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끔 번역물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2ndboost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하치만「그 뒤」

2014. 11. 6. 17:46 | Posted by 2ndboost

 

 

 

뒤집는 것 같은 건 없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 한 번 정해진 것을 뒤집는 것은 잘못됐다.

 

그런 행동은 할 수 없고, 무엇보다 그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행동이 용인되는 것은 제 3자가 갑자기 해결책을 내지 않는 한 있을 수 없고, 우선 제 3자가 오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러니까, 벌인 거다. 후회는 있지만, 고집도 있다.

 

분명 너무 많이 원했다. 가득, 흘러넘칠 정도로 바라서.

 

그래서 흘러넘쳤다.

 

 

 

 

 

아침이다. 아니 아침이라고 말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찍 일어났다.

 

악몽을 꾼 탓일까, 식은땀이 엄청나다.

 

창밖은 아직 어둡고,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로등 빛으로 보이는 전선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바람이 조금 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머리가 멍한 탓인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질질 끌어 세면소로 간다.

 

찬 물로 얼굴을 씻고, 타올로 얼굴을 닦고 거실로 나온다.

 

힐끗 시계를 보니 아직 5시였다.

 

이래서야 코마치도 일어나지 않겠지.

 

우선 우유를 전자레인지로 데우고, 그 사이에 내 방으로 돌아가서 갈아입기로 했다.

 

소부고 교복을 입고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마침 우유가 잘 데워진 것 같다.

 

커피가 없었지만 뭐, 졸음은 세수하면서 날렸으니까 괜찮겠지.

 

우유를 가지고 테이블에 가서,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우유를 두 세 모금 훌쩍 마신다.

 

약간 뜨겁다, 너무 데운 것 같다.

 

후우후우 하면서 마시고 있는데, 거실 문이 열렸다.

 

 

어라? 오빠 일어났었어?

 

 

코마치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졸린 듯이 눈을 비빈다. 귀엽다.

 

 

아아, 그래

 

 

코마치가 약간 시선을 내리고 말한다.

 

 

오빠, 진짜 완전 평소 대로네

 

아니, 언제나 똑같겠지, 평소대로가 아니면 평소대로라는 말이 의미가 안 통할 테고

 

 

어떻게든 좋은 말이 잇달아 입으로 나온다.

 

내가 생각한 말인데 타인의 입에서 무심코 나온 말처럼 들린다.

 

 

통한다(道理)든가 대로()라든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구...

 

道理(どうり) (とおり) 발음이 비슷함을 이용한 말장난

 

 

코마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코마치가 시선을 원래대로 돌리고, 나를 보았다.

 

 

저기...말야, 역시 유키노 언니...

 

 

코마치가 불쑥 말했다.

 

 

유키노시타라면 평소 대로다, 코마치가 걱정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슥슥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코마치가 또 입을 열었기 때문에, 아직 앉아있기로 했다.

 

 

아까 전에는...말야, 평소대로라고 했는데... 그런 건 아니라구... 왜냐면 오빠, 왠지 괴로워 보이는 걸...

 

그럴 리 없다고.

 

 

그 뒤 어쩐지, 엄청 쓸쓸해지고, 할 일이 있다고 집에서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혼자 있는 것은 익숙해졌을 텐데.

 

울고 싶다든가 슬픔과도 또 다른, 허무감이 있었다.

 

자전거를 오로지 젓는다.

 

자전거 바퀴를 계속 돌렸더니 어느 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이런 경륜 선수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될 수 없지만.

 

자전거를 주륜장에 놓고 걸으면서 핸드폰으로 몇 시인지 확인하자 아직 7시 전이었다. 그리고 연락도 없었다.

 

자전거를 세워 열쇠를 잠그고, 교사로 향한다.

 

교사에 들어가자 당연이라고 해야 할지, 고요했다.

 

학생들의 소란에 싸이지 않은 교사는 조금 외로워서, 항상 음울하고 소란스러운 주변의 혼잡함도 이 학교의 일부인 것을 알게 된다.

 

신발장을 향해 걷고, 신발을 벗어 실내화로 바꿔 신는다.

 

그대로 신발을 넣고 교실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걷는 도중에 교실 열쇠가 잠겨 있을 거라는 것을 눈치 채고, 열쇠를 가지러 방향을 돌린다.

 

열쇠가 있는 곳까지 가서, 교실 열쇠를 찾는다.

 

없다.

 

아마 카와뭐시기가 교실에서 공부하기라도 하는 건지. 아침부터 수고 많으십니다.

 

그리고 돌아가려고 눈을 약간 옆으로 돌렸더니, 어떤 열쇠가 눈에 들어왔다.

 

봉사부 열쇠다.

 

나는 열쇠를 손에 들고 부실로 향하고 있었다.

 

왠지 아무도 없으면 옛날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스탤직한 기분에 잠기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뭔가가 바뀐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부실로 향하고 있었다.

 

추운 것은 아니지만, 몸을 떨면서 걷는다.

 

그리고 무실 앞에 서서, 문을 당기자,

 

거기에는, 방이 있을 뿐이었다.

 

아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예전에 있던 사람이 없어서 예전을 알기 시작한다.

 

우리들이 있던 곳이 소중한 게 아니라, 우리들의 관계가 소중한 것이다.

 

뭔가 눈에 익은 방인데, 다른 장소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문득 정신 차리자 시간이 많이 지나고 있었다. 이래서야 카와뭐시기는커녕 토베조차 올 시간이다. 아니 모르겠지만.

 

약간 으스스 추운 복도를 향해 부실에서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우선 열쇠를 갖다 놓으러 가야 한다.

 

창에서 비치는 태양 빛이 눈부셔서, 눈을 아래로 향한다.

 

뭔가 가슴 안쪽이 뒤엉킨듯한, 그러면서도 뭔가 없어진듯한 느낌이 들어, 그것을 뿌리치듯이 약간 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나는 빨리 걷기를 그만두었다.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보았더니 부실은 더 이상 안 보이게 되어 있었다.

 

그 뒤, 열쇠를 돌려놓고 교실로 돌아간다.

 

역시 시간은 빠듯했다.

 

몰래 교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토츠카가 나를 눈치 채고 다가온다.

 

귀여워. 천사. 토츠카와이. 오히려 여신.

 

 

하치만, 좋은 아침이야

 

그래, 좋은 아침

 

 

토츠카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인사할 때 친구가 느는군!

 

 

...하치만? 어쩐지 이상한데?

 

 

토츠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 그 말에, 나는 철렁했다.

 

 

왠지 무리하는 것 같아.

 

 

왠지, 무리하게 밝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이런 이어질 말을 상상해버린다.

 

실제로 토츠카는 다른 말을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게 무서워서.

 

네가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 것은 부서져 있고, 너는 부서지지 않은 척할 뿐이라고 들이미는 것 같아서.

 

그래서야 완전 어릿광대다.

 

그래서 나는 명확한 거절을 품고 친절하게 대답한다.

 

 

그럴 리 없다니까. 신경 쓰지 마

 

 

그 뒤 나는 왠지 수업을 들을 마음도 생기지 않아서, 자거나 멍하니 했다.

 

 

 

 

................................................

 

 

 

 

방과 후가 되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교실 내에서 울리고, 오늘은 뭐하지 라든가 어디에 모일까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그 중에서 하야마 그룹의 이야기 소리는 잘 들린다, 그나저나 토베 시끄러.

 

 

...그래서 오늘 어디 간다고 했지? 이게 있댔나?!

 

 

있다니 무슨 소릴까, 주어를 말했으면 한다.

 

토베가 너무 시끄러워서, 하야마 그룹 쪽을 본다.

 

 

아니, 동아리 있잖아...

 

 

하야마가 토베에게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한다.

 

토베 까먹은 거냐, 바보냐고.

 

 

... 맞다! 아니- 까먹었어!

 

 

바보였다.

 

더 이상 귀를 기울여도 토베가 바보라는 정보 밖에 얻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의식하지 않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려고 한다.

 

시선을 돌리려고 한 순간 유이가하마와 눈이 마주쳤다.

 

유이가하마는 순간 굳어지고, 바로 눈을 딴 데로 돌린다.

 

뭔가 거북해져서 참을 수 없던 탓에, 교실에서 나온다.

 

복도를 걸어서, 자판기로 향한다.

 

요즘은 봉사부에 가기 전에 블랙커피를 마신다.

 

MAX커피가 맛있지만, 블랙커피의 씁쓸함은 여러 가지를 흘려 넣어, 가슴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 준다.

 

거기에 커피를 마셔서, 커피 냄새에 가려 홍차 향기가 나지 않을 뿐이라고, 평소대로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억지로 납득할 수 있다.

 

그래서 부활동할 때는 평소대로 보이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

 

아침에는 연기라는 말이 들이 밀어오는 것은 싫다고 거부했는데, 연기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그것도 어딘가에서 거부하고 있다.

 

모순이 아니라, 마음의 엇갈림이다.

 

그렇기 때문에 괴롭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냅시다.

 

 

날이 기울기 시작하고, 이제 곧 어두워지려고 할 즈음에 유키노시타는 말했다.

 

나는 대답이라 할 수 없을 정도의 나사 빠진 대답을 하며 일어서서 책을 정리한다.

 

그런데 복도에 나가려고 했더니 갑자기 유이가하마가 소리를 질렀다.

 

 

힛키-! 저기...말인데

 

뭐야?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른 후의 독특한 정적을 남기지 않게, 혹은 말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유이가하마는 바로 대답했다.

 

 

힛키, 는 말야...

 

 

하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결국 유이가하마의 노력은 허무하게도, 정적이 공간을 지배한다.

 

 

...볼 일 없으면 돌아갈 건데

 

 

나도 뭔가에 화난 것도 아닌데 유이가하마를 재촉하는 듯한 말을 해버린다.

 

정적이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무섭겠지.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니까. 쓸데없는 일을 생각해버리니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그럼 간다, 이만

 

 

결국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자기로 했다.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뒤집는 것 같은 건 없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분명 한 번 정해진 것을 뒤집는 것은 잘못됐다.

 

그런 행동은 할 수 없고, 무엇보다 그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 행동이 용인되는 것은 제3자가 갑자기 해결책을 내지 않는 한 있을 수 없고, 우선 제 3자가 오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그런 게 허용되는 것은 소설뿐이다.

 

이 세계는 동화 같은 게 아니라, 나는 당사자다.

 

사람은 무력하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기가 막힐 정도로 무력했다.

 

적어도 세상에 책임을 전가할 정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