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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한 번밖에 입지 않았던 정장을 입고, 기합을 넣는다.
  지금부터 갈 곳은 마왕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기합 하나라도 넣지 않으면 다리가 떨리니까.
  자! 가보자! 유키노시타성으로!

  부들부들
  부들부들
  덜덜덜덜덜덜덜덜덜

  어, 어라-?
  다리만이 아니라,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합이 부족하다는 건가?
  아니, 아마 게으름뱅이인 내가 더 기합을 넣어봤자 소용없지.
  이 다리의 떨림을 멈추려면...


「...그래, 유서를 쓰자!」


  경우에 따라서는 『잘도 내 딸을!』라며 XX될 가능성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부모님은 우선 어떻든 상관없으니, 코마치 앞으로 유서를 써두자.
  써두면 미련을 남길 것도 없이 옥쇄할 수 있다.
  근데 옥쇄확정이냐고.
  뭐 상관없다.
  삼가 아룁니다, 코마치에게...


  하루노 씨와 몇 번이나 일을 치른 뒤, 필로 토크하지도 없이 같이 밥을 먹었다. 아침 점심을 거르고 3시까지 해버렸으니, 그거야 아무튼 배도 고파진다. 적당히 만든 볶음밥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서로 맺어진 건 좋은데... 하루노 씨의 집을 생각하면, 쉽게 허락해주진 않겠죠.」

「으~응, 그치. 히키가야 군 얘기는 가끔 했으니까, 전혀 모르진 않겠지만...」

「하루노 씨라도 예상할 수 없어요?」

「응. 솔직히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 요즘 맞선 얘기를 계속 거절해서, 뭔가 알아챘을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최악의 전개는 『이런 말 뼈다귀는 안 돼』라고 하는 거겠죠.」

「그치. 그 엄마니까, 나도 유키노한테도 결혼상대를 준비했을 가능성이 있으려나」

「...드럼통에 갇혀 바다에 버려질 일은, 없겠죠?」

「없어없어, 그렇게까진 안 해...... 아마도」

「아마도!? 거기는 단언해주세요!」

「음~ 엄마가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는 모르니까-...... 혹시 무서워졌어?」


  히죽거리며 심술궂은 미소를 띠는 하루노 씨.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해하는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전의 나로서는 몰랐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하루노 씨의 눈을 보면 안다.


「괜찮아요.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지만, 하루노 씨를 좋아하게 됐을 때부터 목숨을 걸 정도의 각오는 해뒀어요.」

「........정말, 히키가야 군은 치사해」


  조금 빨개진 얼굴을 숙이고, 부끄러운 듯이 우물쭈물하는 하루노 씨.
  아아, 귀엽구나 하루노 씨.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윈 얼마든지 걸 수 있다.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의 경우가 되면 둘이서 도망치자!」

「그래요. 유키노시타가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잘 도망쳐 보일게요.」

「응! 그럼 지금 멀리 아는 사람한테 메일해둘까」

「성격이 급하시네요. ...그런데 말을 되돌립니다만, 이 뒤는 어떻게 할까요?」

「우선 난 집에 돌아가서 솔직하게 얘기해보려고 해.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쪽으로밖에 안 갈 거니까.」

「과연, 그러네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오늘 중에는 꼭 연락할게.」

「알겠습니다. 무사를 빌게요.」

「고마워. 그럼 또 보자.」


  결국, 어제 하루노 씨가 간 뒤 폰을 계속 잡고 연락을 기다렸다가, 날짜가 바뀌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새 잠든 것 같아, 정신 차리면 아침이 되어 있었다. 자는 동안에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내 마음 속에 불안한 마음이 자꾸자꾸 커져간다.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던 내게 떠오른 것은, 『유키노시타가로 간다』였다.

  반침 안에서 연말 대청소와 동시에 클리닝을 맡긴 정장을 꺼내, 익숙하지 않은 넥타이에 악전고투하며 옷을 입었다.
  일단, 하루노 씨의 폰에 『거기로 갈게요』라는 메일을 보낸다. 상대방에게 도착하지 않았을 때 되돌아오는, 영어 메일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신은 한 듯하다. 그럼 하루노 씨는 왜 연락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불안이 한 층 더 부풀어 올랐다.


「좋아, 갈까」


  폰, 지갑, 시계와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챙기고 현관을 나왔다.
  시각은 오후 2시.
  여기에서 유키노시타가까지, 1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하루노 씨, 지금 갑니다...!



  집에서 나와 조금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바로 도착한 버스의 행선지를 확인하고 승차. 버스에 흔들리기를 수십 분, 종점 2정거장 앞에서 하차. 거기부터 몇 분 정도 더 걸어서... 유키노시타가에 도착이다.

  고급 주택가 거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그 집은, 주변에 줄선 많은 대저택보다 2~3배는 커서 더 눈에 띄었다. 외관은 흰색을 바탕으로 한 서양풍으로, 이미 작은 성으로도 보인다. 높은 담벼락에 둘러싸였는데 잘 보이다니, 몇 층 건물인 거야. 보기에는 뜰도 상당히 넓은 것 같다. 과연 건축회사 사장 저택. 일반 가정 출신인 내가 보기에는, 여긴 완전히 이세계다.


「너, 여기에는 무슨 용무로 왔나?」


  당돌하게 말을 걸어왔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정문 앞에 서 있는 검은 정장 선글라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저 쪽에는 이미 두 사람정도, 마찬가지로 선글라스가 서 있다. 경비원인 건 대충 알겠는데, 외형이 너무 무섭다. 나 같은 치킨한테는 정신에 해롭다.


「음, 여기가 유키노시타 씨 댁 맞습니까?」
 

  가능한 한 아무렇지도 않게 위장하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떨려버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잖아, 나 치킨이고.


「그 말대로지만, 너는 누구지?」

「그, 그게, 히키가야라고 합니다만, 유키노시타 하루노 씨는 계십니까?」

「히키가야...? 혹시 너, 이름이 히키가야 하치만인가?」

「네? 그, 그렇습니다만...」


  뭐야, 경비원에게 나에 대해 알려줬어?
  유키노시타인가? 이렇게 한 사람은. 아니면 하루노 씨? 어쨌든 유키노시타가의 여성은 인권이나 프라이버시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상관없는 것을 멍하니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리는데, 정신 차렸더니 경비원 3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응? 난 혹시 의심스럽거나 위험인물 취급?


「아, 저기, 어떻게 된 거죠...? ㅈ, 저, 비무장인데요?」


  총을 들이민 것도 아닌데, 양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한다. 그러자 경비원 한 명이 천천히 손을 뻗어,


「확보!!」


  라고 외쳤다.
  거기부터 순식간에 재빠른 솜씨로.
  내 양손을 잡아 등 뒤에 돌려 수갑을 채우고.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모를 테이프를 내 입에 붙이고.
  또 난데없이 나온 타월로 내 눈을 가리고.
  다리, 몸통, 어깨를 각각 붙들려 아마 유키노시타가 부지 내라 생각되는 쪽으로 들려갔다. 지나친 전개에 저항할 새도 없이, 상대가 하는 대로 끌려간다.
  그나저나 당신들 솜씨 좋네.
  실은 경비원이 아니라 유괴범 아닌가? 라고 의심해버릴 수준.
  난 대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또각또각또각...

  발소리로 미루어보아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통로라 생각되는 공간을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거나... 몇 번 돌았는지 모르게 되었을 즈음해서, 갑자기 움직임이 멈췄다.

  철컥
  끼이이

  무거운 듯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 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가고 나서 또 멈춰, 뭔가 부드러운 것에 앉혀지는 형태로 내려졌다. 등에 닿은 딱딱한 느낌으로 보아, 아마 의자일 거다.

  또각또각또각...
  끼이이
  덜컹

  소리로 봐선, 경비원이 전원 나갔다.
  특유의 기척 감지로 근처를 탐색하지만, 사람이 있는 기색은 없다.
  여기, 어디지?
  그나저나 난 지금부터 어떻게 될까?

  덜컹
  끼이이
  또각또각또각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마 한 명.

  들어온 누군가는, 소리로 봐서 내 정면에 있는 의자인지 뭔가에 앉았다, 고 생각한다.
  안 보이니까 잘 모르겠다.

  스륵

  갑자기, 눈을 가리던 타월과 입가의 테이프가 떼어졌다. 순간 시야가 새하얘졌다가, 서서히 눈이 익숙해져 시야가 또렷해진다. 눈앞에 중후하고 아마추어 눈으로 봐도 품위 있는 긴 테이블이 있고, 그 반대쪽에 슈트를 입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흘러내리는 듯한 아름다운 흑발에, 날카로운 눈동자. 유키노시타를 닮았지만, 그 외에 강렬한 안광과 위압적이기까지 한 존재감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알았다.
  이 사람이, 유키노시타 자매가 무서워하는 유키노시타 어머니라는 것을.


「히키가야 하치만 군, 이 맞을까?」


  맑으면서도, 어딘가 위압적인 목소리가 실내에 울린다. 안 그래도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쫄고 있었는데, 더 쫄아버린다. 그럼에도, 눌려 으깨질 것 같은 마음을 분발해, 마를 것 같은 목을 진동시켜서 소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하루노와 유키노의 어머니입니다.」

「그, 그렇군요.」

「바로 말합니다만... 하루노와 남녀 관계가 되었다더군요.」


  너무나 단도직입적인 말에, 조금 뒷걸음질친다. 방금 전보다, 약간이지만 안광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유키노시타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그다지...」

「제 남편은 건축회사의 사장이자, 현 의회 의원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대로 계승되는 유키노시타가의 당주로서 각계의 영향력을 미치는 일족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

「즉, 집안으로서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속하는 것입니다. 일반인 입장에서 보기에는, 도저히 닿지 않을 것 같은 높은 위치에」

「...........」

「그 높은 집안인 유키노시타가의 장녀인 하루노와, 아무리 조사해도 일반 가정 출신인 일반인인 당신이 관계를 했다...」

「........그렇게 됩니다.」

「어울린다고 생각합니까? 제 딸과 당신이」

「......도저히, 어울리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저로서는, 이번 건은 딸의 한 때의 실수로 용서할 생각입니다. 그 다음, 유키노시타가에 맞는 상대와 결혼시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얌전히 물러나서, 지금까지의 일은 잊고 일반인에게 맞는 인생을 다시 보내줄 수 있습니까?」

「..........」


  어조는 정중하지만, 그 밖의 날카로운 안광에는 『얌전히 따르세요』라는 듯한 압력이 담겨 있었다.

  그래, 나와 하루노 씨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어디에나 있는 잡초 같은 나와는 반대로, 다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 같은 하루노 씨.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는 하루노 씨와는 반대로, 어디에 있어도 신경 쓰이지 않고 짓밟힐 수 있는 나.
  애초에 어울릴 리가 없다.
  그런 의미로, 유키노시타 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매우 올바르다.
  그러니까 나는―――


「거절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는 분명히 말해서 일반인입니다. 용모도 스펙도, 하루노 씨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뭐죠?」

「하루노 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저 뿐입니다. 저는 하루노 씨를 좋아하고, 하루노 씨는 저를 좋아합니다. 서로가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들였지만, 그 만큼 자신들의 마음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매력적인 남자가 나타나도, 하루노 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뿐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멋대로 믿어버릴 뿐이 아니고?」

「억측이 아닙니다. 단지 저를, 저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하루노 씨를 믿을 뿐입니다.」

「.........」

「...무리해서 유키노시타가에 맞이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하루노 씨를 자유롭게 해줄 수 없습니까? 저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면서, 그 누구보다도 겁이 많은 하루노 씨를 지지하고 싶습니다. ...하루노 씨를, 혼자 두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 하루노 씨는 지금까지 혼자였다. 부모님은 영향인지, 여동생을 위해서인지, 이유는 잘 모른다. 어느 새 몸에 익힌 마음을 닫고 미소로 덧칠해서 굳힌 가면이,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요새 같은 존재로 하루노 씨의 마음의 바깥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것이 하루노 씨를 홀로 있게 하고 있었다. 마치 바깥세상이 무서워 방안에 틀어박힌 아이처럼. 내가 왜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혹은 하루노 씨에게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접한 진정한 하루노 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약했다.
  아마, 처음부터 알았던 거다.
  하루노 씨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바랐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하루노 씨 옆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밖에 안 보이는 하루노 씨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하루노 씨를, 따님을 제게 주세요!!」


  확하고 힘차게 머리를 숙인다.
  내 나름대로 힘껏 성의는 보였다.
  앞으로는, 그 유키노시타 어머니가 어떻게 반응할지다.


「......흠. 당신의 성의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어요. 츠즈키, 준비해둔 것을」

「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사람 기척도 느껴져 놀라서 뒤돌아보니 언제나 리무진을 운전하는 츠즈키 씨가 있었다. 빠릿하고 말끔한 자세로 서서, 양손으로 A3 크기의 판 같은 것을 들고 있다.
  그나저나 츠즈키 씨, 운전기사 일만 하는 게 아니었군요.


「히키가야 님, 여기에 서명을 부탁합니다.」


  눈앞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민다. A3 크기의 그것은 얇은 케이스 같은 것에 넣어진 서류 같아, 좌측 상부의 『서명란』이라 쓰인 공간 이외가 전혀 안보이게 되어 있었다. 아마 어떤 서류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그게 뭔지는 전혀 모르겠다.


「...이건 뭔가요?」

「당신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서명란에 싸인하세요.」

「이 서류는 무슨 서류입니까?」

「물론, 제게 형편 좋은 서류입니다.」

「......」


  유키노시타 어머니에게 형편 좋은 서류...
  설마 차용서?
  아니아니, 차용서로 얼마나 빌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평생 벌어야 하는 금액을 단 한 달 만에 버는 그런 사람이 그런 걸 준비할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각서인가.
『앞으로 일절, 저는 따님에게 접근하지 않겠습니다.』 같은 것.
  그렇다면 최악이군.
  하루노 씨와 함께 보내기는커녕, 만나는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야겠지.


「왜 그러십니까? 자, 빨리 싸인하세요. 너무 시간을 들인다면 당신의 마음을 거짓으로 여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츠즈키 씨가 내민 비싼 보이는 만년필을 받아, 할 수 있는 한 신중하게 이름을 쓴다. 조금이라도 인상을 좋게 보이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다 해도, 이게 노예계약 같은 서류라면 문제인데. 혹시 그렇다면 진짜로 도망치자. 물론 하루노 씨와 함께.

  다 끝낸 뒤, 옆에 있는 츠즈키 씨에게 서류가 들어간 케이스를 건네준다. 서명란을 확인한 뒤, 츠즈키 씨는 유키노시타 어머니 앞으로 가져간다. 유키노시타 어머니는 그것을 받고는, 어떻게 했는지 케이스를 쉽게 열고 안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진짜 어떻게 한 거지?
  저거, 얼핏 봐도 어디에도 연결고리 같은 게 눈의 띄지 않아서 용접한 것으로밖에 안보이던데.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글자는, 조금 비뚤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글씨는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예상 밖의 말에, 엉겹결에 굳어진다. 의외, 라고도 할까. 하루노 씨나 유키노시타의 얘기를 들었던 것만으로는, 좀 더 기계적인 사람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한 발언을 듣고서, 조금 생각을 고쳐야 할 것 같다.


「츠즈키, 이것을 금고에 보관해둬.」

「알겠습니다.」


  츠즈키 씨는 서류를 공손하게 받고는, 투명한 케이스에 넣어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금고가 집안에 있는 건가. 아마 내가 아는 금고보다 큰 게 있는 걸까.


「그런데, 히키가야 하치만 군. 앞으로에 대해 뭔가 질문은 있습니까?」

「...앞으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까?」

「.....이미 서명도 했고, 지금쯤 금고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한 번 더 묻겠습니다. 그 서류는 무엇입니까?」

「단순한 혼인신고서입니다.」

. . .
. . . . . .
. . . . . . . . .

「예?」

「그러니까, 혼인신고서입니다. 어떤 건지는 알겠지요. 과연 바로 결혼시킬 수는 없습니다만,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면 당장이라도 맞이합니다.」

「........................저기, 누구와, 누구의 혼인신고입니까?」

「물론 당신과 하루노입니다.」

「저와 하루노 씨의...?」

「예, 그렇습니다. 본래라면 하루노는 유키노시타가에 어울리는 집안의 남성과 결혼시킬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하루노는 당신이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

「무슨 일입니까. 뭔가 불만이라도?」

「어, 아, 아- 아뇨... 뭐라고 할까, 그게...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쉽게...? 우수한 딸이 숙고해서 당신을 선택했는데, 그것을 쉽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뇨, 그럴 생각은... 단지 제가 생각했던 건 『너 같은 말 뼈다귀가!』나 『일반 서민이』 같은 반응을...」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하루노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게다가 하루노가 남아도는 재능을 힘껏 발휘하면, 결혼상대가 집안이 좋은 남성이 아니어도 문제없습니다. 뭐, 유키노에게도 해당되겠지만요.」

「......우선, 어떻게 기뻐해도 좋을지 몰라서, 하루노 씨를 만나게 해주셔도 될까요?」

「그렇습니까. 츠즈키」

「예.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어? 츠즈키 씨 어느새 돌아왔지? 그 사람은 닌자인가 뭔가야? 그보다 이미 기색 안 느껴지는데. 인간의 영역을 넘었잖아.

  덜컹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의자에서 일어서서 뒤돌아보니, 가슴 근처에 뭔가가 뛰어 들어왔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감촉과 향기로 바로 그것이 하루노 씨라는 것을 바로 눈치챘다.


「하루노 씨...!」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뻐서 무심코 꼭 껴안았다. 하는 김에 쓰담쓰담도 했다.


「하루노 씨, 괜찮았어요?」

「...응, 괜찮아. 괜찮은데...」

「무슨 일 있었어요?」

「으~~, 치욕이야~~」

「치, 치욕?」

「...저기」


  얼굴을 들어 천장 구석을 가리킨다. 거길 보니, 감시 카메라가 장착되어 있었다. 받침대  뿐만이 아니라, 전 방위 합계 8대.


「.........뭐야, 이건」

「별실에서 네 용감한 모습을 보기 위한 감시 카메라야.」


  귀에 익은 소리에 문 쪽을 보자, 거기에는 유키노시타가 있었다. 그 옆에는 온화해 보이는 댄디한 아저씨가. 집사인가? 아니, 그런 것보다 날 보고 있었다니...


「즈, 즉, 이 방안의 대화를 다른 방에서 감시 카메라로 보고 있었다고...?」

「그렇게 되네.」

「아니아니 뭘 하고 있어?!」

「뭐라니, 널 시험했을 뿐이야. 향후에 도망칠만한 남자인지 아닌지를. 그리고 이 카메라는 증거촬영을 위한 거야. 이걸로 너도 도망칠 수 없겠지?」

「아니아니, 이제 와서 도망치진 않을 거라고!!」

「그래? 그럼 괜찮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꽤 좋은 장면을 보게 해줬어요. 그렇죠? 아버지.」

「아아, 그래. 젊은 애들은 정열적이라 좋구나.」


  집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유키노시타의 말에 대답한다. 외형 그대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근데 거기 집사 같은 사람, 장인어른이었나!!
  아, 얼떨결에 장인어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혼인신고서 썼으니 딱히 상관없나.
  그렇다는 건 저기의 대마왕도 장모님이...


「하치만 군, 뭔가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아아아아아뇨! 딱히 아무것도!!」


  아뿔싸. 역시 유키노시타 자매의 어머니다. 초면인 내가 생각하는 걸 읽다니 역시 엄청나다. 그보다 난, 지금부터 독심술 쓸 수 있는 여자 둘과 가족이 되는 건가. 프라이버시 제로 생활의 시자이다. 뭐, 하루노 씨와 함께 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큰일은 아니.......겠지. 힐끔하고 대ㅁ... 커흠커흠, 장모님을 보면, 방금 전의 위압적인 오라는 어디로 갔는지. 온화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어떻게 봐도 어머니의 얼굴로, 나는 더더욱 『유키노시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노. 슬슬 준비해두렴. 나가자꾸나.」

「응? 어디에?」

「물론, 하치만 군의 친가야. 혼인신고서를 썼으니, 인사하는 건 당연하잖니?」

「...........」


  응? 우리집에 인사?
  이 장모님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유키노, 하치만 군의 여동생에게 연락은 했니?」

「네, 이미 했어요.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집에서 기다린다고 해요.」

「알겠다. 자, 하루노. 멍해 있지 말고 빨리 준비하렴.」

「.........」


  벌어지는 일을 머리가 전혀 따라가지 못해 보이는 하루노 씨. 뭐, 나도 전혀 못 따라가지만. 그나저나 유키노시타, 친가와 사이 나빴던 게 아니었나. 절묘한 연계 플레이로 우리들을 완전 포위했잖아. 어떻게 봐도 사이좋은 부모 자식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히키가야 구-운...」

「...뭔데요」

「우리들, 결혼하는 것 같네...」

「...그러네요.」

「왠지 이렇게, 여러 가지로 너무 쉽게 돼서...」

「...이제 이대로 흐름에 몸을 맡겨 봐요.」

「...그러자-」



  그 이후의 전개는 순식간이었다.

  우선은 우리 집에 유키노시타가 모두와 함께 방문. 엄청 기뻐 보이는 코마치와 상황을 잘 모르는 부모님에게 약혼 인사. 부모님은 코마치에게 조금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지만, 하루노 씨 같은 초절미인을 데려올 뿐만 아니라 약혼까지 했다는 건 티끌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 시종일관 망연해 있었다.
  뭐, 사교성 높은 코마치라면 몰라도 나 같은 커뮤장애인이 애인을 만들 거란 상상은 못하겠지. 게다가 상대는 이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집안이고. 아버지는 끝까지 의심스러운 듯한 눈초리였다. 안심해, 미인계 같은 게 아니니까. 결국, 망연자실한 부모님의 케어는 코마치에게 휙 던져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친가 방문 뒤, 벌써 해가 지고 있어서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낯선 맨션으로 날 데려갔다. 유키노시타가 자취하고 있다는 곳과 마찬가지로 큰 맨션.


「오늘부터 당신과 하루노가 살 맨션입니다.」


「「네?」」


  엘리베이터로 위층에 올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들었다.
  어? 갑작스럽게 둘이 삽니까?
  너무 급하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약혼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제 마음을 읽지 말아주세요.」


  그대로 20층까지 가서, 방으로 안내된다. 방은 4LDK 로 목욕탕 화장실 별도(당연한가)에 시스템 부엌 탑재. 조금 둘러봤지만, 방 하나 크기가 어떻게 봐도 내가 살던 곳보다 넓어 보인다.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지 않습니까?


「계속 둘이서만 사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 그러니까, 제 속을 읽지 말아달라고요.
  그보다 거기까지 상정하셨습니까.


「그럼, 우리들은 슬슬 돌아가죠. 내일은 당신들의 짐이 도착할 테니. ...그리고 가끔 보러 올 테니, 너무 놀라지 않도록」


  그렇게 말하고 나와 하루노 씨를 남기고, 유키노시타가 사람들은 돌아갔다.


「「.......」」

「...우선, 밥부터 먹을까요?」

「...그래」



  저녁은 배달피자로 했다. 냉장고 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환경은 정돈했으니, 앞으로는 스스로 하라는 거겠지.

  저녁을 먹은 뒤,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을.


「후우......」


  목욕탕에 잠겨, 피로와 함께 숨을 내쉰다.
  그나저나 이 집, 목욕탕도 넓구나.
  성인 둘이 나란히 발을 뻗을 수 있는 욕조는 처음 봤다.


「이야~ ...대단한 하루였지?」

「그러네요...」


  자연스럽게 옆의 하루노 씨를 봤더니, 약간 늘어진 듯, 기분 좋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김빠진 느낌의 하루노 씨가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

  ...응? 왜 같이 목욕하느냐고?
  먼저 목욕탕을 서로 양보한 결과가 이거야!
  꺼림칙한 기분은 어디에도 없다.
  진짜라고, 하치만 거짓말 안 해.


「왠지, 의외였죠.」

「그러네. 엄마가 그렇게까지 히키가야 군을 인정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아니 정말, 유서를 준비할 정도로 결사적으로 각오했는데 맥 빠졌어요.」

「유서 썼어? 히키가야 군 답구나~」

「그래도 안 하면, 유키노시타가 같은 마왕성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구요.」

「으~응, 그 마음은 모르는 것도 아니려나. 나도 어제 집에 돌아갔을 때, 갑자기 유키노한테 붙잡혀서」

「유키노시타한테? 그나저나 하루노 씨가 붙잡히다니 의외네요.」

「모르는 사이에 유키노가 팔을 올리고 있었어. 순간의 틈을 찔려 수갑을 채우고...」

「...역시 유키노시타. 언니가 상대라도 주저 없군.」

「진짜 그렇다구. 그 탓에 히키가야 군한테 연락할 수 없었던 거야.」

「아아, 그래서...」

「뭐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으니 잘 됐어.」

「맞아요. 이제부터 여러 가지로 큰일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기대돼요.」

「후후후... 맞아. 엄청 기대돼.」


응- 하며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켜는 하루노 씨.
동시에 흔들리는 큰 가슴에, 무심결에 두근거리고 말았다.


「그렇다 해도 히키가야 군, 멋있었다구. 설마 엄마에 대해 알고서도 당당하게 말하다니... 다시 반해버렸어.」


  날 보며 부끄러운 듯이 웃는다.
  어딘가 아이 같은 그 표정에, 고동이 방금 전보다 더 빨라진다.


「그 때는 하루노 씨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 만큼 부끄러웠다구. 유키노가 히죽히죽하며 날 봐서...」

「진짜 그랬어요? 그 녀석도 성격 나빠졌구만.」

「왠지 이미, 히키가야 군하고 사이 좋아지고 나서 유키노한테 계속 놀림 받는 기분이 들어. 약점 들킨 느낌」

「놀림 받는 하루노 씨도 귀여워요.」

「으-, 히키가야 군까지 그런 말하고-」


  뾰로통해져선 고개를 돌린다.
  그런 하루노 씨도 귀여워서, 무심코 평소의 쓰담쓰담을 하고 말았다.

  스윽스윽...

  바로 기분을 풀어준다고 생각했지만, 당분간 쓰다듬어도 하루노 씨는 고개를 돌린 채 반응해주지 않는다.
  고집이라도 부리는 걸까?
  흠, 그렇다면...

  확

  쓰다듬고 있던 손을 어깨에 두르고, 조금 억지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귓가에 입을 대고,


「하루노」


  라고 속삭였다.


「후앗!?」


  귀여운 소리가 하루노 씨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나를 보는 그 얼굴은, 마치 머리에 피가 오른 것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가, 갑자기...」

「아니, 이제부터 부부가 될 거니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정도는 당연하겠죠. 아니, 경어도 이상한데. 그런 이유로 경어도 그만두겠어.」

「어, 어, 저기...」

「자, 하루노. 나도 이름으로 불러줘. 아마 데릴사위가 될 테니, 조만간 히키가야가 아니게 될 거고」

「저, 저기... 하치, 만...」

「잘 안들려. 한 번 더」

「하, 하치만!」

「잘했습니다.」


  다시 쓰담쓰담한다.
  그러자 하루노는 새빨간 얼굴로, 빤히 흘겨봤다.


「...애 취급하지 말아줘.」

「응? 안 돼? 그럼 어떤 식으로 하면 좋아?」

「물론, 이런 느낌으로」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입술을 내 입술에 겹쳐왔다. 그것에 반응해 꼭 껴안자, 동시에 하루노도 안겨온다. 서로 꿈 같은 행복을 확인하듯이, 몸과 몸을 서로 겹쳤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사람은 바뀐다고 이따금 듣지만, 사실이었다. 1년 정도 전까지의 내게 가르쳐 주고 싶다. 엄청 예상 밖인 곳에 미래의 반려가 있다고. 뭐, 나니까 『있을 리 없다』라고 부정하겠지만.

  뭐 어쨌든.

  지금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아직 보지 않은 희망으로 가득 흘러넘친 미래를 생각하면서, 이 행복을 하루노와 같이 나누자.


「하치만」
「하루노」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