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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화 【초등학교편⑧ 전편】


  ◆


  소독액이 코를 찌르는 익숙한 냄새.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 냄새에 싸여, 나는 얕은 잠 속에서 계속 떠돌고 있었다.
  이렇게...... 꿈을 꾸지 않는 잠은 오래간만이다. 마치 어머니에게 안겨있는 것 같은 깊은 평온함을 느끼며, 느긋하게 잠을 계속 탐낸다.


「......그래서, 사오리 아가씨는 어떻게 된 겁니까? 전화로는 문제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안심해주세요. 용태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검사 결과, 뇌나 뼈에 이상은 없었습니다. 단지 알려드린 바와 같이, 우폐가 손상되어 3시간 전에 긴급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는 안정, 그 밖의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은 마취 효과로 자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하신 긴급 처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만.」


  멀리서 들리는 소곤소곤하는 말소리.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여자의 목소리――성인 여성이라는 느낌이 나는 침착한 분위기――와 어머니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엄격함이 느껴졌다. 마치 분노를 숨긴 듯.


「우선, 신에자키 사오리 양은 타박에 의한 긴장성 기흉이었습니다. 매우 위험한 상태였으리라 추측됩니다. 리사이클 센터에서 보고를 받아 여기에 차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26분. ......결론으로서는, 미지의 의사에 의한 빨대를 쓴 긴급 처치가 없었다면 지극히 중대한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 정도였습니까...... 처치는, 선생님의 눈으로 봐도 문제가 없었다고요?」

「예...... 문제 없... 아니요, 오히려 훌륭한 처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단, 몇 가지 납득이 안 되는...... 네, 납득이 안 되는 점이 있지만요.」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의미를 모르겠다. 마치 먼 외국말처럼 밖에 들리지 않는다. 포근포근하고 편안한 잠에 빠진 채, 멍하니 그 소리를 계속 듣는다.


「우선 무엇보다도, 환자――사오리 양――을 방치하고 자취를 감췄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생명의 위험이 있는 환자를 방치하고 사라졌는데 수술은 했다는 것은 같은 의사로서 믿기지 않습니다. 혹시 용태가 급변했다면...... 왜 수술을 했으면서 자취를 감췄을까요?」

「학교 선생님...... 즉 마을 어른들에게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은?」

「저는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다음으로, 긴급 처치의 도움을 아키라――제 아들입니다만――초등학생에게 시켰다는 점입니다. 아키라의 왼쪽 어깨에 남은 환자의 손톱자국으로 보아, 흉강천자 시에 사오리 양의 몸을 억누르는 일을 시킨 것 같습니다만」

「예, 아키라 군. 한 번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매우 성실한 소년이라 생각했습니다. 피로로 잠들어 있다고 들었는데, 아가씨를 도와 주셨군요...... 그것이 문제라는 건?」


  어머니의 목소리에, 역시 노기가 조금 섞여 있다. 평소 나나 사쿠라에게는 결코 내지 않는 목소리.
  항상 미소 짓던 어머니가, 이렇게 무서운 소리를 내다니......


「이것은, 제가 부모이기 때문에, 냉정한 판단이 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초등학생에게 시킬 정도면, 왜 어른을 부르게 하지 않았을까요? 근처 시설에 학교 선생님들이 계셨는데요. 구명,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게다가 눈앞에서 수술까지...... 살아났으니 다행이지, 만일의 경우 아들은...... 아키라는 평생 후회하게 되었겠지요. 자신이 동급생을 죽이는 데 일조했다고. 도움이라고는 해도 아이에게 안이하게 생명을 짊어지게 하다니......」

「......그 점으로 봐서도 방금 전 같이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을의 어른과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은 의사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도 용서할 수 없다?」

「예. 무슨 이유가 있어도, 꺼져 가는 생명보다 자신의 사정을 우선하다니. ......다만, 긴급 구명 기술의 우수함은 인정합니다. 불안정한 곳에서의 수술, 게다가 마취도, X-ray도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혈관이나 신경 등에 상처를 내지 않고 최소한의 절개를 했습니다.」


  어디선가 감도는 커피 향. 따뜻한 시트에 싸여, 나는 여전히 얕은 잠속에서 떠돈다.


「틀림없이 베테랑 의사라는 말입니까?」

「예, 틀림없습니다. 여기, 이 좁은 곳인데...... 제2 늑간 쇄골 중선으로 전혀 빗나가지 않고 한 번에 접근했습니다. 성인이라면 몸도 커서, 뼈의 틈새가 넓기 때문에 조금은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신에자키 사오리 양은 발육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 성인보다 매우 좁은 늑골 틈새에, 타 조직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빨대를 넣었습니다. 오한이 날 만큼 탁월한 수술 기술...... 굉장히 경험이 풍부한 외과의입니다. 그 정도인데, 그런 인물이 환자를 방치하고 떠난 건.....」

「......그렇군요.」


  잠시 동안의 침묵. 내 귀에 닿았던 소리는 그치고, 답답한 무음이 지배한다. 그러나, 몇 분 뒤......그 침묵을 찢고, 어머니가 아닌 쪽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이 일은 비밀로 부탁하고 싶습니다. 상황을 볼 때, 사오리 아가씨를 조치한 사람은, 전 신에자키가의 의사, 친부인 테츠오 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에자키가가 의뢰한 흥신소에 의하면, 5년 전에 신주쿠에서 확인된 이후, 발견되지 않은 것 같지만요.」

「아니요,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친이――아무리 긴급 처치를 했다고는 해도――친딸을 방치하고 사라질 리가......」

「선생님. 죄송하지만 그건 신에자키가의 문제입니다. 관여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거북한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가벼운 헛기침을 한 뒤, 여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선생님도 아실지 모르지만 지금, 신에자키가 당주님――사오리 아가씨의 어머님――은 재혼 준비로 매우 바쁘십니다. 더 이상, 쓸데없는 불씨를 지필 여유는 없습니다. 이번이 만일 테츠오 씨의 처치는 아니었다 해도, 재혼이 정식으로 결정될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풍파는 일으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해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즉, 이 긴급 처치를 중요시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아가씨를 긴급 처치한 사람은 우연히 지나가던 아무 관계없는 의사였다...고. 게다가 원래, 형사사건이 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긴급 피난, 감당할 수 없는 처치였다고 선생님도 인정하셨습니다. 신에자키가 입장에서는, 선의의 제 3자였다고 판단합니다. 결코 전 부친이 살린 것이 아니다. 사오리 님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 남자와 접점 따위는 없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부디 외부로 발설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온 침묵. 나는 수면과 각성 사이를 계속 헤매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목소리...... 어딘가 한숨이 섞인 듯한 소리.


「......저는 의사입니다. 당부 받을 것도 없이, 환자의 병상에 관한 일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오리 양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어 할 경우, 그것을 전하는 것도 또 의사로서의 책무입니다. 그걸로 좋습니까?」

「예, 실은 아가씨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선생님에게 그런 부탁을 해도 소용없겠지요?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러면 선생님, 아가씨가 눈을 뜨면 다시 연락해주실 수 있습니까? 병원을 옮길 준비도 해야 하고, 자세한 상황도 사오리 아가씨에게 듣고 싶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저녁까지 도서관, 그 이후는 휴대폰이면 됩니까?」

「아니요, 도서관이면 됩니다. 오늘밤은 저기서 묵을 테니까요. 그러면 선생님, 사오리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드님도 몸조심을, 아가씨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다망한 신에자키가 당주님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또각또각하고 바닥을 걷는 하이힐 소리, 그리고 문이 열린 뒤, 어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민하는 듯, 슬퍼하는 듯...... 그것은, 완전히 지쳐버린 사람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두운 기분을 내뱉는 듯한, 그런 답답한 한숨이었다.



 ◆◆



  그것은 갑작스러운, 너무나 갑작스러운 기상이었다. 진흙 같이 깊은 잠에서 단번에 깨어나, 너무 또렷해진 의식 때문에 반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며 눈을 떴다.
  나는 몸에 걸쳐진 하얀 시트를 젖히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여기... 여긴 진료소?」


  멍하니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자, 본 기억이 있는 하얗고 무기질적인 침대 위. 틀림없이 어머니 진료소에 있는 침대다.
  시각은 낮이리라, 창 밖에서 하얀 커튼을 투과하는 눈부신 태양광이 찌르고 있었다. 나는 청바지, 그리고 상반신은 진료소에 둔 푸른 유카타라는 언밸런스한 모습이다. 게다가 왼쪽 어깨에는 창상용 폴리우레탄 필름이 붙어 있었다.
  ――왜 이런 차림을, 거기에 왜 진료소 같은 곳에? 티셔츠는...... 아니, 애초에 뭘 하고 있었지? 어째서 왼쪽 어깨에 상처가......앗!?


「신에자키!!」


  단숨에 되살아나는 기억. 여러 장면이 머리에 순간적으로 떠오르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없다. 신에자키는 무사한가? 그 생각만으로 초조해진다.
  아직 잠에 취한 듯한 나른한 몸에 힘을 넣어 침대에서 바닥으로 발을 내딛는다. 힘이 약간 안 들어가는 손, 조금 아픈 왼쪽 어깨를 무시하면서, 병실 칸막이가 된 하얀 천을 잡아당긴다.
  독특하게 새된 소리를 내며 열리는 하얀 천. 그리고 몇 미터 옆의 침대를 나누는 희미한 녹색 커튼이 보였다.


「히이라기 군, 일어났어!?」

「――!? 신에자키! 거기 있어? 저기, 괜찮아!? 이 커튼 열어도 돼?」

「앗, 아...... 자, 잠깐 기다려...... 기다리세욧. 멋대로 열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녹색 커튼 너머에서 울리는 신에자키의 목소리. 평소대로 늠름하지만, 요염하고 그리고 매우 건강해 보여서...... 나는 크나큰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응」


  1, 2분 뒤 부스럭부스럭하고 뭔가를 정리하는 소리가 그치고, 겨우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힘차게 커튼을 열었다.


「――읏」


  그 순간, 나는 놀라움과 기쁨에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침대에 그 몸을 일으키고, 활기 있게 나를 바라보는 신에자키의 모습을 정신없이 보는 채로......
  목덜미부터 우측 어깨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은 평소 그대로 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어딘가 기쁜 듯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어서, 평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흑발은 가녀린 몸에 스르륵 흘러내리고, 파자마는 광택 있는 검은 옷감에 프릴이 붙은 호화로운 것. 고스로리 같지만, 그게 엄청나게 어울린다. 확실히 공주님, 패션 잡지에서 그대로 나온 듯한 모습.


「뭐니? 그런 데 멍하니 서서는. 바보 아냐? 자, 여기에 앉으렴. 커튼을 계속 열어놓으면 눈부시잖니.」

「앗......응. 신에자키. 몸은 어때?」


  녹색 커튼을 닫고 신에자키에게 안내된 곳――그녀가 앉아 있는 침대의 빈 공간――에 앉아서 말한다.


「몸은? 히이라기 군에게는 듣고 싶지 않아! 알고 있어? 너 거의 하루 내내 자고만 있었으니까. ......아무튼, 난 건강하지만! 넌 어때?」

「아, 그래!? 아니 난 건강해. 엄청나게 상쾌해. 그런가... 그렇게 자고 있었던 거구나.」


  그 수술 뒤, 급습한 졸음에 견디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낸다. 요즘 들어 꿈 때문에 피로가 겹쳤던 것, 7km 걸은 직후에 한 수술, 그 굉장한 긴장을 다 참지 못하고 쓰러진 건가......


「응? 하루 내내라는 건, 학교...... 앗! 거기에 어머니는?」

「바보구나, 몇 시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 이미 시작했어. 지금이라면 점심시간 전, 4교시일 때잖니? 그리고 히이라기 군의 어머님이라면 왕진하러 가셨어. 급환이라고...... 후훗」

「앗, 왜 웃는 건데. 으으, 학교 땡땡이 쳤다고.」


  입가에 손을 대고 싱글벙글 미소 짓는 신에자키.


「어머, 미안해. 파파도 매일 바쁘게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이 알코올 냄새...... 병원에 자주 숨어들어가서 혼난 것도. ......정말 그리워. 후후, 거기에 아침, 네 침대 굉장했단다. 사쿠라 양과 칸나즈키 군이 병문안 왔었어. 상당히 이른 아침부터.」

「어?」


  사쿠라와 코이가 왔었나 하는 놀라움과, 신에자키가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표정의 부드러움에, 무심코 말이 막힌다. 그런 나를 보면서, 쿡쿡하고 미소를 띠며 계속 말하는 공주님.
  내가 앉은 침대의 위치와 그녀가 앉은 곳이 옆이라, 조금 허둥지둥하고 말았다. 신에자키가 우아하게 몸을 움직일 때, 뭐라 말할 수 없이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느껴진다.


「어느 쪽도 학교를 쉬고 너의 간병을 하고 싶다고 했었어. 뭐, ‘단순한 피로니까 걱정하지 말고 학교에 가렴’이라고 히이라기 군의 어머님에게 듣고 마지못해 납득했던 것 같지만. 후후, 그래도 학교에 갈 때의 두 명의 얼굴,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

「그, 그래. 아, 그런데 신에자키는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난 거야?」


  평범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건강하다는 그 무엇보다 큰 증거라, 그저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정말 즐거웠다.
  게다가 왠지, 신에자키도 평소보다 언행이 부드러워서, 이야기하기 매우 쉽다.


「그러네, 평소에는 6시부터 합기도 연습을 해서, 늦어도 4시 30분에는 일어나고 있어. 그래서 눈이 빨리 뜨였고, 아무개 씨는 칠칠치 못하게 자고 있어서 지루했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하고 있었어. 상처도 덕분에 괜찮다고 하고」

「윽...... 합기도, 헤에」


  합기도......라는 단어로, 어제의 일――실족할 뻔한 나를 도와주었던 묘한 동작――을 떠올린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듯 우아했던 몸과 긴 손발,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예리한 눈동자의 아름다움.
  바로 옆에서, 흑발을 왼손으로 귀에 걸치며 미소 짓는 신에자키. 검은 프릴이 붙은 파자마가 역시 잘 어울린다. 조금 더운 탓인지, 고스로리풍 파자마의 버튼을 풀어서 아름다운 쇄골 라인이 보이고 있었다.
  무심코 시선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하얀 피부. 그곳을 보고 두근두근한 나는 깨닫지 못했다.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밝은 분위기, 거기에 숨겨진 불안정함, 신에자키의 여린 면을.


「저기, ......그런데 히이라기 군. 그,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니?」

「응, 뭔데?」


  20분 정도 느긋하게 보잘 것 없는 이야기를 계속 하던 우리들. 하지만 갑자기, 신에자키의 말투가 바뀐다. 철컥하고 스위치가 바뀐 것처럼......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온화한 분위기와는 달리, 어딘가 어둡다.
  띠던 미소를 지우고, 진지한――조금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표정이 되는 그녀. 가늘고 길게 째진 눈동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어쩐지 말하기 어려워서, 마치 무서워하는 것 같은 분위기.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3분 정도 침묵한 뒤, 아름다운 얼굴을 숙이고, 오도카니....하는 느낌으로 겨우 중얼거렸다.


「오늘 아침...... 조금 들었는데, 너. 내가 실족한 곳에서 어른 남자를 만났지? 그 사람 뭔가 말하지 않았어? 그게, 내 생일이라든가......」

「어?」


  너무나 깊은 생각에 빠진 그녀. 조금 무서워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평소 느낌과는 전혀 다른, 자신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녀리고 덧없는 인상.


「아, 아니. 아니야. 그런 건 어떻든 좋아. 그래...... 그 사람, 건강해 보였어?」


  조금 비음이 섞인 허약한 소리. 기원하듯 양손을 끼며, 가만히 바라보는 눈동자.
  하지만 나는 잘 대답하지 못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신에자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미, 미안. 신에자키. 무슨 말을......」


  그저 시간 벌기처럼 횡설수설하게 입을 연다. 하지만, 신에자키는 듣지 못하고 말을 계속한다. 몸에 가득 찬 불안을 쏟아내듯이, 내게 매달리듯이.


「아침에 말인데, 나. 히이라기 군의 어머님에게 들었어. 그 때, 긴급처치를 해 준 의사가 있다고, 그걸 너도 도와줬다고! 그 사람이 내 파파야, 날 도와줬던 사람이! 저기, 파파. 아픈 느낌은 아니었어? 제대로, 확실히 잘 지내고 있었어? 알려줘, 나. 파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걱정이야! 사소한 거라도 알고 싶어.」

「아......」


  둑이 터진 듯 넘쳐 나오는 그녀의 말. 마치 애원하는 듯한 소리.
  그리고, 나는 퍼즐 조각이 채워진 것처럼 이해했다. 어제의 수술...... 그걸 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왠지 신에자키의 아버지가 한 일이 되어있다는 것을.


「그건......」


  확실히 내가 수술한 장면은 아무도 보지 못했고, 한심하게도 설명하기 전에 나는 잠에 빠져 버렸다.
  당연히, 나 같은 초등학생이 수술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의사가 그곳에 있었을 거라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왠지, 신에자키의 아버지가 수술을 한 셈이 되었다고.


「그 때, 너무 아파서, 정말로 아파서...... 이제 죽는 편이 좋다고까지 생각했어. 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억나. 『절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힘내, 힘내!』라고 필사적으로 크게 외치는 소리. 나를, 그 소리가 구했어. 마치 꼭 껴안긴 것처럼 행복했어. 그래도, 역시 착각이었는지도......」


  수술할 때, 신에자키가 강하게...... 마치 매달리는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를 갈구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항상 빠듯하게 계속 노력하는 그녀.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오늘의 신에자키가, 온화하고 만족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는 정말 좋아하는 아버지가 도와줬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으니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세게 어금니를 악물었다. 여기서 진실...... 수술을 한 사람은 나였다고 말해도 좋을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 때, 정말 행복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정말 좋아』라고 중얼거린 신에자키. 그것은 전부 거짓말, 그녀의 착각이었다고 말하는가?


「아니면, 아무 말도 안 했어? 나, 파파한테 또 폐 끼쳤어...... 계속 보고 싶다고 바랐는데, 보러 와 주지 않았어. 아니,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역시 어떻든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딸이라 나, 날, 역시 방해라고...... 어쩌지, 파파한테 미움 받으면 나, 어떻게......」


  마지막은 이미 질문조차 아닌, 그저 오열이었다. 무서워하는 아이처럼. 그녀의 눈에서 몇 방울의 눈물이 흘러 검은 옷으로 떨어져간다. 그 아름다운 빛이 내 마음에 도려내듯이 꽂힌다.


「신에자키」


  그녀는 나와 같다. 언제나, 항상 생각하던, 나는 어머니에게 폐가 되는 존재, 방해인 건 아닌가? 신에자키의 슬픔을, 내 아픔인 것처럼 똑똑히 느낀다.
  가슴 속에서 솟아나는 충동. 자극 받은 대로 그녀의 하얀 손을 감싸듯이 잡고, 말을 짜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래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필사적이라 별로 얘기할 수 없었지만, 그 사람...... 아버님은 건강해 보였어. 거기에, 생일 축하한다고. 신에자키를 많이 좋아한다고. 살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어. 어떻든 좋을 리가 없어! 절대로, 폐라니! 절대로! 신에자키를 방해라니, 싫어할 리가 없잖아!」

「......응」


  나는 최악에 잔혹한 거짓말쟁이다. 이 거짓말이 발각되는 순간, 신에자키는 나를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미워하고 경멸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는 충동에 지배된 채, 울고 있는 그녀의 양손을 꼭 쥐었다.
  내 뺨에도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울 자격 따윈 없다, 최악의 거짓말쟁이인 주제에...... 지금까지라면, 상관없다고 결론짓고 진실을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걸 믿을 수 없다고 해도, 딱히 어떻든 상관없다면서 아무 흥미도 없이 차갑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신에자키의 마음이 망가지는 것이 무섭다. 이 최악의 거짓말로 인해, 언젠가 더 큰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데도 지금, 그녀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자기혐오.
  그 속에서, 내 진정한 마음을,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려고 할 말을 찾는다.


「나도, 신에자키가 살아서...... 정말, 정말로 기뻐. 미안해, 신에자키. 그래도......나도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

「......고마워, 고마워. 히이라기 군」


  서로 맞잡은 우리들의 양손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떻게 말해야 했는지 나는 몰랐다. 하지만, 언젠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얘기해야 할 때가 온다. 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의 편이 될 거라고......굳게 맹세했다.
  ――그리고, 커튼 너머로 밝은 햇빛이 비치는 침대 위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양손을 잡고 말없이,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계속 기다렸다. 조금 코를 톡 쏘는, 익숙한 알코올 냄새에 싸이면서.



 ◆◆◆



  리사이클 센터에서 사고가 일어난 지 정확히 일주일이 흘렀다.
  ――결국, 나는 최악의 거짓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어머니가 잠시 상황을 물었을 때도, 『모르는 남자를 도와줬어. 하지만 필사적이라 거의 기억나지 않아.』같은 대답만 반복. 신에자키는 후교의 큰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가방은 그 때 코이가 들고 가준 것 같아, 사고 다음 날에 학교에서 받았다.


『아키라, 고민 있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좋으니 말해봐』


  라고 했지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맥 빠질 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돌아와, 나는 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아아 진짜, 왜 그렇게 째려보는 건데. 게다가, 왜 코이까지 여기에 있는 거냐고!」


  ――사고가 일어난 지 일주일, 수요일 방과 후, 우리 집.
  웬일인지 나는, 소꿉친구인 사쿠라와 친구인 코이의,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싱글벙글하고 미소 짓는 사람은 어머니 뿐, 사쿠라와 코이는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뾰로통한 얼굴로 빤히 흘겨본다.


「시끄러 아키라. 사쿠라랑 놀려고 온 거야. 그런데 그 나비넥타이는 뭐야! 엄청 이상해, 전혀 안 어울려! 진짜 바보 아키라라는 느낌」

「맞아 아키라 오빠. 엄청 안 어울려. 틀림없이 비웃음 받을 거니까 안 가는 게 어때? 지금부터 거절 전화를 걸면 되잖아, 응? 선생님하고 칸나즈키 선배, 넷이서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그렇게 무서운 짓,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악전고투하며 턱시도를 몸에 맞추는 내 고생을 모르고, 멋대로 떠벌려대는 둘.
  반바지에 티셔츠의 러프한 차림으로 소파에 앉은 채, 내 마음에 드는 쿠션을 멋대로 안고 있는 친구, 그리고 아까 전부터 여기저기 잡아당기며 방해하는 소꿉친구를 흘겨본다.
  하지만, 그보다 기분이 안 좋은 시선으로 되돌아와, 당황해서 눈을 돌렸다.


「자, 둘 다. 아키라를 그렇게 괴롭히면 안 돼. 후훗, 여길 봐 아키라, 모처럼이니 사진 찍어둘 테니까.」

「잠깐, 어머니까지...... 아아, 진짜!」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찰칵찰칵하고 셔터를 마구 누르는 어머니. 이런 턱시도 차림...... 엄청 부끄러운데 전혀 아랑곳없이 연사한다.
  하아...... 하고 한숨을 쉬면서, 나는 턱시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한 장의 종이를 만진다. 그렇다, 이 얇은 종이가 모든 원흉이다. 광택이 나는, 그야말로 고급스런 감촉의 하얀 종이. 정중하게 붉은 밀랍으로 봉해진 그 내용.......

「아-아~ 그런데 말이야, 아키라만 파티에 초대받는 건 뭐야? 치사해! 으으으윽, 나도 가고 싶었어. 예쁜 드레스, 호화로운 요리, 거기에 디저트!」

「맞아, 치사하다구! 칸나즈키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죠? 왜 오빠만!? 저기, 오빠. 진짜로 신에자키 선배랑 무슨 일인가 있었던 건 아니지?」

「시끄러, 바보 사쿠라. 아무 일도 없다고 계속 말했잖아! 다만, 일전의 감사를 겸한다는 걸로...... 거기에 원래 초대받은 사람은 어머니고. 어머니가 만약 급환이 올 수도 있다고 거절해서, 별 수 없이 내가 가게 된 거잖아.」

「자~! 여기 봐, 아키라. 이쪽으로, 엄만 다음에는 미소를 찍고 싶어. 응? 방긋 웃어봐, 응. 그렇게. 잠시 그대로, 그대로!」


  사쿠라와 코이에게 몇 번째가 될지 모르는 설명을 반복하며, 어머니의 카메라를 향해 억지웃음을 짓는다.


『신에자키가 차기 당주 신에자키 사오리 탄생 12년 기념 파티 초대장』


  주머니에 든 하얀 종이에는, 금색 글자로 그렇게 쓰여 있다. 하지만, 초대장이라기보다는 소환장......이라 말하는 편이 정확한 것 같다. 사쿠라와 코이, 그리고 어머니를 상대하면서, 나는 초대장을 받았을 때의 일을 멍하니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주, 금요일 방과 후. 사쿠라를 사쿠라의 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바래다준 뒤에 간 읍립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
  여전히 귀엽게 미소 짓는 사서 님에게 인사를 하고, 의학서실로 들어갈 허가를 받았다. 실은 신에자키와 같이 가야 했지만, 그녀는 후교시의 병원에서 입원중이라 어쩔 수 없다.
  혹시 안 된다고 거절할 수도? 이렇게 생각했지만, 의외로 순조롭게 사서 님이 허가를 해줘서 나는 매우 기분 좋게 의학서를 읽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뭐지? 하고 뒤돌아 본 내 시선의 끝에는......


「신에자키, 어째서!?」


  거기에 서 있던 사람은 사복을 입은 신에자키였다. 평소의 교복이 아니라, 흰색의 심플한 원피스에 검은 핸드백을 들고 있다. 옷단은 매우 짧고, 거기서 뻗어 나온 긴 다리에는 흰색 롱 삭스, 신발은 검은 하이힐. 머리에는 빨간 헤어밴드를 단, 틀림없는 아가씨.
  오른쪽 어깨에 이미 붕대는 없고, 거즈가 붙어 있었다. 안색도 좋아서, 매우 건강해 보인다. 그 때의 가녀린 느낌은 조금도 없고, 날카로워서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온몸에서 넘쳐 나오고 있었다.


「뭐야, 나빠? 지금, 집에서 요양 중이야.」

「아, 아니. 전혀 나쁘지 않아. 그, 그렇구나. 그래도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다. 무슨 일로, 아......혹시 여기 마음대로 들어와서? 그게, 미, 미안. 조심해서 읽을 테니까. 정말 미안.」


  가늘고 길게 째진 눈동자로 찌릿하고 흘기는 그녀. 기분이 안 좋은지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 얼굴은 화난 듯 약간 붉다.
  당황해서 의학서를 닫고, 그녀에게 머리를 숙인다. 신에자키에게 아버지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마음대로 책을 읽어버린 것은――아무리 그녀가 입원중이라 생각했다고는 해도――내가 나쁘다.
  역시 화내고 있구나......하고 내심 한숨을 쉬면서, 약간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는 그녀를 보았다.


「......무서워하지 마, 바보」

「어?」

「――읏, 아무것도 아냐! 여전히 짜증나!」


  하얀 원피스를 통해 보이는 노출된 어깨, 호리호리한 팔로 팔짱을 끼고 뭔가 초조한 듯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그녀. 발끝에는 이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 붙어 있어서 매우 사랑스럽다. 그래, 겉보기만은......


「아아 정말, 몰래 빠져나와서 시간이 없어! 자 여기!!」

「어? 뭐야?」


  빠르게 말하며, 들고 있던 핸드백에서 하얀 물건을 꺼내는 그녀. 그것을 엄청난 기세로 내 눈앞으로 쑥 내민다.


「이건.....뭐야?」

「됐으니까 받으렴, 자. 우물쭈물거리지 말고」

「으, 응」


  완전회복, 평소대로 유아독존 모드인 신에자키. 기세에 눌리며, 나는 그 하얀 종이를 받는다.


「다음 주 수요일. 18시부터니까. 만약 안 오면 알지?」

「저기, 우선 뭐가 뭔지......」


  하얀 종이는 편지 봉투, 게다가 붉은 밀랍으로 봉해져 있어서 솔직히, 난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공주는 그런 나를 밀어붙이듯 말을 계속했다.


「그럼 나 돌아갈 테니. 저기...... 조금은 댄스 연습 해두세요.」

「네......?」


  또각또각하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의학서실에서 나가는 그녀. 그 뒷모습조차 터무니없이 균형 잡혀서 손에 든 편지를 무심결에 잊고 바라보았다.
  ――내가, 그것이 초대장이라는 것을 이해한 때는 20분 뒤. 뭐가 이상한지, 쿡쿡하고 계속 웃는 사서님과 둘이서 봉투를 열었을 때였다.