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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에 폭설에 마침 닥친 흉행. 난 나쁘지 않아. 날씨가 나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졸작과 전혀 관련은 없습니다. 그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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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엔트란스에서 호출해서 벨을 울린다.

타임리(timely:시기적절하게)하게는 대답이 없지만,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유는 있다.

창문이라기보다 유리벽인 벽 밖은, 집을 나올 때는 드문드문이었던 눈이, 옆으로 들이칠 정도로 바뀌고 있었다.

2월 8일, 11시 08분, 가이힌 마쿠하리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타워 맨션.

10초 정도 기다려도 대답이 없는 이유로, 한 번 더 벨을 울리자, 이번에는 곧장 반응이 있었다.

 

 

『......네』

 

 

목이 쉰듯한 허약한 목소리는, 도어 폰 시스템 탓은 아니겠지.

 

 

「나다.」

 

『사기?』

 

「스스로 불러놓고 농담은 그만둬. 히키가야다.」

 

『.......그 쪽이야말로 농담은 그만해. 당신을 부른 기억 같은 건 없어요.』

 

「빈 메일이 1건, 말없는 전화 착신이 1건」

 

『...................』

 

「어제, 넌 학교를 쉬었다. 히라츠카 선생님께는 감기라고 들었어. 오늘 토요일 아침, 유키노시타 유키노에게서 빈 메일과 말없는 전화. 이상으로, 너무 몸이 안 좋아서 헬프 콜이라고 판단했다. 이 추리를 어떻게 생각해?」

 

『.......소설을 너무 읽었니』

 

「그럼 됐어, 방해했군.」

 

『기다려』

 

 

그렇게 말한 채, 또 몇 초 기다리게 된다. 이럴 때에는, 겨우 1초의 기다림이라도 장난 아니다.

 

 

『......열어요. 방에 들어와』

 

 

아마, 폰을 확인해서,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즉, 자신조차도 무의식일까, 의식이 혼탁했던 중의 헬프 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그걸로 가슴이 철렁거렸다.

자동 도어가 열리고, 나는 엘리베이터로 15층으로 향한다.

문패도 없는 문 앞에서, 나는 인터폰을 울렸다.

여기서도 약간 기다린 뒤, 달칵달칵하고 락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육중한 듯이 문이 열렸다.

나는 바깥쪽에서 도어를 받치며, 열기를 재촉한다.

아마, 여기까지의 일련의 대응조차, 지금의 유키노시타에게는 힘들 거라고.

도어 틈새로, 잘 아는 얼굴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그녀치고는 초췌한 것처럼 보였다.

모스그린인 파자마에, 라이트 그레이인 가디건을 걸치고 있다. 평소라면 이런 맥빠진 차림을 결코 내게 보여줄 리 없겠지만, 신경 쓸 여유도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하겠지.

 

 

「......들어가겠어.」

 

「으.........예, 부디」

 

 

유키노시타는, 약간 우물쭈물한 뒤, 포기했는지, 그렇게 대답하며 나를 방에 들였다.

이 녀석이, 강제적으로 밀고 나가면 다소 기가 죽는 면을 이용한다. 미안하다만, 지금 상황에서 이 녀석의 허풍 따위를 신경 쓸 틈이 없다.

여전히, 여고생의 방으로서는 너무 살풍경한 그 방.

 

 

「차라도.........」

 

「됐어, 무리하지 마. 열은?」

 

「아직 조금 있지만, 대단하지는 않아요. 자고 있으면 곧」

 

「메일을 보낸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유키노시타는, 꾹 하고 침묵을 지킨다.

 

 

「여기서 장황하게 말해도 어쩔 수 없어. 넌 침대로 돌아가」

 

 

나는 다이닝 테이블에 봉투 3개를 둔다.

 

 

「뭔가 사 왔어?」

 

「얘기는 나중이다. 침대로 돌아가라고 말했잖아.」

 

 

환자 앞에서 했던 초조한 말투를, 나는 약간 후회하면서, 유키노시타의 팔을 잡고, 침실로 보이는 방으로 데려간다.

그 행동에, 유키노시타는 당황한다.

 

 

「!? 너, 치, 침실에 들어갈 생각?」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네가 우물쭈물하기 때문이다.

그건 공부방이라도 되는 건지, 색기도 재미도 없는 금속제의 큰 오피스용 데스크가 있었다. 그 반면, 옆의 침대에는, 귀여운 팬더인 판 씨 쿠션이 2, 3개 널려 있다.

 

 

「자, 누워라」

 

「어째서 남자가.... 여자 침실에.......」

 

「여기서도 질질 끌 거면, 공주님 안기라도 할까?」

 

「바ㅂ.....」

 

 

유키노시타는 바로 바뀌어 신속한 움직임으로, 침대로 들어간다.

나는 꾸깃꾸깃한 이불을, 깔끔하게 정돈한다.

 

 

「잠깐.......」

 

「미안. 코마치가 감기 걸렸을 때와 같은 일, 해버렸군.」

 

 

하지만 나는 기죽지 않는다. 보아하니 감기의 용태는 꽤 나쁘다. 신경 쓸 틈 따위 없을 것 같다.

나는 공부책상의 체어를 침대 옆에 두고, 앉았다.

 

 

「........빨리 나가 주지 않겠니. 다시 말하지만, 여성의 침실에」

 

「그렇게 생각하면, 왜 나한테 SOS를 보냈어?」

 

「일생의 불찰...... 그럴 생각은 전혀 조금도 없었는데」

 

「유이가하마라도 하루노 씨라도, 뭣하면 친가에라도 도와달라고 할 수 있었겠지? 오히려,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어떻게든 좋잖아?」

 

「아아, 그렇군.」

 

「그러면, 빨리 돌아가」

 

「밥은?」

 

「그러니까.......」

 

「죽 만들어 준다. 식욕은 있는지? 구토나 설사는? 애초에 의사에게는 갔어?」

 

「.......이 맨션 바로 아래에 클리닉이 있어요. 인플루엔자도 유행성 감기도 아닌 것 같아요. 이 며칠, 추웠으니까」

 

「그런가.........」

 

「코마치를 데려올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 녀석 오늘은 학교야.」

 

「그래........」

 

「독신 생활 경험이 없으니까, 내가 소란 피우는 것처럼 보이면 봐 줘. .....아니, 난 가정 내 독신생활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불안한 마음은 모르지도 않아.」

 

「그럴 리......」

 

 

쓴 웃음을 짓는 유키노시타. 날 불쌍히 여기는 건지, 속마음을 지적받아 부끄러워하는 건지.

 

 

「됐으니까 자라」

 

 

나는 부엌으로 걸어간다.

우오, 긴장되는군...... 코마치 이외의 여자애 프라이빗 룸 같은 건, 처음이라고.

솔직히, 여자 독신 생활 집에 남자 혼자 마구 들이닥쳐, 파자마 차림의 여자가 맞이하는 상황에 갈팡질팡하지 않을 리가 없지만, 필사적으로 떠올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 코마치조차도, 감기에 걸리면 얌전하고 기특하고, 그리고 불안해진다. 병은 마음부터라고 하지만, 반면, 마음은 병부터, 즉 병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유키노시타를 이용해, 억지로 하지 않으면 완고한 이 녀석은 혼자 감기와 싸워야만 한다.

나는 슈퍼에서 산 재료로, 죽을 만든다. 여기 부엌에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냄비나 식기는 싱크대와 식기 세척기에 남아 있는 것을 썼다.

죽에 된장국, 그리고 약간 사치지만 슈퍼에서 쌌던 도미 생선회. 나머지는 매실 장아찌와 다시마를 간장으로 조린 것. 달걀은 온천 계란으로 했다.

 

 

「들어간다」

 

 

침실 문을 노크한다.

열쇠라도 잠가버렸으면 어쩌지, 생각했지만, 순조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포기했나...

유키노시타는 입가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원망하는 시선을 끊임없이 내게 향한다.

 

 

「화, 화내십니까.....」

 

「......당연하잖아.」

 

「과연 약해졌군. 평소의 독설이 들리지 않는다.」

 

「그 약점을 이용해서, 이 파렴치한...... 언제라도 신고할 수 있게 핸드폰을 잡고 있었어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나는 트레이에 얹은 밥공기에, 죽을 부었다.

 

 

「도미 회를 재료로 했다. 죽에 더해서, 도미를 물 부은 밥 위에 얹어서 먹으면 맛있어. 국물도 나오고. 그리고 이건, 양념에 덩굴풀로 걸쭉하게 한 소스다. 죽에 잘 맞아.」

 

「쓰레기(クズ).......」

 

「어, 지금 나한테 말한 거냐? 아니지?」

 

「말했어요.」

 

「부정 없음인가......」

 

※ 漬(덩굴) : 발음이 かずら(카즈라)입니다. 쓰레기는 クズ(쿠즈). 카즈/쿠즈 이 유사성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억지로 옮겼던 게 도움이 됐는지, 유키노시타는 일어나, 죽을 손에 들고, 숟가락을 입으로 옮긴다. 과연 유키노시타 유키노도, 몸이 약해졌을 때 따뜻한 식사를 눈앞에 두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맛있지?」

 

「.......그럭저럭이네. 급제점을 낮게 설정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거 그럴 생각 없는 거지?」

 

 

유키노시타는, 후우후우 하고 죽을 식히면서, 연달아서 입에 옮긴다.

 

 

「.......역시, 배고팠잖아.」

 

「.....입 다무세요.」

 

「감기라는 건, 먹고 자면 낫는 거겠지만」

 

「당신처럼, 대략적으로 만들지는 않아요, 나는」

 

「허약한 걸, 네 몸」

 

「『네 몸』이라니, 당신 입으로 들으면, 겁이 나요.」

 

「아아, 너 바로 나을 거야. 확신한다.」

 

 

그 정도로 말이 유창하게 나오면.

꿀꺽꿀꺽, 죽을 먹어치우는 유키노시타.

나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입 다물고 유키노시타의 상태를 지켜본다.

어쩐지, 따르지 않는 고양이를 먹이로 길들이는 느낌이다. 약간 기분을 상하게 하면, 휙 하고 도망칠듯한 분위기.

나는 그 분위기에, 무심코, 할 생각이 없던 말을, 해봤다.

 

 

「예전부터 넌, 몸이 약해서.......」

 

 

움찔하고, 유키노시타의 어깨가 흔들렸다.

 

 

「상태가 나빠지면, 난 바로 불리고......」

 

「그런, 옛날이야기......」

 

「그러니까 너, 오늘도 무심코 나를 불렀지?」

 

「...............」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고열로 의식이 몽롱해서 무심코인지는 묻지 않겠지만」

 

「심기에 거슬리는 말투군요......」

 

「.......그리운데」

 

「....................」

 

「싫어? 이 이야기가. 싫으면 그만두지만」

 

「그 근성이 나쁜 면도, 여전히 그래요.」

 

「너의 억지스러운 면도, 여전하다.」

 

 

유키노시타의 손은 멈췄다. 다 먹긴 했지만,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이제 다 먹었어? 한 그릇 더는?」

 

「.......됐어, 요.」

 

「약은? 어디에 있어?」

 

「여기에 있어요. 물을 받을 수 있을까?」

 

 

유키노시타는 내가 건네준 컵의 물로, 처방된 감기약을 삼켰다.

후우, 하고 유키노시타가 한숨을 내쉰 것을 신호로,

 

 

「그럼, 나 돌아간다.」

 

「엣?」

 

「죽은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까, 저녁밥은 그걸 다시 데워라. 날 것은 이제 없으니까 괜찮겠지.」

 

「................」

 

「.....뭐야?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별로」

 

「따뜻하게 해서 자. 머리맡에 패트 병과 컵 놔둘 테니까 수분은 충분히 섭취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요.」

 

「그런, 가」

 

 

양 무릎을 팡 두드리며, 나는 일어선다. 유키노시타는 침대로 잠수,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

침실을 나오려고 한 나, 였지만.

 

 

「기다려!」

 

「 ! ? 」

 

 

『20년만의 폭설이 내린 관동지방, 각처에서 교통기관의 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리빙의 대형 TV로 뉴스를 보는 우리들.

하필이면, 역사적인 폭설에 직격된 치바도 또한, 강설적설, 그리고 강풍에 의한 폐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툭 터놓으면, 난 돌아갈 수단을 잃어버렸다.....

 

 

「..............」

 

「..........................」

 

「.....넌 자고 있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걸어서라도 돌아간다.」

 

「그런 거리가 아니겠지.」

 

「두 역이니까 어떻게든.......」

 

「날씨가 좋다면, 이겠지?」

 

「......왠지, 너, 내가 남았으면 좋겠어?」

 

「벼, 별로, 그렇지는」

 

 

띠리링

 

 

「......코마치에게서 메일이다.」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고......

추우니까 현관도 닫는다, 고.......

추위는 관계없잖아.

유키노시타를 문병하러 간다고, 말해선 안 됐나.

 

 

「.......어쩔 수 없네요. 현관에 골판지로 간이 케이지를 만들어 줄까」

 

 

이 녀석, 언젠가의 사브레와 동일 취급을 나한테......

 

 

「환자는 자라. 자신의 케이지 정도는 스스로 만든다.」

 

「케이지는 받아들이는군요......」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침실로 향하려는 유키노시타.

갑자기, 그 다리가 멈춘다.

 

 

「.......부, 부탁이, 있는데」

 

「......역시 너, 열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행동, 네가 할 리가 없다.

나는 유키노시타가 누운 침대 위,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내가 찾아왔다고는 해도, 유키노시타가 이런 무방비한 모습을 내게 보인다는 건, 평소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지금」에는.

 

「저거겠지, 혼자서 감기를 고치려고 해도, 이 눈에서는 쇼핑도 하지 못하고 방에 박힐 수 밖에 없어서, 불안하게 됐다든지.」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어이어이, 사람 발을 묶어 두고, 하라는 대로 하라는 거야?」

 

「네가 마음대로 찾아왔잖아......」

 

「그러니까 돌아간다고? 난」

 

「무리하지 않는 거야. 길에서 당신이 조난하면, 당신 같은 것 때문에 수색하는 사람이 번거로워져요.」

 

「내버려 둬도 좋다고? 눈이 녹을 무렵에는 시체가 보이겠지.」

 

「그건 그거대로.... 그 부근 일대가.... 오염돼서.... 콜록콜록」

 

「어이어이, 그런 몸으로 무리해서 날 매도할 필요 없잖아.」

 

「기침은 아니에요. 너무 말해서 목이 쉰 것 같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그 때로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을까」

 

「.............」

 

 

갑자기, 유키노시타는 상체를 일으키고, 나와 마주보며, 눈을 마주친다.

그게 갑자기 부끄러워서, 나는 힐끔힐끔하고 미묘하게 시선을 돌렸다.

 

 

「눈 아래에 파묻힌 과거는, 눈이 녹을 때가 와도, 그 무렵의 반짝임을 되찾을 수 없을까?」

 

「.......우리들의, 기억에 대해서 말하는 거야?」

 

 

열 탓인지, 붉힌 얼굴로, 젖은 눈동자로, 유키노시타는 내 눈을 곧게 쏘아 맞춘다.

 

 

「두 명이, 기억상실에 걸리다니.... 서로만을, 잊어버리다니......」

 

「......어이, 이제 그 일은」

 

 

유키노시타는, 갑자기 내게 힘없이 기댄다. 내 오른쪽 가슴에, 오른 뺨에, 열을 띤 유키노시타의 몸, 공연히 가볍게 느껴지는 몸이 밀착한다.

 

 

「당신을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의 감정도 알고 있는데, 저런 교통사고로 같은 것으로, 그 기억을 잃어서.......」

 

「유키노시타.......」

 

「그것만이 아니에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모처럼 재회할 수 있었는데, 생각해 내기는커녕, 당신을 심하게 대하기만 해서」

 

「네가 했던 말 같은 건, 난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런 말이 아니에요.」

 

 

유키노시타는, 내 가슴에서, 갑자기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 눈동자에 한층 더 물기를 띤다.

 

 

「당신이 하는 일, 당신이 생각하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당신을 이해하려들지도 않고, 부정만 하고......」

 

「그거야 그렇다, 내 방식은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칭찬받을 만한 게 아니야. 그것 밖에 할 수 없으니까, 했을 뿐」

 

「하지만, 일찍이의..... 중학생 시절의 난, 하고 있던 거예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을 받아들여, 당신을..... 사랑했어.」

 

 

그래, 나와 유키노시타는, 고등학교 입학 날의 그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었다.

사고의 피해자는 나만이 아니었다.

유키노시타가의 리무진에 받힌 나만이 아니라, 차내에서 그 충격을 머리에 입은 유키노시타는, 외상이 없긴 하지만, 그 기억의 일부를 잃고 있었다.

해리성 건망, 그 증상의 하나, 계통적 건망. 어느 요소에 관련된 기억, 예컨대, 특정 인물에게 관련된 기억만이 상실되는 증상. 어떤 종류의, 섬망 기억상실.

유키노시타는 나의, 나는 유키노시타의 기억만을 잃었다.

 

나와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중학생 시절 연인이었다.

뭐가 계기였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서로, 서로 이외에 흥미가 없던, 두 명의 외톨이였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키노시타가는, 이 교제를 좋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유키노시타가 유학에 보내졌던 것도, 둘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같이 유학중이던 하루노 씨조차 몰랐던 우리들의 관계는, 얼마나 유키노시타가가 숨기고 싶은 사실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편 나는, 코마치를 시작으로 가족에게조차 이 사실을 털어 놓지 않았었다. 유키노시타가의 따님과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다지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실의와 실망의 나날 속에, 유키노시타만은 잃고 싶지 않은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겠지.

 

유키노시타의 유학을 거쳐도, 우리들의 마음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교통사고가, 두 명을 갈라놓았다.

처음에는, 유키노시타의 이변을, 유키노시타가도, 누구나도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사고 사실을 알아도 날 신경 쓰는 기색이 없는 유키노시타에, 간신히 유키노시타가 사람은 기억상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잊어버렸다면, 마침 잘 됐다.

그들에게 다행스럽게도, 나 자신도 유키노시타의 기억을 잃고 있었다.

일찍이 둘이서 합의해서, 수험 친 소부고.

그 시점에서 유키노시타를 전학시키는 것도 가능했겠지. 하지만 유키노시타가는, 쓸데없는 잔재주는, 반대로 유키노시타를 자극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존재가 공공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봉사부라는 동아리의 존재를, 유키노시타가가 알고 있었다면, 뭔가 손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하루노 씨가 전부를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작은 기적과 우연이 겹쳐......

기억을 되찾은 계기, 그런 건 상관없다. 다만.

지금,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내 팔 안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지 마. 사고였다고. 나도 너를 잊고 있었어. 나도 책임이 있다.」

 

「그 사고도, 혹시 내 집이.....」

 

「.......어이, 뒤숭숭한 말할 생각이라면 그만둬.」

 

「그래도」

 

「너도 다쳤다. 설명이 되겠지.」

 

「...............」

 

「이제 됐어, 지금은 감기를 고치는 것만 전념해.」

 

「.....옆에 있어.」

 

「어?」

 

「오늘은 옆에 있어. 어차피 이 눈에서는 돌아갈 수 없겠지. 내 옆에 있어.」

 

 

아무튼, 코마치한테 내쫓기긴 했지만......

 

 

「........그래, 내가 붙어서 간병해 준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쉬어.」

 

「......꼭 껴안아 줘.」

 

「.......제대로, 침대에서 자는 편이」

 

「부탁이야..... 무서운 꿈을 꿨어. 그 사고로, 네가..... 가 버리는 꿈을」

 

「어이어이.......」

 

「그 꿈..... 핸들을 잡고 있던 사람이, 나였어.」

 

「꿈은, 꿈이잖아.」

 

「.......돌아올 수 없는 거야? 저기, 그 때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야?」

 

 

유키노시타는 푹 숙이며 내 스웨터 가슴 부분을 꽉 쥐었다.

 

 

「........아마도」

 

「어째서......」

 

「기억을 잃던 사이에, 보낸 시간도 있어. 기억이 돌아왔다고 해서, 그것들을 없는 것으로 치고, 끊어진 여러 곳만을 이어 맞추다니 그런 형편 좋은 일은, 할 수 없어. 그야말로, 그런 건, 나도 너도 싫어하는 기만이잖아.」

 

 

그래, 감정이 기억에 지배된다면, 망각은 사람을 리셋하는 것일까. 비록 그것이 사고에 따른 증상이라도, 잊어버릴 것 같은 마음은,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약간이라도 그 의문을 느낀 지금, 일찍이의 자기 자신의 유키노시타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진짜였는지, 나로서는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유키노시타를 상처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지만, 생각해 냈어요, 두 사람 모두.... 생각해 냈으니까, 잊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렇게 흘려버리는 것이, 나는 안 돼. 미안.」

 

「히키가야 군........」

 

 

매달리는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키노시타.

나는,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그 눈물을 닦는다.

 

 

「하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어..........」

 

「다시 새로, 너와 유대를 쌓아갈 수 있다면, 서로를 생각할 수 있다면.... 기억을 잃은 것조차도, 시작에 불과해. 우리들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언젠가는 웃게, 될지도 몰라.」

 

「히키가야 군.......」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병을 고쳐」

 

「시작할 수 있어? 우리들은.......」

 

「몰라. 그래도, 해 보자고」

 

 

꽈악, 내 스웨터를 쥔 손에 힘이 가득 찬다.

 

 

「.......를, 갖고 싶어요.」

 

「어?」

 

「표시를, 갖고 싶어.」

 

 

나를 올려보는 유키노시타의 눈에, 힘이 가득 찬다.

꽈악, 유키노시타는, 문득 눈을 감으며, 그 얼굴을 내게 가까이 댔다.

 

 

「어, 어이, 유키노시타......」

 

 

나는, 갈팡질팡이다.

유키노시타는, 우물쭈물하는 내 반응에 토라졌는지, 눈을 열고 므읏-하며 뾰로통한 얼굴을 보인다.

 

 

「ㄴ, 나와 넌, 사귀던 때도 이렇게 한 적, 없었잖아......」

 

「.......고등학생이 되면, 조금은 대담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하면서, 기대했었는데」

 

「있잖아.......」

 

 

잠시, 서로 바라보는 우리들.

그리고 또, 유키노시타는, 눈을 감았다.

하아.......

 

 

「유키노시타」

 

「응........」

 

「너, 열 있지?」

 

「...............」

 

「고열로 의식이 흐려져서, 멍해져서, 환상을 보고 있어.」

 

「.........?」

 

「그러니까, 기억에 남았다고 해도, 그건 꿈이야. 알겠지? 이건 꿈이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천천히, 유키노시타의 분홍빛의 약간 얇은 입술에, 내 입술을 겹쳤다.

열 탓인지, 약간 거칠어진 유키노시타의 입술에, 내 가슴은 철렁였다.

멈춰 있던 시계가, 째깍거리면서 그 바늘을 움직이고, 약간,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시간.

 

밖은 설풍.

눈 아래에 갇힌, 우리들 둘.

그 대로 잠든 유키노시타를, 내 가슴에 기대게 한 채로, 우리들은 깊어가는 시간에 몸을 숨긴다.

앞으로의 일 같은 건, 모른다.

차라리 둘의 기억이, 또 닫혀버리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한다.

생각해 냈기 때문에 따른, 고뇌도 갈등도.....

보석으로 바뀔 날이, 과연 둘에게 올 것인가.

지금은 아직, 모른다.

 

 

빠직.....스륵.......

 

 

베란다에서 들린 소리에, 잠에서 깼다.

쌓인 눈이 밤중에 얼었다가, 녹기 시작한 소리겠지.

커튼 틈새로, 도쿄만 너머의 아침 해가 수평으로 들어온다.

멍하게 눈을 비비자, 내 앞가슴에서, 간질이는 듯한 속삭임이 들렸다.

 

 

「좋은 아침, 하치만」

 

「유, 유키노?」

 

 

베개 쪽의 벽에 기대어, 자버렸나.

이 가슴에서 눈을 뜬 유키노시타는, 아직 열에 녹은듯한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그 때처럼, 유키노는 나를 부르고,

그 때처럼, 나는 유키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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