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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9 ~그리하여 세 명은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동아리에 가지 않을 것을 유이가하마에게 전하고 빨리 귀가한다. 코마치는 어디 놀러가기라도 했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던지고 침대 위에서 천장을 보며 쓰러진다.

  동아리에 가지 않았던 건 뭔가 볼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밖은 아직 밝지만 리모콘으로 형광등을 켠다.

  몇 줄기인가 창백한 빛이 흔들흔들 나부끼는 광경을 보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딱히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일지 모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키리바나와는 만나게 될 거다. 만약 키리바나가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내가 뭔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대로의 관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만났을 때 무시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제멋대로인 말을 상당히 많이 했으니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싫다. 그 녀석은 분명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건 싫다.

  따라서 생각한다. 다음에 키리바나와 만날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제대로 행동한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와 키리바나의 인식의 차이다. 나는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고, 키리바나는 그렇게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와 키리바나 어느 쪽이 올바른지는 모른다. 자신 있게 정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는 주변에 친구가 없었고 싸워서 헤어진 적도 없다.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 좋을 거라고 말하며 타인에게 강요했던 거다.

  애초에 이상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안 되는데, 게다가 한층 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좀 더 설득력을 실어야만 했다. 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답게, 그리고 나라서 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하자.

  ......그렇다면, 왜 나는 키리바나가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랐을까? 아니 틀리다, 난 키리바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키리바나와 만났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이어서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리고 바로 지난  번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것들을 다시 떠올릴 때 가슴 깊숙한 곳이 아파진다. 달콤 씁쓰레함이 입 안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오로지 생각했다.

  창백한 빛과 벌꿀 색 석양이 복잡하게 서로 섞여, 그리고 석양이 사라져갈 무렵에 겨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난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진부하고 어디에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 내 대답이리라.

  그렇게 겨우 다다랐을 때, 두 소녀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른다. 불과 두 달 정도 알고 지낸 사이이자, 동아리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둘. 하지만 그 둘에게는 반드시 가장 먼저, 말해야만 하겠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


「아, 힛키......」

「어머, 오늘은 왔구나. 히키가야」


  심호흡을 하고 힘껏 문을 열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눈에 들어왔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서 구구하게 할 말을 음미하고 있었더니 동아리에 가는 게 꽤나 늦어지고 말았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정 위치에 허리를 내렸다.

  평소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이곳은 4월에 비하면 상당히 따듯해졌다. 아직도 교복이 바뀌지 않아서, 동복인 우리들에게는 약간 더울 정도다.


「그래서 카와사키 군의 건은 어떻게 됐니?」


  유키노시타의 말로 입 안에 쌓였던 것이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까먹었다. 어제는 그대로 돌아갔고 선배는 선배대로 말을 안 하면 보고하지 않을 테니, 얘네들이 몰랐던 건가.


「타이시는 차였다. 선배가 말하기를 사귀기에는 좀 레벨이 부족하대.」

「그래. 그렇다면 카와사키 군에게도 한 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구나. 이대로 의뢰를 계속할지 어떻게 할지를 확인해야지.」

「그러고 보면 그런가. 아무튼, 포기할지 어떻게 할지는 그 녀석의 마음 나름이겠지.」

「그러네......」


  한 번 크게 숨을 내쉰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새긴 말이다.


「두 가지, 할 말이 있어.」

「무슨 일이야? 힛키,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한 표정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같은 동아리, 그리고 반 친구인 것도 관계없다.
 다만 순수하게, 히키가야 하치만 개인으로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무섭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방에게 부정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니까.


「......뭐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춘 유키노시타는 내려뜨린 시선을 든다. 유이가하마도 나를 향해서 의자를 돌리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해. 아마, 오래 전부터」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한다. 말로 꺼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 와 닿았다.


「......그걸, 우리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니?」


  유키노시타는 깨끗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이가하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유이가하마가 내게 어떤 감정을 향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을,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판단하기에 내 인생경험은 짧고, 거기에 반비례해서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왠지 모르게 상상은 했었지만, 유이가하마의 상냥함을 사춘기 남자 특유의 과도한 자의식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착각이라면 그걸로 좋다. 내가 멋대로 들떴을 뿐이라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며 청춘의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유이가하마의 마음이 내 상상대로였을 경우 역시 결말은 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한 자기만족에 유이가하마를 상처 입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필요한지 어떤지는 몰라, 그래도 말해두고 싶었어.」


  유이가하마는 그 작은 손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조금 밖에 안 보이지만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잠시 침묵한 뒤, 얼굴을 든 유이가하마는 괴로워 보이는 미소를 얼굴에 붙인 채 내게 묻는다.


「......알았어. 그도 그럴게 힛키, 아카네하고만 거리가 가깝고, 자연스럽게 눈길을 주고 있던걸. ......그래도, 왜 지금, 그런 말을 해?」

「결말을 짓고 싶었어. 여러 가지를 다시 보고, 다시 하고 싶어졌어.」


  누군가에게 이상을 거듭해서 강요하는 건 필연이라고 이즈에 선배는 말했다. 그렇게 함에 따라 엇갈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하나 중요한 말을 하는 것을 잊었다.

  이상을 강요해도 좋은 사람은, 이상을 좇아서 노력하는 사람뿐이다.

  선배는 자신이 원해서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건데?」

「그게 두 번째 이야기가 되는데......」


  준비했던 말이 갑자기 끊어진다. 심장 소리가 둘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그리고 자신을 상처 입힐 것 같이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아, 역시 무서운 거다. 거절되는 것이, 미움 받는 것이. 대다수 사람에게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것이 막상 친한 사람이 되면 칼날이 예리해진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짜낸다. 비록 고통을 느껴도, 미움 받을지 몰라도 내가 바라는 것이기에.


「.....유이가하마, 그리고 유키노시타.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어?」


  키리바나가 변하길 바란다면, 나도 조금은 변하자.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조르자. 이곳은 긴장이 풀어져서 잠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러니 제대로 말로 해서 부탁한다.

  시야가 흐늘흐늘 흔들린다. 앉아있는데 평행감각이 출렁거리고, 세상이 천천히 돌고 있다. 그럼에도 두 명의 시선이 꽂힌다.


「......치사해. 힛키. 그런 식으로 듣고 싶은 말이랑 듣기 싫은 말을 같이 말하다니. 너무 제멋대로야.」

「......미안」


  얼마동안의 정적. 하지만 내게는 끝없는 침묵이 찾아온다.

  아아, 나는 정말로 제멋대로다. 유이가하마의 마음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부터 유이가하마의 입에서 나올 말을 상상하면, 굉장히 무섭다. 완전히 자업자득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말로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그린 말은 내려오지 않는다.

  유이가하마는 끼익하고 의자를 내 쪽으로 한 걸음 정도 당기고는 어색하지만, 그런데도 진정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뻐지잖아.」

「...............」


  유이가하마는 또 의자를 한 걸음 당겼다.


「하나만 부탁이 있어.」

「될 수 있는 한 하기 쉬운 걸로 부탁해.」

「......제대로, 아카네한테 고백해. 그러면 친구가 될게.」


  ......아아, 유이가하마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혹시 다른 식으로 만났다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정도다.


「......결과는 수시로 보고할게.」

「응, 친구니까 연애이야기 정도는 해.」


  기쁨이 점차 울컥거려 오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나는 유이가하마만이 아니라, 유키노시타와도 연결되고 싶다.

  그 유키노시타는 아무 말 없이 우리들의 대화를 쭉 보고 있었다. 평소 그대로 깨끗한 표정으로, 흘러내릴 듯한 흑발과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여기에서도 아름답고, 예리한 인상을 흩뿌리고 있었다.

  유이가하마와 같이 끄덕이고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시선이 유키노시타를 향했다.

  유키노시타는 시선이 집중된 것이 순간 난처했는지, 조금만 위를 보고 생각한 뒤에 말했다.


「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히키가야에 대해서 몰라.」

「......그렇겠지.」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과 대략적인 성격 정도밖에 모른다. 같이 보낸 시간도 그저 약간에 불과하다.


「유키농......」


  유이가하마가 슬픈 듯이 말한다.

  역시 이것만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과 두 달 이내에 친구가 되어주는 유이가하마가 특출 나게 좋은 사람이며, 유키노시타가 보통이다. 오히려 평소 하던 독설을 받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좋은 편에 들어가겠지.


「그러니, 알게 되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 여기에서 너의 친구가 되는 건 할 수 없지만, 서로를 확실히 알고 나서 쌓아가자.」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제대로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 뒤를 생각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기뻤다.


「아아, 잘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 나는 큰 한 발짝을 내디뎠다.

  모르는 것을 찾으러 가자. 어슴푸레해서 지금까지 손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기쁨을, 감사를, 제대로 이해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그럼, 가볼까?」


  내가 그런 감상에 잠겨있는데,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간다니 어디를?」

「찻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야. 저기라면 고등학생은 10시까지 있을 수 있잖니? 우리들 전원이 서로에 대해서 얘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그렇지? 유이가하마」

「유키농...... 응, 그래!」


  유이가하마가, 이번에는 기쁜 듯이 말했다.

  유키노시타는 일어서서, 나와 유이가하마를 한 번 보고는 밝은 미소로 말했다.


「히키가야와 키리바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려줬으면 해.」


  이렇게 해서 나는, 약간 씁쓰레한 뒷맛을 가슴에 남기면서도, 인생에서 첫 친구를 두 명이나 동시에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날짜가 지날 때까지 이야기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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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8 ~히키가야 하치만은 불량해진다~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게 됨과 동시에, 등교 전에 사 둔 총채빵과 주먹밥을 입에 넣는다.

  음. 원래 단품도 맛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같이 먹으면 최악으로 맛이 없군. 별 수 없어서 커피로 덮어 삼키려고 했지만, 커피와 쌀이 섞여서 무심결에 토할 것 같이 맛이 없어지고 말았다.

  ......젠장, 이럴 거면 하나씩 먹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든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교실 안에서는 옥신각신 얘기하면서 책상을 붙이는 중이었다.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반 애들 사이를 빠져나와 복도로 나와서, 3층으로 발길을 향한다.

  2층보다 약간 차분하게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이즈에 선배의 반에 겨우 도착한다. 미닫이  문으로 몸을 쑥 내밀고 들여다보니, 어제와는 달리 바로 이즈에 선배를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반 친구들과 얘기하던 이즈에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선배는 반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는 내게 왔다.


「어제는 일부러 와줬는데 미안해. ......히키가야 군, 점심은?」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점심식사는 도시락이 아닌 듯하다.


「이미 먹었으니 혼자 먹어주세요.」


  같이 밥 먹어서 소문나면 부끄럽고......

  그런 내 기념비적인 소녀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즈에 선배는 「할 말이 있는 거지? 그러면 같이 먹을까?」라고 말했다. 원심력이 무사히 일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얘기하기 좋은 장소라면 알고 있으니, 따라와 주세요.」

「응, 잘 부탁해.」


  북측 교사 1층까지 내려가서 양호실 옆 그리고 매점 뒤 결국은 평소 내가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간다.

  어제 귀가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이 되자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여전히 회색 구름이 태양을 덮어 가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토츠카를 필두로 여자들이 넘치는 테니스 코트는 아직도 땅이 습기차있는지 한산했다.

  그렇게 어두운 운동장이 눈앞에 있지만, 오늘 이 곳은 왠지 화려했다.


「그래서 할 말은? ......혹시 고백이라든지?」


  그 화려함의 원인인 이즈에 선배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에 걸터앉아서 과자 봉지를 열고 있었다.


「선배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을 텐데요.」

「뭐 그렇지. 밥 먹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


  도저히 오후를 끝까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양의 크림빵을 3분 정도에 다 먹는다. 그리고 나서 선배가 홍차를 마시고 한 숨 돌릴 때 즈음해서 입을 연다.


「일요일 우리들이 헤어지고 나서 뭘 하셨어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에 타이시 군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밥 먹고 돌아가는 길에 고백 받았을 뿐이야.」

「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데이트한 느낌으로는 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그대로 전했을 뿐이야.」


  뿐이다라.


「자원봉사 느낌으로 사귀면 되지 않나요? 한 달 정도 꿈꾸게 해주면 선배도 휴일에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히키가야 군, 날 뭘로 보는 거야?」

「그거야 남자와 어울리는데 거리낌이 없고 연애를 스위트 감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밖에」


「즉 빗치 같네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점차 이즈에 선배의 눈이 험해져서 도중에 그만둔다.

  아니 그래도 사실이고......

  선배는 꾸며낸 티가 나게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코끝이 닿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칠흑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미소가 들이닥쳐온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근질거림이 등줄기를 통과해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시선에서 도망쳤다.


「일단은 나, 남자에 대한 이상이 높아.」

「하아, 그런가요?」

「다만 어울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울릴 뿐」

「그래서 뒤에서 빗치라고 하는 거잖아요!」


  소문과 전혀 다를 바 없잖아.


「......그렇다면 더욱 더, 시험 삼아 타이시와 사귀어줘도 괜찮지 않나요?」


  아니면 타이시와 어지간히 맞지 않았던 걸까.

  이즈에 선배는 난처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봤지만, 검지 손가락은 기분 좋은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게 전에 미야한테 너무 쉽게 만난다고 혼나서...... 뭐, 요새 모르는 애한테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시선을 받아본 적도 있어서 사귀는 허들을 좀 올렸어. ......그래서」

「그래서 타이시 자식이 유감스럽게도 선배의 눈에 맞지 않았다?」

「그런 거야.」

  타이시 놈도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선배도 자중할 거면 떡밥은 그만 던지라고. 잡기&풀기를 땅에서 한다는 거잖아.


「......덧붙여서 타이시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응? 타이시 군이 나한테 너무 맞춰서 그러려나. 영화도 밥도 억지로 맞춰주는 건 바라지 않아.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지고 싶어.」

「의외로 소녀 같군요.」

「그런 거야. 난, 사랑에 애태우고 사랑에 우는 여자인걸.」


  그렇게 말하며 이즈에 선배는 작게, 그리고 덧없이 웃었다.

  어느새 야구부로 보이는 까까머리 집단이 운동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갈색 땅은 아직도 물렁해서 발을 디디면 가라앉을 것 같지만 그래도 동아리는 하는 듯하다.

  그 광경을 잠시 선배와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질서하고 소란한 목소리는 어딘가 멀어서, 사람이 없는 이 장소가 떼어내진 감각에 빠졌다.


「그래서 너와 아카네의 관계가 엄청 자연스러워서, 꽤 동경했는데 아니었어?」


  그 때문인지 이즈에 선배의 농담 같은 말은, 내 안에 스리슬쩍 들어와서 날뛰었다. 어느 의미로는 불의를 찔린 형태였다.


「......무슨 말입니까?」


  목소리에 감정을 넣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나도 신경이 쓰였어, 일요일에 헤어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선배와는 상관없잖아요.」

「응. 그래도 그런 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역시 신경 쓰이잖아?」

「......」

「거기에 농담 같이 말했지만, 너희들의 관계를 동경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뭐라는 거지?

  선배에게 이야기한들, 무언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건 키리바나의 문제다. 저 녀석이 납득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선 안 되는 거였다.

  따라서 선배와도 상관없다.

  그대로 무뚝뚝하게 입을 닫는다. 선배는 아까 전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면 난 관계가 없는 너한테 타이시 군과의 전말을 말했잖아. 그렇다면 히키가야 군도 나한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전 부탁한 게 아닌데요.」

「그래도 한 번은 한 번이지?」


  마침 선배가 말을 다 꺼낸 것과 동시에 교사에 답답한 벨이 울린다.

  벨 소리는 운동장에서 교사 전체를 왔다갔다하며, 교사와 땅을 살짝 진동시켜서 학생들의 다리를 각자의 교실로 가게 했다.

  그 소리도 조금 전까지의 소리와 뒤섞여,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어쩐지 나른함이 섞인 바람이 뺨을 두드리며,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선배, 사람 좋다는 말 듣지 않아요?」

「후후, 잘 들어.」


  교내의 소란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작아져간다. 새가 지저귀는 듯한 고요함이 주위를 감싼다.

  5교시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선배는 전혀 교실에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다리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히키가야 군, 교실에 안 가도 돼?」

「선배야말로 괜찮아요?」

「난 우등생이니까. 한 번 정도 수업에 빠져도 문제없어.」

「그래요? 저는 다음 수업이 생각 안 나서요. 그래서 그런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하러 가는 건 미안하니 게으름 피우기로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 벨이 울렸다.


「수업 시작됐네.」

「그러네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가하니,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실 수 있어요?」

「응, 좋아.」


  햇볕도 없는데 오후의 공기는 따뜻해서, 마음을 놓으면 눈꺼풀이 가라앉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이후에 하는 말은 분명 잠꼬대 같은 거다. 특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입에서 흘러넘치는 이야기일 뿐.


「별일 아니에요. 그대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제멋대로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했을 뿐이에요.」

「......그건 그 카페에서 얘기하던 계속?」

「그래요.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멋대로 걱정한 끝에 상대방을 부정했을 뿐이에요.」


  나는 크게 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말로 꺼내보니 가슴 속이 슥 가벼워진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감정이나 마음에는 질량이나 경계선은 없지만, 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 근처에 있는 걸까.

  그건 손대면 쉬게 변질돼버리는 약한 것이라, 누군가가 토해낸 것을 자신 안에 넣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바뀌고 만다.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누군가와 같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해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히키가야 군은 정말로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네.」


  같은 장소에 있는 선배는 차분히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그렇게 됩니까?」

「오히려, 그 외에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 거야?」

「아니 봐요, 키리바나에게 멋대로 내 이상을 강요했다, 같은 식으로」

「그건 연애감정인지 다른 것인지는 둘째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귀를 곱게 매만지는 듯한 선배의 목소리는 상냥해서, 자장가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니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기에 더욱, 상대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게 돼.」

「그렇지 않아요. 이놈도 저놈도 우정을 강요합니다. 우리들과는 다른 누군가를 부정하고 있어요. 그건 전부 호의에서 오는 건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려운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즐겁잖아. 러브&피스처럼」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 이즈에 선배는 웃는 얼굴로 피스 자세를 취했다.

  너무나 경망스럽고, 적당하게 말해서 미소가 흘러넘치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달아서 녹아내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들 전부가 에고이스트가 되잖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상을 강요하고, 바라기 때문에 엇갈린다. 자기만족을 서로 주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비극적이다.


「그래도 되잖아. 싸우면 사과하면 되잖아. 그렇게 엇갈리면서 상대 안의 내가 느껴지는 게 정말로 기뻐. 타인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돼서는, 그런 건 절대로 재미없을 거야.」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어떤 교실에서 높고 낮은 소리가 뒤섞여 새어나온다. 그 소리는 우리들밖에 없는 이곳에도 살짝 닿아, 우리들에게 부딪혀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누구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바로 가까운 곳에 몇 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도 관련되지 않고, 느껴지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 멀다.

  구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태양이 몹시 눈부셔서 손을 뻗어 가린다.


「......선배」

「응?」


  계속된 말은 농담 같은 식으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저와 사귀어 주실 수 있나요?」

「......좋아. 그래도 나, 바람이나 양다리는 용서 못하니까. 그보다 나 말고 좋아하는 애가 있는 시점에서 아웃」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만둘게요. 벌 받는 건 싫어서.」

「그래? 유감이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얘기했다. 결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넘칠 정도로는 즐거웠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간 뒤, 유이가하마에게 5교시 수업이 현국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담당은 물론 히라츠카 선생님이다.

  ......그건, 떠올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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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7 ~비오는 날의 월요일~




  침울한 표정을 띤 비늘구름과 함께 월요일이 온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나서 가라앉은 표정을 짓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과 섞여, 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간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우산을 손에 든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산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지.

  ......뭐 오는 길에 비가 흩뿌린다면, 최악이라도 직원실에 가서 우산을 빌리면 되는 일이다.

  그다지 느리게 걸을 생각은 없었지만, 교실에 들어선 타이밍에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린다. 평소라면 도착하고 나서 울리기까지 몇 분의 유예가 있었으니 걸음이 느렸던 거겠지.


「안녕 힛키」


  유이가하마와 스쳐 지나가면서 받은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대충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은 기본적으로 다수를 가르치는 것을 전제로 내용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전에 배운 문법이나 한 번 읽으면 외울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반복한다.

  기억한 내용을 복습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효과적인 공부는 없다. 즉 수업의 6할이 새로운 내용이라도 나머지 4할은 복습이 되므로 수업이 지루해지는 것도 별 수 없다.

  즉 내가 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문만을 등을 세우고 들은 체 만 체 하고, 나머지는 수면 유도제로 활용해서 하루의 수업을 소화한다. 왠지 『매트릭스』의 배경 같은 숫자가 나열된 꿈을 꾸기도 했지만, 방과 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상쾌했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는 어떻게 됐을까. 일단 데이트를 거들었으니 결과 정도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이즈에 선배의 교실을 들여다봤지만, 갈색 머리카락과 특징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기...... 메구미라면 오늘 볼 일 있다고 해서 먼저 돌아갔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메구미라니 누구지? 아마 모르는 사람일 테니, 나한테 한 말은 아닐 거다.


「저기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고 교실 안을 보고 있었더니 초조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며, 어깨를 난폭하게 얻어맞았다.

  어깨에 지워진 미덥지 못한 감촉을 느끼며 뒤돌아보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살짝 펌한 선배가 불쾌한 듯이 서있었다.

  이 사람 이즈에 선배의 친구였을 텐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야와 카세이, 어느 쪽이지?


「히, 히, 히키가야 군이던가? 메구미 찾는 거지?」

「아무튼, 그래요.」


  메구미라는 건 이즈에 선배의 이름인가? 성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이름으로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고.


「메구미는 오늘 돌아가서 찾고 있다면 헛걸음이야.」

「......그런가요」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부실로 가려고 했지만,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을 꺼내본다.


「저기, 선배는 운동 같은 걸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했어.」

「......예를 들면 농구 아마추어인 제가, 선배의 플레이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지적해서 고치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세이(?) 선배는 턱을 약간 잡아당기고, 위를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즈에 선배의 버릇이라도 따라하는 건지, 허리에 댄 오른손 검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생각났는지, 밝은 미소로 선배는 말한다.


「때리고 싶어져.」


  상상한 것보다 폭력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그런가요......」

「응. 왜냐면 짜증나잖아. 서투르다든가 생각하는 건 딱히 상관없는데, 그걸 말로 하려면 그것에 걸맞는 설득력이 갖고 싶어지잖아.」

「그건 제가 올바른 것을 지적해도 그런가요?」

「물론이지. 왜냐면 히키가야 군은 그 플레이가 맞는 건지, 상상으로밖에 모르잖아?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적이라도 래리 브라운이 말하면 고분고분하게 들을 거야.」


  선배는 양손으로 슛 자세를 취하고는, 허공을 향해 가공의 볼을 던진다.

  그 때 스커트가 약간 떠서 탄탄하고 하얀 허벅지가 보이는 면적이 증가한다.


「......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무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감사하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선배는 「뭔가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해줄 수 있는데」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나를 향해 흔든다. 그 표정은 아까 전과 다름없어서, 남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 그랬을 거다.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라도 만나러 올 거라고 말해주세요.」

「그래-」


  바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쓰기 시작하는 선배를 보며, 한 번 더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카세이 선배」


  한 번 더 감사를 하자, 선배는 유감스러운 것을 보는 시선으로,


「내 이름, 미얀데......」

「................」


  다행히도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



  「......그럼, 어제 있던 일을 보고해주렴.」


  부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예리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끼얹어졌다.

  창밖의 흐린 하늘과는 180도 다르게, 형광등의 창백한 빛이 쏟아지는 부실에는 벌써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아무튼 3층에 들르고 나서 문화동까지 왔으니 늦어져도 어쩔 수 없다.

  책과 폰으로 눈을 떨어뜨리는 둘을 곁눈질로 보면서 정 위치로 가서 철제 의자에 대강 앉는다.


「보고할 것도 없어. 끝까지 붙어있질 않았으니까. 타이시가 고백했는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마지막에 둘이서 어디엔가 간 것 같지만......」


  덤으로 오늘은 이즈에 선배에게 묻지도 못했으니, 그 이상은 보고할 방도가 없다.


「어? 그것뿐이야?」


  유이가하마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키노시타도 얼굴을 들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결과만을 보고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중간 경과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니?」

「그런 걸 말해봤자 의미가 없잖아. 아무리 좋은 분위기라도, 차일 땐 차이는 거다. 그렇다면 보고해도 의미는 없어.」

「......그런 걸까」


  유키노시타의 말이, 부실 벽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실로 오는 김에 사 온 MAX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목을 지나가는 달콤함을 느끼며 반 넘게 남아 있는 캔을 테이블 위에 둔다.

  그렇게 당분간 창밖을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운동부는 평소대로 운동장에서 활동하는 듯하다. 멀찍이서 하야마 일행이라고 생각되는 애들이 팔팔하게 체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히키가야의 눈이 평소보다도 그림자를 띠는 것은 어제의 데이트와 관계있는 거니?」


  운동부를 관찰하는 것도 질려서 유들유들한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쉬게 하는 참새를 관찰하고 있자, 유키노시타가 묻는다.


「......무슨 말이야?」

「보아하니 침체된 분위기를 휘감고 있잖니.」

「그건 평소에도 그렇다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긴 하지만......」


  유키노시타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그렇게 말하자, 유키노시타와 맞은편에 앉은 유이가하마가 나를 향해 몸짓 손짓으로 설명해준다.


「힛키는 평소에는 뵹-한 눈을 하잖아? 근데 오늘은 뭐랄까 묭-한 눈을 하는 느낌인 거야......」


  묭-이라니, 왜 그런 나고야 사람처럼 비유하는 거냐.

  유이가하마는 나란히 내민 양팔을 내리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서......」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코마치한테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 평소보다도 눈이 이상하댔나 뭐랬나. 왜 이 놈도 저 놈도 사람 상태를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거야?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를 따라가서 중간에 빠지고,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를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다. 처음부터 결론이 나왔고, 그게 싫어서 떼를 썼을 뿐.

  그렇게 부실 안이 더 조용해진다. 멀리서 들리는 운동부의 구호와 어렴풋이 풍기는 비 냄새가 우리들 사이를 메워간다.

  왠지 모르게 목을 돌리고는, 책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는 유키노시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키노시타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추고, 눈을 내려뜨린 채로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그만두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해.」

「그렇군, 미안」


  왠지 유이가하마가 옆에서 「굉장해, 힛키가 사과했어......」라고 중얼거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하지만 듣고 보니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이 없다면, 그런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나와 유키노시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낙담했던 것 같다.

  등을 과감히 한 번 꼿꼿이 세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습 찬 공기를 폐에 넣고, 무거워진 공기를 폐에서 내뱉는다.

  눈을 감고 어깨 힘을 뺀다. 약간 나른한, 언제나 짓는 표정을 만들고는 눈을 뜬다.

  ......그리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려낸다.


「나, 오늘은 돌아간다.」

「어? 힛키 그냥 들른 거야?」

「우산 안 가져왔어. 그래서 비가 내리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


  왠지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 있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애초에 아직 비가 오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안 돌아가면 젖은 생쥐가 될 거다.


「그러면 유키농이라든가 내, 내 우산을 같이 쓰면 되잖아......」


  유이가하마가 약간 흠칫흠칫하며 말한다.


「나는 접는 우산밖에 없어서 애초에 무리야.」


  애초부터 같이 쓰게 해줄 생각이 없을법한 녀석이, 지당한 이유를 붙여서 부정했다.

  게다가 유키노시타와 돌아가는 시점에서 바늘방석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런 건 질색이다.


「그런 이유로 이만」

「아, 잠깐, 힛키」


  가방을 어깨에 매고, 유이가하마의 목소리를 뒤로 받으며 부실에서 나온다.

  역시 나한테는 이 정도의 분위기가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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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6 ~달빛과 태양~




  하늘에 퍼진 짙은 감색 캠퍼스 한쪽 구석에, 꼭두서니 빛이 고요히 몸을 옆으로 기대어 살짝 존재감을 준다.

  아직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별을 찾아낼 수 없긴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고운 얼굴을 보여줘서, 거리에 밤의 소식을 알려주리라.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는,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그 뒤에 적당히 윈도우 쇼핑을 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데이트는 끝났다. 정말 싱거웠지만, 첫 데이트니까 이 정도면 될 거다. 다만 둘은 타이시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어딘가로 갔다. 아마 거기서 고백이라도 하는 거겠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타이시가 걱정됐지만, 선배에게 손대지 말라고 찔러뒀으니 우선 실수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낮과는 반대로 한산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키리바나는 침묵에는 익숙하다. 원래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 자체에 익숙해서 상대가 코마치나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라 해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뭐, 자신해야할 건 아니지만.

  ......따라서 이 가슴 속에 걸린 응어리는, 이 침묵과는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저기, 그 카페에 있던 애들과 화해 같은 건 안 해?」

「화해라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저 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정면을 보며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끈질기다는 거 알아요?」


  겨우 나를 향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보고, 내뱉으려고 한 말을 황급히 삼킨다. 말을 되새겨보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적당한 화제라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머리라도 흔들어서 화제를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내 머리답게, 어지간히 일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키리바나는 어이없이 보고 있었지만, 뭔가 납득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치만 오빠는 어째서 친구가 없어요?」

「어이, 왜 그 화제를 고른 거냐」


  화제를 바꾼다 해도, 좀 더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있잖아. 아니, 바꿔준 건 고맙지만.


「아니요, 생각보다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라서요. 하치만 오빠는 눈이 썩은 것과 비뚤어진 성격과 가끔 나오는 글러먹은 발언만 빼면, 얘기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 3개가 거의 대답이잖아.」


  아까 전까지 조용히 있었던 게 바보 같아진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눈을 제외한 얼굴은 갖춰져 있고, 이러니저러니 잘 돌봐주기도 하고, 의외로 다정하기도 하니까, 노력해서 무리한다면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예요?」

「칭찬하는 건지, 깎아내리는 건지 어느 쪽이야......」

「저, 생각보다는 진심으로 묻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키리바나의 얼굴은, 약간 습기 차고 무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띄운 탓에 그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한 번 숨을 쉬고 키리바나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건 당연하잖아. 그렇게 무리해야만 얻는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는 것뿐이야.」


  무리를 하면, 어딘가 터지는 곳이 나타난다.

  참고 노력하면, 계속 참아야만 한다.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언제까지나 남는다.

  처음에는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도, 거짓말이나 기만을 겹겹이 쌓아가는 사이에, 어느덧 따돌림 받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것은 본말전도다.


「그렇군요. 히키가야 오빠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요.」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호칭을 키리바나는 쓴다.


「그렇다면, 왜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게 하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건 오만이에요.」


  키리바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다. 반대 입장이라면, 틀림없이 키리바나와 같은 행동을 했겠지. 하지만,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키리바나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말한다.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순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무리를 해도 균열이 생긴 인간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넓게 가지기를, 틀림없이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슴 속에서 계속 품어왔던 것은 예전부터 쭉 변함없다.


「넌 아까 전 카페에서 외롭지 않다고 말했어. 아무렇지도 않다고도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 키리바나의 말이 허풍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 하치만 오빠도 자주 하지 않아요?」

「아니, 안 해.」


  키리바나의 눈이 치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를 보는 건 처음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대로 말을 계속한다.


「난 혼자가 좋다고 말했지. 외롭지 않다고는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어.」


  혼자 있으면,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실컷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도, 적막감만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이를테면 졸업식 날, 누구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중에 혼자서 교문에서 나올 때.

  이를테면 점심시간, 교사 안에서 울리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

  이를테면 휴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가족 전원이 외출했을 때.

  그럴 때 자신이 돌이 되어, 어디와도 이어지지 않은 느낌이 마음속에서 배어나온다. 자신은 확실히 여기에 있는데, 그 자신조차 윤각이 흐릿해진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덮쳐온다.

  그건 필시 내 마음의 약함이리라. 정말로 고독한 인간은 아니기에, 사소한 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거면 돼.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를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비록 그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계속 바라는 것만은 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잘못됐어.」


  키리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입술을 꽉 다물고 나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어가, 반으로 잘린 달이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면에 비추고 있다.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붙여서 속이고 있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몸에 깊이 스며들어간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

「별로 나쁘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게, 저는 가장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앞을 향하고는, 나를 선도하는 식으로 걸어갔다.

  아스팔트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키리바나를 따라간다. 차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몹시 눈부셔서, 할 수 없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대로 당분간 걸어서, 평소의 갈림길이 나오자 키리바나는 겨우 나를 봤다.

  그 얼굴은 방금 전의 얼음 같은 표정이 아니라, 이따금 혼자 있을 때의 평탄한 표정이어서 마치 방금 전에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키리바나의 뒷모습을 멈춰 선 채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걷는 키리바나는, 흑발을 미지근한 바람에 흩날리며 곧 옅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여러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을 무렵이다.

  초등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뭐,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혼자였으니, 딱히 강조할 것도 없지만.

  주변 애들이 즐겁게 웃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분을 삭이면서 돌아가던 나였지만 어느날 하교하는 집단에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학년과 돌아가는 길이 겹치는 것은 드물다. 사실, 그 무렵에는 코마치가 먼저 돌아가서, 코마치 또래 여자애가 있던 것은 뜻밖이었다.

  그 녀석은 조금도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고, 지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태연한 얼굴로 걸어서, 키가 작은 주제에 나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되고 싶다고, 돌아가는 길이 겹칠 때마다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바보라서 그 녀석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런데도 연하의 게다가 여자애가 자기보다도 더 폼을 잡는다는 착각을 했었다.

  결국 그 착각은 내 일방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이동수업이 있어서 하급생 층에서 걷고 있는데 그 녀석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하교할 때와는 돌변해서 얼굴이 풀어지고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웃는 그 녀석을 보고 엄청 낙담했던 것을 기억한다.

  평범하게 친구가 있는 녀석이 혼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폼을 못 잡아서 나한테는 친구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고, 하지만 역시 대답은 나오지 않아서 그 날 돌아가는 길에 과감히 본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던 중, 근처에 나와 그 녀석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나서 말을 걸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 녀석은 일단 주위를 두러보고,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을 확인하고는 머뭇머뭇하며 대답한다.


『......네, 외롭지 않아요.』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모두들하고 즐겁게 있었지? 그래도 지금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이 쉬는 시간이나 친구의 유무까지 알고 있었으니,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잠깐 간격을 두고 대답을 생각했지만, 바로 입을 움직여주었다.


『원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서요. 모두들하고 같이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 뿐. 없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분명 슬픈 삶의 방식이라고, 아이이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아무도 없게 될 듯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 녀석은 그걸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이틀 후 나는 그 녀석에게 코마치를 소개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으면 해서.

  ......그것이 키리바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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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5 ~커피의 쓴 맛~





  B급 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영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싸기도 하고,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 대수가 적기도 하고, 매우 저렴한 세트나 무명 배우만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각본도 마찬가지로 무명 극작가를 쓰는 탓인지 실패와 성공의 편차가 크고, 때로는 혼돈스런 내용일 때도 많이 있다. 대학 간의 경기에서 농구를 한다고 생각했더니, 왠지 우주인이 공격해와서 지구의 존망이 갈리는 전개도 놀랄 만큼 자주 본다.

  하지만, 그 혼돈을 좋아하는 별난 사람들은 생각보다는 꽤 있다.

  원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달라서일까? 그 사람들이 엉터리 전개를 더러운 말투로 매도했다고 생각했더니 그 바로 다음 순간, 사진 기술와 공간 연출이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그렇게 해서 배우의 연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나 생각했더니, 마지막에는 엉터리 전개를 보고 크게 웃는다. 이제 뭘 평가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우와, 엄청 시시했지. 봐. 그 주인공 같은 남자가 후반이 돼서 의미도 없이 목을 잘린 장면이라니, 스태프가 무슨 표정을 하고 찍었을까?」


  나와 키리바나의 후방에서, 이즈에 선배가 신바람난 목소리로 타이시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애완동물 샵을 대강 만끽한 우리들은 당초 예정대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확실히 전국에 널린 영화관답게 극장수가 많고, 상영 수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 이즈에 선배가 선택한 것은 「지하 300m에서의 침공」이라는, 인디 존즈의 부제가 아니라면 사양하고 싶은 영화였다.

  나와 키리바나는 둘을 따라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선배의 방침에는 거스를 수 없어서 타이시가 반대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결과는 흔쾌히 동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돼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본 결과가 이러하다. 타이시 자식, 「아아」라든지 「그렇군요.」라는 말밖에 못하고 있다고.


「.....감상은?」


  옆에서 난처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는데, 영화라기보다는 콩트처럼 보니 의외로 보통이었어요.」

「......대체로 나와 같군.」


  이즈에 선배가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들에게 충고한 것은, 「영화를 보려고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는 동안에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보통 영화 같은 기대를 하지 말고 그야말로 가족 연극이라도 보는 느낌으로 보는 게 좋다는 말이다.

  시작하고 나서 15분 정도에 나온 지하세계 사람을 보고, 처음에는 특수 메이크의 수준 낮음에 전율을 느꼈지만, 점차 익숙해지자 메이크 수법으로 생각이 미쳤다. 완성도가 너무 높으면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지만, 서투르다면 반드시 과정이나 수법에 신경이 쓰이고 만다. 하지만 그것이 좋다.

  그나저나 저건 메이크라기보다는 쓰개다.


「그래도 유머는 상당히 훌륭했어요.」

「저런 분위기니까, 그렇게나 농담을 담아낼 수 있는 건지도. 할리우드 초대형작에서 그렇게 하면, 엄청 깰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은 약간은 알 것 같다. 조잡하거나 진부하기도 하지만 그 시시함에 대해서 생각하며, 때로는 머리를 텅 비우고 즐길 수 있다.

  물론 예산이 높은 것 중에서도 그런 작품은 있겠지만, B급 영화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카메라가 적은 것도, 뒤집어서 생각하면 시점이 적어서 자신의 시선에 가깝다. 그런 것일 거다.

  작품에 대해서 각자 대충 말하자, 이즈에 선배가 손가락을 돌리며 말한다.


「그럼 밥 먹으러 가볼까?」


  그러고 보니 아직 안 먹었지. 영화를 볼 때는 주스를 마셨지만, 역시 약간은 배가 고프다.

  키리바나나 타이시도 배가 고팠는지, 이즈에 선배의 제안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튼, 데이트라고 하면 식사고, 식사할 때는 의외로 자란 방식이나 개성이 나오기 때문에 궁합을 파악하기 쉽다.

  미인이지만 먹는 방식이 불결하다든가, 탕수육에 파인애플을 넣는다, 키스프라이에 간장을 뿌릴까? 소스를 뿌릴까? 등등, 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이즈에 선배의 센스를 기대하며 간 곳은 아담한 카페였다. 입구 부근의 벽면을 투명한 유리벽으로 하고, 그 안에는 앤틱 테이블이나 의자가 불규칙하게 늘어 놓여 있었다.

  바닥도 대리석 같은 흰 바탕에 광택이 있는 석재를 쓰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신지 않았지만, 가죽 구두라면 또각또각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릴 거다.

  아니 뭐야 이건. 왜 이렇게 깨끗한 느낌이 드는 데에서 밥을 먹어야하는 거지? 그보다 여기에 배를 채울만한 탄수화물이 있을까?


「여기 팬케이크가 맛있어. 키리바나는 단 거 좋아해?」


  여성진이 창가에서 새된 목소리로 스위트 설법을 꽃피우는 중, 메뉴표를 펄럭펄럭 넘긴다. 일단 타코라이스나 스파게티 정도는 있지만, 역시 메인은 팬케이크인 것 같다.


「하치만 오빠는 뭐 드실 건가요?」


  무난하게 고르자면 스파게티겠지만, 팬케이크가 좀 신경 쓰인다. 여기서 팬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평생 인연이 없는 음식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단 게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팬케이크면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타이시도,


「아, 저도 그게 좋슴다.」


  이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흥분됐다. 아차, 내가 팬케이크를 고른 탓에 타이시가 다른 메뉴를 먹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동안, 테이블 위에 4개의 팬케이크가 나란히 놓인다. 이중으로 쌓은 팬케이크 위에 딸기나 바나나, 블루베리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 생크림이 듬뿍 담겨 있고, 그 옆에 작은 용기에 황금색 메이플 시럽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럼 먹어볼까?」


  먹는 건 좋지만, 어떻게 먹어야 하지? 생크림과 메이플 시럽은 처음에 얹어 먹는 건가?

  나이프와 포크를 잡은 채로 당황하고 있는데, 키리바나와 이즈에 선배는 케이크를 약간 떼어내서는 그 위에 크림이나 시럽을 적당히 얹어서 입에 넣는다.


「아! 너무 달지 않아서 먹기 쉬워.」

「그치?! 생크림도 별로 칼로리 없대」

「그건 기쁜 정보네요.」


  둘이 냠냠 먹는 것을 따라 딸기에 크림을 발라서 입에 넣는다. 키리바나가 말한 대로, 팬케이크 자체는 그렇게까지 달지 않고, 의외로 담박하다. 오히려 케이크만 먹으면 뭔가 부족할 것 같다. 그 정도로 크림을 바른 딸기에는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메이플 시럽과 바나나를 조합해서 또 한 입 먹는다.

  이거, 의외로 상당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잘라서 먹고 있었는데, 눈앞에 앉은 타이시의 팬케이크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아아, 이 녀석. 단 것에 서투른 건가. 무리하기는.

  이즈에 선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타이시에게 실없는 잡담을 하는 중이다. 이 사람이 깨닫지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적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서툴렀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안 한 타이시의 잘못이니까.


「앗, 타이시잖아. 뭐야뭐야? 데이트?」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가 가게 안에서 퍼부어진다.

  소리가 난 쪽에는 아직 앳된 얼굴을, 얄팍한 화장으로 덮어서 가린 여자 4인조가 있었다.

  그 애들은 나와 이즈에 선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리바나를 차례대로 확인하고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타이시에게 다가간다.


「꽤 미인이잖아. 소개해봐.」


  중학교의 반 친구일 것이다. 그 말은 키리바나와도 같은 반이라는 게 되지만, 키리바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팬케이크와 마주 보고 있다.

  리더격인 여자는 타이시를 놀리듯이 말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 명은 힐끔힐끔하고 키리바나를 식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반대로 리더는 키리바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뭔가 납득이 안 된다.


「너희들 시끄럽다고. 자, 저쪽으로 가.」


  타이시가 약간 초조한 상태로 일어나 여자들을 쫓아내서, 그 사이에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야, 저 녀석들 아는 사람이야?」

「같은 중학교에요. 반은 우리들과 같고, 가끔 얘기했었어요.」


  그렇다면 왜, 키리바나에게 말을 안 거는 거지?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이런 곳에서도 인사하는 건 당연하다.


「저 녀석들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저쪽이 조금 적대시할 뿐이에요. 전에 저한테 고백한 미사키 군, 기억하세요?」

「그 운동맨 같은 녀석이잖아.」


  우선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참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키리바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하면서, 손을 움직여서 케이크를 잘라내고 있다.


「아무래도 그 애들 중에, 그 미사키 군을 좋아하는 애가 있는 것 같아서, 미움 받았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생크림과 시럽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한 입 넣고는, 얼굴을 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다. 여자들의 우정은 왠지 룰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연애 관련이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을 안 상태에서 그 사람과 사귀게 되면 다음날에는 따돌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둘 중 하나다.

  키리바나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과적으로 미사키 군을 꼬신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찼으니까, 그 여자 룰에 저촉되기라도 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 해서.


「넌 그래도 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 쪽이 저를 싫어하니까. 제가 이러니저러니 할 일이 아니에요.」


  역시 키리바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식사를 계속 한다.

  원래라면 그걸로 좋다. 본인이 납득했다면,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전에 키리바나에게 말했던 대로, 미사키 군에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한 키리바나에게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을까」


  하찮은 이유로 상대방에게 미움 받아, 가끔 얘기하던 상대와 거의 말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차가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외롭지 않아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산뜻하게.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물론, 사유물이 숨겨지거나 아플만한 행동을 당하는 건 싫지만요. 지금은 그런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마찬가지에요.」

「......그건, 안 되잖아.」


  무심결에 말투가 험해지고 말았다.


「안 되지 않아요. 게다가 하치만 오빠도 자주 말했잖아요. 그 정도로 망가진다면, 분명 그 정도였던 거라구요.」


  아아, 그렇게들 자주 말한다. 여하튼 나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이치다. 좀 반한 일 정도로 인연이 끊어진다면, 미사키 군 일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겠지.


「그래선......」

「자, 거기까지. 슬슬 타이시 군이 돌아와. 계속 하고 싶으면, 이 데이트 다음이야.」


  이즈에 선배의 냉정한 목소리로, 의식에 공백이 생긴다. 시야 구석에는 마지못해 떨어진 자리에 앉는 여자들과, 여기로 돌아오는 타이시가 있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같이 주문한 커피를 목에 흘려 넣는다. 단 것과 맞추려고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았던 탓인지, 강렬한 쓴 맛이 혀를 자극한다.


「미안해요. 같은 반 애들이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있었슴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의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를 BGM 삼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나는 의미도 없이 떼 지어 모이는 놈들이 정말 싫다.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는 주제에,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거짓말이나 기만으로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인간관계를 멋지다고 목청 높이며, 타인에게 그것을 강제하려 든다.

  실은 사이좋지 않은데, 표면상으로는 어울리면서 그 뒤에서 험담을 해댄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상처주고, 사람을 멸시해서 조잡한 허영심을 채운다.

  홀로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무서워하는 주제에, 혼자 있는 사람을 비웃는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좋다.

  혼자 있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렇게 애매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에 기댈 정도라면, 혼자서 고독과 마주보는 편이 훨씬 낫다.

  거짓말을 하고 억지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친구 같은 건, 나는 필요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은, 키리바나만큼은 나와 같은 식으로 살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거짓말을 하거나, 무리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키리바나와 처음 말을 했을 때부터,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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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4 ~히키가야가의 이웃 분~




  인터폰을 눌렀더니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나며 갈색 문이 힘차게 열린다.


「어머, 히키가야 군이잖아. 왜 그러니?」


  키리바나와 매우 닮은 눈에, 형태가 좋은 입술이 특징인 여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밝은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뒤로 묶인 것이 연둣빛 앞치마와 어우러져서 생활감을 자아낸다.

  키리바나의 어머니인 키누에 씨는 오늘도 걸 맞는 미모가 잘 어울렸다.


「아니요, 키리......아카네와 나가자는 약속을 했는데, 불러주실 수 있나요?」

「그래? 지금 불러올 테니, 잠깐 기다려줘.」


  키누에 씨가 활짝 미소 지으며 다시 안으로 돌아가서, 한 숨을 돌리고 그 곳에 계속 선다.

  역시 키누에 씨와 키리바나는 눈매를 빼고는 별로 닮지 않았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키리바나와는 달리 키누에 씨는 어느 쪽이냐면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키리바나의 외모는 아버지 쪽의 피가 강한 것 같다. 나는 만난 적이 없지만, 키리바나 아버지의 여동생, 즉 고모와는 외모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나이 든 키리바나도 보고 싶어서, 언제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기도 하다.


「준비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려서,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려줄 수 있겠니?」


  그 녀석, 준비하는데 일부러 시간을 들이는군.


「아, 아뇨. 밖에서 기다려도 괜찮아요.」

「아니아니, 일부러 와줬으니 들어와 들어와」

 
  키누에 씨에게 등을 밀리는 식으로, 키리바나의 집으로 발을 디뎌, 열 다다미 이상은 되는 거실로 간다.

  초등학교 이래로 처음 온 키리바나의 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상당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벽지는 아주 새로운 흰 직물로 바뀌었고, 전에는 손상됐던 일본식 방의 다다미는 새로 갈았고, 근처를 지나자 풀냄새가 감돈다. 브라운관 TV는 대형 액정 TV로 바뀌었으며, 데스크탑 PC는 노트북으로 교체되어 공간절약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럼......」


  안내 받은 소파에는 먼저 온 손님인 키리바나의 아버지가 등을 기대면서 와이드 쇼를 보고 있었다.

  나와 키리바나의 아버지 사이는 별로 나쁘지 않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고 잡담 정도는 한다. 가끔 장래 희망이나 졸업 후의 진로를 물을 정도로 딱히 사이가 나빠질 요소 같은 건 없다. 없겠지.

  다만 코마치가, 키리바나의 집에서 내 얘기가 나오면 미묘하게 기분이 안 좋아진다고 말을 하니 내가 멋대로 무서워할 뿐이다.

  마침 TV에서는 20세 여배우가 속도위반해서 결혼한 화제가 한창 나오는 중이었다. 사귄지 반 년 만에 골인했다고 했나? 일이 잘 되는 시기에 이래서는 향후에 큰 영향이 있을 거라고 원숙한 해설자가 아우성치고 있다.


「오늘 어딘가 가는 건가?」


  키리바나의 아버지가 묻는다.


「영화 같은 거예요. 아니 그게 지인을 따라가는 거라고 할까요? 둘이서 나가는 게 아니에요. 듣기로는 둘 만이서는 긴장한다고 해서. 그거야 그래요. 둘 만이라면 좀 그렇죠.」


  입에서 말이 연달아서 뛰쳐나온다. 평소부터 이렇게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만, 평소부터 이런 상황이 되고 싶진 않으므로, 역시 지금 그대로가 좋을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영화라는 건 완전히 거짓말이다. 오늘의 코스는 이즈에 선배가 전부 맡아서, 직전이 되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군, 둘이서는 곤란한데」

「그,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키리바나와 상가에 간 적이 있었지. 아니 여기서는 전혀 관계없지만. 진짜로.

  그렇게 해서, 원래대로라면 가족이 단란할 곳에 답답한 분위기가 내려 쌓인다. 키누에 씨는 구석에 있는 부엌에서 흥얼거리며 차를 끓이고 있다. 좀 더 분위기라는 것을 읽어줬으면 한다.


「하치만 군이 집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이렇게 보면, 역시 많이 자랐어.」


  차 줄기가 선 차를 눈앞에 내주고, 키누에 씨는 내 약간 옆에 앉는다. 왜 이 부부는 나를 사이에 끼고 앉는 걸까.


「역시 키는 컸죠. 하지만 그렇다면, 그 쪽이 키가 자랐겠지요.」


  받은 차에 입을 대지만, 뜨거워서 맛을 모른다.

  키리바나 부모님의 앞에서는 성씨로 부르기 어려워서, 무심결에 대명사를 쓰고 말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이름으로 부르는 건 꺼려지므로, 이 정도가 고작이다.


「그치. 너무 키가 자라면, 남자애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네.」


  차를 한 모금 더 마시지만, 역시 맛을 모르겠다. 혹시 키누에 씨의 가사 능력이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


「.....바로 그 본인은 아직 안 내려오나요?」

「좀 더 걸릴지도 몰라. 모처럼 왔으니, 과자라도 먹으렴. 자, 장어파이」


  이제 슬슬 탈출해서 빨리 약속장소로 가고 싶지만, 장어파이를 주셨으므로 한 입 갉아 먹는다.

  장어파이는 자칭 밤의 과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밤에 가족 단란용으로 써달라는 희망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어가 어떤 것을 증강하기 때문에, 밤의 과자라고 불린다. 후자는 완전히 속설이지만 왠지 믿는 사람은 많다.

  그 뒤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키누에 씨와 골치 아픈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던 때, 겨우 키리바나가 2층에서 내려온다.

  세련되고 포근포근한 검은 원피스에 얇은 핑크 자켓을 맵시 있게 입은 키리바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차분한 느낌이었다. 사복 때는 주로 스타킹을 신었지만, 오늘은 맨발을 드러내고 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그럼 가볼까요?」


  전혀 주눅 든 기미가 없는 키리바나는, 나와 그 양쪽에 앉은 부모님을 보고 살짝 웃는다. ......이 녀석, 틀림없이 일부러 늦게 왔구만.

  곧바로 인사하고 키리바나의 집에서 나오자, 「너무 늦지 말렴.」이라고 키누에 씨에게 주의를 받는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이런 면을 보면 역시 어머니다.

  연상자로서 수긍하는 의미로 뒤돌아보자, 「그리고 하치만 군도 가끔씩은 코마치랑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와.」라고 말한다.




「......늦어져서 죄송해요.」

「너 말이다, 그렇게까지 미안하다고 생각 안하잖아. 아직 웃고 있다고.」


  모이는 장소인 역의 동쪽 출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역시 일요일답게, 아이를 동반한 부부가 즐거운 듯이 지나가는 광경이 흔히 보인다.

  최근 3일 정도 비가 올 법한 날씨였지만, 오늘은 선명한 파랑색이고 적란운이 치워져 있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아서인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왠지 밝아 보인다.


「카와사키 군이 전하는 말인데, 상황을 잘 봐서 빠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듣기로는 할 수 있으면, 오늘 결정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들어도, 우선 오늘 예정을 모르면 할 수 없잖아.」


  왠지 과정을 확 건너뛰려 한다고 할까, 타이시는 왜 평범하게 데이트한 다음에 과정을 밟으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런 초조해하는 상태가 중학생답다는 생각도 들지만, 상대가 고등학생 3학년인 만큼,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이즈에 선배 같은 타입은 한 번 놀러 갈 정도라면 별 거 아니니까, 타이시만 너무 의욕에 넘쳐 보인다.

  10분 정도 걷자 역에 도착했으므로, 혼잡 중에서 타이시나 이즈에 선배를 찾는다. 키리바나의 집에서 시간을 소비했지만, 거의 약속 시각에 도착했으니 어느 쪽인가는 왔겠지.


「히키가야 형! 여김다.」


  체육계 사람 같은 존댓말이 들려서, 들은 적 있는 목소리 쪽으로 뒤돌아보자 타이시가 눈에 들어온다. 체육계 사람답게 짧은 바지에 디자인이 괜찮은 티셔츠를 맞춰 입었을 뿐이지만, 썬탠한 흔적도 어우러져서 꽤나 보기 좋다.


「이즈에 선배는?」

「아직임다. 아까 전부터, 이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눈에 띄지 않던데요.」


  아무튼 5분, 10분 정도라면 늦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걸어도 소용없으니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셋이서 기다리기로 한다.


「정말로 와주시는 겁니까? 왠지, 믿기지 않슴다.」

「안심해라,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라도 당하지 않는 한은 확실히 올 거다.」


  타이시는, 우리들이 데이트 세팅까지 해줬다고 믿은 건지, 몇 번이나 내게 감사인사를 한다. 데이트는 이즈에 선배가 멋대로 말했을 뿐이지만, 남중생의 꿈을 부수는 것도 미안하니 그대로 둔다.

  약속시각이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멀리서 이즈에 선배가 오는 것이 보인다.

  아쿠아 블루색 플레어 스커트에, 연유색 가디건을 맞춰 입은 청초한 모습이지만, 묘하게도 이즈에 선배에게 어울린다. 스커트라지만 교복보다 길어서 무릎이 가려져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니, 전혀 그렇지 않슴다.」


  타이시가 인대가 손상될 정도의 기세로 머리를 흔들자, 이즈에 선배는 미소 지으며 타이시에게 손을 내민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두 번째구나. 이즈에 메구미입니다, 잘 부탁해.」

「카, 카와사키 타이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한 얼굴로 마찬가지로 손을 내민 타이시와 악수를 하고, 이즈에 선배는 우리들을 향하며 나와 키리바나를 본다.


「키리바나도 일부러 와줘서 고마워」

「아니요,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와서 다행이었어요.」


  날 힐끔 보고, 기분 좋은 소리로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키리바나의 기분이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그것보다도 이즈에 선배가 생각보다는 평소 그대로인 것에 놀랐다. 청초한 차림이지만, 그 표정에는 평소의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미소가 떠올라 있다. 의외로 캐릭터를 만드는 타입은 아닐지도 모른다.


「늦은 것은 전혀 상관없는데, 오늘 어디에 가심까?」

「윈도우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 뿐이야. 중학생이 둘 있기도 하고, 그렇게 돈이 드는 것도 싫겠지?」


  손가락을 바짝 세우며 이즈에 선배가 말한다.

  확실히 영화는 고등학생에게는 의외로 싸다. 천 팔...... 고등학생은 천 엔으로 볼 수 있으니, 섣불리 노래방에 가는 것보다 싸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생 요금이라고 딱히 두 번 볼 수 있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블루레이가 있어서, 영화관에는 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약간 한가한 때에 영화관에 가서 상영되는 것을 보는 건 꽤 재미있다. 게다가 영화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비춰지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최적의 미디어로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선은 영화관으로 가면서 슬슬 돌아볼까?」


  선배와 키리바나가 얘기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혼잡 속을 빠져나간다. 지금은 딱히 막히지 않고 타이시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조금 안심한다.


「왠지 좋은 분위기네요.」

「지금은... 말이지. 선배니까 어떻게 될지 읽지 못하겠는데......」


  확실히 그 자리에서 돌아간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웃는 얼굴로 딱 잘라서 타이시를 찰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고, 반대로 눈치 채면 어딘가 나갔을지도 모른다.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겠지.

  근처에 있는 가게를 가볍게 둘러보며 흐느적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이즈에 선배가 한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괜찮아?」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창문이나 벽에 귀여운 개나 고양이, 토끼 등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와 간판에 쓰인 「애완동물 샵」이라는 글자가 춤추고 있었다.

  포스터로 보기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해도 여자에게 인기가 있을법한 동물만 취급하는 것 같다. 새나 물고기처럼 냄새 나는 생물은 판매하지 않는 듯하다.

  흠. 누가 제안했는지는 모르지만, 꽤 좋은 곳이군. 이야깃거리로 삼기도 쉽고, 귀여운 생물을 보면 누구라도 편안한 기분이 들 것이다.


「전 괜찮지만, 키리바나가......」

「어라? 키리바나는 동물에 약해?」

「기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괜찮아요. 부디, 들어가주세요.」


  이즈에 선배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몇 번이나 키리바나에게 확인했지만, 키리바나가 괜찮다고 딱 거절해서 할 수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괜찮아?」

「제가 카와사키 군의 데이트를 방해하면 안 돼요. 게다가 움직이면서 울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고, 멀리서 개라도 볼 테니까 괜찮아요.」


  덧붙여서 말하자면, 키리바나는 고양이에 약하다.

  딱히 고양이 알러지가 아니고, 키리바나도 이런 성격이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데도 움직이는 고양이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다가가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개나 토끼 등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사람의 특기나 서툰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사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지만, 그건 괜찮다는 축에 들어가진 않겠지.

  그 때문에, 우리집에 키리바나가 올 때는 애묘인 카마쿠라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 방으로 피한다. 대단히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고양이지만, 누굴 닮았는지 외출하기 싫어해서 그 뒤로 당분간 내 침대를 점거하는 것이 곤란한 점이다.

  이즈에 선배를 따라 애완동물 샵에 들어갔더니 가게 안 구석구석에서 귀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중에 섞인 고양이 울음소리에, 키리바나는 잠깐 동안만 몸을 움츠리지만, 그대로 걷는다.

  ......나 참, 싫으면 안 들어가면 될 텐데.


「어이 타이시. 우리들 강아지 코너에 있을 테니까, 선배와 적당히 돌아보고 있어.」

「네? 괜찮슴까? 그럼, 어느 정도 돌면 그 쪽으로 가겠슴다.」


  「나중에 봐」라고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양이 코너로 가는 이즈에 선배를 배웅한 곳에서, 개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자, 가자」

「고마워요.」


  키리바나의 말을 등으로 받아들인 채, 가게 구석으로 간다.

  개 코너에는,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가 우리에 있었다. 옆을 봐도 어느 정도 큰 개가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이 가게는 강아지를 주로 취급하는 거겠지.

  키리바나는 아주 잠깐 몸이 굳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강아지들을 보고 점차 얼굴이 풀어진다.


「아, 이 아이가 차분하고 귀엽네요.」


  키리바나의 시선 끝에는,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혈통의 영리해 보이는 강아지가 엎드린 자세로 키리바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우리에 달린 명찰에 따르면, 견종은 게르만 셰퍼드라는 듯하다. 확실히 경찰견이나 군용견으로도 쓰일 정도니, 지능이 높을 것이다.


「너, 그런 영리해 보이는 개를 좋아하는구나.」

「치와와나 마메시바보다는 좋아해요. 대화할 수 있는 느낌을 특히」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너머로 셰퍼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역시 머리가 좋은지, 셰퍼드는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키리바나가 하는 대로 따르는 중이다.

  애완동물 같은 외형보다는, 셰퍼드나 리트리버 같이 사냥개에서 개량된 견종을 좋아하는 기분은 조금은 알겠다. 우리집 카마쿠라도, 아까 전에는 건방지다고 했지만, 그 생물다움이 장점이기도 하니까.


「괜찮으시면, 안아 보시겠어요?」


  키리바나의 뒤에서 젊은 여점원이 말을 건다.


「아니요, 오늘은 사러 온 건 아니라서.」

「딱히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또 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꽤나 당당한 점원이지만 그 만큼 우리도 사양하지 않아도 되니 손님을 대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키리바나가 잠시 우물쭈물한 뒤, 「그럼, 부탁합니다.」라고 말하자, 왠지 점원은 내게 윙크를 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딱히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는 안했다고.

  그런데도 강아지를 팔에 안은 키리바나가 기뻐보였기 때문에, 약간은 참견이 심한 점원에게 감사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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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3 ~러브 코미디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담임의 「수고했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오늘 하루 수업이 무사히 끝난다.

  단번에 풀어진 분위기와 동시에 바쁘게 교실에서 뛰쳐나가는 운동부에 섞여 교실에서 나왔더니 복도에 불쑥 튀어나온 기둥에 등을 기댄 이즈에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반은 아직 HR이 끝나지 않았는지 복도는 한산했다. 오늘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와 더불어 어둑어둑하고 가라앉은 공기가 정체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선배는 창 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따분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있으면 좋은 얼굴 생김새가 더 두드러져서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든다.


「......오, 히키가야 군. 겨우 왔구나.」

「이런 데에서 뭘 하는 겁니까?」


  그것보다도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위층에서 어딘가의 반이 HR을 끝낸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혹시 이즈에 선배는 6교시를 땡쳤는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보니 봉사부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래서 히키가야 군을 따라가려고」


  그러고 보니 자세한 장소까지는 말을 안했던 것 같다. 이래서 마이너 문화부라는 건 성가시다. 서예부나 취주악부처럼 이름과 장소가 일치하면 도움이 될 텐데.

  그러나 봉사실이 될 방이 있어봤자 기본적으로 쓰이지 않고, 쓰인다 해도 남고생의 망상 정도일 거다.


「북쪽 교사 3층, 가장 서쪽에 있는 방이에요.」

「우와! 가장 멀리 있어.」


  봉사부는 최근 신설된 동아리인 이유도 있어서, 입지 조건은 문화부 중에서도 꽤나 나쁘다. 그 탓에 매일, 필요이상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같다.

  한 번 교실 안을 본다. 유이가하마는, 아직 미우라 일행들과 얘기하는데 빠진 것 같아서 해방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 가볼까요?」


  그렇게 대답하고 봉사부로 발길을 향한다.

  곧바로 다른 반이 간만의 차이로 HR이 끝나,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며 교내가 갑자기 활기를 띤다.

  주말 예정을 상담하는 여자. 승강구로 빠르게 걸어가는 운동부. 유행하는 연예인 흉내를 내며 요란하게 복도를 걷는 문화부. 인구밀도는 점점 더 빠르게 높아져, 곧바로 익숙한 광경이 완성된다.

  그 혼잡 중에서 하나 둘씩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일찍이 내가 받았던 시선도, 시기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호기심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것이 이즈에 선배가 아니라, 왠지 나를 향한다는 게 이상하다.


「저기, 선배는 2학년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응?」


  입술에 손가락을 대며 생각하고는, 「전 남친이랑 나머지는 중학교 때 동아리 후배 정도려나? 그래서 좀 거북해」라고 가볍게 대답한다.

  ......틀림없이 그게 원인이다.

  즉, 그 전 남친이나 중학교 후배 입장에서 보면, 내가 이즈에 선배의 새 남자로 보이며, 그 남자인 내가 어떤 놈인지 흥미진진이라는 건가.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오해다.


「거북하면 여기까지 안 오면 되지 않아요?」

「그래도 전 남친을 꺼려해서 자신이 행동하기 힘들어지면 의미 없잖아? 그건 그거대로 끝난 관계고」


  이즈에 선배는 깨끗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그렇다. 끝난 인간관계에 휘둘려서 자신이 손해 보는 건 좋지 않다. 자신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면, 당당히 있으면 될 일이다. 타인을 너무 신경 쓰는 건 분명 눈치만 보도록 강요받는다는 것이리라.

  건물을 잇는 복도를 지나, 문화동 3층으로 올라간다. 지나갈 때 왠지 커피콩 향기가 감도는 생물실을 지나고서, 바로 봉사부 문 앞에 선다.


「꽤 여러 가지가 있구나. 부럽네~ 포트도 있어.」


  아무도 없는 부실에 들어갔더니, 이즈에 선배가 부실 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커피, 홍차 어떤 게 좋겠어요?」

「그럼 커피로 부탁해, 블랙이면 돼.」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종이컵으로 인스턴트 커피를 두 잔 만든다. 설탕 3개째를 넣어, 이즈에 선배가 나를 유감스러운 시선으로 보기 시작할 무렵,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부실에 왔다.

  유키노시타가 홍차를 2인분 만들고 전원이 손에 든 음료를 한 모금 머금자, 이즈에 선배가 말을 꺼낸다.


「......그래서, 나한테 묻고 싶은 게 뭐야?」


  이즈에 선배가 타이시의 지갑을 주워준 것, 그리고 그 건으로 타이시가 보답을 하고 싶다는 것을 전하자, 이즈에 선배는 떠올리듯이 흠흠하고 끄덕이고 있었다.


「타이시, 생각나요?」

「응. 지갑은 웬만해서는 못 주우니까」


  이즈에 선배는 스커트 옷자락을 정리하고는, 파이프 의자에 제대로 앉는다.

  기억난다면 이야기는 빠르다. 나머지는 적당히 어디선가 둘을 만나게 하면, 우리들의 일은 끝나게 된다. 의외로 편한 일이었군.

  유키노시타는 턱에 손을 대고 고심하고선, 뭔가 수상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 그래」

「이즈에 선배는 지갑을 주운 뒤, 왜 일부러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계셨나요? 경찰서에 보내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 생각됩니다만......」


  나와 같은 의문을, 나와는 다르게 꺼낸다.


「내 마음이 천사처럼 청순하기 때문에?」

「의논할 가치가 없어요.」


  이즈에 선배는 「난처하네......」라고 전혀 난처하지 않은 소리로 대답하고선,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음미하듯이 빤히 보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않기」라며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발설 금지 자세를 만든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지만, 신경 써선 안 된다.


「툭 터놓고 말하자면, 지갑을 주웠을 때 학생증이 들어있어서, 얼굴하고 이름을 알았던 거야. 얼굴은 그럭저럭이어서 우선 만나볼까? 라고 생각했어.」

「우와아......」


  유이가하마가 무심결에 소리를 내고 말았다.

  즉 저건가, 타이시는 이즈에 선배의 먹이로 보기 좋게 낚였다는 말인가.


「그래서 어차피 만난다면 한 번 정도 데이트해서 어떤 사람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할까?」


  우와, 이 사람 빗치다.

  그건 타이시 입장에서는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겠지만, 이대로 넘겨도 괜찮을까? 왠지 불량품을 넘기게 된 것 같군. 이래서 서비스업이 싫은 거다.


「그건 아마 괜찮겠지만요......」

「그럼 하는 김에 하나 부탁해도 돼?」

「내용에 따릅니다.」


  어차피 변변찮은 부탁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지 이즈에 선배는 의자를 내 쪽으로 향하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히키가야 군, 같이 데이트할래?」

「에엑!」

「................」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게다가 입가를 야하게 일그러뜨리고는, 흘러내리듯이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둘러보고 있다.


「왜 세 명이서 데이트해야 하는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방해입니다만.」

「맞아요! 힛키 같은 건 있어봤자 방해가 될 뿐이라구요.」


  ......저기, 자신이 방해라고 말을 했다만 힛키 같은 거라니 너무하지 않냐?


「미안, 말이 부족했네. 더블 데이트를 하자는 거야. 갑자기 둘만으로는 타이시 군도 긴장하지 않겠어?」


  어쩐지 이치에 맞기도 안 맞기도 한 듯한 느낌이다. 애초에 연상의 누나 입장에서 보면, 그 파릇파릇함이 좋다고 어딘가의 만화에서 본 것 같은데.....


「더블 데이트라니, 애시당초 전 누구와 가야 하는데요?」

「많이 있잖아?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나. ......아니면 키리바나라든지」


  왠지 키리바나의 이름만을 똑똑히 구분 짓듯이 말한다.


「......만약 제가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

「나와 타이시 군이 둘이서 데이트에 갈 뿐이야. 단지, 어디서 뭘 할지는 우리들 마음이지. 히키가야 군의 일은 타이시 군을 나한테 소개하는 것뿐이니까. 그 뒤에 간섭하는 건 쓸데없는 참견이야.」

「손 댈 생각 만만이라는 말입니까?」

「그렇게까지는 말 안했어. 다만 나도 타이시 군도 젊으니까, 넘치는 감정을 거역하지 못해서 실수가 일어날지도 모를 뿐이야.」


  이 사람, 마음껏 손댈 생각이잖아.

  그렇다고는 해도 데이트인가. 가고 싶은가 가기 싫은가로 치자면 물론 가기 싫지만, 그렇다 해도 이대로 사자에 먹히는 토끼를 못 본 체 하는 것도 개운치 않다.

  거기에 이즈에 선배의 성격을 알고서도 타이시를 만나게 한 것을 카와사키가 알게 되면 틀림없이 카와사키에게 혼날 것 같다.

  유키노시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눈을 돌리자, 마침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친다. 몇 초 정도 서로 본 뒤, 유키노시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큰 숨을 내쉬었다.


「히키가야. 딱히 나라도, 유이가하마라도, 그야말로 키리바나라도 좋으니 따라가도 되겠니?」

「별로 상관없다만, 왜 그렇게 뜻이 담긴 말투지?」

「딱히 아무것도 아니란다. 다만 조금 여자로서도 자존심이 관계될 뿐이야.」


  즉 저건가. 내가 누구를 선택할지에 따라, 여자의 등급이 결정된다는 건가. 여자라는 건 참으로 성가시다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남자도 그런 부분은 많이 있어서 여자만을 비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왠지 뺨에 여기 있는 전원이 보내는 시선이 느껴진다. 빗발이 세차게 되어, 시끄러울 정도로 창문을 때리고 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이 보랏빛으로 채워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번개라도 떨어지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각자 장단점이 있어서 누구를 선택해도 그다지 차이점이 없는 것 같다. 이즈에 선배를 감시하는 의미로는 유키노시타가 가장 적합하고, 건전한 데이트 코스를 돈다면 유이가하마가 좋다. 키리바나는, ......뭐 가장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것보다도 아까 전부터 퀵 세이브 버튼을 찾고 있는데, 어지간히 안 보인다. 뭐야, 이 쓰레기 게임은.


「......키리바나한테 부탁해 볼게. 키리바나라면 타이시와 같은 반이고, 타이시도 편하겠지.」

「아무튼, 무난한 선택이구나.」

「역시 힛키는 아카네를 선택했어......」


  내 대답에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각자 반응을 보였고, 이즈에 선배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결정이네. 미안한데, 타이시 군하고 키리바나한테 이 일을 전해줘.」


  역시 선택지를 잘못 골랐을지도 모른다고, 머리 구석에서 생각했다.


―――――――


「키리바나, 너 주말에 한가해?」

「특별히 예정은 없는데요......」


  두 번째로 새우에 젓가락을 뻗었을 때, 키리바나에게 물어봤다.


「좋아, 그렇다면 데이트하자.」

「네에!?」


  키리바나가 놀란 바람에, 목이 막혀서 귀엽게 기침하고 있었다.

  이즈에 선배에게 더블 데이트를 제안 받은 그날 밤, 마침 키리바나가 우리 집에 저녁을 먹으러 와 있어서 말을 꺼내봤다. 덧붙여서 우리 집 식단은 새우와 야채 튀김, 닭고기 조림, 고등어 소금구이로 저녁밥치고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기본적으로 엄마가 저녁밥을 만들지만, 그 모친 가라사대 닭고기 조림은 키리바나가 맛내기를 잘 한다는 것 같다. 꽤 맛있지만, 완전히 우리 집 맛이 되어 있어서, 대놓고 칭찬하기는 어렵다.


「어? 오빠, 무슨 일이야? 아니, 전혀 문제없는데......」

「코마치, 문제 있어......」


  흠흠하고 헛기침을 한 키리바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해주세요. 대체 무슨 일인 거예요?」라고 말하고는 가지 튀김을 입에 넣는다. 기분 탓인지, 얼굴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이즈에 선배가 타이시와 데이트를 해주게는 되었지만, 선배를 방치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점점 납득한 표정으로 바뀌어가고, 그 행동거지에 귀찮음이 배인 키리바나는 기름 때문인지 입술이 글로즈를 바른 것처럼 반짝였다.

  그 모습이 평소보다도 요염해서, 얘기하고 있으면 무심코 시선이 입술에 붙들리고 말았다.


「괜찮잖아, 같이 다녀와. 아카네 미안한데, 우리 애를 돌봐주지 않겠니?」


  그때까지 묵묵히 연근을 먹던 엄마가, 젓가락을 두고 말한다. 무뚝뚝한 말이지만, 눈초리가 약간 웃고 있다.

  덧붙여서 이 모친, 키리바나가 없을 때는 「신부로 온다면, 아카네 같은 애가 좋아.」라고 나한테 들리게 자꾸 말한다. 장래에 틀림없이 질 나쁜 시어머니가 될 거다.


「......알았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되어, 키리바나와 같이 이즈에 선배를 따라가기로 했다. 유키노시타가 말한 대로, 이것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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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12 ~히키가야 코마치는 당황한다~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중간까지 같이 돌아갈래?」


  이즈에 선배는 고혹적인 표정으로, 검지 손가락을 불쑥 세운다.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전력으로 거절하고 싶은 제안이었다.

  방과 후, 나는 바로 요전 날처럼 교문에서 따분하게 서 있었다. 점심시간에 흐리기만 했던 하늘은 지금 군데군데 거무스름해져서 당장이라도 주륵주륵할 것 같다.

  교문을 지나가는 학생들도, 하나둘씩 손에 우산을 들면서 걱정스럽게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오늘 일기예보는 흐린 뒤 밤부터 이슬비가 내린다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저녁 정도부터 내리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오후 2교시를 잠과 이즈에 선배를 꼬드길 문구를 생각하는데 쓴 결과, 내 슈퍼컴퓨터가 내놓은 대답은 애드립으로 적당히 하는 것이었다. ......내 머리, 진짜 고장난 게 아닐까.

  애드립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즉흥이라는 건, 숙련자가 하는 것이기에 재미가 있는 것이며 아마추어가 한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단지, 제대로 준비하고 실패하면 싫기 때문에, 애드립으로 하는 것이 상처받지 않고 변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혼자서 교문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도, 예전처럼 내게 눈을 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시선을 싣지 않은 바람은 기분 좋고, 외톨이에게는 이 산뜻할 때가 가장 시간을 보내기 쉽다.


「이따가 크레이프라도 먹으러 갈래? 아니면 파르페라도 좋은데」

「난 상관없는데, 카세이는 어려울지도. ......그치? 카세이?」

「알고 있어? 탄수화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아무리 단 것을 먹어도 살찌지 않는대......」

「너 낮에 주먹밥 먹었잖아......」


  들은 적 있는 목소리가 나서 그 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저번과 같이 살짝 펌한 선배에, 이즈에 선배보다 약간 밝은 갈색 머리를 어깨까지 내린 선배, 그리고 예의 이즈에 선배 트리오가 뭔가 스위트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런, 정말로 눈앞까지 닥치고 말았다. 진짜로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애초에 이렇게 매복하지 말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복도에서 말을 거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거다, 저거다 생각하는 동안 선배들이 가까워진다. 어떻게든 말을 걸려고 해서 보고 있는데, 마침 바로 눈앞에서 이즈에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아아, 히키가야 군. 전에도 여기 있던데 또 누나라도 찾고 있어?」


  이즈에 선배는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멈춰 서서, 검지 손가락으로 엉뚱한 방향을 가리킨다.

  나머지 둘이 이즈에 선배를 따라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나를 한 번 슬쩍 보고는 한 명은 명백하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즈에 선배를 보고, 또 한 명은 기가 막힌 듯이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잘 생각해 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봉사부에 왔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다. 게다가 내 일도 아닌 타이시의 일이므로 딱히 내가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난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고, 이 사람의 소문을 고려하면 내가 고백하는 것처럼 보여도 일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선배, 봉사부를 아세요?」

「들은 적 없는데. 너네들은 알아?」


 이즈에 선배가 묻자, 나머지 둘이 머리를 옆으로 흔든다. 아무래도 살짝 펌한 사람이 미야고, 세미롱은 카세이라는 이름인 듯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봉사부의 지명도가 없는 건 역시나군. 그나저나 이 학교는 문화부가 쓸데없이 많다. 게임 연구회라든지 생물부 등의 부원이 적은 동아리를 쉽게 승인하는 것이 원인인 것 같지만, 부를 삭감하는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공간 낭비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혜택을 받는 입장에서는 뭐라 벙끗할 수가 없다.


「저기...... 그 부장이 이즈에 선배를 만나고 싶다는데,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자세한 얘기를 들어야겠지만, 별로 상관없어. 내일 수업 끝나고 나서 되지?」

「......아, 네. 아마 괜찮아요.」


  아주 간단하게 진행되고 말았다. 권한 내가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이 사람 괜찮을까.


「메구미, 이렇게 눈이 흐리멍덩한 애를 주워서 제대로 돌봐줄 수 있겠어? 어떻게 돼도 모른다구?」

「얘는 아마 괜찮아. 나쁜 짓할 배짱이 없을 것 같으니까.」


  이 사람들, 눈앞에 있는 나를 개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가.

  그렇게 해서 이즈에 선배는 날 뒤돌아보고, 매혹적인 표정으로 말한다.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같이 돌아갈까?」


  그렇게 해서 이야기는 지금으로 이어진다.

  듣기로는 이즈에 선배는 우리 집 근처의 학구에서 산다고 한다. 즉 집이 같은 방향에 있어서, 이렇게 같이 돌아가는 중이다.

  연상인 여자와 둘이 걸어가는 건, 내 인생에서는 처음이라 좀 긴장된다.

  미야 선배와 카세이 선배는 나와의 하교를 정중히 거절했다. 딱히 「절대로 싫어.」라든지 「좀 무리」 이런 심한 말을 한 건 아니다.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선배는 지휘봉처럼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유유히 내 옆을 걷고 있었다.


「즉, 문화적 영역 사이에서 긴장관계가 발생하면, 각각의 문화가 안으로 나아가. 다른 법칙이 끼어드는 일 없이, 그렇게 모방, 발전, 부정에 따라 문화는 성숙되는 거야. 피카소가 지금까지의 단일 초점을 부정하고 큐비즘으로 뻗은 것처럼, 존 케이지가 선율의 분해, 그리고 불협화음을 도입한 끝에 『4분 33초』에 도달한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그건 문화 영역을 좁히는 거야.」

「하아... 그런가요......」


  연상의 선배와 교복차림으로 돌아가는 건 남자의 로망이다. 해질녘에 실없는 얘기를 하며, 약간 갈팡질팡하면서도 거리가 가까워지면 더 좋다.


「부정을 이해하려면 전례가 필요하게 되겠지? 예술이나, 서브 컬처. 기본적으로 현대의 창작 작품은 감상자에게 전제 지식을 요구하고 있어. 그래서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문화는 세분화되어 대상은 적어져. 그게 지금의 다양 사회의 일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만, 이 얘기는 대체 뭐지? 적어도 하교 도중에 고등학생이 할 만한 얘기는 아닐 거다. 왜 하교하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거냐고......

  둘이 같이 돌아가는 건 좋지만,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을 수 없어서 이즈에 선배에게 주도권을 줬더니, 어느 새 이렇게 되어 있었다.


「저기,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해주세요.」

「『*나Tueee』가 유행하면, 다음에는 최약계 주인공이거나 전생해도 능력이 초라하다든가 그런 게 나오지?」

※ 나Tueee : 온라인 게임의 속어로, 실력에 한계를 느낀 유저가 초보 방에 들이닥쳐서 학살하고는 나 졸라 쎄! 하고 의기양양하는 것을 나타냄.


「확실히 그런 게 있죠.」

「그래도 그 타입은 『나Tueee』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각보다는 어떻든 상관없다는 말이야.」

「알기 쉽습니다만, 그 비유는 그만두세요.」


  생각보다 여러 방면으로 적을 만들 거라고.


「아, 그래? 그럼 왜 내가 너희들의 동아리에 불렸는지 알려줄래?」


  이즈에 선배는 일단 멈춰 서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어본다. 조금 거리가 줄어드니, 단정한 얼굴이 바로 눈앞에 들어온다. 그 눈은 뭔가를 간파한 듯이 보여서 어딘가 마음이 불편하다.


「딱히 큰일은 아니에요. 약간의 연애 상담 같은 겁니다.」

「흐응, 혹시 히키가야 군의 연애상담이기도 해?」


  마지못한 듯이 미소 지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그렇게 겨우 얼굴을 멀리 떼놓고는, 몸을 돌려서 거침없이 걷기 시작한다.


「......아니요. 이즈에 선배와 좀 연관된 일이 있어서 선배에게 묻고 싶은 게 있을 뿐이에요.」

「그래, 그건 기대되네.」


  그리고서는 잠시 동안, 교내의 연애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체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즈에 선배는 왠지 학년을 가리지 않고 연애에 관해서는 잘 안다. 누구와 누가 화해했고, 3학년 여자가 하야마에게 고백하고 넌지시 차였다든지, 아무개가 양다리를 걸치다가 부모에게 들켰다든지, 그렇게 쓸데없는 정보뿐이었지만, 꽤나 재미있다.

  또 이즈에 선배의 말솜씨가 대단하다. 단순히 사실만을 뿌리는 게 아니라, 사건을 과장되게 얘기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드라마라도 보는 기분이 든다. 왜 아까 전에 이렇게 말할 수 없었던 건지 캐묻고 싶다.


「뭐 상당히 많이 알고 계시네요.」

「응. 아무튼, 실익을 겸한 취미 같은 거고. 그러니,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가르쳐 줘도 좋은데?」

「그렇다 쳐도, 미야 선배와 카세이 선배는 괜찮겠어요? 아까 전 디저트를 먹으러 간다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너, 말을 돌리는 게 서투르구나......」


  참으로 그렇다.

  슬슬 내가 사는 학구로 들어가려던 때, 앞 방향에서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걷는 게 눈에 들어온다.

  둘은 사이좋게 얘기를 하고 있어서, 나를 알아차린 기색은 없다. 저 녀석들, 이렇게 멀리서 보면 정말로 자매처럼 보이는군. 키 차이가 너무 크다.

  그대로 아주 가까이 접근하나 생각했는데, 키리바나가 목을 돌리는 찰나에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쳤다.

  키리바나는 처음에는 희귀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지만, 옆에서 빙글빙글 검지 손가락을 돌리는 이즈에 선배를 확인하고서는 뭔가 납득이 된 표정을 짓는다.


「그 애들 아는 사람? 그보다 큰 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여동생과 그 친구입니다. 큰 쪽은 전에 저와 같이 있던 애죠.」


  크다든지 커다랗다든지, 본인에게 들리지 않는 말을 제멋대로 하는 우리들이었다.


「어느 쪽이 여동생?」

「작은 쪽입니다.」

「그렇구나」


  여기서 얘네들을 이즈에 선배에게 소개해야 할지 잠시 고민한다. 평상시라면 틀림없이 지나가겠지만, 타이시와 관련된 일도 있다.

  키리바나의 시선에 이끌려 코마치가 이쪽을 눈치 챘으므로 할 수 없이 각오한다. 우리들이 타이시에게 이즈에 선배의 인상을 말하는 것보다는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말하는 편이 좋겠지.

  걷는 박자를 빨리 하고서는, 「오, 소개해주는 거야?」라는 기쁨어린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이즈에 선배, 생각보다는 소란스럽구만.


「거, 거짓말. 오, 오빠가 예쁜 사람이랑 같이 있어!」


  코마치가 과장되게 허둥대며 이즈에 선배를 향해 눈을 반짝반짝한다.

  일부러인 듯한 어중간함이, 이즈에 선배에게는 즉효였던 것 같다. 뭔가 눈을 반짝이고 있다.


「......우와, 저 애 귀여워. 있잖아, 히키가야 군, 얘 내 여동생으로 해도 돼?」


  될 리가 없잖아.

  코마치와 이즈에 선배가 신바람 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을 곁눈질하며, 키리바나가 다가와서는 작은 소리로 기가 막힌 듯이 얘기한다.


「어떻게 하면 연애 상담 대상과 같이 돌아갈 수 있어요? 정말이지 어디의 소녀 만화예요?」

「부실에 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왠지 같이 돌아가게 됐어.」


  만약 소녀 만화라면 중개하는 동안 이즈에 선배를 좋아하게 되고, 어느 새 이즈에 선배도 같은 마음이 되는 거겠지. 그것을 숨기며 타이시와 얘기하는 동안 머지않아 죄책감에 견딜 수 없게 되어, 타이시에게 진실을 고한다. 당연히 나와 타이시는 단절되지만, 그 뒤 타이시는 상심하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는 줄거리일 거다.

  음, 소녀 만화라는 건 여전히 카오스다.


「그 쪽 애는 두 번째구나. 오랜만이야, 이즈에 메구미입니다.」

「키리바나 아카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응, 잘 부탁해. 모처럼이니 너희들도 같이 돌아갈래?」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내게 눈으로 물어서, 양손을 바깥쪽으로 젖혀서 항복 포즈를 취한다. 오늘은 내 위치가 낮아서 아무래도 거절하기 어려워서이다.

  게다가 이즈에 선배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선배의 집은 여기에서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포기하는 게 편하다.

  그렇게 해서 거의 초면인 이즈에 선배를 중심으로 한 쿼르테트가 완성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세 명의 뒤에서 대기할 뿐이라 실질적으로는 트리오지만.


「아카네랑 코마치는 남친 같은 건 없어?」


  역시라고 할까, 여자들이 하는 얘기의 주제는 연애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요즘 중학생의 연애사정에 대해 대충 물은 이즈에 선배는, 마지막으로 둘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들은 없어요.」

「어머, 그래? 둘 다 인기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좋아하는 사람은?」


  선배가 미소를 지으며, 둘을 향해서 검지 손가락을 돌린다.


「전 떠오르지 않아요. ......앗, 굳이 말하자면 오빠일까요. 우와, 지금 코마치한테 포인트 높을지도 몰라요.」


  오빠 입장에서는 기쁜 말을 해주는군.


「저도, 떠오르지 않네요. 그것보다 이즈에 언니는 어때요? 남자친구 같은 건 없나요?」


  키리바나가 자연스럽게 애인의 유무를 묻는다. 정중하게 물으면 뭔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슬쩍 물으면 이즈에 선배에게 어필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주는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이를테면 「애, 애인은 있습니까?」를 남자가 말하면, 틀림없이 연애 경험이 없는 놈이 보기 흉하게 물을 뿐이라, 여자가 질색할 가능성이 높다(쇼타는 예외다). 그러나 여자가 물으면, 동경하는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서 수줍게 묻는 모습이 눈에 떠오른다. 엄청나게 귀엽다.

  이즈에 선배는 놀란 듯이 자신을 가리키고는 그대로 손을 옆으로 흔든다.


「나? 지금은 없어. 신경 쓰이는 남자애도 없다고 할까...」


  우선은 전망이 좋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 다시 나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면서, 이즈에 선배는 둘과 메일 주소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 사람 굉장해. 만나고 난 지 10분 정도 만에 여중생의 메일 주소를 입수했어.

  조금 걸어서 갈림길이 나오자, 이즈에 선배는 손가락으로 우리 집과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응, 우리 집은 여길 돌아서 나오는 데라서 여기까지야.」

「그래요? 그럼 또 내일, 잘 부탁합니다.」

「응, 수업 끝나고 갈게. 또 봐.」


  그렇게 말하고 이즈에 선배는 푸른 가로수를 향해 사라져갔다.


「어쩐지 생명력이 굉장한 사람이네.」


  코마치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에 무심결에 납득하고 말았다.

  생명력이 너무 있어서, 나한테서 뭔가를 흡수해간 것 같다. 어깨를 덮치는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늘은 자꾸자꾸 어둡게 되어가고, 점점 비 냄새가 올라온다. 아스팔트 위를 청개구리가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참새들은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쉬게 하는 중이다.

  이제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http://www.pixiv.net/novel/show.php?id=5675633


끼이익-! ...퍽!! ......쿵

사브레 「캉캉」⊂゚U┬───┬~

하치만 「윽......」

철컥, 덜컹

하루노 「그게...... 미안?」 (ゝω・)데헷

하치만 「(아니, 데헷이라니......)」털썩





코마치 「오빠 좋은 아침~ 시언니(義姉ちゃん) 벌써 왔다구」

하치만 「나한테 누난(姉) 없어......」

하루노 「그치그치~? 역시 피앙세지!」

하치만 「왜 아침 일찍부터 흥분하는 겁니까......」

하루노 「에~ 왜냐면 봐, 사랑하는 달~링을 보살펴야 아침이 시작되잖아.」( ^▽^)σ)~0~)プニッ♪

하치만 「아니, 제 앞가림은 제가 할 수 있으니까요.」

코마치 「시언니, 코마치 배고파~」

하루노 「그래그래~ 앉아서 얌전히 기다려줘~ 지금 만들 거니까」

하치만 「너 말야......」

코마치 「괜찮잖아, 시언니한테 맡기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고」(*ノω・*)데헷

하치만 「또 아침부터 자라 요리 같은 게 나온다고......」

코마치 「코마치가 고모가 될 날도 가깝네!」

하치만 「기가 막히는구만.」

코마치 「그렇다고는 해도 오빠 진짜 행운이네. 이런 미인한테 치인 덕분에 사과로 신부로 와주다니!」

하치만 「신부로 맞은 기억도 약혼한 기억도 없어......」

코마치 「아무튼 오빠가 그렇게 고집부릴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치만 「(손대면 끝난다 손대면 끝난다 손대면)」

하루노 「기다렸지~? 고베 비프의 등심 스테이크야~」

코마치 「와~! 고기~!」

하치만 「음식으로 낚는 건 너무 비겁하잖아......」





유이 「힛키 얏하로~!」

하치만 「여어......」

유이 「힛키 아침부터 기운이 없네, 왜 그래?」

하치만 「네가 너무 흥분했을 뿐이야......」

유이 「그래? 이게 보통인데, 아, 교실 가야해」

하치만 「하아......」





유키노 「.............」

하치만 「......뭐야?」

유키노 「......하아~」

하치만 「다른 반애들까지 그러던데, 사람 얼굴을 보고 한숨 쉬는 게 아니야.」

유키노 「......매우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앞으로 형부가 될 상대라서 이 기회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거란다. 저기, 그 불쾌지수를 확 올리는 썩은 눈은 떼어낼 수 없겠니?」

하치만 「넌 그 억지를 버리고 나서 와라, 그리고 널 처제로 둘 예정 같은 건 없으니까」

유키노 「어머, 지난 주말도 부모님이 너의 부모님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했는데」

하치만 「저 사람들, 뭘 하는 거야......」

유키노 「인생경험이 매우 풍부하고 재미있는 아버님이네, 위기관리에 뛰어나다고 아버지가 극찬했어. 다음에 회사 임원으로 초대할 것 같아.」

하치만 「뭐? 완벽하게 포위됐잖아!」

유키노 「죽은 물고기 같은 눈을 한 사람을 형부라고 부르는 건 싫은데」

하치만 「나도 갑자기 나타나서 매도하는 처제는 싫다만......」

「「하아......」」





하루노 「히~키가~야 군!」

하치만 「아니, 왜 학교에 왔어요? 그나저나 달라붙지 말아주시겠어요?」

하야마 「어라? 하루노 누나」

하루노 「하야토잖아, 햣하로~」

하치만 「아니, 내 머리에 가슴 얹어두고 잡담하지 마시라니까요.」

하루노 「왜냐면 무거워서 어깨가 힘든걸. 이렇게 하면 나는 편하고, 히키가야 군은 기쁘니까 WIN-WIN이지.」

하치만 「무거워......」

하야마 「무슨 일이야? 이런 데에서...... 그와 아는 사람이야?」

하루노 「소개할게, 내 약혼자인 히키가야 군!」

하치만 「아니, 오해할만한 발언은 그만둬 주시겠어요? 잘 모르는 남자한테 살기가 깃든 시선이 집중되니까.」

하야마 「아아~ 네가...... 하루노 누나가 쳤다는. 처음 뵙겠습니다, 난 하야마 하야토, 하루노 누나와는 소꿉친구야.」

하치만 「그래......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아니, 나 같은 건 내버려두고 이 멋진 사람과 결혼하는 게 어때요?」

하루노 「하야토? 안 돼, 히키가야 군 쪽이 절대로 귀엽고, 꼬옥~ 하고 싶어지는걸.」

하치만 「읍읍(가슴 때문에 숨이, 숨을 못 쉬겠어.)」

시즈카 「하루노! 뭘 하는 거냐!」

하루노 「아, 역시 시즈카 짱이다. 히키가야 군 학교 끝나고 또 보자~」

시즈카 「기다려라!」

하치만 「하아하아......」

하야마 「사이가 좋구나.」

하치만 「너 어딜 어떻게 봐서 그런 결론에 다다른 거냐.」

하야마 「본 대로 말할 뿐이야. 하루노 누나가 이렇게나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본 적 없기도 하고.」

하치만 「아니, 날 쳤을 때도 웃고 있었다만......」

하야마 「하하하하, 넌 정말로 재미있구나. 하루노 누나가 마음에 들어 한 이유가 그거야.」

하치만 「아니, 야, 지금 한 이야기에서 웃을만한 요소가 하나라도 있었나?」




하루노 「히키가야 군 쪽 쪽~」

하치만 「아니, 진짜, 진짜로 코마치 교육에 안 좋으니까 목욕타올 한 장 차림으로 달라붙는 건 그만둬 주시겠어요? 그나저나 왜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욕실에 들어오는 겁니까?」

하루노 「어라? 못 들었어? 코마치는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온대.」

하치만 「아아, 그거...... 아니, 그것과 반나체로 달라붙는 것과 무슨 관계가?」

하루노 「오늘은 시아버님과 시어머님도 결혼기념일로 자고 오신대. 그래서 히키가야 군을 잘 부탁해~ 라고 부탁받았어. 그래서 단 둘이야」 (*'-')σ*'-'*)쿡쿡

하치만 「 」

하루노 「아앙~ 부드럽게......」





코마치 「......어젯밤에는 즐거웠지?」

하루노 「아, 역시 눈치 챘어~?」

하치만 「넌 어디의 여관 주인이냐.」

코마치 「데레데레하는 시언니랑 얼굴 새빨간 오빠를 보면 누구라도 알 거라구!」

하루노 「히키가야 군한테 먹혀버렸어~」 (ゝω・)데헷

하치만 「......노코멘트다.」

코마치 「침묵은 긍정이야! 오빤 변태!」





유키노 「저기, 요즘 언니가 돌아오지 않는데」

하치만 「......집에 있다.」

유키노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그래?」

하치만 「딱히...... 약간 살찐 정도겠지.」

유키노 「......배가 부른 것을 잘못 말한 게 아니라?」

하치만 「....................노코멘트다.」

유키노 「약혼하고 바로 임신시키다니 마치 짐승 같구나.」

하치만 「......저런 건 반칙이잖아.」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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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1 ~이즈에 메구미의 이름은 유명하다~


『사랑의 빛이 없는 인생은 무가치하다』


  독일의 사상가인 시라아의 말이며, 연애의 격언으로서도 유명한 문구다.

  사랑이라는 것은 인생을 색칠하는 것이며, 사랑 없이는 아무리 유복한 생활을 해도 무가치하다는, 육체를 주체 못하는 현대의 젊은 아내가 들으면 불륜에 좋은 핑계가 될 법한 문구다.

  다만 시라아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의 연애만이 아닌 이웃사랑도 가리킨다. 결코 「젊음은 빨리 지나간다, 사랑하라 소녀여」 같진 않다. 왜 시라아가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의 시인은, 형제 같은 말을 너무도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제 4악장의 『환희의 송가』에서도, 「혼을 나누세, 형제여!」 같은 말을 하니까. ......『시간이여 멈춰라, 그대는 너무도 아릅답다!』는 괴테였지.

  연애를 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그런 자칭 사랑이 많은 소녀처럼, 연애를 특별시하는 풍조는 지금도 뿌리 깊지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성(性)과 연애와 결혼이 분리된 현대에서는, 연애나 사랑 같은 것은 유행가의 일부로 다뤄지고, 단순한 오락으로서 소비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라아의 말은 지금은 통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애가 취미가 되어버리면, 그 대체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설렘을 갖고 싶다면 책을 읽으면 되고, 유사적인 연애 체험을 하고 싶다면 미연시를 하면 된다. 성욕을 채우고 싶다면, 그야말로 유흥가라도 가면 된다. 연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니, 전부 거짓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연애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연애관계는 사람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에, 의견의 충돌을 낳는다. 양다리에서 칼부림으로 확대되거나 「나, 그 사람하고 잤어......」라는 말을 듣고 따귀를 날려 친구관계가 파탄 나거나, 치정의 뒤얽힘이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예를 들어보면 끝이 없으리라.

  ......그런데, 슬슬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점심시간의 부실은, 침울한 분위기가 내려 쌓여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 부실의 색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하늘은 회색으로, 그 앞에 있는 푸른 하늘을 덮은 듯이 흐렸다.

  타이시의 짝사랑 상대가 이즈에 메구미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이틀 정도, 우리들은 이즈에 선배에 관한 정보를 각자 모으고 있었다.

  유이가하마는 지인에게 평판을 묻고, 유키노시타는 교사의 평판을 탐문하고 그리고 나는 교내를 돌아다녔다.

  사람의 이야기는 과장되는 것이 당연하므로, 말을 반 정도만 들으며 모은 정보를 오늘 점심시간에 정리한 결과가 이와 같다.

  남자의 소문에 의하면, 귀엽다. 나한테도 상냥하다. 딱 한 번 만이라면 데이트해준다. 남자를 이것저것 번갈아 바꾼다. 재녀. 붙임성 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즐겁다.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다.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싶다. 빈유. 빗치 등등

  여자의 소문에 의하면, 보통. 미인이지만 바보. 방화계(사건을 만든다). 뭔가 시끄럽다. 재미있다. 자신에 도취해 있다. 그보다 미인이 아니다. 글로리어스(glorious). 맹금류. 불판을 쿡쿡 찌른다. 친구로서는 괜찮다. 남친을 뺏겼다. 걔한테는 먹혀도 좋다, 기타 등등.

  덧붙이면 학년이 내려갈수록 평가가 나쁜 경향이 보였다.

  A4용지에 출력된 명조체들을 한 번 더 위에서 아래까지 보고서 무심결에 한숨을 토하고 말았다.


「......왠지 굉장하네, 이즈에 선배」


  유이가하마도 나와 똑같이 생각했는지, 뺨이 약간 경직돼 있었다.

  아니 뭐, 초면인 나나 타이시에게 그렇게까지 다정하게 대할 수 있다니, 상당한 천연 혹은 노리고 하는 건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이런 평판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유이가하마의 중학교 선배에게 들어보니, 의외로 평판이 좋았다는 거네.」


  방금 전의 「미인이지만 바보」라는 건 유이가하마의 선배가 한 말이다. 어제 방과 후에 이야기를 들으러 갔지만, 그 선배는 깔깔하고 재미있는 듯이 웃으면서, 이즈에 선배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다만 세세한 부분에는 접하지 못하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든지, 보면 재미있는 애라든지 이렇게 대강으로밖에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슬슬 히키가야에게 일을 맡겨볼까?」


  내가 한 번 더 한숨을 내쉬고, 유이가하마가 이 분위기에 질려서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을 무렵, 유키노시타가 제안했다.


「응? 일이라면 이걸 타자로 친다거나 했잖아.」

「더 이상의 현실도피는 그만두렴. 히키가야, 이즈에 선배와 약속(アポ)을 잡아줘.」


  요전부터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된다.

  습기 찬 공기 탓인지, 아니면 이 날씨에 끌린 건지, 약간 수그러들었던 교내의 어수선함이 한 층 더 의식된다.

  이미 세 명과의 점심식사는 여기서 끝났다. 어떻게 잘 질질 끌 수 없을까.


  「어포라는 건 appointment의 약자겠지. 그리고 appointment는 appoint를 명사화한 거고. 거기서 난 항상 생각해. ment를 뒤에 붙였을 뿐인데 존재감이 너무 강하지 않아? 형용사화하거나 부사화할 때는 수수하게 추가되는데, 왜 그것만 본체를 잡아먹을 정도가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 안 해?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

「......히키가야?」


  유키노시타가 고양이를 쓰다듬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단 눈 안쪽이 묘하게 빛나고 있다.


「이즈에 선배와 만날 약속을 성립시키렴.」


  마침 뒤에서 기다려 마지않았던 벨이 울린다.

  유키노시타는 중간에 이론을 둘 여지를 일절 주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선다.


「힛키? 내가 먼저 이즈에 선배한테 얘기해 볼까?」


  유이가하마가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본다.


「아니, 사양해둘게......」


  벨 소리가 끝날 때까지, 나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좋게 납득시킬만한 문구를 계속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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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번역한 미우라 SS가 제가 도저히 하루에 할 양이 아닌데 하루에 다 끝내고 탈력감에 빠져서 좀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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