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가끔 번역물을 올리는 블로그입니다.
2ndboost

태그목록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http://novel.syosetu.org/38226/




  어릴 적 Ⅱ ~태양 빛~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어머니가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벚꽃이 다 떨어지기 직전, 한 장만 남겨진 꽃잎이 생명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신록에 둘러싸여 왠지 쓸쓸하게 흔들리고 있었을 무렵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세 명이서, 휴일에 공원에 놀러가기도 했던 때입니다. 그 주에는 부모님이 매우 기분이 좋아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점심을 먹고 있던 중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아카네, 동생이 태어난단다.」


  저는 그때까지, 별로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같은 유치원에 형제나 자매끼리 다니는 애들은 사이가 좋아서 즐거워 보이네, 정도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유리 상자 너머로 보는 정도의 느낌이며, 결코 부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동생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저는 왠지 매우 소중한 것을 얻은 기분이 들어서, 아직 별로 부풀어 오르지 않은 어머니의 배를 만지며, 「안녕」이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바쁜 나날이 지나갔습니다.

  할아버지는 둘째 손자가 태어난다고 듣자, 기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중히 여기려무나」라고 말하면서,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가시고 나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는, 제가 놀러 갈 때마다 눈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친구를 소중히 하렴, 물건을 잘 다뤄주렴 이라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의 배가 점점 부풀어가자, 부모님은 정기 검진을 갔다 와서 모자 모두 건강하다고 제게 전했습니다. 하경에는 배 안에 있는 아이가 남자애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제가 쓰던 유모차를 남아용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저대로, 좀처럼 누나로서의 준비를 하지 못해서, 누나동생이 같이 유치원에 다니던 애한테,


「남동생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녀는 「울기 잘하고, 시끄러울 뿐이야.」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것은 가족 얘기를 할 때 특유의 표현 같은 것이고, 실은 매우 소중히 여기며 잘 돌봐준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해봐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자는 동안에 이불 안에서 어머니에게 물어봤습니다.


「누나라는 건, 뭘 하면 되는 거야?」

「별로 특별한 건 안 해도 된단다. 단지 가족으로서 사랑해주면 돼. 딱히 누나라고 해서 뭔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같이 있어주면 된다는 말이야?」

「그래. 하지만 아카네는 여자애니까, 언제까지나 같이 있는 것도 아니야.」


  거기서 어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이 담홍색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는,


「......그러니까, 가족으로 있기 위해서 노력할 것. 같이 있을 수 없어도,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해.」


  그 말을 열심히 들으며, 제 나름대로 상상해봤습니다.

  상상 속의 저는 초등학생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동생은 유치원만한 나이였습니다. 역시 남자애니까 전대물이나 히어로를 동경하겠지요. 저는 남동생의 소꿉놀이 상대를 하면서도, 가끔 지루해집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며, 끝까지 놀아줄지도 모릅니다.


「......응, 즐거워졌어.」

「어머, 그러니?」


  그리고 나서 이불 속에서 어머니와 둘이 웃으며 다가붙습니다. 옆에서 자던 아버지가 의아한 듯이 여기를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즐거움의 성질이 어떤 건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그 이후로 일상을 보내갔습니다.

  계절이 하나 지나,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남동생은, 어머니의 배 안에서 생이 끝났습니다.


―――――――


  그 날은 가을치고는 꽤 시원하고, 뜰에 있는 화분에 작은 서리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부엽토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보니, 삭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습니다.

  3일 정도 전부터 몸 상태가 나빠져 입원했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와서는 비통한 표정으로 남동생의 죽음을 알리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일단 아버지가 설명해주셨지만, 아이인 저에게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웃는 어머니가, 「미안해」라는 말을 오열과 함께 쏟아냅니다. 병원에서 같이 돌아온 아버지는 달래듯이 어머니의 등을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면서, 제 안에서 실이 끊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확실히 그 실은 팽팽히 뻗어서 내 감정을 잇고 있었을 텐데.

  남동생이 생기기를 기대했었습니다. 나이는 조금 차이나지만, 제 나름대로 열심히 돌보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안에 서서히 그가 있을 곳을 쌓아 올려, 확실히 그 부분을 크게 잡았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해도, 미련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제 안에서 길러지던 것은 남동생의 죽음과 동시에 전부 불타버리고, 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동생이 있을 곳이 사라졌는데도, 마음은 침착해서 더 이상 닿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손을 뻗으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 감정보다, 그가 태양 빛을 받지 못하고 무명의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보다, 어머니가 눈앞에서 우는 쪽이 훨씬 슬펐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은 살아나지 않고, 어떻게 해야 어머니가 울음을 그쳐주는지 몰라서, 어머니가 항상 해주시듯이 몸을 껴안았습니다.


「아카네, 미안해. 이렇게나 기대해줬는데」


  어머니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울지 마.」


  그날 밤은 오랜만에, 가족 세 명이 저를 사이에 끼고 같이 잤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나 뒤척이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확실히 가족이 거기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잠시 후 겨우 잠들 수 있었지만, 한 밤 중에 화장실에 가려고 이불에서 나왔습니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비틀비틀하며 걷고 있는데, 밤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소리에 뒤섞여 아기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아기가 자주 내는, 주변을 향해 마구 소리치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단지 제게 호소하는 듯한 울음소리였습니다.

  아기가 우는 이유는, 뭔가를 호소하기 위해서라고 어머니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호소하는 걸까 생각하자, 곧바로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침실로 돌아왔습니다.

  미끄러져 들어가듯이 이불에 돌아와 울음소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아도, 작은 틈새로 울음소리가 흘러 들어와서 제게 말을 겁니다.

  왜 울어주지 않는 거냐고. 왜 내가 죽었는데 외롭다고 생각해주지 않는 거냐고, 단 하나 있는 누나인데, 그런데 왜 너는.

  아무리 힘내도, 머릿속에 달라붙는 소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눈이 선명해지기까지 하면서 한층 더 심해졌습니다.

  이윽고 견딜 수 없게 되어 부모님을 깨우려고도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마음 고생하는 두 분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혼자 현관 바깥에 가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가을의 긴 밤은 으스스 춥고, 세차게 부는 바람이 옅게 입은 제 몸을 차게 했습니다. 이웃집은 모두 잠들어서 등불이 전혀 없어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중에, 제 기억에 기대어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실은 밤에 밖으로 나가는 건, 무서워서 하지 않습니다. 도깨비나 잘 모르는 요괴를 당시에는 믿어서, 밤이 되면 밤거리를 활보한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리를 내버려두면, 도깨비보다 좀 더 무서운 뭔가를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큰 공포심으로 작은 공포심을 눌러 참고 발을 움직였던 것입니다.

  간신히 그곳에 도착하자, 거기에는 2개의 황금빛을 띤 눈동자가 떠올라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칠흑 같은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점차 눈이 익숙해지니, 어둠에 녹아들어 윤곽이 희미해진 검은 고양이의 몸이 간신히 보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입을 움직입니다. 예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고양이의 울음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경직되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고 조금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안도했던 것도 한순간으로, 그 검은 고양이의 두 눈동자가 저를 완전히 붙들어 매고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제 안에 있는 텅 빈 곳을 지적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무서워져서 이불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불 속에서 부모님의 따스함에 싸이며, 제 자신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빈약한 어휘를 필사적으로 써서, 얼마 안 되는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마음이 평온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겨우 대답이 나왔습니다.

  요컨대 저는, 사람에 대한 집착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론이 나오고 나서 곧장 날이 밝아, 저는 태양 빛을 흠뻑 쬐었습니다.



  http://novel.syosetu.org/38226/


 


  키리바나 아카네
 

  어릴 적 ~흑백 필름의 기억~




  반짝반짝하게 닦인 자동문을 빠져나가자, 눈부신 세상이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조명에서 눈을 가늘게 뜰 정도로 선명하고 강렬한 빛이 넘쳐 나와, 층 일대를 물들이고 있습니다. 가지런하게 진열된 고급스런 양복이나 유리함에 담긴 반지나 목걸이는, 어린 제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그것이 여기저기에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강의 물살처럼 항상 끊이지 않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나가, 이웃의 아저씨나 유치원의 선생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제 손을 잡는 부모님의 손이 평소보다 믿음직스러워 보여서, 왠지 대단한 곳에 왔던 거라고,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처음으로 간 백화점은, 신선한 기쁨과 미지에 대한 흥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백화점이 어떤 장소인지 몰랐고, 부모님에게는 큰 슈퍼라고 밖에 듣지 못해서, 좀 더 조촐하고 아담한 곳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머릿속에 그리던 경치와 눈앞에 퍼진 경치의 차이에 매우 기뻐서 난처한 듯이 웃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을 끌어당기며 백화점 안을 돌았던 것을 잘 기억합니다.

  아버지 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왔습니다만, 부모님은 그 예정을 뒤로 하고 여러 곳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그것은 묘한 광택을 내는 만년필을 취급하는 문구점이나, 일상복보다 매우 좋은 아동복이나, 몹시 공들인 세계 각국의 장난감을 파는 가게 등으로, 그것들은 정말 재미있는 가게뿐이었습니다.

  물론 무엇 하나 사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단지 보고 손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서, 그야말로 눈을 빛내며 가게 하나하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가 대강 만족스럽게 돌아보고 나서, 드디어 부모님이 살 물건을 사러 신사복 판매장으로 갔습니다.

  그 무렵의 아이처럼 예외 없이 호기심이 왕성했던 저는, 새로운 것을 보면 빙빙 빨려 들어가는 귀찮은 성질이 있어서, 문득 부모님이 한눈을 판 틈에 또 다른 가게로 발을 옮기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가게 몇 군데를 돌았습니다. 전혀 모르는, 그러면서도 보석 상자 같은 이곳은, 저를 지루하게 하는 일 없이 눈부신 세계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스포츠 용품 판매장에서 질려서 나왔을 때, 저는 겨우 자신이 부모님과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몇 번인가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렸던 것은 기억나지만, 제가 지금 몇 층에 있는지 그리고 신사복 판매장이 몇 층에 있었는지 같은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혼자되어서 마침 잘 됐으니, 방금 전 갔던 가게를 한 번 더 도는 것도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게 끌릴만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우선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왁스를 듬뿍 써서 닦은 벤치는 등받이가 없어서 안정감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가 나쁘게 양손으로 턱을 괴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미아가 되었을 때는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편이 좋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가르침을, 겨우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허리가 조금 구부러진 노부부, 향수와 오 드 콜로뉴 향을 나게 하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 누이와 동생을 데리고 가는 부모자식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누구나가 많든 적든 입가에 미소를 띠며, 얼굴이 풀어져 있습니다.

  아이이면서도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분명 누구라도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는 곳이며,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이 따스한 기분을 찾아서 여기에 오는 거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보고 있을 뿐인 저도 왠지 기쁜 마음이 들어서 분명 그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어서라든가, 그 애는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든가, 그런 상상을 하며 입가에 절로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있자, 멀리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소리에 다소 절박함이 섞여 있었지만,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로 저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이 감동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멋진 곳에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오로지 그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렸던 저는 좀처럼 감사의 말이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이 뒤죽박죽하는 동안에, 저는 부모님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찾아내자, 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안심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윽고 두 분에게 다다르자,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어머니는 저를 꼭 껴안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껴안는 힘이 세서 조금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제 기쁨을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전하려고 말을 찾고 있는데, 어머니가 마법의 주문을 뽑아냈습니다.


「혼자 내버려둬서 미안해. 외로웠지?」


  그 말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그런데도 어머니의 품 안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고, 혼자 걸어 다녀 피곤한 이유도 있어서, 곧바로 저는 그 행복감에 싸이면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이런 제가 저로서 있던, 처음의 때입니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21 ~두 명의 무게감~


  키리바나와 사귀고 난 지 일주일이 넘은 일요일, 역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는데 전방에서 야무지게 걸어오는 키리바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10시를 지난 정도에 6월인 이유도 있어서인지 의외로 바람이 시원하다. 이것이 오후에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뿜어져 나올 만큼 격차가 커진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볼 일이라도 끝마쳐두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키리바나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 쪽도 조금 늦게 나를 알아차렸는지, 키리바나는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재촉한다.

 그대로 가서 횡단보도 건널목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 쯤, 자전거에서 내려서 말을 건다.


「여어」

「안녕하세요, 하치만 오빠」


  희미한 핑크색 꽃무늬가 새겨진 미니 원피스에 하얀 가디건을 걸친 키리바나는 약간 부끄러운 미소를 띠고는, 슬쩍 내 옆에 선다.

  역시 상당히 더워졌는지, 키리바나의 옷차림도 엷어졌다. 치마 끝에서 늘씬하게 뻗은 다리가 매우 눈부셔서 무심결에 시선이 밑으로 가고 말았다.

  우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도로 구석의 그늘에 몸을 기대고 한숨 돌린 후에 입을 연다.


「어디 갔다 왔어?」

「네, 잠시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요. 실은 지난 주말에 가려고 했는데, 그게 여러 가지로 바빴잖아요?」

「......뭐 그렇지」


  고백한 당일,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는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에 상관없이 말하려고 생각했으므로 우선은 메일로 보고했다.

  세세한 사항은 월요일이 되고 동아리에서 감사를 포함해서 전할까 생각했지만, 두 명에게 무서운 속도로 바로 나와 키리바나에게 직접 듣고 싶다는 취지의 답신이 왔다. 내 휴일 예정 같은 건 대체로 정해져 있어서 키리바나에게 물어봤더니, 키리바나도 비어 있다고 해서, 토요일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에게 인사를 한 거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이야기에 참가했던 건 정말 초반이고, 여자 세 명의 대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사람이 어떤 고백을 했는지는 흥미진진하게 묻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거, 진짜 부끄러우니까.

  그리고 일요일은 코마치가 데이트라며 키리바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다. 아무튼, 코마치와 키리바나가 사이좋게 있는 건 나로서도 더 바랄 나위가 없는 것이라 그대로 배웅했다.


「하치만 오빠야말로, 지금부터 어디 가세요?」

「아아, 잠깐 책이라도 사러 갈까 해서.」


  그러고 보니 5월에도, 비슷한 대화를 했지. 뭐, 내가 밖에 나가는 이유 같은 건 쇼핑 정도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마침 잘됐네요. 하치만 오빠, 지금부터 할아버지 집에 가지 않을래요?」

「별로 상관없는데, 왜?」


  그 집에는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가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도 살진 않지만, 가끔 근처를 지나가도 난잡한 상태는 아닌 걸로 봐서는, 아마도 키누에 씨가 정리하는 거겠지.

  키리바나는 나를 살펴보듯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고는, 말을 계속했다.


「지금까지는 고정 자산세나 여러 사정으로 집을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토지의 구매자가 나타나서 허물기로 했어요.」


  할 수 있으면 고정 자산세보다도 그 밖의 사정을 듣고 싶었는데...... 아니, 고정 자산세도 큰 이유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할아버지의 집에 없어지는 건가. 초등학교 무렵을 보낸 장소인 만큼, 가슴 속이 어딘가 뻥 뚫린 느낌이 든다. 이제까지 있던 것이 없어진다는 건, 사람이나 물건을 막론하고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유품을 정리하고 있어서...... 그래서 혹시 괜찮다면, 서재에 있는 책 중에 하치만 오빠가 좋아하는 책이 있으면, 부디 가져가셨으면 해서요.」

「받을 수 있다면 받겠지만, 그래도 돼?」

「네, 책은 역시 사람에게 읽히는 거니까요. 모르는 사람보다, 가능하면 하치만 오빠나 코마치가 읽었으면 해요.」

「그런가, 그렇다면 받아둘게.」


  확실히 일본문학 말고도, 해외문학이나 철학계열도 생각보다는 갖춰졌을 거다. 초등학생 때는 미야자와 켄지나 나츠메 소세키 등 읽기 쉬운 책 정도밖에 읽지 않았지만, 지금 나이라면 읽을 수 있는 책도 좀 더 있겠지.

  확실히 미시마 유키오가 상당히 갖춰져 있어서 전부 가져갈까 생각하다가, 키리바나의 손가락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손가락, 왜 그래?」

「......이거 말인가요?」


  가느다랗고 매끈매끈한 손가락이 눈앞으로 내밀어진다. 끈적끈적 손대기는 꺼려져서 조금 떨어져서 보니, 하얀 검지 손가락 끝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여자애답게 귀여운 게 아니고 약국에서 파는 투박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키리바나다워서 조금 귀엽다.


「조금 화상을 입어서요. 그래도 가벼운 화상이라, 큰일은 아니에요.」

「그래? 조심해둬.」

「네. 좀 바보 같은 실패라서 확실히 반성했어요. 다음에는 안 일어날 테니, 안심해주세요.」


  약간 상쾌한 표정으로 키리바나가 말했다.

  아마 요리라도 했을 때 실패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코마치와 같이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둘이 작은 화상이나 베인 상처는 입곤 했었지.

  요즘은 상당히 안정됐지만, 가끔은 이런 일도 있을 것이다. 나도 뜨거운 물을 버릴 때 실패할 때가 있으니까.


「......좋아, 그렇다면 할아버지 집으로 가볼까?」

「네」


  키리바나가 대답하고 그대로 경쾌하게 걷기 시작해서, 팔을 잡아 멈춘다.


「......키리바나, 잠깐 기다려봐.」


  손바닥에서 키리바나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전해져서 허둥지둥하고 있자, 키리바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돌아본다.

  마침 뒤돌아보는 미인과 같은 구도가 되어, 키리바나의 눈동자와 마주친다. 그러자 부끄러움이 머리위로 올라와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볼 수 없어져 무심결에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튼, 뭐지?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좀 거리가 있잖아?」

「네, 조금이지만요.」


  키리바나는 감이 오지 않았는지, 물음표를 띄우며 엉뚱한 대답을 했다. 팔을 뿌리치지 않고 우두커니 있어서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듯하다.

  ......아아 젠장, 왜 이 녀석은 이럴 때만 알아채지 못하는 걸까.

  목소리가 약간 높아지며, 다른 방향을 보면서 말한다.


「그러니까 저거다. 키리바나가 짐받이에 타서 가면 걸어가는 것보다 빨리 도착하니까. ......아무튼, 타」


  말한 순간에 불이 붙을 정도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울리지 않는 대사지만, 모처럼 이런 관계가 됐으니, 이 정도는 해도 벌은 받지 않겠지.

  처음에는 멍하니 있었지만, 이윽고 한 여름의 푸른 하늘처럼 아름답게 웃고는, 「그럼, 실례합니다.」라며 한 마디 하고나서, 살짝 짐받이에 앉았다.

  평소보다 무거운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몰기 시작한다. 장마철의 습기 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힌다. 목을 돌려 살짝 뒤를 보자, 키리바나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누르면서도, 기분 좋은 듯이 있었다. 가끔 균형을 잡으려는 듯이 옷을 잡아당기는 것이 조금 낯간지럽다.

  눈 익은 풍경이 빨리 흘러가는 중, 등 뒤의 키리바나가 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치만 오빠. 그러고 보니, 하나 말하는 걸 잊은 게 있어요.」

「뭔데?」

「의외로 저, 일본식 옷이 잘 어울린답니다?」

「그, 그래......」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모르고, 어중간한 대답이 되고 말았다. 원래 키리바나는 흑발이 잘 어울리니, 일본식 옷이 어울리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키리바나는 내 대답을 개의치 않고, 뭐가 재미있는지 쿡쿡하고 웃으며 내 등에 머리를 기댄다.

  ......뭐, 다음 달 정도에 여름축제나 불꽃놀이라도 가서 키리바나의 유카타 차림을 볼 수 있기를 빌자.

 올려다 본 하늘에는 곳곳에 장마구름이 떠 있다. 바람으로 흘러가는 비늘구름이 태양 가장자리를 가려, 깊이 스며들 듯이 침식해가자, 타는 듯한 햇볕이 차단되어 미적지근하고 축축한 느낌이 덮쳐온다.

  장마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여름이 오는 건 조금 더 걸릴 것 같다.




========================================================================




  작가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1부가 끝나게 됩니다. 1부는 하치만 시점으로, 하치만과 아카네가 사귀게 될 때까지를 썼습니다.

  1부라는 말은, 물론 2부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주의점이라고 하니 호들갑스럽지만, 2부부터는 화자가 바뀌어서 아카네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때문에 1부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정진해나갈 테니 앞으로도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 편에서.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20 ~그리하여 두 명은 이곳으로 돌아온다~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와 친구가 되고 난 지 이틀 뒤의 방과 후, 아직 태양이 높이 솟아 주홍색으로 물든 이 마을 한 가운데를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이 시간대라면 키리바나는 코마치와 같이 하교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적인 경로는 상상이 된다.

  달리는 동안에 절로 숨이 벅차간다. 칠칠치 못하게 살아 온 내 몸이 비명을 지르고, 심박 수가 점점 빨라져간다. 하지만 그게 기분 좋다.

  물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는 불안감을 덮는 사실이 자꾸자꾸 나오고 있었다. 그건 오랜만에 키리바나와 얘기할 수 있는 것이나, 며칠 전의 개인적으로 좋은 소식 등인데, 그렇게 사소한 일이 자신의 버팀목이 되는 것이 왠지 우습다.

  10분 정도 달려서 모교로 이어지는 노선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나서 몇 개 정도의 교차점을 지나, 하나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교차점에서 발을 멈췄다.

  중학교에서 돌아가려면 다소 여러 군데를 지나친다 해도 여기로 가는 게 가장 좋다. 역 방면까지 갈 일이 없다면, 저 녀석들은 반드시 여길 지나갈 거다.

  근처에 있는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른다. 교복 너머로 콘크리트의 한기를 느끼며,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본 적 있는 교복을 입은 사람이 몇 명 정도 지나갈 뿐, 키리바나와 코마치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 오는 게 약간 늦었던 걸까. 수업이 끝나고 나서 바로 학교에서 나왔지만, 필연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미 집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다리는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당분간 어루만지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내내 서있는데, 빛에 주황색이 조금 섞이기 시작할 무렵 겨우, 키 차이가 나는 2인조가 걸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투명한 오후 햇살 아래서, 키리바나의 어깨까지 자란 흑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머리카락 몇 올이 떠서 그 하나하나가 빛을 받고 금빛으로 빛나, 키리바나의 단정한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아직 멀어서 그런지, 둘은 나를 눈치 채지 못한 채로 걷고 있었지만 교차점에서 5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겨우 나를 알아차렸다.


「......여어」


  할 수 있는 한 자연스럽게, 담백한 어조로 말을 건다.


「오빠......」

「안녕하세요, 격조했습니다.」


  키리바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바로 딱딱한 인사를 하며 살짝 숙이고는 멈춰 선다.

  오랜만...일 정도는 아닌데. 일요일부터 세면 5일밖에 안 지났다. 코마치와 놀 때 집에 오지 않는 때도 많이 있어서, 이 정도로 얼굴을 못 보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긴 닷새였으리라.

  키리바나의 시선과 얽힌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으로, 키리바나는 바로 거북한 듯이 얼굴을 피했다. 그것에 조금 상처받으면서도 옆에서 불안한 듯이 있는 코마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코마치, 잠시 키리바나를 빌려도 돼?」

「응! 좋아! 되도록 빨리 돌려줘.」


  코마치가 바로 대답하자, 「아, 저기 두 분 모두, 저는 제 것이니까요.」라는 공허한 반론이 들렸다. 완벽한 정론이지만 닮은 오빠와 여동생은 보기 좋게 무시하고, 둘이서 눈을 맞추고 있었다.

  가족 특유의 걱정하는 감정이 코마치의 눈에 떠올라 있다. 그것에 대답하듯이 불손하게 웃어 보이자, 코마치도 얼굴에 미소를 짓는다.

  코마치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키리바나를 보고는, 「그럼 아카네, 마침 좋을 때니 나중에 또 봐」라고 말했다. 뭐가 좋다는 걸까.


「아, 응...... 또 봐」


  키리바나의 어중간한 대답을 만족스럽게 들은 코마치는, 내가 왔던 길로 가서, 그리고 조금 물들기 시작한 주택가로 사라져갔다.

  코마치가 완전히 안 보이게 되었으므로, 한 걸음 내디뎌서 키리바나에게 다가간다. 키리바나는 난처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물쭈물 한 상태로 몇 번이나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로  나오는 일 없이 바로 자동차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오랜만이에요. 하치만 오빠.」


  키리바나는 갈팡질팡한 끝에, 이번에는 조금 부드럽게 인사했다.


―――――――


  5년 전까지 매일매일 걷던 통학로는, 내가 고등학교로 올라간 사이에 상당히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공터가 많아서 왠지 쓸쓸함을 느끼게 한 이 부근은, 지금은 개발되어 그 대부분을 획일적으로 늘어선 주택이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아스팔트 포장 뿐이었던 길도 도로 폭을 넓힘과 동시에, 보도블록과 곡선이 많은 가로등, 가로수 등이 새로 설치되어 옛날과 같은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번화했다.


「아, 저기, 하치만 오빠. 어디에 가나요?」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가 머뭇머뭇 물어본다.


「아니, 단지 이 근처를 걷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의 걸음은 평소보다 약간 느려서, 나도 걷는 속도가 절로 느려진다.

  점점 배를 젓기 시작한 태양이 세상을 선명하게 물들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그림자도 길게 뻗어간다.

  출렁이는 그림자를 밟으며, 제일 먼저 하려고 한 말을 입으로 낸다.


「......전에는 미안하다. 어리광이 너무 심했어.」

「아니요, 제 쪽이야말로 죄송해요. 너무 감정적으로 됐어요.」

「왜 네가 사과해?」


  그런데도 진지한 표정으로 「아니요, 저도 사과해두고 싶었어요.」라고 말해서, 할 수 없이 받아들인다.

  묘하게 성실하다고 할까, 이 녀석, 예전부터 잘 모를 이유로 사과한다.

  신흥 주택지를 빠져나가자, 완전히 바뀌어 전원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그마한 밭과 논뿐이다. 어렸을 때는 매우 크게 느껴졌지만, 이렇게 자라서 보니 상당히 작다.


「여기는 별로 변함없구나.」

「그러네요. 하지만 논이나 밭을 엎고 집을 세우는 것도, 풍치가 없어요.」

「그래? 발전해서 정리되면 좋잖아.」

「발전했다고 해서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새로 사는 사람들뿐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원래 살던 사람은 성가셔할지도 몰라요.」

「......」


  주홍색이 이 일대를 하나의 색으로 물들여가는 것과 동시에,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로 가득 차간다.

  입 안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되지 않게 말을 머릿속에 띄워간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이야기했을 때와 같은 질문을 한다.

  발을 멈춘 키리바나는, 눈동자에 의심과 경계를 띠며 탐색하듯이 나를 들여다본다. 그 눈동자가 일전의 데이트 때와 매우 비슷해서 등골이 떨린다.

  잠시 동안 서로 바라본 뒤, 키리바나의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오고, 입을 열었다.


「......네, 외롭지 않아요.」


  그 표정은 역시, 그 때와 변함없어서 절로 가슴이 조여 온다.


「원래 그래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혼자 있어도, 저는 그다지 다를 게 없어요.」

「그래...... 원래 그런가」

「네, 원래 그래요.」


  어딘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듯이 미소 지으며 키리바나가 말했다.

  원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성격을 바꿀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적어도, 친구 정도는 만들려고 행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키리바나의 말을 듣고 나는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러니」

「저기, 키리바나」

「네? ......아, 네」


  말이 끊겼음에도 의리 있게 키리바나는 대답했다. 다만, 약간의 불만이 표정에는 남아서 입을 뾰족 거릴 뿐이다.

  그 얼굴을 보고, 고동소리가 자꾸자꾸 격해진다. 하지만, 그건 긴장이 아니라, 가슴이 뛰기 때문이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나는 이 말을 오래 전부터 키리바나에게 하고 싶었다.


「나는 널 좋아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두지 않을 테니, 항상 옆에 있게 해줘.」


  나는, 키리바나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물론 그런 마음도 틀림없이 있지만, 그럼에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따로 있다.

  나는 단지, 키리바나가 혼자가 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키리바나가 그대로,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아도, 변함없어도, 단지 곁에 있고 싶다.


「......!?」


  우리들 사이를 바람이 빠져나간다.

  키리바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그야말로 허를 찔린 듯이 매우 놀라 있었다. 서서히 뺨이 빨갛게 물들고, 손을 꽉 쥐며 필사적으로 뭔가를 참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참지 못했는지 입술이 움직이고는,



「아하하하하!」



  라며 물줄기가 터진 듯이 웃기 시작했다.

  ......어이, 잠깐. 지금 웃을 장면이야? 「이 사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같은 시선으로 보일 각오까진 했지만, 이런 반응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평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웃음소리에,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 있나? 하는 식으로 빤히 본다. 하지만 키리바나는 그런 염치없는 시선도 아랑곳없이 몸을 く자 모양으로 굽히고 정말로 우스꽝스럽다는 듯이 계속 웃었다.

  그대로 잠시 동안 기다렸지만, 키리바나의 웃음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되어, 배를 손으로 누르고 있을 정도다.


「어이, 언제까지 계속 웃을 생각이야?」

「왜, 왜냐면 거의 프로포즈잖아요, 게다가 *소화(昭和)스럽기까지 해요. ......후후」

※ 소화(昭和) : 서기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 연호


「......미안하구만, 낡아빠져서」


  이틀간 진지하게 생각한 결과가 이거다. 아니, 내가 봐도 틀에 박힌 대사라는 건 안다고.


「아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버무리는 건 아니에요.」


  키리바나는 겨우 웃음을 참고, 자세를 바로잡아 등을 바짝 세운다. 그리고 나서 위로 올라갔던 입가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한 순간만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는


「......하지만 그 낡음이, 저는 정말 좋아요.」


  지금까지 중에 가장 눈부신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가슴 속으로 퍼져간다. 그것은 달콤새콤하고, 가슴을 아플 정도로 두드리는데도 어딘가 근지럽다. 그 근질거림을 곱씹으면서, 역시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자각한다.

  그 키리바나는 조금 전까지와는 돌변해서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어깨를 떨면서 작게, 「프로포즈야, 이 바보야」라고 중얼거리며, 쿡쿡거리고 있었다.

  젠장, 바보라서 미안하군.

  하지만 그 즐거운 표정도 길게 이어지지 않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키리바나는 문득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머뭇머뭇 물어본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저는 이대로, 분명 당신이 바라는 사람으로는 될 수 없을 거예요. 만약 하치만 오빠가 없어진다고 해도, 저는 외롭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 녀석은 정말로, 뭐라고 할까. 미사키 군에게 고백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등등,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로 모른다.


「저기 말이다, 난 네가 없어지면 외로워. 그러니 안심해라, 네가 싫어하지 않는 한은, 손을 떼어놓지 않을 생각이라고.」

「후후, 스토커 같아.」


  딱히 부정할 순 없군.

  그래도 생각한다. 키리바나가 아무도 바라지 않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키리바나를 바라지 않아도, 나만은 곁에 있고 싶다고. 오만하고 단순한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게 싫으니까.


「게다가, 너의 맑은 표정은 병적으로 아름다워. ......그러니, 가끔씩은 그런 얼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가요」


  키리바나는 딱딱하면서도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부정했었지만, 나는 키리바나가 혼자 있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됐던 것이다. 내가 한 일이고 완전히 모순됐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도 확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대답을 못 들었는데」

「그러네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가슴에 손을 대며 몹시 취한 것처럼 몸을 흔든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지휘봉처럼 흔들리고, 조금 뒤에 올 여름을 느끼게 하는 바람이 근처 일대를 감쌌다.

  키리바나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말을 자아낸다.


「그럼 부족한 몸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왠지 시집가는 것 같군.」

「아무개 씨가, 프로포즈 같은 고백을 하기 때문이에요. ......자」


  키리바나는 기쁜 듯이 손을 잡고는, 「그럼 돌아갈까요?」 이렇게 말하고는 걷기 시작한다.

  그 부드러움과 무게를 팔로 느끼며, 황혼에서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키리바나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자.

  어처구니없는 일로 웃고, 멋진 일로 기뻐하고, 재미있는 것을 즐기며.

  싫은 일도 많이 있겠지만, 그런데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의 좋은 점을 키리바나와 같이 찾아가자.

  ......그 끝에 키리바나가 그대로였다고 해도, 이 작은 손만큼은 꼭 잡자.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9 ~그리하여 세 명은 시작한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동아리에 가지 않을 것을 유이가하마에게 전하고 빨리 귀가한다. 코마치는 어디 놀러가기라도 했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2층으로 올라가, 방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던지고 침대 위에서 천장을 보며 쓰러진다.

  동아리에 가지 않았던 건 뭔가 볼 일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밖은 아직 밝지만 리모콘으로 형광등을 켠다.

  몇 줄기인가 창백한 빛이 흔들흔들 나부끼는 광경을 보며 머릿속을 정리한다.

  딱히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내일일지 모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키리바나와는 만나게 될 거다. 만약 키리바나가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내가 뭔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대로의 관계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만났을 때 무시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제멋대로인 말을 상당히 많이 했으니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싫다. 그 녀석은 분명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건 싫다.

  따라서 생각한다. 다음에 키리바나와 만날 때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서 제대로 행동한다.

  결국, 문제의 근원은 나와 키리바나의 인식의 차이다. 나는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면 하고, 키리바나는 그렇게 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와 키리바나 어느 쪽이 올바른지는 모른다. 자신 있게 정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에서는 주변에 친구가 없었고 싸워서 헤어진 적도 없다.

  자기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분명 좋을 거라고 말하며 타인에게 강요했던 거다.

  애초에 이상을 강요하는 것만으로도 안 되는데, 게다가 한층 더 잘못을 범하고 말았다.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좀 더 설득력을 실어야만 했다. 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답게, 그리고 나라서 할 수 있는 형태로 전하자.

  ......그렇다면, 왜 나는 키리바나가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랐을까? 아니 틀리다, 난 키리바나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처음으로 키리바나와 만났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이어서 키리바나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리고 바로 지난  번의 키리바나의 표정.

  그것들을 다시 떠올릴 때 가슴 깊숙한 곳이 아파진다. 달콤 씁쓰레함이 입 안에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오로지 생각했다.

  창백한 빛과 벌꿀 색 석양이 복잡하게 서로 섞여, 그리고 석양이 사라져갈 무렵에 겨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생각난 것은 지극히 단순하고 진부하고 어디에나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분명 내 대답이리라.

  그렇게 겨우 다다랐을 때, 두 소녀의 얼굴이 동시에 떠오른다. 불과 두 달 정도 알고 지낸 사이이자, 동아리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둘. 하지만 그 둘에게는 반드시 가장 먼저, 말해야만 하겠지.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니까......


―――――――


「아, 힛키......」

「어머, 오늘은 왔구나. 히키가야」


  심호흡을 하고 힘껏 문을 열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가 눈에 들어왔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교실에서 구구하게 할 말을 음미하고 있었더니 동아리에 가는 게 꽤나 늦어지고 말았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정 위치에 허리를 내렸다.

  평소와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이곳은 4월에 비하면 상당히 따듯해졌다. 아직도 교복이 바뀌지 않아서, 동복인 우리들에게는 약간 더울 정도다.


「그래서 카와사키 군의 건은 어떻게 됐니?」


  유키노시타의 말로 입 안에 쌓였던 것이 흩어졌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까먹었다. 어제는 그대로 돌아갔고 선배는 선배대로 말을 안 하면 보고하지 않을 테니, 얘네들이 몰랐던 건가.


「타이시는 차였다. 선배가 말하기를 사귀기에는 좀 레벨이 부족하대.」

「그래. 그렇다면 카와사키 군에게도 한 번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구나. 이대로 의뢰를 계속할지 어떻게 할지를 확인해야지.」

「그러고 보면 그런가. 아무튼, 포기할지 어떻게 할지는 그 녀석의 마음 나름이겠지.」

「그러네......」


  한 번 크게 숨을 내쉰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새긴 말이다.


「두 가지, 할 말이 있어.」

「무슨 일이야? 힛키,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진지한 표정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같은 동아리, 그리고 반 친구인 것도 관계없다.
 다만 순수하게, 히키가야 하치만 개인으로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무섭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방에게 부정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니까.


「......뭐니?」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춘 유키노시타는 내려뜨린 시선을 든다. 유이가하마도 나를 향해서 의자를 돌리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나는, 키리바나를 좋아해. 아마, 오래 전부터」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아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차분하게 말한다. 말로 꺼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 와 닿았다.


「......그걸, 우리들에게 말할 필요가 있니?」


  유키노시타는 깨끗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이가하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유이가하마가 내게 어떤 감정을 향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마음을,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판단하기에 내 인생경험은 짧고, 거기에 반비례해서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왠지 모르게 상상은 했었지만, 유이가하마의 상냥함을 사춘기 남자 특유의 과도한 자의식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착각이라면 그걸로 좋다. 내가 멋대로 들떴을 뿐이라면, 그저 부끄러울 뿐이며 청춘의 실패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유이가하마의 마음이 내 상상대로였을 경우 역시 결말은 지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단순한 자기만족에 유이가하마를 상처 입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확실히 말해두고 싶다.


「필요한지 어떤지는 몰라, 그래도 말해두고 싶었어.」


  유이가하마는 그 작은 손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조금 밖에 안 보이지만 머리카락 틈새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잠시 침묵한 뒤, 얼굴을 든 유이가하마는 괴로워 보이는 미소를 얼굴에 붙인 채 내게 묻는다.


「......알았어. 그도 그럴게 힛키, 아카네하고만 거리가 가깝고, 자연스럽게 눈길을 주고 있던걸. ......그래도, 왜 지금, 그런 말을 해?」

「결말을 짓고 싶었어. 여러 가지를 다시 보고, 다시 하고 싶어졌어.」


  누군가에게 이상을 거듭해서 강요하는 건 필연이라고 이즈에 선배는 말했다. 그렇게 함에 따라 엇갈리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하나 중요한 말을 하는 것을 잊었다.

  이상을 강요해도 좋은 사람은, 이상을 좇아서 노력하는 사람뿐이다.

  선배는 자신이 원해서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건데?」

「그게 두 번째 이야기가 되는데......」


  준비했던 말이 갑자기 끊어진다. 심장 소리가 둘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그리고 자신을 상처 입힐 것 같이 세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아, 역시 무서운 거다. 거절되는 것이, 미움 받는 것이. 대다수 사람에게 받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것이 막상 친한 사람이 되면 칼날이 예리해진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짜낸다. 비록 고통을 느껴도, 미움 받을지 몰라도 내가 바라는 것이기에.


「.....유이가하마, 그리고 유키노시타. 나와 친구가 되어주지 않겠어?」


  키리바나가 변하길 바란다면, 나도 조금은 변하자. 갖고 싶은 것을, 갖고 싶다고 조르자. 이곳은 긴장이 풀어져서 잠들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러니 제대로 말로 해서 부탁한다.

  시야가 흐늘흐늘 흔들린다. 앉아있는데 평행감각이 출렁거리고, 세상이 천천히 돌고 있다. 그럼에도 두 명의 시선이 꽂힌다.


「......치사해. 힛키. 그런 식으로 듣고 싶은 말이랑 듣기 싫은 말을 같이 말하다니. 너무 제멋대로야.」

「......미안」


  얼마동안의 정적. 하지만 내게는 끝없는 침묵이 찾아온다.

  아아, 나는 정말로 제멋대로다. 유이가하마의 마음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마음을 강요하고 있다.

  지금부터 유이가하마의 입에서 나올 말을 상상하면, 굉장히 무섭다. 완전히 자업자득에, 제멋대로 행동하는 인간의 말로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그린 말은 내려오지 않는다.

  유이가하마는 끼익하고 의자를 내 쪽으로 한 걸음 정도 당기고는 어색하지만, 그런데도 진정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뻐지잖아.」

「...............」


  유이가하마는 또 의자를 한 걸음 당겼다.


「하나만 부탁이 있어.」

「될 수 있는 한 하기 쉬운 걸로 부탁해.」

「......제대로, 아카네한테 고백해. 그러면 친구가 될게.」


  ......아아, 유이가하마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 혹시 다른 식으로 만났다면 반드시 좋아하게 될 정도다.


「......결과는 수시로 보고할게.」

「응, 친구니까 연애이야기 정도는 해.」


  기쁨이 점차 울컥거려 오지만, 아직 기뻐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나는 유이가하마만이 아니라, 유키노시타와도 연결되고 싶다.

  그 유키노시타는 아무 말 없이 우리들의 대화를 쭉 보고 있었다. 평소 그대로 깨끗한 표정으로, 흘러내릴 듯한 흑발과 도자기 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여기에서도 아름답고, 예리한 인상을 흩뿌리고 있었다.

  유이가하마와 같이 끄덕이고서는,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시선이 유키노시타를 향했다.

  유키노시타는 시선이 집중된 것이 순간 난처했는지, 조금만 위를 보고 생각한 뒤에 말했다.


「나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히키가야에 대해서 몰라.」

「......그렇겠지.」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과 대략적인 성격 정도밖에 모른다. 같이 보낸 시간도 그저 약간에 불과하다.


「유키농......」


  유이가하마가 슬픈 듯이 말한다.

  역시 이것만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과 두 달 이내에 친구가 되어주는 유이가하마가 특출 나게 좋은 사람이며, 유키노시타가 보통이다. 오히려 평소 하던 독설을 받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좋은 편에 들어가겠지.


「그러니, 알게 되는 것부터 시작하자. 지금 여기에서 너의 친구가 되는 건 할 수 없지만, 서로를 확실히 알고 나서 쌓아가자.」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제대로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 뒤를 생각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기뻤다.


「아아, 잘 부탁한다.」


  그렇게 해서 오늘, 나는 큰 한 발짝을 내디뎠다.

  모르는 것을 찾으러 가자. 어슴푸레해서 지금까지 손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기쁨을, 감사를, 제대로 이해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그럼, 가볼까?」


  내가 그런 감상에 잠겨있는데,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간다니 어디를?」

「찻집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야. 저기라면 고등학생은 10시까지 있을 수 있잖니? 우리들 전원이 서로에 대해서 얘기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그렇지? 유이가하마」

「유키농...... 응, 그래!」


  유이가하마가, 이번에는 기쁜 듯이 말했다.

  유키노시타는 일어서서, 나와 유이가하마를 한 번 보고는 밝은 미소로 말했다.


「히키가야와 키리바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들려줬으면 해.」


  이렇게 해서 나는, 약간 씁쓰레한 뒷맛을 가슴에 남기면서도, 인생에서 첫 친구를 두 명이나 동시에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날짜가 지날 때까지 이야기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8 ~히키가야 하치만은 불량해진다~




  점심시간의 시작을 알게 됨과 동시에, 등교 전에 사 둔 총채빵과 주먹밥을 입에 넣는다.

  음. 원래 단품도 맛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건 같이 먹으면 최악으로 맛이 없군. 별 수 없어서 커피로 덮어 삼키려고 했지만, 커피와 쌀이 섞여서 무심결에 토할 것 같이 맛이 없어지고 말았다.

  ......젠장, 이럴 거면 하나씩 먹는 편이 나았다.

  어떻게든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교실 안에서는 옥신각신 얘기하면서 책상을 붙이는 중이었다. 무질서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반 애들 사이를 빠져나와 복도로 나와서, 3층으로 발길을 향한다.

  2층보다 약간 차분하게 느껴지는 복도를 따라, 이즈에 선배의 반에 겨우 도착한다. 미닫이  문으로 몸을 쑥 내밀고 들여다보니, 어제와는 달리 바로 이즈에 선배를 볼 수 있었다.

  책상에 앉아 반 친구들과 얘기하던 이즈에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선배는 반 친구들에게 한 마디 하고는 내게 왔다.


「어제는 일부러 와줬는데 미안해. ......히키가야 군, 점심은?」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는 비닐봉투가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점심식사는 도시락이 아닌 듯하다.


「이미 먹었으니 혼자 먹어주세요.」


  같이 밥 먹어서 소문나면 부끄럽고......

  그런 내 기념비적인 소녀심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즈에 선배는 「할 말이 있는 거지? 그러면 같이 먹을까?」라고 말했다. 원심력이 무사히 일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얘기하기 좋은 장소라면 알고 있으니, 따라와 주세요.」

「응, 잘 부탁해.」


  북측 교사 1층까지 내려가서 양호실 옆 그리고 매점 뒤 결국은 평소 내가 점심을 먹는 곳으로 간다.

  어제 귀가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이 되자 사라졌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여전히 회색 구름이 태양을 덮어 가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토츠카를 필두로 여자들이 넘치는 테니스 코트는 아직도 땅이 습기차있는지 한산했다.

  그렇게 어두운 운동장이 눈앞에 있지만, 오늘 이 곳은 왠지 화려했다.


「그래서 할 말은? ......혹시 고백이라든지?」


  그 화려함의 원인인 이즈에 선배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에 걸터앉아서 과자 봉지를 열고 있었다.


「선배에게 묻고 싶은 건 하나밖에 없을 텐데요.」

「뭐 그렇지. 밥 먹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


  도저히 오후를 끝까지 보낼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양의 크림빵을 3분 정도에 다 먹는다. 그리고 나서 선배가 홍차를 마시고 한 숨 돌릴 때 즈음해서 입을 연다.


「일요일 우리들이 헤어지고 나서 뭘 하셨어요?」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그 뒤에 타이시 군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해서 밥 먹고 돌아가는 길에 고백 받았을 뿐이야.」

「뭔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데이트한 느낌으로는 좀 아니라는 느낌이라서 그대로 전했을 뿐이야.」


  뿐이다라.


「자원봉사 느낌으로 사귀면 되지 않나요? 한 달 정도 꿈꾸게 해주면 선배도 휴일에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히키가야 군, 날 뭘로 보는 거야?」

「그거야 남자와 어울리는데 거리낌이 없고 연애를 스위트 감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밖에」


「즉 빗치 같네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점차 이즈에 선배의 눈이 험해져서 도중에 그만둔다.

  아니 그래도 사실이고......

  선배는 꾸며낸 티가 나게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서서 코끝이 닿을 정도로 뛰어오른다.

  칠흑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미소가 들이닥쳐온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근질거림이 등줄기를 통과해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시선에서 도망쳤다.


「일단은 나, 남자에 대한 이상이 높아.」

「하아, 그런가요?」

「다만 어울려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울릴 뿐」

「그래서 뒤에서 빗치라고 하는 거잖아요!」


  소문과 전혀 다를 바 없잖아.


「......그렇다면 더욱 더, 시험 삼아 타이시와 사귀어줘도 괜찮지 않나요?」


  아니면 타이시와 어지간히 맞지 않았던 걸까.

  이즈에 선배는 난처한 표정으로 다른 곳을 봤지만, 검지 손가락은 기분 좋은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게 전에 미야한테 너무 쉽게 만난다고 혼나서...... 뭐, 요새 모르는 애한테 부모의 원수라도 보는 시선을 받아본 적도 있어서 사귀는 허들을 좀 올렸어. ......그래서」

「그래서 타이시 자식이 유감스럽게도 선배의 눈에 맞지 않았다?」

「그런 거야.」

  타이시 놈도 시기를 잘못 만났다고 해야 하나, 그나저나 선배도 자중할 거면 떡밥은 그만 던지라고. 잡기&풀기를 땅에서 한다는 거잖아.


「......덧붙여서 타이시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응? 타이시 군이 나한테 너무 맞춰서 그러려나. 영화도 밥도 억지로 맞춰주는 건 바라지 않아.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있고,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가까워지고 싶어.」

「의외로 소녀 같군요.」

「그런 거야. 난, 사랑에 애태우고 사랑에 우는 여자인걸.」


  그렇게 말하며 이즈에 선배는 작게, 그리고 덧없이 웃었다.

  어느새 야구부로 보이는 까까머리 집단이 운동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갈색 땅은 아직도 물렁해서 발을 디디면 가라앉을 것 같지만 그래도 동아리는 하는 듯하다.

  그 광경을 잠시 선배와 가만히 보고 있었다. 무질서하고 소란한 목소리는 어딘가 멀어서, 사람이 없는 이 장소가 떼어내진 감각에 빠졌다.


「그래서 너와 아카네의 관계가 엄청 자연스러워서, 꽤 동경했는데 아니었어?」


  그 때문인지 이즈에 선배의 농담 같은 말은, 내 안에 스리슬쩍 들어와서 날뛰었다. 어느 의미로는 불의를 찔린 형태였다.


「......무슨 말입니까?」


  목소리에 감정을 넣지 않게 주의하면서 시치미를 뗀다.


「나도 신경이 쓰였어, 일요일에 헤어진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건 선배와는 상관없잖아요.」

「응. 그래도 그런 대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역시 신경 쓰이잖아?」

「......」

「거기에 농담 같이 말했지만, 너희들의 관계를 동경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뭐라는 거지?

  선배에게 이야기한들, 무언가가 바뀌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건 키리바나의 문제다. 저 녀석이 납득을 하고 있으니, 내가 이러니저러니 해선 안 되는 거였다.

  따라서 선배와도 상관없다.

  그대로 무뚝뚝하게 입을 닫는다. 선배는 아까 전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지은 채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면 난 관계가 없는 너한테 타이시 군과의 전말을 말했잖아. 그렇다면 히키가야 군도 나한테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전 부탁한 게 아닌데요.」

「그래도 한 번은 한 번이지?」


  마침 선배가 말을 다 꺼낸 것과 동시에 교사에 답답한 벨이 울린다.

  벨 소리는 운동장에서 교사 전체를 왔다갔다하며, 교사와 땅을 살짝 진동시켜서 학생들의 다리를 각자의 교실로 가게 했다.

  그 소리도 조금 전까지의 소리와 뒤섞여, 곧바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수선하고 어쩐지 나른함이 섞인 바람이 뺨을 두드리며,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었다.


「......선배, 사람 좋다는 말 듣지 않아요?」

「후후, 잘 들어.」


  교내의 소란이 밀려오는 물결처럼 작아져간다. 새가 지저귀는 듯한 고요함이 주위를 감싼다.

  5교시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선배는 전혀 교실에 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도, 다리를 움직일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히키가야 군, 교실에 안 가도 돼?」

「선배야말로 괜찮아요?」

「난 우등생이니까. 한 번 정도 수업에 빠져도 문제없어.」

「그래요? 저는 다음 수업이 생각 안 나서요. 그래서 그런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하러 가는 건 미안하니 게으름 피우기로 할게요.」


  그리고 두 번째 벨이 울렸다.


「수업 시작됐네.」

「그러네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한가하니,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실 수 있어요?」

「응, 좋아.」


  햇볕도 없는데 오후의 공기는 따뜻해서, 마음을 놓으면 눈꺼풀이 가라앉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이후에 하는 말은 분명 잠꼬대 같은 거다. 특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입에서 흘러넘치는 이야기일 뿐.


「별일 아니에요. 그대로 돌아가다가 자신의 제멋대로인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했을 뿐이에요.」

「......그건 그 카페에서 얘기하던 계속?」

「그래요.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제멋대로 걱정한 끝에 상대방을 부정했을 뿐이에요.」


  나는 크게 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말로 꺼내보니 가슴 속이 슥 가벼워진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편해진다는 건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다. 감정이나 마음에는 질량이나 경계선은 없지만, 그런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그 근처에 있는 걸까.

  그건 손대면 쉬게 변질돼버리는 약한 것이라, 누군가가 토해낸 것을 자신 안에 넣어버리는 것만으로도 바뀌고 만다.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누군가와 같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해도 결코 섞이지 않는다.


「히키가야 군은 정말로 아카네를 좋아하는 거네.」


  같은 장소에 있는 선배는 차분히 그렇게 말했다.


「......지금 한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그렇게 됩니까?」

「오히려, 그 외에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 거야?」

「아니 봐요, 키리바나에게 멋대로 내 이상을 강요했다, 같은 식으로」

「그건 연애감정인지 다른 것인지는 둘째 치고,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야.」


  귀를 곱게 매만지는 듯한 선배의 목소리는 상냥해서, 자장가라도 부르는 것 같았다.


「좋아하니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기에 더욱, 상대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을 용서할 수 없게 돼.」

「그렇지 않아요. 이놈도 저놈도 우정을 강요합니다. 우리들과는 다른 누군가를 부정하고 있어요. 그건 전부 호의에서 오는 건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려운데....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즐겁잖아. 러브&피스처럼」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 이즈에 선배는 웃는 얼굴로 피스 자세를 취했다.

  너무나 경망스럽고, 적당하게 말해서 미소가 흘러넘치고 말았다. 어디까지나 달아서 녹아내릴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들 전부가 에고이스트가 되잖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이상을 강요하고, 바라기 때문에 엇갈린다. 자기만족을 서로 주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인생은 비극적이다.


「그래도 되잖아. 싸우면 사과하면 되잖아. 그렇게 엇갈리면서 상대 안의 내가 느껴지는 게 정말로 기뻐. 타인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돼서는, 그런 건 절대로 재미없을 거야.」

「어려운 말을 하시네요.」


  어떤 교실에서 높고 낮은 소리가 뒤섞여 새어나온다. 그 소리는 우리들밖에 없는 이곳에도 살짝 닿아, 우리들에게 부딪혀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서는 누구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바로 가까운 곳에 몇 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도 관련되지 않고, 느껴지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들리는 소리가 전부 멀다.

  구름 사이로 들여다보는 태양이 몹시 눈부셔서 손을 뻗어 가린다.


「......선배」

「응?」


  계속된 말은 농담 같은 식으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저와 사귀어 주실 수 있나요?」

「......좋아. 그래도 나, 바람이나 양다리는 용서 못하니까. 그보다 나 말고 좋아하는 애가 있는 시점에서 아웃」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만둘게요. 벌 받는 건 싫어서.」

「그래? 유감이네.」


  그리고 나서 우리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얘기했다. 결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넘칠 정도로는 즐거웠다.

  그리고 교실로 돌아간 뒤, 유이가하마에게 5교시 수업이 현국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담당은 물론 히라츠카 선생님이다.

  ......그건, 떠올리고 싶지 않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7 ~비오는 날의 월요일~




  침울한 표정을 띤 비늘구름과 함께 월요일이 온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집을 나온다. 그리고 나서 가라앉은 표정을 짓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과 섞여, 학교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간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떨어질 것 같고, 그 때문인지 우산을 손에 든 학생들이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산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지.

  ......뭐 오는 길에 비가 흩뿌린다면, 최악이라도 직원실에 가서 우산을 빌리면 되는 일이다.

  그다지 느리게 걸을 생각은 없었지만, 교실에 들어선 타이밍에 수업 시작 종소리가 울린다. 평소라면 도착하고 나서 울리기까지 몇 분의 유예가 있었으니 걸음이 느렸던 거겠지.


「안녕 힛키」


  유이가하마와 스쳐 지나가면서 받은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대충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지루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은 기본적으로 다수를 가르치는 것을 전제로 내용이 만들어진다. 그 때문에 전에 배운 문법이나 한 번 읽으면 외울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반복한다.

  기억한 내용을 복습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효과적인 공부는 없다. 즉 수업의 6할이 새로운 내용이라도 나머지 4할은 복습이 되므로 수업이 지루해지는 것도 별 수 없다.

  즉 내가 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현대문만을 등을 세우고 들은 체 만 체 하고, 나머지는 수면 유도제로 활용해서 하루의 수업을 소화한다. 왠지 『매트릭스』의 배경 같은 숫자가 나열된 꿈을 꾸기도 했지만, 방과 후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상쾌했다.

  그러고 보니, 타이시는 어떻게 됐을까. 일단 데이트를 거들었으니 결과 정도는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전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이즈에 선배의 교실을 들여다봤지만, 갈색 머리카락과 특징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는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기...... 메구미라면 오늘 볼 일 있다고 해서 먼저 돌아갔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메구미라니 누구지? 아마 모르는 사람일 테니, 나한테 한 말은 아닐 거다.


「저기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고 교실 안을 보고 있었더니 초조한 듯한 목소리가 들리며, 어깨를 난폭하게 얻어맞았다.

  어깨에 지워진 미덥지 못한 감촉을 느끼며 뒤돌아보니,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살짝 펌한 선배가 불쾌한 듯이 서있었다.

  이 사람 이즈에 선배의 친구였을 텐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야와 카세이, 어느 쪽이지?


「히, 히, 히키가야 군이던가? 메구미 찾는 거지?」

「아무튼, 그래요.」


  메구미라는 건 이즈에 선배의 이름인가? 성씨가 너무 두드러져서 이름으로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고.


「메구미는 오늘 돌아가서 찾고 있다면 헛걸음이야.」

「......그런가요」


  그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부실로 가려고 했지만, 문득 생각난 게 있어서 말을 꺼내본다.


「저기, 선배는 운동 같은 걸 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농구를 했어.」

「......예를 들면 농구 아마추어인 제가, 선배의 플레이에 대해서 잘 안다는 듯이 지적해서 고치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세요?」


  카세이(?) 선배는 턱을 약간 잡아당기고, 위를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즈에 선배의 버릇이라도 따라하는 건지, 허리에 댄 오른손 검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생각났는지, 밝은 미소로 선배는 말한다.


「때리고 싶어져.」


  상상한 것보다 폭력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그런가요......」

「응. 왜냐면 짜증나잖아. 서투르다든가 생각하는 건 딱히 상관없는데, 그걸 말로 하려면 그것에 걸맞는 설득력이 갖고 싶어지잖아.」

「그건 제가 올바른 것을 지적해도 그런가요?」

「물론이지. 왜냐면 히키가야 군은 그 플레이가 맞는 건지, 상상으로밖에 모르잖아?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적이라도 래리 브라운이 말하면 고분고분하게 들을 거야.」


  선배는 양손으로 슛 자세를 취하고는, 허공을 향해 가공의 볼을 던진다.

  그 때 스커트가 약간 떠서 탄탄하고 하얀 허벅지가 보이는 면적이 증가한다.


「......뭐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무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감사하고 몸을 돌리려고 하자, 선배는 「뭔가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해줄 수 있는데」라고 말하며 스마트폰을 나를 향해 흔든다. 그 표정은 아까 전과 다름없어서, 남을 잘 챙겨주는 사람이라 그랬을 거다.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라도 만나러 올 거라고 말해주세요.」

「그래-」


  바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쓰기 시작하는 선배를 보며, 한 번 더 감사를 표한다.


「감사합니다, 카세이 선배」


  한 번 더 감사를 하자, 선배는 유감스러운 것을 보는 시선으로,


「내 이름, 미얀데......」

「................」


  다행히도 주먹은 날아오지 않았다.



―――――――



  「......그럼, 어제 있던 일을 보고해주렴.」


  부실에 들어감과 동시에, 예리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끼얹어졌다.

  창밖의 흐린 하늘과는 180도 다르게, 형광등의 창백한 빛이 쏟아지는 부실에는 벌써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아무튼 3층에 들르고 나서 문화동까지 왔으니 늦어져도 어쩔 수 없다.

  책과 폰으로 눈을 떨어뜨리는 둘을 곁눈질로 보면서 정 위치로 가서 철제 의자에 대강 앉는다.


「보고할 것도 없어. 끝까지 붙어있질 않았으니까. 타이시가 고백했는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 일단 마지막에 둘이서 어디엔가 간 것 같지만......」


  덤으로 오늘은 이즈에 선배에게 묻지도 못했으니, 그 이상은 보고할 방도가 없다.


「어? 그것뿐이야?」


  유이가하마가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키노시타도 얼굴을 들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결과만을 보고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중간 경과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니?」

「그런 걸 말해봤자 의미가 없잖아. 아무리 좋은 분위기라도, 차일 땐 차이는 거다. 그렇다면 보고해도 의미는 없어.」

「......그런 걸까」


  유키노시타의 말이, 부실 벽으로 빨려 들어간다.

  부실로 오는 김에 사 온 MAX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목을 지나가는 달콤함을 느끼며 반 넘게 남아 있는 캔을 테이블 위에 둔다.

  그렇게 당분간 창밖을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 운동부는 평소대로 운동장에서 활동하는 듯하다. 멀찍이서 하야마 일행이라고 생각되는 애들이 팔팔하게 체조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히키가야의 눈이 평소보다도 그림자를 띠는 것은 어제의 데이트와 관계있는 거니?」


  운동부를 관찰하는 것도 질려서 유들유들한 나뭇가지에서 날개를 쉬게 하는 참새를 관찰하고 있자, 유키노시타가 묻는다.


「......무슨 말이야?」

「보아하니 침체된 분위기를 휘감고 있잖니.」

「그건 평소에도 그렇다만.」

「그런 말을 들으면, 그렇긴 하지만......」


  유키노시타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그렇게 말하자, 유키노시타와 맞은편에 앉은 유이가하마가 나를 향해 몸짓 손짓으로 설명해준다.


「힛키는 평소에는 뵹-한 눈을 하잖아? 근데 오늘은 뭐랄까 묭-한 눈을 하는 느낌인 거야......」


  묭-이라니, 왜 그런 나고야 사람처럼 비유하는 거냐.

  유이가하마는 나란히 내민 양팔을 내리고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그래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해서......」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코마치한테도 비슷한 말을 들었지. 평소보다도 눈이 이상하댔나 뭐랬나. 왜 이 놈도 저 놈도 사람 상태를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거야?


「......딱히 아무 일도 없었어.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를 따라가서 중간에 빠지고,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를 하고 돌아갔을 뿐이다.」


  그래, 어떻든 상관없는 얘기다. 처음부터 결론이 나왔고, 그게 싫어서 떼를 썼을 뿐.

  그렇게 부실 안이 더 조용해진다. 멀리서 들리는 운동부의 구호와 어렴풋이 풍기는 비 냄새가 우리들 사이를 메워간다.

  왠지 모르게 목을 돌리고는, 책으로 시선을 내려뜨리는 유키노시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유키노시타는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추고, 눈을 내려뜨린 채로 말한다.


「그렇다면 그 기분을 겉으로 드러내는 건 그만두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해.」

「그렇군, 미안」


  왠지 유이가하마가 옆에서 「굉장해, 힛키가 사과했어......」라고 중얼거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을 뭘로 보는 거야.

  하지만 듣고 보니 그렇다.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이 없다면, 그런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나와 유키노시타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낙담했던 것 같다.

  등을 과감히 한 번 꼿꼿이 세워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습 찬 공기를 폐에 넣고, 무거워진 공기를 폐에서 내뱉는다.

  눈을 감고 어깨 힘을 뺀다. 약간 나른한, 언제나 짓는 표정을 만들고는 눈을 뜬다.

  ......그리고 나서,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려낸다.


「나, 오늘은 돌아간다.」

「어? 힛키 그냥 들른 거야?」

「우산 안 가져왔어. 그래서 비가 내리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


  왠지 감상적인 기분에 잠겨 있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애초에 아직 비가 오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안 돌아가면 젖은 생쥐가 될 거다.


「그러면 유키농이라든가 내, 내 우산을 같이 쓰면 되잖아......」


  유이가하마가 약간 흠칫흠칫하며 말한다.


「나는 접는 우산밖에 없어서 애초에 무리야.」


  애초부터 같이 쓰게 해줄 생각이 없을법한 녀석이, 지당한 이유를 붙여서 부정했다.

  게다가 유키노시타와 돌아가는 시점에서 바늘방석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런 건 질색이다.


「그런 이유로 이만」

「아, 잠깐, 힛키」


  가방을 어깨에 매고, 유이가하마의 목소리를 뒤로 받으며 부실에서 나온다.

  역시 나한테는 이 정도의 분위기가 딱 맞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6 ~달빛과 태양~




  하늘에 퍼진 짙은 감색 캠퍼스 한쪽 구석에, 꼭두서니 빛이 고요히 몸을 옆으로 기대어 살짝 존재감을 준다.

  아직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별을 찾아낼 수 없긴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고운 얼굴을 보여줘서, 거리에 밤의 소식을 알려주리라.

  옆에서 걷는 키리바나는, 멍한 표정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당분간 시간을 보내고, 그 뒤에 적당히 윈도우 쇼핑을 하는 것으로 우리들의 데이트는 끝났다. 정말 싱거웠지만, 첫 데이트니까 이 정도면 될 거다. 다만 둘은 타이시가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있다고 해서 어딘가로 갔다. 아마 거기서 고백이라도 하는 거겠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타이시가 걱정됐지만, 선배에게 손대지 말라고 찔러뒀으니 우선 실수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낮과는 반대로 한산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키리바나는 침묵에는 익숙하다. 원래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것 자체에 익숙해서 상대가 코마치나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라 해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다. 뭐, 자신해야할 건 아니지만.

  ......따라서 이 가슴 속에 걸린 응어리는, 이 침묵과는 다른 것에서 기인한다.


「......저기, 그 카페에 있던 애들과 화해 같은 건 안 해?」

「화해라니......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서, 저 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정면을 보며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끈질기다는 거 알아요?」


  겨우 나를 향한 키리바나의 얼굴을 보고, 내뱉으려고 한 말을 황급히 삼킨다. 말을 되새겨보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지 모르게 되고 말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적당한 화제라도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머리라도 흔들어서 화제를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내 머리답게, 어지간히 일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키리바나는 어이없이 보고 있었지만, 뭔가 납득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하치만 오빠는 어째서 친구가 없어요?」

「어이, 왜 그 화제를 고른 거냐」


  화제를 바꾼다 해도, 좀 더 내가 상처받지 않는 게 있잖아. 아니, 바꿔준 건 고맙지만.


「아니요, 생각보다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라서요. 하치만 오빠는 눈이 썩은 것과 비뚤어진 성격과 가끔 나오는 글러먹은 발언만 빼면, 얘기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요?」

「그 3개가 거의 대답이잖아.」


  아까 전까지 조용히 있었던 게 바보 같아진다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눈을 제외한 얼굴은 갖춰져 있고, 이러니저러니 잘 돌봐주기도 하고, 의외로 다정하기도 하니까, 노력해서 무리한다면 친구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예요?」

「칭찬하는 건지, 깎아내리는 건지 어느 쪽이야......」

「저, 생각보다는 진심으로 묻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키리바나의 얼굴은, 약간 습기 차고 무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띄운 탓에 그 표정을 엿볼 수 없었다.

  한 번 숨을 쉬고 키리바나의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바로 대답이 나온다.


「그건 당연하잖아. 그렇게 무리해야만 얻는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는 것뿐이야.」


  무리를 하면, 어딘가 터지는 곳이 나타난다.

  참고 노력하면, 계속 참아야만 한다.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가시가 되어 언제까지나 남는다.

  처음에는 같이 있는 것이 즐거워도, 거짓말이나 기만을 겹겹이 쌓아가는 사이에, 어느덧 따돌림 받지 않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런 것은 본말전도다.


「그렇군요. 히키가야 오빠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어요.」


  오랫동안 불리지 않았던 호칭을 키리바나는 쓴다.


「그렇다면, 왜 히키가야 오빠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제게 하라고 말하는 건가요? ......그건 오만이에요.」


  키리바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 수 없다. 반대 입장이라면, 틀림없이 키리바나와 같은 행동을 했겠지. 하지만,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키리바나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말한다.

  누구와도 친하게 지낼 순 없다. 아무리 노력하고 무리를 해도 균열이 생긴 인간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키리바나가 인간관계를 넓게 가지기를, 틀림없이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슴 속에서 계속 품어왔던 것은 예전부터 쭉 변함없다.


「넌 아까 전 카페에서 외롭지 않다고 말했어. 아무렇지도 않다고도 말했어.」


 그리고 나는 그 키리바나의 말이 허풍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 하치만 오빠도 자주 하지 않아요?」

「아니, 안 해.」


  키리바나의 눈이 치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런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를 보는 건 처음이라 순간 흠칫했지만 그대로 말을 계속한다.


「난 혼자가 좋다고 말했지. 외롭지 않다고는 한 번도 생각했던 적 없어.」


  혼자 있으면, 누군가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것을 실컷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도, 적막감만은 변덕스럽게 찾아온다.

  이를테면 졸업식 날, 누구나 이별을 아쉬워하는 중에 혼자서 교문에서 나올 때.

  이를테면 점심시간, 교사 안에서 울리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

  이를테면 휴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가족 전원이 외출했을 때.

  그럴 때 자신이 돌이 되어, 어디와도 이어지지 않은 느낌이 마음속에서 배어나온다. 자신은 확실히 여기에 있는데, 그 자신조차 윤각이 흐릿해진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는 공포가 덮쳐온다.

  그건 필시 내 마음의 약함이리라. 정말로 고독한 인간은 아니기에, 사소한 때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거면 돼.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소중한 누군가를 찾아냈을 때, 그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비록 그 누군가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계속 바라는 것만은 해야 한다.


「그러니, 너는 잘못됐어.」


  키리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입술을 꽉 다물고 나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어가, 반으로 잘린 달이 기하학적인 모양을 표면에 비추고 있다.


「......그 생각은, 하치만 오빠의 자기만족이에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외톨이를 정당화하고 있어요. 자신의 사정으로 누군가의 사정으로 친구를 만들지 못해서 외톨이가 된 것을, 이유를 붙여서 속이고 있어요.」


  차가운 목소리가 몸에 깊이 스며들어간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기 마음에 있는 막연한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도 외로워서 실은 바라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잖아요.」

「............」

「별로 나쁘다고는 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 누구라도 있겠죠. ......다만, 그 자기만족을 제게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 자기만족으로 제 안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마세요. 그게, 저는 가장 싫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앞을 향하고는, 나를 선도하는 식으로 걸어갔다.

  아스팔트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서 키리바나를 따라간다. 차도를 달리는 차의 불빛이 몹시 눈부셔서, 할 수 없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대로 당분간 걸어서, 평소의 갈림길이 나오자 키리바나는 겨우 나를 봤다.

  그 얼굴은 방금 전의 얼음 같은 표정이 아니라, 이따금 혼자 있을 때의 평탄한 표정이어서 마치 방금 전에 대화가 없었던 것처럼 차분했다.


「오늘은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키리바나의 뒷모습을 멈춰 선 채 멍하니 바라본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걷는 키리바나는, 흑발을 미지근한 바람에 흩날리며 곧 옅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초등학교 3학년이나 4학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내가 여러 가지를 포기하지 못했을 무렵이다.

  초등학교에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뭐, 초등학교만이 아니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혼자였으니, 딱히 강조할 것도 없지만.

  주변 애들이 즐겁게 웃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분을 삭이면서 돌아가던 나였지만 어느날 하교하는 집단에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혼자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학년에 따라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학년과 돌아가는 길이 겹치는 것은 드물다. 사실, 그 무렵에는 코마치가 먼저 돌아가서, 코마치 또래 여자애가 있던 것은 뜻밖이었다.

  그 녀석은 조금도 괴로운 표정을 짓지 않고, 지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항상 태연한 얼굴로 걸어서, 키가 작은 주제에 나보다 훨씬 어른으로 보였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되고 싶다고, 돌아가는 길이 겹칠 때마다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바보라서 그 녀석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그런데도 연하의 게다가 여자애가 자기보다도 더 폼을 잡는다는 착각을 했었다.

  결국 그 착각은 내 일방적인 믿음이라는 것을 조금 지나서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이동수업이 있어서 하급생 층에서 걷고 있는데 그 녀석이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하교할 때와는 돌변해서 얼굴이 풀어지고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웃는 그 녀석을 보고 엄청 낙담했던 것을 기억한다.

  평범하게 친구가 있는 녀석이 혼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런 식으로 폼을 못 잡아서 나한테는 친구가 없는 걸까? 이런 생각을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하고, 하지만 역시 대답은 나오지 않아서 그 날 돌아가는 길에 과감히 본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던 중, 근처에 나와 그 녀석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조심스레 확인하고 나서 말을 걸었다.


『저기,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그 녀석은 일단 주위를 두러보고,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을 확인하고는 머뭇머뭇하며 대답한다.


『......네, 외롭지 않아요.』

『왜? 너 친구 있잖아. 쉬는 시간에 모두들하고 즐겁게 있었지? 그래도 지금 혼자서는 외롭지 않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으로 대화한 사람이 쉬는 시간이나 친구의 유무까지 알고 있었으니,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잠깐 간격을 두고 대답을 생각했지만, 바로 입을 움직여주었다.


『원래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서요. 모두들하고 같이 있는 것은 즐겁지만, 그것 뿐. 없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은 분명 슬픈 삶의 방식이라고, 아이이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아무도 없게 될 듯한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 녀석은 그걸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이틀 후 나는 그 녀석에게 코마치를 소개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진심으로 바랐으면 해서.

  ......그것이 키리바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어디에도 있을 법한 평범한 첫사랑이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5 ~커피의 쓴 맛~





  B급 영화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영화에 들어가는 비용이 싸기도 하고, 촬영에 쓰이는 카메라 대수가 적기도 하고, 매우 저렴한 세트나 무명 배우만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각본도 마찬가지로 무명 극작가를 쓰는 탓인지 실패와 성공의 편차가 크고, 때로는 혼돈스런 내용일 때도 많이 있다. 대학 간의 경기에서 농구를 한다고 생각했더니, 왠지 우주인이 공격해와서 지구의 존망이 갈리는 전개도 놀랄 만큼 자주 본다.

  하지만, 그 혼돈을 좋아하는 별난 사람들은 생각보다는 꽤 있다.

  원래 영화를 보는 관점이 달라서일까? 그 사람들이 엉터리 전개를 더러운 말투로 매도했다고 생각했더니 그 바로 다음 순간, 사진 기술와 공간 연출이 대단하다고 칭찬한다. 그렇게 해서 배우의 연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나 생각했더니, 마지막에는 엉터리 전개를 보고 크게 웃는다. 이제 뭘 평가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우와, 엄청 시시했지. 봐. 그 주인공 같은 남자가 후반이 돼서 의미도 없이 목을 잘린 장면이라니, 스태프가 무슨 표정을 하고 찍었을까?」


  나와 키리바나의 후방에서, 이즈에 선배가 신바람난 목소리로 타이시에게 말을 걸고 있다.

  애완동물 샵을 대강 만끽한 우리들은 당초 예정대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확실히 전국에 널린 영화관답게 극장수가 많고, 상영 수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 이즈에 선배가 선택한 것은 「지하 300m에서의 침공」이라는, 인디 존즈의 부제가 아니라면 사양하고 싶은 영화였다.

  나와 키리바나는 둘을 따라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선배의 방침에는 거스를 수 없어서 타이시가 반대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결과는 흔쾌히 동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돼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본 결과가 이러하다. 타이시 자식, 「아아」라든지 「그렇군요.」라는 말밖에 못하고 있다고.


「.....감상은?」


  옆에서 난처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처음에는 재미없었는데, 영화라기보다는 콩트처럼 보니 의외로 보통이었어요.」

「......대체로 나와 같군.」


  이즈에 선배가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들에게 충고한 것은, 「영화를 보려고 생각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는 동안에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요컨대 보통 영화 같은 기대를 하지 말고 그야말로 가족 연극이라도 보는 느낌으로 보는 게 좋다는 말이다.

  시작하고 나서 15분 정도에 나온 지하세계 사람을 보고, 처음에는 특수 메이크의 수준 낮음에 전율을 느꼈지만, 점차 익숙해지자 메이크 수법으로 생각이 미쳤다. 완성도가 너무 높으면 의문점이 떠오르지 않지만, 서투르다면 반드시 과정이나 수법에 신경이 쓰이고 만다. 하지만 그것이 좋다.

  그나저나 저건 메이크라기보다는 쓰개다.


「그래도 유머는 상당히 훌륭했어요.」

「저런 분위기니까, 그렇게나 농담을 담아낼 수 있는 건지도. 할리우드 초대형작에서 그렇게 하면, 엄청 깰 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은 약간은 알 것 같다. 조잡하거나 진부하기도 하지만 그 시시함에 대해서 생각하며, 때로는 머리를 텅 비우고 즐길 수 있다.

  물론 예산이 높은 것 중에서도 그런 작품은 있겠지만, B급 영화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카메라가 적은 것도, 뒤집어서 생각하면 시점이 적어서 자신의 시선에 가깝다. 그런 것일 거다.

  작품에 대해서 각자 대충 말하자, 이즈에 선배가 손가락을 돌리며 말한다.


「그럼 밥 먹으러 가볼까?」


  그러고 보니 아직 안 먹었지. 영화를 볼 때는 주스를 마셨지만, 역시 약간은 배가 고프다.

  키리바나나 타이시도 배가 고팠는지, 이즈에 선배의 제안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아무튼, 데이트라고 하면 식사고, 식사할 때는 의외로 자란 방식이나 개성이 나오기 때문에 궁합을 파악하기 쉽다.

  미인이지만 먹는 방식이 불결하다든가, 탕수육에 파인애플을 넣는다, 키스프라이에 간장을 뿌릴까? 소스를 뿌릴까? 등등, 그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도 있어서 이즈에 선배의 센스를 기대하며 간 곳은 아담한 카페였다. 입구 부근의 벽면을 투명한 유리벽으로 하고, 그 안에는 앤틱 테이블이나 의자가 불규칙하게 늘어 놓여 있었다.

  바닥도 대리석 같은 흰 바탕에 광택이 있는 석재를 쓰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신지 않았지만, 가죽 구두라면 또각또각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릴 거다.

  아니 뭐야 이건. 왜 이렇게 깨끗한 느낌이 드는 데에서 밥을 먹어야하는 거지? 그보다 여기에 배를 채울만한 탄수화물이 있을까?


「여기 팬케이크가 맛있어. 키리바나는 단 거 좋아해?」


  여성진이 창가에서 새된 목소리로 스위트 설법을 꽃피우는 중, 메뉴표를 펄럭펄럭 넘긴다. 일단 타코라이스나 스파게티 정도는 있지만, 역시 메인은 팬케이크인 것 같다.


「하치만 오빠는 뭐 드실 건가요?」


  무난하게 고르자면 스파게티겠지만, 팬케이크가 좀 신경 쓰인다. 여기서 팬케이크를 먹지 않으면, 평생 인연이 없는 음식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단 게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팬케이크면 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타이시도,


「아, 저도 그게 좋슴다.」


  이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약간 흥분됐다. 아차, 내가 팬케이크를 고른 탓에 타이시가 다른 메뉴를 먹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런 것을 신경 쓰는 동안, 테이블 위에 4개의 팬케이크가 나란히 놓인다. 이중으로 쌓은 팬케이크 위에 딸기나 바나나, 블루베리가 보석처럼 박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 생크림이 듬뿍 담겨 있고, 그 옆에 작은 용기에 황금색 메이플 시럽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럼 먹어볼까?」


  먹는 건 좋지만, 어떻게 먹어야 하지? 생크림과 메이플 시럽은 처음에 얹어 먹는 건가?

  나이프와 포크를 잡은 채로 당황하고 있는데, 키리바나와 이즈에 선배는 케이크를 약간 떼어내서는 그 위에 크림이나 시럽을 적당히 얹어서 입에 넣는다.


「아! 너무 달지 않아서 먹기 쉬워.」

「그치?! 생크림도 별로 칼로리 없대」

「그건 기쁜 정보네요.」


  둘이 냠냠 먹는 것을 따라 딸기에 크림을 발라서 입에 넣는다. 키리바나가 말한 대로, 팬케이크 자체는 그렇게까지 달지 않고, 의외로 담박하다. 오히려 케이크만 먹으면 뭔가 부족할 것 같다. 그 정도로 크림을 바른 딸기에는 녹아내릴 것 같은 달콤함이 있었다. 이번에는 메이플 시럽과 바나나를 조합해서 또 한 입 먹는다.

  이거, 의외로 상당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적당히 잘라서 먹고 있었는데, 눈앞에 앉은 타이시의 팬케이크가 별로 줄어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아아, 이 녀석. 단 것에 서투른 건가. 무리하기는.

  이즈에 선배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타이시에게 실없는 잡담을 하는 중이다. 이 사람이 깨닫지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해서 지적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서툴렀다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안 한 타이시의 잘못이니까.


「앗, 타이시잖아. 뭐야뭐야? 데이트?」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가 가게 안에서 퍼부어진다.

  소리가 난 쪽에는 아직 앳된 얼굴을, 얄팍한 화장으로 덮어서 가린 여자 4인조가 있었다.

  그 애들은 나와 이즈에 선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리바나를 차례대로 확인하고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타이시에게 다가간다.


「꽤 미인이잖아. 소개해봐.」


  중학교의 반 친구일 것이다. 그 말은 키리바나와도 같은 반이라는 게 되지만, 키리바나는 신경 쓰지도 않고 팬케이크와 마주 보고 있다.

  리더격인 여자는 타이시를 놀리듯이 말하고 있지만, 나머지 세 명은 힐끔힐끔하고 키리바나를 식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반대로 리더는 키리바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뭔가 납득이 안 된다.


「너희들 시끄럽다고. 자, 저쪽으로 가.」


  타이시가 약간 초조한 상태로 일어나 여자들을 쫓아내서, 그 사이에 키리바나에게 물어본다.


「야, 저 녀석들 아는 사람이야?」

「같은 중학교에요. 반은 우리들과 같고, 가끔 얘기했었어요.」


  그렇다면 왜, 키리바나에게 말을 안 거는 거지?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이런 곳에서도 인사하는 건 당연하다.


「저 녀석들과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저쪽이 조금 적대시할 뿐이에요. 전에 저한테 고백한 미사키 군, 기억하세요?」

「그 운동맨 같은 녀석이잖아.」


  우선 한 마디하고 싶었지만, 참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키리바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하면서, 손을 움직여서 케이크를 잘라내고 있다.


「아무래도 그 애들 중에, 그 미사키 군을 좋아하는 애가 있는 것 같아서, 미움 받았어요.」


  그렇게 말하고 키리바나는, 생크림과 시럽을 듬뿍 얹은 팬케이크를 한 입 넣고는, 얼굴을 피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뭐, 자주 있는 일이다. 여자들의 우정은 왠지 룰이 존재하고,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연애 관련이다. 누군가가 좋아하는 사람을 안 상태에서 그 사람과 사귀게 되면 다음날에는 따돌림 받거나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둘 중 하나다.

  키리바나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과적으로 미사키 군을 꼬신 것처럼 보이고 그리고 찼으니까, 그 여자 룰에 저촉되기라도 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다 해서.


「넌 그래도 좋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 쪽이 저를 싫어하니까. 제가 이러니저러니 할 일이 아니에요.」


  역시 키리바나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식사를 계속 한다.

  원래라면 그걸로 좋다. 본인이 납득했다면,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전에 키리바나에게 말했던 대로, 미사키 군에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한 키리바나에게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외롭지 않을까」


  하찮은 이유로 상대방에게 미움 받아, 가끔 얘기하던 상대와 거의 말하지 않게 되고 이렇게 차가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외롭지 않아요.」


  키리바나는 말한다. 산뜻하게. 산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물론, 사유물이 숨겨지거나 아플만한 행동을 당하는 건 싫지만요. 지금은 그런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마찬가지에요.」

「......그건, 안 되잖아.」


  무심결에 말투가 험해지고 말았다.


「안 되지 않아요. 게다가 하치만 오빠도 자주 말했잖아요. 그 정도로 망가진다면, 분명 그 정도였던 거라구요.」


  아아, 그렇게들 자주 말한다. 여하튼 나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이치다. 좀 반한 일 정도로 인연이 끊어진다면, 미사키 군 일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겠지.


「그래선......」

「자, 거기까지. 슬슬 타이시 군이 돌아와. 계속 하고 싶으면, 이 데이트 다음이야.」


  이즈에 선배의 냉정한 목소리로, 의식에 공백이 생긴다. 시야 구석에는 마지못해 떨어진 자리에 앉는 여자들과, 여기로 돌아오는 타이시가 있었다.

  숨을 한 번 내쉬고, 같이 주문한 커피를 목에 흘려 넣는다. 단 것과 맞추려고 설탕과 우유를 넣지 않았던 탓인지, 강렬한 쓴 맛이 혀를 자극한다.


「미안해요. 같은 반 애들이 시끄러워서. ......무슨 일인가 있었슴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이즈에 선배와 타이시의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를 BGM 삼으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나는 의미도 없이 떼 지어 모이는 놈들이 정말 싫다.

  그 자식들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는 주제에,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거짓말이나 기만으로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인간관계를 멋지다고 목청 높이며, 타인에게 그것을 강제하려 든다.

  실은 사이좋지 않은데, 표면상으로는 어울리면서 그 뒤에서 험담을 해댄다.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를 상처주고, 사람을 멸시해서 조잡한 허영심을 채운다.

  홀로 있는 것을 무엇보다도 무서워하는 주제에, 혼자 있는 사람을 비웃는 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좋다.

  혼자 있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렇게 애매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에 기댈 정도라면, 혼자서 고독과 마주보는 편이 훨씬 낫다.

  거짓말을 하고 억지로 뭔가를 해야만 하는 친구 같은 건, 나는 필요 없다.

  .....하지만 이 녀석은, 키리바나만큼은 나와 같은 식으로 살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거짓말을 하거나, 무리해서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를 바란다. 외롭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는 키리바나와 처음 말을 했을 때부터,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다.



  http://novel.syosetu.org/38226/




  그 14 ~히키가야가의 이웃 분~




  인터폰을 눌렀더니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나며 갈색 문이 힘차게 열린다.


「어머, 히키가야 군이잖아. 왜 그러니?」


  키리바나와 매우 닮은 눈에, 형태가 좋은 입술이 특징인 여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밝은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이 뒤로 묶인 것이 연둣빛 앞치마와 어우러져서 생활감을 자아낸다.

  키리바나의 어머니인 키누에 씨는 오늘도 걸 맞는 미모가 잘 어울렸다.


「아니요, 키리......아카네와 나가자는 약속을 했는데, 불러주실 수 있나요?」

「그래? 지금 불러올 테니, 잠깐 기다려줘.」


  키누에 씨가 활짝 미소 지으며 다시 안으로 돌아가서, 한 숨을 돌리고 그 곳에 계속 선다.

  역시 키누에 씨와 키리바나는 눈매를 빼고는 별로 닮지 않았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키리바나와는 달리 키누에 씨는 어느 쪽이냐면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키리바나의 외모는 아버지 쪽의 피가 강한 것 같다. 나는 만난 적이 없지만, 키리바나 아버지의 여동생, 즉 고모와는 외모가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나이 든 키리바나도 보고 싶어서, 언제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기도 하다.


「준비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려서, 안으로 들어와서 기다려줄 수 있겠니?」


  그 녀석, 준비하는데 일부러 시간을 들이는군.


「아, 아뇨. 밖에서 기다려도 괜찮아요.」

「아니아니, 일부러 와줬으니 들어와 들어와」

 
  키누에 씨에게 등을 밀리는 식으로, 키리바나의 집으로 발을 디뎌, 열 다다미 이상은 되는 거실로 간다.

  초등학교 이래로 처음 온 키리바나의 집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상당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벽지는 아주 새로운 흰 직물로 바뀌었고, 전에는 손상됐던 일본식 방의 다다미는 새로 갈았고, 근처를 지나자 풀냄새가 감돈다. 브라운관 TV는 대형 액정 TV로 바뀌었으며, 데스크탑 PC는 노트북으로 교체되어 공간절약이 되어 있었다.


「그, 그럼......」


  안내 받은 소파에는 먼저 온 손님인 키리바나의 아버지가 등을 기대면서 와이드 쇼를 보고 있었다.

  나와 키리바나의 아버지 사이는 별로 나쁘지 않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고 잡담 정도는 한다. 가끔 장래 희망이나 졸업 후의 진로를 물을 정도로 딱히 사이가 나빠질 요소 같은 건 없다. 없겠지.

  다만 코마치가, 키리바나의 집에서 내 얘기가 나오면 미묘하게 기분이 안 좋아진다고 말을 하니 내가 멋대로 무서워할 뿐이다.

  마침 TV에서는 20세 여배우가 속도위반해서 결혼한 화제가 한창 나오는 중이었다. 사귄지 반 년 만에 골인했다고 했나? 일이 잘 되는 시기에 이래서는 향후에 큰 영향이 있을 거라고 원숙한 해설자가 아우성치고 있다.


「오늘 어딘가 가는 건가?」


  키리바나의 아버지가 묻는다.


「영화 같은 거예요. 아니 그게 지인을 따라가는 거라고 할까요? 둘이서 나가는 게 아니에요. 듣기로는 둘 만이서는 긴장한다고 해서. 그거야 그래요. 둘 만이라면 좀 그렇죠.」


  입에서 말이 연달아서 뛰쳐나온다. 평소부터 이렇게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만, 평소부터 이런 상황이 되고 싶진 않으므로, 역시 지금 그대로가 좋을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영화라는 건 완전히 거짓말이다. 오늘의 코스는 이즈에 선배가 전부 맡아서, 직전이 되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군, 둘이서는 곤란한데」

「그,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 키리바나와 상가에 간 적이 있었지. 아니 여기서는 전혀 관계없지만. 진짜로.

  그렇게 해서, 원래대로라면 가족이 단란할 곳에 답답한 분위기가 내려 쌓인다. 키누에 씨는 구석에 있는 부엌에서 흥얼거리며 차를 끓이고 있다. 좀 더 분위기라는 것을 읽어줬으면 한다.


「하치만 군이 집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네. 이렇게 보면, 역시 많이 자랐어.」


  차 줄기가 선 차를 눈앞에 내주고, 키누에 씨는 내 약간 옆에 앉는다. 왜 이 부부는 나를 사이에 끼고 앉는 걸까.


「역시 키는 컸죠. 하지만 그렇다면, 그 쪽이 키가 자랐겠지요.」


  받은 차에 입을 대지만, 뜨거워서 맛을 모른다.

  키리바나 부모님의 앞에서는 성씨로 부르기 어려워서, 무심결에 대명사를 쓰고 말았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이름으로 부르는 건 꺼려지므로, 이 정도가 고작이다.


「그치. 너무 키가 자라면, 남자애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네.」


  차를 한 모금 더 마시지만, 역시 맛을 모르겠다. 혹시 키누에 씨의 가사 능력이 떨어진 걸지도 모른다.


「.....바로 그 본인은 아직 안 내려오나요?」

「좀 더 걸릴지도 몰라. 모처럼 왔으니, 과자라도 먹으렴. 자, 장어파이」


  이제 슬슬 탈출해서 빨리 약속장소로 가고 싶지만, 장어파이를 주셨으므로 한 입 갉아 먹는다.

  장어파이는 자칭 밤의 과자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밤에 가족 단란용으로 써달라는 희망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어가 어떤 것을 증강하기 때문에, 밤의 과자라고 불린다. 후자는 완전히 속설이지만 왠지 믿는 사람은 많다.

  그 뒤 시간이 충분히 지나서 키누에 씨와 골치 아픈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던 때, 겨우 키리바나가 2층에서 내려온다.

  세련되고 포근포근한 검은 원피스에 얇은 핑크 자켓을 맵시 있게 입은 키리바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차분한 느낌이었다. 사복 때는 주로 스타킹을 신었지만, 오늘은 맨발을 드러내고 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그럼 가볼까요?」


  전혀 주눅 든 기미가 없는 키리바나는, 나와 그 양쪽에 앉은 부모님을 보고 살짝 웃는다. ......이 녀석, 틀림없이 일부러 늦게 왔구만.

  곧바로 인사하고 키리바나의 집에서 나오자, 「너무 늦지 말렴.」이라고 키누에 씨에게 주의를 받는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이런 면을 보면 역시 어머니다.

  연상자로서 수긍하는 의미로 뒤돌아보자, 「그리고 하치만 군도 가끔씩은 코마치랑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와.」라고 말한다.




「......늦어져서 죄송해요.」

「너 말이다, 그렇게까지 미안하다고 생각 안하잖아. 아직 웃고 있다고.」


  모이는 장소인 역의 동쪽 출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역시 일요일답게, 아이를 동반한 부부가 즐거운 듯이 지나가는 광경이 흔히 보인다.

  최근 3일 정도 비가 올 법한 날씨였지만, 오늘은 선명한 파랑색이고 적란운이 치워져 있다. 오랜만에 하늘이 맑아서인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왠지 밝아 보인다.


「카와사키 군이 전하는 말인데, 상황을 잘 봐서 빠지길 바라는 것 같아요. 듣기로는 할 수 있으면, 오늘 결정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들어도, 우선 오늘 예정을 모르면 할 수 없잖아.」


  왠지 과정을 확 건너뛰려 한다고 할까, 타이시는 왜 평범하게 데이트한 다음에 과정을 밟으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이런 초조해하는 상태가 중학생답다는 생각도 들지만, 상대가 고등학생 3학년인 만큼,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이즈에 선배 같은 타입은 한 번 놀러 갈 정도라면 별 거 아니니까, 타이시만 너무 의욕에 넘쳐 보인다.

  10분 정도 걷자 역에 도착했으므로, 혼잡 중에서 타이시나 이즈에 선배를 찾는다. 키리바나의 집에서 시간을 소비했지만, 거의 약속 시각에 도착했으니 어느 쪽인가는 왔겠지.


「히키가야 형! 여김다.」


  체육계 사람 같은 존댓말이 들려서, 들은 적 있는 목소리 쪽으로 뒤돌아보자 타이시가 눈에 들어온다. 체육계 사람답게 짧은 바지에 디자인이 괜찮은 티셔츠를 맞춰 입었을 뿐이지만, 썬탠한 흔적도 어우러져서 꽤나 보기 좋다.


「이즈에 선배는?」

「아직임다. 아까 전부터, 이 근처를 돌아다녔는데, 눈에 띄지 않던데요.」


  아무튼 5분, 10분 정도라면 늦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걸어도 소용없으니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셋이서 기다리기로 한다.


「정말로 와주시는 겁니까? 왠지, 믿기지 않슴다.」

「안심해라,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라도 당하지 않는 한은 확실히 올 거다.」


  타이시는, 우리들이 데이트 세팅까지 해줬다고 믿은 건지, 몇 번이나 내게 감사인사를 한다. 데이트는 이즈에 선배가 멋대로 말했을 뿐이지만, 남중생의 꿈을 부수는 것도 미안하니 그대로 둔다.

  약속시각이 5분 정도 지났을 무렵, 멀리서 이즈에 선배가 오는 것이 보인다.

  아쿠아 블루색 플레어 스커트에, 연유색 가디건을 맞춰 입은 청초한 모습이지만, 묘하게도 이즈에 선배에게 어울린다. 스커트라지만 교복보다 길어서 무릎이 가려져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니, 전혀 그렇지 않슴다.」


  타이시가 인대가 손상될 정도의 기세로 머리를 흔들자, 이즈에 선배는 미소 지으며 타이시에게 손을 내민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두 번째구나. 이즈에 메구미입니다, 잘 부탁해.」

「카, 카와사키 타이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한 얼굴로 마찬가지로 손을 내민 타이시와 악수를 하고, 이즈에 선배는 우리들을 향하며 나와 키리바나를 본다.


「키리바나도 일부러 와줘서 고마워」

「아니요,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와서 다행이었어요.」


  날 힐끔 보고, 기분 좋은 소리로 키리바나가 대답했다.

  키리바나의 기분이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그것보다도 이즈에 선배가 생각보다는 평소 그대로인 것에 놀랐다. 청초한 차림이지만, 그 표정에는 평소의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미소가 떠올라 있다. 의외로 캐릭터를 만드는 타입은 아닐지도 모른다.


「늦은 것은 전혀 상관없는데, 오늘 어디에 가심까?」

「윈도우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할 뿐이야. 중학생이 둘 있기도 하고, 그렇게 돈이 드는 것도 싫겠지?」


  손가락을 바짝 세우며 이즈에 선배가 말한다.

  확실히 영화는 고등학생에게는 의외로 싸다. 천 팔...... 고등학생은 천 엔으로 볼 수 있으니, 섣불리 노래방에 가는 것보다 싸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생 요금이라고 딱히 두 번 볼 수 있다든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블루레이가 있어서, 영화관에는 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다. 특히 약간 한가한 때에 영화관에 가서 상영되는 것을 보는 건 꽤 재미있다. 게다가 영화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비춰지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최적의 미디어로 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선은 영화관으로 가면서 슬슬 돌아볼까?」


  선배와 키리바나가 얘기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혼잡 속을 빠져나간다. 지금은 딱히 막히지 않고 타이시가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조금 안심한다.


「왠지 좋은 분위기네요.」

「지금은... 말이지. 선배니까 어떻게 될지 읽지 못하겠는데......」


  확실히 그 자리에서 돌아간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웃는 얼굴로 딱 잘라서 타이시를 찰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고, 반대로 눈치 채면 어딘가 나갔을지도 모른다.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겠지.

  근처에 있는 가게를 가볍게 둘러보며 흐느적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이즈에 선배가 한 가게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여기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괜찮아?」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끝에는 창문이나 벽에 귀여운 개나 고양이, 토끼 등의 사진이 실린 포스터와 간판에 쓰인 「애완동물 샵」이라는 글자가 춤추고 있었다.

  포스터로 보기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해도 여자에게 인기가 있을법한 동물만 취급하는 것 같다. 새나 물고기처럼 냄새 나는 생물은 판매하지 않는 듯하다.

  흠. 누가 제안했는지는 모르지만, 꽤 좋은 곳이군. 이야깃거리로 삼기도 쉽고, 귀여운 생물을 보면 누구라도 편안한 기분이 들 것이다.


「전 괜찮지만, 키리바나가......」

「어라? 키리바나는 동물에 약해?」

「기본적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괜찮아요. 부디, 들어가주세요.」


  이즈에 선배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이 몇 번이나 키리바나에게 확인했지만, 키리바나가 괜찮다고 딱 거절해서 할 수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괜찮아?」

「제가 카와사키 군의 데이트를 방해하면 안 돼요. 게다가 움직이면서 울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고, 멀리서 개라도 볼 테니까 괜찮아요.」


  덧붙여서 말하자면, 키리바나는 고양이에 약하다.

  딱히 고양이 알러지가 아니고, 키리바나도 이런 성격이라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데도 움직이는 고양이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다가가려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개나 토끼 등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사람의 특기나 서툰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사진이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지만, 그건 괜찮다는 축에 들어가진 않겠지.

  그 때문에, 우리집에 키리바나가 올 때는 애묘인 카마쿠라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 방으로 피한다. 대단히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고양이지만, 누굴 닮았는지 외출하기 싫어해서 그 뒤로 당분간 내 침대를 점거하는 것이 곤란한 점이다.

  이즈에 선배를 따라 애완동물 샵에 들어갔더니 가게 안 구석구석에서 귀여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중에 섞인 고양이 울음소리에, 키리바나는 잠깐 동안만 몸을 움츠리지만, 그대로 걷는다.

  ......나 참, 싫으면 안 들어가면 될 텐데.


「어이 타이시. 우리들 강아지 코너에 있을 테니까, 선배와 적당히 돌아보고 있어.」

「네? 괜찮슴까? 그럼, 어느 정도 돌면 그 쪽으로 가겠슴다.」


  「나중에 봐」라고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며, 고양이 코너로 가는 이즈에 선배를 배웅한 곳에서, 개 울음소리가 시끄러운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자, 가자」

「고마워요.」


  키리바나의 말을 등으로 받아들인 채, 가게 구석으로 간다.

  개 코너에는,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가 우리에 있었다. 옆을 봐도 어느 정도 큰 개가 안 보이는 것을 보면, 이 가게는 강아지를 주로 취급하는 거겠지.

  키리바나는 아주 잠깐 몸이 굳었지만, 우리 안에 있는 강아지들을 보고 점차 얼굴이 풀어진다.


「아, 이 아이가 차분하고 귀엽네요.」


  키리바나의 시선 끝에는,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혈통의 영리해 보이는 강아지가 엎드린 자세로 키리바나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우리에 달린 명찰에 따르면, 견종은 게르만 셰퍼드라는 듯하다. 확실히 경찰견이나 군용견으로도 쓰일 정도니, 지능이 높을 것이다.


「너, 그런 영리해 보이는 개를 좋아하는구나.」

「치와와나 마메시바보다는 좋아해요. 대화할 수 있는 느낌을 특히」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 너머로 셰퍼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역시 머리가 좋은지, 셰퍼드는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키리바나가 하는 대로 따르는 중이다.

  애완동물 같은 외형보다는, 셰퍼드나 리트리버 같이 사냥개에서 개량된 견종을 좋아하는 기분은 조금은 알겠다. 우리집 카마쿠라도, 아까 전에는 건방지다고 했지만, 그 생물다움이 장점이기도 하니까.


「괜찮으시면, 안아 보시겠어요?」


  키리바나의 뒤에서 젊은 여점원이 말을 건다.


「아니요, 오늘은 사러 온 건 아니라서.」

「딱히 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또 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꽤나 당당한 점원이지만 그 만큼 우리도 사양하지 않아도 되니 손님을 대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키리바나가 잠시 우물쭈물한 뒤, 「그럼, 부탁합니다.」라고 말하자, 왠지 점원은 내게 윙크를 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딱히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는 안했다고.

  그런데도 강아지를 팔에 안은 키리바나가 기뻐보였기 때문에, 약간은 참견이 심한 점원에게 감사해도 좋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