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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h off - episode 8 -

2016. 9. 13. 23:05 | Posted by 2ndboost

귀여움은 정의.

하지만

귀여움은 죄악.


(*´ω`*)모큐


=============================================================================================



치바에서 가장 불쌍한 여동생 콘테스트 심사원 특별상을 받은 코마치입니다.
그 이래 오빠의 콘돔을 처리하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쓴이 코마치... 이상하게도 코마치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거기서 다른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 쓰레기통에 비닐봉투를 씌우면 좋다는 귀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눈이 너무나 번쩍 뜨여 슬퍼졌지만 실천해보니 효과가 있어서 우선 안심입니다!
이걸로 언제라도 오빠가 애인과 섹스할 수 있습니다!
왠지 엄청 싫은 선언이구나...
여하튼 사이가 좋은 건 다 쓴 콘돔 개수로 알 수 있지만요...
왠지 이것도 싫은 기준이네...
실제는 어떤지 슬슬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있잖아, 오빠오빠」

「뭔데? 빨리 준비해」


엄청나게 기분 나쁩니다!
지난번의 정액 킥에 아직 원한을 품고 있어요!
코마치의 오빠는 역시 속이 좁아요!


「아직 괜찮은 거야? 여친이랑은 요즘 어떤가~해서 코마치 나름대로 걱정하고 있어.」

「그런 걸 뭘 나한테 묻는 거냐, 메일 주소 알고 있으니 걔한테 물어봐.
그나저나 너한테서 답신 없다고 좀 신경 쓰던데.」

「아~...왜냐면 여친은 오빠한테 반했고... 주책스러운 소리만 보내서 휴지통에 넣어 방치하고 있어.」


처음에 왠지 카 군의 베스트 샷을 달라고 말한 뒤는 오빠가 좋아할만한 걸 물어서, 좀 시끄러운걸.


「오빠의 애인을 폐품 지정하는 게 아냐... 아니, 실제로 폐가 된다면 그대로도 상관없지만... 내가 말해둘까?」

「아, 괜찮아. 할 수 있는 한 답장해볼게...」

「너무 무리하지 마」

「응...」


애인이 생겨도 별로 안 바뀐 것 같아...
아무튼 오빠답지만...


「...코마치, 그 시계 혹시 멈춘 거 아냐?」

「아, 응. 어젯밤부터 건전지 다 닳았어.」

「뭐...? 또 지각이잖아!」

「괜찮다구, 코마치는 빠듯이 시간에 맞는걸.」

「내가 말이다! 빨리 갈아입어!」

「차암, 여동생을 벗기다니 코마치한테 포인트 낮아~」

「그런 말 하고 있을 때냐!」


역시 오빠는 오빠구나... 애인이 생겨도, 거의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다.


「빨리 해!」

「네~에」





「히키오가 멋있어...」


아침부터 멍한 유미코가 중얼거렸다.
어제부터 계속 이 상태.
사브레를 구해줬을 때의 힛키에게 한 눈에 반한 유미코니까, 실제로 자기를 구해준다면 더 그렇겠지...


「유미코, 눈이 황홀해졌다구.」

「나-... 히키오가 남자친구라 다행이야.」

「그래그래」


어제부터 몇 번 들었는지 모를 대사에, 히나도 웃으며 유미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늘 히키타니 군은?」

「무슨 일인지... 또 여동생이 꾸물대서 늦는다는 것 같아...」


유미코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하기 싫어하는 듯한 표정의 힛키.
녹아내린 얼굴로 사진을 보고 있어서... 유미코가 얼마나 힛키를 좋아하는지가 가슴이 쓰릴 만큼 전해진다.
그저께 있었던 일로 반에서도 힛키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 한 때의 생각으로 사귀는 게 아니라 유미코가 선택할만한 남자라는 위치로 변해있었다...
나만이 아는 힛키가 아니게 되어간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싫다...
유미코는 내가 모르는 힛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히키타니 군의 여동생은 아직 어려? 전에도 꾸물거렸잖아?」

「확실히 중3이라고 했는데, 뭔가 브라콘 같아. 그래서 나- 미움 받는 것 같아.」

「소중한 오빠를 뺏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떼쓰는 거구나.」

「아마도... 아, 오늘 쇼핑 갈 거야.」

「히키타니 군도 같이?」

「아-니, 왠지 학원 둘러보고 싶대서, 가끔씩은 친구랑 놀라고 했거든」


유미코랑 우리들까지 신경써주고 있어...


「히키타니 군 상냥한데~ 난 괜찮아, 유이는?」

「아, 응. 오늘 동아리 쉬는 것 같아서 괜찮아.」


유키농 또 쉰다고 메일 왔고... 몸이 별로 튼튼하지 않은 걸까...?


「그럼 라라포 가자」

「응...」


유키농한테 들은 대로, 슬슬 결말을 지어야 한다...
유미코는 힛키의 애인이지만, 그 이전에 내 소중한 친구니까...





「(*´ω`*)모큐」


역시 판 씨는 최고야.
귀중한 시간을 시시한 부활동으로 구속되고 있으니 가끔씩은 숨 돌리기가 필요하지.
수업은 한 달 빼먹어도 지장 없고.
왜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했던 걸까...?
우수한 사람일수록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어야 해.


「어머...?」


저기 있는 사람은 유이가하마 양이네.
미우라 양...이었나? 그리고 한 사람 더.
오늘은 동아리를 쉬어 기를 편 거구나.
미우라 양과도 보통으로 접하는 것 같고... 좋은 일이야, 차라리 이대로 동아리도 졸업해줄 수 없겠니.


「유키노 짜~앙!」


......기분 탓이네, 왠지 엄청 싫은 목소리가 들렸어.


「차암! 학교 땡땡이 치고 뭐 하는 거야!」


기분 탓이 아니었어... 도망치자.





전만큼 생각에 잠기지 않고 유미코랑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싫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져, 이대로 힛키를 많이 좋아하는 마음도 사라져버리는 걸까...
그렇게 되는 쪽이 틀림없이 좋을 텐데, 잊고 싶지 않은 내가 아직 어딘가에 확실히 있어서.
갖다 붙인 미소 속에서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기다려 유키노 짱! 도망쳐도 소용없어! 얘, 달리면 넘어지잖아!」


유미코랑 히나 뒤에서 걷고 있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뒤돌아보자... 유키농?


「...쫓기는 사람, 유키노시타 아냐?」


큰 소리였기 때문에 유미코도 깨달은 것 같다.


「판 씨 인형 차림으로 판 씨 가방 배고 달리는 사람?
유키노시타가 저런 사람이던가?」

「아, 넘어졌다.」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던 유키농은 100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헉헉거리다, 마지막에는 굴러버렸다.
그 체력 없음은 틀림없이 유키농이다.


「저기, 나 잠깐 갔다 올게.」

「유이, 같은 동아리던가?」

「흐-음... 나- 스타벅스 가 있을 거니까」

「응, 미안해.」





「얘! 유키노 짱!」

「기분 탓이야, 착각이야, 나는 판 씨야.」


다가가 보니 팬더 판 씨 후드를 쓰고 거북이처럼 움츠린 유키농을, 엄청 예쁜 여자가 우뚝 서서 혼내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닮았고 언니일까...?


「그럴 리 없잖아!
시즈카 짱한테 학교 안 왔다는 연락 있어서 찾았다고!
학교 땡땡이 치고 판 씨 영화 보고 있었던 거야?!」

「몰라. 당신 누구? 싫어, 괴롭히지 마」


판 씨 장갑으로 귀를 덮고 시러시러 하고 있어... 어쩐지 귀여워... 유키농 신발까지 판 씨로 맞췄구나.


「증말, 이런 데서 이상한 변명하지 마! 와, 집에서 엄마도 엄청 화났으니까!」

「싫어~ 치한이야~!!」

「잠깐, 유키노 짱도 참! 진짜! 언니도 화낼 거야!」


더 웅크려서 소리치는 유키농을 언니가 배에 팔을 둘러서 끌어당기고 있다...
미인이 소란스러워서인지 시선이 집중되어 가까이 가기 어렵다.


「누군가 경찰을 불러줘, 유괴범이 있어요!」

「유~키-노~짜~앙?!!」

「저, 저기... 유키농이 싫어하고 있는데요...」


내 목소리에 반응해 힘이 느슨해졌는지, 유키농은 바둥바둥하며 언니의 팔에서 빠져나와서는 그대로 내 뒤에 숨었다... 유키농 귀여워.


「유이가하마 양 마침 좋을 때 왔어, 이 사람은 유괴범이야. 외모에 속아선 안 돼.」

「외모는 유키노 짱이랑 닮았잖아! 진짜! 보면 알겠지만 자매야, 타인이 아니니까 가족 일에 참견하지 말아줄 수 있겠어?!」


예쁜 사람이 딱딱한 표정을 지으면 엄청 무섭게 느껴지...지만 유키농이 불쌍하니까 용기를 쥐어짜서...


「그게, 그래도 싫어하고 있으니까요...」

「유이가하마 양의 말 대로야,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해선 안 된다고 배우지 않았어? 잘못 자란 게 배어나오고 있어, 부모 얼굴을 보고 싶어지네.」


내 뒤에 숨어서 유키농이 반론하고 있다.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 같아서 유키농...귀여운데.


「자란 건 유키노 짱도 함께잖아! 엄마 얼굴도 알고 있잖아! 유이가하마 짱? 안 돼. 유키노 짱한테 속아서 어리광부리게 하면! 귀여운 얼굴 해서는 엄청 음험하니까, 섣불리 머리가 좋아서 뻔들거리거나 나쁜 짓만 하니까!」

「어, 언니 분. 우선 진정하세요...」

「공중의 면전에서 비방 중상을 반복할만한 지인은 없어. 유이가하마 양, 빨리 경찰을 불러야 해.」

「유키농도 진정, 진정해봐...」

「...너희들, 잠시 괜찮겠니?」


경비원이 오고 말았다......


「경비원 님 도와주세요, 저 사람 저를 귀여워 귀여워하고선 어딘가 데려가려고 해요.」


눈물 어린 눈을 치켜뜨고 경비원에게 매달리듯 시선을 보낸다... 강아지 같아서 귀엽다.
두 명에게 온 경비원은 잠시 있다가, 유키농의 모습을 보고 왠지 납득한 것 같아.


「잠시 동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애의 언니예요! 얼굴도 닮았죠?!」

「그런 가슴귀신 언니는 없어요.」


이번에는 유키농 언니의 가슴을 비교해 보고는 끄덕이고 있다... 남자란......


「어쨌든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잠깐, 얘. 유키노 짱, 언니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무서워, 유이가하마 양. 빨리 도망치자.」

「어, 괜찮으려나...」


경비원과 옥신각신하는 언니를 두고, 퐁퐁 걷는 유키농을 뒤쫓는다....유키농 진짜 귀엽구나...





「완전 승리야, 정의는 반드시 이겨.」


진짜 언니 같지만 괜찮을까...


「유키농, 그 사람 유키농 언닌데, 괜찮아?」

「...저런 지인은 없어, 나한테 언니는 없는걸.」


...지금 눈 돌렸어, 다음에 만나면 틀림없이 혼날 텐데...


「오늘... 학교 쉬고 판 씨 보고 있었던 거야?」

「......묵비권을 행사할게.」


부루퉁하게 얼굴을 돌린다. 유키농 진짜 귀여어...


「...유이가하마 양, 어째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니?」


그만 귀여움에 끌려 쓰다듬고 싶어졌다.


「뭐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나, 귀여운걸.」


우쭐거리듯 가슴을 펴지만 그것도 왠지 귀여워서, 유키농은 차갑게 보여지기 십상이지만 속은 이렇게도 귀엽다. 유미코는 힛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고 더 좋아하게 된 걸까... 난 힛키의 뭘 아는 걸까....?


「유이가하마 양 괴로워, 그만 달라붙어줄 수 있겠니?」


떠올리자 눈물이 나와서, 나는 유키농을 껴안은 채 울고 말았다.





「유이가하마 양, 인형을 입고 있는 나는 매~우 귀엽지만 인형이 아니란다.
매~우 귀여운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괴로워, 껴안지 말아주렴.」


뭐야 이 사람, 언니와 마찬가지로 질이 나빠.
나는 안는 베개가 아닌데... 너무 귀여운 건 죄라는 거?
숨 막힐 듯이 더워, 빨리 떨어져 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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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h off - episode 7 -

2016. 9. 13. 23:05 | Posted by 2ndboost



이제 한숨은 그만 쉬고 싶어지네.
매일매일 부실 분위기를 나쁘게 하는 이 사람은, 오늘도 소침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아무리 교사의 명령이라 해도, 성가신 사람을 입부시켜버렸다고 지독히 후회해도, 결국 근본적 해결에는 이르지 않는다.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인 바보라고 말한 교사를 때리고 싶어지는 현상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내가 감정대로 입을 열면 천의 폭언이 나오고 만다.
전에 그 말 탓에 소란을 일으켜, 징벌적인 이유로 이런 동아리에 집어넣어져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으니 더 이상의 참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폭언을 토하지 않게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고자 한 그 순간, 몹시 망설이는 노크 소리가 귀에 닿았다.


「...들어오세요.」


필요이상으로 상냥해지고 만 목소리에 반응해, 조용히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아, 사이 짱」

「유이가하마...」


본 적이 있는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키가 작고 귀여운 학생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작은 동물 같네.


「유키농, 같은 반인 토츠카 사이 짱」

「그래, 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야」

「안녕... 그게, 히라츠카 선생님이 여기로 가라고 해서...」


또 그 사람... 적당히 해줬으면 한다...


「그러면 너의 고민을 들어볼까...? 여기는 할 수 있는 한 학생의 고민 상담에 응하는 동아리야.」


해결에는 이르지 않겠지만... 귀찮은걸.


「아, 응... 나. 테니스부에 들어가 있고, 여름 대회 뒤에 부장직을 이어받게 될 것 같은데... 3학년 선배가 가면, 강한 부원이 없어져. 그래서 내가 적어도 여름 대회 초전에 이겨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어서」

「개인전에서 초전 돌파가 목표라니 상당히 뜻이 작은 이야기네.」


어머, 무심코 본심이 새어 나왔다.


「아하하... 우리 부는 약해서 선배도 초전 돌파가 한계야. 저기...점심시간 같은 때 연습을 도와줄 수 없을까? 다른 부원한테는 부탁하기 어려워서...」


싫어, 귀찮아.


「응, 맡겨!」

「유이가하마 양...?」

「가끔씩은 운동하지 않으면 안 좋잖아, 건전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훌륭한 사람도 말했었고」

「유베날리스구나... 그리고 반대야. 그럼 이 건은 유이」

「유키농도 같이 테니스하자아~!」

「고마워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해!」

「........」


또 귀중한 시간을 빼앗겼어... 슬슬 울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인데...




더워... 왜 내가 이런 사태에...


「으윽......」


힘이 약하구나, 차버리고 싶어지는 약골이야...


「사이 짱 힘내!」

「유이가하마 양, 넌 가슴만큼 여유가 있어. 이 상자를 양손아래에 두지 않으면 불공평해.」

「에엑!?」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데 팔꿈치를 살짝 굽힌 것만으로는 팔굽혀펴기라고 할 수 없단다.


「으으...」


팔굽혀펴기 한 번도 할 수 없다니...


「근본적으로 근력과 체력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 근력 트레이닝과 식사 스케줄을 준비했으니 따라올 수 있겠니?」

「으, 응... 어? 아침부터 닭가슴살 1kg?!」

「그런데도 부족할 정도야. 라켓 자루 같이 가느다란 허벅지로는 한 시합 싸워낼 체력밖에 없다고 공언하는 것과 같아. 우선 근력과 체력 증강 없이는 이야기가 안 돼.」


수영 선수의 식사 리스트를 유용했지만 비슷한 거겠지.


「화, 확실히 시합 중반부터 지쳐... 우응, 해볼게!」

「유키농 스파르타...」

「이 정도는 보통이야, 목표는 윌리엄스 자매」


빨리 몸이 망가져서 의뢰를 그만둬주지 않겠니...?





「유이가하마, 슬슬 가자」

「아, 응」


도시락을 다 먹은 것을 가늠해서 사이 짱이 얘기한다.


「유이가 토츠카랑 볼 일이라니 드무네.」

「으, 응. 동아리로... 사이 짱 테니스 연습을 도와준 거야.」


나와 히나와의 시간도 적어지고 있다.
점심시간에도 나가는 건 좀 말하기 힘들어서...


「헤에....그래? 다녀와」

「미안, 다녀올게.」


조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미소로 배웅해줘서, 사이 짱이랑 같이 교실에서 나왔다.





「어라? 유키노시타는?」

「앗... 메일 왔다...」


무심코 요즘 주소를 주고받고, 처음으로 유키농한테서 온 메일은...


「근육통으로 오늘은 쉰다고...」

「어... 무리시킨 걸까?」

「그럴지도... 어제 덤벨 옮길 때, 엄청 부들부들하기도 했고...」

「아하하하... 유키노시타도 근력 트레이닝이 필요하네.」


서로 웃고는 좀 난처해진다.
오늘 예정은 안 물어봤으니까...


「응... 유이잖아, 무슨 일이야?」


생각지도 않은 소리에 뒤돌아보자, 테니스 코트 네트 뒤의 벤치에 유미코랑 힛키가 있었다.


「유미코...」

「아, 미우라... 유이가하마가 내 연습을 도와주고 있어.」

「흐-응......아, 그럼 더블할까?」

「어?」

「실천적인 연습도 필요하잖아, 나-도 오랜만에 테니스 하고 싶고」

「야, 더블이라니 혹시 나도 포함된 거야?」


나랑 사이 짱이랑 유미코랑 힛키...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한다면 그런 말이겠지...?


「나- 히키오랑 테니스 하고 싶어.」

「식후 운동으로 테니스라니, 리얼충 같은 짓을 할 수 있겠냐」

「에~ 히키오~」


어깨를 움츠리고 싫어하는 힛키의 소매를, 떼를 쓰듯이 유미코가 잡아당긴다.


「그보다 저쪽 허락 맡지도 않고서 나한테 조르지 말라니깐」

「어? 난 고마우려나... 동아리에서도 같은 사람하고만 연습하고 있고...」

「유이도 오케이지?」

「어? 나, 난...」


어쩌지... 나, 나...


「어라~ 유미코에 유잇치잖아~」


또 들은 적 있는 소리...


「하야토에 토베? 역시 너희들 밖에 나왔잖아」

「하하하... 봐줘, 이런 데서 뭐해?」

「우리들 이제부터 더블할 거야. 토츠카의 연습에 어울리는 격?」

「아니, 그러니까 난...」

「재미있어 보이네, 나도 끼워주지 않겠어?」

「아, 그럼 사이 짱이랑 하야마 군이서 짜면...」

「에~ 유이는?」

「유미코가 상대여서는 너무 나빠~」


난처한 표정으로 얼버무렸지만, 본심은 반반.
중학교에서 현 선발로 뽑힌 유미코를 상대할 수 없는 건 정말이지만, 유미코랑 힛키의 페어를 보게 되는 건 참을 수 없으니까...


「아무튼 하야토가 상대라면 진심으로 할 수 있으니까 좋지만」

「하, 하야마 군 잘 부탁해」

「아아, 이쪽이야말로 부탁해」

「그러니까 난 한다고 한 마디도...」

「에에~ 히키오~」


힛키는 끝까지 거부했지만, 유미코의 눈물에 져 결국 승낙했다...





「H. A. Y. A. T. O!  H. A. Y. A. T. O... F O O O O !」


토베가 퍼뜨린 탓에, 모두가 갈아입고 오는 동안 엄청난 갤러리가 모여 있었다.
바로 그 본인은 경쾌하게 하야토 군 응원 콜을 연습시키고 있고...


「남친을 위해서 열심이잖아~」

「실은 와타하야인거야!?」

「좀 봐줘...」


흥분한 히나가 다가와서 난처한 하야토 군이랑 눈이 마주친다.
뭔가를 전하듯 미소 지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왜 내가 이런 걸...」


눈을 딴 데로 돌리기 전에 유미코한테 팔을 안겨, 아직 불평하는 힛키가 있어서... 역시 똑바로 보지 못한다.


「저기, 히나. 나 테니스 규칙을 잘 몰라서, 심판 해줄 수 있어?」


맘 편히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울고 싶어져서, 코피를 흘리는 히나의 소매를 끌었다.


「어... 특등석이잖아! 할게할게~」


내 눈을 보고 뭔가를 헤아려줬는지, 살짝 뺨을 쓰다듬고는 일부러 익살맞은 상태로 맡아주었다.
아마... 내 마음은 숨길 생각이지만, 히나는 눈치 챈 것 같다... 요즘 특히 상냥해서 그렇게 생각한다.





시합의 전개는 일방적이었다.
유미코의 서브는 강렬해서, 하야토 군은 겨우 받아치는 상태.
싱겁게 들어온 공을 힛키가 반격하면 야구공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오른쪽 왼쪽으로 뒤쫓는 사이 짱은 첫 게임에서 체력을 다 써버렸다.
서브권이 바뀌어도 유미코의 역량은 압도적이라, 하야토 군이랑 사이 짱 페어의 볼만한 장면이 없는 채 첫 게임은 유미코와 힛키 페어의 승리.
2회전은 너무 휘어져 코트에 들어가지 않는 힛키의 미스도 있어서, 그럭저럭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지금 포인트는 듀스 없는 매치 포인트였다.
하지만 사이 짱의 체력이 바닥나있는 한, 여기서 간신히 세트를 따내도 3회전은 진 것과 마찬가지인데...


「하아하아하아」

「토츠카, 괜찮아?」

「으, 응」


어깨로 숨 쉬는 사이 짱을 하야토 군이 걱정하지만, 토베 군의 모처럼의 하야토 군 콜도 신통치 않은 채 사이 짱의 서브.
힘없는 공을 유미코가 튕겨 돌려주지만, 뭔가 실패했는지 그대로 자세가 무너져 쓰러졌다.
우연히 정면에 온 공에, 하야토 군은 갑자기 웃은 것처럼 보이고.
라켓을 힘껏 휘두르자, 공은 힛키가 있는 쪽으로.


「아, 앗차!」


그리고 하야토 군의 손에서 멀어진 라켓은, 넘어진 채인 유미코에게 일직선으로...


「앗」


유미코의 비명과 관객의 비명이 겹쳐, 나는 무심결에 눈을 감았다.


「...게임! 하야마 토츠카 페어!」


냉정한 히나의 심판 콜에 조심조심 눈을 떴더니...


「히키오~」


유미코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난 뒤, 큰 환성이 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주저앉은 유미코의 앞에는 장승처럼 우뚝 선 힛키가 있고.
힛키의 라켓 네트에는 하야토 군의 손에서 떨어진 라켓이 꽂혀 있어, 도저히 우연히 날아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기세가 전해진다.


「히키오~」


유미코는 눈물로 힛키한테 달라붙고.


「정말 미안해! 상처가 없어서 다행이다...」

「놀다가 큰 상처 날 뻔 했다... 좀 조심해줘.」


달려오는 하야토 군에게 난처한 표정으로 라켓을 건네주고는, 유미코의 몸을 안아 올리고...


「너도 너무 힘이 넘쳤잖아, 발이 꼬여 넘어진 거야...? 삐진 않았어?」

「아, 아마도...」


유미코는 힛키 품속에서 새빨개져, 거북한 듯 얼굴을 숨겼다.


「이대로 무승부면 됐잖아, 양호실로 데리고 갈 거니까 뒷정리는 부탁한다.」

「아, 그래. 미안.」


환성이 하야토 군이 아니고, 아마 힛키를 향해.
하야토 콜은, 자연스럽게 히키타니 콜로 바뀌었다.
그 소리에 약간 싫은 표정을 지은 힛키는 유미코를 안아든 채 떠나갔다...


「실패했군... 또 평판을 올리고 말았다...」


큰 환성 속에서 거리도 멀었지만, 어째서인지 하야토 군의 군소리만은 내 귀에 닿았다.





「어제는 미안해, 나도 평소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아직 몸이 아파...


「아니야... 그래서 어제는 말인데, 유미코랑 힛키 상대로 더블했어...」

「어머, 묘한 일이 되어 있었구나. 더블은 너도 했니?」

「아니... 내가 아니고 하야토 군이랑 사이 짱하고 짜서...」

「...상당히 묘한 일이 됐구나.」

「그래서, 사이 짱이 체력이 없는 걸 뼈저리게 깨달아서, 여름까지 계속 달리기한대. 기술은 그 다음이라면서」

「그래... 문제점을 자각했다면 다행이야.」


애초에 그 가냘픈 팔로 라켓을 들다니 무모한걸.
...나도 책보다 무거운 건, 들지 않는 게 좋았어.


「그래서, 저기...」

「그 밖에 무슨 일 있었니?」

「그게...역시 아무것도 아냐.」

「그래...」


성가신 의뢰였지만 빨리 해결해서 다행이야...
이대로 계속 했으면 입원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던걸.
......이번 근육통은 일주일 정도면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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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6편까지 했던 거고, 오늘 7편을 작업했는데


업로드 간격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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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昭和) 초기부터 신에자키가를 모시고 있는 일족, 스이센바라가. 그 현 필두인 미즈키 씨――엄마의 제 2 비서이자, 도서관의 사서이기도 하다――가 운전하는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정원에서 나간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차를 가만히 배웅했다.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롤스로이스의 테일 램프, 그 뒷좌석에는 그가 타고 있다.
  ――히이라기 아키라. 내 첫 키스 상대.


「......바보」


  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내며, 가슴에 넘치기 시작하는 울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는다. 30분 정도 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그리고 꿈같은 행복감에 파묻혀 있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에게 술을 먹인 빚――그래, 사과다. 결코 저런 애한테 무릎베개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응, 그게 당연하다――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키스......를 하고 말았다.


「내, 첫 키스......」


  빨갛게 달아오른 그런 얼굴을 붕붕 흔든다. 아니, 키스는 억지로 빼앗겼다...... 그래, 그 바보가 하필이면, 이 나의 첫 키스를 빼앗았던 것이다. 결코, 내가 그에게 바친...... 적 따윈 없다.
  키스하면서 그를 꼭 껴안았을 때의, 울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마음이 가슴에 되살아나, 심장 위를 손바닥으로 꼬옥 누른다. 떠올린 것만으로도 너무 두근거려서, 소리치고 싶어졌기 때문에.


「저건 사고, 사고 같은 거야.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크에 싸인 손가락 끝으로, 살짝 내 입술 위를 덧쓴다. 그것뿐... 그저 그것뿐인데, 오싹오싹하고 온몸에 달콤한 저림이 퍼져나간다. 그의 머리가 실려 있던 허벅지, 그리고 키스만이 아니고 혀로 빨린 목덜미 등이 찡하게 달콤해서, 울고 싶어진다. 그에게 닿은 곳이 불타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래도 가슴 속은 어둡다.


「왜냐면 히이라기 군......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까.」


  그건 당연......자업자득이라고, 가슴 속에서 짓궂은 내가 속삭인다. 나 같은 고압적인 여자를, 좋아할 남자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그는 히이라기 진료소, 내 엄마가 그토록 괴롭혔던 여의사의 아들이니까.


「......」


  어째서 좀 더 솔직하게 그에게 「고마워」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의 온화한 미소를 앞에 두면, 왠지 차가운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라 온 환경의 탓?
  어릴 적부터, 주변에 이상을 꽉 눌려 온 날들. 내 주변에,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대에 응하려고, 어릴 때부터 필사적으로 가슴을 펴는 삶을 살아왔고, 눈치 챘을 때는 솔직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아빠 이외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유일한 예외라면 사서인 미즈키 씨 정도였지만...... 그래도, 뭐든지 터놓는 건 아니다.


「왜, 이렇게 싫은 성격이 된 거지......」


  솔직해질 수 없다. 아무리 해도, 생각을 솔직하게 입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래......만족스럽게, 미소 하나를 띠는 것마저도.
  힐끔하고 본, 히이라기 군의 소꿉친구가 띠는 녹을 것 같은 미소. 거기에 칸나즈키 군의 미소, 그런 식으로 천진난만하게 웃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항상 기분 나빠 보이는 내가......


「좋아......해 줄 리가 없어.」


  넘쳐흐를 것 같은 눈물을 필사적으로 죽이고, 붉은 드레스 옷자락을 들며 소파에 앉는다. 바로 조금 전, 여기서 뒤에서 그가 꼭 껴안아줬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조금 답답했던 것과 압도적으로 감미로웠던 그 때.
  하지만..... 달콤하고, 다정했던 그 기억이,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마음에 꽂힌다.


「히이라기 군.......」


  툭.....하고 뺨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 걸까.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신에자키가의 후계자니까라고...
 

「도와줘」


  엄마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그라면, 강제로 구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버린다. 생일 파티에서 혼자 고독하게 꼼짝달싹 못하던 나에게 춤을 권해 준 것처럼.
  가슴 속, 넘쳐흐르는 욱신욱신하고 아프고 달콤한 감정. 이건 사랑, 하필이면 그를 사랑해버렸던 것.......이라는 걸 나는 분명히 자각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좋아한다고.
  ――결코 이뤄지지 않을 마음인데.


「미안해......」


  오늘 밤 파티. 많은 인사를 받으며, 그를 줄곧 보고 있었다. 회장 구석에서, 재미없는 듯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모습. 틀림없이 지내기 불편했을 것이다...... 분별없는 일족에게 험담을 받아, 괴로워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초대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히이라기 군에게 생일을 축하받았으면 했으니까.


「미안해.」


  나는 정말 제멋대로에 싫은 여자다. 뚝뚝하고 뺨에 눈물이 흐른다. 그 진료소에서도, 그는 계속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심술쟁이에 고집뿐.
  ――역시, 이런 나 같은 걸 그가 좋아해줄 리가 없다.


「미안, 미안해.」


  가슴에서 흘러넘치는 자기혐오. 방안에 장식된 장미――엄마가 좋아하는 꽃――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이 쓸데없는 허세가 신에자키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처 입혀야 기분이 내키는 걸까?
  일찍이 의료사고를 낸 아빠의 병원. 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고.......그걸 갚으려고 한 아빠였지만, 그러나 신에자키가는 멋대로 실수의 은폐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혼자 힘으로 유족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려고 한 아빠에게 엄마가 행한 것은 *이연(離縁), 추방.

※ 이연(離縁) : 부부 또는 양자의 인연을 끊음.

  전부 신에자키가의 명예 때문에. 이런 시골에서, 언제까지나 왕녀로 군림하고 싶은 엄마의 욕망.


「이런, 이런 꽃!」


  일어서서, 눈물을 흘리며 장식된 대량의 장미에 다가간다. 내 퇴원 축하라고 준 게 분명한 이 꽃들......거기에, 생일 축하로 오늘 받은 것들. 그것들은 전부 내게 보낸 게 아닌......신에자키가 당주인 엄마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차기당주. 일찍이 붕괴한 지역 의료를 지키기 위해 힘썼던 아빠의 등.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나는 의사가 되어, 머지않아 이 마을의 의사가 되는 거겠지.
  엄마의 바람대로 신에자키가의 당주로서 이 마을의 새로운 여왕이 된다. 싫은데, 그런데도 내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엄마는 간파하고 있다.
  ――웃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엄마의 꼭두각시. 이런 나, 미소 하나 띨 수 없는 나를, 히이라기 군이 좋아해줄 리가 없어!


「히이라기 군.......」


  격정인 채 뚝뚝 괴로운 눈물을 흘리고, 풀썩하고 융단에 무릎을 꿇는다. 이 마음,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은 독이다. 죽이자......감정을 가슴 속 깊이 가라앉히고 지금까지 대로 무뚝뚝하고 싫은 여자애로 있자. 더 이상, 그를 좋아하게 되면...... 틀림없이, 틀림없이 나는 망가지니까.


「......?」


  그 때, 눈물로 베인 시야 구석에 무언가가 비친다. 새하얀, 상장 등을 넣는 통 같은 원기둥. 붉은 리본으로 깔끔하게 묶여진 게 보였다.


「이건......혹시?」


  떨리는 손끝으로 그 통을 잡아, 천천히 끈을 푼다. 메인 붉은 리본에 붙어 있던 작은 카드. 거기에는 『생일 축하해, 히이라기 아키라』라고 쓰여 있다.
  몇 번이고 침을 삼킨다. 이렇게 좋아하게 되는 건 그만두자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 가슴을 크게 울리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이렇게나 기쁜 걸까......


「앗......」


  간신히 꺼낸 통의 내용. 그건 새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뎃생이었다.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도저히 초등학생이라 생각되지 않는 정묘한 그림. 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금은, 거기에 그려진 게 내 마음을 흔든다.


「바보, 바봇, 이런......」


  본 적 있는 병실 침대――히이라기 진료소의 싼 침대――거기에 앉아 있는 내가 있었다. 그 때와 같은 파자마 차림으로......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미소를.


「웃고 있어...... 그림 속의 나, 나, 웃고......」


  구겨지지 않게 소중히, 무엇보다도 소중히, 도화지를 가슴에 안는다. 이렇게 상냥한 미소가 되어있었다...... 가슴에 따스한 마음이 퍼져간다. 강렬한 부끄러움과 온몸이 떨리는 기쁨.
  아아, 또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왜 저 애는 항상, 항상 날 도와주는 걸까.


「더, 좋아....하게 되잖아. 바보......」


  살짝 투덜댄다. 내일부터 분명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 같은 상냥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하고 굳게 바란다. 언젠가, 그렇게......그의 곁에서 상냥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마음, 가슴의 아픔과 달콤한 기쁨이 뒤섞여 온몸으로 퍼져간다.


「히이라기 군」


  살짝 중얼거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집에서 쉬는 건 오늘로 끝나고, 내일부터 학교생활이 시작된다. 또 가슴을 펴고 늠름하게 살아가자.
  앞으로도 틀림없이 노력할 수 있다. 도화지를 가슴에 안으며,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제 10화 【초등학교 편 ⑧보충】 춤, 그 후



  ◆



「히이라기 군, 히이라기 군도 참...... 살짝 한 장난이었는데, 이렇게 약하다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위잉~위잉~하고 머리에 직접 울린다. 몸이 뜨겁고 둥실둥실해서, 정말 기분 좋다. 나는 큰 침대 같은 소파에 드러누운 상태로 정말 즐겁다.
  거기에 엄청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감돌고 있다. 머리 밑에 있는 베개에서 올라오는 그 향기. 매끈매끈한 감촉에 부드러워서...... 어쩐지 그립다. 나는 무심결에, 고양이처럼 뺨을 베개에 부비적거리며 문지른다.


「――?! 꺄앗, 앗. 얘, 안 돼, 안된다니까. 술 먹인 건 미안해. 아, 정말 안 돼, 꺄아......으읏」


  머리 위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소리. 조금 난처해하는 것 같지만 왠지 비음이 섞인 듯, 약간 요염한 한숨. 둥실둥실한 꿈같은 기분으로 멍하니 눈을 뜬다.


「어라? 공주다. 왜 공주가?」

「잠깐, 누가 공주야? 앗, 바보. 머리를..... 우, 움직이면 안 된다니까. 허벅지에 스쳐서...... 읏」


  올려다보자, 마치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신에자키의 얼굴. 조금 난처한 듯, 부끄러워하는 표정이지만, 여전히 엄청난 미소녀라고 생각한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아이 섀도로 꾸민 눈동자. 흑발에 얹은 관. 귀에서 빛나는 귀걸이. 매끈매끈한 도자기 같은 피부.
  모든 것이 기적 같이 아름답다. 머리가 둥실둥실한 상태로, 그녀의 얼굴을 넋을 잃고 보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


「예쁘다...... 꿈속에서도 역시 신에자키는 엄청 미인이야.」

「――읏!? 우으읏. 바, 바보 아냐! 그, 그런 말 엄청 취했을 때 해봤자, 기, 기쁘지 않......거든. 여, 여기, 여기 보지 마」


  이것은 꿈일 거다. 시야가 흔들리는 채로, 천천히 머리를 움직이면――그때마다 머리 위에서 「꺄앗, 읏」하고 귀여운 소리가 들리는 게 재밌다――벽 한쪽이 장미로 장식된 호화로운 방이 보인다.
  언제 잠든 거지? 춤이 끝나고, 긴장과 피로로 목이 말라 신에자키가 미소 지으며 준 주스를 마셨는데......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것이 꿈이라 해도, 굉장히 좋은 향기에 싸이고 베개는 부드러워서 행복. 곤란한 점이라면 머리를 움직일 때 위에서 나는 공주의 소리뿐.


「꺄앗, 앗, 잠깐. 앗, 욱신욱신하.....니까......안 돼!」


  진짜 이 베개는 뭐지? 평소 쓰는 것보다 훨씬 기분 좋다. 나는 꿈결 같은 기분으로 양손으로 베개를 쓰다듬는다. 적당히 둥그스름한 두 원기둥 쿠션이 붙은 디자인...... 거기에 스르륵 접해간다.
  팽팽하면서도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탄력이 있다. 그래, 이렇게 손으로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정도다.


「......진짜, 이, 이잇, 우쭐대지 ㅁ......앗, 아, 안 돼, 더 안쪽으로 가면, ――!!」

「응? 빨간 베갯잇?」


  신에자키의 목소리를 전부 무시하면서 계속 움직이는 손가락 끝에, 갑자기 닿은 빨간 천. 수자처럼 윤기 나는 옷감에 반들반들하고 고급스런 감촉. 흐릿한 시야로 봤더니, 내 베개는 그 빨간 천속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얗고 매끈매끈한 두 베개, 그것이 빨간 천 안쪽으로.
  뭔가와 비슷하다...... 그래, 마치 허벅지같이?


「어? 이건?」

「부탁이얏, 정말로 안 돼! 그만! 앗, 들여다보면 안 돼! 보이니까, 보여버리니까아!」

「우와아아앗」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화아아악 하는 느낌으로 필사적으로 스커트를 가리던 신에자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단번에 몸을 일으킨다.
  지금가지 베개라고 여기고 멋대로 만졌던 것의 정체...... 그건, 그녀의 허벅지였어? 하고 경악하면서.


「아, 뭐 그래도.... 꿈이니까 상관없나」

「바, 바보!」


  하지만 놀랐던 것도 잠시. 결국 꿈일 뿐이니까......라고 안도하고, 나는 신에자키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도 그럴게, 이게 현실일 리가 없다. 그 드센 공주가, 내게 무릎베개를 해줄 리 없다.
  게다가......


「앗, 자, 잠깐. 또!? 으읏, 정말!」


  풀썩하고 나는 다시 허벅지에 머리를 두려 한다. 그랬더니 투덜투덜 불평하면서도 신에자키는 내 머리를 양손으로 들어 허벅지로 끌어다주었다. 거기에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서비스까지......
  ――이것이, 꿈 말고 대체 뭐란 말인가?


「으읏...... 아, 또 손대면......응읏!?」

「아하하, 꿈속의 공주는 귀여워」


  아래서 올려다보는 신에자키의 얼굴도, 역시 엄청 예쁘다. 게다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어딘가 난처해하는 표정...... 그것이 정말 순진해 보여서, 귀엽다.
  나는 어쩐지 약간 불타오른 기세에 힘입어, 그녀를 좀 더 곤란하게 해보고 싶어졌다.


「귀, 귀엽다니! 놀리지 마...... 거기에 또 공주라고, 얘, 아앗, 읏」

「왜냐면 진짜 귀여운걸. 그래도, 좀 시끄러우려나」

「――!? 아읏」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허벅지를 만진다. 그 매끈매끈한 감촉을 즐기며, 재빨리 왼손을 신에자키의 입가로 뻗었다. 다시 불평하려는 그녀의 입술로.
  내 예민한 손가락――왠지, 찡하고 감각이 달아올라서 조금 둔하지만――으로, 공주의 도톰한 입술 위를 덧쓴다.


「응응읏......」


  새침한 소리를 듣는 것도 좋지만, 역시 좀 시끄럽다. 잠깐 조용히 안 될까? 라고 생각하면서, 부드럽고 젖은 감촉의 붉은 입술을, 놀리듯 긁는다.


「......응읏, 읏」


  손가락이 입술에 닿을 때, 움찔, 움찔하고 살짝 몸을 떠는 공주.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검지손가락으로 집요하게 만져간다.
 아주 약간 자란 손톱...... 그걸로, 빨갛게 젖은 입술 끝을 스륵하고 부드럽게 문지른다. 꼬옥 단단히 다문 신에자키의 입술. 그것이 내 손가락에 반응해서, 아주 조금 힘이 풀어진다.


「후후, 역시 귀여워」

「응응읏」


  희미하게 젖고 뜨거운 입술. 폭신폭신한 감촉을 듬뿍 만끽하면서 천천히 느긋하게 이번에는 입술 전체를 손가락으로 더듬어간다. 손가락 끝이 닿을까 말까...... 빠듯한 거리로 간질이듯이.


「읏, 응, 응응읏」


  신에자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움찔움찔 몸을 떤다. 젖은 눈으로 나를 열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결코 싫어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꿈속이라 그런.... 거겠지.
  현실에서 이런 짓을 하면, 100번은 살해당해도 이상하지 않다.....기보다는, 그 공주가 이렇게 하는 대로 얌전히 당할 리가 없다.
  어쩐지, 몸이 불타듯이 뜨거워서 오싹오싹하다. 기세를 탄 나는――꿈이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천천히 일어나, 신에자키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신에자키, 계속해도 돼?」

「어? 아.......」


  입술을 어루만지며, 조롱하듯 속삭인다. 귓전까지 새빨갛게 물든 신에자키...... 글썽글썽한 눈동자가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서일 거다.
  오른손으로 매끈매끈한 허벅지 위를 더듬으며, 왼손으로 젖은 입술 위를 덧그린다. 그렇게 하면서, 약간 심술궂은 느낌으로 귀에 대고 살짝 속삭인다. 때때로, 내 입술로 신에자키의 귓불을 머금고, 살짝 빨아들이며.


「앗, 응응응으읏........!! 응읏!」

「똑바로 들어봐. 응? 계속 이렇게 손대도 돼? 아니면 그만할까?」


  움찔하고 몸을 떨며, 비단 장갑에 싸인 손가락을 뻗어 내 셔츠에 매달리는 공주. 겨우 의미를 이해했는지, 그녀는 젖은 눈으로 나를 흘겨보며 입을 연다.


「이........ 앗..........응읏, 응, 마, 마음대로 ㅎ, 해! 응읏, 이, 변태, 앗, 앗......」


  내 손가락 끝――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서울 만큼 섬세하고 정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허벅지 안쪽, 아랫입술의 부드러운 부분을 매우 살짝 어루만지듯이 손대어간다. 그리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신에자키의 목덜미, 예쁘게 묶인 흑발 언저리에 입술을 댄다.
  신에자키의 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반응이 있던 곳을 집요하게, 그러나 가볍게 계속 터치한다. 그리고,


「――읏, 앗, 아앙!」

「흐음, 그래? 그럼 그만할게. 아무리 꿈이라도, 공주가 화내면 무서울 것 같고......」

「어?! 앗.....응.......우으」


  속삭인 뒤, 갑자기 손을 떼고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꾸욱......하고 살짝 잡히는 내 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신에자키가 뭔가 말하고 싶었는지 우물쭈물하고 있다.
  그리고 정말 작은, 스쳐가는 소리. 눈을 돌리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다......는 식으로.


「네가, 그렇게 꼭 하고 싶다면, 계, 계속해도..... 좋아.」


  새침함, 곤란함이 섞인 표정을 띠는 공주. 왠지 매우 귀엽고 기특해서, 무심코, 짓궂은 말을 하고 말았다. 이런, 내 등, 몸속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다.


「어떻게 할까?」

「......으, 으으, 이잇 심술쟁이, 변태! 으으으읏......」

「후후, 농담이야. 공주가 너무 귀여워서, 미안해」


  마치 울 것 같은 분위기였던 공주의 몸을 뒤에서 드레스와 같이 꼭 껴안는다.
  왼손을 다리, 오른쪽 검지와 엄지손가락 사이에 그녀의 입술을 두고,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리고 요염한 흑발 언저리에서 대담하게 열린 등――매끈매끈하고 새하얀 피부――를 할짝......하고 혀로 핥았다.


「――――!! 응으으읏!!」


  무심코 연 입술, 순간 그 안에 놀리듯 손가락을 넣자, 대답하듯 젖은 혀로 구석구석 빠는 그녀. 내 손가락과 할짝할짝 움직이는 신에자키의 혀가 얽힌다. 매우 뜨거운 타액이 휘감기고, 쪽쪽하는 소리가 방에 울려 퍼진다.
  나도 지지 않게 목덜미에서 어깨, 등까지를 간혹, 입술로 들이마시며 혀를 쓴다. 신에자키의 몸이 움찔하고 반응하는 여러 부분, 거기를 중점적으로, 마치 개발해가는 것처럼.


「읏......응응읏, 응읏, 햐웃, 앗, 응으읏」

「공주, 귀여워...... 엄청 귀여워」

「또, 또 공주라고......앗, 앗, 앗앗, 응읏, ......아앙」


  입 안에 들어있는 내 손가락을, 살짝살짝 부드럽게 깨무는 공주. 달라붙듯 빠는 부드럽고 뜨거운 혀. 손가락 끝부터 내 몸 전체에 짜릿한 감각이 지나간다.


「히이라기 군, 히이라기 구우운! 앗, 아아앗, 히이라기 구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는 내 왼팔에, 장갑에 싸인 양손으로 매달리는 그녀의 모습이 애처롭다. 손가락을 머금은 부자유스런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안겨오는 뜨거운 몸. 그 모든 것이 몸속을 불태우고, 이상한 욕망이 생겨난다.
  뭘 하고 싶은 건지 모른다. 하지만, 몹시 바라는 게 있다. 나도 사정을 모르겠다......꿈, 이라서?


「히이라기 군, 앗, 아앗, 앗......하고 싶어, 하고 싶어어!」

「......응?」

「이대로, 억지로, 억지로 빼앗아......! 앗, 아앗, 내, 내 처음을, 앗, 아앙!」


  주륵...하고 타액의 투명한 선이 늘어지며, 공주의 입술에서 내 손가락이 떨어진다. 나를 돌아보고, 젖은 눈동자, 반쯤 열린 입술을 보이는 그녀. 조금 전까지 손가락이 유린했던 신에자키의 입속, 그 속에는 타액이 듬뿍, 그리고 새빨간 혀가 보였다.
  그렇게, 유혹하듯 입 속의 빨간 혀가 움직이고......


「응......!」

「응으읏!!」


  꿈속이니까......라는 대담함, 그리고 온몸에 독처럼 도는 열기로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본능적으로 신에자키의 입술을 탐냈다. 꼬오옥, 하고 그녀의 양팔이 내 목을 아플 정도로 조인다.
  매우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과 달콤한 향기가 몸속에 퍼져간다. 그리고, 뜨겁게 젖은 혀가 몇 번이나 내 입술 위를 덧쓴다.


「읏, 응읏」

「응응으읏」


  소파 위, 자신을 잊고 열중해, 서로의 몸을 꼭 껴안아 입맞춤을 계속한다. 숨 쉴 수 없는 괴로움.....그런 건 압도적인 달콤한 저림 앞에 사라진다.
  꿈틀거리는 공주의 혀, 그 엄청난 부드러움을 견디다 못해 입을 연다. 그 순간, 스륵.....하고 비집고 들어가는 뜨겁고 부드러운 혀과 달콤한 타액. 머리가, 몸 전부가 불타간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쾌락이, 내 전신을 번개처럼 태워간다.


「읏, 응응읏, 응응응!! .....읏! 응으읏!!」


  서로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입술과 입술, 혀과 혀가 하나로 얽힌다. 모든 것을 잊고, 쾌락과 서투른 고통, 그 둘을 황홀 속에서 계속 맛본다.
  내 몸에 뭉개진 부드러운 그녀의 가슴. 본능적으로 그곳을 양손으로 더듬는다. 움찔하고 경련한 뒤, 마치 꽉 누르듯 몸을 바싹 대는 신에자키. 손가락에 달라붙는 것처럼 매우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 손댈 때마다 울리는 공주의 요염한 한숨.


「응, 응응......」


  모든 것이 틀림없는 꿈.
  ――하지만 내 의식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얗게, 흩어지고...... 마치 스위치가 끊긴 듯이.


「응, 앗.....읏, 히, 히이라기 군? 왜, 왜 그래? 응? 응?!! 어, 어어!?」


  빙글빙글 계속 도는 의식. 뇌의 어디선가, 산소 결핍, 그리고 알콜의 상승효과라는 소리가 들린다. 슬슬 잠에 떨어져가는 감각.
  완전히..... 꿈속에서, 또, 잠든다..... 이런, 모든 게 엄청난 꿈......이라는 걸 멍하니 느낀다.


「으으으으읏, 이, 이잇, 변태!! 이렇게 어중간하게, 두, 두고 봐!! 증말!」


  화내듯, 어딘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 하지만 폭신, 하고 다시 부드러운 무릎에 상냥하게 머리가 실린다. 그리고 입술에 천천히 닿는 부드러운 감촉. 낼름....하고 닿은 뜨거운 혀, 달콤한 숨.


「바보...... 고맙다는 말도 못했잖아. 춤, 서툴렀어도 정말 기뻤는데」


  작은, 정말로 작은 속삭임.
  ――아아, 역시 꿈속의 신에자키는 최고로 사랑스럽다. 나는 달아오른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제 10화【초등학교 편 ⑧ 후편】



  ◆

  머나먼 옛날, 기원 전 460년――고대 그리스 문명이 번성하고 있었을 무렵――지중해에 떠 있는 작은 섬에, 한 남자가 태어났다.
  히포크라테스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현대 의사에게 지금도 『의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는다.
  그는 그때까지 저주나 천벌이 원인이라 여겨진 병을 과학적 고찰에 의해 분석, 근거 없는 미신에서 떼어내, 현대 의학의 기초를 쌓아올렸다. 하지만, 그 위업과는 또 별개로,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은 모든 의료 관계자...... 아니, 의를 뜻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것은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성스러운 맹세. 그가 태어나 약 250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맹세는 전혀 퇴색하지 않고 우리들의 가슴에 계속 머물고 있다.


「――으읏, 으흐윽」


  찌는 듯이 더워 잘 수 없는 아프리카의 밤. ......뭔가,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문득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머리맡에 놓인 심플한 디지털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짙은 어둠 속을, 디지털 시계의 녹색 부분만이 아련하게 비춘다.


「......흑」


  들이켜는 공기마저 찌는 듯 덥게 느껴지는 어둠 속에서 다시 퍼지는 소리...... 역시, 내 착각이 아니었다. 간이 주택에 만든, 의료 캠프 시설의 얇은 벽을 통해 들리는 소리.
  그것은 옆방――세리실의 방에서 들려오는 오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일찍이 내가 매일 저녁 하고 있던 것과 같은, 구토 섞인 정말 괴로운 소리.


「세리실......」


  식은땀을 흡수해 무거워진 시트를 벗겨내며, 조수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린다. 수 시간 전, 마지막에 한 수술에 관한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동시에, 입 안에 넘쳐흐르는 씁쓸한 침. 어금니를 꽉 다물며, 그 침을 삼킨다.
  마지막 환자는 세리실이 아는 사람――그녀가 이 NGO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친해진 소녀――였다. 소녀가 피투성이로 옮겨져 왔을 때 세리실의 새파래진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 10세이면서, 남동생 4명을 위해 날마다, 시가지에서 야채를 팔던 밝은 소녀였다. 그러나...... 노후화, 그리고 전쟁에 의해 취약해져 갑자기 무너진 건물에 깔린 것 같다. 불운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고. 하지만, 인프라가 아무 것도 정비되지 않은 이곳에서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이기도 했다.
  상가의 어른에 의해 소녀가 의료 캠프에 옮겨졌을 때는 이미 의식 불명, 뇌좌상, 대퇴부 개방성 골절, 그리고 대량 실혈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나와 세리실은 3시간, 모든 기술을 발휘해서 계속 발버둥쳤지만...... 그러나, 생명을 구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좀 더 빨리 캠프에 도착했으면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도 가난한 이 나라에서는, 기와 조각과 돌을 들어낼 수 있는 중기계의 수가 적고, 또 연료마저 항상 부족. 사고가 일어나도 신속한 구조는 바랄 수 없다. 구급 구명의 전제부터, 선진국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


  피로 때문에 저린 몸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어둠 속에서 방의 출구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옆방에서 들리는 소리――세리실의 오열은 그칠 기미가 없다. 가슴 깊은 곳에서 넘쳐 나오는 듯한, 애절하기 짝이 없는 그 소리.


「......무슨 말을 해야」


  빠득, 하는 소리가 날 만큼 세게 어금니를 씹으며 발을 내디딘다.
  결국, 타인인 내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한들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애초에 세리실이 앞으로도 의사를 계속할 거면, 이것은 그녀 스스로가 넘어야 할 고통이기도...하니까.
  하지만 예전의 나처럼, 쓸데없다고 생각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평소부터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조수를, 남이라고 냉정하게 딱 잘라낼 수 없다.
  내 방을 나와 어슴푸레한 복도를 걸어, 옆방...... 문 앞에 선다.


「세리실, 나다. 괜찮아?」

「우으, 으으, ......서, 선배?」


  가냘픈 목소리가 난 뒤, 1, 2분 정도 침묵이 계속되고 그리고 철컥하는 열쇠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는, 몹시 운 새빨간 눈동자, 흐트러진 금발로 망연해하는 세리실이 있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움직이지만, 그보다 먼저 눈물이 뚝뚝 하얀 피부 위로 떨어져, 말로 할 수 없는 오열이 새어나올 뿐.
  입고 있는 파란 파자마는 눈물로 진 얼룩 투성이에 평소의 다부진 세리실의 모습은 없었다. 굵은 눈물을 흘리며 세리실은 천천히 손을 뻗어, 내 팔을 붙잡는다.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아이처럼......


「서, 선배...... ㅈ, 저......」


  말할 수 없는, 아니,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나,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는 건가...... 팔을 잡고 있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데워주듯, 나는 손바닥을 위에 덮었다. 그것은, 여기가 타오르듯 더운 아프리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차갑게 얼어 있었다.
  내 시선 끝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입술. 크고 푸른 눈에서 끝없이 굵은 눈물이 넘쳐 떨어져간다.


「괜찮아? 세리실, 무리하게 얘기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단지, 걱정됐을 뿐이야.」


  부드럽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건지...... 사죄하듯 작은 머리를 숙이는 그녀.


「서, 선배...... ㅈ, 제 목소리 때문에 깨워서...... 죄, 죄송해요. 꿈에서, 꿈에서 그 애를 봐......봐서. 활기차게, 그렇게 활기차게, 잘 웃었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죄송해요 선배, 하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오열을..... 머, 멈출 수.....없어서. 시, 시끄럽게 해서, 저, 정말로...... 나 같은 것보다 선배가, 훨씬, 훨씬 지쳤을 텐데......」


  다시 꿈이 또렷이 생각난 탓인지, 온몸을 벌벌 떠는 그녀. 가볍게 패닉이 된 모습.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애처로운 모습.
  달래듯이, 그 가녀린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리는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본다. 한 마디 한 마디 타이르듯, 천천히 말을 꺼낸다.


「들려? 괜찮아, 난 별로 상관없어. 네가 걱정이야. 침착해, 우선 물을 마셔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녀린 몸. 그것을 반 억지로 안아 침대에 앉힌 뒤, 미네랄워터 병을 건넨다. 속이 텅 빈 눈으로 나를 보며, 아직도 사죄의 말을 하려는 그녀.  그것을 억지로 시선으로 말리고, 물을 마시도록...... 몇 번이고 반복한다.


「......네」


  한숨 섞인 소리 뒤, 마치 아이처럼 양손으로 병을 들고, 떨리는 입술에 입을 대는 세리실.
  일단 물을 입에 머금자, 목이 말랐으리라...... 꿀꺽, 꿀꺽하고 조용히 마시기 시작했다.


「세리실, 난 요령 좋게 말할 수 없어. 하지만, 넌 정말 잘 하고 있다. 결코 무력한 사람이 아니야. 자신을 탓하지 마」

「......」


  조금 안정된 모습을 확인하고, 세리실이 앉은 침대에서 멀어져 입구 옆의 벽에 기대며 그렇게 이야기한다. 좀 더 뭔가 그녀에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찾지만, 결국 이런 말밖에 하지 못한다.
  일찍이, 세르게프가 내게 해준 말은, 무수한 경험을 쌓았기에 할 수 있는 것.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해봤자, 그것은 틀림없이 얄팍해서 그녀의 마음에 닿을 리 없다.


「그럴......까요? 저,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했어요. 여기서, 겨우, 겨우 친해진 애 한 명도 구할 수 없어...... 이런, 이런!!」


  푸른 눈동자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간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그러는 것처럼 가녀린 몸을 자신의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 그녀. 가슴에 쌓인 격정을 토해내듯 말을 계속한다.
  자기를 탓하는 것처럼, 상처 입히는 것처럼.


「저, 저, 의사가 되어 경험을 쌓으면...... 분명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정말 바보였어요. ......지금, 지금 와서...... 정말 무서워요. 또...... 또, 못 구하면 어떡하지. 무서워요. 내일 수술...... 아니, 의사라는 일이」


  타인의 생명을 짊어지는 공포에 침식된 조수의 모습. 그것은 예전의...... 아니, 평소에는 잊었다고 여기는 나 그 자체다. 친한 이를 눈앞에서 잃어버린, 그 충격이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 부수려 하고 있다.
  ――외과의에게, 『가족 절개(身内切り)』 즉, 친밀한 사람, 가족을 수술하는 것은 최대의 금기로 여겨진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외과의에게 수술이라는 것은, 항상 어떤 의미로는 내기이기 때문이다. 수술 중에 외과의에게 항상 강요되는 선택지.
  구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것이 친밀한 가족,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때, 외과의의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평생 계속 후회하게 된다.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사랑한 사람은 살았을 것이다......라면서, 언제까지나 자신을 계속 탓하고, 이윽고 메스를 잡을 수 없게 되어간다. 자신의 결단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수술 중에 결단을 못 내려,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외과의...... 그것은, 이미 의시라고 할 수 없다.


「세리실. 나는 아직 미숙해서 너를 달래는 말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지만......」


  너무나 추운 듯 떨고 있는 세리실. 그 가녀린 어깨, 새하얀 뺨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는 조용히 침대로 다가간다.
  예전에...... 세르게프가 해준 것처럼,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문지른다. 어둑어둑한 방안, 나와 그녀의 숨결, 그리고 파자마의 옷감이 스치는 소리만이 퍼진다.
  그대로 10분 정도 흘러, 조금 호흡이 안정된 조수에게 느긋하게 말을 건다. 최근, 내가 느낀 바를. 도용한 말이 아니고, 나 자신의 말로.


「하지만...... 그래, 세리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해?」

「네.......」


  조금은 침착하기 시작한 그녀. 허약하지만, 약간이나마 힘이 느껴지는 대답이 들렸다.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그치듯 말을 계속한다. 내 말이...... 어떻게든 조수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며.


「그 중에 『의(医)의 서약으로 이어진 사람을 자신의 형제라 여기고, 아낌없이 자신의 의술을 전하는 것』이 있지.」

「......」


  눈물을 조금 흘리며, 천천히 끄덕이는 세리실. 흔들리는 금실 같은 머리카락이, 사르르 얼굴에 스친다.


「요즘, 그 뜻을 조금 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히포크라테스도 분명, 살리지 못한 환자를 많이 진찰해 왔을 거야. 의술의 한계, 고통, 무력함을 뛰어난 의사니까 더욱,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겠지. ......그리고, 그건 후대 의사들도 완전히 같다는 걸 알았을 거란 말이야. ――그래서, 같은 의를 익히는 사람들은 형제처럼 서로 지지하고 지식을 높여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


  전에, 의사가 되었을 때 맹세한 성스러운 문언. 위대한 『명의』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맹세.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어떤 것도 초월해서, 의를 익히는 사람들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단결해야 한다.
  갑자기 덮치는 불합리한 죽음에 우리들 의사는 너무나 무력하니까. 혼자서는 견디지 못하니까.


「그러니까 세리실, 그 고통, 생명을 짊어지는 공포는, 너만이 느끼는 게 아니야. 나도, 그리고 전 세계의 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거느리고 있어. ......하지만, 언젠가. 그래, 미래에는 반드시 좋아진다. 반드시 의학은 진보한다. 이 고통이 쓸데없지 않다는 희망을 갖는다. 우리들은 무력하며, 그리고 항상 두렵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야.」

「네......」

「믿음직스럽지 못하겠지만, 괴로울 때는 내게 말해줘. 그리고 또 조수로서 나를 도와줬으면 해. 너의 힘이 필요하니까, 환자를 돕기 위해서.」

「네, 선배......」


  조금 안심한 듯 중얼거린 뒤, 세리실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피로가 극에 달했는지......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내 어깨에 기댄다.
  그 중량감, 그리고 따스함과 평온한 숨소리를 느끼며, 나도 느긋하게 눈동자를 닫았다. 잘 전해졌을까? 그건 모른다.
  하지만, 세리실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방에서 나갈 때까지, 나는 조금이나마 평온함을 느꼈다.
  ――일본에서 잠들어 있는 사쿠라. 마치 녀석이 내 어깨에서 숨소리를 내는 듯한...... 그런 기묘한 착각을 품은 채.


  ◆◆


  신에자키가.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그것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나는 어안이 벙벙하게...... 우두커니 서고 말았다. 우선 집의 외관――이라고 할까, 저택이라고 불러야겠지――부터 다르다.
  집으로 마중하러 온 도서관 사서님이 운전하는 차에서 내렸을 때,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벽. 성? 이라 한순간 생각할 만큼 넓은 뜰을 둘러싼 새하얀 벽돌. 그 벽돌 건물의 입구인 쇠창살로 된 문이, 그야말로 영화 같은 것에서 본 서양풍 저택 그 자체로.......


「히이라기 님, 이쪽입니다. 사오리 아가씨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히익, 아......넷!」


  총총 걸어가는 사서님에게 뒤처지지 않게, 나는 빨리 걸어간다. 하지만 그 도중에 눈에 들어오는 저택의 내장이 또 엄청나다.
  동물 털로 만든 긴 빨간 카펫은 폭신폭신하고, 구두인 채 걷고 있는 것에 공포마저 느낀다. 그리고 매우 긴 복도에 장식된 조각이나 큰 그림들. 거기에 결정적으로 복도 안쪽에서 흐르는 클래식 음악. 집......이라기보다 미술관.


「네, 이쪽입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꼬불꼬불 구부러진 복도를 나아가, 안내된 곳. 조각이 새겨진 황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문 앞.
  활짝 미소 지은 사서님은, 나를 기다리게 한 채 노크하고 안에 혼자 들어갔다. 틀림없이, 신에자키에게 내가 찾아온 것을 말하는 거겠지.
  생일 파티이기 때문에, 일단 가져온 신에자키에게 줄 선물을 단단히 가슴에 안는다.
  심장이 엄청 두근두근하고 시끄럽다. 농담 같은 이 저택과 비교하면, 이런 선물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솔직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넘쳐흐른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눈앞에서 문이 열리고, 사서님이 모습을 보였다.


「히이라기 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후훗, 그러면 아가씨가 기다리고 계시니 자, 안으로」

「으......ㄴ, 네. 실례합니다.」


  한 걸음 발을 디딘 순간, 우선 눈에 비친 것은 방안에 장식된 장미꽃, 꽃, 꽃의 홍수였다. 호화로운 샹들리에가 장식된 엄청 넓은 방의 여기저기에, 벽이 안 보일 만큼 대량의 장미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뭐야, 여전히 멍해 있어서는. 불만이라도 있어?」

「어......? 우, 우왓, 아, 신에자키!? 아, 그, 그게.......」


  시야 한 쪽의 꽃, 그 안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 그쪽으로 눈을 돌린 나는 말이 막힐 뻔하게 되며, 겨우 입을 열었다.
  드레스로 몸치장한 공주, 신에자키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대량의 꽃마저, 한 순간 퇴색한 것처럼 느껴진다.
  ――요염한 흑발은 정중하게 묶여, 반짝반짝 빛나는 티아라로 꾸며져 있다. 드레스는 진한 주홍......어깨가 대담하게 노출되어, 풍부한 앞가슴이 열린 디자인. 초등학생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가슴골이 선명히 보여, 눈을 둘 데가 없어서 매우 난처하다.
  평소부터 어른스럽고, 늠름하며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오늘 밤은 드레스에 맞춰 화장을 살짝 한 탓일까, 강렬한 색기...... 같은 것마저 느껴진다.
  정연하게 갖춰진 눈동자는, 검은 아이 섀도로 장식되어 나를 날카롭게 보고 있다. 조금 불쾌한 듯 다문 입술은 붉은 빛이 강해, 요염한 느낌조차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등골을 쭉 뻗은 채, 가터벨트가 붙은 하얀 스타킹에 싸인 긴 다리를, 슥......하고 뻗어 내게 다가온다.


「흥, 의외로 슈트도 어울리잖아. 얘, 우물쭈물 하지 마! 자」

「......어? ㅁ, 뭘?」


  화내는 건지, 조금 뺨을 붉힌 채 매우 당연한 듯 오른손을 눈앞으로 뻗어오는 그녀. 하얀 장갑에 싸인 손가락. 나는 넋을 잃고 보며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에스코트――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문까지 안내――하면 될 뿐. 그런데,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에......


「어? 잠깐, 히, 히이라ㄱ, 꺄악...... 어, 어머...... 앗, 어머!?」


  패닉이 된 나는, 영화에서 본 장면――공주님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 기사――을 떠올리고, 무심결에 신에자키의 손등에 자신을 잊고 입술을 대고 말았다.


「앗, 꺄아......응......바, 바보! 히, 히이라기 군, 저기...... 응, 아, 아냐, 아니니까....... 아.....응응읏」


  순백의 실크로 만든 장갑에 싸인 공주의 손. 입맞춤을 하고 있는 내 입술에 닿은 보슬보슬하지만 부드러운 감촉. 더욱이 비할 데 없을 정도로 좋은 향기가 긴 손가락 끝에서 감돈다.


「......읏, 히이라기 군, 앗, 응읏」

 
  시간으로 치면, 그저 몇 초간이었을 테지만, 입술을 떼어놓은 내 가슴은 부풀어 터질 만큼 세게 뛰고 있었다. 기세로 해버렸지만, 엄청나게 쑥스럽다.
  인사는 이거면 괜찮았으려나? 하고 심호흡을 하며 눈앞의 신에자키를 응시한다.


「아, 신에자키, 이거면...... 괜찮아?」

「응.....? 아.....에!?」


  나는 조금 겁내며 공주를 바라봤으나, 반응이 없다.
  뺨은 치크해서인지, 붉게 물들어 역시 엄청 예쁘다. 공주님이 할 것 같은 티아라와 진홍 드레스가 절묘하게 어울린다. 방의 샹들리에에 비춰지는 큰 눈동자가,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 물기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앗...... 응...... 뭐, 뭐어 그럭저럭이네. 읏.......히이라기 군, 그럼 다음은 회장으로 에스코트 하도록 해.」

「어? 으, 응 이렇게?」


  내 왼손에 신에자키의 장갑에 싸인 손가락이 재빨리 얽혀온다. 바로 옆에 새침한 표정으로 서는 그녀. 목덜미부터 많이 노출된 가슴, 그것이 시야에 또렷이 들어가, 당황해서 앞만 본다.


「잠깐, 걸음이 빨라. 봐...... 좀 더 이쪽으로 와서. 응, 그렇게, 보폭을 나한테 맞추고...... 주의해, 넘어지지 않도록.」

「아, 응」

「손, 놓지 않기야. ――앗, 차, 착각하지 마, 매너, 매너니까!」

「아, 응」


  엉망진창 가까운 거리에서 감도는 달콤한 향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나 아름답게 꾸민 공주에게 긴장할 뿐인 채, 흠칫흠칫 문을 열고 걸어간다. 내 왼손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 그리고 때때로, 꼬옥......하고 쥐어오는 부드러운 감촉. 쿡쿡하고 살짝 웃으며 뒤따라오는 사서 누나.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나는 마치, 동화 세계에 섞여든 듯한 이상한 기분인 채로 회장까지의 긴 복도를 계속 걸어간다.
  그리고 완전히 들떠 있던 나는, 모처럼의 생일선물을 그녀의 방에 놓고 온 것을, 회장에 겨우 도착할 때까지 깨닫지도 못했다.


  ◆◆◆


  신에자키의 생일파티. 그것은 많은 어른들이 북적거려서,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회장의 중심에 있는 신에자키――그리고 모친, 현 신에자키가 당주――에게 끊임없이 인사가 차례차례로 온다. 그 근처에 있는 넓은 공간에서는, 클래식 연주가 실제로 되고 있어 여러 사람들이 춤을 계속 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떠냐면, 눈에 띄지 않도록 벽 옆에 선 채 우물우물 요리를 맛보고 있었다.


「저기 봐, 쟤가...... 진료소의......」

「응, 왜 여기에? 그 여자의.......」


  결코 따뜻하지는 않은 시선과 소곤소곤하고 속닥이는 여러 말. 애써 신경 쓰지 않고, 다양한 요리를 먹는다. 가끔, 신에자키가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인사의 방해는 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끄덕일 뿐.
  요리, 디저트는 매우 호화롭고 종류도 다양. 그런데, 왠지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서 누나가, 가끔 나를 타인의 시선에서 지키듯 움직여 줬지만 그래도 있기 불편했다.


「히이라기 님, 아가씨에게 말을 건네주실 수 없을까요?」

「네!?」


  그런 식으로 소외된 채로, 맛있는 것도 아닌 식사를 계속 하던 내게 갑자기 뒤에서 들린 속삭임. 놀라서 뒤돌아보자, 사서 누나가 싱글벙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누나도 회장에 맞춰 차려입었지만, 다른 손님에 비해 소극적――검은색을 바탕으로 한 세련된 단장――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대로 누나의 귀여운 분위기에 어울린다.
  그러나, 그런 차림보다 나는 들은 말에 놀라 무심코 대답했다.


「어, 어째서!? 하지만 보세요, 저렇게 어른들이 그녀의 생일 축하를......」

「히이라기 님, 잘 보세요. 그 사람들은 아가씨에게 인사하는 것이 아니에요. 당주님에게 하고 있어요. 방에 장식된 꽃...... 그 퇴원축하도 전부 그래요. 장미는 당주님이 좋아하는 꽃이니까요.」

「네!?」


  주변에 들리지 않게 배려한 속삭임. 그 내용에 놀라, 나는 신에자키가 서 있는 쪽을 보았다.
  많은 어른들이 서서, 담소하고 있는 그 공간. 하지만 확실히, 사서님이 말하는 대로, 공주는 흥미 없는 듯이 서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파티일 텐데......
  거기에, 그러고 보니 공주의 친구――추종자들 중――는 어디에 있지? 오늘 밤 파티에도 없다. 아니, 그 뿐만 아니고 요즘 들어, 신에자키와 같이 있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다.


「아가씨의 다른 친구――반 친구들의 모습이 없는 것이 신경 쓰이나요? 지금, 사오리 아가씨는 당주님의 재혼에 완강하게 반대하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아가씨는 혼자입니다. 지금, 공개적으로 사오리 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일족은 없습니다. 이번 파티에 와주신 동년대의 친구는, 히이라기 님 단 한 분입니다.」

「.......그렇, 구나」


  내 시선 끝에 서 있는 신에자키. 그녀는 어른으로 가득 찬 상태, 주변에 아무도 아군이 없는 상황이면서도, 굳세게 가슴을 펴고 다부진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었다. 어디까지나 늠름하며 아름답게.......
  하지만, 나는 그녀의 그 아름다움, 다부짐이, 얼마나 빠듯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 수술에서 봤던 부친을 향한 눈물, 진료소에서 해버린 나 자신의 잔혹한 거짓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의 편이라고 그 때 맹세했다.


「고마워요, 사서님. 저, 신에자키에게 가볼게요.」

「네, 부탁합니다. 그리고 사서님이 아니라, 제 이름은 스이센바라 미즈키(水仙原みづき). 잘 부탁해요.」


  응원하듯 등을 툭하고 가볍게 두드려준 사서님――이 아니고 스이센바라 누나. 싱글벙글한 미소가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내게 사양 없이 빤히 꽂히는 호기의 시선. 그것을 무시하며, 척척 발을 내디뎌간다. 많은 어른이 나란히 서 있는 회장의 중심을 향해. 아름답게 서 있는 신에자키를 목표로, 똑바로.


「잠시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 엣!?」


  인파를 밀어 헤치고 간신히 그녀 옆에 겨우 도착한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는 신에자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 놀란 표정이, 이런 때지만 조금 귀엽다.


「어머, 외부인...... 실례, 딸에게 무슨 용무지요?」

「히이라기 군......」


  하지만, 신에자키의 몸을 가리듯 비집고 들어간 사람의 그림자.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 처음으로 보는 신에자키가 당주의 모습.
  역시 부모 자식이라는 느낌으로, 얼굴 생김새는 무서울 정도로 아름답다. 그 몸매도, 색기를 주변에 뿌리는 요화 같다. 공주보다 더욱 대담하게 드러낸 진홍 드레스, 큰 가슴, 호리호리하고 잘록한 허리, 길고 가느다란 다리. 여왕......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 무심코 압도될 것 같다.


「신에자키......사, 사오리의 친구로서 이야기를」

「그래요? 딸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군요. 자, 용무가 끝났으면 돌아가세요.」

「어, 엄마! 나도 히이라기 군하고.......」


  들을 이야기가 없다는 식으로 차가운 시선을 딸에게 던지고 억지로 이야기를 끝내려는 모친. 큭......하고 분한 듯이 입술을 깨물고 있는 신에자키의 모습이 비친다. 그리고 외로운 듯이 내게 머리를 숙이려고.......
  하지만, 나는 팔을 세게 뻗어, 그런 공주의 손을 억지로 붙잡는다.


「꺄악, 히, 히이라기 군!?」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의 편이라고 그 때 맹세했다. 언젠가 잔혹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전해 그녀에게 미움 받아 경멸되는 그 날 까지는.


「아직 용무는 있습니다! 춤을 권하러 왔습니다. 사오리 양, 저와 춤을 춰주시지 않겠습니까?」

「――!?」


  ――요즘 들어 방과 후, 코이와 사쿠라, 둘을 연습대 삼아 반복한 춤. 매우 미숙해서 솔직히 사람 앞에 보일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매너만은 알고 있다.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거절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춤추는 본인의 의사가 존중된다. 주변 사람이 결정할 수 없다.
  그렇다, 많은 손님이 있는 가운데, 신에자키가 당주가 사교계의 매너를 깰 리가 없다.


「......ㄴ, 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히이라기 군.」


  놀란 내 오른손에 흠칫흠칫 신에자키의 손이 포개진다. 다정하게 감싸듯이 꼭 쥐며, 천천히 두 명이 발을 내디딘다. 뒤에서 무언의 압박을 느끼지만, 솔직히 어떻든 상관없다. 이곳에서 멀어져 근처 회장으로 그녀를 에스코트 해간다.
  가슴은 두근두근하고 계속 시끄럽게 뛰고, 목은 바싹바싹 마른다. 무도회장이 가까워짐에 따라, 엄청 대담한 일을 해버렸다는 자각이 든다.
  신에자키도 놀라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힐끔힐끔하고 시선을 보낸다. 손을 잡은 채인 우리들은, 그렇게 시선이 얽힐 때, 강렬하게 쑥스러워서 말없이 걸어갈 뿐.
  하지만, 회장에 들어가기 직전, 나는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히이라기 군, 고, 고마워. 정말 기뻤어.」

「다리, 밟으면 미안해! 먼저 사과해둘.....응? 뭔가 말 했어?」


  타이밍 나쁘게, 얼굴을 돌리며 뭔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린 그녀와 겹치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한 순간, 얼굴을 귀신처럼 붉힌 신에자키가 강한 힘으로 잡아당긴다.


「――――으으으읏!! 아, 아무것도 아니야! 바보, 다리, 밟으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자, 곡이 시작될 거야!」

「어? 앗, 잠깐 잡아당기지 말아줘」


  왼손을 호리호리한 그녀의 허리에 두르고, 오른손을 부드럽게 다시 잡는다. 정면에서 똑바로 신에자키를 바라보지만, 시야에 아무래도 가슴골이 들어와, 뇌가 끓어오를 것 같은 기분.


「......읏! 저, 저기...... 좀 더, 왼손으로 꼭 해.....주렴!」


  그런 내 마음도 알지 못하고,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넣으.....라고 명령하는 공주. 반 자포자기로 힘을 주자, 풍부한 두 개의 부푼 곳이 내 가슴에 뭉개진다. 폭신폭신 부드러운 감촉. 게다가 그 수술 때, 실컷 이 가슴을 본 영상이 떠오른다. 불쑥 위를 향해 부푼 곳과 그 정점에 있던 연분홍색의......


「우와앗」

「얘, 스텝이 엉망진창이야. 제대로 해」


  균형이 무너질 뻔한 몸이, 합기도 같이 이상한 체중이동으로 교정된다. 도대체, 어느 쪽이 리드 역인가? 스스로도 모르는 채, 그저 자신을 잊고 열중해서 스텝을 계속 밟았다.
  눈앞에 있는 신에자키의 얼굴, 그 새침한...... 그러면서도, 조금 즐거운 듯한 미소를 바라보며.

 



  예외편 그 2 ~인형(*お雛様)과의 만남~   ※ お雛様 : 제단에 진열하는 작은 인형




  히키가야 코마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다니는 초등학교에서의 긴장과 흥분도 점점 수그러들고, 조금씩 바쁜 매일에 익숙해졌을 때이다.
  초등학교는, 오빠인 하치만이 말하던 고독한 곳과는 매우 달랐다. 보통으로 친구가 생기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즐겁게 얘기하고, 급식을 먹고 집에 돌아간다. 그렇게 평화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수다스런 반 친구가 어떤 소문을 입에 담았다.


「2반에 엄청 예쁜 애가 있대」


  그렇게 흥미로운 듯이 얘기하던 그녀였지만, 예의 그 인물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활기찬 어조로 「응, 어떤 애일까?」라고 코마치 일행에게 묻자, 그 애에 대해서 화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공주님 같다든지. 리카 인형 같다든지. 그런 식으로 상상을 부풀려 얘기하자, 코마치도 자연스럽게 어떤 애일까 하는 흥미가 들었다.
  코마치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에 영화에서 본, 신데렐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까다로운 모친과 자매에게 시달리면서도,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애. 둥실둥실한 금빛 머리카락과 바비 인형처럼 잘 갖춰진 얼굴을 가진 여자애가 머릿속에 나타나서 웃고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런 애라면 이미 눈에 띄었을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짝 웃고는 상상을 지웠다.
  그 애를 실제로 볼 기회는 바로 찾아왔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가는 길. 「조용히 교실로 돌아가렴.」이라고 한 선생님의 말을 지키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몇 명이서 소곤거리며 얘기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던 애가 옆의 교실 안을 가리켰다.


「봐봐, 예쁜 애는 꼭 쟤일 거야.」


  앞에 있는 교실은 조용한 채, 국어 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5월이 지나,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교실은 그곳만 시간이 더딘 듯 평온해서, 머리를 꾸벅꾸벅하거나 심심해서 교과서에 낙서하는 애들이 있다. 모두 어딘가 지루함 같은 게 있어서 이 시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리는 중,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왠지, 인형 같았다.
  보기 좋게 볼록 부풀어 오른 입술과 투명한 듯 새하얀 피부. 세련된 얼굴은 놀랄 만큼 아름다워서, 정말 예술작품 같았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도, 코마치 같이 곱슬기가 없는 스트레이트에, 호리호리한 손발은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약해보였다.
  그런 그녀는 책상에 앉아 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지루하게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완성된 듯 차갑고, 슬픈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판서하자, 그녀는 이끌리듯 팔을 움직여 노트한다. 그러나 그 동작은, 역시 인형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여자애가 「진짜다」라며 웃는다. 한 번 꺼내기에 마침 좋은 화제라서인지, 「예쁘네」하고 속삭였다.
  하지만 코마치는 반 친구의 말에 잘 수긍할 수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퍼져나가서 조금 몸서리가 났다.
  코마치 일행이 복도에 모인 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야, 빨리 교실로 돌아가」라고 큰 소리로 혼냈다. 그 말에 이끌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얼굴을 복도로 향했다. 그녀도 복도에 있는 코마치 일행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마치는 그녀를 보는 상태 그대로였겠지만, 분명 눈은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 특정 누군가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사뿐한 아몬드형의 눈에 떠오른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정도로 검게 빛나고 있었다. 눈의 형태와 눈동자에 떠오른 색이 완전히 반대라, 묘하게 본 기억이 있다. 어디서일까 다시 생각하려고 하자, 어째선지 공포가 솟아올랐다.


「히앗」


  갑자기 손을 잡혀 무심결에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갑작스레 현실로 되돌려져, 옆을 보자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는 반 친구가 있었다.


「코마치, 갈까?」


  옆에는 이미 코마치 친구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멀리서는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반 친구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에게 사과의 표시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걸어간다.
  교실로 돌아가서 갈아입는 중에, 싫어도 그녀의 그 검은 눈동자가 뇌리에 새겨진 듯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텐데, 떠올리려 하면 몽롱해진다.
  수업 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걸음이면 닿을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계기를 잡을 수 없다. 수학이 지나고 국어 시간이 왔을 때, 코마치는 겨우 그 눈동자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 애는 인형이야.

  올해 3월, 거실 한 구석에 장식된 인형. 몇 년 전에 아빠가 사 왔고, 그 이래로 3월이 되면 매년 장식된다. 3단뿐인 작은 거지만 화려한 색채와 은은한 등불 덕분에, 초라하지 않아서 코마치 마음에 드는 것. 그 맨 첫 번째, 왕 옆에 있는 인형이 그녀와 꼭 닮았다.
  햇빛이 닿을 때는 미소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데, 어두운 곳에 둘러싸인 모습은, 오싹할 만큼 무섭다. 어떤 밤 - 빛 한줌 없는 곳에서 웃고 있는 그 인형과 그녀는 같은 눈동자이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마음속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코마치에게 학교 수업은, 신선하지만 가끔 지루해서, 빨리 쉬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수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루한 수업 중에는, 다음 쉬는 시간에 뭘 할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재미있는 상상에 몸을 적시면, 지루한 시간은 바로 지나가고 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저 교실에 앉아, 혼자 수업을 들을 뿐이었다. 주변 학생이 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그 얼굴에는 싫증도 흥미도 도피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어째서 저렇게 차디찬 표정으로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빗발이 점차 강해져, 코마치의 마음을 진흙투성이로 만들고 있다. 평소 느끼지 않는 약간의 분노와 요괴를 본 듯 부끄러운 생각을 한 그런 자신에게 조금 낙담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코마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서운 건 변함없다. 그럴 때는 머릿속에서 점점 멀리해서 잊어버리는 게 가장 좋다. 당분간은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잊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수업에 집중해서 불필요한 생각이 흩어지기 직전에, 그 여자애의 모조품 같은 얼굴이 한 번 더 떠올랐다.


―――――――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보통 여자애였다.
  급식을 먹고, 힘을 빼면 잠들어버릴 것 같은 따스함이 하늘하늘거리는 점심시간. 떠들썩한 목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지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운동장에서 놀거나 교실에서 모여 수다를 떠는 중에,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렸다.
  활기가 흘러넘치는 복도에서, 몇 명의 여자애들과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던 그녀는, 전에 봤을 때처럼 차가운 얼굴이 아니라 보통 여자애 같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표정이 너무 달라서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이 되어 그 단정한 얼굴이 기억나서 다시 떠올리자, 그녀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친구들의 의아한 시선을 눈치 채고 부끄러웠지만, 그 이상으로 안도한 것을 코마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애가 사뿐하게, 다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게 타인인데도 왠지 기뻤다.


――――――


  그 이후로는, 이따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리는 때가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이거나 부드러운 표정이기도 해서 코마치를 많이 곤혹시켰지만, 그런 건 점차 익숙해져, 어느 쪽의 그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낼 수 있게 된 어느 날. 아침의 HR을 통해,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 두 마리가 죽었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다.
  토끼 두 마리는 학교에서 기르고, 주로 1학년과 6학년이 보살피고 있었다. 코마치도 당번으로 두 번 정도 먹이를 준 적이 있었고, 생김새가 귀여운 토끼들은 여자들에게 인기 있어, 당번이 아니어도 점심시간 같은 때 보러가서,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말한 「죽었다」의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이별보다 훨씬 슬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 토끼들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놀았던 추억과 동시에 절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매우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여자 선생님이 방과 후에 장례식을 한다고 해서, 참가는 임의였지만 코마치는 친구들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작고 조촐한 장례식은 운동장 한 구석, 나무가 무성해 하루 내내 그림자가 지는 그런 곳에서 치러졌다. 실은 토끼우리에서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뭔가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소문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들었다.
  저녁하늘에 주홍색으로 물든 흙은, 한 곳만이 파내진 듯 검붉은 색이라, 거기에 시체가 매장됐다는 것이 싫어도 상상되었다. 등교 중에 가끔 보이는 고양이의 흉한 시체를 떠올리고는,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
  장례식에는 코마치와 동갑만한 여자애가 몇 명이나 모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거나 눈물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선생님이 손을 모아 기도하자고 해서, 그 말에 따라 코마치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막 닫히기 직전, 그 인형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넘기고 기도를 마친 다음, 눈을 바로 뜬다.

  ......역시 그녀는 그대로였다.

  반듯한 얼굴이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고, 단지 잠시 멈춰 서서 파내진 부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등골이 쭉 뻗은 깔끔한 예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아, 도저히 토끼들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은 토끼들을 향한 애도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그녀는 붕 떠있었다. 어째서 저런 표정으로 있을 수 있지?
  그걸 보며 앞머리가 흔들리는 그녀의 얼굴 옆을 보고 있으면, 부글부글하고 분노가 복받쳐온다. 일단 자각한 분노는 한 방울의 먹처럼 서서히 하얀색을 침식해간다.
  왜 그녀가 이 장례식에 참가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긴 토끼들을 애도하려고 모인 곳이다. 그렇다면 슬퍼해야 하고, 아니면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토끼들에게 실례다.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아서, 실제로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내일로 접어두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결심하고 교실을 찾아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애를 붙잡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와서 이름을 모르는 것을 깨달았다. 실례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인형」 같은 여자애라고 묻자, 여자애는 한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바로 납득하고,


「아아-, 아카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어딘가 갔어.」


  라고 했다.
  딱히 그녀에게 잘못은 없지만, 왠지 자신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메슥메슥한 코마치는, 그녀――키리바나 아카네라 불리는 소녀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분위기가 느슨해진 직원실에, 상급생밖에 없는 위층. 급식실에 도서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어서, 한숨을 쉬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여기저기 전부 학생 투성이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피부색과 흙색이 비슷한 탓인지, 멀리서 보면 빨강이나 파란색만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에게 가서 그 얼굴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하고, 가끔 다른 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며 운동장을 헤매다가, 역시 발견하지 못해서 포기하려던 참에, 코마치는 겨우 아카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운동장 구석에 있었다. 나무들의 술렁임과 멀리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는 마치 잊혀진 듯 아카네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그 토끼들의 무덤이었다. 어제 일이었는데 코마치 기억의 한쪽 구석에 놔둔 탓에, 왠지 모르게 떠올리기 어려운 장소.
  그곳에서, 그녀는 어제처럼 감정 없이,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하듯이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약간 얼굴에 비쳐, 반듯한 얼굴이 보다 선명해진다.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말을 걸기 어려워서, 화내는 걸 또 다음날로 미루고 말았다. 왠지 미룰 뿐이라 생각하며 또 다음날 점심시간에 만나러 가자, 그녀는 정해진 듯이 토끼 무덤 앞에 서서, 코마치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애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색이 없는 눈물을 아카네는 그 날부터 계속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코마치 안에 뒤틀려 있던 감정이 깎아내려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미 그 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그런데도 코마치는 아카네가 매일 성묘하는 모습을 보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작은 등에 대고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매일 여기에 오는 거야?」


  등이 흔들리고, 얼마간 침묵한 뒤,


「이 아이들이 죽고,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천국에서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빌고 싶었던 거예요.」


  거기에 있던 것은, 인형도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연약한 여자애였다.
  정말 서투른 애다. 그렇게 사후의 행복을 비는 시점에서 이미 슬퍼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마치는 아직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회에서는 속마음을 감춰두고,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틀림없이 모두 그러겠지. 하지만 코마치 주변에서 이제 죽은 토끼 얘기를 하는 애는 없다. 싫은 일을 점점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내고 있다.
  무엇이 아카네를 그렇게까지 움직이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사소한 죄책감을 질질 끌만큼, 연약한 여자애라는 것은 알았다. 엄청 상냥한 애라는 것도.
  슬퍼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그녀는, 죄책감에 짓눌리며, 역시 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 애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코마치는 이 때 생각했다. 서투르고, 약하고, 그리고 누구보다 상냥한 애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로부터 잠시 뒤, 코마치는 이윽고 그 인형――키리바나 아카네와 친구가 되었다. 어째서인지 오빠인 하치만과 아카네가 먼저 만나서, 소개받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 아카네와 친해지고,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어, 좋은 부분도 싫은 부분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중학교에 올라가,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카네는 마침내, 그 전부 들킨 짝사랑을 성취해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만약 오빠랑 결혼하면, 코마치는 아카네 여동생이 되는 걸까?」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로 옮기자, 아카네는 한 쪽 팔꿈치를 댄 채로 한숨을 쉬고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다른 쪽을 보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컵의 얼음을 돌리는 탓에, 달그락달그락대는 소리가 나고 있다.
  그렇게 나른하게 있는 모습은 엄청 그림이 되지만, 코마치가 기대한 귀여운 반응이 아니라 약간 뾰로통해졌다. 오빠와 아카네가 사귄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주 놀린 탓인지, 아카네도 꽤 익숙해져서, 적당히 넘기게 되었다.
  8월 중순의 3시. 수험생인 코마치와 아카네는 예외 없이 일반적으로, 큰 예비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진 수업이 겨우 끝나고 빠져 나와, 자습실을 향해 라이벌들을 배웅하고, 우리들은 찻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코마치는 평소처럼 오렌지 주스를, 아카네는 카페오레를 주문해서 둘이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는데, 역시 이야기는 오빠와 아카네 얘기로 가고 말았다.


「아 그래도, 나는 역시 이제 와서 언니는 되고 싶지 않은데」


  코마치는 얘기가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카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후회를 조금 머금으며 아카네는 가슴 속 깊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표정은 왠지 후련했다. 그대로 뭔가 생각난 듯이 코마치에게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카네의 어깨에 비단 같은 흑발이 사르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까, 코마치가 생일이 빠르니, 내가 여동생이 되지 않아?」

「아니 시동생 언니 관계는 아마도 그런 기준이 아니야...... 아 그래도, 아카네가 여동생이라는 건 뭔가 신선할지도!」


  초등학생까지 코마치와 아카네의 키는 거의 비슷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 아카네의 키가 부쩍부쩍 자란 탓에, 둘이서 걷고 있으면 아카네가 연상 취급받는 때가 꽤 많아졌다.
  그것과 관해서는 큰 키나 용모 때문에 그런 거라 별로 신경 쓰진 않고, 그럴 만큼 사이가 좋다고 생각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다만 코마치는 계속 여동생으로 자라온 탓에, 따라서 「언니」로 불리는 것을 동경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아카네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그녀의 입으로 들으면, 둥실둥실해서 아무래도 침착되지 않는다.
  눈앞에서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는 아카네를 본다. 처음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커지고, 몸매도 여자다워진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졌다.
  옛날에도 인형처럼 예뻤지만, 현재는 보통으로 귀여운 여자애가 되었다. 본인이 내심 신경 쓰는 키도, 그녀의 얼굴과는 매우 잘 어울려서 걱정하진 않지만, 키가 작은 코마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고민이므로 그 자리에서는 위로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년 정도 있으면 그걸 알아차릴 거고.
  그런 그녀의 키는 최근 겨우 멈춘 것 같아서, 아카네는 신체 측정 결과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드물게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묻자, 「키가 큰 건, 할머니 대부터 물려받은 최악의 유산이니까」라며 몹시 야단스럽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카네의 할머니는, 아카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은 없지만, 한 번 생전의 사진을 아카네의 할아버지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처음에 본 무서운 아카네가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은 할머니는, 확실히 여자치고는 키가 컸던 것 같다. 거기에 아카네의 숙모도 손발이 늘씬하게 긴 장신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키가 큰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유전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게 사소한 것을 나쁜 유산이라고까지 말하며 이제는 없는 할머니에게 악담하는 아카네는 평소보다 훨씬 아이 같아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심결에 미소가 흘러넘친다. 그야말로 여동생처럼 사랑스러웠다.
  그런 코마치의 모습을 아카네는 이상한 듯이 보고 있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카페오레와 커피 우유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잘 모를 의문을 코마치에게 던졌다. 혹시, 방금 전 얘기는 농담이라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아카네는 농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코마치는 몇 할 정도 소망이 섞여있다. 언젠가 앞으로, 아카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코마치가 품게 된 소망 중 하나니까.
  만약 코마치의 소망이 실현되어, 아카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은 남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우는 게 서투르니까, 대신 기쁜 눈물을 많이 흘려주려고 한다.

 


  오래간만입니다, 플뤼겔입니다.

  본편 최종회에서 쓴 대로, 지금부터 예외편이 됩니다.
  전 5화 중 1화입니다.

  이야기가 좀 바뀝니다만, 이번부터 개행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실은 본편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의외로 양이 많아서 예외편만 했습니다.

  그러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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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편 그 1 ~올바르게 그녀를 소개하는 방법~



  14세. 그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위치한 연령이며, 따라서 사춘기라 불리는 복잡한 감정을 갖는다. 에반게리온을 탈 수 있는 것도 이 나이 뿐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간 어른스러운 면이 보이는 연령대. 남자는 점점 소년만화를 졸업하고, 중2병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반대로 여자는 점점 여자다워지기 시작해서 로리콘을 절망시킨다.
  그들, 그녀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자신이 애가 아니라는 자의식이고, 그래서 남녀 모두 몹시 발돋움을 하는 녀석들이 많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그건 역시 그저 흉내다. 담배를 입에 물어도 연기만 낼 뿐이고, 연애 같은 건 서로의 관계를 점차 깊게 해갈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역시 애이며, 사회도 상식도 모르는 이 연령대는 불안정하면서도 행동력이 있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훔친 오토바이로 질주하거나 밤에 학교 유리창을 깨고 돌아다니거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른들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탓인지, 14세 여자애가 모친이 된 드라마도 방송되거나 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세상이 보는 14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애, 한 단어로 축약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아무리 용모가 어른스러워도, 14세는 14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와 사귀는 고교생은 사회에서 조금 차가운 시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겨우 2살, 2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나이 차이는 큰 게 아니게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차이다. 그러고 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28세를 30이라고 하니 엄청 상처받은 표정을 하셨지. ......어쨌든 여중생 입장에서는, 고등학생과 사귀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로 스테이터스일지도 모르지만, 남고생 입장에서 여중생과 사귄다는 건 역시 좀 찔린다.
  즉, 비록 그렇게 들떠 버릴만한 사태에 빠져도, 쓸데없이 퍼뜨리지 말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려두는 편이 좋다. 그런 친구들 거의 없지만.


―――――――


「그 영화, 역시 별로 재미없었죠?」


  날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는, 그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신난 모습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점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보다 한층 더 눈부셔진 7월 중순. 학생 최대의 이벤트인 여름방학...... 시험이 끝나고 처음 휴일인 오늘, 나는 키리바나와 같이 밖에 나왔다. 서로 학기 기말 시험을 극복해낸, 그 포상이라는 거다.
  덧붙여서 지금까지의 정기시험과 달리 유키노시타라는 강력한 두뇌를 얻은 나와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스파르타 교육을 필사적으로 견뎌, 자기채점 결과 어떻게든 낙제점을 면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키노시타가 가정교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저것보다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사전에 재미없다는 걸 알았으면, 다른 걸 보는 게 나았잖아.」

「그래도, 어느 의미로는 재미있었어요.」

「그건, 재미의 의미가 다를 뿐이겠지.」


  시험이 끝나고 놀러가는 것은 미리 정했기 때문에, 시험 공부하는 사이 어디에 갈지 생각하기도 했다. 꽤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즈에 선배에게 상담했다.
  순애 사고계 빗치라는 드문 장르의 선배라면, 정통파 데이트를 몇 명과 반복했을 테니,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줄 거라는 기대를 담아서이다. 뭐, 배신당했지만.
  이즈에 선배는 히죽히죽하고 놀리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청춘이구나~」하고서는, 장식된 학교 지정 가방에서 A4파일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파일 안에 든 종이를 꺼내보자, 최근 출시된 영화 광고지였다.
  평소 하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선배는 「이 광고지에 있는 영화는 전부 글러먹었으니까, 절대 추천이야」라며 모순된 단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쓰레기 영화 애호가였지.
  어쩐지 이런 취미가 있어서 남친과 자주 헤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그 미소에 굴복해 광고지를 받아 버렸으므로, 키리바나에게 갈지 말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OK가 나왔다. 뭔가 나쁜 취미에 빠질 것 같아서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영화관까지 원정을 왔지만...... 아무튼, 영화는 기대 대로라고 할지, 아니나 다를까였다.
  모처럼의 휴일인 것도 있어서, 영화관에는 부부나 친구 등 많은 사람으로 흘러넘쳤음에도, 우리들이 들어온 관은 놀라울 정도로 관객이 적어, 우리들 외에는 2, 3조밖에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손님들도 극장에서 나오자 한결처럼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영화관에서 나온 뒤는, 갈 곳도 없이 오락가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며칠 전에 장마가 개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오전부터 태양이 번쩍번쩍 빛나, 건물 유리를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 아침 특유의 맑은 공기가 어딘가 기분 좋았다.


「그래서, 이후는 어떻게 할까? 아직 밥 먹기에는 좀 빠르잖아.」

「그러네요...... 하치만 오빠는 평소에 어디에 가나요?」


  한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키리바나가 꾸밈없이 묻는다. 그런 모습임에도 키리바나는 땀을 흘리진 않아 보인다. 나는 더위에 습격당해서, 이미 땀이 몇 방울 흐르고 있는데, 여자애는 불가사의하다.


「그렇게 물어봐도 딱히. 나도 서점이나 도서관 정도밖에 안 가. ......남은 건, 게임센터 정도군.」

「게임센터...인가요? 그러고 보니 거기 간 적이 없어요.」

「그래? 친구와 스티커 사진 같은 거 안 찍어봤어?」


  여중생들은, 놀러갈 때 스티커 사진 같은 걸 찍는 이미지가 있던데. 중학교 때도 스티커 사진 교환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 같고.
 코마치도 가끔 키리바나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내게 보이며, 「얘 귀엽지?」라고 물어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른다. 실제로 귀여우면 대답할 여지가 있지만, 사진이 미묘할 경우 실물은 거의 유감이기 때문에. 「아, 아무튼... 귀엽지 않겠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츤데레가 아니라.


「요즘에는 게임센터가 아니어도, 스티커 사진기는 있으니까요. 우리들이라면 그쪽이 가기 쉬워요.」


  뭐 게임센터라는 곳은 불량 집합소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피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웃로는 아무래도 놓치기 쉬우니까. 반대로 쿠와타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 쿠와타라는 야구 선수가 「아웃로는 필요 없어요. 정중앙으로 160킬로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 부근 숙녀 옷 판매점 옆에, 스티커 사진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스티커 사진 구역이 남자 금지가 된 것 같지만, 저런 곳에 놔두면 남잔 애초에 안 갈 거다.


「모처럼 얘기가 나왔으니, 게임센터라도 갈까요?」


  키리바나가 발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서, 그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가기 힘들지 않으려나?」

「남자와 함께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을까요?」


  뒤돌아서 내게 웃어주고는, 그대로 발을 멈추지 않고 키리바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게임센터라는 말을 듣고 한 남자 얼굴이 멋대로 떠올랐지만, 그 표정이 매우 괘씸해서 밟아주고는 키리바나의 뒤를 따라갔다.


―――――――


  역에서 조금 걷자, 주위의 화려함에 분간이 안 되는 여러 건물이 있었다. 가까이는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라면집이 북적거리는 중, 끊임없이 전자음이 울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거리의 게임센터다.
  술집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하고, 고교생이나 중학생 나머지는 다니던 길로 다니는 가족동반이 하나 둘 정도 있을 뿐이었다. 저녁 이후의 술 담배 냄새와는 또 다른, 젊음과 따뜻함 그리고 음침함이 섞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키리바나가 게임센터로 연결되는 자동문을 보며, 감개 깊은 듯 눈을 떴다.


「뭐야, 와본 적 없었어?」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여자가 볼 일도 없이 들어갈 곳이 아니라구요.」


  토라진 듯 대답하고, 키리바나는 약간 더러운 자동문을 빠져나갔다.
  나도 키리바나를 쫓듯이 점내에 들어가자, 홍수 같은 소리가 일제히 덮쳤다. 메달이 서로 스치는 소리, 고저음이 얽힌 전자음에 소란스러운 사람 목소리, 그것들이 합쳐진 불협화음이 하나가 되어 귀에 닿는다. 그러나, 그 어수선함이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키리바나는 평소 그대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잡음의 물결에 삼켜지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 놀란 모습으로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접한다.


「왠지, 여러 가게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의외로 깔끔하게 녹아들었잖아.」


  여기 게임센터는 남자취미인 격투기나 음악게임, WCCF 등 그리고 여자취미인 크레인 게임이나 스티커 사진 구역을 철저히 나누었다. 최근에는 커플이나 여자 그룹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싶어서인지, 입구에 크레인 게임을 배치하고, 나머지를 양극단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커플 한 조가 있고, 남친이 봉제인형을 잡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 팔의 행방을 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자, 단골인 듯한 사람들이 벌써 눌러 앉아서, 각자 묵묵히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청결감이 넘치는 하얀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스티커 사진관이 모여 있는 남자금지 구역으로 발을 디딘다. 네온 라이트 같은 빛이 끊임없이 깜박이는 여기는, 방심하면 빛에 빠져버릴 정도다. 그 눈부심을 키리바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바람으로, 안쪽에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년 전에 도촬인가 뭔가 해서, 이 구역은 커플이 아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는 흥에 취한 중고생이나 술 마신 대학생이, 남자 그룹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광경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엄청 갸루 같은 여자애가 그려진 커튼에 압도되면서 우왕좌왕 거리고 있었는데, 「여기예요.」라며 키리바나가 손을 잡아당긴다.
  너무 갸루 같은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시 여자답게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그나저나, 갸루=스티커 사진이라는 발상이 낡구만.
  키리바나가 적당히 고른 곳으로 들어갔더니, 조명 사진기를 조금 넓혀, 엄청 호화롭게 만든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터치 패널에는 유이가하마가 좋아할만한 발랄한 자체가 떠 있었다. 눈이 아프다.
  돈을 넣고 키리바나가 조작하자, 여러 프레임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와서 키리바나가 내게 물어본다.


「하치만 오빠, 어떤 게 좋아요?」

「잘 모르니까, 적당히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난처한데요......」


  눈썹을 바싹 오므리고 대답하면서도, 키리바나는 아-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하며 즐거운 듯 고민하면서 화면의 프레임을 바꿔간다.


「그래도 하치만 오빤 눈 탓에 카메라를 잘 못 받아서, 조금 손해네요.」

「야」

「농담이에요. ......그럼 이렇게 눈을 숨겨보면, 의외로 멋지게 찍힐지도 몰라요. 봐요, 저도 하고 있고」


  팔을 들어 올려서, 눈앞에 두고 눈을 가린다.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입 끝이 풀어진 것을 보면, 진짜 농담이리라. 하지만 그거다. 아무래도 그거로밖에 안 보였다.


「나는 상관없지만, 넌 절대로 하지 마.」


  무심코, 말이 세게 뛰쳐나온다.
  남자가 그렇게 가리는 것은 별로 문제없지만, 여자애가 눈을 가려버리면, 그걸로 밖에 안 보여서 큰 문제다.
  키리바나는 내 말에 몹시 놀라, 머리를 크게 갸우뚱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뭔지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거야 그렇다.
  그대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화면을 누르고 설정을 진행시키고는, 「이거면 괜찮아요.」하고,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딱딱한 미소를 짓고, 기계에서 흐르는 전자음에 따라서 몇 장정도 찍은 뒤에 밖으로 나오자, 찍은 사람이 편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키리바나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해간다. 키리바나는 눈의 썩은 상태를 어떻게든 줄일 수 없는지 고집스럽게, 여러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마침 반짝반짝을 눈 옆에 배치하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키리바나에게 말을 해두고, 스티커 사진 구역에서 나왔다. 역시 게임센터에서 스티커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따분하다. 적당히 놀 필요가 있다. 키리바나가 뭔가 마음에 들만한 게 없는지, 크레인 게임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 저 자는. .....하치만이 아닌가!」


  엄청 숨 막힐 듯 더운 소리에 불려 마지못해 뒤돌아봤더니, 거기에는 목소리대로 숨 막힐 듯 더운 풍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녀석,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그 거체를 흔들며 나에게 왔다.


「뭐야, 자이모쿠자인가......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특별히 없네! 단지 하치만의 얼굴이 보였으므로, 무심코 말을 걸었을 뿐이다.」

「어째서 넌, 그런 면만 여자 같은 거냐...... 기분 나쁘구만. 너도 놀러온 거 아냐?」


  그 목소리와 풍모이면서, 자켓을 겉에 두른 탓에,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이 녀석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매우 덥다.


「음, 역시 창작에는 인풋이 중요하니까 말이지. 백지와 마주 보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에 접해서 창조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글이 전혀 진행 안 돼서, 현실 도피로 놀고 있다는 건가.」

「그, 그렇게도 말하지......흠. 자네도 나처럼 혼자인가?」

「아아, 아니...... 저거다.」


  무심코 말끝을 흐려버린다. 이 녀석에게는 애초에 키리바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거기에 사귄다는 것을 말하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가만히 자이모쿠자를 본다. 말투로 보아 키리바나와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대면시켜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그보다, 이 자식과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긴 한가?
  우선 적당히 여길 떠나, 키리바나를 데리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피난하기로 할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하치만 오빠.」


  그렇게 생각해서 입을 열려고 한 참에, 키리바나의 맑은 목소리가 자이모쿠자에게 닿았다. ......타이밍 나쁘구만.
  키리바나는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눈을 깜박인 뒤 슬쩍 나를 엿본다. 그리고 마침 입을 뻐끔뻐끔하던 자이모쿠자를 무감동한 시선으로 찬찬히 보았다.


「......친구 분과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저는 실례하겠어요.」

「어이 이봐, 도망치지 마」


  그대로 몸을 돌려 피난 가려는 키리바나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멈춰 세운다. 호리호리하고 하얀 팔은, 서늘했다.
  키리바나는 입을 뾰족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른 방향을 계속 보고서 말했다.


「보세요, 친구 분도 기다리는 것 같고, 모처럼이니 느긋하게 얘기해주세요.」

「나도,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지쳐. 너 자이모쿠자한테 들킨 시점부터 나와 같은 운명이야.」

「그래도 저, 이런 분은 서툴러서, 무슨 얘길 해야 좋을지 몰라요.」

「.....우선 목소리를 낮춰. 이 녀석, 의외로 쉽게 상처받아」


  봐, 자이모쿠자가 약간 울상 짓고 있잖아.
  키리바나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내 옆에 서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팔을 놓는다.
  자이모쿠자는 아직도 입을 허 하니 벌린 채, 팔을 바들바들 털고는 키리바나를 가리키면서


「하, 하치만...... 이 부인은?」


  키리바나의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진 게 느껴졌다.


「부인이라니, 얘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아아, 저거다...... 키리바나라고 하는데, 여동생의 친구이자...... 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추가된 새로운 직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일단 키리바나에게 눈짓을 보냈더니, 딱히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이모쿠자의 마음을 더 자극했는지, 「켁, 리얼충이」라고 밉살스럽게 내뱉고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하치만, 잘못 봤네. 나와 함께 동정 친화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안 그랬거든, 그럴 생각도 없어. 그리고 넌 믿지 마」


  키리바나가 진심으로 깬다는 게 느껴져서, 부인해둔다.
  자이모쿠자는, 마치 목성에서 돌아온 듯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가슴을 뒤로 젖히고는, 엄청 과장되게 양손을 벌렸다. 배의 지방이 물컹 흔들린다.


「동정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리얼충들에게 무엇이 가능하지? 항상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한 줌의 동정이다.」

「틀려. 그보다 동정이라면 세상을 만든다 쳐도, 후세를 못 남기잖아.」

「애당초, 이 소녀의 어디에 연하 소꿉친구 요소가 있다는 것인가?」


  키리바나가 연하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쓸데없이 강하게 되묻는다. 상쾌할 정도로 비열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좋아하게 되진 않겠지만.


「네? 저 말인가요?」


  설마 자신에게 화제가 돌아온다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근처 유리 안에 들어있는 봉제인형을 보고 있던 키리바나가,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본다.
  오늘의 키리바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에, 반소매 블라우스를 맞춰 입은 모습이라, 뭐 어른스러운 차림이지만.
  눈을 깜박한 키리바나가, 나와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이모쿠자는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돌리고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데 하치만, 이 애와는 집이 가까운가?」

「아니. 걸어서 10분 정도다.」

「훗, 그 거리로 소꿉친구라니. 아다치 선생님이 들으면 폭소하겠군.」

「그거 거의 맞닿은 이미지잖아. H2라면 집이 좀 떨어져 있잖아.」


  애초에 이웃에 동갑내기 여자가 사는 편이 드물잖아. 유유백서도 소꿉친구 설정이지만, 집은 멀리 있고.
  키리바나는 느낌이 바로 오지 않은 건지 「술집 자식이라고?」라는 둥 잘 모를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응, 왜 영웅만 아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연하인데, 로리 얼굴이 아닌데다가 쓸데없이 키가 크고...... 무엇보다 하치만을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지 않잖나」

※ 역주 : 키리바나가 하치만을 부르던 호칭은 원래 ~さん인데, 우리말에 딱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어서 둘의 관계를 고려해, 번역할 때 오빠라고 했었습니다.

  한층 더 키리바나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아니, 여동생의 친구에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게 하면, 범죄잖아.」


  그래도 아무튼, 자이모쿠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조금은 알겠다. 얘는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그것에 비례해서 얼굴 생김새나 언동이 매우 어른스럽다. 교복을 입지 않으면 가끔 중학생이라는 것을 진짜로 까먹을 것 같다.
  옆에 선 키리바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어깨까지 뻗은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다소 짧아졌지만, 묶진 않는다. 계속 스트레이트이다.
  ......그래서일까, 키리바나는 자연히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키리바나는 연하 요소가 거의 없구만.


「알겠나, 하치만. 연하 소꿉친구라는 것은, 단발에 키가 작고, 거기에 가슴도 없지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불러주는, 그런 애가 좋은 것이야. 오빠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안타까움, 그것이 최고인 게다. 그런 옆집 누나 같은 연하 소꿉친구 따윈, 결국은 이류다.」


「......네네, 그럼 다음에 그런 라노베라도 써봐.」


  그거, 거의 자이모쿠자의 희망이잖아.
  그런 기분 나쁜 망상을 들은 키리바나는, 얼굴을 내내 찡그리고 있었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표정이 확 밝아져서는,


「......그렇다면, 저기, 자이모쿠자이 분이 말씀하신 소꿉친구 요소에, 하나 들어맞는 게 제게 있어요.」

「흣, 흠. 뭔가?」

「이름, 미묘하게 잘못됐어.」


  그런 내 잔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키리바나는, 코마치 같은 미소를 띠고는, 슥하고 나와 팔짱을 끼며,


「저, 어릴 때부터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아이처럼 슬쩍 혀를 내밀었다.


「......」

「......」


  그 후에 울려 퍼진 자이모쿠자의 무슨 말인지 모를 비명을 들으며, 최근 알게 된 키리바나의 뜻밖의 일면을 떠올린다.
  ......키리바나는 꽤나, 장난꾸러기인 듯하다.




  캐릭터 창작법




  캐릭터를 만드는 법이 쓰여 있는 지도서나 인터넷 정보에서, 흔히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100가지 질문」이나 「이력서를 만들자」라는 제목이 눈에 뜨입니다. 그 중에는 주사위를 굴려 성격이나 외모를 결정해간다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해보면 확실히 캐릭터는 완성되지만, 매력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인가 아닌가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캐릭터의 세부 요소를 설정하는 것은, 중심이 되는 설정이 완성된 뒤의 이야기이며, 세부만 파고 든 캐릭터에 매력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캐릭터의 핵심이 되는 설정 구축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거침없이 캐릭터를 세울(立てる;정립하다) 수밖에 없습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도 「클라라가 섰다」고 소동을 부렸었죠?

  어? 그런 의미로 선 게 아니잖아?
  라고 하지만 「그 선 게 아니잖아!」하며 모니터에 태클을 건 독자는 캐릭터가 섰을지도(정립됐을지도) 모릅니다.

  본론으로 넘어가서.
  작품에서 「캐릭터가 선다(이하 정립으로 표기)」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캐릭터의 매력적인 특징이나 재미있는 점이 생각대로 그려진 것으로, 존재만으로도 독자의 기대나 흥분을 높여주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라이트 노벨 안에는 츤데레라고 불리는 히로인이 산처럼 존재합니다만, 설정만을 개별적으로 뽑아내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100가지 질문」이나 「이력서를 만들자」로 만들어내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일부 츤데레 히로인은 매우 매력적이죠?

  그것은 작품을 통해 캐릭터를 정립하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캐릭터는 홀로 정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등장인물과의 차이를 묘사하는 것으로밖에 캐릭터를 정립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가 아닌 복수의 캐릭터에 의한 밸런스가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100가지 질문」이나 「이력서를 만들자」는 방법으로써 올바르며, 문제는 만들어진 캐릭터를 어떻게 정립하는가 하는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무작위로 캐릭터를 만들어서는 운의 요소가 너무 강합니다. 여기서는 등장 캐릭터의 배치에 주목해서 성격을 결정해갑시다.

  방법론으로써는 가장 먼저 주인공을 만듭니다. 다음 캐릭터를 만들 때는 주인공의 성격과 다른 「요소」를 고릅니다. 이것으로 적어도 주인공과는 겹치지 않는 캐릭터가 완성되겠죠? 또 주인공과 반대되는 요소를 가지게 되므로, 작품에서 만났을 때 「대비(対比)」가 서로를 부각시켜 주게 됩니다. ※ 이 때 주인공은 할 수 있는 한 평범한(공감하기 쉬운) 성격으로 하고, 주변 조역들을 엉뚱한 캐릭터로 만드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대비「소극적인 주인공×적극적인 히로인」
・비교「청초하고 조신한 여자애×팔방미인인 여자 반장×천연계에 활발한 여자애」
・대립「히로인을 좋아하는 주인공×히로인을 좋아하는 호적수 라이벌」


  개개의 캐릭터 설정보다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우선해봅시다.
  그것만으로도 평범한 설정의 캐릭터가 2, 3배씩이나 매력적이게 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 없는 매력을 지닌 캐릭터가 탄생할지도 모릅니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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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의 역할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소설은 현격히 재미있어집니다.
  특히 라이트 노벨에서는 「캐릭터의 매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등장인물 전원을 대활약 시켜서는 작품의 주인공을 잃는 것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각각의 역할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등장인물의 역할을 이해해둡시다.

  등장인물에게는 어떠한 역할이 있을까요?



・주역
・조역
・악역



  크게 나누어 등장인물은 상기한 세 종류 중 무언가를 담당하게 됩니다. 준 주역급은 조역에 할당하는 편이 역할이 명확해지고, 악역도 대보스가 있다면 소보스·중간보스는 조역이면 됩니다.

  각각의 역할에 요구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주역

  작품을 통해 성장해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성숙한 캐릭터(뭔가 결점이 있다)가 바람직합니다. 만약 완전무결한 최강 주인공을 만든다면 극복해야하는 트라우마 등, 뭔가 변할 여지나 가능성을 준비해둬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까지나 아무것도 변함없는 주역은 독자가 질려버리기 때문입니다. ※ 단 이것은 일반적인 창작론으로 「소설가가 되자」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조역

  등장기회가 적기 때문에 더욱 명확한 목적을 갖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출연시켜봤다 이런 캐릭터는 행동이 불안정해져, 이야기 도중에 언동이 이랬다저랬다 해서, 최악의 경우는 없어도 상관없는 상황에 빠지고 맙니다. 예를 들면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이 다하기 전에 최고의 칼을 만들고 싶은 대장간 직공」이나 「학생보다 혼활을 우선하는 여교사」라고 설정하면, 주역과 관련해서 언동이 이상해질 가능성이 낮아지고, 무엇보다도 주역과 차별화함으로써 조역밖에 할 수 없는 「맛(특성)」을 낼 수 있습니다. 또 주역과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조역이 등장하는 것으로 차이점을 부각하기 쉬워집니다. 예를 들면 A, B, C, D, E의 선택사항이 있다고 치고, 등장인물 전원이 A를 선택할 것 같은 이야기는 재미있진 않겠죠? 여러 가지 이유로 각각의 선택사항이 다르기 때문이야말로 작품의 재미가 솟아납니다.



・악역

  주역과 대립하는 존재이기에 「주인공과의 인연(운명)」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악역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악역을 주역에게 쓰러질 뿐인 존재로만 만들어선 안 됩니다. 또한 악역의 존재를 어떻게 취급할지 여부로 작품의 결말은 크게 바뀝니다. 주역과 악역 각자가 품은 목적의 차이가 충돌을 격화시켜, 독자에게 여러 감정이나 카타르시스를 주게 됩니다. ※ 기본적으로 악역은 주역을 압도적으로 웃도는 능력이나 환경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넘어야 할 벽이 높은 만큼 달성감도 높아지기 때문인 게 당연하겠지요.



・정리

  역전 만루 홈런을 치는 것은 주역이지만, 그 상황(9회 말 투 아웃 만루)을 연출해주는 것은 조역이며, 마운드에 서 있는 것이 절대목표 에이스인 악역이라는 관계성이겠죠. 각각의 역할을 정해서 아무도 빠진 요소가 없는 등장인물들을 그려봅시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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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템포


  글의 템포는 글쓰기보다 독서 느낌으로 생각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글쓰기 뇌」로 생각하면 장황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10행으로 전해지는 설명이라면 10행으로 마쳐야 하며, 그만 자기도 모르게 3장 분량으로 쓰고 마는 것은 역시 작자의 자기만족일 수밖에 없습니다.

  묘사 과다는 글쓰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중급자 이상인 사람이 흔히 보입니다.
  사고・감정・정경을 쓸 수 있게 되어, 그 기술을 발휘하려다가 빠지는 증상이지요.
  처방전은 짧은 문구로 글에 줘보는 것이려나요?
  단문은 옛날부터 자주 쓰이는 「읽기 쉬운 글」의 기본이니까요. 하지만 소설에서는 약간 사정이 달라집니다. 왜냐면 누구에게도 잘 전해지는 단문만으로는 개성을 나타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아래의 글을 읽어주세요.


『가지볶음나물반찬다싫다네라면은없는가마트에서사오거라바로지금사오거라사발면은싫다네, 아저씨한테봉지라면으로달라해라자어서물을끓여라차가운물을끓여라카와이하게끓여라타지않게끓여라파워하게먹어주마하맛있었다』


  ※ 역자 : 원문은 이게 아니지만 그나마 적절해 보이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는 글 밑에 밝히겠습니다.


밑은 원문

『あいうえおかきくけこさしすせそたちつてとなにぬねのはひふへほまみむめもやゆよらりるれろわをんあいうえおかきくけ、あいうえおかきくけこさしすせそたちつてとなにぬねのはひふへほまみむめもやゆよらりるれろわをんあいうえおかきくけこさしすせそたちつてと』


  선입견을 갖지 않게 글을 오심음으로 옮겨놨습니다만, 글자 수와 쉼표 수나 위치는 원문과 같이 했습니다. 덧붙여서 작품 속에서 강조로 이용된 장문이 아니라, 이 정도로 긴 문장과 쉼표 비율이 작중에서 빈번하게 쓰입니다.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120자 안에 쉼표가 하나밖에 없어서, 이걸 단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어쩌면 장황해서 읽기 어렵다고 느끼신 분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의 재미있는 면이기도 합니다. 즉 난해한 조어나 쉬지 못하게 하는 듯한 장문을 겹침으로써, 독특한 리듬을 낳는다는 수단도 성립하는 것입니다. ※ 만약 안되면 개고 단계에서 수정당해 버리죠.

  편집자가 말하기를

「글의 좋고 나쁨은 문면만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소설만은 표현이 나빠 보여도 읽지 않으면 모른다.」
  라고 하니다. ※ 모든 편집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템포가 뛰어난 글을 쓰는 기본은 단문으로 리듬을 넣는 것입니다.
  한 문장의 길이와 쉼표 양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템포는 현격히 좋아집니다. 또 가볍게 읽는 유형의 소설이라면 개행을 여러 번 쓰는 방법도 유효합니다. 시각적인 인상이 상당히 바뀌어서 효과는 일목요연하겠지요.
 
  하지만 단문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장문에 비해 작자의 개성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개선에 가장 자주 이용되고 있을 방법이 수사법이 아닐까요?

  수사법이라는 것은 「비유・도치법・마지막 구를 체언으로 끝내기・반어・반복법・동어 반복」 등을 가리킵니다.
  문장 끝이나 문장의 리듬을 바꿔서 작자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지문이 「각본」같다고 지적된 적이 있는 분이나 말끝이 「~였다」 혹은 「~했다」의 연속인 분들에게라면 추천합니다. 단 템포를 올리기 위해 다용되기 십상인 「마지막 구를 체언으로 끝내기」를 포함한 기법에 너무 기대면 단순히 표현이 나쁜 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반에 쓴 「기술을 쓰려다가」 실패하는 패턴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예를 들면 과자에서 *「버섯산 파」와 「죽순별 파」가 있듯이, 글에서 「단문 파」와 「장문 파」가 예부터 존재합니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말의 의미가 전해지지 않는 경우는 논외입니다만, 그런 게 아니라면 어느 쪽의 글이 템포 좋게 읽을 수 있을지는 취미의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둘 다 초코송이와 비슷한 과자이나 실은 초코송이가 일본과자를 대놓고 베낌.

  다만 웹 소설이나 라이트 노벨을 쓰는 경우는, 우선 단문형으로 글의 흐름을 의식하고, 극히 드물게 장문을 섞어서 글에 간을 내는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습니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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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볶음물반찬싫다네면은없는가트에서사오거라로지금사오거라발면은싫다네, 저씨한테봉지라면으로달라해라어서물을끓여라가운물을끓여라와이하게끓여라지않게끓여라워하게먹어주마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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