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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캐릭터 A의 세계

2019. 5. 3. 17:36 | Posted by 2ndboost



남자라면 누구라도 동경하는 이상적인 상황, 가라사대 하렘.
주변 여성들의 호의를 한 몸에 받고, 등장하는 여자애를 들볶다가 마지막에 선택한 누군가와 이어진다...
그런 애니나 게임 같은 설정 따윈 결국은 픽션, 어리석은 남자의 꿈 또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겠지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가공의 세계에 빠져들려는 걸까.

그렇다면 이 녀석의 경우, 내 친구인 마키하라 유지도 가공의 인물인가?


아니, 대답은 반대이다.


나도 유지도 여기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환상 같은 게 아닌, 의심할 여지없는 현실로서 우리들은 살아있다.
고로 이 현실이 현상이 내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여도 납득해야만 한다.


「여긴 그런 세계」라는 것을.


우리 고등학교가 자랑하는 러키 보이, 통칭 『RGM(리얼 걸게임 마스터)』 마키하라 유지.
유지를 둘러싼 세계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미연시 세계로 보일 것이다.
고교 2학년, 얼굴은 중상. 성격은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다정하며, 약간 우유부단.
자신 있는 것은 스포츠 전반, 서투른 것은 일찍 일어나기와 요리.
소극적인 체질과 적극적인 사고는 여성의 모성 본능을 자극하고, 여자애의 위기에는 악한에게조차 태연하게 직면하는 용기를 갖고 있다.
이런 스테이터스를 지닌 유지의 주변에는, 여성 몇 명이 둘러싼 확고한 「하렘」이 형성되어 있다.

 


① 유지의 소꿉친구이자 학년 No.1의 미소녀 【호사카 리에】. 
아침에 약한 유지를 깨우러 가는 사람은 근처에 사는 그녀의 일이다.
또한, 유지의 부모님이 맞벌이이므로 아침식사나 도시락, 저녁식사도 그녀가 혼자 맡고 있다.

② 호사카 리에의 한 살 어린 여동생 【호사카 마키】.
소위 소악마라 불리는 성격으로, 유지에게 참견하고 관심 받는 것을 사는 보람으로 여기는 미워할 수 없는 여자애다.

③ 3학년인 우리들의 선배, 모 대기업의 따님이기도 한 【호죠 레이카】.
우아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 거리에서 불량배에 습격당했을 때 유지가 구해준 것 같다.

④보이시한 급우 【카노 하즈키】.
수영부의 에이스이며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햇볕으로 다소 검다.
짧게 잘라 정리한 머리나 평균보다 작은 가슴 탓인지, 남자 같은 풍모를 보이는 미소녀이다.

⑤천연 거유 급우 【오카무라 에리카】.
차분한 어조와 쭉쭉빵빵한 몸매로 남자들의 야한 시선을 독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은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는 기미가 없다는 점이 천연이겠지만.

⑥여장부 담임선생님 【아키모토 카나코】. 
수업 중에 자주 조는 유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다.
입 다물고 있으면 미인이지만, 일단 화내면 의자도 냅다 던지는 괴력교사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마키하라 유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들만이 아니다.
사촌동생, 반장, 동아리 후배, 보건 선생님, 수수한 도서위원, 근처의 젊은 부인 등등...
입장, 나이가 다른 그녀들은 각자 「마키하라 유지」라는 남자를 사랑하며, 여러 방법으로 대시하고 있다.

그런 리얼 미연시 세계에서의 나 신죠 마사토의 포지션.
그것은 즉 『친구 캐릭터 A』라는 것이다.


「후우~... 아침부터 전력질주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 옆자리에 쓰러져, 입을 열고 중얼거리는 한 마디는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적 있는 상투적인 대사였다.


「얌마, 그 말 들은 사람이 내가 아니었으면 때렸을 거라고」

「하하, 뭣하면 바꿔주고 싶을 정도야.」


―――약간 울컥한다.
미연시 주인공의 상투적인 대사겠지만, 실제로 들으면 역시 올라오기는 한다.


「화장실에 가면 리에가 문 닫는 걸 까먹어서 맞고, 준비하는데, 덤으로 마키가 가방을 숨기고... 가끔씩은 지각 빠듯이 말고 평범하게 등교하고 싶어.」


본인에게는 참으로 폐가 되지만, 나를 시작으로 보통 남자라면 부러워할 비현실적인 일상을 매일 체험하는 유지.
이런 푸념을 듣는 것은 친구 캐릭터의 의무겠지만...

「너 말야, 나 같은 일반인들한테 그런 이벤트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어. 자칫 다른 남자한테 말해봐라, 쳐맞고 바다에 가라앉을 수가 있다고.」


하하하... 하고 웃는 내 입가는 메말라 있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언제 덤벼들지 모를 만큼 내 마음은 심란했다.

―――바꿔주고 싶다고? 평범하게 등교?

바라도, 빌어도, 우리들 일반인에게 그런 현실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허무하게 이 세계의 캐릭터 1로서 살아갈 뿐.
이 녀석의 푸념 하나하나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감미로운 세계가 나를 더욱 더 비참하게 만든다.

―――어째서 나는 이런 세계에 태어난 거야...


「마사토?」


깜짝하고 제정신을 차린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 따윈 나오지 않는다. 주사위는 던져지고, 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이 세계에서 태어나 버린 시점에서, 나는 「하렘 주인공의 친구 A」라는 피스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자, 갈아입자. 다음 시간이 체육이야.」

「우엑~ 또 달리는 건가.」


나도 사춘기 남자다. 귀여운 여자애와 친해져서, 많이 이야기하고, 잘 되면 여친을 만들고...
게임 같은 일상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그저 보통으로,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반은커녕 학교의 주요 여자들은 모두 유지에게 눈을 향한다.
물론, 남자 중에 나나 유지보다 멋진 녀석은 얼마든지 있다.
걔들은 몰라도, 내 옆에는 항상 유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애 같은 건, 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키하라 군~」


체육창고에서 용구를 치우고 있던 우리들에게 말을 건 사람은 천연 거유 오카무라 에리카이다.


「선생님이 그러는데~ 정리를 도와달라고~ 그래서 하~짱이랑 같이 왔어~」


뒤에서 스포츠 소녀 카노 하즈키가 공 바구니를 끌며 들어왔다.


「둘보다 넷이 빨리 끝날 거야. 빨리 마치자.」

「하하, 살아났어. 고마워 둘 다」


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져가는 것이 보인다. 역시, 홀딱 빠졌다는 건 이런 거겠지.


「자~ 마키하라 군~ 그거 내가 들어줄게~」

「너한테는 무리야 에리카. 자, 도와줄게.」

「자, 잠깐!? 그렇게 잡아당기면! 아앗!!」


폭하고 매트에 박히는 3인.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오카무라의 가슴이나 카노의 엉덩이에 깔리는 유지. 일반 남자들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이벤트일 것이다.


「...느긋하게 즐기시길」


유지에게는 이것이 일상. 내가 아무리 바라도, 부러워해도, 일어날 리 없는 현실.
나는 자연스럽게 체육창고를 뒤로 했다.


「정말이지, 먼저 돌아가다니 너무해」

「그래서, 미안하다니까. 방해였나? 해서 분위기를 읽은 거라고.」

「어디가 그런데! 그 때는 도와줄 장면이잖아」


돌아가는 길에, 나와 유지의 대화는 전의 체육창고 건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내 마음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다.


―――도와줄 장면?
그 큰 가슴에 얼굴을 묻어도?
탄력 있는 엉덩이에 깔려도?
그래도 도왔으면 좋겠다고?
나만이 아닌, 세상의 남고생이라면 저런 상황에서 도왔으면 좋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지?
제대로 분위기를 읽었잖아.
보통이라면 감사받는 게 당연하지 않나?
―――아니면 자랑하고 싶은 건가? 우월감에 잠기고 싶은 건가?


「...읏!」


그만두자.
아무리 질투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세계. 나의 역할. 나의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오빠」


라는, 귀에 익은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 료카 짱. 지금 돌아가는 거야?」

「어머, 마키하라 선배. 안녕하세요.」


꾸벅하고 고개 숙이고 미소 짓는 몸집이 작은 소녀. 나와 연년생의 여동생인 신죠 료카.
매우 평범한 스펙인 나와 달리, 학년 톱클래스의 두뇌와 용모를 갖춘 1학년의 아이돌적인 존재다.
조신한 행동과 늘 웃는 얼굴로 1학년은커녕, 2, 3학년에도 팬이 많다.
그리고 예외 없이 료카도 유지에게 호의를 보내는 사람 중 하나다.


「아 맞아, 오빠. 냉장고가 빈 걸 잊고 있었어요. 장 보러 갈 테니 짐 들기를 도와주러 오세요.」


료카에게 직접 유지를 좋아한다고 들은 적은 없긴 하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마키하라 선배와는 오래도록 교제를」이라 계속 말하고 있다.
내가 유지와 사이좋게 있는 한, 료카에게 유지는 꽤 가까운 존재가 된다.
특별한 접점이 없는 료카가 자연스럽게 유지와 만날 수 있다.
즉, 나는 완전히 여동생의 연애도구로 쓰이고 있을 뿐.
가족에게도 피에로 취급받는 비참한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미안, 나 배가 아픈 것 같아. 미안하지만 유지, 도와줘.」

「오빠...?」


비참하고, 뭣하지만. 내 신조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남자」이다. 여동생의 연애는 응원해줘야만 한다.
무엇보다,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오빠로서 경솔하게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


「아아, 괜찮아. 그럼 료카 짱, 갈까?」


틀림없이 료카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소리 대신 억지로 손을 잡히고, 팔이 꼭 휘감겼다.


「죄송합니다. 마키하라 선배, 마음만 받을게요.」


한 번 더 꾸벅하고 머리를 숙이고 다음은 찌릿하고 나를 쏘아본다.


「꾀병 부려봤자 전부 들켜요, 오빠. 집 문제에 타인을 말려들게 하는 건 허락할 수 없어요.」

「아니... 너, 모처럼 내가...!」

「그러면 먼저 실례할게요, 선배. 오빠의 무례, 정말로 죄송해요.」


세 번째로 머리를 숙이고 나를 질질 끌어당겨 상점가로 데려가는 료카.
나 참, 이렇게 작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장을 다 봤을 무렵에는 밖이 깜깜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집을 향해 걷는 도중, 료카에게 실컷 설교를 들었다.


「친한 사이에도 예의가 있으니, 저런 행동은 앞으로 하지 마세요.」


기본적으로 자기감정보다 체면을 우선하는 료카다, 방금 전의 행위는 참을 수 없었겠지. 이런 경우, 항상 고분고분하게 따랐지만.


「...너도 나한테 뭐라고 하는구나.」


머릿속의 생각이 불쑥, 입으로 나오고 말았다.
세 걸음 정도 앞을 걷던 료카는 발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본다.


「당연해요. 관계없는 마키하라 선배를 말려들게 해놓고 칭찬받을 수 있다고요?」


나는 단지, 료카와 유지 둘만 있게 하려고 했을 뿐인데.
누구도 아닌, 너 자신에게 가장 감사받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모처럼 분위기를 읽었는데.
이 놈이나 저 놈이나...


「...확실히...말하는 게 어때...」

「네?」

「유지를 좋아한다고. 나한테 유지와의 사이를 주선해달라고」


억누르던 감정이 둑이 터진 것처럼 터져 나온다.
학교의 누군가에게서, 가족에게조차도 아무렇게나 취급된 울분이, 말로 터져 나온다.


「이제 싫어! 이거면 충분해! 더 이상 어울려줄 수 있겠냐고!!」


짐이 떨어져 야채가 땅에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터지기 시작한 나 자신의 마음과 매우 비슷했다.


「지금까지! 난 계속 조연뿐이었어! 분위기를 읽고! 신경 쓰고! 그래서 결국 난 어떻게 되는 건데!?」

「오빠...」

「비참하고, 부러워서, 어쩔 수 없어서!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이라고 포기하고... 그랬는데... 그랬는데...」


모르는 사이에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어째서 내 세계는 보통이 아니었을까.
평범하게 사랑을 하고,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애인을 만들고.
그렇게 평범한 인생을, 어째서 나한테는 줄 수 없었던 걸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애는,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다음에 좋아하게 된 여자애도,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다음에 좋아하게 된 여자애도, 친구에게 반해 있었다.
그로부터 두 번 고백하고, 두 사람 모두 친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애는, 모두 친구를 좋아했다.

유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렇게, 하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평범하게... 평범한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미연시 세계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일반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걷고 싶었다.

―――어째서 나는, 이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거지?


「사라지고 싶어」


이미 한계였다.
타인의, 그것도 친구의 행복을 바랄 정도라면 얼마든지 해준다. 하지만, 내 행복은 어떻게 되지? 
자신이 불행의 수렁에 떨어져서까지,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 이상이 실현되는 가상 세계에서는 멋진 신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지쳤어...」


리셋하고 싶다.
여기가 게임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는 이제 이 세계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셨어요?」


따뜻했다. 그리고, 좋은 향기가 났다.
몽롱한 의식을 각성시켜, 상황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나는 료카의 가슴에 안겨,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지는 것 같았다.


「인생은, 생각대로 가지 않아요. 한 톨만큼의 행복조차 손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넘쳐흐르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꼭 껴안기면, 이렇게나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에 비하면 오빠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적어도 한 명,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팔에 힘을 주어, 더욱 강하게 안겼다.
얼굴을 들 힘은 없었지만, 료카가 미소 짓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정말 좋아해요, 오빠. 그러니 사라지고 싶다는 그런 슬픈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말랐음이 분명한 눈물이 다시 울컥거렸다.
행복은,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오빠가 주인공이에요. 같이 걸어가요. 그래주실 거죠?」


**************************************


「유우 군! 도시락 잊었어, 자」

「마키하라 군, 오늘은 저도 도시락을 만들어왔어. 맛 봐주지 않을래?」

「이이잇! 유지는 마키랑 밥 먹는다고 약속했는걸!」


4교시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호사카 자매가, 호죠 선배가, 앞을 다투어 유지에게 다가왔다.
이건 또 평소의 광경. 그리고 이후 아키모토 선생님이 이렇게 말한다.


「아, 마키하라. 너 프린트 제출 아직이었지. 밥 먹기 전에 직원실로 와라.」

「으아아아아! 그만 좀 해줘어어어!」

「하하핫, 오늘은 한층 더 여난의 상이 나오는 유지. 밥은 내가 먹어줄 테니 안심해라.」

「마사토 너 임마! 보지만 말고 도우라고!!」


하잘 것 없는 이야기. 친구를 둘러싼 트러블.
예전의 나라면 분명 견딜 수 없었을 이런 일상도, 지금은 마음에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행복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 다른 행복도 지금부터 천천히 찾아가면 된다.
주인공은 나다, 할 수 없는 것 따윈 없다!


「아자! 얄밉도록 훌륭한 RGM!」




밤, 저녁식사를 하던 나와 료카를 찾아온 사람은 유지였다.
평소의 실없던 분위기도, 여유 있던 표정도 사라진, 그 얼굴은 평소와 다르게 진검 그 자체였다.


「할 말이 있어.」


내 준 차도 거의 마시지 않고, 유지는 나와 료카를 다시 보았다.


「조금 전, 리에와 레이카 선배한테 고백 받았어.」

「오오!」


마침내 유지에게도 봄이 왔나. 라고 해도 이 녀석의 경우, 항상 신춘이었던 생각이 드는데.


「나, 우유부단이잖아? 그래도... 나 진지하게 생각했어. 역시 내 마음에 솔직해지자고.」

「그, 그래? 그래서, 어느 쪽으로 정했어?」


꿀꺽하고 숨을 들이쉬는 나. 가만히 응시하는 료카. 입을 일직선으로 묶은 유지.
한 박자 두고, 유지가 입을 열었다.


「나...말인데, 료카 짱을 좋아해.」


쇼크는 없었다.
어느 쪽인가 하면 유지가 선택해줬다는 기쁨 쪽이 강했다.
이 녀석의 좋은 면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유지라면 괜찮다. 료카를 슬퍼하게 할 짓은 하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번에 고백을 받고, 처음으로 료카 짱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머뭇머뭇 얼굴을 붉히며 유지는 말한다. 손이 떨리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료카 짱이 마사토를 소중히 생각하는 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나도 그 고리 안에 넣어주지 않을래...?」


유지 나름대로 힘껏 한 고백일 것이다. 여기에 올 때까지 분명 몇 번이나 연습했음이 틀림없다.
나는 이제 전과는 다르다. 지금이라면 타인의, 여동생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줄 수 있다.

「료카, 유지는 이래 보여도 여차할 때 의지가 되는 녀석이야. 너와 유지라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괜ㅊ」

「틀렸어.」


단숨에, 공기가 변했다.
료카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낮아지고, 눈동자 안쪽 빛이 사라졌다.
흔들흔들... 일어서서, 휘청휘청 찬장 쪽으로 걸어갔다.


「저...기.., 료, 료카 짱...?」

「너의 대답은 그게 아니야.」


평소의 조신한 행동도, 늘 짓던 미소도 사라지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는 『선택해선 안 돼』. 평생 그대로, 네가 선택하는 길은, 누구와도 사귀지 않는 하렘 세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유지도 그런지, 갑작스러운 전개에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도로 뇌를 완전가동시켜서, 사태 파악을 서둘렀다. 그리고, 한 박자 빠르게 따라잡은 사람은 유지였다.


「저, 저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의 포지션은 거기가 아냐, 라고 말하는 거야.」


빛이 사라진 눈동자가 똑바로 유지를 붙든다.


「오빠의 세계에서 넌 『미끼』야.」

「미...끼...?」

「너의 역할은, 오빠 주변의 여자를 반하게 하는 일. 오빠에게 나쁜 벌레가 붙지 않게 하는 방충제.」


유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져 간다. 나도 비슷한 얼굴일까.


「그래서, 오빠에게 평소 말했어. 너에게서 떨어지지 말라고.」

「아...저기...?」

「『너의 세계』에서 우리들 남매는 단순한 조역. 따라서 나는 너의 게임 공략대상이 아니야. 동시에, 『오빠의 세계』에서 넌 그저 방충제에 불과해. 오빠의 게임 공략 캐릭터는 나 혼자.」


어느 샌가. 료카는 유지의 눈앞에 바싹 다가와 있었다. 속이 텅 빈 눈동자를 닫는 일 없이, 빨아들이듯 유지를 응시한다.


「그리고... 『나의 세계』에서 등장인물은 오빠만. 그래, 우리들뿐이야.」


이 때, 나는 나와 료카 사이에 있는 오해를 깨달았다.
그녀는, 료카는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정말 좋아」는 가족으로서가 아니고, 이성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것을.

료카의 손에, 뭔가가 쥐어져 있었다. 무디게 빛나는 그것은... 공예용 소형 해머인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런 중대사에 움츠러들어 움직일 수 없게 된 자신을 저주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료, 료카 짱이 마사토와 둘이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어.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그리고, 이런 장면에서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유지를 다시금 존경한다.
흉기를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말할 수 있는 배짱을 갖추다니 역시 주인공...이라는 걸까.


「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어. 사람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거야. 그렇지? 모든 사람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나를... 너의 세계의 등장인물로 해주지 않을래?」


그 사랑은 진짜다. 표변한 료카를 앞에 두고 이런 대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말은 즉, 미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건가」

「어...?」

「너, 쓸모없구나.」


거실에 둔탁한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려 퍼진다.
봐서는 안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내 두 눈은 몇 번이나 두드려 맞고, 엉망진창으로 부서져가는 친구의 얼굴에 못 박혀있었다.

이윽고, 희미하게 반응하고 있던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자, 료카는 천천히 다가와서는, 내 눈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오빠」


사방에 흩날린 고깃조각과 엄청날 정도의 피가 달라붙은 얼굴을 닦으며 료카는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방충제, 망가져버렸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부터 모여드는 벌레는 제가 구제할 거니까요.」


아직도 눈동자가 열려 있을 뿐,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나의 머리를 정성스레 어루만진다.
이 때 나는 이미 정신을 잃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정신이 든 때는, 다음날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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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만! 유우 군은 신죠 군 집에 간다고!」

「적어도, 마사토 군과 이야기만이라도 하게 해줄 수 없어요?」

「료카! 진짜로 유지 안 왔어!?」


현관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그 소리는 매일 듣고 있다. 호사카 자매와 호죠 선배다.


「오빠는 몸이 안 좋아서 이야기할 수 없어요. 미카히라 선배도 어제는 오지 않았어요.」


아니, 료카. 유지는 어제 집에 왔잖아.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했는데... 그리고 어떻게 된 거지?
어쨌든 모두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빨리... 음... 어라? 몸이 움직이지 않아...


「정말이지, 방충제가 없어지고 나니 바로 이렇다니까. 참으로 성가신 날벌레군요.」


살포시 료카가 침대에 앉는다. 료카, 라고 부를 생각이었지만, 내 목에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빠의 세계는 머지않아 벌레로 망쳐지겠죠. 하지만 안심해주세요.」


료카가 뻗은 왼팔은 나의 노출된 음경에 닿았다.
왜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까. 나는 알몸이었나.
료카는 천천히, 리드미컬하게 내 음경을 훑어내며 오른손으로 재주 좋게 옷을 벗어갔다.
몇 년 만에 보는, 여동생의 나체. 마지막으로 본 때는 초등학생 무렵이던가.
움직일 수 없는 내 몸에 걸터앉아, 달콤하고, 음미한 입맞춤을 마치자, 하반신의 음경이 무언가에 싸여갔다.


「저의 세계에는 우리들 두 명밖에 없어요. 여기에서는... 『제가 주인공이랍니다』」


13. 보고서 9A-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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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지휘관의 임무는, 우리들 인형에게서의 요청을 정리.

  각 부대장이 모은 자료 다발을 한 장 한 장 주의 깊게 읽고, 오늘 부관인 콜트 씨에게 대책 등을 전하겠습니다.


  아, 지금 제 요청이 읽혔네요.

  용지에는 『좀 더 지휘관 곁에 있고 싶다』라고 썼습니다.

  읽어내린 지휘관은, 아무래도 제가 부관을 담당하는 날을 늘려줄 모양입니다.


  배려 깊은 지휘관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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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부관은 SOP 씨.


  부관은 보통, 지휘관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 놓인 소파와 테이블에서 일을 하지만, SOP 씨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인원이, 지휘관 옆에 있으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스킨십이 짙은 편으로, 때때로 지휘관 등을 감싸거나 어깨에 달라붙기도 합니다.

  이 적극성은 본받아야 하겠네요.


  ......안긴 지휘관의 체온이 조금 오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저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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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지휘관에게서 떨어져 수행하는 임무입니다. 빨리 지휘관을 만나고 싶어.

  통신기 너머로 그리폰 오퍼레이터 목소리가 들립니다. 빨리 지휘관에게 돌아가고 싶어.

  밤인 이유도 있어, 시야가 나빠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휘관지휘관.


  지휘관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정말 신경 쓰입니다, 걱정입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빨리, 빨리, 빨리, 끝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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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지휘관은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아무도 없는』 자기 방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어서, 저도 몇 개는 기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전 날 그걸 지휘관에게 알렸을 때는, 잘 부른다고 칭찬받았지만, 목소리가 복도에 새고 있던 건 부끄럽다고 했었죠.


  괜찮아요 지휘관. 밖에는 새지 않았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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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의 휴일이라, 스프링필드 씨에게 요리를 배웠습니다. 지휘관의 취향을 가장 잘 아는 그녀는, 이 기지에서 최고의 요리사이기도 합니다.


  요리 자체는 자신 있지는 않지만, 만일의 경우를 위해 익혀 두는 것도 나쁠 게 없습니다.


  배우는 중간에, 스프링필드 씨는 궁금한 듯 중얼거렸습니다.

  지휘관을 보지 않아도 괜찮겠냐고요.


  괜찮아요, 더미 링크를 두고 왔으니까요.


  제 대답을 듣고, 스프링필드 씨는 쿡쿡하고 웃었습니다.

  스프링필드 씨도, 자주 쓴다고 합니다. 역시, 저와 마찬가지군요.


  요리 이야기도,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지휘관도, 건강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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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M16 씨에게 불렸습니다.


  지휘관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몰랐지만, M16 씨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저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네, 할 수 있으면 쭉, 영원히.


  해줬으면 하는 건 특별히 없습니다. 지휘관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저는 그런 지휘관의, 기뻐하는 모습이나 웃는 모습이나 슬퍼하는 모습이나 울고 있는 모습이나 화내는 모습이나 자는 모습이나 생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지휘관이 행복하면, 가능하면 그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도 행복합니다.



  M16 씨는 기쁜 듯 웃으면서 돌아갔습니다.

  아무래도 만족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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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내일은 제가 부관인 날입니다.

  이제부터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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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어느 날의 저녁 반주 이야기. M16A1



「그럼, 건배」



  구호에 맞춰 잔을 넘기자,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M16은 그대로 한 번에 다 마셨지만, 나는 홀짝홀짝 맛보듯 마시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술을 마신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내 의지대로 마신 적은 없고, 대부분 친구나 일 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덧붙여서 이유는 단순, 술에 약했기 때문이다.


  그건 여기에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바로 요전 날 M16의 부탁으로, 나는 오랜만에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설마 어려운 임무를 해낸 보상으로, 나와 같이 술을 마시기를 희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물고 늘어져봤지만, M16은 굽히지 않았다.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 자리에 있던 SOP짱은 「철혈의 목을 잡아오면 내 부탁도 들어줄 거야?」라고 내게 물었다. 그건 글자 그대로의 목이겠지?

  목은 좀...... 이라 하자, SOP짱은 불만이었다.

  M4 양과 콜트가 보충해주지 않았다면, 좀 더 위험한 것이 제시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휘관,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건가?」



  옆의 의자에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제대로 듣고 있다마다.

  기지에 이런 방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듣지 않았잖아?」라고 흘기는 M16.

  솔직하게 사과하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바(BAR)였던 것 같지만, 철혈의 습격을 받고 나서는 이 상태라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근처를 둘러보니, 방구석에는 망가진 가구가 쌓여 있었다.

  깨끗이 청소된 곳은 우리들이 있는 카운터와 그 주변만인 것 같다. 이런 상태라면 굳이 여기에 와서 마시지 않아도, 집에서 마시면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여기를 지정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지휘관, 그렇게 거창한 이유 같은 건 없어. 남자와 여자가 마시려면 분위기도 중요한 거야.」



  M16이 병을 든다. 아무래도 따라주려는 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반 이상 남아 있는 내 잔을 비웠다. ......쓰다.


  「좋아, 잘 마시고 있다고」라며, 술을 따르면서 웃는 그녀의 모습이 약간 흔들린다.

  ......설마 단 한 잔에 취한 건가? 확실히 난 별로 술에 센 편이 아니고, 여기에 와서 오랫동안 마시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약해도 너무 약하다.



「......자, 지휘관」



  내 상태를 헤아렸는지, M16이 물이 든 컵을 내민다.

  이런 건 정말 눈치가 빠르구나 생각하며 감사의 말을 하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너 이것도 술이잖아!


  화내는 나를 보고 그녀가 호쾌하게 웃는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라며 받은 물을 마시며, 시시각각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었다.


















  ────지휘관, 들리나?


  ......과연, 대답하는 게 겨우라는 느낌인가. 안심해, 내가 책임지고 지휘관을 방에 데려다줄 테니까.


  응? 아아, 확실히 그렇군. 중대한 임무, 확실히 맡았다.


  평소보다 말이 많구나...... 혹시 지휘관은 취하면 말이 많아지는 타입인가?


  ......지휘관. 우리들 인형, 어떻게 생각해?


  ............그래, 그렇게 말해준다니 기뻐.


  그 밖에......라니, 뭐야 대답해줄 건가?


  그래...... 인형들 중에 취향에 맞는 녀석은 있으려나?


  헤에...... 나는 어때?

  

  ......그래그래! 훌륭한데! 오늘은 좋은 날이다!















  ──이봐이봐, 지금은 내 시간이잖아?


  미안하지만 지휘관과의 시간은 1초라도 양보할 수 없지.


  ......오늘은 돌아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