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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Ⅳ ~쌀쌀한 흐린 하늘~




  조금 키가 자라서 교복을 걸친 상태에서 벗어나, 감색 스커트에 익숙해진 가을 무렵, 1학년 사이에서 작은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소문이라는 것은 저, 키리바나 아카네가 상급생과 사귀고 있다. 게다가 그 상대가 3학년인 히키가야 하치만이라는 시원치 않은 남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만, 소문이 사실무근이며 아무 근거도 없다, 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가끔 돌아가는 길에,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와 셋이서 돌아간 일이나.

  예를 들면 여름방학에 우연히 밖에서 만나, 그대로 같이 쇼핑한 일이라든지.

  그런 것을 누군가가 봐서, 아무래도 학년 내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직접 가르쳐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확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비밀 얘기를 하듯이 하나 둘씩 들렸을 뿐입니다.

  다만 그 소문은, 누군가에게 고백 받은 것처럼 우와 하고 퍼지는 식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멀리서, 소곤소곤하고 저의 눈치를 볼 뿐, 누구 한 명도 제게 자세히 묻지는 않았습니다.

  제 입장에서도 소문이 퍼져서 뭔가 실제로 손해가 나는 건 아니기에, 그저 멍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바뀐 것이라면, 여자애들과의 잡담 중에 아이들 몇 명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애인 이야기를 하거나 남자들에게 불만스러운 시선을 받는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가끔, 「취미가 나빠」나 「있는 척 한다」 등의 악담인지 무엇인지 미묘한 말이 들립니다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릅니다.

  원래 부정적인 감정을 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아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 구나」,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복도에서 교실로 돌아갈 때, 반 남자들이 교실 안에서 하치만 오빠의 험담을 해대는 것을 우연히 듣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치만 오빠가 항상 혼자 있는 것이나, 친구가 없는 것을 일부러 과장한 내용을 농담 섞어 말하고 있었습니다. 입가를 흉하게 일그러뜨리고, 전원이 마찬가지로 보기 싫은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반 정도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정도부터, 하치만 오빠의 눈이 자꾸자꾸 탁해지고, 그것에 따라 언동도 조금 유감스러워졌습니다. 이따금 혼자 있을 때 옅은 웃음을 띠는 것을 보면,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치만 오빠의 가장 장점인 잘 돌봐준다는 것이나 비뚤어진 다정함은 전혀 변함없어서, 플러스 마이너스하면 0으로 수렴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하치만 오빠는 나쁜 말을 들을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왜 그래? 아카네.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고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이야기가 들렸겠지요, 남자들은 저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약간 거북한 침묵이 남고는,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축구부 고문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습니다.

  정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요.

  타인의 험담을 하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 불만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으로 괴로움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치만 오빠는 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그리고 험담의 내용은 불만조차도 아닌, 사실과 허위가 섞인 헛된 말입니다. 그 이야기로 무엇을 얻는지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치만 오빠의 화제가 나오는 계기는, 아마 제게 있겠지요.


―――――――


「요즘, 학교는 어때?」

「딱히 보통이에요. 주변이 약간 시끄럽지만요. ......하치만 오빠는 어때요?」

「보통이야. 가끔 모르는 녀석이 볼 때가 있다만」

「............」

「............」


  계기가 된 이야기는 정말 사소한 일로, 하지만 필연으로 발생합니다.

  왜냐면, 제가 싫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집착할 수 없는 주제에 싫은 일은 참을 수 없는, 제멋대로인 성격을 띤 저는, 하치만 오빠가 까닭 없는 비방에 노출되는 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저라면, 해야 할 방도는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까지 얻고 싶은 것은, 정말 조금 밖에 없으니까요.

  그 이후로 제 생활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밖에서 하치만 오빠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점점 피하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도, 가볍게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그대로 모르는 척하고 걸어갑니다.

  그렇게 거리를 둔 것에 대해 하치만 오빠에게 어떤 말을 들을지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고 저와 미리 짠 것처럼, 말을 걸지 않고 모르는 체를 해줍니다.

  저는 그것에 약간 안심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험담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왜 그러냐는 말을 들으면 거리를 벌린 이유에 대해 대답할 테니까요.

  혹시 하치만 오빠는, 「그런 건 익숙해」라고 한마디로 대답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치만 오빠가 익숙해질 때까지 험담을 들은 것을 생각하면, 역시 그런 사실을 들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11월에 접어들어, 추운 겨울이 찾아옵니다.

  우리들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릅니다만, 그 시기가 되니 소문도 상당히 수그러들었습니다. 10월 말에는, 「그냥 헤어졌다」라든지 「키리바나가 찼다」라든지 그런 제멋대로인 억측이 돌았지만, 그 화제도 차가운 서풍으로 깎여, 점점 옅어져갔습니다.

  그런 저는, 무엇 때문인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의 감정이 철썩 밀려왔습니다. 그, 남동생이 죽고 나서 반년 정도 이후.

  그토록 마음에 불이 붙었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연기만 나고. 그것이 남동생을 잃었을 때와 너무나도 비슷해서, 남동생에게도 하치만 오빠에게도 미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문은 기세가 죽었지만, 요즘은 하치만 오빠와 만날 기회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10월 초순 정도부터 수험 때문에 예비학교에 다니게 되어, 히키가아가에 들러도 대부분 외출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어떻다 생각하지 않지만, 평소보다 사람이 줄어든 히키가야가는 매우 넓고, 자주 들르는 거실도, 저와 코마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코마치가 요리를 만들자고 했던 것도 요 근래부터였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코마치 나름대로 우리들을 신경 써서, 배려를 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따금 교대로 하치만 오빠의 식사에 원하는 메뉴를 메일로 물어, 대답이 없으면 하치만 오빠가 싫어하는 것을 만들어서, 반응을 듣곤 했습니다.

  1월이 되어, 길에 얇은 얼음이 서리기 시작하고, 때때로 눈이 살랑살랑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예년보다도 매우 추워서, 차가워진 공기가 근방에 가득 차, 평소보다 한층 더 겨울의 서글픔이 두드러졌습니다. 아침과 저녁에는, 숨을 하아-하고 내면, 하얀 숨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습니다. 눈이 옅게 쌓인 날에는, 코마치와 같이 길에서 미끄러질락 말락 하며, 꺄아꺄아하고 떠들면서 등교했습니다.

  2월이 되어 공기가 조금 더 차가워지자, 3학년의 분위기가 점점 팽팽해졌습니다. 수험이 가까워진 그들, 그녀들은 여태까지보다 더 어른스러워져서, 또 한 걸음 어른을 향한 계단을 올랐던 거라고 어째서인지 제가 실감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치만 오빠와 이야기하는 것도 현저히 줄어들어서, 가끔 히키가야가에서 같이 있게 되어도, 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고, 그저 인사하는 것만으로 끝났습니다.

  조금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3월. 하치만 오빠는 무사히 소부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식 날에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꽃봉오리인 채였고, 조금 따분했습니다.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불리던 중, 하치만 오빠의 이름이 불려도 주변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시시한 소문은 이미 사라져, 누구에게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봄방학에 접어들어도 생활은 변함없어서, 코마치나 반 여자애들과 놀며,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숙제 하나가 있었는데, 빌린 책이 의외로 무거워서, 책을 넣은 가방을 들었을 때, 팔에서 듣기 싫은 비명이 들렸습니다. 이런 책도 빨리 전자화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봄의 양기에 싸이며 돌아갈 때 생각합니다.

  ......앞으로 백년만 지나면 분명, 과학이 발달해서 우리들의 마음도 전자처럼 취급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이 0과 1로 되어, 맛있는 것을 먹어 들뜨는 기분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 받아 가슴이 뜨거워진다거나, 그런 우리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숨겼던 감정을, 재미없는 이유를 치덕치덕 붙여서 인공적으로 재현해가겠지요.

  그렇게 되면 분명, 사람은 전자의 바다에 빠지면서 행복한 꿈을 계속 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나 할머니처럼 고민할 일도, 자신을 혐오할 일도 없이, 더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가 언젠가는 옵니다.

  그 꿈은 스위치 하나로 쉽게 무산되는 아지랑이 같은 것으로, 모두 그렇게 애매한 것에 기대어, 점차 약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런 광경을 보는 것은 조금 동경하게 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과 함께 시간이 매우 빨리 흐르고 4월에 접어들어, 2학년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시업식 날, 저는 코마치에게 하치만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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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Ⅲ ~어렴풋한 마음~



  또 계절이 몇 번인가 돌아, 저와 코마치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처음 입은 교복은 코마치가 입으면 매우 귀여운데, 제가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왠지 별로 안 어울리는 것이 다소 불만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새 옷을 입었을 때에는,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눈 익은 가로수 길도 약간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우리들보다 2년 빨리 중학교에 올라간 하치만 오빠도, 히키가야가에 신세졌을 때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여, 나름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른으로 향하는 첫걸음을 느낀 사람은 저 만이 아닌 듯, 반 여자애들이 하는 이야기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예전의 연애이야기는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 끝났었지만, 그것이 누구와 사귄다든지, 그 애를 노린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여자애들 몇 명은 이미 애인이 생겼다거나, 첫 데이트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이들은 아직 애인이 없는 아이에 비해 세련되어, 스커트 자락을 접는 방법이나 손톱 손질이나, 그런 세세한 부분을 꾸미는 차이가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어제 月9에 나온 사람, 진짜 멋있었지~.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 기억 못하는구나.....」

「왜냐면 처음 본 사람이었으니까. 그 있잖아, 안경 쓰고 엄청 본좌 느낌인 사람」

「아~ 그 사람. ......나도 이름 몰라」

「아카네도잖아! ......그래서, 어때?」


  저는 그렇게 말하고, 그런 새콤달콤한 분위기에 조금 주눅들면서도, 연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때때로 저에게 연애상담을 해오는 일이 있었고, 그런 경우는 왠지 모르게 그 애들이 좋아하는 남자애를 알리는 의도를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 애들이 마음에 둔 남자애에게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고, 그런 하찮은 이야기에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냈습니다.


「난 그런 타입은 별로 취미가 아닐지도」

「흐~응. 그럼, 어떤 게 취미? 될 수 있으면 연예인으로 말해줘」


  유행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몇 명 정도 들자,


「아~」


  납득했는지 못했는지 잘 모를 대답을 하고는 위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봅니다.


「......아카네는, 취미가 좀 이상하지 않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츤데레, 같은 느낌? 갑자기 다정하게 대해지고 싶은 느낌이지?」

「듣고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항상 마주치는데 묘하게 성실하고, 요령이 좋지 못하며, 그래도 역시 서투르게나마 다정한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 안 해. 난 자꾸자꾸 끌어 주는 사람을 좋아해.」


  그 때 예비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 이 이야기는 중단됩니다.

  그 뒤의 수업, 일차 함수의 공식을 건성으로 들으며, 방금 전 말한 취향에 딱 한 사람만 들어맞았던 것을 깨닫고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여자애들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처럼, 남자애들도 점차 변해갔습니다.

  초등학교까지는 평범하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리를 벌리거나, 반대로 이상하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특히 후자는,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하긴 했지만 그것뿐입니다.

  교환했을 때 「한가하면 메일해」라는 말을 듣지만, 학교에서 얼굴을 맞대는 반 친구, 게다가 별반 흥미 없는 남자와 메일로 이야기할 내용 같은 건 없습니다.

  그 결과 제가 보낸 적이 없는, 거의 의미 없는 이름이 연락처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거리를 벌렸는데도 관계없이, 그런데도 갑자기 고백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게 고백한 사람들과는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고, 이따금 이야기를 하는 관계였습니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교류 중에서, 제게 호의를 품을만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어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며 대답하는데 얼마간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결국 그들과 함께 지내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전부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마치가 위원회에서 늦어져서 혼자 돌아가던 중에 저와 마찬가지로 혼자 돌아가던 하치만 오빠를 발견했습니다.


「하치만 오빠, 혼자인가요?」


  차도를 건너, 반대편 보도에 가서 말을 걸자, 하치만 오빠는 주위를 힐끔 둘러본 뒤 입을 열었습니다.


「뭐야, 키리바나인가. 혼자다, 오히려 자진해서 혼자 있다고 해도 돼.」

「아니요, 그게. 저한테는 거의 인사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기보다도 하치만 오빠의 경우, 혼자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누군가와 같이 있는 편이 놀랍니다.

  옆에 나란히 서서 걷기 시작하자, 하치만 오빠가 걷는 속도를 늦춰주었고, 저는 하치만 오빠의 그런 배려에 감사하면서 평소보다 빠르게 발을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둘이 돌아가는 건 처음으로, 석양이 비치는 장면과 어우러져,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제 일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코마치는 어떻게 된 거야? 항상 같이 돌아갔잖아.」

「미화위원회 활동 때문에, 학교 주변을 청소해야 한다는 것 같아요.」

「하아... 그 녀석도 귀찮은 위원회에 들어갔구나.」


  저도 코마치도 동아리에는 안 들어가서, 수업이 끝나면 기본적으로 시간은 있지만 이따금 위원회 활동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중학교는 전원이 어떤 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어 있어서, 저는 교과 위원이라 방과 후까지 묶일 일은 없지만, 코마치는 불운하게도 유지관리를 하는 위원회에 들어간 것 같아, 가끔 이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네요. 오랜만에 귀찮은 일이 왔다고 했었어요.」

「......너희들, 요령이 좋으니까 말이지」

「저는 그렇게까지 좋지 않아요. 코마치와 같이 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그럴지도」


  그 상태로 코마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하치만 오빠는 누군가가 코마치를 노리는 게 아닌지 제게 자꾸 물었지만, 저는 지금도 다른 반이라 코마치 반에서 누가 노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마치에게 남자애 얘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는 것을 전하자, 하치만 오빠는 노골적으로 안도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큰 길을 빠져나가 좁은, 보도가 없는 길에 들어갑니다. 정면에서 차가 와서 피하려고 옆길로 갔을 때, 스치듯이 하치만 오빠의 팔에 부딪쳤습니다.


「......미안해요.」

「그래」


  하치만 오빠와 맞닿은 부분에 단번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이야기를 할 뿐인데 굉장히 즐겁고, 맞닿으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워집니다.

  그런 현상을 소녀만화에서 몇 번이나 읽었지만, 제가 가진 감정은 이야기의 등장인물과는 약간 다르다는 생각이 들고. 구체적으로 이러니저러니 말할 순 없지만, 여기저기서 감정이입을 못해서 아무래도 자신의 감정에 자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해요.」

「뭐가?」


  약간 주저하면서, 이 불명확한 마음에 대해 하치만 오빠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몇 달 전에는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연애 이야기만 해요. 사귀고 싶다든지, 그런 느낌으로요. 어째서 그렇게 애인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요?」

「그거야, 단순한 발돋움이겠지. 속은 아직도 아이이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익숙하지 못한 짓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래도 그런 동경만으로, 일부러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불러서, 갑자기 사귀고 싶다고 고백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매우 구체적이구만.」

「일반론이에요. 일반론.」


  딱히 일부러 다음 날에 소문이 될 만한 상황에서, 고백한 것이 불만인 건 아닙니다.

  아니, 실제로 소문이 나서 난처했지만요......


「......뭐 상관없나. 그거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좋아하니까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것 말고는 표현하거나 이어질 방법이 없으니까 애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뿐이야.」

「그건, 하치만 오빠도 그래요?」

「......일반론이야.」

「......흐음, 그런 건가요?」


  그 하치만 오빠의 말로, 자신의 감정을 눈치 챕니다.

  아마도 필시, 일반적인 의미의 『좋아해』라는 것은,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상대에게 뭔가를 바라고, 상대에게 뭔가를 받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귀려고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말해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이성으로서 하치만 오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대로, 지금도 심장은 조금 빨리 뛰고 있고, 그러면서 꽈악 하고 조여옵니다.

  애인이 되면 분명 즐겁고, 손을 잡으면 두근두근하고, 키스를 하면 매우 달콤한 맛이 나겠지요.

  하지만 저는 애인이 되고 싶은 것도, 손을 잡고 싶은 것도, 키스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단지, 호의를 가졌을 뿐입니다.

  이 마음을 전하려고도, 이루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야. 저, 할머니와 별로 다를 바 없잖아요.

  할머니만큼 상태가 심한 것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제대로 감정을 향할 수도 있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어서, 별로 이어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래?」


  하치만 오빠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겁니다.


「아니요, 별 것 아닌 의문에 납득이 가서요.」


  정말로 별 것 아닌 일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가로수를 흔들고, 깊은 음영이 곳곳에 퍼뜨려지면서, 태양은 가라앉아 밤하늘이 얼굴을 내밀려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가 손을 잡고, 얼굴에 미소를 띠며 우리들과 엇갈렸습니다.

  정말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있는 하치만 오빠는, 역시 손을 내밀 것 같진 않아 보입니다.


―――――――


  대강 할아버지의 49제 법요가 끝났을 무렵부터일까요, 가끔 딱 시간이 비었을 때 성묘하러 가는 게 언제부턴가 습관이 되었습니다.

  습관, 이라고 해도 3개월에 한 번일 때도 있고, 2주일 때도 있어서, 엄밀한 의미로 습관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다니고는 있었습니다.

  오봉(お盆)이나 삼회기(三回忌) 같은 의식은 아무래도 서투릅니다. 정해진 것처럼 죽은 사람에 대해 떠올리면, 일상의 정보 안에 파묻혀, 분명 꼭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 것만 같습니다.

  성묘라고 해도 큰일은 하지 않습니다. 묘를 청소하고, 꽃을 놓고, 향을 올리고, 사라진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정도입니다.

  이름 밖에 모르는 남동생에게 사과하고, 잘 알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근황을 보고하고, 얼굴과 이름 밖에 모르는 할머니에게 푸념이나 불평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고인에게 푸념하는 건 잘못됐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할머니만큼은 아무래도 타인처럼 생각되지 않아서, 무심코 입이 가벼워지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하치만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도 전했습니다.

  무덤 속에서 주무시는 할아버지는 분명 기뻐해주시겠지요. 할머니는 무관심한 표정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동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로 의미 없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왠지 이 세 명에게는 제대로 전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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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Ⅱ ~ 쓰여 있던 것 ~




  텅 비어 아무도 없는 할아버지의 집은, 건물의 낡음이 배어 나온 듯한 정체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마 고운 붉은 적색을 띠고 있었을 기둥이나 마루는, 지금은 이제 상당히 거무스름해져서 툇마루에 나와 나뭇결 끝을 밟아보니 삐걱삐걱하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가고 나서 며칠 뒤의 방과 후, 당분간 할아버지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무심코 할아버지 집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매우 닮았을 할머니에 대해, 조금만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실은 아버지에게 묻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할머니의 별로 좋지 않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묻는 건 꺼려져, 결국 이렇게 제 손으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저와 같은 성질을 가졌다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며 그리고 살아갔을까요?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가 평소 쓰는 방을 살펴봅니다. 여덟 다다미 정도의 큰 방은 햇볕이 잘 들어, 남쪽에는 눈을 구경하는 미닫이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슬쩍 봤더니, 찬장 위에 장식된 두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슴에 약간의 기대를 품고 들어서 확인하자, 역시 제가 상상하던 것이 보였습니다.

  첫 번째는 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했을 때의 사진이겠지요. 지금보다도 상당히 젊은, 예리하고 사나운 용모의 할아버지가 예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비단 같은 흑발을 묶고, 주홍색이나 금빛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듯한 요염한 옷을 입은 여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훨씬 거친 사진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릴 적의 아버지와 고모가 모두 찍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세련되지 못한 옷을 입은 할머니는, 등까지 내려오는 흑발과 덧없는 표정이 매우 인상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할머니의 외관은,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저와 매우 닮았습니다. 특히 두 번째 사진은, 요즘 제가 등까지 머리카락을 내린 이유도 있어 정말로 쏙 빼닮았고, 지금의 제 용모를 그대로 성장시킨 듯한 모습입니다.

  조금 호흡이 흐트러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심호흡을 여러 차례 한 뒤, 할머니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한 번 어루만지고, 사진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고 방을 뒤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몇 개 정도의 방을 찾다가, 한 방에 이윽고 다다랐습니다.

  여섯 다다미만한 다다미를 깐 방. 오래된 오동나무 장롱이 두 개와 작은 찬장, 그리고 화장대만이 놓인 곳이었습니다. 건조한 등심초와 오동나무 향이 방 전체에 그득 차 있어 절로 차분해지는 이상한 곳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쓰이지 않았겠지요. 최소한은 청소되어 있었지만 생활품은 없고, 몇 년 전부터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정체감을 싫어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겠지요, 할머니는 평소 여기에 있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뭔가 일기 같은 게 있다면 좋겠구나 생각하며 찬장을 찾아봐도, 칠흑색 비녀가 놓여있을 뿐입니다. 계속해서 맹장지 안을 보지만, 이불이 하나 있을 뿐 대부분 비어 있습니다.

  그 뒤 대략적으로 방 안을 봤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고 할 일이 없어진 저는 다다미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금 전 사진으로 본 할머니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립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며 지냈을까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간단히 버려질 것 같은 성격이라면, 저와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을 품고 있었을까요?

  ......어째서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는 돌아가셨을까요? 만약 살아 있다면 닮은 사람끼리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요절한 것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납득하고 있습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와 반대로, 별로 세상과 이어지지 않은 사람은, 그야말로 스러지듯이 간단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당분간 그 상태로 멍하니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뒤척이다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비치된 장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단상은, 아직 열지 않았습니다.

  사고 나서 시간이 상당히 흘렀겠지요. 본래 오동나무 색이 상당히 더러워져서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해졌습니다. 문의 쇠장식도 마찬가지로 녹슬었고, 적동색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천천히 일어서서 가슴 높이 쯤에 있는 서랍을 열어보니, 방금 전 사진에서 할머니가 입었던 옷과, 한 벌 더, 짙은 감색의 오오시마 명주가 곱게 접혀 있었습니다. 그 아래 서랍을 열자, 약간 오래된 디자인의 양복이 있었습니다.

  과감히 다른 서랍도 열어보자, 고급스런 기모노가 몇 개 정도 있어서, 할머니가 양가 출신이라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8할 정도의 서랍을 열어보고, 장롱에 있을 법한 옷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에 낙담하며 맨 밑 서랍 안을 보자, 새까만 상복이 있었습니다. 낙담이 더욱 겹쳐, 무심코 다다미 위에 엉덩이를 철푸덕 붙이고 앉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서랍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생각해서 시선을 들자, 상복이 있는 곳 더 안쪽에 직사각형의 물체가 포개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전에는 시선이 높아서, 안쪽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복을 치우며 손을 뻗습니다. 조금 까칠까칠한 종이 감촉이 손가락에 걸려, 그대로 엄지와 집게 손가락으로 끌어냅니다. 그리고 빼낸 것을 확인했더니, 거기에는 빛이 바래서 약간 노래진 봉투가 있었습니다.

  전부 5매 정도의 오래된 봉투. 표면에 수신인은 쓰여 있지 않고, 뒤집어 봐도 발신인은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석양 틈새로 보면, 안에 편지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망설임 없이, 그리고 죄책감도 품지 않고, 편지지를 꺼내 눈으로 훑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마지막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여성의 사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원래, 누구에게도 호의를 품는 것도, 그 이전에 정신적인 유대를 필요로 한 적이 없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어릴 적에는 자신의 그런 성질을, 정신 연령이 높아서 그럴 거라 착각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자신의 결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 성질을 가졌으면서,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소녀 같은 순수한 사상을 가졌던 그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돌려줄 수 없는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자신 같은 사람은 본래 혼자 살고, 누군가의 행복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썼던 그녀였지만, 그녀가 사는 시대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혼자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고 집의 권유도 있어, 맞선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 뒤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사죄로 흘러넘쳐 있었습니다. 본래는 이런 형태로 결혼하는 것은 잘못되었고, 끝까지 남편을 좋아하게 될 수 없었던 것에 대해서. 자신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남편을 이용했던 것에 대해서.

  다른 봉투의 내용도 확인해보니, 군데군데의 내용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 일언일구를 구석구석 머릿속에 새기듯이 읽은 다음, 그 모두를 원래 안쪽 서랍에 되돌리고 나서 방에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을 뒤로 할 무렵은 태양이 상당히 가라앉아, 저녁노을이 주홍색과 연보라색이 녹아 하나로 섞이듯이 얽혀가던 중, 저는 태양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아빠랑 같이 병원에서 수속하고 올 테니, 아카네는 당분간 집에 있어.」


  그렇게 어머니에게 연락을 받은 때는, 제가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가고 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의 오전 중이었습니다.

  전화를 수화기에 다시 놓고,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애도를 해야 합니다. 그 말은 하루나 이틀 정도는 학교를 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늘 오후부터 코마치와 놀 약속을 한 것을 깨닫습니다. 가족이 죽었는데 노는 건 역시 불성실하겠지요.

  히키가야가에 전화를 한 통화 넣으면 되겠지만, 왠지 모르게 바람을 쐬고 싶어져, 직접 코마치에게 전하기로 했습니다.

  익숙해진 거리를, 평소대로 걸어갑니다.

  전화 너머로 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 성격 때문인지는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좀 더 슬퍼해야 하겠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할아버지가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의 그 표정입니다.

  히키가야가에 겨우 도착해서 인터폰을 누릅니다. 오랜 시간 뒤, 졸려 보이는 표정을 짓는 히키가야 오빠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래, 키리바나인가. 무슨 일이야?」

「히키가야 오빠인가요...... 코마치 있어요?」

「왜 한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짓는 건데...... 코마치라면 엄마하고 같이 쇼핑하러 갔어.」


  히키가야 오빠가 역 방향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늘, 코마치와 놀 약속을 했는데, 장례식이 있어서 아마 무리라고 전해주세요.」

「......그래, 할아버지 돌아가신 건가」


  어딘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히키가야 오빠가 말합니다. 그 표정은 슬퍼보여서, 그 얼굴을 보자, 나는 예전처럼 가슴이 꽉 조였습니다.

  그런 한편 머릿속은, 자꾸자꾸 냉정해져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했을 때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과 동시에 할머니의 편지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읽혀갑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이래, 계속 머릿속에서 걸리던 것이 쿵하고 떨어졌습니다.


  ......결국, 할아버지의 마음은 할머니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확실히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하지만 역시 올곧은 마음이라는 건, 반드시 보답 받아야 합니다. 보낸 것이 되돌아오기에, 제대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나 다정한 사람이, 사랑한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매우 슬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너, 우는 거야?」

「네?」


  히키가야 오빠에게 듣고, 왼쪽 뺨에 차가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고 놀랐습니다.

  저 자신,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도, 울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사실이다. 좀 더 제대로 된 이유로 울고 싶었는데......」


  손등으로 뺨을 닦았습니다. 반짝반짝 투명한 물방울이 살갗에 닿아, 바람에 맞자 그 부분만이 서늘했습니다.

  정말로, 어째서 이런 일로밖에 울 수 없는 걸까요. 할아버지와는 이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으니, 그걸로 슬퍼해서 상실감을 느끼며 울어야 할 텐데.

  제가 갑자기 운 것을 보고 조금 뒷걸음 친 히키가야 오빠는, 그래도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저기 말이야. 세상에는 가족이 죽어도 썩은 미소를 짓는 놈들이, 넘쳐난다고 봐. 걔네들에 비하면, 사소한 이유라 해도 우는 네 편이 훨씬 나아.」


  제가 너무나 열심히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어서 그럴까요, 제 시선을 눈치 챈 히키가야 오빠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천국에서 보면, 우는 건 똑같잖아. 그러면 들켜도 문제없어. ......아무튼, 그러니까 저거다. ......너무 자신을 탓하지 마.」


  히키가야 오빠는 도중에 횡설수설하면서도, 깨지기 쉬운 물건을 만지듯이 다정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히키가야 오빠의 말에 닿자, 마음속에 따스함이 퍼져나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서투르지요. 좀 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더니, 제 마음 속에서 계속 반짝이던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아마도,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서투른 주제에 다정하고. 평소부터 비뚤어진 말밖에 하지 않는데, 그런데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해주는 히키가야 오빠를.

  그것이 이성으로서인지 어떤지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좋아하는지 어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았어요.」

「......난 일반론밖에 말하지 않았어.」

「네, 일반론이네요. 그래도 말한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니까, 인사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히키가야 오빠는 제대로 된 의미로,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이 때 확실히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나 다른 한 쪽이 간단히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가짜가 아닌, 제대로 된 진짜를.


「어머니에게 집에 있으라고 들어서, 이제 돌아갈게요. 또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관련해서 연락이 올 것 같아서요.」


  한 박자 두고, 조금 긴장하면서 입을 엽니다.


「그럼 하치만 오빠, 또 다음에」


  하치만 오빠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그대로 뒤로 돌아서 집으로 갑니다. 조금 걸어가다가, 왼 눈보다 늦게, 오른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습니다.


――――――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밤샘 조문에 참석해줘서, 할아버지의 넓은 인망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마치와 하치만 오빠도 밤샘 조문에 와서, 코마치는 관 속의 할아버지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해주었습니다.

  출관 때, 저와 할머니를 매우 닮은 고모가 눈물을 흘리며 꽃을 얹고 있었던 것이, 매우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당분간 평소대로 지내다가, 전에 말한 숙제에서 미래의 꿈에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써서 제출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키리바나라면 반드시 될 수 있단다.」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고, 저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패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을까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원하진 않지만, 적어도 혼자 살아갈 힘 정도는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살아서,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유이 " " 엣취! 엣취!

하치만 " "

유키노 "............."


유이 "미, 미안, 힛키...... 왠지 아까부터 코가 간지러워서.....ㅍ"픽션!

하치만 "그, 그래......"

유키노 ".............."

하치만 (어라? 지금, 픽션이라고 재채기하지 않았나......?)

유키노 (......지금, 픽션이라고 어디선가 들린 것 같은데......)

유이 "피......" 픽션!!

하치만 ".........."

유키노 ".........."

하치만 "......이 재채기는, 실재하는 인물, 단체와는 일절 관계가 없습니다......" 중얼

유키노 "ㅍ......!" 푸풉!! <- 약간 발동되기 시작했다.

유이 "왜 그러지? 안 그쳐......피" 픽션!

유이 " " 픽션! 섹션!!


하치만 (......왜 평범하게 『엣취!』같은 게 아닌 거냐. 게다가 이번에는 섹션이라고 들렸다고)

유키노 (지금, 섹션이라고......) 부들부들 (웃음을 참는다)

하치만 "진화하는 재채기......에볼루션!!" 중얼

유키노 "ㅍ......!" 부들부들 <- 발동 들어갔다


유이 "아-, 증말, 진짜 안 멈춰서......ㅍ" 펑션!

유이 " " 펑션! 정크션!!

하치만 "............"

유키노 "............" 부들부들 (웃음을 참고 있다)

하치만 "내 콧물을 마시지 마...... 포션!!" 중얼

유키노 " " 푸풉!! (뿜기 시작한다)

유이 "아-......겨우 들어갔어" 후우

하치만 "......그런가"

유키노 "푸ㅂ......" 부들부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다)


유이 "힛키, 정말 미안해. 말, 끊어버려서"

하치만 "아니, 별로..... 네가 나쁜 게 아니니까"

유이 "그래서, 힛키. 진짜가......뭐였어?"

하치만 "음"

유키노 " "푸풉!! (뿜기 시작한다)

하치만 "아니......그게"

유이 "......응" <- 진지

유키노 "그, 그래......" 부들부들 <- 진지하지만 웃음도 참고 있다.


하치만 "나는......진짜를 원"


삐리리리, 삐리리리



유이 "아, 미안! 전화가!"

하치만 "어?"


유키노 " " 푸풉!! (뿜는다)

유이 "자, 잠깐 기다려줘, 힛키! 바로 끌 테니까!" 초조

하치만 "아니...... 전화라면 받는 게......"

유이 "그러면 안 돼! 지금은 힛키가 엄청 중요한 얘길 하고 있으니까! 그런 때 전화 같은 건 하면 안 돼!"

하치만 "......아. 그래도, 이제 내 이야기는 상관없어졌나 해서......" <- 어쩐지 이제, 어떻든 상관 없어졌다.

유이 "안 된다구! 왜냐면, 힛키 방금 전에 눈물나고 있었던걸! 엄청 중요한 얘기였던 거지!?"

하치만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

유이 "그러니까, 전화는 전부 뒤로......파" 파운데이션!

유키노 " " 푸풉!! (뿜는다)


하치만 "아-...... 저기"

유이 " " 삐, 삑

유이 "이걸로 됐어. 정말 미안해, 힛키!"

하치만 "......그래"

유키노 " " 부들부들 (계속 웃음을 참는중)

유이 "그럼 힛키. 좋아. 계속해. 진짜가......뭐였어?"

하치만 "아-......저기......"

유이 "..........응" <- 존나 진지

유키노 " " 부들부들 <- 이미 그럴 때가 아니다


하치만 "그러니까...... 나는 진짜를"

유이 " "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

유키노 " " 푸풉!! (뿜는다)

하치만 "..............."

유이 "아, 저기, 그, 그게! //////" 화아아악

유이 "미, 미안!/// 저기, 오, 오늘 밥을 아침부터 못 먹어서, 그래서!" 횡설수설

하치만 "......유이가하마. ......이제 내 얘기는 진짜 됐으니까, 돌아가서 밥이라도"

유이 "아, 안 돼! 힛키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했으니까! 확실히 끝까지 들어야 해!"

하치만 "아니, 그래도......" 힐끔

유키노 " " 부들부들 (아래를 보며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중)


하치만 "......내가 그걸 말하려고 할 때 전부 너한테 끊기고...... 게다가, 더 이상 말하는 건 나도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들어지는데...... 그러니"

유이 "안 돼! 힛키, 부탁이니까, 끝까지 말해!"

유키노 "그, 그래. 히키가야.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건 조, 좋지 않아." 부들부들 <- 아직 참는 중

하치만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이지......"

유이 "힛키! 부탁이야! 이대로 얘기가 끝나면 나 두 번 다시 힛키랑 진지하게 얘길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하치만 ".........." 힐끔

유키노 " " 부들부들 (필사적으로 참는 중)

유이 "있잖아, 힛키! 이번에는 진짜로 무슨 일이 있어도 힛키 얘기 방해 안 할 거니까!"

하치만 ".....그 말, 절대로야?"

유이 "절대로야! 만약 방해하면, 힛키가 말하는 걸 뭐든지 하나 들어줄게! 약속할게!"

하치만 "뭐든지?" 움찔

유이 "응, 뭐든지! 그러니까 힛키! 아까 전 얘길 계속해줘!"

하치만 "아-.....그럼......" (뺨을 긁는다)

유키노 "히, 히키가야. 유이가하마도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만 도전해보면 어떻겠니?" 부들부들 <- 이제 개그 만담의 화제 도입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하치만 "알았어...... 하지만, 유이가하마. 진짜 이걸로 마지막이니까. 다음에 뭔가 방해하면, 난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말은 안 해. 그걸로 됐지?"

유이 "응! 고마워, 힛키!" 활짝

유이 " " 후우......... 후우....... (심호흡)

유이 "좋아. 준비 오케이. 언제라도 좋으니까!"

유이 "그러면 힛키. 계속 부탁해. 진짜가......뭐였어?"

하치만 "아-...... 그게......"

유이 "......응" <- 존나 진지

유키노 "......그, 그래" 부들부들 <- 웃음을 참고 있다.


하치만 "그러니까...... 나는 진짜를"

유키노 " 뿌아아앙! (방귀)

하치만 "..........."

유이 "유키농!!!"

유키노 "미, 미안해......그......그게......" 허둥지둥

유키노 "나, 그럴 생각은......" 뿌아아아앙!! (방귀)

하치만 "..........."

유이 "유키농! 왜 힛키 이야길 방해를.----앗! 냄새나, 유키농!!!"


유키노 "내, 냄새라니......!" 뿌아앙!! (방귀)

유키노 "그럴 리가, 없어......!" 뿌아아아앙!! (방귀)

유키노 "오히려, 과일 향기가 날 텐데......!" 뿌아앙!! (방귀)


하치만 "............"

유이 "진짜! 냄새나! 유키농, 야채나 과일 진짜 안 먹었지?! 이거, 노벨상감 냄새라구!! 심해!!"

유키노 "냄새를 표현하는 방식이 이상해......!" 뿌앙!! (방귀)

유키노 "게다가, 나는 야채나 과일도 제대로......!" 뿌아아아앙!! (방귀)


하치만 "언제까지......  방귀 뀔 거냐"

유이 "진짜 최악! 유키농 방귀 탓에, 힛키의 진짜 얘길 못 듣게 됐잖아!"

유키노 "증말, 원래대로 따지자면, 네가 전부 나쁘잖니! 네가 마구 방해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치만 "......미안하다만, 나도 돌아갈 거니까"

유이 "잠깐! 힛키!"

유키노 "기뎌리렴! 도망칠 생각이니, 히키가야!"

하치만 "아니, 도망치는 것도 뭣도...... 이제 이런 상황에 진짜가 어떻든가 말했던 내가 바보 같이 생각되고......"

유이 "보라구! 힛키가 할 맘이 없어졌잖아! 전부 유키농 탓이야!"

유키노 "아니, 유이가하마가 모든 원흉이야!"

하치만 "어쨌든, 난 이제 갈래. ......이 방, 엄청 냄새나고" 터벅터벅

유이 "자, 잠깐. 힛키! 가지 마!" 덥석

하치만 "야, 그만해. 놔. 옷을 잡아당기지 마"

유이 "그래두, 이대로라면 힛키 돌아가버릴 거잖아! 그건 싫어!"

유키노 "그래. 히키가야. 넌 그걸로 좋다 해도, 우리들의 마음은"

유이 " " 뽀옹!! (방귀)

유키노 "............."

유이 "............."

유이 "아아아아아!!///" 화아아악


유이 "히, 힛키! 아아아아니야! 지금 소리는!!///"

하치만 "......뭐, 너희들도 인간이니까. ......그거야, 방귀 한 번이나두 번 뀌는 건 당연하지만......"

유키노 " " 빠앙!! (방귀)

하치만 "넌 몇 번 뀔 생각이야?"

유키노 "그게 소녀에게 물을 말이니? 이래서 매너가 없는 남자는 안 된단다."

하치만 "소녀라면, 적어도 수줍음이라는 것을 갖춰야지......"

유키노 "어머?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는 거니? 그렇게는 안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래봬도 나는 지금, 죽을만큼 부끄러워하는 거란다. 만일 내가 내일 자살을 하면 틀림없이 아무 보충을 하지 않았던 네 탓이야."

유이 " "뿌웅!! (방귀)

유이 "시러어어어어어!!///" 화아아악

하치만 "......지금 상황에서 보충 같은 건 완전 무리잖아. 치트를 써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유이 "아, 저기! /// 아, 아니야, 힛키! 나, 난!" 횡설수설

하치만 "아아, 알고 있어...... 방금 전 소린 내가 뀐 방귀 소리다. 유이가하마는 안 했어. 알고 있어."

유키노 " " 뿌아아아아앙!! (방귀)

하치만 "이제 차라리 그거, 저기 있는 유키노시타를 본받을 생각은 없어? 지금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방귈 뀌고 있다."

유키노 "그러니까, 음습한 성희롱은 그만둬 줄 수 없겠니? 정말로 나, 내일은 밧줄을 목에 메고 너의 방에서 목메달고 있을 거야."

유이 "힛키, 역시 나를 감싸주다니......! 나, 기뻐!" 뿌아앙!! (방귀)

유이 "진짜 시러어어어어어어!!//////"

하치만 "..........."



똑똑



시즈카 "어이, 봉사부 있나?"

하치만 "없습니다."

유키노 "네. 여기에는 누구 한 명도"

유이 "오늘은 전부 쉰대요."

시즈카 "너희들,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라. 방금 전부터 소움이 들려서 시끄럽다고 직원실에서 화제가 됐다. 대체 안에서 뭘 해?"

하치만 "제가 방귀를 뀌고 있었습니다."

유키노 "히키가야가 방귀를 뀌고 있었어요."

유이 "유키농!? 속이 시커매!?"

시즈카 "그러니까, 히키가야. 할 거면 좀 더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라. 저게 방귀 소리라고?"

하치만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유키노 "유이가하마가 특히 굉장해서"

유이 "유키농!? 너무해!?"

시즈카 "어처구니 없구만. 어쨌든 들어가겠어, 큭 냄새!? 사실이었나!?"

하치만 "죄송합니다. 전부 제 탓입니다. 책임을 져서 봉사부를 퇴부합니다."

유키노 "아니요. 부원의 책임은 부장인 저의 책임이에요. 제가 부장을 그만둘게요"

유이 "아니야! 부의 책임은 고문의 책임인걸! 그러니까, 책임을 지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교사를 그만둬주세요!"

시즈카 "어이. 유이가하마. 이봐"

하치만 "그만해. 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폭언해도 되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에게만큼은 그만둬. 안 그래도 결혼상대를 계속 놓치는 불행의 전시회 같은 분인데 불쌍하잖아"

시즈카 "히키가야..... 감쌀 생각인지도 모른다만, 너의 한 마디가 가장 타격이 온다고......"

유키노 "그렇다고는 해도, 선생님. 이 냄새는 좀...... 야채나 과일을 제대로 먹고 계세요?"

시즈카 "어이, 유키노시타. 자연스럽게 날 방귀 뀐 범인으로 몰지 마라."

유이 "그래도, 선생님이 오고 나서 갑자기 부실에 냄새가 나기 시작한걸."

시즈카 "어이, 유이가하마. 이봐"

하치만 "그만둬, 유이가하마. 선생님에게 실례잖아. 누가 암내나는 유감녀야?"

시즈카 "아무도 말 안 했잖아...... 히키가야....."

유키노 "히라츠카 선생님, 암내났구나" 속닥속닥

유이 "예전부터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구나" 속닥속닥

시즈카 "어이, 너희들. 들려. 그리고 난 암내녀가 아니다."

하치만 "선생님은 그저 체취가 심할 뿐이야. 지적하는 건 그만해."

시즈카 "히키가야, 너...... 실은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는 거냐?"

유키노 "히라츠카 선생님. 선생님의 체취는 이미 성희롱의 경지군요.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유이 "그래서야, 결혼 못하지...... 힘내주세요."

시즈카 "그만둬라. 정말 그만둬. 아니랬는데, 나까지 점점 신경 쓰이잖아."

유키노 "그뢔서 선생님, 언줴까지 여기에 계실 생각이쉐요?"

시즈카 "어이, 노골적으로 내 얼굴을 보면서 코를 잡지 마. 상처받잖아. 진짜 그만둬."

유이 "이제 볼 힐이 없흐면, 돌아가도 돼지 않아효?"

시즈카 "너도인가......! 유이가하마!"

하치만 "그러니까, 너희들! 날 괴롭히는 건 상관없지만,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만큼은 그만해! 선생님의 어디가 시궁창 같은 냄새가 난다는 거야냄쇄애애애애"

시즈카 "히키가야...... 너까지 그런 짓을!!"

시즈카 "이제 담배라도 안 피우면 못 버티겠어!"

유키노 "선생님! 가스가 가득찬 방에서 담배는!!"

시즈카 "응?" 칙칙




퍼엉!!! (크게 타오른다)





다행히, 유키노시타의 정확한 지시와 유이가하마의 신속한 소화에 의해, 불길은 히라츠카 선생님의 앞머리를 태운 것만으로 끝났다.

앞머리에 맞춰 머리카락을 자른 히라츠카 선생님은 고교 야구소년 같이 매우 짧아져,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의 몇 개월 사이, 남자가 전혀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지만, 평소 일이므로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진짜가 어떻든가 한 화제는 그 이후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유이가하마는 분명 잊었을 테고, 유키노시타는 처음부터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나도 흑역사를 만들지 않고 끝나서 안심하고 있다.

지금은 히라츠카 선생님의 방귀에 감사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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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 때 Ⅰ ~미래의 자취~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가서 조금 지났을 무렵, 학교 숙제로 미래의 꿈에 대한 작문이 나왔습니다.
  자신이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각자 조사해서, 직업과 관련된 미래의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으로, 제출기한이 한 달이나 되는 초등학생 숙제치고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다른 반이었던 코마치도 같은 숙제를 받았던 것을 보면, 학년 공통으로 했던 것이겠지요.

  반 애들은, 남자애들은 야구 선수나 축구 선수를 소재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반대로 여자애들에게 들어보면 꽃가게나 아이돌 같은 것을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땠냐면, 이렇다 할 생각이 없어 조금 난처해서 히키가야가에 놀러갔을 때, 참고할 겸 코마치에게 물어봤습니다.


「코마치는 뭐라고 쓸 거야?」

「아직 특별한 건 안 떠오르는데. ..앗, 오빠의 신부라든지? 코마치한테는 포인트 높을지도」

「그걸로 기뻐해주는 사람은, 히키가야 오빠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그러는 아카네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말이 막힙니다.

  저는 어떠냐면 탈 없이 살 수 있는 금전과 환경이 있다면 뭐든지 좋고, 그렇게 되면 후보는 셀 수 없을 정도가 되겠네요.


「......공무원이라든지? 빨리 퇴근할 수 있는 것 같고, 안정적이라고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어.」

「아카네, 오빠한테 이상한 영향을 받았네.」


  그 뒤 코마치와 몇 개 정도의 안을 냈습니다. 케이크 상점원에 여성 옷이나 장신구 전문 점원, 디자이너에 모델 등등. 각각의 분야에서 일하는 자신을 상상하려고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럼 뭐가 되고 싶을까 생각해봐도, 나오는 것은 아프거나 괴로운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뿐, 그건 미래의 꿈이라기보다는 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오빠는 이런 숙제 나온 적 있어?」


  코마치가 근처 소파에 파묻혀서 게임하는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걸 했었지......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갑니다. 잠시 뒤 거실에 내려와서는, 조금 오래된 원고지를 우리들 앞에 펼쳤습니다.

  의외로 꼼꼼하게 쓰인 글자를 좇아갔는데, 뜻밖의 말이 원고지 위에 춤추고 있었습니다.


「심벌즈 연주자...인가요......? 의외로 멋진 꿈이군요.」

「아니 아카네, 좀만 더 읽어봐.」


  코마치에게 재촉 받아 더 읽어보니, 심벌즈 연주자는 40분 이상 있는 연주 중에, 한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렇게나 비용대비 효과가 높고, 이 이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은 없다는 것도.


「............」


  말없이 원고지를 작게 접어 히키가야 오빠에게 되돌려줍니다.

  조금 전까지 약간은 멋지게 보이던 히키가야 오빠의 눈동자가, 왠지 갑자기 썩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할까 그렇게 멋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우선 전 세계의 심벌즈 연주자에게 사과하세요.」


  그나저나 심벌즈 연주자라는 건 그렇게 간단한 직업일까요? 확실히 타악기 연주자로서 일괄 취급돼서 의외로 하는 일이 많다고 TV에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담임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지. 그렇다고 할까 오케스트라 정원의 엄격함을 끝없이 주입받았다.」


  어딘가를 멀리 바라보며 히키가야 오빠가 말했습니다.

  애초에 히키가야 오빠에게 물었던 게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머리를 싸안으며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전혀 모릅니다. 미래에 이렇다 할 희망도 전망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


  정확히 같은 시기에, 할아버지가 몸 상태가 나빠져서 근처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따금 혼자 반상회 주최를 하러 참석할 정도로는 건강해 보였지만, 근래에 감기에 걸려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아서 병원에 가봤는데, 만일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휴일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갔습니다.

  병문안, 이라고는 해도 병세가 심한 건 아니어서 생활품을 가져가는 김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호사를 소재로 삼는 것도 좋을지도 모른다고 할아버지에게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소독액과 건조한 피부 냄새가 건물 전체에 떠도는 병원은, 담황색 벽지와 밝은 녹색 바닥재가 곱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간호사의 제복도 순백이 아니라 옅은 분홍색이 쓰여, 거기서 처음으로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 모든 간호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유유한 공간은, 나쁘게 말하면 활력이 없어서, 몇 년 전에 가족과 같이 간 가을 숲이 연상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실은 독실로, 큰 침대와 작은 찬장, 그것과 TV밖에 없었습니다. TV도 틀지 않아서인지, 볕이 잘 들어 따뜻한 병실에는 복도의 이야기 소리나 운반용 카트가 굴러가는 소리가 조금 들립니다.


「아버지, 몸 상태는 어때요?」

「열은 안 내려서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아무튼, 건강한 편이다. 멋대로 움직이면 혼나서, 집에 있는 것보다는 지루하고 갑갑하지.」

「그건 참아주세요. 몇 권 정도 읽을거리를 가져왔으니」

「그건 사쿠야에게 들었다. 『어차피 집에서도 책밖에 안 읽으니 그 정도는 참으세요.』라고. ......그 녀석도 나와 많이 닮았지」


  사쿠야라는 분은 저의 고모입니다.

  벌써 결혼해서 가정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할아버지의 병문안을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병실에 와도 거의 잡담하고 돌아가는 것 같지만요.

  다만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던 할아버지였지만, 심심풀이로는 마침 적당한 것 같았는지, 제 사촌자매에 대해 고모에게 들은 것을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잡담이 시작되자 저는 할 일이 없어 따분해져서, 별 수 없이 다리를 오락가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창 밖에서는 하늘 전체에 퍼진 청색에 비행기운이 한 줄기만 뻗어 있었습니다.


「......잠시 미안한데, 아카네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게 해주지 않으련?」


  결국 싫증나서 근처에 있는 휴게실에 가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진지함이 섞여 있던 것을 느꼈는지


「휴게실에 있을 테니, 끝나면 부르렴.」이라고 말하고 병실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조금 곤혹해하며, 걸상을 움직이고 할아버지의 침대로 다가갑니다. 매우 청결감이 있는 병실은 아무 자극도 없다고 할 수 있어서 평소 건강했던 할아버지도 어딘가 여위어, 존재가 조금 공허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눈부신 것을 보듯이 쓱하고 눈을 가늘게 뜨고는, 저를 위에서 아래까지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아카네는 정말로 할머니를 닮았구나.」

「할머니? 고모가 아니고?」


  어릴 적부터 고모를 닮았다고는 자주 들었습니다만, 할머니와 비교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 친할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안에서의 친할머니는 어딘가 머릿속에서 빠져있어서, 그 사람이 있었다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원래 사쿠야의 외모는 모친과 닮았단다. 아무튼, 성격은 나를 닮았지만. ......하지만 아카네는 성격까지 꼭 닮았어.」

「......어떤 점이?」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이 정말로 비슷해. 웃는 모습은 키누에를 닮았지만 사그라들었을 때의 표정은 쏙 빼닮았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지나갔습니다.

  지금부터 들을 얘기는, 제가 접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들고. 모처럼 머리 한 구석에 쫓아낸 것이, 한 번 더 얼굴을 들여다보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뭔가를 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편치 않으면서도 결국 의자에 다시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어?」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별로 붙임성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웃으면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어.」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눈은,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을 생각하듯이 창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던 건 맞선 때였는데, 그야말로 인형 같이 아름다운 얼굴이었어. ......정말 한 눈에 반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옛날 성으로 사이엔 사츠키라는 이름에, 나름대로 상당한 가문 출신이었던 것.

  할아버지와는 결혼을 전제한 맞선에, 처음 만난 그 날 교제하기 시작한 것.

  할머니의 생일에 비녀를 보냈더니, 매우 미안한 듯이 받고 다음 데이트 때 착용한 것.

  저와 많이 닮은 사람에 대해 듣는 것은 아무래도 초조하고, 게다가 할아버지가 그리운 듯이 말해서 멈출 수도 없어서, 부끄러운 듯한 아닌 듯한 기분으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지 할아버지가 말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역시 저와 매우 비슷해서, 얼굴도 본 적이 없는데, 할머니의 행동에 공감하고, 저도 반드시 같은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이다, 눈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면 아름답게 웃어주는데, 혼자 있을 때 사츠키는 몹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단다.」


  이따금 할아버지가 빨리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는 혼자 멍하니 있는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 표정은 고독을 견디는 것도, 공상에 빠지는 것도, 추억에 잠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는 사츠키의 그런 표정이 무서웠다. 마치 아무도 필요 없다는 듯이 사츠키가 배회하고, 사츠키의 시야 안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았지. 언젠가 이 생활에 질리면, 어디론가 홱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할아버지는 그런 일을 무서워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밝은 오후 햇볕 아래서 낮잠을 자는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투명한 빛을 뺨에 받아, 촉촉하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베개로 삼는 것처럼 자는 할머니의 모습은 놀랄 만큼 덧없어서, 손대면 사라져버릴 거라 착각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지. 사츠키의 삶의 방식은 쉽게 혼자가 되어, 곧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친한 사람에게 간호받는 일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매우 외로운 인생이야.」


  분명 그렇겠지요. 아무도 바라지 않는다면, 최종적으로는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게 됩니다. 확실히 주변에 아무도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러니까요.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으려고 했어. 한 번 맹세한 말을 반복하고,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혼자 있어도 뭔가 열심히 해줬으면 해서 책을 많이 샀지. ......아무튼, 사츠키는 이상하게 생각한 것 같았지만」


  할아버지 댁의 서재에 늘어 놓인 많은 책. 독서가라고 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 할아버지가, 저만한 책을 갖춘 이유는, 전부 할머니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실이 답답할 정도로 제 가슴에 여운을 드리웁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떻게 됐어?」


  혹시 할머니의 성격이 조금이라도 개선됐다면, 분명 제 성격도 나이를 먹음에 따라 고쳐질 거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몰라. 할 수 있는 한 같이 있고, 같이 있으면 사츠키는 확실히 웃어주었지. 하지만 마음속은 읽을 수 없어. ......그래도, 아카네에게 전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란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금 야윈 할아버지의 손은, 뼈가 약간 떠올라서 울퉁불퉁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을 치우고 나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노인이 어딘가 그리워하는 웃음이 아니고, 청년처럼 상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츠키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단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둘이서 어딘가 외출하면 편안해졌어. 혹시 사츠키는 끝까지 고독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츠키와 결혼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사츠키도 아카네도, 자신을 비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아카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다정하고, 착한 아이야.」


  할아버지는 한 번 헛기침을 하고는,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누군가를 확실히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아이란다. 그러니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고, 그리고 할 수 있으면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말로 해주렴.」


  그렇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낮잠을 잔다며 잠든 할아버지를 두고, 휴게실로 향합니다. 할아버지를 일으키는 것도 미안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 어머니가, 「매우 길게 얘기하던데, 무슨 이야기를 했니?」라고 물어서,


「응, 할머니랑 나에 대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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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Ⅲ ~유리 너머~



  계절이 겨울을 지나 봄이 되고, 저는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어머니가 직장에 복귀한 이유도 있어서, 남동생의 죽음으로 집안에 얽힌 안 좋은 분위기가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래도 매일 향을 피울 때는 숙연해지지만 그것도 점차 변해서, 죽음 자체를 애도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유치원보다 훨씬 많은 애들이 반에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난처했지만, 그것도 곧바로 익숙해져서 반 친구들과 전처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수업 중에 속닥속닥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정해진 수업을 소화하고 공부하며, 쉬는 시간에는 친구와 놀면서 학교생활을 즐겼습니다.

  다만 친해진 애들 중에 같은 길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즐거워도, 혼자가 되면 그것은 저 멀리 가버리고, 어떻든 상관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이, 왠지 저에게는 지나간 것이라 생각되어, 학교에 있는 자신과 혼자 있는 자신 사이에 어긋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조금 혐오하고, 왠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안심감을 거느리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길을 걸어 하교했습니다.

  혼자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서 간혹 방과 후,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유치원에서도 그림책을 자주 읽곤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도서실에도 책을 찾으러 갔습니다.

  하지만 장서 중에 흥미가 드는 것은 어느 것이든 어렵고, 글자를 좇는 동안에 꾸벅꾸벅 잠들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아직도, 한밤중에 일어나면 이따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일이 있어, 그것을 듣고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기 때문에, 낮에 졸려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점차 책을 읽기 위해서가 아니고, 아주 잠시 동안 낮잠을 자려고 도서실에 다니게 되어, 저의 하교시각은 조금씩 늦어졌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고, 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하교하던 중에 한 남자애가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애라고 해도, 저보다 키가 조금 크고 어쩌면 연상이었지만요.

  주위가 소란스러운 중에, 그 남자애는 기분이 안 좋은 듯이 입술을 꽉 다물고 걷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돌을 차는 놀이를 하거나 하며 노는 아이들을 약간 탁한 눈으로 힐끗 보고, 홱하고 무뚝뚝한 얼굴로 불쾌한 듯이 정면을 봅니다.

  그렇게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였지만, 가끔 정말 한순간만 긴장을 늦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표정에 분함과 외로움이 새어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그 표정을 우연히 들여다봤을 때, 꽉하고 가슴이 단단히 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띄우던 표정은, 저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그는 저처럼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들에게 악담을 하며, 그런데도 누군가와 깊게 어울리고 싶다는 것이 그 표정에서 역력히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그런 그는 몹시 눈부시고 부러워서, 저는 그와 같은 길을 갈 때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걸로 제 결함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지만, 장난감 상자에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야말로 유리함 저 편을 보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제게 말을 걸었을 때는 정말로 놀랐습니다. 저는, 그가 저를 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7월이 시작될 무렵. 아직도 높이 뜬 태양에서 살갗을 태울 듯한 빛이 이래도야? 하고 퍼부어서, 얼굴을 찌푸리며 걷고 있는데, 시끄럽게 우는 매미울음에 섞여 모르는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습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처음에는 제게 말을 걸었다고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고, 평소대로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저와 예의 남자애밖에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근처를 바라보자, 고독의 그림자를 드리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처음으로 그를 정면에서 보았습니다.

  남자애치고는 조금 긴 흑발. 이목구비는 갖춰져 있고, 약간 탁한 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딘가 뚱하게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눈동자가 저를 비추는 것이 왠지 이상해서, 잠시 어리둥절하고 말았습니다.


「......네, 외롭지 않아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순간 망설였지만,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원래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서투릅니다. 유치원 때부터 그랬는데, 초등학교에 올라갈 무렵에는 그 의식이 한층 더 강해져, 이런 내가 거짓말까지 한다면 인간으로서 실격해버릴 것만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꺼려졌습니다.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지? 그래도 혼자서는 외롭지 않은 거야?」


  몹시 절박함을 내포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습니다.


「원래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아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뿐. 없다면, 그래도 상관없어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이라, 꺼낼 말을 제대로 생각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긴장돼서 제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아무렇지도 않게 가장해서 입을 움직였습니다.

  잘 말할 수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가 말을 끝내자 매우 슬퍼보이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눈초리를 내리고, 그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저는 그에게 그런 표정을 짓게 한 것이 미안해져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여름의 방문을 알리는 매미 울음소리가 더욱더 귀에 들어옵니다. 조금 전보다 햇볕이 세진 것 같아, 피부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키리바나 아카네라고 해요.」


  나온 말은 평범해서, 어디에나 있을 법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같이 돌아가지 않겠어요?」


―――――――


「너, 왜 혼자 돌아가는 거야?」


  옆에서 걷는 히키가야 오빠가, 약간 진지함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혼자 걷고 있던 남자애는 이름이 히키가야 하치만이며, 저보다 두 살 위인 3학년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 같은 간단한 이야기에 따르면, 히키가야 오빠의 집은 근처에 있으며, 저의 집에서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한 애들 중에,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애가 없어요.」

「......그래」

「히키가야 오빠야말로, 왜 혼자 돌아가는 거예요?」

「나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예요?」


  머지않아 대화가 뚝하고 끊어졌습니다. 옆에 있는 히키가야 오빠는, 중얼중얼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을 방해하면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길을 같이 걸어갔습니다.

  탁 트인 푸른 하늘 아래, 아무런 특색도 없는 풍경이 전면에 퍼지고, 들리는 소리는 한여름의 바람이 불어서 나는 깃발소리밖에 없습니다. 제 옆에는 히키가야 오빠가 있어서, 어떻게 해도 차분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현실감을 확인하듯이, 뻗은 제 그림자를 힘껏 밟으며 걸어갔습니다.

  제 집으로 이어지는 갈림길까지 도착해서, 일단 발을 멈췄습니다. 히키가야 오빠도 저를 따라서 멈췄습니다.


「저는 이쪽 길에서 돌아가는데, 히키가야 오빠는 어느 쪽으로?」

「난 여기를 똑바로 가」

「그래요? 그렇다면, 여기까지네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래, 조심해서 돌아가.」


  학교에서 배운대로, 정중히 인사하고 나서 히키가야 오빠에게서 몸을 돌렸습니다.

  집까지 가는 길은 항상 보는 풍경에 찌는 듯이 더울 뿐이었지만, 얼굴에 맞닿는 바람은 왠지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히키가야 오빠가 소개하고 싶은 애가 있다고 해서, 방과 후에 약속을 했습니다.

  종례가 끝나고, 반 친구들과 조금 이야기하고 나서 승강구로 갔더니, 히키가야 오빠와 한 여자애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키는 저보다 약간 작은 정도일까요? 조금 난 바보털에 표정이 다채로운 상당히 귀여운 여자애였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걸자, 두 명이 같은 표정으로 저를 뒤돌아보는 게 재미있어서 무심결에 얼굴이 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궁금하게 생각했는지, 또 둘이 얼굴을 마주봐서 그것이 더 재미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서 웃음을 참았습니다.


「불러서 미안하다. ......자」


  히키가야 오빠는 여자애의 등을 밀어 제 눈앞에 내밀고는, 엉뚱한 방향을 보면서 말합니다.


「내 여동생도 같이 돌아갈 애가 없어. ......그러니 같이 돌아가줘.」


  그 말에 여자애는 불만스러운 듯이 히키가야 오빠를 보고 있었지만, 곧 미소를 띠우고는 제 손을 잡았습니다.


「히키가야 코마치. 코마치라고 불러줘」

「......키리바나 아카네. 아카네라고 하면 돼.」


  그 이후로는, 매일 코마치와 같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때는 각자 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길 주변에서 키우는 개를 울타리 너머로 보곤 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에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게 되어, 코마치의 부모님에게도 귀여움 받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부모님이 바쁠 때도 있어서, 저와 코마치, 그리고 히키가야 오빠 셋이 할아버지 댁에 맡겨져, 같이 놀거나 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키가야 오빠는 할아버지의 서재에만 있었지만요.

  이전에, 할아버지의 「소중히 해주려무나」라는 말을 지킬 수 없었던 죄책감 때문에, 좀처럼 할아버지 댁에 가기 힘들었지만, 히키가야 남매와 함께라면 자연스럽게 갈 수 있었습니다.

  몇 번 정도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가을에는 가족이서 밤을 주워왔습니다. 녹색 잎사귀에서 점점 색을 잃어간 숲은, 시든 잎의 건조한 향이 어딘가 그립게 느껴졌습니다.

  겨울의 찬바람이 거리를 에워싸던 날에는, 얇게 언 얼음을 코마치와 둘이 깨뜨리며 등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몇 번 정도의 봄을 경험했을 무렵에는, 제가 느끼던 어긋남 같은 것은 서서히 희미해져,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는 때도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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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Ⅱ ~태양 빛~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벚꽃이 다 떨어지기 직전, 한 장만 남겨진 꽃잎이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신록에 둘러싸여 왠지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무렵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 명이서, 휴일에 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던 때입니다. 그 주에는 부모님이 매우 기분이 좋아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카네, 동생이 태어난단다.」


  저는 그때까지, 별로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같은 유치원에 형제나 자매끼리 다니는 애들은 사이가 좋아서 즐거워 보이네, 정도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리 상자 너머로 보는 정도의 느낌이며, 결코 부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동생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저는 왠지 매우 소중한 것을 얻은 기분이 들어서, 아직 별로 부풀어 오르지 않은 어머니의 배를 만지며,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바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둘째 손자가 태어난다고 듣자, 기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중히 여기려무나」라고 말하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가시고 나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는, 제가 놀러 갈 때마다 눈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친구를 소중히 하렴, 물건을 잘 다뤄주렴 이라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배가 점점 부풀어가자, 부모님은 정기 검진을 갔다 와서 모자 모두 건강하다고 제게 전했습니다. 하경에는 배 안에 있는 아이가 남자애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제가 쓰던 유모차를 남아용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저대로, 좀처럼 누나로서의 준비를 하지 못해서, 누나동생이 같이 유치원에 다니던 애한테,


「남동생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녀는 「울기 잘하고, 시끄러울 뿐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것은 가족 얘기를 할 때 특유의 표현 같은 것이고, 실은 매우 소중히 여기며 잘 돌봐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봐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자는 동안에 이불 안에서 어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누나라는 건, 뭘 하면 되는 거야?」

「별로 특별한 건 안 해도 된단다. 단지 가족으로서 사랑해주면 돼. 딱히 누나라고 해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같이 있어주면 된다는 말이야?」

「그래. 하지만 아카네는 여자애니까, 언제까지나 같이 있는 것도 아니야.」


  거기서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이 담홍색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는,


「......그러니까, 가족으로 있기 위해서 노력할 것. 같이 있을 수 없어도,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


  그 말을 열심히 들으며, 제 나름대로 상상해봤습니다.

  상상 속의 저는 초등학생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동생은 유치원만한 나이였습니다. 역시 남자애니까 전대물이나 히어로를 동경하겠지요. 저는 남동생의 소꿉놀이 상대를 하면서도, 가끔 지루해집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며, 끝까지 놀아줄지도 모릅니다.


「......응, 즐거워졌어.」

「어머, 그러니?」


  그리고 나서 이불 속에서 어머니와 둘이 웃으며 다가붙습니다. 옆에서 자던 아버지가 의아한 듯이 여기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즐거움의 성질이 어떤 건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그 이후로 일상을 보내갔습니다.

  계절이 하나 지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동생은, 어머니의 배 안에서 생이 끝났습니다.


―――――――


  그 날은 가을치고는 꽤 시원하고, 뜰에 있는 화분에 작은 서리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부엽토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보니, 삭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습니다.

  3일 정도 전부터 몸 상태가 나빠져 입원했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와서는 비통한 표정으로 남동생의 죽음을 알리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설명해주셨지만, 아이인 저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웃는 어머니가, 「미안해」라는 말을 오열과 함께 쏟아냅니다. 병원에서 같이 돌아온 아버지는 달래듯이 어머니의 등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면서, 제 안에서 실이 끊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그 실은 팽팽히 뻗어서 내 감정을 잇고 있었을 텐데.

  남동생이 생기기를 기대했었습니다. 나이는 조금 차이나지만, 제 나름대로 열심히 돌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안에 서서히 그가 있을 곳을 쌓아 올려, 확실히 그 부분을 크게 잡았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해도, 미련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길러지던 것은 남동생의 죽음과 동시에 전부 불타버리고, 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동생이 있을 곳이 사라졌는데도, 마음은 침착해서 더 이상 닿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손을 뻗으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 감정보다, 그가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무명의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보다, 어머니가 눈앞에서 우는 쪽이 훨씬 슬펐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은 살아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어머니가 울음을 그쳐주는지 몰라서, 어머니가 항상 해주시듯이 몸을 껴안았습니다.


「아카네, 미안해. 이렇게나 기대해줬는데」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그날 밤은 오랜만에, 가족 세 명이 저를 사이에 끼고 같이 잤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뒤척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확실히 가족이 거기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잠시 후 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한 밤 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이불에서 나왔습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비틀비틀하며 걷고 있는데, 밤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에 뒤섞여 아기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자주 내는, 주변을 향해 마구 소리치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단지 제게 호소하는 듯한 울음소리였습니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뭔가를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호소하는 걸까 생각하자, 곧바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침실로 돌아왔습니다.

  미끄러져 들어가듯이 이불에 돌아와 울음소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아도, 작은 틈새로 울음소리가 흘러 들어와서 제게 말을 겁니다.

  왜 울어주지 않는 거냐고. 왜 내가 죽었는데 외롭다고 생각해주지 않는 거냐고, 단 하나 있는 누나인데, 그런데 왜 너는.

  아무리 힘내도, 머릿속에 달라붙는 소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눈이 선명해지기까지 하면서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이윽고 견딜 수 없게 되어 부모님을 깨우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음 고생하는 두 분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혼자 현관 바깥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가을의 긴 밤은 으스스 춥고, 세차게 부는 바람이 옅게 입은 제 몸을 차게 했습니다. 이웃집은 모두 잠들어서 등불이 전혀 없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중에, 제 기억에 기대어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실은 밤에 밖으로 나가는 건, 무서워서 하지 않습니다. 도깨비나 잘 모르는 요괴를 당시에는 믿어서, 밤이 되면 밤거리를 활보한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를 내버려두면, 도깨비보다 좀 더 무서운 뭔가를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큰 공포심으로 작은 공포심을 눌러 참고 발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2개의 황금빛을 띤 눈동자가 떠올라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점차 눈이 익숙해지니, 어둠에 녹아들어 윤곽이 희미해진 검은 고양이의 몸이 간신히 보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입을 움직입니다. 예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안도했던 것도 한순간으로, 그 검은 고양이의 두 눈동자가 저를 완전히 붙들어 매고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 안에 있는 텅 빈 곳을 지적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무서워져서 이불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불 속에서 부모님의 따스함에 싸이며, 제 자신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빈약한 어휘를 필사적으로 써서, 얼마 안 되는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마음이 평온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대답이 나왔습니다.

  요컨대 저는, 사람에 대한 집착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론이 나오고 나서 곧장 날이 밝아, 저는 태양 빛을 흠뻑 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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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바나 아카네
 

  어릴 적 ~흑백 필름의 기억~




  반짝반짝하게 닦인 자동문을 빠져나가자, 눈부신 세상이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조명에서 눈을 가늘게 뜰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빛이 넘쳐 나와, 층 일대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가지런하게 진열된 고급스런 양복이나 유리함에 담긴 반지나 목걸이는, 어린 제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그것이 여기저기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강의 물살처럼 항상 끊이지 않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나가, 이웃의 아저씨나 유치원의 선생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손을 잡는 부모님의 손이 평소보다 믿음직스러워 보여서, 왠지 대단한 곳에 왔던 거라고,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처음으로 간 백화점은, 신선한 기쁨과 미지에 대한 흥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백화점이 어떤 장소인지 몰랐고, 부모님에게는 큰 슈퍼라고 밖에 듣지 못해서, 좀 더 조촐하고 아담한 곳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릿속에 그리던 경치와 눈앞에 퍼진 경치의 차이에 매우 기뻐서 난처한 듯이 웃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백화점 안을 돌았던 것을 잘 기억합니다.

  아버지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왔습니다만, 부모님은 그 예정을 뒤로 하고 여러 곳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것은 묘한 광택을 내는 만년필을 취급하는 문구점이나, 일상복보다 매우 좋은 아동복이나, 몹시 공들인 세계 각국의 장난감을 파는 가게 등으로, 그것들은 정말 재미있는 가게뿐이었습니다.

  물론 무엇 하나 사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단지 보고 손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서, 그야말로 눈을 빛내며 가게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강 만족스럽게 돌아보고 나서, 드디어 부모님이 살 물건을 사러 신사복 판매장으로 갔습니다.

  그 무렵의 아이처럼 예외 없이 호기심이 왕성했던 저는, 새로운 것을 보면 빙빙 빨려 들어가는 귀찮은 성질이 있어서, 문득 부모님이 한눈을 판 틈에 또 다른 가게로 발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가게 몇 군데를 돌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그러면서도 보석 상자 같은 이곳은, 저를 지루하게 하는 일 없이 눈부신 세계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스포츠 용품 판매장에서 질려서 나왔을 때, 저는 겨우 자신이 부모님과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몇 번인가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렸던 것은 기억나지만, 제가 지금 몇 층에 있는지 그리고 신사복 판매장이 몇 층에 있었는지 같은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혼자되어서 마침 잘 됐으니, 방금 전 갔던 가게를 한 번 더 도는 것도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끌릴만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우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왁스를 듬뿍 써서 닦은 벤치는 등받이가 없어서 안정감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가 나쁘게 양손으로 턱을 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미아가 되었을 때는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편이 좋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가르침을, 겨우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노부부, 향수와 오 드 콜로뉴 향을 나게 하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 누이와 동생을 데리고 가는 부모자식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많든 적든 입가에 미소를 띠며, 얼굴이 풀어져 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분명 누구라도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는 곳이며,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이 따스한 기분을 찾아서 여기에 오는 거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보고 있을 뿐인 저도 왠지 기쁜 마음이 들어서 분명 그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어서라든가, 그 애는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든가, 그런 상상을 하며 입가에 절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있자, 멀리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에 다소 절박함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로 저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이 감동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오로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저는 좀처럼 감사의 말이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뒤죽박죽하는 동안에, 저는 부모님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찾아내자, 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안심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윽고 두 분에게 다다르자,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어머니는 저를 꼭 껴안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껴안는 힘이 세서 조금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제 기쁨을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전하려고 말을 찾고 있는데, 어머니가 마법의 주문을 뽑아냈습니다.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해. 외로웠지?」


  그 말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그런데도 어머니의 품 안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고, 혼자 걸어 다녀 피곤한 이유도 있어서, 곧바로 저는 그 행복감에 싸이면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이런 제가 저로서 있던, 처음의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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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21 ~두 명의 무게감~


  키리바나와 사귀고 난 지 일주일이 넘은 일요일, 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는데 전방에서 야무지게 걸어오는 키리바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10시를 지난 정도에 6월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의외로 바람이 시원하다. 이것이 오후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뿜어져 나올 만큼 격차가 커진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볼 일이라도 끝마쳐두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키리바나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 쪽도 조금 늦게 나를 알아차렸는지, 키리바나는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그대로 가서 횡단보도 건널목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 쯤, 자전거에서 내려서 말을 건다.


「여어」

「안녕하세요, 하치만 오빠」


  희미한 핑크색 꽃무늬가 새겨진 미니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을 걸친 키리바나는 약간 부끄러운 미소를 띠고는, 슬쩍 내 옆에 선다.

  역시 상당히 더워졌는지, 키리바나의 옷차림도 엷어졌다. 치마 끝에서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매우 눈부셔서 무심결에 시선이 밑으로 가고 말았다.

  우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도로 구석의 그늘에 몸을 기대고 한숨 돌린 후에 입을 연다.


「어디 갔다 왔어?」

「네, 잠시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실은 지난 주말에 가려고 했는데, 그게 여러 가지로 바빴잖아요?」

「......뭐 그렇지」


  고백한 당일,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는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에 상관없이 말하려고 생각했으므로 우선은 메일로 보고했다.

  세세한 사항은 월요일이 되고 동아리에서 감사를 포함해서 전할까 생각했지만, 두 명에게 무서운 속도로 바로 나와 키리바나에게 직접 듣고 싶다는 취지의 답신이 왔다. 내 휴일 예정 같은 건 대체로 정해져 있어서 키리바나에게 물어봤더니, 키리바나도 비어 있다고 해서, 토요일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 인사를 한 거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이야기에 참가했던 건 정말 초반이고, 여자 세 명의 대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이 어떤 고백을 했는지는 흥미진진하게 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거, 진짜 부끄러우니까.

  그리고 일요일은 코마치가 데이트라며 키리바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 아무튼,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사이좋게 있는 건 나로서도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라 그대로 배웅했다.


「하치만 오빠야말로, 지금부터 어디 가세요?」

「아아, 잠깐 책이라도 사러 갈까 해서.」


  그러고 보니 5월에도, 비슷한 대화를 했지. 뭐, 내가 밖에 나가는 이유 같은 건 쇼핑 정도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마침 잘됐네요. 하치만 오빠, 지금부터 할아버지 집에 가지 않을래요?」

「별로 상관없는데, 왜?」


  그 집에는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가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진 않지만, 가끔 근처를 지나가도 난잡한 상태는 아닌 걸로 봐서는, 아마도 키누에 씨가 정리하는 거겠지.

  키리바나는 나를 살펴보듯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는, 말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는 고정 자산세나 여러 사정으로 집을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토지의 구매자가 나타나서 허물기로 했어요.」


  할 수 있으면 고정 자산세보다도 그 밖의 사정을 듣고 싶었는데...... 아니, 고정 자산세도 큰 이유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할아버지의 집에 없어지는 건가. 초등학교 무렵을 보낸 장소인 만큼, 가슴 속이 어딘가 뻥 뚫린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있던 것이 없어진다는 건, 사람이나 물건을 막론하고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유품을 정리하고 있어서...... 그래서 혹시 괜찮다면, 서재에 있는 책 중에 하치만 오빠가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부디 가져가셨으면 해서요.」

「받을 수 있다면 받겠지만, 그래도 돼?」

「네, 책은 역시 사람에게 읽히는 거니까요. 모르는 사람보다, 가능하면 하치만 오빠나 코마치가 읽었으면 해요.」

「그런가, 그렇다면 받아둘게.」


  확실히 일본문학 말고도, 해외문학이나 철학계열도 생각보다는 갖춰졌을 거다. 초등학생 때는 미야자와 켄지나 나츠메 소세키 등 읽기 쉬운 책 정도밖에 읽지 않았지만, 지금 나이라면 읽을 수 있는 책도 좀 더 있겠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가 상당히 갖춰져 있어서 전부 가져갈까 생각하다가, 키리바나의 손가락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 왜 그래?」

「......이거 말인가요?」


  가느다랗고 매끈매끈한 손가락이 눈앞으로 내밀어진다. 끈적끈적 손대기는 꺼려져서 조금 떨어져서 보니, 하얀 검지 손가락 끝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여자애답게 귀여운 게 아니고 약국에서 파는 투박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키리바나다워서 조금 귀엽다.


「조금 화상을 입어서요. 그래도 가벼운 화상이라, 큰일은 아니에요.」

「그래? 조심해둬.」

「네. 좀 바보 같은 실패라서 확실히 반성했어요. 다음에는 안 일어날 테니, 안심해주세요.」


  약간 상쾌한 표정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아마 요리라도 했을 때 실패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코마치와 같이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둘이 작은 화상이나 베인 상처는 입곤 했었지.

  요즘은 상당히 안정됐지만, 가끔은 이런 일도 있을 것이다. 나도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실패할 때가 있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할아버지 집으로 가볼까?」

「네」


  키리바나가 대답하고 그대로 경쾌하게 걷기 시작해서, 팔을 잡아 멈춘다.


「......키리바나, 잠깐 기다려봐.」


  손바닥에서 키리바나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전해져서 허둥지둥하고 있자, 키리바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본다.

  마침 뒤돌아보는 미인과 같은 구도가 되어, 키리바나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그러자 부끄러움이 머리위로 올라와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져 무심결에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튼, 뭐지?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좀 거리가 있잖아?」

「네, 조금이지만요.」


  키리바나는 감이 오지 않았는지, 물음표를 띄우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팔을 뿌리치지 않고 우두커니 있어서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하다.

  ......아아 젠장, 왜 이 녀석은 이럴 때만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목소리가 약간 높아지며, 다른 방향을 보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저거다. 키리바나가 짐받이에 타서 가면 걸어가는 것보다 빨리 도착하니까. ......아무튼, 타」


  말한 순간에 불이 붙을 정도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대사지만, 모처럼 이런 관계가 됐으니, 이 정도는 해도 벌은 받지 않겠지.

  처음에는 멍하니 있었지만, 이윽고 한 여름의 푸른 하늘처럼 아름답게 웃고는, 「그럼, 실례합니다.」라며 한 마디 하고나서, 살짝 짐받이에 앉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몰기 시작한다. 장마철의 습기 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힌다. 목을 돌려 살짝 뒤를 보자, 키리바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누르면서도, 기분 좋은 듯이 있었다. 가끔 균형을 잡으려는 듯이 옷을 잡아당기는 것이 조금 낯간지럽다.

  눈 익은 풍경이 빨리 흘러가는 중, 등 뒤의 키리바나가 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치만 오빠. 그러고 보니, 하나 말하는 걸 잊은 게 있어요.」

「뭔데?」

「의외로 저, 일본식 옷이 잘 어울린답니다?」

「그, 그래......」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고, 어중간한 대답이 되고 말았다. 원래 키리바나는 흑발이 잘 어울리니, 일본식 옷이 어울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키리바나는 내 대답을 개의치 않고, 뭐가 재미있는지 쿡쿡하고 웃으며 내 등에 머리를 기댄다.

  ......뭐, 다음 달 정도에 여름축제나 불꽃놀이라도 가서 키리바나의 유카타 차림을 볼 수 있기를 빌자.

 올려다 본 하늘에는 곳곳에 장마구름이 떠 있다. 바람으로 흘러가는 비늘구름이 태양 가장자리를 가려, 깊이 스며들 듯이 침식해가자, 타는 듯한 햇볕이 차단되어 미적지근하고 축축한 느낌이 덮쳐온다.

  장마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여름이 오는 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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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1부가 끝나게 됩니다. 1부는 하치만 시점으로, 하치만과 아카네가 사귀게 될 때까지를 썼습니다.

  1부라는 말은, 물론 2부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주의점이라고 하니 호들갑스럽지만, 2부부터는 화자가 바뀌어서 아카네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때문에 1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정진해나갈 테니 앞으로도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 편에서.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20 ~그리하여 두 명은 이곳으로 돌아온다~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와 친구가 되고 난 지 이틀 뒤의 방과 후, 아직 태양이 높이 솟아 주홍색으로 물든 이 마을 한 가운데를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이 시간대라면 키리바나는 코마치와 같이 하교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적인 경로는 상상이 된다.

  달리는 동안에 절로 숨이 벅차간다. 칠칠치 못하게 살아 온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심박 수가 점점 빨라져간다. 하지만 그게 기분 좋다.

  물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을 덮는 사실이 자꾸자꾸 나오고 있었다. 그건 오랜만에 키리바나와 얘기할 수 있는 것이나, 며칠 전의 개인적으로 좋은 소식 등인데, 그렇게 사소한 일이 자신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 왠지 우습다.

  10분 정도 달려서 모교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나서 몇 개 정도의 교차점을 지나, 하나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교차점에서 발을 멈췄다.

  중학교에서 돌아가려면 다소 여러 군데를 지나친다 해도 여기로 가는 게 가장 좋다. 역 방면까지 갈 일이 없다면, 저 녀석들은 반드시 여길 지나갈 거다.

  근처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른다. 교복 너머로 콘크리트의 한기를 느끼며,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본 적 있는 교복을 입은 사람이 몇 명 정도 지나갈 뿐, 키리바나와 코마치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 오는 게 약간 늦었던 걸까.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바로 학교에서 나왔지만, 필연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미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다리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당분간 어루만지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내내 서있는데, 빛에 주황색이 조금 섞이기 시작할 무렵 겨우, 키 차이가 나는 2인조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명한 오후 햇살 아래서, 키리바나의 어깨까지 자란 흑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머리카락 몇 올이 떠서 그 하나하나가 빛을 받고 금빛으로 빛나, 키리바나의 단정한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아직 멀어서 그런지, 둘은 나를 눈치 채지 못한 채로 걷고 있었지만 교차점에서 5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겨우 나를 알아차렸다.


「......여어」


  할 수 있는 한 자연스럽게, 담백한 어조로 말을 건다.


「오빠......」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키리바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바로 딱딱한 인사를 하며 살짝 숙이고는 멈춰 선다.

  오랜만...일 정도는 아닌데. 일요일부터 세면 5일밖에 안 지났다. 코마치와 놀 때 집에 오지 않는 때도 많이 있어서, 이 정도로 얼굴을 못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긴 닷새였으리라.

  키리바나의 시선과 얽힌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으로, 키리바나는 바로 거북한 듯이 얼굴을 피했다. 그것에 조금 상처받으면서도 옆에서 불안한 듯이 있는 코마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코마치, 잠시 키리바나를 빌려도 돼?」

「응! 좋아! 되도록 빨리 돌려줘.」


  코마치가 바로 대답하자, 「아, 저기 두 분 모두, 저는 제 것이니까요.」라는 공허한 반론이 들렸다. 완벽한 정론이지만 닮은 오빠와 여동생은 보기 좋게 무시하고, 둘이서 눈을 맞추고 있었다.

  가족 특유의 걱정하는 감정이 코마치의 눈에 떠올라 있다. 그것에 대답하듯이 불손하게 웃어 보이자, 코마치도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코마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키리바나를 보고는, 「그럼 아카네, 마침 좋을 때니 나중에 또 봐」라고 말했다. 뭐가 좋다는 걸까.


「아, 응...... 또 봐」


  키리바나의 어중간한 대답을 만족스럽게 들은 코마치는, 내가 왔던 길로 가서, 그리고 조금 물들기 시작한 주택가로 사라져갔다.

  코마치가 완전히 안 보이게 되었으므로, 한 걸음 내디뎌서 키리바나에게 다가간다. 키리바나는 난처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물쭈물 한 상태로 몇 번이나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로  나오는 일 없이 바로 자동차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키리바나는 갈팡질팡한 끝에, 이번에는 조금 부드럽게 인사했다.


―――――――


  5년 전까지 매일매일 걷던 통학로는, 내가 고등학교로 올라간 사이에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공터가 많아서 왠지 쓸쓸함을 느끼게 한 이 부근은, 지금은 개발되어 그 대부분을 획일적으로 늘어선 주택이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아스팔트 포장 뿐이었던 길도 도로 폭을 넓힘과 동시에, 보도블록과 곡선이 많은 가로등, 가로수 등이 새로 설치되어 옛날과 같은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번화했다.


「아, 저기, 하치만 오빠. 어디에 가나요?」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가 머뭇머뭇 물어본다.


「아니, 단지 이 근처를 걷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의 걸음은 평소보다 약간 느려서, 나도 걷는 속도가 절로 느려진다.

  점점 배를 젓기 시작한 태양이 세상을 선명하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그림자도 길게 뻗어간다.

  출렁이는 그림자를 밟으며, 제일 먼저 하려고 한 말을 입으로 낸다.


「......전에는 미안하다. 어리광이 너무 심했어.」

「아니요, 제 쪽이야말로 죄송해요. 너무 감정적으로 됐어요.」

「왜 네가 사과해?」


  그런데도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라고 말해서, 할 수 없이 받아들인다.

  묘하게 성실하다고 할까, 이 녀석, 예전부터 잘 모를 이유로 사과한다.

  신흥 주택지를 빠져나가자, 완전히 바뀌어 전원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그마한 밭과 논뿐이다. 어렸을 때는 매우 크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자라서 보니 상당히 작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러네요. 하지만 논이나 밭을 엎고 집을 세우는 것도, 풍치가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정리되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해서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사는 사람들뿐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원래 살던 사람은 성가셔할지도 몰라요.」

「......」


  주홍색이 이 일대를 하나의 색으로 물들여가는 것과 동시에,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로 가득 차간다.

  입 안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되지 않게 말을 머릿속에 띄워간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질문을 한다.

  발을 멈춘 키리바나는, 눈동자에 의심과 경계를 띠며 탐색하듯이 나를 들여다본다. 그 눈동자가 일전의 데이트 때와 매우 비슷해서 등골이 떨린다.

  잠시 동안 서로 바라본 뒤, 키리바나의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오고, 입을 열었다.


「......네, 외롭지 않아요.」


  그 표정은 역시, 그 때와 변함없어서 절로 가슴이 조여 온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네, 원래 그래요.」


  어딘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이 미소 지으며 키리바나가 말했다.

  원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성격을 바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친구 정도는 만들려고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키리바나의 말을 듣고 나는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말이 끊겼음에도 의리 있게 키리바나는 대답했다. 다만, 약간의 불만이 표정에는 남아서 입을 뾰족 거릴 뿐이다.

  그 얼굴을 보고, 고동소리가 자꾸자꾸 격해진다. 하지만, 그건 긴장이 아니라,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는 이 말을 오래 전부터 키리바나에게 하고 싶었다.


「나는 널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 항상 옆에 있게 해줘.」


  나는, 키리바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틀림없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따로 있다.

  나는 단지, 키리바나가 혼자가 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키리바나가 그대로,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아도, 변함없어도, 단지 곁에 있고 싶다.


「......!?」


  우리들 사이를 바람이 빠져나간다.

  키리바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그야말로 허를 찔린 듯이 매우 놀라 있었다. 서서히 뺨이 빨갛게 물들고, 손을 꽉 쥐며 필사적으로 뭔가를 참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참지 못했는지 입술이 움직이고는,



「아하하하하!」



  라며 물줄기가 터진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이, 잠깐. 지금 웃을 장면이야?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같은 시선으로 보일 각오까진 했지만, 이런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평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웃음소리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 있나? 하는 식으로 빤히 본다. 하지만 키리바나는 그런 염치없는 시선도 아랑곳없이 몸을 く자 모양으로 굽히고 정말로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계속 웃었다.

  그대로 잠시 동안 기다렸지만, 키리바나의 웃음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되어, 배를 손으로 누르고 있을 정도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빠져서」


  이틀간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이거다. 아니, 내가 봐도 틀에 박힌 대사라는 건 안다고.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키리바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자세를 바로잡아 등을 바짝 세운다. 그리고 나서 위로 올라갔던 입가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한 순간만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는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지금까지 중에 가장 눈부신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가슴 속으로 퍼져간다. 그것은 달콤새콤하고, 가슴을 아플 정도로 두드리는데도 어딘가 근지럽다. 그 근질거림을 곱씹으면서, 역시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자각한다.

  그 키리바나는 조금 전까지와는 돌변해서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어깨를 떨면서 작게,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라고 중얼거리며, 쿡쿡거리고 있었다.

  젠장, 바보라서 미안하군.

  하지만 그 즐거운 표정도 길게 이어지지 않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키리바나는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머뭇머뭇 물어본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 녀석은 정말로, 뭐라고 할까. 미사키 군에게 고백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등등,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른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딱히 부정할 순 없군.

  그래도 생각한다. 키리바나가 아무도 바라지 않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키리바나를 바라지 않아도, 나만은 곁에 있고 싶다고. 오만하고 단순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게 싫으니까.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는 딱딱하면서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부정했었지만,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됐던 것이다. 내가 한 일이고 완전히 모순됐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도 확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가슴에 손을 대며 몹시 취한 것처럼 몸을 흔든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휘봉처럼 흔들리고, 조금 뒤에 올 여름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근처 일대를 감쌌다.

  키리바나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자아낸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키리바나는 기쁜 듯이 손을 잡고는, 「그럼 돌아갈까요?」 이렇게 말하고는 걷기 시작한다.

  그 부드러움과 무게를 팔로 느끼며, 황혼에서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키리바나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자.

  어처구니없는 일로 웃고, 멋진 일로 기뻐하고, 재미있는 것을 즐기며.

  싫은 일도 많이 있겠지만, 그런데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의 좋은 점을 키리바나와 같이 찾아가자.

  ......그 끝에 키리바나가 그대로였다고 해도, 이 작은 손만큼은 꼭 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