」


「자, 아~앙♪」



  내며지는 쿠키. 남자의 꿈인 상황.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조금 감동했다.


  그래서 오일이 약간 스며든 건 무시하기로 했다.

  배선을 잡은 손으로 집으면 그거야 그렇게도 된다.


  ......응, 맛있어.



「히히히......♪」



  기쁜 듯이 웃지 마.

  마침 적당한 위치에 머리가 있어서, 무심결에 쓰다듬어버렸다.

  찰랑찰랑거리는 머리...... 감촉이 굉장히 좋다. 치유된다......


  SOP짱은 순간 깜짝 놀랐지만, 곧 눈을 감고 받아들여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 같은 것도 살짝 들린다.



「으...... 벌써 끝이야?」



  손을 떼자,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호소한다.

  큭...... 인내다, 인내.



「......뭐 괜찮아. 또 올게. 지휘관!」



  그렇게 말하고 또 바쁘게 돌아가는 SOP짱.


  폭풍 같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벌써 휴식 시간이 끝이 왔다. ......결국 쉬지 못했다.


  ......자. 그럼 열심히 일해 볼까요?




















  손톱을 가져갔더니 칭찬받았다.


  눈알을 가져갔더니 놀아줬다.


  배선을 가지고 갔더니 쿠키를 받았다.


  게다가 이번은 지휘관이 쓰다듬어줬다.


  기쁘다, 기쁘고, 기뻐♪


  좀 더 굉장한 걸 더 많이 가져가면, 대체 뭘 줄까?



  히히히, 기대되네...... 지휘관♪



5. 보고서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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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폰으로부터 통지.


  백업의 일종으로, 각 인형은 매일 보고서 작성을 해야 합니다.


  객관적 사실은 자동으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므로, 보고서 내용은 주관적으로 작성합니다.


  또한 제출은 불요.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데이터베이스를 초기화했을 경우, 이 보고서를 각자 재 인스톨해주십시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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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새 지휘관이 기지에 배속되었습니다.

  젊은 남성으로, 지금까지의 지휘관처럼 험한 표정이 아니라, 어딘가 곤란해 보이는 얼굴이었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가 좋은 지휘관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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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배속된 지 며칠, 그의 향후가 조금 불안합니다.

  군인답지 않은 다정함은 호감이 가지만, 전투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인 작전용어도 몰라서, 연습 시간은 급거 공부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세한 지시는 각 대장에게 맡기고 싶다고 지휘관은 말씀하셨습니다.

  지휘관이 알아두어도 손해는 없으니까, 공부 노력합시다?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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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우 놀랐습니다.

  긴급 출격이 있었는데, 평소의 지휘관에게서는 상상도 못할 신속하고 정확한 지시 덕분에, 우리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끝났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대 여러분들도 놀란 상태입니다.


  제 오른팔도 날아갔지만, 전투 불능자는 제로.

  지휘관에게는 훌륭한 첫 출전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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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지에 도착한 순간, 지휘관이 허둥대며 우리들을 마중해주었습니다.

  부상당한 인형들에게 열심히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괜찮은지, 아프지 않은지, 부상 입혀서 미안하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손상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지휘관은 마치 부상당한 인형을 본 적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다른 분들도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걱정해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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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지식을 체득해 가고 있습니다.

  대화하다 되묻는 횟수가 적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곧 공부 시간은 졸업이겠지요.

  ......지휘관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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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시간이 끝나, 요즘은 지휘관과 대화할 수 없지만, 오늘은 복도에서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사건이나 과자를 만든 것 등을 이야기하자,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열심히 만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상하네요.



‘오랜만.....? 이틀 전에 만났잖아요, 하핫.’



  지휘관은 웃고 있었습니다.



  이틀『이나』만날 수 없었던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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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없습니다.

  본부로부터의 소집이라고 합니다.

  

  지휘관, 지휘관.

  다른 분들도 기운이 없어 보입니다.

  저도 슬픕니다.


  빨리 돌아와주세요,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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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관이 어제 돌아왔습니다.

  벌써 37시간 28분이나, 지휘관과 만나지 못했습니다.


  억지를 부려, 오늘 상을 차리는 일을 맡았습니다.

  직접 만든 모란병을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지휘관은 기쁘게 드셔주시겠지요?


  우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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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 고 서 를 엿 보 면 안 된 답 니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