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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화【초등학교 편⑨ 전편】

 

  ◆

  NGO의 비품인 지프 ―― 군용품 ―― 의 큰 타이어조차, 진동이 덜컹덜컹 격렬한 아프리카 길. 포장 같은 건 없는 길을, NGO캠프를 향해 계속 끝없이 달린다.
  핸들을 잡는 군 출신인 NGO 직원과 조수석에 앉은 호위는, 큰 단차를 넘을 때 가볍게 휘파람을 불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스페인어로 계속 잡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험로일 것이다.
  멍하니 그 모습을 의식하면서, 뒷좌석에 앉은 나는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본다. 바로 옆, 울다 지쳐 잠든 세리실의 손을 잡은 채.
  ――이제 곧 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을 시각, 일본에서 보기 매우 드문 광대한 평원을 본다. 우기가 끝난 직후인 이유도 있어, 지평선 여기저기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여러 동물이 보였다.
  야생동물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미혹이 없다. 그들은 살아간다....는 것에 거짓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기만으로 가득 찬 생활을 비웃는 듯한 야생동물의 삶.
  그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생명을 보면, 의사가 하는 일은 부자연의 극치인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머지않아 분명 죽을 것임에도 자원과 시간을 써서, 아주 조금 생명을 늘린다. 그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의사를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실은 운명에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발버둥치고 싶다. 언젠가, 반드시 나아지기를 빌면서.
  ――나는 바보니까, 그런 삶의 방식으로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선배」


  갑자기 옆에서 뒤척이고는, 프랑스어로 작게 속삭이는 조수. 상복...... 검은 정장을 입고, 금발을 정리한 모습. 날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몹시 운 탓인지, 평소보다 외로운 것 같았다.
  잡은 내 손에 살짝 힘을 쥐고, 핼쑥한 얼굴인 채 참회하는 듯 작은 소리로.


「세리실, 일어났어?」

「미안해요. 선배가 와주셨는데...... 저만 자버려서......」

「아니, 신경 쓰지 마. 조금은 진정됐어?」


  끄덕......하고 천천히 단정한 얼굴을 숙이는 세리실. 그러나 눈물 자취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선명히 남아있다.


「네......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약 4시간 전, 나와 세리실은 그 소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이 나라에서는 그리스도교――카톨릭―― 신자가 많다. 소녀의 부모님도 독실한 카톨릭이기 때문에, 교구 사제의 의식으로 장례식이 행해졌다.
  작열하는 햇볕 아래, 순백이어야 할 옷은 가난으로 조금 더러워져 있고, 사망자를 애도하는 헌화도 적다. 생전의 초상화나 사진 같은 건 없고, 참석한 유족이나 친척의 옷도 결코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관계없다. 유족의 무념, 슬픔, 분함, 애석한 마음은 세계 어디에 있는 것이나 같다. 빈부, 인종 같은 건 관계없이 참석한 전원이 소녀를 잃어버린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성가가 선명히 되살아난다. 사망자를 애도하는 선율. 적어도 편히 잠들 수 있기를, 하는 소원과 기원을 담은 노래.


「신경 쓰지 마」


  장례식이 끝나고 차에 탈 때까지, 세리실은 다부지게 행동했다. 유족과 이야기할 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지프가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그녀는 쓰러져 울었다. 내 손에 매달리듯 잡고, 울고, 울어...... 자신을 탓하고. 하지만 자신을 탓해봤자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또 울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울다 지쳐 잘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제 미팅에서 치프 세르게프가 나와 세리실은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이렇게 말한 진심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슬픔은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수많은 환자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족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이라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선배...... 저, 엄청 제멋대로인 애였어요.」

「응?」


  얼굴을 숙인 채, 불쑥..... 프랑스어를 흘리는 세리실. 변함없이 덜컹덜컹 아래위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차 안. 내 손을 잡으며, 조수는 천천히 말을 계속한다.
  차창 밖에서는 태양이 지평선으로 가라앉고 있고, 새빨간 저녁노을이 보였다.


「엄마는 패션 디자이너에 자유분방한 분이었어요. 그걸 닮았겠죠...... 교회에도 별로 안 갔고. 막내에다가 아빠도 저한테는 물렀어요. 우연히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로, 가사는 한 번도 도운 적 없었고요. 주변에 대한 감사는 모르는 채...... 정말, 대체 뭘 했었던 건지......」

「......아니. 나도 비슷해. 공부만으로 아무것도 몰랐어.」


   조금씩 그리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렸을 적 이야기, 주니어 스쿨에서의 사건. 친구, 부모님과 싸운 일. 부모님에게 생일을 축하받았던 기쁨과 선물이 기대에 못 미처 화낸 일.
  어느 것도 하잘 것 없는 과거의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녀가 경험할 일은 결코 없다.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계속될 예정이었던 인생이 아무 자비 없이 갑자기 끊어져, 두 번 다시 누리게 될 가능성은 없다.


「선배...... 저, 앞으로도 의사를 계속할 거예요. 그 애 같은 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요. 아무리 울어도......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싫어질 만큼 알았어요.」

「그런가.」

「......네」


  이야기의 마지막, 매듭짓듯 세리실은 그렇게 말했다. 작지만, 힘이 조금 돌아온 듯 야무진 목소리.
  꼬옥.....하고 내 손을 살짝 쥔 조수. 그 얼굴은 가라앉아가는 석양에 비춰져 붉고......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

  신에자키의 파티 이후 몇 주가 지난 6월 중순. 관동 서북부에 위치한, 우리들이 사는 마을에도 점점 더운 날이 많아졌다. 나무들이 무성한 산은, 초여름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짙은 녹색이 되어, 여기저기에서 지겨울 정도로 바삐 매미 울음소리가 울린다.
  그렇다, 오늘 아침도 여름더위를 예감시키는 날씨였다. 모처럼의 토요일...... 학교는 휴일인데.


「오빠, 일어나! 좋은 날씨라구.」

「......으음, 사쿠라? 어라, 왜 여기에?」

「안녕, 오빠. 엄마가 바래다줬어.」


  2층 침대 위에서, 어젯밤에는 없었던 소꿉친구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아직 반은 자는 듯한 느낌으로, 머리 안쪽이 찡하고 무겁다. 몸도 어쩐지 약간 나른하고, 전형적인 수면부족.
  왜 그러냐면 요즘, 주말마다 신에자키와 둘이서 읍립 도서관에 가서, 의학서를 빌리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쿠라가 친가로 돌아가 조용한 금요일 밤, 마음껏 밤새우며 의학책 읽기에 빠지는, 그런 생활 패턴. 그래서 매주 토요일 아침, 기상시각은 10시 정도인데......
  활기찬 발소리, 그리고 2층 침대 아래에서 울리는 소꿉친구의 목소리에, 기지개를 켜면서 대답했다.


「무슨 일이야? 그보다 지금 몇 시?」

「응? 벌써 8시인데. 자, 놀러가자.」


  졸려 보이는 내 목소리 따윈 개의치 않고, 침대 계단을 올라와서 불쑥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쿠라. 생긋 웃는 그 얼굴......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거겠지. 나는 조금 졸린 것을 참으며, 말없이 목을 기울여 이야기를 재촉한다.
  계단을 다 올라, 푹하고 당연한 듯 기세 좋게 내 옆에 눕는다. 이 녀석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겠지. 핑크색 파자마 차림인 채였다. 왠지 모르게 레몬과 비슷한 상쾌하고 달콤한 머리카락 향기가 감돌....지만, 솔직히 숨 막힐 듯 덥다.
  소꿉친구의 아침 흑발이, 찰랑찰랑 내게 휘감아든다. 생긋 미소를 띠며 탓탓하고 침대에서 양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


「있잖아 어제 아빠가, 후교에서 오늘 오픈하는 수영장 티켓을 가져왔어. 그래서, 오빠도 어떨까 해서」

「수영장?」

「응, 가자! 좀 있으면 학교에서도 수영장 열 거잖아? 좋은 연습이 될 거야. 여러 가지 놀 거리가 있다는 말도 들었고. 응? 괜찮지?」


  푹푹하고 내 볼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누르며, 싱글벙글 미소 짓는 소꿉친구. 확실히 얘는 수영을 아주 좋아해서, 작년에도 수영장에 같이 엄청 많이 간 기억이 있다. 그래, 워터 슬라이더를 매우 좋다하던 것 같다. 뭐, 혼자서는 무섭다고 해서 항상 내가 붙어가는 거지만......


「아 진짜, 그렇게 들러붙지 말라고. 알았어, 알았다니까. 더우니까 떨어져.」
 
「히힛,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나 참, 아저씨랑 아주머니 허락은 받은 거지?」


  덥다고 했는데, 짓궂게도 목에 달라붙는 사쿠라를 무시하면서, 아이구하며 몸을 일으킨다. 몸이 조금 무겁고, 머리 안쪽이 멍했다. 하지만 물에 들어가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머리가 텅 빌 때까지 몸을 움직이고 싶다.


「우응, 아빠는 좀 삐졌지만. 히히, 잘 됐네! 그럼 집에 돌아가서, 바로 준비해올 거니까, 오빠도 부탁해!」

「그래그래」

「9시 20분 전철이야! 역에서 약속이야」


  폴짝하고 기세 좋게 침대 계단을 내려가는 소꿉친구를 배웅한 뒤, 나도 침대에서 내려선다. 몇 번이나 하품을 하며, 옷장에 가서 깊숙이 넣어둔 수영복을 찾는다.


「수영장인가...... 그래, 수영장이라면」


  수영 가방에서 겨우 찾아낸 수영복, 모자를 담으며 머리 한 구석에서 멍하니 친구를 떠올린다. 반장이기도 한 친구, 칸나즈키 코이. 건강하게 밝은 다갈색으로 탄 피부, 동그랗고 큰 눈동자, 부드럽고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 천진난만한 미소.
  육상, 그리고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는 코이는 하지만, 뭔가 신체적인 이유가 있어――소문으로는 귀인 것 같다――수영 시간은 매년 견학하고 있었다. 허가를 맡은 것 같아,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외로운 것 같았지」


  체육복인 채 그늘에서, 우두커니...... 우리들이 수영장에 들어간 모습을 견학하고 있던 코이. 가끔 눈이 마주치면, 햇볕에 탄 밝은 다갈색 얼굴에 미소를 띠고 손을 붕붕 흔들었던 모습이 떠오른다. 올해도, 견학이 확실하려나 한다.
  그런데...... 문득 생각난다. 그래, 얼굴을 물에 담가 헤엄쳐야만 하는 학교 수영장은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물가에서 다리를 담그는 정도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야 나나 사쿠라 같이 마음껏 놀 수는 없지만, 조금은 기분이 나지 않을까?


「코이도 권해볼까?」


  문제는 티켓 장수. 사쿠라는 오늘, 후교에 오픈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분명 티켓 장수도 인원수에 맞춰서 밖에 없을 것이다. 뭐, 밑져야 본전이고 사쿠라 집에 전화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짐을 수영 가방에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습관이 된 서바이벌 가방――최근에는 아무 도움도 안됐지만, 들고 가지 않으면 초조하다――을 어깨에 메었다. 그대로 기지개를 켜면서, 터버터벅 전화기가 있는 1층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없던 때 거실에서 타이밍 좋게 전화가 울렸다.


「우왓, 아...... 네, 여보세요. 히이라기인데요.」

「꺅, 받는 게 빨라. 정말, 난데」

「어.....!? 공ㅈ, 아, 신에자키?!」


  수화기에서 들려온 소리에, 나는 내심 놀라며 대답한다. 잘못 들을 리 없는, 쌀쌀맞고 냉정 침착한 목소리. 수화기 저편에서조차 위압감이 전해진다.


「저기...... 오늘 말인데, 신에자키가에 관련된 시설이 후교에서 오픈해. 그래서 히이라기 군 같이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쓰게 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가엾게 생각해서. 그......우, 우연히야, 나도 한가하고」

「뭐!?」


  굉장히 빠른 말, 그리고 화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투. 공주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등에 축축한 땀이 흐른다. 이건...... 혹시 사쿠라가 말했던 수영장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완전 다른 시설?
  뭐 어느 쪽이든 사쿠라와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한다......고, 입을 열려 했을 때, 번뜩였다. 만약, 신에자키가 말하는 시설이 수영장이라면......


「혹시, 그 시설이라는 게 수영장이야?」

「응, 그래. 그래서, 어때? 빨리 대답을......」

「거기 말인데, 혹시 신에자키라면 얼굴 패스로 들여보내주거나 하는 거야? 그...... 관계자용 입구 같은 데로.」

「......읏, 그래. 그래서 어떤데?」


  몇 분 후, 화나 보이는 공주와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잘 끝내고 혼자서 내 발상에 감탄하고 있었다. 후우....하고 기합을 넣듯 숨을 내쉰 뒤, 서둘러 코이 집에 전화를 건다.
  오늘 더운 휴일, 즐겁게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약속....... 언제 찾아가도 완전히 똑같게 보이는 마을 역.
  계절과 함께 변해가는 것은 주변 풍경뿐...... 선명한 초록 가로수에는 많은 매미가 앉아, 바삐 울고 있다. 역의 주륜장에 세워져 있는 많은 자전거. 금속 부분에서 반사되는 일광은 반짝반짝 눈부셔서, 오늘 더위를 직감하게 했다.
  그렇다, 오늘은 더울... 터인데, 나는 오싹오싹할 정도의 한기를 느낀다. 역 대합실의 좁은 공간, 그곳은 마치 마경 같이......


「안녕하세요, 신에자키 선배. 오빠의 친구...... 아니, 그저 아는 사람이었죠.」

「――!? 후, 후후..... 안녕 사쿠라 양. 너야말로 남매도 아닌 생판 남인 주제에, 뻔뻔스럽게도...... 아니, 돌보기를 좋아하는 거네. 그렇게 애 같은 체형인데도 다부지게 행동하고 있구나. 정말, 유아체형인데, 그렇지......?」

「――으읏!!!」


  활짝 핀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는 사쿠라와, 콕하고 마치 가슴을 강조하듯 당당히 서 있는 신에자키. 둘을 중심으로, 공간이 빠직빠직 얼어붙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내 손을 잡고, 신에자키에게 경련 섞인 미소를 보이는 소꿉친구. 무릎까지 오는 밀리터리 바지, 노란 티셔츠, 그리고 마음에 드는 흰색 리본, 이런 움직이기 쉬운 대략적인 차림. 매우 활기차고 귀여운 느낌.
  반면 바로 정면에 서 있는 공주는, 프릴이 붙은 반소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나비넥타이, 빨간 체크무늬 미니스커트, 부츠 이런 스타일. 약간 고스로리 같은 패션으로, 사쿠라와 달리 조금 큰 가슴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여자애 같은 분위기다.


「두, 둘 다 사이좋게.....」

「오빠!? 왜 신에자키 선배가 여기에 있어? 게다가 수영 가방을 들고서!」

「히이라기 군, 이건 어떻게 된 일이니? 널 가엽게 여겨 권했는데, 어째서 애 보는 사람까지......」


  미소......인데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는 소꿉친구에게, 홱! 하고 팔이 거칠게 끌려간다.
  눈앞에 선 공주는, 찌릿이라는 느낌으로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팔짱을 끼고 서서 무섭게 차가운 시선으로 흘겨보고 있다.
  대체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난 단지, 모두가 함께 노는 편이 즐겁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안녕, 아키라! 기다리게 해서 미안. 저기, 오늘은 권해줘서..... 어어!? 왜 오늘은 단 둘이서!?」

「아, 코이」

「카, 칸나즈키 선배까지!?」

「칸나즈키 군!?」


  그 때, 뿅하는 느낌으로 친구가 역에 들어왔다. 놀란 듯한 표정으로 사쿠라와 공주를 보고서는 멍하니 입을 연다.
  옷차림은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허벅지가 노출된 짧은 바지, 그리고 어깨를 크게 드러낸 검은 탱크톱. 거기에 전에 산 빨간 패션안경을 쓰고 있다. 그런 이유도 있어, 왠지 평소보다 더 미소녀 같은 느낌.
  그러나 찌릿......하는 눈동자로 키가 작은 코이는 아래에서 나를 흘겨본다. 안경 플라스틱 렌즈 너머로, 둥글둥글한 두 눈동자가 보였다.


「아, 아니...... 코이, 침착해. 왜냐면 많은 편이 즐겁잖아? 모두, 내 친구들이고. 사쿠라도, 거기에 신에자키도......」

「아니 오빠!? 난 친구가 아니야. 그래,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잖아.」

「히이라기 군, 멋대로 날 친구라고 하지 말아주겠니?」

「너무해 아키라, 난 단순한 친구가 아니잖아. 친구, 둘도 없는 친구였잖아, 바보, 바보」


  투닥투닥하고 코이한테 가볍게 가슴을 얻어맞는다. 아픔은 전혀 없지만 우으으.....라는 느낌으로 흘기는 친구의 얼굴이 괴롭다.
  사쿠라는 볼을 부풀린 채 내 팔을 아플 만큼 꽉 쥔다. 삐걱삐걱한 느낌으로 이를 악물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공주는 말없이, 그저 콕 냉철하게 팔짱을 끼고, 벌레 같은 인간을 보는 듯한 시선을 던진다. 뼈아프다...... 왠지 위가 찡 저린다.


「모두, 스, 슬슬 전철 시간이야. 아하하, 가자. 응? 오늘은 모두 즐겨야......」


  이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전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홈으로 달린다. 뒤에서 들리는 불만스러운 소리들...... 그것을 일절 무시.
  애초에 내가 혼나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 나는 신에자키에게 초대받아 뒷문으로, 사쿠라와 코이는 2장의 티켓을 써서(코이 건 원래 내 것을 유용해서)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다....는 완벽한 플랜이었는데.


「아 도망쳤어!」


  타이밍 좋게 홈에 들어온 전철에 탄다. 그 뒤를 어쩔 수 없네....라는 느낌으로, 마지못해 타는 3명. 이걸로 겨우 즐거운 시간이......하고 조금 안도한다.
  나는 서둘러 세 사람과 멀어진 자리에 앉으려고 다리를 내디딘 순간, 소꿉친구의 손에 팔이 꽉 붙들렸다.


「오빠? 모처럼이니까 후교까지의 1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 다 같이 앉자구. 자리도 비어 있고 오늘, 앞으로의 예정을 묻고 싶으니까.」

「정말, 사쿠라 양이 말하는 대로란다.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그러네...... 아키라. 거기에 앉아....아니야! 가장 안쪽이 당연하잖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빠짐없이 물을 거니까!」


  4인의 벼랑 좌석, 가장 안쪽으로 억지로 앉혀진다. 옆에 코이, 바로 정면에 사쿠라, 대각선으로는 공주. 3명의 얼어붙을 것 같은 시선이 아프다.
  창밖은 초여름답게 온통 초록이 퍼져......있건만, 여기만 전혀 다른, 극한의 툰드라 같다고 난 생각했다.


  ◆◆◆◆


  전차 안, 1시간 정도의 고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낸 뒤, 어떻게든 기분이 풀어진 셋과 같이 예의 시설에 입장했다. 결국, 전원이 신에자키의 친구라는 걸로, 줄 서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확실히 오늘이 오픈일이라는 것도 있어, 어느 것이나 신품. 로커도 넓고, 나는 수영장이 기대되어 후딱 갈아입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코이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갈아입지 않는다. 왠지 얼굴을 빨갛게 하고 고개를 숙일 뿐. 물어봤더니, 「배가 아파」라고 대답하고, 화장실로 갔지만......


「코이, 아직? 괜찮아?」

「으, 응. 미안, 조금만...... 응, 이제 됐어.」


  1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겨우 나온 친구.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놀라서 멍해지고 말았다.


「그거......」

「이, 이상해......? 쇼트 존 타입이라고 하는데...... 부탁이야, 그렇게 보지 말아줘. 썬탠 자취가 부끄러우....니까」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붉히고 내 시선을 피하듯 뒤로 도는 코이. 그 뒷모습을 놀라며 바라본다.
  수영 선수가 입는 것 같은, 상하 일체형 원피스 타입 수영복. 반들반들 광택이 있는 검은색 소재로 되어있어, 친구 몸에 딱 맞는 느낌.
  아니, 뭘 입든 그건 상관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 드러난 몸의 라인...... 둥그스름한 가녀린 어깨, 햇볕에 그을린 가느다란 목과 팔, 그리고 등에서 허리, 다리에 걸친 라인이 어딘가 볼륨이 있어서.... 이래서야 마치.....


「아니, 이, 이상하지 않아.」

「그, 그렇게 빤히 보지 말. 수영복, 거의 입지 않으니까...... 엄청 부끄러워서」

「아아, 미안」


  눈을 치켜뜨고 나를 보며, 부드러운 갈색 머리에 수영 모자를 쓰는 코이. 그러나 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나는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코이의 피부를 보고, 동요를 숨길 수 없다.
  호리호리한 목덜미부터, 아까 보인 등 부위――평소에는 체육복으로 가린 부분――의 피부가, 정말로 새하얘서 살결이 곱다. 어쩐지 봐서 안 되는 것을 본 것 같아, 나는 가방에서 큰 타올을 꺼내 코이의 어깨에 걸쳤다.


「응? 고마워, 아키라」

「그래, 가자」


  고개를 저으며 둘이 나란히 수영장으로 향한다. 사쿠라, 신에자키와의 상의로는, 입구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오빠, 늦어~」

「하아...... 히이라기 군. 넌 항상 칠칠치 못하구나.」

「아......」


  반짝반짝 빛나는 수영장 수면 옆에, 사쿠라와 신에자키가 서 있었다. 소꿉친구는 학교 지정 감색 스쿨 수영복. 몹시 기대되어 견딜 수 없는지, 기운차게도 가녀린 몸으로 뿅뿅 뛰고 있다.
  그에 반해 신에자키는, 분홍과 검은 색 체크무늬 원피스 수영복. 가슴을 가리듯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고 있지만......, 가느다란 그녀의 팔만으로 가슴을 숨길 수 있을 리도 없고, 가슴골이 제대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섭도록 아름답고 긴 다리 라인.


「바보 아키라! 진짜, 뭘 멍해있는 거야. 가자.」

「아, 응」


  뒤에서 코이한테 살짝 등을 맞고 둘에게 다가간다. 주변에도 다른 손님이 많아 왁자지껄 소란스럽다.
  하지만 그 소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쿠라의 수영복 차림, 그리고 신에자키의 수영복을 정면으로 볼 수 없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엄청 답답하다.


「히이라기 군, 그리고 칸나즈키 군. 사쿠라 양에게는 이미 설명했지만, 저기 안쪽에 전용 구역이 있어. 2호실, 자유롭게 써도 되니까. 이게 열쇠......그런데 히이라기 군!? 착실히 듣고 있는 거니?」

「.......아, 응」

「오빠,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바보 아키라, 이쪽이 부끄럽다구.」


  불합리한 이유로 코이랑 사쿠라한테 찰싹찰싹 등을 얻어맞으며, 신에자키의 손으로 열쇠를 받는다. 헤엄치기 위해서인지, 긴 흑발을 위로 올려 정리한 공주.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에 닿는..... 것만으로 긴장한다.


「오빠, 우선은 슬라이더로 가자.」

「바보, 갑자기 거기냐고.」

「앗, 나도 하고 싶은데」

「침착성이 없구나.」


  소꿉친구에게 억지로 손을 이끌려, 나는 시설 전체로 눈을 돌린다. 널찍한 공간, 천장은 외광이 물에 들어올 수 있게 투명하고, 여러 개의 거대한 수영장이 있었다. 남국풍의 녹색 수목이 많이 심어져 있어, 공기가 매우 맑다. 풀의 종류도 폭포 같이 물이 떨어지는 것부터, 바다와 비슷한 것,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등등 전부 셀 수가 없다.
  안쪽은, 슬라이더 등의 여러 가지 시설이 많이 보인다. 레스토랑, 매점 등도 완비되어 있어, 코이가 좋아하는 패스트푸드점의 푸드코트까지 있었다.


「히이라기 군,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도록 해. 초대한 신에자키가의 명예가 더럽혀지니까.」

「그, 그렇게까지......」

「자, 오빠 가자」

「......그렇다 해도 차이가 너무 나잖아. 신은 참 불공평해.」


  작은 소리로 뭔가 투덜투덜하고 중얼거리는 코이. 팔을 쭉쭉 잡아당기는 사쿠라.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는 공주. 모두가 함께 슬라이더를 향해 걷는다. 많은 손님이 있다고는... 해도 입장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인지, 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대단해. 그래도 이거, 놓치면 큰일이네.」

「......있잖아, 그래서 전용 구역을 가르쳤잖니. 히이라기 군은 정말 얼빠졌구나.」

「난 오빠랑 단 둘이라도 좋은데」

「......나도」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하면서, 겨우 슬라이더 시설 입구까지 도착했다. 이미 상당한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어쩔 수 없다...... 가장 뒷줄에 도착했다. 옆에 있는 슬라이더는 경사가 급해서, 미끄러져 떨어져가는 사람들의 절규와 환성이 울린다. 튀는 물보라가 날아와서, 그것도 매우 즐겁다.
  재잘재잘 이야기하며 차례를 기다린다. 처음에는 왠지 험악한 분위기였던 사쿠라와 신에자키도, 조금씩 이야기하는 것 같아,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수영 모자가 아파」라며 푸념하는 코이. 그걸 조정하려고 나는 양손으로 코이의 머리를 손대고 있었는데.....


「.......응?! 우왓!!」

「꺅, 뭐야?」

「어?」

「오빳」


  갑자기, 꾹하는 느낌으로 내 허리에 뭔가가 매달렸다. 놀라서 보니, 허리에 매달린 것은 키가 작은 금발 아이.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체격으로, 푸른, 마치 인형 같은 눈동자로 나를 글썽글썽 올려보고 있었다. 입가는 의지가 강한 듯 단단히 다물어져 절대로 떼어놓지 않아.....라는 느낌으로 힘을 줘 허리에 손톱을 세운다.


「아팟, 아프다니까」

「오빠, 누구?」

「미아?」

「잠깐, 무슨 일인데」


  애들도 놀라서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작은 인형 같은 소녀를 억지로 떼어놓지도 못하고, 나는 놀란 채 아픔을 참을 뿐.
  그리고 게다가......


「세리, 오오, 뭘 하는 거니? 죄송합니다, 아이가 폐를 끼쳐서」

「어? 로리스 선생님」

「응, 사쿠라 양인가요?」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 사쿠라가 보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자, 거기에는 키가 큰 어른이 서 있었다. 조금 얇은 두발, 일본인....치고는 피부가 약간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 크고 높은 코. 사람이 좋아 보이는 중년 남성으로, 정말 곤란한 듯한 상태로 당황하고 있다.


「아팟, 아파....근데 사쿠라, 아는 사람?」

「뭐어!? 전에 조회에서...... 진짜, 5학년 선생님이라구. 하프라고」

「아키라.......」

「증말....... 이쪽이 부끄러워져.」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노출되면서도, 나는 허리에 매달리는 소녀를 어떻게든 달랜다. 말없이 그저 응시하는 금발 소녀――세리라고 불린――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생긋 미소 짓는다. 그러나 놔주지 않는다.
  부친의 호소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을 올려보고 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세리 짱. 저기, 좀 아픈데」

「아니야.」


  뭐가 싫었던 건지, 꼬옥하고 불만스러운 듯 손톱에 힘을 주는 소녀. 의지가 강한....게 아니고, 이건 엄청 제멋대로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뭐가 아닌데?」

「이름. 나, 세리실이라고 해. 자, 불러줘」

「세리.....실?」


  소녀에게 들은 대로, 나는 불쑥 중얼거린다. 만족했는지, 생긋 미소 지은 뒤 팔을 떼어놓는 금발의 소녀. 서양인형 같이 귀여운 얼굴,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완벽한 백인 아이다.
  처음으로 만났을 터인데, 그러나 어딘가 그립다. 세리실, 이라는 단어의 소리를 입으로 내자, 마치 익숙해진 것처럼 느꼈다.
  펄떡펄떡하고 미안하듯 달려오는 선생님, 옆에서 놀라 뭔가 말하는 사쿠라나 코이, 신에자키. 하지만 그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나는 단지 세리실이라고 자칭한 금발 소녀와 서로 마주본다. 그 푸른 눈동자 안쪽.... 뭔가, 불가사의한 빛이 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