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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화(昭和) 초기부터 신에자키가를 모시고 있는 일족, 스이센바라가. 그 현 필두인 미즈키 씨――엄마의 제 2 비서이자, 도서관의 사서이기도 하다――가 운전하는 롤스로이스가 천천히 정원에서 나간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차를 가만히 배웅했다. 내 방 창문으로 보이는 롤스로이스의 테일 램프, 그 뒷좌석에는 그가 타고 있다.
  ――히이라기 아키라. 내 첫 키스 상대.


「......바보」


  점점 멀어지는 차를 보내며, 가슴에 넘치기 시작하는 울고 싶은 충동을 눌러 참는다. 30분 정도 전......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그리고 꿈같은 행복감에 파묻혀 있었을 때를 떠올린다.
  그에게 술을 먹인 빚――그래, 사과다. 결코 저런 애한테 무릎베개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응, 그게 당연하다――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키스......를 하고 말았다.


「내, 첫 키스......」


  빨갛게 달아오른 그런 얼굴을 붕붕 흔든다. 아니, 키스는 억지로 빼앗겼다...... 그래, 그 바보가 하필이면, 이 나의 첫 키스를 빼앗았던 것이다. 결코, 내가 그에게 바친...... 적 따윈 없다.
  키스하면서 그를 꼭 껴안았을 때의, 울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던 마음이 가슴에 되살아나, 심장 위를 손바닥으로 꼬옥 누른다. 떠올린 것만으로도 너무 두근거려서, 소리치고 싶어졌기 때문에.


「저건 사고, 사고 같은 거야. 왜냐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크에 싸인 손가락 끝으로, 살짝 내 입술 위를 덧쓴다. 그것뿐... 그저 그것뿐인데, 오싹오싹하고 온몸에 달콤한 저림이 퍼져나간다. 그의 머리가 실려 있던 허벅지, 그리고 키스만이 아니고 혀로 빨린 목덜미 등이 찡하게 달콤해서, 울고 싶어진다. 그에게 닿은 곳이 불타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래도 가슴 속은 어둡다.


「왜냐면 히이라기 군......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까.」


  그건 당연......자업자득이라고, 가슴 속에서 짓궂은 내가 속삭인다. 나 같은 고압적인 여자를, 좋아할 남자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그는 히이라기 진료소, 내 엄마가 그토록 괴롭혔던 여의사의 아들이니까.


「......」


  어째서 좀 더 솔직하게 그에게 「고마워」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의 온화한 미소를 앞에 두면, 왠지 차가운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라 온 환경의 탓?
  어릴 적부터, 주변에 이상을 꽉 눌려 온 날들. 내 주변에,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대에 응하려고, 어릴 때부터 필사적으로 가슴을 펴는 삶을 살아왔고, 눈치 챘을 때는 솔직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아빠 이외의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유일한 예외라면 사서인 미즈키 씨 정도였지만...... 그래도, 뭐든지 터놓는 건 아니다.


「왜, 이렇게 싫은 성격이 된 거지......」


  솔직해질 수 없다. 아무리 해도, 생각을 솔직하게 입으로 나타낼 수 없다. 그래......만족스럽게, 미소 하나를 띠는 것마저도.
  힐끔하고 본, 히이라기 군의 소꿉친구가 띠는 녹을 것 같은 미소. 거기에 칸나즈키 군의 미소, 그런 식으로 천진난만하게 웃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항상 기분 나빠 보이는 내가......


「좋아......해 줄 리가 없어.」


  넘쳐흐를 것 같은 눈물을 필사적으로 죽이고, 붉은 드레스 옷자락을 들며 소파에 앉는다. 바로 조금 전, 여기서 뒤에서 그가 꼭 껴안아줬다고... 생각한다. 가슴이 조금 답답했던 것과 압도적으로 감미로웠던 그 때.
  하지만..... 달콤하고, 다정했던 그 기억이,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마음에 꽂힌다.


「히이라기 군.......」


  툭.....하고 뺨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 걸까.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신에자키가의 후계자니까라고...
 

「도와줘」


  엄마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그라면, 강제로 구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버린다. 생일 파티에서 혼자 고독하게 꼼짝달싹 못하던 나에게 춤을 권해 준 것처럼.
  가슴 속, 넘쳐흐르는 욱신욱신하고 아프고 달콤한 감정. 이건 사랑, 하필이면 그를 사랑해버렸던 것.......이라는 걸 나는 분명히 자각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좋아한다고.
  ――결코 이뤄지지 않을 마음인데.


「미안해......」


  오늘 밤 파티. 많은 인사를 받으며, 그를 줄곧 보고 있었다. 회장 구석에서, 재미없는 듯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모습. 틀림없이 지내기 불편했을 것이다...... 분별없는 일족에게 험담을 받아, 괴로워했는지도 모른다.
  그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초대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히이라기 군에게 생일을 축하받았으면 했으니까.


「미안해.」


  나는 정말 제멋대로에 싫은 여자다. 뚝뚝하고 뺨에 눈물이 흐른다. 그 진료소에서도, 그는 계속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심술쟁이에 고집뿐.
  ――역시, 이런 나 같은 걸 그가 좋아해줄 리가 없다.


「미안, 미안해.」


  가슴에서 흘러넘치는 자기혐오. 방안에 장식된 장미――엄마가 좋아하는 꽃――가,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이 쓸데없는 허세가 신에자키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상처 입혀야 기분이 내키는 걸까?
  일찍이 의료사고를 낸 아빠의 병원. 원장으로서 책임을 지고.......그걸 갚으려고 한 아빠였지만, 그러나 신에자키가는 멋대로 실수의 은폐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혼자 힘으로 유족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려고 한 아빠에게 엄마가 행한 것은 *이연(離縁), 추방.

※ 이연(離縁) : 부부 또는 양자의 인연을 끊음.

  전부 신에자키가의 명예 때문에. 이런 시골에서, 언제까지나 왕녀로 군림하고 싶은 엄마의 욕망.


「이런, 이런 꽃!」


  일어서서, 눈물을 흘리며 장식된 대량의 장미에 다가간다. 내 퇴원 축하라고 준 게 분명한 이 꽃들......거기에, 생일 축하로 오늘 받은 것들. 그것들은 전부 내게 보낸 게 아닌......신에자키가 당주인 엄마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차기당주. 일찍이 붕괴한 지역 의료를 지키기 위해 힘썼던 아빠의 등.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나는 의사가 되어, 머지않아 이 마을의 의사가 되는 거겠지.
  엄마의 바람대로 신에자키가의 당주로서 이 마을의 새로운 여왕이 된다. 싫은데, 그런데도 내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엄마는 간파하고 있다.
  ――웃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엄마의 꼭두각시. 이런 나, 미소 하나 띨 수 없는 나를, 히이라기 군이 좋아해줄 리가 없어!


「히이라기 군.......」


  격정인 채 뚝뚝 괴로운 눈물을 흘리고, 풀썩하고 융단에 무릎을 꿇는다. 이 마음,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은 독이다. 죽이자......감정을 가슴 속 깊이 가라앉히고 지금까지 대로 무뚝뚝하고 싫은 여자애로 있자. 더 이상, 그를 좋아하게 되면...... 틀림없이, 틀림없이 나는 망가지니까.


「......?」


  그 때, 눈물로 베인 시야 구석에 무언가가 비친다. 새하얀, 상장 등을 넣는 통 같은 원기둥. 붉은 리본으로 깔끔하게 묶여진 게 보였다.


「이건......혹시?」


  떨리는 손끝으로 그 통을 잡아, 천천히 끈을 푼다. 메인 붉은 리본에 붙어 있던 작은 카드. 거기에는 『생일 축하해, 히이라기 아키라』라고 쓰여 있다.
  몇 번이고 침을 삼킨다. 이렇게 좋아하게 되는 건 그만두자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내 가슴을 크게 울리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이렇게나 기쁜 걸까......


「앗......」


  간신히 꺼낸 통의 내용. 그건 새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뎃생이었다.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도저히 초등학생이라 생각되지 않는 정묘한 그림. 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지금은, 거기에 그려진 게 내 마음을 흔든다.


「바보, 바봇, 이런......」


  본 적 있는 병실 침대――히이라기 진료소의 싼 침대――거기에 앉아 있는 내가 있었다. 그 때와 같은 파자마 차림으로......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미소를.


「웃고 있어...... 그림 속의 나, 나, 웃고......」


  구겨지지 않게 소중히, 무엇보다도 소중히, 도화지를 가슴에 안는다. 이렇게 상냥한 미소가 되어있었다...... 가슴에 따스한 마음이 퍼져간다. 강렬한 부끄러움과 온몸이 떨리는 기쁨.
  아아, 또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왜 저 애는 항상, 항상 날 도와주는 걸까.


「더, 좋아....하게 되잖아. 바보......」


  살짝 투덜댄다. 내일부터 분명 노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 같은 상냥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하고 굳게 바란다. 언젠가, 그렇게......그의 곁에서 상냥하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마음, 가슴의 아픔과 달콤한 기쁨이 뒤섞여 온몸으로 퍼져간다.


「히이라기 군」


  살짝 중얼거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집에서 쉬는 건 오늘로 끝나고, 내일부터 학교생활이 시작된다. 또 가슴을 펴고 늠름하게 살아가자.
  앞으로도 틀림없이 노력할 수 있다. 도화지를 가슴에 안으며, 나는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