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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weet Queen

2014. 3. 29. 16:23 | Posted by 2ndboost

단편입니다. 둘이 행복하게 키스하고 끝냅시다.

 

=================================================================================== 

 

아아, 또냐.

 

덮쳐오는 은색 승용차 라이트와, 귓속까지 울리는 클락션 소리를 각각 인식하며, 충격 받을 각오를 한다.

천천히다. 시간이 슬로우로 느껴지는 건 이걸로 두 번째다. 그리고 나는 또 차에 튕겨나간다. 이번에는, 사브레가 아니라 유이가하마를 밀어낸 것 같지만, 도움이 됐을까. 나와 같은 동아리에, 내 여친의 친구인 소녀를. 과연.

 

그리고, 비명을 울리며 주저앉은 유키노가 시야 끝에서 보이고는, 눈이 닫혔다.

 

 

 

 

...... 아무래도 난 살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도 끈질기군. 입학식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교통사고 당했는데 살았다든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느 쪽이라도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다행이다.

, ? 힘이 안 들어가네. 그뿐 아니라, 다리 감각이 없다. 아니, 겨우 오른쪽 발가락은 움직였다, 고 생각한다. 눈부셔서 눈을 못 여는 탓에, 감각이 없는 발가락 끝을 실제로 확인할 수 없어서다. 아무튼 침착하자. 이럴 때는 소수를 센다. 1, 2, 3, ......, 안 돼. 소수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

 

 

하치만! 깨어난 거지!?

 

-......

 

 

소리를 못 내겠다. 목이 바싹바싹에, 입 속은 여기저기 아프다. 아무튼 뭐지. 이 목소리를 다시 들은 것만으로도, 편해진다.

저기, 유키노. 너 지금 내 왼손 잡고, 떠는구나. 미안, 걱정 끼쳐서......

 

빨리 회복해서 안심시켜 줘야겠네.

 

 

, 이거 물이야, 바로 의사를 불러올 테니까, 살짝 입에 담고 적셔. 전부는 마시지 말고 입 끝부터 흘려 넣는 게 좋아요. ......우선, 지금은 이 정도만.

 

 

빨대 입을 물고 약간 들이마시자 미지근한 물이 흘러들어온다. 후우......살 것 같다. 사막에서 말라붙어서 죽는다니 절대로 사양이라고 생각한다. 입 안에 수분이 들어온 것만으로 약간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정리할 것도 뭣도 없다. 질리지도 않고 또 치여서 입원했다, 그것뿐이다.

이마 언저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면서, 당장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유키노는 속삭인다.

 

 

정말로 걱정했어...... 바보.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어요.

 

, 안해......

 

후후, 또 당신과 얘기할 수 있어서 기뻐요. 가족 분들에게도 연락할 테니까 잠깐 자리를 비울게요. 곧 의사가 오니까, 확실히 쉬어주세요.

 

 

유키노가 나간 뒤, 겨우 빛에 적응된 눈을 뜨자, 역시 여기는 병원이며, 내 몸은 꽤나 너덜너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붕대가 빙빙 감겨있으니 상처라든가는 안 보이지만, 우선은 오체만족인 것 같고, 후우 숨을 돌렸다.

그런데, 그런 뒤에 의사를 데려온 유키노의 표정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님을 느꼈다. 혹시, 감각이 없는 것과 관계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

 

그리고 통보받은 건, 다리의 자유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침대 옆에서 유키노는 울고, 간호사 아줌마도 아직 젊은데, 이런 동정하는 시선을 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반신 마비다. 다만 오른쪽 발은 간신히 감각이 남았고, 노력해서 발가락 정도라면 움직일 수 있다. 외상이라면 여기저기 스친 상처라든가 타박상이 있을 뿐이지만, 땅에 부딪혔을 때 해먹은 것 같다.

 

나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유키노가 데려 온 아빠와 엄마, 코마치에게 각각 여러가지 말을 들었다. 평소 관심 없던 듯한 엄마가 울면서 꼭 껴안았을 때는 무심코 눈물이 흘러버렸다. 엄마라는 건 이래저래 상냥합니다......

그 뒤에 아빠가 머리를 쓰다듬은 건 꽤 의외였지만, 이런 상태라면 멘탈이 바득바득 깎이는 것 같아서, 기댈 수 있는 존재에게는 절로 솔직해지는군. 또냐고 만담해준다면 속이 편했겠지만, 과연 이번에는 부모님이 커다랗다는 것을 실감했다.

 

근데, 가장 고생했다고 할까, 큰일이었던 코마치. 평소의 미소 같은 건 없이 몹시 운 눈시울과 새빨간 뺨을 보면, 아까 전까지 진짜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통곡하고, 마구 들러붙으니까 전신에 데미지를 입었다. 미안하다고...... 진짜로.

 

복도에서 기다린 듯한 유키노를 가족에게 맡기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갔다. 아무래도 난 이틀 누웠던 것 같다고 간호사에게 들었지만, 계속 간병해줬던 것 같다. 어느 샌가 지나가 버린 스마트폰 날짜를 보고, 다시 시간이 흘렀음을 느꼈다. 착신 없고, 메일도 T뭐시기 포인트 관련된 것 밖에 안 왔다든가도 못 말하겠다. 시체에 채찍질한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만.

그 때, 메일이 도착한다. 평소 안 오던 게 오면 떨리는군. 보낸이는 유이가하마인가.

 

 

지금 병문안 가고 싶은데, 괜찮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한테도 걱정 끼쳤지. 상처는 안 났으려나. 우선 답장해서, 잠깐이라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 되면 비관적이라기보다 득도한 기분이 되는구나. 장애인이 돼서, 일은 못하게 됐으니까, 일하고 싶지 않다를 목표로 했던 나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됐다고 하니, 무슨 일이라도 좋아진다.

스마트폰 화면에 비친 여러 사진들. 유키노에게 끌려서 간 관광지라든가, 유이가하마도 포함한 봉사부 3명이 바다에 갔을 때였나 그런 사진도 있다. 지루한 듯이 비친 내 얼굴은 이렇게 보면 즐거운, 아니, 즐거웠구나.

 

그렇게 기다리기를 수십 분,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유이가하마가 모습을 보였다.

쭈뼛쭈뼛하는 유이가하마에게 우선 의자를 가리켜서 앉게 했다.

 

 

저기......힛키, 정말로 고마워. 나 같은 걸 도와줘서......

 

상처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미안, ......

 

 

역시 울어버린다. 난 이렇게 하길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해봤자, 분명 유이가하마는 자신을 탓한다. 진짜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적어도 난 대역이 됐으니까. 하지만, 이런 나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이유는, 여기 있는 유이가하마가 나와 유키노를 맺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그 때 내가 돕지 않았다면, 이 녀석의 생명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될 정도라면, 내가 이렇게 되는 게 훨씬 낫잖아.

 

 

우선, 침착되면 오늘은 돌아가서 자. 그 기미, 너 계속 못 잔 거잖아. 난 이제부터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이 정도밖에 말할 수 없다. 그나저나, 슬슬 졸리다. 사고 데미지도 있고, 왠지 살아서 안심했는지 긴장의 끈이 풀린 것 같다.

유이가하마는 그 뒤로 조금 있다가 돌아갔다. 돌아가기 직전까지, 아니 돌아갈 때마저 울면서 사과했다.

 

아아, 졸려. 당분간은 느긋하게 쉬자.

 

 

 

 

정신이 든 내게 준비된 건 아침의 수치 플레이였다. 살짝 옷을 벗고, 이른바 요강을 준다. 사춘기 한창인 남고생이 거길 다른 사람 이목에 보이고, 대소변 시중을 받는 수치를 참아야 하다니, 이 무슨 시련이냐.

 

겨우 해방된 난 어제 코마치가 가져온 게임이라든가로 오전을 보냈다. 검진하러 온 할아버지 의사에게는 힘이 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생명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대답했더니 살짝 다리를 어루만져주었다.

정신이 든 뒤 깨달았다, 여태까지 난 외톨이라고 외치고, 주변 사람은 내 인생과는 상관이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됐다. 목숨을 구해져, 이렇게 조용한 한 때를 보내는 것도, 역시 주변 버팀목이 있어야만 한다. , 리얼충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는 거겠지.

 

실제로, 내게는 아름답고 다정한 여친이 있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돕고 싶은 친구도 있다.

그렇게 싫어하던 리얼충 중에서도, 난 꽤나 상위 카스트에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까지 생각한다.

 

시계 바늘이 5시를 가리켰을 무렵, 유키노와 그 언니, 하루노 씨가 문병 왔다.

 

 

안녕 히키가야 군, 보아하니 평소와 별로 다름없네?

 

언니...... 미안해 하치만. 소란스러워져서 말렸지만, 마음대로 따라왔어.

 

 

유키노의 흘기는 눈빛을 받으면서도, 평소대로의 미소를 지으며 하루노 씨는 침대에 앉는다. 끼익 삐걱거리는 침대와, 미니스커트라 보이는 허벅지와, 살짝 밀려오는 향기에 심박수가 약간 오른 것 같았다. 유키노한테 들키면 난처하다.

소수를 센다...... 근데 그런 드립은 이제 됐나.

 

 

너무해~ 유키노 짱! 나라도 진심으로 걱정한다구. 좀 있으면 가족이 될 남자애니까, 병문안 하러 오는 건 당연해. 거기에 나도 운전면허는 딴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신경 써야한다고도 생각하는데?

 

, 가족이라니...... 하아, 됐으니까 거기서 떨어져주겠어? 거긴 하치만 침대고, 우리들이 앉을 곳은 이 의자야.

 

유키노 짱 무서워. 저기 히키가야 군, 이제부터라도 나로 안 바꿀래? 히키가야 군이라면 나도 OK!

 

, 아니. 괜찮아요. 유키노시타 씨의 그 파워풀한 느낌, 제 편으로 만들면 든든할 것 같지만, 계속 같이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사양해 둡니다. 그보다, 전 유키노와 사귀는 중인데

 

 

나 치고도 이렇게나 부끄러운 대사가 펑펑 나온다. 얼굴이 빨개진 유키노를 보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좋겠지.

이런 미인 자매에게 걱정되다니, 2학년 때는 생각도 못했지. 봉사부 활동에 힘쓰던 시기 아니, 매일 유키노한테 매도되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걱정되기까지 한다. 인생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 하치만! 언니를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무슨 일을 할지 모르잖아. , 지금도 흉계를 꾸미는 중이야.

 

~, 히키가야 군, 유키노 짱이 괴롭혀-!

 

 

매우 부드러운 2개의 감촉이 팔을 감싼다. 이건 위험해. 적어도 유키노시타한테는 없는 저거다. 하지만, , 지금 난 못 움직이잖아? 마음은 유키노 일편단심이라지만, 몸은 자유롭지 못하니까 말이지, 어쩔 수 없네요.

 

아무튼 당연하지만, 유키노의 역린을 건드려버린 난 몇 개월 분량의 짐승 이하 취급을 받고, 하루노 씨는 강제연행 되었다.

후우, 왠지 모르게 축 처진 느낌이 사라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걸 의도한 행동이라면, 나는 하루노 씨를 칭찬하고 싶다.

 

그런데, 오늘도 슬슬 자자. 내일은 히라츠카 선생님이 학교 얘기 같은 것을 하러 오는 건가. 사고 난 이래 난 휴학 취급으로 입원한 것 같고, 이런 면에서는 아빠에게 신세졌구나, 생각한다. 조금밖에 힘이 안 들어가는 오른쪽 다리를 만져보지만, 자기 다리를 만진다는 감각이 없다. 왼발은 단순히 무거운, 아니 장식일까. 그런 느낌이다.

정오 쯤 온다 했지만, 역시 학교 일은 히라츠카 선생님이 의지가 되는군. 정말로 감사하고 싶다. 그러니까 누군가 받아주세요. 난 무리니까 말야.

 

 

 

여어, 히키가야. 상태는 어때? 여전히 눈이 썩었군..... 약도 효과가 없나.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눈에 대해서 건드릴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역시 휴학이 아닌, 전학이라든가 그런 얘깁니까?

 

...... 이해가 빠른 건 여전하군. 거기에 자신을 가볍게 여기는 버릇도...... 하지만 괜찮다. 지금까지 그대로 넌 소부고 3학년이다. , 개인수업을 받아야 하니, 앉아서 졸기는 안 된다고.

 

그러면 전학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 다리 못 움직이니까 단체 수업이라든가는 못 받을 테고

 

 

내 조크에 쓴 웃음 지으며 양손을 올려준다. 역시 이 선생님은 다정하다.

아마, 꽤 힘써줬을 거라 생각한다. 일단 이과 포함해서 성적은 상승세가 되었고, 앞으로 반년 정도로 졸업이니까 그렇겠지. 다행이다.

 

 

졸업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살아야 해? 누군가에게 손을 빌려서 살아가야만 한다.

누구에게? 보통은 부모일까? 코마치의 장래를 방해하고 싶진 않은데......

 

유키노는...... 그녀에게 자유를 뺏고 싶지 않은데.

 

아아, 그런가.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건가. 폐를 끼친다는 건. 지금까지 뭐든지 혼자 했으니까 신님이 심술부려서 혼자 살 수 없게 할만도 하군.

침대에 드러누운 이 순간도, 귀찮다면...... 차라리......

 

 

 

 

사고 날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몸에 둔통이 휘도는 날들이다. 이제 앞으로 2주 정도 지나면 리허빌리를 시작하는 것 같다. 일과가 된 악력 근련 트레이닝은 의외로 심심풀이도 돼서 나쁘지 않다.

그보다 한가하다. 처음에는 여름방학 연장이라든가로 여겼지만, 의외로 난 시간을 허비할 순 없게 되었던 것이다. 힐끔힐끔 5분 간격으로 시계를 봐서는 아직 수업 시간이라며 낙담한다. 그리고 또 시계를 본다.

 

어제는 천사 토츠카가 와 줬다. 병문안으로 가져온 사과는 분명, 낙원에 여문 금단의 과실이겠지. 아담과 이브다. 아니, 아담과 아담이지만, 문제없다. 그것마저도 넘어 보이겠어.

오늘은 아까 전 유키노에게 메일이 와서, 유이가하마와 둘이 온다는 것 같다. 얘네들이라면, 고민을 털어놓아볼까.

 

 

힛키, 얏하로

 

하치만, 제대로 쉬었니?

 

오우, 유이가하마 그 인사가 병원 내에서 유행하는 것 같으니까 그만둬. 마치 내가 지도자처럼 보이잖아. 유키노는 언제나 걱정 끼쳐서 미안해. 고마워.

 

힛키가 유행에 민감해졌어!?

 

바보냐 너, 난 유행 같은 건 앞지르니까. 오히려 유행을 예측해서 절대로 휩쓸리지 않기까지 한다.

 

그건 앞지르지 못했다는 거겠지. 여전하네, 당신. 조금은 커뮤니케이션을 주위 사람하고도 하는 것 같지만, 주변에 맞추지는 않네.

 

아무튼, 내가 간호사를 향해서 얏하로 라든가 해도 무시될 것 같고.

 

 

이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가 내게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겁다. 유키노도 유이가하마도 나를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가장 좋다. 마치 봉사부실에 돌아온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기분 좋기까지 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끝내고 싶다, .

 

 

저기 하치만. 당분간 앞의 일인데, 우리 집 별장에 같이 가지 않겠니? 유이가하마 양과도 얘기해보고 생각했어, 기분전환도 되고. 어떨까?

 

, 그래, 그러네......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은데.

 

 

어이어이, 예측이냐...... 정말이지, 못 이기겠군. 유이가하마도 평소 같은 얼굴이 아니고, 꽤 진지하다. 기분이 우울해졌으니까, 그걸 헤아려주는 건가.

 

진짜로, 정말이지. 날 살려준다. 얘네들이.

 

 

 

휠체어는 아무리 끌어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진동이 그럭저럭 있는 이유도 있지만, 아직 탄 지 얼마 안 된 내게는 3센티의 턱도 난관이 되기 때문이다.

겨우 외출 허가가 나온 나는, 유키노시타의 별장에 신세지게 되었다. 계절은 가을, 밤이 되면 벌레가 시끄럽고, 여태껏 모기도 자기 좋을 대로 날아다니지만, 역시 T셔츠 계절은 지났다.

 

평소의 검은 차는 아니고, 휠체어인 채 그대로 탈 수 있는 벤에 흔들리면서 산간의 별장지까지 왔다. 하지만, 오늘 온 사람은 나와 유키노 뿐이다. 유이가하마는 집에 일이 있어서 못 온 것 같다. 무심코 이건 데이트잖아? 생각한 내게 미소 짓는 유키노.

 

 

역시 온 게 정답이었네. 하치만, 평소보다 탁한 눈이 옅어졌어요.

 

 

냅둬. 상당히 마일드하게는 됐지만, 그런데도 가끔 눈에 대한 걸로 놀린다. 아무튼 인사 같은 거다. 뭐야 그런 인사.

과연 평일답게 차도 우리들이 탄 차와 경차 한 대 밖에 없다. 누군가 그 밖에도 있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쇼핑이라든가, 별장에 있는 고용인 차겠지.

 

짐을 방에 둔 우리들은 밖으로 나왔다. 유키노가 휠체어를 밀어줘서, 둘이서 산책하러 나갔다.

완전히 가을다워진 바람을 맞으며, 산의 신선한 공기 중에서의 산책은 우울했던 내 기분을 새로이 해줬다. 병실 안의 살풍경한 하얀 벽이 아닌, 선명한 경치에 눈을 빼앗긴다. 군청색 하늘에, 짙은 녹색인 나무들. 아직 여기만은 여름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의 강력한 색채에 마음이 설렌다. 애처럼 쿡 웃자, 뒤에서 뻗은 손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진다.

 

이건 내 어리광이지만, 처음으로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손 놓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유키노의 자유를 뺏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되돌아온 건, 따듯한 포옹과 뺨을 적시는 눈물. 그리고, 부드러운 입맞춤――.

 

 

 

 

제대로 된 식사는 며칠 만이려나. 유키노가 만들어 준 맛있는 음식을 먹어치우고, 소파에 몸을 맡겨서 배를 문지른다. 운동 같은 건 시원치는 않지만, 휠체어부터 팔만으로 움직이려고 단련하고 있으니 적당히 식욕은 있다. 거기에 나는 연령적으로도 식욕이 왕성한 시기이기도 하니까, 병원식만으로는 불만인 날들이었던 것이다.

들은 적도 없는 요리가 몇 개나 줄서서, 그 모두가 일품이라면, 내가 이렇게 배를 문지르며 괴로워하는 기분을 알아주겠지. 행복한 고통이지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낼 수 있는 것도 오늘 하루뿐이라, 내일부터 또 검소한 식사로 돌아오려나, 싫구만.

이런 것을 멍하니 생각하자, 정리를 끝낸 유키노가 돌아왔다.

 

 

미안. 처음부터 끝까지 해 주고. 정말로 뭐라 할 말이 없어.

 

후후, 갖지 못한 자에게 주는 것이 봉사부의 이념인 걸. 당연한 일이에요. 거기에 그런 것이 없어도 난 당신을 언제까지나 지지해 갈 거예요...... 서투르게 사는 건 피차일반이야.

 

고마워...... 정말로

 

 

감사를 전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비록 싫은 녀석이라도, 해 줬다면 말해야 한다.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그 이상의 뭔가를 주고 싶다. 이런 생각, 일찍이의 나라면 할 리 없었겠지.

비뚤어졌던 옛날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른바 흑역사지만,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깐 쉬는 그녀에게서 예전의 당신도, 지금의 당신도, 어느 쪽도 좋아해. 그건 당신이니까이렇게 들어버리면, 흑역사라 부르는 건 그만둘 수밖에 없다.

 

사귄 지 이미 반년인데, 아직도 약간 닿는 정도로도 긴장하고, 하얀 뺨이 홍조되는, 그렇게 수줍은 유키노가 기대어 있다. 그런 지금의 상황에서는 반대로 내가 숨을 들이키게 된다. 침이 입에 엄청 고여서, 속이려 해도 이 근거리에서는 왜 목이 울리는지 질문 받는다. 제길. 내 쪽이 부끄럽잖아!

 

 

저기, 하치만...... 목욕해야, 저기 들어가자. , 같이

 

 

........라고........

 

 

 

 

(カポーン). 욕실 신에서 자주 울리는 이 SE는 타일 바닥에서, 어느 정도 넓어야 깔끔히 울리는, 것 같다. 누군가 자세한 원리를 알려줘. 유키피디아 씨는 현재 내 뒤에서 얼굴이 사과보다 붉어졌을 것이다. ? 말 안 해, 바보자식.

 

カポーン : 욕실에서 바가지 통 같은 것이 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

 

 

물 온도는 어떠니?

 

, 아아 좋은 느낌이야.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게 분하다. 유키노의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 최고라고. 아무튼 들려주진 않지만.

그나저나, 이 별장 나와 유키노밖에 없고. 고용인이나 누군가 있을까 생각한 내가 경솔했다. 머리카락도, 몸도 씻긴 다음에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여친이라 해도 동년배에게 씻긴다니 위험하군. 그렇다고 할까 손은 쓸 수 있는데 유키노가 말하는 대로 하다니 난 뭐야? 펫 같은 거려나. ......나쁘지 않을지도. 원래부터 여왕 같은 면은 있었고, 명령하거나, 따르게 하는 건 자신 있겠지.

 

 

슬슬 나가자고. 먼저 나가서 옷이나 뭔가 가져다줄래? 안 그러면, 저기..... 보여 버리고

 

, 그러네! 그럼 기다려주세요...... 보면 안 돼요.

 

 

(보는)척일까? 척할까!?

그런 내 속내를 모른 채, 유키노는 살짝 세면소로 갔다. 그런데, 같이 욕탕 들어갔었지...... 위험해. 의식하면, My son.

당황해서 타올을 향해 손을 뻗지만 한 걸음이 모자라서, 바닥에 엎어진 나. 그리고 열리는 유리제 문.

 

 

, 들어가요.

 

 

Oh.......

유키노는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문을 닫았다.

 

 

어떻게든 침대까지 왔다. 오랜만에 밖에 나온 것과, 욕탕에서의 사건으로 몸은 피곤하다. 그렇다고 할까, 정신도 그렇지만.

머리맡의 조명조작 리모컨을 천장으로 향한다. 잘 자라고 중얼거리며 방을 어둡게 바꾸었다.

 

 

.........치만.......

 

 

?

 

 

일어나, 하치만.......

 

유키노야?

 

 

어쩐지 꿈꾸는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말을 걸면 일어날 정도의 얕은 잠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바로 옆에서 숨결이 느껴진다.

천천히 손을 뻗자, 부드러운 물체에 닿았다. ......가슴이 아닌, 팔이었지만.

 

 

있잖아, 하치만. 저기...... 병원에서는 못 했던 것.... 해줄게요.

 

, 뭐야 이런 밤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아, 날 입 다물게 했다. 약간 기다리자, 따뜻하고 젖은 것이 내 입술을 덧쓴다. 그리고, 내 반쯤 열린 입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몇 초, 아니 좀 더 긴 것도 같지만, 나와 유키노는 서로를 탐내듯이 키스한다. 약간 끈적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겨우 떨어졌다. 떨어지기 전에 순간 끌려간듯한 기분이 들어, 안타까워진다. 좀 더...... 깊게 하고 싶다. 좀 더......!

 

 

괴로운 것 같네...... 편하게 해 줄게......

 

, , 키노.......

 

 

아플 정도로 발기한 내 저기를 문지르는 유키노의 손놀림에 이성이...... 아니, 이제 와서 이성도 뭣도 아니지만. 방해되는 옷을 밀쳐내듯이 솟아오른 그것을 꺼내곤, 귓전에 속삭인다.

 

 

손대면 안 돼. 내가 달래줄 테니까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거기에 유키노의 모습은 없었다. 대강의 준비도 온갖 고생을 하며 어떻게든 마쳤지만, 결국 유키노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후까지 휠체어로 근방을 찾아 돌았지만, 한 사람도 발견되지 않는다. 체력도 한계가 가깝다고 느낀 내가 별장으로 돌아오자, 언제나 유키노를 송영하는 츠즈키 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떠올리는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을 가져와보니 메일 한 통과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착신이 하나 왔었다. 츠즈키 씨에게는 잠깐 기다려 달라하고, 스마트폰을 조작한다. 우선 메일을 보면 보낸이는 유키노였다.

본문에는 한 마디, 친가에 볼 일이 생겨서 먼저 돌아가요. 라고만 쓰여 있고, 츠즈키 씨는 유키노에게 연락받아 날 마중하러 온 것 같다.

 

밴에 흔들리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건다. 수업 시간이지만, 과연 받을 수 있으려나.

 

 

여보세요, 히키가야냐?

 

그렇긴 한데,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니, 넌 벌써 알 거라 생각했지만, 유이가하마가 말이다......

 

 

 

병원으로 돌아와, 어떤 병실까지 가자, 붕대에 감긴 참혹한 상태의 유이가하마가, 거기에 있었다. 호흡기를 대고,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상태로 누워있다. 의사와 말하던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달려와서 손을 잡는다. 언제나 약간 담배 냄새가 났지만 거의 나지 않는다는 건, 당분간 피우지 않은 것 같다.

 

 

침착하고 들어줘. 실은 어제 저녁 무렵에, 유이가하마가 자택 부근에서 뺑소니를 당했다. 네 사고 범인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렇게 연속으로 가까운 사람이 사고를 당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그래서........ 유이가하마는 괜찮습니까!?

 

수술은 성공했다, 지만 방심하면 안 될 용태인 것 같다. 그리고 여자니까, 결코 머리에 두른 붕대를 떼고...... 머리가 자랄 때까지는 너무 보지 말도록 해. 너와는 달리, 머리에도 큰 상처가 있어서 말이다......

 

알았습니다...... 유이가하마를, 부탁합니다.

 

그래, 우선 지금은 내가 간병한다. 정신이 들면 연락할게. 그 때까지는 너도 쉬어.

 

 

쉰다니 그럴 순 없다고요...... 못 쉬어......

내 병실까지 와서 눕지만, 완전히 초조해진다. TV받침대에 놓아둔 MAX커피를 쏟아 붓듯이 한 번에 다 마셔버렸는데도, 가빠진 호흡은 진정되지 않는다.

 

누군가......코마치......아니, 안 돼. 아빠도 아니야......토츠카, 아니......유키노, 유키노!!

유키노를 만나고 싶다! 심장이 폭탄처럼 뛴다! 파열할 것 같아. 목으로 전부 토해낼 것 같아........, 아아아......누군, .......

 

 

 

 

 

누구야? 날 부르는 이 소리는? 밝은 소리다. 한없이 밝고, 이제와선 아무 생각도 안 날까 착각하기까지 한다. 평소 듣던 목소리다. 코마치? 아니 달라. 유키노는 이렇게 부르지 않아.

 

 

힛키!

 

 

누가 히키코모리냐. 요즘 난 리얼충 중에서도 킹에 가깝다고. 그 하야마조차 날 보면 평소의 이케맨 스마일이 얼어붙을 거라고, 분명.

 

아아, 그러고 보니 날 이런 식으로 부르는 녀석이 있었던가.

내 여친의 친구이자. 봉사부원.

 

 

유이가하마!!

 

 

잠에서 깬 나는 땀투성이가 되어 침대에서 반신을 일으키려고 발버둥쳤다. 근처에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 지른 현재는 저녁. 그 뒤로 3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스마트폰으로 손을 뻗지만 착신도 메일도 없다.

매달리는 듯한 생각으로 메일을 쓴다.

 

 

지금 당장 만나고 싶어

 

 

송신자는 유키노. 짧은 글이라 바로 끝나서, 송신도 완료되었다. 물로 목을 적시고, 휠체어에 옮겨 탄다.

복도에서 마주친 간호사 아줌마에게 컨디션은 어떠냐고 들었다.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몸은 문제없다. 마음은 상당히 거칠어졌지만.

 

노크를 하고, 대답을 기다린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돌아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제 면회시간은 끝난 것 같군...... 유키노는 못 들었나. 이쪽도 답신이 없을까 홈 버튼으로 화면을 켜지만, 선생님에게 돌아간다는 취지의 메일이 왔을 뿐이었다.

 

 

.........

 

 

안에서 허약한 목소리가 들린다. , 떠올려냈다.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뇌리에 스쳐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야, 히키가야...... 열어도, ?

 

 

침묵.

당연하다. 일어나면 붕대에 감긴 자신의 모습에 쇼크를 받는 건 당연하다. 특히 여자애라면.

 

 

, 미안! 의식이 돌아왔다면, 다행이다. 난 돌아갈 테니까

 

괜찮아, 힛키를 만나고 싶어.

 

 

숨을 들이키고, 문을 연다. 반 정도 열고 거기서 멈춘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 말하면 될지. 상처는 곧 낫는다고 격려하면 될지.

......귀여워. 라고, 그러고 보니 괜찮으려나.

 

 

에헤헤...... 나도 치여버렸어. 너덜너덜해졌어.

 

, 아아......

 

 

얼굴에 상처 입은, 유이가하마는 나를 보며 웃는다. 얼굴의 반을 덮고, 팔다리가 부러졌음에도 상관없이.

 

 

힛키는, 이런 걸 두 번이나 하고 있었네. 거기에, 난 시간이 지나면.....?

 

그래. 그러니까 빨리, 치료해. 이 병원이 쾌적하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있지 마.

 

하하, 그러네. 힛키도 빨리 나가자! 또 세 명이서 부실로 돌아가자? 유키농하고 나하고 힛키하고 같이. 평소대로 유키농이 홍차를 타주고, 모두들한테 오는 고민 메일에 대답하구. 그래서 힛키가 웃을 수 없는 흑역사를 얘기하구...... 힘내자?

 

그래. 유이가하마 치고는 좋은 말이군.

 

무으~, 나두 가끔 씩은 좋은 말 해, 근데 무슨 말이야!

 

미안하다고. 같이 빨리 치료하고 학교로 돌아가자.

 

- 힛키가 학교 가고 싶다니 드물어! 내일은 비구나!

 

시끄러.......

 

아하하

 

저기.........오늘만, 오늘밤만 여기 있어줄 수, 있어?

 

 

평소라면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할 말을, 똑바로 보면서 한다.

사고 날 밤은 무섭다. 어둠이 다가와서 자기 모습이 좀 더 애처로워지면 상상할지도 모른다. 밤에 치이거나 하면, 눈감은 순간 충격의 순간이 플래시백하는 일도 있다.

 

불안한 거다. 기분은 아플 정도로, 잘 안다.

 

 

고마워! ......그래두, 될 수 있으면 여긴 보지 말아줬으면, 좋을지도

 

알았어. 난 여기서 안 움직인다.

 

. 미안해. 어리광 부려서

 

 

이 날부터, 간호사에게 간절히 부탁해서 일주일만 밤에 같이 있기를 허락받았다. 밤이 되면 울음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 방에서, 나는 계속 떠는 손을 잡는다.

 

 

 

 

 

일주일 중 마지막 날.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오래간만이네...... 하치만. 미안해요, 친가로 돌아갔더니 진로나 여러 가지 일에 부딪혔어. 연락도 할 수 없었어.

 

아니, 그건 괜찮아. 그것보다도, 유이가하마와는 만났어?

 

......가하마 양이네.

 

 

? 왠지 목소리가 작아진 유키노가 왜 그런지 궁금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생각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여자끼리밖에 안 통하는 뭔가라는 거다.

 

 

이 뒤에, 같이 가도록 해요. 그런데 하치만. 유이가하마 양이 있는 곳에서 매일 밤 지냈다고 하던데.......

 

? 아아, 사고 뒤에는 역시 불안해지는 거야. 나조차 이번에는 위험했고. 토츠카가 없었으면 위험했어.

 

헤에....... 토츠카 군에게는 상당히 집착하는 것 같네. 난 필요 없었니?

 

삐지지 마...... 유키노가 없었으면 난 좀 더 썩었다고.

 

후후, 눈은 이미 늦었지만요.

 

냅 둬

 

 

여친과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어쩐지 부끄러워서 밉살스럽게 말한다고 리얼충들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얘기했었지만, 아무래도 이런 게 그런 것 같다. 겉으로는 평소대로지만, 실은 꽤 화낼 것 같아서 무섭구만. 다음에 고양이 영상이라도 보여주자.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의 재회는 생각보다는 보통으로, 우리들은 평소처럼 대화를 즐겼다.

시간도 빨리 지나서, 어느 새 3시를 가리킨다. 손가방에서 수통과 종이컵을 꺼낸 유키노는,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홍차를 끓인다.

 

 

실은 제대로 된 도구를 쓰고 싶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참아주세요.

 

아니야, 고마워 유키농! ......좋은 향기네

 

 

컵을 받은 유이가하마는 향기를 음미하듯이, 코 가까이서 컵을 가볍게 돌리는 중이다. 와인이 아니라니까....

난 가져온 머그컵에 담아서, 유키노도 내 방에서 가져온 고양이 무늬 컵으로 홍차를 마신다. 이렇게 있으면 진짜 봉사부가 떠오른다.

 

그래그래, 이렇게 있으면 검호장군이라든가 그런 녀석한테서 고민 메일이 오지만, 오늘은 PC가 없으니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담소를 계속하던 중에, 평소라면 없는 착신이 울리고, 잠깐 누굴까 생각했지만 나 자신이라고 깨닫고, 당황해서 복도 구석에 통화 스페이스까지 휠체어를 끌어갔다.

 

 

죄송해요, 선생님. 이동하는 데 시간 걸려서

 

별로 상관없어. 전화한 이유는 유키노시타에 대해서다. 요새 학교에 안 왔던데, 왠지 알아?

 

유키노는 친가에 돌아갔던 것 같아서, 연락을 못했다고 말했어요. 그나저나, 지금도 병원에 와서 유이가하마와 말하는 중이고

 

그게 사실인가....... 정말이지, 그럼 어쩔 수 없나. 우선 내일부터는 제대로 등교하도록 전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너에게는 말해두는데, 유이가하마를 치고 달아난 자의 차는 아무래도 검은 경차인 것 같다. 치바만으로도 많이 있어서, 경찰도 꽤 난처한 것 같다고 한다.

 

그렇, 습니까...... 그러면, 실례합니다.

 

 

방으로 돌아가서 유키노에게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을 전하자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이제 와서 강의를 착실히 들어봤자 모르는 곳 같은 건 없는 걸. 그렇다면 이렇게 둘이 얘기하는 편이 유익해요. 거기에, 하치만? 당신에게는 수학을, 유이가하마 양에게는 전 과목을 가르쳐 줄 테니까 그렇게 알아두세요.

 

, 유키농...... 나 왠지 머리 다쳐서 공부하면 안 될 느낌, 일지도?

 

아니 유키노, 난 스스로 할 테니까 괜찮아. 유이가하마를 철저히 가르쳐줘.

 

잠깐, 힛키 배신은 안 돼!

 

두 사람 다?

 

 

오랜만에 얼음의 여왕입니다. 이건.

 

그 뒤에 잠시 잡담에 빠졌던 우리들이지만, 점차 유이가하마가 조용해졌다. 약간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뭐지?

유키노도 딱히 깨닫지 못한 상태로 홍차 한 잔을 더 권한다. 그런데 여전히 좋은 홍차 잎을 쓰는구만. 맛있다.

 

 

유이가하마 양, 한 잔 더 어떠니?

 

,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으, 려나

 

그래, 조금 남은 건데, 그렇다면 하치만, 마셔주세요.

 

 

 

옅은 적갈색 홍차가 추가되어, 다시 방에 좋은 향기가 퍼진다.

문득 유이가하마를 보자, 어렸을 적의 코마치가 떠올랐다. 어째서? 아마 그건, 오줌을 참던 코마치의, 그 때 모습과 지금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짝 유키노에게 귓말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내가 화장실에 갈 흐름을 만들면, 유이가하마도 가기 쉽겠지. 아니 쓸데없는 추측이라는 건 알지만, 다리뼈가 골절됐으니, 아까 전의 나처럼 너스 콜을 해야 할 것이다.

 

 

미안해요, 유이가하마 양. 잠깐 하치만과 나갔다 와요. 10분 정도는 걸리니까, 쉬어주세요.

 

미안

 

, , 괜찮아......

 

 

, 가겠어요. 라며 유키노가 내 휠체어를 밀었을 때, 그 일은 일어났다. 침대 다리에 휠체어의 앞바퀴가 닿아서, 침대가 흔들린다. 그 충격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작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울기 시작하는 유이가하마.

시트에 퍼진 얼룩과, 흘러넘치는 눈물이 떨어진 얼룩. 그것들은 한순간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 뒤, 나는 곧장 내쫓겨, 바삐 움직이는 간호사에게, 잊으라고 다짐 받는다. 그거야 말할 생각은 없지만. 그런데 유키노는 어떠냐면, 물로 식힌 홍차를 유이가하마에게 뿌렸다. 아니, 장난치는 게 아니라, 그대로를 말한 거다.

속이는 법으로는 가장 적합했겠지. 덕분에 간호사에게 혼나는 처지가 된 유키노였지만, 유이가하마에게 감사라는 폴로를 받은 덕에, 설교는 곧장 끝났다.

 

그리고 밤, 그 밖에 빈 방이 없었다는 이유로, 내 독실에 급거 유이가하마의 침대가 옮겨졌다. 우선 하룻밤만이라는 말에, 난 속죄도 겸해서 허락했지만. 툭 터놓고 거북하다는 레벨이 아니다. 실금을 동급생한테 보인 그 날 밤에, 같은 방에서 잔다니, 엄청나게 무서운 복불복이다 이건.

당연히 조용한 병실. 유키노는 집에 돌아가고, 완전히 둘 뿐이지만, 말이 없다. 나부터 말을 걸어야겠지만, 무리다.

 

건강이 장점인 가하마 씨가 이래서야, 난 두 손 들었다. 뭣하면 복도에서 자는 편이 나은 레벨.

 

 

, 기뻤어.

 

, 뭐야 넌, 보여서 좋아하는 타입인 거야?

 

, 뭐어어어어어!? 아니야! 기분 나빠! 힛키 기분 나빠!!

 

 

아차! 무심코 생각했던 게 그대로 나와버렸다. 기분 나빠를 연발하는 유이가하마였지만, 놔두니 조용해졌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하는 유이가하마.

 

 

있잖아...... 아까 전에, 알아 줬지? 저런 식으로 알아채 주면, 여자애는 기쁘다고 말하고 싶었어.

 

코마치 덕분이다. 다음에 만나면 감사해 둬.

 

, ? 아무튼 상관 없어. 그래서 말인데. 오늘도지만, , 내가 울고 있을 때 일어나 줬잖아. 정말 기뻤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그 사람을 역시 좋아한다고, 다시 생각했어. 아아, 나 아직도, 좋아하네, 라고...

 

.........

 

그래도 말야. 아니야. 둘은 어울리고, 사귀기 시작했을 때, 어울리지 않다고 힛키는 말했어지만, 후후, 비밀이었지만, 유키농이 고백하기 10분 전에도 나한테 전화해줬어. 고백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무려 38번이나 전화로 상담했어. 귀엽지, 유키농...... 그러니까, 나 둘을, 정말 좋아하니까, 계속,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하는 거야.

 

 

 

좋아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할 수 있으면 옆에서 같이 있어줬으면 하는데

 

.......부탁받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고마워, 힛키

 

 

 

꿈을 꾸고 있었다. 흑과 은의, 뭔가 정체 모를 뭔가가 날 찌르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맛보는 꿈. 하지만 왠지, 거기에는 부드러운 빛과 따스함. 너무나도 갭이 있는 꿈을 꾸던 나는, 정신이 들자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꿈에서 깼을 텐데, 으드득 하고 금속음이 울리는 소리가 난다. 난 움직이지 않았으니 소리는 안 날 터. 잠에 취한 머리로 유이가하마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 쪽으로 의식을 돌리자 스치는 소리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단번에 정신이 든다.

 

 

누구냐!!

 

 

고함 소리를 내서 너스 콜을 잡아 버튼을 밀어 넣는다.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의 화면을 켜서, 허공에 내던진다. 아니, 분명 누군가 있다.

침대에서 뛰어내린 듯한 그 누군가에게 스마트폰이 부딪혀서, 순간 빚에 비춰진 모습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 흑발이 보였다.

 

놀라서 기막힌 내 정신을 재빨리 되돌린 것은 심하게 기침하는 유이가하마의 목소리였다. 병실 불을 켜고, 이름을 외친다.

 

 

.............콜록, 안 돼......

 

무사해?! 괜찮아!?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가슴에 꽂힌, 은 나이프. 피투성이가 된 유이가하마의 얼굴은 덧없이, 사라질 듯한 미소를 띤다.

바닥에 내팽개쳐지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 녀석 가까이, 옆에 있겠다고 약속했잖아!

 

납작 업드린 채로 침대로 손을 뻗어 반신을 걸친다. 급히 달려온 간호사는 비명을 질렀다가 바로 의사를 부르러 달려간다.

 

 

저기, 울지 마..... , 괜찮아.

 

바보야?! ! 말하지 마!

 

 

머리를 흔든다. 오른손을 내 뺨에 대고,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좀 더 얘기하고 싶, 잖아.... 마지막이에요?

 

그만둬! 아직이야! 아직 부실에 못 돌아갔잖아! 아직 요리 형편없잖아!

 

하하, 그랬었지. 힛키한테, 맛있는 쿠키....... 주고 싶었는데

 

얼마든지 먹을게. , 쿠키, 쓰지만, 또 먹어 줄게!

 

미안, ..... 고마워.........ᅟᅵᆺ키, 유키.....

 

 

유이가하마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저기, 유키노 짱하고 연락이 안 돼. 히키가야 군은 왜 그런지 몰라...........?

 

저도........ 만나고 싶어요.

 

나나 경찰도, 유키노시타가도 찾는데, 발견되지 않다니 이상해..... 유키노 짱, 어디 갔을까

 

 

유키노를 만나고 싶다. 만나고 싶다. 만나고 싶어? 그 때의 광경이 뇌리에 떠오른다.

어둠에 스며든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순간 비치고, 유이가하마가 은 나이프에 꽂힌, 그 순간.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행방을 알리지 않다니, 어지간히 하지요.

 

 

그 뒤에, 경찰에 질문을 받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봤다고. 그리고 그 정체의 예상도.

 

 

하아, 요즘 이미지 체인지해서 머리카락 길러서 사람들이 가끔 유키노 짱하고 헷갈리는데, 역시 자매니까 닮은 거네.

 

 

히라츠카 선생님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슬퍼하게 하거나, 나처럼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소부고를 떠나기 전에, 가르쳐 줬지만, 유키노는 학교를 쉬던 중에도, 친가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친가에 확인했지만, 대답은 NO였던 것 같다. 하루노 씨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있잖아, 히키가야 군

 

무슨 일인데요? 하루노 씨

 

 

 

난 계속 곁에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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