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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h off - episode 8 -

2016. 9. 13. 23:05 | Posted by 2ndboost

귀여움은 정의.

하지만

귀여움은 죄악.


(*´ω`*)모큐


=============================================================================================



치바에서 가장 불쌍한 여동생 콘테스트 심사원 특별상을 받은 코마치입니다.
그 이래 오빠의 콘돔을 처리하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쓴이 코마치... 이상하게도 코마치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거기서 다른 아주머니에게 들은 말, 쓰레기통에 비닐봉투를 씌우면 좋다는 귀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눈이 너무나 번쩍 뜨여 슬퍼졌지만 실천해보니 효과가 있어서 우선 안심입니다!
이걸로 언제라도 오빠가 애인과 섹스할 수 있습니다!
왠지 엄청 싫은 선언이구나...
여하튼 사이가 좋은 건 다 쓴 콘돔 개수로 알 수 있지만요...
왠지 이것도 싫은 기준이네...
실제는 어떤지 슬슬 직접 들어보려고 합니다.


「있잖아, 오빠오빠」

「뭔데? 빨리 준비해」


엄청나게 기분 나쁩니다!
지난번의 정액 킥에 아직 원한을 품고 있어요!
코마치의 오빠는 역시 속이 좁아요!


「아직 괜찮은 거야? 여친이랑은 요즘 어떤가~해서 코마치 나름대로 걱정하고 있어.」

「그런 걸 뭘 나한테 묻는 거냐, 메일 주소 알고 있으니 걔한테 물어봐.
그나저나 너한테서 답신 없다고 좀 신경 쓰던데.」

「아~...왜냐면 여친은 오빠한테 반했고... 주책스러운 소리만 보내서 휴지통에 넣어 방치하고 있어.」


처음에 왠지 카 군의 베스트 샷을 달라고 말한 뒤는 오빠가 좋아할만한 걸 물어서, 좀 시끄러운걸.


「오빠의 애인을 폐품 지정하는 게 아냐... 아니, 실제로 폐가 된다면 그대로도 상관없지만... 내가 말해둘까?」

「아, 괜찮아. 할 수 있는 한 답장해볼게...」

「너무 무리하지 마」

「응...」


애인이 생겨도 별로 안 바뀐 것 같아...
아무튼 오빠답지만...


「...코마치, 그 시계 혹시 멈춘 거 아냐?」

「아, 응. 어젯밤부터 건전지 다 닳았어.」

「뭐...? 또 지각이잖아!」

「괜찮다구, 코마치는 빠듯이 시간에 맞는걸.」

「내가 말이다! 빨리 갈아입어!」

「차암, 여동생을 벗기다니 코마치한테 포인트 낮아~」

「그런 말 하고 있을 때냐!」


역시 오빠는 오빠구나... 애인이 생겨도, 거의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다.


「빨리 해!」

「네~에」





「히키오가 멋있어...」


아침부터 멍한 유미코가 중얼거렸다.
어제부터 계속 이 상태.
사브레를 구해줬을 때의 힛키에게 한 눈에 반한 유미코니까, 실제로 자기를 구해준다면 더 그렇겠지...


「유미코, 눈이 황홀해졌다구.」

「나-... 히키오가 남자친구라 다행이야.」

「그래그래」


어제부터 몇 번 들었는지 모를 대사에, 히나도 웃으며 유미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오늘 히키타니 군은?」

「무슨 일인지... 또 여동생이 꾸물대서 늦는다는 것 같아...」


유미코의 핸드폰 배경화면은 하기 싫어하는 듯한 표정의 힛키.
녹아내린 얼굴로 사진을 보고 있어서... 유미코가 얼마나 힛키를 좋아하는지가 가슴이 쓰릴 만큼 전해진다.
그저께 있었던 일로 반에서도 힛키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어, 한 때의 생각으로 사귀는 게 아니라 유미코가 선택할만한 남자라는 위치로 변해있었다...
나만이 아는 힛키가 아니게 되어간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싫다...
유미코는 내가 모르는 힛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히키타니 군의 여동생은 아직 어려? 전에도 꾸물거렸잖아?」

「확실히 중3이라고 했는데, 뭔가 브라콘 같아. 그래서 나- 미움 받는 것 같아.」

「소중한 오빠를 뺏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떼쓰는 거구나.」

「아마도... 아, 오늘 쇼핑 갈 거야.」

「히키타니 군도 같이?」

「아-니, 왠지 학원 둘러보고 싶대서, 가끔씩은 친구랑 놀라고 했거든」


유미코랑 우리들까지 신경써주고 있어...


「히키타니 군 상냥한데~ 난 괜찮아, 유이는?」

「아, 응. 오늘 동아리 쉬는 것 같아서 괜찮아.」


유키농 또 쉰다고 메일 왔고... 몸이 별로 튼튼하지 않은 걸까...?


「그럼 라라포 가자」

「응...」


유키농한테 들은 대로, 슬슬 결말을 지어야 한다...
유미코는 힛키의 애인이지만, 그 이전에 내 소중한 친구니까...





「(*´ω`*)모큐」


역시 판 씨는 최고야.
귀중한 시간을 시시한 부활동으로 구속되고 있으니 가끔씩은 숨 돌리기가 필요하지.
수업은 한 달 빼먹어도 지장 없고.
왜 좀 더 빨리 깨닫지 못했던 걸까...?
우수한 사람일수록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어야 해.


「어머...?」


저기 있는 사람은 유이가하마 양이네.
미우라 양...이었나? 그리고 한 사람 더.
오늘은 동아리를 쉬어 기를 편 거구나.
미우라 양과도 보통으로 접하는 것 같고... 좋은 일이야, 차라리 이대로 동아리도 졸업해줄 수 없겠니.


「유키노 짜~앙!」


......기분 탓이네, 왠지 엄청 싫은 목소리가 들렸어.


「차암! 학교 땡땡이 치고 뭐 하는 거야!」


기분 탓이 아니었어... 도망치자.





전만큼 생각에 잠기지 않고 유미코랑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싫은 마음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져, 이대로 힛키를 많이 좋아하는 마음도 사라져버리는 걸까...
그렇게 되는 쪽이 틀림없이 좋을 텐데, 잊고 싶지 않은 내가 아직 어딘가에 확실히 있어서.
갖다 붙인 미소 속에서 그런 생각만 하고 있다.


「기다려 유키노 짱! 도망쳐도 소용없어! 얘, 달리면 넘어지잖아!」


유미코랑 히나 뒤에서 걷고 있는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뒤돌아보자... 유키농?


「...쫓기는 사람, 유키노시타 아냐?」


큰 소리였기 때문에 유미코도 깨달은 것 같다.


「판 씨 인형 차림으로 판 씨 가방 배고 달리는 사람?
유키노시타가 저런 사람이던가?」

「아, 넘어졌다.」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던 유키농은 100미터도 달리지 못하고 헉헉거리다, 마지막에는 굴러버렸다.
그 체력 없음은 틀림없이 유키농이다.


「저기, 나 잠깐 갔다 올게.」

「유이, 같은 동아리던가?」

「흐-음... 나- 스타벅스 가 있을 거니까」

「응, 미안해.」





「얘! 유키노 짱!」

「기분 탓이야, 착각이야, 나는 판 씨야.」


다가가 보니 팬더 판 씨 후드를 쓰고 거북이처럼 움츠린 유키농을, 엄청 예쁜 여자가 우뚝 서서 혼내고 있다... 얼굴 생김새도 닮았고 언니일까...?


「그럴 리 없잖아!
시즈카 짱한테 학교 안 왔다는 연락 있어서 찾았다고!
학교 땡땡이 치고 판 씨 영화 보고 있었던 거야?!」

「몰라. 당신 누구? 싫어, 괴롭히지 마」


판 씨 장갑으로 귀를 덮고 시러시러 하고 있어... 어쩐지 귀여워... 유키농 신발까지 판 씨로 맞췄구나.


「증말, 이런 데서 이상한 변명하지 마! 와, 집에서 엄마도 엄청 화났으니까!」

「싫어~ 치한이야~!!」

「잠깐, 유키노 짱도 참! 진짜! 언니도 화낼 거야!」


더 웅크려서 소리치는 유키농을 언니가 배에 팔을 둘러서 끌어당기고 있다...
미인이 소란스러워서인지 시선이 집중되어 가까이 가기 어렵다.


「누군가 경찰을 불러줘, 유괴범이 있어요!」

「유~키-노~짜~앙?!!」

「저, 저기... 유키농이 싫어하고 있는데요...」


내 목소리에 반응해 힘이 느슨해졌는지, 유키농은 바둥바둥하며 언니의 팔에서 빠져나와서는 그대로 내 뒤에 숨었다... 유키농 귀여워.


「유이가하마 양 마침 좋을 때 왔어, 이 사람은 유괴범이야. 외모에 속아선 안 돼.」

「외모는 유키노 짱이랑 닮았잖아! 진짜! 보면 알겠지만 자매야, 타인이 아니니까 가족 일에 참견하지 말아줄 수 있겠어?!」


예쁜 사람이 딱딱한 표정을 지으면 엄청 무섭게 느껴지...지만 유키농이 불쌍하니까 용기를 쥐어짜서...


「그게, 그래도 싫어하고 있으니까요...」

「유이가하마 양의 말 대로야, 사람이 싫어하는 짓을 해선 안 된다고 배우지 않았어? 잘못 자란 게 배어나오고 있어, 부모 얼굴을 보고 싶어지네.」


내 뒤에 숨어서 유키농이 반론하고 있다.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 같아서 유키농...귀여운데.


「자란 건 유키노 짱도 함께잖아! 엄마 얼굴도 알고 있잖아! 유이가하마 짱? 안 돼. 유키노 짱한테 속아서 어리광부리게 하면! 귀여운 얼굴 해서는 엄청 음험하니까, 섣불리 머리가 좋아서 뻔들거리거나 나쁜 짓만 하니까!」

「어, 언니 분. 우선 진정하세요...」

「공중의 면전에서 비방 중상을 반복할만한 지인은 없어. 유이가하마 양, 빨리 경찰을 불러야 해.」

「유키농도 진정, 진정해봐...」

「...너희들, 잠시 괜찮겠니?」


경비원이 오고 말았다......


「경비원 님 도와주세요, 저 사람 저를 귀여워 귀여워하고선 어딘가 데려가려고 해요.」


눈물 어린 눈을 치켜뜨고 경비원에게 매달리듯 시선을 보낸다... 강아지 같아서 귀엽다.
두 명에게 온 경비원은 잠시 있다가, 유키농의 모습을 보고 왠지 납득한 것 같아.


「잠시 동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애의 언니예요! 얼굴도 닮았죠?!」

「그런 가슴귀신 언니는 없어요.」


이번에는 유키농 언니의 가슴을 비교해 보고는 끄덕이고 있다... 남자란......


「어쨌든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잠깐, 얘. 유키노 짱, 언니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무서워, 유이가하마 양. 빨리 도망치자.」

「어, 괜찮으려나...」


경비원과 옥신각신하는 언니를 두고, 퐁퐁 걷는 유키농을 뒤쫓는다....유키농 진짜 귀엽구나...





「완전 승리야, 정의는 반드시 이겨.」


진짜 언니 같지만 괜찮을까...


「유키농, 그 사람 유키농 언닌데, 괜찮아?」

「...저런 지인은 없어, 나한테 언니는 없는걸.」


...지금 눈 돌렸어, 다음에 만나면 틀림없이 혼날 텐데...


「오늘... 학교 쉬고 판 씨 보고 있었던 거야?」

「......묵비권을 행사할게.」


부루퉁하게 얼굴을 돌린다. 유키농 진짜 귀여어...


「...유이가하마 양, 어째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니?」


그만 귀여움에 끌려 쓰다듬고 싶어졌다.


「뭐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나, 귀여운걸.」


우쭐거리듯 가슴을 펴지만 그것도 왠지 귀여워서, 유키농은 차갑게 보여지기 십상이지만 속은 이렇게도 귀엽다. 유미코는 힛키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고 더 좋아하게 된 걸까... 난 힛키의 뭘 아는 걸까....?


「유이가하마 양 괴로워, 그만 달라붙어줄 수 있겠니?」


떠올리자 눈물이 나와서, 나는 유키농을 껴안은 채 울고 말았다.





「유이가하마 양, 인형을 입고 있는 나는 매~우 귀엽지만 인형이 아니란다.
매~우 귀여운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괴로워, 껴안지 말아주렴.」


뭐야 이 사람, 언니와 마찬가지로 질이 나빠.
나는 안는 베개가 아닌데... 너무 귀여운 건 죄라는 거?
숨 막힐 듯이 더워, 빨리 떨어져 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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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gh off - episode 7 -

2016. 9. 13. 23:05 | Posted by 2ndboost



이제 한숨은 그만 쉬고 싶어지네.
매일매일 부실 분위기를 나쁘게 하는 이 사람은, 오늘도 소침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아무리 교사의 명령이라 해도, 성가신 사람을 입부시켜버렸다고 지독히 후회해도, 결국 근본적 해결에는 이르지 않는다.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인 바보라고 말한 교사를 때리고 싶어지는 현상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내가 감정대로 입을 열면 천의 폭언이 나오고 만다.
전에 그 말 탓에 소란을 일으켜, 징벌적인 이유로 이런 동아리에 집어넣어져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으니 더 이상의 참상은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폭언을 토하지 않게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고자 한 그 순간, 몹시 망설이는 노크 소리가 귀에 닿았다.


「...들어오세요.」


필요이상으로 상냥해지고 만 목소리에 반응해, 조용히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아, 사이 짱」

「유이가하마...」


본 적이 있는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키가 작고 귀여운 학생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작은 동물 같네.


「유키농, 같은 반인 토츠카 사이 짱」

「그래, 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야」

「안녕... 그게, 히라츠카 선생님이 여기로 가라고 해서...」


또 그 사람... 적당히 해줬으면 한다...


「그러면 너의 고민을 들어볼까...? 여기는 할 수 있는 한 학생의 고민 상담에 응하는 동아리야.」


해결에는 이르지 않겠지만... 귀찮은걸.


「아, 응... 나. 테니스부에 들어가 있고, 여름 대회 뒤에 부장직을 이어받게 될 것 같은데... 3학년 선배가 가면, 강한 부원이 없어져. 그래서 내가 적어도 여름 대회 초전에 이겨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어서」

「개인전에서 초전 돌파가 목표라니 상당히 뜻이 작은 이야기네.」


어머, 무심코 본심이 새어 나왔다.


「아하하... 우리 부는 약해서 선배도 초전 돌파가 한계야. 저기...점심시간 같은 때 연습을 도와줄 수 없을까? 다른 부원한테는 부탁하기 어려워서...」


싫어, 귀찮아.


「응, 맡겨!」

「유이가하마 양...?」

「가끔씩은 운동하지 않으면 안 좋잖아, 건전한 몸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훌륭한 사람도 말했었고」

「유베날리스구나... 그리고 반대야. 그럼 이 건은 유이」

「유키농도 같이 테니스하자아~!」

「고마워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해!」

「........」


또 귀중한 시간을 빼앗겼어... 슬슬 울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인데...




더워... 왜 내가 이런 사태에...


「으윽......」


힘이 약하구나, 차버리고 싶어지는 약골이야...


「사이 짱 힘내!」

「유이가하마 양, 넌 가슴만큼 여유가 있어. 이 상자를 양손아래에 두지 않으면 불공평해.」

「에엑!?」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데 팔꿈치를 살짝 굽힌 것만으로는 팔굽혀펴기라고 할 수 없단다.


「으으...」


팔굽혀펴기 한 번도 할 수 없다니...


「근본적으로 근력과 체력이 충분치 않은 것 같아. 근력 트레이닝과 식사 스케줄을 준비했으니 따라올 수 있겠니?」

「으, 응... 어? 아침부터 닭가슴살 1kg?!」

「그런데도 부족할 정도야. 라켓 자루 같이 가느다란 허벅지로는 한 시합 싸워낼 체력밖에 없다고 공언하는 것과 같아. 우선 근력과 체력 증강 없이는 이야기가 안 돼.」


수영 선수의 식사 리스트를 유용했지만 비슷한 거겠지.


「화, 확실히 시합 중반부터 지쳐... 우응, 해볼게!」

「유키농 스파르타...」

「이 정도는 보통이야, 목표는 윌리엄스 자매」


빨리 몸이 망가져서 의뢰를 그만둬주지 않겠니...?





「유이가하마, 슬슬 가자」

「아, 응」


도시락을 다 먹은 것을 가늠해서 사이 짱이 얘기한다.


「유이가 토츠카랑 볼 일이라니 드무네.」

「으, 응. 동아리로... 사이 짱 테니스 연습을 도와준 거야.」


나와 히나와의 시간도 적어지고 있다.
점심시간에도 나가는 건 좀 말하기 힘들어서...


「헤에....그래? 다녀와」

「미안, 다녀올게.」


조금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미소로 배웅해줘서, 사이 짱이랑 같이 교실에서 나왔다.





「어라? 유키노시타는?」

「앗... 메일 왔다...」


무심코 요즘 주소를 주고받고, 처음으로 유키농한테서 온 메일은...


「근육통으로 오늘은 쉰다고...」

「어... 무리시킨 걸까?」

「그럴지도... 어제 덤벨 옮길 때, 엄청 부들부들하기도 했고...」

「아하하하... 유키노시타도 근력 트레이닝이 필요하네.」


서로 웃고는 좀 난처해진다.
오늘 예정은 안 물어봤으니까...


「응... 유이잖아, 무슨 일이야?」


생각지도 않은 소리에 뒤돌아보자, 테니스 코트 네트 뒤의 벤치에 유미코랑 힛키가 있었다.


「유미코...」

「아, 미우라... 유이가하마가 내 연습을 도와주고 있어.」

「흐-응......아, 그럼 더블할까?」

「어?」

「실천적인 연습도 필요하잖아, 나-도 오랜만에 테니스 하고 싶고」

「야, 더블이라니 혹시 나도 포함된 거야?」


나랑 사이 짱이랑 유미코랑 힛키... 여기 있는 사람들하고 한다면 그런 말이겠지...?


「나- 히키오랑 테니스 하고 싶어.」

「식후 운동으로 테니스라니, 리얼충 같은 짓을 할 수 있겠냐」

「에~ 히키오~」


어깨를 움츠리고 싫어하는 힛키의 소매를, 떼를 쓰듯이 유미코가 잡아당긴다.


「그보다 저쪽 허락 맡지도 않고서 나한테 조르지 말라니깐」

「어? 난 고마우려나... 동아리에서도 같은 사람하고만 연습하고 있고...」

「유이도 오케이지?」

「어? 나, 난...」


어쩌지... 나, 나...


「어라~ 유미코에 유잇치잖아~」


또 들은 적 있는 소리...


「하야토에 토베? 역시 너희들 밖에 나왔잖아」

「하하하... 봐줘, 이런 데서 뭐해?」

「우리들 이제부터 더블할 거야. 토츠카의 연습에 어울리는 격?」

「아니, 그러니까 난...」

「재미있어 보이네, 나도 끼워주지 않겠어?」

「아, 그럼 사이 짱이랑 하야마 군이서 짜면...」

「에~ 유이는?」

「유미코가 상대여서는 너무 나빠~」


난처한 표정으로 얼버무렸지만, 본심은 반반.
중학교에서 현 선발로 뽑힌 유미코를 상대할 수 없는 건 정말이지만, 유미코랑 힛키의 페어를 보게 되는 건 참을 수 없으니까...


「아무튼 하야토가 상대라면 진심으로 할 수 있으니까 좋지만」

「하, 하야마 군 잘 부탁해」

「아아, 이쪽이야말로 부탁해」

「그러니까 난 한다고 한 마디도...」

「에에~ 히키오~」


힛키는 끝까지 거부했지만, 유미코의 눈물에 져 결국 승낙했다...





「H. A. Y. A. T. O!  H. A. Y. A. T. O... F O O O O !」


토베가 퍼뜨린 탓에, 모두가 갈아입고 오는 동안 엄청난 갤러리가 모여 있었다.
바로 그 본인은 경쾌하게 하야토 군 응원 콜을 연습시키고 있고...


「남친을 위해서 열심이잖아~」

「실은 와타하야인거야!?」

「좀 봐줘...」


흥분한 히나가 다가와서 난처한 하야토 군이랑 눈이 마주친다.
뭔가를 전하듯 미소 지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왜 내가 이런 걸...」


눈을 딴 데로 돌리기 전에 유미코한테 팔을 안겨, 아직 불평하는 힛키가 있어서... 역시 똑바로 보지 못한다.


「저기, 히나. 나 테니스 규칙을 잘 몰라서, 심판 해줄 수 있어?」


맘 편히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울고 싶어져서, 코피를 흘리는 히나의 소매를 끌었다.


「어... 특등석이잖아! 할게할게~」


내 눈을 보고 뭔가를 헤아려줬는지, 살짝 뺨을 쓰다듬고는 일부러 익살맞은 상태로 맡아주었다.
아마... 내 마음은 숨길 생각이지만, 히나는 눈치 챈 것 같다... 요즘 특히 상냥해서 그렇게 생각한다.





시합의 전개는 일방적이었다.
유미코의 서브는 강렬해서, 하야토 군은 겨우 받아치는 상태.
싱겁게 들어온 공을 힛키가 반격하면 야구공처럼 구불구불 휘어져, 오른쪽 왼쪽으로 뒤쫓는 사이 짱은 첫 게임에서 체력을 다 써버렸다.
서브권이 바뀌어도 유미코의 역량은 압도적이라, 하야토 군이랑 사이 짱 페어의 볼만한 장면이 없는 채 첫 게임은 유미코와 힛키 페어의 승리.
2회전은 너무 휘어져 코트에 들어가지 않는 힛키의 미스도 있어서, 그럭저럭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지금 포인트는 듀스 없는 매치 포인트였다.
하지만 사이 짱의 체력이 바닥나있는 한, 여기서 간신히 세트를 따내도 3회전은 진 것과 마찬가지인데...


「하아하아하아」

「토츠카, 괜찮아?」

「으, 응」


어깨로 숨 쉬는 사이 짱을 하야토 군이 걱정하지만, 토베 군의 모처럼의 하야토 군 콜도 신통치 않은 채 사이 짱의 서브.
힘없는 공을 유미코가 튕겨 돌려주지만, 뭔가 실패했는지 그대로 자세가 무너져 쓰러졌다.
우연히 정면에 온 공에, 하야토 군은 갑자기 웃은 것처럼 보이고.
라켓을 힘껏 휘두르자, 공은 힛키가 있는 쪽으로.


「아, 앗차!」


그리고 하야토 군의 손에서 멀어진 라켓은, 넘어진 채인 유미코에게 일직선으로...


「앗」


유미코의 비명과 관객의 비명이 겹쳐, 나는 무심결에 눈을 감았다.


「...게임! 하야마 토츠카 페어!」


냉정한 히나의 심판 콜에 조심조심 눈을 떴더니...


「히키오~」


유미코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난 뒤, 큰 환성이 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주저앉은 유미코의 앞에는 장승처럼 우뚝 선 힛키가 있고.
힛키의 라켓 네트에는 하야토 군의 손에서 떨어진 라켓이 꽂혀 있어, 도저히 우연히 날아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기세가 전해진다.


「히키오~」


유미코는 눈물로 힛키한테 달라붙고.


「정말 미안해! 상처가 없어서 다행이다...」

「놀다가 큰 상처 날 뻔 했다... 좀 조심해줘.」


달려오는 하야토 군에게 난처한 표정으로 라켓을 건네주고는, 유미코의 몸을 안아 올리고...


「너도 너무 힘이 넘쳤잖아, 발이 꼬여 넘어진 거야...? 삐진 않았어?」

「아, 아마도...」


유미코는 힛키 품속에서 새빨개져, 거북한 듯 얼굴을 숨겼다.


「이대로 무승부면 됐잖아, 양호실로 데리고 갈 거니까 뒷정리는 부탁한다.」

「아, 그래. 미안.」


환성이 하야토 군이 아니고, 아마 힛키를 향해.
하야토 콜은, 자연스럽게 히키타니 콜로 바뀌었다.
그 소리에 약간 싫은 표정을 지은 힛키는 유미코를 안아든 채 떠나갔다...


「실패했군... 또 평판을 올리고 말았다...」


큰 환성 속에서 거리도 멀었지만, 어째서인지 하야토 군의 군소리만은 내 귀에 닿았다.





「어제는 미안해, 나도 평소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아직 몸이 아파...


「아니야... 그래서 어제는 말인데, 유미코랑 힛키 상대로 더블했어...」

「어머, 묘한 일이 되어 있었구나. 더블은 너도 했니?」

「아니... 내가 아니고 하야토 군이랑 사이 짱하고 짜서...」

「...상당히 묘한 일이 됐구나.」

「그래서, 사이 짱이 체력이 없는 걸 뼈저리게 깨달아서, 여름까지 계속 달리기한대. 기술은 그 다음이라면서」

「그래... 문제점을 자각했다면 다행이야.」


애초에 그 가냘픈 팔로 라켓을 들다니 무모한걸.
...나도 책보다 무거운 건, 들지 않는 게 좋았어.


「그래서, 저기...」

「그 밖에 무슨 일 있었니?」

「그게...역시 아무것도 아냐.」

「그래...」


성가신 의뢰였지만 빨리 해결해서 다행이야...
이대로 계속 했으면 입원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던걸.
......이번 근육통은 일주일 정도면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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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6편까지 했던 거고, 오늘 7편을 작업했는데


업로드 간격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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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편 그 2 ~인형(*お雛様)과의 만남~   ※ お雛様 : 제단에 진열하는 작은 인형




  히키가야 코마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다니는 초등학교에서의 긴장과 흥분도 점점 수그러들고, 조금씩 바쁜 매일에 익숙해졌을 때이다.
  초등학교는, 오빠인 하치만이 말하던 고독한 곳과는 매우 달랐다. 보통으로 친구가 생기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즐겁게 얘기하고, 급식을 먹고 집에 돌아간다. 그렇게 평화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수다스런 반 친구가 어떤 소문을 입에 담았다.


「2반에 엄청 예쁜 애가 있대」


  그렇게 흥미로운 듯이 얘기하던 그녀였지만, 예의 그 인물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활기찬 어조로 「응, 어떤 애일까?」라고 코마치 일행에게 묻자, 그 애에 대해서 화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공주님 같다든지. 리카 인형 같다든지. 그런 식으로 상상을 부풀려 얘기하자, 코마치도 자연스럽게 어떤 애일까 하는 흥미가 들었다.
  코마치의 머릿속에서는 조금 전에 영화에서 본, 신데렐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까다로운 모친과 자매에게 시달리면서도,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애. 둥실둥실한 금빛 머리카락과 바비 인형처럼 잘 갖춰진 얼굴을 가진 여자애가 머릿속에 나타나서 웃고 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며, 그런 애라면 이미 눈에 띄었을 거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짝 웃고는 상상을 지웠다.
  그 애를 실제로 볼 기회는 바로 찾아왔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들어가는 길. 「조용히 교실로 돌아가렴.」이라고 한 선생님의 말을 지키며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몇 명이서 소곤거리며 얘기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던 애가 옆의 교실 안을 가리켰다.


「봐봐, 예쁜 애는 꼭 쟤일 거야.」


  앞에 있는 교실은 조용한 채, 국어 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5월이 지나,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교실은 그곳만 시간이 더딘 듯 평온해서, 머리를 꾸벅꾸벅하거나 심심해서 교과서에 낙서하는 애들이 있다. 모두 어딘가 지루함 같은 게 있어서 이 시간이 지나는 것을 기다리는 중,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왠지, 인형 같았다.
  보기 좋게 볼록 부풀어 오른 입술과 투명한 듯 새하얀 피부. 세련된 얼굴은 놀랄 만큼 아름다워서, 정말 예술작품 같았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도, 코마치 같이 곱슬기가 없는 스트레이트에, 호리호리한 손발은 건드리면 깨질 것처럼 약해보였다.
  그런 그녀는 책상에 앉아 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지루하게 수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업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완성된 듯 차갑고, 슬픈 얼굴이었다.
  선생님이 판서하자, 그녀는 이끌리듯 팔을 움직여 노트한다. 그러나 그 동작은, 역시 인형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여자애가 「진짜다」라며 웃는다. 한 번 꺼내기에 마침 좋은 화제라서인지, 「예쁘네」하고 속삭였다.
  하지만 코마치는 반 친구의 말에 잘 수긍할 수 없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퍼져나가서 조금 몸서리가 났다.
  코마치 일행이 복도에 모인 것을 눈치 챈 선생님이, 「야, 빨리 교실로 돌아가」라고 큰 소리로 혼냈다. 그 말에 이끌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얼굴을 복도로 향했다. 그녀도 복도에 있는 코마치 일행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마치는 그녀를 보는 상태 그대로였겠지만, 분명 눈은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 특정 누군가를 본 건 아니었으니까.
  사뿐한 아몬드형의 눈에 떠오른 눈동자는, 빨려 들어갈 정도로 검게 빛나고 있었다. 눈의 형태와 눈동자에 떠오른 색이 완전히 반대라, 묘하게 본 기억이 있다. 어디서일까 다시 생각하려고 하자, 어째선지 공포가 솟아올랐다.


「히앗」


  갑자기 손을 잡혀 무심결에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갑작스레 현실로 되돌려져, 옆을 보자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는 반 친구가 있었다.


「코마치, 갈까?」


  옆에는 이미 코마치 친구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멀리서는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반 친구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에게 사과의 표시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걸어간다.
  교실로 돌아가서 갈아입는 중에, 싫어도 그녀의 그 검은 눈동자가 뇌리에 새겨진 듯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텐데, 떠올리려 하면 몽롱해진다.
  수업 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한 걸음이면 닿을 것 같은데, 아무리 해도 계기를 잡을 수 없다. 수학이 지나고 국어 시간이 왔을 때, 코마치는 겨우 그 눈동자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다.

  ......아아, 그 애는 인형이야.

  올해 3월, 거실 한 구석에 장식된 인형. 몇 년 전에 아빠가 사 왔고, 그 이래로 3월이 되면 매년 장식된다. 3단뿐인 작은 거지만 화려한 색채와 은은한 등불 덕분에, 초라하지 않아서 코마치 마음에 드는 것. 그 맨 첫 번째, 왕 옆에 있는 인형이 그녀와 꼭 닮았다.
  햇빛이 닿을 때는 미소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데, 어두운 곳에 둘러싸인 모습은, 오싹할 만큼 무섭다. 어떤 밤 - 빛 한줌 없는 곳에서 웃고 있는 그 인형과 그녀는 같은 눈동자이다.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마음속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코마치에게 학교 수업은, 신선하지만 가끔 지루해서, 빨리 쉬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와 수다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지루한 수업 중에는, 다음 쉬는 시간에 뭘 할까 아니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재미있는 상상에 몸을 적시면, 지루한 시간은 바로 지나가고 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저 교실에 앉아, 혼자 수업을 들을 뿐이었다. 주변 학생이 눈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그 얼굴에는 싫증도 흥미도 도피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어째서 저렇게 차디찬 표정으로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내리기 시작한 비는 빗발이 점차 강해져, 코마치의 마음을 진흙투성이로 만들고 있다. 평소 느끼지 않는 약간의 분노와 요괴를 본 듯 부끄러운 생각을 한 그런 자신에게 조금 낙담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코마치는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서운 건 변함없다. 그럴 때는 머릿속에서 점점 멀리해서 잊어버리는 게 가장 좋다. 당분간은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잊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수업에 집중해서 불필요한 생각이 흩어지기 직전에, 그 여자애의 모조품 같은 얼굴이 한 번 더 떠올랐다.


―――――――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보통 여자애였다.
  급식을 먹고, 힘을 빼면 잠들어버릴 것 같은 따스함이 하늘하늘거리는 점심시간. 떠들썩한 목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지고,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운동장에서 놀거나 교실에서 모여 수다를 떠는 중에,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렸다.
  활기가 흘러넘치는 복도에서, 몇 명의 여자애들과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던 그녀는, 전에 봤을 때처럼 차가운 얼굴이 아니라 보통 여자애 같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표정이 너무 달라서 깨닫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치고 말았다. 나중이 되어 그 단정한 얼굴이 기억나서 다시 떠올리자, 그녀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라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친구들의 의아한 시선을 눈치 채고 부끄러웠지만, 그 이상으로 안도한 것을 코마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애가 사뿐하게, 다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게 타인인데도 왠지 기뻤다.


――――――


  그 이후로는, 이따금 복도에서 그녀와 엇갈리는 때가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이거나 부드러운 표정이기도 해서 코마치를 많이 곤혹시켰지만, 그런 건 점차 익숙해져, 어느 쪽의 그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낼 수 있게 된 어느 날. 아침의 HR을 통해, 학교에서 기르던 토끼 두 마리가 죽었다는 것을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다.
  토끼 두 마리는 학교에서 기르고, 주로 1학년과 6학년이 보살피고 있었다. 코마치도 당번으로 두 번 정도 먹이를 준 적이 있었고, 생김새가 귀여운 토끼들은 여자들에게 인기 있어, 당번이 아니어도 점심시간 같은 때 보러가서, 종종 걸음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말한 「죽었다」의 의미를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이별보다 훨씬 슬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그 토끼들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놀았던 추억과 동시에 절로 눈물이 흘러넘쳤다.
  매우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여자 선생님이 방과 후에 장례식을 한다고 해서, 참가는 임의였지만 코마치는 친구들하고 같이 가기로 했다.
  작고 조촐한 장례식은 운동장 한 구석, 나무가 무성해 하루 내내 그림자가 지는 그런 곳에서 치러졌다. 실은 토끼우리에서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뭔가 사정이 있어서 할 수 없다고 소문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들었다.
  저녁하늘에 주홍색으로 물든 흙은, 한 곳만이 파내진 듯 검붉은 색이라, 거기에 시체가 매장됐다는 것이 싫어도 상상되었다. 등교 중에 가끔 보이는 고양이의 흉한 시체를 떠올리고는, 기분이 갑자기 나빠졌다.
  장례식에는 코마치와 동갑만한 여자애가 몇 명이나 모여,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거나 눈물짓고 있었다.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 선생님이 손을 모아 기도하자고 해서, 그 말에 따라 코마치도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막 닫히기 직전, 그 인형 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넘기고 기도를 마친 다음, 눈을 바로 뜬다.

  ......역시 그녀는 그대로였다.

  반듯한 얼굴이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고, 단지 잠시 멈춰 서서 파내진 부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숙인다. 등골이 쭉 뻗은 깔끔한 예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아, 도저히 토끼들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은 토끼들을 향한 애도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그녀는 붕 떠있었다. 어째서 저런 표정으로 있을 수 있지?
  그걸 보며 앞머리가 흔들리는 그녀의 얼굴 옆을 보고 있으면, 부글부글하고 분노가 복받쳐온다. 일단 자각한 분노는 한 방울의 먹처럼 서서히 하얀색을 침식해간다.
  왜 그녀가 이 장례식에 참가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여긴 토끼들을 애도하려고 모인 곳이다. 그렇다면 슬퍼해야 하고, 아니면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토끼들에게 실례다.
  한 번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멈추지 않아서, 실제로 뭔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실례인 것 같아, 내일로 접어두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결심하고 교실을 찾아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고,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다.
  교실에 있는 애를 붙잡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와서 이름을 모르는 것을 깨달았다. 실례지만 어쩔 수 없어서 「인형」 같은 여자애라고 묻자, 여자애는 한 순간 고개를 갸웃했지만 바로 납득하고,


「아아-, 아카네?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어딘가 갔어.」


  라고 했다.
  딱히 그녀에게 잘못은 없지만, 왠지 자신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메슥메슥한 코마치는, 그녀――키리바나 아카네라 불리는 소녀를 찾아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분위기가 느슨해진 직원실에, 상급생밖에 없는 위층. 급식실에 도서실. 그녀는 그 어디에도 없어서, 한숨을 쉬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의 운동장은 여기저기 전부 학생 투성이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피부색과 흙색이 비슷한 탓인지, 멀리서 보면 빨강이나 파란색만이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에게 가서 그 얼굴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하고, 가끔 다른 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피하며 운동장을 헤매다가, 역시 발견하지 못해서 포기하려던 참에, 코마치는 겨우 아카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운동장 구석에 있었다. 나무들의 술렁임과 멀리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장소는 마치 잊혀진 듯 아카네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곳은, 그 토끼들의 무덤이었다. 어제 일이었는데 코마치 기억의 한쪽 구석에 놔둔 탓에, 왠지 모르게 떠올리기 어려운 장소.
  그곳에서, 그녀는 어제처럼 감정 없이, 그러나 진지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하듯이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약간 얼굴에 비쳐, 반듯한 얼굴이 보다 선명해진다.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진 않았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우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말을 걸기 어려워서, 화내는 걸 또 다음날로 미루고 말았다. 왠지 미룰 뿐이라 생각하며 또 다음날 점심시간에 만나러 가자, 그녀는 정해진 듯이 토끼 무덤 앞에 서서, 코마치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애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색이 없는 눈물을 아카네는 그 날부터 계속 흘리고 있었다.
  어느덧 코마치 안에 뒤틀려 있던 감정이 깎아내려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미 그 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데, 그런데도 코마치는 아카네가 매일 성묘하는 모습을 보러갔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작은 등에 대고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매일 여기에 오는 거야?」


  등이 흔들리고, 얼마간 침묵한 뒤,


「이 아이들이 죽고, 슬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천국에서나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빌고 싶었던 거예요.」


  거기에 있던 것은, 인형도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연약한 여자애였다.
  정말 서투른 애다. 그렇게 사후의 행복을 비는 시점에서 이미 슬퍼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마치는 아직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회에서는 속마음을 감춰두고,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틀림없이 모두 그러겠지. 하지만 코마치 주변에서 이제 죽은 토끼 얘기를 하는 애는 없다. 싫은 일을 점점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내고 있다.
  무엇이 아카네를 그렇게까지 움직이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사소한 죄책감을 질질 끌만큼, 연약한 여자애라는 것은 알았다. 엄청 상냥한 애라는 것도.
  슬퍼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데, 그 방법을 모르는 그녀는, 죄책감에 짓눌리며, 역시 우는 것처럼 보였다.
  이 애의 친구가 되고 싶다고 코마치는 이 때 생각했다. 서투르고, 약하고, 그리고 누구보다 상냥한 애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그로부터 잠시 뒤, 코마치는 이윽고 그 인형――키리바나 아카네와 친구가 되었다. 어째서인지 오빠인 하치만과 아카네가 먼저 만나서, 소개받는 형태가 되었지만.
  그 아카네와 친해지고,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어, 좋은 부분도 싫은 부분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초등학교를 졸업해서 중학교에 올라가, 시간이 흘러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아카네는 마침내, 그 전부 들킨 짝사랑을 성취해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만약 오빠랑 결혼하면, 코마치는 아카네 여동생이 되는 걸까?」


  떠오른 것을 그대로 말로 옮기자, 아카네는 한 쪽 팔꿈치를 댄 채로 한숨을 쉬고는, 「아마,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며 다른 쪽을 보면서 적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컵의 얼음을 돌리는 탓에, 달그락달그락대는 소리가 나고 있다.
  그렇게 나른하게 있는 모습은 엄청 그림이 되지만, 코마치가 기대한 귀여운 반응이 아니라 약간 뾰로통해졌다. 오빠와 아카네가 사귄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주 놀린 탓인지, 아카네도 꽤 익숙해져서, 적당히 넘기게 되었다.
  8월 중순의 3시. 수험생인 코마치와 아카네는 예외 없이 일반적으로, 큰 예비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어진 수업이 겨우 끝나고 빠져 나와, 자습실을 향해 라이벌들을 배웅하고, 우리들은 찻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코마치는 평소처럼 오렌지 주스를, 아카네는 카페오레를 주문해서 둘이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는데, 역시 이야기는 오빠와 아카네 얘기로 가고 말았다.


「아 그래도, 나는 역시 이제 와서 언니는 되고 싶지 않은데」


  코마치는 얘기가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카네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후회를 조금 머금으며 아카네는 가슴 속 깊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표정은 왠지 후련했다. 그대로 뭔가 생각난 듯이 코마치에게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기울인다. 아카네의 어깨에 비단 같은 흑발이 사르르 흐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까, 코마치가 생일이 빠르니, 내가 여동생이 되지 않아?」

「아니 시동생 언니 관계는 아마도 그런 기준이 아니야...... 아 그래도, 아카네가 여동생이라는 건 뭔가 신선할지도!」


  초등학생까지 코마치와 아카네의 키는 거의 비슷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해서 아카네의 키가 부쩍부쩍 자란 탓에, 둘이서 걷고 있으면 아카네가 연상 취급받는 때가 꽤 많아졌다.
  그것과 관해서는 큰 키나 용모 때문에 그런 거라 별로 신경 쓰진 않고, 그럴 만큼 사이가 좋다고 생각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다만 코마치는 계속 여동생으로 자라온 탓에, 따라서 「언니」로 불리는 것을 동경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 된다. 하지만 아카네가 자신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그녀의 입으로 들으면, 둥실둥실해서 아무래도 침착되지 않는다.
  눈앞에서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는 아카네를 본다. 처음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커지고, 몸매도 여자다워진 그녀는, 정말 아름다워졌다.
  옛날에도 인형처럼 예뻤지만, 현재는 보통으로 귀여운 여자애가 되었다. 본인이 내심 신경 쓰는 키도, 그녀의 얼굴과는 매우 잘 어울려서 걱정하진 않지만, 키가 작은 코마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운 고민이므로 그 자리에서는 위로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년 정도 있으면 그걸 알아차릴 거고.
  그런 그녀의 키는 최근 겨우 멈춘 것 같아서, 아카네는 신체 측정 결과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드물게 푸념을 내뱉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 묻자, 「키가 큰 건, 할머니 대부터 물려받은 최악의 유산이니까」라며 몹시 야단스럽게,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아카네의 할머니는, 아카네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만난 적은 없지만, 한 번 생전의 사진을 아카네의 할아버지를 통해 본 적이 있다.
  그 처음에 본 무서운 아카네가 그대로 어른이 된 것 같은 할머니는, 확실히 여자치고는 키가 컸던 것 같다. 거기에 아카네의 숙모도 손발이 늘씬하게 긴 장신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키가 큰 것에 관해서는 정말로 유전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게 사소한 것을 나쁜 유산이라고까지 말하며 이제는 없는 할머니에게 악담하는 아카네는 평소보다 훨씬 아이 같아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심결에 미소가 흘러넘친다. 그야말로 여동생처럼 사랑스러웠다.
  그런 코마치의 모습을 아카네는 이상한 듯이 보고 있었지만, 그녀 나름대로 납득했는지, 카페오레와 커피 우유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잘 모를 의문을 코마치에게 던졌다. 혹시, 방금 전 얘기는 농담이라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아카네는 농담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코마치는 몇 할 정도 소망이 섞여있다. 언젠가 앞으로, 아카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것은 언제부턴가 코마치가 품게 된 소망 중 하나니까.
  만약 코마치의 소망이 실현되어, 아카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자신은 남의 시선도 아랑곳없이 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을지도 모른다.
  그 애는 우는 게 서투르니까, 대신 기쁜 눈물을 많이 흘려주려고 한다.

 


  오래간만입니다, 플뤼겔입니다.

  본편 최종회에서 쓴 대로, 지금부터 예외편이 됩니다.
  전 5화 중 1화입니다.

  이야기가 좀 바뀝니다만, 이번부터 개행 방법을 조금 바꿨습니다.
  실은 본편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의외로 양이 많아서 예외편만 했습니다.

  그러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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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외편 그 1 ~올바르게 그녀를 소개하는 방법~



  14세. 그것은 어른과 아이 사이에 위치한 연령이며, 따라서 사춘기라 불리는 복잡한 감정을 갖는다. 에반게리온을 탈 수 있는 것도 이 나이 뿐이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약간 어른스러운 면이 보이는 연령대. 남자는 점점 소년만화를 졸업하고, 중2병의 세계로 발을 디딘다. 반대로 여자는 점점 여자다워지기 시작해서 로리콘을 절망시킨다.
  그들, 그녀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자신이 애가 아니라는 자의식이고, 그래서 남녀 모두 몹시 발돋움을 하는 녀석들이 많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어른 흉내를 내지만, 그건 역시 그저 흉내다. 담배를 입에 물어도 연기만 낼 뿐이고, 연애 같은 건 서로의 관계를 점차 깊게 해갈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역시 애이며, 사회도 상식도 모르는 이 연령대는 불안정하면서도 행동력이 있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훔친 오토바이로 질주하거나 밤에 학교 유리창을 깨고 돌아다니거나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른들도 그들을 그런 시선으로 보는 탓인지, 14세 여자애가 모친이 된 드라마도 방송되거나 하는 것을 보면, 아무튼 세상이 보는 14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애, 한 단어로 축약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아무리 용모가 어른스러워도, 14세는 14세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애와 사귀는 고교생은 사회에서 조금 차가운 시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겨우 2살, 2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그런 나이 차이는 큰 게 아니게 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차이다. 그러고 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28세를 30이라고 하니 엄청 상처받은 표정을 하셨지. ......어쨌든 여중생 입장에서는, 고등학생과 사귀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로 스테이터스일지도 모르지만, 남고생 입장에서 여중생과 사귄다는 건 역시 좀 찔린다.
  즉, 비록 그렇게 들떠 버릴만한 사태에 빠져도, 쓸데없이 퍼뜨리지 말고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려두는 편이 좋다. 그런 친구들 거의 없지만.


―――――――


「그 영화, 역시 별로 재미없었죠?」


  날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는, 그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신난 모습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그러면서 새까만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점점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보다 한층 더 눈부셔진 7월 중순. 학생 최대의 이벤트인 여름방학...... 시험이 끝나고 처음 휴일인 오늘, 나는 키리바나와 같이 밖에 나왔다. 서로 학기 기말 시험을 극복해낸, 그 포상이라는 거다.
  덧붙여서 지금까지의 정기시험과 달리 유키노시타라는 강력한 두뇌를 얻은 나와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스파르타 교육을 필사적으로 견뎌, 자기채점 결과 어떻게든 낙제점을 면했다. 그리고 동시에 유키노시타가 가정교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저것보다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게 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사전에 재미없다는 걸 알았으면, 다른 걸 보는 게 나았잖아.」

「그래도, 어느 의미로는 재미있었어요.」

「그건, 재미의 의미가 다를 뿐이겠지.」


  시험이 끝나고 놀러가는 것은 미리 정했기 때문에, 시험 공부하는 사이 어디에 갈지 생각하기도 했다. 꽤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이즈에 선배에게 상담했다.
  순애 사고계 빗치라는 드문 장르의 선배라면, 정통파 데이트를 몇 명과 반복했을 테니, 초심자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 장소를 추천해줄 거라는 기대를 담아서이다. 뭐, 배신당했지만.
  이즈에 선배는 히죽히죽하고 놀리는 듯한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청춘이구나~」하고서는, 장식된 학교 지정 가방에서 A4파일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파일 안에 든 종이를 꺼내보자, 최근 출시된 영화 광고지였다.
  평소 하는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선배는 「이 광고지에 있는 영화는 전부 글러먹었으니까, 절대 추천이야」라며 모순된 단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 쓰레기 영화 애호가였지.
  어쩐지 이런 취미가 있어서 남친과 자주 헤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그 미소에 굴복해 광고지를 받아 버렸으므로, 키리바나에게 갈지 말지를 물었더니, 의외로 흔쾌히 OK가 나왔다. 뭔가 나쁜 취미에 빠질 것 같아서 진심으로 걱정된다.
  그런 이유로 오늘 아침 가장 먼저 집에서 나와, 영화관까지 원정을 왔지만...... 아무튼, 영화는 기대 대로라고 할지, 아니나 다를까였다.
  모처럼의 휴일인 것도 있어서, 영화관에는 부부나 친구 등 많은 사람으로 흘러넘쳤음에도, 우리들이 들어온 관은 놀라울 정도로 관객이 적어, 우리들 외에는 2, 3조밖에 없었다. 그 얼마 안 되는 손님들도 극장에서 나오자 한결처럼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영화관에서 나온 뒤는, 갈 곳도 없이 오락가락하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며칠 전에 장마가 개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오전부터 태양이 번쩍번쩍 빛나, 건물 유리를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 아침 특유의 맑은 공기가 어딘가 기분 좋았다.


「그래서, 이후는 어떻게 할까? 아직 밥 먹기에는 좀 빠르잖아.」

「그러네요...... 하치만 오빠는 평소에 어디에 가나요?」


  한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키리바나가 꾸밈없이 묻는다. 그런 모습임에도 키리바나는 땀을 흘리진 않아 보인다. 나는 더위에 습격당해서, 이미 땀이 몇 방울 흐르고 있는데, 여자애는 불가사의하다.


「그렇게 물어봐도 딱히. 나도 서점이나 도서관 정도밖에 안 가. ......남은 건, 게임센터 정도군.」

「게임센터...인가요? 그러고 보니 거기 간 적이 없어요.」

「그래? 친구와 스티커 사진 같은 거 안 찍어봤어?」


  여중생들은, 놀러갈 때 스티커 사진 같은 걸 찍는 이미지가 있던데. 중학교 때도 스티커 사진 교환은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 같고.
 코마치도 가끔 키리바나와 찍은 스티커 사진을 내게 보이며, 「얘 귀엽지?」라고 물어보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아직도 모른다. 실제로 귀여우면 대답할 여지가 있지만, 사진이 미묘할 경우 실물은 거의 유감이기 때문에. 「아, 아무튼... 귀엽지 않겠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츤데레가 아니라.


「요즘에는 게임센터가 아니어도, 스티커 사진기는 있으니까요. 우리들이라면 그쪽이 가기 쉬워요.」


  뭐 게임센터라는 곳은 불량 집합소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피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아웃로는 아무래도 놓치기 쉬우니까. 반대로 쿠와타는 좋아하는 것 같지만.

※ 쿠와타라는 야구 선수가 「아웃로는 필요 없어요. 정중앙으로 160킬로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역 부근 숙녀 옷 판매점 옆에, 스티커 사진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스티커 사진 구역이 남자 금지가 된 것 같지만, 저런 곳에 놔두면 남잔 애초에 안 갈 거다.


「모처럼 얘기가 나왔으니, 게임센터라도 갈까요?」


  키리바나가 발을 멈추고 방향을 바꿔서, 그 뒷모습에 말을 건넨다.


「가기 힘들지 않으려나?」

「남자와 함께라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을까요?」


  뒤돌아서 내게 웃어주고는, 그대로 발을 멈추지 않고 키리바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왠지 게임센터라는 말을 듣고 한 남자 얼굴이 멋대로 떠올랐지만, 그 표정이 매우 괘씸해서 밟아주고는 키리바나의 뒤를 따라갔다.


―――――――


  역에서 조금 걷자, 주위의 화려함에 분간이 안 되는 여러 건물이 있었다. 가까이는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라면집이 북적거리는 중, 끊임없이 전자음이 울리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거리의 게임센터다.
  술집이 많아서 그런지, 아직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하고, 고교생이나 중학생 나머지는 다니던 길로 다니는 가족동반이 하나 둘 정도 있을 뿐이었다. 저녁 이후의 술 담배 냄새와는 또 다른, 젊음과 따뜻함 그리고 음침함이 섞인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곳에 있었군요.」


  키리바나가 게임센터로 연결되는 자동문을 보며, 감개 깊은 듯 눈을 떴다.


「뭐야, 와본 적 없었어?」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요. 여자가 볼 일도 없이 들어갈 곳이 아니라구요.」


  토라진 듯 대답하고, 키리바나는 약간 더러운 자동문을 빠져나갔다.
  나도 키리바나를 쫓듯이 점내에 들어가자, 홍수 같은 소리가 일제히 덮쳤다. 메달이 서로 스치는 소리, 고저음이 얽힌 전자음에 소란스러운 사람 목소리, 그것들이 합쳐진 불협화음이 하나가 되어 귀에 닿는다. 그러나, 그 어수선함이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키리바나는 평소 그대로 입을 열었지만, 말이 잡음의 물결에 삼켜지자 곧 사라지고 말았다. 놀란 모습으로 눈을 조금 크게 뜨고는, 한 걸음 내게 다가왔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접한다.


「왠지, 여러 가게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 같아요.」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뭐, 의외로 깔끔하게 녹아들었잖아.」


  여기 게임센터는 남자취미인 격투기나 음악게임, WCCF 등 그리고 여자취미인 크레인 게임이나 스티커 사진 구역을 철저히 나누었다. 최근에는 커플이나 여자 그룹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싶어서인지, 입구에 크레인 게임을 배치하고, 나머지를 양극단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커플 한 조가 있고, 남친이 봉제인형을 잡으려고 진지한 표정으로 기계 팔의 행방을 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좀 더 안쪽으로 옮기자, 단골인 듯한 사람들이 벌써 눌러 앉아서, 각자 묵묵히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청결감이 넘치는 하얀 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스티커 사진관이 모여 있는 남자금지 구역으로 발을 디딘다. 네온 라이트 같은 빛이 끊임없이 깜박이는 여기는, 방심하면 빛에 빠져버릴 정도다. 그 눈부심을 키리바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바람으로, 안쪽에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년 전에 도촬인가 뭔가 해서, 이 구역은 커플이 아닌 남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전에는 흥에 취한 중고생이나 술 마신 대학생이, 남자 그룹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광경은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엄청 갸루 같은 여자애가 그려진 커튼에 압도되면서 우왕좌왕 거리고 있었는데, 「여기예요.」라며 키리바나가 손을 잡아당긴다.
  너무 갸루 같은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지만, 역시 여자답게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그나저나, 갸루=스티커 사진이라는 발상이 낡구만.
  키리바나가 적당히 고른 곳으로 들어갔더니, 조명 사진기를 조금 넓혀, 엄청 호화롭게 만든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터치 패널에는 유이가하마가 좋아할만한 발랄한 자체가 떠 있었다. 눈이 아프다.
  돈을 넣고 키리바나가 조작하자, 여러 프레임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와서 키리바나가 내게 물어본다.


「하치만 오빠, 어떤 게 좋아요?」

「잘 모르니까, 적당히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가장 난처한데요......」


  눈썹을 바싹 오므리고 대답하면서도, 키리바나는 아-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하며 즐거운 듯 고민하면서 화면의 프레임을 바꿔간다.


「그래도 하치만 오빤 눈 탓에 카메라를 잘 못 받아서, 조금 손해네요.」

「야」

「농담이에요. ......그럼 이렇게 눈을 숨겨보면, 의외로 멋지게 찍힐지도 몰라요. 봐요, 저도 하고 있고」


  팔을 들어 올려서, 눈앞에 두고 눈을 가린다. 그런데도 키리바나의 입 끝이 풀어진 것을 보면, 진짜 농담이리라. 하지만 그거다. 아무래도 그거로밖에 안 보였다.


「나는 상관없지만, 넌 절대로 하지 마.」


  무심코, 말이 세게 뛰쳐나온다.
  남자가 그렇게 가리는 것은 별로 문제없지만, 여자애가 눈을 가려버리면, 그걸로 밖에 안 보여서 큰 문제다.
  키리바나는 내 말에 몹시 놀라, 머리를 크게 갸우뚱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이 뭔지는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거야 그렇다.
  그대로 머리에 물음표를 띄우면서도, 화면을 누르고 설정을 진행시키고는, 「이거면 괜찮아요.」하고, 내 바로 옆까지 다가왔다.
  딱딱한 미소를 짓고, 기계에서 흐르는 전자음에 따라서 몇 장정도 찍은 뒤에 밖으로 나오자, 찍은 사람이 편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키리바나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조작해간다. 키리바나는 눈의 썩은 상태를 어떻게든 줄일 수 없는지 고집스럽게, 여러 효과를 시험하고 있다. 마침 반짝반짝을 눈 옆에 배치하자, 키리바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키리바나에게 말을 해두고, 스티커 사진 구역에서 나왔다. 역시 게임센터에서 스티커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따분하다. 적당히 놀 필요가 있다. 키리바나가 뭔가 마음에 들만한 게 없는지, 크레인 게임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 저 자는. .....하치만이 아닌가!」


  엄청 숨 막힐 듯 더운 소리에 불려 마지못해 뒤돌아봤더니, 거기에는 목소리대로 숨 막힐 듯 더운 풍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녀석,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안경을 밀어올리고는, 그 거체를 흔들며 나에게 왔다.


「뭐야, 자이모쿠자인가...... 무슨, 볼 일이라도 있어?」

「특별히 없네! 단지 하치만의 얼굴이 보였으므로, 무심코 말을 걸었을 뿐이다.」

「어째서 넌, 그런 면만 여자 같은 거냐...... 기분 나쁘구만. 너도 놀러온 거 아냐?」


  그 목소리와 풍모이면서, 자켓을 겉에 두른 탓에, 에어컨이 돌아가는데도 이 녀석 옆에 있는 것만으로 매우 덥다.


「음, 역시 창작에는 인풋이 중요하니까 말이지. 백지와 마주 보고 있어도 의미가 없다. 이렇게 여러 가지에 접해서 창조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창작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글이 전혀 진행 안 돼서, 현실 도피로 놀고 있다는 건가.」

「그, 그렇게도 말하지......흠. 자네도 나처럼 혼자인가?」

「아아, 아니...... 저거다.」


  무심코 말끝을 흐려버린다. 이 녀석에게는 애초에 키리바나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고, 거기에 사귄다는 것을 말하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가만히 자이모쿠자를 본다. 말투로 보아 키리바나와 성격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대면시켜봤자 의미가 없을 거다. 그보다, 이 자식과 궁합이 맞는 사람이 있긴 한가?
  우선 적당히 여길 떠나, 키리바나를 데리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피난하기로 할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하치만 오빠.」


  그렇게 생각해서 입을 열려고 한 참에, 키리바나의 맑은 목소리가 자이모쿠자에게 닿았다. ......타이밍 나쁘구만.
  키리바나는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눈을 깜박인 뒤 슬쩍 나를 엿본다. 그리고 마침 입을 뻐끔뻐끔하던 자이모쿠자를 무감동한 시선으로 찬찬히 보았다.


「......친구 분과 이야기하는 것 같으니, 저는 실례하겠어요.」

「어이 이봐, 도망치지 마」


  그대로 몸을 돌려 피난 가려는 키리바나의 팔을 붙잡아, 억지로 멈춰 세운다. 호리호리하고 하얀 팔은, 서늘했다.
  키리바나는 입을 뾰족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다른 방향을 계속 보고서 말했다.


「보세요, 친구 분도 기다리는 것 같고, 모처럼이니 느긋하게 얘기해주세요.」

「나도, 이 녀석을 상대하는 건 지쳐. 너 자이모쿠자한테 들킨 시점부터 나와 같은 운명이야.」

「그래도 저, 이런 분은 서툴러서, 무슨 얘길 해야 좋을지 몰라요.」

「.....우선 목소리를 낮춰. 이 녀석, 의외로 쉽게 상처받아」


  봐, 자이모쿠자가 약간 울상 짓고 있잖아.
  키리바나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고 내 옆에 서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팔을 놓는다.
  자이모쿠자는 아직도 입을 허 하니 벌린 채, 팔을 바들바들 털고는 키리바나를 가리키면서


「하, 하치만...... 이 부인은?」


  키리바나의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진 게 느껴졌다.


「부인이라니, 얘는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아아, 저거다...... 키리바나라고 하는데, 여동생의 친구이자...... 내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추가된 새로운 직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일단 키리바나에게 눈짓을 보냈더니, 딱히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이모쿠자의 마음을 더 자극했는지, 「켁, 리얼충이」라고 밉살스럽게 내뱉고는, 안경을 들어올렸다.


「하치만, 잘못 봤네. 나와 함께 동정 친화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안 그랬거든, 그럴 생각도 없어. 그리고 넌 믿지 마」


  키리바나가 진심으로 깬다는 게 느껴져서, 부인해둔다.
  자이모쿠자는, 마치 목성에서 돌아온 듯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가슴을 뒤로 젖히고는, 엄청 과장되게 양손을 벌렸다. 배의 지방이 물컹 흔들린다.


「동정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리얼충들에게 무엇이 가능하지? 항상 세상을 만들어 온 것은 한 줌의 동정이다.」

「틀려. 그보다 동정이라면 세상을 만든다 쳐도, 후세를 못 남기잖아.」

「애당초, 이 소녀의 어디에 연하 소꿉친구 요소가 있다는 것인가?」


  키리바나가 연하라는 것을 알아서인지, 쓸데없이 강하게 되묻는다. 상쾌할 정도로 비열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좋아하게 되진 않겠지만.


「네? 저 말인가요?」


  설마 자신에게 화제가 돌아온다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근처 유리 안에 들어있는 봉제인형을 보고 있던 키리바나가, 의외라는 듯이 뒤돌아본다.
  오늘의 키리바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에, 반소매 블라우스를 맞춰 입은 모습이라, 뭐 어른스러운 차림이지만.
  눈을 깜박한 키리바나가, 나와 자이모쿠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이모쿠자는 키리바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돌리고 나를 다시 바라봤다.


「그러데 하치만, 이 애와는 집이 가까운가?」

「아니. 걸어서 10분 정도다.」

「훗, 그 거리로 소꿉친구라니. 아다치 선생님이 들으면 폭소하겠군.」

「그거 거의 맞닿은 이미지잖아. H2라면 집이 좀 떨어져 있잖아.」


  애초에 이웃에 동갑내기 여자가 사는 편이 드물잖아. 유유백서도 소꿉친구 설정이지만, 집은 멀리 있고.
  키리바나는 느낌이 바로 오지 않은 건지 「술집 자식이라고?」라는 둥 잘 모를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응, 왜 영웅만 아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게다가 연하인데, 로리 얼굴이 아닌데다가 쓸데없이 키가 크고...... 무엇보다 하치만을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지 않잖나」

※ 역주 : 키리바나가 하치만을 부르던 호칭은 원래 ~さん인데, 우리말에 딱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어서 둘의 관계를 고려해, 번역할 때 오빠라고 했었습니다.

  한층 더 키리바나의 기분이 나빠진 것 같다.


「아니, 여동생의 친구에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부르게 하면, 범죄잖아.」


  그래도 아무튼, 자이모쿠자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조금은 알겠다. 얘는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그것에 비례해서 얼굴 생김새나 언동이 매우 어른스럽다. 교복을 입지 않으면 가끔 중학생이라는 것을 진짜로 까먹을 것 같다.
  옆에 선 키리바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인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어깨까지 뻗은 그것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다소 짧아졌지만, 묶진 않는다. 계속 스트레이트이다.
  ......그래서일까, 키리바나는 자연히 어른스럽게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키리바나는 연하 요소가 거의 없구만.


「알겠나, 하치만. 연하 소꿉친구라는 것은, 단발에 키가 작고, 거기에 가슴도 없지만, 오빠(お兄ちゃん)라고 불러주는, 그런 애가 좋은 것이야. 오빠를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안타까움, 그것이 최고인 게다. 그런 옆집 누나 같은 연하 소꿉친구 따윈, 결국은 이류다.」


「......네네, 그럼 다음에 그런 라노베라도 써봐.」


  그거, 거의 자이모쿠자의 희망이잖아.
  그런 기분 나쁜 망상을 들은 키리바나는, 얼굴을 내내 찡그리고 있었지만, 뭔가 생각난 듯이 표정이 확 밝아져서는,


「......그렇다면, 저기, 자이모쿠자이 분이 말씀하신 소꿉친구 요소에, 하나 들어맞는 게 제게 있어요.」

「흣, 흠. 뭔가?」

「이름, 미묘하게 잘못됐어.」


  그런 내 잔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키리바나는, 코마치 같은 미소를 띠고는, 슥하고 나와 팔짱을 끼며,


「저, 어릴 때부터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아이처럼 슬쩍 혀를 내밀었다.


「......」

「......」


  그 후에 울려 퍼진 자이모쿠자의 무슨 말인지 모를 비명을 들으며, 최근 알게 된 키리바나의 뜻밖의 일면을 떠올린다.
  ......키리바나는 꽤나, 장난꾸러기인 듯하다.






「...좋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 번밖에 입지 않았던 정장을 입고, 기합을 넣는다.
  지금부터 갈 곳은 마왕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기합 하나라도 넣지 않으면 다리가 떨리니까.
  자! 가보자! 유키노시타성으로!

  부들부들
  부들부들
  덜덜덜덜덜덜덜덜덜

  어, 어라-?
  다리만이 아니라,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합이 부족하다는 건가?
  아니, 아마 게으름뱅이인 내가 더 기합을 넣어봤자 소용없지.
  이 다리의 떨림을 멈추려면...


「...그래, 유서를 쓰자!」


  경우에 따라서는 『잘도 내 딸을!』라며 XX될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부모님은 우선 어떻든 상관없으니, 코마치 앞으로 유서를 써두자.
  써두면 미련을 남길 것도 없이 옥쇄할 수 있다.
  근데 옥쇄확정이냐고.
  뭐 상관없다.
  삼가 아룁니다, 코마치에게...


  하루노 씨와 몇 번이나 일을 치른 뒤, 필로 토크하지도 없이 같이 밥을 먹었다. 아침 점심을 거르고 3시까지 해버렸으니, 그거야 아무튼 배도 고파진다. 적당히 만든 볶음밥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서로 맺어진 건 좋은데... 하루노 씨의 집을 생각하면, 쉽게 허락해주진 않겠죠.」

「으~응, 그치. 히키가야 군 얘기는 가끔 했으니까, 전혀 모르진 않겠지만...」

「하루노 씨라도 예상할 수 없어요?」

「응. 솔직히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 요즘 맞선 얘기를 계속 거절해서, 뭔가 알아챘을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최악의 전개는 『이런 말 뼈다귀는 안 돼』라고 하는 거겠죠.」

「그치. 그 엄마니까, 나도 유키노한테도 결혼상대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으려나」

「...드럼통에 갇혀 바다에 버려질 일은, 없겠죠?」

「없어없어, 그렇게까진 안 해...... 아마도」

「아마도!? 거기는 단언해주세요!」

「음~ 엄마가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니까-...... 혹시 무서워졌어?」


  히죽거리며 심술궂은 미소를 띠는 하루노 씨.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해하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전의 나로서는 몰랐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하루노 씨의 눈을 보면 안다.


「괜찮아요.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지만, 하루노 씨를 좋아하게 됐을 때부터 목숨을 걸 정도의 각오는 해뒀어요.」

「........정말, 히키가야 군은 치사해」


  조금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부끄러운 듯이 우물쭈물하는 하루노 씨.
  아아, 귀엽구나 하루노 씨.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윈 얼마든지 걸 수 있다.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의 경우가 되면 둘이서 도망치자!」

「그래요. 유키노시타가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잘 도망쳐 보일게요.」

「응! 그럼 지금 멀리 아는 사람한테 메일해둘까」

「성격이 급하시네요. ...그런데 말을 되돌립니다만, 이 뒤는 어떻게 할까요?」

「우선 난 집에 돌아가서 솔직하게 얘기해보려고 해.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쪽으로밖에 안 갈 거니까.」

「과연, 그러네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오늘 중에는 꼭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무사를 빌게요.」

「고마워. 그럼 또 보자.」


  결국, 어제 하루노 씨가 간 뒤 폰을 계속 잡고 연락을 기다렸다가, 날짜가 바뀌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새 잠든 것 같아, 정신 차리면 아침이 되어 있었다. 자는 동안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내 마음 속에 불안한 마음이 자꾸자꾸 커져간다.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던 내게 떠오른 것은, 『유키노시타가로 간다』였다.

  반침 안에서 연말 대청소와 동시에 클리닝을 맡긴 정장을 꺼내,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에 악전고투하며 옷을 입었다.
  일단, 하루노 씨의 폰에 『거기로 갈게요』라는 메일을 보낸다. 상대방에게 도착하지 않았을 때 되돌아오는, 영어 메일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신은 한 듯하다. 그럼 하루노 씨는 왜 연락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이 한 층 더 부풀어 올랐다.


「좋아, 갈까」


  폰, 지갑, 시계와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챙기고 현관을 나왔다.
  시각은 오후 2시.
  여기에서 유키노시타가까지,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하루노 씨, 지금 갑니다...!



  집에서 나와 조금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바로 도착한 버스의 행선지를 확인하고 승차. 버스에 흔들리기를 수십 분, 종점 2정거장 앞에서 하차. 거기부터 몇 분 정도 더 걸어서... 유키노시타가에 도착이다.

  고급 주택가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그 집은, 주변에 줄선 많은 대저택보다 2~3배는 커서 더 눈에 띄었다. 외관은 흰색을 바탕으로 한 서양풍으로, 이미 작은 성으로도 보인다.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였는데 잘 보이다니, 몇 층 건물인 거야. 보기에는 뜰도 상당히 넓은 것 같다. 과연 건축회사 사장 저택. 일반 가정 출신인 내가 보기에는, 여긴 완전히 이세계다.


「너, 여기에는 무슨 용무로 왔나?」


  당돌하게 말을 걸어왔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정문 앞에 서 있는 검은 정장 선글라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저 쪽에는 이미 두 사람정도, 마찬가지로 선글라스가 서 있다. 경비원인 건 대충 알겠는데, 외형이 너무 무섭다. 나 같은 치킨한테는 정신에 해롭다.


「음, 여기가 유키노시타 씨 댁 맞습니까?」
 

  가능한 한 아무렇지도 않게 위장하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떨려버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잖아, 나 치킨이고.


「그 말대로지만, 너는 누구지?」

「그, 그게, 히키가야라고 합니다만, 유키노시타 하루노 씨는 계십니까?」

「히키가야...? 혹시 너, 이름이 히키가야 하치만인가?」

「네? 그, 그렇습니다만...」


  뭐야, 경비원에게 나에 대해 알려줬어?
  유키노시타인가? 이렇게 한 사람은. 아니면 하루노 씨? 어쨌든 유키노시타가의 여성은 인권이나 프라이버시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상관없는 것을 멍하니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정신 차렸더니 경비원 3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응? 난 혹시 의심스럽거나 위험인물 취급?


「아, 저기, 어떻게 된 거죠...? ㅈ, 저, 비무장인데요?」


  총을 들이민 것도 아닌데, 양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경비원 한 명이 천천히 손을 뻗어,


「확보!!」


  라고 외쳤다.
  거기부터 순식간에 재빠른 솜씨로.
  내 양손을 잡아 등 뒤에 돌려 수갑을 채우고.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를 테이프를 내 입에 붙이고.
  또 난데없이 나온 타월로 내 눈을 가리고.
  다리, 몸통, 어깨를 각각 붙들려 아마 유키노시타가 부지 내라 생각되는 쪽으로 들려갔다. 지나친 전개에 저항할 새도 없이, 상대가 하는 대로 끌려간다.
  그나저나 당신들 솜씨 좋네.
  실은 경비원이 아니라 유괴범 아닌가? 라고 의심해버릴 수준.
  난 대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또각또각또각...

  발소리로 미루어보아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통로라 생각되는 공간을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거나... 몇 번 돌았는지 모르게 되었을 즈음해서,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다.

  철컥
  끼이이

  무거운 듯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가고 나서 또 멈춰, 뭔가 부드러운 것에 앉혀지는 형태로 내려졌다. 등에 닿은 딱딱한 느낌으로 보아, 아마 의자일 거다.

  또각또각또각...
  끼이이
  덜컹

  소리로 봐선, 경비원이 전원 나갔다.
  특유의 기척 감지로 근처를 탐색하지만, 사람이 있는 기색은 없다.
  여기, 어디지?
  그나저나 난 지금부터 어떻게 될까?

  덜컹
  끼이이
  또각또각또각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마 한 명.

  들어온 누군가는, 소리로 봐서 내 정면에 있는 의자인지 뭔가에 앉았다, 고 생각한다.
  안 보이니까 잘 모르겠다.

  스륵

  갑자기, 눈을 가리던 타월과 입가의 테이프가 떼어졌다. 순간 시야가 새하얘졌다가, 서서히 눈이 익숙해져 시야가 또렷해진다. 눈앞에 중후하고 아마추어 눈으로 봐도 품위 있는 긴 테이블이 있고, 그 반대쪽에 슈트를 입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흘러내리는 듯한 아름다운 흑발에, 날카로운 눈동자. 유키노시타를 닮았지만, 그 외에 강렬한 안광과 위압적이기까지 한 존재감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알았다.
  이 사람이, 유키노시타 자매가 무서워하는 유키노시타 어머니라는 것을.


「히키가야 하치만 군, 이 맞을까?」


  맑으면서도, 어딘가 위압적인 목소리가 실내에 울린다. 안 그래도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쫄고 있었는데, 더 쫄아버린다. 그럼에도, 눌려 으깨질 것 같은 마음을 분발해, 마를 것 같은 목을 진동시켜서 소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하루노와 유키노의 어머니입니다.」

「그, 그렇군요.」

「바로 말합니다만... 하루노와 남녀 관계가 되었다더군요.」


  너무나 단도직입적인 말에, 조금 뒷걸음질친다. 방금 전보다, 약간이지만 안광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유키노시타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다지...」

「제 남편은 건축회사의 사장이자, 현 의회 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대로 계승되는 유키노시타가의 당주로서 각계의 영향력을 미치는 일족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

「즉, 집안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속하는 것입니다. 일반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도저히 닿지 않을 것 같은 높은 위치에」

「...........」

「그 높은 집안인 유키노시타가의 장녀인 하루노와, 아무리 조사해도 일반 가정 출신인 일반인인 당신이 관계를 했다...」

「........그렇게 됩니다.」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 제 딸과 당신이」

「......도저히, 어울리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로서는, 이번 건은 딸의 한 때의 실수로 용서할 생각입니다. 그 다음, 유키노시타가에 맞는 상대와 결혼시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얌전히 물러나서, 지금까지의 일은 잊고 일반인에게 맞는 인생을 다시 보내줄 수 있습니까?」

「..........」


  어조는 정중하지만, 그 밖의 날카로운 안광에는 『얌전히 따르세요』라는 듯한 압력이 담겨 있었다.

  그래, 나와 하루노 씨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어디에나 있는 잡초 같은 나와는 반대로, 다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 같은 하루노 씨.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는 하루노 씨와는 반대로, 어디에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고 짓밟힐 수 있는 나.
  애초에 어울릴 리가 없다.
  그런 의미로, 유키노시타 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매우 올바르다.
  그러니까 나는―――


「거절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는 분명히 말해서 일반인입니다. 용모도 스펙도, 하루노 씨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뭐죠?」

「하루노 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저 뿐입니다. 저는 하루노 씨를 좋아하고, 하루노 씨는 저를 좋아합니다. 서로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였지만, 그 만큼 자신들의 마음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나도, 하루노 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멋대로 믿어버릴 뿐이 아니고?」

「억측이 아닙니다. 단지 저를,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하루노 씨를 믿을 뿐입니다.」

「.........」

「...무리해서 유키노시타가에 맞이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하루노 씨를 자유롭게 해줄 수 없습니까? 저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은 하루노 씨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하루노 씨를, 혼자 두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하루노 씨는 지금까지 혼자였다. 부모님은 영향인지, 여동생을 위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른다. 어느 새 몸에 익힌 마음을 닫고 미소로 덧칠해서 굳힌 가면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요새 같은 존재로 하루노 씨의 마음의 바깥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루노 씨를 홀로 있게 하고 있었다. 마치 바깥세상이 무서워 방안에 틀어박힌 아이처럼. 내가 왜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혹은 하루노 씨에게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접한 진정한 하루노 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했다.
  아마, 처음부터 알았던 거다.
  하루노 씨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바랐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하루노 씨 옆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밖에 안 보이는 하루노 씨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하루노 씨를, 따님을 제게 주세요!!」


  확하고 힘차게 머리를 숙인다.
  내 나름대로 힘껏 성의는 보였다.
  앞으로는, 그 유키노시타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할지다.


「......흠. 당신의 성의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어요. 츠즈키, 준비해둔 것을」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사람 기척도 느껴져 놀라서 뒤돌아보니 언제나 리무진을 운전하는 츠즈키 씨가 있었다. 빠릿하고 말끔한 자세로 서서, 양손으로 A3 크기의 판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나저나 츠즈키 씨, 운전기사 일만 하는 게 아니었군요.


「히키가야 님, 여기에 서명을 부탁합니다.」


  눈앞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민다. A3 크기의 그것은 얇은 케이스 같은 것에 넣어진 서류 같아, 좌측 상부의 『서명란』이라 쓰인 공간 이외가 전혀 안보이게 되어 있었다. 아마 어떤 서류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그게 뭔지는 전혀 모르겠다.


「...이건 뭔가요?」

「당신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서명란에 싸인하세요.」

「이 서류는 무슨 서류입니까?」

「물론, 제게 형편 좋은 서류입니다.」

「......」


  유키노시타 어머니에게 형편 좋은 서류...
  설마 차용서?
  아니아니, 차용서로 얼마나 빌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평생 벌어야 하는 금액을 단 한 달 만에 버는 그런 사람이 그런 걸 준비할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각서인가.
『앞으로 일절, 저는 따님에게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같은 것.
  그렇다면 최악이군.
  하루노 씨와 함께 보내기는커녕, 만나는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야겠지.


「왜 그러십니까? 자, 빨리 싸인하세요. 너무 시간을 들인다면 당신의 마음을 거짓으로 여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츠즈키 씨가 내민 비싼 보이는 만년필을 받아, 할 수 있는 한 신중하게 이름을 쓴다. 조금이라도 인상을 좋게 보이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다 해도, 이게 노예계약 같은 서류라면 문제인데. 혹시 그렇다면 진짜로 도망치자. 물론 하루노 씨와 함께.

  다 끝낸 뒤, 옆에 있는 츠즈키 씨에게 서류가 들어간 케이스를 건네준다. 서명란을 확인한 뒤, 츠즈키 씨는 유키노시타 어머니 앞으로 가져간다. 유키노시타 어머니는 그것을 받고는, 어떻게 했는지 케이스를 쉽게 열고 안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진짜 어떻게 한 거지?
  저거, 얼핏 봐도 어디에도 연결고리 같은 게 눈의 띄지 않아서 용접한 것으로밖에 안보이던데.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글자는, 조금 비뚤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글씨는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예상 밖의 말에, 엉겹결에 굳어진다. 의외, 라고도 할까. 하루노 씨나 유키노시타의 얘기를 들었던 것만으로는, 좀 더 기계적인 사람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 발언을 듣고서, 조금 생각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츠즈키, 이것을 금고에 보관해둬.」

「알겠습니다.」


  츠즈키 씨는 서류를 공손하게 받고는, 투명한 케이스에 넣어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금고가 집안에 있는 건가. 아마 내가 아는 금고보다 큰 게 있는 걸까.


「그런데, 히키가야 하치만 군. 앞으로에 대해 뭔가 질문은 있습니까?」

「...앞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까?」

「.....이미 서명도 했고, 지금쯤 금고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 번 더 묻겠습니다. 그 서류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혼인신고서입니다.」

. . .
. . . . . .
. . . . . . . . .

「예?」

「그러니까, 혼인신고서입니다. 어떤 건지는 알겠지요. 과연 바로 결혼시킬 수는 없습니다만,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면 당장이라도 맞이합니다.」

「........................저기, 누구와, 누구의 혼인신고입니까?」

「물론 당신과 하루노입니다.」

「저와 하루노 씨의...?」

「예, 그렇습니다. 본래라면 하루노는 유키노시타가에 어울리는 집안의 남성과 결혼시킬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하루노는 당신이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무슨 일입니까. 뭔가 불만이라도?」

「어, 아, 아- 아뇨... 뭐라고 할까, 그게...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쉽게...? 우수한 딸이 숙고해서 당신을 선택했는데, 그것을 쉽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뇨, 그럴 생각은... 단지 제가 생각했던 건 『너 같은 말 뼈다귀가!』나 『일반 서민이』 같은 반응을...」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하루노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게다가 하루노가 남아도는 재능을 힘껏 발휘하면, 결혼상대가 집안이 좋은 남성이 아니어도 문제없습니다. 뭐, 유키노에게도 해당되겠지만요.」

「......우선, 어떻게 기뻐해도 좋을지 몰라서, 하루노 씨를 만나게 해주셔도 될까요?」

「그렇습니까. 츠즈키」

「예.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어? 츠즈키 씨 어느새 돌아왔지? 그 사람은 닌자인가 뭔가야? 그보다 이미 기색 안 느껴지는데. 인간의 영역을 넘었잖아.

  덜컹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의자에서 일어서서 뒤돌아보니, 가슴 근처에 뭔가가 뛰어 들어왔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감촉과 향기로 바로 그것이 하루노 씨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하루노 씨...!」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뻐서 무심코 꼭 껴안았다. 하는 김에 쓰담쓰담도 했다.


「하루노 씨, 괜찮았어요?」

「...응, 괜찮아. 괜찮은데...」

「무슨 일 있었어요?」

「으~~, 치욕이야~~」

「치, 치욕?」

「...저기」


  얼굴을 들어 천장 구석을 가리킨다. 거길 보니, 감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받침대  뿐만이 아니라, 전 방위 합계 8대.


「.........뭐야, 이건」

「별실에서 네 용감한 모습을 보기 위한 감시 카메라야.」


  귀에 익은 소리에 문 쪽을 보자, 거기에는 유키노시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온화해 보이는 댄디한 아저씨가. 집사인가? 아니, 그런 것보다 날 보고 있었다니...


「즈, 즉, 이 방안의 대화를 다른 방에서 감시 카메라로 보고 있었다고...?」

「그렇게 되네.」

「아니아니 뭘 하고 있어?!」

「뭐라니, 널 시험했을 뿐이야. 향후에 도망칠만한 남자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이 카메라는 증거촬영을 위한 거야. 이걸로 너도 도망칠 수 없겠지?」

「아니아니, 이제 와서 도망치진 않을 거라고!!」

「그래? 그럼 괜찮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꽤 좋은 장면을 보게 해줬어요. 그렇죠? 아버지.」

「아아, 그래. 젊은 애들은 정열적이라 좋구나.」


  집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키노시타의 말에 대답한다. 외형 그대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근데 거기 집사 같은 사람, 장인어른이었나!!
  아, 얼떨결에 장인어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혼인신고서 썼으니 딱히 상관없나.
  그렇다는 건 저기의 대마왕도 장모님이...


「하치만 군,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아아아아아뇨! 딱히 아무것도!!」


  아뿔싸. 역시 유키노시타 자매의 어머니다. 초면인 내가 생각하는 걸 읽다니 역시 엄청나다. 그보다 난, 지금부터 독심술 쓸 수 있는 여자 둘과 가족이 되는 건가. 프라이버시 제로 생활의 시자이다. 뭐, 하루노 씨와 함께 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큰일은 아니.......겠지. 힐끔하고 대ㅁ... 커흠커흠, 장모님을 보면, 방금 전의 위압적인 오라는 어디로 갔는지. 온화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어떻게 봐도 어머니의 얼굴로, 나는 더더욱 『유키노시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노. 슬슬 준비해두렴. 나가자꾸나.」

「응? 어디에?」

「물론, 하치만 군의 친가야. 혼인신고서를 썼으니, 인사하는 건 당연하잖니?」

「...........」


  응? 우리집에 인사?
  이 장모님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유키노, 하치만 군의 여동생에게 연락은 했니?」

「네, 이미 했어요.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집에서 기다린다고 해요.」

「알겠다. 자, 하루노. 멍해 있지 말고 빨리 준비하렴.」

「.........」


  벌어지는 일을 머리가 전혀 따라가지 못해 보이는 하루노 씨. 뭐, 나도 전혀 못 따라가지만. 그나저나 유키노시타, 친가와 사이 나빴던 게 아니었나. 절묘한 연계 플레이로 우리들을 완전 포위했잖아. 어떻게 봐도 사이좋은 부모 자식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히키가야 구-운...」

「...뭔데요」

「우리들, 결혼하는 것 같네...」

「...그러네요.」

「왠지 이렇게, 여러 가지로 너무 쉽게 돼서...」

「...이제 이대로 흐름에 몸을 맡겨 봐요.」

「...그러자-」



  그 이후의 전개는 순식간이었다.

  우선은 우리 집에 유키노시타가 모두와 함께 방문. 엄청 기뻐 보이는 코마치와 상황을 잘 모르는 부모님에게 약혼 인사. 부모님은 코마치에게 조금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지만, 하루노 씨 같은 초절미인을 데려올 뿐만 아니라 약혼까지 했다는 건 티끌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 시종일관 망연해 있었다.
  뭐, 사교성 높은 코마치라면 몰라도 나 같은 커뮤장애인이 애인을 만들 거란 상상은 못하겠지. 게다가 상대는 이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집안이고. 아버지는 끝까지 의심스러운 듯한 눈초리였다. 안심해, 미인계 같은 게 아니니까. 결국, 망연자실한 부모님의 케어는 코마치에게 휙 던져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친가 방문 뒤, 벌써 해가 지고 있어서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낯선 맨션으로 날 데려갔다. 유키노시타가 자취하고 있다는 곳과 마찬가지로 큰 맨션.


「오늘부터 당신과 하루노가 살 맨션입니다.」


「「네?」」


  엘리베이터로 위층에 올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들었다.
  어? 갑작스럽게 둘이 삽니까?
  너무 급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약혼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제 마음을 읽지 말아주세요.」


  그대로 20층까지 가서, 방으로 안내된다. 방은 4LDK 로 목욕탕 화장실 별도(당연한가)에 시스템 부엌 탑재. 조금 둘러봤지만, 방 하나 크기가 어떻게 봐도 내가 살던 곳보다 넓어 보인다.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지 않습니까?


「계속 둘이서만 사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 그러니까, 제 속을 읽지 말아달라고요.
  그보다 거기까지 상정하셨습니까.


「그럼, 우리들은 슬슬 돌아가죠. 내일은 당신들의 짐이 도착할 테니. ...그리고 가끔 보러 올 테니, 너무 놀라지 않도록」


  그렇게 말하고 나와 하루노 씨를 남기고, 유키노시타가 사람들은 돌아갔다.


「「.......」」

「...우선, 밥부터 먹을까요?」

「...그래」



  저녁은 배달피자로 했다. 냉장고 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환경은 정돈했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하라는 거겠지.

  저녁을 먹은 뒤,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을.


「후우......」


  목욕탕에 잠겨, 피로와 함께 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이 집, 목욕탕도 넓구나.
  성인 둘이 나란히 발을 뻗을 수 있는 욕조는 처음 봤다.


「이야~ ...대단한 하루였지?」

「그러네요...」


  자연스럽게 옆의 하루노 씨를 봤더니, 약간 늘어진 듯,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김빠진 느낌의 하루노 씨가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

  ...응? 왜 같이 목욕하느냐고?
  먼저 목욕탕을 서로 양보한 결과가 이거야!
  꺼림칙한 기분은 어디에도 없다.
  진짜라고, 하치만 거짓말 안 해.


「왠지, 의외였죠.」

「그러네. 엄마가 그렇게까지 히키가야 군을 인정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아니 정말, 유서를 준비할 정도로 결사적으로 각오했는데 맥 빠졌어요.」

「유서 썼어? 히키가야 군 답구나~」

「그래도 안 하면, 유키노시타가 같은 마왕성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구요.」

「으~응, 그 마음은 모르는 것도 아니려나. 나도 어제 집에 돌아갔을 때, 갑자기 유키노한테 붙잡혀서」

「유키노시타한테? 그나저나 하루노 씨가 붙잡히다니 의외네요.」

「모르는 사이에 유키노가 팔을 올리고 있었어. 순간의 틈을 찔려 수갑을 채우고...」

「...역시 유키노시타. 언니가 상대라도 주저 없군.」

「진짜 그렇다구. 그 탓에 히키가야 군한테 연락할 수 없었던 거야.」

「아아, 그래서...」

「뭐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 잘 됐어.」

「맞아요. 이제부터 여러 가지로 큰일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돼요.」

「후후후... 맞아. 엄청 기대돼.」


응- 하며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는 하루노 씨.
동시에 흔들리는 큰 가슴에, 무심결에 두근거리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히키가야 군, 멋있었다구. 설마 엄마에 대해 알고서도 당당하게 말하다니... 다시 반해버렸어.」


  날 보며 부끄러운 듯이 웃는다.
  어딘가 아이 같은 그 표정에, 고동이 방금 전보다 더 빨라진다.


「그 때는 하루노 씨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 만큼 부끄러웠다구. 유키노가 히죽히죽하며 날 봐서...」

「진짜 그랬어요? 그 녀석도 성격 나빠졌구만.」

「왠지 이미, 히키가야 군하고 사이 좋아지고 나서 유키노한테 계속 놀림 받는 기분이 들어. 약점 들킨 느낌」

「놀림 받는 하루노 씨도 귀여워요.」

「으-, 히키가야 군까지 그런 말하고-」


  뾰로통해져선 고개를 돌린다.
  그런 하루노 씨도 귀여워서, 무심코 평소의 쓰담쓰담을 하고 말았다.

  스윽스윽...

  바로 기분을 풀어준다고 생각했지만, 당분간 쓰다듬어도 하루노 씨는 고개를 돌린 채 반응해주지 않는다.
  고집이라도 부리는 걸까?
  흠, 그렇다면...

  확

  쓰다듬고 있던 손을 어깨에 두르고, 조금 억지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귓가에 입을 대고,


「하루노」


  라고 속삭였다.


「후앗!?」


  귀여운 소리가 하루노 씨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나를 보는 그 얼굴은, 마치 머리에 피가 오른 것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가, 갑자기...」

「아니, 이제부터 부부가 될 거니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정도는 당연하겠죠. 아니, 경어도 이상한데. 그런 이유로 경어도 그만두겠어.」

「어, 어, 저기...」

「자, 하루노. 나도 이름으로 불러줘. 아마 데릴사위가 될 테니, 조만간 히키가야가 아니게 될 거고」

「저, 저기... 하치, 만...」

「잘 안들려. 한 번 더」

「하, 하치만!」

「잘했습니다.」


  다시 쓰담쓰담한다.
  그러자 하루노는 새빨간 얼굴로, 빤히 흘겨봤다.


「...애 취급하지 말아줘.」

「응? 안 돼? 그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아?」

「물론, 이런 느낌으로」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술을 내 입술에 겹쳐왔다. 그것에 반응해 꼭 껴안자, 동시에 하루노도 안겨온다. 서로 꿈 같은 행복을 확인하듯이, 몸과 몸을 서로 겹쳤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은 바뀐다고 이따금 듣지만, 사실이었다. 1년 정도 전까지의 내게 가르쳐 주고 싶다. 엄청 예상 밖인 곳에 미래의 반려가 있다고. 뭐, 나니까 『있을 리 없다』라고 부정하겠지만.

  뭐 어쨌든.

  지금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아직 보지 않은 희망으로 가득 흘러넘친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 행복을 하루노와 같이 나누자.


「하치만」
「하루노」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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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Ⅸ ~약간의 거짓말~ + 에필로그




  하치만 오빠와 교제한 뒤 처음 맞은 주말은,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하루는 하치만 오빠와 둘이서 유키노 씨와 유이 씨에게 인사하러 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우리들이 교제하게 된 것을 듣자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웃으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도중부터는 여자 세 명의 걸즈 토크가 되어, 하치만 오빠의 고백에 대해 유이 씨에게 재촉 받은 대로 이야기하게 돼서, 하치만 오빠가 토라진 듯이 얼굴을 돌렸던 것이 인상적입니다.

  왠지 모르게, 전에 만났을 때보다 봉사부 세 명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아서 물어보자, 「우리들 친구가 됐어.」라고 유이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전부터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틀림없이 처음부터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관계를 말로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깊어졌던 것이 정말로 기뻐서, 저도 유이 씨를 따라 살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날씨가 쾌청했던 이유도 있어서, 코마치와 둘이 데이트에 가서 새로 나온 여름옷을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그 도중에 처음으로 하치만 오빠와 연인이 된 것과 그리고 앞으로도 친구로서 잘 부탁한다고 전했습니다.

  말하는 도중에 부끄러워져서, 조금 목소리가 상기된 것을 부끄러워했더니 코마치가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걸 조금 반론하다가 점점 즐거워져서 마지막에는 둘 다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의 저녁식사. 식탁에 돈까스, 닭고기 볶음과 해산물 샐러드를 놓고 셋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우물거리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집 말인데, 그 땅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와서 말이다. 허물기로 했어.」

「그렇구나. 상당히 내버려뒀었지.」


  저는 어땠냐면 튀김의 칼로리가 신경 쓰여, 해산물 샐러드만 접시에 담고 있었던 탓도 있어서, 건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중간한 대답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아버지의 말을 보충하듯이 어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언이야.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그대로 둬달라고. 할머니가 살았던 곳을, 할 수 있는 한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아.」

「......정말로, 한결같네.」


  새우를 삼킨 뒤, 무심코 본심이 밖으로 새어나옵니다.


「뭔가 말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래도 할아버지 집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우선은 어머니가 내일 휴가를 내서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리할 때,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좋을 대로 하라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라 해도 특별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재에 잠든, 할머니를 위해 수집한 고서의 행방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 책을 팔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건네주는 것은 꺼려집니다.

  그 다음날, 코마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어머니를 도우러 할아버지 집으로 갑니다. 오래되어 잘 열리지 않는 현관을 빠져나가자, 마지막에 본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거주자가 없어진 건물은 쇠퇴하듯이, 사람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원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느 정도는 정리한 것 같아, 소품이나 식기류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래된 벽걸이 시계는 몇 년이나 전에 작동을 멈추어 원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책상 위로는 할아버지가 썼을 거라 추측되는, 고급스런 넥타이 핀이나 손목시계가 놓여있었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다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재를 들여다보니 이쪽은 아직 손이 닿지 않아, 건조한 머리카락 냄새가 방안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청소만은 어머니가 한 것 같아서, 책꽂이에 손을 대봐도, 손에 먼지가 묻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전처럼 할머니 방을 갔더니, 어머니가 장롱 앞에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눈치 채자, 「어서 오렴」이라 말하고, 다시 단상으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무슨 일이야? 그런 데서 가만히 있고」

「그게 말이야, 할머니가 쓰던 기모노를 어떻게 할까 해서」


  어머니가 뺨에 손을 대고, 서랍 안에 선명하게 피어있는 채색을 보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양가 출신이라서, 젊었을 때 입었던 옷이 좋은 거야. 이 오오시마 명주도 굉장히 고급이고, 그 *우치카케(打掛)는 좀 더 비쌀 것 같아. ......하지만 우치카케는 어머님이 결혼식에서 입은 것 같아서 팔 수도 없잖니.」

※ 우치카케 : 화려한 신부의상


  추억의 기모노, 라고 하면 할머니는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소중한 물건일 것입니다.

  일생에 한 번, 결혼식에서밖에 입을 수 없는 너무나 호화로운 우치카케. 할머니가 몸에 두르고 나서 몇 년 지났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완전히 퇴색하지 않은 그대로,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새어나왔습니다.


「그거, 내가 결혼할 때 입고 싶어.」


  언젠가 제가 결혼할 때, 이 우치카케를 입고, 그리고 마음껏 행복한 미소를 짓고 싶다고 이 때 생각했습니다. 이 할머니와 매우 닮은 용모와 성격인 채로.

  결혼은 아직 상당히 나중의 이야기라서 그런 나이가 된 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바로 일전에 조금 의식할만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아직 안 잡힌 너구리 가죽이 알게 뭔가요?

※ 아직 안 잡힌 너구리 가죽을 파는 생각은 하지 마라 : 불확실한 것으로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의미.


  어머니는 제 말을 듣자, 부드럽게 꽃이 피는 듯한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그러네, 아카네는 할머니를 닮아서 아름다우니까, 반드시 잘 어울릴 거야.」

「......응」


  그 밖에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찾아보라는 말을 남기고 어머니는 할머니의 방을 뒤로하며 다른 방을 정리하러 갔습니다.

  벽에 기대어 멍하니 방안을 바라봅니다. 이곳도 조금 더 지나면 해체되어 할머니의 잔향이 완전히 스러지겠지요.

  할머니의 흔적을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보던 중, 하나만 머리에 걸리는 것이 있어, 방구석에 있는 찬장의 서랍을 엽니다. 노송나무의 향기가 나던 중에 전처럼 칠흑색 비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꺼내어 손바닥에 살짝 놓습니다. 아름다워서 빨려 들어갈 만큼 검고 윤이 나는 그것은, 서늘한 감촉을 줍니다. 이것도 분명, 소중한 것이겠지요. 남에게 건네줄 수 없고, 먼지를 쓰게 내버려둘 수도 없습니다. 저에게는 과중할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있을 때 머리에 꽂아볼까 합니다.

  모처럼이므로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을 모아볼까 했지만, 잘 묶지 못하고 포니테일 밖에 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조금 납득이 되지 않아서 장롱으로 갑니다. 그리고 방금 제 것이 된 우치카케를 손에 듭니다.

  조금 먼지 냄새가 나는 우치카케를, 교복 위로 대강 걸쳐 입었습니다. 상상한 것보다 옷이 무거운 것에 놀라며, 어울릴지 어떨지 기대하면서 화장대의 삼베를 치우고 제 모습을 바라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하의가 중학교 교복인 것이 문제인 건지, 머리 모양이 문제인 건지, 화장을 안 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만, 우치카케의 품위에 완전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른스러운 표정을 만들어봐도, 우치카케는 저와 요만큼도 어울려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맵시 있게 입으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강 제 옷차림을 만끽한 뒤, 우치카케를 다시 개려고 했는데, 개는 방법을 몰라서 난처합니다. 다다미 위에 놓고 접힌 자국을 따라 개어 봐도 잘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부르려고 일어섰는데, 다다미 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러나 전보다 퇴색하지 않은 봉투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떨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 아무래도 이 우치카케 안에 끼워져 있던 것 같습니다.

  쓴 사람은 짐작이 갔으므로, 전처럼 주저 없이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편지지를 읽어갔습니다. 소극적인 내용이라도 딱히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결혼한 후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생활했는지를 지금까지보다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접고, 가슴에 꼭 껴안습니다. 쓰여 있던 글을 되새기자, 선명한 감정이 더 없이 밀려들어 와서 마음이 간단히 흔들립니다.

  뺨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리고 나서, 이 소중한 편지를 쓴 사람을 떠올리며 투덜거렸습니다.


 

 

 

( http://acidrain.ky-3.net/%E7%B5%B5/%E3%81%A8%E3%82%8A%E3%81%82%E3%81%88%E3%81%9A )



「뭐예요, 할머니 평범하게 행복했었잖아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이 앞에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받았습니다.

  다만, 그래도 하나만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건 확실하게 말로 전하세요, 이 바보.」


―――――――


  다음 일요일, 날씨가 많이 풀린 이유도 있어서 저는 습관이 된 성묘를 하러 갔습니다. 지금껏 한 대로 묘를 청소하고, 꽃을 세워두고, 손을 모아 죽은 세 명에게 말을 겁니다.

  물건을 몇 개 정도 받은 것과 최근 있던 기쁜 일을 보고한 뒤, 마지막에 남동생을 향해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성격인 채 살아가려고 합니다. 당신이 죽었을 때 슬퍼할 수 없었던 저인 그대로라서, 죄송합니다.

  남동생의 뼈를 묻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말이 없는 차가운 묘를 보고 말합니다. 대답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소의 순서를 마친 뒤, 가방에서 한 통의 편지지를 꺼냅니다. 제가 마지막에 찾아낸, 할머니가 할아버지 앞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다른 편지는 제가 정중히 맡아서, 방 한쪽 구석에라도 보관할까 생각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편지만은 제대로 할아버지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근처를 둘러보고, 그 밖에 참배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성냥을 비벼서 불을 붙입니다.

  한들한들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오렌지색 불을, 편지지에 가져다 댑니다. 편지지의 겉면을 맛보듯이 접하던 작은 불은, 점점 편지지를 삼켜갑니다.

  오래된 종이가 조금씩 티끌이 되어가는 모습에 묘하게 매료됩니다. 할머니가 살았던 증거 중 하나가, 단순한 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갑니다. 제가 남겨뒀다면 분명 큰 버팀목이 되었을 그것은, 이미 그 의미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반 정도 편지지를 침식하자, 집은 왼손까지 날카로운 열이 전해져, 점점 들기 괴로워졌습니다.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어중간하게 태우면 공양이 없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너, 뭘 하고 있느냐!」


  그런 상태로 약간 고민하면서, 불길이 편지지를 삼켜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묘지 입구에서 엄한 소리가 날아왔습니다. 뒤돌아보자, 거기에는 이 절의 주지 스님이 목소리 그대로 엄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네? 저기, 이건. ......앗」


  제가 횡설수설하는 동안에, 불은 전부 다 타서 마지막에는 제 손가락을 살짝 스치고 툭하고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불이 닿은 부분을 손대어보니, 날카로운 통증이 스쳐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상입니다.

  처음에는 무서운 표정을 짓던 주지 스님은, 그런 제 멍한 모습에 맥이 빠졌는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우선, 여기로 오거라. 아내에게 치료하게 할 테니.」


  설교는 도착할 때까지의 얼마 안 되는 시간에 행해집니다.

  불을 취급한다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다뤄라. 애초에 이 절은 공양을 안 하니까, 공양하고 싶으면 좀 더 큰 절에 가라. 너도 고등학생이니 좀 더 절도와 상식을 갖고 행동하는 편이 좋다, 등등.

  진지한 얼굴로 하지만 저를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하는 게 재미있어서 살짝 웃자, 듣고 있는 거냐면서 더 혼나고 말았습니다.

  본당과 연결되는 툇마루로 따라갔더니, 주지 스님은 「여기서 당분간 손을 차게 해두거라.」 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흐르는 물에 담급니다. 차가운 물이 닿자 통증이 심해졌지만, 그것도 한 순간으로 점점 통증이 누그러져갑니다.

  당분간 차가운 물의 상쾌함을 맛보고 있던 중, 툇마루로 이어지는 다다미방의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 묘 앞에서 불장난해서 화상 입은 여자애가 너였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하듯이 말을 걸어서, 고개를 갸웃합니다.


「실례지만, 처음으로 만난 게 맞죠?」


  살갗이 흰 초로의 여성은 재미있는 것을 보듯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웃었더니 눈이 가늘어져서, 얼굴이 여우처럼 되었습니다. 양손에는, 반창고와 연고가 각각 들려 있었습니다.

  제가 흐르는 물에서 손을 꺼내려고 하자, 여성은 「좀 더 차게 하는 편이 좋단다.」라고 하며 툇마루에 앉아서, 방금 전의 제 질문에 답했습니다.


「너, 늘 우리 절에 와서 얼굴을 기억한 거란다.」


  여성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청바지에 싸인 가느다란 다리를 아이처럼 흔들거리며 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주지 스님의 부인이라서 그럴까요. 조금 속세와 멀어진 분위기와 산뜻하게 웃는 모습은, 어떤 의미로는 절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동안 아주머니는, 제 모습을 따분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후훗하고 숨을 내쉬고는 예리한 눈초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네」

「어째서 그렇게 자주 참배하러 오는 거니?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 정도의 나이에 그렇게 참배하러 오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어」

「......긴장을 늦추면, 죽은 사람을 멀리 두고, 그대로 놓아버릴 것 같아요.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아주머니는 제 눈을 빤히 바라보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근처 숲에서 휘파람새의 장단이 어긋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주머니는 「슬슬 됐으려나. 안으로 오렴.」하고는 문 너머로 들어가서, 당황하며 손을 닦으면서 아주머니를 따라갑니다.

  유서 깊은 일본 가옥은 역시 다다미 방 뿐으로, 여기저기에 풀냄새가 감돌아서 절로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멀리서 자갈을 밟는 소리와 나무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제가 치료한다고 호소했지만, 아주머니는 전혀 듣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되는대로 치료를 받습니다. 아주머니는 유백색 연고를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왜 장례식 뒤에도 49제나 3주기를 한다고 생각해?」

「사후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건 고인에 대한 이야기지. 그럼 유족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왠지 학교 선생님에게 배우는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마음의 정리인가요?」


  제가 대답함과 동시에 연고가 발라집니다. 피부에 달라붙는 것을 느끼며, 이렇게 치료받는 건 초등학교 이래로 처음이라고 마음 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맞아. 종교라는 건 기본적으로 산 사람을 위해서니까, 구제나 해탈 운운을 제외하고도, 반드시 세속적인 이유가 있어.」

「하아......」


  아주머니는 기세 좋게, 가볍게 말합니다만 그 말은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졌습니다.

  절이라는 것은 시주하는 사람은 어쨌든, 주지 스님이나 스님들은 교의를 진지하게 믿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족이 이런 말을 하면 과연 부처님이 허락해주실지 어떨지 모릅니다.

  그런 제 생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한 아주머니는, 제 대답을 듣고는 계속 말합니다.


「이런 생각을 주지 스님은 싫어하지만, 조금 전 말한 49제나 3주기도, 처음은 유족들을 위해 마련한 기간이라고 생각해. 이만큼 지났으니까, 고인에 대해서는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하지만 고인을 잊으면 안 돼요.」

「딱히 완전히 잊으라는 게 아니야. 그래도 가끔, 그래. 일 년에 한 번 정도 떠올리고, 사과하거나 사후의 안녕을 빌거나 할 정도로 괜찮아. 그것만 해주면 충분해.」


  거칠고 울퉁불퉁한 반창고가 손가락에 감겨집니다. 말한 그대로 대충 감긴 탓에, 손가락이 전혀 구부러지지 않게 되었지만, 받는 입장이니만큼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뭔가, 적당한 사고방식이네요.」

「적당한 거면 돼. 물론 우리들 입장에서는 묘 청소 정도는 하러 오길 바라지만, 그 이외는 뭐. 거기에 고인의 행복을 빈다고 해도, 매월이라면 지치겠지? 고인도, 너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분명 제 후회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울 수 없었던 것은, 언제까지나 제 안에서 그림자를 드리우겠지요.

  그것을 잊으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머니가 말한 본연의 자세도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조금 살기가 편해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머 그래? 그렇다면 이번에, 주지 스님 대신에 반야심경이라도 불러볼까?」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아주머니는 농담인 척 말하고는, 「이걸로 끝」 하며 제 손등을 탁 두드렸습니다. 아직 아픔은 조금 남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편해진 것 같습니다.

  재차 아주머니에게 감사인사를, 주지 스님에게 사과하고 절을 뒤로 합니다. 경내에 깔린 옥석을 밟자,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발이 잠겨갑니다.

  다음에 참배하는 건 오봉 때로 합니다. 한동안 소식이 없겠지만, 대신 그 때 많이 이야기합시다.


―――――――


  처음으로 둘이서 탄 자전거는, 예상외로 자세가 불안정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덜컹덜컹 짐받이가 흔들려, 저는 자전거에서 떨어질까봐 무서워하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딘가 잡을 것을 찾아봐도, 붙잡을 곳이 하치만 오빠의 몸밖에 없습니다. 또 짐받이를 잡으면 다리를 뻗다가, 스커트 안이 보일까 하는 불안에 주저합니다.

  그렇지만 하치만 오빠의 허리에 손을 두르는 것은 역시 부끄럽고, 그 쪽도 사양할 것입니다.

  당분간 자전거에 흔들리면서 생각하다가, 미덥진 못하지만 하치만 오빠의 교복을 잡기로 했습니다. 조심조심 셔츠 옷자락을 잡자, 하치만 오빠가 신경 쓰였는지 뒤돌아봐서 쑥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성묘하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하치만 오빠와 만났는데, 설마 이런 체험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하치만 오빠가 할아버지의 책 몇 권을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행운이라는 건 겹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6월의 푸른 하늘 아래, 자전거를 둘이서 타며 할아버지 집으로 가는 우리들은, 정말 연인 같다는 생각에 허둥지둥합니다.

  조금만 얼굴을 내밀자, 정면에서 습기 찬 바람에 부딪힙니다. 눈을 가늘게 뜨며 근처를 둘러보자, 아직 오전중이라 그런지, 길을 가던 사람들은 어딘가 한가로운 모습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자전거에서 보이는 경치는 평온하고, 가로수를 빛나게 하는 신록이 한층 더 눈에 띄었습니다.

  자전거의 흐름에 몸을 맡기던 중, 한 가지가 떠올라서 입을 엽니다.


「하치만 오빠. 그러고 보니, 하나 말하는 걸 잊은 게 있어요.」

「뭔데?」


  하치만 오빠가 시선을 살짝만 담아서 대답했습니다.


「의외로 저, 일본식 옷이 잘 어울린답니다?」

「그, 그래......」


   그것은 처음으로 한 작은 거짓말과 대수롭지 않은 선언입니다. 지금은 아직 어울리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 우치카케를 맵시 있게 입을 수 있을 정도의 여성이 되어, 그 모습을 이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기막힌 듯이 수긍했습니다. 그 어중간하게 대답하는 방식도 재미있고, 그리고 귀엽게 느껴져서 저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하치만 오빠의 등에 맡겼습니다.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집니다.

  태양이 구름에 막혀, 옅은 그림자가 땅에 퍼져갑니다. 아직 봄 날씨를 머금은 바람이 흘러들어와, 제 머리카락을 휩쓸어갑니다. 긴장으로 인한 고동은 이윽고 얼굴까지 올라와서, 이렇게 보내기 쉬운 날씨인데, 더위가 맹렬하게 덮쳐왔습니다.

  ......어쩌면, 여름은 이미 눈앞까지 왔을지도 모릅니다.


―――――――


  에필로그 ~봉하지 않은 편지~


  의사에게 남은 시간을 듣고 나서, 제 인생을 자주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죽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무섭습니다. 사후 세계를 공연히 믿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후에 찾아올 깊은 어둠 속을 상상하면, 밤에도 잘 수 없을 정도로 떨립니다.

  결코 올바른 인생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되어, 그리고 그 사람의 돈으로 생활했던 사람의 인생이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어쩐지 제 주변에는 항상 미소 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신이 있고, 아들과 딸이 있습니다. 제 오빠나 언니들은, 당신과 같이 가끔 얼굴을 보이는 탓인지, 이 연령이 되어도 이상하게 인연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웃 분들과도 반상회 행사로 종종 교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답게 살 수 있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속에 계속 있는 듯한, 그렇게 온화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지낼 수 있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틀림없이, 제 인생은 행복했겠지요. 당신에게는 폐를 끼쳤지만, 그래도 행복했다고, 되돌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애정이나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정말 제멋대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에 감사하게 해주세요.

  이런 저와 결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런 온화한 나날은 보낼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기적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적어도 그 보답으로, 당신의 남은 인생이 끝없는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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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2014) 11월 중순으로, 약 8개월간의 투고가 되었습니다.

  봐주신 분, 감상을 써주신 분, 평가해주신 분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UA가 늘어나거나 감상을 받거나 평가를 받을 때마다 기운이 나서 어떻게든 완결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카네와 아카네의 할머니 캐릭터가 가장 처음으로 생각나서, 그 이래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뭐, 짝사랑한 여자애를 쓰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지만요.

  처음에는 아카네를 움직이는 것이 꽤 큰일이라, 이 애다운 행동은 뭘까, 이 뒤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것들이 걸려서, 꽤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결까지 도착했을 때, 이제 더는 아카네에 대해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허전해지기도 하고...... 정말로 이 애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역시 엔드 마크는 어디선가는 찍어야 하므로, 이 시점에서 끝내려고 합니다.

 
  ......라고 썼습니다만, 메인 줄기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거북이 갱신이 됩니다만, 예외편을 5편 정도 써볼까 합니다. 후일담을 3화 정도로, 아카네에게 차인 남자애 시점에서의 이야기를 1화. 나머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하지만 본편은 이걸로 완결이라는 걸로, 거듭해서 말하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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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첨부한 그림은 작가 분이 그린 게 아니지만 제가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는 그림을 우연히 보고 어울리겠다 싶어서 임의로 넣었습니다. 아카네와 다른 면은 분명 있겠지만 그건 양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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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Ⅷ ~커다란 손~



 
  코마치와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나서 며칠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하치만 오빠에게 사과하지 못했습니다.

  요 며칠 간 몇 번이나 사과하러 가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코마치에게 상담했더니,


「그건 안 돼. 오빠가 먼저 심한 말을 했으니까, 아카네 먼저 사과하면 안 되지.」


  이렇게 말하며 저 먼저 사과하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은 납득해도, 시간이 지나면 역시 사과하고 싶어지고 다시 코마치가 말리는, 그런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돌아갈 때도, 며칠 간 계속 하게 된 대화를 주고받으며 코마치와 하교하고 있었습니다.

  해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져, 거리는 저녁노을에 물든 하얀 그대로였습니다. 점심 경에는 상당히 기온이 올랐지만, 지금은 상당히 지내기 좋은 정도까지 내려가서 바람이 기분 좋은 그런 때입니다.

  쭈욱 늘어난 검은 그림자를 한 걸음씩 밟으며, 며칠 사이 몇 번째가 될지 모르는 「그래도」를 제가 말하기 시작했을 때, 하치만 오빠는 우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순간 나온 말이 딱딱한 인사였던 것을 후회하면서 인사를 한 뒤 얼굴을 들자, 하치만 오빠의 탁해진 눈과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좋은지 모르게 됩니다. 거북함과 멋쩍음이 엄습해서 무심결에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 후회했습니다.

  코마치가 마침 잘됐다고 말하고 떠나서, 이곳에 저와 하치만 오빠만이 남겨졌습니다.

  나무들이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나, 멀리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가슴이 괴로울 정도로 아파지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하치만 오빠가 한 걸음 다가옵니다. 조금 기울어진 해에 늘어난 하치만 오빠의 그림자가, 저의 그림자와 교차합니다.

  그것만으로 제 사고는 뿔뿔이 흩어져, 다시 모을 수가 없게 됩니다.

  조금 멍한 도중에,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리저리 하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술을 몇 번이나 움직여보지만, 그저 한숨이 되어 의미를 이루지 못하고 무산해갑니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결국 평소에 하던 인사가 입에서 나왔습니다.


―――――――


  초등학교 무렵에 가던 통학로를, 하치만 오빠와 걷습니다.

  매우 새로운 현대적인 주택에, 다양한 색상으로 된 포장. 앤틱한 가로등은 저녁노을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거리 안에서, 무기질적인 백색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통학로는 하치만 오빠가 졸업한 뒤 개발이 진행되어, 지금은 상당히 정비되었습니다. 저와 코마치는 정비된 뒤의 통학로도 쓰던 탓에 그다지 새로운 느낌은 안 들지만, 하치만 오빠는 두리번두리번하며 이상하다는 듯이, 달라진 것들 하나하나를 주목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치만 오빠와 이 길을 걷는 것도 초등학생 이래로 처음입니다.


「......요전에는 미안. 말이 너무 지나쳤어.」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있던 때, 제가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하치만 오빠가 했습니다. 저를 시야에 담은 하치만 오빠의 눈은, 석양을 반사해 조금 빛나는 것처럼 보여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이 떠오릅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조금 감정적으로 됐어요.」


  그리고 겨우, 저는 며칠간 가슴에 움켜쥐던 생각을 내뱉을 수 있었습니다.


「왜 네가 사과해?」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


  실은 좀 더 사과하고 싶지만, 이만큼만 합니다. 코마치가 말했습니다. 사과할 거면, 간단히 하라고. 그렇게 부담 없이 화해하면, 싸운 것을 쉽게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마치의 의견에 따르려고 합니다. 이것은 둘이서 한 마디씩 사과해서 그걸로 끝난다고.

  주택가를 빠져나가자, 눈앞에 전원 풍경이 펼쳐집니다. 몇 개의 논에 규칙적으로 심어진 모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 과거에서 온 바람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벌써 상당히 옛날이 되어버린, 처음으로 이야기하고 그대로 같이 돌아간 그 무렵의 기억이 뛰돌아 다닙니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래서일까요. 이 풍경을 눈앞에 두고 하치만 오빠와 이야기를 하자, 말이 술술 나왔습니다.


「그러네요. 하지만 논밭을 무너뜨리고 집을 짓는 것도, 멋이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깔끔해지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살게 된 사람만일지도 몰라요. 혹시 원래 살던 사람은 싫어할지도 몰라요.」


  하치만 오빠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장마의 눅눅한 공기가 자꾸 무거워져서 저를 눌렀지만, 이 말은 본심에서 나온 말입니다.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긴장만은 참을 수 없어, 목이 말라갑니다. 제 마음은 요즘 망가진 것처럼, 격렬하게 점멸을 반복합니다.

  하치만 오빠의 얼굴에 여러 표정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뒤, 그는 그리운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저기,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갑자기 나온 그 말에, 무심코 심장이 덜컥합니다. 아무리 하치만 오빠라고 해도, 저의 내면에 닿는 것에는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 의도를 살피고 맙니다. 하치만 오빠의 눈을 조심조심 들여다보고, 곧바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차리자, 저는 익숙해진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이것은, 저의 이 공허한 성격을 서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예, 원래 그래요.」


  그래서 저도 말을 하며 저의 성격을 확고히 쌓아올려, 형태를 만들어 갑니다.

  저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을, 마음속으로는 바라지 않습니다. 언젠가 주변 사람이 녹아서 스러져도, 저는 변함없이 혼자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성격은 간단히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 일 같은 것은 없이, 태어났을 때부터 품었던 것이라 이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성격은 지금부터 평생, 꺼림직함을 품으며 같이 따라갈 테지요.

  ......그럼에도, 예전보다 자신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이런 저라도,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해준 애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갑자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불러서, 무심결에 대답했습니다.

  타이밍을 가늠해서 모처럼 제 생각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불만스러운 저와는 반대로, 하치만 오빠가 두른 분위기는 자꾸 팽팽해져갑니다. 긴장을 억누르듯이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편 뒤, 저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까, 항상 곁에 있게 해줘.」


  그것은, 예전에 제가 들었던 말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서 들으리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지금까지 미움 받지 않을 정도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성으로 사랑받다니, 하물며 하치만 오빠가 고백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우리들의 가까운 거리는 그저 함께 보낸 시간에 비례한 것일 뿐, 특별한 유대가 자라났다는 건,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몸을 지배하는 놀라움에, 어느덧 넘쳐흐른 기쁨이 뒤섞여, 따스한 온기에 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짝반짝한 고운 알이 가슴 속에 퍼져, 그리운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하치만 오빠의 말을 먼 옛날에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프로포즈한 말이니까요.

  그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서 제게 말해준 것. 제가 갔더니, 할아버지가 난처한 얼굴로 제게 가르쳐 준, 머나먼 옛날의 자그마한 고백.


「아하하하하!」


  그래서, 절로 웃음소리가 넘쳐흐르고 말았습니다.

  용모도 성격도 매우 닮은 우리들인데, 설마 이런 부분까지 같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이 기묘한 우연이 재미있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놀라서 기막힌 모습으로 눈을 크게 뜹니다. 조금 멀리서 걷는 사람들이, 힐끔힐끔하고 궁금한 듯이 우리들을 보고 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가득 차는데 어째서 그 마음을 숨겨야 할까요.

  쑥쓰러움의 물결이 밀려와서 돌려주듯이 살짝 발을 넣어서 닿자, 투명한 물이 발에 휘감겨서 놓아주지 않습니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제가 계속 웃어서 그런지, 하치만 오빠가 불만스럽게 흘겨봅니다.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 빠져서」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하치만 오빠가 입을 뾰족하게 하며,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그 토라진 모습이 아이 같아서 귀여웠지만, 말로 하지는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둡니다. 그리고 일단 웃음을 멈추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순수한 감정을 꺼내서 말로 해나갑니다.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왜나면 이렇게나 가슴이 뜨거워지니까요.

  할머니는 이런 멋진 프로포즈를 받고, 어떻게 느꼈을까요. 만약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면, 안타깝습니다. 이 말만으로 평생 가득 찰 정도로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나저나, 그렇다고는 해도,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


  저는 아직 14세라서, 애초에 결혼 같은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제 생각을 전하는 것만 생각했고, 앞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 때문에, 마음 깊숙이 있는 감정에 쉽게 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어준다. 제멋대로에 독선적이고, 손 놓아 버린 것을 쫓을 수 없는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

  그래서 남은 것은 앞으로 하나만.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라도, 겉으로 드러나게 된 싫은 성격에 대해 물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심술궂은 질문을 하고, 어떤 대답을 기대하면서, 저는 마음속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가, 평소의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했습니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기대 그대로인 말은 정말로 달콤해서, 몸 전체가 저릴 정도로 기분 좋았습니다.

  그 달콤함에 취해서 잠기듯이 몸을 흔들고 있는데, 하치만 오빠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기대 이상의 말에, 뺨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히죽거릴 것 같게 되는 얼굴을 억누르고, 목소리에 동요를 남지 않게 침착한 상태를 의식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두근거리는 탓에, 제대로 하고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다행히 하치만 오빠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 제 상태를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대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솔직해지자고 친구와 약속했고, 저를 알면서도 함께 있어주는 사람을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조금만 더 뒤로 하려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이 순간을 맛보고 싶으니까요. 앞으로 여러 행복과 불행을 만나겠지만, 이것과 같은 종류의 행복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따스한 기분에 몸을 담가서, 그대로 몸을 맡깁니다. 얼굴에 닿는 산들바람이 기분이 좋아, 눈을 가늘게 뜹니다. 언제까지나 하치만 오빠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서, 아쉽지만 손을 놓고, 만감의 생각을 담아 대답합니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일찍이 할머니가 한 것처럼, 낡고 평범한 말을 골랐습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그렇게 말하고 비어 있던 하치만 오빠의 손을 잡아, 돌아갑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대로, 하치만 오빠의 손은 남자답게 커서, 가슴의 고동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하려다가 끊긴 말은 아직 하지 않습니다. 모처럼이니까, 제대로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조금만 미루려고 합니다.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 기회를 날린 사람은, 하치만 오빠니까요.

  어느 새 해는 거의 가라앉아 떨어져서, 거리는 작은 어둠과 주황색이 뒤섞인 복잡한 색조를 보이고, 먼 하늘에는 창백한 달과 가장 먼저 보이는 별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저는 이 성격 그대로일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채워져도, 이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이 떨어진다면, 되찾으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런 저라도, 이 커다란 손을 계속 잡는 것만큼은,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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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Ⅶ ~갖가지 눈물~




「그래서, 넌 잘못됐어.」


  그 말을 하치만 오빠가 했을 때, 몸 깊숙한 곳에서 뜨겁게 질척질척한 것이 올라와, 떨릴 것 같았습니다.

  떨림을 필사적으로 참으려고 하자, 곧바로 그리운 기분이 밀려와, 가슴 속에서 여러 감정이 얽혀서 생긴 것은 체념이었습니다.

  결국 하치만 오빠는, 그 때 이래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성장하면서 눈이 점차 탁해지고, 근사함이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제일 깊숙한 곳에 숨겼던 것은 그 때 그대로였습니다.

  8년 전의 그 돌아가던 길. 태양이 여름을 알리듯 날카로운 햇볕을 내리쬐고, 땀과 긴장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던 그 때와.

  ......그리고 저도, 그 때 이후로 전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빠져 있던 부분은, 변함없이 텅 빈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모르게 하치만 오빠가 바라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말았습니다. 하치만 오빠의 곁에 있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을 두 명 알고, 저 같은 것이 누리는 것보다도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심은 굉장히 간단하게 섰습니다. 방법도, 바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탄스러운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서투르게 봐왔으니까요.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하지만 나온 말은, 제가 떠올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 수 없는데,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대서 속이고 있어요.」


  불합리한 말을 해서, 이런 녀석과 두 번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넘쳐흐르는 말은 바로 포장이 벗겨져,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꾸자꾸 날카로워져 가고, 가차 없이 하치만 오빠를 찔러갑니다. 제가 말을 자아낼 때, 조금씩 비통한 표정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하지만 저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중에 제일 화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평소에 별로 화낼 일이 없어서, 침착한 기분을 모르게 되어, 마음을 완전히 주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별로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마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것이, 저는 가장 싫어요.」


  마지막에 토해낸 말은, 틀림없는 제 본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언하고 나서 하치만 오빠의 얼굴을 보았을 때, 말했던 모든 것을 후회했습니다.

  결국 저는, 하치만 오빠에게 상처 주었을 뿐입니다. 미움 받으려 해도 전혀 잘 되지 않고, 그저 머리에 피가 오른 채 무방비한 상대에게 심한 말을 퍼부었을 뿐입니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정말 참을 수 없이 싫어져, 눈 안쪽에서 눈물이 넘쳐흐르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눌렀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이 울다니, 용서될 리가 없습니다.

  일단 하치만 오빠에게서 등을 돌리고, 긴장된 표정을 풉니다. 눈물이 넘치지 않게 주의하면서 평소의 표정을 어떻게든 만들어, 간신히 뒤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인사했을 때, 마침내 버티지 못하게 되어, 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눈물은 아스팔트에 떨어져, 검은 얼룩을 몇 개 정도 만들었습니다.

  얼굴이 보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한 번 더 하치만 오빠에게서 등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더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흐느끼며 울 것도 없이, 눈물은 뚝뚝 뺨을 타고 그저 계속 흐릅니다.

  눈물을 흘리자, 머릿속이 점점 냉정해져서 저런 말을 하게 된 이유에 짐작이 갔습니다.

  저는 저의 성격을 긍정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치관은 어딘가 비뚤어졌고, 누구에게도 집착할 수 없다면 분명 혼자가 될 삶의 길을 주저 없이 걸어갈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윤리에서 벗어난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저의 이 성격을 누군가에게 부정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부정할 정도라면, 방치해주길 바랐습니다.

  잘못됐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그런대로 포기하고, 매듭을 짓고 사는 중인데, 그래도 잘못됐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면 좋은 건가요.

  올바르다고 듣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옳진 않지만 이 공허한 마음을 품은 그대로도 좋다고 말해줬으면 했습니다.

  그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줬으면 하는, 유치한 마음.

  ......뭐야, 저는 이렇게나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는 거잖아요.

  나는 하치만 오빠가 그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대로도 좋다고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제 성격을 보여준 사람은 하치만 오빠뿐이기 때문에. 혹시 코마치나 부모님도 알지도 모르지만, 저 먼저 보여주려고 생각한 사람은 하치만 오빠뿐입니다.

  하지만, 그 짝사랑도 오늘로 끝입니다.

  제가 보여준 심장은, 하치만 오빠에게 부정되었습니다.

  눈물은 이제 저를 탓하는 건지, 아니면 실연에서 온 건지 모릅니다. 분명 전자겠지요.

  그걸로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연정도, 내일이나 모레가 될지 모르지만, 바로 사라집니다. 후회를 질질 끌게 되어도, 미련만은 계속되지 않는다고, 제 머리가 냉철히 호소합니다.

  겨우 눈물이 멈춰, 조금 우회해서 편의점의 세면소에 들러서 얼굴을 씻습니다. 뺨에 남아 있던 눈물 자국은, 물에 닿아 조금 문지른 것만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얼굴을 씻자 기분도 많이 풀려, 평소대로의 제가 돌아옵니다.

  가게를 나와 하늘을 올려봤더니, 어느 새 밤의 장막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눈부실 뿐인 별들은, 손닿지 않는 머나먼 저 편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


  어제의 맑은 하늘과는 달리 돌변한 회색 하늘이 가린 아침. 눈이 깨어 밥을 먹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서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얼굴의 제가 비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잠버릇으로 머리카락은 군데군데 삐쳐 있고, 눈시울이 반 정도 닫혀 있었지만, 평소의 제 아침 얼굴입니다.

  얼굴을 씻고, 화장수와 유액을 묻혀 머리를 빗습니다. 매일의 준비를 마치고, 손가락으로 뺨을 들어 올리자, 완전히 평소대로.

  집을 나와 코마치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코마치는 벌써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얼굴을 마주치자 먼저 한 말이,


「아카네, 어제 오빠하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라고 중얼거려서, 저는 반사적으로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걸 물을까요. 저는 평소 그대로의 표정일 거라, 겉으로 봐서는 헤아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들은 걸까요. 하지만 하치만 오빠가 누군가에게 말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알았어?」


  대답을 잘못했던 것을 깨닫고, 살짝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이래서는 무슨 일이 있었다고 본인이 먼저 자백할 뿐입니다.


「있잖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아카네는 기쁜 일이 있었을 때는 그런대로 표정으로 나오지만, 싫은 일이 있으면 엄청 평범한 표정을 지어.」

「응」

「그런데, 오빠랑 데이트한 아카네가 평범하게 반응할 리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나 해서」

「..........」


  여러 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체로 정곡을 찌르고 있어서 입 다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실은 코마치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꺼려지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어제의 일을 이야기하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이야기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과 후에 좋아?」

「좋아! 느긋하게 얘기하자.」


  코마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상쾌한 미소를 띠고 훌쩍 제 앞으로 뛰쳐나가서, 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수업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채, 학교에서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야 일행에게 무슨 말을 들었지만,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 곧바로 잊어버렸습니다.

  방과 후가 되어 코마치와 학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갑니다. 날씨는 자꾸자꾸 나빠져, 사람들이 우산을 한 손에 들고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올려보는 모습이 하나둘씩 보였습니다. 저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해질녘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우리들 말고도 학생이 대부분, 점원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드링크 바를 주문합니다.

  그러고 나서 오렌지 주스가 2개, 테이블 위에 놓이자, 겨우 코마치가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오늘 아침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얘기했습니다.

  제가 계속 하치만 오빠를 좋아했던 것, 거기에 자신의 성격이 잘못됐다는 말을 듣자, 참지 못하고 화내서 심한 말을 퍼부어버린 것.

  제가 무언가 말할 때 코마치는 응응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동안,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고 겨우 코마치는 맞장구 이외의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카네는 어떻게 하고 싶어?」

「그건, 사과하고 싶다......고 할까 사과할 거야. 심한 말을 했고」

「그것만? 사과한 뒤에는 뭔가 안 해?」


  묘하게 위압감 있는 목소리로, 코마치가 말합니다.


「......으, 응」


  코마치는 저를 위에서 아래까지 쳐다보고는, 기막힌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주스를 한 모금 마십니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아카네는 진짜 둔감. 왜 이렇게 간단한 걸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구! 왜냐면 아카네는 어차피 오빠한테 미움 받고, 이대로 인연이 끊어진다는 생각 같은 걸 하잖아. 게다가 그 편이 오빠를 위한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할 거고」


  몹시 놀라며, 코마치를 다시 봅니다. 코마치는 아직도 말을 다 못했는지, 투덜투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그건 제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알아맞힐 수 있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이렇게나 간파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코마치가 생각하는 것을 반 이상 모릅니다.

  하지만 제 사고를 「어차피」라고 부르는 것은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거기가 둔하다는 거야! 그렇게 사소한 걸로 오빠가 아카네를 싫어하게 될 리가 없잖아. 아카네는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해.」

「그야말로 과대평가야. 나, 코마치 생각보다 싫은 애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기, 아카네. 내가 아카네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가 뭔지 알아?」


  코마치는 어딘가 그리워하는 듯한, 비밀 이야기를 공유하는 듯한 표정을 띠고, 앞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부탁받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건 친구가 된 계기. ......실은 오빠한테 소개받기 전에 우리들 한 번, 얘기한 적 있어.」


  제가 목을 기울이고 있자, 코마치는 「역시 기억 못했어.」라고 입을 뾰로통하게 하며 말했습니다. 빨대로 컵 안을 뒤섞자, 찰랑찰랑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납니다.

  하지만, 하치만 오빠에게 소개되기 전에 코마치와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교내에서 마주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얘기한 때는 승강구가 처음일 겁니다.


「초등학교 때 교정 구석에 토끼우리가 있던 건 기억나?」

「응. ......입학하자마자 죽었지만」


  우리들의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과 6학년이 조를 짜서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학예회나, 레크리에이션이나, 요컨대 1학년이 초등학교에 익숙해지기 위해 행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풍습 중에 교내에서 사육된 토끼를 보살피는 것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2대인 흰토끼와 흑토끼. 하나와 부치라 불리던 토끼는, 두 마리 모두 눈이 작고, 동그랗고 제가 토끼우리에 들어가면 종종걸음으로 와서 재롱부리듯이 따라오는 귀여운 아이들이었습니다.

  보살핌이라고 해도 토끼 먹이를 주는 정도입니다. 식사 때 제가 서툴러하는 당근을 입에 대주면, 맛있게 갉아먹는 것이 흐뭇해서 그만 몇 번이나 주고 바라보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와 부치는 우리들이 입학하고 나서, 불과 두 달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칼로 배가 찢긴 것에 의한 실혈사. 범인은, 현지의 중학생이었습니다.

  ......기억합니다. 그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 마리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저였으니까요.

  그 날 아침, 먹이 당번이었던 저는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봤습니다. 쇠망치로 파괴된 자물쇠, 차가워져 움직이지 못하게 된 토끼 두 마리의 내장, 피가 스며들어 거무스름해진 흙과, 그 광경을 보고 먼저 기분이 나빠진 저도, 전부 기억합니다.


「......맞아. 그래서 죽은 뒤에, 토끼의 장례식 같은 것을 했던 것도 기억나?」

「그건, 조금만」


  그 이야기의 어디까지를 코마치가 알고 있을지는 모릅니다. 저는 발견자여서 경찰에게 이야기하고 사건의 전말까지 물었지만, 그 전말이 전교 조회에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 장례식 때 코마치가 울려고 했는데, 아카네가 가까이 있어서」

「......말은 걸지 않았겠네.」

「그래. 하지만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어. 진짜 요만큼도. 주위 여자애들은 모두 침울했는데 아카네만 그런 표정이어서, 화났어.」


  그 즈음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아마 저는 코마치가 말한, 태연한 표정을 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체를 본 뒤 나쁜 기분이 먼저 일고, 살해당한 하나와 부치에 대한 동정심이 부풀어 올랐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있다고 하면 슬퍼할 수 없었던 죄책감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뭐라고 할 뻔했는데, 선생님도 그 때 있어서 포기했어. 다음 날 아카네한테 다시 뭐라고 하려고 했더니, 아카네. 그 토끼 무덤 앞에서 손을 모았어.」

「......그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뒤가 약해져갑니다. 그 모습은 다른 동급생에게도 이상하게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와 부치를 잊은 것은 아닌데, 어째서일까 지금도 생각합니다.


「너무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었으니까, 다음 날로 할까 생각했더니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매일 참배하고. 이상하게 생각해서, 한 번만 뒤에서 말을 걸어서 이유를 물었던 거야.」


  확실히 기억납니다. 그 때, 선생님 말고 걱정해준 아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야기했을 때 저는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요.


「그랬더니 아카네, 『이 아이들이 죽고 슬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적어도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빌려고 해서』라고 말했어. 그 때 생각했어, 이 상냥한 애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코마치는 귀중한 추억을 말하듯이, 그리움이 담긴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자꾸만 뺨이 뜨거워져서, 그 부끄러움을 억누르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남동생이 죽은 뒤, 처음으로 성묘하러 갔을 때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덤 앞에서 손을 모으는 것은, 죽은 다음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신님에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놀라서 기막혀하고 있는데 아카네, 어디론가 가버리고. 방과 후에 말을 걸려고 찾아도 못 찾겠고. 결국에는 오빠한테 소개받는 식이었지만, 그래도 코마치는 아카네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어.」

「......응」

「그래서야, 코마치는 아카네가 말하는 싫은 부분을 가장 처음에 보고, 그 다음에 상냥한 부분을 알았던 거야. 하지만 아카네가 전혀 싫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하게 됐어.」


  어쩌죠, 울 것 같습니다. 점점 시야가 희미해져 코마치의 얼굴이 비뚤어져 보입니다. 가슴 속에서 선명한 감정이 치솟아, 몸을 감싸갑니다.

  이제,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더 이상 들으면, 저는 분명 울어버릴 테니까요. 보기 흉하게 코마치 앞에서 크게 울어버릴 테니까요. 그건, 굉장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코마치는, 그런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야. 약간 별나지만, 그래도 굉장히 상냥한 아카네라서 좋아하게 됐어.」


  코마치는 겨우 미소를 바꿔서는, 방금 전처럼 발끈한 표정을 만듭니다.


「그래서 아카네가 둔하다는 거야. 우리들의 기분을 전혀 몰라. 자기가 없는 편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코마치는 아카네가 없어지는 쪽이 싫어. 그래서 다른 사람하고 사이좋게 되어봤자, 아카네하고 떨어지면 아무 의미도 없는걸.」

「......읏」


  결국 견디다 못해, 울어버렸습니다. 어제와 오늘 눈물샘이 망가졌기 때문일까요, 애처럼 보기 흉하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왜냐면, 기뻤습니다. 그렇게 저와 같이 있는 편이 좋다고 말해준 것이 이렇게나 기뻤습니다.

  제가 흐느껴 우는 것을 깨닫고, 코마치가 정면에서 제 옆으로 옵니다. 그리고 달래듯이 제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졌습니다. 최근 제 키만 자라서, 차이가 많이 나게 됐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이 작은 손으로 어루만져 줍니다.

  그것이, 한층 더 제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아~아, 모처럼 이쁜 얼굴이 엉망이야.」

「코마치가 울리니까 나쁜 거야.」

「곤란한 애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아카네.」

「......뭔데」

「아카네의 성격으로 볼 때, 자기가 먼저 고백하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혹시 오빠가 그런데도 아카네랑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봐.」

「사람을 바보처럼 말하지 마. ......그래도 힘내볼게.」


  저는 울음을 멈추고 나서 그 이후로, 가게 내에서 궁금해하는 시선에 노출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재빨리 계산만 마치고, 코마치에게 손을 끌려가듯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분명 이 애한테는 평생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평생 친구로 있을 수 있다면, 그건 멋진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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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Ⅵ ~가슴 속~




  제가 중학교 3학년으로, 하치만 오빠도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자,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봉사부라는 이름으로 미루어보면 교내 청소라도 할 것 같은 부입니다만, 하치만 오빠가 말하기로는 상담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치만 오빠의 설명이 애매해서 구체적인 것까지는 몰랐지만, 그런데도 그 활동내용은 하치만 오빠에게 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부정하겠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투덜대면서도, 결국은 지나치지 않고 상담에 응해주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심결에 살짝 미소 지었습니다.

  그리고 코마치와 시험공부를 하고 하치만 오빠와 합류했을 때, 마침 하치만 오빠의 동아리 동료들과도 만났습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 씨와 유이가하마 유이 씨.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여자여서 많이 놀랐지만, 말을 해보니 두 사람 모두 매우 매력적인 여자라는 것을 바로 알았습니다.

  하치만 오빠도 지금까지 제가 본 것 중에서 가장이라고 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얘기하고 있어서, 그 모습을 보니 저는 기쁜 마음이 반, 납득하는 마음이 정확히 반 솟아올라 복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하치만 오빠와 함께 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이야기한 것만으로 전부는 모르지만, 유키노 씨가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유이 씨가 요령이 좋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제가 가지지 못한 따스한 것을 가진 것 같습니다.

  고민하고, 상처 입고, 엇갈리고. 그럼에도 거짓이나 기만으로 가리지 않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서로 받아들이는 것. 하치만 오빠가 내심 바라는 것.

  그건 제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봉사부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유이 씨에게 「사귀려고 생각하진 않았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은 역시 제 본심이며, 이제부터 평생 붙들고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2년을 보내고, 연애나 사랑에 대해 제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지독하게 독선적인 것입니다.

  상대에게 자신을 이해해줄 것을 바라거나, 자신의 바람이 상대에게 전해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분개하거나 자신에게 이상적인 상대를 마음속에 그리거나.

  하지만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를 정도이며. 그렇게 바라기 때문에, 실현된 것은 어디까지나 행복으로 가득 차서 넘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해서 꿈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저는 그 생각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을 거라 결정했습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와 교제했다 해도, 제가 그 사람과 사랑 같은 것을 키울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저와 교제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편이 매우 올바르고, 안심됩니다. 그 편이 분명 행복해질 수 있을 겁니다.

  ......아무것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잘 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미사키 군에게 고백 받고 나서 며칠 지났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등교해서 자리에 앉고, 차례차례 오는 반 친구와 인사를 주고받던 때. 몇 명의 여자애에게서 대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애들은 반에서는 화려하게 꾸미고, 남자애가 좋아할 법한 용모를 지녔으며 네 명 정도로 뭉쳐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들과는 딱히 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리가 가까웠을 때는 유행하는 가수나 배우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인, 일반적으로는 반 친구(クラスメイト)이며, 여자애들 말로는 친구(友達) 정도의 관계입니다.

  기분이 나쁜 날일까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그녀들은 저와 명백하게 적대하진 않았지만, 고의적으로 저를 무시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퍼붓지는 않아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로, 험담했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자, 전부 옅은 화장을 한 여자애들이 굳어져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전원이 머리에 살짝 펌을 했고, 간신히 갈색으로 보일 정도로 염색한 애도 있었습니다.

  교내에서 화장해서는 안 되지만, 생활지도 선생님과 다투는 동안 타협점을 찾아내서 묵인 받을 수 있는 정도의 화장. 파운데이션과 아이브로우 정도밖에 허용되지 않았던 탓에, 눈과 입술이 묘하게 인상적인 옅은 얼굴이, 차갑게 웃고 있습니다.

  밋밋하다고, 그 때 생각했습니다. 치크를 안한 탓인지 그저 하얄 뿐인 얼굴은, 멀리서 보면 그렇다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표정이 빠져 있어서, 누가 누군지 식별할 수 없습니다.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예전처럼, 머릿속에 쳐 있던 실이 또 하나, 툭하고 끊어진 것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렇게 되면 뒤는 간단합니다. 저 편이 일방적으로 싫어한다면, 저는 그저 무관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딱히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끊어질 가느다란 실이, 1년 빨리 끊어졌을 뿐입니다.

  다만 이런 때는 좀 더 슬퍼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그걸 못하는 자신에게 진저리가 났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안한 탓에 그다지 커지지 않은 이 문제도, 여자들에게는 쉽게 퍼졌습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저를 싫어하는 애들은 여자들에게 적을 만들기 쉬운 성격이라 일이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른 반 애들이 약간 걱정하며, 그녀들이 저를 싫어하는 원인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야가, 츠요시를 좋아했었대.

  그런 말을 들어도, 아야도 츠요시 군도 전혀 짐작되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아야는 세리자와 아야라고 하고 그 그룹 내에서는 조금 수수한 아이. 츠요시 군은 제게 고백한 미사키 군의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았다 해도, 해결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미사키 군에게 흥미가 없는 것이나, 애초에 좋아하게 된 사람밖에 교제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것을 전했어도 잘 되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들을 억지로 화나게 할 것 같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제 생활습관에 아야 애들과 얘기하던 것은, 훨씬 전에 사라지고 평온한 매일을 되찾았습니다.


―――――――


  저와 코마치가 봉사부 일을 돕게 된 것은 정말 우연입니다. 우연히 같은 반인 카와사키 군이 봉사부에 부탁이 있어서, 우리들이 그 중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상담 내용은 단순한 첫눈에 반한 사랑, 솔직히 말해서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은 채 카와사키 군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제가 가장 신경 쓰인 사람은, 카와사키 군의 누나인 사키 씨였습니다.

  교복을 흩뜨리고, 강해보이는 눈과 조금 무뚝뚝한 말투인 사람. 틀림없이 무서운 사람으로 누이 동생 사이가 나쁜가 생각했지만, 막상 카와사키 군을 앞에 두면 누나로 돌변합니다.

  카와사키 군도 카와사키 군대로, 반에서의 행동과 매우 차이가 났습니다. 사키 씨가 뭔가를 주의하면, 투덜대며 대답하고, 그것을 또 사키 씨가 주의하는 가족다운 광경이, 제 앞에 펼쳐졌습니다.

  결국 헤어질 때까지 누이와 동생의 흐뭇한 광경은 계속되어, 저녁노을로 물들여진 길을 누이, 동생이 사이좋게 가는 모습을 보고 생각합니다.

  그 광경은 제가 손에 넣었을지도 몰랐던 것이나, 이미 옛날에 어딘가 멀리 사라지고, 그 뒤로 손을 뻗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가 누나 입장에서 남동생을 타이르고, 남동생도 귀찮은 듯이 꿍하니 대답하고. 그것을 코마치나 하치만 오빠가 쓴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는 현재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매우 따뜻하고, 훌륭하고, 마음이 채워지는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런 광경을 지금도 유리 케이스 너머 멀리서 바라볼 뿐, 그저 지나치게 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이 괴로워졌습니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잊었던 것이 목까지 차 올라와서, 구역질을 참는 것으로 필사적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미소를 만들어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에게 「우리들도 돌아가자」고 말하고 발을 내디뎠을 때, 위가 뒤틀려서 상태가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자주 성묘하러 가는 이유를, 겨우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제 나름의 속죄입니다.

  죽어버린 남동생을 떠올리며 울 수 없었으니까, 지금도 떠올리듯이 절에 가서, 남동생에 대한 기억을 새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는 분명 1년에 한 번 있는 행사로 고쳐 생각하고, 남동생을 방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았기 때문에, 적어도 마음속에 간직하려고 생각했습니다.


―――――――


  카와사키 군이 첫 눈에 반한 상대는 이즈에 메구미라는, 조금 독특한 성격에 예쁜 용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산뜻한 인상에, 처음 만났을 때에도 거리를 느끼게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즈에 씨가 때때로 보이는 표정이 저는 서툴렀습니다.
  처음으로 이즈에 씨와 이야기한 날. 그녀는 묘하게 투명한 눈으로 저를 들여다보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묻고, 「없다」고 대답했을 때 이즈에 씨는 「흐음」하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 웃는 방식은 연하의 여자애를 이런이런하고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모멸할 마음도 없이, 옛날의 자신을 떠올리는 듯한 따스한 눈으로. 그래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저의 깊숙한 곳에 봉했던 감정이 억지로 뽑혀, 제 앞에 속속들이 드러날 것 같은 공포감이 몸을 지배했습니다.

  그 예감은 반은 맞고, 반은 빗나갑니다.

  그 다음날. 하치만 오빠와 저, 이즈에 씨와 카와사키 군이 데이트하기로 되었습니다. 하치만 오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을 때는 뛰어오를 정도로 놀랐습니다. 반드시 뭔가 뒤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유를 묻자, 이즈에 선배의 발안이라고 해서 조금 수상했지만, 그래도 거절할 이유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말, 평범한 데이트 같이 꾸미고 나가서, 평범한 데이트를 했습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개와 장난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둘이서 내용에 대해 푸념하고, 밥을 먹고.

  그것은 꿈에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꿈처럼 즐거워서. 이즈에 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와서 다행이라고, 이즈에 씨가 데이트 제안을 해줘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좋은 장면이 오기 전에 아주 쉽게 깨지고 말았습니다.

  세련된 카페에서, 아야 일행과 만났을 때,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제 안에서는 그녀들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후회도 미련도 전혀 없고, 따라서 그녀들이 보내는 시선은 어떻든 상관없고, 생크림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치만 오빠는 역시 그런 저를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롭지 않아?」


  하치만 오빠가 말했을 때, 거짓말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외로워. 모르는 동안 상처 주고 무시되었어. 화해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계속 이대로라면 어쩌지?

  그렇게 말하면, 하치만 오빠는 분명 평소대로 퉁명스럽게 말하고, 독특한 인간 관계론을 설파하며 타이르겠지요. 그렇게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지나가게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할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려고 하면 입술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머릿속에 그리던 말은 목을 통과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솔직히 제 안에 있는 마음을 내뱉었을 뿐입니다.

  한탄스러운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 불길한 예감을 실행한 사람은 저입니다. 스스로 가슴에 손을 넣고, 엉망진창으로 휘저은 뒤 뽑아서, 하치만 오빠와 제 앞에 내민 사람은, 저 자신입니다.

  ......내며진 것은, 공허한 형태를 띤 제 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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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Ⅴ ~소꿉친구~


  하치만 오빠는 차에 치였다고 했지만, 생명에 이상은 없고 왼 발이 골절되어 3주 정도 입원할 뿐이라고 코마치에게 쉬는 시간에 들었습니다.

  방과 후, 코마치에게 병문안 가자고 권유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처음 병문안이라는 것은, 역시 가족만 가야 하는 것이며, 타인인 제가 같이 있는 위화감을 아무래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차로 마중 온 코마치의 부모님과 인사만 주고받고, 혼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코마치가 말했지만, 3주간의 입원은 매우 긴 시간입니다. 특히 진학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하치만 오빠는 그 귀중한 시간을 잃고 말았습니다. 새롭게 학교가 바뀌면, 하치만 오빠에게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내심 생각했으므로, 조금 유감스러웠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의 방에 들어가, 교복차림 그대로 침대에서 천장을 보며 누웠습니다. 드러눕자 스커트가 흐트러져서 허벅지가 드러났지만, 누구의 눈도 없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대로 빈둥거리면, 교복에 주름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어머니나 아버지도 조금 늦어진다고 말했으니, 당분간은 이대로 있어도 무슨 말을 들을 일은 없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골절, 이라 했는데 상태가 어느 정도일까요. 뼈가 부러질 정도로 강한 충격이라면, 혹시 치였을 때 머리까지 다쳤을 수도 있습니다. 뇌진탕은 머리에 충격을 받은 직후보다 다음날이 위험하다고 들었으니, 아직 안심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원에서 검사를 했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걱정 같은 건 무의미합니다. 바보 같은 상상입니다.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자세를 바꾸어 엎드리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거기에 눈을 감아 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칠흑 같은 어둠에 몸을 담급니다.

  애초에 자신이 걱정하는 종류를 모릅니다. 하치만 오빠가 죽는 것이 무서운 건지, 하치만 오빠가 죽은 후의 자신을 상상하는 것이 무서운 건지, 저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대로 있다 어느 새 잠들어, 죽은 사람도 포함한 가족 여섯이 식사하는 꿈을 꿨습니다만, 핸드폰 진동으로 눈을 뜹니다. 어느 새 밖은 어두워져 있고, 어두운 방 안에서 핸드폰만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자, 액정화면에 코마치의 이름이 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아, 아카네? 오빠 상태 말인데」

「응」


  코마치는 잠깐의 간격을 뒀는데, 그 간격이 매우 길게 느껴집니다.


「엄청 괜찮았어! 이제 발 뼈 말고는 거의 건강할 정도야」

「그래.... 다행이다.」


  스스로도 약간 놀랄 정도로 안도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걱정해서 손해일 정도. 이참에, 썩은 눈도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을까?」

「......후후, 그러네.」


  코마치와 간단한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아무래도 하치만 오빠는 할아버지가 예전에 입원했던 병원에, 3주 정도 입원한다고 합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코마치와 이야기하다가 병문안을 가자고 다시 권유받았지만, 저 같은 것이 가도 될지 모른다고 말하며 한 번 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거의 관계가 없는, 굳이 말하자면 친구의 오빠를 병문안하러 가야 할까요.

  좀 더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해야겠지만, 따랐을 경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고, 그래서 상식이라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짧은 인생 경험으로는, 그 상식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하치만 오빠가 입원하고 나서 처음의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늦은 아침 식사를 먹고 숏팬츠에 파카를 걸쳤을 뿐인 차림으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화분에 물 주러 갔다 돌아온 어머니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카네. 미안한데, 지금 부탁 좀 들어주지 않을래?」

「응-? 좋아. 어떤 걸 하면 돼?」


  욕실 청소나 장보기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대답하자, 어머니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습니다.


「고마워. 그럼 우리 집 대표로 지금부터 하치만 군 병문안에 가 주겠니?」

「......어째서?」

「어째서라니, 아카네가 신세를 지고 있고, 게다가 몇 번이나 우리 집에 와주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몰인정하잖아.」


  어머니는 손을 뺨에 대고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거의 얘기 안 했고, 그래도 가야 해?」

「그럼. 소원해졌어도, 신세를 진 건 변함없으니까, 이런 때는 제대로 얼굴을 내밀어야 해. 거기에 아카네도, 하치만 군이 싫은 게 아니잖니.」

「그거야,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거절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그래도 확실히 몰인정이라는 말을 들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하치만 오빠의 관계를 지금은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몇 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병문안 정도는 가도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알았어. 갈아입고 올게.」

「아, 아카네. 잠깐만.」


  확실히 하치만 오빠 앞에 내밀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방으로 가서 갈아입으려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뒤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엄만, 병문안에 들고 갈 꽃은 크로커스가 좋다고 생각해.」


―――――――


  그리고 저는 도중에 산 꽃다발을 들고 현지 종합병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휴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현지 사람은 모두 차로 병문안 가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버스 안은 저와 어떤 할머니와 양복을 입은 샐러리맨 밖에 없어서 한산했습니다.

  뭘 입고 갈까 한참 헤맨 결과, 병원에 가는 이유로 청초한 롱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입고 집에서 나왔지만, 그런데도 버스 안에서 이상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창문을 거울 대신 삼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도로 포장 상태가 나빴는지, 덜컹덜컹 좌석이 흔들리는 중, 생각을 계속 합니다.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이유도 있어서,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잘 모릅니다. 예전에는 둘만 있어도 할 말은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요만큼도 화제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에 이야기했을 때는, 무엇을 말했었는지. 확실히 히키가야가에서 같이 드라마 재방송을 봤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의 한쪽 구석에서 끌어낼 수 없었습니다.

  우선, 병문안하러 왔다고 말하고, 밖에서 무시하는 형태가 된 것을 사과하자, 라고만 속으로 결정했을 쯤, 버스가 병원 앞 정류소에서 멈춰서 내렸습니다.

  4년 만에 찾은 병원은, 외관도 병원 내에 달라붙은 냄새도 그 무렵과 전혀 변함없어서, 할아버지 병문안에 갔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되살아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만큼 긴장하지 않았고, 손에 꽃다발을 들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제 발로 여기에 와 있습니다.

  미리 코마치에게 들은 병실을 향해 발길을 옮깁니다. 병실에 가까워지면서, 자신이 긴장되어가는 것을 깨닫고, 할 말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음미합니다.


「앗, 죄송합니다.」


  그렇게 응응하는 소리를 내던 중, 모퉁이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을 확인하자, 50대 정도의 잡담을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는, 여자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저를 보고 있고, 다음에는 제가 든 꽃다발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아니, 괜찮아. ......그렇다 쳐도, 좋은 꽃이네. 혹시 병문안 상대는, 남자애?」

「......왜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 꽃의 이름은 크로커스라고 해. 꽃말은 『신뢰』, 『날 믿어』, 『청춘의 기쁨』, 『사랑의 후회』야. 아무튼 여러 가지 있지만 요컨대, 화해하고 싶다는 의미야.」

「아아, 그런 건가요?」


  ......정말로 제 어머니는 다정하고, 아름다우며, 참견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딱히 원내에서 헤매는 일 없이, 하치만 오빠의 병실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문 손잡이에 손댈 때, 심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빨리 뛰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더니, 아직도 긴장은 남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침착해졌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소리가 커지지 않게 조심하며 병실에 천천히 들어갑니다.

  독실은 아닌 듯, 침대 4개가 좌우로 2개씩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2개는 시트나 이불이 놓이지 않았고, 하나는 하치만 오빠와 같은 나이만한 남자가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실에 들어온 저를 힐끗 봤을 뿐, 곧바로 손에 든 축구 잡지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치만 오빠」


  그리고 남은 한 사람. 옅은 황색 커튼 맞은 편 침대에, 입원 복을 입은 하치만 오빠가 앉아 있었습니다.


――――――


「발 상태는 어때요?」

「왼발이 전혀 안 움직여.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게 이렇게 큰일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크로커스를 화병에 꽂고, 꽃잎을 살짝 손대며 나온 말은, 역시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대로, 목소리가 높아지지도 혀를 씹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었고, 하치만 오빠도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해줬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치만 오빠가 입원하다니, 정말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상처다운 상처는 입지 않았지. 부주의하게 외출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있지만....... 개를 구하려다 치였다고, 코마치가 말했어요.」


  그렇습니다, 그것에 가장 놀라, 굉장히 안심했고, 그리고 매우 눈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분명, 자기 몸보신을 위해 보고만 있을 테니까요.


「딱히 구한 건 아니야. 그저 눈감을 수 없어서 멋대로 얼간이 짓을 했을 뿐이다.」

「그걸 구했다고 하는 거예요. 괜찮잖아요, 자랑해도. 만약 제가 주인이라며,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게 될 정도예요.」

「......만약, 이겠지?」

「그래요.」


  긴장을 밀어넣듯이, 침을 삼킵니다.

  농담도 할 수 있고, 매우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이기에, 제대로 전해야만 합니다.

  말은 가슴 속에 쌓아두면 점점 무거워지고, 자꾸자꾸 밖으로 내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이 기회를 놓치면, 더 말하기 어려워지니까.

  버스 안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온 말을, 이 반 년 간 쭉 말하는 것을 미뤄온 말을, 겨우 내뱉을 수 있었습니다.


「하치만 오빠......」

「뭔데?」

「가을 때부터 계속 무시해서, 죄송해요.」

「......그건, 코마치에게 말해야겠지.」

「코마치에게는 다음에 말할게요. 하지만, 우선 하치만 오빠에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코마치는 요 반년 간 쭉 걱정해줬고, 그런데도 억지로 저와 하치만 오빠를 만나게 하는 건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쭉 미안하다고 생각했고, 계속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가 하치만 오빠에게 제대로 사과한 뒤에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사과하기 전에, 먼저 사과할 사람은 나야.」


  하치만 오빠는 눈을 돌리지 않고, 제대로 제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어떻든 상관없는 장면에서는 바로 얼굴을 돌리면서, 중요한 때에는 절대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나도, 밖에서 널 무시했었어.」

「......그렇다는 건, 저한테 맞춰준 게 아니라는 의미인가요?」

「그렇다고 할까, 키리바나가 나한테 맞춰줬다고 생각했는데.」

「............」

「............」


  요컨대 우리들은, 똑같이 생각하고, 같은 타이밍에, 같은 행동을 했었습니다.

  환경도 성격도 전부 다른데, 도착 지점이 같다는 것은 조금 이상해서, 약간의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어쩐지, 우리들. 바보 같네요.」

「그럴지도」

「저기, 하치만 오빠. 우리들은 무슨 관계일까요?」

「음, 뜬금없이 왜 그래?」

「아뇨, 누가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까 해서요.」


  만약 우리들의 관계를 애인 이외에 잘 나타낼 수 있다면, 분명 좀 더 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치만 오빠가 이상한 비방을 받는 일이 없다거나, 반년 전과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설명해서 납득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면 해 두고 싶습니다.


「그거야, 친구의 오빠 아냐?」

「그렇긴 한데, 어쩐지 제 안에서 딱 떨어지지 않는다고 할까. 말씨가 나쁘지만, 하치만 오빠는 코마치의 오빠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너, 자연스럽게 심한 말을 하는데.」

「죄송해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만난 차례가 하치만 오빠 쪽이 먼저라서 그런 걸까요. 저에게 코마치는 코마치이며, 하치만 오빠는 하치만 오빠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부수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끄럽지만요.


「......그러면, 하나 좋은 말이 있어.」


  하치만 오빠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왠지 얼굴이 조금 붉었습니다.


「소꿉친구다.」

「......네?」

「그러니까, 소꿉친구야. 코마치를 관련짓지 않으면 그거잖아. 아무튼, 여동생 2호적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뭐, 정말 지긋지긋한 관계 같은 의미고, 마침 적당하겠지. 게다가, 소꿉친구는 연애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데이터가 있으니 오해받기도 어려워.」


  참고한 데이터가 굉장히 편향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꿉친구라고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런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소꿉친구라는 말은, 조금 듣기 좋습니다.


「......그러니, 혹시 누가 관계를 물으면, 지긋지긋한 관계인 여동생의 오빠니까 잘라도 인연이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소꿉친구라고 해 둬.」

「알았어요. 그럼 실례할게요.」


  병실에 들어갔을 때처럼 크게 심호흡했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긴장되지 않고, 마음속은 오로지 평온했습니다.

  해야 할 말은 바로 정해졌습니다. 반년 전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으면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무렵의 기억은 묘하게 지금도 확실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키리바나 아카네라고 하고」


  그래서, 이 사실을 우선 처음으로 하치만 오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소꿉친구입니다.」


―――――――


  그 이후로 시간이 평온하게 흘러갔습니다.

  2학년이 되어도 코마치와 같은 반이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괴롭힘 같은 것이 없는 무난한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학년 무렵의 소문은 이미 완전히 사라졌고, 또 몇 명의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지만, 1학년 때처럼 거절했습니다.
  하치만 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요. 귀가 시간이 엇갈려, 돌아가는 길에 만날 일이 거의 없어져서, 예전처럼 오해받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히키가야가에 놀러갔을 때는, 초등학생 시절과는 약간 차이는 있지만, 가끔 실없는 이야기를 하고, 시시한 농담을 서로 하곤 했습니다.

  무언가가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학년 후반 때 겪은 가슴의 결림이 사라져, 마음이 가벼워진 것만큼은 느꼈습니다.

  2학년 겨울 발렌타인에는, 코마치와 함께 반 친구에게 나눠줄 초콜릿을 만들었습니다. 남은 재료를 써서, 코마치와 둘이서 초콜릿 하나를 만들어, 하치만 오빠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하치만 오빠는 무뚝뚝하게 받았을 뿐이지만, 저도 코마치도, 단지 부끄러워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둘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어, 겨우 코마치와 같은 반이 된 봄 무렵. 방과 후에 미사키 군이라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반 친구에게 고백된 것을 하치만 오빠에게 목격되어, 저는 약 2년 만에 하치만 오빠와 같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하치만 오빠도 미사키 군도, 조금만 더 타이밍을 읽어줬으면 좋았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